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극복하는 방법

  오리건의 엘리자베스 코넬리 여사는 자기의 경험을 이렇게 썼다. "나는 국방성에서 보낸 전보를 받았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조카가 전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슬픔으로 축 늘어졌습니다. 내 마음은 쓰라리고 미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직을 하려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편지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몇 년 전 내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조카가 내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조카는 나를 위로하려 했던 것입니다. '물론 모두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특히 더하실 겁니다. 그러나 아주머님은 이겨 나가실 것입니다. 저는 항상 웃으며 모든 일을 남자답게 대하라고 하신 아주머님의 말씀을 늘 기억할 것입니다.' 마치 내 옆에서 '아주머니, 저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해보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웃으면서 헤쳐 나가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도 보내고 성인 교육반에도 나갔습니다. 과거의 쓰라림은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마치 내 조카가 바랬던 것처럼 매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발생한 사건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조지 5세는 버킹검 궁전에 있는 그의 도서실에 "저버린 달 때문에, 쏟아진 우유 때문에 울지 않게 가르쳐주소서"라는 좌우명을 걸어놓았다.   

 불행의 변수 

  195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우수한 문학 지망생들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각자가 쓴 소설이며 시의 결정들을 가차 없이 서로 비평했다. 그것은 그들의 창작에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한편 여학생들이 중심이 된 또 다른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는 혹평은 일절 피하고 좋은 부분만 칭찬했다. 10년 후,그 여학생들 중 대부분이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유망하던 남학생들 중에서는 단 한명의 뛰어난 작가도 나오지 못했다. 사람은 보통 95%의 좋은 점과 5%의 좋지 않은 점을 갖고 있다. 100%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95 %의 좋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5%의 좋지 않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95%를 보고 사는 사람은 자신감 있게 산다.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들 수도 없다. 상대방의 5%쯤은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채워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행복하다. 
[국민일보] 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불행한 미국 가정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든 제도가 가정이다. 가정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안식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세계에서 가장 문명국인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하루에 9,077명이 태어나는데 그 중 1,282명은 사생아이고, 하루에 5,962쌍이 결혼하는데 그 중 1,986쌍이 이혼을 한다. 또 하루에 2,740명의 아이들이 가출하고, 하루 69,493명의 십대들이 성병에 감염된다. 강간은 매 8분마다, 살인은 매 27분마다, 강도는 매 78초마다 일어나며, 자동차는 매33초마다 분실된다. 그리고 2,740명의 10대 소녀들이 임신이 된다고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가 가정문제를 연구한 결과 가정의 최대 불행은 75퍼센트가 십계명중의 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하바드 대학의 피티릿 소로킨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결혼 25건중 1건이 이혼으로 끝나고 있는데 부부가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경우, 1,015건의 결혼 중 단 1건의 이혼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아도 행복한 가정은 주님을 그 가정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를 그 가정에 모시지 않고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불행한 황태자비 다이애나 

  지난 1997년 8월 31일 새벽0시35분(현지시각·한국시각 31일 낮12시35분) 36세로 마감한 '세기의 신데렐라' 다이애나 황태자비, 그녀는 무엇이 부족했겠습니까? 애정입니다.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도 챨스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을 사랑해 줄 남자를 찾았습니다. 승마교수와 염문, 황태자와 이혼, 그리고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마지막 남자 도디 알 파예드(42)와 프랑스 남부 생 트로페즈에 있는 파예드의 아버지 소유 별장에서 함께 휴가를 보낸 뒤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안전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메르세데스 벤츠 600. 그러나 도로 중앙 분리대에 한 차례 부딪힌 뒤 다시 터널 벽에 충돌한 벤츠 600은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습니다. 라디에이터가 자동차 앞좌석까지 깊숙이 처박혔고 차량 운전사와 다이애나의 애인 도디는 이미 숨져있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량 속에서 다이애너를 구출, 응급조치를 취하다 새벽2시쯤 파리 동남쪽의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병원으로 후송, 긴급 수술을 받았으나 새벽 4시쯤 결국 폐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현대판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행복과 불행 

