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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보편적 그리스도 /계시의 상대성 /배타주의 포용주의 /심리학적 종교다원주의/ 로고스 기독론/ 우주적 그리스

 

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의 흐름

 

현대인은 싫든 좋든 다원주의 사회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최대의 난점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에 대한 도전을 어떻게 수용할까하는 점이다.


  

다원주의를 언급함에 있어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과 종교적 다원성(religious plurality)는 구분되어야 한다. 다원주의와 다원성은 같은 것은 아니다. 다원성은 단순히 기술적인 용어(descriptive term)이다. 이 용어는 많은 종교들이 있으며 사람들은 그것들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다원주의는 하나의 정책이나 계획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사실을 진술하는 것에 자기 자신을 제한 시키지 않는다.  종교적 다원성은 문화적 다원성과 같은 것으로, 그 안에서 불가피하게 피할 수 없이 종교와 문화(혹은  오히려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들)가 만나게 되고, 이들은 합께 살아가야 할 길을 발견하는 곳은 어디든지 종교 다원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원문화주의처럼 종교다원주의는 같은 마을이나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주장되는 사회적 이론으로, 인간은 종교적 가치를 포함하여 서로의 가치를 수용해야하며, 그들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원주의의 기본전제는 모든 종교는 동등하거나 동등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애서 출발한다. 이것은 각종교의 창시자나 그 종교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이 동등하게 타당하거나 타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에 직면한 오늘의 기독교를 페린더(Geoffrey Parrinder)는 제3의 종교개혁으로 보고 있다.  루터가 로마 카톨릭에 대하여 일으켰던 개혁과 19세기의 신학적인 물결을 제2의 종교개혁으로 보고 그리스도교가 타종교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것을 제3의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명명되어진 종교다원주의의 배경을 살펴 보도록한다.

 

 

종교다원주의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1. 에른스트 트뢸치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며 한계가 있고 진리와 실재를 바라 보는 하나의 길이기 때문에 상대적이라는 인식을 정직하게 한 기독교의 종교 사학자는 트뢸치 였다(1865-1923). 그는 본 대학, 하이델베르그 대학, 베르린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 했던 종교 사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트뢸치는 종교적 역사적 다원주의의 실체를 인식하고 그러한 다원주의의 실재가 자신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관해 배운 바와 어떻게 충돌하는가를 실감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시대의 징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응답해야 한다고 느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리스도교는 부적합성과 맹목적 신앙의 위험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트뢸치는 그의 시대의 역사적 의식과 그가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들 속에서 인식할 수 있었던 바, 흔들리지 않는 종교적 위임 및 가치들에 대한 필요성, 이 양자 사이의 갈등과 주로 씨름 하였다.


한편으로 19세기의 지적 계시 및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의식이 있었다. 인간은 단지 이성적, 사회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또한 “역사적” 존재 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은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것과 인간이 생산해 내는 모든 것은 그의 역사적 콘텍스트에 의하여 한계 지워지며 역사적 발전의 법칙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콘텍스트는 하나로 획일화되지는 않으며 항상 변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콘텍스트 내의 모든 것들은 -인간의 문화와 지식 전체를 포함해서- 제한적이고 동시에 변화 한다. 한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이러한 것은 다른 역사적인 상황 가운데서는 그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인간적 업적들의 역사적인 성격은 모두 절대적인 것들, 즉 “하나이며 유일한” 혹은 불변의 진리를 배제한다.  그렇다면 복음의 확실한 불변적 진리는 역사적 의식 및 그것이 부과하는 상대성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트뢸취의 마음을 어지럽혔던 갈등이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과 역사적 상대주의 상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트뢸치는 신은 실로 초월적이며, 유한자 보다 크시고 유한자와는 동일시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적 현존은 유한한 역사의 전개 속에서 발견 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그의 생명을 갖고 있다고 본다. 신성 혹은 절대자는 역설적으로 역사를 초월한 동시에 역사 안에 존재한다. 무한자와 유한자 사이에는 참여, 연속성, 그리고 공유의 형식이 있다. 트뢸치에게 있어서 신은 “역사와 인접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트뢸치는 이것을 인간의 정신적 내부에 있는 “종교적 아프리오리”-인간 본성 속에 새겨져 있는 바 신성에의 선천적 정위 또는 신적인 경험-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트뢸치에게 있어서 이러한 종교적 아프리오리, 즉 신성한 것을 향한 타고난 충동은 단지 개인의 내적 경험 속에서만 -다시 말해 오로지 개인과 신 사이의 관계성 속에서만- 인식되고 실재되는 것은 아니었다. 트뢸치는 개인의 중요성을 고창한 것 못지 않게 우리는 본질 적으로 오직 역사 내에서만 존재 할 수 있고 또 자기 자신을 경험 할 수 있는 “역사적 존재임을 또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종교적 아프리오리는 오로지 역사적 과정 안에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만 살아 있을 수 있고 경험 될 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종교들이 등장한다. 종교들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의 신에 대한 느낌이 역사 내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띄게 되는 바 매개체들이다. 종교들과 종교적 아프리오리 사이에는 상호 의존 관계가 있다.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본질에 내재 되어 있는 종교적 아프리오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또 종교적 아프리오리는 종교들 없이는 구체적으로 존재할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뢸치의 입장은 세계의 모든 종교들은 모든 인류 속에 작용하고 있는 보편적 계시의 구체적이며 독립적이고 다양한 현현인 것이다. 트뢸치의 주장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은 공통적인 그 무엇, 즉 신의 현존 또는 신의 계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 종교는 그 현존의 서로 다른 역사적 현현이기 때문이다.


트뢸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들의 관계는 그의 저서 ꡔ그리스도교의 절대성과 종교사ꡕ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절재적 종교가 아니며, 어떤 주어진 시점에 그것의 환경을 구성하는 역사적 조건들로 부터 자유로운 전적으로 유일회적인 종류의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종교의 보편적 원리라고 생각되는 것의 불변적, 최종적, 무조건적 실현이 아니다. 다른 위대한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도 그 역사의 매 순간에 있어서 철저히 역사적인 현상이며, 모든 개별적 역사 현상이 직면하게 되는 모든 제한에 종속되어 있다”


트뢸치는 이렇게 종교의 상대성을 말하였는데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교의 우월성 내지는 규범성을 주장 하였다. 트뢸치가 주장하는 종교의 우월성의 기준은 두 가지 였다. 첫번째 기준은 그 종교가 인간의 마음을 얼마나 사로잡는데 성공 하였는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기준은 영성과 관계있는 것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 함에 있어서 트뢸치는 원시 종교와 윤리적 영적 위대성을 가진 종교들로 나누 었다. 트뢸치는 전자는 최고의 종교적 가치들의 문제와 무관한 것으로서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후자의 범주는 다시 구분하여 궁극적 존재를 다시 비인격적 존재로 보는 종교들(동양종교들, 힌두교 그리고 특히 불교)과 인격적으로 보는 종교들(유대교,그리스도교, 이슬람교)로 나누었다.  이 두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임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그는 또한 대담하게도 종교사 속에서 인격주의적 종교들의 보다 우월한 가치를 가리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격주의적 구원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최고의 그리고 가장 의미있게 발달된 종교적 삶의 세계이다’라고 했다.


종교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트뢸치의 견해를 따를 경우 기독교의 핵심적인 확신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 즉 나사렛 예수는 역사 내에서의 신의 유일회적 성육신이요 모든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고하는 확신과 상충함을 알 수 있다.


트뢸치는 모든 종교적 보편성을 인정하면서 주로 윤리적인 면에서 종교의 우열을 주장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 토인비

 

토인비는 신학자는 아니었으나 분명하고 떳떳하게 역사가로서의 그의 작업에 신학적, 혹은 종교적 관심을 이입 시켰다.


토인비는 종교는 본질과 역사 안에서 그 역할에 대한 분석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특징을 강조함으로써 시작했다. 각개 종교 안에는 “본질적인 권고와 진리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비본질적인 의식과 명제가 있다”고 그는 보았다 즉 모든 종교에는 각기 공동의 본질이 있는가 하면 서로 다른 독특한 특징을 소유하기도 한다고 본 것이다.


토인비는 7개의 중요한 세계종교(소승불교,대승불교,힌두교,유대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 및 배화교)에서 발견한 공통적인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1)우주가 궁극적으로 신비적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부터 나온다. 세계의 의미는 단순히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도, 인간성 안에 내포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2)우주의 의미는 절대적 실재 안에서, 그리고 우주 안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우주와 동일시되지는 않는 현존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3)그리고 이러한 현존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진리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갈망하는 선도 포함 한다. 그래서 인간성은 이러한 실재를 경험하려고 할 뿐만이 아니라 이와 조화 하려고 한다. 4)이러한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들은 스스로 그의 내적 자기 중심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각 종교들의 중요한 차이들은 종교의 비본질적인 것들 안에서 발견되어지는데 다음과 같이 그것을 열거 한다. 거룩한장소들, 제의, 금기들, 사회 관습들, 그리고 특별히 신화들, 교리들, 신학 학파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토인비의 보다 중요한 주장은 이러한 비본질적인 것들은 항상 재평가하고 폐기하고 대치하고 조정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라야 종교는 항상 변하고 있는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인비는 또한 종교에 있어서 공동의 목적이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그는 모든 종교의 기원은 악에 대한 인식, 즉 인간의 자기 이익이 세상 위에 초래케 할 수 있는 황폐성에 직면하는데 기초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어느 종교도 다른 종교들과의 참된 교류 없이 문화적으로 고립된 채 자기의 길만을 가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오히려 토인비는 다양한 세계의 종교들을 “어느 점에서도 우위성을 가질 수 없는, 종교 수만큼의 세계적인 디아스포라들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세계 도처에서 서로 혼합 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서로 다른 문화적, 영적 유산들은 점점 “전인류의 공동재산”이 될것이라고 보았다.


종교가 공동의 본질을 소유하고 있다는 토인비와 일치하여 종교 안의 공동의 핵을 인정하는 사람들로서는 칸트, 쉴라이에르마허, 오토(Rudolf Otto), 하일러(Friedrich Heiler), 호킹(Ernest Hocking), 슈리 라다크리슈난(Sriadhakrishnan) 등이 있다.


토인비는 종교에 있어서 비본질적인 본질적인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면서 그것은 늘 폐기되고 재조정 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심리학적-인간학적 사실과 상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어떤 구체적인 형태 혹은 상징을 통하지 않고서는 모든 종교 안의 보편적인 것은 단순히 취해지기 쉽게 거기 그냥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그체적인 현현을 통해-보편적인 것이 설혹 항상 어떤 구체적인 표현의 구속력을 깬다고 하더라도-그 자신을 현시화하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공통적 본질을 지닌다고 본 토인비의 종교 보편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계시의 유일회성,규범성,궁극성에 대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신념을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기도 한다.


토인비를 비롯한 종교 보편론자들이 가졌던 역사적 특수종교의 배타성을 비판한 점은 높이 살만 하지만 역사적 종교로 하여금 특유한 생명력과 고유한 유형적 특징을 제거해 버린 과오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

 

 

3.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적 종교 다원주의

 

인간의 ’마음‘이라고 포괄적으로 부르는 ‘정신’(Psyche)의 바다 심연에 모든 종교의 공통적 원형이 해저의 금광맥 처럼 놓여 있다고 주장한 것은 스위스의 분석 심리학자 칼 융의 인간 심성론은 특히 그의 집단 무의식의 원형론에서 집약적으로 표현 된다.


칼 융은 1875년 스위스에서 개혁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 났으나 곧 그리스교에 대한 그의 아버지와의 신앙심을 끊었다. 융의 연구의 결론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공동본질’과 ‘상대성’ 그리고 세계종교간의 대화의 필요성을 일관성있게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이다


칼 융의 무의식론에 의하면 무의식이란 “프로이드가 초기에 생각 했던 것처럼 의식으로 부터 억압되어 생긴 것만으로 구성 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으면서 의식에 의해 그것이라고 인식되지 못한채 정신 작용에 큰 영향을 주는 부분”이라고 보았다. 그는 특히 개인의 출생이후 특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적 무의식’과는 다른 선천적으로 존재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 성격을 띄게하는 ‘집단적 무의식’ 또는 ‘보편적 무의식’  을 강조 하였다.  무의식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이기도 한데 만약 무의식이 각 개인 속에 존재하는 보다 깊은 우물이나 샘으로 간주 될 수 있다면, 모든 개인적인 우물들은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곹통의 지하수로 합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적 무의식은 인간에게 주어진 여러가지의 근원적 유형(원형,Archetype)들에 의해 구성 된다. 근원적 유형 또는 원형이란 지리적인 차이, 문화나 인종의 차이와 관계 없이 존재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 유형을 말하는데, 이것은 신화를 산출하는 그릇이며 우리의 마음 속의 종교의 원천이기도 한것이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 안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신관념은 심리학적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무의식과 그 안에 담긴 신의 이미지의 현존으로 부터 기존 종교의 본질, 그것들의 차이, 그것들의 유사성에 관한 결론을 이끌어 내면서 모든 계시가 개인적, 집단적 무의식 속에 그 기원을 가지며, 최소한 그 기원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것 때문에 계시는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사건이다. 계시는 안으로부터 말하는 신 체험이며, 본질적으로 이것은 모든 인간존재에게 있어서 동일하다고 한다.


윌리암 제임스도 융과 같이 공통의 심리학적 기원을 말하고 있다. 종교들은 광범위하고도 필연적으로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본질적인 동일성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종교의 모든 영역을 살펴 보면 거기에 편린되어 있는 사상체계는 상당한 다양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행동은 거의 비슷하다. 왜냐하면 스토아 철학, 기독교, 불교의 성인들은 그 실천 면에서 보면 그 삶에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학적 기원에 대하여 마르틴 부버와 다른 많은 신학자들은 융이 초월적인 신을 인간의 한계 안에 가두어 놓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부버의 견해로는 융이 종교를 심리학으로 환원 시켰다는 것이다. 즉 신은 신성에 대한 능력과 느낌과 의식, 자의식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융은 신과 유한자는 각각 안에서 두 존재를 가진다고 보고, 또 이들은 구분되기는 하지만 서로가 없이는 실재할 수 없다고 본다.


종교에 대한 융학파의 접근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는 신학자, 철학자 그리고 인류학자들에 의하여 제기 되었다. 즉 이들은 너무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주의적이며 비역사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융의 관점은 예수가 구원을 이룬 것은 주로 그가 무엇을 행함에 있어서가 아니라(예를 들면 신의 빚을 갚는 행위 같은)무엇을 계시함으로써-인간을 깊이 감동 시켜서 그들이 자유로운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신의 이미지와 삶의 비전을 보여 줌으로써 -라고 보아서 전통적인 구속론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살펴본대로 종교에 대한 상대주의, 공동본질 그리고 심리학적 기원 주장은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이해에 있어 통찰과 관심을 제기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너무나 단순하고 획일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모든 종교를 상대적으로 파악한 트뢸치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도록 촉구하고, 우리를 갈라 놓았던 문화적, 역사적 장벽들을 극복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이들 상대주의적인 관점은 기독교의 핵심적 확신중 하나인 나사렛 예수의 성육신 사건을 너무 단순하게 상대화 시켜 버릴 수 있다.


공동 본질을 주장하는 토인비와 그의 지지자들은 본질과 비본질적인 것의 차이, 신앙과 집적된 전통의 차이, 혹은 종교의 내적 중심과 신조, 법전, 의식에 나타난 그 외적 표현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 차이는 정당하며 사실상 불가피 하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대로 본질적인 것을 찾기 위하여 비본질적인 것을 간과 한다면 잘못하면 본질적인 것마저 잃어 버릴 수도 있게 된다. 보편적인 것은 항상 어떤 구체적인 현현을 통해서만 자신을 현시화하는 것이다. 종교의 공동본질에 대한 모든 경험과 모든 진술은 일정한 비본질적인 것들과 관계하고 있는데 이들 공동본질학파는 이를 간과하고 있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융에 의해 발전된 신과 무의식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인들에게 신과 세계 사이의 이원론을 인식하고 극복하라는 도전을 했다. 그러나 이들 융과 종교심리학과는 그들의 주장이 일종의 환원주의(reductionism)라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현대 종교 다원주의의 토양을 준비해온 우리 시대의 정신적 상황을 트뢸치, 토인비, 칼 융을 통해 살펴 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이렇게 태동하기 시작한 종교 다원주의에 대하여 나타난 반응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를 살펴 보도록 한다.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입장

 

1. 보수 배타주의

 

다른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태도, 특히 보수적인 입장에 대하여 말할 때에 복음주의를 빼 놓을 수 없다.


“복음주의적 부흥”이라는 말은 독일의 경건주의, 영국의 감리교 운동, 북미의 대각성 운동 등에 의해서 18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발흥된 광범위한 운동을 포함하는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그 말은 금세기에 접어 들면서 근본주의의 형태로 형성된 새로운 그리스도교 형태를 가리킨다. 한편 근본주의는 1910년과 1915년 사이에 ꡔ근본주의ꡕ라는 제목의 12권 분량의 총서가 수백만 부가 팔려 나가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공격을 시작함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계열 속에서 분열이 일어 났다. 1940년대, 1950년대를 거치는 동안 근본주의의 신학적 확신에 동참했던 사람들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신학자와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논쟁 지향적 심성,반지성주의,사회적 무관심에 반기를 들었다. 1941년 이들 반항자들은 “미국복음주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결성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은 기본적인 신학적인 관점들을 공유했다: 1)성서의 문자적 영감설,무오성,절대 권위, 2)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며, 인격적 신앙 경험을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 3)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개종시킬 절박성에 대한 단호한 위임, 4)현대신학, 특히 역사비판적인 성서해석 방법에대한 불신 등이었다.


이러한 복음주의도 다시 분열 되었다. 1960년대, 특히 1970년대 이래 복음주의자들은 현대 세계와의 보다 적극적인 조정을 요구하여 왔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움직임은 이른바 “신복음주의”운동을 탄생 시켰다. 이들의 관심은 세가지 영역으로 집중 된다: 1)이들은 교회일치에 대해  개방적이며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미국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 한다. 2)성서의 절대 무오성에서 벗어나 오히려 성서의 ’제한된 무오성‘혹은 ’제한된 무오류성‘을 역사나 과학의 문제에 있어서가 아니라 신앙의 실천적인 문제에서 확신한다. 3)이들은 과거의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단순했고 그들 자신이 압박의 현상 유지를 위한 수호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분열된 복음주의의 각 계열은나름대로의 주장을 가지고 분열을 했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노선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부류의 집단은 복음주의 내의 아주 중요한 발전을 함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하나의 복음주의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들은 신과 인간의 샹태에 관한 지식의 절대적 출처로서 성서가 가지는, 성서가 무오한 것으로 간주되든 안 되든,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수한다.이들은 또한 세계의 유일한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보편적 주 되심과 그의 구원의 능력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필요성을 선포한다. 끝으로 이들은 선교를 통해서 모든 백성들에게 주 예수를 증거 함으로써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게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른종교들의 이해에 대한 보수적 복음주의 모델의 일반적인 모습은 유명하고도 영향력 있는 “프랑크푸르트선언”(Frankfurt Declaration)에서 분명하고도 힘있게 표현 되어 있다.


이 선언의 입장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 다른 종교를 평가하는 제1차적인 참조의 틀은 성서이고, 오직 성서일 수만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른 종교들에 대한 성서의 판단이 제시 된다. “구원은 단 한번, 영원히 인류를 위해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십자가 사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구원은 “오직 신앙의 참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 세계관들도 그리스도 신앙과 유사한 구원의 길들이라는 거짓된 가르침은 거부한다”이것은 그리스도교 교회와 다른 종교들의 사이에는 “본질상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거칠고도 비타협적인 성격은 1974년 7월16일에서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세계복음화 국제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약화 되었으나 그 기본적인 메세지는 재확인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성서의 절재적 권위, 그리스도의 유일회성, 그리고 그에 따른 복음주의의 절박한 요청을 강하게 재확인 했다.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들 혹은 이데올로기들을 통해서도 똑 같이 말한다고하는 일종의 절충주의나 대화를 일체 거부 했다. 다른 종교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은 분명하게 거부 되었다. 이 대회는 “그리스도교의 사회적인 책임성”을 인정하고 “성의 있게 들음으로써 이해에 도달하려는 대화의 방법”의 필요성을 인정 했다.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대회(Lausanne Ⅱ in Manila)는 세게의 급격한 변화를 의식하고 오늘의 사회와 타종교, 이데올로기의 변천상황과 그들의 도전을 토의하고 그에 따른 신학 정리도 하였다. 이 대회를 통하여 로잔 신학은 타종교와 연관 시킨 어떠한 상대주의나 혼합주의도 반대한다고 선언하였다.


마닐라 선언은 “다른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영성은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심판에 이른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한다. 또한 마닐라 선언은 기독교가 선교전선에서 “타종교 신앙인들에대한 무지. 거만, 무례, 혹은 대적의 태도를 취하는 잘못을 범해왔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회개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는 자도 모든 사람이 설혹 그들이 복음을 거절한다고 할지라도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개방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언급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때문에 흔히 갖기 쉬운 배타적이고 소외적인 태도를 지양하려고 마닐라 대회는 애썼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닐라 선언은 “타종교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전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즉음 그리고 부활에 나타난 그의 유일성을 적극적으로 증거 하면서 결코 타협조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의 선민의식과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같은 태도를 지니는 타종고들과의 마찰로 인한 전쟁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기독교 국가 설립을 목적으로 비기독교인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통치자의 기반을 구축해 줄 염려가 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뜨거운 확신과 선교 열정, 성서에 대 영적 신뢰와 복종, 기독교의 고유한 초대교회 케리그마 언어 속에 표현된 메세지를 지키고 보존하며 손상 없이 전수 시키려는 전통에 대한 충실함, 또 무엇보다도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주적 주권에 대한 고백 등은 종교 다원적 세계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에 공헌 했다고 볼 수 있다.

 

2. 개방적 포용주의

 

모든 종교는 궁극적 실재에 관한 계시 체험을 동반하지만, 구원계시의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포용주의는 타종교들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보다 대화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포용주의를 크게 개신교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카톨릭의 노선, 이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카톨릭의 태도는 개신교의 태도 보다 더 진보적인 형태를 띄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를 향해 나가고 있다.


이 유형은 다른 종교를 통한 신의 은총과 구원의 행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 계시의 최종성, 독특성, 규범성을 주장한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칼 라너이다. 라너의 신학은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존중하면서 그리스도의 배타성과 보편성을 긍정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다. 그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론에서 하나님이 보편적 구원의지와 구원을 위해 교회에 소속해야할 필요성을 동시에 받아 들인다. 이를 위해 라너는 전 인류를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 한다. 여기에서 비그리스도교인들도 선험적으로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 됨으로써 이들에게 특정한 그리스도교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라너는 중세의 ‘자연과 은총’이라는 도식을 끌어 들인다. 은총은 자연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 시키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신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자기 전달은 신이 자신을 알릴 수 있고 신의 자기 전달을 받아 들일 수 있는 피조물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향하는 것을 그의 계시 속에서 인지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내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라너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를 실질적으로 ’그리스도교성‘의 동일한 평면 위에 세운다. 그러나 교회 소속성과 상이한 등급을 강조 함으로 그리스도교의 고유성을 보존하고자 한다.52)  그러나 교회 소속성의 등급들이 각각 다르게 규정되더라도 모든 인간은 교회에 속한다. 결국 라너의 입장은 타 종교가 그리스도의 참된 보편적인 교회로 수렴되고 성취 된다는 교회 중심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라너는 타신앙인에 대한 보다 ’낙관적인’ 그리스도교적 태도를 밝히고 타신앙인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줌으로서 그리스도교의 배타주의를 깨뜨리려고 했다.


