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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과 부활절 전 한 주 동안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며

 

 

 

 

 고난주간은 부활절 전 한 주간으로,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떻게 신앙적으로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지냅니다.

 

첫째날 ;

 
 예루살렘 입성 ;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 마가복음 11 ; 1 -11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성으로 공공연히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셔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웅장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 속에서 인간의 위선, 탐욕, 가증스러움, 이기주의 등의

죄악이 가득 차 있음을 보셨습니다.

다음 날 예수께서는 이처럼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케 하기 위해 채찍을 드셔야 했습니다.

 

묵상 ; 1.고난과 죽음을 미리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용기를 생각해 봅시다.

         2.오늘 내 마음 속을, 우리 교회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둘러 보신다면 무엇을 느끼실까요?

  

둘째날 ;

 
성전을 청결케 하심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 마가복음 11 ; 15 - 19

 

 

당시 성전 안에서는 명절 때 희생의 제물로 쓸 짐승과 향유, 그밖에 필요한 물품을 매매하였고, 성전안에서만 쓰는 유대 화폐를 교환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인들, 돈 바꾸는 자들과 결탁한 제사장들은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성전은 완전히 시장과 같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어 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7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러워진 성전에 대해 벽분하시고 이를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이것은 성전 뿐아니라 온세계를 성결케 하시려는 하나의 표징이 됩니다.

 

묵상 ; 1. 나의 신앙은 혹시 이기주의, 상업주의에 젖어 있지 않나요?

         2. 하나님의 성전을 참으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셋째날 ;

 
과부의 두 렙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마가복음 12 ; 41 - 44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지켜보셨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것 같은 이야기에서 실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강조되어 있는 점에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양보다는 질을, 형식보다는 중심을 중요시 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 주실 만한 것입니까?

 
묵상 ; 1 ;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헌금은 어떤 것일까요?(고후9;7. 8;12)

         2. 다음의 말씀을 명상합시다.
 

"많은 사람들은 지갑으로만 바쳤지만 그녀는 마음으로부터 바쳤습니다.

이는 습관을 좇아 드리는 것과 사랑으로 드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넷째날 ;

 

한 여인의 헌신

 

"..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 마가복음 14 ; 3 - 9

예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와 그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보통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이 향유는 무척 비싼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충동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속에서도 예수께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묵상 ; 1.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주님을 위하는 데 따라야 할 자기 희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함"과 같이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의 말씀에서 '봉사의 기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봉사해야 할 일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섯째날 ;

 
최후의 만찬 ;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가복음 14;22-25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희생해 제자들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실 것을 말씀으로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찢기실 자신의 몸과 흘리실 피로 속죄를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만찬 때 예수께서는 한 사람의 제자장으로서 그의 영원한 영혼을 흠 없이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묵상 ; 1. 최후의 만찬에 참여한 제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봅시다.

         2.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속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여셧째날 ;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시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 마가복음 15;16-41

 

1.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3. "어머니 보소서. 아들입니다."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돌봄과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대신 지신 죄 때문에 고통당하시고 버림 받으시는 예수의 거룩한 절규를 보게 됩니다.

5. "내가 목마르다."

               인간들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을 요청하시는 갈증입니다.

6.:다 이루었다."

              거룩한 희생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하나님 어린 양의 승리의 외침입니다.

7. "아버지, 내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예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위대하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묵상 ; 1. 용서함 받은 우리는 역시 남을 용서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2. 훗날 우리가 남길 유언을 생각해 봅니다.

 

일곱째날 ;

 
무덤 속의 예수 ;
 

"..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 마가복음 15;42-47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청하여 자기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 둔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지만 이제는 관헌의 박해와 친지들의 차가운 눈총을 무릎 쓰고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당당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물리치게 되셨습니다.

그는 무덤의 어두움을 제거하셨으며 그 공포를 영원히 쫓아버리셨습니다.

죽음이 그 쏘는 살로 그리스도를 상하게 했지만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그 위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묵상 ; 1.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2. 기독교인은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여덟째 날 ;
 

부활의 주를 만난 삶 ;
 

금요일에 장사지낸 바된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본문은 에수 부활 사건이 전해진 그날 오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고,

실의에 빠진 그들이 부활의 주를 만나 용기를 얻었다는 기록입니다.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는 그날 아침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께서 그들 사이에 동행하시면서 구약성서를 풀어주셨습니다.

메시아가 고난받으셔야 할 것과, 고난 후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니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누가복음 24;25-35
 

그후 그들의 목적지까지 도달하여 떡을 떼실 때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고

, 용기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부활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는데 왜 그들은 깨닫지 못했을까요?

마가복음 16장12절에는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24;16)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사 저희에게 떼어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아라" 보게 되었습니다.

 

묵상 ; 1. 예수의 부활의 사실을 의심할 때가 있나요?

         2. 부활 신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생동감 있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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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모습

 

 

 

1) 구약 성경의 아버지

다니엘 7/9~10 내가 본즉 보좌들이 놓여 있고 옛적부터 계신 이가 앉아 계시는데 그분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분의
머리털은 순결한 양털 같으며 그분의 보좌는 맹렬한 불꽃 같고 그분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으며 불이 강같이 흘러
그분 앞에서 나오고 그분을 섬기는 자들은 천천(千千)이요, 그분 앞에 서 있는 자들은 만만(萬萬)이라. 그분께서 심판을
베푸시는데 책들이 펴져 있더라.

잠언 16/31 흰머리를 의의 길에서 얻으면 영광의 왕관이 되느니라.

다니엘이 이상 중에 하나님 아버지를 뵈었는데 보좌에 앉아 계시고, 눈 같이 흰 옷을 입으시며, 백발을 하고 계십니다.
잠언을 보면 '흰 머리'(백발)는 의의 길에서 얻게 되는 영광의 면류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보좌가 불꽃 같고, 바퀴들이 타오르는 불 같으며, 불이 강같이 그분 앞에서 흘러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는 수 억의 섬기는 자들이 있고, 보좌 앞에는 영혼을 심판할 책들이 펴져 있습니다.

 

2) 구약 성경의 예수님

다니엘 10/5~9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보라, 어떤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그 허리에는 우바스의 정금으로
띠를 둘렀더라. 또한 그의 몸은 녹주석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개 모양 같고 그의 눈은 등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의 색깔은
연마한 놋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말소리 같더라. 나 다니엘이 홀로 이 환상을 보았으니 이는 나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큰 지진이 임하므로 그들이 이 환상을 보지 못하고 도망하여 몸을 숨겼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홀로 남아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게서 힘이 빠졌으니 이는 내 아름다움이 내 속에서 변하여 썩은 것이 되었고 아무 기력도 남지 아니하였음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의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얼굴을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다니엘이 강가에서 예수님을 뵈었는데, 아버지는 주로 보좌에 앉아 계시지만 예수님은 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정금 띠를 둘렀으며, 몸은 녹주석 같고, 얼굴은 번개 같이 빛나고, 눈은 등불 같고,
팔과 발은 연마한 놋과 같고, 말소리는 무리의 음성 같이 울립니다.
다니엘 외의 다른 사람은 환상을 보지 못하고 무서워 도망갔고, 다니엘도 준수한 의인이었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아름다움이
변하여 썩은 듯이 느껴졌고, 예수님의 권세에 압도 당해 힘이 빠져 깊이 잠들게 됩니다.

 

3) 신약 성경의 아버지

계시록 4/2~5 이에 내가 즉시로 영(靈) 안에 있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니
앉으신 분의 모습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보좌 둘레에 무지개가 있어 보기에 에메랄드 같더라. 또 보좌 둘레에 스물네
자리가 있고 내가 보니 그 자리들 위에 스물네 장로가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더라. 그 보좌로부터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타고 있으니 이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사도 요한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뵈었는데 역시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보좌 둘레에 에레랄드 같은 무지개가 있습니다.
보좌 둘레에 스물네 장로가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스물네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아버지의 보좌로부터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하나님의 일곱 영인 일곱 등불이 타고 있습니다.

 

4) 신약 성경의 예수님

계시록 1/13~18 이 일곱 등잔대의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으신 이가 발까지 내려온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시는데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같이 희며 그분의 두 눈은 불꽃 같고 그분의 두 발은 용광로에서
달구어낸 정제(精製)된 놋 같으며 그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容貌)는 해가 세차게 빛나는 것 같더라. 내가 그분을 볼 때에 그분의
발 앞에 쓰러져 죽은 자같이 되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볼지어다,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를 가지고 있노라.

사도 요한이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뵈었는데 역시 긴 옷을 입고, 금띠를 두르며, 백발을 하고 계시고, 두 눈이 불꽃 같고,
두 발은 정제된 놋 같으며, 음성은 많은 물소리(폭포수 처럼 우렁참) 같습니다.
그분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고,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용모는 해처럼 강하게 비췹니다.
요한 역시 예수님을 보자 힘이 빠져 쓰러지니 예수님이 손을 얹으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고, 전에 죽었으나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며, 지옥과 사망의 열쇠를 갖고 계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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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독서(Lectio Divina)”는 성경과 기도를 연결하는 4단계의 기도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lectio divina를 “영적독서기도”라고 의역할 수도 있다. “영적(divine)”이란 말은 존재론(ontology)적 의미(영적인 독서의 대상물을 의미)와 인식론(epistemology)적 의미(영적으로 독서를 함)를 가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새 사람, 새 가치의 영적 사람으로의 가치론(axiology)적인 변화(transformation)를 지향한다.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영성수련 방법들 중의 하나가 “영적 독서기도”이다. 그런데 그 이름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영적독서기도는 한국에 많이 알려진 Q.T(Quiet Time)의 원형이다. [참고: QT 속에서의 관상의 위험<<]  Q.T는 영적독서기도의 단계 중에서 관상의 단계가 빠져있거나 약한 것이 문제이다.


기원후 6세기에 와서는 베네딕트의 Rule for Monastries 등에서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성경읽기 지침』(Instructions on How to Read the Holy Bible)과 웨슬리의 『성경읽기에 대한 조언』(Advice on Spiritual Reading)도 영적독서와 유사하다.


영적독서기도는 개인으로도 그룹으로도 실천할 수 있다. 영성수련에 있어서, 위로는 영적 지도자를 두고 옆으로는 영적 친구를 사귀도록 하자. 향수집에 들어갔다 나오면, 향수를 사지 않아도 향수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나아가, “남의 소를 아무리 세어도 나에게 유익이 없다.”는 말을 명심하고 스스로 영성수련을 실천하자.


영적 독서기도의 단계와 그 구조: 전통적으로, 영적독서기도는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 읽기(Lectio)
2. 묵상(Meditatio)
3. 기도(Ortio)
4. 관상(Contemplatio)

 

여기서 필자가 행함(operatio) 혹은 실천적 삶이라는 단계를 첨가하기도 한다. “전통은 죽은 자의 산 얼굴이고, 맹신적 전통절대주의는 산자의 죽은 얼굴이다(Traddition is the living face of the dead: tradition is the dead face of living)”


영적독서기도의 5단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선형으로 발전되어 나아간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5단계의 순열과 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도―읽기―기도―묵상―기도―명상―기도―행함의 순서로 진행할 수도 있다.이러한 과정 중에 쓰기(기도문, 시, 산문…), 예술적 표현(그리기, 노래하기, 춤추기…), 나누기(sharing) 등등을 할 수도 있다.


