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자부터 모든성도가 알아야할 기도요령
성도가 알아야할 모범적인 대표기도
  
열왕기상 8:20-60을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왕상8:20),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고"(왕상8:21)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솔로몬의 대표기도(공중기도)를 볼 수 있다.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있고(왕상8:22-23), 이어서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에 대한 확신" 곧 "말씀의 확신"이 있고(8:24-26),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하는 "기도와 간구"가 있고(8:27-29), "회개와 용서와 사죄의 은총과 사유하심"에 대한 간구가 있으며(8:30-40), "중보기도"(8:41-53)와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축복기도"(8:55-60)가 있다. 
  
솔로몬의 대표기도의 내용을 보면:
  
1) 하나님에 대한 찬양,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3) 회개와 사죄에 대한 은총, 
4) 기도와 간구 
5) 중보기도 그리고 
6) 축복기도로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기도의 내용은: 
  
1) 하나님에 대한 찬양(Adoration), 
2) 회개(Confession), 
3) 감사(Thanksgiving), 
4) 간구(Supplication), 
5) 중보기도(Intercession)로 되어있는데 
  
솔로몬의 기도는 구체적으로 감사의 구절은 별도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기도의 전체적인 내용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뜻을 담고 있다(8:27, 53, 61). 이와 같이 볼 때에 솔로몬도 일반적인 기도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공중기도의 다른 예를 살펴보면,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드린 공중 기도가 있다.
  
"12사도 중 결원을 보충하기 위하여 드린 기도"(행1:24-25), "안수집사를 세우기 위하여 드린 기도"(행6:6) 등 여러 형태의 대표기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표기도를 드릴 때에 주의하여야 할 몇 가지사항을 살펴보면: 
  
① 대표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회중을 대표하는 기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② 대표기도 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회개문제, 자신의 가정문제, 자신의 감정에 의한 문제 등 기도자의 개인적인 문제를 공중기도에 언급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기도할 자격"이 없다든지, "기도를 잘 할 줄 모른다"든지 그러한 말도 기도의 내용에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③ 만일 대표기도를 할 때에 기도자의 개인의 삶에, 또는 개인의 감정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 문제가 온전히 해결 될 때 가지 대표기도를 삼가 하는 것이 좋다. 
  
④ 대표기도 자는 먼저 깊은 회개기도와 성령 충만함(엡 5:18)을 확인하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 
  
⑤ 대표기도 자는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회중의 죄와 감사와 간구와 도고를 도맡아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한다. 
  
⑥ 대표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⑦ 또한 대표기도는 설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⑧ 대표기도는 상황과 경우에 따라 그 내용을 다르게 기도하여야 하므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기도해야 한다. 주일대표기도, 헌금기도, 저녁 찬양예배, 수요성경공부, 금요철야기도, 식사기도 등 
  
⑨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니므로 너무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⑩ 대표기도를 드릴 때에 기도문을 작성하여 가지고 나와서 기도를 읽는 예를 볼 수 있는데, 
  
(가) 가장 좋은 대표기도는 "작성된 기도문"을 읽는 것보다 직접 아뢰는 기도가 더욱 좋다. 
  
(나) 그러나 직접 아뢰는 기도가 힘들 때에는 기도문을 작성하여 읽는 것도 무방한 줄 안다. 
  
(다) 다만 대표 기도를 "작성된 기도문"을 읽을 때에는 아래의 사항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 깊은 회개와 감사와 기도가 있은 후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문을 작성할 것 
  
- "작성된 기도문"을 읽고 또 읽어서, 거의 암송하여, 직접 아뢰는 기도같이 기도할 것 
  
-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담대한 마음으로 겸손히 기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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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4가지 의미
 
 

 

 


오래전에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새들백 교회 담임 목사인 릭 워렌 목사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에 나오는 '양식(bread)'의 4가지 의미를 제시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6:11)

워렌 목사는 신명기와 마태복음을 인용해 "양식(bread)는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 즉 일차원적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다"며 양식이 의미하는 4가지를 제시했다.

1. 삶의 필수품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구할 때 이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돈을 주시기만을 가만히 앉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침마다 나가 만나를 거둔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필요한 양식을 위해 일해야 한다.

노동(일) 역시 하나님이 뜻하신 우리 삶의 목적이며, 인격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잠14:23)

2. 하나님의 말씀

양식은 우리의 영적인 양식인 성경을 상징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그들의 삶에 물질적인 양식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 영양분 뿐 아니라 영적인 영양 역시 필요하다.

 

3. 하나님의 가족과 교제

양식은 또한 하나님의 가족, 즉 교회를 상징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10:16)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혈연을 통한 가족을 넘어 하나님은 당신이 영원한 가족의 한 부분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진정한 교제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4. 구원

양식은 구원을 상징한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6-29)

예수님께서 성만찬식의 자리에서 '빵'을 떼어 주시며 그분의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빵은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한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든, 그것이 영적, 물리적, 감성적인 필요가 무엇이든,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을 돌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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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퀴즈대회 예상문제.

 

 

 