개신교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성령의 편재적 활동에 근거를 둔 개방적 입장을 취한다. 그는 유한적인 현현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확증하려고 했다.  그에 의하면 계시 경험은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모든 종교에는 계시와 구원의 능력이 있다. 계시는 유한한 인간에 의하여 수용되기 때문에 항상 왜곡되며, 따라서 신비적, 예언적, 세속적 종교 비판이 가능해진다 고   보았다.  틸리히는 다른 종교들을 비판 하면서 동시에 타종교들로 부터의 비판을 수용하는 개방된 그리스도교의 태도를 예로 제시한다. 또한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을 개종시키려는 대신 자기 비판과 대화를 모색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자기 비판과 대화의 목적은 종교들의 습합이나 어떤 힌 종교의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자기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의 종교의 심층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틸리히는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독특성이 영적인 자유로 스며들고, 인간 실존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다른 표현들에서 찾을 수 있는 영적 현존의 비젼으로 스며들 수 있는 지점이 있다”58)고 이다. 이처럼 틸리히는 인간의 궁극적 실재를 지향하는 모든 종교들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신학적 다원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종교사에서의 결정적 승리를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출현으로 본다. 그리스도교는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교이지만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틸리히는 그리스도교의 배타적인 우월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열등한 다른 종교들을 배제 하거나 포괄하는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종적인 계시인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중심으로 타종교와의 관계를 맺는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관계적 절대성’(relational absoluteness)이 입증 된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틸리히의 타종교에 대한 우호적인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절대성에 대한 주장은 타종교와의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데 있어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3. 다원주의


지금까지 살펴본 배타주의와 포괄주의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입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넘어선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를 궁극적 실재에 대한 다양한 인간 반응으로 보며 모든 종교는 진지한 상호간의 대화를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종교를 성숙 시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종교 다원주의는 이미 트뢸치의 역사적 상대주의, 토인비의 종교 보편주의, 칼 융의 원형론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과정 사상을 통해서 태동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급진적인 종교 다원주의자 존 힉은 오늘의 세계 신학은 ‘신학적 사고’(theological thinking)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거치고 있다고 보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중세의 우주관의 변화에 혁명을 가져 왔듯이 신학에서도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주의로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궁극적 신비로서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삶의 양식의 다양성에 따라 그에 대한 인간의 체험과 반응도 다양하다고 본다.


또한 힉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신화로 이해 함으로써 하나님을 ‘오직’ 예수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참으로’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예수가 모든 다른 인간 존재들을 위한 중심 혹은 규범이라고 주장하지 않고도 예수가 그들의 삶을 위한 중심과 규범이 됨을 선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폴 니터는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종교간의 대화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 필연성을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본다.


파니카는 종교 다원주의를 근본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세가 모델을 제시한다.  첫째는 물리적 모델이다. 여기서 그는 무지개 자체의 빛과 프리즘에 나타나는 그 색을 대비 시켜 말한다. 우리는 무지개 빛을 프리즘을 통해 빨강에서 보라까지의 색으로 구분해서 말한다. 그렇지만 파니카에 의하면 그러한 구분은 인위적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빛의 색은 사실 농도의 차이는 비록 있겠지만 서로가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다. 즉 여러 색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빛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파니카는 이 빛을 실재에, 색들을 제 종교에, 프리즘을 인간 경험에 각기 연관 시켜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제 종교들을 하나의 실재(절대자, 신, 또는 절대종교)에 대한 여러 상이한 인간 경험의 구체적인 서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하학적인 모델이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제 종교들을 기하학적인위상의 변형으로 이해 한다. 이 위상은 근원적인 인간의 경험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니카는 결국 여러 상이한 종교들을 근원적인 경험이 시.공 속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변화된 채로 드러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인류학적인 모델이다. 여기선 언어를 예로 들고 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있다. 그들은 제 각기 자신의 고유힌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언어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실재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더욱 정확히 할 수 있고 잘못된 생각은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에 있어서 특정 언어가 다른 언어 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특정한 종교가 다른 종교 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 종교들은 다원주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는 계시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하다고 보는데 이들은 대부분 신 중심적 모델(Theocentrism)을 취하고 있다. 신중심적 모델이란 종래의 교회중심적인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 방법을 지양하고 신학의 초점을 신을 중심으로하여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기존의 교회 중심적인 신학 방법과 모든 신학의 규범을 그리스도에게 설정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부터 “신 중심주의”에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신 중심적 모델은 배타주의의 성서영감설에 바탕을 둔 예수 그리스도의 배타적 유일회성은 물론, 라너에 의해 제기 되었고 한스 큉에 의해 발전된 포용주의의 간접적인 구원과 계시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러 다른 신앙을 통한 구원과 계시의 보편성을 말한다.

 

 

종교다원주의의 기독론 비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16:15)라는 예수의 질문에 대하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또 다른 형태 로 우리의 주변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다양한 응답이 신학의 다양성을 가져 왔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기독교를 상대화하고 절대적 계시종교에에서 보편적 종교로 만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제기 되고 있는 종교 다원주의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함으로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종교 다원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가를 살펴보고 이에 대하여 복음주의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 보도록 하겠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의 그리스도론

 

1. 존힉의 그리스도론 : 보편적 그리스도


영국의 종교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존힉은 다른 종교에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오늘날 현대 서구 신학에서 지배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접근 방법과는 상이한 신 중심적인 모델을 제안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힉은 그리스도교 종교신학의 문제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문제인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을 재해석함으로써 그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다른 모든 구세주들에 비해 반드시 유일회적이거나 규범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유일회적인 구세주로서 계속 확신할 수있는 해결책을 모색한다. 힉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를 말씀의 성육신으로 그리고 신의 아들로 말하는 것은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이 예수가 자신들에게 주었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많은 상징적, 신화적 모델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힉의 그리스도론의 핵심은 인간 예수이다. 예수는 철저하게 신의 현존과 범위 안에서 일생을 산 존재라는데서 힉의 그리스도론은 출발한다. 그는 오랜 기간을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보냈다. 항상 자신을 신의 대행자(God'S Agent)롤 묘사 했으며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고 인류를 위해 고통을 받는 주님의 종에 관한 예언에 비추어 삶을 살았다.


예수의 이와 같은 신중심적인 태도는 제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제자들은 예수의 신을 그들의 아버지로 실감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에 대한 비전으로 인해 제자들은 그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고, 결국 예수를 그들의 살아 있는 주님으로 선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예수를 공개적으로 입증할 만한 타당한 칭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선교자들이나 당시의 청중들은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던 까닭에 그 칭호가 메시아가 되는 것이 불가피 했다. 이 메시아는 신이 아니었다. 다만 특수한 신분을 가진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신의 아들”이라는 새 칭호가 그에게 덧붙여 졌다. 당시 이 칭호는 유대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의 그리스 문화권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말아었으며, 이 문화권에서 한 위대한 인물을신의 아들로 표현하는 것은 통상 있는 일이었다.  힉은 왕들을 신의 아들로 이해했던 유대교의 전통(시2:7,삼하7:14)을 근거로, 다윗 왕의 자손이며 참된 이스라엘 왕으로 여겨진 예수가 “신의 아들”로 불리는 것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로마 문화권으로 이동해 가면서 위대한 인물로서의 “신의 아들”이라는 이미지는 성육신이라는 유일회적 신성화의 개념으로 굳어져 갔다. “신의 아들”로 부터 형이상학적 “성자”,즉 “삼위일체의 제2격”에로의 매우 중대한 전이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요한복음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10:30), 따라서 “나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요14:6)등의 표현으로 반영되고 있다. 공관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러한 표현은 역사적 예수에게 소급되지 않은 1세기 말엽 교회 신학의 반영이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신의 아들로 부를 때 이들이 선언하고 있는 것은 예수가 그들을 구원 했다는 것, 예수는 그들이 신을 알게해 주는 수단이라는 것, 예수는 전적인 위임의 대상이며, 그들의 삶을 변혁한 계시라는 데에 힉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본다면, 신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만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에수 안에서 “참으로”만나질 수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예수가 다른 모든 인간 존재들을 위한 중심 혹은 규범이라고 주잔하지 않고도 예수가 그들 삶을 위한 중심과 규범이 됨을 선언할 수 있다고 본다.


힉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관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종교간의 대화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위한 기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있다.

 

 

2. 레이문도 파니카의 그리스도론:보편적 그리스도와 특수한 예수

 

파니카는 스페인계 로마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 났다.75)  그는 종교들 사이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범세계적’ 일치 운동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전통적 종교들은 구원에 이르는 길을 독점하고 있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고 말한다. 또한 다른 종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 되었다거나 혹은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전제하는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들과의 만남이나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보편성에 대한 그들의 전통적인 이해를 재해석할 수 있고 또한 마땅히 재해석해야 한다. 새로운 해석의 제안은 “보편적 그리스도”와 “특수한 예수” 사이의 구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로고스 혹은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로 성육신 하였다는 것은 긍정한다. 즉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구체성은 그의 보편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실재는 그것의 독특성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점은 전통적인 그리스도론과 별 차이가 없으나 그는 다음의 주장에서 새로운 그리스도론을 주장하고 있다. 즉 그는 성육신이  예수 안에서 유일하게,궁극적으로, 최종적으로, 그리고 규범적으로 발생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파니카에 의하면 “구원의 보편적 상징인 그리스도는 객관화 될 수 없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적 인물로 구체화될 수 없다. 이것은 구세주 그리스도가 단순히 나사렛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로 변형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파니카는 역사적 예수의 한계성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필요성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에서의 특수한 구체적 중보자들의 필연적 역할을 인식하고 있는 파니카는 어느 누구도 대화를 위해 예수를 극소화 하거나, 예수의 주되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중심적 확신을 간과함으로써 초점을 흐리게할 권리가 없다고 경고한다. “무수한 형태로 주되심을 나타낼 수 있는 이러한 ‘주’(그리스도)는 나에게는 나사렛 예수와 불가분적으로 연결 되면서 궁극적인 형태를 갖추었다.”는 파니카의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형태라는 점을 인식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지만, 이말은 곧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모든 종교는 일정한 방식으로 이러한 그리스도(라마, 크리슈나, 이스바라, 푸루샤,타타가타 등)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수긍할 수 있고 수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나카는 기독교인들에게, 궁극적 진리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 속에서 다른 기독교인들이 똑 같이 경험하는 동일한 신비에 대해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촉구한다.

 

 

3.스탠리 J 사마르타 : 모든 계시의 상대성

 

사마르타는 우리시대의 요청으로서 세계 종교간의 대화를 주창하여 왔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포함해서 어떤 종교도 자기가 최종적이며 유일하다고 강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화를 위해 그리스도 중심적인 기반에서 벗어나 신 중심적인 토대에서 접근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계시를 경직화 시키고 진리를 독점하는 소유의 배타성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자유롭게한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봉헌은 주변을 향해 문을 걸어 닫지 않고 신앙의 중심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대화를 “우리 자신의 유산에 입각해서가 아니라 이웃의 정신적인 유산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정의 한다.


사마르타는 오늘날 다원주의 세계에서 기독교인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대화의 방법이지 “신학적 우격다짐”(theological bull-dozing)이 아니라고 하면서 대화만이 각 종교의 독특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각각의 종교가 변화 하도록 기여하게 한다고 본다.


파니카와 마찬가지로 사마르타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궁극성과 보편적 규범에 이의를 제기한다.  모든 종교적 특수한 인물과 계시들을 상대화 함에 있어서 사마르타는 파니카와 마찬가지로 그 필연성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공통분모로 환원 시키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신비적 타자는 특수한 중보자를 통해 우리와 만나져야 한다고 그는 보았다.  사마르타는 “모든 특수성들은 똑같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어떤 특수성도 보편성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한다.


또한 사마르타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침투되어 예수를 절대화시킨 후 그를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 인물”로 바꾼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을 경고한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신은 성육신에서 그 자신을 상대화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마르타는 다른 종교들에 대한 그리스도 일원론적 접근 대신 예수 자신의 원초적인 메세지에 보다 충실하게 될 신 중심적 접근 방법을 주창한다.


복음주의적 응답

 

1. 종교다원주의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응답

 

우리는 위에서  전통적인 기독론 (Vere Deus et Vere homo)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은 ‘종교 다원주의’와 그에 근거한 ‘상대적 세계관’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칼빈도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는 종교의 씨(religionis semen)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든지 종교에 노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인간의 종교심 때문에 모든 종교는 보편적으로 동일하다거나 궁극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지향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그들의 논리의 출발점을 성서에 두고 있지 않다. 그들은 비교 종교학적으로 혹은 심리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접근하기 때문에 정당한 그리스도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둘째, 타 종교와 대화해야하는 이유로서 오늘날 도래하고 있는 종교 다원주의를 들고 있는데 이것도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면밀히 연구한 성서학자나 조직신학자라면 이미 초대교회 시대에 그 당시에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기성 종교들이 많이 있었음을 인정 할 것이다. 이미 신약성서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지주의나 로마의 황제숭배, 유대주의, 헬레니즘 등의 수 많은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순교의 위협 가운데서도 예수만이 그리스도요, 신의 아들이며 인자이고 메시아요,주(主)요, 왕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한 확신이 로마인의 박해로, 희랍인의 논리로, 유대인의 반대로, 비판과 취사 선택의 과정을 통해서 수정되고 다듬어진 것이 니케아 신조이며 칼케돈 신조인데 그것들이 형성되기 까지는 400년이나 걸렸으면서 그 당시 지성을 총동원하여 교회의 신앙을 분석하려 하였으나 실패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오히려 확인되고 정리된것이 그리스도론이라할 수 있다.


세째,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은 아 프리오리(a priori)론이 아니고 아 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론이다. 다시 말해서 성서 기자들이 유대교의 묵시 문학과 영지주의자들의 로고스론과 엣세네파의 종말론을 종합하여 어떤 틀을 미리 만들어 놓고 예수를 신의 아들, 사람의 아들,메시야로 묘사한 것은 아니다. 예수의 제자들이나 성서의 기자들이 그렇게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그러한 작품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들 앞에 전개되는 엄청난 사건들을 확실히 체험한 후 제자들이 모여 종합해 본 결과 그는 그들이 믿는 구세주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추상적인 교훈을 통한 종교가 아니라 삶의 광장(Sitz im leben)에서 우러나온 종교이다. 신학은 어떤 사상의 체계가 아니라 체험의 고백인 것이다.


네째, 신본주의적 그리스도론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사실은 그리스도론을 분해하고 군주신론을 개현시키려는 운동이다.  신성이 제거된 그리스도론은 없다. 예수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합일되어 존재 한다. 신성이 없이는 예수론은 가능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론은 불가능하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신중심의 그리스도론은 결국 군주신론의 재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로 종교 다원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타종교와 대화를 하라고 한다. 예수의 신성을 제거해 버리고 다르마나 석가나 마호멧과 같은 차원으로 내려가서 대화를 하자고 한다면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성을 상실하게 된다. 자체의 주체성 없이 타자와 대화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스도교는 하나가 될 수 없는 양극이 신비적 조화를 이룸으로서 형성된 종교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게될 때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다워질 수 있다고할 수 있다.


신성이 배제된 그리스도교는 인물론이나 역사에 그칠것이며 인성이 배제된 그리스도교는 추상적 철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가 자기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는 것은 올바른 그리스도론을 통하여 가능해질 것이다.

 

 

2. 통전적 그리스도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조금도 손상 시키지 않고 어떻게 오늘날의 이 다원화 사회에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할 것인가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시대가 요청하는 통전적 그리스도론의 정립은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종성 교수는“통전적 그리스도론은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고백한 모든 신조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그리스도교 교회와 신학의 형성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간인 제2세기부터 제7세기까지의 에큐메니칼 교회 회의가 결정한 모든 신조를 기본 신조로 받아들인다. 그러한 신조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내용이 주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조가 교회 생활에 지침이 되었으며 신 이해에 근본 구조를 밝혀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모든 신조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모든 신조는 시대의 제한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든 절대화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조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인에 의하여 고백되고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후세인에 의해서 성서의 시대적 해석과 이해에 맞춰서 재해석하고 보충되어야한다.


세째, 그리스도론을 우리의교회의 토양에 토착화하고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앙고백서는 일부 교단을 제외하고는 외국교회가 작성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성서와 전통적 그리스도론과 우리의 주체적인 결단에 따라 전통적 그리스도론을 토착화해야하는 것이다.


네째, 통전적 그리스도로네 있어서 그리스도의 한 단면을 다른 면보다 더 강조해서는 안된다. 취급 방범에 있어서는 선후가 있을 수 있으나 가치의 경중을 두어서는 안된다. 특히 최근의 급진적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완전히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토대로한 새 그리스도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통전적 그리스도론은 그러한 편파적인 그리스도론을 지양하고 언제든지 삶의 현장에서 나와 삼위일체 신과의 실존적 만남과 주체적 결단을 통해서 이해되는 통전적이고 통합적 그리스도론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통전적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성서가 가르친 범위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그리스도론은 그의 통치권을 개인과 교회와 역사에만 국한 시켰다면 이제는 피조물 모두를 그리스도와 관련지어서 생각해야 한다.

  

 타종교에 대한 성서의 입장

 

성경에는 그리스도교와 타종교 사이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구절이 있는가하면(행4:12), 타종교와의 연속성을 시인하면서도 기독교를 절정으로 이해하여 예수의 규범성을 긍정케하는 구절이 있다(고전10:4). 때로는 타종교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이 표시 되었는가하면(마12:30), 반대자에 대하여 관용을 베푸는 구절도 있다(막9:40). 심지어는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구원을 받는 특수한 예가 마태복음에 나타남을(25:31-46) 지적하면서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규범성까지도 가볍게 생각하는 신학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의 전체적인 면을 볼 때에 구원의 대상으로서 이방인들에게 개방적이었던 것이지 이방종교에 대하여서도 개방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앙태도

 

유대-기독교는 세계 여러 종교들 가운데 유일신교로 지칭 된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어떤 다른 신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일신교이다. 종교사에서 신관의 변천과정을 살펴 볼 때에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여러 신들이 함께 존재하는 다신교(Polytheism), 다음 단계는 그 중의 한 신만이 주(主)신으로 인정되는 단일신교(Henotheism)로, 마지막 단계는 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유일신교(Monotheism)로 발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종교와 다른종교들 간의 관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처음으로 시작 되었다. 모세오경의 다양한 전승들은 이스라엘이 가난안에 정착하기 전에 에돔 족속, 겐 족속, 미디안 족속, 들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히브리인들의 야훼종교의식이 처음 소개 되었을 때에 그곳에도 역시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착의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신인 야훼가 가나안에 소개 되었고 서로 다른 종교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착의 신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만이 참 신이라고 선포하게 되었다. 즉 야훼가 오랜동안 국가적인 신으로서 여겨지게 되었고 오랜동안 그는 주도권을 잡고 토착민의 신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정복자 이스라엘의 신을 섬길 것인가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점차로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이 확립되어 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일찌기 유일신 신앙이 강조 되었다. 십계명 제1계명에 “너는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출20:3)라고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을 언급했고 여호와 외에는 천상 천하에 어떤 신적인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유일신 신앙이 명실상부하게 공인된 때는 다윗왕조 때(주전 1000년대)로 본다. 다윗왕은 당시 중동 지방에서 가장 강력한 승자 였다. 정치 경제와 군사 모든 면에서 월등 했음으로 주변 여러 나라들을 제압했을 뿐아니라 교역을 통하여 그의 강한 실체를 보여 주었다. 따라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실체도 이웃 사람에게 소개 되었고 그들에 의해 인정 되었다. 당시 명실상부하게 여호와는 유일신으로 인정케 된 것이다.


그러나 그후 이스라엘 사회가 혼탁하고 부패하여 여호와를 망각했을 때 호세아 같은 선지자는 유일신 신앙을 재천명 했다(호13:4). 포로기의 예언자도 같은 유일신적 신앙을 강조 했다(사40:25). 이 때가 가장 유일신 신앙이 강조 되었던 시기이다.  그 후 바벨론 포로 중에 있던 다니엘도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말했고(단2:20), 느브갓네살 왕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든 신의 신으로 말하고(단2:47) 이러한 유일신 신앙은 신명기 6:4절에서 쉐마교리(Shema Doctrine)로서 정착 되었고 신약성경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막12:29ff,요14:6,요17:3,행4:12,롬3:30,16:27,고전8:4-6,갈3:20 등등).


본래 구약성경은 유일신 사상에 대하여 민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존재하는 분으로 전제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관심사는 오직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전능하신 분인가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magmanila Dei)과 업적에 초점이 모아지고 았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주 내용은 아스라엘 백성에게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활동과 베푸신 은총에 대한 감사와 찬양들이다. 위에서 살펴 본 대로 유일신적 내용은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로 포로기와 같은 상황에서 타종교에 동화될 가능성이 많은 때에 주로 언급 되었고 여호와 신앙의 위기때에 주로 강조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생존의 기반이 약화 되었을 때에 유일신 신앙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존재를 구축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유일신 신아의 문제점은 배타성으로 지적 된다. 구약성경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배타적인 성격은 강하지 않다. 하나님은 세계 만민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명하신다. 더우기 예수 그리스도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존중할 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단지 배타적인 요소가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과 상치되는 신적인 요소에 관해서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신적인 존재는 우상이다. 엘리야 시대의 바알 신과 앗세라 신과 그들의 제사장들은 질시의 대상이 되었지만 바알 신이나 앗세라 신을 섬기던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자요 구원의 대상들 이었다(욘4:11).신약시대 베드로도 복음의 보편성을 깨닫고 그의 민족적 배타성을  청산하고 가이사랴에서 이방전도의 문을 열었다(행10장).


 신약성서에 나타난 신앙 태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도 세계의 많은 종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세계의 모든 종교들은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공동체를 가지기고하고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초점은 만인의 ‘주’로서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함을 보여준다(롬10:14-17).


윌슨(S.G.Wilson)은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배타주의”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원자이며 하나님의 결정적 계시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사실은 “의로운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바울의 복음에 의해서 신학적인 이해를 바꾸지 아니하고서도 구원을 얻게 할 것이라고 한다. 윌슨은 바울의 시각은 다원적 종교 공동체 가운데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종교 안에서 역사 하시나 진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활동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사역 가운데서 이미 메시야적 왕국에 대하여 선포 하였다(눅11:20, 17:21). 그의 메세지는 구원과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의 사상 역시도 유일신앙에 대한 강조 였다(고전3:23, 15:28).


신약은 말씀이 나사렛 예수로 성육신 되었음을 단언한다(요1:14). 이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등 특별한 역사적 계시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주(Lord)라는 명칭 속에서도 나타난다(빌2:12). 신약은 구원을 가져다 주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최종적이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결정체 이다.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1:19). 이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그의 주권과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그의 보편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론적 배타주의”는 오늘날의 종교 다원적인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져야 한다.  마태복음28:16-20절에 나타난 명령은 보편적 주권을 가진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와 구원의 새로운 공동체에 결합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준다.


