이슬람권 선교 전략(2) 이슬람권 선교를 위한 제안

 

1.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모슬렘과 이슬람은 어떻게 다른가? 이슬람은 종교이며 모슬렘은 이슬람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믿는 이슬람 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슬람에 대해서 배우는 것조차 꺼려해서는 그들에 게 복음을 전할 길이 없다. 이슬람권에서 사역하며 복음전도 하는데 직접 영향이 있는 방법 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이다. 예수님이 12살때 회당에서 대화하셨는데 대화는 그들을 진정 으로 이해하고, 나누기 위함이다. 무엇을 얘기하는지 들어야하고, 대화가 수단이 되어 그들 에게 복음을 나누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슬람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이러한 지식이 없이 대화 할 경우 그들로부터 일방적인 설득만 당하게 된다. 대부분의 모슬렘들은 아주 적은 이슬람에 대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깊은 이 해는 복음 전하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결국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그들 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이슬람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안목이 필요하다.


2. 코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코란을 터부시하며 코란에 대한 지식 없이 이슬람권 선교를 계획 한다. 코란은 성경에 대해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 많이 있으며, 특히 예수님에 대해서 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코란을 안다면 그에 대한 지식은 코란과 성경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코란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며 오히려 성경과 비 슷하다(코란, 수라19:16~21). 코란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쓰고 있다. 코란 어느 곳에도 예수님외에 메시야 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코란, 수라3:45). 이 한 구절 뿐 아니라 여러 구절이 있다. 또한 코란은 복음서를 인정할 뿐 아니라 그 신빙성까지 증거하고 있다(코란, 수라5:71).

 


또한 코란은 주님의 재림을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 “실로 예수의 재림은 심판이 다가옴을 예시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일러 가로되 그 시간에 대하여 의심치 말고…(코란, 수라43:61)” 예수님은 죄없음 뿐 아니라 심판자로서 나타난다.(코란, 수라19:71) 무수한 코 란의 구절들은 복음을 전하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이란인 개종자는 영 국 신학교에서 성경과 코란을 배웠는데 “왜 모슬렘들이 코란을 읽지 않느냐?” 는 필자의 질 문에 “만일 모슬렘들이 코란을 제대로 읽는다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기독교인이 된 한 사람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코란을 안다는 것이 이슬람 선교에 얼마 나 도움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3. 이슬람권 선교는 반드시 팀 사역과 연합사역 이여야 한다.

 


 성경은 단독적인 사역을 지지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써 각 지체를 관장하며, 지체는 상호 유기적으로 은사에 연관되어, 머리되신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연결되 어 있는 것이다. 모든 선교가 그러하겠지만 이슬람권 선교는 분명히 서로 연합하여 각자의 은사를 인정하며 팀을 이루어야만 한다. 선교지에서의 상호간에 비방 중상하면서 용서할 줄 모르는 약육강식의 경쟁체제는 아무리 합리적인 변명이 있다하더라도 성경적인 기준과는 상 반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탁월한 선교사였다. 그는 최초로 파송 될 때부터 동역자와 팀 사 역을 하였다. 교회 역사의 중요한 인물인 그레고리가 로마의 주교로 임명되고 영국 선교 운 동이 시작되는데 그는 AD 596년 어거스틴을 지도자로 하여 40여명의 팀이 처음으로 영국 켈트족으로 파송되어 많은 열매를 맺었다. 팀 사역은 1793년 근대 선교 아버지로 불리우는 월리웜 케리의 삶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선교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세람포스 삼총사(Serampore Trio)라고 불리는 마쉬먼(J.Marshman)과 워드(W.Ward)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철저히 팀 사역의 모범을 보였다. 이슬람권 선교는 같은 교단이나 선교단체 뿐 만 아니라 서로 다른 단체와도 연합사역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 사역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좋은 팀은 팀 전략가, 중보 기도자, 잘 섬기는 사람, 행정가와 좋 은 일꾼들이 있어야 한다. 협력하는 팀이 아닌 개인에게 이슬람선교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 다.

 

4. 개인 전도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슬람권에 접근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방법은 그 지역과 성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서 부 아프리카와 모리타니야에서부터 필리핀 남부까지 골고루 퍼져있는 모슬렘들은 그 조직이 다양한 만큼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나 우정전도를 통한 일대일 전도 방법은 어느 곳에나 적용되는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슬람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 중심 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예수님이 밤에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수가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했듯이, 예수님 당시 와 같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개인전도의 경험이 없으면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만 할 뿐 활용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개인전도 경험은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큰 도움 이 된다. 복음에 대한 반론과 자세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개인 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 복음의 능력은 곧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가 곧 선교의 동기고 출발점이여야 한다. 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찿을때 우리의 선교와 삶이 승리하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 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라고 부탁한 것처럼 이슬람권에는 잘 정비된 프로젝트와 거창한 계획보다 개인전도를 필요로 하고 있고 그 개인전도는 여전히 모 슬렘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유해석 목사 총신대학교 졸업, 총회신학교 졸업, 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파송 선교사, 현 F.I.M.국제선교회 대표로서 영국본부 사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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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략 / 코란의 주제6

무함마드 종교에 대한 가르침

ㅇㄱㄷ 선교사

무함맏은 새로운 종교 이슬람의 고안자이다.

이슬람 종교는 무함맏 이전에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다. AD 600년 이전에 󰡐알라󰡑, 󰡐이슬람󰡑, 󰡐무슬림󰡑 이러한 단어들은 세상 그 어디에도, 그 어떤 문서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슬람 종교는 하심 계통의 꾸라이쉬 부족의 아둡라의 아들 무함맏에 의해 아라비아의 메카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무함맏은 40세가 되었을 때, 가브리엘이라고 주장하는 천사에 의해 알라에 관한 계시가 아닌, 알라의 뜻에 관한 계시를 시리즈로 받았다.

무함맏은 아담과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와 심지어는 예수까지 참 무슬림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무지한 자힐리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선지자들을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자기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유일신 여호와가 있었다면, 무슬림들에게는 무함맏에 의해 유일신이 되어버린 알라가 있다. 무슬림이란 단어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을 모방하여 󰡐이슬람과 무슬림󰡑, 즉 󰡐복종과 복종하는 자󰡑의 구조를 만든 것이다.

기독교에는 그리스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무함맏은 자기가 스스로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라면, 무슬림들의 신앙의 대상은 알라이고, 이 알라는 그 이전의 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한 위치를 찬탈해 버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이삭, 다윗의 후손으로 왔다면, 자신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혈통으로 왔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아브라함 ? 이스마엘 ? 무함맏 신화를 만들어 냈다. 유대인들에게는 토우랏과 자부르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이, 이제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하디스가 경전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종교의 기준이 되었으며 세계관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면,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 사람들의 삶은 그들이 따르는 자를 닮게 마련이고, 실제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교회라면, 무슬림들을 위한 공동체는 움마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영역을 무함맏과 그의 종교 이슬람은 모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꾸란에서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수라 2:135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되라! 올바른 교훈을 찾자!󰡑 라고 그들은 말한다. (즉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되라! 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라! 라고 말한다. 너는 말하라! 오 무함맏이여!) 오직 우리는 참 길에서 떠나지 않은 자, 우상숭배자들이 되지 않은 아브라함의 종족에-그의 종교에 (따르고 있는 자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라고 해서 무함맏이 천재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상 무함맏은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으며 전해지는 바로는 문맹이었으며, 꾸란을 읽어서 알 수 있듯이 말에는 모순이 많으며 거짓말쟁이였다. 그가 기록한 꾸란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꾸며낸 거짓말들이다.

무함맏은 수라 2:256에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고 말한다. 󰡒종교에 강요하여 들어가게 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사탄과 무함맏은 무슬림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그 길을 막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과 꾸란에 대해 그 어떠한 질문도 의문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의 거짓말들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주고, 어두움 가운데서 어두움의 영이 이끄는대로 무력하게 이끌려 가는 불쌍한 무슬림들을 구원해 내야 한다.

