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번역 및 추천 도서 「천국은 확실히 있다」, 비성경적 위험천만
예장합동 소속, 성남시 분당구 한돌교회 담임목사 림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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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확실히 있다!」(HEAVEN is so REAL)
토마스 주남(여) 씀, 조용기 옮김, 서울 말씀사, 2004.
- ‘계시관. 천국관. 기독론’등이 비성경적, 비신학적으로서 ‘위험천만!’
그리스도의 거룩성에 흠집! 그리고 십계명의 제2계명과도 충돌되며, 성경계시의 최종성과 만족성을 위협하는 ‘제2의 계시록?’처럼 주장- 정통 기독교 신자들로서는 대부분의 내용이 용납하기 어려운 것들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조용기 목사는 ‘이 책은 신학적이거나 교리적인 저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신학적이거나 교리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주님과 함께 천국을 구경하신 토마스 여사의 진솔한 체험이 사실 그대로 담긴 기록으로 받아들이고 읽으면 좋을것’ 이라고 말한다.(4,5쪽)
신학적 또는 교리적 논쟁거리도 안 되는 것처럼 말하는 비성경적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어 ‘주님의 크신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문이다. 저자인 토마스 주남은 자신의 천국 체험을 철저하게 성경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17쪽)
이것은 성도들이 1세기의 초대교회 당시 베뢰아 교인들처럼 성경신학을 통해서 ‘옳음과 그름을 분별’하려는 노력을 사전에 봉쇄하여 거짓되고 악한 것에 ‘눈멀고 귀먹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바른 신앙은 바른 신학에서 나오며, 바른 신학은 바른 성경 해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번역한 책에 관해 다음 몇 가지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Ⅰ. 계시관의 문제점 (- 제2의 계시록?’처럼 주장)
- 성경계시의 최종성과 만족성을 부인!
(16,17,96,117,152,178,182,203,205,206,291,338,348,354,394,491쪽 등)
‘그러나 주님은 내게 자신이 재림하시기 전에 자신의 백성들에게 스스로를 정결케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확신을 주시면서 그 때문에 나를 택하여 이 책을 쓰게 하셨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믿지도 않고 또 주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곧 오시리라는 것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또한 이 책이 수백만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354쪽)
이 책은 사도요한의 요한계시록과 하박국과의 ‘동등함’을 넘어서 마치 무능력해진 66권의 성경말씀을 능가하는 구원의 도구로서 예수재림직전에 마지막 기회로 주어지는 제2의계시록!? 인양 주님의 계획에 따라 명하여 쓰여진 책이라고 시종 주장하고 있으니 성경계시의 최종성과 만족성을 철저히 부인한다는 의심을 면하기가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고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엄히 경고 하시고 계신다.(신12:33 ; 잠30:6 ; 계22:18-19)
저자는 사도요한과 엘리야처럼 살아서 천국 체험을 했던 소수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구약의 엘리야와 하박국 선지자, 그리고 신약의 사도 요한과 맞먹는 말세의 독특한 여선지자로서 제2의 계시록!?을 쓰는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성경 계시의 최종성과 만족성을 부인하고 있으니 이는 다른복음(갈1:6-9)을 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Ⅱ. 천국관의 문제점
-천국은 우리가 살아생전 왔다 갔다 하는 장소가 아니다.
(76,78,84,85,97,147,174,209,221,224,240,242,286쪽 등등)
‘나는 종종 왜 주님과 내가 다른 곳이 아니라 해변에서만 출발해야 하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장소가 보통 이른 아침 시간에는 사람의 왕래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나는 내가 주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누군가 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생각하니 재미있어서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십중팔구 그들은 외계인이 납치해 간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환각현상이라고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아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까 겁이 나서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97쪽)
영적천국은 죽음 월편(越便)의 세계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히11:1에서처럼 천국에 관한 내용이건 사후에 관한 내용이건 요한 계시록에 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우리 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고 천국을 소망하고 내세를 소망케 하시려는 것이다.