바울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본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받아들여 진다고 주장한다(롬3:21-26).  로마서 3장에서 바울은 모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정직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롬3:9-20) 인간의 불성실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거절하지 못한다(롬3:3-7) .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인간의 불성실하심을 극복하게 하심을 명백히 보여준다(21-26).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하나님의 의로 부르셨다.  바울은 이러한 관점에서 9-11장에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은 믿음에 대하여 실패하였다고 본다.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인간이 부정직하고 책임성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믿는자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예수를 ‘하나뿐이신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한다(10:9,12).


로마서 5:12-21과 7:7-11, 8:19-22에는 각기 다른 전통에 근거한 보편적인 죄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보편적인 구원의 관계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다.  즉 그리스도는 “새 아담”으로서 첫번 아담의 불순종을 돌이켜 순종하고 죄와 사망의 결박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로마서1:18-3;23절에서는 인간의 보편적 죄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새로운 아담에게 순종하고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게 될 때에 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롬6:1-14).


또한 성경에 나타난 로고스 전승은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과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며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구원을 성취하였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전승은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주’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창조적이며 구속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이세상 안에서 활동하는데 이 예수는 (1)하나님의 형상 (지혜서7:26)이며 (2)처음 난 것이며(잠8:22,25) (3)모든 것을 하나님과 함께 소유 하고(잠8:27-30) (4)세상이 그에 의해 창조 되었으며 (5)하나님의 광채(지혜서7:28)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표현은 하나님과 관계 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에 찬 찬양이다(고전1:15-20, 히1:3-4,요1:1-18).이러한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주로서 그리스도를 화신케해 주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능력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로서 보여진 것이다(요1:14,18).


신약성경과 기독교 전통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언한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원주의 신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거부한다. 사마르타는 예수의 독특성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주장 속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우주적 그리스도가 타종교 안에서 익명으로 역사 한다고 가정한다. 그는 단지 사람들에게 감추어지거나(hidden) 혹은 알려지지 않았을 뿐(unknown)이다. 말씀의 신비가 역사적 성육신의 독특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발견 되어질 수 없다는 사실은 수긍할 수 있다.  성경은 초월이 역사에 들어 왔을 때 그 분은 자기를 비우셨으나, 그 독특성은 손상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세상에는 익명의 하나님이 있을 분, 그 분이 낮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성육신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약성서에도 기독교의 개방적인 태도를 고무하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주재하는 신이라는 관념은 그대로 신약성서에 유입 되었다. 따라서 마태도 예수를 육화한 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중보자로 이해하고 있다. 아울러 예수는 결코 편협하고 배타적인 세계관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진실한 신앙심을 가진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존경심을 표시 하였다.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 그리고 다른 종교에 대한 예수의 견해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개방적인 기초가 마련된다.


이와 같이 신약성서에는 그리스도 중심의 편협한 사상 흐름과 좀 더 개방적인 흐름이 모두 나타나 있다. 하나는 배타적이고 하나는 포용적이라고할 수 있다. 이방종교와 우상숭배에 관하여서는 배타적이라고 한다면 비록 이방인이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개방적이며 포용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성경해석 비판

 

다원주의자들의공통적 구원관은 인간성의 회복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새로운 피조물은 구원의 목표라고하며 변선환 교수는 이 “새인간성”회복은 불교에서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동식 교수도 역시 종교의 목적을 “인간화” 내지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하고, 구원은 서로 의존하고 서로의 괴로움을 없이하며 기쁨을 나누는 인간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이 종교다원주의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서 보편주의라는 개념에 입각해서 구원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보편주의, 그리고 세상과 그리스도의 관계라는 주제로 글을  쓸 때에 많이 사용되는 성경 본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요1:1,로고스이신 그리스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초기의 변증가인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로부터 칼 라너, 한스 큉, 그리고 존 힉등  현대 신학자에 이르기 까지 로고스(logos)라는 용어는 어느정도 감추어진 모습으로 이긴 하나, 모든 종교와 철학에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어왔다. 존힉은 “만약 우리가 인간을 향해 일하시는 로고스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모든 종교내의 모든 구원은 그 로고스의 사역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기술함으로서 로고스를 보편화 시키는 것을 알수 있다.


헬라어 로고스를 번역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헬라어에서 로고스라는 명사는 원래 ‘말하다’(legein)라는 의미에서 비롯 됐는데, 이것은 일상적인 담화와 대화(lalein)와 대조되는 중요한 진술이 발언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발언을 계시하고 완성하는 말씀의 구약적인 배경에 반하여, 요한은 서론에 하나님과 로고스(따라서  하나님을 세상에 계시할 자격을 가진)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과시한다. 나아가 요한은 1장 18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계시자로서 로고스를 말한다.   요한이 서론에서 그리스도를 로고스로 묘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신화적인 혹은 철학적인 구상을 덧 붙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한은 더 나아가 이 복음서에서 로고스이신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20장 31절에 확언 되어 있다.


힉은 요한복은 1장1절을 석의 함에 있어서 ‘인간과 관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모호하게 묘사함으로서 로고스를 비인격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구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삼중 관계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아버지와 관계하여 그리스도는 이렇게 소개된다.


선존재이심 : 태초에 계시니라(en arche).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와 밀접한 교제를 가짐:하나님과 함께(pros ton Theon).


하나님이심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Theos en ho logos).


미완료 직설법 ‘있었다’가 세 구절 모두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이는 게속적이고 영원한 존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2절은 아버지와의 이 관계가 영원하고 밀접한 것임을 강조한다.


둘째, 세상과의 관계는 3절 이하에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의 창조주시다. 3절에서 헬라적, 영지주의적 개념들(즉 물질은 영원하며, 세상을 창조하는데 천사가 사용되었다는 생각)은 반대를 받는다.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 만이 창조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피조물과 동일시 되어서는 안된다. 피조물과 로고스에 대하여서는 두개의 다른 동사가 사용 되었는데 로고스에 대하여서는 “계셨고”(to be), 피조물에 대하여는 “지은바 되었다”(to become)라는 말이 사용되어 둘을 구별하고 있다.


계속해서 4절은 중요한 진술을 담고 있다. 먼저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라는 진술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전치사는 “통하여”가 아니라 “안에”이다. 따라서 생명이 항상 말씀 안에 거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명’은 육체적인 생명을 의미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그 말씀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4절 후반부에서 ‘생명’은 ‘사람들의 빛’으로 묘사되고 있다. 5절에서 이 빛은 어두움에 의하여 정복당하지 않고 어두움 속에 비친다. 7-9절에서 요한은 이 빛에 대해 증거하러 왔다. 그러므로 이 빛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며, 불가불 그리스도와 관련되며, 심지어는 동일시되는 것이다. 요한의 글에서 생명과 빛은 관련이 있으며, 강한 영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핸드릭슨은 ‘생명’이 ‘하나님의 실체의 충만’을 가리키며, 모든 육체적 영적 삶의 원인이자 보존자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진술은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는 진술이다. 3절에서 언급된 창조의 사실, 4절에서 포괄적으로 언급된 사람, 그리고 5절에 최소한도 암시되어 있는 타락을 근거로 할 때, ‘사람들의 빛’은 피조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가리킨다. 로고스가 이 세상 속에 충만한 빛으로 오셨지만 그가 오신 근본 목적은 구속이다. 라너, 큉, 힉 등이 가르친바와는 반대로 일반계시에는 구속적이고 구원적인 기능이 전혀 없다. 인류의 통일성, 일반계시의 사실은 물론, 사랑이라는 신적인 속성도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을 불필요하거나 ‘상징적’인 것이 되지 못하게 한다. 요한복음의 서론은 이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세째, 세상과의 관계이다. 요한복음의 서론은 14절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신다”라는 말은 말씀이 우리들 가운데 거처를 정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있어서의 로고스는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성육신한 로고스는 빛이며 모든 사람들은 다 어둠에 있지만 바로 빛인 로고스에로 오도록 초청 받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2. 행 17:22, 바울의 진술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저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17:22).

 

사도행전 17장 22절에 나오는 ‘종교성’은 헬라어로 데이시다이모네스테루스(deisidaimonesterous)로서 에보트-스미스사전(Abbot-Smith Lexicon)은 ‘신을 공경하는, 종교적인’이라는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


아덴 사람들은 매우 종교적이며 많은 신들을 섬겼다. 도시 전체에, 공적인 장소이건 사적인 장소이건 신전들과 신들이 가득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 대해 매우 종교적이라거나 혹은 신들에 열심이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이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종교와 그렇게 많은 위하는 것들(23절,sebasmata)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덴 사람들은 참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Unknown God)'이라고 새겨진 단을 발견하였음을 언급한다.134)


다원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들어 있는 종교성을 인정하고 또한 성경에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23절의 진술은 현대의 보편주의를 바로 잡는 매우 중요한 진술이다. 아덴 사람들이 새겨 놓은 글은 그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메세지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agnoountes-무지하다, 알지 못하다, 여기에서는 현재분사형)을 확언해 준다.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무지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보편주의자들은 모든 종교를 성실히 숭배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한 분의 초월적인 하나님을 숭배함을 나타낸다고 결론 짓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러한 믿음을 가르치지도, 암시하고 있지도 않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3. 엡1:10과 골1:15절, 우주적인 그리스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 게하려 하심이라”(엡1:10).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골1:15).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만물이 완전히 주님의 권세 아래 있게 될 때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이 이곳에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을 문맥에 따라 해석하지 아니하고 어느 한 구절 만의 의미를 가지고 교리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에베소서 1:3-14에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풍성한 복을 찬송하고 있다. 여기서는 오직 신자들만이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그리스도 안의‘(1절)이라는 말과 크리스찬들이 선택 받고(4절), 예정 되었으며(5절), 구속과 죄 사함을 받았고(7절), 특별계시를 전달 받았고(8-9절), 영광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13-14절).


10절에서 ‘통일되게하다’는 헬라어 아나케팔라이오사타이(anakephalaiosathai)를 번역한 것으로‘종합하다’,‘통합하다’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는데, 로바서 13장 9절에서 모든 계명을 사랑의 계명이라는 하나의 계명으로 종합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에서는 또한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가되신다(kephalaion)는 사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교훈은 1장 20절부터 22절에서 강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통치하에 들어갈 것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만물의 복종은 세상 끝날에 성취되고 실현될 것임을 알게 된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리스도으 인격과 사역은 서로 나뉠 수 없는 연관을 지닌 것으로 묘사 된다. 15-20절에서는 성자의 선재적 탁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며 그 분의 유일한 인격이 의문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분은 피조물 보다 지고하신 분이며(15절), 창조의 행위자 이시며(16절), 만물이 그를 위해 창조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또한 영원하시며 그 분에 의해 모든 피조물이 유지된다. 그런데 이 창조의 주님은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주 예수께서 모든 만물 중에 뛰어나게 되시는 것이다.

 

 

4. 고전 15:24-28, 보편주의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고린도전서 15장 28절에 나와 있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라는 구절을 들어서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의 그리스도와 성육신한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보편적 존재로서의 예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문맥을 들어서 살펴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께 대한 그리스도의 복종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여기서 그리스도를 성육하신 성자, 그리서 신인(God-man), 그리고 우리의 중보자로 생각하지 않을 경우 잘못된 길에 빠지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친히 우리를 다스렸지만, 승천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중보자에게 주사(마28:18) 그를 통해 다스리신다. 이 우주적인 권세는 중보자로서 직책을 지닌 그리스도께 주어졌다. 그는 이 중보적 왕권으로 모든 원수를 멸할 뿐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북돋으며, 다스리시고, 보호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 일단 사역을 완수하면, “아들 자신도...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될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완성 되었으므로 삼위 하나님 내에 기능적인 경륜이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다스리시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 안에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의 구절만을 가지고서 해석을 가하는 것은 오류를 낳게 됨을 알 수 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성경적이어야할 것이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는 성경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종교 다원주의는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며 따라서 원칙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로마서 5장 19절의 “한 사람의 순종치 않음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즐겨 인용한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지만 동시에 만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디모데전서 2장 5절의 “하나님은 한 분 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고린도후서 5: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골로새서1장20절의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는 성경의 본문을 가지고 보편적 구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 해석에 대하여 복음주의에서는 만인 구원을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성경해석이 균형을 상실하였다고 본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기록 되어 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을 성취시켜줄 이름이 없다는 것이며, 예수가 우리를 구원해 줄 뿐만 아니라 예수에게서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원을 얻게 하는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이나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인간과 화해 하셨으나(롬5:10-11), 모든 인간을  즉시 자동적으로  구원하셨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롬 10:9). 성경은 오히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요3:16)고 말하고 있다. 성경의 구원의 계시는 이러한 맥락에 있어서 타종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개방적이다(창12:3, 사56:6-7, 말1:11, 마8:11). 이것은 구원을 문제 삼는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배타성과 포용성을 넘어서는 “초청의 파라다임”(paradigm of invitation)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앞에서 종교 다원주의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그들의 주장하는 바와 배경을 살펴 보았다. 종교 다원주의란 문화적 상황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여러 상이한 구원의 종교적 체계가 있다는 다원적 구원의 가능성을 개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 다원주의는 특히 기독교적 신학의 독선적 배타성을 거절하며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1)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론 중심 신학을 신 중심적 사고로 대치할 것을 주장하며, 2)그리스도교적 신론의 독특성인 인격적 신론의 개념보다는 초월적 절대적 ‘궁극적 실재’로서의 신의 개념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3)기독교 신의 자기계시 차원보다는 신을 경험하는 인간의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의 길의 다원성을 개방시켜 놓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궁극적 실재’인 신이 인간의 문화적 존교적 환경과 맥락에 따라 상이한 종교 경험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반응으로는 첫째 배타주의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하나의 참 종교가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진리는 오직 한 종교 안에만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므로 타 종교에는 진리의 가능성이 철저히 배제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통을 종교적 진리의 유일한 혹은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대표적인 학자로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 헨드릭 크뢰머가 있다. 둘째는 개방적 포용적 입장으로 모든 종교는 궁극적 실재의 계시 체험을 동반하나 구원계시의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라고하는 입장이다. 타종교도 하나님이 현존하는 장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으로 구원에 이르기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세번째 다원주의의 압장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여러개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모든 고등종교는 다 신으로 부터 너온 것이요 각기 진리의 일면을 지니고 있으며 고등종교를 통해 주어진 계시의 내용과 정도는 다를지라도 그 원천은 같은 것이라고 본다.


종교다원주의의 그리스도론을 보면 그 주된 내용이 존 힉이 주장 하였던 바처럼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에서 벗어나서 신 중심적인 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전통적 입장은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공유하였다고보며 이것은 초대교회로 부터 체험과 고백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함을 알 수 있었다.


종교 다원주의는 19세기 성경 비평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 성경을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심판 받아야할 역사적 문서로 본다.여기서 본문(text)보다는 상황(context)이 우선하기 때문에 시대와 상황에 따라 신앙과 신학의 수정이 불가피하고 기독교의 절대성은 존립의 여지가 불가능하다.


복음주의는 기독교가 성경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성경이 기독교를 탄생 시켰다고 믿는다. 물론 ‘역사적 기독교’는 오류와 허물이 있으나 진리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신적인 기구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독론은 성경적으로 말하면 예수가 하나님과 구주되심을 부인하는 기독론 부재의 신학이다. 19세기 서구의 자유주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점을 제기 하였는데 20세기의 다원주의는 너무 많은 그리스도와 로고스의 존재를 인정하여 신앙의 혼란과 상대주의를 초래한다(요일4:1-6).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인정되지 않은 그리스도교는 철학이며, 권위가 인정되지 않은 성경은 위인전이나 다름 없다고 할 것이다. 다원주의 상황 아래서 가장 효과적인 대화를 하기 위하여서는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포기하게 된다면 그리스도교는 영적 다이나믹을 상실하며 나아가 자신의 종교를 스스로 소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될 것이다.


선교 2세기의 발걸음을 내딛는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경계해야하며 잘 준비해야 할 것은 다원주의의 도전이라고 할 것이다. 다양화된 세계는 오히려 더 많은 대화와 상호간의 협력을 요구하는 이 때에 종교간의 대화 역시도 이에 못지않게 요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기독교가 싸워 왔던 것이 그릇된 교리의 해석으로 무장한 이단의 세력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기독교의 가장 큰 상대는 기독교와 그리스도를 보편화 하려는 보편주의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원화 사회를 살아 가면서 성경을 통하여 흔들리지 않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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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의 타종교 선교정책에 관한 비판적 고찰:

NCCK1) 신학노선을 중심으로

소윤정 서울기독대학교

I. 들어가는 말

2010년 8월 31일 스위스 제네바 에큐메니칼센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2) (WCC) 중앙위원회가 7년마다 열리는 '2013년 WCC 10차 세계총회’의 개최지를 부산으로 결정하자, 한국 교회는 크게 환호하는 그룹과 크게 우려하는 그룹으로 나뉘어 자명한 입장을 포명하고 있다.

세계 110여 개국 350여개 개신교회의 대표들 5,000여 명이 부산 벡스코에 모여들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세계 속에서 한국기독교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일부 교단은 일찍부터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으나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합신', '예장백석'등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교단들은 한국교회의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한국교회에 종교다원주의가 만연해지고 혼합주의가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다각도에서 WCC 총회를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2010년 5월 31일에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을 비롯한 160개 보수주의 교단들과 28개 보수적인 선교단체들이 연합하여 'WCC 총회유치 반대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2013년 WCC 부산 총회 개최를 저지하기로 결의한 후 결의문과3) 성명서를4) 발표하였다.5)

그리고 2010년 8월 31일 WCC 부산 총회유치가 결정나자 보수성향의 한기총은 반대입장을 명확히 하고 가시적 활동을 펼치기 위해 최근 범교단적인 '한국기독교 WCC 대책위원회(위원장 홍재철, 이하 대책위)'를 구성했다.

한기총을 중심으로 복음주의적 성격이 강한 4개 교단을 중심으로 연합해 만들어진 대책위는 얼마 전 사단법인으로 등록됐다. 대책위는 WCC 신학의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화주의, 종교혼합주의, 사회구원지상주의, 용공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로마가톨릭주의, 가시적 교회일치주의, 신앙고백 형식주의, 성경불신주의 등을 10가지 반대이유로 들었다.6)

이미 1959년 WCC가입 문제로 한국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되고, 이어서 1960년 대한예수교성결교회가 기성과 예성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체험했다. 무엇보다도 WCC가 선교적 차원에서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타종교를 선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1963년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선교사파송을 중지한 것은 한국교회의 분열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하여 WCC를 반대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이에 필자는 WCC의 타종교 선교정책에 관하여 NCCK의 입장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II. WCC의 타종교 선교정책

1. ‘모라토리움’ 선언

1973년 방콕 선교대회는 ‘모라토리움(Moratorium)’이라는 선교정책을 내놓은 첫 번째 선교대회이다. 1972년 12월 29일부터 1973년 1월 9일까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96개국 330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CWME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세계선교와전도위위원회)7) 제2차 회의가 열렸다.

특별히 1973년 방콕대회의 명칭은 “오늘의 구원에 관한 세계대회(World Conference on Salvation Today)”였다.8) 이는 시대적 상황이 필요로 하는 교회론과 선교론에 따른 사회구원을 강조한 대회였다.

1973년 방콕대회의 주제 선정에 있어서 이미 1971년 토마스 위서(Thomas Wieser)에 의하여 발표된 논문 “오늘날의 구원체험(The Experience of Salvation Today)”에서 토마스는 성경과 다른 종교들의 전통들을 인용하면서 교회의 구원 기능적 역할은 오늘날 구원의 매개체 중 단지 한 집단으로써 이해된다고 하였다.9)

이처럼 1973년 방콕 선교대회의 ‘구원’개념은 1971년 토마스 위서에 의해 재 정의된 사회적 구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사회적 상황만을 중시한 비복음적 구원관인 것이다.

비록 방콕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개인의 회심과 교회의 성장, 교회의 다양성 속의 일치성이 강조되었지만 ‘모라토리움’ 선교정책을 내놓은 배경 또한 ‘바르바도스(Barbados)’섬에서의 인디언 해방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1973년 방콕대회는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구원관을 제시하였다.10)

1972년 “중국혁명가운데 나타난 구원관 (Salvation in the Chinese Revolution)”등 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방콕대회가 이야기 하고 있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이 아닌 무비판적 상황화에 근거한 ‘구원’이었다.

그러므로 방콕대회가 제시하고 있는 ‘구원’은 전혀 비성경적이며 인본주의적 인간화를 위한 것 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는 인간화를 소망하고 있지만 참다운 인간화는 신본주의적 구원의 결과물로 얻어진다는 것이다.11)

1952년부터 WCC내에서 팽창된 새로운 선교사상(Missio Dei)아래 선교비를 해방운동보조비나 제3세계 유학생 교육비등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선교사 파송과 후원을 위한 선교비 지원을 중단한 것이 ‘모라토리움’이다.12) 1971년 1월 ‘바르바도스’섬에서 인디언 해방을 목표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이들은 선교에 대하여 “식민주의 이념이 종교적 가면을 쓰고 인디언 문화를 배척하고, 인디언을 선교 대상으로 굴복시키고 과소평가하며, 선교사들은 오히려 물질적으로 그리고 이상적으로 자기를 실현하고, 식민주의를 행했다.”13)는 내용으로 ‘바르바도스’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하여 1973년 방콕 대회에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여 피선교 교회들의 우위성과 동질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선교비 및 선교사 보내기를 중단하게 된 것이다.

1973년 방콕대회에서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배경으로 우리는 남미의 해방신학적 배경을 간과 할 수 없다. 해방신학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밝혀야 할 것이 ‘해방’이란 무엇인가이다.

해방신학적 범주에서 ‘해방’이란 전인과 만인의 포괄적 해방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제외됨이 없이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서 모든 차원의 억압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14)

여기서 ‘해방’이란 개념은 성경과 기독교 교회가 전통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구원관과 동떨어진 상황 중심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가 해방 개념 또는 해방 운동에 대한 세 가지 차원을 정의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구티에레즈가 정의한 첫 번째 단계의 해방은 압제받는 대중과 사회계급의 염원을 표현한 것으로써 강대국의 제국주의적인 지배와 그 종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단계의 해방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인간을 자기 운명을 의식하고 책임지는 존재로써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진정한 자유와 새로운 인간성, 그리고 질적으로 변혁된 사회를 추구하는 노력의 주체라는 것이다.

끝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해방’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불의와 압제와 근본적 죄로부터 해방되므로 이기심을 극복하고 참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하나님과 이웃과 진정으로 교제할 수 있게 하는 의미로서의 해방을 뜻한다.15)

그러나 구티에레즈가 정의하고 있는 세 번째 단계의 성경적 ‘해방’이란 구티에레즈가 전제하고 있는 ‘죄’의 개념과 성경적 ‘죄’의 개념이 다름을 이해할 때 구티에레즈가 정의 하고 있는 ‘해방’이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신학 태동의 배경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분석의 이론적 도구와 역사 철학으로써 해방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 억압자와 피억압자, 자본가와 노동자로 분석했다. 해방 신학은 현실 분석을 통해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으로부터 도입했다.

해방 신학이 이분법적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계급 투쟁이나 폭력에 의한 혁명을 인정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었다.16)

마르크스는 인간이 본래 악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우리는 악하게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악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인류의 악은 계급 투쟁에 의해서 형성된 속박적인 사회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인간의 본성을 괴롭히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계급 투쟁이 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계급 투쟁은 인간이 서로에게 과하는 모든 살인, 원한, 증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범죄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17) 마르크스의 첫 번째 핵심 이론은, 모든 사회는 계급 투쟁에 의해서 얽혀 있으며, 이 계급 투쟁이 인간 죄악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위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해방신학의 정의를 내려보면 다음과 같다. 해방신학은 197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정치, 경제적인 자유를 박탈당한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신학이론이다.

