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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

이 시는 다윗 왕이 재야 시절 
사울 왕에게 쫓기며 각박한 세월을 보내던
시절에 지은 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시작되는 시편 23편은
문학적으로도 완벽한 내용이려니와
내용에 담긴 영적 깊이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인민군에 쫓겨 정부가 진해로 옮겨 갔습니다.
맥아더 사령부에서는 한국 정부를 일본으로 
옮기라고 권유하였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내가 진해 바다에 빠져 죽을지 언정 
이 땅을 떠나지 않겠노라"하며
진해를 지켰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민군들이 쏘는 포 소리를 
지척에서 들으며 정부를 이끌었습니다.

정부가 진해로 옮겨간 후 첫 예배를 
드리던 때였습니다. 

연세대 교수였던 나운영 교수가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나운영 교수는 피난 정부에서 드리는 
첫 예배에 찬양을 무슨 곡으로 선택할까를 고심하다
시편 23편을 친히 작곡하여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밤을 새우고 작곡을 하여 
첫 예배 찬양으로 불렀습니다.

찬양대가 찬양을 드리기 전에 
나운영 지휘자는 신도들 앞에 나가 
시편 23편을 작곡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성가대를 지휘하였습니다.

찬양을 들으며 대통령 부부도 울고, 
성가대 대원들도 울고, 
예배에 참여하였던 신도들도 
모두가 울었습니다.
그야말로 눈물의 예배였습니다. 

그리고 찬양대의 성가가 끝난 후 
여호와께서 이 나라를
공산화의 위협에서 구하여 주실 것을 
울며 기도 드렸습니다.

그런 눈물의 기도가 응답되어 
오늘의 한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선배들의 눈물의 기도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시편 23편을 읊조리며
이 겨레의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이 나라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되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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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목회자 / 호라티우스 보나르 
 


호라티우스 보나르(Horatius Bonar, 1808 - 1887)

 

 


스코틀랜드 복음 전도자요 찬송가 작사자인 호라티우스 보나르는 무려 364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많은 목사를 탄생시킨 경건한 집안에서 1808년 열한 명의 형제 중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고 형제들, 그 중에서도 형 제임스의 다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형 제임스(John James), 동생 앤드류(Andrew)와 더불어 목사가 되었다. 그는 에딘버러 대학(Edinburgh University)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토마스 찰머스 밑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1833년 설교할 자격을 획득하였다. 그의 첫 번째 사역은 리스(Leith)에 있는 성 요한 교구에서 전도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사년 동안 전도 사역을 감당한 후에 그는 켈소(Kelso)에 있는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게 되었다.

 

소위 ‘스코틀랜드 교회 분열’(Great Disruption)이 일어날 당시에 보나르는 복음적인 목사들과 장로들의 편에 굳게 서 있었고, 1843년 5월 그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를 탈퇴하여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를 설립하는데 참여하였다. 그는 1830년대와 40년대 스코틀랜드 여러 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영적 운동에 크게 쓰임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찬송시를 작시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찬송시들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 것으로, 거의 600편에 달하는 등, 그는 스코틀랜드 찬송가 작시가 중 제 1인자로 꼽히고 있다. 한국 찬송가 공회에서 발행된 찬송가에도 보나르의 찬송시가 일곱편이나 실려 있다. 신학적인 진리들을 참으로 경건하게 표현한 그의 찬송시는 가사만 읽어 보아도 은혜가 될 만큼 참으로 뛰어나다. 특별히 보나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주제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과 인간의 교만함을 낮추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사역과 찬송 작시와 저술에 있어서 오직 한가지 목적을 품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일이었다.

 

호라티우스의 펜을 통하여 흘러 나온 것은 찬송시만이 아니었다. ‘눈물의 밤’(The Night of Weeping), '진리와 오류‘(Truth and Error), '인간 - 그의 신앙과 세계’(Man : His Religion and His World) 등의 저술 활동을 통해 그는 교회를 위협하는 시대적인 조류에 대해서 계속 경고했다. 그는 거짓과 오류에 저항해서 용기있게 투쟁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도 결연한 자세를 초지일관 유지하였다. 경건서적을 저술하고, 잊혀진 고전들을 발굴하여 재출판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는 스코틀랜드 국경 지방 켈소에서의 사역은 거의 이십년 동안 계속되었고, 1866년에 그는 에딘버러로 돌아가 찰머스 기념 채플(Chalmers Memorial Chapel)의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1887년에 이르러서 그의 건강은 악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그해 5월 31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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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 죽음을 이긴 사랑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 서더튼에서 메노파 교도의 가정에서 1858년에 태어나 철저한 성서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1876년 10월 6일 웨스터체스트의 장로교회에서 봉사하던 풀턴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고 1879년 4월 20일에 좀더 활동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감리교회로 교적을 옮겼다.

 

1878년 프랭클린 마샬대학을 졸업하고 드루신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881년경부터 인도선교의 비전을 갖고 있던 중 파울러 감독의 요청으로 선교지를 한국으로 정하여 1885년 2월 1일 스크랜튼, 언더우드와 더불어 부산으로 출발하여 4월 2일에 도착하였고 4월 5일 부활주일에 제물포 항구를 통하여 입국하였다.

 

아펜젤러는 성서를 번역하였으며(마태복음, 마가복음, 고린도전후서), 감리교 인쇄 출판소를 확장하여 각종 선교잡지를 발행하기도 했고, 1885년 8월 3일 배재학당을 설립하여 교육을 통한 선교에 힘쓰는 한편 1895년 정동교회를 설립하였다.

 

정동교회에서는 서재필, 이승만, 윤치호, 주시경, 이상재, 남궁억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 지회가 결성되었는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구파의 모략으로 독립협회는 해체되고 중요한 인물들이 투옥되었다.
그는 감옥을 순례하며 구호와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이때 이승만, 이상재 등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서울, 평야, 인천, 수원, 공주, 대구, 전주 등지로 여행하며 전도활동을 수행하였다.


한국에서의 아펜젤러의 사역은 그의 사역기간 5년동안 체중이 180파운드에서 131파운드로 줄어들었을 정도로 정열적인 것이었다.

 

1902년 6월 11일 밤 10시경 , 아펜젤러와 그의 조수겸 비서 조한규, 서울에 있던 장로교학생으로서 집으로 돌아가던 한 여학생 등과 함께 목포로 항해하는 오사카 선박회사의 쿠마가와 마루호에 승선하여 항해하고 있었다.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항해하던 배가 어청도 부근을 지나던 중 키소가와로 이름 붙여진 다른 선박과 일행이 타고 있던 배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배를 버리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비서 조한규가 미처 선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펜젤러는 그를 구하기 위해 침몰하는 배의 선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배는 아펜젤러를 비롯한 23명과 함께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아펜젤러의 장례식은 1902년 6월 29일 주일에 치뤄졌는데 장례식에서는 이 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리고 민족 구원을 위한 애국 애족활동을 기리기 위해 애국가가 불려졌고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아펜젤러의  장남은 배재학교 교장으로, 장녀는 이화학당 교장으로 봉직하다 한국 땅에 묻혔으며 막내 또한 이화학당의 교수로 한국선교에 헌신하였다.


1935년에는  아펜젤러 기념비가 정동교회에 세워졌고, 1989년에는  배재학교 총동창회에 의해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추모비가 세워 졌다.

 

동방의 한 작은 나라, 아직 어둠에 잠겨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의 빛으로 밝히기 위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사르던 선교사 아펜젤러는 결국 이 나라의 한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그의 죽음은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은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자라나 오늘 이 땅에는 1200만이라는 열매가 맺혀졌다.
이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로부터 얻은 빚을 갚을 때이다.
그 빚을 갚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의 죽음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룬 아펜젤러, 하나님께서는 그를 우편에 앉히시고 그의 머리에 생명의 면류관을 씌우셨을 것이 분명하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하)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교회 

목사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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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며 던진 성경/ 토마스 선교사

 

 

죽어가며 던진 성경

토마스 선교사

 

"여러분, 지금 세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순교하는 신앙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복음을 듣고 영접하고 구원에 감사하는 영혼들을 볼 때 저는 선교사로 부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순교하는 신앙으로 세계 곳곳에 나아가 복음 전할 사람들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학교를 찾아 온 선교사의 말을 듣던 토마스의 마음은 선교의 열정에 사로잡혔다. "주님, 지금까지는 제가 웨일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제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제 길을 열어주세요."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리고 그는 곧 바로 런던선교회를 찾아가 중국선교사로 파송해 줄 것을 신청하였다.

 

18635"토마스 씨, 런던선교회는 당신을 중국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연락을 받았을 때, 토마스는 중국선교사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격하며 찬양을 드렸다. "캐롤라인 드디어 내가 중국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었소! 우리가 함께 가는 것이오." 그는 약혼자인 캐롤라인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선교사로 떠나야 하는 토마스는 캐롤라인과 결혼한 후 곧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드디어 토마스 부부는 1863721일 그래이부센드 부두에서 출발하는 폴메이스호를 타고 중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중국에 도착한 토마스 부부의 선교활동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여보, 맛이 없더라도 건강을 생각해서 좀 먹어봐요" 남편인 토마스의 염려하는 말에 임신하여 입덧에 시달리던 캐롤라인은 "입맛이 없어서 음식이 먹히지가 않네요."라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설상가상으로 토마스는 런던선교회의 선임선교사인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사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토마스 부부는 "주님, 저희들에게 이곳 중국에서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주심으로 위로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중국에서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하였다.

 

그렇게 중국사역을 진행하던 토마스는 18643월에 임신한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한구라는 곳으로 출장을 떠났다. 그런데 토마스의 이웃에 살며 친하게 지내던 미국선교사 부인이 갑자기 풍토병으로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것을 곁에서 본 캐롤라인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연유로 캐롤라인은 남편이 없는 가운데 혼자서 태중의 아기가 유산되는 고통을 겪었다. 출장을 떠났던 토마스는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태중에 있을 아기를 생각하며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내가 돌아왔소. 떠나 있는 동안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소."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순간 토마스는 섬뜩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면서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다급한 마음으로 "캐롤라인! 캐롤라인!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당신 자고 있는 거요?" 이렇게 말을 하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토마스는 "- "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캐롤라인이 누워있는 곳에는 핏자국이 여기저기에 뒤엉켜 있었다. 그의 아내는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캐롤라인 내가 왔소! 눈을 떠 봐요 내가 왔단 말이오." 그러나 싸늘한 몸으로 누워있는 그의 아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캐롤라인은 아기가 유산된 후에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는 가운데 이미 일주일 전에 혼자 죽어간 것이었다. 아내의 죽음으로 토마스가 받은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 고통으로 인하여 그는 선교에 대한 회의에 빠져갔다. 마치 미친 사람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캐롤라인! 나를 두고 당신 혼자서 가면 어떻게 하오. 하나님 캐롤라인은 우리의 사랑스런 아기를 유산시키고 혼자서 죽어갔습니다. ?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까? 내가 여기에 왜 왔는데요. 중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고향과 부모를 떠나 이곳까지 왔는데. 당신이 내게 한다는 것이 고작 이것입니까? 내 아내와 자식을 데려가는 것이 당신의 뜻이냐구요. 저와 캐롤라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선교사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저도 데려가지 왜 저 혼자만 이렇게 남겨두셨습니까?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계시지만 말고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하나님 당신은 사랑이시라고 했잖아요. 정말 당신이 사랑이신 분이 맞아요? 그런 분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거예요.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것인지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토마스는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많은 날을 헤매어 보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분노와 원망은 가라앉지 않았다. 토마스는 런던 선교회에 편지를 썼다. "처음 편지가 이런 것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이 지난달 2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한 그는 런던선교회에 선교사 사직서를 제출하고 중국 해상세관에 통역으로 취직하였다. 세관에 취직한 그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하여 일하는 것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에 토마스는 우연한 기회에 조선인 '동지사' , 조선시대에 동지를 전후하여 중국에 공물을 갖고 보내던 사신 일행을 만나서 조선 내에서의 가톨릭교도들에 관한 수난을 듣게 되었다. 동지사로부터 가톨릭교도들이 참수당하는 소식을 듣게 된 토마스의 마음에는 또 다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졌다. 그리고 조선에서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며, 순교의 피를 흘리고 있다는 동지사의 말이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이제부터 나의 선교지는 조선이다. 죽어가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어!" 토마스의 마음은 조선에 대한 선교열정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으로 마음을 불태우고 있을 때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윌리엄슨 선교사가 그를 찾아왔다.

 

 

"토마스, 계속하여 세관에서 통역하는 일만 할 생각이오? 당신이 아내를 잃은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를 잃은 아픔을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당신은 중국어와 러시아어, 몽골어 등의 언어에 능통한데 하나님께서 왜 당신에게 이러한 언어의 재능을 주셨을 것 같소. 복음 전하는 것에 사용하도록 함이 아니겠소."

 

"그렇지 않아도 세관에 사표를 내려던 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제 믿음이 좋아서 이곳 중국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된 줄 알았는데, 캐롤라인의 죽음 앞에서 사정없이 흔들리는 제 약한 모습을 보면서 제가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자식을 무덤에 묻는 아픔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이제 실감이 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잠시도 제 스스로 설 수 없는 자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토마스의 모습은 조용하지만 복음전하기 위해 준비된 결연한 모습이 보였다. "윌리엄슨, 사실은 얼마 전에 조선의 동지사를 만나 그곳 소식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 조선에는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예수를 믿는 것으로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오작통이라고 하여 한 가족이 예수를 믿으면 다섯 가족이 죽음을 당하는 등의 핍박을 당하고 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제 마음은 어떻게 하면 제가 조선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저는 중국에 복음전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제가 조선에 복음 전하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럼 내 당장 조선에서 나를 찾아온 두 사람을 만나게 해 드리지요." 윌리엄슨의 말에 토마스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윌리엄슨의 안내를 받으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자 두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이 분은 토마스 목사입니다. 인사하시지요." 윌리엄슨의 말을 들은 두 젊은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저는 김좌평입니다. 저는 최선일입니다." 하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토마스 목사입니다. 저는 조선에 가서 야소(예수)교를 전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 조선에 가서 야소교를 전하겠다는 토마스의 말에 놀란 두 젊은이는 ".... 안됩니다. 조선은 지금 박해가 심해서 야소를 믿던 우리도 목숨을 걸고 피해 왔습니다. 조선에 있다간 칼날에 맞아 죽습니다."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젊은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토마스 목사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칼날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순교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다시 조선으로 갑시다."하는 말에 "글쎄 돌아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라니까요." 두 젊은이는 손을 내저으며 만류하였다. "그건 다시 사는 겁니다. 거듭나는 거지요." 젊은이들은 토마스 목사의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듯 어안이 벙벙하였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하고 토마스 목사가 말을 꺼내자 "마태복음...?"하면서 젊은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성경을 안가지고 계십니까?" "없습니다.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은 성경책과 교리문답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성경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두 젊은이가 합창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성경책을요? 저를 조선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제가 그들에게 성경책을 갖다 주겠습니다." 결국 두 젊은이는 토마스 목사의 말에 감동을 받아 조선으로 떠날 것을 결심하였고 윌리엄슨 목사는 토마스 목사에게 다량의 한문성경을 공급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186594일에 토마스 목사는 두 젊은이와 함께 다량의 한문성경을 실은 목선을 타고 제1차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중국의 지포를 출발한 그들은 10일 만에 황해도 창린도 자자리 군포에 도착하였다.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사람을 본 토마스는 "안녕하세요. 저는 야소교 목사입니다. 이 책은 야소교 책입니다. 받으세요!" 외치면서 그들에게 성경을 내밀었다.