1. 사도행전과 같은 저자가 기록한 신약성경은? (누가복음)
2.예수께서 승천하신 장소는? (감람산)
3.사도행전의 수신자는? (데오빌로)
4.사도행전 1장 8절을 쓰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5.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수는 (120명)
6. 오순절 직전에 무리앞에서 설교한 자는 (베드로)
7. 제비 뽑혀 새로 12제자의 수에 들어온 자는? (맛디아)
8. 성령충만 받은자들에게 사람들이 조롱하여 했던 말은?(저들이 새술에 취하였도다.)
9. 가롯유다가 예수를 팔아 그 돈으로 산 밭은? (아겔다마)
10.성령충만을 받은 시간은? (3시)
11. 성령 강림에 대하여 예언한 구약의 선지자는? (요엘)
12.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예언한 선지자는? (다윗)
13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나오는 장은? (2장)
14.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나은지 생각하라”고 한 ㅟ즈대회사람은? (베드로와 요한)
15.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에 앉은 뱅이를 고친 시간은? (9시)
16. 성전미문에 고침 받은 앉은 뱅이는 대략 몇 살인가? (40여세)
17. 바나바는 어떤 사람인가? (구브로 출생, 레위사람. 요셉. 마가의 삼촌. 뜻은 권위자.)
18.사도행전 4장 12절을 써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19.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을 감춤으로 죽임을 당한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20. 누가 지나갈 때에 그 그림자라도 덮일까 바라고 허다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가? (베드로)
21.사도들을 죽이려할 때 드다와 유다를 들어 사도들을 변호한 자는 (대제사장 가말리엘)
22, 일곱집사 이야기가 나오는 장은? (6장)
23. 일곱집사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자.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자.)
24. 일곱집사의 명단은?(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스빌브니디바니)
25.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 내의 두 지파는 (히브리파와 헬라파)
26.스데반집사의 설교가 나오는 장은?(7장)
27.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던 사람은? (스데반)
28. 초대교회 초대 순교자는? (스데반)
29.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 증인들의 옷을 맡았던 사람은 ?(사울)
30.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한 자는?(빌립)
31.사마리아 성의 마술사 였다가 나중에 믿고 세례받은 자는?(시몬)
32,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사마리아 전도를 위해 파송한 자는? (베드로와 요한)
33.  이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할 때 언급한 구약과 전도한 자는? (이사야. 빌립)
34. 바울의 회심사건은 몇장에 나오나? (9장)
35. 바울의 회심 후 안수하여 그의 눈을 뜨게 한자는? (아나니아)
36. 사울이 다메섹에서 피신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했나? (밤에 광주리에 담아 성에서 달아 내렸다.)
37. 욥바에서 베드로에 의해 죽었다가 살아난자는/ (다비다)
38 베드로가 욥바에서 여러 날 있을 때 누구의 집에 있었나? (피장 시몬의 집)
39 베드로을 초대하여 말씀을 듣고 세레를 받은 로마의 백부장은? (고넬료)
40. 백부장 고넬료가 살았던 곳은 (가이사랴)
41. 그리스도인이라 최초로 칭호를 받은 곳은 (안디옥)
42. 헤롯이 어떻게 죽었는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고로 충이 먹어 죽었다.)
43. 바울을 다소에서 데례와 함께 지도자로 일한 사람은?(바나바)
44. 온 세계에 큰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한 자는? (아가보)
45. 야고보를 죽인자는? (헤롯)
46.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냐고 바울이 말할 때에 우리는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한자들이 속한 곳은? (에베소)
47. 루스드라 사람들이 쓰스와 허메로 호칭한 자는? (바나바와 바울)
48.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에서 내려 논 곳은? (루스드라)
49. 바울이 마게도냐의 환상을 본 곳은 (드로아)
50.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특별히 전도한 사람은? (루디아)
51. 바울의 2차 선교여행시에 바울과 동행한 자는? (실라)
52. 유두고라하는 청년이 졸다가 떨어저 죽은 동네는?(드로아)
53. 바울이 머리를 깍은 곳은?(겐그리아)
54. 두아디라성의 자주장사 이름은(루디아)
5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고 가르친 분은 (예수님)
56.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처음으로 만난 도시는? (고린도)
57. 알렉산드리 태생의 학문이 깊고 성경에 능한자는? (아볼로)
58. 바울이 에베소에서 말씀을 가르친 곳은? (두란노 서원)
59.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 사람들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불살랐다.  그 책값을 계산하면? (은 5만)
60. 바울이 밤 낮 쉬지 않고 누물로 3년을 훈계했던 곳은 (에베소)
61.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어 장사하던 자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대적한 자는? (데메드리고)
62 아가보가 바울이 체포될 것을 예언한 곳은?(가이사랴)
63.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 될 것을 예언한자는?(아가보)
64.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고 벨릭스 앞에서 송사한자는? (더둘로)
65. 사두개인이 없다고 주장한 것은? (부활, 영, 천사,)
66. 바울이 “이렇게 모든 사람이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말한 것은 누구에게 한 것인가? (아그립바왕)
67. 벨릭스 후임으로 로마 총독으로 부임해 온자는? (베스도)
68.“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한자는? (베스도)
69. 바울의 로마 항해시 호송칙임을 맡은 자는? (율리오)
70.. 네가 적은말로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 도다“고 한자는 (아그립바왕)
71. 유라굴로를 만난 사람의 수는(276명)
72. 유라굴로로 인하여 먹지 못한 날의 수는? (열나흘)
73. 바울일행이 간신히 상륙하여 구원 얻었던 곳은? (멜리데)
74.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으나 이상이 없었던 곳은 (멜리데)
75.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한 기간은 (이태. 이년)
76. 미항을 떠나 과동하기 위해 어느 항구로 가려다가 유라굴로를 만났는가? (뵈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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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대한 사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눈을 들었다!


지금 당신이 읽으려는 것은 믿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지옥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대해서 조사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지옥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대해서 문서로 된 증거들을 제시하겠다. 가볍게 읽을 생각은 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읽는 것들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지금 심각한 위험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

몇 년 전에 모리스 롤링스(Maurice Rawlings) 박사의 죽음의 문 저편(Beyond Death's Door)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국제 심장혈관 질환의 전문가인 롤링스 박사는 임상학적으로 죽어있는 많은 사람들을 소생시켰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롤링스 박사는 모든 종교는 "속임수"이고 죽음은 단지 고통 없는 소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77년 롤링스 박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지옥의 불꽃 속으로 내려가면서 공포에 떨며 소리치는 한 남자를 소생시켰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 환자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지옥에 있다!" 그는 공포에 떨며 자기를 도와 달라고 나에게 간청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에서 진짜로 두려움에 찬 모습을 보았다. 그는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환자는 극심한 공포를 나타내는 괴상한 얼굴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의 동공은 점점 커졌고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떨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쭈뼛하게 선 듯이 보였다.