  1968년 6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심리학 교수팀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길거리에 지갑을 떨어뜨린 후 그 속의 신분증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약 45%의 신분증이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6월4일은 단 하나의 신분증도 주인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바로 미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유력했던 로버트 케네디가 괴한에 의해 암살당한 날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한 가지 나쁜 소식이 사람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소식은 전염성이 강해서 금방 전체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든다. 또한 좋은 소식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인간의 삶은 그 출발점을 ‘부정’과 ‘긍정’중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불행과 행복은 항상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탐욕의 종점은 불행과 죽음 

  한 농부가 부지런히 일해 제법 넓은 농지를 갖게 됐다. 그는 항상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괴로웠다. 그런데 일정액의 돈을 내면 자기가 소유하고 싶은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부는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그곳으로 갔다. 과연 그 곳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평야갸 펼쳐져 있었다. 광야의 추장은 농부에게 말했다.“당신이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만큼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소.단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단 한평의 땅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농부는 중얼거리며 마라톤 선수처럼 광야를 질주했다. “내 땅….해가 지기 전에…” 그는 많은 땅을 차지할 욕심에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했다. 태양이 막 대지에 얼굴을 묻을 무렵, 그는 출발점에 도착했으나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탐욕의 종점에는 ‘불행’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불행한 사람들의 몇 가지 공통점 

  불행한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첫째,완벽주의자는 불행하다.그는 모든 걱정을 껴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둘째,항상 남과 비교하려 한다.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경쟁심은 평안을 앗아간다. 셋째,자기 자신만이 가장 옳다고 생각한다.아무도 이런 사람과는 함께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그래서 늘 고독하다. 넷째,작은 일에 신경을 집중시킨다.이런 사람의 표정은 항상 불만과 우울함으로 가득차 있다. 다섯째,매사에 의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섯째,이웃을 위해 절대로 사랑과 물질을 베풀지 않는다.한번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밖으로 나올 줄을 모른다.
 사람은 더불어 살때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삶의 과정을 통해 참행복을 누린다.행복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다.오늘의 삶이 비록 구차하게 여겨질수 있으나 사실은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숨어 있다.영화의 결론을 알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인생도 마찬가지다.오늘에 충실한 사람이 행복의 열매를 수확한다.   

 내가 불행한 이유 

  "왜 난 이렇게 불행할까? 릴라가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왜 그녀는 나를 원하지 않는 걸까?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해서일 거야. 

그럼 왜 나는 이렇게 작아진 거지? 그거야 내가 불행하니까. 결국 내가 불행한 이유는, 내가 불행하기 때문이군."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하라. 

  행복할 때는 타인의 호의를 쉽게 살 수 있고 우정도 도처에 넘친다. 이는 불행할 때를 위해 저장하는 것이 좋다. 그때를 위해 지금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라. 지금은 높이 평가되지 않는 것이 언젠가는 귀하게 여겨지리라. 미련한 사람은 행복할 때 친구를 두지 않는다. 지금 행복할 때 친구를 모르면 불행할 때 친구가 그대를 알지 못할 것이다.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하라.   

불행한 공전 

  자기 꼬리를 붙잡기 위해 빙글빙글 도는 어린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자신의 꼬리를 뒤쫓으며 저것만 붙잡으면 뭔가 대단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늙은 개는 강아지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얘야, 너는 행복이 꼬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불행한 공전이다. 너는 꼬리를 잡기 위해 뛰지만 나는 내 할 일을 위해 뛴단다. 내가 마땅히 내 할 바를 좇아가면 꼬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거든.” 
 자기 꼬리를 붙들기 위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어린 강아지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의 기준은 나입니다. 그런데 행복의 기준을 나로 잡아서는 결코 꼬리를 붙들 수 없는 어린 강아지처럼 아무리 나를 위해 살아도 진정한 행복의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보통 행복을 자신을 하나님처럼 신격화하면서 누리는 즐거움으로 착각하는데 진정한 행복은 창조 목적대로 돌아간 삶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불행을 예술로 승화시킨 베토벤 

