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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바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

 

늘 기도하기를 피하여 왔던 내가

열심히 그리고 두려워하며 구했소

나의 모든 배반과 그 수치를 가르쳐 주시고,

오-사랑하시는 분이시여,

나 때문에 입은 상처를 내게 보이소서!

오-당신은 용서하시나이다.

그러나 당신의 모든 사하심으로

내 결백을 다시 새롭게 할 수는 없나이다!

오-그리스도여! 당신은 나를 위하여 죽으셔서

내 죄를 사하셨으나

고통을 제하신 것은 아니옵니다.

오-당신들에게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면!

오-나는 내가 본 것만을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내가 본 그것을 당신이 볼 수 있도록.

오-주님,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실패도 주저도 아니하렵니다.

그것을 구하고, 열망하기만 하렵니다.

제단 숯불을 내 입술 위에 얹으사,

나를 변케 하소서.

속히, 그리고 영원히-

내게 기도한 이상의 깨우침을 주셔서,

갸날픈 나의 노력에 은혜를 더하사

매여 있는 영혼들에게 오늘 오순절을 허락하소서.

-마이어스(F. W. H. Meyers)

 

어느 견지에서 보든지 간에, 사도 바울을 날카롭게 분석하면 할수록 그의 모습은 점점 더 위대하게 나타난다. 선택된 하나님의 그릇(행 9:15)으로서, 바울의 생애는 무한한 솜씨와 지혜로 이루어졌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로 비유한다면 중국의 북경에서 맹자와 공자를 인용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영국으로 치자면, 기가 막힌 신학을 논하며 옥스포드에서 그것을 강의할 수 있는 사람, 러시아에서는 소련 과학 학술회(Soviet Academy of Science)에서 자기 주장을 옹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바울은 그 당대에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토저(A. W. Tozer) 박사는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며, 세계 사상 가장 그 이력이 놀라운 사람이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라. 나는 그가 한 분야에서 이룬 업적을 생각해 볼때, 어떻게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는가에 대해 기이하게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한 분야 이상 전공할 수 없으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흡수할 정도의 위대한 인물로 보인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모두 뛰어난 것이었다. 로마 감옥에서 처형될 때까지 그는 그러했다.

교회에 대해 가장 공격적이고 강력한 적이며 가장 가혹한 박해자인 그를 택하여 그가 파괴하려고 하던 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도, 심오한 신학자, 설득력있는 변론가, 지칠 줄 모르는 선교사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배경

 

그의 부모는 베냐민 족속으로서, 유명한 조상 사울왕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그는 아버지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에 바울루스(Paulus)라는 이름이 덧붙여졌다. 훌륭한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의 부친은 매우 엄격하게 율법의 모든 의식을 지키고자 했으며, 그를 바리새인의 훌륭한 전통에 따라 세심하게 그를 훈련시키고자 했다(빌 3:4-8). 그 가정은 다소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보아 매우 유복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거의 전 세계적인 언어인 헬라어 외에도, 팔레스타인의 아람어도 사용했다. 훌륭한 집안의 다른 소년들처럼,바울도 알리시안(Alician) 염소의 털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배웠다. 바울은 다소의 시민권을 상속받았다.

약 15세쯤 되었을 때에 그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게 되었다. 그는 주도적인 학문의 도시였던 고향 다소에서 이미 학문적 분위기에 젖어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위대한 일곱 명의 율법 박사 중 한 사람인 가말리엘(행 22:3) 문하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 위대한 랍비 가말리엘은 담대히 “율법의 미“라고 불리우는 사람으로, 고매한 인격과 박식한 학문으로 유명했다. 그에게서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율법의 엄한 규율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행 22:5).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또 신임을 받았던 것을 볼 때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는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순교자들을 정죄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의 예리한 정신력은 학문에서 동료들을 능가하게 했다. 그는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던 자“(갈 1:14)였다고 간증했다.

그의 서신 중에 나타난 자서전적인 이야기에서 바울은 개종 이전의 자신을 매우 자기 확신적이며 내세를 믿고 청결한 생활과 율법을 준수하고 존경할 만하고, 하나님 앞에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결코 탕자였던 일이 없으며, 정죄함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 평가할 수 있었으며, 자기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패한 일이 없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지나친 열심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역사의 페이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말해버리고자 한 노력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이와 같이 회심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완전성을 굳게 믿고 있었고 그의 신앙이 타당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한 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복잡다단한 사람이었다. 사도들은 각기 어떤 한가지 뛰어난 장점이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그는 아마도 교회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극단주의자였고, 안드레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런데 바울은 그 두 가지르 다 가지고 있었다. 즉 베드로처럼 모험주의자이면서 안드레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는 원칙에 있어서는 보수주의적이었으나 방법에 있어서는 급진적이었다. 원칙이 걸려 있을 때에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으나(갈 2:5), 방법론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전 9:22).

 

회심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회심을 교회사상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보시고 성령의 영감에 의해 그 사건을 세 번이나 상세하게 보충적인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셨다. 이 획기적인 사건에 대해 가장 완벽하게 연구한 사람 중의 하나는 리틀톤(Lyttelton)경인데, 그는 의회의 의원으로서 영국의 모든 정치적 토론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내각에서 재무성 장관을 지냈던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가이기도 했다.

그와 그의 친구인 변호사 길버트 웨스트(Gilbert West)는 성경은 사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기를 폭로하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리틀톤경은 바울의 회심을, 웨스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택하여 비판하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완전한 편견에서 각자가 맡은 분야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긴 세월에 걸친 연구 결과, 그들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뒤집어 엎으려는 그 노력을 통해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멜도(F. J. Meldau)는 말하기를 그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사기를 폭로하게 된 것이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에 서로를 축하했다고 이야기한다. 리틀톤은 그가 펴낸 논문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울의 회심과 사도직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기독교신앙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을 충분히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그의 논문이 굉장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사무엘 죤스톤(Samuel Johnston)박사는 그것은 “불신앙이 그럴 듯한 답변을 날조하는 것이 불가능한“ 논문이라고 단언하였다.리틀톤경은 그 경우에 있어서 모든 가능성을 남김없이 연구하여 네 가지 명제를 세웠다.

바울은 거짓인 것을 알고 또한 그것을 말하는 사기꾼이거나,

너무 과열된 상상으로 인한 열광자이거나,

다른 사람의 사기에 속았거나,

그가 선포하는 회심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따라서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인 경우다.

성경의 기록을 가지고 그는 바울이 사기꾼이 아님을 논증하였다. 어떤 동기가 이 새로운 종파를 몹시도 증오하는 다메섹 도상에 있던 그를 돌이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였던 것일까? 동기는 없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부와 명예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 그는 권력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의 생애에는 자기 추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동기는 다른 열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서신을 보면 가장 엄격한 도덕성이 숨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증오와 멸시와 박해를 받게 되는 일이었다. 과연 그는 자신이 사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기뻐하며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것을 감수하였겠는가?

그것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무익한 사기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리틀톤은 그 이론을 자체적으로 모순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울이 아그립바왕에게 자신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가 진실인 것을 알지 않느냐고 호소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행 26:16).

“이것은 매우 뚜렷한 증거이다. 그 사실이 유명하다는 것과 재판석에 앉아 자기를 재판하고 있는 왕을 향하여 담대하게 자기 증인이 될 것을 부탁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한 증거이다.“

만일 회심에 대한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라면 아나니아가 어떻게 다메섹에 있는 자기의 적을 만나러 갈 수 있었겠는가? 이와 같은 논증을 거쳐, 리틀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바울은 사기꾼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회심에 대해 꾸며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심과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인 헌신 후에 아라비아에서의 격리 기간이 뒤따라왔다(갈 1:17).

 


고든(S. D. Gordon)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를 열망하신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모든 사람은 다 아라비아나 대학에서 광야의 훈련이라는 과정을 밟았다. 요셉과 모세, 엘리야, 밥티스마 요한, 바울, 번연, 모리슨, 져드슨,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 자신도 육신으로 계시는 동안 그러하셨다. 이들은 우수한 졸업자 중에 몇 명일 뿐이다. 그러나 등록금이 매우 비싸고, 그 과정이 극히 어려우며, 훈련은 너무 엄격하므로 많은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탈락하고 만다. 그 현저한 결과는 넓은 시야와 강한 담력과 예리한 시각과 통찰력 등이다. 철저한 하나님 신뢰와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것과 어린 아이같은 단순함, 따뜻한 동정심과 깊은 겸손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가장 최고의 것은 인내로서, 이것은 가장 진귀한 특성으로, 가장 하나님을 닮는 것이요, 가장 어렵고 긴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훈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을 만난지 3년 만에 거룩한 성으로 가서(갈 1:8), 베드로와 처음 교제를 갖고, 랍비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고자 애를 썼으나, 그 희망은 쓰디쓴 좌절로 돌아가고 말았다(행 22:17-20). 그 다음 몇 해 동안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명확치가 않다. 그는 분명히 시리아와 길리기아에서 수 년을 설교하며 지냈을 것이다(갈 1:21). 이러한 복음 사업을 위한 준비 기간은 안디옥교회에서의 일 년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끝난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한다(행 11:25, 26/13:1-4).

 

특성

 

바울을 복합적인 사람으로 만든 몇 가지 특성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성실성/ 구약의 명령인 “너는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실(완전)하라“(신 18:13)는 말씀은 바울 안에서 명료하게 예증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에도,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박해를 받을 때에도 똑같이 성실하였다. 그가 슬프게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가 의식적으로 불성실한 일은 없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고전 4:4).

성실은 자기를 드러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열심/ 그는 그가 착수한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는 예절의 모든 열심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았다. 이제는 성령님에 의해 새로운 통로로 인도되어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의 범주에 들어왔다. 빌립보서 3장 16절에 나오는 “핍박“(persecute)이라는 말은 빌립보서 3장 14절의 “좇아 가노라“와 같은 말이다.

결단/ 야전 사령관인 몽고메리(Montgomery) 경의 지도자로서의 필수적인 자질 일곱중의 하나가 분명한 결단력이다. 이것은 확실히 이 사도의 뛰어난 특징이었다. 예수님 앞에 완전히 엎드려질 때에도, 그는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질문을 하였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진심으로 하는 이 질문 가운데 그는 이미 절대적인 순종과 충성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의 단호한 성품은 망설이는 것을 몰랐다. 임무를 알면 바로 행했다.

겸손/ 바울은 위대한 회개에서 나오는 겸손으로 살았고, 그 겸손은 점점 깊어갔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 15:9).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그러나 캠벨 모간이 말한 것처럼, 거짓 겸손이 없는 것보다 더 분명한 겸손의 증거는 없다. 그의 사도직과 사역에 대해 도전받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특권과 업적을 자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도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그는 모순된 자신을 보이지 않았다.용기/ 그는 놀라울 정도로 헬라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이상적인 마음의 균형을 드러내주었다. 위험을 찾거나 무모하게 거기 뛰어들지 않은 반면에, 주님의 일이 걸려 있기만 하면 한 순간도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위기와 위험과 반대로부터 조그마한 움추림도 없었다. 그의 도덕적 용기는 육체적 용기와 조화를 이루었다. 그의 서신들은 그가 얼마나 충성스럽게 인사 문제와 교회의 어려움을 가지고, 어지러운 상황 가운데서 두려움없이 온유하게 처리했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훈계나 책망을 해서 자신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피하려고 일들을 태만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는 아니었다(고전 2:3/고후 7:5). 그러나 그는 두려움에서 일어나 승리하는 법을 배웠다.

너그러움/ 좁고 답답한 사람 사울에서 가장 아량이 많고 관대한 사람 바울로 바뀐 변화는 회심의 기적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은 그의 마음을 넓혔을 뿐아니라 그의 마음을 크게 하고 시야를 확대시켜 주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 사랑의 넓이를 점점 더 많이 반사시켰다. 다른 이의 성공에 대한 그의 순수한 기쁨이 그가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그는 도량있고 인내심이 있다고 해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타협하지 않았으며, 위대한 베드로가 관계되어 있을 때조차도 그러했다(갈 2:11).

독립심/ 독립심은 소년에게는 파괴를 가져오나 훈련되고 성장한 사람에게는 위대한 자산이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3, 4).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그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 깊이 고려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이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여 함이라“(고후 8:21).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갈 1:10)라고 묻지만 또한 이렇게 말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되“(고전 10:33).

이 말들은 서로 모순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기에게 청지기 직분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았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기독교 사역의 독소인 개인주의와 무책임한 독립을 벗어날 수있었다. 그의 독립에 있어서 바울은 다른 이들의 양심적인 거리낌을 조심스럽게 존중하였던 것이다(고후 4:2).

친밀함/ 바울은 비이기적인 우정의 천재였다. 많은 다른 위대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고립된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을 사로잡고 열정적인 사랑과 충성을 받는 독특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와 디모데와의 우정은 나이 든 사람과 청년사이의 우정의 모범이 된다. 사랑받는 의원 누가와의 우정은 비슷한 나이와 취향의 사람들끼리의 우정의 좋은 예가 된다. 그는 사교적인 사람이었으며 친구들과 떨어져 있을 때는 철저하게 외로움을 느낀 사람이었다. 요한 마가에 대한 문제로 바나바와 결렬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불일치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가 「발작」(paroxysm)이란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언제나 바나바를 충심으로 생각하였으며, 그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그를 칭찬하였다. 그들 서로의 사랑이 시험을 이겨냈다. 이러한 우정의 역량이 바울이 그리스도인 지도자를 재생산해 낸 능력의 주요한 요인이었다.

감사/ 그의 서신은 자기가 받은 친절과 베풀어 준 호의에 대한 뜨거운 감사가 숨쉬고 있다. 그는 결코 “감사“ 편지를 쓰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칭찬에 후했으며 동정심이 많고 행동은 사려깊었다. 그의 서신의 어조를 볼 때, 세월이 지나갈수록 이러한 자질들이 점점더 두드러져 갔다.

형제 자매의 사랑을 얻었으니

빠른 세상에서나, 땅 속에 묻혀서나,

보라,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흠없는 하나님의 가족, 주님께서도 나를 기다리시네.

영혼에 대한 열정/ 마이어스(F. W. H. Meyers)는 그의 위대한 시에서 바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위대한 영혼에 대한 부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설교자

 

종종 전할 말씀이 내게 임하면

환상은 떠나가고 진실이 드러나네.

사막이나 무리나 성읍이나 강이나

밝은 낙원의 공기 속에 녹아들고

영혼처럼 나는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도다.

정복자가 되어야 할 묶인 자들, 왕이 되어야 할 노예들을

공허한 경이 속에 그들의 한 가지 소망을 들으며,

슬프게 보이는 것들에만 만족하고 있는.

견딜 수 없는 갈망의 용솟음 속에

트럼펫 소리처럼 내 전신을 흔들고

오-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죽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위해 죽으리.

그들 모두를 위해 바쳐져서!

 


만일 설교를 그 결과에 따라 평가한다면, 바울이야말로 설교자의 왕이었다. 그는 디모데에게 한 그의 말에 대한 바로 그 본보기였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그의 설교는 공공 강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웅변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말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 2:1).

그는 호언장담을 하거나 자기 확신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그는 세상의 궤변에 의지하지 않았다.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고전 2:4).

그는 오직 성령만 의지하였고 “성령과 그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설교하였다.그의 설교 방법은 경우에 따라 다양했다.

때로는 논쟁적이기도 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느니라“(행 9:22).

그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여 그들의 이성을 만족시켰다. 그는 늘 사색과 기도로 분명한 확신을 얻었고 어떤 논쟁도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지적인 겁장이가 아니었고, 그의 신앙에 대한 도전에 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 지당하다고 믿었으므로, 그것을 증명하였다.

-아덴에서: “회당에서는... 날마다... 변론하니“(행 17:17).

-고린도에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행 17:4).

그러나 그는 단지 이기기 위해서 논쟁을 좋아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사람이나 청중을 잃는 희생을 치루어 가면서까지 논쟁을 이기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많은 반대자들을 감동시켰으며, 아덴에서는 몇몇 철학자들까지 감동시켰다.

동시에 그의 설교는 설득력이 있었으며, 간청과 호소가 넘쳤다.

그는 단지 사실과 논쟁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앎으로 사람을 권하노니“(고후 5:11).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 18:4).

다가올 심판에 대한 믿음이 그의 호소에 긴박감을 더해 주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한없이 좋으시기만 한 분이 아니었고, 죄를 묵인하실 수 없으시며 온세계에서 죄를 말살시키셔야만 하는 분이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오도록 설득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또 어떤 때는 그의 설교는 교훈적이어서, 청중들의 특별한 욕구를 채워 주었다.

그는 설교가인 동시에 교사였다. 그는 3년 동안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쳤던 것이다(행 19:9). 그는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살면서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행 18:11) 지냈었다. 사람들은 텅빈 머리로는 믿을 수도 자랄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해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데 투신했다. 그는 종종 가르침의 결론을 내리면서 질문을 던지는 교육 방법을 사용하였다.그의 다양한 접근 방법에서 그의 융통성을 볼 수 있다.

고정된 방법이 없었다. 그는 청중에 따라 메시지를 적절하게 전했다. 그는 로마통치자들이나, 헬라 선생들이나, 아시아의 관원이나 히브리 율법사들에게나 능숙하게 전했다. 그는 회당의 유대인들에게나, 아크로폴리스의 헬라 철학자나 루스드라의 이교도 군중이나 베스도 앞에서 법정의 회의 때에나 자신을 쉽게 적응시켰다.

그의 설교의 어조는 그의 말을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이었다.

“내가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행 20:31)은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흔치 않은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눈물없는 기독교 신앙의 저주“라는 이름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계의 신학 체계가 그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주님께서 아직 미발달의 형태로 주신 진리를 하나님의 영감 아래서, 체계적인 신학과 철학과, “모든 기독교 운동에 답하는“ 윤리로 발전시켰다.

 

기도의 사람

 

기도만큼 그 사람의 영적 생활의 질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은 없다. 그의 서신 가운데 나타나는 꾸밈이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바울의 기도에 우리는 감사해야만 한다. 곳곳에서 기도가 그의 영적 생활에 보조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이었던 것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놀라운 사실은 바울은 어느 곳에서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기도가 없는 심령 때문에 슬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기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실패 때문에 자신을 책망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기도의 확신을 빼앗아가는 정죄감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어떤 형식적인 형태를 따르지는 않았으나 결코 흐트러지거나부주의하지도 않았다.

그는 어디에서도 기도의 정당성을 설명하거나 옹호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를 그리스도인의 타고난 태도요, 영적 생활의 정상적인 표현으로 생각했다. 그의 기도는 때로는 조용하고 명상적이었고, 때로는 타오르는 열정으로 하늘까지 불타 올랐다. 그의 기도는 감사로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가 그의 서신 가운데서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그의 설교보다는 기도에서였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기도는 “계속 되풀이된다“는 의미에서 끊이지 않았다.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롬 1:9/고전 1:4/엡 1:15, 16/골 1:3/살전 1:3).

이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에게는 모든 일이 찬양과 기도의 제목이었다. 또 그것은 사심이 없었다. 그의 기도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에 관한 것이었다. 중보 기도는 그의 영적 경험의 활력소였다. 회심자들과 그가 세운 교회를 위한 그의 기도는 모든 세대의 본이 된다. 그 기도들은 그가 그들의 성장과 발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지 나타내 준다. 골로새서 2장 1절에서 3절까지의 그의 기도의 간구는 새신자들과 새로이 세워진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요약하고 있다.

그의 기도는 꿈꾸는 몽상이 아닌, 분투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 특성을 가장 생생하고 강한 모습의 언어로 사용하여 그리고 있으며, 사람이 일상적인 노동을 하듯 지칠 때까지 수고하면서, 상을 얻기 위하여 경기장에서 다투는 운동 선수처럼, 생명을 걸고 싸우는 군사처럼 가장 꾸밈없이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응답을 크게 확신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응답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이 그의 기세를 조금도 꺾지 못했다. 끊임없이 초자연의 영역에 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기도하면서,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중재를 기대했다. 기도가 부적당한 환경이란 없었다.

어쨌든 바울은 자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열망하였다. 그는 교회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것을 권면했다. 그는 새로 회심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요청하고 있다(살전 5:25).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후 1:11).

