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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앙인 기독교의 중요 10대 교리 원칙

1.[하나님]

창조주이시며 인류의 아버지시며, 우주를 주관하시고 운행케 하시며, 사람의 생사와 복화를 주관하십니다.

 

2.[예수님]

하나님의 아들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주 메시야 이시며 신성과 인성을 가진분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자를 살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40일간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과 함께하시며 재림하신다고 약속 하셨는데 그 때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죄사함받고 거듭나며 성령을 받고 구원과 천국에 들어갑니다.

3.[성령]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인데 진리의 영이십니다.

예수님 승천 10일 후에 성령이 강림하셨는데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더욱 확신하게되고 성령 받으면 선교하고 충성하게됩니다. 성령세례는 1회, 성령충만은 계속 충만해야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 를 받으시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4.[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는 건물교회와 성도를 교회라 합니다. 교회의 주인과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성도들은 지체입니다.

교회는 예배, 선교, 교육,친교, 봉사, 구제등 여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배와 선교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5.[성경]

기독교의 경전을 정경이라 하는데 구약39권 신약27권 계66권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고 믿습니다. 외경과 위경은 정경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신학자들이 연구, 참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의해서 선지자, 에언자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기록되었으며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예언의 말씀, 계시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구원의 말씀, 창조의 말씀, 영의 양식이며 은혜와 치유의 말씀, 위로의 말씀입니다.

6.[천국]

천국은 하나님 계신 하나님나라 천국, 가정천국, 마음천국, 천국 같은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천국은 하늘나라를 말합니다. 천국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예수님도 계시지요. 하나님 보좌 앞에 생명강이 흐르고 천군 천사들이 있고 성도들도 천국에 들어갑니다.

 

7.[구원]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삶속에서의 여러가지 구원도 있고 궁극적인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 영생하는 것입니다.

8. [부활과 영생]

예수님 믿는 성도는 사후에 육체는 무덤에 장사되며 영혼은 낙원에 갑니다.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 무덤에 있는 성도들의 육체는 부활하며 우리가 (성도들)예수님 재림하실 때 살아있다면 변화되어 들림 받고 영생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영생하며 살게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영혼, 육체의 전인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9.[처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신 예수님을 믿음

예수님은 호적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셔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죄가 없는 분이므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가 있는분입니다.

아담의 죄가 유전되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가 있는 분이며 구원하실 수가 있는 분이시지요.

10.[삼위일체]를 믿음

천지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시며 운행케하시는 인간의 창조주시며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인류의 아버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과 구원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며 예수님의 영인 보혜사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고 거듭나면 성령을 받고 선교, 전도, 충성, 순종하게 되며 믿음이 더 굳건해져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사랑하며 사람과 사회를 변화 시킬 수가 있습니다. 성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의 중요교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유일신 하나님이신데,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 보혜사 성령으로 3위격을(PERSONA) 갖추신 하나님이신 것을 표명합니다.

라틴어로'TRINITAS'라는 신학 용어를 사용한사람이 터툴리안(A.D. 150-220)입니다.

삼위일체의 표현은 성경에 여러군데 나타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표현

1.창1:1-3,26)-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 하셨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 호칭 했는데 엘로힘은 복수형 입니다.

2.하나님은 자신을 복수형으로 말씀 하셨습니다.(창11:7) 바벨탑을 쌓은자들에게 우리가 내려가서...혼잡케 하자"고 말씀 하셨습니다.

3.하나님은 이사야서에서(사6:8)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말씀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에 의한 증거.

1.예수님 세례시에.(마3:16-17)성자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2.예수님께서 증거하심.(요14:26,15:26)

3.사도들의 축도에 성부, 성자, 성령 이름으로 축도함(고후13:13)

4.예수님의 분부에 나타남(마28:19)

5.갈4:4-6절에 말씀하심.

6.엡4:3-6에 말씀하심.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 말씀들

1.아기가(아들) 하나님으로 표현됨.(사9:6-7)

2.성령이 하나님으로 표현 됨(행5:3-4)

3.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 부터온다.(요14:16, 26)

4.성령은 예수님 승천10일 후에 강림 하심.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시며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1:1-4)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 이십니다. 도마가 예수님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요한복음20:28)

성령님은 보혜사로 예수님 승천 후에 오신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나 역할을 삼위일체로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 인간의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삼위일체 교리는 구원론. 신론에 있어서 중요한 기독교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유일 하신 한분이시나 그 활동과 역할은 삼위이시며 일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예수님은 아들 구주 그리스도, 성령님은 보혜사이시며,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신 이십니다.

여러분들 위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호와 구원과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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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서울 시내 절 봉은사 소개 )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31 봉은사
9봉은사역 1번 출구에서136m


찾아가는길
지하철 이용안내
삼성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아셈타워 쪽으로 600m쯤 올라오시면 좌측에 봉은사 진입로가 있습니다.
청담역 2번 출구로 나와서 경기고 방향으로 800m쯤 올라오시면 우측에 봉은사 진입로가 있습니다.
봉은사역 1번 출구로 나와서 100m쯤 올라오시면 봉은사 입구가 있습니다.내용 더보기
영업시간
매일 05:00 - 22:00 봉은사 명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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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단과 교파에 관한 이해
 

 

 기독교에는 많은 교단(denomination) 혹은 교파가 있습니다.
성결교, 감리교, 장로교, 구세군, 성공회, 루터교, 하나님의성회, 침례교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비록 서로 다른 교단들이지만 원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면에서 하나이며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며, 복음(신학에서는 케리그마 라고 합니다: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수난, 죽음, 부활, 재림)을 믿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 등에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교단들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배의 형식이나, 성만찬에 대한 견해, 정치체제, 신조, 신학적 바탕 등에서 조금씩 다른 것이지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런 차이점은 마치 한 부모의 자식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생김새는 달라도 부모의 혈통을 이어 받은 자식임은 불변하듯이 말입니다.

  그럼 이제 이들의 차이점을 간략히 살펴 볼까요.

 

   1) 성결교회 :

 

성결교회는 성결교회 홈페이지인 본 싸이트의 외쪽 상단에 링크된 [헌법][역사]를 보시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편의상 몇가지만 언급하면 성결교회의 신학적 바탕은 요한 웨슬레이며, 정치제도는 초기에는 감리교처럼 감독제를 가지다가 후에 대의제도를 선택했습니다. 대의제도는 쉽게 말해 장로의회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것은 사중복음(중생(거듭남),성결,신유,재림)이며 성결교회의 시작은 일본 동경성서학원에서 공부한 정빈,김상준이란 분이 1907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데서 부터입니다. 일제시대에 재림사상 때문에 교단이 폐쇄되었다가 해방 후 재건 되었는데 이 폐쇄 기간 때문에 선교의 어려움이 있어 교회 성장에 어려움이 컸습니다. 다른 교단과는 달리 해방 후 다시 시작된 후발주자로서 오늘날 손꼽히는 유수의 교단이 된것 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단신학교는 부천에 있는 서울신학대학교입니다.  한국의 성결교회는 크게 본교단인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가 있는데 이 둘은 한 뿌리이며 신학적 바탕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성의 학교는 안양에 있는 성결대학교입니다. 기성과 예성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대한 입장차이로 분열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타 성결교회로는 나사렛성결회(아산,나사렛신학대학)가 있습니다.
  성결교회는 신학적으로 감리교와 같이 웨슬레안입니다.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하면 1)복음적 신-인 협동설을 따르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중시한 것입니다. 2) 장로교의 예정론과 달리 모든 인류를 위한 구속의 은총 3) 구원의 순서(대략, 선행은총-의인-성화-영화)에 따른 강조  4)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기대하시는 하나님 이해 등이 특징입니다.

  웨슬레의 성만찬 이해 :  상징설(감리교와 성결교, 구세군 등이 이에 따릅니다.)


  (1)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과 인증
  웨슬레는 성례전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의 표적(sign)과 인증(seal)으로 보았습니다. 이 점에서 웨슬레는 성례전을 주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고백하는 믿음이나 행위의 표적으로 보려는 쯔빙글리의 "기념설"의 입장과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성만찬은 내적인 은혜의 외적인 표현인 동시에 은혜로 용서받은 인증으로서 성도에게 확신을 주고 그를 견고케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WorksⅦ, 148 ; SermonsⅠ, 242)
  이 성만찬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시던 그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이 찢겨지고 피를 흘려야 하는 대속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시며 주신 교훈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님께서 당하신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성만찬은 그의 표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2) 현재은혜(present grace)의 표적과 인증
  웨슬레는 성만찬은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나타내는 표적이면서 또 우리는 주님의 성육신과 고난이 의미하는 모든 은혜를 이 성만찬에서 기대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Letters Ⅰ, 118)]
  웨슬레는 유월절과 성만찬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애급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표적으로서의 어린 양의 살이 이제는 그리스도이신 어린양 예수의 피와 살을 통해서 구원의 표적과 인증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의 표적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 지금" 우리에게 은혜를 주며 이를 확증케 하는 인증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웨슬레의 입장은 단순히 기념설을 말하는 쯔빙글리나, 한편 성만찬을 통하여 기계적으로 은혜를 받는다(ex opere operato)고 말하는 로마 카톨릭의 견해와 다릅니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만찬은 현재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회심케 하는 은혜", "성결케 하는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다른 말로 바꿔서, 성만찬에서의 떡과 잔은 구원에 관한 전체적인 은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보느느 것입니다.

 

  (3) 천국의 보증과 인증
  웨슬레는 더 나아가 성만찬을 천국의 보증(a pledge of heaven)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웨슬레는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즉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잔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마라나타" 곧 주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보았습니다.웨슬레에 의하면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에 근거한 모든 은혜를 현재 여기에서 전달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이렇게 해서 웨슬레는 성만찬이 단순한 "기념"이라는 해석을 반대합니다. 따라서 합당한 수찬자가 믿음으로 받을 때 그는 자기의 필요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성도의 교제의 인증
- 설명 생략 -
  정치 제도: 총회-지역총회-지방회-개 교회

 

   2) 감리교회http://kmc.sbr.net/  :

 

감리교회는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요한 웨슬레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올더스게잇이란 곳에서 회심을 체험하고 옥스포드 대학에서 동생과 몇몇의 동지들과 함께 Holy Club을 결성하였습니다. 이들은 영국국교회(성공회) 내에서의 교회 혁신 운동을 해 나갔으나 국교회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후 1740년 남26, 여48명이 론논 파운드리에서 모여 메도디스트 협회를 조직하였고 1784년 미국에 보낼 성직자 안수문제로 국교회와 결별하였습니다.
  감리교회는 1884년에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한국에 선교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교리적, 신학적 특징은 위의 성결교회 부분(사중복음 강조를 제외)을 참고하십시오.
   감리교도 몇개의 교파가 있는데 기독교 대한 감리회(감리교신학대학), 예수교 대한 감리회, 기독교대한 자유감리교회 등이 있는데 이들의 신학적입장은 같습니다.
   감리교회는 감독제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계급의식이 강한 측면이 있어 상명하복의 관계가 개신교 안에서는 짙은 편입니다.
    정치제도 : 감독회장-연회감독-감리사-목사

 

   3) 장로교회 :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http://www.yejang.or.kr/, 개혁측 http://www.reformed.or.kr, 통합측 http://www.pck.or.kr/, 고신측 http://kpm.org/, 대신측, 고려 http://www.coramdeo.net, 재건 http://www.jaegun.or.kr/  등 이 대표적인 교파로 조사에 의하면 약 270여개의 파로 나눠져 있다합니다.)와 한국 기독교 장로회(기장 http://knp.or.kr/)가 있습니다.
    이들의 출발과 차이점 등은 99.11.19일자 국민일보 25면을 보시면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글 후반부에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의 신학적 바탕은 16세기 제네바의 개혁자 죤 칼빈에게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또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란 것을 교단의 신조로 받아들입니다. 장로교회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론을 주장하며 정치적으로는 의회정치를 채택합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들에게 있는 장로제도는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는 : 영적임재설
   기념설을 주장한 쯔빙글리와 같이 그는 그리스도의 어떠한 육체적인 임재도 거부하면서도 믿음으로 실제적인 임재를, 비록 영적이긴 하지만 받는다고 분명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으실 뿐 아니라 비록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은 우리들에게 들어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퍼뜨리시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찬은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에 계시고, 장소적으로 제한을 받으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의 몸이 성물 가운데 육신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성찬에서 육신적 임재가 꼭 필요한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께서는 신실한 자들을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실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성령이 제한적 존재가 아니시므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들을 한데 결합시키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실한 자들은 성령의 중재를 통하여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은 소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We must beware of being led into a kindred error by the terms, somewhat too extravagant, which ancient Christian writers have employed in extolling the dignity of the sacraments. We must not suppose that there is some latent virtue inherent in the sacraments, by which they, in themselves confer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upon us, in the same way in which wine is drunk out of a cup, since the only office divinely assigned them is to attest and ratify the benevolence of the Lord towards us; and they avail no farther than accompanied by the Holy Spirit to open our minds and hearts, and make us capable of receiving this
testimony, in which various distinguished graces are clearly manifested. For the sacraments, as we lately observed, (chap. 13 sec. 6; and 14 sec. 6, 7,) are to us what messengers of good news are to men, or earnests in ratifying pactions. They do not of themselves bestow any grace, but they announce and manifest it, and, like earnests and badges, give a ratification of the gifts which the Divine liberality has bestowed upon us.]
   정치제도 : 총회-노회-교회
   이들의 학교는 총신대학교(합동), 총회신학교(개혁), 장로회신학대학(통합), 고려신학대학(고신) 안양대학교(대신) 고려신학교(고려) 한신대학교(기장)등이 있습니다. 이들 대다수 교단의 분열 또한 신학적 차이보다는 정치적인 면 때문입니다. 물론 합동측은 ncc에 가입하지 않고 통합측은 ncc에 가입했다든지, 기독교장로회는 다른 교파보다 진보적이라든지 하는 차이들이 있습니다.

 

    4) 침례교회http://kcm.co.kr/kbfmb/  :

 

침례교는 카톨릭 다음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교파입니다.  침례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설립된 것은 1608년입니다. 암스텔담으로 쫓겨온 영국 분리교도들이 본래 영국교회의 목사였던 죤 스미스의 지휘아래 설립하였습니다. 침례교의 특징은 침례(온 몸을 물에 잠그는 세례)를 유일한 세례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침례교회는 장로제도가 없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목사, 안수집사, 교사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침례교회는  독립적, 자율적인 면을 중요시 하여 총회나, 연회 등을 두지 않고 '친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침례교는 특별한 신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몇가지 특징은 1) 개교회의 독립성 인정 2) 교회와 국가의 오나전 분리 3) 유아세례 반대 등입니다.
   침례교는 한국에서 일제시대에 동아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선교되다가 일제에 의해 교단이 폐쇄되었다가 해방후 재건되었습니다.

   5) 루터교회http://www.lck.or.kr : 16세기 종교개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카톨릭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의 신앙적, 신학적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루터의 대소교리 문담(1529),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1530), 슈말칼트 신앙개조(1580), 콘코드의 신조(1580)를 신조로 삼았습니다. 루터교는 이들 신조들 외에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안 신조를 고백합니다.
    교리적 특징은 1) 이신득의 강조 2) 성찬은 은혜의 방도가 된다(공재설(Consubstantiation):성찬 참여자는 떡과 포도주 안에서(in), 떡과 포도주와 함께(with), 떡과 포도주 아래서(under)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에 참여한다. 떡과 포도주의 물질요소 자체는 불변한 채 있지만, 성별의 기도를 마친 후에 여기에 참여하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성찬 참여자에게 상징적으로 전한다.) 3) 세례에 의한 중생:세례는 성령께서 주시는 중생의 은사를 받게 하는 것 4)유아세례는 정당하며 합당하다 5)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성에 부여된 것 6)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있지만 구원은 만민에게 보편적
    한국에서 루터 교회는 문서선교를 통해 확산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학하고 들어온 지원상 목사를 중심으로 컨콜디아사를 통해 문서선교를 하고 방송(루터란 아워)을 통해 선교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루터교회는 그리 큰 교단은 아니지만 베델성서교육을 통해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학교는 용인에있는 루터신학대학입니다.
   오늘날 독일과 북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는 루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회중주의이며, 행정과 결의에 있어서는 대의정치를 추구합니다.

 

   6) 성공회http://anck.peacenet.or.kr/kindex.htm

   성공회는 아시다시피 영국에서 축발했습니다. 이 교회는 앵글리칸 처치, 성공회, 에피스코팔처치, 등으로도 불리웁니다.  1536년 로마감독의 교권을 폐지하고 1570년 교황 피오 5세가 영국왕 엘리자벳을 파문함으로써 로마교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신앙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발생하였고 교회의 신학은 개혁파에 가깝지만 교회 및 예배의식 은 카톨릭에 가깝습니다. 조직은 주교, 신부, 부제라고 일컷는 종신직 신품이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영국 왕이 교회의 정점이고  국회가 교회법을 제정합니다. 그렇지만 켄터베리 대교구, 요크 대교구, 웨일스 대교구 로 나눠져 있으며 한국 성공회는 켄터베리 대교구에 속해 있습니다.
    영국교회의 교리의 표준은 39신앙개조와 기도문입니다.
    한국에 성공회가 전래 된 것은 1890년 코프감독에 의해서였습니다.
    학교는 역곡과 서울 사이에 있는 성공회대학입니다.
 