  어느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남편은 알코올 중독자로 가구를 내다팔아 술을 마시고 술 마실 돈이 없으면 아내를 심하게 구타합니다.거기다가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가 힘들 정도입니다.그런데 그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이 태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학생 하나가 재빠르게 손을 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그 아이는 낙태시켜야 합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다네!” 그 임신된 생명은 바로 베토벤이었다.그를 낳은 어머니는 결국 그가 어렸을 때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했다.어머니를 여읜 베토벤은 11세 때부터 극장을 돌며 구걸예술을 시작했다.베토벤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불행의 터널을 통과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는 그 불행의 조건을 오히려 위대한 음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창조적 조건으로 승화시켰다.시편 기자도 고난의 긍정적인 면을 노래한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불행'과 '사망'의 씨앗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원주민들은 원숭이들이 다니는 길목의 나뭇가지에 열매를 넣은 조롱박을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조롱박에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놓는다. 원숭이는 조롱박에 맛있는 열매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그런데 원숭이는 조롱박의 구멍이 너무 작아서 열매를 움켜쥔 손을 빼내지 못한다. 사냥꾼들이 몰려오면 자신이 쥐고 있는 과일을 놓고 도망을 가야 하지만 원숭이에게는 그런 자각이 없다. 결국 원숭이는 한 손을 조롱박에 넣은 채 사람들에개 붙잡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사람이 재물을 움켜쥔 손을 놓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재물을 숭배하는 사람은 그 자신도 재물로 변화된다. 진정 행복을 얻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과욕은 ‘불행’과 ‘사망’의 씨앗이다.   

 불행한 가정생활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와 미국의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불행한 가정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허물을 깨닫고 자기가 남편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것을 그 자식들 앞에서 자인하고 자기의 행한 일들이 미친 사람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비통하게 고백하였다. 또 아브라함 링컨은 난폭하고 무례한 자기 부인에게 어쩔 수가 없어서 가정을 점점 멀리하고 여관에서 외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생활을 계속하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불행한 조건에서도 귀하게 살다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그 저자 디포가 감옥에 있을 때 쓰여졌다. 하루에 자기의 시력을 5분씩밖에 쓸 수 없었던 나쁜 시력의 프레스코트는 위대한 역사가가 되었다. 거의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고 그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찼던 그때에 베토벤은 위대한 교향곡들을 작곡, 완성했다. 모짜르트도 불치의 병으로 희망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의 불후의 오페라들을 작곡했다. 존 칼빈은 육신의 병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는 생활 중에서 위대한 신학 저술을 했다. 「천로역정」이라는 영구히 빛나는 책도 그 저자 존 번연이 눈썹에 곰팡이가 슬 정도의 음침하고 습기찬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쓴 것이다. 원수들이 자기의 생명을 노리고 찾아다니는 동안에 발트부르크의 성 안에 숨어 있던 마르틴 루터는 유명한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여 농부나 평민이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드디어 펴낸 것이었다. 평생을 소경으로 살아야 했던 크로스비 여사는 영감이 충만한 수많은 찬송들을 써서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고 있다.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불구자였던 헬렌 켈러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내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을 걸어 다닐지라도, 나의 굽힘 없는 영혼은 저 하늘의 독수리마냥 드높은 창공으로 오릅니다!" 이것은 하늘을 한번 보지도 못했고, 독수리의 소리를 한번 듣지도 못했던 위대한 사람의 말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한탄이나 열등감, 불행한 조건 등에 얽매여 사는 패배자의 생활을 하지 말자. 당신은 축복을 받았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은 귀중한 인생이다. 당신은 넉넉한 승리를 거둘 사람이다. 안심하자! 확신하자! 그리고 기뻐하자!(목사, 윤영준)   

철학이 없는 유산은 자녀를 불행하게 한다.