성경은 계속해서 지옥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대해서 경고한다. 지옥에 대한 경고는 신약 성경에서만도 162번이 넘는다. 이 중에서 70번 이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대하여 매우 섬뜩하게 묘사하셨다.

22 . . . 그 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더라.
23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자기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24 그가 소리 질러 말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25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아들아 너는 네 생전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나쁜 것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26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커다란 구렁이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느니라.
27 그가 말하기를, 그러면 아버지여 내가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께서 나사로를 내 아비 집에 보내어 주소서.
28 이는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그가 그들에게 증거하여 그들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하소서.

 

차 례

1. 지옥은 불의 장소이다.

▶ 성경은 지옥의 위치를 알려준다.

▶ 정말로! 지옥이라고 불리는 한 장소가 있다!

▶ 지옥은 고통의 장소이다.

▶ 지옥은 인간적인 상상을 초월한 곳이다!

Ⅱ. 지옥은 영원하다!

▶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심각하게 지옥을 다루셨다. .

▶ 예수님은 지옥을 어떻게 묘사하셨는가?

▶ 만약 예수님이 옳다면 어쩌겠는가

▶ 그리고 당신은 영원히 거기에 있게 된다!

Ⅲ.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지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이 가능한가?

▶ 예수님 없이 죽음에 붙들리지 않도록 하라

▶ 구원받기를 원하십니까?

▶ 구원받는 방법은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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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지옥은 불의 장소이다

누가복음 16:24에서 그 남자는 외쳤다. ". . .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
마태복음 13:42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지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마태복음 25:41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계시록 20:15에도 기록되어 있다."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 성경은 지옥의 위치를 알려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그분은 지옥으로 내려가셨다.
사도행전 2:31에서 베드로는 말했다.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은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혼은 지옥으로 갔다.
마태복음 12:40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 "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옥은 지구의 내부에 있다!
에베소서 4:9은 예수님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죽음의 문 저편 85 페이지에서 롤링스 박사는 지옥을 묘사한 환자들이 "....이 곳은 지하 세계나 지구의 내부 같이 보인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버밍햄 뉴스 (The Birmingham News) 1987년 4월 10일자에는 "지구의 중심은 태양의 표면보다 더 뜨겁다고 과학자들이 말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지구의 내부 중심은 화씨 12,000 이상의 온도를 갖는다!" 고 과학자들이 최근에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당신은 화산이 폭발하여 지구 내부로부터 불 못을 내뿜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열기로부터 수마일 이내에 있는 것들은 모두 타서 없어진다. 1980년 5월 18일 세인트 헬렌 산이 폭발할 때 기자들은 "지옥이 지구 표면으로 올라올 때 "라고 묘사했다. 화산, 눈뜨는 지구(p.91)라는 책은 폭발하는 화산을 "지옥 안으로 강하" 라고 묘사했다. .

성경은 이미 수 천년 전에 지구의 중심에 있는 지옥이라고 불리는 한 장소를 묘사했다. 이것은 과학이 발견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 정말로! 지옥이라고 불리는 한 장소가 있다!

민수기 16장에서 성경은 산 채로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땅이 (THE EARTH)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들과 코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물건들을 삼키니라.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산 채로 구렁으로 내려가고 땅이 그 위에서 닫아 버리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멸망하니라. " (민수기 16:32-33)
바로 이 순간에도 땅 속에는 수 백만의 구원받지 못한 혼들이 불 속에서 고통 가운데 울부짖고 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마가복음 9:46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그들의 벌레(THEIR WORM)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

예수님은 그들의 벌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한 벌레나 그 벌레가 아닌 그들의 벌레이다. 성경은 크리스챤들이 어느 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갖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지옥에 있는 남자와 여자들은 그들의 아비인 사탄의 모습을 갖게 될 수도 있다(요한복음 8:44). 계시록 12:3에서 사탄은 옛 뱀으로 묘사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받지 못한 남자와 여자들이 영원에서 갖게 될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육지에서 지표면의 두께는 보통 50 마일이다. 만약 당신이 50마일만 아래로 내려가면 불의 가장 자리에 있게 된다. 그러나 바다 밑의 지표면은 이보다 더 얇다.

과학자들은 최근에 바다 밑에서 갈라진 틈새에서 불이 방출되는 곳을 발견했다. 불이 솟구쳐 나오는 그 분출구 주위에서 그들이 무엇을 찾아냈는지 아는가? 세상의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는 여덟개의 기다란 발이 달린 벌레다. 죠셉 웰리스의 "깊은 바다"라는 책을 읽어 보면 (p.39) 이런 내용이 있다. "아마도 최근에 발견된 해양 생물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거대한 관을 지닌 벌레들인 리프티아(Riftia)이다. 길이가 8피트가 넘는 이 벌레들은 심연의 분화구 근처에서만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계시록 14:10은 이렇게 말한다. " . . .그는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라. . ." 욥기 18장은 " .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 (21절)를 묘사한다. 15절에는 " . . .유황이 그의 처소에 흩어질 것임이라" 고 기록되었다. 당신은 유황이 무엇인지 아는가? 당신은 유황이 어디서 발견되는지 아는가? 지구 내부에서 발견된다! 피에르 코흐러(Pierre Kohler)의 화산들이란 책에 따르면(p. 43), 1980년 세인트 헬렌 산이 폭발할 때 150,000톤의 유황 가스가 분출되었다고 한다. 3,000년 전에 기록된 욥기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다. 그러나 욥은 지구 내부에 유황이 있다는 사실을 과학이 밝혀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 다음을 읽어보라!