   7) 구세군http://soback.kornet21.net/~sally/


   구세군은 1858년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뿌드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구세군(salvation army)이란 명칭은 1878.5에 정식으로 명명되었고 1880년 처음 사관학교를 세웠습니다. 구세군의 특징은 사회봉사에 있습니다. 구세군의 정치는 개인의 자유와 기회균등의 인정하에 군대 조직을 차용합니다. 세계의 모든 구세군은 한 대장 아래 통솔을 받습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는 사관 평신도는 병사라고 지칭합니다.
  구세군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8년 10.8 평동에서 영국인 호가드 정령에 의해 옥외집회를 한데서 출발합니다. 구세군의 사회사업은 선교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남녀평등을 중요시 여겨 사관학교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입교토록하고 있습니다.

   8) 순복음, 하나님의교회(성회)http://www.ag.or.kr 등의 오순절 계열 : 이 계열의 교회들은 성령운동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오순절파 라고 부르기도합니다. 신학적 바탕은 뚜렷하게 어느 것이다 라고 할 수 없지만 대략 웨슬레안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한국의 오순절 계통의 교회는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이란 것을 중시합니다.  학교는 순신대학교(순복음), 한영신학대학 등이 있습니다.
 

   몇개의 참고서적을 소개합니다.

   세계 기독교회사 - 대한기독교서회
   한국 기독교회사 - 대한기독교출판사
   종파의 유래 - 대한기독교서회
   한국교회교단형성사 1,2 - (주) 임마누엘
   청교도신앙 - 생명의 말씀사
   청교도정신 - 기독교문서선교회
   한국성결교회사 - 기성출판부
   기독교대한 성결교회 헌법
   웨스트 민스터 소요리문답해설 - 한국복음문서연구회출판부. 1974
   한국감리교회사 - 기감 교육국
   감리교의 유래 - 생명의말씀사
   교리와 장정 - 기독교대한감리회
   죤 웨슬리의 신학 - 전망사
   요한 웨슬레의 신학 - 대한 기독교출판사  etc.

 


부록 : 99.11.19일자 국민일보 25면(믿음의 유산 - 분열과 극복, 이승한) :장로교회들의 배경과 분열원인 등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1885년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지 1백14년,우리나라는 기독교 복음에 의해 엄청난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다.신교육으로 가치관과 인성이 변화됐으며 유교신분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설 수 있었다.유능한 인재들이 교회를 통해 배출되고,그들은 유학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에 공헌했다.

 교회는 또한 독재정권에 항거해 민주사회를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했다.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와 독재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교회는 그래도 사회의 소외계층과 억압된 자의 대변자 노릇을 했으며,정의의 칼날을 세워 공동체의 평화와 평등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한몸인 교회가 분열됨으로써 교파주의와 이기주의,물신주의,성공주의,성장제일주의 등 세속화의 부정적인 길을 열어 놓은 것은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분열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90년대 들어와 급속히 확산됐으나 아직은 결실이 미미하며 21세기 한국교회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게됐다.
 ◆분열=해방이후 한국교회는 일제의 억압으로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크게 네 갈래의 입장으로 갈라진다.하나는 교회의 정통이 일제의 강요에 따라 신사참배나 일본 기독교조선교단으로 편입됨으로써 패멸되었다고 보고 그 이전의 순수 정통성을 회복한다는 운동이다.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옥에 갇혔던 인사들이 해방후 출옥,교회재건에 나선다.바로 재건파교회이다.이들은 극우파로 기존교회를 거부하고 46년부터 별도의 교회를 설립하기 시작했으며 북한에서는 김린희전도사(선천),남한에서는 최덕지전도사가 중심인물이었다.재건교회는 곡간등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해 곡간교회라고도 불렸으며 평신도들이 많이 참여해 주상수 강상은 염애나 등이 평신도의 대표적인 인믈로 부상했다.
  다른 하나는 기성교회의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면서 교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었다.당시 80%의 교회들이 바로 이 운동에 참여한다.또 다른 하나는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지만 하나로 통합되었던 한국교회를 교파로 분열시키지 말고 그대로 지속하자는 운동이었다.그러나 일제하의 교회에 대한 윤리적 신앙적 자책과 회개의 심도가 있느냐는 비판이 일면서 감리교가 회의에서 퇴장하면서 무산됐다.

   마지막으로는 기성교회에 들어가 회개를 촉구하고 개혁을 해보자고 했던 중도우파의 운동이다.이 가운데 혁신복구파로는 이기선목사가 북한에서 활동했고 남한에서는 한상동 송양원 주남선목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남한 인사들은 고려신학교를 만들어 경남노회를 통해 회개를  촉구했다.

   이처럼 네 갈래로 대립되었던 한국교회의 입장은 결국 교단의 분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기성교회의 질서에 들어가 회개를 촉구했던 장로교의 혁신복구파들은 수에서 밀려 추방당하는 형태로 1948년 장로교단에서 분열됐다.이들이 현재 예장고신과 예장고려교단이다.

   1940년 조선사람들에 의한 신학교육을 표방하며 승동교회에서 시작된 조선신학교는 1948년 김재준의 성서해석학 등 신학논쟁으로 갈등을 겪다가 1954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대구총회에서 김재준 송창근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정죄를 당함으로 교단에서 탈퇴했다.이들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의 김재준을 중심으로 교단을 창립했다.이 교단이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이다.
  신사참배의 회개를 촉구하던 인사들을 축출하고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자들을 쫓아낸 장로교단은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등 에큐메니컬 노선의 차이로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전중앙교회에서 치러진 44회 총회에서 갈라선다.WCC가입을 지지했던 인사들은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했다.이 총회가 장로회신학대 출신의 인사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이다.WCC가입을 반대하고 복음동지회(NAE)운동에 찬성하는 인사들은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했다.이 총회가 총신대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다.

 50년대 세계 냉전체제의 구도속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공산주의의 종주국 러시아정교회가 가입되어 있는 WCC의 가입을 둘러싼 의견차이로 분열되어 결국 한반도의 분단과 함께 냉전체제의 피해자로 전락했다.

 신학적 차이로,또한 이념적 차이에 따라 3개교단으로 분열됐던 장로교는 1979년 교권과 지역갈등으로 예장합동교단에서 정규오목사를 중심으로 한 호남권 인사들이 탈퇴,개혁교단을 설립하면서 핵분열을 일으켜 한국교회 분열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만다.

 교단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은 80년대 후반에 들어와 활발해지면서 한국장로교협의회가 결성됐으며 이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로 개칭되어 장로교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또 13개교단의 목회자로 구성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98년 결성됐으며,평신도들도 한국장로회총연합회를 만들어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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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교도와의 대립과 이슬람교의 확립

 


메카 후기 메디나 초기 이슬람 법은 유태교도나 기독교 및 다른 일신교도에 대해 종교상의 관용을 베풀었다. 모하메드는 자기에게 계시된 것이 자기 이전의 일신교 예언자들에게 내려진 계시를 확인하는 것이라 믿어, 유태교도를 계시받은 경전의 백성으로 생각, 그 신앙을 유지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일신교도들도 자신을 예언자로 인정해 줄 것으로 예상한 결과이다. 메디나로 이주한 모하메드는 처음 유태교도와 맺은 협약인 <메디나 헌장>으로 유태교와 이슬람공동체인 움마의 공존을 인정했다.


또 유태교의 제도를 채택하여 메디나 초기시대엔 이슬람 교도가 예루살렘을 향해 예배토록 하고, 유태교의 1월 10일(속죄일) 단식일의 종교행사도 받아들인다. 또 예배일이 금요일인 것도 유태교의 안식일(토요일) 준비와 상통된다. 이런식의 친유태교 정책은 모슬렘의 계전 백성의 여자와의 결혼을 허용하고 (여자의 경우 비이슬람교와의 결혼은 금지됨) 그들이 먹는 음식도 먹을 수 있게 허용한다.


이런식으로 모하메드는 유태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유태교는 정치적으로는 이에 동의한 흔적이 있으나 종교적 문제에선 거부했다. 유태교의 반대는 모하메드의 유일신 사상 때문이 아니라, 그가 참으로 신의 계시를 받은 존재인가, 예언자인가 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성서해석 결과 그를 인정치 않으려 한데 있다.


결국 메디나 이주후 2년째인 624년 유태인이 모하메드를 그들의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계통의 한 예언자로 인정치 않자, 모하메드는 그때까지 예루살렘을 향하던 예배방향을 메카의 카바로 향하게 하고, 바드르 전투 후엔 1월10일 행하던 단식을 대신해 라마단(9월)달에 1개월간 단식을 실시케 한다. -라마단 단식은 아바다드(종교적 의무 행위)의 하나로 그달에는 일출에서 일몰까지 모든 음식의 섭취를 금한다.


이렇게 유태교로부터 거부를 받게되자 모하메드는 유태교에 반격을 가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세운 카바신전으로 예배방향을 바꾼 것은 이슬람교를 아랍의 전통위에 확립시켜 세계적 종교를 이룩하려는 것이고, 유태교와의 결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 카바를 향함은 아랍 다신교의 신전으로서가 아닌, 알라의 집으로서의 카바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바드르 전투 후 카바신전의 건설자로서의 예언자 아브라함의 의의가 코란에 강조되어 계시되는데 내용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신전을 건설하고 이를 알라께 봉납했고 그자손(아랍인) 가운데 한사도가 나오길 간청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하메드가 일어난 것이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수 있게 만든다.


아브라함은 유태교도 기독교도 아닌 하니프-순수한 종교의 신도, 순수한 일신교도-이며 그의 신앙은 이슬람이었고 모하메드의 가르침도 아브라함이 믿는 일신교의 부활이라 여기며, 코란은 그 계시가 모세나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뜻은 신에대한 절대복종이란 아랍어에서 나왔는데 이 어휘가 코란에 처음 나타난 것은 바드르 전투 이후의 일로, 유태교와의 대립이 시작되면서이다.


순수한 아브라함의 종교복원으로서의 이슬람이란 성격은 모하메드의 구약성서에 관한 역사적 객관적 지식에서 도출되었다고는 볼수없다. 대신 코란은 유태교와 기독교가 본래 옳은 성전을 잘못해석하고, 그 일부를 조작하거나, 감추었다고 비난함으로써 유태교의 성서의 전통적 해석에 의거한 비난을 다른차원에서 되받아쳤다.


카바신전을 알라의 집으로 간주하고 아브라함을 그 건설자로 여기는 것은 당시 메카와 그 주변 주민의 일반적 통념이었다. 모하메드는 이런 통념을 이용하여 이슬람교를 아랍의 민족감정과 민족적 전통위에 정착시키는데 성공하여 이슬람에 의한 아랍 민족의 통합과 모하메드 자신에대한 쿠라이쉬 부족의 적의를 약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슬람에 애니미즘의 요소를 남겼다는 오해와, 8세기 중엽까지 이슬람을 아랍 민족종교로 곡해하게한 중요원인이 되었다.


7.한다꾸(참호) 전투와 모하메드의 말년

 


627년 3월 쿠라이쉬 부족은 우후드전투에서 일단 바드르 전투의 복수를 했지만 모하메드와 그 움마를 지상에서 말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약 7천 5백명의 부족연합군으로 메디나 대 포위작전을 행한다. 이에 대응하여 모하메드는 약 3천명 정도의 군사를 모집 메디나의 적의 공격에 노출되는 모든 곳에 참호를 팠다.- 한다꾸 전투


연합군은 2주나 포위를 했으나 참호를 못넘고 메카로 돌아간다. 쿠라이쉬 부족은 모든 재력을 원정에 소비하였으나 포위작전의 실패로 그 위신을 상실하고, 메카와 메디나의 균형은 메디나로 기울게된다.


모하메드는 연합군이 철수하자 곧 유태교도인 꾸라이자 부족을 처형하고 628년엔 1천 4백명의 이슬람교도를 이끌고 카바신전 순례에 나섰다. 쿠라이쉬 부족은 2백명의 기병대로 이를 저지하려했다. 결국 후다이비야에서 향후 10년간의 휴전과 다음해의 메카순례를 약속함으로 둘은 타협을 한다.-후다이비야 조약


모하메드는 주위 여러부족을 제압하거나 우호관계를 수립하는 한편 유태교도를 메디나로부터 완전 추방한다. 그후 630년 1월 일만 대군을 이끌고 메카에 진격하여 전의를 잃은 쿠라이쉬 부족으로부터 항복을 얻는다. 무혈입성한 이슬람군은 카바신전의 우상과 메카시내의 모든 우상을 파괴하여 이교(異敎)의 시대를 종식시킨다.

아랍의 유력한 쿠라이쉬 부족을 정복한 소문이 퍼지자 많은 부족이 메디나에 사절을 보내 맹약을 맺고 이슬람교를 수용한다.


630년 모하메드는 3만 대군을 인솔하여 타부끄 원정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슬람의 북방정책의 일환으로서, 이슬람교의 위용과시가 목적이었다고 추정된다. 그후 632년 모하메드는 순례를 마치고 수개월후 세상을 뜬다.- 이별의 순례라 한다.-코란에 순례에 대한 규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으나 이때의 선례로서 순례양식이 답습되고 있다.

 

 이슬람의 종파를 중심으로 재정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슬람이 모두 같은 신조와 의례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순니이슬람에는 4개의 법학파가 있으며 또 정치적으로 보아도 세사람의 칼리파가 동시에 존재하여 수백년간을 대치해 온 일도 있었다. 따라서 이슬람이라는 건물 속에는 수많은 주거용 아파트가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 가운데도 청교도, 개혁주의자, 신비주의자, 원리주의자(fundamentalist) 및 광적 신자 등이 있는 것이다. 세계의 큰 종교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도 일반 평신도들이 갖는 정통적인 중심개념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순니 무슬림이라고 부르고 전 세계 무슬림의 8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20% 미만의 소수파 가운데에도 16%의 시아 무슬림, 그리고 나머지 다른 종파들이 있다.


1. 순니 무슬림

 


역사적으로 보면 순니들은 무슬림공동체 즉 움마의 순나(sunnah 관행)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다. 순나란 꾸란, 하디스 및 예언자와 정통칼리파들의 선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들은 자신만이 정통무슬림이라 자처하면서 그들의 꾸란과 순나해설 또 그들의 종교적 입장과 행위가 이슬람의 주류가 되어 왔다고 본다. 4대 법학파 (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의 추종자는 이슬람전통의 주류에 속하는 순니라고 믿는다.

이슬람 정통파는 상당한 정도의 견해 차이를 모두 그들의 교리에 포용해 왔지만 이슬람 역사의 초기에 그들도 순니 공동체에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신학적인 문제점이 발생했다. 너무나 이단적이고 이질적인 분파들이 나타나 이슬람 역사속의 정치적, 종교적 및 사회경제적인 흐름을 조화 내지 융합시키려는 세력을 비난하고 나섰다.


2. 카리즈(카와리즈)파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25년째 되던 해에 칼리파 우스만이 살해당하자 예언자의 사촌이며 사위인 알리가 그 뒤를 이었다. 그가 살해범의 체포에 주저하자 우스만의 6촌인 다마스커스 총독 무아위야가 아랍의 씨족 전통에 따라 복수를 외치며 반기를 들어 무슬림끼리의 내란에 돌입했다. 이 제1차 내란 중에 무아위야의 평화협상 제의에 직면한 알리파는 주전파와 협상파로 갈라졌다. 이러한 분열에서 전열을 가다듬기 어려운 알리가 부득이 협상에 응하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주전파는 절대신 알라만이 중재를 할 수 있고 인간은 현 상황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알리의 진영을 떠나니 이것이 이슬람 역사상 최초의 종파 카리즈파(탈퇴자)이다. 후대에 카리즈파의 주장은 이것을 더욱 선명하게 요약하였다. 즉 마음을 달래는 것은 혀가 아니고 바로 행동에 있다고 주장했다. 카리즈파는 전투적인 청교도요 행동주의자여서 법을 그들의 손으로 집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지하드(jihad 성전)를 여섯번째 󰡐신앙의 기둥󰡑으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그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무슬림을 살해할 정도였다. 알리 자신도 이들에 의해서 661년에 살해당했다.