그는 자기를 위한 그들의 기도를 예의상 추가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자기 사역에 결정적인 요소로 보았다.

“이것이 너희 간구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빌 1:9).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엡 6:19), 전도할 문이 열리도록(골 4:3), 또 구원을 위하여(갈 1:4) 기도해 주기를 바랬다.

바울의 기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으며, 그 정신은 겸손하고 경건하며, 형식면에서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으며, 표현에 있어서는 열렬하고 확신에 가득차 있다.

다음 장에서는 선교사의 본으로서의 바울을 다루고자 한다.

 

 

 

 

바울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

 

바울이 갖고 있었던 로마 시민권은 오늘날 기독교 선교사들이 선교 사업 가운데 겪는 두 가지 어려움을 면제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치외법권이 없었다. 그리고 외국 땅이 없었다. 바울이 가는 곳은 어디나 그의 정부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가서 외국의 사법권에 순종해야 하는 외국인으로 일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 제국의 어디에서나 자유로웠다. 그가 빌립보나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호소했을 때, 그는 외국 나라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실제적으로는 모두 다 국내 선교 사역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선교 사역은 자기 나라 국기 아래서 이루어졌다.

두 번째로는, 바울은 자기 문화권으로 갔다는 점이다. 그가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와 거리가 없었다. 기독교는 19세기 동안 동서를 멀리 떼어 놓았다. 확실히 동서는 서로 떨어져 있고 선교사들은 다양한 습관, 생활방식, 소비 규모, 사상, 전통에 있어서 큰 간격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우리들처럼 그런 간격을 뛰어 넘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기와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많은 집단들에게 동료 시민으로 갔다. 하나로 통일된 제국 안에서는 오늘날의 선교사들이 직면하는 문제점들, 즉 자립 문제, 선교사와 자국 교회와의 관계, 선교자금의 사용 등의 문제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 선교사는 이러한 문제가 아닌 그들 자체의 어려움을 안고 사역을 하였다.

-스피어(R. E. Speer)

 


이 그러하며, 그의 모습은 2,000년간 점점 더 높이 우뚝 세워지고 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그의 선교적 열심의 뿌리가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이론도 있다.

맥기퍼트(McGiffert)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회심 전부터 바울은 랍비뿐만 아니라 선교사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것은 자기생애를 참된 의를 전파하는 데 헌신하기 위해서였으며, 의가 발전되는 것을 막는 모든 것과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율법을 실천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모든 것을 타도하기 위해서였다“(행 22:3/빌 3:5-6).

그의 회심은 이러한 선교적 열정을 없애기보다는 그 열정을 더욱 강화시키고 그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첫 번째 기독교 선교사인 바울의 가르침과 모범은 모든 세대를 위한 성공적인 사역의 원리를 세워 놓았다. 그는 세상의 어느 선교사보다도 하나님의 패턴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되고 독특한 자질을 갖추고 있던 그리스도의 도구였다. 다른 선교사들은 한 대륙에 복음의 문을 열어 놓았으나, 바울은 온 세상에 열어 놓았다.

 

소명

 

그의 소명은 매우 독특하고 분명한 것이어서 잘못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이에 대해 증거하였다.

“주께서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행 22:21).

이 악명높은 핍박자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맞아 들인다는 것이 아나니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운 일이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16).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가 평생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받아야 할 훈련에 대해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의 소명이 그를 선교사로 만든 것이 아닌 반면에, 소명은 그의 선교적 열정의 방향을 명확하게 해 주었다. 그는 이제 바리새인의 선교사가 아닌 그리스도의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충성은 율법이 아닌 자기를 사로잡으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바쳐졌다. 점차적으로 그는 이 부르심이 자기 삶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목적이 아니라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의 절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점진적인 계획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행 13:46/ 18:6/ 22:18-21/ 26:16-18).

 

훈련

 

바울은 종교적, 지적으로 우월한 독특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가장 쓸모있게 사용받기 위해서는, 그 영혼의 열심이 꺼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 불타오르는 영혼이 단련을 받아야만 했다. 이것을 위해 물러나 고독한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의 생애에 변혁이 급작스럽고 완벽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의 사고를 재조정하고 신학을 정립할 시간이 필요했다.

스피어(Robert E. Speer)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역은 스릴이 있는 것이었으나 그는 새로운 사역 가운데 즉시 뛰어들지 않았다. 그는 물러나 오랫동안 조용히 묵상 가운데 있었다. 핍박의 뜨거운 흥분이 그가 냉정을 잃도록 하지는 못했고, 그는 지혜롭고 고요한 하나님의 영에 인도되어 물러가 내적인 준비를 하였다. 따라서 그가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에는 남의 것을 빌려온 것이 아닌, 독창적이고, 하나님께 받은 신선한 자기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영적 학교에서의 이 특별 훈련은 아라비아에서 지낸 3년 내지는 그 이상의 기간이었다(갈 1:17-18). 무한히 한적한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복음을 가지고 나갈 자기 사자를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선교사 후보자들에게는 항상 그들의 조급한 열정에는 지루한 예비 훈련을 단축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러나 초기의 훈련을 충성스럽게 받을 때에 더 큰 기회에의 엄숙한 위임을 위해 준비가 될 수 있다. 바울은 사역을 위해 더 넓은 지역으로 떠나기에 앞서 자기 고향 다소에 가서 자신이 사역자임을 입증했다(행 11:25).

 

야망

 

바울이 영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사정없이 자신을 몰아치는 일들이 있었다. 그는 중생하기 전의 야망과는 정반대가 되는 이 새로운 야심에 대해 세 번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의 그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 그리스도인들을 근절시키고 교회의 영향력을 뿌리뽑으려는 것이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며“(행 9:1).

이 야심은 그가 하늘의 환상에 사로잡히기까지, 새로운 정복지로 그를 몰아 넣었다.

그의 야심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야심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의 왕국의 발전속에서 새로운 중심을 찾았다. 바울은 항상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힘을 다하여 새로운 목표를 향해 분투하였다. 이제 그는 자기가 근절시키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영적 축복을 가져다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라“(롬 1:11)고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의 야심의 특징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어떠한 고난이나 사역도 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그는 이 야심을 갖고 충성스럽게 사역하였다.

그의 야심은 행동면에서 볼 때 냉정하고 근면하고 자립적이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살전 4:11, 12).

그는 항상 자기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였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바라는 것이 생업의 의무를 면제해 주거나 부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훈계하였다. 그는 경건한 게으름뱅이가 될 시간이 없었다.

그의 야심을 업적면에서 여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5:20, 21).

바울은 예민한 영적 폐쇄 공포증으로 고통받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는 전진을 향한 만족할 줄 모르는 정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울타리 안에 있고자 하지 않았다. 그가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21)하신 부르심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럴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임무에 충실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국경선을 모르는 세계 시민으로서 끝없는 비젼을 가지고 나라들을 넘나들었다. 필요를 채워주어야겠다는 것이 그에게는 억제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고린도로, 로마로, 스페인(서바나)으로 가장 멀리 있는 로마 제국의 경계와 알려진 세계를 다 돌아다녔다.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서바나로 가리라“(롬 15:24, 28).

이것은 다른데서와 마찬가지로 오늘 세대의 교회에 대한 본이 된다. 오늘날의 교회는 마땅히 모든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 복음을 전할 야심을 가져야 한다. 이 세상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케 하는 것만큼 고상한 목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와 유사한 야심이 모든 위대한 선교사의 상상과 마음을 불태워 왔다.

 


무언가 숨겨져 있다. 가서 그것을 찾으라.

멀리 가서 찾아 보라.

무엇인가 잃어 버려진 그 먼 곳에 가서.

잃어버린 바 되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라!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 백성이 준비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감추어 놓으셨으나

그 때에 주께서 나를 전파자로 택하셨고

나는 그것을 찾았노라.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것이라.

-키플링(Kipling)

 


바울의 야심은 본질적으로 헌신적인 것이었으며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그는 그 자신이 사욕이 없는 사랑에 대한 그의 가르침에 대한 가장 좋은 실례였다. 바울의 전통을 따라서 헨리 마틴(Henry Martyn)은 “탐욕이나 야심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를 위해 온전한 번제로 드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불태우기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동기

 

이러한 불타오르는 야심은 오직 가장 강력한 동기에 의해 점화될 수 있었는데, 바울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그의 선교적 노력을 자극시켰던 요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가장 강한 요소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끄는 힘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반항적인 마음을 깨뜨려 사로잡으셨던 사랑이 그가 육체밖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그 때까지 그를 사로잡으셨다. 바로 이것이 그로 비할데 없는 수고와 고난을 감당하도록 용기를 북돋우었다.

그리고 또한 피할 수 없는 의무감도 있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바울은 자기가 발견한 것을 나누고자 하는 진정한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모두를 포용하는 의무감이 모든 인종적인 장애와 문화적 차이를 뛰어 넘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목적 안에 포함이 되며 모두가 구원을 받을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느꼈다. 사회적 지위, 부와 빈곤, 문명이 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는 그의 빚을 갚아야만 했다.

 

유리한 입장

 

헬라 도시에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세계 선교사로서 독특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로마인의 실용성, 헬라인의 융통성, 히브리인의 강인성 등 세 민족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로마 시민권은 오늘날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당하는 압력을 면제시켜 주었다. 로마시민에게는 외국땅 같은 것이 없었다. 치외법권이라는 곤란한 문제가 결코 제기되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나라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제국은 모두 같은 문화권이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는 없었다. 기록되어 있는 세번의 경우에 그는 자기의 로마 시민권에 대해 하나님을 송축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행 16:37/25:10/27:24).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바울은 유대인의 복잡한 입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을 그들의 경전을 가지고 논박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행 22:3)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율법 지식과 학문을 논란할 수 없었다. 그는 또한 그 당시의 철학 체계에도 능통하였기 때문에 그 추종자들을 그들의 이론에 근거하여 논박할 수 있었다.

그가 소년 시절에 배운 장막을 만드는 일이 생계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교회들에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롭게 권면하고 책망까지도 할 수 있었다. 즉 종종 재정 원조에서 오게 되는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불리한 조건들

 

이러한 장점들이 그의 선교 사역에 크게 도움이 되었던 반면에, 바울은 몇 가지 심한 핸디캡으로 괴로워하였다. 그는 자신과 때로는 동역자들을 위해, 종종 밤낮으로 일해야 했다. 놀라운 일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가 효과적인 선교 사역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주 설교할 마땅한 장소조차도 없었다. 말썽꾸러기로 회당에서 바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는 동역자들의 배반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바나바, 후메내오, 빌레도, 부겔로, 허모게네 등의 일이다. 쓰디쓴 경험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딤후 1:15).

그는 그를 따라다니며 사역을 방해하려고 하는 거짓 선생들과 율법가들의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은 그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그의 사도직에 도전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택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방어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그의 회심자들이 항상 견고했던 것은 아니었다. 육체적인 고난은 일상적인 경험처럼 보였다. 지치고 고통을 당하고 배고프고 목마르며 춥고 벌거벗으며 매를 맞고 옥에 갇히며 돌에 맞고 배가 파선을 당하며 땅에서와 바다에서 위험을 당하는 것은 선교사로서의 체험의 한 부분이었다(고후 11:23-28).

이러한 곤경과 고난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본보기가 된다. 그는 수동적으로 그것들을 견디어 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것들을 사랑하였다(고후 11:30). 그는 그것들을 순전한 악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겸손케 하는 도구로 여겼다(고후 12:7). 그것들은 그에게 은혜의 통로였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제거하시기보다는, 그것들을 슬기롭게 견디어 내기에 충분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고후 12:9). 그것들조차도 자랑과 기쁨의 제목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인도하심

 

그가 회심하는 즉시, 하나님의 선교 사역으로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역은 그가 안디옥 교회에서 여러 해 동안 사역을 한 후에야 시작되었다. 그 교회는 여러 인종의 지도자가 있는 세계주의적인 교회였다. 지도자들이 기도하고 금식하는 동안 성령께서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

바울은 자기가 받은 부르심이 그가 협력하고 있는 교회에 확인되고, 그들이 그 부르심을 확인해 줄 때까지 선교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교회 지도자들의 협조적인 지도자 또한 바울이 받은 개인적인 인도하심을 확인시켜 주었다. 안디옥 교회는 이와 같이 다른 교회들이 다투어 따를만한 좋은 본을 보여 주었다. 선교사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그가 협력하고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인준을 받는다는 것은 교회와 선교사 모두에게 대단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바울이 교회가 파송한 자기보다 더 경험이 많은 동역자와 함께 얼마동안 동역했다는 것은 의미깊은 일이다. 제 1차 전도 여행 때뿐만 아니라 제 2차 전도 여행 때에도 얼마동안 함께 동역했다. 위로의 아들인 바나바, 선배 선교사 밑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의심할 바 없이 이 경건한 사람은 이 훈련 기간 동안 바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그의 후배가 급속히 성장하여 마침내는 팀의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바나바가 그를 질투하였다는 흔적을 찾아 볼 수있다.

마게도니아에서 소명받은 경험(행 16:6-10)은 최초의 선교적 소명을 받은 예가 아니고, 이미 최초의 소명에 응답한 사람을 특정한 사역의 분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사역의 시기와 장소를 선택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아시아와 비두니아에는 나중에 말씀이 전파되었다. 이 시기에는 메시지가 서방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이었다. 유럽은 추수를 위해 무르익어 있었던 것이다. 영적으로 민감한 바울은 성령의 막으심에 순종하여, 자기 뜻대로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드로아에 머물러 기도 가운데 그의 동료 사역자와 함께 의논하며 하나님의 지리적인 뜻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먼 미래의 결과가 그의 순종에 달려 있었다.

바울이 지상 명령(마 28:19-20)에 순종한 후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 이것이 그를 인도해 주는 유일한 한 가지 요소였다. 그는 첫 번째 임무를 끝마치고 아직 복음에 접한 일이 없는 광대한 지역을 향해 나아갔다. 환상을 본 후에도 그는 동료들과 함께 그가 받은 인도하심을 점검해 보았으며 그 때의 모두는 성령의 역사로 한 마음이 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

 

이와 같이 그는 마게도니아로 출발하기 전에, 그 환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며 성령의 증거가 있으며, 형제들에게 동의를 받으며, 그의 판단에도 인정이 가는가를 확신하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이렇게 재확인하였기 때문에 그는 대적당하거나 채찍맞아 등에 피를 흘리며 빌립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방법

 

바울이 마게도니아 사람의 부름에 응답하여 유럽에 들어갔을 때, 이 세상을 포위하게 될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 그가 택하였던 방법들은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 그 이후 수 세기 동안 비슷한 결과를 맺어 왔다.

사도 행전은 최초의 선교 입문서로 선교의 역사와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행전에는 전형적인 설교의 장면과 사건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모든 세대를 위한 선교 사역의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다. 실패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서 원리와 방법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세계 복음화에 흔히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논평이다. 이 책은 의미깊게도 평균 한 세대인 30년 간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새 시대 여명기에 불쌍할 정도로 약한 일군의 남녀들을 통해 그들의 일생 동안 어떠한 일들이 성취될 수 있었는가를 하나님께서 보여 주고 계시다. 이 영감된 기록과 오늘날의 선교 현실을 비교해 볼 때, 놀랍게도 모든 종족가운데 부딪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전면적인 전략에 그의 책략을 택했다. 그의 행동을 살펴 볼 때 그는 점차적으로 대도시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도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장 유력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계속적인 교회 성장을 확보했다. 그는 신자 각자가 자신을 복음 전파의 중심으로 생각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는 집중적인 개인 전도와 더불어 멀리 순회하며 복음 전도에 힘썼으며, 언제나 새 지역이 주님의 주권 하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롬 15:19, 20). 그는 그리스도 이전에 세계를 저주했던 세 가지가 그리스도안에서 제하여졌다는 것을 전파했다(갈 3:28). 복음은 모든 종족과 계급,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위한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전 9:22)는 말은 결코 헛된 자랑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복음 전파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비젼은 그 자신이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도구가 되어 세운 교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성취시키시는 데 있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그는 진리에 응답하는 남자와 여자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신앙 고백 위에, 그는 단순하고 융통성있는 조직을 가지고 있는 자립 공동 사회를 세웠다(행 14:23/ 딛 1:5). 그는 복음의 씨만 뿌리고 떠나 버리는 것에 만족치 않고, 복음의 가치를 들고 나갈 영구적인 기관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목표를 위해 아직은 초기 상태인 하나님의 진리를 조심스레 소개했다. 일단 이 교회들이 세워지면, 그는 개인적인 편지를 보내거나, 돌아가서 방문을 하거나, 동료 사역자를 보내어 그들의 증거를 도움으로써 계속적인 교제를 유지해 나갔다. 그의 생명이 그들의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한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다.

“너희가 주 안에서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살전 3:8).

그의 사랑의 열정이 이와 같았다.

그는 죄의 보편성과 그에 대한 십자가의 충족성에 관한 보편적인 복음을 전했다(롬 1:3-5/3:29-30/5:7-8). 그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절대적인 주인이 되신다는 것과 그가 확실히 세상을 승리하실 것이라는 것을 역설하였다(고전 1:24/빌 2:9-11).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회심한 직후에 그들에게 준 그의 폭넓은 교훈은 인상적이다. 그가 불과 한 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 동안 함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다룬 교리의 기초는 놀라고도 남음이 있다.

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들의 행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자기보다 자질이 덜 갖추어진 사람들에게 책임을 위임하는 데 대가였다. 다른 이들을 훈련시켜 그들에게 일을 맡기곤 했다. 그의 동료 사역자들은 종종 다른 민족, 다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들이 기꺼이 돕고자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그러한 기대가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가 되었다. 그는 장래성있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을 책임감있는 위치에 세웠다(행 16:1-4/엡 6:21-22/빌 4:3).

그의 깊은 우정은 동료 사역자들을 그에게 묶어 놓았고, 그가 도울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들은 그들의 젊음과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들을 용기있게 직시할 수 있었다. 그는 재정적인 동기를 주지 않았고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후원을 받지 않은 반면에, 후한 대접은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이러한 유리한 위치에서 그는 자유롭게 희생적인 헌금을 강하게 권면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회심자들에게 자신의 것과 같은 기준을 세웠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며, 얼마나 훌륭한 선교사인가! 파라(Farrar) 학장은 바울의 자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바울은 베드로처럼 정력적이고 요한처럼 명상적이었다. 바울, 그는 이기심이 전혀없는 영웅, 바울, 종교적 자유의 위대한 옹호자, 바울, 크리소스톰(Chrysostom)보다 더 위대한 설교자, 사비에르(Xavier)보다 더 위대한 선교사, 루터(Luther)보다 더 위대한 개혁자이며,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보다 더 위대한 신학자, 바울, 그는 이방인을 위한 영감받은 사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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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주요인물 30인

  


 

1 고넬료(Cornelilus) - 뜻: 뿔

 

로마군대의 백부 장이었으며 이방인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함으로서 최초의 이방인으로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 된 자. 고넬료는 가이사라에 살고 있는 군대의 백부 장이었다.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으며 늘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욥바에 사는 베드로를 청하여 들으라고 한다. 또한 베드로에게도 계시가 있어 가이사랴에서 찾아오는 이방인의 청을 거절하지 말고 청에 응해라 하니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초대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 님에 대해서 말할 때 성령이 임하여 그 방에 있는 모두가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의 높임을 듣게 되었다. 베드로가 우리 함께 성령을 받았으니 어찌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안줄 수 있느냐하며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하여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며칠 더 묵어가기를 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이는 유대인이 아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고넬료의 믿음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2 나사로(Nazarus) - 뜻: 하나님의 도움

 

나사로는 신약 성경에서 두 사람이 나타난다. 1. 하나는 베다니의 마르다 마리아의 오빠로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살려낸 참으로 행복한 나사로 이고(요 11:4) 2. 또 한 나사로는 비유로 가르치실 때 쓴 거지 나사로도 부자는 지옥으로 가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다고 말씀하셨다.(눅 16:22-23)

 

첫 번째 베다니의 나사로는 예수 님이 죽음에서 살리신 나사로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비유로 말씀하신 나사로는 예나 지금이나 빈부의 차이가 극심한 것을 생각하면 부자와 가난한자의 비유로 우리한테 주는 시사가 많다.