전통신학이 개인의 영혼구원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보고 있는데 반하여, 해방신학자들은 현실사회를 조직적인 억압사회로 규정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말한다.18)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와 제3세계 나라들에서 발생한 운동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경험과 그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준거점으로 삼는 신학운동이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제3세계의 빈곤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신학적 과제의 새로운 급진주의적 접근법으로써, 억압을 떨쳐 버리고자 하는 그들의 투쟁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신학이다.19)

이처럼 해방신학,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WCC는 1970년부터 1986년까지 17년 동안 약 250만 불을 ANC, SWAPO, PAC20)와 같은 반백인통치 투쟁단체들에게 지급하였고, 전세계 30개국의 100개 이상 기관에 모두 700만불을 지급하였다.21) 원

조를 받은 나라들과 단체들은 마르크스주의 영향권 아래 있는 행동주의 단체들이었으며 이막대한 재정은 WCC의 예산과 후원기금과 1973년 방콕 선교대회에서 결정한 ‘모라토리움’의 결과로 축적된 선교비로 지불된 것이다.22)

2013년 제10차 WCC총회의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사42:1-4)” 이다.23) 우리는 WCC의 지난역사와 신학적 입장을 고려하여 2013년 WCC총회가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분명한 입장규명이 필요하다.

해방신학적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선교사파송과 지원을 중단했던 WCC가 교회일치와 연합을 앞세워1910년 에딘버러에서 시발된 순수 교회연합운동인 에큐메니칼 정신을 계승하고자 나선다는 것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적 입장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에 많은 복음주의적 교단들이 우려의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주제선정과 관련하여 중앙위원들은 ‘정의’ ‘평화’ ‘생명’ ‘일치’를 WCC 총회 주제에 넣기 위해 다양한 제안을 내놨다.

필리핀의 한 중앙위원은 “WCC가 설립된 1948년부터 지금까지 총회 주제에 정의나 평화란 이름이 사용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올라프 트베이트 WCC 총무가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됨으로의 부르심”이라고 중재해 합의를 이끌었다.

또한 총회 주제와 관련해 WCC 중앙위원이자 기획위원인 시리아정교회 소속 모르 로함 교부는 “이번 주제는 전 세계와 관련된 것”이라며 “이 주제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까지 다양하게 읽혀질 것”이라고 말했다.24) 이번 WCC총회 주제선정에서 중앙위원들이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정의와 평화를 통한 연합과 하나됨”이 2013년 제10차 WCC 총회의 목표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주제선정과 관련하여 다루어진 내용들과 언급들을 살펴보면 WCC의 연합정신은 지금까지 WCC가 추구해왔던 사회적 ‘교회연합’으로써2010년 에딘버러에서 주창된 순수 교회연합정신의 범주를 넘어 사회연합적 성격임이 확실시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분열을 부산 총회 성공희생 제물로”25)라는 낙관적인 한국교회의 대응은 실로 내실이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가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2013년 WCC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함으로 한국교회의 복음의 능력을 WCC에 전하고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주역으로 설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이 있으며, 또 다른 입장으로는 이미 결정된 2013년 부산 WCC 총회에 대하여 번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회개최를 방해할 수는 없으나 대회참가는 거부하겠다는 입장이 복음주의 내에서 정리되지 못 한 채 한국교회의 내적반응으로 보고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대표하고 있는 NCCK는 진보적 성향이 강한 단체로써 WCC신학의 문제점들을 간과하고 성공적인 대회를 위한 조직구성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예장 백석의 경우에는 “WCC 부산총회 비판적 지지”를 공개 표명하고 나섰는데, 장종현 백석학원 설립자는 “한국교회는 WCC가 주도적으로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개인구원을 약화시킨 사회복음주의,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란 원리의 포기와 인본주의 성경관과 각종 비평학설의 수용, 성찬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이해의 포기, 이신칭의 교리의 로마 가톨릭적 이해, 선교무용론에 대한 혐의 등에서 벗어나도록 개혁을 유도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26)

2. “대화” 프로그램

WCC의 종교다원주의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1971년 사마르타에 의하여 시행된 “Dialogue Program” 이다.27)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대화”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화”는 1928년 폴(Paul)과 차우(Chao)에 의하여 제2차 IMC(세계선교협의회)대회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이었다. 그러나 1928년 거론되었던“대화”는 타종교와의 대화가 아니라 서양의 세속주의에 대항하여 힌두교, 불교, 유교의 종교들이 연합하여 대화하자는 것이었다.

1938년 탐바람 선교대회에서 종교다원주의적인 대화는 클래머(H. Kraemer)와의 충돌로 잠시 주춤하다가 1950년대에 다시 활발하게 거론되어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종교다원주의적인 대화가 1961년 인도신학자 데바난단(P. Devanandan)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는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다”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세상과 화목하시려고 오셨으므로 더 이상 인간 사이에도 분쟁과 다툼이 없는 평안만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다원주의적이 입장에서 기독교 진리를 다양한 타종교의 종교철학적 체계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데바난단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된 종교다원주의적인 “대화”는 1967년 스리랑카에서 막스주의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본격적으로 WCC 내에 "Dialogue Program"이 형성되기 이전에 1970년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지도자들이 아잘톤, 베이루트에 모여서 함께 예배하는 종교 의식을 갖았다.

이 의식을 통하여 그들은 말하기를 “아시아의 범신론적 영성에 기독교의 진리가 용해됨을 느낀다.”라고 하였다.28) 데바난단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영성을 아시아의 혼합주의적인 범신론적 영성에 희석시키고 기독교의 진리의 유일성을 거부하면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본격적으로 WCC내에 대화프로그램 (Dialogue Program)이 생긴 것은 1971년이다. WCC는 인도신학자 사마르타(S. J. Samartha)에게 대화프로그램을 일임하였다. 사마르타 역시 힌두교의 범신론적 입장에서 기독교의 진리와 하나님을 해석하였다.

그는 “경계선이 불안해 진다.”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하여 타종교와의 연합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기독교에만 계신 것이 아니고 타종교의 철학 속에서도 얼마든지 계실 수 있으므로 선교는 타종교의 철학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사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을 확대하여 잘못해석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인간개인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화목하고 또 인간 사이에 화목케 하여 평화를 주려고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평화 -“샬롬”-이 오게 하는 것이 곧 종교의 목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기독교는 진리의 유일성을 배제하고 타종교와 주체대 주체로서 다양한 대화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종교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선교라는 것이다.29) 사마르타는 이와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진리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대화 방식을 거부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배제한 “그리스도의 보편성”과 “포괄적 성령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에 대한 정면적인 대응이다. 그가 말하는 성령은 아시아의 범신론적 혼합주의 영성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영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는 타종교의 다양한 영적 체험을 성령으로 간주하여 “포괄적인 성령론”의 입장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이끌어나가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무의미 하고 “샬롬”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모두가 평안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WCC의 종교다원주의 운동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유동식 박사에 의하여 1990년 1월 19일 20일에 걸친 세미나를 통하여 “한국종교와 신학적 과제”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타종교의 존재와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는가의 문제가 다루어 졌다.30)본 학술대회의 서문에는 이에 대한 변선환 박사의 글이 발표되었는데 종교다원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변선환 박사는 더 이상 한국교회는 타종교를 전도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대화를 통하여 타종교와 연합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타종교를 대화의 주체로 보아 서로가 진리를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종교철학적 체계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31)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적 “대화”는 197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WCC 총회에서 혼합주의적 성향으로 더욱 부각되어졌다.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총회에서 현경32)은 주제 강연을 맡았는데, 한국무속의 모티브를 빌려 마치 무당처럼 십자군 전쟁에서 죽은 무슬림, 정신대에 끌려가 죽은 할머니, 베트남 전쟁에서 죽은 군인 등인류 역사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을 부른 다음 해원을 시켜주는‘초혼제’를 지냈다.

그러면서 “성령은 바로 이렇게 한에 맺혀서 울부짖는 울음을 듣고 그 울음을 치유하고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끌어주는 삶의 에너지이자 생명력”이라고 메시지를 건넸다.

기독교의 성령이 보통 서양미술사에서 보면 서양 남자의 얼굴로 그려지잖아요. 저는 아시아 여성이 보는 성령의 얼굴을 ‘관세음보살’로 잡았어요. 어짜피 성령은 눈에 잡히지 않는 것이고 사람은 자기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는 가장 자비로운 치유자의 얼굴로 성령을 표현하잖아요. 제가 여성적인 관세음 보살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내가 아시아 여성으로서 느끼는 성령의 아이콘이다.’라고 선언하니까 그런 불교 이미지를 본 기독교인들이 모두 뒤로 넘어갔죠.33)

이와 같이 WCC의 종교다원주의적 “대화 프로그램”은 WCC의 혼합주의를 태동시켰다. 타종교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고, 타종교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러한 다원주의는 1968년부터 1975년까지 WCC 중앙위원회 위원장 이었던 인도 신학자 토마스(M. M. Thomas)의 혼합주의에서 더욱 확고해졌다.34)

이미 1973년 방콕대회에서 힌두교인은 종교를 바꾸거나 새로운 종교 공동체로 이동해 갈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그 자신의 문화 공동체 안에 그대로 있으면서 ‘기독교적 힌두’가 될 것35)이라고 주장했던 토마스는 2년 후 나이로비총회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혼합주의”를 주장했다.

이에 정현경은 토마스가 주장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혼합주의’를 아주 잘 실현한 에큐메니칼 학자인 것이다.

정현경은 그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경계를 넘나드는 자’ ‘다리를 놓는 자’ ‘문화 통역가’로 정의를 내리고 이러한 것들을 통털어 ‘살림이스트(Salimist)’라고 하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살림이스트’란 순수한 한국말 명사 ‘살림’에서 온 말이다. ‘살림’은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한다는 말이다.36)

“무당 같다고요? 전 그 말이 최고로 영광스런 찬사라고 생각해요. 우리 안에는 모두 ‘신적인 생명력’ 즉 우주의 창조력이 있어요. 그리고 신적인 생명력의 씨를 싹트게 해야 할 의무도 있고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신(神)나게 사세요!’ 하고 인사하는데요. 마음껏 신기를 발휘하면서 살아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 수 있거든요. ‘꼴리는’대로 살라는 말도 방

종이 아니라 ‘존재이유’를 찾으라는 그런 의미죠.37)

현경은 미국 케임브리지 젠 센타에서 숭산스님을 만나 ‘대광명’이라는 불명을 받고 계룡산 신원사에서 삭발 동안거에 들어가는가 하면 히말라야 산속에서 ‘옴 마니 반메 훔’만트라를 외우고 베트남의 틱낫한에게서 명상을 통한 수행을 배우는 등 신학자로서의 자기만의 정체성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제단(altar)을 만들것을 그의 책에서 제안하고 있다.

너의 방이나, 네 방이 없다면 공원의 한 구석이나 어는 한 장소를 너의 성지(Holy Place)로 정하고 그곳을 네가 성스럽게 여기는 ‘파워 오브젝트(Power Object)'들로 꾸며봐.성경책, 불경, 예수님, 부처님, 여신들의 사진, 혹은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닮고 싶은 사람들의 사진, 아니면 아름다운 조약돌, 깃털, 꽃, 초, 향물, 음악 등, 무엇이든 네게 힘을 주는 오브젝트들로 성스러운 제단을 만들고, 그 구석에 앉아 네가 되고 싶은 너 자신, 너의 가장 와일드한 꿈들, 그 모든 것들을 상상하며 너 자신에게 마술을 걸어봐. 그래서 그 가장 이상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네 모습을 관찰하는 거야. Enjoy it!38)

이처럼 정현경이 보여주고 있는 WCC신학은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선교의 본질인 복음전도가 전혀 요구되지 않는 종교다원주의적 혼합주의 신학인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NCCK는 2013년 WCC 부산총회가 성황리에 모든 교단과 교회가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뤄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를 위한 복음 선교적 차원에서 거론되어졌던 교회연합차원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 의미를 상실한 채세계선교가 아니라 교회연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인류연합 운동 즉, 세계 평화공동체 형성 그 자체가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2013년 WCC 부산 총회를 위하여 취해야할 NCCK의 입장은 손님을 맞는 한국교0회로서 예의를 갖추어 손님접대에 최선을 다하되WCC의 신학동향과 문제점을 바로 인식하고 한국교회가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적 경향에 편향되는 일이 없도록 WCC 신학 알리기 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한국교회들은 아직까지도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무시한 채 대회유치와 성공만을 기원한다면 대회이후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 신학으로 인한 한국교회의 혼동과 분열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NCCK와는 별개로 일부 보수교단의 WCC 총회 비판 움직임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국내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WCC 대책위원회(위원장 서기행 목사)는 30일 ‘WCC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란 책을 전국 총대, 교회, 주요 기관에 발송했다.

이 책은 기독론, 교회론 등 WCC의 실체를 비판하는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 12명의 논문을 실은 것이다. 서기행목사는 논문집에 대해 “WCC 신앙노선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논문집을 통해 교단 소속 목회자들부터 WCC가 신앙적·신학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39)

III.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신앙 간증

(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40)

2011년 1월 28일 스위스 제네바 WCC본부에서 WCC와 WEA41)와 로마교황청이 공동의 선교 문서를 발표했다. 2013년 WCC 총회의 한국유치와 더불어 2014년은 WEA의 한국대회가결정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WCC와 WEA의 공동 선교문서발표는 향후 한국선교신학의 방향에도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또한 지난 2011년 10월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WCC 총회 준비위원회 모임에서 롤프 힐레(64)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에큐메니컬위원회 위원장과 박성원 WCC 중앙위원(영남신대 석좌교수)이 만나 보수교단이 우려하는 WCC의 신학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았다. 튀빙겐대 신학대 학장을 역임한 힐레 위원장은 1986년부터 2008년까지 WEA신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이 WEA의 신학적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 왔다.

그는 “에큐메니컬 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은 상호 보완적이며, 세계적으로 양 진영이 서로의 합치점을 찾아가고 있는 새로운 상황에 있다”면서“전혀 새로운 운동에 직면해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도 과거의 이분법적 구도에 함몰되지 말고 대화에 나서는 게 좋을 것” 이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그는 “WCC의 신앙고백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귀띔했다.42) 그러나 실상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로 교단의 분열과 신학적 분리를 일찍이 경험한 한국복음주의 교단이 받아들이기에는 힐레 위원장의 이같은 견해가 다소 부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에큐메니칼 진영과의 대화는 이전에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에서 복음주의도 다양한 입장중의 하나로 받아드리는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복음주의적 입장은 성경에 근거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기에 신학적 검증단계를 거치지 않고 대화를 통한 상호보완을 논의하는 것이 상당히 부적절해 보인다.

또한 힐레 목사는 “70년대와 달리 오늘날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는 양극단을 달리던 구도에서 상당히 다른 상황에 와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에반젤리컬화 되고, 에반젤리컬이 에큐메니컬화 된 성향을 보이고 있다. 상당한 방향 전환이 있었고 배움으로 서로 많이 융합이 된 상태다. 과거의 에큐메니컬 운동과 전혀 다른 운동이라고 생각해도 좋다.”43)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WCC의 신학노선은 WEA의 신학노선과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앞서서 보았듯이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 WCC의 많은 프로그램들과 WCC 홈페이지 웹사이트에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타종교를 통한 구원의 개연성은 절대적으로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는 받아드려질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특별히 지난 1월 28일 공동으로 WCC와 WEA와 로마교황청이 발표한 선교 문서이다. 다음은 선교 문서 지침사항중 제 2, 3조항이다.

2. 모든 종교인들과 존중과 신뢰의 관계를 정립하고 특별히 교회와 다른 신앙 공동체들과 단체적 차원에서 계속적인 타 종교 간의 대화를 다른 기독교적 활동과 더불어 해 나가야 합니다. 수년간의 긴장과 대립 속에 깊은 의혹을 쌓고 신뢰를 잃은 단체 간의 상황에서는, 종교 간의 대화가 대립을 완화하고 정의를 구현하고 상처를 치유한 기억과, 화해와 평화 증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3.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두텁게 하고 타 종교가 지지하는 시각도 받아들이되, 기독교의 주체성과 신앙을 강화하도록 기독교인들을 격려합니다.

위의 내용에서처럼 필자가 선교문서 내용 중 제 2, 3조항을 언급하고자하는 것은 특별히 제2조항은 종교간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제3조항은 타 종교가 지지하는 시각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조항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화’의 전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WCC의 입장에서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입장에서 대화를 하게 될 것이고, WEA의 복음주의적 입장에서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대화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3조항에서 언급하고 있는 ‘타종교가 지지하는 시각’이 무엇인지 구원관에 관한 시각이라면 WCC의 종교다원주의적 혼합주의 구원관은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WEA(The World Evangelical Alliance)의 기원을 살펴보면, 1846년 EAG(The Evangelical Alliance of Great Britain)이 창설되고 이와 함께 영적 일치와 기도에 합심하여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돕고 격려하며 부흥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WEF(The World Evangelical Fellowship)으로 시작하였다. 그 후 특별한 동기가 없었고 미국 남부 노예제도에 대한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활동이 멈추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복음주의자들의 교제권을 다시 형성하려는 바람이 있게 되어서 1951년에 EAG와 새롭게 만들어진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U.S)와 21개 국가의 대표자들이 모여 WEF를 다시 구성하게 되었다.44)

정흥호 교수는 2010년 12월 13일 한국연합선교회 주최학술대회에서 “WEA의 신학노선과 방향”에 대하여 발제를 바치면서 결론에서 “크게 복음주의란 차원에서 본다면 WEA의 신학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로잔 1차 선언(1974)인 Lausanne Covenant나 2차선언 (1989)인 Manila Manifesto, 3차 로잔대회의 The Cape Town Commitment(2010)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5) 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 1월 28일 WCC와 WEA와 로마교황청이 공동으로 발표한 선교 문서에서는 무엇보다도 선교문서 작성 배경 중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면서 1번 조항46)에서 “타 종교 간의 기도 (1997-1998)”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WEA가 크게는 복음주의적 선언문들과 같은 맥락에서 있는 듯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활동면에서 좀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IV. 결론

한국교회는 지금 WCC 2013년 부산 총회를 맞아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진영의 우려와 NCCK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축제분위기가 엇갈리고 있다. 물론 이미 총회개최가 확정된 마당에 총회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은 없지만 WCC신학의 문제점들을 매스컴과 교회교육들을 통해 알리면서 WCC신학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히고 한국교회가 WCC신학의 유입으로 인하여 복음의 순수성이 사라지고 선교의 열정이 식는 일이 없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이에 최근 1월 28일 WEA와 WCC, 그리고 로마교황청이 공동발표한 선교문서는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진 공동문건이라는 차원에서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본론 부분에서 다룬 ‘모라토리움’선언과 ‘대화 프로그램’은 WCC의 선교정책을 대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선교정책들이다. 해방신학적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모라토리움’ 선언은 WCC의 ‘일치와 화해’ 혹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외면적인 용어 사용만 보아서는 WCC가 추구하는 내용들이 성경적이고 복음적인지 가늠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WCC의 과거 활동사를 통하여 종교다원적이고 혼합주의적인 WCC의 선교정책을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비판하였다. 무엇보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전제로 한 ‘대화 프로그램’은 복음주의적 입장에서의 ‘대화’에 대한 선입견을 낳았으며 마치 복음주의자들이 전혀 타종교인들과 대화하지 않는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8일 공동발표한 선교문서에서는 타종교 간의 대화와 상호 지지가 촉구되었다. 그러나 타종교 간의 대화에 관한 전제조건이 구원의 상대성을 인정하는데 있는 것인지 어떤 지가 불명확하고 무엇을 위한 대화인지 WCC 홈페이지에서 보여주고 있는 WCC의 대화프로그램에 대한 선행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디 2013년 WCC부산 총회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의 영향으로 표류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하면서 이번기회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WCC의 실체를 알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제어)

복음주의, 에반젤리칼, 교회연합주의, 에큐메니칼, WCC, WEA,대화, 모라토리움, 해방, 구원

각 주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 이하 WCC

3)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764408&cp=du, 2011년 10월 2일. (결의문)

1. 오늘 모인 160개 교단 지도자들과 28개 선교단체장들은 12개 항목의 성명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WCC의 비기독교적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

2. 36년간 일제침략과 6.25 사변의 격동기에도 오직 예수로 순교자적 피흘림의 발자취를 지켜온 우리 개혁주의 신앙의 지도자들은 WCC의 한국진출을 철저히 배격한다.

3. WCC의 부산총회 유치가 마치 한국기독교 전체의 축제인양 언론매체를 통하여 홍보하여 1,200만 성도들의 복음의 열정을 꺾어 버리려고 우롱한 극소수의 몇몇 교단과 한국교회 분열을 가져온 몇 몇 목회자들은 철저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바라며 향후 한국교계 분열의 책임은 그들과 그들의 교단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라며 오늘 모인 우리 개혁주의 보수교단 지도자들은 끝까지 WCC 부산 총회를 반대하기로 결의한다.

주후 2010년 5월31일

한국 기독교 WCC 반대 대책위원회

160개 교단장 및 28개 선교단체장 일동

4)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출판국, 『WCC 무엇이 문제인가?』(서울: 총회출판국, 2010),

241-243.

(한국 기독교 WCC 반대 대책위원회 성명서)

복음적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가 기독교 복음전파에 역행하고, 교회건설 사명을 방해할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을 약화시키는 반성경적, 비기독교적 단체이기에, 이 단체의 한국총회(2013년) 개최를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제시하는 바이다.

1. WCC는 성경이 신앙의 행위의 유일한 최종적 규범이라는 것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2. WCC는 성경의 기본 교리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의 일치를 추구하며, 이단과 적그리스도와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규제하지 않고, 교회의 변증적 사명을 무시한다.

3. WCC는 개신교회의 토대인 전통적인 구원관, 특히 이신칭의 시낭을 약화시키거나 상대화하며, 인간 해방과 혁명을 구원 행위로 본다.

4. WCC는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있다고 하며, 종교 다원주의를 표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한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당위성을 포기한다.

5. WCC는 성령을 정령과 동일시하는 초혼제를 용납하고, 성령을 물활론적으로 해석하는 비기독교적 사상을 방조하였다.

6. WCC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을 선교에 도입하여 인간화, 화해, 사회참여 등을 선교의 지상과제로 보며,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전도의 긴박성과 구령사업을 저해한다.

7. WCC는 통전적 선교를 말하면서도 실상은 빈곤퇴치와 사회활동과 구조악 철폐 등에 치우친 선교를 하고 있다.

8. WCC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일치를 추구하고 정교회를 회원으로 가입시켜, 선교유예를 시행하도록 하여, 성경적 복음 진리 전파를 방해한다.

9. WCC는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신학과 궤를 같이하는 좌파 성향의 용공주의 태도를 지녀왔고, 공산권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 생명 박탈, 신앙의 억압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10. WCC는 교회의 연합체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성찬중심의 교제단체이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실상 교회의 본질인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포기한다.

11. WCC는 신학적 다원주의와 신앙무차별주의를 지향하며, 교리는 분열시킨다고 하면서 기독교 교리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교회의 생명력을 쇠퇴시킨다.

12. WCC의 외형적 기구 일치운동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진리안에서 일치된 신앙고백 공동체, 즉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분열시킨다.