 

"에구머니나, 이상하게 생긴 코쟁이가 어떻게 우리말을 하지?" 주민들은 토마스 목사가 건네주는 성경책을 받아들었다. 토마스 목사는 백령도 부근의 섬을 2개월 반 동안 돌면서 섬 주민들에게 성경책을 주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가르쳤다. 토마스 목사는 동시에 섬 주민들에게 많은 조선말을 배웠다. 토마스 목사가 돌아간 후 관가에서는 성경책이 법으로 금하는 천주학쟁이들의 책이라고 하여 백령도 참사로 하여금 주민들에게 성경책을 회수하도록 하였는데 그때 거두어들인 책이 99권이나 되었다.

 

토마스 목사 일행은 서울로 가서 전도할 생각으로 범선을 타고 한강을 향하였으나 난데없는 폭풍으로 접근치 못하고 표류하다가 북경으로 되돌아왔다. 이 일로 18664월까지 북경에 체재하던 토마스 목사는 조선의 동지사 일행을 만나 친숙한 교제를 나누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동지사인 평양감사 박규수대감을 만나 "저는 야소교목사 토마스입니다." "~오 어떻게 조선말을 잘 하시오? 놀랍소이다." "작년에 조선에 가서 배웠습니다." "난 박규수라 하오." "지난번에 조선에 가서 천주교 박해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들었습니까?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소이다." "저는 또 조선에 갈 생각입니다." "조선이 그렇게 좋더이까?" "저는 조선에 가서 야소를 전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마구 뜁니다. 대감에게 제가 이 책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소이다."

 

토마스 목사가 박규수 대감에게 선물한 책은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이었다. 그가 조선동지사인 박규수 대감을 만나고 나올 때 누군가 따라 나와 작은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토마스 목사가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고 주춤거리던 그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달아나듯이 뛰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받은 종이쪽지를 읽던 토마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종이쪽지를 들고 있던 토마스 목사의 두 손이 가슴에 모아졌다. 그곳에는 "백령도에서 뿌렸던 야소교 책을 꼭 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후로 조선선교에 대한 그의 가슴은 더욱 뜨거워졌고 어떻게든지 조선에 갈 방법을 찾아 나셨다. 그때 조선에는 천주교인들이 핍박을 당하여 강산이 피로 얼룩지고 있었다. 그 사건의 발단은 러시아 군함이 원산에 들어와 통상압력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이러한 압력에 대처할 능력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 때 천주교도였던 승지 남종상이 대원군을 찾아가 한 가지 방도를 제안하였다.

 

 

러시아를 격퇴시키려면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것은 프랑스 신부의 도움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신부의 도움을 받으려면 천주교를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원군은 러시아 함대만 격퇴시키면 천주교의 포교를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유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것으로 대원군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러던 차에 러시아 함대가 스스로 물러갔다.

 

그때서야 나라의 위기를 이용하여 포교의 자유를 얻으려 했던 남승상의 속셈을 알게 된 대원군은 분노하여 천주교를 사교로 간주하고 책을 불태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만 천주교를 믿어도 다섯 가구 모두 처형되는 오작통을 실시하였다. 그뿐 아니라 누구든지 서양인과 만나는 사람을 엄하게 다스렸고, 천주교도를 고발하거나 체포하는 사람들에겐 포상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8,000명의 천주교도들이 처형되고 9명의 프랑스 신부가 처형된 병인년 박해의 발단이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자국인의 신부를 학살한 것을 항의하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프랑스 함대를 조선에 원정을 가도록 하였다.

 

이 때 마침 토마스는 통역으로 동행할 것을 제의받았다. 통역으로 동행할 것을 수락한 토마스는 조선에 가져갈 성경과 전도지를 준비하여 소식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토마스 목사 뭘 그리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소." "윌리엄슨 목사님, 왜 프랑스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 거죠?" "프랑스 배는 오지 않는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인 반도지나에 변란이 일어나서 그곳으로 뱃머리를 돌렸다고 합니다. 대신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무역을 위해 조선으로 간답니다. 그 배에 통역관으로 승선하여 합류하는 것이 어떻소?"

 

"! 그것 잘되었습니다. 지금 그 선장을 만나보면 안될까요?" "성미도 급하십니다. 마침 지금 그곳으로 가는 길이랍니다. 같이 가봅시다." "선장님, 이 분은 조선말을 잘하시는 토마스 목사입니다." "안녕하시오. 우리는 한양으로 가서 무역을 할 계획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평양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요? 평양감사가 저와 친분이 있어서 도와준다고 약속했는데요. 아직까지 조선과 무역을 시작한 나라가 없는데 누군가 도와준다면 통상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글쎄, 그럼 평양으로 가도록 합시다."

 

186689일 토마스 목사는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목적지인 평양에 가기 위하여 대동강을 출발하였고 제2차 조선선교여행에 오른 토마스 목사는 이번 조선여행에서 선교를 잘 감당하기 위하여 뱃머리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셔먼호가 조선국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821일에 포리에 다다랐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배는 미국배로 조선과 무역을 하려고 왔습니다." "프랑스 배가 아닌가요?" 주민들은 프랑스배가 아니라는 말에 실망한 듯하였다. "하나님께서 조선을 사랑하십니다. 자 이걸 받으세요. 성경책입니다." "이걸 그냥 받아도 됩니까?"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배 위에 올라와서 배는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이 때 나누어 준 성경이 500여 권이나 되었다. 그리고 셔먼호가 북상하여 석호정까지 올라왔을 때 토마스 목사는 배의 갑판으로 나와 "야소 (예수)를 믿으세요! 야소를 믿으세요!"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던져 주었다.

 

이때 4일간 머물면서 100여 권의 성경을 주민들에게 주었다. 셔먼호가 석호정에서 만경대까지 다다르자 팽팽한 긴장이 고조되었다. 조선에서는 그 배가 닿는 곳마다 문정관을 파견하여 목적지와 항해의 목적을 물었다. 통역으로 승선한 토마스는 목적지가 평양이며 통상을 원한다는 것을 밝혔다. 셔먼호에서는 양식과 땔감을 요구하였고 조선에서는 그것을 공급해 주었다. 그러나 셔먼호의 미국인 선장은 조선인 이익현을 협상을 하는 것처럼 속여 배로 유인한 다음 그를 억류하였다. 이것을 알게 된 토마스 목사는 선장에게 "이러면 안 됩니다. 어서 저 사람을 보내주시오." "당신은 상관 마시오. 내가 선장이요." "정말 조선과 교역을 원하신다면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두고 보시오 저들은 곧 내 말을 듣고 통상을 요구해 올 것이오." "이건 비겁한 짓입니다. 빨리 저 사람을 보내고 저들에게 잘못을 사과하시오"

 

그러나 선장은 토마스 목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익현의 억류로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은 소극적이던 자세를 버리고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틈에 박춘권이라는 부교가 이익현을 셔먼호에서 구출하였다. 대포로 공격을 하던 셔먼호 선장은 조선 군사들의 공격이 거세지자 퇴각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홍수로 불어났던 물이 줄어들어 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하는 소리와 함께 배는 모래에 좌초되었다. 이 순간을 놓칠 리 없던 조선의 군사들은 일제히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순간에 토마스 목사는 "야소" "야소 믿으시오!" "야소!" 소리치며 배 안에 있던 성경을 군사들에게 던졌다. "잠깐, 항복하겠으니 우리를 돌려 보내주시오." 배 안에 있던 선장이 외쳤다. "항복하면 돌려보내주겠소.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는 소리와 함께 대포는 조선의 군사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선장의 비열한 처사에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이 일제히 횃불을 싣고 셔먼호에 접근하여 불화살을 쏘아대었다. 배에 떨어진 불화살로 셔먼호는 불타기 시작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강으로 뛰어내렸고 목숨을 건져 뭍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성난 조선의 군사들에 의하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리하여 대동강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배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와중에서도 누군가 한손에 백기를 들고는 "야소, 야소" 외치면서 성경책을 던졌다.

 

"야 저러다가 저 사람 불타 죽겠다. 야소교 목사라고 했던 사람이지 않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의 옷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순간 두 팔을 높이 든 토마스는 "야소!" 큰 소리로 외치더니 강물에 뛰어내렸다.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온 그를 목 베려고 누군가 칼을 쳐들었을 때, 부교인 박춘권은 그를 생포하도록 명령하였다.

 

"당신은 총 한번 쏘지 않고 책만 던지던데."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오." 토마스 목사 외에도 3명의 사람이 생포되었다. 평양감사는 이들에게 국법을 어기고 사교를 전하고 백성들을 살해하였으므로 모두 부교인 박춘권으로 하여금 참수토록 명하였다. 죄수로 묶여 있는 그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만을 찾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대동강 변에서 국법에 따라 한 사람씩 목을 베는 형벌이 실시되었다. 선장과 중국서기인 조능봉, 이팔행이 먼저 목 베임을 당하였다. "다음 영국 야소교 목사 토마스"하자 북소리가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칼을 잡은 박부교의 손이 높이 올려진 순간이었다.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물건입니다." 이 말에 멈칫하고 놀란 박부교는 토마스 목사가 내미는 작은 보따리를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그러자 토마스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일로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18669328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 목사는 대동강의 한사정 백사장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다. 토마스가 죽고 난 다음 33년이 지난 1899년의 일이다. "목사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못살겠습니다.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인 박춘권입니다. 그 때 그가 죽어가면서 제게 주었던 작은 보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책이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제 마음이 찔려서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마펫 선교사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영감님, 영감님이 토마스 목사를 직접 보셨단 말입니까?" "보다마다요.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였다니까요?" "하나님께서는 토마스 목사의 죽음을 통하여 영감님과 같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영감님도 예수를 믿고 전하면 됩니다." "목사님, 정말 그럴까요? 그때 셔먼호가 불타는 가운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을 던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어느 여관에 갔을 때 방안이 온통 성경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관주인을 불러서 연유를 알아보니 토마스 목사가 포리에서 500여 권의 성경을 배포할 때 박영식이라는 평양감청 경비가 사람들이 버리는 책을 주워 다가 도배를 했답니다. 그것을 여관주인인 최치량이 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관에 묵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제게 들려주면서 자신도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알기로도 토마스 목사에게 성경을 받고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많습니다. 홍신길은 후에 대동문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의 동생도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고, 김영섭은 원래 천도교였으나 동생 종권과 함께 교인이 되어 장로가 되고, 황명대는 셔먼호가 불탈 때 "야소, 야소"하는 소리를 듣고 평양 초대교회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이렇게 토마스 목사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뿌렸던 성경은 살아서 조선의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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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위클리프

(개혁의 선구자)

 

 

종교개혁 이전에는 극히 적은 부수의 성경밖에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완전히 없어지도록 허락지 아니하셨다. 성경의 진리가 영원히 숨겨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감옥의 문과 철문을 열어서 당신의 종들을 쉽게 해방시켜 주실 수 있었던 것처럼 그분께서는 생명의 말씀도 쉽게 해방시킬 수 있으셨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진리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성령의 지도를 받고,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거룩한 말씀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빛을 받고자 하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분명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오래 묻혀 있었던 많은 진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의 사자들로 파견되어, 오류와 미신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오랫동안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얻으라고 부르짖었다. 왈덴스인들을 제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유식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언어로 여러 시대 동안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이 번역되어 모든 사람들이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세상은 깊은 밤중을 지냈다. 흑암의 시대는 지나가고, 많은 나라들에서는 날이 새는 징조들이 나타났다.

 

14세기에 영국에서 종교개혁의 샛별이 나타났다.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영국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국을 위한 개혁의 선구자였다. 그가 허락을 받아 로마교에 제기한 큰 항의는 결코 침묵시킬 수 없을 것이었다. 그 항의는 마침내 개인과 교회와 국가의 해방을 초래하게 될 투쟁을 빚어냈다.

 

위클리프의 청년 시대

 

위클리프는 고등 교육을 받았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에 이미 놀라운 재능과 학식뿐만 아니라 그의 열성 있는 신앙으로 명성이 높았다.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그는 모든 방면의 학문에 통달하고자 애를 썼다. 그는 스콜라 철학을 공부하는 동시에 교회법과 국법, 특히 자기 나라의 법률을 공부하였다. 이와 같이 닦은 청년 시대의 교육이 후년에 가서 그 가치를 크게 드러내었다.

 

그는 당시의 사변 철학(思辨哲學)에 정통하였으므로 그 오류를 지적할 수가 있었고, 국법과 교회법을 공부하였으므로 국가와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크게 활약할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지적 훈련을 쌓았기 때문에 학자들의 수법(手法)도 알고 있었다. 그의 천부(天賦)의 재능과 깊고 넓은 지식은 동료들과 원수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투사가 당시의 국내의 지도자들 가운데서 첫째가는 사람인 것을 만족하게 여기고 있었고, 그의 원수들은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약점을 폭로함으로 감히 개혁 사업을 멸시하려고 하지 못하였다.

 

위클리프는 대학에 있을 때 성경 연구를 시작하였다. 초기인 당시에는 성경이 고어(古語)로만 되어 있었으므로 학자들은 진리의 근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나 무식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 길이 막혀 있었다. 그와 같이 개혁자로서의 위클리프의 장래의 사업에 대한 길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학식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그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큰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 진리를 가르침으로, 그들은 진리의 지식을 전파하였고, 다른 사람들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향하도록 인도하였다. 위클리프는 성경 연구에 뜻을 두고 학교에서 학과를 공부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그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스콜라 철학이나 교회의 가르침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항상 부족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이전에 얻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었다. 거기서 그는 구원의 계획을 깨달았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업에 바치고 자기가 발견한 진리를 전파하기로 결심하였다.

 

폐습의 타파(打破)

 

위클리프는 후세의 다른 개혁자들처럼 그의 사업의 초기에는 자기가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는 고의적으로 로마교에 반대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리에 투신하게 되자 그는 필연적으로 거짓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법왕권의 오류가 분명해지면 질수록 더욱 열렬하게 성경의 교훈을 설명하였다. 그는 로마교가 사람의 유전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을 보고 성경을 저버린 신부들을 담대하게 질책하고 성경을 백성들에게 돌려줄 것과 성경의 권위를 교회 안에서 다시 한 번 확립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재간 있고 열성 있는 교사요 웅변적인 설교자였으며, 자기가 전한 진리를 자기의 일상생활로써 실증했다.