  미국 조지아주 중서부에서 대부호로 명성을 떨친 레스터가(家)가 있었다. 레스터는 이곳에서 담배농사를 지어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는 주변의 농토들을 모두 사들여 담배농사를 지었다. 레스터의 땅을 밟지 않고는 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이 길을 토바코 로드(담배의 길)로 불렀다. 레스터는 후손들에게 엄청난 땅과 돈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런데 레스터의 3대 후손들은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3대손인 지이터가 소작농으로 전락해 유일하게 그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1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5명은 일찍 사망했다. 9명은 가출했다. 이 부부는 고향을 지키며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지이터 부부가 잡초더미에 불을 놓았는데 그 불이 집에 옮겨붙어 타죽고 말았다.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돈’ 대신 좋은 ‘습관’과 ‘전통’을 유산으로 남겨준다. 철학이 없는 많은 유산은 자녀를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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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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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예수님만 바라보라

찬송: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288장(통 204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마태복음 17장 1~8절

말씀: 한국교회가 가진 독특한 것이 있는데 새벽기도와 산기도입니다. 예수님도 새벽기도를 즐겨 하셨고, 산기도도 즐겨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산에 올라가서 졸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셨고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변화된 모습이 원래 주님의 모습이요, 장차 하늘에 오르실 모습입니다. 이 영광스런 모습을 보아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확신과 용기가 생기겠기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되실 때에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유대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이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게 되니 졸던 제자들이 두 눈이 번쩍 뜨여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착각한 것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항상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습니다. 조연은 주연을 빛내주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 자리에 주연은 예수님이고 조연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그동안 주연이신 주님과 함께 다녔으면서도 이러한 감동이 없다가 조연을 만나보고 감동을 한 것입니다. 주연을 잘 모셔야 합니다. 어떤 집은 남편에게는 매일 김치찌개나 해주다가 이웃집이 오거나, 남편의 직장 동료가 오면 메뉴가 바뀝니다. ‘아니 평소에 우리 아내가 저런 것을 만들 줄 알았나’ 할 정도로 신기한 것들을 막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주연이 남편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그렇고, 오늘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구원을 얻는 일인데 이것은 잊어버리고 살다가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이나 명예의 축복을 주시면 감격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명예는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신 것에 비하면 조연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였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들고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간곳이 없고 예수님만 계셨습니다. 우리가 깊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예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신앙의 깊은 경지를 체험하지 못할 때에 다른 것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받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일로 시험을 받고 작은 일 때문에 신앙생활에 축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크리스천의 위기는 예수님이 희미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그 가운데 예수님을 똑똑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예수님 외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법을 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풍랑이 있고 어둡던 세상이 밝아지고 분쟁이 있는 곳에 찬송이 넘쳐나게 되며, 세상에 끌려가던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선물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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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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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1
찬송 :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500장(통 258장) 

본문: 사무엘상 19장 1~7절 

본문에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울 왕과 친구인 다윗의 대립 가운데서 난처할 수밖에 없는 '제3자 요나단'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 설 때가 많습니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강요받기도 하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진리의 편에서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첫째, 사울 앞의 요나단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세운 두 번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끝납니다. 사울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던 보이지 않던 죄의 모습은 두 번의 실패로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고 급기야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을 죽이려는 그의 노력이 잘못되었음을 직고합니다(3∼5절). 요나단은 자기가 이어받게 될 왕위를 다윗이 차지할 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우정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구출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분노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인내를 요구하거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은 이런 상황에서 차분히 사울이 생각을 바꾸도록 돕습니다. 