또한 신약성경 다수 기록한 사도 바울이 천국의 낙원을 다녀온 경험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아니하고 침묵했던 이유를 깊이 묵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고후12:1-7)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하여 오해할 수 있기에’ 더 이상의 말을 그만 두겠다는 사도 바울의 겸손을 떠나서 오히려 그 사도 바울의 견해를 뛰어 넘어‘철저하게 성경적 사실이라’(17쪽)는 말로 호도해가며 천국 소개를 하고 있는 사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영적인 천국을 경험한 사도바울의 계시도 일반화, 보편화 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자는 개인적 체험을 일반화 또는 보편화 시켜서 이 세상 마지막 구원의 도구로 직통계시를 받은 책이라 주장하고 또한 철저히 성경적이라면서 비성경적인 책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파하고 있으니 위험천만한 일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변화된 육체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이른 아침에 천국으로 올라간다!(84,85,97,204,205,206,319쪽 등등) 그리고 영적천국에 도착하여서도 슬픔과 염려와 은으로 된 화장실의 욕조를 언급 하고 있다.(147쪽)
또 여성들이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는 파우더 룸이 있다고 하였다.(197쪽 등) ‘화장’은 현세에서 연극을 할 때 돋보이게 하려는 일종의 얼굴 가면이요 위장술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천국에서 무엇이 부족하여 화장을 하여 돋보이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영적 천국에는 육체의 정욕들이 자리 잡지 못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22:29,30)
마22:23절 이후에서 사두개인 들은 부활후의 천국세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 세계(요한계시록21:5)인 줄 모르고 단순히 현세(슬픔,욕정 등)의 연장인줄로만 알아 오해 했던 것이다.
문패가 달린 저택은 매우 특별한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 한다. (286쪽)
누구는 문패가 있는 대저택, 누구는 쓰러져가는 집, 또 누구는 개털, 소털 면류관을 쓰게 된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지구촌 현세의 물질적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오해된 생각들일 뿐이다.
현세에서 열심히 주의 일을 잘 한 사람에게 베푼다는 천국의 상급(영광)개념은 천국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채워진 곳이기 때문에 현세처럼 더 이상 물질의 양으로 판단하는 소유적 개념이 아니다.(고전15:40,41)
천국에서 고기 굽는 그릴, 자동문, 주님이 버튼을 누르자 달리는 배들, 오븐 옆에 달린 버튼을 누르는 주님!(78,209,221,224쪽 등) 현대 최근 문명의 수준이 버튼을 누르는 정도 보다 더 발전이 된 최첨단 전자동화 인텔리전트(intelligent,인공지능) 수준에까지 발전되어 마음이 생각하는 전파나 말로 명령만 내려도 집안의 모든 것이 자동 검색이 되고 움직이는 수준인데 계시된 천국은 너무 문명이 낙후되어있는 후진국 문명이다. 마치 현대 지구촌문명의 이기의 일부를 천국으로 직수입한 느낌을 준다. 오히려 이 땅(지구촌)이 더 천국 같다는 역전 현상이 나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롬14:17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의와 평강과 희락보다 천국에서 먹을 것이 많다고 한다
Ⅲ. 기독론의 문제점
(-그리스도의 거룩성에 흠집! 그리고 십계명의 제2계명과 크게 충돌!)
저자는 주님과 팔짱도 끼고 어깨에 기대고 서로 안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이 책 전체에서 주류를 이루며 연애 소설 같은 느낌으로 천국계시록(?)을 쓰고 있다.)