". . .그들이 지옥(hell)으로 파고 들어간다.. . ." 아모스 9:2

다음은 핀란드 신문 암메누사스티아(Ammenusastia)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공산주의자인 나는 하늘이나 성경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로서는 지옥을 믿는다." 라고 아자코프 박사는 말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는 그 발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옥의 문들을 통과하는 구멍을 뚫었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
아자코프 박사는 계속했다. "...드릴이 갑자기 공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커다란 빈 공간이나 동굴에 도달했다는 신호였다. 온도계는 화씨 2,000도 까지 치솟았다."
"우리는 축 아래서 나는 기계 소음을 탐지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밀어 넣었다. 그러나 우리가 들은 것은 기계 소음이 아니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비명 소리였다. 처음에는 우리 장비에서 나는 소리인줄 알았다."
"그러나 조정을 하고 다시 들었을 때 모든 의심은 사라졌다. 그 소리는 한 사람의 비명이 아니고 수 백만 명의 비명소리였다.

▶ 지옥은 고통의 장소이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16장에서 그 남자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23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자기 눈을 들어"
24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28 "...고통의 장소에 .... "

성경에 나타난 지옥에 대해서 이해하기란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지옥과 비교할만한 것이 지구상에는 전혀 없다. 어떠한 악몽도 지옥의 공포와는 견줄 수 없다. 어떤 공포 영화도 지옥의 두려움을 그려내지는 못한다. 선지피가 뒤범벅이 된 끔찍한 범죄 장면도 지옥의 공포에는 비교될 수 없다.  

☞ 당신은 지옥을 볼 것이다. . .
☞ 당신은 지옥의 냄새를 맡을 것이다. . .
☞ 당신은 지옥을 호흡할 것이다. . .
☞ 당신은 지옥을 들을 것이다. . .
☞ 당신은 지옥을 느낄 것이다. . .

▶ 지옥은 인간적인 상상을 초월한 곳이다!

성경은 지옥을 이렇게 묘사한다 : ▶ 우는 곳 (마 8:12), ▶ 울부짖는 곳(마 13:42), ▶ 이를 가는 곳 (마 13:50), ▶ 어두움 (마 25:30), ▶ 불꽃 (눅 16:24), ▶ 타오르는 불 (사 33:14), ▶ 고통 (눅 16:23), ▶ 영원한 형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5:41에서 말씀하셨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 마태복음 13:42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지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Ⅱ. 지옥은 영원하다!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
당신은 단 일 초 동안이라도 지옥의 공포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25:41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계시록 14:11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 무궁토록 올라가리라....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경고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마가복음 8:36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심각하게 지옥을 다루셨다 !

마가복음 9:43-47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43 네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손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45 네 발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발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47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심각하게 지옥을 다루셨다.
지옥에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당신의 눈을 뽑고 손과 발을 잘라 버리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씀하셨다.

만약 지옥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기꾼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는 사람들에게 도전한다. 누구든지 그 말씀이 사기꾼의 말이라고 나에게 입증해 보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 예수님은 지옥을 어떻게 묘사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지옥" 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불"
마태복음 7:19, 13:40, 25:41

"영원한 불"
마태복음 18:8, 25:41

"영원한 저주"
마가복음 3:29

"지옥 불"
마태복음 5:22, 18:9, 마가 9:47

"저주"
마23:14,막12:40,눅20:47

"저주 받으리라"
마가복음 16:16

"지옥의 저주"
마태복음 23:33

"정죄의 부활"
요한복음 5:29

"불의 용광로"
마태복음 13:42, 50

"결코 꺼지지 않는 불"
마가복음 9:43, 45

"그 불은 꺼지지 아니한다"
마가복음 9:44, 46, 48

"그 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는다."
마가복음 9:44, 46, 48

"울부짖으며 이를 간다."
마태복음 13:42, 50

"울며 이를 간다."
마태복음 8:12, 22:13, 25:30

"고통"
누가복음 16:23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받는다"
누가복음 16:24

"고통의 장소"
누가복음 16:28

"바깥 흑암"
마태복음 8:12, 22:13

"영원한 형벌"
마태복음 25:46

 

▶ 만약 예수님이 옳다면 어쩌겠는가?

히브리서 9:27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다!
☞ 그리고 어느 날 반드시 당신은 죽는다. . .
☞ 그리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눈을 들어본다. . . 

당신이 당신의 몸을 떠나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제서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 . . 더욱 더 커지고. 비명 지르고 . . .울며. . .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이 당신에게 덮쳐온다. "맙소사!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당신은 외친다. 불타는 혼들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가 당신의 코를 찌른다. 당신의 얼굴은 그 열기로 달아오른다. 이제 불꽃이 당신 몸의 터진 구멍, 눈, 코, 귀, 입에서 타오른다. 불꽃은 세찬 소리를 내며 타오른다. 당신의 몸은 불꽃 속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당신은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으로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뒹굴고 온 몸이 뒤틀리는 경련을 일으킨다. "왜 죽지 않는거야?", 당신은 저주 섞인 비명을 지른다. 당신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울며 이를 갈기 시작한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나?" 그러나 그 고통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다. . .
무시무시한 흑암이 당신을 빨아들인다. 당신은 어두움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 . .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안돼! 안돼!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당신의 벌레가 출현할 때 당신은 너무나 놀라서 소리도 지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소리지른다. "오 하나님, 왜 저에게 경고하지 않았나요?" 그러나 당신은 어느 날 오후 길모퉁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당신에게 간청하던 그 설교자를 기억하고 있다. 당신은 그 전도지를 읽은 것도 기억하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 당신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소?"라고 외치지만 당신은 요한복음 3:16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 ."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잖아 . 그분은 이런 일을 허락하지 않으셔." 라고 당신이 외치겠지만 당신은 요한복음 3:36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 . .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
당신은 조금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옳았고 지옥이란 불리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그리고 당신은 영원히 거기에 있게 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에 보내려고 하시는가? 맞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지불을 요구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죄는 반드시 정죄를 받아야 한다. 여호수아 24:19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거룩한 하나님이시요...그가 너희 허물과 죄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지만, 친구여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

 

 

 

Ⅲ.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지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지옥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마태복음 25:41은 지옥은 ". . .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했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당신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당신의 죄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셨다.
로마서 5:8은 말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지옥으로 보내지 않으신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할 때 지옥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다면,


당신은 지옥을 선택하는 것이다 !