둘째, 다윗 앞의 요나단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과 세상의 욕심에 사로잡힌 사울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단순히 '선택'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어떤 방법으로 다윗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초점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생명에 있었습니다. 사울의 음모를 알고 있던 요나단은 다윗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지혜로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두 사람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긍정의 상황을 만들려는 요나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고민하면서도 다윗을 도운 이유는 평화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의 생명을 구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사울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운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 앞의 요나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볼 때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며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기뻐하며 그를 돕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왕위를 이을 사람처럼 여겨질지라도 그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겸손히 받아들였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요나단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관계를 회복시키고 평화를 이끌어내는 믿음의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말씀을 따라 지혜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평화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의 잘됨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예배2

찬송 : '주 예수여 은혜를' 368장(통 48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민수기 22장 21~35절 

말씀 : 본문의 국가 간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아모리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했다는 말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모리의 신을 이겼다는 말입니다. 발락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한다면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발람에 관한 말씀을 통해 영적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유혹을 품고 있는 발람입니다. 발락이 보낸 사람들은 먼저 발람을 칭송하는 말과 복채로 그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음성이 너무도 강했기에 다음날 발람은 발락의 사람들을 돌려보내며 발락의 청을 거절합니다. 발락은 더 높은 관료들을 보내 발람을 유혹합니다. 발람은 점차 마음이 흔들려 생각해볼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유혹을 만납니다. 물질과 명예를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은 어떤 사안에 대해 절대 문제없는 듯 유혹합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이 유혹이며 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죄의 길에 들어선 발람입니다. 발람은 끝내 모압 고관들과 함께 모압왕 발락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유혹을 바로 떨쳐내지 못하면 결국 죄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모압의 고관들이 찾아왔을 때 같은 질문을 다시 하는 발람에게 "함께 가라"고 하신 것은 모든 책임이 발람에게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기도한다" "하나님이 마음을 돌리도록 기도한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그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고 맙니다. 과연 평탄한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그를 태우고 가던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놀라 발을 상하게 됩니다. 영안이 어두운 발람은 나귀가 몸부림쳐 자기를 상하게 한 것에만 분노하였을 뿐 그 원인을 전혀 몰랐습니다. 탐심은 눈을 멀게 합니다. 

욕심이 과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않았지만 후에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 받은 자'(벧후 2장)로 기억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더 좋은 것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결말은 공허함과 멸망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은혜를 누리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 아버지 되신 주여, 세상의 유혹과 죄악의 길에서 참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늘 승리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물질과 명예에 마음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며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예배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안과 만족의 삶 
찬송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2장 22~34절 


말씀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우리 삶의 고민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먹는 것과 입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삶의 절반 이상을 이런 근심으로 허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약속보다 삶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첫째, 염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삶의 너무 많은 부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염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의혹을 품고 탐욕을 부리며 조바심을 내고 우울해합니다. 그러나 정작 염려로 인해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눈과 귀를 왜곡시키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동참하거나 긍휼의 마음을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염려는 전염병과 같아서 염려하는 사람을 만나면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근심하게 됩니다. 염려는 불안을 극대화하고 불안은 루머를 만들어냅니다. 루머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관계를 분열시킵니다.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고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염려를 향해 단호히 선포하십시오. 

둘째,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성경에서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끈질긴 유혹이며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며, 우리의 삶에 확실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넘겨드리십시오. 시각을 바꿔 감사한 일을 찾고 자신의 장점에 집중해 보십시오. 

셋째,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방법은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 가운데 오는 생각이지만 헌신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와 헌신입니다. 의무와 헌신 후에 오는 것은 '더하시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축복입니다. 무엇으로든지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 : 만복의 근원 되시는 주님,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염려하던 삶이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가정예배 4

 하나님의 풍성하심으로 인한 용서 
 
찬송가 : '예수 앞에 나오면' 287장(통 205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50장 15~21절 