십자가의 요한[신비가]은 감칠맛 나게 영적독서기도를 요약한다.
“독서에서 찾아라. 그러면 묵상[명상]에서 찾을 것이다. 기도에서 두드리라. 그러면 명상[관상]에서 열릴 것이다. (Seek in reading, and you will find in meditation. Knock in prayer,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in contemplation.)”

 

1. 읽기(Lectio)


성경의 한 가운데를 펼치면 시편 119:105이 나온다.“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In the beginning was the Word)”로 시작된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말씀(Word, Logos)이신 예수께로 나아간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식과 정보(information)만을 위해서 성경을 읽지 말고, 나의 존재와 삶의 변화(transformation)을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함을 명심하며 다음의 단계를 밟자.


1) 장소와 때


시간과 공간의 십일조에 인색하지는 않은가? 되도록 가장 좋은 시간과 장소에서 영적독서기도를 실천하자.
하루 24시간의 삶 전체가 기도가 되려면, 일상적인 삶이 아닌 기도만을 위한 집중적인 기도시간이 필요하다.


2) 몸풀기와 호흡, 침묵과 기도로 준비하자


영성수련 전후에 몸풀기와 호흡 고르기를 한다. 자연스럽고 깊게 호흡을 고르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 조용히 겸허한 마음으로 서자. 호흡은 온도계(thermometer)이며 동시에 온도조절기(thermostat)이다. 온도계로 체온을 재듯이, 호흡으로 그 사람의 심적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또한 온도조절기로 방안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듯이, 자연스럽고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호흡은 마음풀기의 한 좋은 열쇠이다. 호흡훈련은 기도와 묵상, 스포츠, 무술, 예술 등에서 그리고 심지어 아기를 출산할 때에도 중요시된다.


기독교의 헤시카즘(Hesychasm-동방교회의 정적주의)도 호흡과 자세 등을 기도의 중요한 부분으로 가르치고 훈련했다. 성경을 읽기 전에 , 혹은 소리 내어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한두 시간을 침묵한 성인들이 있다. 방자하게 성경이나 입을 열지 않기 위함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자. 성령이 성경을 조명하실 것을 기도하자.


3) 성경을 전심으로, 온 몸으로 일고 듣는다.


영혼과 몸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듯이<참고:마22:37; 눅 10:27; 신 6:4-9> 성경을 그렇게 사랑하고 읽자.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인 성경 앞에 서면 가슴이 설레며, 영혼의 초점이 하나님께 모아진다.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TV를 잊고 생명의 소리, 복된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스러운 호흡에 맞추어 일정량의 성경을 읽어 나아간다. 서두르지 말자. 시간에 쫓겨 햄버거를 먹어치우듯이 해서야 되겠는가? 적당한 음성으로 천천히 성경을 읽으면서 동시에 그 읽는 것을 듣자. 귀로 뿐만 아니라, 피부로 그리고 온 몸으로 그 음성의 파동을 느끼자.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세포가 깊숙이 공명함을 느끼기도 한다.구름기둥이 멈추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여행을 멈추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멈추면. 성경을 읽다가 멈추어 서서 그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하자. 그리고 다시 성령이 움직이면, 성경을 계속 읽는다.<참고:출 40:36-38]>


4) 읽는 방법


신명기 6장 5절에 있는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이여 들어라)”은 중요한 전통이다. 온 몸과 마음으로 경건하게 읽되, 읽는 방법들은 아래와 같이 다양하다.


큰소리 읽기―작은 소리 읽기―숨소리 읽기―마음소리 읽기―소리없는 침묵독
통독(通讀)―정독(精讀)―미독(味讀)
소요독(逍遙讀)과 체독(體讀)
낭독―교독―윤독―합독
초독―재독―암송독


5) 평생 독서: 7범주


책 중의 책 : 성경
성경은 물론이요 다른 “책”들(위의 7범주의 “책”들)도 읽자. 예를 들어, 자연이라는 책, 영혼이라는 책, 그리고 역사라는 책도 읽자. 자연과 영혼과 역사에 하나님의 흔적(vestige)이 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성경뿐만 아니라 자연과 영혼과 역사의 원저자이시며 지휘자이시며 재창조자이다. 평생의 독서계획을 수립하자. 평생의 독서는 자손들과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의 아버지는 늘 책만 읽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은 많은 독서로 양식이 풍부하니 사회를 위해서 일을 좀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일을 권유했다. 그러나 처칠의 아버지는 그저 책만 읽었다. 사람들은 그를 무능한 사람으로 간주했다. 무능한 사람들을 보면 “처칠의 아버지같은 사람이 또 있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과연 처칠의 아버지의 독서는 비생산적인 일이었을까? 바로 그 독서가 처칠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빚은 것이다.

 

2. 묵상 [명상] (Meditatio)


“복있는 사람은…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1-2). 히브리어인 “Hagah”는 보통 묵상(meditation)으로 구약에 번역되어 있다. Hagha는 내면화(interiorization)와 말씀을 계속 되뇌이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인 “meditation”은 라틴어인 “meditatio”에서 유래하며, “meditatio”는 그리스어인 “melete”와 유사하다.
“Melete”는 돌보다(care), 공부하다(study), 연습하다(exercise)등의 의미를 가진다. “Meditation”의 어근인 “med”도 치료하다(cure), 돌보다(care)등의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면, medicine=약, 의학) “heal,” “whole,” 그리고 “holy”는 같은 어원을 가진다. 곧, 치유되(cure, heal) 전인(whole person)이 건강과 평화를 얻으면 거룩해지(holy) 것이다. 묵상은 재창조와 구원을 향한 길이다. 예수는 습관적으로 새벽에 혹은 밤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묵상하곤 하였다. “나는 평생 현자들을 보고 들으며 자라 왔다. 그런데 침묵과 고요함보다 더 유인 한 것을 찾지 못했다.”(시몬, 『사막의 교부들의 금언』)


말씀묵상과 내면화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소개한다. 역대상 29:17-19. 잠언 4장.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눅 2:19) 누가2:51. 예수님 자신도 성경(the Hebrew Scriptures)을 가지고 일종의 영적독서기도를 하였음직 하다. 예를 들어 마태11:4-6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답은 이사야 42:6-7과 61:1에 대한 묵상의 결과가 아닐까? 마태 22:37-40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갈파하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은 신명기 6:5(하나님 사랑)과 레위기 19:18(이웃 사랑)을 비롯한 성경전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묵상을 하셨을 것이다.


관주(貫珠)성경의 의미도 바로 일이관지하라는 것이다. 마가1:2-3의 기록도 이사야 40:3에 대한 묵상이 아닐까?
마음에 대한 다음의 구절들도 참조하자. 시27:3; 27:3; 51:10; 73:1; 119:2; 138:1. 삼상 2:1; 21:12; 27:1.

어떻게 묵상할까? 일기―묵상―기도―명상의 전 단계가 성령의 방법을 따른다. 수영 책만 보고 수영을 잘 할 수 있을까? 수영은 수영함으로써 배운다. 묵상도 묵상함으로써 배운다. 성령이 묵상의 대선생이시고 신앙의 선배나 친구나 책은 보조수단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몇 가지 묵상방법을 논하자.


1) 명상 중 잡념이 생길 때


명상을 하다가 잡념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잡념을 붙들고 싸우느라고 더 많은 잡념을 만들지 말자. 잡념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잡념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잡념이 저절로 온 것처럼 저절로 가도록 하자.


“Let is come, let it go.” 호흡을 가다듬거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계속 묵상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5감을 조절하여 잡념을 방지하자. 한편, 5감을 적극적으로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다.
내적인 영적 5감도 프란시스 처럼 활용할 수 있다. <참고:The Life of St. Francis in Bonaventure, Bonaventure p. 262-3.) 5감과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전통은, 프란시스 (약 1181-1226) 혹은 보나벤처(약 1217-1274)의 삶의 나무(The Tree of Life,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묵상이다)와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 약 1491-1556)의 영성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으로 이어진다.


2) 소의 되새김질


읽은 말씀에 대해서 느끼고(sense and feel) 상상하고(imagine), 생각하고(think) 직관적으로 공명하라(intuitive resonance). 읽은 말씀 중에서 특히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소처럼 계속 되새김질하자. 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듯이, 말씀에서 달고 오묘한 맛이 나온다.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내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적신다. 말씀이 내면화 된다. 목판 활자를 진흙에 대고 누르듯, 말씀이 진흙같은 나의 존재에 서서히 새겨진다.


3) 입술로 마음으로


소처럼 말씀을 되새김질할 때, 소리내어 말씀을 반복적으로 되뇌다가, 마음의 되새김질로 넘어가도 좋다. 마음의 되새김질 중에 초점이 흐려지겨나 잡념이 들거나 졸릴 듯 할 때, 다시 입술의 되새김질로 돌아와도 좋다. 입술의 되새김질과 마음의 되새김질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고갈 수 있다. 마음에 심상(image)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편 23편을 묵상할 때, 푸른 초장과 목자되신 예수님의 그림이 떠오른다. 친구되신 예수님과 초장을 거닐며 담소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관상기도/향심기도에서는 주문 외우듯이 반복함을 통해서 마음을 비우고, 심상화/구상화를 통해 접신이 이루어진다. 함께 초장을 거닐며 담소하는 존재는 예수가 아니라 소위 '스피릿 가이드'이다.]


4) 말씀의 성육신


되새김질에서 말씀이 자연스럽게 외워지면 좋다. 말씀이 마음에 스며들며,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처럼 피와 살이 된다. 씌어진 성경말씀 (the written Word)이 성육신하신 말씀(the incarnate Word) 곧 임마누엘 예수로 바뀌어 간다. 날마다 크리스마스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임마누엘의 뜻)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사람이됨을 기도해봄직하다.


3. 기도 (Oratio)


말씀묵상을 통하여 기도의 단계로 나아간다.잘 먹은 젓소는 좋은 우유를 낸다. 마찬가지로, 깊은 묵상은 선한 기도를 낸다. 말씀묵상을 통해서 진국처럼 흘러나오는 기도가 향기로은 법이다. 나의 시편과 나의 아가서를 쓰자.


1) 삶을 기도하고 기도를 살자.


기도는 생명의 말씀에 대한 기도자의 삶의 응답이다. 삶은 마음과 몸짓, 언어와 상징과 침묵을 포함한다. 기도는 삶의 내용처럼 다양하다. 기도는 찬양, 감사, 그리고 고백을 포함한다. 기도의 표현방법도 다양하다 :
입술 기도, 마음 기도, 방언기도/찬송, 찬송, 예술 (그림, 춤, 작사작곡.…), 문학 (시, 수필, 기타 글짓기), 삶의 양식 등등.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존 크리소스톰) : 그 대화는 달콤하기도 하지만 쓰기도 하다.
기도는 밀월같은 속삭임, 얍복강의 씨름, 하나님과의 토론을 마다 않는다. 삶을 기도하고 기도를 살자.
마침내, 삶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삶이 된다. “전 생애가 하나의 향기로운 기도가 된다.”(참고: 바울, 오리겐). 이러한 기도와 삶을 형제자매들과 서로 나누자. 무지개 빛 은총이 하늘에 걸리지 않겠는가!