사실상 무슬림들도 꾸란의 가장 중요하고 전체적인 주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무슬림들이 꾸란의 모든 내용을 알고 믿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무슬림들은 꾸란의 모든 수라들 중에서 개경장(첫번째 수라)와 이슬람 종교를 가르치고 기독교를 대적하기 위한 것과 같은 극히 일부분의 내용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슬람의 교리나 개경장과 같은 것은 이슬람 종교를 잘 포장해서 이슬람이 진정한 종교라고 선전하여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들에 불과하며, 그러한 것들은 꾸란의 전체의 내용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

사역자들은 이슬람을 포장한 것들에 지나치게 주목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러한 것들에 현혹되어서도 안된다. 포장된 겉모습 내면에 있는 이슬람의 진정한 모습은 이슬람의 배경이 되고 있는 역사와 이슬람의 기초가 되고 있는 꾸란의 진정한 주제에 관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의 진정한 주제가 종교 토론에 불과한 것을 모른 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단순히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인 학자들이나 사역자들 조차도 이 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슬람을 다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꾸란의 진정한 주제가 하나님 자신과 그의 계획에 대한 계시나 인간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고, 찬양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맛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꾸란의 허구성을 그들도 깨닫도록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나 맹목적인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두움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꾸란의 내용은 지극히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알라에게서부터 주어진 것으로 믿고 살아간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과 비교하면서 설명해 주면 전도하는데에도, 양육하는데에도 대단히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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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략 / 코란의 주제4

무함마드 종교에 대한 가르침

ㅇㄱㄷ선교사

무함맏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좋아했다가 그들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게 되었던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수라 구절이 있다. 수라 3:119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그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너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함맏에게 유대-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펴서 읽어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함맏에게 성경 자체를 펴서 읽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무함맏은 자기의 거짓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거부했다. 도리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어 주면 문맹이었던 무함맏은 그것을 자기식으로 교묘하게 바꾸어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수라 3:78 “그들중에는 (유대인들 중에는) 또 한 그룹이 있는데, 책에 (타우랏에) 있지 않은 것을 ‘책에서’ 라고 너희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타우랏) 책을 혀들을 감아서 (망치고 변질시켜서) 그들이 읽어준다. 그리고 알라의 앞에서 오지 않은(자기의 말들을) ‘알라의 앞에서 온 것’ 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알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무함맏은 구약과 신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유대-기독교인들이 읽어주는 성경 구절들이 기록된 그대로인지 꾸며서 읽은 것인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무함맏은 자기에게 굴복한 기독교인들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도 했으며, 다른 기독교인들로부터 성경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그것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거부했을 때, 무함맏은 종교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너의 종교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말라” 라고 함으로써 기독교를 경고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위 “알라의 종교”인 이슬람과 유대인들의 종교와 기독교를 동일한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놓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극히 일부분의 이스라엘 종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두 이슬람 종교를 반대한 우상숭배자들이었다고 한결같이 비난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수라 4:171 “오책이여, (예수를 신이라고 말함으로써) 너의 종교에 있는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마라! 알라 영광에 오직 진리의 말만 하라! 당연히 그 예수 그리스도 마리얌의 아들은 단지 알라의 선지자이고, 그의 마리얌에게 던진 말씀이고, 또한 그의 편에서 온 영일 뿐이다. 됐다. 알라와 그의 선지자들을 믿어라! ‘(주가) 셋 (즉 알라, 마리얌 그리고 이사 셋 모두 주님들이다)’ 라고 말하지 말라! ”

꾸란에서 무함맏은 종종 유대교와 기독교를 세상에서 권위 있는 종교들에 포함시키고 있고, 심지어는 기독교에서 이단시하고 있는 분파까지 무함맏에게 복종하는 경우에는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수라 2:62 “당연히 믿는자 들이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과 (알라에게 믿음을 둔, 그러나 어떤 샤리아법을 준수하지 않는 종교적인 분파인) 사비교도들 (그들로부터) 어떤 자들 (전에 어떤 종교에 있었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유일한) 알라에게, 종말의 날을 믿는다면, 그리고 잘 준수한다면,그들에게 창조주의 앞에서 상급이 있고, 그들을 위해서 위험과 염려가 없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종교는 최고의 권위가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종교이다’ 라고 자주 말한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서 아랍 족속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아브라함이 그들의 민족의 조상이고, 종교의 조상이라고 말한다(수라 2:124). 알라가 아브라함을 모든 민족들을 위한 이맘으로 만들었고, 그의 자손들도 이맘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종교가 이슬람이었고, 그의 자녀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수라2:130-132)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함맏 당시의 책의 사람들,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무함맏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수라 3:19).그래서 수라 4:171; 5:77 “오 책의 사람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어가지 말라!” 라고말한다. 이 말은 각각의 종교에 한계가 있다는 말로, 이슬람 이외의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꾸란에서 무함맏은 자주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 가장 올바른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항상 한 종교를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여러 종교들을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꾸란의 종교적인 사상 때문에, 오늘날 수 많은 무슬림들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있소, 그런데 왜 당신들은 우리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소?’ 라고 질문한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존중한다.’ 라는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며, 모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들, 즉 불교와 힌두교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종교를 인정한다고 하는 말인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이슬람이 절대 진리를 소유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모순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된 종교들을 존중함으로써 자신들의 거짓들도 존중해 달라고 하는 간청을 하는 셈이다.

 

수라 5:19“오 책의 사람들이여! 자 우리의 사도가 너희 책들 중에서 감추어진 많은 것을 너희들에게 분명히 한 경우에, 많은 것들을 거절한 때에 왔다. 너희에게 알라로부터 빛과 분명한 책이 왔다…. 알라는 모든 것들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다. 이 구절을 포함한 꾸란의 많은 구절에서 알라는 흔히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한다.그렇다고 이러한 인칭과 수가 꾸란 전권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1인칭 단수로, 아주 드물게는 3인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칭과 수에 관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유일한 신 알라에 관한 문제가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처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럼 유일신에 관한 무함맏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사실 겉보기에는 유대인들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이나, 무함맏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은 큰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이 무함맏을 믿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는 선지자들에 대한 무함맏의 꾸며낸 이야기들과 자기들이 익숙히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 사이에 존재했던 첨예한 차이점 때문이었다. 이에 첨가하여 기독교인들의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구속사적인 중요성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함맏은 당시의 아랍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수라 3:79에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이 소위 ‘선지자’라고 불렀던 예수를 하나님으로써 예배하는 것에 대해 무함맏에게 말했고, 무함맏은 자기가 새롭게 시작한 종교의 사상과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을 위해 알라가 그에게 책,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준 후에, 사람들에게‘알라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예배하라’ 라고 말하는 것은 허용된 것이 아니다.”

 

결국 무함맏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부정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정죄하고 저주하였으며, 결국에는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수라 29:46 “(오겸손한<신자>자들이여), 너희들은 책들을 가지고 단지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대화하라! 오직 그들 중에서 억압-폭력을 사용하는 자들과만 (예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꾸란도, 너희들에게 주어진 모세오경과 신약성경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일라)도, 너희들의 신(일라)도 하나이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순종한다.’라고 말하라.” 초기에 반대에 부딪혔을 당시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는 차츰 노골적인 압력 행사로 악화되었다. 수라 9:29,30“알라와 말일을 믿지 않는,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부정하다고 한 것들을 부정하다고 알지 못하는, 진리 (즉 이슬람) 종교에 신뢰하지 않는 책들로 구성되는 어떤이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이 짓밟혀졌을 때 자기들 손으로 세금을 내기 전까지는 전쟁을 하라! 유대인들은 ‘우자이르가 알라의 아들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알라의 아들이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문서나 증거 없이) 그들의 입에 있는 말들이다.” 이 말은 분명히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된다. 만일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이 이슬람의 신과 동일하다면, 왜 이슬람은 억지로 유대-기독교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려고 그처럼 가혹한 정벌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수라 5:72-73에서 보는 것처럼, 무함맏과 꾸란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저주하고, 유대-기독교 역사를 송두리째 뒤엎고 왜곡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라 5:72-73 “알라가 마리얌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은 분명한 불신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 이스라엘이여, 나의 창조주와 너희 창조주가 되는 알라에게 종노릇하라!’ 라고 말했다. 당연히 누구든지 알라에게 쉬르크를 초래하면, 알라가 그에게 낙원을 부정하게<하람> 할 것이고, 그의 있을 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어떤 돕는 자도 있지 않을 것이다. ‘알라는 셋 (즉 알라, 마리얌, 이사) 중의 하나이다’ 라고 하는 자들도 분명히 불신자들이다. 왜냐하면 유일한 알라 외에 어떤 신(일라)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말하고 있는 말들을 멈추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들 중 불신자가 된 자들을 고통스러운 고난이 붙잡을 것이다.” 수라 3:67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였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무슬림이었고, 그들의 종교는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는 알라의 참된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우긴다. 이렇게 주장해야 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함맏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선지자라고 꾸란에서 여러 번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끊임 없이 주장한다. 즉 무함맏 자신과 이슬람 종교의 역사성에 치명적인 결핍이 있는 것이다.인류의 역사가 수천년이 흐른 이후에, 즉 7세기 초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슬람 종교에는 역사적인 기반과 배경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류의 역사 시작부터 변함없이 존재했던 종교를 자기의 종교로 삼고, 그 역사적 전통을 가로채는 방법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모두 사실은 이슬람이었다’ 라는 억지주장을 내세웠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옮겼으며, 모든 선지자들을 무슬림으로 만들었고, 자기는 가장 신실하게 이슬람 종교를 확증하는 최후의 선지자의 자리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모두 불신자들이며, 우상숭배자들로 정죄되어야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한 후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무슬림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막아놓았다. (알라에게 복종을 의미하는) 이슬람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알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라 3:105 (종교적) 토론에 빠지는 사람처럼 되지 말라. 그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무함맏의 권위와 진실성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도 해서는 안된다. 무함맏은 이미 유대인들-그리스도인들과의 종교적 토론에서 자신의 거짓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종교적인 토론을 할수록 자기에게 불리할 뿐만 아니라, 이후 자기를 따르던 무슬림들도 종교적 토론을 하게 되면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어떤 대화도 용납치 않았고, 철저히 전쟁과 세금과 같은 압제를 통해서만 그들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은 무슬림들이 참된 진리를 알고 싶어도 무함맏의 협박과 주변 사람들의 위협 때문에 그 의심을 감추고, 진리를 알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많은 두려운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일관되게 협박과 공갈로 자기 종교에 붙어있도록 강요하였다. 수라 41:13 “그렇다. 만일 그들이 (즉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이 이 상세한 설명 뒤에도 유일한 알라를 믿지 않고) 거절하면, 그 경우에는 말하라! ‘나는 너희들을 정확히 옷-야벳-과 사묻-샘- (종족들을 내려친) 번개과 같은 한 번개, 즉 멸망이(임하는 것)을 경고한다.’”