말씀 : 야곱의 장례를 마친 후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와 종으로라도 써달라며 간곡히 부탁하는 것처럼 요셉의 형들도 자신들을 요셉의 종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에게 다가가 위로합니다. 자신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들에게 그 용서가 진심임을 눈물로써 확인시켜 줍니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속임수로 시작된 이야기가 화해와 위로, 그리고 축복으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죄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용서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들을 애굽 땅으로 인도하신 것일까요?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서 요셉을 만난 후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요셉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아들들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자신 또한 아버지를 속였던 사건(자신을 에서라고 속이고 장자권을 얻어낸 것)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인간 사회 속에서 '나만 그러는 것도 아닌데'라며 죄악을 쉽게 넘겨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용서받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둘째, 용서는 상호적입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을 용서했지만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용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만 자신들을 용서해 주는 척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신들을 처형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이처럼 용서는 상호적입니다. 내가 용서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내 용서를 받아들여야 진정한 용서입니다. 요셉도 과거의 일을 다 잊어버리는 것이 용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의 두려움을 알고 난 요셉은 함께 울며 그들을 위로합니다.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상호 용서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주변에 나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를 위해 기꺼이 울어 줄 마음을 품으십시오. 

셋째, 용서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내가 잊어버리거나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철저히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풍성하심으로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물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그 모든 것 가운데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용서는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통해 축복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기도 :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도 주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용서로 인해 이웃에게 사랑을 나눠주며 용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넉넉한 마음을 허락하사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예배 5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힘 


찬송가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말씀 : 사랑은 단순히 관념이 아니라 힘을 다하는 행동이며 영혼의 느낌이자 마음의 감정입니다. 사랑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내어주셨듯 우리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과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첫째, 강도 만난 사람과 율법사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평화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살다가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여리고는 ‘향기’라는 뜻입니다. 세상 죄악의 향기, 인간을 유혹하는 향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율법사에게 강도 만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율법사야, 너는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서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내가 네 영혼의 실상을 말해 준다면 너는 바로 이 강도 만난 사람이야. 네 영혼 상태가 하나님 앞에서는 강도 만난 사람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영생을 얻는 방법을 율법을 통해 알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자신이 바로 강도 만난 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 사마리아 사람과 예수님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예수님은 닮은 곳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피해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자신도 그런 일을 만날까봐 피해가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불쌍히 여기시고 발걸음을 멈추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길 뿐만 아니라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영혼의 강도를 만나 상처 입은 우리 마음속의 죄악을 피로 씻어주시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씻어진 의로운 마음속에 성령을 부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셋째,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이 셋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입니까?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 치유를 얻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네 이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참된 이웃입니다. 강도 만난 자가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서 죽어가던 생명이 살아났듯, 죄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의롭게 된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신 예수님을 따라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주님, 세상의 고통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늘 따르게 하시옵소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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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행복한 가정을 만듭시다
  
찬송: '어머니의 넓은 사랑' 579장(통 304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디모데후서 1장 3~5절 

말씀: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제도가 가정입니다. 가정은 인간 생존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안식처입니다. 설령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해도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시편 128편은 가정의 축복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그중 3절을 보면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고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열매는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자녀의 불행은 가족 전체의 절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무엘상 4장에는 행복했던 제사장 엘리 가문의 몰락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가문의 불행은 평소 믿음으로 훈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무엘상 2장 27∼34절은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 가문에 대한 책망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사 제물을 먹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생활이 엉망인데도 그냥 놔두었습니다. 결국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엘리 제사장도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지금 우리 자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혹시 엘리 제사장처럼 자녀가 우상이 돼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 가정이 어떠했기에 바울이 이처럼 칭찬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성경 중심의 가정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서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디모데가 철저하게 성경으로 교육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고 성장한 인물은 문제아가 될 수 없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이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어머님이 가르치신 성경 말씀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둘째, 디모데의 집안은 믿음 중심의 가정이었습니다. 본문 5절은 디모데에게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남겨줄 위대한 유산이 있다면 믿음의 유산일 것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가정은 행복합니다. 위대한 자녀는 현명한 어머니의 믿음의 결실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먼저 믿음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자녀가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승리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게 하소서.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자녀들을 디모데처럼 키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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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어린이)를 사랑합시다
  
찬송가 : '어머니의 넒은 사랑' 579장(통 30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9장 13~15절 