2) 찬양과 감사


다양한 기도의 내용들 중에서 네 가지를 짚어보자. 이 네 가지는 ACTS(성경의 사도행전을 의미)로 요약된다.
오리겐[신부신비주의자]도 이미 이 네가지 요소를 말했다.

A=adore (찬양, 예배, 경배하다)
C=confess (고백하다)
T=thank (감사하다)
S=supplicate (간구하다)

찬양과 감사의 예를 들어보자. 시편 146-150편은 “할렐루야 시편”으로 불리운다.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하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기 때문이다. “무릇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시편150:6)
시편 105편은 이스라엘의 요약판 역사이다. 역사의 반추를 통한 감사의 시요 신앙고백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 불로 밝히셨으며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로 오게 하시며 또 하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케 하셨도다.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서 마른 땅에 강같이 흘렀으니…할렐루야.”


3) 고백


시편 51편은 다윗의 회개의 기도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하나님이여 내 속에 순정한 마음을 창조(Barah)하소서…” (시편51:1-10,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후 예언다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지은 시) 여기서, “Barah(창조하다)”라는 히브리말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에만 씌어지는 말이다. 창세기 1장 1절에도 “Barah”라는 말을 쓰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참고 : coram Deo, 종교개혁자들의 신앙태도> 고백과 회개를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새 창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내 안에 견고한 (혹은 정직한)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0) 어거스틴의 고백록도 참고하자.


4) 간구


빨래를 빨래줄에 걸 듯이, 기도를 말씀에 건다. 허공에 건 빨래가 땅에 떨어지듯이, 말씀에 걸지 않은 기도는 힘없이 추락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이루어진다. 주기도문(the Lord’s Prayer, 가톨릭은 “Our Father”)은 7가지의 간구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 3가지는 하늘의 것을 구하고, 후반부 4가지는 땅의 것을 구한다. 마 6:33이 주기도문의 정신과 구조를 잘 요약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마태복음 6:5-34절을 읽자. 간구의 궁극은 하나님 자신, 하나님과의 합일, 그리고 하나님나라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오니…내 영혼아…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시42)


5) 기도의 3요소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도의 삼 요소를 가르쳐 왔다:

① 순수 (pura, 혹은 pure)
②간결 (brevis, 혹은 brief)
③자주 (frequens, 혹은 frequent)

주기도문은 위의 삼 요소를 만족시킨다.


주기도문은 영혼과 육, 개인적인 것과 사회역사적 측면을 포괄적이면서도 간결순수하게 기도하고 있다. 주님을 더 가깝게 뵐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주기도문을 계속 간직하자. 기도의 삼 요소를 충족시키는 “예수 기도(Jesus Prayer)”[카톨릭의 대표적인 주문/만트라식 되풀이 기도]도 실천하자. 예수 기도의 표준형들 중의 하나 :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upon us!)”

 

4. 관상 (Contemplatio)


1) 관상이란?


관상은 지성소처럼 고요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다. 관상은 음(陰)의 영성(apophatic spirituality)의 정수이다. 한국 개신교는 음의 영성에 약하다. 영적독서기도(lectio divina)가 QT(quiet time)의 원형인데, QT에 명상의 단계가 빠져있거나 미약한 것이 그 예이다. 관상을 포함한 영적독서기도는 가톨릭, 동방정교, 그리고 개신교가 분열되기 이전에 있었던 기독교 일반의 공통 신앙유산이다.


2) 관상의 방법


(1) 듣고 비우기


기도는 대화이며 쌍방통행이다. 하나님께 기도(oratio)라는 전화로 말을 했으니 이제는 듣자. 내 말만 하고 전화를 끊으면 되겠는가? 성경말씀(한국어이든 영어이든)까지도 놓고 원저자이신 하나님 자신을 만나자. 하나님의 원언어는 한국말도 영어(英語)도 아니다, 나아가 히브리어도 아니고 헬라어도 아니다. 나의 제한된 언어와 개념의 옷을 벗자. 나의 생각과 느낌과 심상(image)등 모든 것을 비우고 (kenosis, 참고 빌립보서 2:5-11) 하나님을 듣자. 영원한 첫사랑의 밀어를 듣는 시간이다.


(2) 잡념?


관상을 하다가 잡념(distractions)이 생기면 “온대로 가게하라.(Let it come, let it go.)” 방법을 쓰자. 관상의 전 단계로 돌아가서 말씀묵상을 하다가(예를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를 반추) 다시 관상으로 진입해도 좋다.다시 영혼의 지성소로 돌아와 하나님을 바라고 듣자. 내가 가진 모든 것(what I have) 예를들어, 언어, 개념, 학식, 예술성, 명예욕 등을 비워 하나님 앞에 내어놓자. 나의 나됨(who I am, what I am)자체와 전 존재를 겸허히 비워 하나님 앞에 내어놓자.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거룩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침묵 속에 하나님과 밀월의 시간을 즐긴다.


(3) 은혜의 길


묵상과 기도와 하나님을 듣기 중에 체험되는 한마음(single-mindedness) 혹은 초점화(one-pointedness)가 계속되고 깊어진다.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알 길이 없다, 무한이다. 궁극적으로 관상은 길 없는 길, 은혜의 길을 간다.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나는 단지 하나님에 의해서 찾아졌을 뿐이다.
내가 하나님을 찾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은 나를 연모하여 찾고 계셨다.”
묵상은 그 중심은 어디에도 있으나 그 경계는 어디에도 없이 무한히 넓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땅이다. 하나님 앞에(Coram Deo, 종교개혁자들의 표어이다) 마음을 모으고 선 곳이 바로 그 중심이다.
겸손하게 옷깃을 여미고 신망애의 신을 신자.


3) 관상의 열매


관상의 열매는 하나님과의 합일(unio mystica)이다. 하나님과 합일한 자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과 지혜를 가진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잠언 4:7)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 중심의 사랑의 삶을 산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13:13) 시내산에서의 10계명의 계시는 조명을, 광야생활은 정화를 의미한다.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과의 합일을 비유한다. 삼위일체는 사랑의 합일(loving union)과 영교, 그리고 창조적 조화(creative harmony)의 샘(fountain-fullness of fecundity)이다. 그 샘에서 생명수(the Living Water)로 오신, 참 하나님(vere Deus)이면서 참 인간(vere Homo)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합일의 원형이요 원동력이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합일이란 주제는 성경 전편을 흐르고 있다. 예를 들면, 아가서, 요한복음 15장과 17장. 고후 5:17-19. 갈 2: 20. 엡1:3-10; 2:1-22; 3:14-21; 4장. 빌 2:1-11. 골2:6-7. 영성체험의 극치는 하나님과의 합일이라는 말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①하나님과의 합일 혹은 결혼, 하나님의 형상 회복(apokatastasis)―존재론적 측면. 캘빈의 신학과 영성의 핵심에는 unio mystica[하나님과의 합일]가 있다. [칼빈에 대한 이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다. 과연 그런가???] [참고 : F. Senn, Protestant Spiritual Traditions, NY: Paulist Press, 1986
②하나님 임재의식과 영적 교통. 영안―영적 감각―영적인식.(인식론적 측면).
③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가치윤리적 측면). 구약의 613가지의 계명들은 10계명으로, 10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된다.[참고 : 신6:5. 레19:18. 마22:37-40. 눅 10:27. 고전 13. 갈5:14. 요일4:7-21. 베드로의 8덕 (벧후1:5-8). 8복을 포함한 산산수훈 (마태5-7장)]
④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합일―기독론과 교회론적 측면[ 참고 : 롬 12, 고전 12, 엡 4]
⑤하나님 나라(새하늘과 새땅과 새사람)의 체험과 도래―역사와 종말론적 측면
⑥이외에도 신화(神化, theosis), 성화(sanctification), 성결. 예수화 (엡4:13. 토마스 아켐피스[신비가]의 『그리스도를 본받아』(The Imitation of Christ), 이냐시오[카톨릭 비밀결사인 예수회를 설림한 신비가]의 『영성수련, 성령충만(성령의 열매와 은사들이 충만. [참고: 갈5:22-23. 롬 12, 고전 12, 엡 4. 엡5:18-21.], “오직 하나님(only God)”과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체험하며,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고 찬양하기도 한다. 예수님처럼 “아바,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체험한다. 바울처럼, 그리스도가 내 안에 (갈2:20),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참 자아(true self)를 찾으며,
자아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God-centered life)을 산다. 참고로, “그리스도 안”이라는 구절이 성경에 150번 이상 나온다. 깊은 하나님체험 속에서 언어를 놓고 침묵하는 사람들도 많다.


5. 행함 (Operatio)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신령한 변화 (transfiguration)를 보고 베드로는 그 곳에 거주하자고 예수님께 요청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산하여 하나님 나라 사역을 계속하신다.[참고 : 막9:2-32; 눅9:28-36; 마17:1-13. ] 믿음과 행함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성경에는 믿음의 구절뿐만 아니라 행함의 구절들도 많다. 예를 들면,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신5:27) 예수님 왈,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10:28) 또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약 2:17)
태풍의 눈 처럼 고요한 명상은 태풍처럼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으로 나타난다. [참고, 빌4:13.] 사도행전은 기도행전이었다. 기도가 사도행전의 산실이었다. 기도의 사람들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믿음의 역사, 소망의 인내, 사랑의 수고가 넘친다. 모세, 바울, 프란시스,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종교개혁자들, 본 회퍼, 토마스 머튼 등등, 한국의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등등.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훌륭한 분들―그 이름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행함(operatio)은 사랑의 실천이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며, 몸과 마음과 삶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거룩한 독서 [영적독서기도 Lectio Divina] (말씀을 통한 5단계 기도법)
출처: 은성출판사 홈페이지 (웹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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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예배 (동방 교회)?


성찬예배(聖餐禮拜, 그리스어: θεία λειτουργία, 러시아어: Божественная литургия)는 일반적으로 비잔틴 전통 계열 기독교의 성찬 전례를 일컫는 용어이다. 동방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에서는 자신들의 성찬 전례를 성찬예배라고 칭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그리스도교의 두 축을 이루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와[1]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2] 역시 성찬예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일부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성찬예배라는 용어 대신 ‘거룩한 봉헌예배(시리아어: qurbono qadisho, 아르메니아어: surb patarag)’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따금씩 라틴 양식 성찬 전례를 지칭하는 미사 내지는 그리스어인 리투르기아로 언급되기도 한다.

동방 교회, 특히 동방 정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찬예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가르친다. 성찬예배를 통해 모든 신자는 현세를 떠난 성인들과 천상의 천사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에서 하느님에 대한 경신례를 바침으로써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동방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찬예배는 본래 유다교의 경신례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맞게 변경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성찬예배의 첫 번째 부분으로서 성경 봉독과 강론을 포함한 ‘말씀 전례’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성찬예배의 두 번째 부분인 ‘성찬 전례’는 최후의 만찬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거행한 최초의 성찬식에 의거해 추가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찬예배에 참여하는 동방 그리스도교도들은 전통적으로 성찬전례가 예배의 중심으로 믿는데, 성찬전례는 빵과 포도주가 축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변화한다는 믿음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들이 이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일부가 된다고 믿고 있다. 교파별로, 또 전례시기에 따라 각 성찬예배는 다소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다만 각자 전통과 목적, 문화 및 신학적 방향에 입각하여 전례에 적용시켰을 뿐이다.

