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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저는 서서평 선교사님의 인생에 대한 책을 읽으며 저는 오직 서서평 선교사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를 기대하며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책의 전반부가 서서평 선교사님 외 다른 분들의 얘기와 선교 역사들이 실려 있어 많이 실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선교 역사를 읽어 나가면서 우리 조선에 많은 선교사님들이 파송되었고, 섬김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음을 알게 되면서 놀랍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선교지역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이를 분산시키고자 선교회들이 모여 선교분담 논의가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왔음을 볼 때 “그들의 유산으로 영적 부요의 마당에 선 우리들”이란 말이 와 닿았습니다. 또한 그분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온갖 고난과 위험 가운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김과 희생을 하고 떠나가셨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찔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회, 나아가 저의 복음은 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위에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에 보이는 헌신과 섬김만 보다보니 매 순간 불평, 불만이 넘쳤다. 무엇보다 저는 교만하였습니다. 제가 센터에서 모임을 준비하고, 무언가 일이 맡겨질 때면 마치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우쭐해졌습니다. 역시 나밖에 없다, 나니까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교만해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남들보다 많은 일을 하니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훌륭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정죄를 일삼고,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었습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러한 저의 행동들이 어린아이의 어리광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고 매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희에게 이렇게 편하고, 부요한 신앙의 기틀을 만들어 주신 선교사님들께 감사합니다. 또한 그러한 선교사님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신 헌신을 배우고 따르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중반부터는 이제 서서평 선교사님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그녀에게는 이러한 아름다운 이름이 있음에도 ‘서서평’이라는 조선이름으로 몇 십년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조선인들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조선인들의 주식인 된장을 먹으며, 전통치마에 고무신을 신고 반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처럼 그들의 아픔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낮아지고 낮아졌습니다. 이를 볼 때 어떤 감미로운 미사여구보다, 어떤 논리적이고 명쾌한 말보다 자신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같이 아파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예수님의 사랑이 이러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섬김을 할 때 항상 자신은 상급자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내가 특별히 희생해서 남을 돕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섬김에 인색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분명한 뜻이 없어 손해만 본다고 생각하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왜 이러고 있는것인가?하며 신앙생활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이러한 저의 부정적인 생각은 다른 누구의 문제도, 다른 어떤 현실의 문제도 아닌 저의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게 사랑이 없었고, 내게 심정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섬김은 진정한 섬김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헌신은 나의 의를 세우기 위한 일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인정과 자신의 의를 위해 살아온 저의 모습에 죄책감이 듭니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조랑말을 타고 온갖 위험가운데 먼 길을 전도하러 다니시며, 자신이 병으로 고통하면서도 한명이라도 더 섬기고자 밤이 세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헌신하셨습니다. 결국 서서평 선교사님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정말 자신의 생명이 다하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푸셨습니다. 그동안 저의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회개합니다. 책의 내용 중에 서서평 선교사님을 표한한 말 중에 “소유가 아닌 나눔을 통해 진정한 복음의 길을 나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소유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나누며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서서평 선교사님은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구호활동과 교육활동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조선간호협회와 이일학교,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시설과 병원, 14명의 길거리 고아들을 입양하는 등 낮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활동에는 그저 섬기고자 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낮은 자들을 보며 꿈과 비전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센병, 당시에는 천병이라는 나병에 걸린 환자들을 보며 그저 불치병이라 포기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을 수 있다,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또한 멸시받고 천대받으며 어디 가서 한명의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과부들에게서 사회적 리더로서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그저 돕고자하는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회복시키고 변화시키는, 구원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할 때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던 여자들을 위한 학교인 이일학교를 세울 수 있었고, 과부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광주의 복음 역사가 흥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생각지 못한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낮은 자들을 보며 남들과 같이 한숨 쉬지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서 큰 꿈을 꿀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전도를 할 때 양들에게 별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안 온다고 요즘 애들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정 없이, 용기 없이 복음은 전하지는 못하고 그나마 관심있어하는 동아리에 대한 얘기만 하였습니다. 또한 전도할 때 믿음이 출중하신 목자님들이 전도하시면 더 잘 될거다, 내가 하면 올 애도 안 온다, 목자님들이 하시면 양들이 예배에 올거다하는 마음으로 전도에 나가서도 내가 양들에게 번호를 받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붙잡고 목자님들께 인도하기만 하였습니다. 이것이 최선이다, 이것이 양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지금까지 마음없는 전도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전도였습니다. 마음이 없고 심정이 없는 형식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양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매정한 행동이었습니다. 양들이 변화되어 믿음의 거목으로, 영적 리더가 될 것이라는 희망보다, 이들을 돕기위해 얼마나 희생해야할까? 이들을 얼마나 도와야할까? 걱정하며 양들을 골칫덩어리로, 도와야하는 짐덩이로만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양들은 변화되어 영적 리더가 될 비전이 있습니다. 저 또한 소망이 없는 자였지만 목자님들의 섬김과 헌신에 이렇게 변화되어 사람답게 살게 되었습니다. 양들 또한 그러리라 믿습니다. 양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교사가 될 수도, 스탭 목자가 될 수도 있는 거목들입니다. 제가 희망이 없다하며 부정적인 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며 꿈과 비전을 품어야겠습니다. 그들을 변화시키고자 심정을 갖고 도와야겠습니다. 서서평 선교사님과 같은 낮아지고 꿈을 꾸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 더욱 다가가는 섬김의 삶을 살고자 투쟁해야겠습니다.

서서평(본명 Elisabeth Johanna Shepping) 선교사

출처 : http://cafe.naver.com/studentconference/6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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