카리즈파는 메카의 부족 꾸라이쉬의 자손만이 칼리파가 될 수 있다는 순니파의 전통적 견해를 비난하고 무슬림이면 누구나 칼리파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여기서 고려되어야 할 점은 독실성이어서 심지어 건강하고 총명한 흑인노예도 칼리파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만민 평등주의적 입장과 아랍귀족층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베드윈과 비아랍계 무슬림 가운데 상당한 추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카리즈파는 우마위야조의 초기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으나 후에 무정부적인 그들의 태도 때문에 분파작용이 일어나 저절로 약화되었다.


이 파의 추종자는 오늘날까지 미미하게 존속하고 있다. 알제리와 튀니지의 베르베르 지역,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및 아라비아반도의 오만에 그 추종자를 볼 수 있다. 카리즈파의 맹신적인 청교도 정신만 아직까지 순니무슬림 속에 남아, 18세기에 이르러 아라비아반도에서 와하비(Wahhabi) 운동의 발생 동기가 되어 오늘날 사우디 왕가의 모태가 되었다.

 

3. 시아(쉬아)파

 


칼리파를 알리의 가문에 되돌려주려는 운동으로써 시작된 시아이슬람은 곧 독특하고 구별되는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물론 이 운동의 생성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재구성하기는 아직까지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알리의 자손을 제거하려는 우마위야조(661-750)와 압바시야조(750-1258)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시아파는 우마위야조의 창시자 무아위야가 알리와 파띠마의 장남인 하싼(Hasan)을 독살시켰다고 믿는 반면에, 순니들은 그가 자연사를 했다고 주장한다.

 


하싼의 동생 후세인(Husayn)이 680년에 이라크의 쿠파 근처의 도시 카르발라(Karbala)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그의 부상은 치명적이었고 갈증에 목말라 했으나 그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고 결국 그의 목을 잘랐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제삿날인 이슬람력의 정월(Muharram) 10일은 시아파의 중요한 종교적 공휴일이다. 이 날은 단식종료절과 희생제 때의 평화로운 명절행사와는 달리 신자들은 길거리에 나와 행렬을 지어서 후세인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려고 자위행위를 하기가 예사다. 시아파 전승에 따르면 후세인의 아들과 손자도 독살당했으며 그 후 몇 세대나 이 박해가 계속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시아파의 핵심은 이러한 정치적 책략의 희생자들을 반신격화된 순교자로 만드는 데 있었다. 이러한 변형은 중근동의 전통종교로 자리 잡아온 영지주의적(gnostic) 또는 이원론적 가르침의 영향 아래 일어난 것은 명백하다. 영지사상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신에 관한 지식󰡑을 뜻하는 영지(靈知)에서 왔으며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과정을 뜻하는 영지사상은 종종 일종의 마술에 참여하여 그 마술로 신을 알게 되고,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인다는 것이다. 서기 2,3세기 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신플라톤학파는 플라톤의 관념철학을 영지주의적 색깔로 바꿔 놓았다. 영지주의는 또한 인간에게 신-구약성서나 꾸란과 같은 위대한 예언서의 구절에서 자구적인 의미를 넘어 깊숙히 파고들어 그 속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게 한다고 약속했다.


이원론적 형상은 모든 유일신적 종교에 나타나 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천국의 완벽성과 인간사회의 부패상을 대조하고 있으며 또 페르시야의 사산조(226-641) 시대에 유행한 조로아스터교(Zoroasterianism)와 마니교(Manichaeism) - 둘다 그 창시자의 이름에서 유래 - 에서는 선과 악, 빛과 어둠 및 불과 흙이라는 양극의 관점에서 우주를 해석하여 이 양극적인 두 힘이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으려 다투고 있다고 보았다.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에서 여러가지 신앙으로써 시아파는 혼합적신앙(syncretistic faith)이 되었다. 즉 이슬람이 아닌 외적요소에서 빌린 것을 새로운 합(synthesis)으로 융화시켜 나타난 구심적 인물이 알리, 후세인 및 그들의 자손들이라는 믿음이다. 그들은 이맘이라고 불리워졌는데 그 의미는 순니에서 집단예배인도자를 지칭하는 이맘보다 훨씬 격이 높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9세기의 한 시아파 신학자는 그 속성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꼭 믿어야 할 점은 이맘들은 모두 창세기에 빛에서 창조되었고 신이 주는 은총과 지식은 모두 그들을 통하여 오는 것이며 그들을 통하여 우주는 생동하고 그 존재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를 제외하고는 모든 관점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여서 비록 인간적 욕구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모든 예언자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흠없이 완벽하여 크든 작든 그들 상호간에는 대등하여 덕, 지식 및 능력을 타고 난 것이다. 그들은 출생 때 이미 보통 인간처럼 태어난 것이 아니고 예언자처럼 할례되어 태어난 것이다.󰡓


이맘은 믿는 자들에게 꾸란구절의 비교적(秘敎的)인 속의미를 밝혀주어 그들을 어둠에서 광명으로, 타락에서 은총으로 이끄는 것이다. 시아파가 이맘에게는 완전무결성이 있다고 믿는 것은 순니파가 칼리파에게 기대하는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시아파는 이슬람 속에 신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의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이것은 무함마드의 엄격한 유일신보다 기독교적인 예언자는 동시에 이맘이어서 이 세상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이맘은 신의 명증(明證)으로 항상 존재한다고 본다.

 


시아파는 메카와 메디나의 성지순례에 못지않게 이맘들의 무덤 또는 그 친척과 심지어 그 옹호자의 무덤에까지 순례하는 것이다. 특별히 신성시하는 곳은 카르발라에 있는 후세인의 무덤인데 수많은 시아파들이 이곳에 묻혀지기를 원하여 그 소원을 성취하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이 도시는 죽은 이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우리와 같은 비무슬림세계 사람에게 비치는 시아이슬람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신앙 즉 죽음, 순교 및 슬픔에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한쪽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쪽에는 <숨은 이맘>인 구세주의 사상이 들어 있어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아무슬림은 열두 이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즉 알리, 후세인 및 그의 자손이 계승하여 12번째 이맘에 까지 이른다. 제 12대 이맘은 어린 나이에 압바시야조의 당시 수도인 이라크의 사마라시에 볼모로 잡혀가 그곳에서 873년(일설 878년)에 사라졌다. 그는 지상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결코 죽은 것은 아니어서 <숨은 이맘>으로써 오랜 은둔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언젠가 지상에 마흐디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중세 시아무슬림들은 마흐디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그의 이름과 출생을 이미 절대신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알려 주었으며 그의 임무는 현세가 억압과 불의에 충만해 있는 것처럼 정의와 공정으로 군림하도록 할 것이며 그때 예배로 이끄는 부름은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들릴 것이고 종교는 완전히 신의 것이 되어서 신의 찬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제12대 이맘) 올바르게 인도된 마흐디이며 그에 관해서는 예언자께서 이미 언급하신 것처럼 그가 이 세상에 다시 그 모습을 나타낼 때에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도 지상에 내려와서 그의 뒤에 서서 경배 올릴 것이다.󰡓


시아이슬람에 대한 그후 역사기록에는 이상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인물들이 스스로 <숨은 이맘>인 마흐디로 자처하면서 등장하였다. 시아파는 순니파의 박해에 짓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 즉 시아파임이 드러날 경우 자신과 가족의 생명 또는 재산에 손실을 입을 부득이한 처지에 놓일 때 순니파 또는 다른 파의 소속으로 자신을 위장할 수 있다. 이것을 타끼야(taqiyah)라 부른다. 대부분의 시아파는 이것을 교의로 삼고 있다.

이처럼 시아파의 특징은 이맘의 무결점성, 이맘의 부활, 타끼야(믿음의 가장), 마흐디 사상을 들 수 있다.


4. 열두 이맘파와 자이드파

 


시아파의 85%를 이루고 있는 열두 이맘파(약칭 이맘)는 오늘날 무슬림세계의 중요한 소수파를 형성하고 있다. 이란에서 열두 이맘파 시아이슬람은 16세기 이후 국교가 되어 국민의 90% 이상이 믿게되어 절대다수를 이루었고, 이라크에서는 인구의 과반수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 순니파무슬림에 비하여 열등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 분위기가 꿈틀거리고 있다. 레바논은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서 박해받는 종파의 피난처로써의 기능을 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30% 이상의 인구가 이 분파에 속하나 그들의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빈곤층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도에서도 열두 이맘파시아는 전체 무슬림인구의 10%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로코의 왕가는 8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칼리파 알리의 자손이나 국민의 지배적 법체계는 순니파의 4대 법학파의 하나인 말리키이다.

 


시아무슬림 모두가 열두 이맘파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자이드파는 열두 이맘 가운데 후세인의 아들로 끝나는 제4대 이맘까지만 인정한다. 그 이름은 후세인의 손자 자이드(Zayd)에서 유래했다. 즉 자이드를 포함한 다섯 이맘에게만 마술적 능력을 인정한다하여 다섯 이맘파라고도 부른다. 그는 할아버지처럼 반란을 일으키다가 이라크에서 전사했다. 자이드파의 교리는 알리 이후 모든 칼리파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순니와 구별될 게 거의 없다. 비록 이맘파 즉 칼리파는 하싼이나 후세인의 자손 가운데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들의 이맘은 완전무결성이나 인간과 신 사이의 중재적 기능을 지녔다고 보지 않아 단순히 왕이나 최고 종교지도자에 불과하다. 9세기말경부터 최근까지 자이드파는 남부아라비아의 예멘지방을 지배했으나 그 인구의 다수는 순니무슬림으로 남아 있다. 자이드파의 이맘이 예멘을 1000년이나 지배했으나 1962년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쫓겨나가고 이 나라는 공화국이 되었다.

 


5. 이스마일파와 암살단파


자이드파와는 대칭을 이루는 시아분파 가운데 가장 많이 논쟁의 여지가 있고 또 매력적인 것이 이스마일파 즉 일곱 이맘파이다. 그들은 열두 이맘파가 제6대 이맘 자아르 알 싸디끄(765죽음)의 장남인 이스마일이 술을 마신다고 비난하여 그의 동생 무사(799년 죽음)를 제7대 이맘으로 모신데 반대하고 이스마일을 옹립한데서 비롯한다. 이스마일파는 이스마일의 자손만이 <숨은 이맘>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이스마일의 계승권을 옹호하기 위해 끈질긴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시아파를 통합적 교의로 이끌었다. 특히 영지주의적 의례에서 이원론적인 사항을 많이 도입했다. 이스마일파는 글자 그대로를 믿는 대중에게는 초보적 신조만을 포교했으나 무함마드가 받는 계시의 표면적 의미 속을 뚫고 들어가 진정한 내적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정밀한 해석을 통해 포교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스마일파는 압바시야 칼리파를 반대해서 격렬한 선전투쟁을 진전시켜 이 칼리파들을 타도하려 했다. 한때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기도 했다. 이스마일이 사망한 후 100년경인 9세기 말에 그들은 압바시야조가 점차 쇠약해가는 틈을 이용하여 이라크에서 농민과 도시노동자의 불만을 선동하여 맹렬한 선교투쟁을 벌였다. 이스마일파와 당시 연합한 세력은 전투적인 까르마트(Carmathian, 그 지도자 Qarmat에서 그 이름이유래)였다. 이 파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나서 아라비아반도를 휩쓸었다. 심지어 메카순례객들을 공격했고 더구나 929년에는 메카도 점령했다. 놀랍게도 까르마트파는 카아바의 신성한 <검은 돌>을 빼내어 수백리 밖에 팽개치기도 했다.

 


이스마일파의 또 다른 분파는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족과 베르베르족 사이의 만성적 긴장상태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았다. 909년에 <숨은 이맘>을 은신처에서 데려와 마흐디로 선언하니 곧 파띠마조(909-1171)의 초대 칼리파 우바이둘라 알 마흐디(909-934)이다. 튀니지의 시실리섬에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969년에 그들은 이집트를 정복하고 옛 수도 푸스타트 근처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그 이름을 까이라(al-Qahirah 승리자)라 하니 곧 오늘날의 카이로의 시작이다.

 


이곳으로 제국의 수도를 옮기니 곧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에서 이 칼리파조는 커다란 도서관을 운영했고 아즈하르(al-Azhar)성원을 건립했다. 이 성원은 곧 신학의 배움터가 되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자랑하고 있다. 이 칼리파조는 11세기 초에 그 국력이 전성기에 이르러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도 병합하니 이라크의 압바시야조는 그 그늘에 들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11세기말에 내분이 일어났고 더구나 셀죽 터키의 침입과 십자가원정과 같은 외환도들이 닥쳐 파띠마조의 국력은 쇠잔했다. 그후 파띠마조는 점차 수그러들어 카이로 근교에만 그 권위가 미치다가 1171년에 아이유브조의 살라 알 딘(1138-1193)이 카이로를 점령하여 이 조를 멸망시킨 뒤 이스마일파를 억압하고 순니이슬람을 다시 이집트와 시리아의 국교로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스마일파는 파띠마조의 종말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파에 속하는 한 페르시아인 지도자는 11세기 말에 파띠마조와 결별을 선언하고 카스피아해 남쪽에 있는 산속에 그 추종자와 함께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 그들의 이름은 암살단파(Assassin 이 명칭은 대마초를 뜻하는 아랍어단어 al-hashishin 에서 유래하여 십자군을 통하여 유럽 각국어로 들어감.)로 알려졌다. 그들은 대마초를 복용함으로써 천당의 쾌락을 미리 맛보게 되고 임무수행에 있어서는 초인간적 용기를 갖게 된다고 보았다.


현대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대마초를 복용했다는 비난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치적 살인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으로 증명했다. 암살은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의례적 행동이어서 가해자는 항상 단검을 사용하였고 도피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며 암살대상자는 대체로 고위직의 인사였다. 최초의 희생자는 셀죽조의 술탄 말리크샤(1072-1092)의 재상으로 유명한 니잠 알 물크(1091 죽음)였다. 암살단파는 셀죽조가 12세기에 들어와 쇠약해지는 틈을 이용하여 페르시아의 변방지역과 서부 시리아의 산악지역에 새로운 요새를 만들었다. 십자군이 두려워한 것은 시리아의 암살단파와 그 우두머리인 󰡐산속의 쉐이크(sheikh al-jabal)󰡑였다.

 


암살단파가 테러행위를 무기로 삼은 것은 극단적 소수파의 저항전술로 이해된다. 그들의 최종목적은 그들이 옹립하고 있는 <숨은 이맘>의 통치체제를 전영역에 확립하는 것이다. 그 전제조건은 순니이슬람을 파괴하는데 있었다. 페르시아에 있었던 암살단파의 쉐이크는 <숨은 이맘>의 지시를 받아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숨은 이맘>은 쉐이크에게 이슬람의 다섯 기둥과 이슬람성법을 멀리 할 것을 지시했으므로 모든 사람은 새로운 계시를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라마단의 단식 기간중에 행한 큰 행사에서 신자들은 메카에 등을 돌린 채 예배를 올리고 오후에는 또 특별히 마련된 연회에 참석했다.

 


암살단파가 기대한 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순니이슬람은 쓰러지지 않았고 <숨은 이맘>은 그 자신의 통치영역을 확립하지 못했던 것이다. 13세기에 들어와 암살단파 내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마침 페르시아를 침입한 몽고군에 의해서 그곳의 암살단파는 섬멸되었고 시리아의 암살단파도 아이유브조의 살라 알 딘을 계승한 이집트와 시리아의 맘룩조(노예왕조 1250-1517)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이 파의 추종자는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도망한 자칭 한 이맘의 지도아래 19세기와 20세기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근원은 모호한 편이다. 이들은 그 지도자를 페르시아 왕가의 칭호인 아가 칸(Agha khan)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암살을 자행하지 않으며 주로 사업에 종사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서 다른 무슬림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6. 알라위파(󰡐Alawis)와 드루즈파(Druzes)

 


이스마일파 선교활동의 영향으로 다른 유사한 종파가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류의 종파는 비이슬람적 요소를 너무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종종 다른 종교로까지 분류된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알라위파와 드루즈파이다. 알라위파(Alawis,알리의 숭배자들)는 시아파의 알리에 대한 숭배를 극단화시켜 그를 신격화했고 또 이스마일파의 대중을 위한 단순한 신앙과 정밀한 종교의례의 이분법을 더욱 극단화시킨 것이다. 이 파는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Muhammad ibn Nusayr)가 9세기 말에 창시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에서 일명 누사이리파라고도 한다. 알라위파는 고대중근동의 여러 이교도적 의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예로는 성스런 나무숲을 숭배하고 기독교의 의례도 받아들여 심지어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도 축하하는 것이다. 그들은 영혼의 전생을 믿어서 영혼이 지상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일곱 번의 화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알라위파의 주된 주거지는 시리아이며 그곳 총인구의 약 1%를 점유하고 있다. 주로 시리아 해안지역에 있는 자발 알라위지역에 집결되어 살고 있다. 터키에서는 알레비라고 한다. 그들은 오랜 기간 박해당해 온 소수파여서 씨족의 결집, 불만 및 반란이 그들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제2차대전 후 시리아 육군사관학교가 모든 시리아인에게 문호개방을 했을 때 알라위파의 청년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거 입학했다. 1971년에 이들 가운데서 장군으로 승진한 하피즈 알 아사드가 첫 알라위파로 비순니무슬림 가운데서는 시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알라위파의 믿음에 영향을 받은 터키계 부족의 종파는 키질바쉬(Kizilbashi, 붉은 두건을 쓴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드루즈파의 기원은 11세기의 이스마일파 포교자였던 다라지(Darazi)에게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추종자는 파띠마조의 칼리파 하킴(Hakim)을 <숨은 이맘> 이라고 주장했다. 괴짜이었던 칼리파는 1021년의 어느 날 저녁 카이로 근처에서 사라졌는데,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드루즈파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키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남부레바논의 산악지대에 그 피난처를 발견했고 후에는 남부시리아의 고원지대인 자발 드루즈지역에서 그 주거를 찾아냈다. 그들은 비밀 엄수라는 물신숭배를 가졌는데 심지어 그 추종자들에게도 그들의 성서를 감추고 또 새로운 개종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추종자의 배교행위까지 허용한는 것이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고 그들 통치자의 종교 주로 순니이슬람과 레바논의 기독교 종파인 마론파(Maron)의 추종자인 것처럼 가장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은 1830년대였는데 그때 레바논의 통치권이 오스만 터키에서 무함마드 알리의 이집트에게 몇년간 넘어갔으므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서구학자들이 그들의 성서를 연구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드루즈파는 그들이 일신론자인 것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칼리파 하킴을 일종의 신의 화신인 우주적 존재의 현시로써 간주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들은 그들의 <숨은 이맘>과 절대신 사이의 일치성보다 이스마일파의 이스마일이나 시아파의 알리와의 일치성보다 더 완벽하다고 주장한다. 드루즈파의 교의와 종교적 관행의 자세한 내역을 보면 무슬림의 기준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드루즈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 있고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들과 대등하게 취급되고 영혼이 전생한다는 믿음은 널리 보급되어 있다.