말씀 :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바로 미래의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오늘의 어른은 어제의 자녀였습니다. 자녀가 건강하게, 참되게, 바르게 자라야만 내일의 우리의 삶과 환경이, 우리 교회와 나라, 그리고 세계가 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어린 자녀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신 이유입니다. 모세, 삼손, 다윗, 요셉 등 성경의 주요 인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크게 쓰시기 위해 어려서부터 특별히 관리되었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사람의 인격이 어린 시절에 80% 이상이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어린이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어린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인간을 바르게 하는 교육의 틀이기도 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이 병들면 들쳐 업고 병원을 향해 달려가듯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병들었을 때는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둘째. 크리스천들은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 34절을 보면 예수님도 어렸을 때 시므온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기도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 뒤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눈물 기도가 죽은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이처럼 부모의 중보기도가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할 때 자녀가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도로 키운 자식은 설사 탕자가 된다 해도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부모는 자녀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어린이는 듣고 배우는 것보다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따라 하곤 합니다. 이 때문에 부모는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우리에게서 어떤 것을 본받을 수 있을까요?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는 모습, 승리 속에서도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되는 대로 키웠다가는 그 자녀들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바로 키우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기도 : 우리의 자녀가 말씀 가운데 잘 양육되게 하소서. 자녀가 부모의 바른 신앙을 본받게 하소서. 부모가 본이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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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듣는 사람
  
찬송 : '내 주 하나님' 469장(통 46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6장 1∼6절 


초대 교회는 오늘날 교회처럼 교인 숫자를 자랑하거나 교회 크기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수를 많이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여 공동체의 힘을 밝히 드러내는 곳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도록 하고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역할까지 감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명목상 교인을 교회 일꾼으로 세우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돼야 할까요. 

첫째.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세상의 논리와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역자라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사역자의 삶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둘째. 지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영적 지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은 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자기의 기분이나 감정대로 사는 정욕적인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철저히 순종하고 '아멘'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초대 교회의 제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즉 영적 분별력을 갖고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야 합니다(딤전 4:5). 높은 도덕성을 갖추고 인격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이웃으로부터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행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 현실의 삶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이웃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초대 교회는 일꾼들을 잘 세워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갔습니다. 우리 가정도 초대 교회처럼 참 그리스도인으로 훈련과 양육에 힘써야 합니다. 가정예배 및 성경공부 모임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고 지혜가 가득 찬 그리스도인이 돼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기도 : 세상의 논리와 구별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을 바로 깨달아 영적 분별 속에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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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한 가정 

찬송가 : '내가 매일 기쁘게' 191장(통 42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4장 26절 

말씀 : 기초가 무너지면 전부가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기초가 튼튼해야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름답게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지탱해주는 기초는 '성령'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부활 후 승천하시려는 주님이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남아 핍박과 환난 가운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마음이 근심과 혼란에 있지 말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시면서 강조하는 것은 '보혜사 성령'입니다. 

첫째, 성령은 우리의 가정과 가족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가정 및 가족을 돕는 자와 위로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돕는 자로 보내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위로가 있을 때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우리 신앙은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강한 일꾼으로 만들어주시고 주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 

둘째, 성령은 우리 가정과 가족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호세아 4장 6절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리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저자가 성령이라는 의미입니다. 

셋째, 성령은 우리의 삶을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위협받고 있는 가정들이 건강하게 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게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거룩하게 사는 삶을 원하십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 영혼의 눈이 밝아지면서 죄를 책망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복음의 진리를 확신할 때만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내재하실 뿐 아니라 위로하고 깨닫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는 성도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고 말씀을 깨닫는 자가 되게 하소서. 매일의 삶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거듭나고 거룩하게 하소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올바른 가정이 되고 믿음의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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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연휴 가족과 함께 제부도 대부도 해변에서 

10월 가정예배 ( 평안과 만족의 삶 )
 
찬송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2장 22~34절 

말씀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우리 삶의 고민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먹는 것과 입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삶의 절반 이상을 이런 근심으로 허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약속보다 삶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첫째, 염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삶의 너무 많은 부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염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의혹을 품고 탐욕을 부리며 조바심을 내고 우울해합니다. 그러나 정작 염려로 인해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눈과 귀를 왜곡시키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동참하거나 긍휼의 마음을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염려는 전염병과 같아서 염려하는 사람을 만나면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근심하게 됩니다. 염려는 불안을 극대화하고 불안은 루머를 만들어냅니다. 루머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관계를 분열시킵니다.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고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염려를 향해 단호히 선포하십시오. 