백만장자 테드 터너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죽어서 지옥에 던져지기를 기다린다. 내가 속한 곳은 바로 지옥이다." 당신은 그가 바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친구여,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죄에 대한 그분의 지불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대답할 때 당신도 테드 터너와 똑같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소. 나는 지옥에서 내 죄 값을 치룰 것이요." 라고 말한다.

어느 날 당신은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

롤링스 박사는 영원으로 떠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들이 하늘로 살금 살금 기어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롤링스 박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옥의 불꽃 속으로 내려간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7:21-23에서 심각한 경고를 하셨다. "나에게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고 하리라. "
당신은 지옥에서 하루, 한 달, 일 년, 백 만년 아니 영원토록 고통받게 된다. 당신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절망 속에서 살게 된다. 당신은 차라리 죽기를 바라겠지만 죽음이 당신을 피해간다. 당신은 당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할 것이다. 계시록 14:11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 무궁토록 올라가리라......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이다.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가복음 8:36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자기 혼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요한복음 3:16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훨씬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신다. 고린도전서 2:9은 이렇게 기록한다. "...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고, 귀로 듣지도 못하였으며,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온 적도 없었느니라. "

친구여, 지옥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다. 만약 당신이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인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한다면 당신이 살면서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확실하게 어느 날 당신은 반드시 지옥에서 깨어날 것이다.
당신이 죽어서 지옥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내일이면 너무 늦을 수도 있다! 잠언 27:1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

일 초에 세 사람씩 죽는다. 일분에 180명씩 죽는다. 당신이 이 책자를 읽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영원을 향해서 갔다. 교통사고, 심장마비, 고혈압...
여기,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 오늘이나, 내일, 일주일 후, 한 달 후 , 일 년 후 ,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50년 후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다..."

▶ 예수님 없이 죽음에 붙들리지 않도록 하라 !

당신은 인생 가운데 엄청난 실수를 할 수 있다. 당신의 삶 가운데 그런 것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은 바로잡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친구여 내가 장담하건대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죽는다면 당신은 결코 바로잡을 수 없는 최악의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당신 개인의 구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면 당신은 하늘로 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

당신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아무도 당신을 속이지 못하게 하라! 성경은 히브리서 9:27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계시록 20:15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받아드린 적이 없다면, 지금 이 순간 머리를 숙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당신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라. .다음 기회로 미루지 말라!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 구원받는 방법은 단순하다.

당신이 죄인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기록된 바와 같이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로마서 3:10
"... 차별이 없느니라.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로마서 3:23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 불결한 것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걸레 같으며..." 이사야 64:6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 디도서 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들에 대한 대가를 치루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베드로전서 2:24
"...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기시고" 계시록 1:5

단순히 믿음으로 당신 개인의 구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 요한복음 1:12
" ...선생님들이여,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이까? 하고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6:30,31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아니하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3:18

▶ 구원받기를 원하십니까?

마음을 다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당신이 저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면 저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저를 위하여 갈보리에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 당신께 나아갑니다. 주님,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당신을 나의 구주로 받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이처럼 위대한 구원을 소홀히 여기고서야 어떻게 피할 수 있으리요" 히브리서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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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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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존재하는 목적과 교회의 의무는 무엇인가?

 

 

 

질문: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오늘날 세상에서 교회의 의무는 무엇인가?

 

답변: 사도행전 2:42은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을 말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 구절에 따르면, 교회의 목적들/활동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합니다. 1) 성경의 교리를 가르침, 2) 믿는 자들을 위한 교제의 장소를 제공함, 3) 성찬식을 준수함, 4) 기도

 

교회가 성경의 교리를 가르침으로 우리가 우리의 믿음가운데 굳건히 설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4:14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교회는기독교인들이 서로에게 헌신하고 서로를 존중하며(로마서 12:10). 서로를 가르치고(로마서 15:14), 서로에게 친절하고 서로를 측은히 여기며(에베소서 4:32), 서로가 격려하고(데살로니가전서 5:11),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서로 사랑할 수 있는(요한일서 3:11) 교제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들 대신해서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믿는 자들이 준수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11:23-26). “떡을 떼며”(사도행전 2:42)라는 개념은 또한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것은 교회가 교제를 도모한다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사도행전 2:42에 따른 교회가 존재하는 마지막 목적은 기도입니다. 교회는 기도를 도모하고, 기도 하는 사람을 가르치며, 그리고 기도를 수행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4:6-7은 우리를 권면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교회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8:18-20; 사도행전 1:8). 교회는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파하는데 충성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주님이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지역사회의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도모하고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교인들을 준비시켜야 합니다(베드로전서 3:15).

 

교회가 존재하는 최종적인 목적들의 일부는 야고보서 1:27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는 업무를 가집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공급하는 것입니다(음식, , 쉴 곳). 교회는 또한 믿는 자들이 죄를 극복하고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물들지 않도록 그들에게 필요한 도구들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준비시키고 갖춰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교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2:12-27에서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훌륭한 예시를 주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손, , 그리고 발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고린도전서 12:12-2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여기에 육체적으로 계신다면 그분께서 수행할려고 하실 일들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크리스챤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와 같아야 하며”,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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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에 나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질문: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중요한가? 교회에 나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답변: 성경은 우리가 다른 믿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하여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사도행전 2:42). 우리는 그와 같은 헌신의 예를,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을 따라야 합니다. 그때는, 그들에게 지정된 교회 건물은 없었지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사도행전 2:46). 모임을 가질 때마다, 믿는 자들은 다른 믿는 자들과 교제하는 것과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즐겼습니다.