 

나사로는 부자가 버린 음식찌거기로 연명하였으며 몸도 엉망이어서 전신이 곪아터진 상태이었다가, 둘 다 죽어서 나사로는 천국의 아브라함 품에 안겨있고 부자는 음부에서 뜨거운 불꽃가운데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렇게 뜨거운데 에서 고통 받고 있으니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뭍여 내혀를 적시는 일이라도 할 수 있게 청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도 허락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 16:25)

 

스스로 다 위로 받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위로할 일이 없도록 우리는 너무나 욕심이 많지 않은지 생각해 볼일이다.

 
 

3 노아(Noah) - 뜻: 위로, 휴식

 

아담의 8세손으로 당세의 의인이며 완전한자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관영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 노아를 선지자로 삼아 120년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류를 멸하시었다. 노아만이 의로운 사람이며 순종하였음으로 방주를 만들게 한후 40일 동안 비를 내리게 하여 방주 안에 있는 생물이외는 모든 생물은 다 멸해버리었다. 1년 10일 동안 방주에서 생활한 모든 생물이 모든 생물의 새로운 조상이 되었다. 홍수 때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 부부, 아들 셋, 며느리 셋, 도합8명이다. 노아는 그 후 350년 더 살다가 950살에 죽었다(창 9:) 시대가 악하여(눅 17:27) 홍수로 진멸하시고자 할 때 오직 노아만이 의로운 고로 방주를 만들고 피하라 미리 지시하였다.

 
 

4 니고데모(Nicodemus) - 뜻: 이긴 백성

 

바리새교인이며 유대 율법사이며 산해드린 공회 회원이었다. 예수님께 밤에 직접 찾아와 도를 물을 때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 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라고 말씀하심.

 

(요 3:2-3)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오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 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 다윗(David) - 뜻: 사랑하는 자

 

아브라함의 14세손 이새의 여덟째아들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위대한 통치자. 베들레헴의 양치는 소년이었으나 물맷돌을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전쟁에 나아가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쳐 죽이고 승전하였다(삼상 10:10-13). 후에 사울 왕에 이어 이스라엘의 2대왕이 되어 이스라엘이 왕정국가로서의 정치체제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 국권을 떨친 이스라엘 왕이다(삼상 16:1-13). 다윗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고 그 분의 말씀 데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비록 인간적인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하나님은 그를 크게 쓰셨던 점이다.

 
 
6 드보라(Deborah) - 뜻: 벌

 

랍비 돗의 아내로서 이스라엘의 유일한 여 선지자겸 사사(*왕정이전에 이스라엘 통치자)의 일을 겸임하였다. 그때는 가나안 왕 야빈의 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에 의해 이스라엘이 심히 학대받고 있었다. 그런데 드보라가 여호와의 명을 받아 바락을 시켜 납달리 자손과 스볼론 자손 일만 명을 모으게 하고 다볼산에 미리 오르게 하고 시스라의 군대를 유인케 하여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시킨다. 이같이 드보라는 비록 여자였지만 통찰력과 판단력이 예민하고 정확하였고 영감이 풍성하여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를 잘 재판하였다. 사사기 5장에 드보라와 바락이 하나님을 노래하며 기록한 시는 "드보라의 노래"로 히브리 인의 산문시중에서 유명한 시가 되었다.(삿 5:) 다음은 드보라의 노래의 일부이다.

 

(삿 5:1-3)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가로되 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양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7 디도(Titus) - 뜻: 공경한다

 

헬라인으로서 신실한 성도의 표상이며 바울의 동역 자요 초대교회의 목회자. 파울의 두터운 인간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복음사역에 크게 기여한 신앙의 사람이며 영적 지도력과 자상함을 겸비한 신앙의 표본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디도를 보내면서 편지(고린도후서)를 보내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디도를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디도에 대한 바울의 믿음을 알 수 있다.

 

(고후 8:23-24)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 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디도서는 디도가 그레데 섬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바울사도가 직접 디도에게 보낸 목회서신이다.

 
 

8 디모데(Timothy) - 뜻: 하나님을 공경한다

 

소아시아의 루가오니오 사람으로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로마등지에 순회전도하니 바울이 그를 가리켜 나와 함께 동행하는 자라 하였고 내 귀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하였다(고전 4:17). 바울의 후임으로 에베소에서 사역하였으며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이 디모데 전.후서이다.

   

9. 라합(Rahab) - 뜻: 넓다

 

여리고에 있는 가나안의 기생으로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의 일가도 함께 구원을 받은 신앙의 용사로 인정되었으며 예수의 선조의 한 사람이 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여리고 성의 사정을 정탐하기 위하여 파송된 정탐꾼을

기생 라합이 숨겨주고 살려 보내 줌으로서 구원을 얻었다(수 2:1-6)

 

10 마리아(Mary) - 뜻: 높여진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 목수 요셉의 부인 예수님 이외에 야고보, 유다, 요셉, 시몬과 여러 명의 딸을 둠.

 

(눅 1:30-35)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되고 지극히 높은 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11 마리아(Mary)

 

주께 헌신한 믿음의 여인. 예루살램 교외의 베다니 출신. 마르다의 동생이며 예수 님께서 무덤에서 살리신 나사로의 누이(요 11:1) 예수가 마리아 집에 방문했을 때 그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하여 예수 님의 칭찬을 받았으며 (눅 10:38-42), 나사로를 살리시었을 때는 감사의 표시로 예수의 머리와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아드려(요 12:3:마 26:7) 이는 장차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는 것이라고 예수가 말함(마 26:12-13).

 

(요 12:1-8)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 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두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2 마르다(Martha)

 

헌신적인 봉사의 여인. 예루살렘 교외의 베다니 출신. 마리아의 언니이며 예수 님께서 무덤에서 살리신 나사로의 누이로 실질적인 가장역할을 함. 예수가 마르다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의 동생 마리아가 자기의 일을 돕지 않는다고 불평하다 오히려 예수 님께 꾸중을 들음(눅 10:38-42). 나사로를 살리시었을 때는 감사의 표시로 잔치를 베풀어주고 예수님만이 나사로는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짐(요 11:1-44). 같은 자매이지만 성격은 다르지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 말씀에 대한 사모의정은 들다 컸다.

 

(요 11:38-41)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13 막달라 마리아(Mary)

 

은총에 감사한 여인. 갈릴리 서쪽 막달라 지방에 거주하였으며 상류계층으로 풍요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시달림을 당하다가 예수에 의해 치유 받음(막 27:56 : 막 16:9). 귀신이 쫓겨나자 예수께 감사하고 이후로는 예수를 뒤에서 늘 따르고 예수님이 가시는 데에는 언제나 막달라 마리아 있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뒤를 항상 따랐으며(마 27:56) 빌라도의 법정, 갈보리산의 십자가형과 예수의 임종, 무덤에서 시체가 매장 당하는 것까지를 다 지켜보았다. 죽은 지 삼일 후에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갔다가 최초의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이를 베드로 요한 등 사도에게 알리게 된다(마 28:1-9:막 16:9: 요 20:1-16). 이같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후로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께 헌신한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다.

 

(마 28:1-10) 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우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 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 사대 평안 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 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4 모세(Moses) - 뜻: 물에서 건져 냄

 

통속적인 설명으로는 "건져 낸다"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노예 생활에서부터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인도한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며 정치가이다. (애굽을 나온 것은 1290년 경). 모세는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베겟 사이에서 낳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물에 띄웠는데 마침 애굽의 왕녀가 발견하고 데려다가 양자를 삼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유모로 들어가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양육 받으며 애굽의 학술에 통달하였다(행 7:22).

 

40세 때 동족을 학대한 애굽인을 살해한 후 미디안으로 도망하여 은거하여 있다가 80세에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부름을 받고 형 아론의 도움을 약속받아 애굽으로 돌아와 60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급의 파란만장한 대 자정을 이끈 이스라엘 역사의 지도자. 이로부터 40년간 이스라엘 지도자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는 역사적인 지도자로 활약. 120세에 여호수아에게 대권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남 (출 12:51: 3:10).

 

(출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5 바나바(Barnabas) - 뜻: 권위자, 위로의 아들

 

기독교 최초 개종한 한 삶의 이름이다. 레위 사람으로 본명은 요세이다. 성품이 온유하고 재능이 다양하여 당시 사람들이 바나바를 권위자라고 불렀다. 성신을 받은 후에 토지를 팔아서 사도들에게 바쳐 구제 사업에 쓰게 하였다(행 4:36-37). 사울이 회개한 후 예루살렘에 가서 교우들을 만나고자 하나 모두 핍박자로 알고 두려 워 만나지 않을 때에 바나바가 데리고 가서 잘 소개하였다(행 9:26 -27). 5년후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가 왕성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시찰차 파송하였다(행 11:20). 다소에 가서 바울을 데리고 안디옥에 와서 같이 전도하여 대 부흥을 일으켰다 (행 11:25-26). 주후 45년 바울과 같이 안디옥 교회에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오 는 길에 생질 마가를 데리고 왔다(행 11:30, 12:25). 특히 바나바는 사도바울의 난처함을 돌보아 주는 것을 통해 위로의 아들임을 보여준다(행 4:37:9:26-27)

 

(행 9:26-27)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16 바디메오(Bartimaeus) - 뜻: 디메오의 아들

 

예수님이 여리고성 근처를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뛰어나와 구원을 청한 소경으로 눈 고침을 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 10:46)

 

(막 10:46-52) “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17 삭게오(Zacchaeus) - 뜻: 순결

 

여리고성의 세리장(세무서장)으로 키가 작았다. 부정 축제로 큰 부자가 되었으나 그의 직업과 그의 불의한 행동 때문에 동족들의 멸시를 받게 되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가실 때에 삭개오도 군중들 틈에 끼어 예수를 만나려 했으나 키가 작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마침 옆에 뽕나무가 있어 위에 올라가 예수를 보았다. 이때 예수님은 뽕나무 아래서 발을 멈추시고 삭개오를 불러 내려 그의 집에 묵어가시겠다고 하였다. 그날 밤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철저하게 회개하고 자기가 지금까지 축적한 제산 중에 억울하게 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노라 군중 앞에서 선포하였다(눅 19:1-10)

   

18. 에스더(Esther) - 뜻: 별
 

죽으면 죽으리라! 는 비장한 각오로 자기 민족을 구원한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 본명은 하닷사인 것을 왕후의 위에 오를 때 에스더라고 고쳤다. 아비하일의 딸로서 어렸을 때 조실 부모하고 4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아오던 중 왕후 와스디가 폐출 당한 뒤 전국에서 모여온 수많은 아리따운 처녀 중에 내시 헤개의 추천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간택되어 왕후가 되었다 (에 1:19, 2:7-9, 16-18).

 
총리 하만이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모르드개에게 분노하여 전 유대 민족을 죽 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모르드개가 이것을 알고 에스더에게 편지하니 에스더가 왕에게 고하여 그 일을 뒤엎고 전날 왕을 암살하려던 자를 알려 주어 화를 면케한 공로가 있는 모르드개로 총리를 삼고 유 대인을 칙명을 취소하는 동시에 유대인에게 자유권을 주고 적대 행동을 하려던 자를 다 죽였다(에3:5,6, 4:1, 7:-8:).
 

(에 4:1-17)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19 엘리사 (Elisha) - 뜻: 하나님의 구원

 

소명 : 아벨므홀라인 사밧의 아들로 소 12겨리로 밭을 갈고 있을 때 엘리야가 지나 가다가 겉옷을 벗어던지며 부르니 농구를 불살라 소 한 겨리를 잡아 백성에게 주어 먹이고 엘리야를 따라가 제자가 되었다(왕상 19:16-21). 8년 후 엘리야가 승천하려 할 때에 세 번이나 작별 인사를 하여도 듣지 않고 끝까지 따르매 "네 요구가 무엇이냐"고 물은즉 당신의 영감을 배나 달라고 구하여 받아 가지고 또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어가지고 돌아와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였다.

 

이적 : 이스라엘 왕 여호람부터 요아스 시대까지 그가 행한 이적은 다음과 같다.

 

(1)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갈라지게 하고 건너왔다(왕하 2:13-14).

 

(2) 불결한 몸에 소금을 넣어 음료수를 만들었다(왕하 2:20).

 

(3) 벧엘로 가는 길에서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조롱할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찢었다(왕하 2:23-24).

 

(4) 유대와 에돔이 동맹하여 모압왕과 싸울 때 물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물을 내어 그 지경에 가득하게 하였다(왕하 3:20)

 

(5)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에게 기름을 만들어 주어 빚을 갚게 하였다(왕하 4:7)

 

(6) 사렙지방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하고 그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렸다(왕하 4:17,35)

 

(7) 우물물의 독을 제거하였다(왕하 4:41).

 

(8) 바알살리사에서 보리떡 20개로 백명을 먹이고 남았다(왕하 4:40-44)

 

(9)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다(왕하 5:24 눅 4:27).

 

(10) 자기 종 게하시에게 문둥병을 주었다(왕하5:27)

 

(11)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하였다(왕하 6:6).

 

(12) 자기 사환의 눈을 밝게 하여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호위한 것을 보여 주었다(왕하 6:17).

 

(13) 아람 군사의 눈을 어둡게 하여 사마리아로 인도하고 그 눈을 다시 밝게 하여 사마리아 성중에 있는 것을 보게 하였다(왕하 6:18-20).

 

(14) 엘리사가 죽은 다음 해에 어떤 사람이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 놓았더니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는 순간 다시 살아났다 (왕하 13:2-21)

 

예언 : (1) 아람군사가 사마리아를 포위했을 때 물가가 폭동하여 배가 고파서 자식을 잡아먹는 자가 생겼다(왕하 6:24-29)

 

(2) 엘리사가 곡가가 폭락할 것을 예언하였더니 주가 아람군대에게 병거와 병마의 소리와 군대의 큰 소리를 들리게 하시니 그 소리에 놀라 다 도망가니 예언대로 곡가가 폭락 하였다(왕하 7:1-7,16)

 

(3) 하사엘이 아람왕이 되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것을 예언함(왕하 8:1-15)

 

(4) 선지자의 생도 중 한명을 불러 길르앗 라못에 가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될 것을 예언하게 하였다(왕하 9:1-10)

 

(5) 임종에 이르러서도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아람을 세번쳐서 이길 것을 예언한 후 별세였다(왕하13:18) 그는 천성이 청렴 강직했고(왕하 5:15-16), 엘리야는 왕가의 핍박을 받으면서 지냈으나 그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한 관계로 왕가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가 엘리야를 따른 것은 베드로와 비슷하고 이적을 많이 행한 것은 예수님의 비교할 수 있다.

 

엘리사는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뜻이다. 엘리사의 사역은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구국과 애족의 선지자였다. 엘리사는 여리고 지역의 폐수를 소 금을 섞어 양질의 물로 변화시켰다. 그 후 여리고 지역은 농산물과 식수의 염려가 없게 되었다. 그 외에도 신비한 기적을 어느 선지자보다도 많이 경험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초자연적인 사역을 크게 나타낸 선지자였다.

 

그 중에서도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자가 되었을 때 요단강에 일곱 번 씻게 하여 그의 병을 고쳐준 사건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왕하 5장).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냈고 나라의 체통을 세웠으며 아무런 예물을 받지 아니하므로 선민의 품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또한 아람군 대가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해 도단 성을 포위했을 때 아람 군대보다 하나님의 군대(불 말과 불 병거)가 더 많은 것을 확인시킨 일도 있었다.

 

그 뒤 아람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을 때 기근으로 주려 죽게 될 무렵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왕하 7:1) 한 예언과 같이 병거소리와 말소리, 큰 군대의 소리로 인해 아람군대가 도주하여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 엘리사는 66년간 큰 선지자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교훈과 적용 : 첫째, 선지자는 선견자일 뿐만 아니라 한 시대와 한 민족을 깨우치고 지도하는 영적인 안내자이다. 둘째, 엘리사의 권고를 듣지 않은 북조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권고를 듣자.

   

20 엘리아 (Elijah) - 뜻: 여호와는 하나님

 

[1] 이스라엘의 예언자 중 가장 무서웠던 예언자. 북왕국 아합왕(B.C. 876-854)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걸쳐 사역하였다.

 

(1) 디셉 사람(왕상 17:1).

 

(2) 아합 왕에게 예언하기를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 하고 그릿 시가에 숨어있을 때 여호와가 까마귀를 시켜 조석 식물을 날라다 주게 했다(왕상 17:1-7)

 

(3) 사르밧 과부집에 유숙하는 중에 한줌의 보리가루와 적은 기름으로 여러 날을 먹었어도 없어지지 않게 하고 그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려 주었다(왕상 17:8-24)

 

(4) 아합 왕 때에 왕과 백성이 바알우상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함으로 견책하고 아합왕에게 참신과 거짓 신을 가려내자 하여 바알선지 4백 명과 아세라의 선지 4백5십 명을 데리고 갈멜산에 올라가 송아지로 재물을 삼고 각기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로 응답함을 보자 하여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이 정오가 지나도록 외쳤으나 응답이 없고 엘리야가 여호와한테 부르짖을 때 불이 내려와 제물과 도랑의 물까지 모두 태워 버렸다. 즉시 백성들을 시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명을 기손 시내로 끌고 내려가 모두 죽였다.(왕상 18:19-40)

 

(5) 왕후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하므로 주의 천사가 어루만지고 식물을 주고 호렙 산굴에 있을 때는 여호와가 강한 바람과 지진과 작은 소리의 세 가지로 보이시고 명령하시기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대신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셨다(왕상 19:1-6)

 

(6) 농부 엘리사가 경작하고 있을때 자기 겉 옷을 던져 따라오게 하였다 (왕상19:19-21)

 

(7) 아합이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포도원을 뺏었을 때 왕 앞에 나타나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으리라 하였다(왕상 21:17-19)

 

(8) 이스라엘왕 아하시야가 사자 50명씩 두 번 보내어 오라 하는 것을 천화로 사루게 하고 세 번 째에야 가서 왕이 죽을 것을 예언했다(왕하 1:9-16)

 

(9) 승천하게 되어 엘리사에게 세 번이나 작별 인사를 하였으나 떠나지 않으므로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니 당신의 영감을 배나 원한다 하므로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면 성취하리라 하고 겉옷을 떨어뜨리고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왕하 2:1-11)

 

(10) 그의 심정과 재능이 세례 요한과 비슷하다 하였다(눅 1:17)

 

(11) 예수님이 변화하실 때에 모세와 같이 나타나서 주님과 말씀하셨다(마 17:3)

 

(12) 야고보는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신다고 엘리야를 비유로 권면하였다(약 5:17)

 

*그는 험상한 모습과 탈속한 옷차림, 비호같이 빠른 걸음, 기근도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건장한 모습, 굴에서도 살 수 있는 억센 습관이 그의 특색이었다. 여호와 신의 예배에 절대적인 선지자였고 국가 운명에 대하여 예민한 통찰과 염려를 한 애국적인 인물이며 구약 선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21 여호수아(Jehoshua) - 뜻: 여호와의 구원

 
[1] 사사 여호수아.

 

(1) 에브라임지파 눈의 아들로서 본명은 호세아다(민 13:8).

 

(2) 모세의 수종자가 되어 항상 회막곁에 있었다(출 33:11)

 

(3) 가나안에 보낸 12정탐꾼 중의 한 사람으로 10지파의 정탐을 보고 할 때에 민중을 낙담케 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으나 여호수아는 갈렙과 같이 강경히 말하기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그들의 신은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니 두려워 말고 쳐들어가자고 하였다(민 13:1-14:10)

 

(4) 그래서 여호와가 20세 이상 된 자로 여호와를 원망한 자를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가리라 하셨다(미 14:26-32)

 

(5) 여호와의 명령으로 제사장 엘르아살이 회중의 목전에서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모세의 후계자를 삼았다(민 27:18-23).