둘째,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성경에서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끈질긴 유혹이며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며, 우리의 삶에 확실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넘겨드리십시오. 시각을 바꿔 감사한 일을 찾고 자신의 장점에 집중해 보십시오. 

셋째,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방법은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 가운데 오는 생각이지만 헌신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와 헌신입니다. 의무와 헌신 후에 오는 것은 '더하시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축복입니다. 무엇으로든지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 : 만복의 근원 되시는 주님,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염려하던 삶이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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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30일 여의도 공원 코로나19로 공원이 많이 폐쇠도고 한산한 모습 


찬송 :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500장(통 258장) 

본문: 사무엘상 19장 1~7절 

본문에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울 왕과 친구인 다윗의 대립 가운데서 난처할 수밖에 없는 '제3자 요나단'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 설 때가 많습니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강요받기도 하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진리의 편에서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첫째, 사울 앞의 요나단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세운 두 번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끝납니다. 사울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던 보이지 않던 죄의 모습은 두 번의 실패로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고 급기야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을 죽이려는 그의 노력이 잘못되었음을 직고합니다(3∼5절). 요나단은 자기가 이어받게 될 왕위를 다윗이 차지할 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우정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구출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분노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인내를 요구하거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은 이런 상황에서 차분히 사울이 생각을 바꾸도록 돕습니다. 

둘째, 다윗 앞의 요나단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과 세상의 욕심에 사로잡힌 사울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단순히 '선택'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어떤 방법으로 다윗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초점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생명에 있었습니다. 사울의 음모를 알고 있던 요나단은 다윗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지혜로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두 사람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긍정의 상황을 만들려는 요나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고민하면서도 다윗을 도운 이유는 평화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의 생명을 구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사울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운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 앞의 요나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볼 때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며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기뻐하며 그를 돕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왕위를 이을 사람처럼 여겨질지라도 그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겸손히 받아들였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요나단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관계를 회복시키고 평화를 이끌어내는 믿음의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말씀을 따라 지혜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평화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의 잘됨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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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행복한 가정을 만듭시다

 
찬송: '어머니의 넓은 사랑' 579장(통 304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디모데후서 1장 3~5절 

말씀: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제도가 가정입니다. 가정은 인간 생존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안식처입니다. 설령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해도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시편 128편은 가정의 축복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그중 3절을 보면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고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열매는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자녀의 불행은 가족 전체의 절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무엘상 4장에는 행복했던 제사장 엘리 가문의 몰락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가문의 불행은 평소 믿음으로 훈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무엘상 2장 27∼34절은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 가문에 대한 책망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사 제물을 먹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생활이 엉망인데도 그냥 놔두었습니다. 결국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엘리 제사장도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지금 우리 자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혹시 엘리 제사장처럼 자녀가 우상이 돼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 가정이 어떠했기에 바울이 이처럼 칭찬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성경 중심의 가정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서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디모데가 철저하게 성경으로 교육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고 성장한 인물은 문제아가 될 수 없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이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어머님이 가르치신 성경 말씀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둘째, 디모데의 집안은 믿음 중심의 가정이었습니다. 본문 5절은 디모데에게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남겨줄 위대한 유산이 있다면 믿음의 유산일 것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가정은 행복합니다. 위대한 자녀는 현명한 어머니의 믿음의 결실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먼저 믿음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자녀가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승리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게 하소서.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자녀들을 디모데처럼 키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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