 

성경 지식, 그의 논증의 설득력, 그의 깨끗한 생애, 그의 변함없는 용기와 성실성 등은 일반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었다. 그러므로 로마교에 편만한 불법을 눈으로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래의 신앙에 불만을 가졌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출 수 없는 기쁨으로 위클리프가 밝히 제시한 진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법왕교의 지도자들은 그 개혁자가 그들 자신들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고 심히 분노하였다.

 

위클리프는 오류를 발견하는 데 예민한 사람이었으므로 로마교의 권위로 승인한 여러 가지 악폐에 대하여 기탄없이 공격하였다. 그는 국왕의 왕실 목사로 재직할 당시에 법왕이 영국 국왕에게 요구하는 조공에 대하여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에 섰으며, 법왕이 세속적 통치자를 지배하는 권위를 가지는 것은 이성과 계시에 어긋나는 일임을 보여 주었다. 법왕의 요구는 심한 의분을 일으켰었다. 위클리프의 가르침은 그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왕과 귀족들은 속권에 대한 법왕의 요구를 부인하고 조공의 지불을 거절하는 일에 결속하였다. 이와 같이 영국에서는 법왕 최상 권에 효과적인 타격을 입혔다.

 

승단(僧團)의 부패와 타락

 

이 개혁자가 오랜 시일을 두고 단호한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 온 또 하나의 악폐는 탁발승단(托鉢僧團) 제도였다. 이 탁발승들은 영국 안에 너무 많이 있었으므로 국가의 번영에 큰 장애가 되고 있었다. 산업, 교육, 도덕이 모두 그 쇠퇴의 영향을 입고 있었다. 승려들의 게으른 생활과 구걸은 사람들에게 재정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주었을 뿐 아니라 유용한 노동을 멸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청년들은 부도덕하고 타락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탁발승의 영향으로 수도원에 들어가서 은둔 생활(隱遁生活)에 몸을 바치도록 권유를 받았다. 그들은 부모와 합의하지도 않고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그들의 명령을 거스르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초대 로마교의 어떤 교부(敎父)는 자녀로서의 사랑이나 의무에 대한 의리보다도 수도 생활(修道生活)이 더욱 중요함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비록 너의 아버지가 너의 문 앞에 누워서 울고 슬퍼할지라도, 너의 어머니가 너를 낳았던 몸과 너를 젖먹이던 가슴을 보일지라도, 너는 그들을 발로 짓밟아 버리고 그리스도에게로 곧장 달려가야 한다.” 후일에 루터는 이에 대하여 이런 “무서운 비인도적 행위는 그리스도인과 사람의 행위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리나 폭군의 행위”(Barnas Sears, The Life of Luther, pp.70, 69)로 생각된다고 말하였다.

 

이런 일들이 자녀들의 마음을 부모에 대하여 무정하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법왕교의 지도자들은 옛날 바리새교인들처럼 그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가정들은 황폐되었으며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과의 교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심지어 대학교의 학생들까지도 승려들의 거짓된 말에 속아서 그들의 대열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런 후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애를 해롭게 하고 부모에게 슬픔을 안겨준 것을 알고 후회하게 되었으나 일단 올무에 단단히 걸린 다음에는 다시 자유를 찾을 수 없었다.

 

많은 부모들은 승려들의 영향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아들들을 대학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학문의 위대한 중심지에 모여드는 학생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학교들은 쇠퇴하여 갔고 무지(無知)는 편만하게 되었다. 법왕은 승려들에게 사람들의 자복을 듣고 용서해 주는 권세를 주었다. 이것이 또한 죄악의 큰 원인이 되었다. 승려들은 그들의 사복을 채우기 위하여 사람들이 어떠한 죄악을 고백하든지 곧 사면하여 주므로 그 결과로 가장 악한 죄악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병자와 가난한 자들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마땅히 그들의 궁핍을 제거하는 일에 쓰여져야 할 선물들은 승려들에게로 넘어갔다. 승려들은 위협으로 사람들의 시여(施與)를 강요하였고, 그 일을 거절하여 기부하지 않는 자에게는 불온한 말을 하며 비난하였다. 표면상으로는 빈곤하다고 말하지만, 승려들의 재산은 계속해서 증가하였다. 그들의 훌륭한 저택과 사치스러운 식탁은 백성들의 빈곤을 더욱 심하게 해주었다. 그들 자신은 향락과 사치에 빠져 시간을 보내면서, 기괴한 이야기와 옛 전설과 백성들을 경박하게 만들어 주는 농담들밖에 할 수 없는 무지한 사람들을 그들 대신 보내어 사람들을 더욱 완전히 승려들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신적인 일반 사람들은 그러한 승려들을 지지하고, 법왕의 절대권을 인정하고, 성도를 숭배하고, 승려들에게 선물을 드리므로 종교적 의무를 완전히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기에 넉넉한 자격을 얻게 된다고 믿었다. 학식 있고 경건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탁발승의 제도를 개혁하고자 수차 시도하였으나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예민한 통찰력을 가진 위클리프는 그 제도 자체가 거짓된 것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선포하면서 악의 뿌리를 공격하였다. 토론과 의문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승려들이 법왕의 면죄부(免罪符)를 팔면서 각처로 돌아다니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과연 돈으로 죄사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의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로마 법왕에게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죄 사함을 구하여야 할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탁발승(托鉢僧)들의 탐욕에 놀랐다. 그들은 “로마의 승려와 신부들이 암(癌)처럼 우리를 좀먹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면 백성들은 멸망할 것이다”(D’Aubigne, b.17, ch.7)라고 말하였다. 구걸하면서 다니는 그 승려들은 자기들의 탐욕을 감추기 위하여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백성들의 자선에 의하여 생활하였다고 주장하므로 그들은 구주의 모본을 따라가고 있노라고 하였다.

 

그와 같은 주장은 그들의 사업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배우기 위하여 성경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것은 어떤 일보다 로마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바로 로마교가 숨기고자 하는 진리의 근원을 찾아 나아가게 되었다.

 

위클리프는 탁발승단을 반대하는 소책자를 저술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그들과 논쟁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을 성경과 그 저자 되시는 하나님의 교훈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법왕의 사면하거나 파문하는 권세가 보통 신부 이상의 권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먼저 정죄의 선고를 받지 않는 한 아무도 참으로 파문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일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속박하기 위하여 법왕이 제정한 영적 및 세속적인 거대한 조직체를 파괴하는 데 있어서 더할 수 없이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영국 국왕과 위클리프

 

위클리프는 로마 법왕의 침략적 세력에 대항하여 영국 국왕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다시 부름을 입었다. 그는 국왕의 사신이 되어 네덜란드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법왕의 사절들과 회의를 하였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승려들과 교제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그들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영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장래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이 법왕권의 대표자들을 통하여 그는 그 교직 정치(敎職政治)의 참된 성격과 목적을 알았다. 영국에 돌아간 후에 그는 종래의 가르침을 더욱 담대하게 되풀이하였고, 더욱 큰 열성으로 탐욕과 교만과 기만이 로마교의 신(神)이라고 공언하였다. 그는 자기가 저술한 소책자에서 법왕과 법왕의 모금자(募金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비를 빼앗고, 해마다 수천 마르크의 돈을 성직 매매의 저주받은 이단에 불과한 성물과 신령한 행사를 위하여 빼앗아 가며, 모든 그리스도 국으로 하여금 그 이단을 찬동하고 지지하도록 만든다. 참으로 우리나라에는 금으로 된 거대한 산이 있는데 지금껏, 그것을 가져가는 자가 없었으나, 오직 저 교만하고 세속적인 신부라는 모금 자가 가져가고 있으므로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 산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나라에서 돈은 가져가고 성직 매매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저주만을 남겨 놓기 때문이다”(John Lewis, History of the Life and Sufferings of J.Wycliffe, p.37).

 

위클리프가 영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그는 칙명(勅命)으로 루터워드의 교구장(敎區長)이 되었다. 이 사실은 적어도 국왕이 그의 솔직한 말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는 일이었다. 위클리프의 감화는 긍정의 태도를 결정하고 국민들의 신념을 형성하는 일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곧 법왕의 진노와 위협이 그에게 다가왔다. 대학과 국왕과 감독들에게 보내는 세 가지 교서가 영국으로 급히 전달되었다. 그 내용은 모두 그 이단의 교사를 침묵시키기 위하여 즉각적이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이었다(Augustus Neander, General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period 6, sec.2, pt.1, par.참조).

 

이 교서가 하달되기 전에 이미 감독들은 격분한 나머지 위클리프를 법정으로 소환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장 세력 있는 두 왕족이 그를 동반하여 법정에 임석하였고, 군중들이 법정 밖을 에워싸고 마침내 법정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소동까지 일으켰으므로, 재판을 진행하던 법관들도 이를 두려워하여 심문을 잠깐 중지하고 그를 놓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감독들이 나이 많은 에드워드 3세로 하여금 그 개혁자를 배척하도록 하고자 꾀하였으나 얼마 후에 그 왕은 죽고, 전에 위클리프를 보호하던 이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서가 도착되자 이단자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라는 엄한 명령이 온 영국에 선포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분명히 화형주(火刑柱)를 의미하였다.

 

위클리프는 오래지 않아서 반드시 로마의 보복의 희생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옛날의 노독 중의 한 사람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라”(창 15:1)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손을 펴사 당신의 종을 보호하셨다. 죽음이 다가왔으나 그 죽음은 개혁자에게가 아니고 도리어 개혁자에게 죽음을 선고한 법왕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레고리우스 Ⅱ세는 죽었다. 그러므로 위클리프를 심문하기 위하여 모였던 교직자(敎職者)들은 부득이 산회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섭리와 개혁 사업의 발전

 

하나님의 섭리는 여전히 여러 사건을 지배하여 개혁 사업이 발전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레고리우스 법왕이 죽은 후에 두 법왕이 대립하여 선출되었는데, 그들은 각각 자기가 절대로 무류하다고 공언하고 사람들의 복종을 요구하였다. 두 사람은 각각 자기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소집하여 상대편에게 도전하게 하고,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는 심한 저주를 하는 한편, 자기를 지지하는 자에게는 하늘에서 보상을 받을 것을 약속함으로 자기를 지지해 주기를 강요하였다. 이러한 사태로 말미암아 법왕권의 세력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두 파는 각각 있는 힘을 다하여 상대방을 공격하였으므로, 그 틈을 타서 위클리프는 얼마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서로 저주하고 비난하는 투쟁이 두 법왕 사이에 전개되었고, 각자의 주장을 세우기 위하여 유혈 참극까지 벌였다. 교회 안에는 범죄와 추문이 차고 넘쳤다. 이러는 사이에 개혁자 위클리프는 루터워드에 은거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는 법왕들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평화의 임금이신 예수님께로 돌리고자 애를 썼다. 온갖 투쟁과 타락을 자아낸 분열은 사람들로 하여금 법왕권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어 도리어 개혁의 길을 열어 주었다.

 

위클리프는 자기가 저술한 “법왕의 불법”이란 소책자에서 서로 상대편을 적그리스도라고 정죄하고 있는 두 승려의 말이 참말인지 생각해 보라고 백성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악마와 같은 그들 중의 하나로만 통치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고…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더욱 쉽게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둘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셨다”(R.Vaughan, Life and Opinions of John de Wycliffe, vol.2, p.6)고 말하였다.

 

위클리프는 그의 주님처럼 빈곤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루터워드의 교구 안에 있는 비천한 백성들에게만 빛을 전하는 것으로 흡족히 여기지 않고, 영국의 각 곳에 전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는 그 목적을 위하여 진리를 사랑하며 그것을 널리 증거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아끼지 아니하는 단순하고 경건한 선교사들로 구성된 하나의 조직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어느 곳이든지 가서 시장(市場)에서나 대도시의 거리에서나 시골의 길가에서 설교하였다. 그들은 늙은이들과 병든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은혜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위클리프는 옥스포드 대학교의 신학 교수로서 그 대학의 강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의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에게 진리를 너무도 성실하게 소개하였으므로 복음 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위클리프의 온 생애를 통하여 최대의 사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는 “성경의 진리와 의미”라는 저서에서 자기가 성경을 번역하여 영국 국민으로 하여금 모두 자국어로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을 읽을 수 있게 할 뜻이 있다는 것을 표명하였다.

 

영역 성경의 완성

 

그런데 갑자기 그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아직 60세도 안 되었지만 끊임없는 수고와 연구와 원수들의 공격이 그의 기력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는 신속히 노쇠하게 되었다. 그는 위험한 병에 걸렸다. 이 소식은 탁발승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그들은 이제야 그가 교회에 대하여 범한 악행을 깊이 뉘우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자복을 듣기 위하여 그가 거처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네 종교 단체에서 온 대표자들과 네 사람의 정부의 관리들이 임종이 가까운 것으로 생각되는 그의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대의 죽음이 임박하였으니 이제 과거의 모든 죄과를 뉘우치고 일찍이 우리에게 손해를 주기 위하여 말한 모든 것을 우리 앞에서 취소하라”고 그들은 말하였다. 그 개혁자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시중드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침상에서 일어나, 신앙의 취소를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그처럼 자주 떨게 해주었던 분명하고 큰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너희 탁발승들의 악행을 공개할 것이다”(D’Aubigne, b.17, ch.7).

 

천만 뜻밖에 질책을 받은 승려들은 그만 놀라고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서 급히 나가 버렸다. 위클리프의 말은 성취되었다. 그는 로마를 대항하는 모든 무기 중의 가장 강력한 무기, 곧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을 계몽시키고 교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경을 자기 동포들의 손에 쥐어 주기까지 생명이 연장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업의 완성을 보기까지 여러 가지 큰 장애를 겪었다. 위클리프는 건강이 대단히 좋지 못하므로 자기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불과 몇 년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알았으며, 또한 반드시 반대를 만나게 될 것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허락으로 힘을 얻어서 그는 결코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지금껏 왕성한 지력(智力)과 풍부한 체험 속에서 그의 사업 중의 가장 위대한 사업을 위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하여 보호를 받고 준비하여 왔다. 모든 그리스도교국이 온통 혼란 중에 빠져 있는 그 때에, 이 개혁자는 루터워드의 목사관(牧師館)에서 외부의 폭풍과는 상관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그 사업에 몰두하였다.

 

드디어 사업이 완성되어 최초의 영어 성경이 나오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국에 공개되었다. 개혁자는 이제 감옥이든지 화형 주든지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그는 결코 꺼질 수 없는 빛을 영국 국민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자기의 동포들에게 성경을 줌으로 무지와 죄악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것 이상의 것, 자기의 나라를 해방시키고 향상하도록 이끌기 위하여 전쟁터에서 빛나는 승리를 얻은 것보다 더욱 위대한 일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도 인쇄기가 발명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성경의 부수를 증가시키려면 더디고도 번거로운 수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성경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많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복사하는 일을 자원하여 담당하고자 했다. 그러나 요구되는 만큼의 부수를 공급하기는 어려웠다. 그 중에 돈이 많은 부자들은 성경전서를 사고자 욕망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일부분만을 샀다. 많은 경우에, 여러 가정들이 합하여 성경을 샀다. 그리하여 위클리프의 성경은 많은 사람들의 가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이성(理性)에 호소한 결과, 사람들은 법왕교의 교리에 맹종하던 상태에서 각성하였다.