 

(6) 여호아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개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같이 있으리라 하셨다(신 31:23)

 

(7) 모세가 죽은 후에 싯딤에서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에 보냈다(수 2:1)

 

(8)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12인을 택하여 언약궤를 메우고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너서 길갈에 진치고 여리고 성을 쳐서 취하는 동시에 전일 2인의 정탐꾼을 숨겼다가 돌려보내준 기생 라합을 구원하였다 (수 3:11-17, 5:10-15, 6:20-27)

 

(9) 아이 성을 치다가 패하자 그 장본인 아간을 잡아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 죽인 후 아이성을 다시 쳐서 불살라 황폐케 함(수 7:4-29)

 

(10) 계속 가나안 7족을 멸하여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하고 자기는 에브라임산지 딤낫세라를 받아 그 성읍을 증건 하고 거기 거하였다(수 19:49-51)

 

(11) 살인한자를 위하여 요단강 동편과 서편에 도피성을 셋씩 건설하고 임종시에 백성을 세겜에 모으고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권면한 후 별세하니 110세 였다. 딤낫세라에 장사 하였다 (수 19: 수 20: 24:1,14,19,20; 행 7:45)

 

[여호수아]("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 는 그 이름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평생토록 헌신한 하나님의 종이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 눈의 아들로 태어난 여호수아의 본래 이름은 [호세아]("구원"이란 뜻)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혹독한 학대를 받으며 노예 생활을하고 있을때 태어나 자유를 구가할 해방의 날을 고대하며 성장하였다.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애굽의 억압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이스라엘 백성의 숨통을 죌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룬 모세를 따라 귀향길에 오른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무려 40년간이나 모세의 부관으로 있으면 여호수아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연단을 받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긍정적인 신앙을 소유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는 탁월한 군사적, 정치적 역량까지 갖추어 민족의 지도자로서 쓰임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계속되는 고난과 역결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고 소망을 잃지 않는 여호수아는 결국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받게 되었다.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을 아는 여호수아는 두렵고 떨릴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권면과 약속의 말씀으로 큰 힘을 주시고 백성들까지도 지원하여 순종을 약속함으로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로서 첫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성령 충만하여 지혜가 뛰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다. 오직 야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행력 앞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한 여호수아의 군대는 가나안 족속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하나님께 약속받은 땅을 점령해 나갔다.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이 야훼의 성전임을 아는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복종함으로써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해와 달의 운행까지도 변경시키시고 그의 백성과 함께 전쟁에 임하시므로 이스라엘이 거두는 승리의 전과는 차라리 당연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믿음과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을 치루고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 여호수아는 각 지파별로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 자신의 몫에 욕심 을 내지 않고 먼저 백성들에게 공정하게 토지를 분배해 준 여호수아는 자신을 위해서는 작은 산지만을 차지할 정도로 청렴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처럼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인 여호수아도 두 가지 실수를 보였다.

 

가나안 정복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기브온 거민들과 언약을 맺음으로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씨앗을 남겼다. 또한 후임자를 육성치 못함으로 인하여 사사시대에 이르러 혼란을 야기케 하였다.

 

그러나 85세에 민족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아 110세에 죽음을 맞기까지 자신은 물론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며 스스로 본을 보인 여호수아의 생애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어떠한 위험이 다가와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약속의 땅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성경: 출애굽기 33장11절.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본명은 호세아였고 에브라힘 지파의 눈의 아들이었습니다(민 13:8). 일찍부터 모세의 수종자가 되어 측근에서 그를 도왔으며 모세의 감화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종교심이 강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은 일에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청년기에 이미 영적인 사람으로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회막을 떠날 줄을 모르고 기도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출33:11) 또한 12명의 정탐꾼을 각 지파에서 선발하여 가나안땅에 파송하였을 때 여호수아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때에 열 사람의 불신앙의 보고와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의 보고는 유명한 간증이 되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허락 속에 모세의 안수를 받고 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민 27:18-23). 그 후 가나안 7족속을 진멸하고 그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지도자의 궁핍을 느끼지 못 할 만큼 여호수아는 모세의 자리를 잘 지켰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선민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자기들의 사명을 만족스럽게 바로 감당했고 선민의 지도자의 자질을 잘 갖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교훈과적용 : 첫째, 여호수아는 영적인 자질도 좋았고 성막을 떠나지 않는 영적인 갈급함이 하나님의 큰 종이 되게 하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둘째, 12정탐꾼을 대신했던 그의 믿음은 그 민족을 대신한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22 요나단 (Jonathan) - 뜻: 여호와께서 주심

 

여기 소개하는 요나단은 사울왕의 아들이며 다윗의 친구 요나단을 말한다. 사울왕이 군사 일 천명을 선발하여 요나단에게 맡긴 후 베냐민 기브아에 주둔 케하여 블레셋의 침공을 막도록 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군대의 용사로 다윗처럼 오직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운 신앙의 용장이었다.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 14:6)

 

어떤 날 사울왕은 블레셋과 싸워 승리하기 전에는 아무도 음식을 먹어서 안된다는 금식령을 선포했다. 요나단은 이 선포를 듣지 못하고 지팡이로 꿀을 찍어 입에 넣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사울왕은 맹세코 요나단을 죽이려 했으나 백성들의 탄원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삼상 14:27-52).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요나단은 그의 무용과 신앙에 감동되어 그를 영원한 벗으로 받아들이고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세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나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 이었더라](삼상 20:17) 다윗은 요나단의 우정으로 인하여 몇 차례 위기에서 구원받게 되었으며 이 은공의 보답으로 다윗은 요나단이 길보아산에서 전사한 후 그의 절뚝발이 아들 므비보셋에게 극진한 후의를 베풀었다(삼하 9:1 -13). 이들의 우정은 창공의 태양 같고 황야의 꽃처럼 맑고 아름다운 것으로 참 신앙인들만이 쌓을 수 있는 금자탑과도 같은 것이었다.

 

교훈과 적용: 첫째, 사욕이 없는 사랑의 봉사는 그 자손에게까지 축복의 조건이 된다. 선한 일에 부요하자. 둘째,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 은혜는 우정에 대한 의리였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

 

23 요셉(Joseph) - 뜻: 그는 더하실 것

 

요셉은 라헬의 첫 번째 아들이며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대단히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만득자로 얻은 아들이어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열한 단의 곡식 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말함으로써 형들의 미움과 시기가 날로 더해갔습니다(창 37:3-11).

 

그 형들이 도단에서 양을 칠 때에 그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형들의 목장을 찾아갔습니다. 이때에 형들이 의논하여 요셉을 죽이기로 결의하였고 르우벤의 제의에 따라 구덩이에 넣게 되었으며 다시 유다의 제의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함께 포함되고 있음을 그림을 보듯이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애굽의 장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보디발의 아내가 끈기있게 유혹하였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자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반복되는 고통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첩경이 되었습니다. 자기가족을 애굽 고센 땅에 이주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을 애굽의 국장같이 치렀고 요셉도 1백10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모세가 그 유골을 들고 나와 세겜에 안장되었습니다(수 24:32)

 

교훈과 적용 : 첫째, 거듭되는 고난 속에서도 충성되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받은 축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힘든 유혹을 물리쳤을 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24 모르드게(Mordecai)

 

바벨론 신 마르닥에서 유래된 이름일 것으로 추측된다. 에스더의 사촌 오빠이며 양아버지(에 2:7).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가족은 여고니아와 같이 포로가 되었다(에 2:5-6). 아하수에로 왕 암살음모를 미연에 방지하였다(에 6:1-11). 여기서 우리는 모르드게가 에스더의 오빠로 알려저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며 에스더의 믿음이 워낙 두드러지게 이야기됨으로 모르드게는 그저 에스더의 오빠로서만 알려지고 있슴이 진정한 모르드게의 신앙이 무시되는 듯한 느낌이 있어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에스더 4장에 보면 처음부터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 아니고 그의 오빠 모르드게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비가 된 것도 다 이를 위하여 된 것이지 너와 네 가족의 안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강력한 압력이 있었기에 에스더가 그러한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됨을 다음의 두절에서 극명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모르드게의 믿음과 지혜가 에스더에 못지않음을 알 수 있다.

 

(에 4:13-14)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25 서위렴2세( William Hamilton Shaw)

 

한국의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마친 미 해군대위- 그의 아버지 서위렴 선교사가 그의 아들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목산채플을 건축하여 봉헌하니 이가 바로 목동캠퍼스에 있었던 대학교회였다.

   

26 아브라함(Abraham) - 뜻: 열국의 아버지

 

본래는 아브람 이었으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이라 고쳐주었다.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음. 신앙의 아버지라고 함.

 

27 이삭(Isaac) - 뜻: 웃음

 

아브라함이 100세에 사라에서 얻은 아들 이삭을 얻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슴. 40세에 외종형 부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취하여 60세에 쌍둥이를 낳으니 곧 에서와 야곱이다((창 20:1-5, 22:2-13).

 
 

27 나오미(Naomi) - 뜻: 나의 즐거움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의 아내, 룻의 시어머니.

 
28 룻(Ruth) - 뜻 : 자손

 

[1] 셈의 아들(창 10:22)

 

[2] 모압 여자로 시어머니에게 효성한 한 여자(룻 4:13, 마 1:5).

 

룻기 1장15-17절. 룻은 "우정"이라는 뜻이다. 룻은 모압여자로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모압에 이주해 사는 기간 그의 아들 말론과 결혼한 나오미의 며느리(룻1:4) 이후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고(룻1:5) 효성스런 며느리로(롯 1:6-18), 보아스와 재혼하고(룻 4:9-13), 오벳을 낳았다(룻 4:17). 그의 이름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다(마 1:5-16).
 

29 한나 (Hannah) - 뜻 : 자비

 

(1) 엘가나의 두 아내중 한 사람으로 사무엘의 어머니.

(2) 기도를 드려 사무엘의 얻어 하나님에게 바침 (삼상 1:1).

(3) 삼상 2:1-10의 한나의 찬가는 눅 1:46-55의 마리아의 찬가와 비교 된다.

 

[한나] ("은총"이라는 뜻)는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두 아들 중 하나인 선지자 사무엘의 모친이다. 그녀는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므로 다른 아내로부터는 미움을 받았다. 즉 브닌나가 한나를 시기한 것은 한나가 갑절이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대한 반항이었다. 한편 한나는 나이가 넘도록 자식이 없었으므로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제사드릴 때에 " 만일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다니다"라고 서원 기도를 드렸다.

 

유대인은 무자함을 일종의 저주로 비관했지만 한나는 누구를 원망치 않고 하나님께 하소연했던 것이다. 그리고 엘가나는 한나를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라고 위로하였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기도하는 것을보고 술에 취한 줄 오해하였지만 한나의 중심 소원을 들은 후 그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응답하시길 소원하였다. 한나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져 아들을 얻게 되는데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으며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아들을 바쳤던 것이다(삼상 1장). 사무엘은 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여기서 몇 가지 한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
 

30 바울(Paul) - 뜻 : 작은 자

 

1) 출생과 교육 :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으로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다. 열심 있는 자이며(행 22:3) 청결한 양심으로 선조 때부터 섬기던 하나님을 섬기고(딤후1:3) 할례를 받았고 자랑할 만한 베냐민 지파요 율법으로는 바리세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의 선두에서 핍박하던 사람이니 바리세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도무지 결점이 없는 사람이었다(빌 3:5-6).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었다(갈 1:14).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다(행 22:26-28).

 

(2) 성격: 논리의 힘과 능력의 결합 즉 이성과 영력이 일치된 것이 특색이다. 결점이 있다면 너무 성급하여 후회하는 일이 있었던 점(행 15:39, 23:4-5). 자기 몸에 가시가 있다고 말한 것은 성격의 나무람 같다(교후 12:7).

 

(3) 회개: 기독인들이 율법을 경히 여기고 성전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었다(행 6:31). 스데반 죽이는 일에 가담한 것은 의분심에서 였다(행 7:5-4:3). 그 후 기독교인을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향하였다(행 9:1-2).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크리스천이 되었다(행 9:1, 22:4, 26:9).

 

(4) 선교활동: 공중 앞에서 회개한 사실을 간증하고 전환된 마음을 수습하고 앞날을 위한 준비로 아라비아에 은퇴하여 더욱 힘을 얻고 돌아와 유대 인에게 예수가 기다리던 그리스도임을 전파하였다(갈 1:16-18, 행 9:22).

 

신약성서 27권중 서신(Epistle) 혹은 "편지"(Letter)의 형태로 된 글이 21개나 있다이 중에서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것이 13개이다. 이를 다시 바울 한사람으로만 발신된 것으로는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가 있고 고린도후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는 "바울과 디모데" 두사람의 이름으로, 또한 고린도전서는 "바울과 소스테네" 두 사람 이름으로 발신되었고,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세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된 편지이다. 이를 편의상 아래와 같이 구분해서 연구한다.

 

(1) 초기 서신들 : 데살로니가 전서, 후서

(2) 주요 서신들 :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

(3) 옥중 서신들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4) 목회 서신들 :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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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기도문] 손양원목사의 10가지 감사기도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으니,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6.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감사합니다.

7.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10.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기도문은 두 아드님의 장례식장에서 드려진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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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Hanna, ?~?)

 

은혜란 뜻.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살았던 레위 사람 엘가나의 두 아내 중 한 사람. 사무엘의 어머니(삼상 1-2, 대상 6:1, 27). 엘가나의 다른 아내 브닌나는 자녀가 있었으나 한나는 오랫동안 불임으로 번민하였고, 그 일로 브닌나에게서 괴롭힘을 당했다(삼상 1:5-6). 그러다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실로에 올라갔을 때,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들을 주시면 그를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스라엘의 대선지자요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을 얻게 되었다. 한나는 사무엘을 젖 떼기까지 기다렸다가 서원대로 성막의 대제사장 엘리에게 맡겨 평생 하나님께 바쳤다(삼상 1:28).

 

이때 한나가 부른 찬양(삼상 2:1-10)은 신약에서 마리아의 찬가(1:46-55)와 함께 유명한데,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넘치는 은혜, 절대적인 주권과 메시아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구속사적으로도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로 평가되고 있다. 그 후, 한나는 사무엘 외에도 세 아들과 두 딸을 낳는 복을 받았다(삼상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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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선교의 개척자 선교사 마포삼열

 

 한국민족을 사랑한 선교사 마포 삼열 S.A.Moffett(1864~1939)

한국의 예루살렘을 이룩한 마포삼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잊을 수 없는 한국의 은인이요“ , 개척자요 선각자이다 비단 한국 교회사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 근대사에서도 위대한 공헌 ,. 을 장식한 사람이다 마포삼열 박사 전기 ”( , 1973) 마포삼열 은 년 월 일에 미국 인디아나 주 메디슨 시에서 출생하였고 (1864~1939) 1864 1 25 하노바 대학에 이어 시카고의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했다. 년에는 세의 나이로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얻었다 1901 37 . 그는 년 월에 정든 모국을 떠나 년 월 일 한국에 도착했는데 이 날이 그의 1899 12 1890 1 25 세 되는 날이었다 26 . 이후 그는 년 월 일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를 세웠다 1894 1 8 . 마포삼열은 몇 가지 선교계획을 세웠다 첫째는 사경회를 열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요 ., 둘째는 자선 사업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셋째는 각급 학교를 세워 교 , 육사업으로 지도자를 배출하고 간접전도에 주력하는 것이다. 그는 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조선에 와서 복음 전도하기 전에 하 .“ 나님 앞에 기도하고 결심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 결심은 내가 십자가의 도 외에는 전하지 . 않기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죽든지 살든지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로 굳세게 결심한 것입 , 니다.” 그는 바울의 결심과 똑같은 결심을 하였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만일 다른 . “ ,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나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외에는 다 . 른 것을 전하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정통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근대에 있어 흔히 새 신학 새 복음을 전하려는 자는 누구며 그 결과는 무엇일까 조심하 “, 자 조선 모든 선교사가 다 죽고 다 가고 모든 것을 축소한다 할지라도 형제여 조선교회 . ,! 형제여 년 전에 전한 그 복음 그대로 전파하자 원로 선교사와 원로 목사가 전한 그대 ! 40 … 로 전하라 이 복음은 내 것이 아니오 우리가 옛적부터 전한 복음이다 이것은 실로 한국 . , .” 교회의 복음적 신앙을 사수하기 위한 불같은 외침이었다. 마포삼열은 동아일보 창간 메시지에서 금일 조선에 가장 유망점은 조선민족이 예수 그리 “ 스도의 복음 선전에 호응함이니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류발달을 기약하는 것이다 곧 독립정 . 신을 가지게 하며 또한 책임을 깊이 감하게 하나니 이와 같은 사람은 너그러이 민중의 복리 를 위하여 노력하여 정의를 위하여 튼튼히 설지라 라고 말했다 ”. 그는 전도자일 뿐만 아니라 교육사업가로서 평양신학교를 위시하여 숭실전문학교 경신학 , 교 등을 세우고 평안도에만 교회가 세운 학교가 백 개 소였다 .
마포삼열은 한국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한 개척자적 선교사였다.
송광택 목사서울반석교회 협동목사

출처 온누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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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성경 번역자요, 전도자인 서상륜(1849~1926)

세계 선교사상 유래가 없는 업적을 남긴 서상륜은 1849년 7월 26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서석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의 출생일을 7월 19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그의 가문은 생활이 유족한 부유층에 속하였으나 부친이 콜레라로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어 모친마저 별세하였다. 그 후 가세가 기울고 서상륜과 서경조형제의 앞길 에는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부모의 별세로 기울어진 가세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 서 상륜은 20여세의 젊은 나이로 상업에 종사하였다.
그는 국경을 넘어 만주를 왕래하며 홍삼을 판매하는 매약행상을 하였다. 그는 30세 되던 해에 열병에 걸려 생명에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의료선교사가 경영하는 병원에 입원 하였다. 이 병원에서 그는 ‘한국의 안드레’라고 할 수 있는 매킨타이어에게 전도를 받았다. 정성어린 간호와 치료로 완쾌되자, 서상륜은 약속대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세 례를 받았다. 서상륜이 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만주에서는 백홍준, 이응찬 등이 매킨타이어 에게 전도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 번역도 착수하고 있었다. 세례를 받 은 서상륜은 매킨타이어의 집에 유하면서 성경 번역에 뒤늦게 참여하였다.
1882년 가을에 이르러 누가복음서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으니 이것이 한글로 된 최초의 복 음서이다(‘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 이어 1883년에는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3천부를 간행하 였으며 1884년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심양의 문광서원에서 발간했다. 1887년에 이르 러서는 마침내 <예수셩교젼셔>라는 책명의 신약성서 전부를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간행 과정에서 서상륜은 성경 번역뿐 아니라 목활자의 각인, 식자공, 인쇄공의 일 도 맡아 하였다. 이 성경을 흔히 <로스역 성경>(Ross Version)이라고 한다.
성경을 번역 출판한 서상륜은 우선 남만주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민경배 교수 에 의하면, 서상륜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원근을 가리지 않고 남만주 지역에 흩어져 사 는 동포에게 성의껏 반포하였다.
위험이 뒤따랐던 그의 행로에는 모험도 많았다. 한 번은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다가, 그 짐 속에 있는 성경이 발각되어 생명의 위험까지 직면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서상륜은 조선 관 헌의 도움을 받아 성서 10권만을 가지고 밤중에 도망하는데 성공하였다. 서상륜이 성경을 국내에 갖고 들어와 널리 반포한 공로는 매우 컸다. 참으로 그의 발걸음은 큰 업적을 남겼 다. 그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중심에 ‘성경말씀’이 장중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초석을 놓았 던 것이다.
또한 서상륜은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 설립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목사가 새문안교회를 창성했는데 그때 세례 받은 14명의 신자 들이 모두 서상륜의 전도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었다. 말년에는 동생과 함께 설립한 솔내 (소래 교회로 내려가서 교회를 섬기는 일과 그 마을을 기독교화 하는데 전념하던 중) 1926 년 1월 별세하였다.(참고: 민경배 저, 한국기독교회사)
송광택 목사(서울반석교회 협동목사) /

* 출처 : 온누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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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거 스 틴

 

중세 교회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어거스틴은 354년 누미디아(오늘날의 알제리아)의 타가스테(Tagaste) 에서 로마화된 베르베르(Berber) 가문의 아프리카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그는 세례 지원자였고 진지한 어머니 모니카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배웠으나 그의 세례는 그의 오랜 종교적, 철학적 순례에 의해 387년이 되어서야 순례를 그의 참회록에서 서술하였다.

