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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찬송가 425장(217)를 작시한 “폴라드( Pollard)”에 관한 이야기>

 

 

 

 

찬송가 425장(217)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입니다. 이 찬송가를 작시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폴라드( Pollard)”라는 분입니다 그녀는 시카고 지역에 모 사립학교 여 교사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신유 부흥 집회(병 고치는 집회)에 가서 기도를 받고 난후 더 악화가 되었습니다. 신유 부흥사는 이단성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이 악화되어 학교에 가서 가르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중 선교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읽던 중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그 후 성경 공부에 몰두했고 기도 모임에서 자신의 뜻을 결정한 후 함께 기도하고 영혼의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몸의 건강이 회복 되었고 선교사로서 헌신하여 생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폴라드는 은퇴한 이후에 1902년 어느 고요한 밤 한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한 노쇠한 백발의 여인에 의해 드려진 기도가 바로 널리 불려지는 이 찬송의 영감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 백발의 여인은 이 기도에서 축복과 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기도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우리 생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좋사오니 주님의 뜻과 섭리만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직 그녀의 지금까지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구했는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 기도를 폴라드가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예레미야 18장 4-6절의 묵상 했습니다.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 184-6)

 

이 말씀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주제로 그 밤이 밝아오기 전에 이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날도 이 찬송가는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1절 가사입니다.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 분별이 어렵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힘드니 어떻게 살아가려고 합니까?

 

찬송가 431장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합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쌀이 되든지 죽이 되든지 뜻대로 합소서."라고 하는 식으로 삽니다. 모든 것이 될 대로 되라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 분별이 어렵고 혼란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민주적이고 선택의 기회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과거 사회와 현대 사회를 비교해 봅시다. 과거에는 결혼 상대자를 누가 대부분 결정 했습니까? 대부분 부모님들이 결정했습니다. 국가나 사회의 흐름대로 결혼을 했습니다. 가령 양반 집안사람들은 양반 집안사람끼리 했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주인자녀들과 눈이 맞았다가는 죽임을 당하던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 전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택의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부모들의 의사에 따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그러지 않습니다. 사귀든지 상대방을 찾아서 결혼을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결혼을 위해 선택한 서로를 위해 뭐라 말을 못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은 말합니다. "너의 뜻들이 그렇다면 결혼 해야지 어찌 하겠느냐."입니다. 때로는 민주적인 사회는 선택의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에 뜻 분별이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2. 성경에 구체적인 결정이나 지시 사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기도 많이 하고 성경 꼭 보고 하루 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기도하고 시작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성경을 펴서 읽습니다. 기도 하면서 눈 감고 눈뜨자마자 성경을 펼쳐 들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본 성경 이 가롯 유다가 예수님 팔고 목매어 죽은 구절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주신 말씀이니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질것을 믿고 '아멘' 하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하고 성경을 폈습니다. 그랬더니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 말씀은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목매달아 가롯 유다 처럼 죽어야 하는가?

 

도저히 안 되겠다, 또 기도하고 성경을 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의 피땀 흘려 기도하신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 답을 주시는구나'하고 더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뭐라 기도 하셨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면 목매달아 죽어야지요. 성경은 이런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구체적인 결정 사항이나 지시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때를 만나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 분별이 혼란을 일으킬 때 어떻게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까?

 