2010년 4월29일

한국기독교 WCC 반대 대책위원회

5)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764408&cp=du, 2011년 10월 2일.

6) http://www.unionpress.co.kr/news/detail.php?number=98520&thread=01r02r01, 2011년 10월 1일.

7) 이하 CWME.

8) 본 논문의 1차 자료는 WCC의 홈페이지 (http://www.oikoumene.org) 를 참조하였음.

9) Roger E. Hedlund revised and enlarged, Roots of The Great Debate in Mission : Mission in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India, Bangalore : Theological Book Trust, 2nd. edition, 1993), 258.

10) Roger E. Hedlund revised and enlarged, Roots of The Great Debate in Mission : Mission in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259.

11) Hassing, "Salvation Today", 256. Roger E. Hedlund revised and enlarged, Roots of The Great Debate in Mission : Mission in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에서 재인용.

12) P. Beyerhaus, Bangkok'73, Anfang oder Ende der Weltmission? (Neuhausen- Stuttgart, 1973), 102, 108. 이동주, 『현대선교신학』(서울 : 기독교 문서선교회, 1998), 201에서 재인용.

13) K. Bockmuhl, Herausforderung des Marxismus (Giessen, 1979), 128. 이동주, 『현대선교신학』, 201에서 재인용.

14) L. 보프, 『해방신학의 올바른 이해』(서울 : 분도출판사, 1984), 131.

15) 구르사보 구티에레즈,『해방신학』성염 옮김, (서울 : 분도출판사, 2000), 57-58.

16) 목창균, 『현대신학 논쟁』,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5), 337.

17) 계급 투쟁은 수세기 동안 사회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접전을 일으켜 왔다고 말하며, 그는 자신이‘생산 관계들’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구분하고 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계급의 분류가 역사의 장을 따라 분명하게 구획되어진 것은 아니나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는 이 선들이 명백하다. 자본가 - 소유자는 부르주아 계급이고,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규정되며, 이것이 모든 악을 조장하고 모든 사회 관계들을 규정하는 투쟁을 일으키게 된다고 주장한다.

18) 박영호, 『해방․민중신학 문답』(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1984), 19.

19) 스탠리 그렌츠․로저 올슨, 『20세기 신학』신재구역, (서울: IVP, 1997), 341.

20) ANC (African National Congress0, SWAPO (South West Africa Peoples Organization), PACC (Pan Africanist Congress on Azania).

21) E.W. 레훼버,『암스텔담에서 나이로비까지』전호진 역, (한국 기독교 교육 연구원, 1981), 201.

22) 이동주,『현대선교신학』, 202.

23) 국민일보 2011년 10월 7일자 29면.

24)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673524&cp=du, 2011년 10월 2일

25) 국민일보 2011년 10월 7일자 29면.

26)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542828&cp=du, 2011년 10월 2일

27) http://www.oikoumene.org/en/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html 참조

28) 이동주,『현대선교신학』, 10-12.

29) 이동주,『현대선교신학』, 12-14.

30 이동주,『현대선교신학』, 9.

31) 이동주,『현대선교신학』, 10..

32) 현경의 본명은 정현경 이다. 한국여성들이 벌이고 있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지지하기 위하여 저자는 그의 책,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출간을 계기로 그녀의 이름을 현경으로 바꾸기로 했다. 어머니가 세 분이므로 그 성들을 이름 앞에 붙이면 오강장정현경이 되기 때문에 아예 더 평등한 방법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다 빼기로 했다.

33). 박윤희, “파격적인 언행과 새로운 여성신학관으로 주목받는 세계적인 신학자 현경”「여성동아」, 2002. 7.

12. newsroom@donga.com. 소윤정, “정현경의 혼합주의적 신론에 관한 비판적 연구 - 성령론을 중심으로 -”,『복음과 선교』Vol.9 (2008), 217에서 재인용.

34) 이동주,『현대선교신학』, 15.

35) K. Bockmuhl, Herausforderung des Marxismus (Giessen, 1979), 142. 이동주, 『현대선교신학』, 15에서 재인용.

36). 현경,『미래에서 온 편지』,(서울: 도서출판 열림원, 2003), 232, “살림이스트 선언”. : 살림은 한국여성이 매일 하는 가정일을 일컬음. 예를 들면 나무하기, 물긷기, 음식하기, 빨래하기, 베 짜기, 아이 키우기, 병간호, 노인 돌보기, 꽃․나무 가꾸기, 우물 지키기, 소․닭․개 키우기, 그리고 집의 영(靈)들을 돌보기 등. 살림은 또한 망가지는 것(냄비, 신발, 그리고 가슴 등)을 고치는 일을 일컬음. 한국 사람들이 “저 여자 살림꾼이네”하고 말하면 그것은 그 여성이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는 기술, 예술 전문성이 있음을 말함.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을 배부르고 행복하게 먹이는 것,가족의 평화, 건강, 풍요함을 끌어내는 것(이때의 가족은 모든 종류의 생명을 포용하는 큰 가족 개념을 의미), 아름다운 삶의 환경을 만드는 일 등.

37). 박윤희, “파격적인 언행과 새로운 여성신학관으로 주목받는 세계적인 신학자 현경”『여성동아』,newsroom@donga.com, 2002, 7, 12.

38). 현경『미래에서 온 편지』,, 28.

39)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308981&cp=du, 2011년 8월 31일

40) http://www.worldevangelicals.org/resources/source.htm?id=288, 2011년 10월 8일, 공동 선교문서 <부록> 참조.

41) 세계복음주의연맹

42)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422579&cp=du, 2011년 10월 8일

43)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422579&cp=du, 2011년 10월 8일

44) David M. Howard, "World Evangelical Fellowship", in Evangelical Dictionary of World Missions. ed. by Scott Moreau (Grand Rapids, Mich, : Baker Book House, 2000), 1027-28. 정흥호, "WEA의 신학 노선과 방향“,『WEA와 WCC의 신학과 선교』, 한국연합선교회 학술대회 자료집 (2010.12.13), 11.

45) 정흥호, "WEA의 신학 노선과 방향“,『WEA와 WCC의 신학과 선교』, 21.

46) 1. 오늘날 세계에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그리고 기독교인들과 다른 종교인들 간에 협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PCID와 WCC 내 종교 간 대화와 협력(IRDC)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협력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PCID 와 WCC-IRDC 가 과거에 협력한 문제들의 예로는 타 종교인들 간의 결혼 (1994-1997), 타 종교간의 기도 (1997-1998), 그리고 아프리카의 종교성 (2000-2004) 등이 있습니다. 본 문서는 이 협력의 결과물입니다.

<부록>

한국어 번역본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신앙 간증

(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

수행 지침

서론

선교는 교회 존재의 중심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세계에 증거하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일을 모든 인류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복음의 방식에 따라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지거나 기독교 신앙 간증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가진 인종과 집단들 간에 긴장감이 존재한다는 인

식 하에, 교황청 종교간대회평의회(PCID), 세계교회협의회 (WCC), 그리고 WCC가 초청한, 세계복음연맹(WEA)은 지난 5여년간의 교류를 통해 기독교인의 신앙 간증 행동 지침으로써 사용될 본 문서를 집필했습니다.

이 문서의 목적은 선교에 관한 신학적인 선언을 하고자 함이 아니며, 다종교 세계에서 기독교 신앙 간증에 관한 실질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습니다. 이 문서의 목적은 교회와, 교회 협회들, 그리고 선교 단체들이 현재 행하는 선교 방식들을 회고하고, 이 문서를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무종교인들을 향한 그들의 고유의 전도와 선교 방식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준비하는 데 활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 문서가 그리스도의 신앙을 증거하는 그들 고유의 행동 양식에 있어 말과 행동 모두로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 간증의 기초

1.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그들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를 온유함과 경외를 가지고 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요, 기쁨이다. (베드로전서 3:15)

2.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최고의 간증이다. (요한복음 18:37) 기독교인의 신앙 간증은 하나님나라, 이웃에 대한 섬김,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지라도 자기 자신을 전부 내어주는 자기 비움의 선포 형식을 띄는 간증을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의 힘으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신자들도 말과 행동에 있어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선교지에 보내진다.

3. 예수 그리스도와 초기 교회의 본보기와 가르침은 기독교 선교에 있어 가이드가 되어야 마땅하다. 200여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좋은 소식을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것을 추구해 왔다. (누가복음 4:16-20)

4. 다종교 세계의 기독교 신앙 간증은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참여 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도행전 17:22-28)

5. 어떤 상황들에서는 복음을 실천하고 선포하는 것이 힘들거나, 이러한 활동이 박해받거나 심지어는 금지되어 있지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에 있어 서로가 연합하고, 신실하게 증거

를 계속해나가는 것이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사명이다. (마태복음 28:19-20; 마가복음 16:14-18; 누가복음 24:44-48; 요한복음 20:21;사도행전 1:8)

6. 기독교인들이 속임수와 강제적인 수단에 의지한 부적합한 방법으로 선교를 행하고 있다면 그들은 복음에 위배되는 일을 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회개를 요하며 우리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가 필요한 것을 상기시킨다. (로마서 3:23)

7.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간증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지만, 개종은 온전히 성령에 의한 것 임을 확신한다. (요한복음 16:7-9; 사도행전10:44-47) 기독교인들은 성령이 인간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칙

기독교인들은 적합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루는 것을 추구하며, 다음의 원칙들을 고 수하는 것이 요청된다. 이는 특별히 다종교 간의 맥락에서 더욱 그렇다.

1.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사랑의 근원이라고 믿으며 그들의 신앙 간증의 행위 안에서도 사랑의 삶을 실천하고 그들의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것을 믿는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 삼는다. 기독교인들은 삶의 모든 영역과, 그리고 특별히 신앙 간증의 행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께 영광과 존귀를 드리며 그리스도의 본보기와 가르침을 따를 것이 요구된다.

3. 기독교인들의 도덕성. 기독교인들은 성실, 자비, 연민, 그리고 겸손으로 행동할 것이며, 모든 종류의 교만과, 타인을 업신여기는 행위, 그리고 차별을 극복할 것이 요구된다.

4. 섬김과 정의 실천. 기독교인들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일에 부름 받았다. (미가 6:8)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을 섬기고 그 섬기는 형제 자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교육의 제공, 의료 제공, 구제, 정의의 실천, 시민단체 활동 등의 섬김의 실천은 복음을 증거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이다. 기독교인들의 전도 활동에 가난과 노동 착취의 현장이 있어서는 안된다. 기독교인들은 섬김에 있어 금전적인 동기나 보수를 미끼로 사용하는 모든 방식들을 철폐해야 한다.

5. 치유사역에 있어서의 분별력. 복음 선포의 중요한 부분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치유의 사역을 실천한다. 치유사역을 행하면서 인간 존엄성에 경외함을 가지고 사람들의 연약함과 치유에 대한 필요가 남용되지 않도록 분별력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6. 폭력의 배제. 기독교인들은 신앙 간증의 힘을 남용한 모든 종류의 폭력, 심지어는 심리적인 또는 사회적인 폭력들을 배제해야 한다. 예배당,종교적 상징 또는 경전의 파괴를 포함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권력에 의한 폭력, 불공정한 차별과 억압을 배제해야 한다.

7. 종교와 믿음의 자유. 공공 장소에서 자신의 종교를 선포하고 행하고 전파하고 전도하는 권리를 포함한 종교적 자유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데에 근거한 인간의존엄성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동일한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정치적인 목표에 종교가 사용되는 곳 또는 종교적 탄압이 일어나는 곳에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들을 규탄하는 예언적 증거에 참여해야 한다.

8. 상호 존중과 협력. 기독교인들은 상호 존중의 자세를 가지고 헌신하는 것이 요구되며, 정의,평화와 공동의 선을 목표로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종교 간의 협력은 이런 노력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9.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중. 기독교인들은 복음이 문화에 도전을 주는 동시에 문화를 증진시킨다는 점을 직시한다. 복음이 문화의 어떤 부분에 도전을 줄 경우,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요구된다. 기독교인들은 또한 자신의 문화에서도 복

음에 의해 도전 받는 부분들을 잘 분별해야 한다.

10. 거짓증거의 철폐. 기독교인들은 진지하게, 또한 책임감 있게 말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신념과 행동 양식을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많이 들어야 하고, 그들 안에 진실되고 좋은 것들을 인정하고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의견과 비판적인 자세는 상호존중의 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하며, 다른 종교에 관한 거짓 증거를 피하도록 분명히 해야한다.

11. 개인적 분별력 의 확보.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의 종교를 바꾸는 일은 중대한 일이며, 이는 개인의 자유를 확신하는 과정을 통해 올바른 회고와 준비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

12. 다른 종교간의 관계 증진. 기독교인들은 보다 더 깊은 상호 이해, 화합과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른 종교인들과 존경과 신뢰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

지침

WEA, PCID의 도움으로, 그리고 가장 큰 기독교 공동체 (가톨릭, 정교, 기독교, 복음주의와 성령주의) 의 참여로 WCC가 주최한 본 제3차 컨설테이션은 에큐메니컬 협력의 정신으로 이 문서를 교회, 국가와 지역의 신앙 고백적 공동체와 선교 단체들, 그리고 특별히 종교 간 관계에서 사역하는 이들에 의해 고려되도록 준비해 왔으며, 다음을 권면합니다:

1. 각 상황에 적용 가능한 이 서류와 기독교 증거에 관한 정식 행동 지침 상의 이슈들을 연구하십시오. 가능할 경우 이는 다른 종교 대표들의 자문을 통해야 하며 초교파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2. 모든 종교인들과 존중과 신뢰의 관계를 정립하고 특별히 교회와 다른 신앙 공동체들과 단체적 차원에서 계속적인 타 종교 간의 대화를 다른 기독교적 활동과 더불어 해 나가야 합니다. 수년간의 긴장과 대립 속에 깊은 의혹을 쌓고 신뢰를 잃은 단체 간의 상황에서는, 종교간의 대화가 대립을 완화하고 정의를 구현하고 상처를 치유한 기억과, 화해와 평화 증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3.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두텁게 하고 타 종교가 지지하는 시각도 받아들이되, 기독교의 주체성과 신앙을 강화하도록 기독교인들을 격려합니다.

4. 다른 종교 단체들과 함께 정의와 공익을 위한 범종교적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갈등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는 일에 협력하여야 합니다.

5. 많은 나라들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이 억제된 것을 인정하면서도 종교 자유가 적당하고 포괄적으로 존중되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정부에 요청하도록 합니다.

6. 주변 이웃들과 그들의 복지를 위해 기도하고, 또한 기도가 기독교인들의 선교일 뿐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에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 중요한 부분임을 인지합니다.

부록: 본 문서의 배경

1. 오늘날 세계에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그리고 기독교인들과 다른 종교인들 간에 협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PCID와 WCC 내 종교 간 대화와 협력(IRDC)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협력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PCID 와 WCC-IRDC 가 과거에 협력한 문제들의 예로는 타 종교인들 간의 결혼 (1994-1997), 타 종교 간의 기도 (1997-1998), 그리고 아프리카의종교성 (2000-2004) 등이 있습니다. 본 문서는 이 협력의 결과물입니다.

2. 오늘날 세계에도 다른 종교 간 폭력, 인간 생명의 상실을 포함한 갈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그리고 다른 원인이 이러한 긴장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때로는 본의가 아니거나 또는 본의를 가지고 핍박하거나 폭력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도 이런 갈등에 개입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PCID 와 WCC-IRDC 는 기독교 신앙증거 행위에 관한 지침을 공동으로 만드는 협력 과정에 참여하여 이 문제들에 대해 다루기로 결정했습니다. IRDC 는 이 과정에 WEA가 참여하도록 초대하였고, 이 초대는 기꺼이 수락됐습니다.

3. 처음에는 두 번의 컨설테이션이 열렸습니다. 첫번째 모임은 이탈리아의 라리아노에서 2006 년에 ‘현실의 평가(Assessing the Reality)’라는 주제로 각기 다른 종교의 대표들이 그들의 개종에 대한 관점과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이 컨설테이션의 성명서의 한 부분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의 이해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종교적 감성을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을 확실시 한다. 종교의 자유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종교 외의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자신의 신앙의 우월성을 확증하는 목적으로 다른종교를 부정하거나, 비방하거나, 잘못 전하지 않아야 하는 우리 모두가 타협해서는 안되는 책임을 포함한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4. 두 번째 모임은2007년 프랑스 뚤루즈에서 기독교인들 간의 공동의 이슈들을 논의하기 위해서 개최됐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Family and Community), 타인 존중 (Respect for Others), 경제 (Economy), 마케팅과 경쟁 (Marketing and Competition), 그리고 폭력과 정치 (Violence and Politics)에 관한 질문들이 상세하게 토론됐습니다. 이 주제에 관련된 목회와 선교적인 이슈는 신학적인 회고의 배경과, 또한 본 문서 안에서 발전적으로 전개된 원칙을 세우는 데 배경이 되었습니다.

5. 세 번째로는 2011년 25일부터 28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기독교인 들 간의 컨설테이션에 참석한 이들이 이 문서를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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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카톨릭체제의 문제- 마틴 로이드존스 / 천주교 배교집단 /extra ecclesiam nulla salus /베드로 수위권 /

교황의 절대무오성 화체설 /신인협력 연옥 사제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마틴 로이드 존스

by Martyn Lloyd JonesOriginally Printed in Great Britain at The Burlington Press, Foxton, Near Cambridge

 

너희가 마귀의 속임수를 능히 대항하여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에 베소서 6장 11절, 권위역).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모종의 사건들은 모든 크리스천 지성인들로 하여금 불가피하게 로마 카톨릭주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주의(主義)와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에 화해(和解)를 도모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여러 운동들이 일어나고, 숱한 회의들이 개최되는가 하면, 이같은 일을 환영하는 자들은 우리(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상호존중(相互尊重) 하에 협력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니며, 크리스천 정신의 경이로운 구현(具現)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바로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 때문에, 현 국면(局面)을 바르게 파악해야 할 당위성(當爲性)이 있는 것이며; 앞 날을 내다볼 때 사태의 긴박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직면하게 될 모종의 개연성(蓋然性) 때문인 것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현재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머지않아 카톨릭의 비중이 절대다수(絶對多數)를 차지하게 될 국가들은 전세계적으로 상당수에 달할 것이며; 그럴 경우, 로마 카톨릭은 ‘다수결 원칙’(多數決 原則)을 따르고 있는 민주주의(民主主義) 국가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占有)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 야기될 모종(某種)의 개연성을 예상(豫想)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영국)라고 해서 수년 내에 그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保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우리가 이같은 입장을 점검해 보고, 우리가 직면하게 될 엄청난 사실을 예의주시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이 일은 싫고 좋고를 떠나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전에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러한 성격의 어떤 ‘프로테스탄트 단체’에 소속된 적도 없고, 그같은 주제로 강단에서 설교해 본 적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로마 카톨릭주의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代案)은 기독교의 진리와 위대한 개혁 교리를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외에 이 문제를 능히 다룰 수 있는 것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어, 소극적인 프로테스탄트는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지금껏까지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로마 카톨릭 교세(敎勢)가 각 나라에서 실질적인 증가추세를 보이는 반면, 소극적인 프로테스트의 온갖 노력들은 무기력해 보입니다. 본인은 로마 카톨릭주의의 이러한 확산이 자기의 믿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무지(無知)함과 무기력(無氣力)함에 전적으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본인이 시간을 투자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으로 인해 부득불 본인은 이 문제-곧 주권과 권능,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및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의 활동들인, ‘마귀의 속임수’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쨋든 좋습니다,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하기로 할까요? 여기에서 본인은 개개인에 관해서는 고려치 않음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물론, 카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크리스천인 개개인들도 존재합니다. 즉 여러분이 카톨릭 교인이면서도 크리스천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본인의 전반적인 의도는, 카톨릭 내에서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체제(體制) 때문이 아니라 그 체제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로마 카톨릭 교회 내에서도 개인(個人)이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개인에 대해서는 고려치 않을 것이며, 또한 정치적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측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본인은 지금껏 그것이 엄청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해 왔습니다. 우리는 카톨릭 체제에 대한 역사기록을 알고 있고, 정치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카톨릭의 주장들이 정치적인 힘으로 발전된다는 사실도 알며, 따라서 이러한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정치적 측면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해 고려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기독교 평신도들과 기독교 정치인들의 소관(所關)으로 보입니다. 본인으로서는 오히려 영적인 측면에 관심이 있는데,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우리 앞에 제시하고자 하는 관건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I․로․마․카․톨․릭․체․제

 

  자,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하나의 체제’란 관점에서 살펴볼 때; 본인으로서는 로마 카톨릭주의로 알려진 이 체제야말로, ‘마귀의 가장 위대한 걸작품’이라고 단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체제는 크리스천의 믿음과 성경의 가르침에서 심하게 이탈(離脫)된 종교단체이므로, 본인은 주저없이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과 더불어, 이 체제를 ‘배교집단’(背敎集團)이라 단언하는 바입니다. 이제 이 점에 대해 분명히 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배교를 기독교의 진리로부터 전적으로 이탈한 기독교라고 정의합니다. 혹자는, “글쎄요, 당신은 직접적으로 로마 카톨릭을 지칭하는 겁니까?” 라고 반문하겠지만, 여기에 대해선 무척 신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에 카톨릭을 배교집단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진실 그 자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 경우엔 진리에 대한 ‘부인’(否認)의 문제라기 보다는, 차라리 진리에 대한 ‘첨가’(添加)로 말미암아, 마침내 진리로부터 이탈하게 된 경우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설명하자면  이것(진리에 대한 첨가)이야말로 온갖 교활함이 들어오는 곳이요, 마귀의 속임수가 들어오는 곳이란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 무심코 바라보게 되면, 세상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만큼 정통(正統)인 교회가 없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人格)과 같은 교리적 측면을 고려해 볼 때는, 로마 카톨릭의 정통성에 문제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나사렛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드님이시라고 믿으며; 예수님의 처녀탄생(處女誕生)을 믿으며; 예수님의 성육신(聖肉身)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믿으며; 십자가 위에서의 그분의 대속(代贖) 사역과 그분의 육체적 부활(復活)을 믿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昇天)하셔서 하늘나라에 앉으신 사실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인격적 측면에 대해 로마 카톨릭은 절대적으로 정통이며  애석하게도, 로마 카톨릭이 종종, 대부분의 개신교보다 훨씬 더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 카톨릭의 입장을 그토록 소름끼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의 사역에 대한 측면을 가지고 카톨릭을 보더라도, 카톨릭의 정통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같은 방식으로 ‘은혜(恩惠)의 원리’에 대해 고려해 보면, 그것이 그들의 중심 교리(敎理)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영감(靈感)과 권위(權威)에 대해서도 그들은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개신교보다 더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카톨릭을 단지 일반적인 접근방식으로 바라본다면, 카톨릭은 세계에서 가장 정통적 교회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점에서 교활함이 들어오고 어려운 문제들이 야기됩니다. 카톨릭은 이 모든 것에다 ‘저주받을 더하기’로써, 전적으로 비(非)성경적인 것들과, 사실상 성경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들을, ‘첨가’(添加)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카톨릭이 가르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결국에 가서는 우리가 거짓말을 믿는 위치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카톨릭의 교리는 일종의 모조품(模造品)이며, 성경에 명시된 대로, 카톨릭은 다름아닌 ‘매춘부’(賣春婦, 음녀) 그 자체입니다.