그는 헬라어를 제외하고는 당대의 문학적 교육에 있어서 탁월하였고 칼타고에서 수사학을 강의하였다. 373년 키케로의 한 작품에 감동을 받아 그는 신적인 지혜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잔인한 내용은 그에게 반감을 일으켰다. 그는 마니교의 추종자가 되었다. 마니교는 금욕주의와 그리스도를 향한 철저한 헌신을 고무시킨 이원론적 신화를 가진 종교였다. 그는 9년 동안 마니교를 고집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합리적 방법에 의해 진리를 논증하는 그 주장들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환멸을 느끼면서 어거스틴은 로마로 갔고 거기서 잠시 동안 어떤 확실한 것에 도달하기를 단념한 철학자들과 사귀었다. 그는 심지어 향락주의(Epicureanism)의 즐거움을 맛보려는 유혹도 받았다. 그러나 384년 그는 밀라노에서 제국의 수사학자로 임명을 받았고 암브로우스 주교의 영향과 신플라톤주의 사상아래 있게 되었다. 이 양자는 함께 그를 정통 신앙에서 소외시켰던 장애물의 뿌리를 침식하였다.

암브로우스로부터 그는 기독교가 웅변적일 수 있고 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구약성경의 어려운 이야기들이 풍유로서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영적 완전성을 밝혔고 내적명상을 통한 통찰력을 추구하였다. 어거스틴은 항상 그의 마음을 빼앗았던 악의 원인이 마니교도들이 믿는 것처럼 그러한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 부재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육신과 세상”을 포기하라는 도전을 받았다. 그는 10년 이상 내연의 처와 살았으며(모니카를 기쁘게할 만한) 고상한 직분을 얻기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세상으로부터의 회심”에 대한 도전은 안토니와 빅토리누스(Victorinus)의 경우 같은 영웅적인 포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왔다.

 

결국 그가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로마서 13:13-14을 읽을 때 그 속박의 사슬을 끊어졌다.

세례에 앞서서 어거스틴은 카시키아쿰(Cassiciacum)으로 물러갔는데 그곳에서 그의 소수의 동료들은 기독교 철학자로서 그들의 훈련의 여가를 보냈다. 모니카 사후에 388년 아프리카로 돌아와서 그는 타가스테에 연구와 명상을 위한 수도원적 공동체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391년 그는 해안의 합포에서 사제직에로 강요받았고 396년에 그는 카톨릭 주교가 되었다. 여생을 보내는 동안 그는 설교자와 목회자, 성례전의 집례자, 재판관과 중재자, 자선 단체의 관재인과 조직가, 또한 카톨릭 정통 신앙의 지칠 줄 모르는 방어자요 다작의 저술가였다. 힙포의 반이교적 카톨릭 교도와 완고한 도나투스파는 급속히 그를 기독교적 신플라톤주의자의 자신 만만한 인본주의로부터 인간의 본성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보다 성경적이고 비관적인 견해에로 돌아서게 하였다. 참회록은 이러한 새 전망에서 나온 초기의 결실이었고 하나님의 도성은 보다 더 성숙한 결실이었다.

어거스틴은 그가 마니교도의 합리주의에 반대하면서 “이해하기 위하여 믿으라”는 그의 영향력 있는 원리를 발전시켰다. 그는 그 원리를 수많은 저작에서, 무엇보다도 그의 삼위일체론(The Trinity)에서 사용하였다. 도나투스파에 대항하여 그는 교회는 알곡과 가라지 즉, 신자와 불신자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는 서로 섞여 있는 밭이라고 주장하였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가 성례의 최고 집례자이며 따라서 만일 합당치 않은 사람이 집례하는 경우라도 그것은 여전히 참된 성례라고 주장함으로써 도나투스파의 재세례를 철저히 반박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연합과 사라의 울 밖에 성례를 받는 자들이 남아 있는 한 그 성례는 아무런 유익도 전해주지 않는다. 어거스틴은 또한 의견을 달리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강제를 사랑의 교정 행위라고 정당화하였다.

약탈당한 로마로부터 피난해 온 펠라기우스파는 411년부터 어거스틴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는 켈레스티우스가 유아 세례(어거스틴은 유아세례가 평범한 관례가 되도록 도와 주었다)에 도전한 후에 그들을 공격하였다. 서방의 페라기우스파에 대한 정죄는 주로 어거스틴에 의해 주도된 아프리카의 압력의 결과로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그를 자극시켜서 부패와 죄책으로서의 타락 과 원칙에 대한 그의 교리를 더 발전시키게 했다. 또한 그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돌아가는데 있어서 의지를 자유케 하는 은혜의 필요성, 예정과 “활정된 수의 택자”의 보존 같은 교리도 발전하였다.

 

어거스틴이 430년에 죽었을때 아리우스파 반달족 침입자들은 힙포를 포위하고 있었다. 붕괴되는 로마제국의 충격과 분열의 한가운데 어거스틴은 이겨 내기 어려운 악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견뎌 내야 한다고 가르쳤고 하늘의 도성의 평화를 구하라고 했다. 그는 라틴 기독교의 창조적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시기에 살았고 중세와 종교개혁의 성직자들의 마음을 좌우하는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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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

 

어느 견지에서 보든지 간에, 사도 바울을 날카롭게 분석하면 할수록 그의 모습은 점점 더 위대하게 나타난다. 선택된 하나님의 그릇(행 9:15)으로서, 바울의 생애는 무한한 솜씨와 지혜로 이루어졌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로 비유한다면 중국의 북경에서 맹자와 공자를 인용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영국으로 치자면, 기가 막힌 신학을 논하며 옥스포드에서 그것을 강의할 수 있는 사람, 러시아에서는 소련 과학 학술회(Soviet Academy of Science)에서 자기 주장을 옹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바울은 그 당대에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토저(A. W. Tozer) 박사는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며, 세계 사상 가장 그 이력이 놀라운 사람이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라. 나는 그가 한 분야에서 이룬 업적을 생각해 볼때, 어떻게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는가에 대해 기이하게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한 분야 이상 전공할 수 없으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흡수할 정도의 위대한 인물로 보인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모두 뛰어난 것이었다. 로마 감옥에서 처형될 때까지 그는 그러했다.

교회에 대해 가장 공격적이고 강력한 적이며 가장 가혹한 박해자인 그를 택하여 그가 파괴하려고 하던 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도, 심오한 신학자, 설득력있는 변론가, 지칠 줄 모르는 선교사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배경

 

그의 부모는 베냐민 족속으로서, 유명한 조상 사울왕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그는 아버지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에 바울루스(Paulus)라는 이름이 덧붙여졌다. 훌륭한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의 부친은 매우 엄격하게 율법의 모든 의식을 지키고자 했으며, 그를 바리새인의 훌륭한 전통에 따라 세심하게 그를 훈련시키고자 했다(빌 3:4-8). 그 가정은 다소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보아 매우 유복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거의 전 세계적인 언어인 헬라어 외에도, 팔레스타인의 아람어도 사용했다. 훌륭한 집안의 다른 소년들처럼,바울도 알리시안(Alician) 염소의 털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배웠다. 바울은 다소의 시민권을 상속받았다.

약 15세쯤 되었을 때에 그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게 되었다. 그는 주도적인 학문의 도시였던 고향 다소에서 이미 학문적 분위기에 젖어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위대한 일곱 명의 율법 박사 중 한 사람인 가말리엘(행 22:3) 문하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 위대한 랍비 가말리엘은 담대히 “율법의 미“라고 불리우는 사람으로, 고매한 인격과 박식한 학문으로 유명했다. 그에게서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율법의 엄한 규율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행 22:5).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또 신임을 받았던 것을 볼 때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는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순교자들을 정죄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의 예리한 정신력은 학문에서 동료들을 능가하게 했다. 그는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던 자“(갈 1:14)였다고 간증했다.

그의 서신 중에 나타난 자서전적인 이야기에서 바울은 개종 이전의 자신을 매우 자기 확신적이며 내세를 믿고 청결한 생활과 율법을 준수하고 존경할 만하고, 하나님 앞에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결코 탕자였던 일이 없으며, 정죄함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 평가할 수 있었으며, 자기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패한 일이 없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지나친 열심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역사의 페이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말해버리고자 한 노력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이와 같이 회심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완전성을 굳게 믿고 있었고 그의 신앙이 타당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한 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복잡다단한 사람이었다. 사도들은 각기 어떤 한가지 뛰어난 장점이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그는 아마도 교회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극단주의자였고, 안드레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런데 바울은 그 두 가지르 다 가지고 있었다. 즉 베드로처럼 모험주의자이면서 안드레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는 원칙에 있어서는 보수주의적이었으나 방법에 있어서는 급진적이었다. 원칙이 걸려 있을 때에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으나(갈 2:5), 방법론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전 9:22).

회심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회심을 교회사상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보시고 성령의 영감에 의해 그 사건을 세 번이나 상세하게 보충적인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셨다. 이 획기적인 사건에 대해 가장 완벽하게 연구한 사람 중의 하나는 리틀톤(Lyttelton)경인데, 그는 의회의 의원으로서 영국의 모든 정치적 토론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내각에서 재무성 장관을 지냈던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가이기도 했다.

그와 그의 친구인 변호사 길버트 웨스트(Gilbert West)는 성경은 사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기를 폭로하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리틀톤경은 바울의 회심을, 웨스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택하여 비판하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완전한 편견에서 각자가 맡은 분야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긴 세월에 걸친 연구 결과, 그들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뒤집어 엎으려는 그 노력을 통해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멜도(F. J. Meldau)는 말하기를 그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사기를 폭로하게 된 것이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에 서로를 축하했다고 이야기한다. 리틀톤은 그가 펴낸 논문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울의 회심과 사도직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기독교신앙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을 충분히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그의 논문이 굉장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사무엘 죤스톤(Samuel Johnston)박사는 그것은 “불신앙이 그럴 듯한 답변을 날조하는 것이 불가능한“ 논문이라고 단언하였다.리틀톤경은 그 경우에 있어서 모든 가능성을 남김없이 연구하여 네 가지 명제를 세웠다.

바울은 거짓인 것을 알고 또한 그것을 말하는 사기꾼이거나,

너무 과열된 상상으로 인한 열광자이거나,

다른 사람의 사기에 속았거나,

그가 선포하는 회심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따라서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인 경우다.

성경의 기록을 가지고 그는 바울이 사기꾼이 아님을 논증하였다. 어떤 동기가 이 새로운 종파를 몹시도 증오하는 다메섹 도상에 있던 그를 돌이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였던 것일까? 동기는 없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부와 명예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 그는 권력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의 생애에는 자기 추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동기는 다른 열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서신을 보면 가장 엄격한 도덕성이 숨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증오와 멸시와 박해를 받게 되는 일이었다. 과연 그는 자신이 사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기뻐하며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것을 감수하였겠는가?

그것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무익한 사기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리틀톤은 그 이론을 자체적으로 모순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울이 아그립바왕에게 자신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가 진실인 것을 알지 않느냐고 호소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행 26:16).

“이것은 매우 뚜렷한 증거이다. 그 사실이 유명하다는 것과 재판석에 앉아 자기를 재판하고 있는 왕을 향하여 담대하게 자기 증인이 될 것을 부탁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한 증거이다.“

만일 회심에 대한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라면 아나니아가 어떻게 다메섹에 있는 자기의 적을 만나러 갈 수 있었겠는가? 이와 같은 논증을 거쳐, 리틀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바울은 사기꾼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회심에 대해 꾸며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심과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인 헌신 후에 아라비아에서의 격리 기간이 뒤따라왔다(갈 1:17).


고든(S. D. Gordon)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를 열망하신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모든 사람은 다 아라비아나 대학에서 광야의 훈련이라는 과정을 밟았다. 요셉과 모세, 엘리야, 밥티스마 요한, 바울, 번연, 모리슨, 져드슨,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 자신도 육신으로 계시는 동안 그러하셨다. 이들은 우수한 졸업자 중에 몇 명일 뿐이다. 그러나 등록금이 매우 비싸고, 그 과정이 극히 어려우며, 훈련은 너무 엄격하므로 많은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탈락하고 만다. 그 현저한 결과는 넓은 시야와 강한 담력과 예리한 시각과 통찰력 등이다. 철저한 하나님 신뢰와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것과 어린 아이같은 단순함, 따뜻한 동정심과 깊은 겸손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가장 최고의 것은 인내로서, 이것은 가장 진귀한 특성으로, 가장 하나님을 닮는 것이요, 가장 어렵고 긴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훈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을 만난지 3년 만에 거룩한 성으로 가서(갈 1:8), 베드로와 처음 교제를 갖고, 랍비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고자 애를 썼으나, 그 희망은 쓰디쓴 좌절로 돌아가고 말았다(행 22:17-20). 그 다음 몇 해 동안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명확치가 않다. 그는 분명히 시리아와 길리기아에서 수 년을 설교하며 지냈을 것이다(갈 1:21). 이러한 복음 사업을 위한 준비 기간은 안디옥교회에서의 일 년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끝난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한다(행 11:25, 26/13:1-4).

 

특성

 

바울을 복합적인 사람으로 만든 몇 가지 특성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성실성/ 구약의 명령인 “너는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실(완전)하라“(신 18:13)는 말씀은 바울 안에서 명료하게 예증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에도,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박해를 받을 때에도 똑같이 성실하였다. 그가 슬프게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가 의식적으로 불성실한 일은 없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고전 4:4).

성실은 자기를 드러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열심/ 그는 그가 착수한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는 예절의 모든 열심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았다. 이제는 성령님에 의해 새로운 통로로 인도되어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의 범주에 들어왔다. 빌립보서 3장 16절에 나오는 “핍박“(persecute)이라는 말은 빌립보서 3장 14절의 “좇아 가노라“와 같은 말이다.

결단/ 야전 사령관인 몽고메리(Montgomery) 경의 지도자로서의 필수적인 자질 일곱중의 하나가 분명한 결단력이다. 이것은 확실히 이 사도의 뛰어난 특징이었다. 예수님 앞에 완전히 엎드려질 때에도, 그는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질문을 하였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진심으로 하는 이 질문 가운데 그는 이미 절대적인 순종과 충성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의 단호한 성품은 망설이는 것을 몰랐다. 임무를 알면 바로 행했다.

겸손/ 바울은 위대한 회개에서 나오는 겸손으로 살았고, 그 겸손은 점점 깊어갔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 15:9).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그러나 캠벨 모간이 말한 것처럼, 거짓 겸손이 없는 것보다 더 분명한 겸손의 증거는 없다. 그의 사도직과 사역에 대해 도전받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특권과 업적을 자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도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그는 모순된 자신을 보이지 않았다.용기/ 그는 놀라울 정도로 헬라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이상적인 마음의 균형을 드러내주었다. 위험을 찾거나 무모하게 거기 뛰어들지 않은 반면에, 주님의 일이 걸려 있기만 하면 한 순간도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위기와 위험과 반대로부터 조그마한 움추림도 없었다. 그의 도덕적 용기는 육체적 용기와 조화를 이루었다. 그의 서신들은 그가 얼마나 충성스럽게 인사 문제와 교회의 어려움을 가지고, 어지러운 상황 가운데서 두려움없이 온유하게 처리했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훈계나 책망을 해서 자신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피하려고 일들을 태만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는 아니었다(고전 2:3/고후 7:5). 그러나 그는 두려움에서 일어나 승리하는 법을 배웠다.

너그러움/ 좁고 답답한 사람 사울에서 가장 아량이 많고 관대한 사람 바울로 바뀐 변화는 회심의 기적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은 그의 마음을 넓혔을 뿐아니라 그의 마음을 크게 하고 시야를 확대시켜 주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 사랑의 넓이를 점점 더 많이 반사시켰다. 다른 이의 성공에 대한 그의 순수한 기쁨이 그가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그는 도량있고 인내심이 있다고 해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타협하지 않았으며, 위대한 베드로가 관계되어 있을 때조차도 그러했다(갈 2:11).

독립심/ 독립심은 소년에게는 파괴를 가져오나 훈련되고 성장한 사람에게는 위대한 자산이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3, 4).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그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 깊이 고려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이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여 함이라“(고후 8:21).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갈 1:10)라고 묻지만 또한 이렇게 말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되“(고전 10:33).

이 말들은 서로 모순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기에게 청지기 직분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았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기독교 사역의 독소인 개인주의와 무책임한 독립을 벗어날 수있었다. 그의 독립에 있어서 바울은 다른 이들의 양심적인 거리낌을 조심스럽게 존중하였던 것이다(고후 4:2).

친밀함/ 바울은 비이기적인 우정의 천재였다. 많은 다른 위대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고립된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을 사로잡고 열정적인 사랑과 충성을 받는 독특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와 디모데와의 우정은 나이 든 사람과 청년사이의 우정의 모범이 된다. 사랑받는 의원 누가와의 우정은 비슷한 나이와 취향의 사람들끼리의 우정의 좋은 예가 된다. 그는 사교적인 사람이었으며 친구들과 떨어져 있을 때는 철저하게 외로움을 느낀 사람이었다. 요한 마가에 대한 문제로 바나바와 결렬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불일치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가 「발작」(paroxysm)이란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언제나 바나바를 충심으로 생각하였으며, 그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그를 칭찬하였다. 그들 서로의 사랑이 시험을 이겨냈다. 이러한 우정의 역량이 바울이 그리스도인 지도자를 재생산해 낸 능력의 주요한 요인이었다.

감사/ 그의 서신은 자기가 받은 친절과 베풀어 준 호의에 대한 뜨거운 감사가 숨쉬고 있다. 그는 결코 “감사“ 편지를 쓰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칭찬에 후했으며 동정심이 많고 행동은 사려깊었다. 그의 서신의 어조를 볼 때, 세월이 지나갈수록 이러한 자질들이 점점더 두드러져 갔다.

형제 자매의 사랑을 얻었으니

빠른 세상에서나, 땅 속에 묻혀서나,

보라,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흠없는 하나님의 가족, 주님께서도 나를 기다리시네.

영혼에 대한 열정/ 마이어스(F. W. H. Meyers)는 그의 위대한 시에서 바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위대한 영혼에 대한 부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설교자

 

종종 전할 말씀이 내게 임하면

환상은 떠나가고 진실이 드러나네.

사막이나 무리나 성읍이나 강이나

밝은 낙원의 공기 속에 녹아들고

영혼처럼 나는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도다.

정복자가 되어야 할 묶인 자들, 왕이 되어야 할 노예들을

공허한 경이 속에 그들의 한 가지 소망을 들으며,

슬프게 보이는 것들에만 만족하고 있는.

견딜 수 없는 갈망의 용솟음 속에

트럼펫 소리처럼 내 전신을 흔들고

오-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죽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위해 죽으리.

그들 모두를 위해 바쳐져서!


만일 설교를 그 결과에 따라 평가한다면, 바울이야말로 설교자의 왕이었다. 그는 디모데에게 한 그의 말에 대한 바로 그 본보기였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그의 설교는 공공 강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웅변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말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 2:1).

그는 호언장담을 하거나 자기 확신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그는 세상의 궤변에 의지하지 않았다.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고전 2:4).

그는 오직 성령만 의지하였고 “성령과 그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설교하였다.그의 설교 방법은 경우에 따라 다양했다.

때로는 논쟁적이기도 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느니라“(행 9:22).

그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여 그들의 이성을 만족시켰다. 그는 늘 사색과 기도로 분명한 확신을 얻었고 어떤 논쟁도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지적인 겁장이가 아니었고, 그의 신앙에 대한 도전에 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 지당하다고 믿었으므로, 그것을 증명하였다.

-아덴에서: “회당에서는... 날마다... 변론하니“(행 17:17).

-고린도에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행 17:4).

그러나 그는 단지 이기기 위해서 논쟁을 좋아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사람이나 청중을 잃는 희생을 치루어 가면서까지 논쟁을 이기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많은 반대자들을 감동시켰으며, 아덴에서는 몇몇 철학자들까지 감동시켰다.

동시에 그의 설교는 설득력이 있었으며, 간청과 호소가 넘쳤다.

그는 단지 사실과 논쟁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앎으로 사람을 권하노니“(고후 5:11).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 18:4).