 

무함맏의 모든 설교는 자비롭고 은혜로운 창조주, 유일한 알라만을 섬기고, 알라와 그가 보낸 사도 무함맏에게 복종하고, 알라와 무함맏의 종교인 이슬람을 따르라는 명령으로 함축된다. 꾸란의 다른 모든 내용은 이것을 확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이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꾸란에도, 하디스에도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다. 이것이 이슬람 종교의 전부이다. 모세오경, 시편, 신약성경, 그리고 그들의 모든 내용들과 선지자들은 단지 알라가 유일한 참 신이며, 알라가 그의 사도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수라 61:11). 즉 무함맏은알라의 이름도, 모든 선지자들도,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도 모두 자신이 많든 새로운 종교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다.

 

무함맏은 알라에게도 종교가 있고, 그것이 곧 이슬람이며, 따라서 이슬람은 창세전부터 있었다는 전설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은 최후의 종교이며, 무함맏은 최후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다는 논리적 모순을 과감하게 자행한다.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종교가 필요한데, 그것은 곧 유일한 신 알라에게 복종하는 이슬람이라고 가르친다. 천국은 종교적인 교훈이 가득찬 곳이다. 그리고 복종하는 자들은 곧 믿는 자들이며, 그들은 곧 무슬림이라고 가르친다. 무함맏이 말하는 종교와 무함맏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함맏이 말하는 모든 종교 의식들은 아랍 우상 숭배자들로부터 온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함맏은 자기 종교의 정통성을 성경의 선지자들의 종교에서 찾는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는 어떤 종교를 고안해 내려고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경에서는 참되신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교제를 한 번도 종교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어떤 종교가 종속되어 있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교리적 주제들 중에 유사한 것들이 대단히 많은 것은 무함맏과 유대-그리스도인들의 끊임 없는 논쟁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의견의 일치를 얻지 못했다. 성경을 읽을 줄 몰랐던 무함맏은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무함맏은 문맹으로서 한 번도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자기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대-그리스도이들은 단순히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연구하는 자들이었다. 무함맏의 거짓말들은 모든 선지자들의 삶과 믿음과 그들에게 주어졌던 약속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유대인-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명백히 드러났다.그럴 때마다 무함맏은 억지로 꾸며낸 거짓말들로 그들을 공격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무슬림과 대화를 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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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략 / 코란의 주제3

무함마드 종교에 대한 가르침

ㅇㄱㄷ 선교사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의 꾸란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비난 하였다. 수라 25:4-5 그 당시의 사람들이 꾸란에 대해 비난한 내용이다.

“불신자들 중 어떤 사람들이, ‘(이 꾸란은) 단지 (무함맏) 자신이 스스로 꾸며낸 거짓말이다. 그에게 이 (거짓말을 지어낼 때) 다른 어떤 종족 (특별히 책들의 종족)이 도와 주었다’ 라고 모독하고 중상한다. 또 그들은 ‘(이것은) 이전에 있던 전설인데, (무함맏이) 그것들을 다시 고쳐 쓴 것이다. 그렇다. (이 전설들은 어떤 자들 편에서) 그에게 아침과 저녁에 읽혀져 주어진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난을 들으면서 무함맏을 따르던 자 중 일부도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였다. 이럴 때 무함맏은 그들도 독한 말로 욕을 하였다. 수라 33”12-13 “그 때 외선자들과 마음에 상처 받은 (즉 확신이 약한) 어떤 자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우리들에게 오직 거짓 약속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많은 반대에 부딪히자 무함맏은 화가 났다. 무함맏은 자기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며,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저주하기 시작하였다. 수라 43:22-26 “아니다. 그들은 말했다. ‘당연히 우리는 조상들을 한 종족-종교 위에 있었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그러므로 우리<알라>는 당신<무함맏>보다 전에 어떤 마을과 도시에 어떤 증거자-선지자 보내지 않았다. 단지 그곳의 나타난 것들이 : ‘당연히 우리 조상들을 한 족속-종교 위에서 찾았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라고 한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만일 내가 너희들에게 너희 조상들을 찾은 종교에서 올바른 종교를 끌어낸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말할때 , 그들은 : ‘당연히 우리들은 너희들이 사도로 만들어 보낸 종교에 불신자들이다’라고 말했다. 됐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보복을 받았다. 이제 그를 (자기 선지자들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자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라! 기억하라. 아브라함이 아버지에게 그리고 종족에게 말했었다. ‘당연히 나는 당신들을 숭배하는 우상들보다 정결하다.” 무함맏은 자기 동족들과 종교적인 문제로 다투게 될 때에도 자기 조상들이 섬겼던 잘못된 우상 숭배보다 올바른 종교를 끌어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아브라함에게 두어,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와 동족들이 섬겼던 우상 숭배에서 참 종교를 이끌어 낸 것과 같은 행위을 무함맏 자신이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랍 우상숭배자들의 비난 중에는 근거 없는 것들도 있었다.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무지막지하게 대한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랍인들의 우상 숭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으며,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항상 지적되는 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함맏은 단지 아랍인들에게서만 반대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았다.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축복 대신에, 서로에게 욕지거리와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던 지독한 말다툼으로 구성되어 있는 종교의 경전은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무함맏이 자기의 반대자들에게 무섭게 쏟아부은 저주로 가득찬 책이다. 꾸란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진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한 거짓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운 책이다. 수라 32:13 “나는 지옥을(불신자) 귀신과 사람들의 모든 자로 채우는 자이다.” 이러한 소름끼치는 말을 마귀 이외에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 이러한 독한 저주를 퍼붓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무서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메카에서 무함맏의 종교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 도리어 많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고,심지어는 그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수라18:15,16“자우리 종족은 그 분 외에‘신들을’ (신)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그 우상들이 신인 것에 대하여) 분명한 한 증서를 가져온다면. (결코 가져올 수 없다.) 그렇다. (어떠한 문서도 없이, 동료가 있다 라고 하여) 알라의 영광에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보다도 난폭한 자가 누가 있느냐? (젊은이들이여!) 너희들은 그들과 알라 외에 그들이 숭배하는 것들로부터 떠나서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 (유일한 너희의 창조주, 알라 자신에게 예배하기 위하여) 동굴에 피난처를 찾아가라! 너희 주가 너희에게 자기 은택을 크고 풍성하게 할 것이고, 너희들의 일들을 번성시킬 것이다.”

 

아랍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하고 반대하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지 않는 모든 아랍인들을 정죄하였으며, 점점 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를 품게 되었다. 수라 6:114 “(오무함맏,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말하라!) ‘나는 알라 외의 다른 것을 맹세하겠는가? 그 자신이 너희들에게 이 책 (꾸란을) 상세한 (즉 너희들이 논쟁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충분히 답변을 주는) 상태로 내려준 자이지 않느냐?’ 우리가 책을 준 사람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그의(꾸란이) 너희들의 창조주보다 진리로 내려진 것을 알 것이다.” 수라 11:17 “자 이제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증서를(즉 꾸란을) 소유한 사람이 (단지 이 세상의 유익들만을 찾는 사람들과 똑같겠는가?) 오히려(알라) 편에서 온 증거 (즉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무함맏의) 동료이고, 그보다 이전(즉 분명한 문서인 꾸란보다 이전에) 모세의 책(타우랏이) 있었다. 그것은(이스라엘을 위해 온) 인도자와(알라의) 호의이었다. 자, 그 자들이 (즉 분명한 증서를 소유한 자들이) 그것을(꾸란을) 믿게 될 것이다. (선지자에게 대항하여서는) 집단들 중에서 누구든지 그 꾸란에 불신자가 되면, 그에게 약속된 장소는 지옥이다.” 수라 21:7 “(오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도 (천사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사람들을 (즉 인간들을)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계시를 보낸 상태로 선지자로 삼았다. 그렇다. (오 메카 족속아) 만일 너희들이 모를지라도 (타우랏, 인질을 아는) 족속의 지식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라!”