138,145,176,182,185,186,199,210,211,218,230,238,242,244,254,260,266,277,278,282,309,322,323,324쪽 --- 등등 외 다수
“우리는 서로 끌어안았고, 주님은 ‘딸아, 사랑한다’라고---‘저도 주님을 사랑해요’(266쪽),”주님은 나를 불러서 옆에 앉으라고--- 나는 주님의 팔에 손을 끼고 얼굴을 주님의 어깨에 기댄 채 ---“(210쪽))
예수그리스도와의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 곧 영적인 거룩한 사랑인데도 남.녀 간의 애정행각처럼 에로스적 사랑 곧 상대적 사랑으로 거룩한 아가페적 거룩한 사랑을 지상의 남녀관계의 만남수준으로 끌어내려 표현하는 시도는 아주 불경건하며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인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성자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거룩성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이자 그리스도에 대한 모욕이며, 비성경적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단들이 하나님과의 아가페적 거룩한 사랑의 관계를 남.녀간 애정행각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작업을 자주하여 온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주님의 생김새(머리카락, 키, 나이, 손, 옷차림, 입)를 구체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골격이 크고, 머리카락은 구불구불, 목은 비단같이 희고, 손의 피부는 올리브 색깔, 손가락은 길고 날씬, 나이는 30-40사이의 젊은이, 키는 약 180센티미터를 약간 넘는 것 같다?’(14쪽)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몸은 고고학적으로도 증명을 못한다. 예수님의 몸이나 천사의 몸을 서양의 백인 우월주의 시각과 얼짱!과 몸짱!으로 존재하는 세계라고 한다. 그것은 동양아시아계 여인의 한계가 보이는 것으로서 그동안 서양인들의 외모 앞에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보상심리는 아닌가? (이사야53장과, 마가복음16:12 을 통해 주님을 보라)
예수님의 생김새를 거론하는 것은 십계명의 제 2계명과 연결하여 상고할 때 심각하게 충돌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단호한 진술은 하나님을 우리가 아는 가장 고귀한 피조물인 인간으로 묘사하는 그림들과 상과 환상들을 사용하는 것 역시 배제되어야 한다.(출24:9,10; 신4:15,16; 요4:24; 롬1:20; 딤전6:16; 약1:17)
그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묘사한 그림과 상을 사용하는 것을 배제한다.
비록 하나님(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이 과거에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아직도 여전히 그 몸이 부활하시어 뼈와 살을 갖는 인간의 몸을 갖고 계시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환상체험과 그림과 형상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됨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지거나 상상이 되며 따라서 제2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참된 형상은 세상 속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우리 앞에 보일 때 하나님의 영광은 더럽혀지며 그 분의 진리는 거짓에 의해 타락해 버리게 된다.---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고안해 내는 것은 그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존엄성이 훼손되며, 하나님은 실제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 또는 예수님에 대한 상상, 그림들과 형상들을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자신이 묘사하는 신적 존재의 인격적 본질과 특성에 대한 진리의 대부분을-전부 는 아니라 하더라도-불가피하게 숨기게 되기 때문이다. 아론의 금송아지가 어떻게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 의로우심, 선하심, 오래 참으심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성경 말씀의 계시이외에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계시를 받았다면서 성경이외의 또 다른 특별계시를 운운 하거나 철학적 추론에 의거하고 있는 모든 사변적인 신학은 이 점에서 잘못 되어 있다.(이러한 문제는 주의 말씀을 특히 주목하라 ☞ 마24:4,5,11-14,23-27; 요8:47)
바울은 이런 유의 신학이 결국 어떻게 되는가를 말한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고전1:21).
요점은 분명하다.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환상적 체험이나 상징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롬10:8-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시48:12; 빌2:12; 약2:22; 고전4:20; 요일1:1; 눅16:19-31)을 주목하라.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환상과 상징들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간이 만든 하나님의 모든 형상은 주물을 부어서 만든 것이건 정신적인 것이건 환상적인 것이건 실제로 죄 많고 불경건한 세상의 도구들로부터 빌려 온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어떤 형상을 취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인간적 출처나 물리적 현상에서 취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형상이나 환상과 상상을 취하는 일이 잘못된 까닭임을 밝혀두는 것이다.
끝으로 저자와 번역자 그리고 독자들에게 고한다. 그동안 신.구약 성경(66권)이 천국에 대한 소망과 신앙생활의 독려함에 얼마나 부족 하였기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오서 말세의 여선지자를 통하여 새로운 천국소망과 구원의 길라잡이를 주셨다는 것인가? (신명기13장을 묵상하라)
신.구약 성경(66권)말씀을 통해서‘천국이 확실히 있음’을 믿기가 불충분하던가? 신.구약 성경(66권)을 통해서 신앙생활(흔히 기성교회가 좋은 신앙이라고 말하는 기준 곧 십일조 잘 내고, 교회 봉사, 헌신, 기도 등의 목표)에 독려받기가 너무나 부족하였는가?
성경(66권) 자체로는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라는 메시지가 부족하므로 새로운 유익을 찾아 주는 말세 계시의 책을 쓰게 되었다는 의도로 해석이 가능한가?