다가올 심판에 대한 믿음이 그의 호소에 긴박감을 더해 주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한없이 좋으시기만 한 분이 아니었고, 죄를 묵인하실 수 없으시며 온세계에서 죄를 말살시키셔야만 하는 분이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오도록 설득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또 어떤 때는 그의 설교는 교훈적이어서, 청중들의 특별한 욕구를 채워 주었다.

그는 설교가인 동시에 교사였다. 그는 3년 동안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쳤던 것이다(행 19:9). 그는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살면서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행 18:11) 지냈었다. 사람들은 텅빈 머리로는 믿을 수도 자랄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해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데 투신했다. 그는 종종 가르침의 결론을 내리면서 질문을 던지는 교육 방법을 사용하였다.그의 다양한 접근 방법에서 그의 융통성을 볼 수 있다.

고정된 방법이 없었다. 그는 청중에 따라 메시지를 적절하게 전했다. 그는 로마통치자들이나, 헬라 선생들이나, 아시아의 관원이나 히브리 율법사들에게나 능숙하게 전했다. 그는 회당의 유대인들에게나, 아크로폴리스의 헬라 철학자나 루스드라의 이교도 군중이나 베스도 앞에서 법정의 회의 때에나 자신을 쉽게 적응시켰다.

그의 설교의 어조는 그의 말을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이었다.

“내가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행 20:31)은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흔치 않은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눈물없는 기독교 신앙의 저주“라는 이름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계의 신학 체계가 그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주님께서 아직 미발달의 형태로 주신 진리를 하나님의 영감 아래서, 체계적인 신학과 철학과, “모든 기독교 운동에 답하는“ 윤리로 발전시켰다.

 

기도의 사람

 

기도만큼 그 사람의 영적 생활의 질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은 없다. 그의 서신 가운데 나타나는 꾸밈이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바울의 기도에 우리는 감사해야만 한다. 곳곳에서 기도가 그의 영적 생활에 보조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이었던 것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놀라운 사실은 바울은 어느 곳에서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기도가 없는 심령 때문에 슬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기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실패 때문에 자신을 책망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기도의 확신을 빼앗아가는 정죄감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어떤 형식적인 형태를 따르지는 않았으나 결코 흐트러지거나부주의하지도 않았다.

그는 어디에서도 기도의 정당성을 설명하거나 옹호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를 그리스도인의 타고난 태도요, 영적 생활의 정상적인 표현으로 생각했다. 그의 기도는 때로는 조용하고 명상적이었고, 때로는 타오르는 열정으로 하늘까지 불타 올랐다. 그의 기도는 감사로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가 그의 서신 가운데서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그의 설교보다는 기도에서였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기도는 “계속 되풀이된다“는 의미에서 끊이지 않았다.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롬 1:9/고전 1:4/엡 1:15, 16/골 1:3/살전 1:3).

이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에게는 모든 일이 찬양과 기도의 제목이었다. 또 그것은 사심이 없었다. 그의 기도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에 관한 것이었다. 중보 기도는 그의 영적 경험의 활력소였다. 회심자들과 그가 세운 교회를 위한 그의 기도는 모든 세대의 본이 된다. 그 기도들은 그가 그들의 성장과 발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지 나타내 준다. 골로새서 2장 1절에서 3절까지의 그의 기도의 간구는 새신자들과 새로이 세워진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요약하고 있다.

그의 기도는 꿈꾸는 몽상이 아닌, 분투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 특성을 가장 생생하고 강한 모습의 언어로 사용하여 그리고 있으며, 사람이 일상적인 노동을 하듯 지칠 때까지 수고하면서, 상을 얻기 위하여 경기장에서 다투는 운동 선수처럼, 생명을 걸고 싸우는 군사처럼 가장 꾸밈없이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응답을 크게 확신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응답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이 그의 기세를 조금도 꺾지 못했다. 끊임없이 초자연의 영역에 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기도하면서,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중재를 기대했다. 기도가 부적당한 환경이란 없었다.

어쨌든 바울은 자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열망하였다. 그는 교회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것을 권면했다. 그는 새로 회심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요청하고 있다(살전 5:25).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후 1:11).

그는 자기를 위한 그들의 기도를 예의상 추가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자기 사역에 결정적인 요소로 보았다.

“이것이 너희 간구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빌 1:9).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엡 6:19), 전도할 문이 열리도록(골 4:3), 또 구원을 위하여(갈 1:4) 기도해 주기를 바랬다.

바울의 기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으며, 그 정신은 겸손하고 경건하며, 형식면에서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으며, 표현에 있어서는 열렬하고 확신에 가득차 있다.

다음 장에서는 선교사의 본으로서의 바울을 다루고자 한다.

바울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

 

바울이 갖고 있었던 로마 시민권은 오늘날 기독교 선교사들이 선교 사업 가운데 겪는 두 가지 어려움을 면제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치외법권이 없었다. 그리고 외국 땅이 없었다. 바울이 가는 곳은 어디나 그의 정부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가서 외국의 사법권에 순종해야 하는 외국인으로 일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 제국의 어디에서나 자유로웠다. 그가 빌립보나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호소했을 때, 그는 외국 나라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실제적으로는 모두 다 국내 선교 사역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선교 사역은 자기 나라 국기 아래서 이루어졌다.

두 번째로는, 바울은 자기 문화권으로 갔다는 점이다. 그가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와 거리가 없었다. 기독교는 19세기 동안 동서를 멀리 떼어 놓았다. 확실히 동서는 서로 떨어져 있고 선교사들은 다양한 습관, 생활방식, 소비 규모, 사상, 전통에 있어서 큰 간격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우리들처럼 그런 간격을 뛰어 넘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기와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많은 집단들에게 동료 시민으로 갔다. 하나로 통일된 제국 안에서는 오늘날의 선교사들이 직면하는 문제점들, 즉 자립 문제, 선교사와 자국 교회와의 관계, 선교자금의 사용 등의 문제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 선교사는 이러한 문제가 아닌 그들 자체의 어려움을 안고 사역을 하였다.

-스피어(R. E. Speer)

 


이 그러하며, 그의 모습은 2,000년간 점점 더 높이 우뚝 세워지고 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그의 선교적 열심의 뿌리가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이론도 있다.

맥기퍼트(McGiffert)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회심 전부터 바울은 랍비뿐만 아니라 선교사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것은 자기생애를 참된 의를 전파하는 데 헌신하기 위해서였으며, 의가 발전되는 것을 막는 모든 것과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율법을 실천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모든 것을 타도하기 위해서였다“(행 22:3/빌 3:5-6).

그의 회심은 이러한 선교적 열정을 없애기보다는 그 열정을 더욱 강화시키고 그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첫 번째 기독교 선교사인 바울의 가르침과 모범은 모든 세대를 위한 성공적인 사역의 원리를 세워 놓았다. 그는 세상의 어느 선교사보다도 하나님의 패턴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되고 독특한 자질을 갖추고 있던 그리스도의 도구였다. 다른 선교사들은 한 대륙에 복음의 문을 열어 놓았으나, 바울은 온 세상에 열어 놓았다.

 

소명

 

그의 소명은 매우 독특하고 분명한 것이어서 잘못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이에 대해 증거하였다.

“주께서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행 22:21).

이 악명높은 핍박자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맞아 들인다는 것이 아나니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운 일이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16).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가 평생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받아야 할 훈련에 대해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의 소명이 그를 선교사로 만든 것이 아닌 반면에, 소명은 그의 선교적 열정의 방향을 명확하게 해 주었다. 그는 이제 바리새인의 선교사가 아닌 그리스도의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충성은 율법이 아닌 자기를 사로잡으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바쳐졌다. 점차적으로 그는 이 부르심이 자기 삶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목적이 아니라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의 절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점진적인 계획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행 13:46/ 18:6/ 22:18-21/ 26:16-18).

 

훈련

 

바울은 종교적, 지적으로 우월한 독특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가장 쓸모있게 사용받기 위해서는, 그 영혼의 열심이 꺼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 불타오르는 영혼이 단련을 받아야만 했다. 이것을 위해 물러나 고독한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의 생애에 변혁이 급작스럽고 완벽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의 사고를 재조정하고 신학을 정립할 시간이 필요했다.

스피어(Robert E. Speer)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역은 스릴이 있는 것이었으나 그는 새로운 사역 가운데 즉시 뛰어들지 않았다. 그는 물러나 오랫동안 조용히 묵상 가운데 있었다. 핍박의 뜨거운 흥분이 그가 냉정을 잃도록 하지는 못했고, 그는 지혜롭고 고요한 하나님의 영에 인도되어 물러가 내적인 준비를 하였다. 따라서 그가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에는 남의 것을 빌려온 것이 아닌, 독창적이고, 하나님께 받은 신선한 자기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영적 학교에서의 이 특별 훈련은 아라비아에서 지낸 3년 내지는 그 이상의 기간이었다(갈 1:17-18). 무한히 한적한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복음을 가지고 나갈 자기 사자를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선교사 후보자들에게는 항상 그들의 조급한 열정에는 지루한 예비 훈련을 단축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러나 초기의 훈련을 충성스럽게 받을 때에 더 큰 기회에의 엄숙한 위임을 위해 준비가 될 수 있다. 바울은 사역을 위해 더 넓은 지역으로 떠나기에 앞서 자기 고향 다소에 가서 자신이 사역자임을 입증했다(행 11:25).

 

야망

 

바울이 영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사정없이 자신을 몰아치는 일들이 있었다. 그는 중생하기 전의 야망과는 정반대가 되는 이 새로운 야심에 대해 세 번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의 그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 그리스도인들을 근절시키고 교회의 영향력을 뿌리뽑으려는 것이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며“(행 9:1).

이 야심은 그가 하늘의 환상에 사로잡히기까지, 새로운 정복지로 그를 몰아 넣었다.

그의 야심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야심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의 왕국의 발전속에서 새로운 중심을 찾았다. 바울은 항상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힘을 다하여 새로운 목표를 향해 분투하였다. 이제 그는 자기가 근절시키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영적 축복을 가져다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라“(롬 1:11)고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의 야심의 특징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어떠한 고난이나 사역도 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그는 이 야심을 갖고 충성스럽게 사역하였다.

그의 야심은 행동면에서 볼 때 냉정하고 근면하고 자립적이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살전 4:11, 12).

그는 항상 자기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였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바라는 것이 생업의 의무를 면제해 주거나 부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훈계하였다. 그는 경건한 게으름뱅이가 될 시간이 없었다.

그의 야심을 업적면에서 여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5:20, 21).

바울은 예민한 영적 폐쇄 공포증으로 고통받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는 전진을 향한 만족할 줄 모르는 정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울타리 안에 있고자 하지 않았다. 그가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21)하신 부르심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럴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임무에 충실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국경선을 모르는 세계 시민으로서 끝없는 비젼을 가지고 나라들을 넘나들었다. 필요를 채워주어야겠다는 것이 그에게는 억제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고린도로, 로마로, 스페인(서바나)으로 가장 멀리 있는 로마 제국의 경계와 알려진 세계를 다 돌아다녔다.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서바나로 가리라“(롬 15:24, 28).

이것은 다른데서와 마찬가지로 오늘 세대의 교회에 대한 본이 된다. 오늘날의 교회는 마땅히 모든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 복음을 전할 야심을 가져야 한다. 이 세상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케 하는 것만큼 고상한 목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와 유사한 야심이 모든 위대한 선교사의 상상과 마음을 불태워 왔다.

 


무언가 숨겨져 있다. 가서 그것을 찾으라.

멀리 가서 찾아 보라.

무엇인가 잃어 버려진 그 먼 곳에 가서.

잃어버린 바 되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라!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 백성이 준비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감추어 놓으셨으나

그 때에 주께서 나를 전파자로 택하셨고

나는 그것을 찾았노라.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것이라.

-키플링(Kipling)

 


바울의 야심은 본질적으로 헌신적인 것이었으며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그는 그 자신이 사욕이 없는 사랑에 대한 그의 가르침에 대한 가장 좋은 실례였다. 바울의 전통을 따라서 헨리 마틴(Henry Martyn)은 “탐욕이나 야심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를 위해 온전한 번제로 드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불태우기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동기

 

이러한 불타오르는 야심은 오직 가장 강력한 동기에 의해 점화될 수 있었는데, 바울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그의 선교적 노력을 자극시켰던 요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가장 강한 요소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끄는 힘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반항적인 마음을 깨뜨려 사로잡으셨던 사랑이 그가 육체밖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그 때까지 그를 사로잡으셨다. 바로 이것이 그로 비할데 없는 수고와 고난을 감당하도록 용기를 북돋우었다.

그리고 또한 피할 수 없는 의무감도 있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바울은 자기가 발견한 것을 나누고자 하는 진정한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모두를 포용하는 의무감이 모든 인종적인 장애와 문화적 차이를 뛰어 넘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목적 안에 포함이 되며 모두가 구원을 받을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느꼈다. 사회적 지위, 부와 빈곤, 문명이 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는 그의 빚을 갚아야만 했다.

 

유리한 입장

 

헬라 도시에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세계 선교사로서 독특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로마인의 실용성, 헬라인의 융통성, 히브리인의 강인성 등 세 민족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로마 시민권은 오늘날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당하는 압력을 면제시켜 주었다. 로마시민에게는 외국땅 같은 것이 없었다. 치외법권이라는 곤란한 문제가 결코 제기되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나라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제국은 모두 같은 문화권이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는 없었다. 기록되어 있는 세번의 경우에 그는 자기의 로마 시민권에 대해 하나님을 송축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행 16:37/25:10/27:24).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바울은 유대인의 복잡한 입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을 그들의 경전을 가지고 논박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행 22:3)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율법 지식과 학문을 논란할 수 없었다. 그는 또한 그 당시의 철학 체계에도 능통하였기 때문에 그 추종자들을 그들의 이론에 근거하여 논박할 수 있었다.

그가 소년 시절에 배운 장막을 만드는 일이 생계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교회들에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롭게 권면하고 책망까지도 할 수 있었다. 즉 종종 재정 원조에서 오게 되는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불리한 조건들

 

이러한 장점들이 그의 선교 사역에 크게 도움이 되었던 반면에, 바울은 몇 가지 심한 핸디캡으로 괴로워하였다. 그는 자신과 때로는 동역자들을 위해, 종종 밤낮으로 일해야 했다. 놀라운 일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가 효과적인 선교 사역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주 설교할 마땅한 장소조차도 없었다. 말썽꾸러기로 회당에서 바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는 동역자들의 배반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바나바, 후메내오, 빌레도, 부겔로, 허모게네 등의 일이다. 쓰디쓴 경험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딤후 1:15).

그는 그를 따라다니며 사역을 방해하려고 하는 거짓 선생들과 율법가들의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은 그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그의 사도직에 도전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택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방어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그의 회심자들이 항상 견고했던 것은 아니었다. 육체적인 고난은 일상적인 경험처럼 보였다. 지치고 고통을 당하고 배고프고 목마르며 춥고 벌거벗으며 매를 맞고 옥에 갇히며 돌에 맞고 배가 파선을 당하며 땅에서와 바다에서 위험을 당하는 것은 선교사로서의 체험의 한 부분이었다(고후 11:23-28).

이러한 곤경과 고난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본보기가 된다. 그는 수동적으로 그것들을 견디어 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것들을 사랑하였다(고후 11:30). 그는 그것들을 순전한 악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겸손케 하는 도구로 여겼다(고후 12:7). 그것들은 그에게 은혜의 통로였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제거하시기보다는, 그것들을 슬기롭게 견디어 내기에 충분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고후 12:9). 그것들조차도 자랑과 기쁨의 제목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인도하심

 

그가 회심하는 즉시, 하나님의 선교 사역으로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역은 그가 안디옥 교회에서 여러 해 동안 사역을 한 후에야 시작되었다. 그 교회는 여러 인종의 지도자가 있는 세계주의적인 교회였다. 지도자들이 기도하고 금식하는 동안 성령께서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

바울은 자기가 받은 부르심이 그가 협력하고 있는 교회에 확인되고, 그들이 그 부르심을 확인해 줄 때까지 선교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교회 지도자들의 협조적인 지도자 또한 바울이 받은 개인적인 인도하심을 확인시켜 주었다. 안디옥 교회는 이와 같이 다른 교회들이 다투어 따를만한 좋은 본을 보여 주었다. 선교사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그가 협력하고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인준을 받는다는 것은 교회와 선교사 모두에게 대단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바울이 교회가 파송한 자기보다 더 경험이 많은 동역자와 함께 얼마동안 동역했다는 것은 의미깊은 일이다. 제 1차 전도 여행 때뿐만 아니라 제 2차 전도 여행 때에도 얼마동안 함께 동역했다. 위로의 아들인 바나바, 선배 선교사 밑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의심할 바 없이 이 경건한 사람은 이 훈련 기간 동안 바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그의 후배가 급속히 성장하여 마침내는 팀의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바나바가 그를 질투하였다는 흔적을 찾아 볼 수있다.

마게도니아에서 소명받은 경험(행 16:6-10)은 최초의 선교적 소명을 받은 예가 아니고, 이미 최초의 소명에 응답한 사람을 특정한 사역의 분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사역의 시기와 장소를 선택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아시아와 비두니아에는 나중에 말씀이 전파되었다. 이 시기에는 메시지가 서방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이었다. 유럽은 추수를 위해 무르익어 있었던 것이다. 영적으로 민감한 바울은 성령의 막으심에 순종하여, 자기 뜻대로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드로아에 머물러 기도 가운데 그의 동료 사역자와 함께 의논하며 하나님의 지리적인 뜻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먼 미래의 결과가 그의 순종에 달려 있었다.

바울이 지상 명령(마 28:19-20)에 순종한 후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 이것이 그를 인도해 주는 유일한 한 가지 요소였다. 그는 첫 번째 임무를 끝마치고 아직 복음에 접한 일이 없는 광대한 지역을 향해 나아갔다. 환상을 본 후에도 그는 동료들과 함께 그가 받은 인도하심을 점검해 보았으며 그 때의 모두는 성령의 역사로 한 마음이 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

 

이와 같이 그는 마게도니아로 출발하기 전에, 그 환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며 성령의 증거가 있으며, 형제들에게 동의를 받으며, 그의 판단에도 인정이 가는가를 확신하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이렇게 재확인하였기 때문에 그는 대적당하거나 채찍맞아 등에 피를 흘리며 빌립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방법

 

바울이 마게도니아 사람의 부름에 응답하여 유럽에 들어갔을 때, 이 세상을 포위하게 될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 그가 택하였던 방법들은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 그 이후 수 세기 동안 비슷한 결과를 맺어 왔다.

사도 행전은 최초의 선교 입문서로 선교의 역사와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행전에는 전형적인 설교의 장면과 사건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모든 세대를 위한 선교 사역의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다. 실패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서 원리와 방법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세계 복음화에 흔히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논평이다. 이 책은 의미깊게도 평균 한 세대인 30년 간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새 시대 여명기에 불쌍할 정도로 약한 일군의 남녀들을 통해 그들의 일생 동안 어떠한 일들이 성취될 수 있었는가를 하나님께서 보여 주고 계시다. 이 영감된 기록과 오늘날의 선교 현실을 비교해 볼 때, 놀랍게도 모든 종족가운데 부딪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전면적인 전략에 그의 책략을 택했다. 그의 행동을 살펴 볼 때 그는 점차적으로 대도시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도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장 유력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계속적인 교회 성장을 확보했다. 그는 신자 각자가 자신을 복음 전파의 중심으로 생각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는 집중적인 개인 전도와 더불어 멀리 순회하며 복음 전도에 힘썼으며, 언제나 새 지역이 주님의 주권 하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롬 15:19, 20). 그는 그리스도 이전에 세계를 저주했던 세 가지가 그리스도안에서 제하여졌다는 것을 전파했다(갈 3:28). 복음은 모든 종족과 계급,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위한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전 9:22)는 말은 결코 헛된 자랑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복음 전파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비젼은 그 자신이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도구가 되어 세운 교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성취시키시는 데 있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그는 진리에 응답하는 남자와 여자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신앙 고백 위에, 그는 단순하고 융통성있는 조직을 가지고 있는 자립 공동 사회를 세웠다(행 14:23/ 딛 1:5). 그는 복음의 씨만 뿌리고 떠나 버리는 것에 만족치 않고, 복음의 가치를 들고 나갈 영구적인 기관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목표를 위해 아직은 초기 상태인 하나님의 진리를 조심스레 소개했다. 일단 이 교회들이 세워지면, 그는 개인적인 편지를 보내거나, 돌아가서 방문을 하거나, 동료 사역자를 보내어 그들의 증거를 도움으로써 계속적인 교제를 유지해 나갔다. 그의 생명이 그들의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한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다.