 

위클리프는 이제 개신교의 명확한 교리,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성경의 절대적인 확실성에 대하여 가르쳤다. 성경을 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전도자들은 이 개혁자의 저서도 전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영국 국민의 약 절반이 이 새 신조를 받아들이게 되리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위클리프의 만년(晩年)의 대 활동

 

성경이 나오게 되자 교회의 당국자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위클리프보다 더욱 강한 것, 곧 그들의 무기도 거의 소용없을 정도의 큰 힘과 대결하게 되었다. 그 당시 영국에는 자국어로 된 성경이 출판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직까지 성경을 금지하는 법령이 생기지 아니하였다. 그런 법령들은 그 후에 제정되어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그러므로 승려들의 반대는 있었을지라도 얼마의 기간 동안 성경이 배포(配布)될 기회가 주어졌다.

 

법왕교의 지도자들은 개혁자의 소리를 침묵시키기 위하여 다시 음모를 꾸몄다. 개혁자는 세 번이나 심문을 받기 위하여 법정에 소환되었으나 방면되었다. 그러나 첫째로 감독들의 종교 회의에서 그의 저서를 이단이라고 선고하고, 그들은 젊은 왕 리챠드 2세를 그들 편으로 끌어들여 누구나 금지된 교리를 지지하는 자는 투옥시킬 것이라는 칙령을 반포하게 하였다.

 

위클리프는 종교 회의로부터 국회에 호소하였으며, 그는 국회에서 두려움 없이 교직 정치를 비난하고, 교회가 시인한 무서운 악폐들을 혁신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법왕 측의 참람과 타락을 폭로하였다. 그의 원수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미 위클리프의 친구들과 지지자들은 부득이 굴복하도록 강요되었다. 그러므로 고립무원(孤立無援)한 늙은 개혁자도 임금과 법왕의 연합된 권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기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대신에 법왕교도들은 자기들이 패배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의회는 위클리프의 감동적인 호소에 감화를 받고, 핍박하는 칙령을 철회시켰다. 그리하여 개혁자는 다시 자유롭게 되었다.

 

그는 세 번째의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국내의 최고 종교 재판소에서 받았다. 이곳은 이단자에게 아무런 유리한 판결이 내릴 수 없는 곳이다. 여기에서 로마교는 최후의 승리를 얻고, 개혁자의 활동은 정지되리라고 법왕교도들은 생각하였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들의 목적을 성취할 수만 있다면 위클리프는 하는 수 없이 자기의 교리를 버리든지 화형의 선고를 받고 법정을 떠나가든지 할 것이었다.

 

그러나 위클리프는 자기의 교리를 철회하지도 않고 숨기지도 않았다. 그는 두려움 없이 자기가 가르치는 바를 주장하고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의 비난을 반박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위치와 자기의 환경을 다 잊어버리고, 그의 청중들을 하나님의 심판 정에 세워 놓고, 그들의 궤변과 기만을 영원한 진리의 저울로 달았다.

 

성령의 권능이 그 법정 안에 충만하였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이상한 힘이 청중들에게 임하였다. 그들은 그 자리를 떠나갈 힘이 없는 듯이 보였다. 개혁자의 말은 마치 하나님의 전통(箭筒)에서 나온 화살처럼 듣는 이들의 마음을 찔렀다. 그를 이단이라고 비난했던 그들의 고소를 그는 설복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이제 그 사람들에게 되돌렸다. 어찌하여 그들이 자기들의 오류를 퍼뜨리고자 하였는가라고 그는 부르짖었다. “이(利)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상품화하고자?”

 

그는 또 마지막으로, “그대들은 누구와 더불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늙은이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대들은 진리, 곧 그대들보다 더욱 강하며 마침내 그대들을 이기고야 말 진리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것이다”(Wylie, b.2, ch.13)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는 법정을 나왔으나 그의 원수들 중에서 한 사람도 그를 막는 자가 없었다.

 

법왕에 대한 최후의 경고

 

위클리프의 사업은 거의 마쳐졌다. 오랫동안 쥐고 있던 진리의 깃발은 곧 그의 손에서 떠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복음을 위하여 증거 할 것이었다. 그 진리는 바로 오류의 왕국의 본거지에서 선포되어야 할 것이었다. 위클리프는 심문을 받기 위하여 너무도 자주 성도들의 피를 앗아간 로마법왕의 재판정에 호출되었다. 그는 자기를 위협하고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그 소환에 응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침 그 때 그는 중풍으로 여행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육성으로는 로마에서 말할 수 없었을지라도 편지로는 말할 수 있었으므로, 그는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자기의 목사관에서 법왕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는 예의바른 언사와 그리스도인적 정신이 나타나 있었으나 법왕청의 허식과 교만을 날카롭게 견책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모든 사람, 특히 로마 주교(법왕)에게 공개하여 주장할 수 있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이 신앙이 건전하고 참된 줄로 믿기 때문에 그는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주장하는 신앙에 동의할 줄로 믿으며, 만일 그 신앙이 잘못된 것이라면 역시 교정하여 줄 줄로 믿는다. 나는 첫째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의 전부라고 믿는다. …로마 감독이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면, 그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복음의 율법에 결속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서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세속적 위엄이나 명예에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분의 태도에 가깝게, 또한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는 점에서 그러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당시의 생애는 가장 빈곤하고, 모든 세속적 권력과 명예에서 떠난 생애였다. 어떤 신실한 사람도 법왕이나 어떤 성인을 따라갈 때, 그들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간 그 점에 있어서만 그를 따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대신에 세속적 명예를 사모함으로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와 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법왕은 자기의 모든 영토와 통치권을 세속적 권력에게 마땅히 넘겨주고, 또한 자기에게 속한 모든 교직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고, 특별히 그분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에 있어서 내게 잘못이 있으면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를 정정(訂正)할 것이며, 만일 필요하다면 죽음이라도 사양치 아니할 것이다. 내 자신의 뜻과 소원대로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로마 감독 앞으로 달려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와 반대로 다른 일이 내게 생기게 하셔서 나로 하여금 사람을 순종하기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도록 가르쳐 주셨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편지를 마쳤다.

 

“우리 하나님께서 법왕 어반 6세의 마음을 감동하사 그가 친히 본을 보여 그의 교직자들과 함께 그 생활과 태도에 있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또한 그들이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쳐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신실히 주님을 따르게 되기를 우리는 기도하는 바이다”(John Foxe, Acts and Monu-ments, vol.3, pp.49, 50). 이와 같이 위클리프는 법왕과 그의 추기경들에게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나타내 주었고 이들이 대표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주님과 그들 자신과의 현저한 차이를 그들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국에 나타내 보여 주었다.

 

위클리프의 신앙과 성경

 

위클리프는 자기가 하나님께 계속해서 충성한다면 자기의 생명이 희생당할 것이라고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왕과 법왕과 감독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그는 늦어도 수개월 후에는 틀림없이 화형에 처하게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순교자의 면류관을 멀리서 찾고 있노라고 말하느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 교만한 주교들에게 전하라. 그리하면 순교는 틀림없이 오고 말 것이다. 살아서 침묵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결단코 안 될 말이다. 탄압하려거든 해보라. 나는 그 일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D’Aubigne, b.17, ch.8).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여전히 당신의 종을 보호하였다. 자기의 온 생애를 통하여 날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담대히 진리를 옹호하고 있는 이 사람은 원수들의 증오의 희생물로 쓰러질 것이 아니었다. 위클리프는 전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지 아니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보호자가 되셨다.

 

바야흐로 그의 원수들이 틀림없이 그를 희생 제물로 삼을 수 있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의 손은 그들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곳으로 그를 옮기셨다. 그는 루터워드에 있는 자기의 교회에서 성찬식을 집례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중풍병으로 쓰러졌는데 그 얼마 후에 사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위클리프에게 그의 사업을 지정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입에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백성들에게 전해지게 하시고자 그의 신변을 지키셨다. 그리하여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위한 기초가 놓일 때까지 그의 생명은 보호되고, 그의 활동은 연장되었다. 위클리프는 암흑시대의 흑암 속에서 나타났다. 그와 같이 개혁 사업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 그 전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침례 요한과 같이 그는 특수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일어난 새 시대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그가 밝혀낸 진리의 체계는 그 후의 개혁자들이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것들은 그 후 백년이 지나서도 미칠 수 없을 만큼 통일성과 완전성이 있었다. 그 기초는 넓고 깊으며, 그 구조는 튼튼하고 완전하므로 그 후에 나타난 사람들이 그것을 재건할 필요가 없었다. 위클리프가 착수한 위대한 운동, 곧 양심과 지성을 해방시켜 주고, 질곡(桎梏)에 속박되어 있던 여러 나라들에게 자유를 준 운동의 근원은 성경이다.

 

14세기 이래 각 시대를 통하여 마치 생명수처럼 흘러내린 축복의 근원은 바로 성경이었다. 위클리프는 단순한 마음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감의 계시요, 믿음과 행실의 완전한 표준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일찍이 로마교회를 거룩하고 절대 무류의 권위를 가진 교회로 여기고, 천여 년 동안에 걸쳐서 확립된 그 교리와 관습을 절대적인 존경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돌아섰다. 이 거룩한 말씀은 그가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자 역설한 권위의 말씀이었다.

 

유일의 참 권위는 법왕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의 완전한 계시인 동시에, 성령께서 성경의 유일한 해석자이므로 모든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하여 스스로 자기의 본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하여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법왕과 로마교회로부터 성경 말씀으로 돌이켰다.

 

위클리프의 인격과 사업

 

위클리프는 가장 위대한 개혁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해박한 지식, 명석한 사고력, 진리를 주장할 때 보여준 확신, 그리고 진리를 옹호하기 위한 담력 등은 그보다 후에 나타난 사람들 중에서도 그와 필적할 사람이 별로 없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지적으로 몽매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시대였지만, 이 최초의 개혁자의 봉사는 생애의 순결, 연구와 활동에 있어서의 근면, 매수되지 않는 청렴, 사업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과 충성 등으로 특징을 이루었다.

 

이와 같은 위클리프의 인격은 성경이 사람을 교육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증이 된다. 과연 성경이 그로 하여금 그러한 인물이 되게 하였다. 계시에 나타난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노력은 모든 기능에 새로움과 활기를 준다. 그것은 마음을 넓혀 주고, 이해력을 예민하게 해주고, 판단력을 성숙하게 해준다.

 

성경 연구는 어떤 연구보다도 사상과 감정과 욕망을 더욱 정화(淨化)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견인불발의 정신과 인내와 용기와 굳센 마음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품성을 세련시켜 주고, 심령을 거룩하게 만들어준다. 성경을 존중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직접 접촉하게 되므로, 어떠한 인간적인 철학이 가져다주는 가장 훌륭한 결과보다 더욱 고상한 원칙은 물론이요, 더욱 강하고 적극적인 지성을 갖춘 인물이 되게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고 말하고 있다.

 

위클리프가 가르친 교리는 그 후에도 얼마 동안 널리 전해졌다. 그를 따르는 자들, 곧 위클리프 교도와 롤라드 교도라고 불리는 무리들은 영국에 복음의 지식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까지도 그것을 가지고 나아갔다. 이제 지도자는 없어졌으나 그 전도자들은 전보다도 더욱 큰 열성으로 일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듣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 중에는 귀족도 있고 왕비도 있었다. 많은 곳에서 사람들의 생활 상태가 현저하게 개혁되었고, 로마교의 우상적 상징은 교회에서 제거되었다. 그러나 무자비한 박해의 폭풍이 성경을 그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곧 몰려왔다.

 

영국의 국왕들은 로마 법왕의 지지를 얻어 자기들의 권세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개혁자들을 희생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아니하였다. 영국 역사상 최초로 복음의 사도들에 대하여 화형의 선고가 내렸다. 순교자가 계속하여 뒤를 이었다. 법률의 보호를 박탈당하고 고문에 시달리는 진리의 옹호자들은 만군의 여호와께 부르짖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그들은 교회의 원수요 국가의 반역자로 누명을 쓰고 추격을 받으면서도 몰래 복음을 전하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빈궁한 자들의 집을 그들의 가장 좋은 은신처로 삼았고, 때때로 굴속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기도 하였다. 격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타락한 종교의 세력을 대항하여 전개한 조용하고, 경건하고, 열렬하고, 꾸준한 반항은 여러 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에 관한 지식을 일부분밖에 알지 못하였다. 마치 사도 시대의 제자들과 같이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세상의 재물을 희생하였다. 다행히 가정에서 살도록 허락 받은 사람들은 추방당한 형제들을 기꺼이 숨겨 주었고, 그들 역시 추방을 당해야 할 경우에는 즐거이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 중에는 박해자들의 분노를 두려워하여 신앙을 희생하여 자유를 얻고, 참회자의 옷을 입고 감옥에서 나와 신앙의 취소를 선언한 자들도 수천 명이 있었다.

 

그러나 감옥과 롤라드탑(塔)에 갇히든지, 심지어는 고문과 화형을 받을지라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두려움 없이 기쁨으로 진리를 위하여 증거 한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빈궁하고 비천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귀족 출신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의 종말 법왕교도들은 위클리프가 살아 있을 동안에 그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몸이 무덤에서 조용히 쉬고 있을 동안에도 그들의 증오심은 충족되지 못하였다. 그가 죽은 지 40여 년 후에 열린 콘스탄스 회의의 결의에 의하여, 그의 유골을 다시 파내어 공중 앞에서 불태우고, 그 재를 그 근처에 흐르고 있는 시냇물에 던져 버렸다.

 

 

그 사실에 대하여 옛날의 한 저술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시냇물은 그 재를 아본 시내로, 아본 시내는 세버언 강으로, 세버언 강은 영국 해협으로, 영국 해협은 대양으로 옮겨 주었다. 그리하여 위클리프의 재는 오늘날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그의 교리를 상징하고 있다”(T.Fuller, Church History of Britain, b.4, sec.2, par.54).