이 책 서두의 ‘번역에 부쳐’에서 번역자가 교리적, 신학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자라고 선언한 것은 뭔가의 의도를 감추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비성경적인 책을 출판하여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 자체가 마치 종교적 흥행을 염두에 둔 상업적 발상이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마땅히 자제 했어야 할 일이었다.
성경적신학과 교리 등을 도외시하고 신비체험만을 강조하면 신비주의로 빗나갈 뿐 아니라 결국 만신이 우글거리는 원시종교로 회귀하자는 것밖에 안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 즉 너희는 가서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 사상’에로의 문화변혁을 추구하라는 ‘제자의 도’는 어디에 가서 찾겠느냐는 것이다.(마태복음5장과 28장을 주목하라)
혹여 다음과 같은 해괴한 생각은 안 했을 것이라 보지만 단지 신앙생활(흔히 기성교회가 좋은 신앙이라고 말하는 기준 곧 십일조 잘 내고, 교회 봉사, 헌신, 기도 등의 목표)을 독려하기위해서 영적인 천국을 이 땅에 있는 형이하학적 수준으로 끌어내려 표현하려고 했다면 신.구약 성경 말씀과 바른 신학의 객관적인 측면에서 하나님과 영혼들을 두 번 속이는 무책임한 발상인 것이다. 바른 신앙 올바른 신학을 위해서는 주관적, 객관적, 역사적 방법이 동시에 조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계시라고 빙자하여 어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인하여 비성경적으로 빗나간 계시 안에 포로가 되게 하려는 의도라면 얼마나 무섭고도 섬뜩한 일일까?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 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갈2:4)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말씀과 비교하여 비판을 하는 진위작업은 주 예수님께오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일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색안경을 끼고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색안경은 불편하다.
이제 진실로 부탁하는 것은 다음의 내용을 깊이 묵상(meditation)하길 권하는 것이다.
희생의 어린양이 되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대가로 얻은 구속역사를 죄인인 자신과 분명한 관계가 있음을 회개하고 믿으면 성령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받게 될 것(행19:2,고후1:20-22)이며 그 때 신.구약 성경 66권을 읽거나 듣고 믿으면 감동과 영적인 깨우침이 분명하고 비로소 정상적인 성도들과 같아질 것이다.(주목해야할 성경 ☞ 요8:47,요16:4,7,13,14,요18:37,고전2:9-16) 그것은 성령하나님이라는 같은 영을 비로소 받았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올바른 감동과 영적인 깨우침을 위해서라도 이미 기록된 신.구약 성경 66권의 성경계시가 말씀하는 성령하나님을 받아 구원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세상과 교회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번역자와 저자가 이러한 책과 관련하여 반성과 사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용기를 갖는다면 신.구약 성경 안에서의 바른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하여 기대하여 본다.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 종말론의 예수 재림(휴거계시 사건)에 대한 빗나간 예언 직전에 한국교회에 선전되어 절찬리에 판매되던 ‘내가 본 천국-펄시콜레 씀’이라는 책의 영향력이 한국 교회들의 종말론적 영성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성경 그리고 한국 교회를 향하여 허구와 거짓이라며 모욕을 주 던 그 시절을 잠시라도 기억을 하는가?
그 당시에 예수그리스도의 재림(휴거사건)에 대한 빗나간 예언과 잘못된 종말관에 대하여 그래도 영향력이 있다는 교회와 교단들 그리고 개신교 4인방 리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비판다운 비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벙어리가 되었던 악몽이 되살아난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라고 한다면 바른 복음을 위한 시대의 나팔수로 광야의 들 소리를 내질러야 할 시대의 사명자가 아니던가? 그래도 늦지는 않았다. 무엇이 교회의 위기를 불러들인다고 생각하는지 성경적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 심각한 오류들을 이끌어내어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을 갖고 혁신하여야 할 것이다.
“Protestant always protest"
교회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갱신(Renewal)하기 위하여 Protest(항변, 이의주장)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 간혹 놓친 부분도 있겠으나 성령론 등 그 외의 문제점들이 다수 발견되었었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계시관’,‘천국관’,‘기독론’만 정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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