 


드루즈파는 비록 순례(Hajj)시기에 축제를 열고 있지만 금식이나 메카순례는 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단예배는 금요일 정오에 열리지 않고 목요일 저녁에 열리며 그 장소도 중심지역의 성원에서가 아니고 산간의 작은 사당에서 여는 것이다. 드루즈공동체는 두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덜 비밀스러운 정기 주간예배에만 참석하는 무식자층이고, 다른 한 계층은 현자들로서흰 터반을 머리에 두르고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드루즈파는 아무리 비천한 가문에 태어나도 현자가 될 수 있으나 현재 일부 지주 가문만 이 공동체의 사회적, 정치적 지도층이 되고 있다. 이 공동체의 봉건적 사회구조와 비밀엄수전통으로 비교적 안전하고 또 산악생활의 습성으로 드루즈파는 수세기 이상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늘날 드루즈파의 신자수는 약 25만 가량으로 추산되며 주로 레바논과 시리아에 살고 있다. 또 극소수는 이스라엘 통치 아래 있는 하이파(Haifa)근처의 마을과 골란고원에 살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통치하에서 아랍인보다 더 당국에 잘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바비파(Babis)와 바하이

 


인간의 내면적 생활을 비교적으로 파고드는 이스마일파의 교리와 <숨은 이맘>사상에 대한 시아파의 믿음은 근대에 들어와서도 이슬람의 이단적 분파조성에 산모 구실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세기 중반경에 이란에서 나타난 바비파이다. 이란 중남부의 도시 쉬라즈에서 설득력있는 신학자가 나타나 스스로를 <밥>(아랍어로 문이란 뜻이며 진리의 관문으로도 상징됨)이라고 자처했는데 1000년 전에 시아파 이맘의 이름 높은 제자에게도 이 명칭이 사용된 적이 있었다.

 


마침 1844년은 이슬람력에 의하면 12번째 이맘이 873년 사마라에서 사라진지 천년이 되는 즈음이어서 <밥>의 교의에는 영지주의적 요소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와 숫자 19의 신성성(神聖性)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밥>의 달력에 따르면 일년은 19개월이며 매달은 19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이란에서 <밥>의 교의는 수많은 개종자를 획득하여 타락된 기존정권의 붕괴와 함께 열두 이맘파 시아의 국교적 지위마저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정부의 <밥>운동에 대한 진압은 가혹하여 <밥>을 1850년에 사형시키고 그 추종자를 대량 학살했다.


그러나 <밥>의 사상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대부분의 추종자들은 그의 제자 바하울라(Bahaullah, 알라의 광채)를 지도자로 삼았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교의를 펼치기 시작했다. 즉 구약성서의 예언자 아담,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다른 지도자들 즉 조로아스터, 예수 및 무함마드 등으로 이루어지는 낡은 예언자의 순환기는 <밥>과 함께 끝났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바하울라의 추종자인 바하이(Bahai)들은 그들의 신앙만이 진실로 보편적이어서 낡은 예언자적 종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부처와 공자도 존경하여 그들의 가르침도 포괄하였다고 주장했다. 바하이들은 <밥>의 달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매달(19일)마다 집단예배를 올리고 무슬림의 라마단달 금식처럼 한달(19일)간의 금식을 행하며 또 하루에 3번씩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예배를 올린다. 즉 무슬림의 그것과 유사한 반면에 더욱 간결화시킨 감이 있다.

 


바하이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폭넓은 관용성과 사회개선에 참여하려는 강력한 책임의식이다. 기이하게도 시아파의 초대 이맘 알리의 말을 인용하여 사회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적인 문제는 인간사(human sphere)에 속하나, 사회적 관심사는 모두 신에게 속한다. 바하이들의 <사회적 관심사>라는 말 속에 여성의 평등권, 교육의 기회균등화 및 국제평화의 달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바하이는 평화주의자요, 양심적인 거부자 및 절대금주론자이며 육식보다는 채식을 또 금연을 더 선호한다.


역대 이란정부는 <밥>의 추종자를 박해한 것처럼 바하이들을 국민단합에 유해한 번역자로 보고 무자비할 정도로 박해하였다. 또 1979년 이슬람혁명 후에도 박해의 고삐는 늦추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많은 바하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숨기거나 일부는 이민을 떠나고 있어서 이란 내에서의 그 수를 어림잡기는 힘드나 대체로 50만에서 10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들의 국제적 본부는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으며 아크레의 근교인 카르멜(Carmel) 산에는 밥의 거대한 무덤이 있으며 바하울라는 망명생활을 하다 1960년대에 죽었다. 오늘날 전세계에 138개의 바하이공동체가 있으며 미국에는 바하울라의 아들이 선교에 나서고 있어서 시카고 근처 윌메트(Wilmette)에는 웅장한 바하이성원을 두고 있다. 한국에도 지식층을 중심으로 건물을 빌려 상당수의 바하이 추종자들끼리 모이고 있다.

 


무함마드가 7세기에 이슬람을 포교할 때의 주장과 바하이들이 20세기에 그들의 신앙을 선교할 때의 공통된 주장은 중근동에서 옜날부터 영혼의 진리임을 자처하고 나온 수많은 종교의 계승자라는 점이다. 이러한 모방성 때문에 무슬림들은 바하이들을 단순한 이단자로서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는 전혀 관계없는 거짓종교로서 규탄한다. 그렇지만 바하이교는 이슬람역사상 정통파와 이단파의 갈등과 마찰 속에서 다듬어진 요소가 그 발생의 계기가 된 점은 사실이다. 이러한 요소 가운데 <밥>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것은 수피(굂fi) 사상으로 알려진 신비주의적 믿음과 그 관행의 결합관계이다. 수피주의는 이슬람역사에 있어서 오히려 시아 사상보다 더 큰 비중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에는 바하이파 추종자가 2만 5천명이다. 이상과 같은 이슬람의 종파가 주로 산재하는 곳을 살펴보면 와하비파(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자이드파(예멘), 시아파(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 알라위파(시리아, 터키), 드루즈파(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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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예수관에 대한 비교연구

(- 이슬람적 관점을 통한 고찰 -) 

 

남옥정 / 조선대학교 강사

Ⅰ.서론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는 세계종교사에서 포괄적이고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양 종교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교리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에 관한 것이다. 이슬람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엄격한 유일신 사상이다. 그리고 신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크리스트교에서 예수는 요컨데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무슬림은 믿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신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으며 무슬림은 예수를 신이 아닌 가장 훌륭한 예언자들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양 종교간의 예수에 관한 견해의 차이가 있다. 즉, 예수를 신으로 보느냐, 아니면 단지 예언자로서만 인정하느냐의 교리적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논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는 현대 역사에서 왜 대립구조를 갖게 되었는가? 양 종교는 갈등과 대립의 관계일 수 밖에 없는가, 아니면 화해와 화합도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에 논자는 이슬람과 크리스트교의 첨예한 견해차이들 중 하나인 예수의 지위와 성격에 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양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그의 지위에 대한 인식은 양 종교의 교리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슬람교에 관한 인식은 크리스트교에 비해 매우 빈약한 형편이다. 그에 비례하여 크리스도교인과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에 관한 편견이나 선입관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에서 5명 중 1명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고, 이슬람교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점으로든지 이슬람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이 논문을 통해 세계 3대 종교에 속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한 부분에 관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예수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하여 양 종교간의 갈등과 대립의 관계의 시발점을 찾아 양 종교의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예수에 관한 비교 연구는 꾸란과 성서에 근거하여 수행할 것이다. 예수에 관한 꾸란과 성서의 언급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서약, 예수의 탄생, 예수의 기적들, 예수의 신성의 임무, 예수와 십자가, 예수와 신성, 예수와 삼위일체설이다2).

 

Ⅱ.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에 관한 고찰

예수의 비교연구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을 살펴보고 예수의 혈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으로부터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그리고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분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자식이 아니고, 이삭만이 유일한 독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오류로 인하여 이 사실을 주장하기는 힘든 듯 하다. 신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시험에 들게 한 장면에서 꾸란과 성서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그 일 후에 신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부르시되......(중략)......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아브라함이 가로되, '여기 있습니다.'하니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이제야 신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장 1-12절)

구약성서에 언급된 이삭의 희생 이야기에서 이렇듯 독자라는 대목이 여러 번 나왔다. 이 사실을 이슬람적 시각으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즉,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었으며, 설사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장남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신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구원의 위대한 언약을 받게 될 '네 씨'에 속하지 못하였으며,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삭의 중요성에 비추어 이스마엘은 인간의 생식본능이라는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개념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 구원의 이야기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삭은 유일한 독자로 묘사되어 희생명령을 통한 예언적 임무를 부여 받았으며, 이 독자의 개념은 신약성서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독생자의 개념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3).

반면, 꾸란에 나타난 내용은 극히 대조적이다.

"아들의 나이가 그와 함께 일할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가 말하길 '내 아들아, 너를 제단에 올리라는 명령을 내가 꿈에서 보았노라. 너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구나,' 라고 하니 아들이 말하길 '아버지 당신께서 명령받은 대로 하옵소서. 신이 인내하는 종을 원하신다면 당신께서 저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였더라. 그 둘이서 신께 순종하고 그는 그로 하여금 이마를 숙이도록 하였을 때, 신은 그를 불러 '아브라함아, 그대는 이미 그 꿈을 수행하였노라. 신은 이렇듯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내리니라.' 실로 이것은 분명한 하나의 시험이었으니, 신은 훌륭한 희생으로 그를 대신하였노라." (꾸란 37장 102-107절)

꾸란에 따르면 이 일이 있은 뒤, 아브라함의 이삭의 잉태계시를 받는다.

꾸란과 성서에 나온 희생이야기를 살펴본 바 꾸란의 시각으로 볼 때, 성서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86세(창세기 16:16)였고, 이삭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100세(창세기 21:5)였다. 따라서 이스마엘이 이삭의 손위임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3세나 손위였으며 이스마엘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이삭을 독자라 부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독자란 언급은 이스마엘에게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주장이다4).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브라함은 성서에서 주장하듯 이삭을 독자만으로 볼 수 없고, 이스마엘을 장남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로 신은 그대에게 계시하였거늘 이는 노아나 그 이후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것과 같으며 도한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후손과 예수와 아이욥과 유누스와 하룬과 솔로몬에게 계시한 것과 같으며, 다원에게 시편을 내린 것과도 같으니라."

(꾸란 4장 163절)

아브라함은 신의 예언자임을 계시 받았는데, 그의 후손들, 즉, 이삭뿐 아니라 이스마엘, 또한 이삭의 아들인 야곱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그의 후손들에게 내린 계시와 같다는 것이다. 이는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즉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신이 다르지 않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겠다. 성서와 꾸란 구절이 대립된 양상을 띄는 부분도 있지만, 그 대립의 바탕에는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즉, 유일신론을 가진 아브라함의 가계라는 근본이 깔려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동일한 신을 믿으며, 그들의 선조는 동일 인물이었다는 근본 생각을 바탕으로 예수에 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Ⅲ.예수에 관한 성서와 꾸란의 언급

 

첫째, 예수에 관한 꾸란의 언급은 마리아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꾸란 이므란의 장에는 마리아의 탄생이 언급되어 있다. (꾸란 3:35-365))

이므란가에서 태어난 마리아는 신의 특별한 보호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신은 사가랴에게 그녀를 돌보도록 하였다. 마리아는 신에게 선택되는 행운을 얻어 모든 여성들 가운데 최고라는 극찬받는 위치를 얻었다. 꾸란에서 다른 여성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고 시바의 여왕도 이름없이 여왕으로만 기록되었는데, 마리아만 이름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이븐 마르얌(Ibn maryam), 즉, '마리아의 아들'이란 칭호로 나오며, 단독으로 나올 때는 거의 아무런 역할과 위치가 없다6). 성서와 마찬가지로 꾸란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잉태계시를 받는다. 또한, 마리아의 장에는 더욱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다른 여인들과 차별되며, 꾸란은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둘째, 예수탄생의 이야기에 관해 꾸란과 성서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 예수탄생 이전에 사가랴와 요한의 탄생이 언급되어 있다. 꾸란에서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아랍어로는 Zakariy?)는 마리아의 성장을 보살핀 신앙심이 깊은 제사장이었다. 꾸란에서는 요한과 사가라, 그리고 마리아를 늘 함께 언급하고 있다.

2. 사가라는 노인이며, 그의 아내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돌봄으로서 세례요한을 얻었다. 그 예증으로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다.

3.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예언받는 것은 사가랴와 그의 아내가 요한을 잉태한 후이다.

4. 예수의 탄생장소는 성서는 배들레헴의 사관의 구유이며, 꾸란은 종려나무 숲으로 기록되어 있다. 압둘라 유수프 알리는 이곳이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6마일쯤 떨어진 베들레헴이라고 풀이한다.

5. 꾸란에는 마리아가 출산의 고통을 겪었음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 성서에는 출산의 고통에 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꾸란과 성서 모두 위의 언급을 통해 예수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양 종교에서 예수의 해석을 달리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트교에서 예수의 탄생은 인간의 혈육관계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신으로부터 나온 독특한 아들 개념을 말한다. 하지만 예수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신의 아들임을 철저히 부정하고 오직 알라 외에는 신은 없으며, 예수는 신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는 반박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복음서의 상당 부분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기적을 행하고 공식적,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보냈던 해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신약성서는 우리가 '기적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단어로 묘사하였다. Wonders, signs, mighty works, works 이 여기에 해당한다7).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기적은 치료사의 예수로서 돌보시는 신을 보여주며, 자연현상의 기적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이 신의 일을 행한다는 것을 가르치며, 기적을 통하여 자신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꾸란에서 기적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야(?yah)이다. 이 용어는 신의 증거 또는 신성의 메시지란 의미 중 하나로 일반화되었다. 아야의 의미는 기적, 또는 꾸란의 구절을 의미한다. 신성한 메시지와 그것의 증거를 가리키기 위해 똑같은 단어를 채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신성한 메시지 그 자체가 기적을 증명하는 으뜸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꾸란은 무슬림들에게 예언자의 가장 위대한 기적으로 간주된다8). 성서와 마찬가지로, 꾸란에는 예수의 기적이 언급되어 있으며, 꾸란 3장과 5장의 내용에 따르면 꾸란은 예수의 기적을 인정한다. 하지만 예수의 기적을 인정하는 것은 크리스트교의 예수의 기적과는 다르다.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예수의 기적은 돌보시는 신을 보여준다고 하였다9). 이는 신을 대신하는 예수의 기적행위가 아닌, 예수의 기적 자체가 신과 동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말하는 예수가 행한 기적은 단지 신과 예언자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의미로 한정된다.

 

넷째, 성서와 꾸란의 예수의 임무는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하며 신에게 귀의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꾸란에는 예수가 예언자일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도래를 예언한 구절이 있다. (꾸란 61장 6절) 이 구절을 통해 무함마드의 정통성과 더 나아가 예수와 무함마드는 예언자적인 동등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함마드에 대한 계시가 아랍어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그가 이 계시를 바탕으로 신의 율법을 실행했다는 점일 것이다10).