 

과연 이 문제가 지극히 교활한 것이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도 ‘교활함’, 즉, 마귀의 속임수에 대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교활함이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반드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문서를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모든 사람에게 어떠한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카톨릭 체제는 무척 방대하고, 그녀의 교활함은 실로 커서 거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와도 같습니다. 무작위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이 여러 번 접한 경우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들어온 바에 의하면,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혼(離婚)을 용납하지 않으며, 카톨릭 교인 중 누가 이혼했을 경우, 그는 교회로부터 제명(除名)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문 지상에서 돌연 일부 독실(篤實)한 카톨릭 신도들의 이혼 소식을 접하고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라고 반문하게 됩니다. 글쎄요,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결코 진실된 결혼이 아니었다”고! ... 그들은 어떤 것이든지 해명해낼 수 있고, 어려울게 하나 없습니다.

 

  그들의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체계가 그러하며, 고도의 논법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동시에 모든 방향에서의 대응이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혹은 달리 얘기해서, 로마 카톨릭이 실상으로  얼마나 많은 얼굴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이 나라(영국) 안의 카톨릭을 살펴 보십시오. 또 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의 로마 카톨릭을 살펴 보십시오. 여러분이 미합중국에서의 카톨릭을 살펴 본 다음, 남아메리카에 있는 몇몇 라틴 국가들의 카톨릭을 살펴보게 되면, 그들이 동일한 체제라고 믿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및 기타 유사한 국가들의 카톨릭 교회를 살펴 보고, 독일이나 그 주변 국가들의 카톨릭 교회와 대조해 보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결코 같은 카톨릭 체제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도, 사실은 같은 카톨릭 체제입니다. 카톨릭은 얼마든지 그 색깔과 모습, 형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디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카톨릭입니다, 흡사 카멜레온과 같이 ......여러분은 마귀가 자신을 광명(光明)의 천사로 변모(變貌)시킬 수 있는 것이 마귀의 특징(特徵) 중의 하나라고 우리에게 알려 준, 사도 바울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카톨릭의 ‘위장술’(僞裝術)에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카톨릭이 고도의 지성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카톨릭 교도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권장합니다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을 금하며, 비(非)지성적일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미신(迷信)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나라에서는 관용적이고, 기꺼이 들어주며, 토론도 하고 양보도 하며, 매우 친근한 모습을 취합니다만; 그러나 다른 후진 국가에서는 아주 완고하며, 이교(異敎)에 대해 사악하고도 비열한 방법으로 핍박을 가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동일한 로마 카톨릭 교회요, 동일한 카톨릭 체제이며, 동일한 카톨릭 교도들로서 존재합니다. 나는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 카톨릭 교회가 마귀의 걸작품(傑作品)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한 거대한 조직과 체제가 있어, 수십세기 동안 간간이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바로 이 일을 행하고 있으니 -- 곧 온갖 교활함과 속임수 가운데서, 성경의 표현대로 “온갖 불의의 속임수로써”, 마귀의 속임수를 그대로 드러내 왔습니다. 이 모두가 성경에 분명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두 번째 장에서 이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 내용이 이 예언에 대한 유일한 설명구절은 아니지만; 그 중의 하나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은 이 체제가 ‘발흥(發興)한’, 말하자면, 권력을 장악하게 된 사실을 확인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이미 이 조직이 활동해 오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것이 계시록 13장의 두 번째 짐승으로 묘사되어 있고; 계시록 17장의 일곱 언덕 위에 앉아 있는 ‘거대한 음녀(淫女)’의 그림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듯이, 바로 로마 카톨릭이 그러하며 언제나 그같이 행해 왔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어 왔으니, 이런 식으로 이렇게 성취되어 왔습니다. 여기 은밀히 유입되어 들어와 한 때 기독교 전체를 실질적으로 장악했던 어떤 체제가 있습니다. 바로 로마 카톨릭이 천천히, 교활하게 스며들어와, 자신의 방식으로 변질시켰고, 그 결과 카톨릭의 영향력은 거의 보편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II․로․마․카․톨․릭․의․중․대․한․오․류․들

 

  로마 카톨릭이 행한 일은 어떤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 적절히 다루자면 여러 달이 걸릴 것입니다. 이 한 설교에서 필자가 규명하고자 하는 관심사의 전부는 본인의 주장이 진실임을 보이기 위한 몇몇 머리글들을 제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본 내용을 세 가지 주요 표제글로 나누고자 합니다.

 

1. 첫째는 로마 카톨릭이 어떻게 우상숭배와 미신행위를 도입하는 죄를 범해 왔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偶像崇拜)만큼 신랄하게 정죄받는 행위도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조각한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로마 카톨릭은 형상(形象)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카톨릭은 신도들에게 형상들을 숭배하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그들은 동상들과 조형물들과 초상화들을 숭배합니다. 여러분이 거대한 천주교 성당에 가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 가보십시오. 거기에 사도(使徒) 베드로를 기념하는 동상(銅像)이 있는데, 그 동상의 발가락 부분을 보면, 그 부분이 많이 닳아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구요? 로마 카톨릭의 그릇된 가르침에 희생된 수많은 가련한 희생자들이 그 발가락에 입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절하면서, 형상들과, 동상들과 유물들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성인의 유물들과, 뼈 조각들과, 사용했던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어떤 특별한 장소에 안치하여, 그것을 숭배하며 그 앞에 절을 합니다. 이 정도는 그들이 행하는 우상숭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두 번째 커다란 오류는 카톨릭의 전 체제와 가르침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차단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오류들 중 가장 끔찍한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로마 카톨릭 교회 자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카톨릭 교회 자체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 밖에서는  “extra ecclesiam”,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nulla salus”. 즉 카톨릭 교회가 절대적인 필수요건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혼 사이에 카톨릭 교회를 끼워 넣고 있습니다. 카톨릭은 그녀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代理者)가 됨을 사칭(詐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약 성경의 어디에서도 그같은 근거를 찾아볼 수 없으되; 단지 로마 카톨릭주의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그녀 자신만이 진리가 무엇인지 안다고 주장합니다.

 

그녀가 진리를 묘사하고, 그녀만이 진리에 대해 정의내리며 진리를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당연히 그와 정 반대로, ‘전(全) 신자의 보편적 성직자(聖職者) 체제’를 가르치며, 각 사람마다 스스로 성경을 읽을 권리가 있고, 성령님의 조명(照明) 하에서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로마 카톨릭은 그 사실을 절대적으로 철저히 부정합니다. 로마 카톨릭, 오직 로마 카톨릭만이,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가 스스로 ‘지속적인 계시(啓示)’를 받아왔노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은, 참 프로테스탄트 크리스천들이 믿는 바와는 달리, 계시가 신약성경과 함께 끝났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계시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진리에다 첨가해야 옳다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반면, 카톨릭이 덧붙인 카톨릭의 전통(전승, 傳承)도 성경과 동일하게 권위가 있고, 구속력(拘束力)을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카톨릭적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고, 성경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것을 카톨릭의 전통(전승)에다 첨가시킨 다음, 거기에 근거(根據)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활함이 기어들어오는 곳이 이 부분입니다.

 

  마침내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면 카톨릭은 우리에게 전체주의적(全體主義的) 충성을 강요합니다. 그녀는 우리가 믿는 것, 행하는 것까지 지배하려 듭니다. 그녀는 스스로 우리의 영혼과 구원(救援)을 책임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일러준 대로, 가르쳐 준 대로 절대적으로 철저히 굴복(屈伏)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로마 카톨릭은 전체주의적 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인권을 유린(蹂躪)하는 것이나, 히틀러가 그의 잔혹한 체제 안에서 했던 행위만큼이나, 카톨릭이 신도들의 혼을 절대적으로 얽어매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적 체제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절대권위(絶對權威)를 행사하며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드러난 두 번째 증거로서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지만, 로마 교황(敎皇)과 교황에 대한 온갖 가르침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代理者)’로 일컬어집니다. 그는 사도 베드로의 영적인 직계 후손으로서, 사도적 계승(使徒的 繼承)을 통해 사도 베드로의 모든 권위를 이어받았다고 말합니다. 나 자신 베드로 수위권(首位權)에 의문을 제기함으로 곁길로 빠지고 싶진 않지만, 그것이 그들의 주장 그대로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로마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성부, 聖父), 곧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부릅니다. 비록 성경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땅 위의 어떤 사람도 ‘아버지’(Father)라 부르지 마라.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아버님뿐이다.”고 말씀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추기경(樞機卿) 회의에서 ‘권좌(權座)로부터’ 선언한다고 하면서 교황이 “절대무오(絶對無誤)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1870년에 교황의 절대무오성 교리를 규정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그것을 믿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규정됨으로써, 그가 선언하는 것들은 절대무오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곧 하나님의 말씀처럼 절대무오하고, 그리스도 자신처럼 절대무오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여러분이 알다시피, 교회의 권력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말씀하듯이, “하나님처럼” 말하는 이 한 사람의 권위 아래로 모아지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있고; 그들은 그 앞에서 절하며,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질 수 없는 경의(敬意)를 그에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드러난 증거는 사제직(司祭  職)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사제들은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신자들의 보편적 성직체계를 믿지 않습니다. 성직자(사제)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카톨릭 교회에서 훈련받고, 교회의 성직수임(聖職受任)을 받아, ‘사도적 계승’에서 나오는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은 우리 모두가 성직자들이라고 알려 줍니다: “여러분은 선택받은 세대요, 왕가의 성직자 체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직자들의 왕국(王國)’이란 말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전혀 “아니올시다”입니다. “당신들은 단지 평신도(平信徒)일 뿐, 결코 성직자가 아니며, 오직 카톨릭에서 수임을 받은 사람만이 성직자(사제)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제들에게 기적을 행하는 것과 같은 독특한 권능을 부여해 줍니다. 바로 여기에서 심각하고 중차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들은 사제가 하나님의 은혜가 물에 임하도록 세례(洗禮)에서 사용되는 물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만찬(晩餐)에서 빵과 포도주와 연관된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의 그같은 능력을 ‘화체’(化體)라고 부릅니다. 빵은 더이상 그냥 빵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고 그들이 말하는데; 겉모습과 색깔은 잔상(殘像)으로 남지만, 내용물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화체(化體)된다고 하며, 이러한 기적(奇蹟)은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권능을 소유한 사제에 의해서라야 수행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같은 주장은 당연히 성례전(聖禮典, 성사)에 관한 교리 전체로 이어집니다. 카톨릭엔 일곱 성사(성례전)가 있지만, 본인은 이 중 특히 세례성사(洗禮聖事)와 성체성사(聖體聖事) 대해 관심이 있으며, 그들은 이 두 성사에 기적이 역사한다고 서슴없이 가르칩니다. 그들의 이론은 이러하니, 즉 사제의 역할에 의하여 물과, 빵, 포도주에서 기적이 역사하게 되며, 그 결과 이것들에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부여되는데, 그같은 기적적인 역사는 거의 자동적(自動的)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을 그들은 “ex opere operato”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더이상 그냥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부여된 물이므로, 그 물을 어린아이 위에 부으면, 어린아이 안에서 기적이 역사(役事)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은 성찬식(聖餐式)에서 여러분이 빵을 취하게 되면  거기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포도주는 마시지 못하게 하지만  여러분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것은 마귀의 교활한 속임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첨가’된 것으로서, 거기에 대해 신약 성경에 단 한 단어의  언급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사제에 대한 언급을 마치기 전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니, 곧 로마 카톨릭의 사제는 우리가 그 앞에 나아가 우리 죄들을 고백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 사제는 면죄(免罪)를 선언하고, 우리에게 죄사함을 베풀 수 있는 권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특별한 능력을 할당받은 사제직(司祭職)에 속한 사람들 외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죄(허물)를 하나님께 고백해야 하고, 거듭난 크리스천들의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사제들’에게 고백하라는 말씀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또 하나의 드러난 증거가 있습니다. 본인은 카톨릭 체제가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교묘히 끼어 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죄를 고백하기 위해 주님께 나아가지만, 카톨릭 교도들은 사제들에게 갑니다.

 

  네 번째의 증거로 들어 가겠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를 가장 경악스럽게 하는 터무니 없는 궤변(詭辯) 중의 하나입니다. 로마 카톨릭주의의 마리아 숭배가 놀라울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며, 그녀는 우리가 일차적으로 찾아가야 할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성당들 가운데서 성모(聖母) 마리아 상(像)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에 의해 가려져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여기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훨씬 사랑스럽고 부드럽게 다가오며;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하고 강력하며 권위 있으신 반면; 너무 엄격하십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르침이며, 마리아 숭배에 대한 설명의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도 엄격하기에 우리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성모 마리아가 거기에 함께 계시는데 그녀는 사랑이 넘치시며; 더욱이 그녀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영향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仲保)해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바로 우리 영혼의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드님과 우리 사이에 위치하고 계십니다. 로마 카톨릭은 점증적으로 마리아의 권능에 뭔가를 ‘첨가’해 왔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1854년에 마리아의 ‘무염시태설’(無染始胎說)을 교리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의 무염시태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없이 태어나셨듯이, 성모 마리아도 또한 그렇게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마리아의 몽소승천’(蒙召昇天)의 교리를 발표했는데, 그 의미는 마리아가 여타의 일반인들과는 달리 결코 죽지 않았고 묻히지도 않았으며, 그녀의 아드님처럼 문자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가르침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세워주며, 그녀를 두드러지게 부각시킴으로 그리스도 자신은 아예 시야에서 가려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숭배에 뒤이어 ‘성인’(聖人)들 숭배가 추가됩니다.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성인들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습니까? 자, 그들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현세에서도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일부의 성인들이 현세에서 그렇게 완전한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산 결과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공덕’(功德)을 획득하고 쌓아올리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공덕을 과다히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여러분과 내가, 공덕이 아무리 턱없이 모자라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성인들에게 가서 기도하여 간청하면 그들의 과다량의 상당부분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것을 ‘적공’(積功, 공을 쌓는 일)이라 칭하는데, 곧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 중보할 수 있고, 우리가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음이 발견되면 그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공덕의 잉여분을 우리에게 전가(轉嫁)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여러분은 성인들을 숭배하고, 성인들에게 기도하며, 그들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만으로는 충분치가 않고, 여분(餘分)으로 상당량의 공덕이 추가로 보충(補充)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으로 카톨릭의 전반적 체계 및 제도가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자 사이에 교묘히 끼어 들어오는지에 대해 간단히 다섯 가지 요점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한 신성을 부여하고 성육신, 동정녀 탄생 및 정통교리들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같은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귀의 온갖 속임수가 들어오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한편으로는 로마 카톨릭이 뭐든지 옳은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문제는 그 다음에 ‘첨가’(添加)시키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그릇된 나머지, 도대체 옳은 것 중에서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3. 계속해서 세 번째 오류는, 로마 카톨릭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을 강탈할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위대한 구원의 영광과 완전성(完全性)과 충분성(充分性)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칭의(稱義)  곧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문제와 관련된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첫 번째 예를 들어봅시다. 루터가 말했듯이 이것은, “교회가 일어설 것인지 넘어질 것인지의 테스트”요  프로테스탄티즘을 존재하게 만든 동인(動因)으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광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의롭다함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요? 나는 이따금씩 우리 곧 프로테스탄트들이 과연 우리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아해합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의롭다함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할 때, 로마 카톨릭주의가 성장해 간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못됩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단지 선한 삶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카톨릭주의는 성공(成功)을 보장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


  로마교의 가르침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 데 있어 스스로 기여할 부분이 있으므로, 죄투성이인 인간이라도 선행이나 공적을 쌓는 행위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고 또 그렇게 가르칩니다. 우리 프로테스탄트는 “의인(義人)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와 같으며”, 혹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 기록하였듯이, “배설물”(똥)과 같아서 거부해야 할 것이요, 무가치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로마 카톨릭은 그것을 극구 부인하며, 사람의 의는 가치가 있고 중요하며 유익을 끼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카톨릭이 궁극적으로는 세례(洗禮)를 통해 의롭게 된 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는 다른 모든 교리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는 여러분의 죄를 사해줄 뿐 아니라, 여러분 안에 의를 주입시켜 주므로, 여러분이 세례에 의해 의롭게 된다고 그들은 가르칩니다. 비록 의식(意識)이 없는 영아라 할지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으며, 그들도 세례로 의롭게 되고, 그들의 원죄가 세례로 말살(抹殺)되며, 그들에게 이같은 적극적인 의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가 아니며, 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세례받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의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옷입지 않고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프로테스탄트의 가르침을 위험한 이단(異端)교리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펴보셨듯이 카톨릭의 가르침은 모든 것을 교회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안되게끔 만들어 버립니다. 회개(悔改)하고 그리스도께로 가서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救援)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 오직 사제가 베푸는 세례(洗禮)를 통해서만이 구원의 역사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모든 것에서 교회와 사제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필수적이 됩니다. 그들 없이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며, 여러분의 운명은 오직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으며, 반드시 이들 중보자들을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오직 한 분의 중보자(仲保者)가 있을 뿐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로마 카톨릭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리아, 교황, 사제들 및 모든 고위 성직자와 하위 성직자들, 이들 모두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이토록 중차대한 칭의(稱義, 의롭다함)의 교리에 있어서 그들은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 생활의 문제는 어떻습니까? 여기에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곧 경건한 삶보다는 의식(儀式)과 의례(儀禮)의 준수에 더 역점을 두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거룩을 추구하고 성화(聖化)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보다는, 미사에 참석하고 사제들에게 가서 죄를 고백(告白)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야 할 책임과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착념(着念)하여 그대로 실행하도록 권면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가르침은 교회의 규율(規律)에 전폭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종 의식을 지켜야 하고, 그들이 하라고 일러준 대로 행해야 합니다: 특정한 절기에는 금식(禁食)해야 하고,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아야 하며, 사제 앞에 나아가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일단 미사에 참석한 다음에는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해도 됩니다. 여러분의 죄는 덮어졌고, 다시 올바르게 교정되었으니 계속 여러분의 길을 가십시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룩한 삶의 간단 명료함 대신에, 여러분에게는 의식(儀式)들과 의례(儀禮)들과 절기(節氣)들이 있습니다.


  또다른 심각한 오류(誤謬)는 카톨릭이 ‘구원의 확신’(구원의 보장성)의 교리를 전적으로 부정(否定)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確信)의 교리만큼 영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6절에서도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증거하십니다.” 그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없는데도; 로마 카톨릭은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는 확실성(確實性)과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무슨 구원의 확신(보장성)이란 말입니까? 이것이 그들의 반박이며, 이는 매우 논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로마 카톨릭 체제가 마귀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이며; 적어도 이같은 비범한 천재성으로 이 모든 일을 성사시킬만한 존재는 마귀 외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런 식으로 적용됩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을 때 여러분의 원죄(原罪)가 말소되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됩니다. 아 좋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후 죄 문제, 즉 세례받은 이후에 범한 죄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여러분이 받은 세례는 세례 후에 지은 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대해 어떡하시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문젭니다. 프로테스탄트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전히 우리를 모든 죄와 불의에서 깨끗케 하시며;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나의 과거의 죄들, 현재의 죄들, 미래의 죄들을 덮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충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로마교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세례 후 죄 문제는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입니다. 거기에 대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사제에게 가서 죄를 고백해야만 하며; 오직 그만이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제라고해서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게 되면, 이들 세례 이후의 죄 문제와 함께 지옥과 처벌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 때 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여기에 고해성사(告解聖事)가 있습니다. 사제 혼자서 여러분을 위해 그것을 베풀 수 있으며, 그는 능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고해성사를 받게 되고, 사제에게 특별 고백을 하게 되며 여러분은 면죄를 받게 됩니다.

 

  그것으로 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도 안됩니다! 거진 다 왔지만, 여전히 용서받지 못한 죄가 남아있게 됩니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 다행스럽게도, ‘연옥’(煉獄)이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습니다, 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용서받지 못한 세례 후의 죄가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 죄를 씻기 위해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자,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친척들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하며 그렇게 하면서 돈을 지불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는 온갖 ‘면죄부’(免罪符)들과 온갖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들’과 온갖 촛불들과 지불한 돈이 있게 됩니다. 돈을 더 많이 낼수록 이러한 죄들이 연옥에서 더 빨리 처리되며 이 사람은 연옥에서 더 빨리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같은 주장을 성경에서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 전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카톨릭이 지금까지 주장해 온 추가계시(追加啓示)의 일부분이며, 이것이야말로 첨가 그 자체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충분치가 못하고, 이 모든 방식들에 의해 보충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즉 내가 이같은 로마 카톨릭을 배교집단(背敎集團)이라고 말한다 해서 지나쳤단 말입니까?


III․결․론

 

  이 모든 것들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카톨릭 교도들은 무지 속에 감금되어 있으며 미신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결과 이 나라에서 이따금씩 칭하는 바 ‘대륙의 일요일’ 중심의 생활방식에 점차 젖어들게 되는데, 그 의미는 여러분이 일요일 아침에 성당에 가서 미사만 드리면, 그 나머지 시간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미사 시간만 끝나면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스포츠와 행락으로 그날을 즐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한다 해서 놀랄만한 일이 못되는 것은, 개인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며 관심 밖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교회가 일러준 대로 순종하고, 그 자신을 내맡기기만 하면, 그가 해야 할 일을 다한 것이요, 나머지는 교회가 책임지고 그들의 영혼을 돌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마침내, 그들이 진리의 길을 걷는 자들에 대해 잔혹한 핍박을 가하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역사를 통해 로마 카톨릭 체제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어 왔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를 뿌렸고, 여전히 도처에서 기회만 주어지면 그런 일들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며, 여러분에게 묻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껏 시간낭비를 해왔을까요? 꼭 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만 했을까요? 마땅히 로마 카톨릭주의에 대해 새로운 접근방식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모두가 크리스천으로서 함께 공산주의에 맞설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기뻐해서는 안된단 말인가요? 여러분이 직면해야만 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 자신은 여기에 대해 답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로마 카톨릭 체제가 전적으로 공산주의보다도 훨씬 위험한 체제인 것은, 그 체제가 기독교로 날조(捏造)된 체제이면서도,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주빛 여자’이며, 가장 끔찍하고도, 더럽기 짝이 없는 속임수인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또다른 얼굴은 공공연하고도 명명백백한 무신론적 불신앙(不信仰)입니다.

 

  프로테스탄트 개혁자(改革者)들은 결코 고집스런 열심당원들이 아니었으며, 결코 바보들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열어주신 양눈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루터가 그러했고, 칼빈이 그러했으며, 낙스도 그러했고, 개혁자들 모두가 그러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눈이 열리면서, 보았습니다. 바로 성경에서 경고하면서 묘사하고 있는 이 끔찍한 괴물을 보았으며, 죽음의 위기(危機) 속에서도 이 괴물에 맞서서 프로테스트했습니다.

