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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부흥 역사

기독교 역사는 부흥의 역사다. 성령의 역사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계속되었다. 오순절 성령강림부터 1995년 휘튼 리바이벌까지 끊임없이 비상한 성령의 역사,영적각성운동이 발흥하여 교회에 생명력을 더했다. 프랭크 비어즈리가 언급한 것처럼 부흥운동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였다.로이드 존스의 말을 빌린다면 분명히 교회의 진행과 발전 역사는 주로 부흥의 역사였고 성령의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으심의 역사였다.

#오순절부터 종교개혁시대까지

신약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교회로써 출발했다. 마가 다락방의 성령강림은 바로 요엘 선지자의 약속 성취였다. 구약과 신약을 잇고 다시 신약과 교회사를 잇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암흑의 시대라고 일컫는 중세시대에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간헐적이지만 영적 각성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부흥이 하나의 뚜렷한 신앙운동으로 교회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의 현상이었다.

루터 츠빙글리 칼뱅 낙스 등으로 대변되는 종교개혁은 신앙을 재발견한 일종의 영적각성운동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전통이 아닌 성경과 교부들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하박국이 언급하고,바울이 재확인하고,어거스틴을 비롯한 교부들이 확신했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재발견했다. 이들이 발견한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는 잠자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깊은 영적 잠에서 깨우는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 이후 부흥이 일어난 곳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칭의론이 강도 높게 선포됐다.

 

청교도 부흥운동과 경건주의 운동

 

부흥운동은 미국 청교도와 경건주의 시대에 이르러 현대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청교도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었고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인간의 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확신했다. 철저한 회개를 통한 죄 사함은 이들이 강조한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였다.

경건주의 운동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성경대로의 삶을 실천에 옮겼다. 양로원 고아원 학교 병원을 설립해 대 사회적 책임을 충실하게 감당,교회에 생명력을 더해주었다. 경건주의에서 강조하는 경건과 청교도에서 강조하는 영적인 실천은 서로 맥을 같이했다.

 

18세기 영적각성운동

 

17세기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에서 간헐적으로 일어난 부흥운동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좀 더 강력한 형태의 영적각성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시대 일어난 가장 강력한 부흥운동 가운데 하나가 18세기 웨일즈 부흥운동과 1734∼1736,1740∼1742년 사이에 일어난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일 것이다. 이 운동들은 이전의 크고 작은 부흥운동을 하나로 엮어 폭발한 성령의 강력한 역사였다.

웨일즈 부흥운동은 1735년 ‘능력의 세례’를 받은 하월 해리스와 다니엘 로랜드에 의해 일어나 여러 해 동안 계속 됐다. 거의 같은 시대 조나단 에드워즈,길버트 테넨트,조지 휘트필드,프릴링하이젠 등이 이끈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은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강하게 일어나 근대 부흥운동의 가장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1734년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부터 웨슬리부흥운동이 정리되는 1790년까지의 기간은 넓은 안목으로 보면 ‘부흥의 시대’였다.

 

19세기 영·미부흥운동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에서의 부흥운동은 19세기로 이어졌다. 미국 버지니아의 조그만 두 장로교 대학인 햄프던 시드니 대학과 워싱톤 앤드 리 대학에서 1787년 영적 각성이 일어나 곧 동부 전역으로 확산됐다. 1802년에는 예일대학 학생 3분의1이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 그 후 50년간 제2차 대각성운동으로 알려진 일련의 각성운동이 주기적으로 일어나 동부의 대학들과 교회들이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근대 부흥운동의 선구자 찰스 피니가 등장하여 미국인의 부흥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준 것도 이 때였다.

한 때 중단되는 듯 했던 영적각성운동이 1857년 미국에서 또 다시 놀랍게 발흥했다. 1857년 9월23일 제레마이어 람피에르가 뉴욕 풀턴가 북화란개혁교회 3층에서 가진 정오기도회는 불과 4개월 만에 보스턴 워싱톤 시카고를 비롯하여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수많은 도시에서 매일 정오기도회가 열렸다. 그 결과 1857∼1859년 미국 전체 인구 3000만명 중 200만명이 회심했다.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곧 영국으로 확산됐다. 1858∼1859년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에서 로이드 존스가 참된 부흥이라고 말한 놀라운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이미 여러 차례 영적각성을 경험한 웨일즈는 1859년 험프리 존스와 데이비드 모건을 통해 또다시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1873∼1875년,1881∼1884년 두 번의 강력한 영적 파장을 동반한 무디 부흥운동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깊은 잠에서 깨웠다. 그의 메시지를 통해 형식적인 신앙인들,술주정꾼들,회의론자들,탕자들,대학생들,상인들,부자와 가난한 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웨슬리와 휘트필드 이래 런던이 그렇게도 깊은 감화를 받은 때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무디 성경학교와 학생자원운동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선교를 꿈꾸며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전 세계로 흩어졌다. 이 시대 은둔의 나라 조선에 도착한 언더우드 아펜셀러 스크랜턴 모페트 게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초기 선교사들은 19세기 영적각성운동의 산물이었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설교가 스펄전이 휘트필드 풍의 회개와 웨슬리의 열정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잠에서 깨우며 부흥운동을 지폈던 것도 이 시대였다.

 

20세기 근대 부흥운동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놀라운 영적각성이 일어났다. 이반 로버츠로 대변되는 1903∼1904년의 웨일즈부흥운동,웨일즈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발흥한 1905년 호주부흥운동,인도 카시아에서 일어난 1905∼1906년의 인도부흥운동,하디와 길선주에 의해 주도된 1903∼1907년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1906년 아주사 오순절부흥운동,1908년 만주·중국부흥운동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사도행전 이후 이 시기만큼 전 세계가 부흥을 경험한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감히 이 시대를 가리켜 ‘부흥의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을 듯 하다.

20세기 후반 빌리 그레이엄의 출현은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복음주의 부흥의 불을 지피는 계기였다.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으로 특징되는 한국교회 부흥 역시 빌리 그레이엄이 점화시켰고,한경직 김준곤 조용기 목사가 널리 확산시켰다. 이후 30년의 침묵을 깨고 1995년 휘튼대학교 학생들 가운데 놀라운 부흥, 영적각성이 발흥하여 또 다시 미국 전역의 여러 대학교 학생들을 깊은 영적 잠에서 깨웠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사 속에서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 교회의 생명력을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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