 

수라 21:7은 알라도 무함맏처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할 것을 모르고 기대를 하였던 무지한 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알라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도 모르고 무함맏에게 말했던 것이다. 수라 29:46-47에서 볼 수 있듯이 무함맏은 그의 사역의 초기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라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쳤다.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친근한 책-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오직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토론하라! 단지 그들 중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과만 (날카로운 관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너희들은 말하라! ‘우리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것에도 (꾸란도), 너희들에게 내려진 (타우랏과 인질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도, 너희들의 신도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복종을 한다.’ (오 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 있었던 선지자들에게 책들을 내려 주었다.) 그러므로 너에게도 책, 즉 꾸란을 내려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책이 (즉 타우랏과 인질이) 주어진 자들은 그것을 (즉 꾸란을) 믿을 것이다.”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와 오늘날의 무슬림들은 이 본문에 비추어 보았을 때, 끊임없이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외선을 행하고 있고, 또한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평화를 원하더라도 무슬림들은 결코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무함맏은 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할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과 책을 읽는 당시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모두를 인정하여 주었다. 수라 3:52-54 “이제 언젠가 예수가 그들 (유대인들) 편에서 불신(신성모독)을 보고서, ‘알라의 (종교에 초대할 때) 누가 나에게 협력자가 될 것인가?’ 라고 말했다. 사도들이 ‘우리가 알라의 종교에 협력하는 자들입니다. 알라를 믿었습니다. 오 예수여, 증거하소서, 우리는 알라에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창조주여, 증거한 것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선지자를 따랐습니다. 충분합니다. 우리를 증거자들의 반열에 기록하소서!’ 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교묘하게 했다. 알라도 교묘하게 했다. 알라는 더 교묘하게 하는 자이다.” 수라 10장은 무함맏이 초기에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극도로 호의적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라 10:93-94 “의심없이 우리는 이스라엘을 빼어난 최종적인 곳에 장소를 정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다. 후에 그들이 지식(즉 모세오경)이 주어질 때까지 불일치(모순) 하지 않았다.…… (오 무함맏), 만일 우리가 너에게 밝힌 것들에서(즉 전에 종족들에 대해 밝힌 우리 구절들에서) 의심하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 너보다 전에 있었던 책(즉 모세오경과 신약성경) 읽는 사람들로부터 물어보라! 분명히 너에게 창조주 편에서 진리인 꾸란이 왔다.” 수라 44:29-32 “그렇다. 그들에게 하늘도, 땅도 울지 않았고, 그들에게 기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 참으로 우리는 그들을 아는 상태에서 모든 세상들, 즉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였고, 선호하였다.” 비교적 초기의 메카 수라에 속하는 위의 44장에서 무함맏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동경심과 감정은 거의 눈물을 쏟을 직전이었다. 수라 45:16도 비슷한 내용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스라엘 (종족)에게 책, 즉 타우랏,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들을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으며, 또한 그들을 모든 세상보다 높게 했다.”

 

그래서 무함맏은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자기가 만든 새로운 신과 종교가 서로 비슷하니 함께 숭배하자고 제안한다. 수라 3:64-65 “ ‘(오무함맏) 말하라! ‘오 친근한 책’ (즉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동일한 한 말씀에 일치하여 유일한 알라에게만 예배를 드리자! 그에게 어떤 것도 동료로 만들지 말자! 그리고 알라를 두자! 어떤 것들을 신으로 삼지 말자!’ 만일 그들이 (즉 친근한 책들 그 초대를)거절하면, 그 때는 너희들이 (오 신자들이여) ‘너희들은 증인이 되라! 우리는 무슬림들이다. 유일한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들이다’ 라고 말하라! ”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무함맏은 자기가 유대-기독교 전통을 따르는, 즉 구약과 신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와서 그것을 확증하는 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무함맏은 우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 모세의 종교, 노아의 종교이고, 무함맏은 그들의 종교에 꾸준히 머물러 있는 자라고 주장한다. 수라12:38,39 “나는<무함맏은> 나의 조상들의 길,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종족과 종교를 따른다. 우리를 위해서 알라에게 어떤 것을 동료로 만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 오 친구들이여, 흩어진 다양한 안개 “신들”이 더 좋은가 아니면 유일하고 승리자 알라가 더 좋으냐? 너희들은 그를 버려두고, 자기들과 조상들이 부른 이름들 -우상들에게만 예배하고 있다… 가장 올바른 종교는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한다.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과 조상들이 섬겼던 알라의 동료신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종교가 가장 올바른 이유는 알라에게 다른 동료가 없는 유일한 신이기 때문이며, 정통 아브라함의 종교를 따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함맏과 이슬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아랍 조상들로부터 참된 이슬람 종교를 물려 받았다는 증거가 꾸란에는 전혀 없다. 무함맏에게 있어서 아랍인들은 조상 대대로 우상들을 섬긴 불신자들이었다. 무함맏이 자신의 선지자직의 정통성과 권위를 찾는 것은 자신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도 아니고, 결코 자신의 조상도 아닌 아브라함의 종교에 언제나 호소한다. 심지어 무함맏은 아브라함을 자기의 조상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한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모세와 노아와 예수 등 모든 선지자들이 이슬람 종교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라고 선동한다. 수라 42:13 알라가 노아에게 명령한 것과 같은 동일한 종교를 너희를 위해 제정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종교를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즉 무함맏은 알라의 종교에 있어서 꾸준히 머물러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분할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한결같이 무함맏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무함맏은 자신이 과거의 다른 선지자들과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자라고 주장한다.수라 46:9 “(오무함맏) 말하라! ‘나는 선지자들 중에서 새롭운 자도, 첫번째도 아니다. (즉 나보다 이전에도 알라의 선지자들이 지나갔다. 왜 너희들은 나의 선지자들에게 놀라서 부정하려고 하느냐?) 나는(미래에) 자신에게도 너희들에게도 무엇이 이루어질지를 모른다. 나는 단지 자신에게 계시된 것을 따르는 자이다. 나는 단지 분명한 경고자이다.” 그러나 무함맏은 자기 자신이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하여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한 것, 즉 전혀 특별한 점이 없고, 첫번째도 아닐만큼 뛰어난 점도 없다고 소개한 것과는 달리, 신구약 성경의 모든 내용을 뒤엎어 놓을 만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을 저지를 존재가 되었다. 더군다나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자가 선지자들 중의 가장 위대한 지위를 찬탈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함맏은 자신이 성경에 자신이 예언되어 있으며, 자신은 성경의 선지자들의 전통을 있는 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함맏은 선지자들과 예언이 중단되었던 역사를 이어주는 자라고 선포한다. 수라 5:19“오 친근한 책이여, 자 우리의 사도(무함맏)이 전에 선지자들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어떤(천국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와 어떤(지옥의 고통을) 두렵게 하는 자가 오지 않았다.’ 라고 너희가 말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종교 법령들을) 선포하려고 왔다. 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와(지옥을) 두렵게 하는 자인 자가 왔다.” 본문은 성경 계시의 종결성에 대한 무함맏의 무지를 드러낸다. 신구약 성경이 종결된 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떠한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무함맏은 바로 이러한 세월을 간격을 이어주는 최종적인 선지자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무함맏이 문맹이 아니었고, 계시록을 한 번만이라도 읽었다면, 이미 오래 전 성경에 선포된 무서운 저주를 자기에게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 22:18-19“내가 이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19:19-21“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 도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그러나 이러한 무함맏의 제안이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처음부터 한결같이 거절되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이다. 수라 3:65-71에서는 유대-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했을 때, 그가 상당히 실망했음을 보여준다. 수라 3:65 “오 친근한 책, 왜 아브라함에 대하여 (그는 우리의 종교에 있었다 라고 하여) 논쟁하느냐! 결국엔 타우랏도, 인질도 그 후에 주어진 것이 분명하지 않으냐? 도대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너희들이 아는 것들 (모세와 예수 선지자들에)대하여 논쟁하고 있다. 이제 무엇 때문에 너희가 모르는 것 (아브라함이 어떤 종교에 있었는지)에 대하여 논쟁하려 하느냐? 알라는 알고 있고, 너희는 모른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오히려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우에 (알라에게) 복종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상숭배자들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더 가까이 있는 자는 그(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자 이 선지자 (무함맏)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알라는 겸손한 자들의 친구이다. 친근한 책 중 한 교파는 너희들을 (너희 참 종교로부터) 혼동시키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느끼지 못할 때에 단지 자기들만 혼동시킬 뿐이다.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증거자 되어 알라의 (타우랏에 있는 무함맏이 참 선지자인 것에 대한) 구절들을 부정하느냐?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알면서도 진리를 거짓과 혼합시키고 진리를 가두느냐?”