 

다섯째, 꾸란에서 예수와 십자가의 문제를 논할 때 최대의 쟁점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했는가, 아니면 살아있었는가의 문제이다. 크리스트교에서 십자가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아담이래 모든 사람들의 죄를 그가 짊어졌다는 의미이며, 이는 예수의 부활과 함께 그의 신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대리자적 속죄 죽음'의 의미로 간주된다11). 무슬림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꾸란은 예수의 십자가 못 박힘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마리아의 아들이며 신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다12)."

위 구절은 이슬람교 기독론의 핵심이다. 바로 여기에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슬람교의 모든 종파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한다. 이슬람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교리인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부 무슬림 현대 학자들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죽음 사건과 반대되지 않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시도는 전체 무슬림들의 믿음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역사적으로 이슬람교는 공식적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교리를 전면 부정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이해 관계에서 매우 민감한 부분이며, 이슬람교의 예수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결정적 단서이다13).

 

여섯째,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한 주장과 함께 예수의 신성에 관한 주장도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상호 대립하는 부분이다. 꾸란 112장에 의하면 알라는 낳지도 낳으시지도 않았음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며 선지자일뿐이며 그는 이전에 등장한 선지자들과 동일한 자격과 의미를 지닌다. 이는 크리스트교의 삼위일체설과 관련된 사항이다. 성서 자체에는 '삼위일체(Trinities, Trinity)'라는 말이 없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개념은 성서적 구속사에서 기초적이고 지배적인 사상으로 발전되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개념의 문제는 역사적 기독교의 실제적 관심사이기도 했다14).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에 의하면 "삼위일체는 하나이고 유일하신 참 주님이시다. 그리고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인 동시에 동일한 본체에서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바로 말하며, 믿으며,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15)." 이 말에 크리스트교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신의 유일성에 대한 주장의 핵심이 들어있다. 하지만, 꾸란은 삼위일체의 개념을 부정하며 오직 한 분의 신만을 인정한다. 삼위일체의 개념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는 무슬림의 유일신관을 부정하는 개념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꾸란에는 신은 성자와 성부를 두지 않았음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성서의 백성들아! 너희 종교에 지나치지 말고 신께 진리만을 말하라.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 예수는 신의 예언자이니, 그 분께서 마리아에게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영혼을 보내셨다. 그러니 신과 그 분의 예언자들을 믿고 '셋'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치라. 너희에게 이로울 것이다. 신은 진정 한 분이시다. 아들이 있다니, 그 분께 영광이 있으라!" (꾸란 4장 171절)

크리스트교인들은 무슬림들이 예수가 육체적 의미의 신의 아들로서 오해함으로써 이와 같은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지적한다. 또한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파울루사르라힙(Paulusar-R?hib)은 13세기 시돈의 수도승이었는데 그는 『크리스트교 교리의 설명』에서 유일신 믿음에 관하여 말했다. 그가 언급한 내용은 삼격 안에 하나의 본질인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신은 삼격이지만 신이 이성(성자)과 생명(성신)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유일신이라는 것이다. 즉, 유일신 안에 상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의 아들은 육체생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불가사의한 방법을 통하여 탄생한다는 것이다. 위의 주장에 대해 무슬림인 알 까라피(al-Qar?f?)는 "고약한 질문에 대한 뛰어난 대답"이라고 말하며, 이에 대해 한 줄 한 줄 논박하였다. 그의 반박은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슬람식 반론이 되었다. 알 까라피는 말하길 "크리스트교인들은 꾸란의 각 장 도입부분에서 읽혀지는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신의 이름으로'란 구절을 인용하여 그들의 삼위일체론을 뒷받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이격을 만들었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되었다. 하지만 꾸란속에서 그와 같은 것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꾸란은 신의 유일성을 강조 한다. 복음서라 불리는 크리스트교의 성서는 신의 계시를 왜곡했다."

알 까라피의 반론은 지나치게 간략화 된 듯 하다. 하지만 그의 반론은 삼위일체론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입증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16).

 

Ⅳ.결론

본 논문은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선조는 동일하며, 그들은 동일한 신에게 동일한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출발하였다. 만약 이에 대한 양 종교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예수에 관한 양 종교의 주장을 비교하여 절충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위와 같이 꾸란과 성서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예수관을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기적적으로 태어났고, 복음을 전파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예수의 지위에 관한 미묘한 입장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꾸란 속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에 관련된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교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꾸란은 예수를 적대시하지 않고 예언자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슬람은 예수가 신으로부터 복음서를 부여받고 이를 백성들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17). 이와 같은 사실은 이슬람교가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종교라는 것을 말해주는 실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에 발생한 이슬람교 극단주의자들의 불상파괴 소식은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도 역시 대부분의 이슬람교 신자들은 꾸란을 잘못 이해한 극단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도 이슬람교가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 종교다원화시대를 맞이하여, 양 종교간에는 얼마든지 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서로 대립되는 부분에 관한 관용적인 학문적 고찰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예수관의 비교는 양 종교간의 우월성을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 양 종교간의 이해와 절충을 이끌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각 주1) 이 논문은 2000년 9월 29일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연구소 제6회 초청강연회 겸 한국아랍어ㆍ아랍문학회 추계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그 내용을 수정ㆍ보완한 것임.

2) 황병하, "코란 속의 예수와 성서 속의 무함마드에 대한 비교연구"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창간호』, 1990, p. 23.

3) 황병하, Ibid, pp. 15-16.

4) Ibid., pp.9-10.

5) F. E. Peters,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Princeton University Press, New Jersey, 1990), p. 117

6) 전재옥, 『무슬림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 서울: 예명 커뮤니케이션,1995. pp.27-28.

7)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 『예수의 치유』 고재봉 역, (서울: 요단 출판사, 1988), p.163.

8) Maulana  Al?, The Religion of Islam, (Printed India by Jainendra Prakash Jain at Shri Jainendra Press. New Delhi, 1994), p. 181.

9)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예수에 관한 12가지 질문』유선명 역, (서울: 주식회사 흥성사, 1996), p. 69.

10) 김용선, 『코란의 이해』 (서울 : 민음사, 1990), p. 48.

11) 성종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장신논단, 장로회신학대학 출판부』, 1990, p. 238.

12) 꾸란 4장 157-158절

13) 전재옥, op. cit., pp. 43-44.

14) 한국종교연구회, 『세계종교사입문』, (서울: 청년사, 1991), pp. 493-494.

15) Battenhouse, R, W, A Companion to the Study of St. Augustine, p. 38.

16) Hans K?ng et al, Christianity and the World Religion, (Doubleday, New York, 1986), pp. 113-114.

17) 황병하, 『아랍ㆍ이슬람문화』(조선대학교 출판부, 2001),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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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주의/ 배타주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역사적 상대주의 / 그리스도교 보편주의/ 에큐메니칼 WCC

 

종교다원주의란 무엇인가?

 

21세기의 교회가 당면한 큰 문제는 종교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종교 다원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은 점점 더 단 하나의 객관적 진리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의 복음을 과연 유효하게 선언하고 선포된 복음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고, 그들의 삶과 생활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 혹은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를 고수하며 신앙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 모든 종교들이 자기 절대성과 궁극성을 주장하고 서로 상이한 입장들이 공존하게 되었다.


종교 다원주의란 종교 다원 현상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다원적인 종교들을 동일한 지평선에서 바라보며 다원적 종교들의 궁극적인 것 (the ultimate)의 실제를 주장하는 종교적, 신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종교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여러 가지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길이 있고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는 그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로 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든, 유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잘만 믿으면 천당도 가고, 극락도 가는데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모든 종교는 다 같은 것이다,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이 다를 뿐이라는 얘기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여러 관점에서 볼 때 종교 다원주의는 하나님의 구원 계시가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있으며, 기독교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주장이다.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종교도 더는 자기 절대성, 혹은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본 입장은 모든 종교들이 제시하는 진리에는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결코 특정 종교의 기준이 타종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비교 종교학 교수였던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1916-1973)는 종교적 다원주의 문제는 교회가 따른 신앙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던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과 비교 종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한다. 18, 19세기의 그리스도교 선교 정책은 서구 식민주의와 그 궤를 같이하는 제국주의적 선교 정책이었다. 즉 서구 열강들의 군대가 약소국을 점령하면 선교사가 뒤따라 들어가 그리스도교로 그 지역을 점령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서구 식민지 정책이 종식되고 독립국들이 점차 늘어가면서 그리스도교의 정복 선교 정책도 일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선교지 일부에서는 선교사들이 타종교와의 대화를 주장하며 타종교를 인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가 하면 '세계 복음화'와 같은 그리스도교의 선교 기치는 침략적인 제국주의 정신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며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선교 형태를 반성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니터에 의하면 신학적 종교 다원주의의 촉발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죤 힉 역시도 같은 입장에서 궁극에는 모든 종교가 한 형제라는 것을 깨닫고 종교들이 서로 협력하며 교류하는 하나의 이상세계가 올 것이라는 낙관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이미 그리스도교를 변화시키고 있는 에큐메니칼 정신은 세계 종교간의 관계에도 더욱 영향을 미칠 것이다.


뉴비긴(L. Newbegin)은 서구 사회에서 다원주의의 근원을 유럽의 계몽주의에 의해 부활한 합리주의 전통에서 찾고 있다. 그는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통에서 이성은 진리를 확인하고 방어하는 유일한 도구가 되었다. 다원주의적 관점은 또한 과학적 방법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과학적 방법론은 무엇인가? 인간의 감각에 의해 관찰 대상으로부터 사실들을 얻어내는데 있어서 이성을 수단으로 가정을 세우고 결론을 유출해 내고 계속되는 적용을 통해 그 결론들을 시험하고 검증한다는 것이다. 비서구 세계에서의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압도적으로 반 다원주의적이고, 단일성이 모든 생활의 영역에 미치고 있으며 법적으로 강요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신자들의 거주지를 정해 놓고 그들의 활동을 엄격히 통제한다.

 


아시아, 아프리카에 있는 비 이슬람 국가들은 수세기 동안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살아왔다. 인종과 문화가 뚜렷이 구분되는 공동체들이 서로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긴장은 있었지만 일정 기간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관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또한 종교적 다원성을 인정하게 되고 그것을 일부 수용하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특별히 종교적 진리는 오로지 인간의 영혼에 국한되었다. 진리는 영에 의해서만 이해되어진다. 역사는 종교적 진리와 경험을 구성하게 된다. 종교 의식과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역사 종교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다원주의 정신은 힌두교가 지배적인 영향을 미쳐 온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다원주의는 서구든, 비서구든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인 상대주의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Alann Bloom 에 의하면 상대주의는 현대인의 도덕적인 조건이며 자유 민주 사회의 조건이라고 한다. 개방적인 사람을 상대주의에 헌신된 사람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절대주의(Absolutism)란 관용적이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현대 사회는 자신도 생존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도 함께 생존하게 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미덕이 되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종교 다원주의의 기원은 합리주의적 전통과 상대주의의 대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종교 다원주의론자들은 종교 다원화에 대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학자의 말을 인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는 현 시대는 모든 종교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종교 다양성의 시대이므로 어느 특정 종교가 절대적 진리나 가치를 주장할 수 없다는 종교에서의 가치 중립적 태도를 의미한다.


종교 다원주의의 신학적 기초는 현재의 제도적 교회가 신약의 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함으로 현재의 기독교를 부정하고 상대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종교 다원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전오진 교수는 여섯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는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를 부정하고 상대화한다.


둘째는 일부 서구인들과 신학자들은 서구 식민주의와 양차대전에 대하여 강한 죄책감을 가지고 서구 문명과 기독교를 죄악시하고 비 서구 문화를 찬양한다.


셋째는 종교 다원주의는 비서구인들 특히 많은 아시아인들이 서구로 이주하거나 거주함으로 서구 사회를 종교 다원주의사회로 만들었다.


넷째로 비서구 국가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감을 전통 종교에서 추구하는데서 종교 다원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다섯째로 종교 다원주의 신학은 서구 신학이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절대성을 포기하는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여섯째로 W.C.C의 종교 대화는 전도의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인류의 평화와 복지라는 세속적 목적과 다원주의로 발전되었다.


알랑 레이스는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의 관계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배타주의 (exclusivism),


포괄주의(inclusivism),


다원주의(pluralism)가 그것이다.


배타주의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만이 참 종교요, 절대 종교라고 믿는 그리스도교 절대주의(christian absolutism)를 견지해왔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종교'라는 일반적 개념이 아예 불가능한 것일 수밖에 없다. 설령 그리스도교가 타종교를 운위한다손 치더라도 그 유일한 까닭은 계시에 근거하여 그들을 심판하기 위한 것에서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입장에 대해 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절대종교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가 발생한 것은 분명히 충격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입장에는 전통적인 카톨릭의 입장과 칼 바르트, 크래머와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속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배타주의는 구원이 예수에 대한 명시적 신앙 안에만 있다거나 교회 울타리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몇 가지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성경의 문자적 증언과 일치한다는 것과 그리스도 신앙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확립시킨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또한 선교의 열정을 강조하고 같은 맥락에서 협조하는 것이 배타주의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배타주의는 은총의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강조하지만 기독교가 아니면서도 은총의 종교인 예를 들어 아미타불교, 바티 흰두교와 같은 교리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또한 창조계시와 그리스도 계시를 이분함으로써 창조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점을 간과하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밖에 있는 많은 선한 것에 대해 긍정적이고 바른 평가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포괄주의는 자기 종교를 최 우위에 놓는 자기 중심적 요소가 있어 한편으로는 배타주의와 통하고 우열을 가리면서도 남의 종교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다원주의와도 통한다. 현재 카톨릭에서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입장이다. 즉 포괄주의는 "발전-완성"이라는 도식의 성취설을 취한다. "타종교 속에 있는 모든 진리는 본래 그리스도의 것이다"라거나 "타종교에도 구원은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그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 는 등의 사상이 모두 포괄주의적 입장에 속한다. 타종교인을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으로 규정한 칼 라너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이후의 카톨릭 입장이 모두 이 견해를 대표한다. 포괄주의는 여전히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원론의 한계 안에 갇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원주의는 참 종교를 하나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을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즉 궁극적으로는 형언불가능한 하나의 신적 실재를 믿되, 그 신앙의 다양한 표현으로서의 다원종교 현상을 인정하며 그것들 사이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이는 교회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타종교들을 배타하거나 포괄하려는 종래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안이다. 따라서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근대 후기의 종교다원적 세계 속에서 요청되는 신학적 사고의 모형변이가 신중심주의(Theocentrism)의 입장에서 종교의 다원성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회중심주의나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sm)의 사고에 젖어 온 그리스도 신학은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타종교인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쯤으로 포괄하는데 그칠 것이다.


따라서 80년대의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은 소위, '신 중심적 모델'을 제시하며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궁극적 실제(ultimate reality)로서의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다원주의에 속하는 현대 종교 사상가로는 하버드 대학의 비교 종교학 교수였던 스미스와 인도의 신학자 사마르타, 인도의 카톨릭 신학자인 파니카, 남인도 뱅갈로 에큐메니칼 선교 센터 원장이며 1986년부터 1975년까지 W.C.C.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토마스, 영국 장로교 목사인 존 힉과 카톨릭 신자인 폴니터 등을 꼽을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이란 인간이 종국적 실재와의 관계에서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고 구원을 성취하는 양식에는 문화의 다양성에 따라 다양한 구원의 길과 종교 상징체계가 존재하며,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이름과 구원의 길의 다양성은 삶의 자리가 갖는 해석학적 제약에 기인하기 때문에 모두 상대적이며 특정 신의 이름과 구원의 방도가 배타적인 우월성을 지녔다는 주장은 용납될 수 없다는 종교신학적 이론이다.

 

1. 칼 라너 : 익명의 그리스도인


칼 라너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계시고 처음부터 구원하려는 사랑과 긍휼로 사람을 만나셨다는 것이다. 이점은 배타주의에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긍휼과 사랑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만민을 사랑하시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접목되지 않았던 사람을 모두 지옥에 떨어뜨리고하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은 용서하고자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행위가 아니라 용서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 사건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 라너는 자연과 은총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살아가고 여기에 예외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율법으로 살아간다면 형벌로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칼 라너는 이런 의미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주장한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고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은총을 안다면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라너가 말하는 익명이란 명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익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초월적 존재를 향해서 자기를 개방하는 사람들, 이웃을 향해서 자기를 열어 놓는 사람들, 선과 정의, 진리를 향해 그런 사람들을 포함한다. 이들이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며 그들은 구원의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은가 말하는 것이다.