 

그의 원수들은 자신들의 악의에 찬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거의 깨닫지 못하였다. 보헤미아의 얀 후스(John Huss)가 로마교의 많은 오류를 버리고 개혁 사업을 착수한 것은 위클리프의 저서를 통해서였다. 그 두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진리의 씨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뿌려졌다. 그 사업은 보헤미아에서 다른 나라로 확장되어 나갔다. 사람들의 마음은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손이 위대한 종교개혁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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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턴 (아프리카 선교사)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리빙스턴이 오랜 만에 조국인 영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글래스고 대학은 그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는데, 학위 수여식장에 나타난 그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다 손을 입에 대었습니다. 왜냐하면 리빙스턴 박사는 굉장히 미남이었습니다. 그리고 키도 훨씬 크고 몸도 좋았는데 박사 학위를 받으러 나온 리빙스턴은 달랐습니다. 완전히 얼굴이 형편이 없이 늙었습니다. 그리고 몸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원시림에 다니면서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증거 하다가 사자에게 물려서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겪고 그 다음 무서운 아프리카 토속 병에 걸려서 열이 많이 나도 치료할 도리가 없어서 몇 번이나 죽다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리빙스턴이 사람들 앞에서 나는 고향에 찾아왔으나 또다시 내가 있을 곳은 아프리카 오지지 이 영국의 런던에 내 있을 곳이 없다.”고 다시 아프리카로 간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다 놀라고 수근 거렸습니다. 그때 리빙스턴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프리카 어느 곳에 가도 세상 끝 날까지 어느 곳에 가도 나와 같이 계시겠다는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저의 길동무가 되어 주셔서 원시림과 광야를 함께 걸어가 주십니다. 그러니 제게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나와 함께 행하신다는 그 말 자체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말을 안 하면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아요. 오늘날은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해야 돼요.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십니다. 그 말씀 속에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십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같이 하리라

 

이 말씀을 자꾸 외우고 묵상하고 받아들이면 그 말씀 자체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리빙스턴은 항상 예수님이 자기와 같이 계신다고 말을 했고 그 말을 통해서 예수님이 리빙스턴과 같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자가 우글대는 원시림 속에서도 리빙스턴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같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 우리하고도 함께 계십니다.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지금 나와 같이 계십니다. 그 말씀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내 입에 나오는 동안에 내 가슴속에 예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몸에 상처가 나면 약을 부지런히 발라야 합니다. 한 번 바르다가 그만 두면은 도로 덧나지요. 자꾸 약을 계속해서 바르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한번 말하지 말고 자꾸 약을 바르듯이 이 영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치료를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받았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받았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그러면 그 영적인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말씀이 양약이 되어서 낫습니다. 내 심장병은 고침을 받았다. 내 심장병은 예수님이 같이 계신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 심장병이 고침을 받았다. 자꾸 말을 하면 계속 치료가 주어지기 때문에 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는 것을 믿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운동력이 있는데 이 말씀을 자꾸 받아서 우리가 속에 모셔드리면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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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찬송가 425장(217)를 작시한 “폴라드( Pollard)”에 관한 이야기>

 

 

 

 

찬송가 425장(217)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입니다. 이 찬송가를 작시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폴라드( Pollard)”라는 분입니다 그녀는 시카고 지역에 모 사립학교 여 교사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신유 부흥 집회(병 고치는 집회)에 가서 기도를 받고 난후 더 악화가 되었습니다. 신유 부흥사는 이단성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이 악화되어 학교에 가서 가르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중 선교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읽던 중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그 후 성경 공부에 몰두했고 기도 모임에서 자신의 뜻을 결정한 후 함께 기도하고 영혼의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몸의 건강이 회복 되었고 선교사로서 헌신하여 생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폴라드는 은퇴한 이후에 1902년 어느 고요한 밤 한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한 노쇠한 백발의 여인에 의해 드려진 기도가 바로 널리 불려지는 이 찬송의 영감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 백발의 여인은 이 기도에서 축복과 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기도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우리 생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좋사오니 주님의 뜻과 섭리만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직 그녀의 지금까지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구했는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 기도를 폴라드가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예레미야 18장 4-6절의 묵상 했습니다.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 184-6)

 

이 말씀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주제로 그 밤이 밝아오기 전에 이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날도 이 찬송가는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1절 가사입니다.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 분별이 어렵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힘드니 어떻게 살아가려고 합니까?

 

찬송가 431장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합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쌀이 되든지 죽이 되든지 뜻대로 합소서."라고 하는 식으로 삽니다. 모든 것이 될 대로 되라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 분별이 어렵고 혼란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민주적이고 선택의 기회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과거 사회와 현대 사회를 비교해 봅시다. 과거에는 결혼 상대자를 누가 대부분 결정 했습니까? 대부분 부모님들이 결정했습니다. 국가나 사회의 흐름대로 결혼을 했습니다. 가령 양반 집안사람들은 양반 집안사람끼리 했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주인자녀들과 눈이 맞았다가는 죽임을 당하던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 전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택의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부모들의 의사에 따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그러지 않습니다. 사귀든지 상대방을 찾아서 결혼을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결혼을 위해 선택한 서로를 위해 뭐라 말을 못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은 말합니다. "너의 뜻들이 그렇다면 결혼 해야지 어찌 하겠느냐."입니다. 때로는 민주적인 사회는 선택의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에 뜻 분별이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2. 성경에 구체적인 결정이나 지시 사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기도 많이 하고 성경 꼭 보고 하루 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기도하고 시작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성경을 펴서 읽습니다. 기도 하면서 눈 감고 눈뜨자마자 성경을 펼쳐 들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본 성경 이 가롯 유다가 예수님 팔고 목매어 죽은 구절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주신 말씀이니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질것을 믿고 '아멘' 하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하고 성경을 폈습니다. 그랬더니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 말씀은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목매달아 가롯 유다 처럼 죽어야 하는가?

 

도저히 안 되겠다, 또 기도하고 성경을 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의 피땀 흘려 기도하신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 답을 주시는구나'하고 더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뭐라 기도 하셨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면 목매달아 죽어야지요. 성경은 이런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구체적인 결정 사항이나 지시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때를 만나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 분별이 혼란을 일으킬 때 어떻게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까?

 

1. 호기심과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앞일을 해결 하려는 태도는 금물입니다. 왜냐하면 1) 미래를 아는 지식은 때로는 우리를 해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무당이나 신접한자 점쟁이를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 18:9-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현대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교회에서 신자들이나 목사들 가운데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목사 무당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라스베가스에 제법 있다고 합니다. 축복 예언 기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가령 도박으로 돈을 따려는 사람이 목사한테 가서 '축복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헌금 명분으로 돈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통해서 젯팟이 터졌다고 가정 해 봅시다.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가령 복권(라로리)을 샀습니다. 교인으로서 호기심과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앞일을 해결하려고 즉 집안 재정도 어렵고 교회도 어려우니 지금 200만 불 금액에 당첨되기 위해 복권을 이번 한번만 사기로 했습니다. 당첨되면 교회 헌금 백만 불 하고, 반은 집 한 채 사고 등등 뜻을 세웠습니다. 당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호기심으로 요행수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점치는 무당이나 똑같은 일입니다. 만약에 교회 드리는 헌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분명하게 성경이 그 답을 말씀 합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처럼 인색함으로 아니하고, 억지로 아니하고, 헌금 액수와 상관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호기심이나 요행수나 라스베가스의 젯팟으로 복권이 당첨되어 드리는 헌금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 감사 하는 마음으로 헌금은 드릴 수 있을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일상생활에 닥쳐오는 많은 일들은 호기심과 요행수나 이기심으로 앞일을 해결해 보려는 태도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할 수 있도록 생각하게 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성경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해야 합니다. 1. 생각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적인 명상을 해야 합니다. 2. 실천도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으로 성령의 인도로 일어나는 표징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말씀 두 곳만 소개 합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으로 평생토록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실천에 옮겨야 할 말씀입니다.

 

그중 하나가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말씀입니다. 세 가지 원칙은 환경에서 표징을 일으킵니다. 가령 도둑질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 보려 합니다. 먼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분별해 보려고 합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하면서 기도합니까? '오늘 이집 귀한 것 잘 훔치게 하옵소서'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까?

 

가령 도둑이 기도 합니다. '하나님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 알라 신이여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소원입니다. 귀중품 물건은 훔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응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살전 5:16) 말씀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약 4:2)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했습니다. 성경에 기도해서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이유를 말씀합니다. 정욕으로 사용 하기위해 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도둑질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분별해 보려고 합니다. 도둑놈이 도둑질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 노래하면서 기쁨으로 도둑질합니까? 못합니다. 들킬까 봐서 조마조마합니다. 바스락 소리도 못 냅니다. 알람 장치를 부숩니다. 주인이 나타나면 도망갈 준비를 하든지 위협하려고 칼을 들었든지, 물총 아니면 가스총이라도, 새총이라도 준비해 가지고 있습니다. 집을 털고 나온다 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왜요? 주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신고합니다. 인상착의를 말합니다. CCTV 에 촬영된 증거로 인해 잡힐까 봐 기쁨을 잃고 살아갑니다. 도둑놈은 물건을 훔친 후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 기쁨은 “항상 기뻐 할 수” 있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뻐하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말씀 안에서입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빌립보 옥중에서 죄수의 몸이 되어 신체적으로 부자유했지만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살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쁨이 없거나 빼앗겨버린 일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도둑질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분별해 보려고 합니다. 가령 도둑놈이 도둑질한 후 감사할 수 있을까요? '범사에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둑한테 기다리는 것은 잡히면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기로 결정된 자신의 운명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매일 붙잡힐까 봐서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왜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계명에 어긋난 일들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간음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남을 이간질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남을 것을 나쁜 방법으로 빼앗으면 그렇습니다. 왜 염려가 되고 기쁨이 없고 기도도 안 되고 감사가 없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으로 되어진 일들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으로 확신을 주십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평생토록 잊지 말고 (살전 5:16-18) 말씀을 먼저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라고 실천에 옮기기 전에 다시 묵상 하십시오. 집안, 가정에 가훈으로 삼아도 좋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업을 말씀에 근거한 기쁨이 있습니까? 감사가 됩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뜻으로 보셔도 됩니다.

 

세 가지가 다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일을 연기해야 합니다. 포기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를 선택할 때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모든 일에 행동에 옮기기 전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발견하기를 원할 때 세 가지 원칙을 정하십시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세 가지 원칙은 환경의 증거에서 표징을 일으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살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민할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고민하는 동안 주셨던 말씀입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았습니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원어적으로 볼 때 '하나님에 의한 고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허락하신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는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피할 수 없이 직면하는 문제, 즉 '고민' 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도 문제들을 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할 근심이 있을 때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근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어려울 때 말씀에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 말씀 한 것처럼 혼자서 “천부여 의지 손들고 옵니다.” 회개합니다.

 

어려운 이민교회 한 이 오면 손꼽아 기다리고 반가워 헌신적인 마음으로 붙잡아 놓으면 몇 개월도 못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날 때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까?'라고 물어 봅니다. 그때 '주님, 제가 부족합니다' 부족한 것을 회개합니다. 기도하는 동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이 떠나갑니다. 그리고 찬송이 나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그러면 마음에 평안을 얻습니다. 주님의 뜻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강 같은 기쁨으로 일어납니다.

 

요즈음 전 세계가 경제 위기 속에서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개인도, 사업도, 진로도 교회도 모두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데 고민을 안겨주는 살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때로는 이 고민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며 각종 질환을 유발시킵니다. 육신을 극도로 상하게도 합니다. 그래서 고민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가치 있는 고민이 되도록 하려면, 세상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들 내면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을 겪을 때에, 이런 고통이 왜 내게 있을까? 라고 원망하며 고민하기보다는 나는 왜 그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가? 그리고 나는 왜 그 고통에서 만족한 것을 찾지 못하는가? 라고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왜 나는 많이 가지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할까?'라고 고민하기보다는, '왜 나는 많이 가지지 못한 그 곳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또 행복하지 못한 조건에서 행복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힘들다고 고민하기보다, 믿음의 길이 최고이며 기쁨의 것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향하여 ''저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라고 미워하며 고민하기보다 ''왜 나는 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까?' '왜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까?' '왜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없을까?' 라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내가 모욕과 무시를 당해야 하나?' 라고 고민하기보다, '왜 나는 이런 모욕과 무시에 예민해야만 하는가?' '왜 이런 일로 이렇게 민감하고 불쾌해야 하는가?' 라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자랑할 수 없어서, 높아질 수 없어서, 인정받지 못해서 고민치 말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큰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결과에 대한 것이기 보다 원인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의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대한 고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 대한 고민인 것입니다.

 

이제 세상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모든 고민을 하나님의 뜻으로 하는 고민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리하시는 결과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 비추어보면 하나님이 뜻대로 하는 고민은 후회 없게 해주고, 회개의 삶을 만들어 주며, 구원의 삶을 이루어주는 유익한 결과를 맺도록 해줍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어야 하며 하나님이 처리하시는 결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하는 나의 모든 고민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자신에게서 나오는 세상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는 것이 되도록 하십시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 입니다.죄인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 안에 우리 생의 주인이신 주님께 우리 고민의 내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두 내려 놓아야 합니다. 내 가정과 교회의 고민을 들고 있으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성령님이 고민 운데 일하시도록 하십시다.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때 그 고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의 뜻으로 해결되어지는 응답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가치 있는 고민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찬송가 "내 주여 뜻대로"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였던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umolk) 목사님이 지은 찬송입니다. 1618년에 시작된 구라파의 신 구교 전쟁은 1648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30년 동안 구라파를 피로 물들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신구교의 대립은 여전했고, 건물은 폐허가 됐고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1730년 슈몰크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져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백내장으로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넓고 넓은 교구를 심방하며 살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슈몰크 목사님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완전히 불타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잿더미를 파헤치자 그 속에 어린 아들 형제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그때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통곡하여 울면서 드렸던 기도를 훗날 시로 옮겨 만든 찬송이 바로 "내주여 뜻대로"인 것입니다.

 

영어 가사를 그대로 직역하면,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당신의 뜻이 내 뜻이 되게 하소서. 슬픔 중이나 기쁨 중에 당신의 것으로 날 인도하시고, 내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라는 것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내가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하면 그것은 아집이 되고 고집이 되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잘 그럽니다. 그러나 주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려고 하면 위대한 믿음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과 내 뜻, 주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결코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과 뜻이 내 생각이나 뜻보다 천만 배 크고 높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땅에도 주님의 뜻의 저의 삶에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 위에 적어도 60억 이상의 인구가 있다면 60억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뜻은 무엇입니까? 마귀의 뜻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집니다. 오늘부터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애통하며 회개하며 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증표를 확인하십시오.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옵소서."(시 143:10)라고 고백하며 평생 주기도문이 가르치는 삶을 살아가기를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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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성경 인물 중에서 오늘은 모세에 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성경 인물 중에서 모세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록한 분이시지요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구약의 모세 오경

이지요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400년 동안 이방인에게

종살이를 하며 4대 만에 나올 것을 약속하시며 그

약속을 모세를 택하시고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선택하셨을 때 그는 자신은

말을 잘 할 줄도 모르는 자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게 되지요

400년 동안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빼내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팡이와 형 아론을 데리고

애굽왕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는 어떠한 각오를

하였을까요?

모세뿐만 아니라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바로가 10가지 재앙을 당하면서 마지막에 장자의 죽음의 심판을

겪고 비로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

주지요

마지막 재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도 바로와

같이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말씀 앞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으로

그리고 진리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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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야곱 /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한 사람

 

 

 
내 영혼에 불안을 지으시고

내 가느다란 기쁨마저 앗아가신 이여,

당신의 화살이 내 가슴을 뚫고,

나의 평안을 앗아 가셨도다.