 

위의 본문은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무함맏의 주장으로, 유대인들이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충분히 ‘미친 사람이 지껄이는 헛소리이다’라고 말했을 법한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인데, 아브라함이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었고,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 즉 무슬림이었다고 억지를 부린다.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가까이서 추종하는 자는 무함맏과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한다. 도리어 무함맏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모른다고 비판하였다. 결국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를 거짓 선지자로 판단하고 배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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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략 / 코란의 주제

무함마드 종교에 대한 가르침

ㅇㄱㄷ 선교사


종교는 무함맏과 꾸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사실상 종교에 대한 주제는 꾸란의 알파이며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수라26-28)...단지 알라 자신이 원하고 동의한 사람들을 위해 의도한 후에만 (그 중보가 유익이 있다.) 실제로 종말에 믿지 않은 사람들은 천사들을 부인들 이름(여성)으로 말할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다. 그들은 단지 속임과 추측을 따르는 자들일 뿐이다. 분명히 속임은 결코 진실을 대신할 수 없다.”수라 37:149-162 “이제 (무함맏 메카의 불신자들에게) 물어보라, 딸들(즉 그들의 꾸며낸 것에 따르면 천사들이 알라의 딸들인 것 같다<꾸란에 쓰여진 것>.)이 너희 창조자의 것이고, 아들들이 그들의 것이란 말이냐? 아니면 우리가 천사들을그들죄가되는경우에도딸삼아만들었단말이냐? 조심하라!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기 때문에“알라의 자녀(또는 딸들)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의심없이 거짓말쟁이들이다. (알라가) 아들들을 두고, 딸들을 선택할 것 같으냐! 어떻게 판단하느냐? 결국 기억 못하지 않느냐? 또는 너희들을 위해 (알라가 자녀를 둔 것에 대해) 어떤 분명한 증서가 있느냐? 그렇다. 만일 참으로 있다면 너희 책들을 가져와 보라 (이방인들이 알라와)함께 진들 (또는 천사들) 사이에 족보 (또는 어머니-자녀:모자지간 있다고 꾸밈) 만들었다. 그러나 진들 즉 천사들은 이제 만들어진 자인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알라는 그들의 속성보다 깨끗하다. 오직 알라의 단정한 사람들만 (변함없는 알라를 그 분에게 합당하지 않은 속성으로부터 깨끗하게 붙든다.) (오 메카족속들아!) 의심 없이 너희들도, 너희의 숭배하는 우상들도, (한 사람을 알라에게) 대항하여 음모를 꾸미는 자, 거짓말할 줄 아는 자 아니다……”

 

위의 모든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함맏은 유일신을 주창하기 위하여 카바 신전의 모든 알라의 딸들과 아들들로 여겨졌던 우상들을 배격해야 했다. 그 천사들,즉 우상들이 알라의 중보자 역할을 했던 것도 분명하다. 꾸란에서 여러 번 언급된 알라의 아들들, 딸들이 부정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존재가 아랍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무함맏이 이슬람 이전의 아랍인들의 우상 숭배를 배격하고 알라를 유일신으로 추앙하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암시해 준다. 알라는 결코 혼자 존재하는 신이 아니었다.

 

이제 무함맏은 종교에 대한 체계들을 하나 하나 세워 나갔다. 무함맏이 만든 종교적인 체계는 철저하게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방한 것이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중요시하고 정의했다. 그러나 무함맏은 믿음에 대한 정의를 “복종”이라고 정의하였다. 복종은 이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복종하는 종교가 이슬람이고, 복종하는 자들이 신자들이며, 복종하는 자들이 낙원에 들어간다. 반대로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불신자들이며,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수라 49:14 “아랍인들이‘믿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오 무함맏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들은 믿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복종했습니다’ 라고 말하라! (왜냐하면 아직도)너희가 믿음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만일 너희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에게 복종을 한다면, 그 분이 너희들에게 (행한 선한) 일들 중에서 하나도 적게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에 회개와 세례 의식이 있었던 것처럼, 알라에게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기 위해 몸을 정결하게 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심지어 이전의 아랍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더 완벽하다는 종교에 정결의식이 없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라 5:6무슬림들이 기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얼굴과 손을 팔꿈치까지 씻고, 머리를 물로 문지르고, 다리를 무릎까지 씻고,몸이 의식에 깨끗하지 않다면 목욕하라. 만일 아프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여자를 접촉했거나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깨끗한 모래나 흙을 취해서 얼굴과 손에 문질러라 라고 지시한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는데, 무함맏은 이슬람 신앙의 기초가 없기 때문에 그 역사의 기초를 아브라함에게서 도용하고, 모세 오경에 예언된 그 선지자를 자신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할례와 제사 의식을 중요하게 여겨 그 의미는 전혀 모르면서도 표면적인 의식만 도용하여 사용하였다.

유대인들은 과거 성전이 있었던 방향을 향해 기도하는 습관이 있고, 기독교인들은 기도하는 습관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무함맏은 그들보다도 더 많고 엄격한 다섯번의 나머즈 시간을 정해 놓고, 다른 종교보다 형식적인 우위를 보이려고 경쟁하였다. 수라 98:1-5에서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책은 꾸란이고, 이슬람 종교가 올바른 길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단지 유일한 알라에게, 그 분을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완전히 준수할 뿐만 아니라 구제를 준수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알라를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준수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 종교는 알라 숭배, 성지순례, 금식, 나머즈 등과 같은 대부분의 아랍의 종교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추가로 구제, 아랍 방식의 정결의식, 세금, 결혼 및 이혼 절차에 대한 의식, 지하드 등과 같은 종교 규범을 추가시켰다.

무함맏이 이슬람 종교를 만들고 아랍의 우상숭배자들에게 선포했을 때, 소수의 가난하고 소외받았던 사람들을 제외한 아랍인들은 당연히 무함맏을 믿지 않았다. 수라11:26-31절까지 무함맏이 자기 종족 아랍인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들은 유일한 알라에게 예배하라! (만일 유일한 알라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숭배하면), 너희들의 위에 고통스러운 고난의 날이 (올 것을) 나는 두려워한다.’ 그 때 그의 종족 중에 있는 불신자 어떤 사람이 ‘우리들은 너를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고, 너에게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낮은 사람 <천한 사람들만>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라고 말하였다. 그는 ‘오 나의 종족이여, 소식을 주라! 만일 내가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문서를 소유한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에게 자기왕궁에서 은사-선지자직을 주었다면, 그러나 이것이 너희들에게 은밀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너희들을 너희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믿게 하도록) 강요해야 하느냐?…… 오 나의 종족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이것을 위해 소유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

무함맏은 선지자들에 대해 잘 모르는 아랍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여러 선지자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였다. 수라 26:40에서 모세와 마술사들 간의 대결도 종교적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만일 마술사들이 승리하게된다면, 우리가 그들을 따를 것이다”라고말하고있다. 마술사가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어쨌든 마술사를 따를 수도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나중에 이들 마술사들은 모세에게 패배하여 알라를 믿고 무슬림들이 되었다. 따라서 모세도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이집트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수라40:26에서 이집트 왕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가 우상숭배를 옹호하는 자들의 대표, 즉 왕이었고, 무함맏을 두렵게 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을 예표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모세는 무함맏의 예표가 되는 듯이 이집트인들의 종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폭군에 의해 반대를 당하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무함맏은 이슬람 종교를 사람들에게 확증시키기 위해 모세의 종교가 곧 무함맏의 종교였으며, 마찬가지로 모든 선지자들의 종교가 무함맏의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무함맏이 과거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이용하자 아랍 우상 숭배자들은 선지자의 표적으로 기적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어떤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라 28:48-49 “이제 언젠가 그들에게 우리의 면전에서 진리의 (선지자가) 와서는 그들이 ‘그에게도 (즉 무함맏에게도) 모세에게도 주어진 기적들이 주어진다면, (우리들이 그를 따랐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에 모세에게 주어진 기적들에게도 불신자가 되지 않았느냐? 그들은 ‘(타우?과 꾸란이) 서로 서로를 이용하여 힘 있게 하는 두 마법사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두 책 중) 모두에게 불신자이다’ 라고 말한다.”