“너희가 주 안에서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살전 3:8).

그의 사랑의 열정이 이와 같았다.

그는 죄의 보편성과 그에 대한 십자가의 충족성에 관한 보편적인 복음을 전했다(롬 1:3-5/3:29-30/5:7-8). 그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절대적인 주인이 되신다는 것과 그가 확실히 세상을 승리하실 것이라는 것을 역설하였다(고전 1:24/빌 2:9-11).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회심한 직후에 그들에게 준 그의 폭넓은 교훈은 인상적이다. 그가 불과 한 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 동안 함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다룬 교리의 기초는 놀라고도 남음이 있다.

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들의 행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자기보다 자질이 덜 갖추어진 사람들에게 책임을 위임하는 데 대가였다. 다른 이들을 훈련시켜 그들에게 일을 맡기곤 했다. 그의 동료 사역자들은 종종 다른 민족, 다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들이 기꺼이 돕고자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그러한 기대가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가 되었다. 그는 장래성있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을 책임감있는 위치에 세웠다(행 16:1-4/엡 6:21-22/빌 4:3).

그의 깊은 우정은 동료 사역자들을 그에게 묶어 놓았고, 그가 도울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들은 그들의 젊음과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들을 용기있게 직시할 수 있었다. 그는 재정적인 동기를 주지 않았고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후원을 받지 않은 반면에, 후한 대접은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이러한 유리한 위치에서 그는 자유롭게 희생적인 헌금을 강하게 권면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회심자들에게 자신의 것과 같은 기준을 세웠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며, 얼마나 훌륭한 선교사인가! 파라(Farrar) 학장은 바울의 자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바울은 베드로처럼 정력적이고 요한처럼 명상적이었다. 바울, 그는 이기심이 전혀없는 영웅, 바울, 종교적 자유의 위대한 옹호자, 바울, 크리소스톰(Chrysostom)보다 더 위대한 설교자, 사비에르(Xavier)보다 더 위대한 선교사, 루터(Luther)보다 더 위대한 개혁자이며,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보다 더 위대한 신학자, 바울, 그는 이방인을 위한 영감받은 사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오스왈드 샌더스 / 충분히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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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주요인물 30인

 

1 고넬료(Cornelilus) - 뜻: 뿔

 

로마군대의 백부 장이었으며 이방인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함으로서 최초의 이방인으로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 된 자. 고넬료는 가이사라에 살고 있는 군대의 백부 장이었다.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으며 늘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욥바에 사는 베드로를 청하여 들으라고 한다. 또한 베드로에게도 계시가 있어 가이사랴에서 찾아오는 이방인의 청을 거절하지 말고 청에 응해라 하니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초대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 님에 대해서 말할 때 성령이 임하여 그 방에 있는 모두가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의 높임을 듣게 되었다. 베드로가 우리 함께 성령을 받았으니 어찌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안줄 수 있느냐하며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하여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며칠 더 묵어가기를 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이는 유대인이 아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고넬료의 믿음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2 나사로(Nazarus) - 뜻: 하나님의 도움

 

나사로는 신약 성경에서 두 사람이 나타난다. 1. 하나는 베다니의 마르다 마리아의 오빠로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살려낸 참으로 행복한 나사로 이고(요 11:4) 2. 또 한 나사로는 비유로 가르치실 때 쓴 거지 나사로도 부자는 지옥으로 가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다고 말씀하셨다.(눅 16:22-23)

 

첫 번째 베다니의 나사로는 예수 님이 죽음에서 살리신 나사로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비유로 말씀하신 나사로는 예나 지금이나 빈부의 차이가 극심한 것을 생각하면 부자와 가난한자의 비유로 우리한테 주는 시사가 많다.

 

나사로는 부자가 버린 음식찌거기로 연명하였으며 몸도 엉망이어서 전신이 곪아터진 상태이었다가, 둘 다 죽어서 나사로는 천국의 아브라함 품에 안겨있고 부자는 음부에서 뜨거운 불꽃가운데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렇게 뜨거운데 에서 고통 받고 있으니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뭍여 내혀를 적시는 일이라도 할 수 있게 청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도 허락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 16:25)

 

스스로 다 위로 받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위로할 일이 없도록 우리는 너무나 욕심이 많지 않은지 생각해 볼일이다.

   

3 노아(Noah) - 뜻: 위로, 휴식

 

아담의 8세손으로 당세의 의인이며 완전한자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관영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 노아를 선지자로 삼아 120년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류를 멸하시었다. 노아만이 의로운 사람이며 순종하였음으로 방주를 만들게 한후 40일 동안 비를 내리게 하여 방주 안에 있는 생물이외는 모든 생물은 다 멸해버리었다. 1년 10일 동안 방주에서 생활한 모든 생물이 모든 생물의 새로운 조상이 되었다. 홍수 때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 부부, 아들 셋, 며느리 셋, 도합8명이다. 노아는 그 후 350년 더 살다가 950살에 죽었다(창 9:) 시대가 악하여(눅 17:27) 홍수로 진멸하시고자 할 때 오직 노아만이 의로운 고로 방주를 만들고 피하라 미리 지시하였다.

   

4 니고데모(Nicodemus) - 뜻: 이긴 백성

 

바리새교인이며 유대 율법사이며 산해드린 공회 회원이었다. 예수님께 밤에 직접 찾아와 도를 물을 때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 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라고 말씀하심.

 

(요 3:2-3)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오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 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 다윗(David) - 뜻: 사랑하는 자

 

아브라함의 14세손 이새의 여덟째아들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위대한 통치자. 베들레헴의 양치는 소년이었으나 물맷돌을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전쟁에 나아가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쳐 죽이고 승전하였다(삼상 10:10-13). 후에 사울 왕에 이어 이스라엘의 2대왕이 되어 이스라엘이 왕정국가로서의 정치체제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 국권을 떨친 이스라엘 왕이다(삼상 16:1-13). 다윗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고 그 분의 말씀 데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비록 인간적인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하나님은 그를 크게 쓰셨던 점이다.

 

 

6 드보라(Deborah) - 뜻: 벌

 

랍비 돗의 아내로서 이스라엘의 유일한 여 선지자겸 사사(*왕정이전에 이스라엘 통치자)의 일을 겸임하였다. 그때는 가나안 왕 야빈의 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에 의해 이스라엘이 심히 학대받고 있었다. 그런데 드보라가 여호와의 명을 받아 바락을 시켜 납달리 자손과 스볼론 자손 일만 명을 모으게 하고 다볼산에 미리 오르게 하고 시스라의 군대를 유인케 하여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시킨다. 이같이 드보라는 비록 여자였지만 통찰력과 판단력이 예민하고 정확하였고 영감이 풍성하여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를 잘 재판하였다. 사사기 5장에 드보라와 바락이 하나님을 노래하며 기록한 시는 "드보라의 노래"로 히브리 인의 산문시중에서 유명한 시가 되었다.(삿 5:) 다음은 드보라의 노래의 일부이다.

 

(삿 5:1-3)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가로되 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양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7 디도(Titus) - 뜻: 공경한다

 

헬라인으로서 신실한 성도의 표상이며 바울의 동역 자요 초대교회의 목회자. 파울의 두터운 인간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복음사역에 크게 기여한 신앙의 사람이며 영적 지도력과 자상함을 겸비한 신앙의 표본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디도를 보내면서 편지(고린도후서)를 보내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디도를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디도에 대한 바울의 믿음을 알 수 있다.

 

(고후 8:23-24)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 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디도서는 디도가 그레데 섬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바울사도가 직접 디도에게 보낸 목회서신이다.

 

 

8 디모데(Timothy) - 뜻: 하나님을 공경한다

 

소아시아의 루가오니오 사람으로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로마등지에 순회전도하니 바울이 그를 가리켜 나와 함께 동행하는 자라 하였고 내 귀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하였다(고전 4:17). 바울의 후임으로 에베소에서 사역하였으며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이 디모데 전.후서이다.

 

 

9. 라합(Rahab) - 뜻: 넓다

 

여리고에 있는 가나안의 기생으로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의 일가도 함께 구원을 받은 신앙의 용사로 인정되었으며 예수의 선조의 한 사람이 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여리고 성의 사정을 정탐하기 위하여 파송된 정탐꾼을

기생 라합이 숨겨주고 살려 보내 줌으로서 구원을 얻었다(수 2:1-6)

 

10 마리아(Mary) - 뜻: 높여진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 목수 요셉의 부인 예수님 이외에 야고보, 유다, 요셉, 시몬과 여러 명의 딸을 둠.

 

(눅 1:30-35)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되고 지극히 높은 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11 마리아(Mary)

 

주께 헌신한 믿음의 여인. 예루살램 교외의 베다니 출신. 마르다의 동생이며 예수 님께서 무덤에서 살리신 나사로의 누이(요 11:1) 예수가 마리아 집에 방문했을 때 그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하여 예수 님의 칭찬을 받았으며 (눅 10:38-42), 나사로를 살리시었을 때는 감사의 표시로 예수의 머리와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아드려(요 12:3:마 26:7) 이는 장차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는 것이라고 예수가 말함(마 26:12-13).

 

(요 12:1-8)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 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두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2 마르다(Martha)

 

헌신적인 봉사의 여인. 예루살렘 교외의 베다니 출신. 마리아의 언니이며 예수 님께서 무덤에서 살리신 나사로의 누이로 실질적인 가장역할을 함. 예수가 마르다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의 동생 마리아가 자기의 일을 돕지 않는다고 불평하다 오히려 예수 님께 꾸중을 들음(눅 10:38-42). 나사로를 살리시었을 때는 감사의 표시로 잔치를 베풀어주고 예수님만이 나사로는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짐(요 11:1-44). 같은 자매이지만 성격은 다르지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 말씀에 대한 사모의정은 들다 컸다.

 

(요 11:38-41)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13 막달라 마리아(Mary)

 

은총에 감사한 여인. 갈릴리 서쪽 막달라 지방에 거주하였으며 상류계층으로 풍요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시달림을 당하다가 예수에 의해 치유 받음(막 27:56 : 막 16:9). 귀신이 쫓겨나자 예수께 감사하고 이후로는 예수를 뒤에서 늘 따르고 예수님이 가시는 데에는 언제나 막달라 마리아 있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뒤를 항상 따랐으며(마 27:56) 빌라도의 법정, 갈보리산의 십자가형과 예수의 임종, 무덤에서 시체가 매장 당하는 것까지를 다 지켜보았다. 죽은 지 삼일 후에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갔다가 최초의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이를 베드로 요한 등 사도에게 알리게 된다(마 28:1-9:막 16:9: 요 20:1-16). 이같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후로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께 헌신한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다.

 

(마 28:1-10) 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우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 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 사대 평안 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 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4 모세(Moses) - 뜻: 물에서 건져 냄

 

통속적인 설명으로는 "건져 낸다"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노예 생활에서부터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인도한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며 정치가이다. (애굽을 나온 것은 1290년 경). 모세는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베겟 사이에서 낳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물에 띄웠는데 마침 애굽의 왕녀가 발견하고 데려다가 양자를 삼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유모로 들어가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양육 받으며 애굽의 학술에 통달하였다(행 7:22).

 

40세 때 동족을 학대한 애굽인을 살해한 후 미디안으로 도망하여 은거하여 있다가 80세에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부름을 받고 형 아론의 도움을 약속받아 애굽으로 돌아와 60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급의 파란만장한 대 자정을 이끈 이스라엘 역사의 지도자. 이로부터 40년간 이스라엘 지도자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는 역사적인 지도자로 활약. 120세에 여호수아에게 대권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남 (출 12:51: 3:10).

 

(출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5 바나바(Barnabas) - 뜻: 권위자, 위로의 아들

 

기독교 최초 개종한 한 삶의 이름이다. 레위 사람으로 본명은 요세이다. 성품이 온유하고 재능이 다양하여 당시 사람들이 바나바를 권위자라고 불렀다. 성신을 받은 후에 토지를 팔아서 사도들에게 바쳐 구제 사업에 쓰게 하였다(행 4:36-37). 사울이 회개한 후 예루살렘에 가서 교우들을 만나고자 하나 모두 핍박자로 알고 두려 워 만나지 않을 때에 바나바가 데리고 가서 잘 소개하였다(행 9:26 -27). 5년후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가 왕성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시찰차 파송하였다(행 11:20). 다소에 가서 바울을 데리고 안디옥에 와서 같이 전도하여 대 부흥을 일으켰다 (행 11:25-26). 주후 45년 바울과 같이 안디옥 교회에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오 는 길에 생질 마가를 데리고 왔다(행 11:30, 12:25). 특히 바나바는 사도바울의 난처함을 돌보아 주는 것을 통해 위로의 아들임을 보여준다(행 4:37:9:26-27)

 

(행 9:26-27)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16 바디메오(Bartimaeus) - 뜻: 디메오의 아들

 

예수님이 여리고성 근처를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뛰어나와 구원을 청한 소경으로 눈 고침을 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 10:46)

 

(막 10:46-52) “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17 삭게오(Zacchaeus) - 뜻: 순결

 

여리고성의 세리장(세무서장)으로 키가 작았다. 부정 축제로 큰 부자가 되었으나 그의 직업과 그의 불의한 행동 때문에 동족들의 멸시를 받게 되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가실 때에 삭개오도 군중들 틈에 끼어 예수를 만나려 했으나 키가 작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마침 옆에 뽕나무가 있어 위에 올라가 예수를 보았다. 이때 예수님은 뽕나무 아래서 발을 멈추시고 삭개오를 불러 내려 그의 집에 묵어가시겠다고 하였다. 그날 밤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철저하게 회개하고 자기가 지금까지 축적한 제산 중에 억울하게 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노라 군중 앞에서 선포하였다(눅 19:1-10)

 

 

18. 에스더(Esther) - 뜻: 별

 

죽으면 죽으리라! 는 비장한 각오로 자기 민족을 구원한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 본명은 하닷사인 것을 왕후의 위에 오를 때 에스더라고 고쳤다. 아비하일의 딸로서 어렸을 때 조실 부모하고 4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아오던 중 왕후 와스디가 폐출 당한 뒤 전국에서 모여온 수많은 아리따운 처녀 중에 내시 헤개의 추천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간택되어 왕후가 되었다 (에 1:19, 2:7-9, 16-18).

 

총리 하만이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모르드개에게 분노하여 전 유대 민족을 죽 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모르드개가 이것을 알고 에스더에게 편지하니 에스더가 왕에게 고하여 그 일을 뒤엎고 전날 왕을 암살하려던 자를 알려 주어 화를 면케한 공로가 있는 모르드개로 총리를 삼고 유 대인을 칙명을 취소하는 동시에 유대인에게 자유권을 주고 적대 행동을 하려던 자를 다 죽였다(에3:5,6, 4:1, 7:-8:).

 

(에 4:1-17)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19 엘리사 (Elisha) - 뜻: 하나님의 구원

 

소명 : 아벨므홀라인 사밧의 아들로 소 12겨리로 밭을 갈고 있을 때 엘리야가 지나 가다가 겉옷을 벗어던지며 부르니 농구를 불살라 소 한 겨리를 잡아 백성에게 주어 먹이고 엘리야를 따라가 제자가 되었다(왕상 19:16-21). 8년 후 엘리야가 승천하려 할 때에 세 번이나 작별 인사를 하여도 듣지 않고 끝까지 따르매 "네 요구가 무엇이냐"고 물은즉 당신의 영감을 배나 달라고 구하여 받아 가지고 또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어가지고 돌아와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였다.

 

이적 : 이스라엘 왕 여호람부터 요아스 시대까지 그가 행한 이적은 다음과 같다.

 

(1)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갈라지게 하고 건너왔다(왕하 2:13-14).

 

(2) 불결한 몸에 소금을 넣어 음료수를 만들었다(왕하 2:20).

 

(3) 벧엘로 가는 길에서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조롱할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찢었다(왕하 2:23-24).

 

(4) 유대와 에돔이 동맹하여 모압왕과 싸울 때 물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물을 내어 그 지경에 가득하게 하였다(왕하 3:20)

 

(5)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에게 기름을 만들어 주어 빚을 갚게 하였다(왕하 4:7)

 

(6) 사렙지방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하고 그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렸다(왕하 4:17,35)

 

(7) 우물물의 독을 제거하였다(왕하 4:41).

 

(8) 바알살리사에서 보리떡 20개로 백명을 먹이고 남았다(왕하 4:40-44)

 

(9)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다(왕하 5:24 눅 4:27).

 

(10) 자기 종 게하시에게 문둥병을 주었다(왕하5:27)

 

(11)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하였다(왕하 6:6).

 

(12) 자기 사환의 눈을 밝게 하여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호위한 것을 보여 주었다(왕하 6:17).

 

(13) 아람 군사의 눈을 어둡게 하여 사마리아로 인도하고 그 눈을 다시 밝게 하여 사마리아 성중에 있는 것을 보게 하였다(왕하 6:18-20).

 

(14) 엘리사가 죽은 다음 해에 어떤 사람이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 놓았더니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는 순간 다시 살아났다 (왕하 13:2-21)

 

예언 : (1) 아람군사가 사마리아를 포위했을 때 물가가 폭동하여 배가 고파서 자식을 잡아먹는 자가 생겼다(왕하 6:24-29)

 

(2) 엘리사가 곡가가 폭락할 것을 예언하였더니 주가 아람군대에게 병거와 병마의 소리와 군대의 큰 소리를 들리게 하시니 그 소리에 놀라 다 도망가니 예언대로 곡가가 폭락 하였다(왕하 7:1-7,16)

 

(3) 하사엘이 아람왕이 되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것을 예언함(왕하 8:1-15)

 

(4) 선지자의 생도 중 한명을 불러 길르앗 라못에 가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될 것을 예언하게 하였다(왕하 9:1-10)

 

(5) 임종에 이르러서도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아람을 세번쳐서 이길 것을 예언한 후 별세였다(왕하13:18) 그는 천성이 청렴 강직했고(왕하 5:15-16), 엘리야는 왕가의 핍박을 받으면서 지냈으나 그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한 관계로 왕가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가 엘리야를 따른 것은 베드로와 비슷하고 이적을 많이 행한 것은 예수님의 비교할 수 있다.

 

엘리사는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뜻이다. 엘리사의 사역은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구국과 애족의 선지자였다. 엘리사는 여리고 지역의 폐수를 소 금을 섞어 양질의 물로 변화시켰다. 그 후 여리고 지역은 농산물과 식수의 염려가 없게 되었다. 그 외에도 신비한 기적을 어느 선지자보다도 많이 경험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초자연적인 사역을 크게 나타낸 선지자였다.

 

그 중에서도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자가 되었을 때 요단강에 일곱 번 씻게 하여 그의 병을 고쳐준 사건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왕하 5장).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냈고 나라의 체통을 세웠으며 아무런 예물을 받지 아니하므로 선민의 품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또한 아람군 대가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해 도단 성을 포위했을 때 아람 군대보다 하나님의 군대(불 말과 불 병거)가 더 많은 것을 확인시킨 일도 있었다.

 

그 뒤 아람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을 때 기근으로 주려 죽게 될 무렵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왕하 7:1) 한 예언과 같이 병거소리와 말소리, 큰 군대의 소리로 인해 아람군대가 도주하여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 엘리사는 66년간 큰 선지자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교훈과 적용 : 첫째, 선지자는 선견자일 뿐만 아니라 한 시대와 한 민족을 깨우치고 지도하는 영적인 안내자이다. 둘째, 엘리사의 권고를 듣지 않은 북조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권고를 듣자.

 

 

20 엘리아 (Elijah) - 뜻: 여호와는 하나님

 

[1] 이스라엘의 예언자 중 가장 무서웠던 예언자. 북왕국 아합왕(B.C. 876-854)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걸쳐 사역하였다.