종류

동방 정교회와 비잔틴 가톨릭교회에서는 다음 세 가지 성찬예배를 거행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성찬예배(서기 5세기)는 밑의 두 성찬예배를 거행할 때와 사순시기와 성대주간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거행할 수 있다.
•성 대 바실리오의 성찬예배(서기 4세기)는 성 대 바실리오의 축일(1월 1일)과 사순시기 중 5주일과 성대주간 성대목요일, 성대토요일 아침, 주님 신현 축일 전날(1월 5일) 아침 등 1년에 10번만 거행할 수 있다.
•성 야고보 사도의 성찬예배(서기 1세기)는 보통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의 초대 주교인 성 야고보 의인의 축일인 10월 23일과 성탄절 다음날인 12월 26일에만 집전된다.

추가적으로, 미리 축성된 성찬예배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평일 때 이루어지지 않고 사순 시기에만 이루어진다.

 

자주 거행되는 두 성찬예배의 창시자인 성 대 바실리오(왼쪽)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오른쪽)의 모자이크 성화.

구성

성찬예배의 형식은 비록 전례 시기나 축일에 따라 독서나 성가 등이 바뀌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정해져 있다. 기본적으로 성찬 예배는 아래와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준비 예식 : 성찬예배에서 사용할 봉헌물인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고 성찬예배를 봉헌할 사제가 제의를 입는 예식을 포함한다.
•예비 신도 예식 : 찬송과 기도, 성경 봉독, 강론의 순서로 이루어지며, 이때는 영세예비자와 영세자가 함께 성찬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 초대 교회에는 이 예식이 끝나면 예비 신도들을 성당 밖으로 돌려보냈다. 말씀 전례라고도 부른다.
•신도 예식 : 이 예식에는 오직 세례를 받은 신자들만이 참여했기 때문에 신도 예식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이러한 제한은 영성체에 있어서만 적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비잔틴 전례 양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준비 예식[편집]

‘프로스코미디’는 ‘하느님에게 바친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보통 준비 예식으로 해석한다. 예식의 일부는 비공개로 진행되며, 오직 사제와 보제만이 진행한다.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의 신비스러운 부분을 상징한다.

사제는 성찬예배를 전날 저녁부터 준비하는데 우선 마음의 준비와 금식이다. 저녁 식사 이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다음날 성찬예배를 집전할 아침에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맨 먼저 성소에 입당한다. 입당하기 전에 마음을 살피고 성령에게 바치는 기도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성화에 신고를 하고 성모 마리아, 성 요한 세례자, 성 요한 사도에게 전구를 청하고 성소에 들어간다.

사제가 성소에 들어가면 우선 제의를 입는다. 먼저 입는 제의는 스티카리온이다. 이것을 입으면서 사제는 이사야서 61장 10절의 구절을 봉독한다. 그 다음은 에피트라킬리온을 입는데 이는 사제를 상징하는 옷이다. 시편 133장 2절을 봉독하며 입는다. 세 번째로 가슴에 띠를 두르는데 시편 18편 33절이 기도문이다. 그 다음 사제는 양손에 수대를 끼운다. 오른손에 수대를 끼우면서 탈출기 15장 6~7절을, 왼손에 수대를 끼면서 시편 119편 73절을 봉독한다. 마지막으로 시편 132편 9절을 봉독하면서 펠로니온을 입는다. 이로써 사제가 제의를 입는 의식이 끝났다. 이 의식은 사제가 제의를 입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의식이라고 하여 ‘게러’라고 부른다.

게러가 끝나면 사제는 손을 물로 씻은 다음 “주님의 손을 씻고 죄없는 몸으로 당신의 제대를 두루 돌면서 저에게 하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노래하며 찬미하리라. 주님, 저는 당신이 사시는 집이 좋사옵니다. 당신의 영광이 깃든 곳이 좋사옵니다. 이 목숨을 죄인들과 함께 거두지 마소서.”라는 기도를 바치며 제대를 제대를 두루 돌고 예비 제대로 간다. 이때에 벌써 신도들이 제대에 들어오면서 예배를 드리게 되며 아침 예배가 지성소 밖에서 진행되고 사제는 봉헌물을 준비한다.

 

​빵과 포도주, 성구들이 놓인 제대

봉헌물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는 신자들이 가져온다. 빵을 하느님의 봉헌물로 가져오면 누룩이 들어있는 빵에 직인을 찍는다. 이 직인은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니카(IC XC NIKA)’로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신다’라는 뜻이다. 이 부분이 몸이 되는 어린양을 나타낸다. 이 빵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누룩이 든 빵으로 아르토스라고 한다. 사제는 이 부분을 표창으로 잘라내서 한가운데 놓는다. 어린양 옆에(제대를 중심으로 오른쪽) 삼각형으로 된 M자가 그려진 것은 밋데라로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어린양 왼쪽 옆에는 삼각형으로 된 것은 아홉 개가 놓여 있는데, 이는 각각 천사들과 성인들을 뜻한다. 좌측 맨 위의 부분을 잘라 놓으면서 성 미카엘과 성 가브리엘 등의 대천사들을 기념한다. 그 밑에 세례자 요한, 모세, 아론, 다윗, 다니엘 등의 예언자들을 기념한다. 세 번째 줄은 성 바오로와 열두 사도를 비롯한 사도들이 기념된다. 가운데 줄 맨 위에는 성 바실리오를 비롯한 모든 성직자를, 그 다음 줄은 성 스테파노 등의 순교자들을, 그 다음은 수도자들을 기념한다. 우측 맨 위에는 기적을 행하는 성인 바로 가운데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와 그 다음은 그날 축일로 지낸 성인들이 기념된다.

어린양 앞에는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그 앞에는 죽은 이들이 기념된다. 이리하여 성반은 그 자체가 하나의 조그마한 우주를 상징하게 되며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천상에서 같이 만나게 된다.

 

성창

성작에는 포도주와 물을 부어서 그리스도의 성혈을 의미하는데, 이는 십자가에서 창에 찔려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그리스도의 피와 물을 상징한다. 사제는 창 모양의 성창을 예수 몫의 빵에서 IC(예수)라고 쓰여진 옆면을 찌르면서 “군인 하나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이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이 증언은 참되다.”(요한 19:34-35)라고 말하면서 먼저 적포도주를 성작에 붓고 물을 조금 붓는다.

그리고 별이라 부르는 십자 모양으로 구부려진 것에 향을 쐬인 다음 성반의 빵 위에 얹고, 그 위에 향을 쐬인 성보로 덮고, 성작에도 따로 향을 쐬인 성보를 덮고 좀 더 큰 성보 하나를 역시 향을 쐬인 다음 성반과 성작 전체를 덮는다.

그리고 사제는 빵과 포도주에 분향하고 제대의 네 면과 성상들에 분향하고 성당 내 모든 이콘들과 신도들과 신도석에 분향한다. 분향은 신자들의 기도이고, 향기는 성령의 은혜를 상징한다. 향을 처음 피울 때 사제는“ 이 향을 드리오니 천상의 향기처럼 받아주시고 저희 모두에게는 성령의 은혜가 충만케 하여 주소서.”라는 말을 한다.

이렇게 해서 준비 예식은 끝이 난다.

 


말씀의 예배

 

준비 예식이 끝나면 하느님을 찬미하는 성경 구절이 봉독된다. 예배의 시작 기도는 대연도로이다. 시편 102(103)편과 145편이 낭독되고 구복단(마태오 5,3-12)이 이루어진다.

말씀의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소입당이다. 사제와 봉독자, 복사들이 촛불, 향로, 원형대, 성당 깃발을 든 행렬 가운데 보제가 복음경을 높이 쳐들고 제대를 우회하여 우측의 성 가브리엘 대천사 이콘이 부착된 문으로 나와서 회중석 가운데로 행렬하여 선다. 이는 임마누엘, 즉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뜻이 있다. 복음경이 회중 가운데로 들어와서 서는 것은 하느님의 육화와 신현을 의미한다.

복음경의 앞면과 뒷면의 성상을 보면 한쪽은 부활한 그리스도의 형상이, 다른 쪽 면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형상이 각각 묘사되어 있다. 부활 성상 쪽은 주일이나 그리스도와 관련된 축일 때, 십자고상 쪽은 평일에 보일 수 있게 복음경을 손에 든다. 복음경을 높이 들고 아름다운 문 앞에 선 보제는 “이는 곧 하느님의 지혜이나니, 경건한 마음으로 설지어다.”라고 외치면서 복음경으로 십자성호를 긋는다. 그러면 성가대와 회중은 “모두 가까이 와서 그리스도께 경배합시다.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찬송하나이다. 알릴루이아!”라고 노래한다. 복음경을 든 보제와 사제는 제왕문을 통과하여 지성소로 입당한다. 동참 사제들이 있을 경우 제대 좌우에 도열하고 복음경은 사제에게 인계되어 제대 중앙에 안치되는데, 이때 제대는 그리스도가 좌정하는 보좌가 된다. 행렬은 좌측의 성 미카엘 대천사 이콘이 부착된 문을 통과하여 지성소로 입당한다.

사제의 입당 기도에 이어서 성가대와 회중은 삼성송을 부른다. 보제가 “주의 깊게 들읍시다.”라고 말하면 봉독자는 스티코스를 낭송한다. 그리고 보제가 “지혜의 말씀이니”라고 하면 봉독자는 “성 사도 아무개가 보낸 서신에서 읽음이라.” 또는 “사도행전에서 읽음이라.”라고 말한다. 보제는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들읍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봉독자는 사도경을 봉독한다. 사도경 봉독에 이어 사제는 “봉독인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하며 신도들은 알릴루이아를 창으로 부른다. 그리고 사제와 보제, 신도들은 한 목소리로 복음 전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사제가 “지혜의 말씀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일어서서 거룩한 복음의 말씀을 들읍시다. 모든 이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라고 선창하면 신도들은 “또한 사제에게도.”라고 화답한다. 보제가 “아무개에 의한 거룩한 복음경에서 읽음이라.”라고 말하면 사제는 “주의 깊게 들읍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신도들은 “주께 영광, 주여, 당신께 영광!”이라고 환호한다. 보제가 복음경을 봉독한다. 복음경을 봉독할 때 신도들은 모두 일어선다. 부제가 복음경을 다 읽으면 사제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신도들은 “주께 영광, 주여, 당신께 영광!”하고 환호한다.

초창기의 성찬예배는 구약과 신약을 같이 봉독했는데, 지금은 성 야고보 성찬예배를 제외하고는 사도경과 복음경으로 구분한다. 사도들이 쓴 사도경을 먼저 봉독하고 복음경을 봉독하면 말씀의 예배는 끝난다. 이후 사제의 설교가 이어진다. 강론이 끝난 후에는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예비 교인들을 위한 연도와 기도를 바친다.