 

교회 출석은 단지 좋은 제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히브리서 10:25는 우리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초대 교회에서도, 일부는 다른 믿는 자들과 만나지 않는 나쁜 습관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이 행해야 할 방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 출석을 위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교회 출석에 더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요한일서 4:12), 서로 격려할 수 있는(히브리서 3:1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는(히브리서 10:24), 서로에게 봉사할 수 있는(갈라디아서 5:13), 서로 권할 수 있는(로마서 15:14), 서로 존경할 수 있는(로마서 12:10), 그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길 수 있는(에베소서 4:32) 장소입니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의 몸의 한 구성원이 됩니다(고린도전서 12:27). 교회의 몸이 제대로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신체 부위들모두가 출석하여 작동되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12:14-20). 그냥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사역에 어떤 유형으로라도 참여해야 합니다(에베소서 4:11-13). 믿는 자는 그가 가진 은사의 발산 없이는 온전한 영적 성숙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 모두는 다른 믿는 자들로부터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합니다(고린도전서 12:21-26).

 

이러한 이유와 그 밖의 많은 이유로, 교회 출석, 참여, 그리고 교제는 믿는 자의 삶에 있어 규칙적인 측면이 되어야 합니다. 매주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이 믿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는 열망이 있어야 하며 다른 믿는 자들과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모퉁잇돌이시고(베드로전서 2:6), 우리도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베드로전서 2:5). 하나님의 영적인 집의 건축 자재로서, 우리는 자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연결된 믿는 자들(the Church)이 교회(church)에 갈 때마다 그 연결이 선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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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과 성도의 교제에 관하여

 

성찬에 대한 피상적이해는 교회의 쇠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성찬에 대한 몇가지 단상을 쓰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서 성찬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1.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성도의 사귐[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원문으로는 communio sanctorum이라고 표기되는데 이것은 성도의 사귐이라고 번역될 수 있고 "거룩한 것에 참여"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초대 교회에는 거룩한 것에 참여라는 것이 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참고:여기에 대한 최고의 권위서는 Werner Elert, Eucharist and Church Fellowship in the First Four Centuries] 따라서 성도의 사귐은 단지, 친교의 의미를 넘어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며, 이것은 그 자체가 구원이다. 그렇다면, 성찬을 지금보다 현저하게 자주 시행하는 것은 한국 개혁교회의 과제라고 볼 수 있다.

 

2. 세례와 성찬. 우리는 이 2가지 성례만을 인정하는데, 세례는 한 번만 시행하고 성찬은 계속적으로 시행한다. 왜 그럴까? 세례는 칭의에 성찬은 성화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세례가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주어진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성찬은 이 언약에 참여한 성도가 계속적으로 누리는 복이라고 할 수 있다.

 

3. 왜 목사만 성례를 집행할 수 있는가? 목사를 말씀의 종이라고 한다. 말씀은 들리는 말씀인 설교와 보이는 말씀인 성찬과 세례로 구별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으로 목사는 말씀과 성례의 종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목사들은 명백하게 직무 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성도들이 1년에 2-3번 정도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영적으로 부요한 삶을 누릴 수 있겠는가? 이제 말씀의 사역자들은 보이는 말씀에 보다 관심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세례 교육을 강화하여야 하고 성찬식을 자주 시행하여야 한다. 성찬식을 자주 시행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을 돌아보는 것, 즉 심방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예식 만을 따진다면, 일반 성도들도 세례나 성찬을 베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몇번만 연습하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세례나 성찬이 목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성찬과 세례가 단지 그 예식 자체 뿐만 아니라 그 예식을 위한 목양, 즉 세례문답교육과 심방(권징)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3. 떡과 포도주가 각각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유월절에는 떡(무교병)만 사용된 반면 신약의 유월절인 성만찬은 포도주를 첨가시키고 있다. 주로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와 연결이 되고 따라서 포도주는 생명과 쉽게 연결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물이 아니라 포도주를 사용했을까? 또한 포도주가 생명을 지칭한다면 생명을 지칭하는 빵과 포도주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최근에 Bread of Life, Cup of Joy라는 책이 나왔는데, 말 그대로 떡은 우리의 생명을 지칭하고 포도주는 기쁨을 지칭한다. 즉 빵과 포도주는 각자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찬 설교 때, 우리는 단지 성찬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본문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 오병이어의 사건, 시편에 나오는 "구원의 잔을 들고"라는 구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축사하시는 장면, 등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성찬을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을 기쁨을 회복시키는 메시야로 나타내셨다. 그리고 이것은 이사야 55장에 나오는 "너희는 와서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말씀의 성취로 볼 수 있다.

 

4. 기쁨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 장례식과 비슷한 성찬식은 또한 극복되어야 한다. 주로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성찬식이 제정된 사실때문에 한국교회는 너무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것은 구속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성찬식은 십자가 전이지만, 우리는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성도이다. 제자들 역시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에 성찬식을 하지 않고, 부활하신 날 성찬식을 베풀었다. 그렇다면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동시에 고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신약 교회에서, 성찬식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누릴 식탁 교제를 지금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영적 임재설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개혁파 성찬론은 영적 임재설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기념설과 비슷하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영적 임재설은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떡과 포도주에 임한다는 말이 아니다. 영적 임재설을 풀이한다면, 예수님의 참된 몸과 피가 성령에 의하여 떡과 피에 임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하면, 영적 임재설은, 성령적 임재설, 혹은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의 참된 임재를 뜻한다.

 

여기서 다른 견해들과 비교를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카톨릭: 떡과 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완전하게 변함. 이것은 사제(신부)의 중보적 역할의해 가능함. 보라! 사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떡을 예수님의 살로 변화시킨다.

 

루터란: 예수님의 진짜 살이 떡 "위에, 아래에, 그리고 떡과 함께" 임한다고 본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은 루터란의 독특한 기독론에 근거한다. communicatio idiomata라고 부르는데 그리스도의 양성, 즉 신성과 인성이 교류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실제 몸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때문에 어느 곳에나 편재(ubiquity)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루터교의 성찬론의 핵심은 기독론에 있다.