칼 라너의 이러한 신학은 그리스도밖에 존재하는 은총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과 타종교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과 선교의 효과와 교회의 성장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타종교에 대한 낙관주의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타종교에서 말하는 자력구원 의지, 역사 퇴행적 사고 행태 등은 중요한 부정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타종교의 선한 것과 구원사이의 구분이 분명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정당하다면 기독교의 순교란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이끌어 내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2. 에른스트 트뢸취 : 역사적 상대주의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적인 종교사학자 트뢸취(Ernst Troeltsch, 1865-1923)는 그리스도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 상대주의를 주장했다. 하나님은 유한한 것들과 동일시될 수 없지만 신성도 역사 속에 주어졌을 때는 상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절대적 종교가 아니며,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그것의 환경을 구성하는 역사적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운, 전적으로 유일회적인 종류의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종교의 보편적 원리라고 생각되는 것의 분별적, 최종적, 무조건적 실현이 아니다. 다른 위대한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도 그 역사의 매순간에 있어서 철저히 역사적인 현상이며, 모든 개별적 역사현상이 직면하게 되는 모든 제한에 종속되어 있다."


이처럼 그에게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이고 유일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복음마저도 다양한 종교적 구원체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것은 그의 철저한 역사적 의식과 그 역사적 의식이 요청하는 바 역사적 상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절대자는 모든 역사를 향해 현존하고 모든 역사 안에 현시되지만, 그러나 절대자에 대한 그 어떤 역사적 현시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절대자의 본질(절대자는 항상 유한자 이상이라는)과 모순되며, 역사적인 것의 본질(역사적인 것은 항상 제한적이고 가변적이라는)과도 모순된다는 것이다.


트뢸취는 만약 어느 날엔가 절대적 종교, 즉 신성의 최종적인 완전한 현현이 있게 된다면, 그러한 일은 곧 역사 이후의 영원한 단계에서나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3. 폴 틸리히 : 그리스도교 보편주의


20세기의 탁월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틸리히(1886-1965)는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신이 어느 특정한 방법으로만 현현한다는 특별계시의 주장을 배제하면서 타종교에도 계시적 접촉이나 신과의 만남이 있다는 그리스도교 보편주의를 표방했다.


"예수에게서 특수한 것은 보편적인 것을 위해 자기 속에 있는 특수한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특수한 종교에 대한 속박과 종교영역자체에 대한 속박에서 그의 모습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특수하면서도 특수적인 것에서 해방되고, 종교적이면서도 종교에서 해방된 이런 모습과 함께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판단함으로 다른 종교도 판단하는 표준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제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이나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 불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기 성찰과 대화를 촉진시켜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목표는 종교들을 혼합하는 것도 아니고 타종교에 대해 승리하자는 것도 아닌 자기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 종교의 깊이로 더욱 파고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종교에 공통되는 하나의 '신', 혹은 '신을 초월한 신'개념을 제시하며 신 중심주의적 사상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타종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포기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타종교와의 만남을 자신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틸리히가 말하는 종교간의 만남-나는 너와의 만남을 통해서 내 자신을 실현하지만, 결코 네 속에 해소되지 않는다는 인격적 만남-임을 알 수 있다. "개종이 아니라 대화"를 강조하며 그리스도교의 특수성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모두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보편주의가 종교간의 대화의 의미를 밝히려는 신 중심적인 종교다원주의적 발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4. 스미스 : 신 중심적 보편주의


하바드 대학의 비교종교사 교수이자 세계적 명성의 이슬람 연구 대가였던 스미스는 종교를 연구하고, 이를 삶으로 구현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종교'라는 개념을 제거해 버리려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종교'라는 말은 서구적인 개념으로 다른 종교들, 특히 동양종교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순전히 서구적 관념에서 잉태된 '종교'라는 말은 종교를 하나의 사물로, 하나의 "객관적인 조직적 실체"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이것은 종교적 실재를 "사물화했고" 규격화했으며 그리하여 가시적으로 대상화 해 버렸다. 일단 규격화되고 조직화된 종교는 통상 타종교와 비교되고 등급이 정해진다. 이것은 종교라는 말이 구체화하려는 바로 그 실재를 이용한 결과에 이르고 만 것이다. 스미스는 이러한 새로운 관계가 정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미스는 종교간의 협력을 통한 일치된 과거보다는 오늘날에 훨씬 더 가능하고 또한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현대의 예언자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치를 향한 출발점은 모든 종교에 공통적인, 또 그들을 살아있게 하는 신앙임을 인식하고 그 점으로부터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스미스의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기 보다는 신중심적인 신학, 즉 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것에만 제한되지 않고 그가 모든 종교들 안에서 보편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에 보다 개방적인 신학으로 인도해 준다. 스미스의 신 중심적 보편주의는 오늘날 카즌스, 카모디같은 '지구 신학'자들에 의해 창조적으로 계승되고 있다.

 


5. WCC와 사마르타 : 에큐메니칼과 종교다원주의


WCC는 제 3차 뉴델리 총회 때부터 1928년 탐바람 선교 협의회 이후 유행해 온 바르트와 크레머의 영향, 즉 타종교에 대한 부정적이고도 배타주의적인 입장과 전격 결별하기 시작했다. 뉴델리 총회는 타종교를 '다른 신앙'으로 표현하고, '다른 신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1979년의 킹스턴 총회에서는 사마르타를 중심으로 한 중앙위원회가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지침'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 지침은 무엇보다도 혼합주의의 위험을 경계하면서도 '대화'와 '선교'가 결코 모순되지 않다는 것과 타종교 신봉자들도 신학적으로 의미심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WCC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종교다원주의 신학자 가운데서 인도 출신의 사마르타(S.J.Samartha)의 입장은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이 되는 위험성을 감수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자가 상대화된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종교적 다원성 가운데서 사는 것을 두려워해야만 하는가?"에 나타나고 있다.


그는 50년대, 60년대에 WCC가 타종교에 접근하며 사용한 신학적 틀인 '우주적 그리스도론'이나 '익명의 그리스도론' 따위를 일종의 허위의식이나 교만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절대적 궁극성과 보편적 규범성을 부정한다. 어떠한 종교나 종교적 인물은 신의 전적인 신비 앞에서는 궁극적인 말이나 충만한 언어로 명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6. 존 힉 : 신학에 있어서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존 힉은 영국의 종교 철학자요 신학자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타종교들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신 중심적 모델을 제안한 사람 가운데서 가장 철저하고, 가장 혁명적이며,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힉은 칼 라너와 같은 신학자들이 신실한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유대교들을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는 옛 조교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입장이라고 비난하다. 이런 '익명의 그리스도인'적 관점에서 보면 결국은 그리스도인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힉은 이러한 입장이 반드시 기만적인 것만은 아니고, 전에는 전혀 희망이 없던 것으로 간주되던 타종교인들에게 일종의 은혜의 손길을 펴려는 것이라 이해한다. 따라서 이것은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넘어가는 심리적 가교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힉은 "조만간 이 다리를 통해 건너편으로 가야 할 것"을 강조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에 필적할 "종교신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주장한다. "이것은 여러 신앙들이 공존하는 세계와 그 세계 안에서의 우리 자신의 종교의 위치에 대한 우리의 개념에 있어서 똑같이 철저한 변혁이 있어야 함을 함축한다.…그것은 제 신앙의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교 중심적 혹은 예수 중심적 모델에서 신 중심적 모델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때에 우리는 위대한 세계 종교들을 하나의 신적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역사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서로 다른 자각들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게 된다."


힉은 "종교적 우주의 중심은 그리스도나 어떤 종교가 아니라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아야 한다. 신이 바로 빛과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며, 모든 종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신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논리는 "큰 종교들은 모두 그들의 체험적 뿌리에 있어서 동일한 궁극적 신적 실재와 접촉하고 있다"로 귀결된다.

 


7. 니 터 : 신 중심적 그리스도론


카톨릭 신학자이 니터는 칼 라너의 제자로 '신 중심적 그리스도론'을 제시하는 대표적인 종교다원주의자다. 니터는 예수의 선교와 인격은 왕국 중심적, 혹은 신 중심적이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그 자신을 신적 인격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힉의 견해에 동의한다.


니터는 예수의 본래적 메시지는 오직 신 중심적이고 왕국 집중적이었으나 그의 죽음과 부활 이후 초대교회의 메시지에 와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신약성서에서 보는 것은 다만 "신의 아들로서의 예수에 대한 기능적, 종말론적인 이해로부터 그의 신성에 대한 성육신적이고, 존재론적인 선포에로의 진화"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의 자리', 곧 역사적, 문화적, 정치, 경제적 상황의 반영이며 그 상호작용에 의해 고무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니터는 신약성서의 예수에 관한 증언이 배타적이거나 최소한 규범적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종교다원주의는 기독론을 바르게 하지 못한 사람들의 착각에 불과하고 성경을 떠나서 인간 이성이 주가 된 신학을 하다가 나온 이론이다.


이들의 이론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신중심적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무지한 사람들에게 유신론적인 신학자로 착각하게 하는데 사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유일성과 삼위일체 신학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무서운 이론이다. 이들의 이론이라면 초월자는 한 분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그 주위에 시대에 따라 혹은 민족과 문화에 따라 여러 그리스도 즉 석가모니 마호멧 예수 공자 등이 등장했다는 말을 하고싶은 것이고 따라서 이제 오래지 않아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별다른 그리스도 즉 적그리스도가 오는 길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무지한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마귀의 손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핵심을 부정하는 종교다원주의는 결과적으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려다가 오히려 기독교를 완전히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서구의 신학자들 즉 종교 다원주의를 표방하고 나온 사람들은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그리스도를 잘 알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서구 신학이 이렇게 된 이유는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신학을 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서구 신학자들은 타 종교 즉 불교나 유교의 핵심을 잘 모르고 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불교는 그 인도에 고대 종교였던 브라만교를 완곡하게 부정하면서 나온 종교였다. 석가모니는 브라만교가 말하는 많은 신들이 거짓 신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었기 때문에 무신론을 표방하고 나왔다. 그렇다면 불교와 브라만교는 결코 상호 존중으로 갈 수 없다. 루터와 칼빈은 한결같이 카톨릭을 사탄의 종교, 악마의 종교로 규정하고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카톨릭은 영원히 상호 인정 내지는 상호 존중이 있을 수 없다.


이슬람교는 절대로 기독교를 존중할 수 없는 종교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먼저 성경이 말씀하시는 계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타종교의 기원과 핵심교리를 명확하게 인식을 했다면 종교다원주의 같은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요 입에 담을 수도 없을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절대자 하나님의 인격적인 계시를 부정하고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이성론에 입각하여 보편적 사랑과 평화, 인간성회복과 사회정의를 구원으로 규정하여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화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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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는 각 종교는 각각의 구원의 길이므로 서로 개방성과 존경심을 가지고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수억, 수천만 명, 수백만 명의 경건한 신도를 지닌 종교들은 모두 참 종교라고 한다. 특정종교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불멸하는 진리 체계를 독점할 수 없고, 특정 종교의 가치 규범을 가지고 타종교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의 진리 담론이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어 왔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기독교가 제시하지 못하는 구원을 이슬람, 불교, 힌두교가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헌신하면서도 종교 간의 대화와 협동을 모색하고 평화를 유지하자고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는 구체적으로 과연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주장


미국 클레아몬트신학교의 존 힉(John Hick) 교수는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라고 주장한다. ‘우주적 실재’는 한 분이지만 그 분의 이름은 문화마다 서로 다른 명칭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언어 구조가 상이한 하나님의 이름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헬라인은 하나님을 ‘로고스’라고 하고, 유대인은 ‘야훼’(여호와), ‘엘로힘’이라고 한다. 고대 인도인들은 ‘아트만’ 혹은 ‘달마’ 혹은 ‘비로자나불’이라고 불렀다. 중국인들은 도, 천리, 천명이라고 부른다. 아랍인들은 ‘알라’, 한국인은 ‘하늘님’이라고 부른다.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동일한 궁극적 실재라고 하는 이명동신설(異名同神說)을 주장한다.


존 힉에 따르면, 오랜 세월 동안 종교들이 자신의 종교를 세계사의 중심에 놓고, 다른 종교를 자기 주위를 도는 행성 정도로 생각해 왔다. 기독교는 자기를 절대화하고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과오를 범했다고 한다. 예수 중심의 기독교는 행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기독교의 우월성 또는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기독교는 ‘예수 중심 모델’에서 보편적 신앙 모델인 ‘신 중심 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역사에 출현한 모든 종교는 마치 태양 주위를 도는 아홉 개의 행성과 같고,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모두 태양의 빛을 반사하듯이 세계사 속에 출현한 다양한 종교는 ‘하나의 신적 실재’를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르게 응답한 결과라고 한다.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인식의 상이하고도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세계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은 하나의 신적 실재에 대한 응답이며,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서 형성된 다양한 인식의 구체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는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가 아니며, 특수한 전통 종교인식이 낳은 ‘우주적 실재’에 대한 반응일 뿐이라고 한다.


존 힉은 ‘하나의 신적 실재’가 과연 존재하며,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에 답하지 못한다. 인간의 모든 사유가 역사적, 문화적 상대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은 진리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해석학적으로 의존적 존재라고 본다. 칸트의 인식론을 기초로 한 트뢸치(E. Troeltsch)의 ‘역사적 상대주의’를 반영한다. 역사 속에 출현한 모든 이념, 가치, 조직체계는 상대성을 피할 수 없다는 이론 위에 정초하고 있다.


인간이 작은 붓 대롱으로 본 하늘이 하늘의 전부라고 우기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붓 대롱으로 본 하늘 역시 하늘인 것은 틀림없다. 존 힉은 이 점을 간과한다. 기독교가 특별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접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니지만, 한계를 가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진리이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영적 암매(暗昧) 가운데 있다. 하늘을 볼 수 있는 붓 대롱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특별계시는 인간이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붓 대롱이다.

 

“일곱 가지 다양한 색깔이 모여 무지개를 이룬다” 주장


인도 태생 가톨릭교회 사제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는 종교다원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개별 종교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무지개 이론을 펼친다. “인류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은 신적 실재라는 순백의 광선이 인간 경험이라는 프리즘에 투과되어 나타나는 무수한 색깔과 같다. 그 광선은 셀 수 없이 많은 전통과 교리, 종교를 통해 굴절된다”고 한다.


백색 광선은 ‘궁극적 실재’이고, 일곱 가지 색깔을 띠고 나타나는 무지개의 색상은 구체적인 역사적 종교들이다. 세계의 각 종교는 곧 한 개의 ‘신적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문화적, 역사적 반응이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역사적 종교는 그것이 불교든, 이슬람교든 신도교든 기독교든 간에 빛이 스펙트럼을 통과하면서 발생시키는 파장들을 다 나타내지 못한다고 한다. 각 종교가 가진 고유소(固有素), 다양성 그 자체가 다른 종교의 그것들과 더불어 신적 실재를 더욱 완전에 가깝게 드러낸다.


파니카에 따르면 특정 종교의 유형적 특성이 타종교를 판단하는 규범적 잣대가 될 수 없다. 다른 종교 안에는 우리가 믿는 구원 내용이 없으므로 종교로 인정할 수 없다든지, 그 종교 안에는 구원이 없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구원에 대한 실질적 이해와 체험이 개별 종교마다 나름의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무지개 색상의 하나인 빨강색이 보라색에게 “너는 색깔이 아니다”고 말할 수 없고, 무궁화 꽃이 들국화를 향하여 너는 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백만 송이의 가짜 장미는 한송이의 진짜 장미와 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다. 진짜 장미는 인조장미를 향하여 “너는 꽃의 모양은 갖고 있지만 살아 있는 꽃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다. 파니카가 진짜 꽃과 진짜 꽃을 대조한 것은 아날로지를 잘못 설정한 것이다. 진짜 꽃과 가짜 꽃을 대조해야 옳다. 창조주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의 종교, 계시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유사종교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등잔 모양은 다양하지만 비쳐 나오는 불빛은 동일하다”고 한다. 각 종교의 의례, 상징, 교리체계, 성직제도, 윤리적 계명은 다양하고 서로 다르지만 추구하는 내면의 가치는 동일하다고 본다. 상대주의를 전제로 한 신념이다.

 

“산의 등정로는 다양하지만 호연지기는 서로 통한다” 주장


종교다원주의의 핵심은 구원관에 있다. 각 종교는 구원에 대한 실질적 이해와 체험을 갖고 있다고 한다.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종교에도 그것은 있다고 한다. 구원은 해탈, 모크샤(moksa), 진인(眞人), 지복직관(至福直觀)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각각의 종교에서 나름대로 참 구원의 모습에 도달한 사람들은 공통의 특징을 보인다. 구원을 받은 참 종교인은 자기중심적 존재에서 실재 중심 혹은 생명 중심의 존재로 삶의 지향성이 변한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전체 생명과 더 높은 진리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생사의 두려움을 극복하여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을 하나로 꿰뚫을 줄 안다. 사랑을 자발적으로 실천한다. 하나님의 나라, 혹은 불국토(佛國土) 혹은 대동세계를 실현하는 데 힘쓴다고 한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등정로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럿 있다고 본다. 등정로마다 산의 풍광이 다르고, 산세나 기후 변화도 달라 어느 길로 산을 오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한다. 등정로가 달라도 일단 정상에 오르면 호연지기가 통하는 것처럼 어느 종교를 통하든지 절대자 궁극적 실재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구원종교이다. 인격적, 공동체적, 역사종말론적 개념의 구원을 제시한다. 죄 사함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신비한 개체적 몸의 부활 신앙과 영원한 생명을 구원으로 제시한다. 한편 불교는 니르바나(해탈)의 경험을 구원으로 본다. 기타 종교가 나름대로의 구원이라고 일컫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구원이 영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대비시켜 동일시하는 것은 범주착각의 오류이다. 성경과 사도들이 전해 준 복음에서 보면 종교다원주의는 명백한 이단이다.