이 때까지는 세례받지 않은 예비 신자들도 함께 머무를 수 있다.

 

복음경 봉독 / 성체성혈성사


말씀의 예배가 끝나면 “예비 신도들은 모두 물러갈지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옛날에는 실제로 나갔으나 오늘날에는 쓰지 않으며 사순대재기간에만 이 말이 봉독된다. 이 말은 성찬례의 중요성을 알리므로 세 번 이상 하게 된다. 회개자(영성체를 금지당한 자)는 전정에 있다가 신도들이 나오면 자신의 잘못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다. 예비 신도들이 모두 물러간 후에는 곧바로 성체성혈성사로 들어간다.

 

성체성혈성사는 대입당부터 시작한다. 대입당은 성찬예배에서 가장 큰 행렬이다. 촛불을 밝혀들고 케루빔과 세라핌의 형상이 묘사된 원형대들과 행렬 십자가를 든 복사들과 분향자 그리고 성찬예배를 집전하는 사제는 성보로 씌워진 성반과 성작을 높이 치켜든 채로 성 가브리엘 대천사 문을 통해서 회중석 중앙으로 들어와서 성반과 성작을 신도들을 향해서 치켜올리며 십자가로 강복한다. 이때 사제는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왕국에서 우리 모두를 이제와 항상 또 영원히 기억하시기를 바라나이다.”라고 외친 후 돌아서서 성반과 성작을 제왕문을 통해서 제대 위에 안치한다.

빵과 포도주를 사제가 들고 대입당을 한다.


대입당 행렬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진 예수 그리스도를 회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교회가 하느님의 현존 안으로 인도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느님의 옥좌를 향하여 행렬하며 나아가는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또 그리스도가 아버지인 성부에게로 나아가는데 우리(회중)를 함께 데려가는 것이다. 회중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옥좌 앞에 나아가 제물을 바치고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때 삼성송이 찬양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타 언덕 위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것과 이후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고운 베로 싸서 장사 지냈던 일을 생각하면서 빵과 포도주 위에 하나인 성보를 다시 덮고 분향한다.

보제가 “문과 문 지혜로 임합시다.”라고 외치면 신도들은 한 목소리로 신앙의 신조인 니케아 신경을 합송한다. 여기서 “문과 문 지혜로 임합시다.”라는 말의 의미는 세례받지 않은 이들은 성경 말씀과 설교를 마음에 새기고 모두 귀가했는데, 아직도 세례받지 않은 이들이 성당 안에 남아 있으면 모두 퇴장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불신의 세력이 들어올 수 없도록 문단속을 당부하는 것이고, 문단속이 다 된 것을 확인하고 신도들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다함께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입당 후 제대 앞에 선 사제

니케아 신경의 고백이 끝나면 봉헌기도가 시작된다. 이 봉헌기도는 감사기도, 아남네시스, 에피크리스가 있다. 맨 먼저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감사기도를 바친다. 이어서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가 한 말을 큰 소리로 낭독한다.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의 죄 사함을 위하여 떼어내는 내 몸이니라. 너희는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새로운 계약을 맺은 내 피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피이니라.”

아남네시스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다음에 무덤에 안장되고, 사흘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은 것과 훗날 영광 중에 재림할 것을 기념하여 바치는 것이다. 이 때에는 “당신의 것인 이 세상의 모든 것 중에서 특히 이 예물을 저희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로써 모든 곳에서 당신께 바치나이다.”라는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하느님을 낳은 성모 마리아를 찬송하는 찬가를 부르는데, 축일별로 성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때 사제는 교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기도를 바치는데, 기도 후에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의미로서 안티도론(축성된 봉헌물)을 바친다. 그리고 신도 개개인은 이 시간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기도를 할 수 있다.

마지막 봉헌기도는 에피크리시스이다. 사제는 큰소리로 “주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아니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주님 자신을 내어 주시던 날 밤에, 허물없고, 거룩하시며 정결하신 손에 빵을 들어 감사드리고 축성하신 후, 그의 성 사도인 제자들에게 떼어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라는 말을 한 다음 이어서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의 죄사함을 위하여 떼어 내는 내 몸이니라.”라고 말한다. 신도들은 이에 “아멘.”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사제는 “또한, 만찬 후에 잔을 드시고 말씀하셨나이다.”라는 말에 이어서 “너희는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새로운 계약을 맺는 내 피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피이니라.”라고 말한다. 신도들은 “아멘.”이라고 대답한다.

사제는 성반 위에 있는 봉헌물에 손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이 빵이 주 그리스도의 고귀한 몸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라고 축성하고, 이어서 포도주가 담긴 성작에도 같은 모양으로 하면서 “또한, 이 잔에 들어 있는 것이 주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가 되게 하소서! 아멘.”하고 축성하며, 동시에 성반과 성작에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당신의 성령으로 이 변화가 이루어지리이다! 아멘. 아멘. 아멘.”하고 축성하면서 봉헌물인 빵과 포도주 위에 성령을 보내줄 것을 간구한다. 바로 이순간, 에피크리시스 이후 빵과 포도주는 성체와 성혈,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화한다.

이때 모든 회중은 무릎을 꿇고 기도로서 성체 변화에 동참한다. 기도의 내용은 사제의 간구가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이어서 사제는 마무리 기도를 하는데, 영성체하는 목적인 성화(聖化)와 구원에 대한 간구, 또한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자비를 내려 주기를 바라고, 성인을 기억하고 찬미하면서 사람들을 위해 중보해 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어서 성체와 성혈을 향해 세 번 분향한다. 그리고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영하기 위한 준비 기도를 큰 소리로 마친 다음, 모두 다같이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교인들이 영성체송을 부르는 가운데, 사제는 십자가 형상으로 새겨진 선을 따라서 성체를 네 조각으로 나누면서 “하느님의 어린양이 떼어지고 나뉘시나이다. 그분께서는 나뉘시지만 분리되지 아니하시고 항상 양식이 되며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받아 모시는 일들을 거룩하게 하시나이다.”라는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네 조각 부분 중에서 ‘예수(IC)’ 부분을 성작에 넣어서 성체와 성혈을 합쳐 완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한다. 여기서 성체의 분리 의식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성체와 성혈의 합일 의식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이어서 준비된 제온(끓는 물)을 성작에 넣는데 미지근하면 안되고 뜨거워야 한다.[5] 제온을 타는 이유는 첫째, 그리스도가 창에 찔렸을 때에 물과 피가 나왔고, 둘째, 열기(熱氣)가 느껴지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성체성혈성사에 임하기 위한 기도가 끝난 후에 사제는 교인들에게 깊이 머리를 숙이며 서로 용서를 빌며, 이어서 ‘그리스도(XP)’ 부분에서 작은 부분을 떼어 영하고, 다시 성혈을 영한 후 “이제 나의 입술에 이것이 닿았으니, 나의 악은 가시고 나의 죄는 사라졌도다.”(이사야 6, 7) 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활 기도를 바치면서 나머지 성체를 성작에 넣는다

 

​영성체 예식

이어서 성체성혈성사(영성체)가 이루어진다. 신자들은 성체와 성혈을 모시기 위해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사제 앞에 선다. 신도들이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실 때는 아기들부터 먼저 받아 모신다. 사제는 신자 한 사람마다 영성체를 해주면서 “우리 하느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성체와 성혈이 (세례명)에게 주어지니, 그대의 죄의 사함과 영생이 되어지리다.”라고 말한다. 영성체를 한 신자는 자기 자리에 돌아와 그리스도에게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천주교회는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평신도는 성혈을 받아 모시지 않고 있는데 반해, 정교회에서는 성체와 성혈을 모두 모시는 양형 영성체를 고수하고 있다. 동방 교회의 영성체 방식은 성체를 스푼에 담긴 약간의 성혈과 함께 평신도에게 나누어 준다. 평신도는 성체와 성혈을 서서 받는다.

영성체가 끝난 후, 사제는 그 자리에서 성작을 높이 들고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하느님,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아버지의 상속자를 축복하소서.”라고 외친 다음 제대 위에 안치한다. 이때 신도들은 성체와 성혈을 모셔 놓은 성작을 향하여 성호를 그으며 머리 숙여 절한다.

사제가 성소에서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 이콘 앞에서 기도를 바친 후,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이에 신도들은 절을 한다.

마지막으로 폐식기도를 바친 후, 사제는 신자들에게 축복된 빵(안티도론)을 나누어주는데, 이것은 성체는 아니지만 봉헌물로서 축복받은 것임을 상기하고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먹어야 한다. 성체와 성혈을 모시지 못하는 이들은 이 빵을 위안물로 대신 받는다.

각주

1. Western Diocese | Home
2. Armenian Catholic Church in Russia | Welcome!
3. “OCA Q&A on the Divine Liturgy”. 2009년 6월 4일에 확인함.
4. “Greek Orthodox Archdiocese in North America: Worship”. 2009년 6월 4일에 확인함.
5. 묵시록 3, 15 참조

출저: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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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례Baptism

세례(洗禮) 또는 세례 성사(洗禮聖事)는 물을 이용하는 정화의식이다. 세례는 기독교, 만다야교, 시크교를 포함하여 여러 종교에서 행해진다. 기독교의 세례는 유대교의 의식인 "미크바"에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영세(領洗)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 예술에서의 침례.

 

기독교의 세례

파울로스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영적(靈的)으로 연합되어 그의 죽음에 동참한다고 설명한다.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에서는 물을 이용하는 세례 의식을 행하고, 이를 예수께서 성만찬과 더불어 친히 제정한 성사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례의 의미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세례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오순절 교회를 비롯한 몇몇 종파에서는 물에 의한 세례는 성령에 의한 세례로 대체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물에 의한 세례는 기독교 전통에 의해 불필요하게 계승되었다고 보고 있다.

 

세례의 형태

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에 따라 세례의 예식은 다음과 같다.

침수례 - 몸 전체를 물속에 담그는 방식 (침례라고도 한다.)

살수례 - 물을 머리에 뿌리는 방식

관수례 - 물을 머리에 붓는 방식

이 중 정교회나 침례교, 오순절교회에서는 침수례를, 로마 가톨릭교회는 관수례를 실시하며,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의 개신교 종파는 관수례를 실시한다. 원래 고대에 채택되던 형태는 침수례이나, 살수례와 관수례는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약식으로 제정된 전통이다.

 

세례의 의미와 기능

기독교 내에서도 세례의 의미와 효력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등

세례는 구원을 받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며 성사의 요구조건으로 하고 있다. 한 예로서,마르틴 루터는 1529년에 "The Large Catechism"(대요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세례의 능력과 효과와 유익과 열매는 구원이다. 왕자가 되기 위해 세례를 받는 사람은 없다. 단어 그대로 "구원받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죄와 사망, 사탄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 그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다. ”

 

성공회(聖公會)에서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6:3-4("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를 근거로 세례성사를 죄의 용서와 구원에 필요한 성사(Sacrament)로 보고 있다. 또한 어른과 어린이 모두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사제가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유아세례가 있다.

침례교

침례가 가치있는 관습이긴 하지만 아무런 성스러운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은 보이지 않고 내적인 것이며, 성례전 자체와는 독립적인 것으로서, 침례는 이 능력의 결과를 외적으로 증언하는 행위라는 견해이다. 침례 '의식'이 의미있고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치나, 유아세례는 반대한다.