1. 호기심과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앞일을 해결 하려는 태도는 금물입니다. 왜냐하면 1) 미래를 아는 지식은 때로는 우리를 해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무당이나 신접한자 점쟁이를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 18:9-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현대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교회에서 신자들이나 목사들 가운데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목사 무당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라스베가스에 제법 있다고 합니다. 축복 예언 기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가령 도박으로 돈을 따려는 사람이 목사한테 가서 '축복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헌금 명분으로 돈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통해서 젯팟이 터졌다고 가정 해 봅시다.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가령 복권(라로리)을 샀습니다. 교인으로서 호기심과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앞일을 해결하려고 즉 집안 재정도 어렵고 교회도 어려우니 지금 200만 불 금액에 당첨되기 위해 복권을 이번 한번만 사기로 했습니다. 당첨되면 교회 헌금 백만 불 하고, 반은 집 한 채 사고 등등 뜻을 세웠습니다. 당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호기심으로 요행수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점치는 무당이나 똑같은 일입니다. 만약에 교회 드리는 헌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분명하게 성경이 그 답을 말씀 합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처럼 인색함으로 아니하고, 억지로 아니하고, 헌금 액수와 상관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호기심이나 요행수나 라스베가스의 젯팟으로 복권이 당첨되어 드리는 헌금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 감사 하는 마음으로 헌금은 드릴 수 있을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일상생활에 닥쳐오는 많은 일들은 호기심과 요행수나 이기심으로 앞일을 해결해 보려는 태도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할 수 있도록 생각하게 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성경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해야 합니다. 1. 생각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적인 명상을 해야 합니다. 2. 실천도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으로 성령의 인도로 일어나는 표징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말씀 두 곳만 소개 합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으로 평생토록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실천에 옮겨야 할 말씀입니다.

 

그중 하나가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말씀입니다. 세 가지 원칙은 환경에서 표징을 일으킵니다. 가령 도둑질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 보려 합니다. 먼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분별해 보려고 합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하면서 기도합니까? '오늘 이집 귀한 것 잘 훔치게 하옵소서'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까?

 

가령 도둑이 기도 합니다. '하나님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 알라 신이여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소원입니다. 귀중품 물건은 훔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응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살전 5:16) 말씀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약 4:2)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했습니다. 성경에 기도해서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이유를 말씀합니다. 정욕으로 사용 하기위해 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도둑질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분별해 보려고 합니다. 도둑놈이 도둑질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 노래하면서 기쁨으로 도둑질합니까? 못합니다. 들킬까 봐서 조마조마합니다. 바스락 소리도 못 냅니다. 알람 장치를 부숩니다. 주인이 나타나면 도망갈 준비를 하든지 위협하려고 칼을 들었든지, 물총 아니면 가스총이라도, 새총이라도 준비해 가지고 있습니다. 집을 털고 나온다 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왜요? 주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신고합니다. 인상착의를 말합니다. CCTV 에 촬영된 증거로 인해 잡힐까 봐 기쁨을 잃고 살아갑니다. 도둑놈은 물건을 훔친 후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 기쁨은 “항상 기뻐 할 수” 있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뻐하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말씀 안에서입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빌립보 옥중에서 죄수의 몸이 되어 신체적으로 부자유했지만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살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쁨이 없거나 빼앗겨버린 일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도둑질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분별해 보려고 합니다. 가령 도둑놈이 도둑질한 후 감사할 수 있을까요? '범사에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둑한테 기다리는 것은 잡히면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기로 결정된 자신의 운명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매일 붙잡힐까 봐서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왜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계명에 어긋난 일들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간음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남을 이간질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남을 것을 나쁜 방법으로 빼앗으면 그렇습니다. 왜 염려가 되고 기쁨이 없고 기도도 안 되고 감사가 없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으로 되어진 일들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으로 확신을 주십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평생토록 잊지 말고 (살전 5:16-18) 말씀을 먼저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라고 실천에 옮기기 전에 다시 묵상 하십시오. 집안, 가정에 가훈으로 삼아도 좋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업을 말씀에 근거한 기쁨이 있습니까? 감사가 됩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뜻으로 보셔도 됩니다.

 

세 가지가 다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일을 연기해야 합니다. 포기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를 선택할 때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모든 일에 행동에 옮기기 전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발견하기를 원할 때 세 가지 원칙을 정하십시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세 가지 원칙은 환경의 증거에서 표징을 일으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살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민할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고민하는 동안 주셨던 말씀입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았습니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원어적으로 볼 때 '하나님에 의한 고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허락하신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는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피할 수 없이 직면하는 문제, 즉 '고민' 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도 문제들을 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할 근심이 있을 때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근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어려울 때 말씀에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 말씀 한 것처럼 혼자서 “천부여 의지 손들고 옵니다.” 회개합니다.

