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는 섬기러 간다

/장병조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섬기러 오셨다고 성경은 말한다.예수님의 제자들인 선교사도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러 가는 것이지 선교지 사람들에게 섬김을 강요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태국이란 나라는 왕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국왕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잘 돌아보고 백성들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위해서 늘 연구하는 왕이라고 알려져 있고, 태국 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즉위한 지 61년이 지난 지금도 통치하고 있는 장수하는 왕이다. 이 나라의 특징은 왕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왕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보답하려는 삶을 살도록 가르친다. 만약 그 누군가가 자기 나라 왕에 대해 불충하게 행동하고 은혜를 모르고 행동한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자는 그 나라 국민이 아니라고 말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을 정도이다.

 

그래서 태국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를 아낌없이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도록 내어 주신 은혜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게만 해준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고자 하는 태국인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태국이 복음화 되는데 그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미약한 것은 선교사인 나의 삶에, 혹은 태도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게 한다.

   

어느 나라이든지 그 나라에 선교하러 들어간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현지인들을 섬길 때 현지인들은 깊이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외국인이고 당신은 우리보다 가진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은 사람이며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인데 왜 우리 나라에 와서 우리와 같이 비천한 사람들을 이렇게 섬기는가? 왜 우리 나라에 와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저들이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섬기러 왔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라는 답이 내려진다면 그들 또한 자기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려는 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답하고자 할 것이라고 믿는다.

   

선교는 이렇게 선교사들이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살아 그 현지인들로 하여금 감동받게 하여 그들 스스로 은혜에 보답하려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선교하러 나간 사람들의 입술에서 선교현지 사람들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말을 하거나 그들을 부를때 ‘걔들, 그 아이’ 이런 식으로 부른다고 한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은 무시받은 만큼의 서러움과 멸시가 될 것이다. 현지인들을 마음에서부터 존경하여 대한다면 그런 말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에 생각하는 대로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그들을 부를 때도 ‘그분들’이라고 자동으로 존칭이 나오지 않겠는가? 예수님처럼 우리 선교사가 온것은 당신들을 섬기고 당신들을 위해 죽으러 왔다고 할 때 누가 싫어 하겠는가? 우리가 그들의 발 밑에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길 때 언젠가 그들 또한 우리를 그렇게 섬기려 하는 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

 

바울 선교사들이여 선교 현지인들을 어른으로, 상전으로 섬길 준비를 하고 공손히 깍듯이 대하라. 그들을 예수님 섬기듯이 섬기라. 그들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그들을 잘 받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잘 되게 하기 위해 우리가 왔다는 것을 보여 주라. 그러면 그들 또한 예수님처럼 남들을 섬기며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현지인 기독교 지도자가 그 부하 직원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한 적이 있었다. 상사가 그 부하 직원에게 서류를 만들어 올 것을 지시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려 그 서류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그 서류에는 오타가 있었고 다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번이나 다시 작성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상사로서 짜증이 날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 상사가 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어, 여기 오타가 있네 다시 쳐야 되겠군. 다시 쳐 주시겠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뭐야,이렇게 치고도 사무원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밥 먹고 뭘 하는 거야’ 등등의 야유와 핀잔을 주거나 나무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중에 ‘감사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2번, 3번 반복하며 지시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바로 이거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절대 나무라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며 나중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고 표현하는 상사의 지시 방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현지인들을 대할 수 없을까? 반문해 본 적이 있다. 그 후 나도 그렇게 현지인들을 대했을 때 그 현지인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는 “저 선교사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 준다”는 것이었고,우리를 섬기기 위해 애쓰는 자라는 것이었다.

 

바울 선교사들이여 그 현지인들 앞에 더 엎드리자. 우리의 자세를 더 낮추자. 그들이 주인이고 우리는 그들을 섬기러 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이며 살자. 언젠가 그들도 우리처럼 남 섬기는 종의 도를 준행하는 자들이 될 것을 소망하며 말이다. 우리의 목표는 ‘재생산’하는 사람들을 키우는 것이 아닌가? 그들도 나가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전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가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일을 행할 수 있겠는가?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말조심 몸조심 행동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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