개혁주의 (개혁교회 및 장로교)

개혁주의는 예수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보며, 세례를 성찬과 더불어 예수가 그의 백성들에게 시행하라고 제정한 성례전으로 본다. 이는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 의식이 신약의 교회에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언약 신학의 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기 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라고 본다. 그것을 물로 씻는 형태로 제정된 것은 다른 종파들과 같이 예수의 피흘림으로 죄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라는 의미에서 구약 시대에는 아직 신앙이 확인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도 할례를 시행했는데, 이것을 본받아 개혁주의 역시 유아 세례를 기독교 가정 내에서 시행하는 것을 동조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회복된 기독교를 자처하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성약의 표시이며, 죄를 회개하여 침수로서의 침례로 물로 장사 지내고 물에서 올라 옴으로서 과거의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표징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백성이 된다는 선언이 되고, 교회 회원이 되는 관문이 된다.

 

침례를 받은 이에게는 성신의 안수례가 주어지며, 매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는 성찬 의식을 행함으로써 침례 성약을 새롭게 한다.

 

유아들(정신박약자 포함)은 죄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의 상속자가 되므로 침례를 행하지 않는다.[1] 어린이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만 8세 이후에 성약을 맺게하여 침례를 베푼다.

 

침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합당한 절차에 의해 교회에서 승인된 방식에 따라야 함을 믿으며, 신권의 권능을 가진 이로써 지명받은 자라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줄 수 있다. 침례를 줄 수 있는 신권은 아론 신권이라고도 하는 소신권 중에서 제사 신권이 있고, 대신권으로서 장로나 대제사가 있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침례 요한) 또한 아론 신권을 가진 이었다.

 

1829515일 몰몬경을 번역하던 조셉 스미스와 이를 기록하던 올리버 카우드리가 서스케하나 강변에서 침례 성역에 관해 알고자 기도하던 중에 침례자 요한이 부활한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이들에게 나타나 아론 신권을 안수성임하였는데, 이 교회에서는 매년 이날을 신권회복 기념일로 기린다.

 

합당한 신권소유자는 합당한 회원에게 회원들의 지지하에 안수함으로써 신권을 부여하고 성임하게 된다.

 

침례 받을 사람과 같이 물에 들어가 침례 주는 이가 침례 의식문을 선언하고 침수로서의 침례를 주는데 그 의식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위임을 받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침례하노라. 아멘"

 

침례를 받은 개종자는 대신권 소유자로부터 성신의 안수례를 받게 된다.

 

Masaccio (14251426), Baptism of the Neophytes (it), Brancacci Chapel, Florence. This painting depicts baptism by affusion, which continues in the East except for infants, but in the West it had dropped almost completely out of use by the 15th century. The artist may have chosen an archaic form for this depiction of baptism by St. Peter.

성 베드로에 의해 침례 묘사

 

세례의 자격 /신자의 세례

 

세례(침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교파마다 다르나, 대개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로서, 글로서 신앙을 고백하거나 공개적으로 신앙을 선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유아 세례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장로교 등에서 행하는 유아 세례의 경우에는 세례를 받고 신앙고백을 한 부모가 자녀를 대신하여 유아세례의 자격을 받을 수 있다. 유아 세례의 기록은 성서에는 없지만 4세기에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에 의해 그 필요성이 기술되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세례가 죄를 씻어주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도 행해져야 하는데, 이는 갓난아기도 원죄에 의해 더렵혀졌으며 따라서 세례를 받기 전에 사망할 경우 죄의 저주를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 세기 전에 교부인 터툴리안은 믿음으로 받는 세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 "상황과 개인적인 성향, 또한 나이를 고려하여 세례를 늦추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되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라." ”

 

성공회의 종교개혁 전통을 강조하는 저교회파 성공회를 포함한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세례가 "내적인 변화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따라 행해지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께 맡기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을 때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편지 517) 그 내적인 변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례

기독교에서 침례가 교회 공동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일정한 의식이 된 것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가 준 침례를 앞으로 올 메시아에 대해 준비하는 회개의 메시지로 받아들인다.(루가 복음서 33-6, 8) 요한은 죄사함이 있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죄의 얼룩은 지워질 수 있는 것이며, 타락한 행위로부터 돌이켜 주님의 길로 돌아갈 때에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세례 의식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세례 요한이 그의 세례가 충분한 것이 아니며, 회개만으로는 죄로부터의 분리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쳤을 것이며,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는 그가 줄 수 없는 더 큰 세례가 필요하다고 가르쳤을 것이라 믿고 있다. 루가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안 되는 높은 분이 오셔서 성령과 불로써 침례를 주실 것이라 말하였다. (루가 복음서 316) 기독교에서는 세례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려는 노력은, 죄의 대가를 대신 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라틴어: Agnus Dei)에 의해 대체되고 완전해진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열두 제자에게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임무를 맡긴다.(마태오 복음서 2819) 이 구절은 세례의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는데, 실제로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은 갈릴래아의 예수에서 마태오 복음서 2819절을 교회사적으로 해석하였다. 안병무 선생에 의하면 기독교의 성격이 예수운동에서 보편교회로 바뀌면서 직제와 전례를 정하게 되었으므로 예수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로는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만으로 세례를 준 것으로 되어 있다. (사도행전 816, 1048, 195)

 

유대교의 정결 의식

세례는 유대교의 의식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유대교 율법에서 정한 정결의식인 미크바(Mikvah)에서 세례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유대교의 경전과 다른 문서들에는 종교적인 정화를 위한 목욕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제정되어 있는데, 이는 "종교적으로 정결한 상태"를 위한 것이다. 한 예로서, 시체를 만진 유대인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오염된 상태"가 되어,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mikvah를 행하여 정결한상태가 되어야 한다.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물에 잠기는 의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의식 전반에 걸쳐, mikvah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정화와 회복을 의미하며, 유대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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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례전·성사의 어원은 ?


성사(라틴어: Sacrament, 聖事) 또는 성례전(聖禮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전달되는 ,쉽게 말해서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 기독교의 예식이다. 교파별로 개신교는 성례, 성례전으로 부르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성공회는 성사라고 한다. 물론 모두 같은 말이다.

 

어원

성사(Sacrament)는 교부 터툴리안이 200년경 그리스어인 μυστριον(Mysterion,신비, 특별한 것이라는 뜻)를 라틴어로 옮긴 Sacramentum에서 파생된 말이며, 번역하면 ‘성별된 것이나 행동’ 혹은 ‘성스러운 것’, ‘성별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Sacramentum은 본래 로마 제국 군인들의 황제에 대한 복종 곧 제국의 질서에 대한 복종을 상징하는 표지를 뜻하기도 했으므로,성사는 기독교인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을 상징하는 표지를 뜻하기도 한다.침례교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니 캠폴로(Tony Campolo)는 성사 또는 성례전을 기독교신자가 자신이 기독교 신자임을 항상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교파별 성사의 구분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의 7가지 성사(이를 7성사라 부른다)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데,특히 로마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사는 7성사"라는 교리를 다시 한 번 확립하였다.

성공회

성공회는 성공회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 판본별로 성사의 구분이 다르다. 한국 성공회의 경우, 1965년판 공동기도문(공도문)에서는 성사를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의7가지로 구분했다. 성서에 나오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는 예수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제정한 성사로, 나머지 성사는 동방 교회와 서방교회에서 모두 지키는 교회전통으로 이해한 것이다. 2004년판 성공회 기도서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성사인 세례성사와 성만찬을 성사로, 혼인, 조병, 서품, 견진성사는 성사의 성격을 가진 성사적 예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성공회 일부에서는 공동기도문의 영향으로 성사를 7가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개신교

개신교에서는 성만찬과 세례를 예수님이 제정한 성례전으로 이해한다.

성사의 효과

로마 가톨릭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사의 효과를 사효적 효과(Effectum ex opere operato)와 인효적 효과(Effectum ex opera operantis)두 가지로 구분한다. 사효적 효과는 '거행된 성사 자체를 통해 받는 성사의 은혜'이며, 인효적 효과란 '성사에 참여하는 이의 노력과 정성과 열심에 따라 받게 되는 하느님의 은혜'이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에서는 전례를 통해 거행되는 성사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신앙과 교리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성사의 효과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약화시키거나 저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록 교리 교육을 받지 않은 유아에 대한 세례성사에 있어 그 성사의 효과는 동일하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에서는 유아세례를 생후 100일 이내에 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유아가 성장하여 견진성사,신품성사 등을 받기 위해서는 신앙과 교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성공회

성공회에서는 성사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전달되는 예식'(성 아우구스티누스주교의 설명)으로 이해하며, 누구나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공회에서는 사제가 어린이에게 세례를 베푸는 유아세례를 집전하는데[8],이때 어린이를 기독교신앙으로 키울 대부모가 같이 세례에 참여한다.어린이들은 나이가 어려서 비록 신앙고백을 할 능력은 없지만, 세례성사를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은혜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이해가 성공회에서 설명하는 유아세례의 타당성인데, 이러한 설명에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성만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세우신 성사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성공회의 성사이해[4]가 담겨 있다.

각주
1.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나 그리고 우리》-성사란 무엇입니까>?/홍영선 지음/대한성공회 p.182
2. 《위대한 설교자 10인을 만나다 영어: Ten Great Preachers by Bill Turpie》2. 토니 캠폴로 : 유머, 열정, 현실 참여의 설교자/빌 터피 저/김대웅 역/브니엘
3.↑ 《이야기교회사》-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걸까?/이성덕 지음/살림 P.114
4.↑  성공회《공동기도문》(공도문)/대한성공회 P.6
5. 성공회 교리해설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나 그리고 우리》/홍영선 지음/대한성공회
6. 《공동기도문》/대한성공회
7. 《성공회 기도서》/대한성공회(2004년 개정판)
8.《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나 그리고 우리》-성사란 무엇입니까>?/홍영선 지음/대한성공회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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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개신교의 예배

 

개신교에서 예배(Service of worship)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매우 중요한 기독교 의식 중 하나이다. 정기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행해지며, 가정 예배 또는 기도 모임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성직자들의 인도 아래 교회에서 시행된다. 평신도들이 예배를 이끄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교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특히 축복기도는 목사, 강도사(말 그대로 설교의 권한이 있는 개신교 성직자. 한국 장로교회의 경우 일부 교단에서 강도사 고시로 선발한다.)가 한다. 설교의 경우는 교회에 따라 일반 신자도 예배에 설교를 할 수 있는 교회가 있으나, 보통은 전도사 이상의 경우만 설교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파별 예배

개혁주의(장로교)

개혁주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절’을 예배의 본질로 삼는다. 개혁신학에서는 예배를 찬송, 기도, 말씀, 헌상, 성례전과 더불어 여섯 가지 은혜의 방도 중 하나로 규정하는데, 다시 말해 예배는 찬송, 기도, 말씀, 헌상 또는 성례전을 모은 종교 의식이 아니라, 다른 은혜의 방도들과는 구별 되는 독특한 의미와 본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정성을 다해 찬송과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성찬에 참여하고 헌금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예배는 찬송, 기도, 말씀, 성찬 등의 모듬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를 구분하는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개혁교회는 그러한 구분이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여기며[1] 개인도 혼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럿이서 모여서 공적인 예배를 할 때엔 예배 식순을 따르기도 한다. 개혁신학의 예배론의 독특한 점은 예배에 허용되는 형식이나 내용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는 예배의 규정적 원리이다.