아직도 더 가까이 이끄시며,

당신을 떠난 내 모든 발걸음을 뒤집어 엎으시고,

내 손발이 다 잘라질 때까지

계속하여 당신은 나를 치시는도다.

그리고 나는-브니엘의 그이처럼-

내 힘은 절름발이가 되어 일어선다.

이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비열함과 속임수가 벗겨진.

그 때에 나는 당신이 하나님이시며,

모든 징계로 은혜를 주시는 분임을 알리라.

당신께서 또 다른 품으로 가까이 이끌기 위해

칼과 채찍을 아끼지 아니하실 때에.

지나간 과거 속에서 당신의 길을 발견하오니

당신께서 이루신 역사(役事)는 참으로 위대하시도다.

재창조를 위해

살리시고 죽이시며 파괴하시는 영이여

파괴하신 후에는! 내 안에서

당신으로부터 단절케 하는 모든 자취를 제해 주소서.

거룩한 나라에서

당신의 얼굴을 마주 대할 때까지!

-위니프레드 쿡(Winifred A. Cook)
 

하나님께서 야곱을 훈련시키시는 것을 통하여, 사랑받을 수 없는 인간에 대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야곱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끈덕지지만 타협하지 않는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다. 부정하고 야비한 행동이 그의 인생의 가치를 떨어뜨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은 변치 않으시되 결코 그의 죄를 묵인하거나 간과하지 않으셨다. 많은 세월 동안 야곱이 스스로 선택한 길을 추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고, 때문에 야곱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제멋대로 하는 것“이 얼마만한 대가를 치르는가하는 쓰디쓴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그의 이기주의가 그를 징계하는 막대기가 되었다. 마침내 그가 쓴 계략이 그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최종적인 위기와 만나게 한다.

야곱의 삶은 '성도의 견인'보다는 '하나님의 인내'를 예증(例證)해 준다.

하나님의 인내(오래 참으심)가 없이는, 성도의 견인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 나라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게 하시는 당신의 계획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의 은혜로운 훈련을 계속하셨다. 한 가지 방법이 실패하면,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하셨다. 한 세대가 응답하기를 실패하면 참을성 있게 다음 세대와 함께 다시 시작하셨다. 다음 세대들은 우상 숭배로 돌아가 결국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가게 되며, 이때 이후 그들은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과 무익함을 결코 잊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히브리 민족은 우상 숭배를 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은 완성시키고야 만다.

바울은 이 확신을 다음의 말씀에 분명하게 표현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그리스도인의 경험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끈기와 지칠 줄 모르는 인내하심의 증거가 충만해 있다.

프랜시스 톰슨(Francis Thompson)은 야곱이 그러했듯이 수 년 동안 하나님을 떠나 방황했었다. 결국 그는 소망이 없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런던 템즈강 제방의 넝마주의들 틈에서 자고 있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히어 포로가 된 곳은 바로 그 곳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시 「천국의 개」(The Hound of Heaven)에서 그는 자기의 체험을 이야기한다.


밤이고 낮이고 나는 하나님을 떠나 도망하였네.

세월의 아아치 문을 지나 나는 그를 떠나 도망하였지.

그를 떠나

내 마음의 미로 속으로, 눈물 속으로

나는 그를 피해 숨었지.

웃음을 흘리며 내려가

전망이 좋은 언덕으로 나는 도망하였지.

그리고는 거꾸러져 버렸네.

두려움의 거대한 암흑 밑으로

그 곳에서 강한 발걸음이

나를 따라오셨네. 따라오셨네.

 
주관적인 선택

 
만일 우리에게 온 세상에 축복을 줄 나라를 건설할 사람을 선택하는 책임이 맡겨진다면, 아마도 야곱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야곱은 뒤틀어지고 욕심이 많고 교활했다. 야곱은 비열하게도 쌍둥이 형의 곤경을 이용해서 그의 세상에서의 상속권뿐만 아니라 씨족의 족장으로서의 영적 권위까지 도둑질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때, 도량이 크고 마음이 넓은 에서가 명단에서 훨씬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를 공정하게 평가하면 야곱은 유전적으로 별로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의 부모에게서 고귀한 성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창 25:28). 이처럼 자기욕심에만 눈이 어두운 성숙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엄하지 않은 어머니, 리브가의 야곱에 대한 사랑은 파괴적이고 절제하지 못하는 사랑이었다. 이삭이 에서를 사랑했다면,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해서, 다른 아들을 속이는 일에 그를 거들었었던, 자기가 편애하는 아들을 향한 거룩하지 못한 야심에 사로잡혔던 비양심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일을 이루려 했다. 그녀는 그녀의 거짓과 불신을 아들에게 전했다. 그가 처음 그의 형을 속였을 때 그녀는 그의 성공을 기뻐하였다. 그녀의 눈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켰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죄에 대해 비싼 값을 치르었다. 그녀는 그를 떠나 보낸 후 다시는 아들을 만나 보지 못하게 되었다.

아기를 낳기 전에 범상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쌍둥이를 낳게 될 것이며, 누가 나라의 설립자가 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창 25:23). 태 중에서의 싸움은 태어나면서 눈에 보이게 되었는데 야곱이 에서의 발뒷꿈치를 잡았던 것이다(창 25:26). 이것이 그의 이름이 “발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tripper)“, “대신 들어 앉은 사람(supplanter)“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에서는 그의 성품 중 육적인 것을 영적인 것보다 더 중요시하였으며, 자신의 제사장적인 특권을 가볍게 포기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오“(창 25:32).

이와 같이 에서는 그의 생득권을 경시했다.

무어(C. G. Moore)는 “쌍둥이 형제 중 하나는 그 형제가 배고파하는 것을 비열하게 이용해서 장자권을 얻고자 했고, 다른 하나는 소중히 여겨야만 할 것을 그렇게 가볍게 여겨 버리고 말았다. 이제 네 사람 모두를 생각해 보자. 아버지, 어머니, 두형제,그들로부터 무슨 위대하고 복된 것이 나오겠는가?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시지 않는다면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보통 그런 곳이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곳이다. 그는 다른 아무런 가망이 없는 데서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들어가셨고 그의 손을 야곱 위에 얹어 안수하셨다“라고 기록했다.

야곱은 보잘 것 없는 존재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의 약점에 방해받지 아니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소경에 대해 물었었다.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2, 3)고 대답하셨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데 대한 열쇠가 있다. 그는 벌레같은 야곱을 택하셨으나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의 왕자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야곱의 비뚤어진 성격은 가장 연약한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태도와 은혜를 보여주시는 좋은 실례가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도록 강하고 고귀하고 똑똑한 사람들만 택하신다면,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실격이 될 것이다. 바울은 그의 잘 알려진 말씀(고전 1:26-29) 속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된 민족의 조상으로 택하신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도둑질한 것은 애송이 청년의 때가 아니라 성년이 되었을 때이며, 에서를 속여 축복을 받은 때도 성년이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참으로 그는 147세까지 살았으며, 이 불명예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그는 성숙한 장년으로서의 생활 방식이 이미 굳어진 지 오래였다. 심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늦은 시기에 성품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심리학적인 법칙에 제한받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실망할 때조차도 우리에 대해 실망하지 않으신다. 그의 인내는 끝이 없으시며, 그의 자원은 다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의 속성이 호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을 훈련시키시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칭호를 받으시기까지 자신의 낮추신다.

“야곱의 하나님“(시 20:1/사 41:2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하나님의 친구 모세의 하나님.“

이런 칭호는 부적당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기꾼 야곱의 하나님“이라니? 너무도 이상하게 들린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야곱의 이름과 연결시킨다면 자신의 속성에 누를 끼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말 1:3).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두려워 말라“(사41:14).

“야곱의 하나님이 네 피난처이시니“(시 46:7).

하나님께서는 가장 연약하고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사람과 자신을 친밀하게 연결시키기까지 자기를 낮추신다. 벌레보다 더 약하고 무가치한 우리를 선택하셔서 그렇게 하신다. 그러나 무자비하고 하나님의 사랑만을 추구하는 “벌레“가 왕자가 되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권세를 갖게 된다.

 
인간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께서는 낙천주의자이시다.

그는 숨어 있는 고귀함과 가능성을 잘 찾아내신다. 그분은 까다로운 성미를 가진 사람의 하나님이시며, 비뚤어진 인격을 가진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실망하여 포기한 곳에서 시작하기를 좋아하신다. 또한 모든 기질과 성격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계신다. 만일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철저히 근본적으로 처리해 주시기를 그의 손에 맡기기만 한다면, 그의 모든 사랑과 은혜의 자원을 동원하실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이 매력없는 사람 속에서 왕자와 같은 자질을 보실 수 있다.

말라기의 말씀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는 로마서(9:13)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는데, 이 말씀은 성경의 난해 구절 중 하나이며, 표현상으로 볼때는 하나님이 변덕스러우신 것처럼 보인다. 에서는 태어나기 전부터 저주를 받은듯이 보인다.

두 가지 사실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첫째, “미워하였다“는 말이 우리 귀에는 거슬리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말라기와 바울의 글에 사용된 말은 본래 나라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개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곱과 에서 개인이 아니라, 그들의 자손인 이스라엘과 에돔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것은 그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미리 선택하신 것이다(창 25:23).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주권적인 뜻을 발휘하시는 데 있어서 유전이나 장점이 아닌 믿음을 아들이 되는 영원한 원리로 정하셨다. 본래의 뜻을 적용해 볼 때, 「사랑」과 「미워하심」은 우리가 이 주관적인 감정들을 이해하듯이 선택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은 함부로 선택하지 않으시며, 편애에 빠지지도 않으신다. 그 감정적인 용어들은 오히려 나라의 기능과 운명을 의미해 준다. 에돔이 아닌 유다가 역사상 점진적인 계시를 위해 선택되었다“라고 말했다-재미슨, 포셋, 브라운(Jamieson, Faussett and Brown).

그러나 이 말씀을 이차적으로 개인에 적용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시고 에서를 버리신 것은 “변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식별력“이었다. 야곱의 모든 비열함과 이중성 뒤에는 영적인 것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영적인 역량이 있었다. 계속하여 야곱은 불순종했으나 영적 열망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에서의 관대하고 매력적인 외모 뒤에는 영적인 것의 가치에 대한 모멸이 숨어 있었다. 그는 영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것보다 감각적인 욕망의 만족을 더 좋아했다. 야곱은 영적인 가치를 정확하게 느꼈지만, 그는 언제나 그것을 얻기 위해 육신적인 음모에 의지했다.

그의 명백한 약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영적인 열망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신을 끊임없이 추적케 하시고 성품변화 훈련에 대한 기초를 마련하시도록 만들었다. 그의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미미한 믿음의 흐름이 있었다. 캠벨 모르간(G. Campbell Morgan)박사는 야곱의 믿음이 아버지의 축복을 원했으나, 두려움 때문에 책략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그의 것인 장자권을 원했으나, 두려움은 그것을 비열하게 사기적인 수단으로 얻고자 했다.

우리는 이 사실 속에서 자신의 약함과 실패로 침울해 있는 사람들을 위한 큰 위로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우리의 동료 속에 있는 가장 나쁜 점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좋은 점을 찾아 그것을 계발시키신다. 그는 마음의 참 열망을 아시며 그것을 계발시키시기 위해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섯 번 나타나셨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타협하지 않는 자기 자녀의 실책을 바로 잡아주시며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주셨다.

 


불굴의 추적

 

“약탈자“란 뜻의 야곱의 이름 뒤에는 “단호하고도 사정없이 따라가 적을 덮쳐 그를 넘어뜨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 말은 야곱의 생애를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다!그러나 야곱은 그의 적수를 만나 마침내는 그를 얍복강에 “던지신“ 하나님의 추적에 무조건 항복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낙심치 않으시고 참지 않으셨더라면, 야곱은 결코 하나님의 왕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사랑스럽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 그를 벧엘에서 만나 주신지 삼십 년 후 그를 최종적으로 항복시키실 때까지 지치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를 추적하셨다. 그리고 처음 만나주신 곳과 최종적인 항복이 이루어진 곳은 의미 깊게도 같은 장소였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추적하신 것은 다음의 네 가지 사건에 의해 구분지어진다.


첫 번째, 벧엘에서의 사건은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도둑질한 후 일어난다(창27:27-29).

이제 허기가 채워지자, 에서는 그의 쌍둥이 동생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야곱이 도망친 것을 알고, 성이 난 에서는 추격을 했다. 그러는 동안 야곱은 하나님과 처음 만나게 된다. 돌베개를 베고 자면서, 그는 꿈 속에서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창 28:12), 그러나 사다리 위에는 하나님 당신이 계셔서 자격이 없는 자녀에게 은혜의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전혀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번영과 보호의 절대적인 약속과 함께 그의 자손을 인해 세상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는 확신을 주셨다(창 28:14, 15). 두려움에 가득찬 야곱이 외쳤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야곱이 서원하여... “(창 28:17-22).

그리고 그 서원을 잊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야곱의 밧단 아람에서의 생활에서 우리는 기도나 경건의 증거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고질적인 물질주의자였다. 그의 생각에는 가축이 최고의 것이었다. 그는 우상을 섬기지 않았으나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다. 벧엘에서의 경험은 단지 희미한 추억이었다. 종종 볼 수 있듯이, 물질적인 번영은 영적인 번영을 질식시킨다. 가축의 수가 늘면서 하나님을 소홀히 하게 되는 수가 종종 있다.


두 번째, 브니엘 사건이 일어났다.

이제 야곱은 백 세나 되었다. 이십 년 동안-어떤 성경 학자는 사십 년이라고 말한다-그는 삼촌 라반을 섬겼다. 비양심적인 야곱을 훌륭한 도구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행하셨던 훈련을 주목한다면 큰 도움이 된다. 그 방법은 그보다 더 까다롭고 욕심이 많고 비뚤어진 사람에게 그를 붙이시는 것이었다. 야곱은 그처럼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다른 사람을 통해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가장 가증한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방법을 쓰고 계신다.이 기간 내내 야곱은 거짓과 속임을 당하며 지냈다. 잔재주 싸움에서 그는 밀고 밀리는 각축전을 벌였다. 그러나 결국 그가 변화된 것은 바로 이 고된 훈련 덕택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 맞지 않는 가정 환경이나 회사 조건이나 뜻이 맞지 않는 동료에 대해 이와 유사하게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즐거운 생활 조건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선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유익이 된다면 현재의 고통을 아끼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강하고 신실하시며, 우리가 연약할 때, 그대로 두시는 사랑이 아님을 우리는 감사해야만 한다. 우리가 판단해 볼 때, 만일 야곱이 훌륭하고 온당한 사람에게 붙여졌다면 그것은 야곱에게 얼마나 끔찍한 재난이 되었겠는가? 우리는 “훌륭한 사람들“의 영향력과 그들이 우리를 위해 하는 일에 대해 대단히 과대평가를 한다. 대개 그 반대 종류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와 늘 함께하시며 그 가운데서 그를 붙들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라반을 금하셔서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창31:7, 24, 2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라반“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하신다. 만일 라반이 자기 뜻대로 했더라면, 야곱은 빈털털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이 부지런히 일한 대가를 받도록 해 주셨다.하나님께서 해방시켜 주실 때까지 야곱이 이 호된 훈련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은 것은 그의 성품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좋지 않은 환경에 안달을 하며 그것을 면하고자 애를 쓰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훈련 중에 지름길을 택하고자 한다면 대단한 손실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어려운 기간을 필요이상 허락지 않으심을 확신해야 한다.우리가 까다로운 사람들과 삶의 어려운 일들에 대해 바르게 반응할 때, 우리의 인격이 온전해지고 경험이 풍부해진다는 교훈을 주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훈련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야곱은 에서가 사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그를 맞으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창 32:6, 7). 죄의식으로 인한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에서의 나타남은, 과거의 죄는 항상 우리에게 심판으로 나타난다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제 야곱의 죄는 죄를 범했을 때보다 더 무섭게 보인다. 야곱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보호해 주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주장하는 대신에(창 28:15), 겁먹은 기도를 한 후 육신적인 방법을 의지했다. 그는 아직도 이전과 같은 기교를 가지고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음모를 꾸미려하였다.