 

쯔빙글리 및 복음주의: 성찬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시키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실천적인 면에서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6. 다른 교리들과 비교해 볼 때, 개혁주의 성찬론은 성령론이 핵심인 것을 그대로 알 수 있다. 개혁주의 성찬론의 최고의 이론가는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예수님의 참된 살과 피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성찬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인간이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하시면, 우리 육신의 입은 떡을 먹지만 우리의 영혼은 그 양식을 영혼의 입인 믿음을 통해서 먹는다고 말하였다. 그야말로 성찬은 spiritual meal인 것이다. , 성찬식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참되게 혹은 정말로 참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7. 카톨릭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과 루터란의 공재설[consubstantiation]은 서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몸을 지상으로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반면, 개혁파 이론은 우리의 영혼을 예수님이 계신 하늘로 올리는 이론이다. 그래서 개혁파는 오랫동안 교회의 성찬에서 사용된 성찬용어 Sursum Corda [내 마음을 들어 올립니다]를 핵심적인 위치에 놓았다. 엄밀히 말해서 떡과 포도주에 주의 살과 피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들어 올려져서 하늘에 계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8. 참고로 루터란과 카톨릭은 Altar[제단]라는 말을, 개혁파는 table[식탁]이라는 말을 쓴다. 이 점에서 한국교회의 성찬은 카톨릭을 더 닮았다. 이것 또한 극복되어야 한다. 성찬은 카톨릭의 미사가 아니라 식사(Lord's Supper)이다. 식사의 시간은 즐거운 교제의 시간이다.

 

카톨릭이 성찬을 주로 sacrifice [희생제]로 보는 반면에 개혁파는 eucharist [감사제]로 본다. 성찬에 있어서, 카톨릭은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드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개혁파는 주님으로부터 우리가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카톨릭에 있어서 성찬은 공로 [무엇을 드리는 것]이라면, 개혁파에 있어서 성찬은 은혜 [우리가 받는 것]로 이해된다.

 

9. 우리는 정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가? 아니면 주일날 앵무새 처럼 외우기만 하는가?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예배 속에서 이 고백이 어떻게 실천되고 경험되고 있는가? 성찬론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교회를 다시 회복시키고 부흥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이론이다. 우리의 고백이 실천으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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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와 자매관계에 있는 화란개혁교회가 최근 여성안수(보다 정확한 용어로는 여성임직)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진리를 추구하였던 이 교회의 이탈로 인하여 이제 고신교회는 이전 보다 더 외로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보다도 훨씬 더 진리에 민감했던 교회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고신교회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여성안수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토론할 필요가 없다. 이미 토론할 수 있는 내용들은 다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단지 어느 해석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도 뭔가 새로운 해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여성안수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전에 여성안수를 받아들였던 신학적 논의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였을 뿐이다. 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이다.

 

여성안수는 결국 성경해석의 문제이고 성경해석의 문제는 성경해석 방법의 문제이다. “오직 성경의 원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개신교회는 로마교회와는 달리 성경은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을 통해서 해석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직 성경의 원리를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성경해석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성경 해석의 방법이 달라지면 해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성경해석 방법을 취할 것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은 성경 해석에 대해서 2가지 중요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성경의 명료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치성에 관한 것인데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이 두 항목은 다음과 같다.

 

7.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은 자체로서 똑같이 명백하지도 않으며 만인에게 똑같이 분명하지도 않다. 그러나 구원을 위하여 반드시 알고, 믿고 준수해야 할 바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아주 분명하게 공표되었고 열려 있기 때문에 배운 자든 못 배운 자든 통상적인 방편을 합당하게 사용하여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

 

9. 성경을 해석하는 정확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경구절의 참되고 완전한 의미(여럿이 아니고 하나이다)에 대하여 의문이 있다면, 보다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을 가지고 살피고 깨달아야 한다.

 

성경은 본래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함부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종교개혁 당시 로마교회의 공식 입장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교육을 받지 못한 평신도들이 읽지 못하도록 성경 번역을 원천봉쇄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거짓된 로마교회의 교리에 반하여 종교개혁가들은 목숨을 걸고 성경을 번역하여 모든 성도들이 성경을 읽는 시대를 열었다. 성경이 어렵다는 로마교리에 대항하여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의 명료성을 주장하였다. 이 점에서 7항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고백이다.

 

 

성경의 명료성은 모든 성경의 내용이 이해하기에 쉽다는 말은 아니다. 7항이 분명히 언급하듯이 성령의 명료성은 구원을 위하여 알고 믿고 준수해야 하는 것들에 한정된다. 이것들은 아무리 못 배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알 수 있다. 이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신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신학 공부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시골 할머니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는데 고대근동 문화에 대해서 10년을 넘게 연구한 학자가 그것을 모를 수도 있다. “인자(人子)”를 그냥 단순히 인간의 아들로만 이해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여성안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알고 믿고 준수해야 하는 항목이기 때문에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그렇게 많은 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성안수 문제를 문화적/역사적 해석을 통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여성안수와 같은 중요한 교리적 문제가 문화적, 역사적 해석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때로는 전문 분야의 연구자들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교리적인 문제를 결정하는 데에까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그렇다면 성경은 중세 기간처럼 전문가들의 손에 놀아나게 될 것이다. 또한 문화적 해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나중에 새로운 사료가 발견된다면 성경 해석은 또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성경해석이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믿고 준수해야하는 내용은 오직 성경의 명료한 가르침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의 명료성과 더불어 일치성도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원리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저자가 한 분이시기 때문에 성경 안에 상호 모순이 있을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은 여성안수를 찬성하였고 바울은 반대하였다는 식의 해석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상호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 그러한 것뿐이다.