루터교

루터교에서는 종교 개혁의 전통에 따라 예전적 예배를 드리는데, 루터교 예전은 입당성가, 본기도(공적인 기도), 죄의 고백과 사죄 선언, 영광송, 성서독서(루터교의 성서독서는 제1독서/구약성서와 제2독서/서신서로 구분된다. 사용하는 성서정과는 RCL/개정성서정과에 근거하며 목사가 담당한다.), 층계성가(제1독서와 복음서 독서사이의 성가), 찬양의 화답, 복음서 독서, 신앙고백(사도신경), 설교, 감사의 예물, 성찬(루터교의 성찬전례는 루터교 목사에 의해 제단에서 집전되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의 성찬전례처럼 면병과 포도주가 거룩해지도록 축성하고, 예수의 성찬제정을 재현하는 성찬기도, 쌍투스(Sanctus, 거룩하시다)성가, 하나님의 어린양(Agnus dei)성가, 시므온의 성가, 면병과 포도주를 받음,감사의 기도로 구성된다.)와 축복기도를 거친 뒤, 마지막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권고와 신도들의 감사 응답으로 구분된다. 말씀과 성례전을 은혜의 방도로 이해하는 루터교의 교리에 있어서 성만찬은 은혜의 방도로서 지닌다고 가르친다. 루터교에서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정과를 사용한다.

감리교

감리교에서는 공식적으로 교회력에 따른 성서정과와 감리교 예배서에 나온 예배양식에 따라 예전적 예배를 집례한다. 이는 감리교가 존 웨슬리 신부의 복음주의 운동으로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이기 때문이다. 감리교 예전은 크게 말씀중심의 예전(‘하나님 앞에 나와 옴’, ‘말씀의 선언’, 감사와 응답, 세상으로 나아감)과 말씀과 성만찬이 함께 있는 예전(하나님 앞에 나와 옴’, ‘말씀의 선언’, 감사와 응답, 성만찬, 세상으로 나아감)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반적인 개신교회의 예식 순을 사용하는 교회가 적지 않은 편이기도 하며, 찬양 예배도 도입되어 있다.


예배 구분

형태에 따른 구분

현재 대한민국의 개신교회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는 크게 ‘일반 예배’와 전반부에 찬양을 중심으로 인도하는 ‘찬양 예배’로 나눌 수 있다. 다음은 두 종류의 예배를 대략적인 순서로 나타낸 것이다.

일반 예배
•묵상 기도 (묵도, 조용한 기도)
•사도신경
•찬송
•교독문
•송영 (맞이)
•기도
•성경 봉독
•찬양 (성가)
•말씀
•찬송
•헌금
•새신자 소개 및 광고
•찬송 (또는 송영)
•축도 / 주기도문

찬양 예배
•찬양 (20분 ~ 1시간)
•기도
•(특송)
•성경 봉독
•찬양 (성가)
•말씀
•헌금
•새신자 소개 및 광고
•찬송
•축도 / 주기도문

참고: 교파, 시간, 장소, 예배의 특성에 따라 순서가 바뀌거나 특정 순서를 생략하거나, 특별히 순서가 더해질 수 있다.

목적에 따른 구분

교회 안의 예배

형태적 구분 말고도, 예배가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목적으로 드려지는가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주일 본예배
•주일 학교 예배 : 유치부 (유아부), 유초등부 (초소년부), 중고등부 (청소년부), 청년부로 구성되며 각 계층의 수준대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구성되는 예배를 말한다.
•주일 저녁예배
•영어 예배
•수요 예배 : 낮, 저녁 두 번 드리는 경우가 있다.
•청년찬양예배 : 토요일이나 주일 오후에, 청년이나 청소년들의 감성에 맞는 찬양을 중심으로 운영함으로써, 좀 더 새롭고 헌신적으로 청년들에게 도전할 목적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찬양 예배의 형태로 운영된다.
•금요 철야 : 과거에는 말 뜻 그대로 금요일 밤에 예배를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에 마쳤으나 현재는 금요일 밤에 시작하여 자정 전에는 모두 마친다. 기존 예배의 형태보다는 부흥회 형식으로 빠른 박자의 찬양과 약간의 설교, 그리고 개인 기도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교회들은 개인 기도 중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직접 한 사람씩 기도해 주시기도 한다.
•새벽 기도 : 거의 매일 새벽마다 드리는 기도 모임 형태의 예배이다. 기존 예배의 형태로 드려지며, 특별히 예배가 끝난 뒤에 기도가 많이 이루어진다.
•부흥회 ◦전도 부흥회
◦신유 부흥회
◦심령 부흥회 : 대부분의 부흥회가 취하는 형태이다.

•사경회 : 특정한 일자에 모여서 말씀을 공부하는 모임이다. 교파에 따라 교회들이 연합하여 하기도 한다.
•심방 예배
•특별 예배 ◦결혼식 : 교회에서 결혼할 때 드리는 특별 예배이다. 다만, 이 경우엔 보편적으로 신랑과 신부 두 명 모두 개신교 신자여야만 한다.
◦장례식
◦세례식 : 유아 세례와 일반 세례가 있으며 유아 세례는 아기의 부모님이 모두 교회를 다니거나 하여 부모의 믿음대로 목사님이 직접 세례를 집전한다. 일반 세례는 초신자가 교회에 등록하여 일정한 시기가 되면 받는 세례를 받는 것을 말한다.
◦임직식 :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과 교회 내 기관장 등을 임명하는 예식이다. 연회에서 교회들을 통솔하는 자 (감독)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안수례 : 일정한 자격을 거쳐 목사로 적임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에게 기존 목사가 새 목사에게 안수하고 임명하는 예배이다.
◦은퇴식 : 일정한 시기를 넘은 목사 등의 교역자, 장로들이 적령한 연령을 넘어 은퇴하게 되었을 때 치르는 예식이다.
◦헌당 예배 : 교회 건축이 끝났을 때 드리는 예배이다.
◦파송 예배 : 교회 밖으로 선교사나 교역자를 어떠한 지역으로 파송할 때 드리는 예식이다.

•수련회 : 교회에서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훈련하고 쉼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하여 교회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주로 2박 3일 ~ 3박 4일간) 하는 집회. 새벽, 아침, 밤에 부흥회 스타일의 말씀과 집회가 이루어지며, 그 외의 시간에는 수련회의 성격에 따라 훈련 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가진다.

교회 밖의 예배

아래에서 뜻하는 ‘교회 밖의 예배’는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닌 교회 이외의 단체가 드리는 예배를 뜻한다.
•개강 예배 : 미션 스쿨에서 개강할 때마다 여는 예배.
•개강 부흥회 : 신학교에서 개강할 때마다 신학생들의 영성을 돕기 위해 여는 부흥회.
•채플 : 미션스쿨이나 신학교에서 학생들의 경건을 위해 강제적으로 드리게 하는 예배. 기존 형태와 찬양 예배의 형태가 섞여 있다.
•가정 예배 : 가정에서 날마다 경건한 생활을 위해 아침이나 밤에 드리는 예배이다.
•모임, 또는 집회 : 예수전도단 화요모임, 올네이션스 목요 모임, 마커스 목요 모임 등의 경우에 해당된다. 이 경우 예배 중에 찬양사역자들이 작곡한 새로운 찬양들이 잇달아 나오는 것이 특징이며, 따라서 경배와 찬양 운동을 이끄는 선교 단체 형태의 단체들이 주로 드리지만, 일반 지역교회(삼일교회나 제자교회의 경우)에서도 찬양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드리는 경우가 있다. 예배 중 가장 파격적인 형태 (찬양-말씀-헌금-광고-기도)로 이루어지며, 서울 지역의 경우,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된 예배 장소는 교회이지만 간혹 특별히 별도의 목적으로 이 예배를 대규모로 기획할 경우 대형 체육관을 빌려 모두 일어선 상태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이런 집회의 경우 말씀 선포와 찬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모임에서 이루어진 찬양이 음반으로 출시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찬양 집회 : 예배 형태는 위의 ‘모임’과 같다. (찬양-말씀-헌금-광고-기도) 다른 점은 찬양집회는 각 교회 청소년부(중등부, 고등부 또는 중고등부)나 미션스쿨의 기독 동아리에서 한 해에 한 번(많으면 두 번) 정도 특정한 주제를 갖고 드리는 예배이다.
•연합 수련회 : 수련회의 형태와 비슷하나 여러 교회의 성도나 선교단체에 소속된 사람끼리 모여 말씀과 찬양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는 모임이다. CCC의 경우는 연말에 금식 수련회를 개최하기도 하며, 선교한국과 같이 특정 목표를 위하여 선교단체들이 연합한 수련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성회 : 특정 주제를 가지고 교회나 공공시설을 빌려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 형태의 예배. 부흥회와 비슷하지만 찬양예배와 비슷하게 말씀과 찬양의 비중이 높은 편이며, 은사주의 사역자들이 이용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각주
1. 자주 인용되는 구절들로 요한복음 4:23 및 9:37,3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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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하시는 일

 


성령님께서는 믿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을 하신다. 오늘날 성령에 대해 설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성령침례나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만 말하는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8장부터 12장에 나오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과 같다. 이들은 성령님에 대하여 거의 모르는 것이다.

  사실 고린도 교회에서 은사를 받았다고 떠들던 은사주의자들은 자신의 몸이 성령의 전인 사실도 모를 만큼 어리석었다. 바울은 계속해서 성령의 은사만을 이야기하는 육신적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신약에서 자신의 몸이 성령님의 전인 것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만을 자랑하던 사람들이었다.

  성령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 대신에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자랑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5:22-23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그만큼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항상 육신적인 고린도 교회를 배회하고 있으며 방언을 자랑하고,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여 음행을 저지르고, 술 취함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분열을 일삼는다. 신약에서 가장 육신적인 교회는 고린도 교회였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전서 14장을 계속 배회하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본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한 계시나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구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도행전 2장의 대상은 모두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인 개종자들이다. 사도행전 2장은 아직 어떤 신약성경도 기록되지 않았을 때이다. 사도행전 2장은 구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사도행전 2장에 와서 모두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는 이 구절들을 교회시대에 잘못 적용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성도와 관련하여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살펴보겠다. 특별히 성령님께서 적극적으로 역사하시는 44가지의 일들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이 공부를 위해서는 성경의 건전한 교리를 공부하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성경적임을 입증하려 성경 몇몇 구절을 인용하는 은사주의자들은 이런 교리가 진리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 성령님께서는 거듭난 성도에게 그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시켜 주며 예수 그리스도와 닮도록 하신다(갈4:6, 롬8:16-17). 거듭난 성도는 결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 사실을 성령님께서 확신시켜 주신다.