 

(1) 디셉 사람(왕상 17:1).

 

(2) 아합 왕에게 예언하기를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 하고 그릿 시가에 숨어있을 때 여호와가 까마귀를 시켜 조석 식물을 날라다 주게 했다(왕상 17:1-7)

 

(3) 사르밧 과부집에 유숙하는 중에 한줌의 보리가루와 적은 기름으로 여러 날을 먹었어도 없어지지 않게 하고 그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려 주었다(왕상 17:8-24)

 

(4) 아합 왕 때에 왕과 백성이 바알우상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함으로 견책하고 아합왕에게 참신과 거짓 신을 가려내자 하여 바알선지 4백 명과 아세라의 선지 4백5십 명을 데리고 갈멜산에 올라가 송아지로 재물을 삼고 각기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로 응답함을 보자 하여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이 정오가 지나도록 외쳤으나 응답이 없고 엘리야가 여호와한테 부르짖을 때 불이 내려와 제물과 도랑의 물까지 모두 태워 버렸다. 즉시 백성들을 시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명을 기손 시내로 끌고 내려가 모두 죽였다.(왕상 18:19-40)

 

(5) 왕후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하므로 주의 천사가 어루만지고 식물을 주고 호렙 산굴에 있을 때는 여호와가 강한 바람과 지진과 작은 소리의 세 가지로 보이시고 명령하시기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대신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셨다(왕상 19:1-6)

 

(6) 농부 엘리사가 경작하고 있을때 자기 겉 옷을 던져 따라오게 하였다 (왕상19:19-21)

 

(7) 아합이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포도원을 뺏었을 때 왕 앞에 나타나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으리라 하였다(왕상 21:17-19)

 

(8) 이스라엘왕 아하시야가 사자 50명씩 두 번 보내어 오라 하는 것을 천화로 사루게 하고 세 번 째에야 가서 왕이 죽을 것을 예언했다(왕하 1:9-16)

 

(9) 승천하게 되어 엘리사에게 세 번이나 작별 인사를 하였으나 떠나지 않으므로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니 당신의 영감을 배나 원한다 하므로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면 성취하리라 하고 겉옷을 떨어뜨리고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왕하 2:1-11)

 

(10) 그의 심정과 재능이 세례 요한과 비슷하다 하였다(눅 1:17)

 

(11) 예수님이 변화하실 때에 모세와 같이 나타나서 주님과 말씀하셨다(마 17:3)

 

(12) 야고보는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신다고 엘리야를 비유로 권면하였다(약 5:17)

 

*그는 험상한 모습과 탈속한 옷차림, 비호같이 빠른 걸음, 기근도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건장한 모습, 굴에서도 살 수 있는 억센 습관이 그의 특색이었다. 여호와 신의 예배에 절대적인 선지자였고 국가 운명에 대하여 예민한 통찰과 염려를 한 애국적인 인물이며 구약 선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21 여호수아(Jehoshua) - 뜻: 여호와의 구원

 

[1] 사사 여호수아.

 

(1) 에브라임지파 눈의 아들로서 본명은 호세아다(민 13:8).

 

(2) 모세의 수종자가 되어 항상 회막곁에 있었다(출 33:11)

 

(3) 가나안에 보낸 12정탐꾼 중의 한 사람으로 10지파의 정탐을 보고 할 때에 민중을 낙담케 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으나 여호수아는 갈렙과 같이 강경히 말하기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그들의 신은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니 두려워 말고 쳐들어가자고 하였다(민 13:1-14:10)

 

(4) 그래서 여호와가 20세 이상 된 자로 여호와를 원망한 자를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가리라 하셨다(미 14:26-32)

 

(5) 여호와의 명령으로 제사장 엘르아살이 회중의 목전에서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모세의 후계자를 삼았다(민 27:18-23).

 

(6) 여호아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개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같이 있으리라 하셨다(신 31:23)

 

(7) 모세가 죽은 후에 싯딤에서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에 보냈다(수 2:1)

 

(8)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12인을 택하여 언약궤를 메우고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너서 길갈에 진치고 여리고 성을 쳐서 취하는 동시에 전일 2인의 정탐꾼을 숨겼다가 돌려보내준 기생 라합을 구원하였다 (수 3:11-17, 5:10-15, 6:20-27)

 

(9) 아이 성을 치다가 패하자 그 장본인 아간을 잡아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 죽인 후 아이성을 다시 쳐서 불살라 황폐케 함(수 7:4-29)

 

(10) 계속 가나안 7족을 멸하여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하고 자기는 에브라임산지 딤낫세라를 받아 그 성읍을 증건 하고 거기 거하였다(수 19:49-51)

 

(11) 살인한자를 위하여 요단강 동편과 서편에 도피성을 셋씩 건설하고 임종시에 백성을 세겜에 모으고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권면한 후 별세하니 110세 였다. 딤낫세라에 장사 하였다 (수 19: 수 20: 24:1,14,19,20; 행 7:45)

 

[여호수아]("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 는 그 이름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평생토록 헌신한 하나님의 종이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 눈의 아들로 태어난 여호수아의 본래 이름은 [호세아]("구원"이란 뜻)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혹독한 학대를 받으며 노예 생활을하고 있을때 태어나 자유를 구가할 해방의 날을 고대하며 성장하였다.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애굽의 억압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이스라엘 백성의 숨통을 죌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룬 모세를 따라 귀향길에 오른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무려 40년간이나 모세의 부관으로 있으면 여호수아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연단을 받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긍정적인 신앙을 소유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는 탁월한 군사적, 정치적 역량까지 갖추어 민족의 지도자로서 쓰임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계속되는 고난과 역결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고 소망을 잃지 않는 여호수아는 결국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받게 되었다.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을 아는 여호수아는 두렵고 떨릴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권면과 약속의 말씀으로 큰 힘을 주시고 백성들까지도 지원하여 순종을 약속함으로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로서 첫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성령 충만하여 지혜가 뛰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다. 오직 야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행력 앞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한 여호수아의 군대는 가나안 족속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하나님께 약속받은 땅을 점령해 나갔다.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이 야훼의 성전임을 아는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복종함으로써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해와 달의 운행까지도 변경시키시고 그의 백성과 함께 전쟁에 임하시므로 이스라엘이 거두는 승리의 전과는 차라리 당연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믿음과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을 치루고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 여호수아는 각 지파별로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 자신의 몫에 욕심 을 내지 않고 먼저 백성들에게 공정하게 토지를 분배해 준 여호수아는 자신을 위해서는 작은 산지만을 차지할 정도로 청렴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처럼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인 여호수아도 두 가지 실수를 보였다.

 

가나안 정복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기브온 거민들과 언약을 맺음으로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씨앗을 남겼다. 또한 후임자를 육성치 못함으로 인하여 사사시대에 이르러 혼란을 야기케 하였다.

 

그러나 85세에 민족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아 110세에 죽음을 맞기까지 자신은 물론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며 스스로 본을 보인 여호수아의 생애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어떠한 위험이 다가와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약속의 땅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성경: 출애굽기 33장11절.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본명은 호세아였고 에브라힘 지파의 눈의 아들이었습니다(민 13:8). 일찍부터 모세의 수종자가 되어 측근에서 그를 도왔으며 모세의 감화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종교심이 강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은 일에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청년기에 이미 영적인 사람으로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회막을 떠날 줄을 모르고 기도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출33:11) 또한 12명의 정탐꾼을 각 지파에서 선발하여 가나안땅에 파송하였을 때 여호수아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때에 열 사람의 불신앙의 보고와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의 보고는 유명한 간증이 되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허락 속에 모세의 안수를 받고 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민 27:18-23). 그 후 가나안 7족속을 진멸하고 그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지도자의 궁핍을 느끼지 못 할 만큼 여호수아는 모세의 자리를 잘 지켰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선민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자기들의 사명을 만족스럽게 바로 감당했고 선민의 지도자의 자질을 잘 갖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교훈과적용 : 첫째, 여호수아는 영적인 자질도 좋았고 성막을 떠나지 않는 영적인 갈급함이 하나님의 큰 종이 되게 하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둘째, 12정탐꾼을 대신했던 그의 믿음은 그 민족을 대신한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22 요나단 (Jonathan) - 뜻: 여호와께서 주심

 

여기 소개하는 요나단은 사울왕의 아들이며 다윗의 친구 요나단을 말한다. 사울왕이 군사 일 천명을 선발하여 요나단에게 맡긴 후 베냐민 기브아에 주둔 케하여 블레셋의 침공을 막도록 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군대의 용사로 다윗처럼 오직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운 신앙의 용장이었다.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 14:6)

 

어떤 날 사울왕은 블레셋과 싸워 승리하기 전에는 아무도 음식을 먹어서 안된다는 금식령을 선포했다. 요나단은 이 선포를 듣지 못하고 지팡이로 꿀을 찍어 입에 넣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사울왕은 맹세코 요나단을 죽이려 했으나 백성들의 탄원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삼상 14:27-52).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요나단은 그의 무용과 신앙에 감동되어 그를 영원한 벗으로 받아들이고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세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나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 이었더라](삼상 20:17) 다윗은 요나단의 우정으로 인하여 몇 차례 위기에서 구원받게 되었으며 이 은공의 보답으로 다윗은 요나단이 길보아산에서 전사한 후 그의 절뚝발이 아들 므비보셋에게 극진한 후의를 베풀었다(삼하 9:1 -13). 이들의 우정은 창공의 태양 같고 황야의 꽃처럼 맑고 아름다운 것으로 참 신앙인들만이 쌓을 수 있는 금자탑과도 같은 것이었다.

 

교훈과 적용: 첫째, 사욕이 없는 사랑의 봉사는 그 자손에게까지 축복의 조건이 된다. 선한 일에 부요하자. 둘째,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 은혜는 우정에 대한 의리였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

 

 

23 요셉(Joseph) - 뜻: 그는 더하실 것

 

요셉은 라헬의 첫 번째 아들이며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대단히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만득자로 얻은 아들이어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열한 단의 곡식 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말함으로써 형들의 미움과 시기가 날로 더해갔습니다(창 37:3-11).

 

그 형들이 도단에서 양을 칠 때에 그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형들의 목장을 찾아갔습니다. 이때에 형들이 의논하여 요셉을 죽이기로 결의하였고 르우벤의 제의에 따라 구덩이에 넣게 되었으며 다시 유다의 제의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함께 포함되고 있음을 그림을 보듯이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애굽의 장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보디발의 아내가 끈기있게 유혹하였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자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반복되는 고통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첩경이 되었습니다. 자기가족을 애굽 고센 땅에 이주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을 애굽의 국장같이 치렀고 요셉도 1백10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모세가 그 유골을 들고 나와 세겜에 안장되었습니다(수 24:32)

 

교훈과 적용 : 첫째, 거듭되는 고난 속에서도 충성되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받은 축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힘든 유혹을 물리쳤을 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24 모르드게(Mordecai)

 

바벨론 신 마르닥에서 유래된 이름일 것으로 추측된다. 에스더의 사촌 오빠이며 양아버지(에 2:7).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가족은 여고니아와 같이 포로가 되었다(에 2:5-6). 아하수에로 왕 암살음모를 미연에 방지하였다(에 6:1-11). 여기서 우리는 모르드게가 에스더의 오빠로 알려저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며 에스더의 믿음이 워낙 두드러지게 이야기됨으로 모르드게는 그저 에스더의 오빠로서만 알려지고 있슴이 진정한 모르드게의 신앙이 무시되는 듯한 느낌이 있어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에스더 4장에 보면 처음부터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 아니고 그의 오빠 모르드게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비가 된 것도 다 이를 위하여 된 것이지 너와 네 가족의 안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강력한 압력이 있었기에 에스더가 그러한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됨을 다음의 두절에서 극명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모르드게의 믿음과 지혜가 에스더에 못지않음을 알 수 있다.

 

(에 4:13-14)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25 서위렴2세( William Hamilton Shaw)

 

한국의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마친 미 해군대위- 그의 아버지 서위렴 선교사가 그의 아들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목산채플을 건축하여 봉헌하니 이가 바로 목동캠퍼스에 있었던 대학교회였다.

 

 

26 아브라함(Abraham) - 뜻: 열국의 아버지

 

본래는 아브람 이었으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이라 고쳐주었다.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음. 신앙의 아버지라고 함.

 

 

27 이삭(Isaac) - 뜻: 웃음

 

아브라함이 100세에 사라에서 얻은 아들 이삭을 얻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슴. 40세에 외종형 부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취하여 60세에 쌍둥이를 낳으니 곧 에서와 야곱이다((창 20:1-5, 22:2-13).

 

 

27 나오미(Naomi) - 뜻: 나의 즐거움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의 아내, 룻의 시어머니.

 

28 룻(Ruth) - 뜻 : 자손

 

[1] 셈의 아들(창 10:22)

 

[2] 모압 여자로 시어머니에게 효성한 한 여자(룻 4:13, 마 1:5).

 

룻기 1장15-17절. 룻은 "우정"이라는 뜻이다. 룻은 모압여자로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모압에 이주해 사는 기간 그의 아들 말론과 결혼한 나오미의 며느리(룻1:4) 이후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고(룻1:5) 효성스런 며느리로(롯 1:6-18), 보아스와 재혼하고(룻 4:9-13), 오벳을 낳았다(룻 4:17). 그의 이름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다(마 1:5-16).

 

 

29 한나 (Hannah) - 뜻 : 자비

 

(1) 엘가나의 두 아내중 한 사람으로 사무엘의 어머니.

(2) 기도를 드려 사무엘의 얻어 하나님에게 바침 (삼상 1:1).

(3) 삼상 2:1-10의 한나의 찬가는 눅 1:46-55의 마리아의 찬가와 비교 된다.

 

[한나] ("은총"이라는 뜻)는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두 아들 중 하나인 선지자 사무엘의 모친이다. 그녀는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므로 다른 아내로부터는 미움을 받았다. 즉 브닌나가 한나를 시기한 것은 한나가 갑절이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대한 반항이었다. 한편 한나는 나이가 넘도록 자식이 없었으므로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제사드릴 때에 " 만일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다니다"라고 서원 기도를 드렸다.

 

유대인은 무자함을 일종의 저주로 비관했지만 한나는 누구를 원망치 않고 하나님께 하소연했던 것이다. 그리고 엘가나는 한나를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라고 위로하였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기도하는 것을보고 술에 취한 줄 오해하였지만 한나의 중심 소원을 들은 후 그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응답하시길 소원하였다. 한나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져 아들을 얻게 되는데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으며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아들을 바쳤던 것이다(삼상 1장). 사무엘은 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여기서 몇 가지 한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

 

 

30 바울(Paul) - 뜻 : 작은 자

 

1) 출생과 교육 :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으로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다. 열심 있는 자이며(행 22:3) 청결한 양심으로 선조 때부터 섬기던 하나님을 섬기고(딤후1:3) 할례를 받았고 자랑할 만한 베냐민 지파요 율법으로는 바리세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의 선두에서 핍박하던 사람이니 바리세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도무지 결점이 없는 사람이었다(빌 3:5-6).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었다(갈 1:14).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다(행 22:26-28).

 

(2) 성격: 논리의 힘과 능력의 결합 즉 이성과 영력이 일치된 것이 특색이다. 결점이 있다면 너무 성급하여 후회하는 일이 있었던 점(행 15:39, 23:4-5). 자기 몸에 가시가 있다고 말한 것은 성격의 나무람 같다(교후 12:7).

 

(3) 회개: 기독인들이 율법을 경히 여기고 성전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었다(행 6:31). 스데반 죽이는 일에 가담한 것은 의분심에서 였다(행 7:5-4:3). 그 후 기독교인을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향하였다(행 9:1-2).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크리스천이 되었다(행 9:1, 22:4, 26:9).

 

(4) 선교활동: 공중 앞에서 회개한 사실을 간증하고 전환된 마음을 수습하고 앞날을 위한 준비로 아라비아에 은퇴하여 더욱 힘을 얻고 돌아와 유대 인에게 예수가 기다리던 그리스도임을 전파하였다(갈 1:16-18, 행 9:22).

 

신약성서 27권중 서신(Epistle) 혹은 "편지"(Letter)의 형태로 된 글이 21개나 있다이 중에서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것이 13개이다. 이를 다시 바울 한사람으로만 발신된 것으로는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가 있고 고린도후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는 "바울과 디모데" 두사람의 이름으로, 또한 고린도전서는 "바울과 소스테네" 두 사람 이름으로 발신되었고,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세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된 편지이다. 이를 편의상 아래와 같이 구분해서 연구한다.

 

(1) 초기 서신들 : 데살로니가 전서, 후서

(2) 주요 서신들 :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

(3) 옥중 서신들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4) 목회 서신들 :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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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1”

 

 

김경종은 1894년에 함경남도 홍원군 홍원읍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린시절은 선천적으로 온유한 성품에 어질고 착한 기품을 갖고 자랐다. 그는 목회에 꿈을 갖고 그의 나이 서른이 지나 1929년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

수하고 졸업하였다. 졸업을 한 후 첫 목회지는 함남 혜산군 혜산읍 혜산리장로교회로 1932년까지 봉직하였다. 이 혜산교회는 1916년에 설립, 당시 갑산군의 김택서의 전도로 이인규의 사가에서 첫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수년간 기독교의 여성 교육자이며 한국 최초의 의학박사이며 전도자였던 신마리아가 활동하였다. 김목사는 이 혜산교회에서 1933년에 다시 함경남도 함흥에 운홍리교회로 옮겨 활동하였다. 여기서 일본에 건너가서 신학을 더 공부하고 1934년 도쿄에 있는 아오야마학원 신학부를 졸업하고 다시 귀국하여 고향인 함경도로 돌아와 운홍리교회를 다시 맡아 목회에 전념하였다. 1940년에는 함남노회장에 피선되어 활약하기도 하였다.

 

 그는 신사참배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였던 인물로,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감옥에서 혹심한 고문을 받으면서 형을 살기도 하였고, 늘 일본 경찰 감시를 받아오기도 했다. 여러 고문을 받으면서도 1943년 9월 '일본 천황은 신이 아니다 다만 피조물인 사람일 뿐이고 그런 고로 경배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 이와 같은 일 때문에 그는 5개월간이나 형무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과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인에 대한 탄압은 극심하였고 신사불참운동으로 인하여 교회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외국 선교사들은 강제 추방되고 투옥된 신자 수만도 무려 2,000명이나 되고 폐지되었던 교회는 200여처, 감옥에서 순교한 자만도 무려 50명이나 되었다.

 

일제는 신사참배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궁성요배 또는 동방 요배라 하여 일본 왕이 거주하고 있는 궁성을 향해 왕의 은덕으로 살게 함을 감사하는 예의의 표시로 강요하였다. 궁성요배를 실시한 후에 예배가 진행될 수 있도록 강요하였으며 각 가정과 교회 안에 가정 제단의 신도를 강요하였다. 그는 이에 목숨 걸고 대항하였으며 결국 일제는 패망하고 나라와 민족은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에는 무신론 공산주의가 교회와 교인들을 탄압하는 것은 일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후일을 기약하면서 1948년 자유의 땅 이남으로 눈물로 월남하게 되었다.

월남한 후로 서울 후암교회를 맡아 2년간 사역하며 복음을 전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다. 서울은 어이없게도 함락되고 또 한바탕의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김목사는 가족들을 떠밀어 부산으로 피난시키고 홀로 서울 후암교회에 남게되었다. “북에서도 양들을 두고 온 제가 서울에서 또 도망친다면 저는 예수님을 두 번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는 폐허가 된 서울에서 남겨진 양들을 지켰다. 결국 자신은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북한 공산군들에게 납치되었고 순교의 삶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끝까지 교회와 양을 지켰던 김목사는 1950년 수많은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김경종[金庚鍾, 1895년 10월 17일-1950년 8월 23일

-참고문헌

# 한국 컴퓨터 선교회 http://kcm.kr/

# 한국 교회 순교자 기념 사업회 http://kcmma.org/board/

# CGN TV ‘예수님을 바로 보여주는 사람들’  [보기]

 

[출처] 2017. 06월 이달의 인물(국내): 김경종 목사 [金庚鍾, 1895년 10월 17일-1950년 8월 23일]|작성자 더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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