 

  그들은 그 괴물이 진리(眞理)가 아니라고 말했고, 그리하여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과, 성경이 절대적이고, 최종적(最終的)이며, 정확한 권위임과, 모든 믿는 자들의 성직자 체계 등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그같은 진리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많은 자들이 그 진리를 위해 순교(殉敎)당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엄숙히 경고하는 바, 여러분이 만일 로마교를 인정하는 접근을 더 기뻐하신다면, 여러분은 순교자들의 흘린 피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로마교의 가르침을 수용(受容)한다면 결코 스미스필드 근처에 가지 마십시오. 그곳 스미스필드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이 화형에 처해졌기 때문입니다. 존 브래드포드와 그 외의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로마 카톨릭주의를 부인한 이유 때문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부인하고 있고, 그들에 대해 등을 돌리면서, 그들이 잘못한 것이었어, 그들의 실수였어,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를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이들의 허울좋은 논쟁(論爭)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이유는 무선통신과 텔레비전 때문입니다. 매스 미디어에 비치는 이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공손하고, 친절하며, 또한 훌륭한 인품을 자아내며, 무척 융통성 있어 보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종종 프로테스탄트보다 훨씬 멋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프로테스탄트들은 저질적으로 비난하고,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하지만 말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그렇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단지 카톨릭의 과거만 들춰내려 하고, 마치 16세기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지금 당신은 20세기에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십니까? 본인의 답변은 간단합니다. 로마 카톨릭의 거만한 허풍(虛風)이 바로 이것이며, 로마 카톨릭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Semper eadem.” 어떻게 로마 카톨릭이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녀가 달라진다면, 그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는 셈이 되겠지만, 오히려 그녀는 여전히 말하기를,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절대무오(絶對無誤)하며 교황은 바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결코 실수를 할 수 없으신 분이시다, 고 합니다. 만일에 로마 카톨릭이 추호라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카톨릭의 핵심주장을 부인하는 셈이 됩니다! 그녀는 결코 변하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혹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진 것뿐입니다. 그녀는 16세기에 그녀가 가르쳤던 교리에서 교황의 절대 무오성과 같은 교리들을 오히려 추가시켰습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로마 카톨릭 교회는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만일 이 지구상에 하나의 거대한 세계교회가 존재해 왔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나머지 모든 교회들을 흡수하고, 무지한 상태에 있는 그들을 집어 삼켜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어려울게 하나도 없으니; 로마 카톨릭 교회는 기독교 모조품이요, 가짜이며; 가장 사악한 매춘부요 가장 마귀적인 집단입니다. 실로 적(敵)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마땅히 거절해야 하고, 고발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대적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녀를 대적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서두(序頭)에서 말했듯이, 성경적인 교리(敎理) 위에 서 있는 기독교입니다. “그리스도께로 나오라” 혹은 “예수님께로 나오라” 라고만 설교하는 기독교의 모습으로는 잠시라도 로마 카톨릭 교회와 맞설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로마 카톨릭의 숫자만 불리워 주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입니다. 복음전도자들이 전도집회를 할 때 “아, 당신은 로마 카톨릭 신자시군요, 당신의 교회로 돌아가십시오.” 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신약성서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들에게 경고해 주어야만 합니다. 이 소름끼치는 모조품(模造品)에 대항해서 맞설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르침과, 단 하나의 권능이 있으니; 성경의 오늘 본문말씀에서 칭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신약성경의 진리를 성경적이고 교리적이며 신학적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16 세기에도 동일하게 사용했던 무기입니다. 루터는 단지 피상적인 복음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막강한 신학자였고; 또한 칼빈도 그러했으며; 그들 모두가 그러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을 침식시키고 로마 교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역사(役事)된 위대한 진리의 체계였던 것입니다. 현 상황에 대처하는 적절한 방법으로서 이것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여러분의 책임(責任)이 막중합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알아야만 하며, 진리를 이해해야만 하며, 거짓된 가르침을 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 카톨릭과 같은 거짓 기독교에 미혹(迷惑)되고 있는 순진한 사람들에 대해 바로 여러분이 책임이 있으니, 그들의 눈을 열어주며,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그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견고하게 설 때에야 비로소, 성령님의 복이 우리 위에 임하시도록 열정(熱情)과 확신(確信)을 가지고 기도할 자격이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위에 굳게 서고, 성경의 진리 위에 굳게 설 때, 본인이 믿기로는, 하나님의 영님께서 우리 위에 강력한 부흥(復興)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같은 강력한 부흥만큼 이 가증한 체제, 곧 스스로 로마 교회라 칭하는 저 큰 ‘매춘부’(賣春婦)를 쓰러뜨릴만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빛을 주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분별(分別)하게 하시며, 너무 늦기 전에 우리를 흔들어 깨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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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 천주교의 문제점 - 로마교회 / 성유물숭배 성모무염시태 화체설 / 은총 협력 믿음 선행 /견진성사 고해성사 종부성사

로마카톨릭 천주교의 문제점


심창섭 교수(총신대)


1. 교황제의 기원과 발전 과정

 

1) 근거 없는 주장

 

교황제도(papacy)는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제도이다. 교황제도는 베드로의 ‘사도좌’를 중심으로 발달한 역사적 산물이다. 성경에는 ‘교황제도’라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가 로마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순교하였다는 주장한다. 그래서 로마의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베드로의 사도적 수위권을 주장한다. 베드로의 사도좌에 대한 근거로 마태복음 16장 18절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로마의 주교들이 그들의 교권을 높이기 위해 만든 것이며 해석된 것이다. 즉 3세기 초에 로마주교 칼릭투스(218-223년)가 로마주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마태복음 16장 18절을 인용하여 로마주교를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4세기 로마 주교 다마수스 1세가 같은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처음으로 ‘로마 주교좌의 우위’를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이 된 역사적인 근거는 없다. 베드로가 로마교회에 사역하고 순교하였다는 성경적 역사적 근거도 없다. 오직 후대에 로마주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전승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사역하였다는 전승은 4세기 경 친 로마교회의 학자로 벌게이트(Vulgate) 성경을 번역한 제롬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제롬은 베드로가 주후 42-67년까지 25년간 로마의 주교로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제롬의 전승과는 달리 베드로는 주후 44년에는 예루살렘에 있었고,(행15) 주후 53년에는 안디옥에 있었다.(갈 2:11) 베드로가 로마에 없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바울서신에서 알 수 있다. 바울은 58년에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는데 베드로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아니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로마교회의 대표적인 인물 27명의 이름을 거론하지만 베드로의 이름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만약에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면 그 유명한 사도의 이름을 바울이 언급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베드로는 이 기간 동안 바벨론과 소아시아에서 전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전승은 사도 베드로의 이름이 시몬 베드로였기 때문에 베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신비해석자와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짓 종교지도자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우드로우, 정동수 역, 2011, p.113) 사람들은 갈대아의 신비 해석자 베드로(Peter)의 칭호를 사도 베드로와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베드로가 로마의 주교였다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배교에 눈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교황이 사도 베드로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으나 기독교로 입교한 이교도들에게는 그가 단지 그들의 알려진 신비들을 해석하는 베드로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우드로우, 정동수, 2011, p.113)

 

베드로의 이름을 가진 신비해석자와 더불어 1세기에 시몬의 이름을 가진 종교지도자가 로마에 있었다. 그가 바로 사도행전 8장 9절에 언급된 시몬 마구스(Simon Magus)이다. 마법사 시몬은 로마에 건너가 위장기독교를 세웠던 것이다. [가톨릭 백과사전]에 기록된 시몬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순교자 저스틴과 그 밖의 다른 초기 저술가들은 시몬이 후에 로마로 가서 거기서 마귀들의 권능으로 기적을 행했으며 로마와 자기 나라에서 신의 영광을 받았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비록 후에 이 시몬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많은 전설이 생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스틴이 제기하고 유세비우스가 받아들인 설명에는 사실 어떤 근거가 있음이 분명하다. 역사적 인물인 시몬 마구스(Simon Magus)는 의심의 여지없이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거짓 기독교를 창설했다.”(우드로우, 정동수, 2001, p.114)

 

시몬 마구스가 유사기독교를 로마에서 창설하였고, 신적인 영광을 누렸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여 많은 사람들부터 추앙을 받았다면 이러한 사실들이 후기 기독교 전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몬은 후에 시몬 베드로와 혼동되어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로마 주교들이 지상에서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러한 주장을 한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우드로우, 정동수, 2001, p.114)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마태복음 16장 18절의 반석은 베드로(petros)가 아니고 단순히 반석(petra)이란 의미이다. 전자는 남성명사로서 베드로를 가르키지만 후자는 여성명사로서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을 가르키는 말이다. 그래서 베드로(petros)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개념을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베드로의 고백인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위에 세워진 것이다. 천주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베드로 67년경 순교하기 직전에 로마에 왔다고 추정한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베드로 전서의 마지막 인사말에 나오는 베벨론이 로마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세기 동안 그 유명한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역사적 근거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교회 사가인 필립 샤프도 “초기 로마 주교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계승되었는가에 대한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하였다.(제임스 G. 멕카티, p.373)

 

또한 성경에 나타난 베드로에 관한 기록을 보면 베드로는 교황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첫째,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이었으므로 교황처럼 독신으로 사역한 목회자가 아니었다. 둘째,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을 방문했을 때 고넬료가 자기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할 때에 이를 거부하고 나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황의 발에 누구라도 입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베드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셋째, 베드로는 교황들처럼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지 아니했다. 베드로는 조상들로부터 전승한 전통을 거부하고 오직 말씀만 증거하였다. 넷째, 베드로는 교황들처럼 왕관을 쓴 적이 없다. 베드로는 세상의 왕관이 아니라 ‘시들지 않는 영광의 왕관’을 사모하였다.(벧전 5:4)(벧전 1:18)(천주교의 유래, pp.107-108)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죽은 후 사도의 계승을 인정하지 아니했다. 교회의 책임자로 감독과 집사를 두었지 사도를 두지는 아니했다. 바울은 교회를 전도 개척하면서 디모데와 같은 훌륭한 사람에게도 사도라는 명칭을 부여하지 아니했다. 만약에 베드로가 로마에 사도로 있다고 가정할 지라도 로마의 감독이나 주교들이 베드로의 사도좌가 그대로 전승되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베드로는 베드로였고 로마의 감독들은 로마의 감독에 불과했던 것이다. 로마의 감독을 사도 베드로와 같은 위상에 놓은 것은 인위적인 결정에 불과한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의 직분을 논할 때 감독(장로)과 집사에 대해서만 언급하였고 사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딤전 3:1ff)

 

만약에 천주교의 주장처럼 베드로가 로마의 주교로 사역하다 순교했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준 것과 동일한 권위와 의무를 로마주교들에게 준 것은 아니다. 베드로 이후의 로마 주교는 베드로와 전혀 다른 인물인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준 권한을 로마의 주교들이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억지 주장이다. 그러나 교황 전승의 역사적인 불확실성과 모순 더 나아가 허위적인 전승을 토대로 천주교는 교황의 사도좌를 주장하고 있다.

 

2) 발전 과정

 

비역사적인 전승으로 발달되고 진화한 교황제도의 발원과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돌아가신 후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하셨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사실 즉 복음을 선포하였다. 이 일을 감당한 대표적인 예수의 직속 제자들은 12명이었고 사람들은 이들을 ‘사도’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역자들과 구별하였다. 그리고 12사도들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크리스챤이라 불렀다. 이때의 교회는 교회의 집(Domus Ecclesiae) 즉 주택교회로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정기적으로 모여 기도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들었다.(교황의 역사 도시에서 세계로, 프란체스코 키 바오로, 제라르 베시에르, 시공사, 2009, p.14) 그러나 사도들의 전승을 위협하고 주택교회에 혼란을 가져온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사도들의 죽음이었다.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므로 초대교회는 신앙의 메카인 예루살렘 교회를 상실하게 된다.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는 일찍이 순교하였고, 신앙의 기둥인 바울은 64년경에 로마에서 처형되었고 베드로 등 사도들도 모두 순교하였다. 사도들이 죽은 후 A.D 80-90경에 이르자 주택교회는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사도시대 이후에 교회는 유대의 공회당(synagogue)처럼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장로, 집사 혹은 감독체제로 구성되었고 모든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들을 선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회에 이단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치점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이때 교회는 분쟁을 최소화하고 공동체의 일치를 가져오기 위해 사도들의 가르침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신약성서의 필사본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들로부터 전승되어온 권위자들의 말에 의존하였다. 신약성경의 목록이 기록된 문서인 무라토리움은 180년경이었다. 이렇게 성경이 정경화되기 전에 교회의 권위의 출처는 사도들 중 주로 베드로, 바울, 요한의 전승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의 전승인가? 무엇을 믿는가? 가 중요했다. 특히 영지주의라는 이단의 출현하므로 사도들의 가르침은 중요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가짜 복음서, 사도들의 가짜 서신, 그리고 가짜 요한계시록 등이 등장하여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 그리스도, 현세와 천국에 대한 사변들이 난무하였다.(같은 책, pp.17-18)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는 정통신앙에 대한 확신과 다짐이 필요했다. 정통신앙의 기준은 아직 성경이 정경 화되지 아니했기 때문에 사도들이 직접 전해 준 정통신앙을 간직한 ‘사도교회’가 우선시 되었다. 이때 거론된 사도교회는 에베소, 안디옥, 고린도, 로마, 그리고 서머나 교회 등 다섯 교회였다. 이 교회 중에서 베드로가 세웠다는 안디옥, 로마,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신앙의 정통성을 가진 교회로 유력하게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이 세 교회 중에서 로마교회가 가장 유력한 신앙의 정통성을 가진 교회로 인식되었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바울이 이곳에 순교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 시는 당시 제국의 수도라는 유리한 점도 있었다. 교회의 통일과 정통성을 바라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로마교회를 지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은 로마교회를 ‘사도들이 전승한 건전한 정통교리’를 갖고 있는 최적의 교회로 삼았던 것이다. 실례로 2세기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로마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하였다.(같은 책, p.20-21) 180년 경 리용의 이레니우스도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세운 교회이자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교회, 즉 로마교회’가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같은책, pp.22-23)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또한 초기 ‘집단 지도자’의 공동책임 체제에서 ‘군주제적 주교단’으로 발전되어 갔다. 즉 지도층의 수장 한 사람이 공동체의 유일한 책임자로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 물론 로마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이 제도를 늦게 실행하였다. 초기 로마교회가 초대교회의 집단지도체제의 전통에 더욱 충실했음을 볼 수 있다. 로마교회의 첫 주교의 등장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2세기 후반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로마주교 칼릭투스(218-223년)는 마태복음 16장 18절을 인용하여 로마주교가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주장하였다. 최초로 기록된 로마의 ‘군주제적 주교교회’는 46명의 신부와 부제 7명, 차부제 7명, 시종 42명, 구마자 56명, 독경자들과 수문자가 존재하였고, 그리고 1500명의 고아와 과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때 주교의 대표자는 코넬리우스(251-253년)와 스테판 1세(254-257년)로 기록되어 있다.(같은 책, p.23)

 

 

이러한 로마 중심의 군주제적 주교 중심에 대해 반대한 인물도 있었다.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였다. 키프리아누스는 군주제적 일인 지도체제가 아니라 주교단의 형성을 통한 ‘화합과 사랑’이 보편교회의 일치에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교가 동요 주교에게 결정을 강요할 ‘주교 중의 주교’란 폭군처럼 된다고 하였다. 이해 반해 로마교회는 주교가 자신들의 신앙과 성직자 징계문제에 결정적인 발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로마교회가 주교에게 교황이란 명칭을 부치지 않았고, 마태 16장 18절을 인용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추론하지는 않은 상태였다.(같은 책, pp.24-25)

 

 

 

로마주교의 수위권은 313년 기독교의 공인으로부터 가속화되어 갔다. 콘스탄누스 대제는 기독교를 황실 종교로 만들었고 당시의 로마주교였던 실베스타 1세를 대신해서 313년 로마회의, 314년 아를회의, 그리고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도하였다. 교회의 분쟁도 황제가 주도할 정도이므로 교회는 황제의 정치적인 힘에 의해 막강한 종교로 부상하였고 로마 시는 기독교 시로 성시화되었다. 로마교회는 황제의 후원으로 315년 라테라노 대 성당(현재의 로마 대성당)을 건축하였고 지금까지 이 교회를 ‘모든 교회의 머리이자 어머니 교회’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교회 외부의 보편적 주교’ ‘사도들과 동등한자‘ ’기독교 창시자’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르기도 하였다. 330년 로마의 수도가 콘스탄틴노풀로 옮긴 후 로마 교회와 주교의 역할은 더욱 확대해져 갔다.(같은 책, pp.26-30)

 

 

 

이후로 로마주교는 이태리에서 황제의 역할을 감당할 자로 등장하게 된다. 4-5세기 사이에 완전한 기독교 도시가 된 로마 시는 많은 귀족들의 재산이 교회에 유입되고 대성전들과 세례성당들이 건축되었다. 343년에 개최된 소피아공의회(진정한 의미의 최초공의회)는 동방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임된 주교를 로마주교가 해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주장한다. 로마교회와 로마주교의 수위권을 확보한 법률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전술한 바와 같이 교황 다마수스 1세(366-384년)때 와서 로마주교를 ‘사도좌’로 명명하였다. 교황 다마수수 1세는 마태 16장 18절을 인용하여 베드로의 교회 즉 로마 교회만이 참다운 그리스도의 교회로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380년 황제의 칙령을 선포하여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유일한 종교로 제정한 것이다. 이로 인해 로마교회의 신앙을 곧 베드로의 신앙으로 부각시킨 것이다.(같은 책, pp.26-34)

 

 

 

교황권이 증폭된 또 하나의 계기는 다마수스의 후계자들인 시리키우스와 인노센트 1세 때 교황령을 선포하면서부터였다. 교황령은 주교들의 질문에 교황들이 답신한 것을 말하며 이것은 로마교회의 문서고에 보관되었고 로마가톨릭교회의 판례 역할을 한 것이다.

 


교황사에서 교황의 권위와 위상에 큰 전환점을 가져온 최초의 교황들은 교황 레오 1세와 교황 그레고리 1세이다. 교황 레오 1세는 교황으로서 로마교회와 정부를 대신하여 훈족(452년)과 반달족(455년)의 왕들을 만나 외교활동을 통해 로마를 수호하였다. 교황 레오 1세는 ‘기독교의 평화’라는 이름으로 베드로의 ‘교황좌’가 로마교회와 국가의 평화를 책임 맡는다고 주장하였다. 교구의 모든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교황)에게 협력해야 하며 로마주교 만이 ‘충만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선포하므로 그는 최초로 교황의 수위권을 확고히 하였다. 그리고 콘스탄틴노풀의 총대주교를 로마 다음의 제 2의 주교로 인정한 칼케돈 공의회의 규정 25번을 취소하기도 하였다. 교황 레오 1세의 후임자로 등장한 교황 젤라시우스 1세도 494년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하였다. 교황 젤라시우스 1세의 주장은 수위권의 공법화를 표명한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두 개의 권한 뿐 입니다. 그 하나는 축성 받은 주교권이며 다른 하나는 세상을 통치하는 세속권한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권한 중에서 전자가 더 무게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그 권한에 관한 한, 왕들조차도 하느님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공공질서, 즉 세속의 일에 관해서는 고위 성직자들일지라도 황제의 법에 순종해야 합니다”(같은 책, p.36)

이러한 세속 왕들과 주교들과의 관계에서 기계론적인 교황의 수위권을 내세움과 더불어 영적 도덕적인 힘으로 교황의 수위권을 성취한 교황은 교황 그레고리 1세(590년)였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이를 거절할 정도였다. 그는 수도사의 기질을 발휘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종중의 종’이라고 하였다. 그의 재임기간 중 콘스탄틴노풀의 총대주교가 자신을 ‘세계총대주교’라고 선포하자 ‘불경하고 오만한 칭호’라고 반대하였다. 그는 860여 통의 편지를 통해 배고픈 민중, 롬바르디아와의 전쟁, 교회의 재산관리, 홍수와 같은 재난 등이 발생했을 때 애정 어린 심정으로 로마와 시민을 보호하려는 신의 카리타스(Caritas)를 보여 주였다. 그는 프랑크족과 서코트족에게 존중의 관심을 보였고, 브리타니아를 개종시키려고 선교사 어거스틴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였고, 그 중에서 목회자들을 위한 교육지침서인 [사목법규]는 중세시대 사제교육의 교과서로 쓰이기도 하였다.(같은 책 pp.38-39)

 

 

 

교황 그레고리 1세 이후의 서구사회는 새로운 변화의 도전에 접하게 된다. 그것은 이슬람의 등장이었다. 로마제국의 중남부가 이슬람에 의해 점령당한 것이다.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북부 아프리카가 이슬람화 되었다. 718년에는 이슬람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왔고 서방 세계는 엄청남 위협을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게르만 민족의 남부 유럽의 정착은 유럽의 정치 판도에 새로운 지각변동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교황권은 수많은 격동과 유여곡절을 경험하면서 중세 유럽의 정치와 사회의 중심 기둥으로 부상하게 된다.(같은 책, p.41)

 

 

 

로마교황은 동로마제국인 비쟌틴제국의 황제들로 부터도 교황권의 수위권을 인정받으려 했다. 7-8세기는 여전히 교회와 이태리의 영토는 비잔틴 황제의 치하에 있었다. 교황들은 황제로부터 독립하려는 운동을 시도했다. 독립운동을 시도하다 교황 마리티누스 1세는 콘스탄틴노풀에 끌려가 재판을 받고 공개 처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교황들은 동시에 롬바르디족과 같은 야만족의 위협 속에 있었다. 739년 그레고리우스 3세는 프랑크 왕인 챨스 마르텔에게 헙조를 구했으나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의 궁재였던 피핀이 메로빙거 왕조의 실권을 장악하므로 교황과 프랑크 왕과는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다. 당시 교황 이었던 자카리아는 실케리크 3세를 내쫓고 권력을 장악한 피핀의 구테타를 승인하여 주고 751년 수아송 회의에서 그를 왕으로 선출하게 만든다. 교황 자카리우스의 이러한 친 프랑크 왕 정책은 교황 스테파누스 2세에 와서 빛을 보게 된다. 프랑크 왕과 교황 스테파누스 2세는 서로간의 협약을 통해 교황은 카로링가의 왕위를 인정하고 왕은 롬바르디의 침략으로부터 교황을 보호해 줄 것을 약속한다. 피핀 왕은 실제로 두 번에 걸친 롬바르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태리의 영토를 성 베드로의 무덤위에 헌납한다. 이것이 교황령의 단서가 된 것이다.(같은 책, pp.45-46)

 

 

 

그러나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갑작스런 피핀의 행동에 분노하여 피핀이 헌납한 영토는 비쟌틴의 고유의 재산임을 선포한다. 이때 피핀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바로 [콘스탄틴누스 증여문]라는 허위 문서였다. 이 문서의 내용은 콘스틴티누스가 문둥병에 걸렸는데 당시 교황이었던 실베스타 1세가 330년 그에게 세례식을 베풀어 치유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에 황제는 감사의 뜻으로 실베스타 1세와 그 후임자들에게 라테라노 궁, 황제의 문장들, 로마와 이태리의 도시, 지방, 영토 그리고 서구 지역을 헌납했다는 엄청난 내용의 증서였다. 이 허위 문서는 중세 1000년간 교황의 독립성과 우월성의 근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서는 퀴즈의 니콜라스 추기경과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에 의해 15세기에 거짓으로 판명되었다.(같은 책, pp.45-46)

 

 

 

프랑크 왕국과 교황과의 유대가 극도로 강화된 사건은 교황 레오 3세가 프랑크 왕 사르마뉴 대제에게 로마의 황제관을 축성하므로 시작되었다. 교황 레오 3세가 이태리의 귀족들에 의해 감금되었을 때 샤르마뉴대제가 그를 보호하여 주었던 것이다. 800년 황제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방문하여 레오 3세를 다시 복귀 시켰던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교황은 샤르마뉴 황제를 로마인의 황제로 즉위시켰다. 이로 인해 교황은 황제를 축성할 권한을 확보하였고 황제는 교황의 축성으로 인해 교회를 간섭할 권한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그는 프랑크 왕국의 교회의 수장이 되었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었던 것이다. 제 2의 콘스탄누스 대제가 탄생한 것이다.(같은 책, p.46)