이번에 그의 기교는 거짓말보다는 상대방을 달래는 것이었다. 그는 형을 달래기 위해 주의하여 잘 준비한 선물로 가축떼를 앞세워 출발시킨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 32:24).

이것은 한 사람 역사의 전환기를 이루는 결정적인 밤이었다. 씨름을 시작한 것은 야곱이 아니고 하나님이었지만, 야곱은 놀랄 만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자기가 자기 삶을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며 무사히 어려움을 넘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그는 항상 그래 왔다. 그러나 하늘의 씨름꾼의 끈기있는 압박이 계속되었다. 축복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저항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야곱은 강한 씨름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수단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양심적이지 못했으나, 여태까지 판결은 언제나 그의 편이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상대와 맞붙어 싸우게 되었다. 하나님은 야곱이 굴복하려 들지 않자 그를 평생동안 다리를 절게 만들었다(창 32:25, 26). 이 싸움은 야곱에게 영원한 표식을 남겼다. 왜 씨름꾼(하나님)은 더 일찍 이렇게 하시지 않으셨을까? 그것은 야곱이 자발적으로 먼저 항복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어지자 야곱은 그의 상대를 붙잡고 외쳤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그가 이르기를 원하셨던 바로 그 지점은 아니지만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내내 준비해 오셨던 위치에 이르도록 자신을 조종하는데에 성공했다! 홀로 싸우다 실패한 것을 통해서 야곱은 승리했던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제임스 맥콩키(James H. McConkey)씨는 그의 의사 친구와 함께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사님,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환도뼈는 인체에서 가장 강한 부분입니다. 말이 똑바로 잡아당겨도 사지를 떼어 낼수는 없습니다. 환도뼈를 휘게 했을 때만 떼어 낼 수 있지요.“

그러므로 순식간에 야곱은 몸의 중심을 잃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충만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적인 삶이 끝나야만 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있는 영적인 원리이다.

이 사건에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는 그의 삶의 죄와 수치를 직면해야 했다. 그의 이름이 마치 맷돌처럼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 사기꾼, 협잡꾼, 야바위꾼...그는 그것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2:27).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회개하며 그가 대답했다. “야곱이니이다“ 찬탈자 사기꾼! 이 한 마디 말 속에 실패하는 생애의 본질이 집약되어 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근거가 된 이 고백을 한 뒤 그는 축복의 길에 서게 되었다. 그가 더 큰 축복의 언약을 받은 것도 브니엘에서였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그러나 그는 이긴 것이 아니라 항복하지 않았던가? 그는 항복함으로 이겼던 것이다.하나님께서는 그의 성품의 완악함을 깨뜨리시는 데 성공하셨다.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호 12:4).

당신이 침묵하셔도 소용이 없으며,

내 환도를 치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뼈가 위골된다 하여도

당신을 내 품에서 놓지 않으리.

씨름을 하며 나는 당신을 가지 못하게 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을 알며,

당신이 누구신 줄을 알 때까지.
 

세 번째, 세겜에서의 사건이 뒤따른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시게도 야곱의 옛 이름과 옛 수치를 제거해 주셨으므로, 야곱은 물론 그의 새 이름에 맞게 살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의 타고난 의심과 술책은 여간해서는 없어지기 어려웠다.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는 다시 한 번 그의 형을 속이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겜을 향하여 장막을 쳤다(창 33:13-18). 소돔에서 유사한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그의 친척 롯처럼 그는 그의 거짓과 불신앙에 대해 값비싼 값을 치루었다(창 34:30).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에 술책을 써서 곤궁을 벗어나려 했기 때문에, 비극이 그의 가족을 삼켜 버리게 되었다. 뒤따르는 이야기는 강간과 살인과 두려움의 이야기이다. 야곱은 서원을 깨뜨리고 헌신을 망각한 것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처음 만나 주신 지 삼십 년이 흘렀다. 그의 행동을 볼 때 그처럼 완악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것이 마땅하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며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덕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한번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확신을 주시려 하셨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 35:1).
 

네 번째, 두 번째 벧엘의 사건이 그의 생애의 전환점이 되었다.

드디어 사랑의 아버지의 인내하시는 징계가 그 목적을 달성했다. 야곱은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가족들을 서둘러 모아 벧엘로 올라갔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여행을 했다.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 35:5).

부끄럽게도 그가 무시했었던 그 하나님께서 그의 죄의 대가가 그를 덮치는 것을 막아 주셨다. 벧엘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발견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창 35:9).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축복하시는 일에 결코 낙심이 없으시며 자녀들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끝없는 자원을 가지고 계시다.

다시 한 번 야곱은 그가 완고해서 방해했었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들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창 35:10).

이제 야곱은 그의 새 이름의 특권에 합당하게 살았고 다시는 술책을 꾸미고 사기를 하는 옛날의 생활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훈련은 효력이 있어서 벌레와 같은 야곱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나란히 함께 믿음의 사람들의 대열에 끼게 되는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히 11:21).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이 세대나 다른 세대나 사람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단지 시험의 사건이 다를 뿐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부심, 야심, 돈, 이성 문제(異性問題), 그들의 이상(理想)에 다다르지 못하는 등 시험을 당하여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종종 옛날과 똑같은 죄가 되살아나 힘을 발하여 그들을 쓰러뜨린다. 똑같은 비극적인 성격의 결함이 일생 동안 마치 경찰견처럼 그들을 뒤쫓는다. 잇따른 패배로 인해 소망이 마비되고 만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귀는 미래가 과거보다 결코 더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의 메시지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이 대표적인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복음을 말씀하고 계시다. 유전의 법칙이 최고의 법칙이 아니다. 심리학의 법칙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다. 야곱의 하나님은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그리스도인에게 계속 기회를 주시는 뛰어난 하나님이시다. 두번째-혹은 스물 두 번째-기회가 반드시 과거의 실패로 인한 현재의 결과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그 실패조차도 새로운 승리를 위한 디딤돌이 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것도 낭비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심지어 실패조차도,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야곱에 대한 최상의 교훈은 어떠한 실패라도 종국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기질,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도 희망을 가지신다. 어떠한 과거의 실패도 그 사람의 가능성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붙드시고 나면, 그를 축복하시겠다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실망이 없이 끝까지 그를 추적하신다. 그분은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야곱을 처리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하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실패했다고 물리치셨더라면, 오순절의 위대한 설교사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쓰레기더미에서 들으셔서 그 실패를 통해 더 광범위하고 열매 맺는 사역을 창조하심으로써 마귀에게 역습을 가하신다. 아무리 연약하고 흔들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귀히 보신다.
 

오스왈드 샌더스 「충분히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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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던 사람 (The person who talked to God face to face)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기와의 교제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단지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만 교제를 허락하시고 자격을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누리는 이 영적인 그룹에 속했다. 그는 한 번 이상을 산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며 사십 일을 지냈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과 친밀한 삶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완전을 향한“ 긴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보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빚으시는 손길 아래서 그의 성품이 변화되어 간 것을 더듬어 볼 때, 그를 영적인 거인으로 만든 것은 바로 그의 믿음이었다.

그의 생애는 사십 년간씩 세 시기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사십 년-애굽 궁전에서 왕자로 지냄

 

-혈통

많은 사람들이 위대해진 비결을 찾아 보면 그들의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므람과 요게벳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그 후에 모세를 다루실 수 있게 하였다. 참으로, 이 두 노예의 믿음은 세계 역사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히 11:23).

그들의 믿음은 왕의 진노를 무릅쓰게 했고, 그들의 사랑은 왕의 잔인한 명령을 교묘히 피하는 방법을 궁리해 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에 영광을 주시고 그들의 사랑에 보답해 주셨다. 그 결과로 모세는 경건한 가정과 히브리종교의 혜택을 받았고, 이것은 후에 그가 애굽에서 교육받은 데서 오는 해로운 요소를 중화시키는 것 이상의 작용을 했다. 그 가정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배웠다. 그의 부모로부터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배웠다. 거룩한 환경과 주변의 경건한 분위기는 그의 성격 발달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그들로부터 두려움이 없는 용기를 배웠다. 그들의 믿음은 왕의 진노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부모의 용기가 아들 속에 도덕적인 용기를 낳았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히 11:27). 믿음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그의 어린 시절은 하나님의 통치적인 섭리에 대한 놀랄 만한 본보기를 보여 준다. 그를 삼켜 버릴 바로 그 강이 그를 죽음에서 건졌다. 그를 구해 준 사람은 얄궂게도 바로 바로왕의 딸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지혜로 아들이 안전히 보호를 받게 되었다.그녀는 온 세상의 소망이 갈대상자 속에서 나일 강을 떠내려 가고 있다고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혈통을 통치하신다.

 


-환경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훈련장을 사치스럽고 육욕에 빠지기 쉬운 바로의 궁전으로 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삶의 환경을 지배하시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기계는 다름 아닌 영혼을 부드럽게 구부리기 위한 것.

푹신한 침대와 풍성한 음식이 광야에서의 험란한 방랑 생활을 위해 이상적인 훈련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며, 도덕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음모로 가득 차 있는 궁전은 경건한 인격 계발에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훈련시키실 때에, 언제나 그를 고립시키고 격리시키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강인한 성품을 계발시키시기 위해 그에게 유혹과 환란의 강풍(强風)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고립이라기보다는 분리의 방법이다. 우리가 만일 종교적인 훈련을 위해 그를 보낸다면 영적으로 조금치도 유익한 영향을 받을 수 없는 궁전으로 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도구가 될 사람을 훈련시키신 곳은 바로 궁중생활의 시련의 불 속에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환경을 통치하신다.

 


-교육

기이하게도, 바로의 명령이 모세가 애굽의 옥스포드 또는 하버드에서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스데반이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모세가 받은 교육과 훈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 7:22).

학자로는, 그는 애굽의 과학과 지혜에 통달하게 되었다. 정치가로서는, 그는 독특한 웅변 능력을 갖고 있었다. 군인으로서는, 그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요세푸스(Josephus)는 이야기한다. 전설에 의하면 애굽 군대가 그의 지휘 아래 대단한 승리를 여러 번 얻었다고 한다. 이 전설이 근거가 있다면, 그의 조직력과 큰무리를 다루는 기술이 설명되어진다. 그의 군사 훈련 가운데는 훈련, 인내와 빠른 결정 등이 그의 교과 과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애굽의 궁정은 바로에게 항복한 시리아의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온 속국의 왕자들을 위해 관례상 교육 시설을 제공했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교육은 매우 진보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교육을 통해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라운 지적능력과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남김없이 하나님께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하실 수 있다. 지혜로운 자 가운데 택함 받은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으나, 세상은 모세와 바울에게 굉장한 빚을 지고 있다.

미국 최고 재판소의 배석 판사인 브류어(Hon. D. J. Brewer)씨는 모세를 입법자로 보며 다음과 같이 썼다.

“시내산 꼭대기에서 여호와의 손에서 십계명을 받은 그는 어떤 면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독특한 민족의 법전이 되어 온 법 체계를 만드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 법전은 오늘날 놀랄 만한 문명 사회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세를 인류의 가장 위대한 입법자 옆에 나란히 둔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육을 통치하신다.

 


-포기

사람은 자기의 출생과 환경을 선택할 수 없으나, 자기의 이력을 택하는 일에 있어서는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조만간에 사람은 두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인생의 분수령에 도달하게 된다-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부합한 것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남은 생애를 하나님이 없는 비참함 가운데에서 지내게 된다.

모세는 그가 장성하여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판단내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히브리서 11장에 요약되어 있으며, 이 부분을 “위대한 거절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great refusal)이라고 불러왔다. 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백성의 곤경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이기적으로 바로의 딸의 아들로서의 특권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아니면 노예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할 것인가? 화려함과 권세와 영광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과 낮은 신분과 오명을 택할 것인가? 그는 죄의 쾌락이 가장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며, 저울추는 그가 자기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의 반대쪽으로 무겁게 기울어져 있을 나이였다. 세상 권세와 영화의 유혹은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히는 현실이었다. 영원한 것의 가망성과 보상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믿음이 아니고는 만져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중대한 결정의 요소가 네 개의 명사로 표현되어 있다. 「고려」(esteeming/히11:24-28) 이 말은 “계산함, 이것과 저것을 저울로 재어 봄“의 뜻이다. 모세는 조심스럽게 상황의 이해, 득실을 재어 보았다. 그의 선택은 성급하고 황급한 결정이 아닌 침착하고 신중한 선택이었다. 만일 그가 현재의 생활을 포기한다면 그의 빛나는 미래는 풍전등화격이 되고 황폐한 미래가 있게 될 것이다.

그의 “여김“은 「선택」(choosing)하고 「거절」(refusing/히 11:24, 25)하는 데로 나아갔다. 그가 위대한 거절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의 믿음이었다. 그가 바로 궁전에서의 그의 지위를 포기하고, 오늘날 우리도 조금 알 수 있는 애굽의 보화와 쾌락에 등을 돌리는 것은 외적으로 볼 때 그에게 전혀 유익이 없고 모든 것을 잃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선택을 통하여 자신이 이스라엘의 고난과 소망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는 세계 역사상 가장 장엄하고 획기적인 “거절“을 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버림」(forsaking/히 11:27)을 가능하게 했다. 애굽의 부와 쾌락과 영화와 권세를 버리고 빈곤과 고난과 노예 상태와 경멸당하는 것과 정처없이 방황하는 것을 택했다. 대단한 포기였으나 영광스러운 믿음의 승리였다. 그는 애굽의 번쩍거리는 세상 영화와 메시야에 대한 쇠함이 없는 영광을 견주어 보고, 결코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였다.