 

어려운 이민교회 한 이 오면 손꼽아 기다리고 반가워 헌신적인 마음으로 붙잡아 놓으면 몇 개월도 못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날 때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까?'라고 물어 봅니다. 그때 '주님, 제가 부족합니다' 부족한 것을 회개합니다. 기도하는 동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이 떠나갑니다. 그리고 찬송이 나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그러면 마음에 평안을 얻습니다. 주님의 뜻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강 같은 기쁨으로 일어납니다.

 

요즈음 전 세계가 경제 위기 속에서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개인도, 사업도, 진로도 교회도 모두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데 고민을 안겨주는 살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때로는 이 고민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며 각종 질환을 유발시킵니다. 육신을 극도로 상하게도 합니다. 그래서 고민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가치 있는 고민이 되도록 하려면, 세상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들 내면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을 겪을 때에, 이런 고통이 왜 내게 있을까? 라고 원망하며 고민하기보다는 나는 왜 그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가? 그리고 나는 왜 그 고통에서 만족한 것을 찾지 못하는가? 라고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왜 나는 많이 가지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할까?'라고 고민하기보다는, '왜 나는 많이 가지지 못한 그 곳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또 행복하지 못한 조건에서 행복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힘들다고 고민하기보다, 믿음의 길이 최고이며 기쁨의 것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향하여 ''저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라고 미워하며 고민하기보다 ''왜 나는 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까?' '왜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까?' '왜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없을까?' 라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내가 모욕과 무시를 당해야 하나?' 라고 고민하기보다, '왜 나는 이런 모욕과 무시에 예민해야만 하는가?' '왜 이런 일로 이렇게 민감하고 불쾌해야 하는가?' 라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자랑할 수 없어서, 높아질 수 없어서, 인정받지 못해서 고민치 말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큰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결과에 대한 것이기 보다 원인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의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대한 고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 대한 고민인 것입니다.

 

이제 세상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모든 고민을 하나님의 뜻으로 하는 고민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리하시는 결과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 비추어보면 하나님이 뜻대로 하는 고민은 후회 없게 해주고, 회개의 삶을 만들어 주며, 구원의 삶을 이루어주는 유익한 결과를 맺도록 해줍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어야 하며 하나님이 처리하시는 결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하는 나의 모든 고민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자신에게서 나오는 세상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는 것이 되도록 하십시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 입니다.죄인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 안에 우리 생의 주인이신 주님께 우리 고민의 내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두 내려 놓아야 합니다. 내 가정과 교회의 고민을 들고 있으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성령님이 고민 운데 일하시도록 하십시다.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때 그 고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의 뜻으로 해결되어지는 응답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가치 있는 고민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찬송가 "내 주여 뜻대로"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였던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umolk) 목사님이 지은 찬송입니다. 1618년에 시작된 구라파의 신 구교 전쟁은 1648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30년 동안 구라파를 피로 물들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신구교의 대립은 여전했고, 건물은 폐허가 됐고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1730년 슈몰크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져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백내장으로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넓고 넓은 교구를 심방하며 살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슈몰크 목사님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완전히 불타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잿더미를 파헤치자 그 속에 어린 아들 형제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그때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통곡하여 울면서 드렸던 기도를 훗날 시로 옮겨 만든 찬송이 바로 "내주여 뜻대로"인 것입니다.

 

영어 가사를 그대로 직역하면,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당신의 뜻이 내 뜻이 되게 하소서. 슬픔 중이나 기쁨 중에 당신의 것으로 날 인도하시고, 내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라는 것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내가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하면 그것은 아집이 되고 고집이 되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잘 그럽니다. 그러나 주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려고 하면 위대한 믿음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과 내 뜻, 주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결코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과 뜻이 내 생각이나 뜻보다 천만 배 크고 높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땅에도 주님의 뜻의 저의 삶에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 위에 적어도 60억 이상의 인구가 있다면 60억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뜻은 무엇입니까? 마귀의 뜻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집니다. 오늘부터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애통하며 회개하며 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증표를 확인하십시오.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옵소서."(시 143:10)라고 고백하며 평생 주기도문이 가르치는 삶을 살아가기를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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