무함맏이 아랍 우상숭배자들을 설득하려고 이용하였던 것은 주로 성경의 선지자들 이야기였지만, 그가 하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는 아랍인들도 아는 여러 전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라 23:83 “이것은 단지 너희들의 이전에 있던전 설들이다.” 무함맏의 근거 없고 꿈을 꾸듯 횡설수설하는 소리들과 말도 되지 않는 전설들을 아랍인들이 믿을리가 없었다(수라 21:3-6).

무함맏이 과거의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슬람을 확증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의 말을 들을수록 반대는 커졌고, 무함맏을 거짓말쟁, 마술사, 귀신들린 자 등으로 취급하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 라고 한다.”) 수라 23:70 “또는‘그에게는 (무함맏에게는) 귀신들린 것이 있다.’ 라고들 하느냐?” 마법에 가까운 무함맏의 말들은 대단히 많지만, 한 예를 들겠다. 수라73:17 “그렇다. 만일 너희들이 불신자들이 되면, (스스로 공포로) 아이들(의 머리카락들을 희어지게 하여) 노인들로 바꾸어 놓을 날(의 고난)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가!”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함께 비난하였다. “너희들은 단지 한마술에 걸린,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을 따르고 있다” 라고 하였다(수라25:8).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심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 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별)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 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 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 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이 (무함맏은) 출저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수라 37:6-10 “참으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하늘을 별들로 장식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종류의 불순종하는 사탄과 귀신들로부터 보호했다. 그 (귀신)들은 가장 높이 존재하는 자들을 (즉 천사들의 말들을) 언제든지 들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그들에게 모든 방향에서 (별들이) 던져진다. 그들을 위해서 (종말에) 끝없는 고난이 있다. 단지 어떤 때 (어떤 말을) 엿들은 자가 (즉 귀신이) 있다면, 그것도 날으는 별이 쫓아가서 따라잡을 것이다. (그리고 멸망시킬 것이다).” 수라 75:7-10 “그렇다. (본 소름끼치는 것들로부터) 눈을 감고, (하늘에 있는) 달도 잡힌 상태에서 해와 달이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 날에 그 사람이 ‘(이 재앙들로부터) 어디로 피난할 수 있느냐?’ 라고 할 것이다.” 본문에는 무함맏이 계시를 받을 때 얼마나 공포와 소름을 느끼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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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중동지역 베두윈(유목민)의 생활과 문화

 


우리가 중동하면 떠올리는 친근한 풍경은 양이나 염소를 몰며 사막을 오가는 유목민 무리의 모습이다. 현대에 들어와 그 비율이 감소하고는 있지만 유목은 전통적으로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삶의 방식이며 이 지역 문화의 모태였다. 건조한 사막 기후라는 자연 환경의 여건상 중동인들은 옛부터 유목을 생업의 하나로 삼아 왔으며 이에 따라 오늘날 그들, 특히 아랍인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은 유목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동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관찰은 국제정치·경제 등 각 방면에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 지역 주민들의 의식구조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세기 동안 중동 사회는 세가지 유형의 공동체 즉 베두윈, 정착 농경민, 도시 주민으로 구분되어 왔다. 현재 이곳 주민의 50%가 농업에 종사하고, 45% 이상이 도시거주자이며 5% 미만이 유목민이다. 이들 세 부류의 생활방식에서 특히 베두윈이 도시 문명의 영향에 동화되지 않은 채 자체의 전통적인 생활형태를 지속해 왔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유목민들 중에는 매년 농업 종사자로 정착하거나 도시 직업을 구하는 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유목민들이 정착민으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강력하게 중앙집권화된 정부의 성장과 서구 기술의 영향이 크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필연적인 삶의 방식에 따라 베두윈의 물질 문화는 빈약하다. 이들의 주요 재산은 자신이 기르는 동물과 거처인 천막에 불과하다. 천막 기둥의 수가 보여주는 천막의 크기는 그 소유자의 부와 사회적 지위의 표시가 된다. 그들은 빈번한 이동으로 인해 적은 양의 생활 필수품만을 갖고 다닌다. 의복 또한 거친 재료로 된 긴 겉옷이 주 복장이며 겨울에는 낙타털로 짠 천으로 만들어진 외투가 고작이다. 양이나 염소, 낙타, 말을 기르고 그 부산물인 우유, 버터, 치즈 및 양모를 팔아 생계를 해결한다. 특히 낙타는 젖과 고기, 의복과 천막 재료를 제공하고 운송 수단으로 매우 중요하다.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되고 수자원이 개발되기 이전에 사막은 유목민에게 근근히 생계를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부족만이 있었으며 보다 큰 규모의 정치 구조는 존립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대규모 사회는 행정·군사 및 비생산적인 부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잉여 식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부족이 감당하는 주요 임무는 구성원 개개인을 타집단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부족은 혈족 간의 단결을 강조하고 집단 유대와 상호 책임을 최상의 가치로 내세움으로써 유지되었다. 이러한 소규모 사회에서는 집단 의식이 우선시되며 개인은 집단의 도덕률을 준수하며 살아야 하는 부담을 져야 했다. 개인은 집단의 규율을 따르며 자신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과 일치시킴으로써 집단이 개별 성원에게 제공하는 지원에 보답해야 했다. 따라서 유목 집단에서는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보다는 소속 부족에 대한 충성이 더욱 중요시 된다. 부족민은 자신들만의 법을 가지고 있으며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세금 납부나 의회법률의 인정, 군복무, 국경 준수를 거부하기도 한다.

 

오늘날 아랍세계에서 시골과 도시의 많은 주민들은 자신들의 근본이 베두윈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점은 많은 정착민들이 베두윈 기풍을 행동양식의 이상적인 귀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서구화에 탐닉한 일부 아랍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베두윈을 과거의 영광된 아랍 영웅시대의 계승자이며 살아있는 증인으로 우러러 보고 있다. 다마스커스를 비롯한 도시의 명문가에서는 자식을 한두해 동안 사막 유목민에게 보내 예절과 가치관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아랍 베두윈이 전통적으로 중시하는 대표적인 도덕적 가치는 환대에서 나타나는 관대함이다. 손님에 대한 환대는 가난한 베두윈들도 행하는 숭고한 덕목으로 오늘날에도 아랍 도시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인상적인 관습이다. 극진한 환대를 베푼 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위신을 높인다는 것 외에 잠재적인 고객과, 부족 분쟁시의 정치적 협력자를 확보하게 된다. 결국 환대는 궁극적으로 베두윈 최상의 목표인 집단 강화를 위해 활용된다. 환대의 관습은 사막이라는 절박한 환경에서 생겨났다. 사막에서 집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은 그 생명을 보전할 수가 없다. 사막이 그를 죽이든지 그와 마주치는 사람들 무리가 그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길잃은 개인을 맞아주고 보호하는 것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환대의 규율에 따라 도망자도 손님이 되며 주인은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그를 지켜주어야 한다. 이러한 환대의 관습은 오늘날 촌락과 도시 생활에서도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즉 결혼, 장례, 할례, 건물 완공, 라마단(이슬람교 금식의 달) 기간 등의 행사를 맞이해 주인은 주민들, 특히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물질을 베푸는 관대함의 관습은 전통적인 아랍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존재하며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아랍인들에게 남아있는 베두윈 문화의 잔재 중 대표적인 것은 그들의 육체노동에 대한 멸시에 가까운 기피의 태도이다. 오늘날까지 아랍 유목민들과 일반인들 중에는 농사나 기능직에 종사하는 것을 불명예스런 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편안한 생활을 선호하며 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일을 좋아하는 아랍인들의 성향은 아랍문화의 서구화 과정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집트 사회에서 육체노동의 낮은 위치는 계급 의식을 조장하고 협동과 대화, 발전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제기된 바도 있다. ‘인간은 이마의 땀을 흘리고서야 빵을 먹을 것’이라는, 성경 창세기에 반영된 중동 지역의 신화는 아랍 베두윈들의 노동관을 보여준다. 곧 그들에게 있어 노동은 신이 인간에 내린 징벌과 저주의 결과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기간 중 중동지역의 행위 규범에서 이상적인 것은 가능한 한 육체노동을 피하고, 요행이나 상업 활동에 의해 부를 얻는 것이었다. 중세 아랍의 생활과 가치관, 신앙 등을 반영한 아랍의 고전 『천일야화』에는 힘든 노동으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에게 닥치는 최악의 운명임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산재해 있다.

 

일부 학자들은 베두윈의 자유로운 삶과 용맹, 남성다움, 명예를 중시하는 그들의 가치관을 강조하며 그들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기술하기도 한다. 아랍 베두윈의 사회적 관습은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지켰던 관습과 매우 유사하고 베두윈의 언어는 가장 순수한 아랍어라는 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베두윈 사회가 위축되고 그 낭만적인 모습도 점차 사라져 가겠지만 베두윈 문화는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순수와 이상의 상징으로서 이 지역 주민들의 삶 속에서 계속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김능우·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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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꾸란 외에도 무함마드의 언행이 담긴 하디스에 근거하여 행동한다.