 

성경을 보면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여자 사사 드보라의 예)도 있고 반대하는 구절(여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금하노니)도 있다. 아마도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따르면 보다 분명하고 명료한 구절에 근거하여 그렇지 않은 것들을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분명하고 명료한 구절은 무엇인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여성안수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명료한 성경구절은 딤전 32절과 9절이다. 그곳에 보면 감독과 집사의 자격은 한 아내의 남편이다. 본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구절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정도로 분명하다. 동성결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남편은 남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른 구절들은 가장 명백한 이 구절에 비추어서 해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안수에 대한 논의는 결국 어떤 성경해석 방법론을 취할 것이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모두가 저마다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다. 어떤 시각도 가지지 않고 순수하게 성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바른 시각을 가지는 것이다. 성경의 명료성과 일치성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석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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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Q&A] 기름부음 사역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성령을 받게 하시는 사역이다-

 

예수님이 안수하시는 모습

 

성경에서 '기름을 바르다, 기름을 붓다, 기름을 부어 성별하다'(anoint, 동사) 주로 사용되는 히브리어는 마샤이고 헬라어는 크리오이다. 마샤에서 '메시야', 크리오에서 '크리스도'란 단어가 생성되었다.

'기름을 붓다'는 말이 구약에서는 주로 문자적으로 기름을 붓거나 바르는 행위를 말하는데 신약에 와서는 상징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향유-향기 나는 기름-를 붓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기름부음

성경에 기록된 기름부음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하였다.

구약에서는 주로 제사장과 왕에게 기름을 부었는데(29:29; 4:3), 그래서 대제사장과 왕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 불렸다(4:3; 5, 16; 6:20; 132:10). 왕에게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왕적 신분으로 인정하거나 취임하는 것을 말한다(삼상 16:13; 삼하 2:4 ).

선지자에게도 기름이 부어졌고(왕상 19:16; 대상 16:22; 105:15), 마귀로 타락하기 전의 그룹 천사장도 기름부음을 받았다(28:14).

-성물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했다(30:22-33 ).

방패에 기름을 바른다는 말은 가죽 방패에 기름을 발라 출전 준비를 한다는 말이다(21:5).

-손님을 환대하는 표시이다.

날씨가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손님에게 기름을 발라주는 것은 지극한 호의의 표시로서(7:38, 46), 마사지 같은 효과를 통해 몸을 풀어주고 활성화시킨다.

-치유를 위한 기름부음.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치유하는 데 사용되었다(109:18; 1:6; 6:13; 5:14). 요즈음에도 치유사역자 중에는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치유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시체가 썩지 않게 기름을 발랐다(14:8; 23:56).

-예수의 장사를 예비하는 기름부음.

신약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만한 기름부음은,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었다는 복음서의 기사이다(26:6-13, 14:3-9 ). 이것은 비상한 환대의 표시, 혹은 장사의 예비이기도 한 것인데, 그보다도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나타내려고 한 상징적 행위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예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 그리스도이시다.

약속된 구세주이신 예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 One)(2:2; 9:25) 즉 메시야(히브리어) 또는 그리스도(헬라어)이시다(1:41; 9:22; 17:2, 3; 18:5, 28).

-신약의 신자들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신약의 신자들도 구원의 보증인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인치심을 받은 자들로서(고후 1:21-22), 기름부음이 내주하기 때문에 이단성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고 한다(요일 2:20, 27).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0, 27).

-기름부음은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1:9).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61:3).

즐거움의 기름이 부어질 때, 희락의 영, 거룩한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필자가 한글 신학사전, 영어 신학사전을 여러 권 참조해 보았지만 오늘날 성령사역자들이 하는 기름부음 사역에 관한 언급은 없다는 사실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61:1-3).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4:18-19).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10:38).

대부분의 전통적인 신학자들은 필자가 예로 든 위의 구절들을 예수님의 메시야 선포식 정도로 이해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예수님에게 기름붓듯 임한 성령은 누가가 말하는 사역적이고 경험적 성령을 말한다. 예수님은 비록 100% 신성을 갖추신 분이지만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후에 사역하신 것으로 기록한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후 하신 메시야 사역의 내용-치유, 축사 및 복음전파 등-을 기록한다.

오늘날 성령사역자들이 사용하는 기름부음 사역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예수님이 시작하시고 사도들이 이어 받은 메시야 사역-복음전파, 말씀 가르침 및 치유사역-을 계승해 가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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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 정교회는 무엇이며, 그들은 무엇을 믿는가?

 동방 정교회는 단일 교회가 아니라 정교회들이 위치한 나라에 있는 13개 자치체의 공동체(예: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를 말합니다. 그들은 성례, 교리, 전례 및 교회 정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통일되어 있지만 각각 따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각 정교회의 머리는 "총대주교" 또는 "수석대주교"라고 불립니다. 콘스탄티노플(터키의 이스탄불)의 총대주교는 에큐메니칼 또는 보편적인 총대주교로 여겨집니다. 그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과 가장 비슷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VICARIUS FILIUS DEI)로 알려진 교황과는 달리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평등 가운데 첫째”(PRIMUS INTER PARES)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특별한 명예를 누리지만, 다른 12개의 정교회에 간섭할 권한은 없습니다.

정교회는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참 교회라고 주장하며 그 뿌리는 연속적인 사도 계승을 통해 원래의 사도들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교회 사상가들은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의 영적인 위치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이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 마찬가지로 정교회 신자들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다른 많은 성경적인 교리를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리에 있어서 개신교 그리스도인들보다는 로마 카톨릭과 훨씬 더 공통점이 많습니다.

슬프게도,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는 정교회의 역사와 신학에 빠져 있습니다. 오히려 정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테오시스”(문자적으로 "신성화")를 강조합니다. 정교회 전통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신성화"는 구원의 결과이지 구원을 얻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충돌하는 다른 정교회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과 교회의 전통이 동등함
 전통 없이 개인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막음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
 죽은 자를 위한 기도
 개인의 책임 및 믿음과 관련 없는 유아 침례
 죽음 이후에 구원받을 가능성
 구원을 잃을 가능성

 동방 정교회는 교회의 큰 목소리들 중에 몇몇을 주장하는 한편, 정교회의 전통 내에 예수 그리스도와 진정한 구원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교회는 그리스도의 성경적인 복음과 조화될 수 있는 분명한 메시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동방 정교회에는 개혁주의자들이 부르짖었던 참으로 귀한 보물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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