  2. 성령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장차 영광의 보증으로 인치셨다(고후1:22, 엡1:13-14).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을 인치시고 성도에게 장차 다가올 영광으로 보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다. 미리 정하심은 절대적인 것으로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미리 정하심”은 신약에서 결코 구원과 관련하여 쓰이지 않았다. 미리 정하심은 구원받도록 미리 정하셨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 두 번 나오는데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과(자녀로 입양할 것을 미리 정하심)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미리 정하심)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미리 정하심은 절대적으로 확정되었고, 분명하며, 절대 무오하다.

 

  성령님께서는 이 사실을 사람이 구원받았을 때 보증으로 주시는 것이다. 믿는 사람에게 이 사실이 인쳐진 것은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거나 믿기를 그만둘 때까지가 아니라 “구속의 날”까지이다.

  3.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을 자신으로 채우셔서 승리의 생활을 주신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5:18).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더라』(행4:31).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 그들은 나가

서 모든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성령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을 자신으로 채우셔서 승리의 생활을 주신다.

  4.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고(살후2:13) 따로 분리하여 성결케 하신다(벧전1:2).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시며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위해 떼어 놓으신다.

  5. 성령님께서는 영원히 성도와 함께 거하신다(요14:16).

  6.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를 가르치신다(요14:26).

  7.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배운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신다(요14:26).

  8. 성령님께서는 믿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다.

성령님께서는 성도 안에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신다(요15:26).

  9. 성령님께서는 성도 안에서 역사하여 모든 진리로 그를 인도하신다(요16:13). 즉 오류를 바로잡아 주신다. 방언을 자랑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를 멈추고 그들의 감정적 경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거듭난 성도는 끊임없이 성령님께 초점을 맞춘다. 그가 진리를 찾고자 하는 한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발견하게 하신다. 성령님께서 진리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요16:13).

 

  전적타락을 주장하여 인간이 스스로 의지를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칼빈주의자나,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나 보다 깊은 진리의 지식은 외면한 채 구원의 안정성만을 외치는 침례교도나, 성경적 지식 없이 오직 성령의 은사만을 부르짖는 은사주의자들은 모두 진리를 찾는 것을 중단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 주시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성경은 마지막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라고 하신다. 오류를 범하지 않는 길은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10.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몸들을 받아서 이 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다(요16:14).

  11.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받아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다(요16:14).

  12.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약할 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겔36:27).

  (벧전1:22).

  14.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를 주신다(롬8:2).

  15. 성령님께서는 약한 성도를 택하시어 그 안에서 율법의 의를 채우신다(롬8:3-4). 즉 아무리 약한 성도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다.

  16.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육신을 넘어선 승리를 주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롬8).

  17.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실 것이다(롬8:11).

  18.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능력을 주셔서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게 하신다(롬8:13).

  19.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도의 기도생활을 인도하신다(롬8:26-27).

  20.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이 성령님께 순종할 때 육신의 욕망을 이길 수 있는 승리를 주신다(갈5:16-17).

  21.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율법으로부터 인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하신다(갈5:18).

 

  22. 성령님께서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갈5:22-23). 이는 매우 중요하다. 현대의 소위 은사를 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성령의 열매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성도 안에서 하시는 일은 영원히 거하게 될 영원한 것들을 맺는 것이다. 사람들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고린도전서 12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첫째, 고린도 사람들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둘째,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보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은사 같은 것을 소유한 체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에 대해 많이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를 피하는 것이다. 사실 만일 누군가가 성령의 열매(온유와 오래 참음)를 위반하여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은사주의자를 만나 보면 알게 된다. 그의 “은사”에 대해 말해 보면 그는 곧 폭발해 버린다. 그는 성령의 열매가 없다. 잠언 25:14에는 『거짓 은사를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누구나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은 비 없는 구름과 바람을 본 적이 있는가? 소나기 구름이 몰려오는데 신선한 비를 내릴 것 같지만 바람만 불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 이것이 흡사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은사”를 소유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같다.

  23.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께 인도될 때 거룩하게 행하도록 하신다(갈5:25).

  24. 성령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제거하는 것을 도와주신다(엡4:30-32).

  25. 성령님께서는 성도 안에서 사탄을 패배시킨다.

  26. 성령님께서는 주를 의뢰하는 영에게 쉼을 주신다(사63:14).

  27.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주가 되시도록 하신다(고전12:3).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거하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개인적 삶의 주님이자 통치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는 일을 하신다.

  28.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유를 주신다(고후3:17).

  29.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실 수 있고(롬5:5)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가 하기 힘든 때에도 우리의 적들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수 있다.

  30.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주신다(롬15: 13).

  31. 성령님께서는 능력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게 하신다(엡3:16).

  32.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의와 화평과 희락을 주신다(롬14:17; 15:13).

  33.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계시하시고, 해석하시고, 적용하게 하신다(고전2:9-14).

  34.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행1:8, 살전1:5).

  35.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마음을 주신다(요4:23, 빌3:3).

  36.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위로하고자 보내심을 받은 위로자이다(행9:31).

  37.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은 부르시고 그들을 인도하셔서 어떤 일을 시키도록 인도하신다(행13:2-4).

  38. 마태복음 4:1과 로마서 8:14에 따르면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의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인도하신다.

  39. 성령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친히 나아가셔서 우리가 기도할 때 대리자 없이 바로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엡2:18).

  비록 지금까지 열거한 조항이 길게 생각될지라도 성령님의 사역에 관해 다 말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장의 성령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은사들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은사들 중 표적으로 보여 주시지 않은 은사들은 지금도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오순절파와 은사주의자들은 모든 은사들이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방언과 병 고치는 은사는 표적이었고, 표적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사도들이 등장하는 사도행전에 머무른다. 사도들의 표적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표적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방언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먼저 골로새서나 에베소서에서 바른 교리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도행전에서 배회하고 있다. 이들은 표적을 흉내 내어 사람들이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길 원한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고린도전서 12장의 이스라엘을 위한 표적으로 주어진 은사들로 인해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2에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4:22에서 방언은 표적으로 주어진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이고 분명히 지금까지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게 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도들이 행했던 어떤 것들은(고전12:12; 14: 22)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모든 사도들이 죽은 사실과 더불어 명백하다. 이 말이 의심이 간다면 성경을 공부하여 바울의 마지막 사역 때가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 바울은 자기 친구의 병조차도 고치지 못했다. 트로피모는 밀레토에 남겨졌고 디모데는 위장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쓰도록 권고 받았다. 성경을 전부 읽어보면 가장 위대한 사도가 사도행전이 끝나갈 무렵쯤에는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는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무엇과 관련하여 어떤 문맥에서 기록된 말씀인지 알아야 한다.

  40.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을 죄에서 의로 옮기기 위해 사람들과 다투실 수 있다(창6:3).

  41.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조명을 주실 수 있다(욥32:8).

  42.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재능과 기술을 주신다(출31).

  43.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이 평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판6:34).

  44.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요구하는 특정한 일들을 하도록 도우신다(판14:6).

  이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성령님께서 성도에게 일하시는 44가지의 일을 살펴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신격의 한 분으로서 성도의 삶에서 적극적으로 일하시는 중요한 인격이시다. BB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찬양으로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제목 : 오늘 이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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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따르는 자가 되라

 

 

           (바울을 따르는 자가 되라)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듯이(마 8:22), 사도 바울도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고 말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울 자신이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전 4:16; 11:1, 빌 3:17). 우리는 진리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길에는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들이 남아 있다. 우리가 이 길을 걷는 데 있어서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의 행보는 우리에게 좋은 표식이 되어 주고 있다.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선한 간증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도『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들려 주고 너희를 다스리던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행실의 결과를 관찰하여 그들의 믿음을 따르라.』(히 13:7)고 권면하고 계신다.

 

사도 바울을 따르는 데 있어서 앞서 간 성도들의 선한 간증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본을 보이고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교계 지도자들이 진실로 사도 바울을 따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말로는 바울을 따른다는 교계 지도자들이 바울이 설교하고 가르쳤던 것과 다르게 행동한다면, 그들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성도들을 오도하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도 바울의 행보와, 오늘날 교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변호할 때 자신이 회심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하늘에서 보이신 것에 불순종하지” 않았노라고 증거했으며(행 26:19), “나는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선한 양심으로 행하여 왔노라”(행 23:1)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선한 간증을 남길 수 있는 교계 지도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 선거가 교계 안에서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들의 신은 자기들의 배임을 증명하는 것이다(롬 16:18, 빌 3:19). 한국 교계에서 자행되는 부정부패는 비단 선거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통틀어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선한 양심을 지니라!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갈 6:7). 사도 바울이 보인 모범을 따르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 악에서 떠나고 “정직하게 행하며 의를 실행하고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시 15:2).

 

사도 바울은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따라야 할 한 좋은 본을 보여 주신 것이다. 바울도 우리와 같은 몸을 지닌 인간이었음을 볼 때, 바울을 따르라는 명령은 지키지 못할 명령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따르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기 때문에 바울을 따르지 못하고, 성경적 가치보다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먼저 내세우기 때문에 바울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바울은 성경을 믿었으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좌로나 우로 돌이키지 않았으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으로서의 선한 간증을 보여 주고 있다. 바울을 따르는 데서 돌이킨 한국 교계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는 바울의 모범을 배워야 한다. 바울이 가르치고 설교했던 것을 기억하고 우리 모두는 바울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 같은 영 안에서 행하며 같은 보조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BP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2010년 10월 04일
 박동명 기자

 

오늘도 찬양으로 은혜받으시길 소망합니다.

(찬양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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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구원하는 위대한 보혈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인을 구원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주님의 보혈은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하루는 어떤 목사가 죽어가고 있을 때 곁에 서 있던 사람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 거예요, 제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나라에 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목사님이라고 하셨거든요.” 이 말을 들은 그 목사는 한쪽 팔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며 거친 숨소리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죽어 가는 죄인에게 그런 헛소리를 하지 말게나.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에 의지해서만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라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들을 묵과하시거나 근거 없이 눈감아 주시지 않고 반드시 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죄인은 자신의 죄 문제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히 9:27).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 죄에 대한 형벌로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서 고통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막 9:48,49, 살후 1:8,9, 시 9:17, 계 20:14,1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해 죄 없는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죄인들을 위한 구원 계획을 세우셨다(요 3:16, 롬 5:8,9). 구약 시대에는 동물들을 죄인들 대신 죽여 피를 흘림으로써 죄들을 용서받았지만, 이것으로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었다(히 10:4).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만이 인간들의 죄들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기에 이 피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마침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해 놓으셨다.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한글개역성경을 위시해서 변개된 성경들에는 “그의 보혈을 통하여”가 삭제되어 있다. 그래서 그 성경을 들고 신앙생활 하는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그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근거 없이 죄들을 덮어 주는 분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죄인들을 의롭게 하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흉악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땅에 속한 죄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주님께서 그분의 성도들을 구속하신 근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이다(벧전 1:19). 성도들이 현재 지은 죄들을 씻을 수 있는 것도 주님의 보혈이다(요일 1:7).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이 위대한 보혈의 능력으로 인해 주님을 항상 찬양하고 그 피의 공로를 의지해 주님을 신실하게 섬겨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출처 : 말씀보전학회 http://www.biblemaster.co.kr

 

  

                                                                                                                          2015년 02월 02일
                                                                                                                            정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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