꾸란에서 알라는 무슬림들에게 무함마드의 말에 따를 것을 명령하고 있기에

무슬림들은 하디스의 가르침에 복종한다. 

 

 

무함마드가 메디나를 다스리던 시절, 사람들은 논쟁을 해결하려면 무함마드에게 갔다.

어느 날 한 무슬림 남자가 유대인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문제를 판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유대인 남자가 말했다.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갑시다. 그가 판결해줄 것이오." 

 

 

무슬림 남자는 이를 거부하고 무함마드의 군대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자 유대인을 싫어한다고 알려진

우마르 이븐 알-카탑에게 가서 판결을 구하자고 말했다.

우마르가 말했다. "나한테 오지 말고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가시오."

무슬림이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이 판결해주십시오."

  

그러자 우마르가 "잠깐 기다리시오."라고 말한 뒤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가 칼을 갖고 나와서 무슬림 남자의 목을 베어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매우 슬퍼했는데,

그 이유는 무슬림들은 다른 무슬림을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도 슬퍼했다.

우마르는 무함마드가 가장 아끼는 충직스런 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무함마드는 또 다른 계시를 받는다.

  

 

"그들이 그들 사이에 일어난 모든 분쟁을 그대(무함마드)에게 가지고 와서 판결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대의 판결에 아무런 불만 없이 전적으로 그 판결을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참된 무슬림이 아니다. (꾸란 4:65, 4:59)

  

다시 말해 무함마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판결을 구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사람이므로 그는 무슬림이 아니다.

따라서 우마르가 죽인 사람은 무슬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죽여도 괜찮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알라의 계시를 직접 들을 수 없으므로

무함마드의 말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만일 무슬림들이 자신의 종교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와 같은 내용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전승에 의해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라면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부정확한 묘사를 하는 이유는

하디스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무함마드가 이슬람의 대표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무슬림의 시각에서 이런 태도는 이단이다. chw

 

- 마크 A. 가브리엘 <이슬람과 유대인 - 그 끝나지 않은 전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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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즘]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와 객관적인 이해

 

 

수피즘: 무슬림의 새로운 포교 방식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아랍 무슬림들은 이슬람에서 더 깊고 실질적인 의미보다는 형식적인 의례를 더 강조하고 있다.

수피즘은 인간의 마음과 지성에 관심을 갖는다. 이슬람에 대한 이해는 아랍 무슬림들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무슬림은 우리처럼 온건하고 어떤 무슬림은 알라의 이름으로 과격한 테러를 행하고

어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와 알라를 부르며 알라에게 가까이 가려고 한다.

 

꾸란과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영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랍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영에 대한 개념으로 “알루후(또는루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아랍 무슬림들에게 “알루후(혹은 루흐)”가 뭔지를 물었더니 “나프스(혼)”라고 답하였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알루후가 뭔지를 물으면 금방 답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무슬림들이 알라allah의 말이라고 믿는 꾸란(코란이라고도 함)에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에게 알루후에 대하여 묻는다. 알루후는 우리 주님의 문제라고 말하라. 너희에게 주어진 지식은 조금일 뿐이다(꾸란 17:85)”.

 

무함마드 시절에 사람들이 무함마드에게 알루후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니까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알루후의 문제는 알라의 문제라고 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지식은 조금이어서 알루후에 대해서 인간이 잘 모른다고 했다.

아랍 국가에 있는 모스크(무슬림들이 기도하는 장소)의 이맘(기도 인도자)에게 알루후가 뭐냐고 물으니 그는 알라만 안다고 답했다.

꾸란은 루후 알꾸두스는 지브릴 천사라고 한다.

그러나 아랍어 성경에서 알루후 알꾸두스는 성령(하나님의 영)이라고 한다.

결국 아랍 기독교 커뮤니티와 아랍 무슬림 커뮤니티 안에서 동일 어휘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무슬림들이 왜 무함마드의 이름을 부르며 알라를 찾을까?

그 대답은 분명하다. 꾸란에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알라 이외에 신이 없다. 알라술(무함마드)에게 순종하는 자마다 이미 알라에게 순종한 것이다”(꾸란 4:80)라고 말한다.

 

아랍어로 된 꾸란(한국말로 번역된 꾸란은 번역의 오류들이 많다)을 보면 이슬람이 잘 보인다.

꾸란은 무함마드에게 순종하는 자마다 알라에게 순종한 것이라고 하므로 <무함마드⇨알라>의 관계가 이슬람 신앙의 기본이 된다.

그래서 전 세계 무슬림들이 “알라 이외에 신이 없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라술이다”라고 신앙 고백한다.

그렇다면 꾸란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할 곳이 없다.

꾸란 112장에서 “그(알라)는 (누구를) 낳지 않았고 그가 태어나지 않았다(꾸란 112:3)”고 하여

꾸란의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을 꾸란이 분명히 해 주고 있다.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무슬림들에게 알라는 너무나 먼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수피 무슬림들은 알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종단마다 독특한 수행을 계속했다.

 

수피 무슬림들이 무함마드를 통하여 알라에게 향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데 반하여,

이슬람의 샤리아(이슬람 율법)는 겉으로 드러난 무슬림의 행동을 규제하는 알라의 명령과 금지 사항이 주요 내용이다. 수피 무슬림들은 샤리아와 수피즘을 구분한다.

샤리아는 인간의 몸에 해당한다고 하고 수피즘은 인간의 혼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슬람의 혼이 수피즘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슬람 율법(샤리아)이 무슬림의 겉에 드러난 행동에 관심을 갖는 반면,

수피즘은 무슬림의 내면세계를 다룬다.

수피즘은 정통 이슬람의 율법적인 생활에 또 다른 다이내믹한 힘을 넣어 주려고 한다.

수피는 그의 마음(깔브)을 깨끗하게 하려는 사람이었기에 수피 무슬림의 혼을 정화하고 신을 찾아가는 학문이 수피즘이다.

샤리아(몸)와 수피즘(혼)은 결국 육체의 법과 마음의 갈망을 찾아가므로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역사work와는 전혀 다르다.

기독교의 참된 영성은 그리스도의 영이 인도하는 은혜의 삶이다.

 

꾸란은 알라가 영Spirit이라고 하지 않아 전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따라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의 수피즘은 8세기부터 시작하여 14세기까지 그 이론이 발전하고 있었다.

하루 아침에 수피즘이 등장한 것이 아니다. 7세기 초 일부 무슬림들은 참회를 상징하는 털옷(wool)을 입고 다녔다.

털옷은 세상의 쾌락을 버리고 오직 수행에만 힘쓴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 뒤 1세기 뒤에는 이라크에서 "수피야"라고 불리는 금욕 수행자ascetics들이 나타났다.

그당시 상당수 무슬림들이 세상의 즐거움을 쫓아가고 알라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900년 경에는 바그다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수피들이 번성했다. 수피즘은 초기에는 금욕적인 수행이 지배적이었고 후기에는 범신론적인 신비 수행으로 바뀌었다. 초기 수피들은 그들의 마음이 장차 다가올 것에 소망에 두었고 후기 시대의 수피들은 알라와 결합하여 무아지경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수피들은 이슬람의 윤리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이슬람 신학자들이 그들의 정통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알라의 개념도 더욱 추상화되고 비인격화되었다.

이슬람력 2-3세기를 지나면서 칼리파(순니 무슬림들에게 이슬람 종교를 수호하는 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와 사회 지도층들이 이슬람 확장의 결과로 사치와 탐닉에 빠지고 알라를 생각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초기 수피즘의 주창자로는 알바스리(728년 사망)가 있었는데

그는 세상의 쾌락에 빠져 있는 세태를 비난하고 끊임없는 참회를 하라고 했고 알라를 두려워하라고 했다.

그는 진정으로 알라를 두려워하는 것이 금식(이슬람에서 금식은 라마단 달에 한 달간 낮에만 금식하는 것)과 기도보다 더 낫다고 했다.

그러나 곧 수피들은 알라를 두려워하는 것에서 알라를 사랑하는 것으로 그 초점이 바뀌어갔다.

예루살렘에 무덤이 있는 바스라의 라비아(801년 사망)는 여성 수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신에 대한 사랑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했다.

그녀는 꿈에서 무함마드(이슬람의 예언자)를 만났는데 무함마드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니

라비아는 "내가 알라를 사랑하는 것이 나를 압도하고 있어서 그 어떤 다른 것에 대한 사랑이나 증오가 내 마음에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이처럼 수피 무슬림이 알라를 사랑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다르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에베소서 2:4-5).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다. 그러나 복음이 아닌 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한다.