주목할 것은 종교다원주의가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에 개방된 태도를 취하거나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교회 안에 독버섯처럼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건전한 신앙고백을 가진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는 교단, 이단자들을 제재하지 않는 교단과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은홍  기자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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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주의 종교주의 도전에 직면한 21세기 교회/ 종교의 연합과 일치/ 에큐메니칼 /변종 나르시즘

 

혼합주의·종교주의 도전에 직면한 21세기 교회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의 공격방향은 전방위적이다. 사방이 적군들로 싸여 있다. 교회의 배타성에 대한 일반종교나 사회의 시선은 예전에도 곱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위협받는 절대 진리


진리의 유일성과 구원에 대한 오직 예수는 기독교의 존립기반이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 그리고 종교의 연합과 일치, 교회 안에서의 에큐메니칼을 넘어 타종교와의 에큐메니칼을 외치는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이해되고 공감하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의 보도, 영화와 인터넷의 왜곡된 정보의 재생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누룩보다 더 빠르게, 광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일부 진보주의나 다원주의자들에 의해 주창되고 있는 다른 종교에 대한 구원의 주장은 언론들이나 타 종교에서 매우 좋아하고 흐뭇해하는 메뉴들이다.


한국교회에서 얼마 전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에 대해 진보그룹의 여성신학자들이 크게 반발했다. 가부장적 아버지로부터 억압당하는 여성들이나 남성들이 아버지로 소개되는 하나님을 거부한다는 논리가 존재한다. 더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사회문화적인 권위 가운데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었다.


인간의 죄성과 그로 인해 야기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부인하는 쪽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변해야 하는 쪽으로 주문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으로 돌리는 곡해가 일어났던 것이다.

 

구원에 대한 왜곡


그러나 하나님만 왜곡한 것이 아니다. 구원에 대한 부분도 왜곡시켰다. 감리교의 변선환 학장의 사건은 종교다원주의의 단적인 예다. 산 정상을 올라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다는 논리로 구원에 접근한다. 일반은총 가운데 하나님이 다른 종교에서 다르게 계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런데 이 주장이 옳다고 했을 때 한 하나님이 기독교에서는 오직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해놓고, 다른 종교에서는 다른 방법의 구원을 제시하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만약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나님이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오직 예수만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 신이 한 입가지고 두 말하는 이중성과 거짓말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논란의 핵심은 기독교를 종교로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인간으로부터 출발된 종교가 아니다. 굳이 종교로 분류할 때 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만, 일반 종교가 세워지는 과정과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21세기는 그런 기독교의 독특성을 거부한다. 자기들의 종교와 비슷하거나 동일하기를 요구한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종교단원주의와 포스트모던에 부응하는 신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 중에 하나다. 성경이 독특한 영감성을 부인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다양한 길과 하나 되는 종교


미국의 경우도 성 윤리 논란이나 구원의 다양한 길에 대한 수용 폭이 매우 넓어지고 있다. 미국성공회는 지난 2월 불교선수행자인 케빈 듀 프레스터는 북부 미시건 교구 주교로 선출했다. 또한 4월 초 시애틀 교구의 앤 홀름스 레딩 신부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지만 또한 무슬림이라고 밝힌 뒤에 자신의 직임을 사퇴하기도 했다.


미국 성공회의 이런 경향은 점차 심해질 것으로 신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웨이드 클라크 루프 종교학 교수(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대학교)는 “혼합주의와 관련해 성공회의 문제는 미국에서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종교지도자들을 포함해, 자신의 종교에서보다는 다른 믿음체계에서 영적지혜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미국성공회는 2003년 동성애 주교를 선출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런 혼합주의 확산은 교회 안에 점점 동성애의 문제나 각종 성윤리 문제에 대한 허용이 미국을 넘어 각 나라로 확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교회의 동성애 대한 시각은 점점 선이 흐릿해지고 있다.


동성애를 질병의 차원으로 보기시작하면서 모든 동성애자들에 대한 시각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죄를 인권과 질병으로 몰아가고, 포장하다보면 절대 선을 넘어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동성애를 죄라고 지적하는 이들을 고리타분한 보수주의자들이라고 폄훼한다는 점에서 참기 힘들고 버티기 힘든 사회적 정죄가 깊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화석화 되는 기독교


개신교의 경우도 교회는 딱딱한 껍질로 쌓여진 종교화로 더 많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종교생활은 암흑시대라고 하는 중세시대의 교회로만 족할 수 없을 만큼 21세기 교회는 종교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교회의 조직을 위해 이뤄지는 설교가 있고, 봉사가 있다. 사회의 안전망을 위한 노력과 봉사에 분주한 교회가 많아지지만 정작 복음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지역교회들이 뛰어든 노인복지에 대한  부분도 한 편으로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교회의 재정적인 문제 해결이 동기일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할 만큼 솔직한가 묻고 싶다.


교회 유지를 위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기보다 후원확보를 위한 개인적인 역량과 아이디어를 발휘하는게 옳은가 자문해야 한다. 21세기 교회가 싸워야 할 것은 외부적인 환경만이 아니다. 내부적으로 겪는 복음의 본질에 대한 부분이다. 교회가 스스로 복음에 서 있지 않은 가운데 외부의 강력한 도전을 이길 힘은 없을 것이다.


혼합주의, 다원주의, 포스트모던의 도전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 하나님 되심의 포기다. 그러나 이것을 포기하면 기독교의 진리와 핵심을 잃는다. 다른 것은 변할 수 있지만 이것은 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변종 나르시즘

 


그러나 미국에서 나타나는 ‘변종 나르시즘’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자신에게 효과 있는 믿음이라면 무엇이든 믿을 수 있다는 종교적 성향이 한국교회에서도 나타날 여지가 충분하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 출석할 때 하나님이 내게 어떤 복을 주실 것인가를 저울질 한다. 교회 출석은 선택사항이다. 이 선택 사항은 타종교에도 문을 열어놓고 환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령의 인도와 회개케 하는 구원의 역사는 미미하게 일어난다. 예수를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공식을 외듯이 믿고, 삶의 변화가 없는 지식적이고 의지적인 영접은 매우 위험스러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너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성공회가 다른 교단보다 혼합주의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긍정의 신학은 미국 교회를 덮고 있다. 자기계발서 같은 설교와 주장이 미국교회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은 “내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룰 수 있다”는 “내가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면 가능하다”는 것으로 바꾸었다. ‘생각’을 ‘믿음’으로 환치했지만, 이 믿음은 하나님에서 출발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전자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 긍정의 신학을 환호하고, 교회 교육의 주요 메뉴로 가져왔다. 매우 위험한 사상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과 혼적인 능력은 매우 활발한 문화적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가인이 놋 땅에 거하면서 이룩한 눈에 보이는 것들처럼 말이다.


누룩의 성령 역사


그러나 영적인 성령의 역사는 눈에 그다지 띄지 않는다. 매우 느려 보이며, 누룩처럼 보이지 않게 확산된다. 성격이 급한 이들은 이 방법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선동하고, 주장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뭔가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당장 결과물을 얻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성령의 감동과 이끄심이 없이 감정적인 충만을 성령의 충만으로 오인하면 어떡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누룩을 택해야 한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선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인도하심에 의지하는 의존적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개입하고 통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권리의 포기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21세기 교회를 향한 도전은 20세기와 다른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전략을 짜기 전에, 대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전에 우리의 순결과 본질적인 믿음을 점검해야 한다. 21세기에 교회가 직면한 위기의 파도를 넘길 수 있는 힘은 우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한 선언 가운데, 우리의 순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앞장서서 나가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특별하다. 그리고 그분만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혼합과 다원의 요구 속에, 우리의 이 답변은 변할 수 없는 절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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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신학/ WCC 3차 뉴델리 총회 /종교 상대주의/ 기독교 절대주의/ 기독교 보편주의/ 토착화신학 민중신학 과정신학


종교다원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신학이란 ‘다양한 구원의 길과 종교 상징체계가 존재하며, 따라서 특정 신의 이름과 구원의 방도가 배타적인 우월성을 지녔다는 주장은 용납될 수 없다’는 종교 신학적 이론이다.


칼 라너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계시고 처음부터 구원하려는 사랑과 긍휼로 사람을 만나셨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만민을 사랑하시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접목되지 않았던 사람을 모두 지옥에 떨어뜨리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주장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적 종교사학자 트뢸취는 ‘기독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 상대주의’를 주창했다. 하나님은 유한한 것들과 동일시될 수 없지만 신성도 역사 속에 주어졌을 때는 상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이고 유일한 하나님의 자기계시란 있을 수 없다. 기독교의 복음마저도 다양한 종교적 구원 체험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20세기의 탁월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틸리히는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신이 어느 특정한 방법으로만 현현한다는 특별계시의 주장을 배제하면서, 타종교에도 계시적 접촉이나 신과의 만남이 있다는 ‘기독교 보편주의’를 표방했다. 그에 의하면 ‘이제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이나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 불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기 성찰과 대화를 촉진시켜야 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는 모든 종교에 공통되는 하나의 ‘신’, 혹은 ‘신을 초월한 신’의 개념을 제시하며 ‘신 중심주의적 사상’을 강조한다.


WCC는 제 3차 뉴델리 총회(1961)때부터 타종교에 대한 부정적이고도 배타주의적인 입장과 전격 결별하기 시작했다. 뉴델리 총회는 타종교를 ‘다른 신앙’으로 표현하고, ‘다른 신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1979년의 킹스턴 총회에서는 사마르타를 중심으로 한 중앙위원회가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지침’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영국의 종교 철학자요 신학자인 존 힉은 라너와 같은 신학자들이 신실한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유대교도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는 옛 교조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입장’이라고 비난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종교가 하나의 실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유신론적(인격적 종교), 혹은 무신론적(비인격적인 동양종교) 양태를 보이는 것은 오직 역사적, 문화적 혹은 심리학적 차이에서 온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모든 종교들은 근본적인 통일성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종교다원주의


미구 퓰러신학교 이정석 교수에 의하면 ‘한국의 종교다원주의는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 그리고 과정신학에 의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과정신학’은 불교를 최고의 종교로 보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근거해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융합을 추구한다. 따라서 불교의 논리를 내세우며 ’종교는 달라도 구원은 하나‘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끝없는 고통을 야기하는 생의 윤회로부터 해방하고 탈출하는 해탈의 구원을 추구하며, 해탈을 성취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주장된다. 따라서 산을 중심으로 발전한 불교는 어떤 길을 택하든지 정상에 도달하면 된다는 다원적 입장을 취해 왔다고 한다.


한국의 종교 다원주의는 과정신학연구소가 있는 클레어몬트신학교에 유학 온 변선환, 김경재 교수 등에 의해 주도됐다. 변선환 교수는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여 감신대 학장직에서 해임되었으며, 김경재 교수는 대승기독교를 주창하며 기독교와 불교의 접목을 시도했다.


이들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와 구원은 불가분리하기 때문에, 그들은 타종교에도 그리스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익명의 그리스도’(anonymous Christ) 혹은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라는 개념을 사용해 유대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졌듯이, 타민족과 타종교에는 ‘다른 이름의 그리스도’가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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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요한23세 종교간 대화/ 배타주의 포괄주의/

 

종교다원주의가 기독교에 미치는 위기고찰과 대응자세


현대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시대이다. 아득한 인류의 기원 이래 인간의 의식이 확대되고 그 의식이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됨에 따라 각각 그 자신의 궁극적 해답을 제시하는  수많은 종교들이 존재해왔다. 다양한 종교의 공존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 수세기 동안 종교간의 갈등과 분쟁이 세계사에 긴장을 조성해 왔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종교 자체의 본질과 종교들간의 상호작용,나아가 현재 팽배해지고 있는 다원주의적 경향속에서 종교의 역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기독교만이 참종교요 절대 종교라고 믿는 기독교 절대주의 (Christion absolutism)의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절대 종교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위가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는 기독교의 자기 이해를 위한 주제가 된 동시에, 다원주의는 기독교인에게 큰 도전과 위협이 되었다.


기독교처럼 자신을 절대적으로 유일한 종교 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라고 주장하는 종교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인류는 어느 특정종교 하나가 제시하는 신념체제에 의하여 구원 받을 수 없도록 다원화된 세계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의 기도만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이론을 주장함으로써 기독교를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논리들이 혼란하게된 다원주의 시대속에서 종교다원주의가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과 다종교 시대속에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종교다원주의의 발생 배경과 주요사상,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의 반응,내제하는 문제점등을 살펴봄으로서 고찰(考察)해 보기로 한다.                        

        

A.종교다원주의의 발생 배경


아담과 하와 이후 부터 지금까지, 종교다원화의 문제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 왔다. 구약 시대의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들의 관계 문제,교부시대의 기독교와 고전문화의 관계문제,그리고 현대의 종교 혼합주의로 인식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가 그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기독교는 절대주의의 입장을 고수해왔다.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에 의하면 종교적 다원주의 문제는 교회가 다른 신앙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었던 선교지 최일선의 선교사들과 비교종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최근 한국에서 퍼져가는 종교신학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다원주의와 때를 같이한 신학이다. 이 WCC의 종교다원주의를 또한 종교다원주의의 발생점으로 본다.  한편,과학의 발전도 들수 있겠다.

 
가. 선교사들

 

기독교는 313년 로마제국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공인받게 되며 데오도시오스 황제 치하(379-395)에서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됨에 따라 로마 제국과 기독교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로마 제국은 기독교 왕국이 되었고 제국의 안정은 교회의 안정과 직결되었다. 이에 따른 18,19세기의 기독교 선교정책은 식민주의적,제국주의적 이었다. 서구의 종교가 동양의 나라를 점령하면,선교사가 뒤따라 들어가 기독교로 그 지역의 종교를 점령하는 정책이었다.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전통적인 선교의 목적이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확산에 도움을 주지만,정복식의 선교정책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54년 인도 정부는 개종을 주 목적으로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철수하도록 명령했으며,그 후 선교사들은 각지에서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선교상황이 이론과 실제 양면 모두에서 위기에 처하게 되자,다른 신앙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었던 선교지 최일선의 일부 선교사들에 의해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그와 대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비교종교학자들


비교종교학이 발전함에 따라 비교학자와 종교사 연구가들을 통해 다른 종교가 기독교와 동일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일어나게 되었다. 19세기 종교사학파의 대표자 트뢸치(Ernest Troeltsch,1865-1923)가 기독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의 상대주의를 주장했으며,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며 제 각기 진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어느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 할 수 없다. 이렇듯,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비교하는 사람들에 의해 종교다원주의가 일어났다고 볼수 있다.

       

 

다. WCC

 

WCC안의 다원주의적 동향은 1928년 예루살렘에서 개최한 제2차 세계선교 협의회(IMC)에서 이미 폴(K.T.Paul)과 차오(T.C.Chao)에 의하여 나타났다.

 

그리고,종교다원주의적 관심은 1938년 탐바람에서 개최한 제3차 IMC대회에서 크래머(H.Kraemer)와 충돌을 격은 후 잠잠해 졌다가,1950년에 타종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1961년에는 뉴델리에서 개최한 제3차 WCC총회에서 종교다원주의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 총회에서 인도신학자 더바너난단(P.Devanandan)은 피조물의 영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영과 타종교들의 다양한 종교체험을 혼돈함으로써 쟝교뎌?隙瑛퓔? 수립하려고 했다.

라. 과학의 발전

 

과학의 발전도 종교적 다원주의의 발생을 촉진했다고 볼수 있다. 16세기 이후 유럽에 발견과 탐험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콜롬부스,마젤란등의 탐험으로 기독교 세계밖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거기에 기독교와 서로 다른 종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역사,인류학,과학 연구가들이 인류 기록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세계의 다른 곳에도 종교의 유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게 되자,동서의 활발한 교류를 통한 서구의 기독인들이 다른 종교권의 사람들과 빈번하게 접촉하게 되고 그들의 종교에 관한 문헌에 긴급하게 일어났다.

 

B. 종교다원주의의 중심사상

       

가.종교의 상대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상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첫번째 사상이다.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상대성을 띈다는 것은 기독교와 큰 차이점이 될수 있다.