고통받는 동포들에 대한 새로운 동정심이 그의 마음에 용솟음쳐서 그는 그들의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일격을 가했다(출 2:11, 12).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의분이 끓어 올라 애굽 사람을 죽여 황급히 모래에 묻었다. 그러나 그의 동포들은 그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고 모세는 당황하게 된다. 그가 실패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믿음의 행동과는 거리가 먼, 충동적인 격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영적인 목적은 육신적인 방법으로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배워야 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좌우로 살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중재는 미성숙한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향해 너무 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학교에서 더 배워야 할 과정이 있었다. 그는 아직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는“(히 11:34) 사람들 중에 끼지 못했다. 어쨌든, 그를 그의 생애의 두 번째 기간으로 안내한 것은 바로 이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행동이었다.

 

두 번째 사십 년-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

 

궁전에서 보낸 세월들은 그로 하여금 지적인 훈련에 있어서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기회를 제공했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두 번째 교육의 장이 시작되어야만 했다. 고독은 종종 위대한 사람을 만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모세의 광야에서의 시간들은 그의 영혼을 단련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다했다. 그가 애굽의 대학에서 배운 과정은 그가 상류 가운데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켰다. 광야의 대학에서 배운 과정은 그가 구원자가 될 노예 국가로 자신을 낮출수 있도록 자격을 갖추게 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성화되고 실패를 통해 겸손케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를 준비시키시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신다.

그분의 훈련 방법은 완벽하다. 온 세상을 위한 법을 제정하게 될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든지 간에 광범위하고도 풍부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기를 연구해 보면, 보통 도덕적인 결단이 내려진 후에는 정해진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은둔의 기간 또는 때로는 거절당하는 기간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열 두 살 때에 그분이 소명받으신 것(눅 2:42)을 말씀하신 후 공생애가 시작되기까지는 거의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었다. 바울은 하나님과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고독한 가운데 수 년을 보냈다(갈 1:18).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질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훈련 기간 동안 연단 받으면서 안달을 하거나 지름길을 택하려고 애를 써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다.그것은 불가피하게도 막다른 골목인 것이 입증될 것이다.

광야 기간의 시험이 북경의 왕 밍따오(Wang Ming-tao)박사에게 왔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그가 만일 타협하지 않는다면 중공에서 투옥되어 고난을 받게 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기를 소원했었는데, 하나님의 부르심과 훈련으로 그것이 좌절됐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고 외국에 나가 훈련을 계속 받아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훈련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몇 달 후 하나님께서는 나를 집에 가두시고 마루를 쓸고 밥을 짓고 설거지하고 옷을 수선하는 등의 집안 허드렛 일을 하게 하셨다. 처음에 나는 불행을 느끼며 나를 이와 같이 대하시는 그분께 불평했었다. 그러나 조금 뒤에 나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비천한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삼 년이 지난 뒤나는 이런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야망뿐만 아니라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포부까지도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말단의 지위도 원치 않았다. 대신에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평생동안 비천한 가사 일만 돌보라고 하시더라도 기꺼이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의 모든 헛된 소망과 야심을 포기했다. 이 일들을 회상해 볼 때, 듣기에는 어렵지 않게 들리지만, 그 당시 그것은 많은 눈물과 투쟁과 어마어마한 희생의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이러한 호된 시련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문을 열어 주셨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사역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서, 나는 그 엄격한 훈련이 없었더라면 높은 명성에 대한 욕심과 대단한 직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사역이 내게 위험한 것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왕 밍따오 박사는 성경의 각 책에 대한 주석을 출판하기도 했다.

 

 


-소명

광야에 있으면서(출 3:1), 모세는 가장 깊은 교훈을 배웠다. 그때까지 그는 행동가였었지만 이 훈련 기간 동안 그는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 「무엇을 하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시골 생활이 어떤 이상한 현상에 의해 중단되게 된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된다. 모세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기이한 광경을 보려고 그 곳으로 가 보았다. 그가 다시 한 번 인생의 분수령에 서 있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한 채, 삶의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 타지 않고 빛을 내는 떨기나무의 광경(출 3:2)은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들어서 알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경험에 의한 지식이 된 것은 바로 이곳에서였다. “보잘 것 없었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잡아 채신“ 곳이 바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였다.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조용히 명상하는 가운데 보낸 세월들이 그를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시켜 온 것이었다. 불타는 떨기나무의 상징은 명백하다. 불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의 상징으로 자주 나타난다. 이 평범한 떨기 나무가 그것을 밝혀주는 불꽃으로 비상한 것이 되었다. 나무 자체는 좋지 않은 나무였지만, 하나님의 임재의 불에 변화되고 빛을 내어 아름답게 되었다.

모세는 그의 과거가 많은 특권을 가졌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평범한 떨기나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에게 어떤 위대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결과이어야 했다. 떨기나무가 주변의 많은 나무들과 다르게 된 것은 나무의 특성 때문이 아니었고 그 안에서 빛나는 불꽃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필수적인 자격이 신을 벗고 얼굴을 가리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우리 중 대부분이 신을 벗고 겸손히 예배하기보다는 우리의 신을 신은 채 바쁘게 활동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의식하여 얼굴을 가리우기보다는 세상의 주목을 받기 위해 얼굴을 드는 경향이 훨씬 더 많다. 이것들이 모세가 광야에서 배웠던 가장 중요한 교훈들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불타오른

한 사람의 생애를 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느꼈노라.

연약한 흙으로 빚어진 인간 그릇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것을 보았노라.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나 큰 소리로 외쳤노라.

나의 아버지시여,

나에게 불타오르는 삶의 축복을 주시어

당신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옵소서.

 


모세는 그가 40년 동안 회피해 오던 부르심을 분명하게 들었다. 그가 그렇게 황급히 도망쳐 온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르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모세는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교훈을 너무나 철저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어려워했다. 이전에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던 애굽의 왕자가 일을 하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변명하는 대화를 깊이 다룬 내용이 뒤이어 나온다. 그는 위신(출3:11), 메시지(출 3:13), 권위(출 4:1), 웅변술(출 4:10), 특별한 순응력(출 4:13), 성공(출 5:23) 등이 부족했다. 이보다 더 감동을 주는 부적격의 이유를 열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의식에서 나온 이러한 주저는 매우 겸손하고 경건하게 들린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얻는 대신에, 하나님의 노를 샀다(출 4:14). 하나님의 종이 자신이 부적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책임을 회피할 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노를 사게 된다. 안심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14)]과 자신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으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으로 모세는 모든 신령한 자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했다. 이전에, 그는 너무 성급하고 빨랐었다. 이제 그는 너무 느리고 주저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축복하시고자 하시는 그의 계획이 그의 종의 변덕과 기분에 방해받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종들은 기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움직이며 신속하게 순종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의 대변자로 세우시고 연약한 아론을 임명하셨는데 아론이 후에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세 번째 사십 년-지도자와 입법자로서 광야에서

 

그의 시험의 기간은 끝이 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해방자로 나타났다. 그가 최고의 업적을 이룬 것이 팔십 세가 넘어서였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스포트라이트가 젊은이들에게 비쳐질 때에,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결실과 중요한 사역이 아직도 미래에 남아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나이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이 되고 격려가 된다. 연륜과 숨겨진 훈련이 성숙한 판단과 다른 이들과 쉽사리 공감을 하게 되는 유익을 낳는다.

-지도력

지도자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만이 지도력을 구사할 때 치루어야 하는 대가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 모세에게는 백성들의 문제를 판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해석해 주는 힘든 일이 주어졌다.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섰는지라“(출 18:13).

이것은 그의 모든 신경을 소모하며 심지어는 그의 육체의 여력을 모두 짜내는 것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사람이 남을 구해 주면서 동시에 자신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언제나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지도력만큼 큰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은 없다.여자가 믿음으로 주님의 겉옷 가를 만졌을 때 주님의 능력이 그녀에게 미쳤다(마9:20).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와서 모세로 하여금 그러한 끊임없는 노동의 결과를 직면하게 해 주었다.

“그대가...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 18:18).

이드로의 충고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셨을 텐데 모세가 그 충고를 따랐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충고도 또한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라는 사실을 믿고, 그 충고에 따라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위임하고 그 일을 수행할 수있도록 그들을 훈련시키는 최고의 지도력을 구사한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뒤에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종종 하나님께서 맡기셨다기보다는 사람에 의해 떠맡겨진 무거운 짐과 책임을 맡고 있어서, 결국은 몸과 신경이 그 압박을 견뎌낼 수 없게된다. 그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개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대로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면, 그들의 기독교신앙이 그 결과를 면제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지도력을 구사할 때 치루어야 하는 대가를 더 명백히 알고 있는 이드로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이것을 명하셨다면 그대가 할 수 있으리라“(출18:23/사역).

이것이 이드로의 확신이었다. 다른 이들이 우리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떠맡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심지어 그들이 우리보다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일을 양도해야만 한다. 이것은 완전주의자에게 어려운 시험이다. 모세는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나, 만일 그가 계속 했더라면 오래 가지 않아서 그는 단지 기억 속의 인물로 되었을지 모른다. 진정한 선교사들에게 시험이 되는 일 중에 하나가 기꺼이 책임을 본토의 그리스도인에게 양도하고, 그들이 시련과 실수를 통해 경험을 얻는 동안 도울 준비를 하고 곁에 지켜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책임을 발전시킬 때 우리 동료들은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훈련하고 사용하게 된다.

 


-시험들

모세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받았던 많은 시험들 중에서, 다섯 가지를 선택했다.

 

첫째, 타협에 대한 시험이었다.

그것은 허락을 받기 위해 조건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협하여 우리의 기준을 낮추는 것을 허락할 때 그것은 언제나 후퇴를 가져오게 된다. 모세와 바로와의 논쟁은 타협으로 이끄는 점차적인 유혹에 대한 고전적인 본보기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그러나 애굽을 떠나지는 말라“(출 8:25).

이것이 왕의 첫 번째 제안이었다.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제안이 있다.

“종교를 무시하지는 말라. 하지만 좁아져서 세상을 아주 끊어버릴 필요는 없다.“

다음에 그가 제한한 것은 “너희가 희생을 드리기 위해 애굽에서 나갈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출 8:28)는 것이었다.

 

둘째, 다음에는 육친의 정에 대한 시험이었다.

“너희 남정만 가고 여자와 어린 것들은 남겨 두라“(출 10:11).

“가야만 한다면 가라. 그러나 너무 지나쳐서 가족들로 하여금 너의 유행에 뒤떨어진 기준을 따르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세상적인 출세를 방해하지 말라.“

그의 마지막 시도는 욕심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출 10:24).

“너의 종교적인 확신이 너의 사업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

분명한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모세는 이 도전들을 간파했다. 양과 소떼들을 두고 떠난다면 그들은 빈털털이가 된 것이며, 하나님께 희생으로 드릴 것이 없게 된다. 그의 답변은 명쾌하고 단호했다.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나이다“(출 10:26).

 

셋째, 홍해에 이르렀을 때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시험에 부딪혔다.한편으로는 건널 수 없는 바알스본 지역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통과하기가 불가능한 모래 사막이 있었다. 그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고, 뒤에는 무적의 바로 군대가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철저하게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택한 사람에게 보기 드문 경험은 아니다.

이 예기치 못했던, 좌절이 되는 경험으로 백성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출 14:11).

그들이 불평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는 그 날 놀라운 명령을 내리는데, 이것은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에게는 단지 환상처럼 보였다(출14:13). 두려워 할 모든 이유가 있는 때에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가만히 있을지니라.“

바로가 급하게 그들을 뒤따라 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모세는 불가능한 상황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합격하였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그 성공이 영광스럽게 입증되었다. 그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그들은 하나님의 근원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기에게로 밀착시켜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보여 주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중국에서 사역하면서 많은 불가능한 상황들에 직면했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하나님을 위해 착수하는 위대한 사역의 대부분에는 불가능한 단계, 어려운 단계, 성취되는 단계의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넷째, 모세도 야심의 시험을 당했었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지자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가 그들을 향해 불타올랐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

이미 그들의 불신앙과 불평이 모세에게 쓰라린 시련인 것이 증명이 되었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전진을 위한 놀라운 기회를 제시하고 계셨다.

제안을 하신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시험은 더욱 어려웠다. 모세의 답변에서 그의 사심이 없는 고귀한 성품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의 행복에 있었다. 대담하고 집요하게 하나님을 붙잡고 배교한 나라에 대한 심판을 돌리기 위해 중보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나대로 하게 하라“는 기도에 있어서 모세의 능력에 대한 대단한 칭찬이었다.

 

다섯째, 질투에 대한 시험이었다.

성이 난 여호수아가 말했다.

“엘닷과 메닷이 예언하더이다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민 11:28).

모세가 자기를 보좌하기 위해서 택했던 사람 중에 두 사람이 갑자기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들은 그가 모세의 대권을 침해하고 그의 권위에 도전한 것에 대해 시기했다. 그러나 모세의 너그러운 성품에는 질투나 시기가 자리를 잡을 곳이 없었다. 그는 이 일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었다. 모세는 말한다.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과 교제를 갖고 있는 영적 지도자는 그의 위신이나 대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매우 온유한“ 모세는 사소한 사리 사욕의 편견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 시험들을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인 대단한 도덕적인 힘과 영적인 힘과 진실한 인간성을 입증했다.

 

비극과 승리

 

그가 신실하고 이타적으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는 어둡고 슬프게 끝이 났다. 그가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은 얼핏 생각할 때 가벼운 실패에 대해 너무 엄중한 형벌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건을 분석해 볼 때 그것은 그렇게 사소한 실패가 아닌 것이 나타난다.

그의 실패는 불신앙에서 나온 것이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민 20:12).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나타냈다. 그의 불신앙은 불순종을 가져와서 “그는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다“(시 106:33). 마음은 언제나 입술로 나타난다. 그의 행동은 자기 절제의 부족에서 온 결과였다.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며 두 번 치라“고 하시지 않고 “명하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행동은 그의 불신앙을 표현해 준다. 명백하고 분명한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의 죄를 더 엄중하게 다루시는데, 특히 그들의 공적인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될 때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되리라는 사실에 몹시 실망한 모세는 하나님께 그 말씀을 돌이켜 주실 것을 세 번 간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 3:25, 26)는 것이었다. 죄는 용서받았으나 죄에 대한 벌은 그대로 남았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끝은 영광스러운 결과가 되며 깊은 절망은 기쁜 운명으로 끝이 난다. 가나안의 변화 산상에서, 잠시 예수님의 권세와 영광이 드러났을 때,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엘리야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모세였다. 그러면 그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했다“(눅 9:31).

그들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죄의 노예된 데서 해방시키셔서 구속받은 무리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거룩한 구속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받았다.

모세는 마음에 소원하던 것을 받았다.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오직 잠시 동안이었고 그는 장차 올 영광을 미리 맛보게 되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며, 그것도 다름아닌 영광의 주님과 함께 들어갔다.

전에는 밟아 보지도 못했던 산 위에서

영광에 둘러싸여

우리의 생명을 구해 주실 주님의 고난에 대해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아들과 더불어 이야기했네.

우리 모두의 경험에는 모세의 경험과 같은 의미가 없는가? 우리의 가장 큰 소망과 포부가 늘 이 세상에서 성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저건너에는 성취의 땅이 있다.항상 이 세상에서 온전한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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