 

오늘날 수피 무슬림이 아닌 무슬림들은 수피 무슬림의 길이 잘 못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여섯가지 믿음(알라, 천사들, 메신저들, 경전들, 종말, 운명론)과

다섯가지 기둥(신앙고백, 기도, 메카 순례, 금식, 종교 구빈세)을 실천하고,

매주 목요일(또는 다른 날) 모스크에서 수피들이 수행을 따로 하는 것을

비수피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일상적인 삶의 복잡성을 회피한 수피들을 현실도피자라고 부르고,

가족과 사회에 무심한 수피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더구나 주관적인 체험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수피들은 간혹 미신이나 허풍떠는 사람 혹은 범신론자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집트에는 76개 수피 종단이 있고 8,000만 인구 중에서 1,100- 1,500만 명의 수피 무슬림들이

매주 따로 모이고 있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수피 무슬림이었던 알루미Rumi에 대한 저서들이 시중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구 사람들에게 수피즘이 소개되고 있다.

수피즘은 율법적이지도 않고 테러를 부추기지도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구인들은 수피 댄스와 수피 음악, 수피의 시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수피즘이 이슬람의 정통 교리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긴 무슬림들은

수피들의 길이 참 이슬람의 길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이슬람의 여러 종파 중에서 가장 온건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는 수피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알아즈하르 대학교에서는 몇년 전에 수피학에 대한 정규과정이 생겨났다.

수피들의 꾸란 주석은 꾸란의 글자 뒤에 숨겨진 내밀한esoteric 뜻에 관심을 갖는다.

수피가 꾸란을 주석할 때 문자 그대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슬림들 안에서도 꾸란 어휘 의미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서 그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로 수피즘 연구에서도 어휘 의미에 대한 해석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음은 수피즘의 특징이다.

(1) 수피는 외형중심의 무슬림 신앙을 거부한다.

(2) 수피는 감정적인 체험을 강조한다.

(3) 수피즘에서 인간이 알라 속에 소멸한다.

(4) 수피즘은 메타피직스의 관계가 아니라 종교 윤리적인 변화이다.

(5) 이슬람 율법(샤리아)와 수피즘은 서로를 비난한다.

(6) 수피즘은 이슬람 율법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7) 살라피 운동은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여 종교를 정치화하기를 바란다.

(8) 수피 수행에는 마음의 정화 혹은 자아 소멸 혹은 무아 지경(무상의 상태) 등이 있다.

 

영국의 무슬림 인구가 지난 10년(2001-2010) 동안 거의 배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인터넷 판이 2011년 1월 4일 보도했다.

2001년에는 영국 무슬림이 6만 699명이었는데 2010년에는 10만 명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이 수피즘을 통해서 이슬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물론 수피즘과 반대로 이슬람 율법 하에 놓인 경직된 삶을 좋아하는 무슬림들도 있고 또 많은 무슬림들이 아랍어로 된 꾸란을 읽을 수 없어서 꾸란을 잘못 해석한 내용들을 맹신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슬람의 다양성과 복합성 때문에 이슬람의 경계론과 포용론이 등장해 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슬람이 율법 종교이고 포교 중심의 종교라는 것이다.

지금은 무슬림들이 상당히 정치화되어있다.

 

역사를 보면 수피 무슬림들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이슬람을 전하는 주된 수단이 되었고

오늘날 이슬람 산유국의 오일머니는 세계인의 관심사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수쿠크와 수피즘은 무슬림의 삶 가운데서 어떻게 알라를 믿느냐와 어떻게 무슬림이 살아가느냐를 연결해 주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와 객관적인 이해가 쉽지 않다.

아랍인 무슬림들과 동남아시아 무슬림들이 다르고

아랍 국가 안에서도 요르단 무슬림과 사우디 무슬림이 다르다.

더구나 국제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도 무슬림마다 다르다.

예를들면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던 날 밤 필자가 만난 아랍 무슬림 이웃들은

무역센타를 공격한 무슬림들을 가장 훌륭한 무슬림이라고 했다.

그리고 2005년 요르단의 세 호텔에서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도 이라크의 알카에다 조직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지 않다가 그 일이 일어난 뒤에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대항하여 싸우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히즈불라를

아랍 무슬림들은 저항세력이라고 하지 테러리스트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네 아랍인들의 대의를 위하여 싸우는 그들은 저항세력이고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상당수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태생이 무슬림이고 부모가 무슬림인데 테러를 자행한 그들이 어찌 무슬림이 아니란 말인가?

이슬람 중심의 세계관이 우리의 시각과 동일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특히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슬람에 대한 연구는 이슬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슬림들도 이슬람의 율법에 머무르는 경직된 외형 중심의 삶이 싫어서 수피즘을 찾는 무슬림들이 있다.

수쿠크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위와같은 논의에 참고할 만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이슬람 문명의 이해>(예영)는

오늘날의 이슬람과 고전 이슬람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해 주는 책이고

 <코란의 의미를 찾아>(예영)는 샤리아와 파트와(이슬람학자들의 법률적 견해)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책이다.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대한 전체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는 <이슬람율법>(살림)이란 책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수피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수피들의 꾸란 주석은 <꾸란의 이해>(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란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달에 출간될<수피즘과 수쿠크>는

최근 아랍 세계와 한국에서 논점이 되고 있는 주제이다.
출처: 공일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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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

 

 

기독교와 이슬람은 그 뿌리가 같은가?

 

전혀 다릅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근본부터가 다른 종교 입니다.

 

무슬림의 홍보자료에 의하면 "기독교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근본적으로 같다"라고 말합니다.

전적으로 거짓입니다.

 

대한민국 많은 사람이 '이슬람과 기독교는 엄연히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왔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무함마드가 정치적 권력과 군사적 힘이 미비하던 초기에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했던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경전인 꾸란에서도 알라가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나와 있고 이슬람에서 유포하는 홍보용 자료에는 언제나 알라와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라고 주장하며 접근하고 있으므로 주의를 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슬람에서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브라함의 종교'입니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이슬람의 신 '알라(Allah)'는 아브라함이 섬기던 그 하나님이며 기독교와 유대인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기독교와 유대인이 아브라함의 종교를 타락시키고 경전으로 내려 중 ~~~

성경을 변질 시켰기 때문에 무함마드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경전 원본을 보내어 아브라함 종교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이슬람이다. 라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인물과 꾸란의 인물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이 과연 같은 인물일까요?

 

우선 성경의 아브라함은 아버지 이름 데라(창11:31~32)인데 꾸란의 이브라힘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르(Azra)입니다.

 

아버지가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

이었는데 99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 바꾸어 주신 것 입니다.(창17:5)

 

꾸란의 이브라힘은 젊었을 때부터 이브라힘 이라고 불리던 사람입니다.

성경의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의 손에 의하여 불속에 던져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이방인들이 그를 불속에 던진 것을 알라께서 구해 주셨다고 합니다(꾸란21:68~69)

 

꾸란의 여러 주석들에 보면 그를 태워 죽이려던 이방인은 앗수르 왕 니므롯의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간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메카에서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Kaaba)신전을 건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꾸란2:125~127)

 

이슬람의 제2의 경전이라고 불리는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이브라힘은

이스마엘에게 이혼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전혀 이런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결국 내용상의 차이는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은 동일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글의 출처는 이슬람국가에서 나고 자란

하워드신 목사님의 글을 옮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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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갈등과 반목의 역사

 

세 종교 이야기. 홍익희.

 

오늘날 지구상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비극적 상황에 많은 사람이 고통에 빠져 있었다.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신을 믿는 형제 종교이자 세계적인 거대 종교의 대표 격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내세우는 사랑, 자비, 복음, 구원과 달리 현실은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되어 있다.

 

책은 세 종교의 시작을 연 인물인 아브라함의 뿌리가 되는 고대 수메르 문명부터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한 로마제국,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에 치러진 십자군전쟁과 일방적인 유대교 박해가 행해진 중세 암흑기를 거쳐 홀로코스트와 팔레스타인 분쟁까지 전 방위적으로 세계사를 다룬다.

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예수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기독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한다. 이 차이로 각 종교가 그동안 반목했던 것이다. 즉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유대교에 덮어씌운 죄, 즉 예수를 인정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는 죄는 로마제국에 이어 십자군 원정으로 이어지며 중세와 근대의 유럽 지역에서 유대인에게 행해진 박해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선민사상이 강한 배타적인 유대교의 특성상 예수의 보편성을 띤 교리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고,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교 역시 유대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고 세계사의 주역이 되었지만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았을 뿐이다. 이들에게 공동체 내의 활발한 정보교환은 필수였고 유대인들은 이를 상업에 활용, 부의 축적을 이루어낸다. 책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세 종교의 방대한 역사를 간명하게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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