 

트뢸치는 "역사주의에 의한[순전한 상대주의 ]역사주의의 극복"에다 초점을맞추었다.   뢸취의 역사주위에는 세계에 내재할 뿐 아니라 세계에 대해 초월적이기도 한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즉 하나님의 실재를 배제한다. 그리고,그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실질적인 근거를 오직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경험적 혹은 "과학적" 관찰에서만 온다. 물론 창조주 하나님은 과학적으로 관찰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순전한 상대주의의 심각한 가능성과 싸워야 했다. 그의 "역사의 형이사학"에도 불구하고,그의 최후의 말은 "상대성 속에 있는 절대성"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트뢸취의 "신앙"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순전한 상대주의에서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트뢸취는 하나님의 계시가 모든 사람,모든 종교에 주어졌다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있었다.

 

이와 같이 모든 종교를 상대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유일회적인 성육신이요 전 인류의 구원자라고 믿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와 모순된다.

    

나. 신념의 동일성

 

세계 60억 인구중에서 15억만이 예수를 믿고있다. "나머지 45억은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들이 생기게 된다. 이런 물음들 속에서 모든 종교는 같다고 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만약,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 다면 시간과 공간,문화와 상황을 넘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며,깊이 관찰해 보면 모든 종교는 동일하고 단지 모든 문화와 상황 배후에는 하나의 신,즉 공동의 본질이 있고,이것에 도달하는 방법이 각 종교마다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종교가 공동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기독교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계시의 유일회성과 규범성의 궁극성에 대한 신앙을 부정한 것이 되버린다.


다. 심리학적 기원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이 무의식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초조의 심리학적 사건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절대성을 부정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같은 학자들이 종교를 심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현대 심리학자들의 시도로서 모든 종교를 각 개인에게 공동으로 존재하는 심리학적 과정으로 본다. 이러한 융의 주장은 종교를 지나치게 주관주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예수의 유일회성을 부정한 것이 된다.          

 

 

C.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기독교의 반응


가. 기독교

 

기독교는 배타적인 선교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종교다원주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혹스러한 문제였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의 주장은 예수의 유일성과 보편성에 근거해 왔다. 그것은 예수가 완전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조에 의하여 교회는 스스로 모든 진리에 있어서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는 고립된 생활을 자랑스럽게 영위하고 외부 세계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다른 종교와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 요한 23세가 "쇄신과 적응(aggio-rnamento)"이라는 슬로건을 공포한 후 로마 카톨릭 교회는 변화를 겪게되었다. 다른 종교 전통들과 대화를 시작했고,'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이 포기되었다. 그리고 다른 종교의 정신적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타종교와의 만남에 대한 반응은 세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1)폐쇄적인 배타주의

 

바르트는 모든 종교를 은총에 의한 계시의 경험과 변증법적으로 분리시킴으로써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에 반격을 가하고 기독교를 신의 은총과 계시가 나타나는 유일한 종교라고 주장한다.

       


2)개방적인 포괄주의

 

다른 종교를 통한 신의 은총과 구원의  행위를 인정하고,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구원 계시의 최종성,독특성,규범성을 주장한다.

   

①  칼 라너(Karl Rahner)

 

칼 라너의 신학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를 존중하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긍정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다. 라너는 다음의 네가지 명제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한다.

 

첫째,기독교는 모든 사람을 위한 절대적인 종교로서 자신을 이해하며,그러므로 어떤 다른 종교도 그것과 같은 것으로 인정될 수 없다.

 

둘째,복음이 한 개인의 역사적 상황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비기독교적인 종교는 그 개인을 위해서 하느님에 대한 자연적인 지식과 은총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셋째,그러므로 기독교는 다른 종교의 성원을 단순히 비기독교인으로서 대할 것이 아니라,익명의 기독교인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넷째,교회는 스스로를 구원에 대한 권리를 가진 배타적인 공동체로서가 아니라,오히려 역사적인 선구자,다른 종교에 숨어 있는 실재로서 나타나 있는 기독교적 희망의 명백한 표현으로 여겨야 한다.

 

이러한 4가지 명제를 통하여 라너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은 은총과 그것에 대한 명백하고 완전한 기준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동시에 수용한다. 결  라너의 입장은 타종교가 그리스도의 참된 보편적인 교회로 수렴되고 성취된다는 교회 중심주의적 입장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타 신앙인에 대한 보다 '낙관적인' 그리스도교적 태도를 밝히고,타신앙도'익명의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서 그리스도교의 배타주의를 깨트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 세계의 종교다원주의와 종교의 자유를 진지하게 고려한 것일까 하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② 폴 틸리히(Paul Tillich)

 

폴 틸리히는 유한적인 현현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확증하려고 했다. 그에 의하면 계시 경험은 인간에게 보편적이고,모든 종교에는 계시와 구원 능력이 있다. 계시는 유한한 인간에 의해 수용되기 때문에 항상 왜곡되며,따라서 신비적,예언자적,세속적인 종교비판이 가능해진다. 틸 히는 다른 종교들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타종교들로부터의 비판을 수용하는 개방된 그리스도교의 태도를 예로 제시한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를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을 개종시키려는 대신 자기 비판과 대화를 모색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궁극적 실재를 지향하는 역사상의 모든 종교들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신학적 다원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는 열등한 다른 종교들을 배재하거나 포괄하는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최종적인 계시인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중심으로 타종교를 관계를 맺는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관계적 절대성(relational absoluteness)'이 입증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종교적 다원주의

       

① 존 힉(John Hick)

 

힉은 다른 종교에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오늘날 서구 신학에서 지배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접근과 상이한 신 중심적 모델을 제안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독실한 이슬람교인이나 힌두교인,혹은 유태교인들을 "익명의 기독교인(an anonymous Christion)"으로 간주하는 칼라너와 같은 신학자도 여전히 하나님보다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위치시킨 해

묵은 교회안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단지 기독교인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그래서 우리는 경건하고 독실한 비기독교인들을 어떤 형이상학적 의미의 기독교이거나,혹은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알지 못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힉은 프톨레마이우스의 천동설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유로 들어 그의 입장을 전개시켰다. 프롤레마이로스의 천동설에서는 지구를 다른 혹성들이 그 둘레를 공전하는 태양계의 중심으로 보았기 때문에,프롤레마이오스 시대의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가 종교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진다. 다른 종교들은 기독교의 주위를 맴 도는 것으로 여겨지며,기독교와의 원근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기도 한다. 힉은 그러한 프롤레마이스적인 접근이 다른 종교에 의해서도 마찬가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힉은 그리스도교 종교신학의 문제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문제인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을 재해석함으로써 그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힉 신학은 칸트적 배경위에 있다. 하느님은 인간 경험에 의해 구조화된 선험적인(a priori) 관념이다. 그러나 잠재된 문제는 힉이 "신"이란 용어를 불교인이나 아드바이타 베단타(Advaita Vedanta,불이일원론)의 힌두교인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선험적인 것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다.

       

 

② 파니카(R.Panikkar)

 

파니카는 기독교와 힌두교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대화의 삶을 살아왔다. 로마 카톨릭 내에서,파니카의 저술은 종교간의 관계를 다루는 영역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종교들 사이의 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범 세계적'일치운동을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종교적 차이는 생동적인 힘을 발휘하며,'근본적인 종교적 사실'에 대한 각각의 해석과 각각의 이름들은 '순수하게 초월적'인 것만도,순수하게 내재적인 것만도 아닌 그 신비를 풍요하게 규정한다.

 

파니카에 있어서 삼위일체는 모든 종교의 진정한 영역 차원이 기독교적 사상안에서 함께 만나는 접합점이다.                       

 


D.종교다원주의에 내재하는 문제점

          

가.선교 활동

 

어려움이 분명히 드러나는 곳은,자가 자신의기준을 타자에게 부과하는 문제가 타자를 개종시키려는 노력으로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선교 활동에서이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확신을 타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어려움은 자신의 설교나 가르침을 타자에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과 방향성이 투쟁적이거나 배타적으로 될때,그 결과로서 생기는 것이다. 다원주의는,우리 자신의 특수한 종교 이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점을 늘 요구해 올것이다.

 

이러한 다원주의에서는 모든 종교는 표현 방법과 규정내용 및 의식이 다를 뿐이지 결국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또는 다른 명칭의 조물조께로 인도하고 있다는 주장으로서,어떤 종교든지 열심히 그리고 종교가 요구하는 율법과 교리를 성실하게 준행하기만 하면,구원을 받게 된다는 식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한편 또다른 주장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데,다른 종교에도 그리스도가 숨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속한 문화권에서 믿고 있는 종교를 성실하게 믿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반드시 기독교를 믿어야 할 이유가 없고,불교도나 회교도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나. 평등

 

현대의 종교다원주의에 있는 또 다른 어려움은 "평등"에 대한 헌법상의 진술(미국과 인도의 헌법속에서 발견되는)과,개인의 이해에 있어 각 개인들을 영적인 깨달음의 다양한 단계들에 걸쳐 있는,따라서 평등하지 않은 존재로서 이해하고 있는 종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그러한 갈등이 생길때,평등과 요청은 힌두교와 같은 종교의 교훈과 관행들을 합법적으로 짓밟고,그렇게 함으로써 종교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평등의 문제는 현대의 문화와 종교의 다원주의에 의해 야기된 많은 문제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종교적인 전통및 인식과 세속적인 전통및 인식이 서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다. 배타주의

 

종교다원주의의 창조적 기여에 대한 한 가지 위협은 때때로 몇몇 종교인들이 다원주의의 도전에 투쟁적인 배타주의로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대응은 현대 이란이 역사가 증명해 주듯이,보통 영적인 침체와 "종교적 폭력"을 야기시킨다는 점에서 항상 유감스러운 것이다. 가정에서처럼 상호 존중과 상호 인정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간의 차이의 수용은 선을 위한 강력한 촉매가 될 수 있다. 자기 중심적인 편협한 마음은 항상 파괴적이며,어떤 종교 전통에서는 진정한 종교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E.종교다원주의에서의 기독교의 대응책

       

가. 기독교적(성서적)인 자세

 

한스 큉(Hana Kung)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비기독교 민족이 서구의 기독교 민족을 수적으로 훨씬 앞질러 갈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통계를 생각할때도 당신들은 여전히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고 감신대의 변선환 교수는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면 인류의 대다수는 신의 저주를 받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함으로,기독인만 구원받는다는 기독교 전통적인 견해를 그대로 받이들일 수 없다는 큉의 주장은 너무나도 자명하다"고 했다. 또 홍정수 교수는 "우리의 신은 제 자식만 사랑하는 편협한 인간의 마음을 가진 신인가? 아니면 악인에게도 비를 내리고 자비를 베푸는 가없는 은총의 신인가? ... 하나님께서 만일 무신론자나 이교도까지 사랑한다고 하면 우리는 당연히 그들을 포용하고 사랑해야한다."라고 말을했다.

 

이와같은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인도적인 관점으로부터 기독교와 다른 종교 문제에 접근하여 합리적으로 구원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진리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성경을 오도하는 것이다.

 

우선,"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의 질문에 대답할 줄 알아야 한다. 존 힉(John Hick)은 "예수를 성육하신 성자 하나님이셨다."는 진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한다. 그것은 사실에 대한 진술인가? 그 의미는 문자적인가,비유적인가,상징적인가,신화적인가,아니면 시작인가? 그리고 그는 예수가 사람이자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원이 사각형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런 질문과 주장들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성자 하나님이 신적인 특성을 가지고 계시며,성육신을 통해 인간의 특성을 지니게 되셨고,그 양자가 그분의 신적인 인격의 통일성 속에서 '유지되고'결합되었다.그러므로 그분은 한 인격으로서 참 하나님이시며,참 사람이시다. 또한,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고전1:21)라고 말씀하셨다. 종교다원주의는 하나님의 계시대신에 인간의 이성과 인도주의에 근거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를 전개해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영역 밖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분명히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종교다원주의 자들의 또 다른 주장인 본질은 하나이고 이름만 다른 하나님이란 주장에 성경은 이렇게 답한다.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출20:#i  너희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찌니라"(출23:24),"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시96:5),"너희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외에 다른 신이 없는니라"(사44:6)

 

하나님께서 만약 타종교와 같은 신,이름만 다르지 동일한 신이라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겠는가? 다른 한편 구원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몇 교수들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여 큰 혼란을 야기 시켰는데 성경은 여기에 이렇게 답한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행4:12),"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1:8)

 

인간의 구원의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임에도 다원주의자들은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하며,이렇듯이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고 이를 다른 복음으로 대치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들을 보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2:8)라고 말씀하신다.

       

 

나. 대화의 자세

 

한스 큉은 [세계 도덕성의 과제]라는 책을 선보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계도덕이 없는 생존은 없다. 종교 평화가 없는 세계평화는 없다. 종교대화가 없는 세계평화는 없다." 결국 추구되어야 할 세계도덕은 서로 다른 종교들간의 대화로 부터 비로서 정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들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종교진리에 대한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진리광신주의자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절대적 진리이고 다른 모든 종교는 거짓 종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종교적 평화는 하나의 참된 종교에 의하여 달성되고 보장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종교적 제국주의와 패권주의,배타주의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다른 종교가 기독교에 의해서 "완성"혹은 "보다 성숙"되어질 수 있다면,기독교도 타종교에 의해서 "보다 더"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대화를 주장하는 것이 기독교적 정당성을 지니지 못한다면,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대화하여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서,자기 신앙을 감추고서 대화에 임하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대화에 이르는 길에서 신의 보편성과 종교의 특정 진리에 대한 절대적 헌신을 향한 인간적 욕구가 모두 강조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종교들이 서로 다른 빛을,그것을 필요로 하는 영혼의 서로 다른 세계에 비추어줄 수 있는가?" 라  타고르가 제기한 물음이 함축하고 있듯이 서로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겸허하게 인정하고 대화를 경험하면서 기독교인들은 보다 나은 기독교인으로 영적인 깊이를 더해야 되겠고 사랑과 봉사의 헌신적 삶을 통하여 보다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할것이다.

       

 

다. 선교에서의 자세

 

이러한 다원주의 상황에서 선교관은 성경적인 선교관과 판이하게 달라진다. 다원주의적 선교의 목적은 인간화이며 세계평화 공동체의 형성이므로 우상숭배와 불신앙으로부터의 회개는 요청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은 "개종을 목적으로 선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복음전도와 하나님께로의 회심이 아니라,오히려 탈기독교적 탈고백적,탈사도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선교에서 우리는 먼저 상황인식을 먼저 해야된다. 복음은 어느 선교지에서든지 현지문화와 충돌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의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려면 선교현지의 문화를 보면(물론 문화 자체를 놓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기독교 문화 보다 열등하다. 그 문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그 문화속에서,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불변하는 진리인 복음의 메시지가 단지 표현 방법이 다른 즉,다양한 "포장"을 하고 전달될때 선교지의 상황은 쉽게 파악될 것이다.

 


둘째,복음의 순수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복음의 순수성은 먼저 성경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그 내용의 정확성과 무오성을 믿으며 크리스챤의 신앙과 삶에 있어 최선의 기준과 척도가 된다는 것을 믿어야하다. 그래서 복음은 어떤 문화나 상황에서도 수정되거나 부인할 수 없는 메시지이며,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불변하는 영적인 원리이다.                        


결론

       

현대의 다종교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종교간의 갈등이 있어서는 않되고,종교 사이의 평화야말로 세계평화를 위해 긴요한 조건임에도 종교간의 갈등이 전쟁과 다툼을 유발시키는 어두운 현실임을 보아왔다.

 

종교는 개인은 말할것도 없이 집단과 사회 더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평안과 화목,행복등을 가져다 주는 매개체임을 안다. 그래서 이런 다종교 사회에서 갈등과 오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대화를 통해서 극복해야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타종교를 이해하고,또한 타종교에게 우리의 종교를 이해시켜야 한다.

 

다종교들 사이에서는 많은 유사점들이 있는데,타종교들이 말하는 신(god)은 우리 기독교의 신(God)과 비교될 수 없을 뿐더러 절대적 진리인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도 안될 것이다. 그리고,우리 기독교의 독특성과 당연한 진리들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물론 기독교의 절대성을 강조하면서 타종교를 배타적으로 취급하여 갈등을 일으켜서도 않된다. 그러므로 선교적 차원에서도 타문화를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속에 살며 그 문화속에서 서서히 문화와의 충돌없이 전해야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다.

 

또,기독교의 구원은 타종교들의 구원의 개념과 다름을 알고있다. 원죄로 인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죄의 굴레속에서 해방되어,영생을 누리며 하나님과 접촉하는 삶을 사는 것이 구원이며,"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는 주장을 너그럽게 보아줄 수 가 없는 것이다. 이 많은 논쟁들 속에 성경은 답을 주신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요14:6),"다른 이로써는"(행4:12) 아버지께 갈자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렇다. 다종교 상황속에서 기독교는 흔들리지 말고 진리를 보존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넓게 전해야한다.                    

 

***** 참 고 문 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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