 

 

 

사르마뉴 대제 이후 프랑크 왕국은 아들에 의해 삼분되어 통치하였고 제국의 힘이 서서히 약화되어 갔다. 이때 황제의 약화된 권한을 틈새로 교황 니콜라스 1세가 등장하여 교황권을 신장시켰다. 그는 세속권력이 교회에 간섭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였고 대신에 교회가 국가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모든 교회의 권한은 로마 주교의 손에 있으며 교구회의는 교황이 내린 결정을 시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니콜라스 1세를 제외한 당시의 교황들은 타락한 로마 귀족들의 정쟁에 휘말렸고 그들의 노리개 역할을 하는 소위 중세교회의 암흑시대에 접어들었다.(904-1046년)

 

 

 

이 시기는 교황청의 갖은 추문과 부도덕한 행위로 점철되어 있다. 교황 스테파누스 6세는 자신의 전임 교황인 프로모수스의 시신을 꺼내어 교황 옷을 입히고 교황 좌에 앉혀 놓고 종교회의를 열어 재판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형언도를 내려 죽은 교황에 대한 분노를 삼킬 수 없는 시민을 위해 로마의 거리에 시체를 끌고 다니다가 티베르 강에 던져 버렸다. 이 시기에 44명의 교황이 교체되었고 9명은 살해되었으며 9명은 해임되고 7명을 추방되었다. 그리고 ‘창녀정치’(pornocracy) 시대로 테오필락투스 가문 출신의 데오도라와 두 딸의 치맛바람에 교황청이 농락당한 시기였다. 예를 들면 큰 딸 마로치아와 교황 세르지우스 3세의 불륜으로 태어난 교황 요한 11세는 전형적인 족벌정치의 전형이었다. 교황 요한 12세는 유부녀의 침대 속에 있다가 습격을 당해 피살당하기도 하였다. 베네딕투스 7세는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은화 1000달란트를 받고 교황직을 매매하기도 하였다.(같은 책, pp.49-50)

 

 

 

이태리 고황청의 타락은 결국 독일 황제 헨리 3세에 의해 교황이 임명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게르만 민족에게 빼앗긴 교황청의 권력 회복을 위한 투쟁과 교회 개혁은 수도원 출신의 힐데브란트에 의해 실시되었다. 힐데브란트는 교황 니콜라스 2세와 알렉산드 2세의 자문인으로 교황 선출을 위한 로마의 고위 성직자로 구성된 추기경단(13세기 이후에는 콘클라베로 알려짐)을 만들었다.(1059년) 그리고 추기경단이 교황을 선출케 하고 황제는 선거결과만을 통보받도록 하였다. 그는 교회 개혁을 위해서 속권의 성직 임명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속권의 성직임명권을 반대하는 교황령을 선포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진정한 교황권을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유럽각국의 반대에 부딪쳤고 특히 독일 황제 헨리 4세와의 갈등은 심화되었다.(같은 책, pp.52-53)

 

 

 

독일 황제는 헨리 4세는 교황 그레고리 7세의 속권의 성직수임권 반대 결정에 불복하였고 1076년 브름스에서 황제주도의 종교회의를 열어 ‘교황은 커녕 못된 수도승인 힐데브란트’를 폐위시켰다. 이에 교황은 보복으로 황제를 파문하였다. 그러나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함을 알게 된 헨리 4세는 1077년 1월 25일 교황이 머물고 있던 카놋사에 도착하여 참회의 옷을 입고 성문 앞에서 교황의 용서를 빌며 3일간 간청하였다. 이는 교황의 승리로 끝났지만 용서받은 헨리는 그 후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교황을 살레르노로 귀향을 보내었고 교황은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1085년) 그는 운명하면서 “나는 정의를 사랑했고, 불의를 미워했다. 그래서 나는 추방당한 채 죽어간다”라고 하였다. 그의 입에 관례에 따라 시편 44편 8절의 성구를 넣었다.(같은 책, p.54)

 

 

 

성직수임권 논쟁 후 교황의 통치 구조는 더욱 강화되어 갔다. 1098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로마교황청’이란 용어를 문서에 남겼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오스만 투르크 족에 의해 성지와 동로마제국이 위협을 당하게 되고 성지 순례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1095년 클레르몽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는 동로마 형제들을 이방인들의 위협에서 구하고 예루살렘 성묘의 회복을 위한 전쟁의 당위성을 연설하였다. 이 연설을 들은 청중들은 십자군 동원은 ’하나님의 뜻‘(Deus Vult)이라고 외쳤다. 그 후 무려 200년 동안 지속된 십자군 운동은 유럽의 정치, 경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교황권의 신장도 최고조에 달했다. 바로 제 4차 십자군을 동원한 인노센트 3세 때였다. 그는 중세의 가장 중요한 제 4차 라트란 공의회를 개최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종교재판을 법제화하고 화체설을 확정하였다. 인노센트 3세는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에 비교하기도 하였다. 교황 인노센트 3세 이후에 보니파키우스 8세가 등장하여 ’우남상탐‘이란 칙서를 발표하여 교황의’‘신정정치’를 선포하였다.

 

 

 

모든 인간이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그의 신정정치는 프랑스 왕 필립과 대립을 불러왔다. 필립의 세력에 밀린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아나니로 피신을 갔지만 필립의 명령을 받은 자들에 의해 교황은 따귀를 맞고 망신을 당하였다. 그는 로마에 돌아온 후 곧 숨을 거두었고 교황청은 필립에 의해 프랑스 아비뇽에서 70 년 간 유배당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출신의 교황들로 선출되었다. 이 기간에 교황들은 엄청난 월급을 받으면서 부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각국들은 프랑스가 교황청을 지배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지 아니했다. 막대한 재정난에 시달린 교황청은 다시 로마로 귀환하게 된다. 1377년 로마로 귀환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가 죽은 후 후계자 선출을 위해 70년 만에 콘클라베가 열렸다. 로마인들은 다시 프랑스 출신이 교황으로 선출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무장병사들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비 프랑스인으로 우루바누스 6세가 로마의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선출과정의 부정으로 인해 추기경단은 클레멘스 7세라는 프랑스 출신의 교황을 다시 선출하였다. 클레멘스 7세는 다시 아비뇽으로 귀환하였다.

 

 

 

이로 인해 두 명의 교황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양분된 교황청과 부패한 교황정치를 쇄신하기 위해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다. ‘’공의회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대학의 학자들과 뜻있는 추기경들이 함께 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평신도들이 발언권을 가진 공의회를 조직하고 공의회가 교회의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피사에서 공의회를 소집하고 교황 알렉산드 5세를 선출하였다. 이로 인해 3명의 교황이 한꺼번에 존재하게 되었다. 1417년 스위스의 콘스탄츠에서 만국공의회가 소집되었고 공의회가 보편교회를 대표하고 그리스도의 권한을 직접 위임 받았음을 선포하였다. 로마 교황도 공의회에 복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콘스탄츠 공의회는 한 교황은 사퇴시키고 두 교황을 해임하였다. 22명의 추기경들과 5개국 대표들 30명으로 구성된 콘클라베를 구성하여 마르티누스 5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같은책, pp.66-68)

 

 

 

16세기에 접어들어 교황청은 인문주의와 르네상스에 의해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통해 교황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교황 중심의 중세정치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로마교회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어 갔다. 마틴 루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고발 하였다. 칼빈도 같은 맥락에서 교황정치의 부패성을 폭로하고 성경적인 교회의 회복을 위한 종교개혁에 앞장서게 되었다.

 


로마교회는 위기 의식 속에 트렌트 공의회(1545-1563년)를 통해 교회의 새로운 정책과 변모를 갖게 된다. 교리와 성직자의 규율에 대한 조항들이 제정되었다. 이 공의회는 종교개혁에 대한 반종교개혁으로 로마교회의 보호를 위한 모임이었다. 트렌트 공의회 이후 3명의 교황들이 카토릭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파이우스 5세는 교황이 된 후에도 청빈한 도미닉 수도사 생활을 계속하였고 도미닉의 수도복인 횐 옷을 입고 다녔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교황들이 흰옷이 입게 된 이유였다. 교황 파이우스 5세의 후계자인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유럽각 지역에 교황대사들을 두었고, 각 지역에서 이들을 교황권을 위한 사역자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서구사회 전체가 수용하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서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 의해 교황의 세력이 도전을 받게 되었고 교황들은 이에 맞서 교황의 권한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860년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지면서 교황령의 대부분은 이태리아 왕국에 병합되고 말았다. 교황권의 속권에 대한 힘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가톨릭 신자들은 속권을 상실해 가는 교황 파이우스 9세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가톨릭의 로마교회의 세상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의 위용이나 사도들의 무덤을 위한 순례가 아니고 교황을 동정하는 행렬이 이어졌다.(같은 책, pp.96-97)

 

 

 

그러다가 교황의 위상에 대한 전기가 마련된 것은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였다.(1870년) 트랜트 공의회 이후 300년이 지난 대공의회였다.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는 700명의 성직자들이 회집 하였고 자유주의, 유물론, 범신론, 자유주의 신학과 합리주의 성서관 등을 거부했지만 이를 위해 교황의 권위가 최고조로 강조되었던 것이다. 이 공의회에서 교황의 무오류성과 수위권을 교리로 확정하였다. 그래서 교황을 영원한 목자(Paster Aeternus)로 호칭하게 되었고 533대 2로 이 조항을 통과 시켰다. 그리고 교황의 무오류성의 확인과 교황을 모든 사람들 위로 들어 올리는 의미로 중세부터 유래한 가마를 타게 했던 것이다.(같은 책, p.98) 제 1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교황의 위상은 점점 신성화되어 1984년 12월 8일 교황 파이우스 9세는 성모무험시태 교리를 확정하였던 것이다.

 

 

 

세계 1, 2차 대전을 지난 후 지구촌에 발생한 문제들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국의 발현, 선진국과 후진국과의 빈부의 차이 등이다. 교황들은 이런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방송매체를 통해 교황의 권위를 부각시켰다. 이러한 시류 속에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이 공의회는 변화하는 세대에 대처하기 위한 혁명적인 결정들을 했다. 이 공회는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의식변화를 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에서 수용으로 전환하였다. 세계평화라는 이름으로 보편주의 가치를 활용했으며 개신교와 희랍정교와의 대화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자유, 정의, 가난에 대한 관심 등을 크게 표현하였다. 바티칸 공의회 이후 두 교황이 지난 후 교황 아드리아누스 2세 이후 첫 번째로 비 이태리 출신으로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1978-2005년)으로 선출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현재는 비 라틴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남미 출신 프란체스코 1세가 등극하여 보편주의 가치관을 최대치로 확대하면서 교황의 권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평신도 수도사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따라 교황명을 칭하게 하므로 교황이 시류에 얼마나 변신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연구한 교황의 역사에서 교황권은 시대가 감에 따라 점점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주교(감독)가 교회의 지도자로 존재하였다. 그러다가 주교가 갑자기 ‘베드로의 후계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단지도체제’에서 ‘로마주교중심의 군주제’로 발달한다. 교황 레오 1세는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하였고,  교황 그레고리 1세는 주교에게 ‘교황’(pope)이란 칭호를 붙였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황을 ’베드로의 대리자‘로 칭하였고 인노센트 3세는 교황을 ’하나님의 대리자‘ 호칭하였다. 그리고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무오류성‘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교황은 작금에 와서 무오류성과 더불어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교황의 위상은 로마교회가 교황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만든 인위적인 결정이다. 즉 교황권위는 하나님께서 준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시대가 감에 따라 점점 발달하였던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초기 로마교회는 주교만 존재하였다. 영지주의와 같이 이단들을 교회가 대항하기 위해 사도들의 정통성이 찾기 시작하였고 이 정통성을 위해 로마 주교의 위상이 ‘베드로의 후계자’로 둔갑하였다. 교황 레오 1세는 혼족과 반달족과 협상하면서 정치적으로 ‘교황 좌’를 로마교회와 국가의 평화의 책임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교황 레오 1세는 로마 주교만이 ‘충만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모든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교황)에게 협력해야 함을 선포하므로 최초로 교황의 수위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6세기에 교황 그레고리 1세는 ‘교황’(pope)이란 칭호를 붙였다. 이로 인해 영육 간에 교황이 보편교회의 대부로 인식되었다. 11세기에 그레고리우스 7세는 독일 황제 헨리 4세와의 권력 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교황을 ‘베드로의 대리자’로 호칭하였고, 그 후 인노센트 3세는 십자군을 동원하면서 교황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호칭하였다. 그리고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무오류성’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교황의 무오류성은 사실 오래 전부터 믿어왔던 것으로 1870년에 법제화 한 것뿐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정 동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천주교 사상평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2011, p.25) 이렇게 교황의 권위는 성경에 아무른 근거가 없이 역사적 산물로 만들어 졌고 교황 우상화가 진행된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변신해 온 교황의 한국 방문의 의미는 무엇일까?

 

 

 

교황의 위상은 역사적인 산물이며 성경에 아무른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를 대변하는 세계적인 지도자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교황의 한국 방문의 의미를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 천주교의 위상을 높여줄 것이다.

둘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 천주교의 교세확장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셋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의 일부 종교 간의 대화와 유대를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촉진시킬 것이다.

넷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의 기독교 간의 갈등을 유발시킬 우려가 있다.

다섯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천주교의 실상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킬 것이다.

여섯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개신교회의 자기 성찰이 있을 것이다.

일곱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천주교의 오류들이 숨겨지거나 미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여덟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교황에 대한 이미지를 높여줄 것이다.

아홉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교황 우상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열 번째, 교황의 한국 방문은 천주교인들의 사회적 인지도를 높여줄 것이다.

열한 번째, 교황의 보편적 가치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은 한국천주교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2. 비성경적 가톨릭 신앙의 허와 실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은 마틴 루터의 칭의의 교리를 강의하기도 한다. 사제들은 개신교가 가르치는 중요한 교리들을 말한다. ‘거듭남’, ‘구원 경험’, ‘구원의 역사’, ‘그리스도와의 만남’, ‘성령 세례’, ‘그리스도를 영접함’, ‘은사 체험’, 그리고 ‘케리그마’ 등의 표현이다. 사제와 수녀들은 복음적인 집회에도 참석하고 기독교의 찬송가도 배운다. 그들은 지역교회의 모임에도 얼굴을 내 민다. YMCA의 모임에도 참석하고 개신교의 메시지와 신학용어도 자유자재로 인용한다. 그리고 개신교 목사들에게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로마 가톨릭교회 내의 가르침의 실상은 이와는 정 반대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p.62) 심지어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도 제 1,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로마가톨릭교회가 많이 변화했다고 말하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전혀 변화된 것이 없고 도리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개신교와 타 종교를 포섭하기 위해 위장된 모습으로 대화의 창을 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현대주의에 부응하여 보편적 가치를 위한 교황의 행보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특히 프란체스코 1세의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은 보편적 가치론의 범위를 넘어 경제적인 마르크시스트라는 평을 받고 있다. 천주교의 가르침이 얼마나 비 성경적인 것인가는 아래의 설명에서 숙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신칭의, 성인숭배, 교황제도, 사제의 직무, 성례의 의미는 개신교와 확연히 다른 비 성경적인 교리를 갖고 있다.

 

 

 

 


1) 미신행위와 우상숭배 신앙의 온상

 


중세기독교는 성 유물(relics) 숭배가 만연한 민간 신앙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유럽 전역의 교회마다 성유물들이 난무하였다. 이러한 성 유물을 제후들이 자신들의 교회에 더 많이 보유하도록 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십자군 운동을 통해 성유물들이 난무하게 되자 교황청에서는 감리사를 보내 진품 명품을 가리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성유물들이 기적이 일으킨다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들의 잉여공로가 전달된다고 믿었다.(마틴 로이드 존스, pp.30-31) 예를 들면, 구약의 광야의 만나, 세례요한의 머리카락, 예수님의 치아, 표피, 제자들의 발을 씻기운 물그릇, 십자가 나무 조각, 그리고 성인들의 유골 등 수많은 종류의 성 유물들을 유럽의 교회가 보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유물 숭배 전통은 오늘날 성인의 날 숭배 신앙으로 만연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은 이교도의 신앙 전통을 기반으로 발달한 것이다. 직업의 종류대로 성인의 날이 정해져 있다. 무려 43 종류의 성인의 날이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무원은 성 마태의 날을 9월 21일에 지킨다. 그리고 배우는 성 게네시우스의 날을 8월 25일 지키고 건축가는 성 토마스의 날을 12월 21일에 지키고 있다.(우드로우 같은책, pp.45-46) 로마가톨릭교회에는 또한 다음과 같은 성인들이 있다. 임신을 못하는 여인을 위한 성인은 성 안토니, 맥주를 마시는 사람을 위한 성인 성 니콜라스, 임신한 여인을 위한 성인은 성 게라드, 독신녀를 위한 성인은 성 안드레 등 무수한 성인들의 숭배 신앙이 존재한다. 그리고 병 치유를 위해 성인들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친다. 관절염을 위해서 성 야고보, 개에게 물렸을 때는 성 후베르트, 뱀에게 물렸을 때는 성 힐라리, 눈 먼 것은 성 라파엘, 암은 성 페레그린, 가슴 병은 성 아가씨, 눈병은 성 루시, 목구멍 병은 성 불라세, 간질은 성 비투스, 열병은 성 조오지, 담석증은 성  리베리우스, 두통은 성 데니스, 심장병은 성 요한, 정신 이상은 성 딤프나, 그리고 피부병은 성 로치 등이다.(우드로우 같은책, p.47)

 

 

 

이와 같이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보호성인을 두고 신앙의 삶 전체가 그리스도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성인들을 우상화하고 그들에게 기도하면서 죽은 성인들과 연결된 이교도적인 신앙을 지속하고 있다. 가톨릭 백과 사전은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전설들은 기독교 이전 시대의 종교 이야기들에서 발견되는 개념들을 반복하고 있다... 전설은 기독교적이지 않으나 단지 기독교화 된 것이다... 많은 경우 전설은 신화와 동일한 기원을 갖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영웅들에 대해 그 본질적인 요소를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고대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성인들에 대한 많은 전설의 경우가 이와 같다... 고대 사람들인 자기들의 영웅에 대해 간직했던 개념들을 취해 기독교 순교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 성인들이 지역의 신이 되고 기독교 예배가 고대의 지역 신 예배를 대신해서 들어서게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증진되었다. 이는 (고대의) 신들과 성인들 사이에 유사성이 매우 많음을 잘 설명해 준다.”(우드로우, 같은책, p.48)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로마가톨릭교회가 가장 큰 우상으로 섬기는 미신행위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이다.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431년, 에베소 공회의)로 승격한 이후에 점점 발전하여 오늘날은 ‘성모무염시태’(1854년), 그리고 ‘성모몸소승천’(1950년)까지 주장하게 되었다. 성모무염시태(The Immaculate Conception)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말한다. 예수를 원죄 없이 잉태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마리아 자신이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교리이다. 이 교리는 ‘마리아는 온전히 거룩하신 분, 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신 분으로’ “일생 동안 어떠한 죄도 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교리서 493, in 제임스 G. 멕카티, p.273) 로마가톨릭교회는 또한 마리아의 완전한 처녀 동정성이 보존되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동정(처녀성)이 조금도 다침이 없이 그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태양 광선이 유리의 고체 물질을 조금도 깨뜨림 없이 뚫고 나가는 것 같이, 그렇지만 더욱 고귀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하셨을 때는 당신 어머니의 동정을 완전무결학 본래대로 보존셨다.”(교리서 499 in 제임스 G. 멕키티, p.274)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의 동정성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수의 동생들은 마리아가 낳은 아이들이 아니고 요셉이 데려온 자녀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를 ‘축복의 마리아 동녕녀’, ‘ 동정녀 중의 동정녀’, ‘온전히 거룩한 동정녀’, 그리고 ‘하나님의 어머니’로 칭한다.(교리서 499 in 제임스  G. 멕카티,  p.275)

 


이렇게 원죄 없이 태어나서 동정을 보존한 마리아는 죽어도 육체가 부패하지 않았다는 신앙으로 진화되었다. 결국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녀를 엘리야처럼 승천한 인물로 둔갑시킨 승모몽소승천(Assumption of Mary)교리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원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없이 깨끗하신, 펴앵 동정이신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상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리심을 받어셨다는 것을 신적으로 계시된 교의로서 정의하며 선포하는 바이다.”(제임스 G. 멕카티, p.275)

 

 

 

마리아 숭배 사상의 비판에 대해 로마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구별하고 성인보다는 공경한다는 것뿐이지 절대 숭배는 아니다 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실제로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모시고 숭배하는 신앙을 갖고 있다.(마틴 로이드 존스의 천주교 사상평가, p.29) 그리고 천주교 예배는 예수님 보다 마리아에게 더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천주교에서는 성모마리아의 축일로 연간 14번의 기념 축제일을 정해 놓고 기념하고 있다.(http://mirror enha/wiki/) 천주교에서 성모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에게 직접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이 넘치는 예수의 친모 마리아를 통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와 인간과의 중보자로 우리를 대신하는 존재로 숭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로마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죄 없이 잉태되었고, 온전하게 죄가 없고, 몸으로 승천하였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제임스 G. 멕카티, p.290) 특히 마리아가 예수와 신자들 사이의 대중보자로 인식된 초대교회의 흔적은 없다.

 

 

 

 


2) 제사장직의 보편성 부인과 사제직 주장

 


로마가톨릭교회는 사제들을 사도적 계승으로 인식하고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는, 복음의 증거에 따라, 하나님의 전 교회를 다스리는 최고의 지위가 주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축복된 사도 베드로에게 수여되었다고 가르치고 선언한다.”(제 1차 바티칸 회의 in 제인스  G. 멕카티, pp.345-346)

 


천주교에서는 사제들을 평신도와 철저하게 계급적, 존재론 적으로 구분한다.

 


“당신들은 단지 평신도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제사장(사제)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교회에서 성직수임을 받은 이 사람들만이 사제입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p.26)

그리고 주교 제도는 신적 제도이며 주교나 사제들을 배척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죄를 범한다고 가르친다.

 


“... 주교들이 신적제도에 따라 사도들의 자리를 계승하였다고 가르친다. 주교들은 교회의 목자들이므로, 주교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고 주교를 배척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제 2 바티칸회의  in 제임스 G. 멕카티, p.344)

 


이러한 주장은 곧 대단히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이다. 천주교의 주교들이 하나님이 제정한 신적제도라는 표현은 주교의 권위를 높이는 억지 주장이다. 그리고 평신도로 하여금 주교들에게 절대 복종하도록 만드는 제도이다.

 


“... 신자들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린 자기 주교의 판단에 일치하여야 하고, 마음의 종교적 순종으로 그를 따라야 한다.”(제 2차 바티칸 회의 in 제임스 G. 멕카티, p.387)

또한 주교는 사제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 사제들인 주교 자신들이 평신도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구약의 사제나 제사장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고백이란 제도를 통해 평신도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제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제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제사장으로 면죄를 선언하고 용서를 베풀 수 있는 권능을 가졌다는 것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p.27)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성만찬 때 포도주와 떡을 사제가 축성하여 예수의 피와 살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체설이 나온 것이다. 포도주와 떡은 겉모양과 색깔은 그대로 있지만 본질이 변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특별한 방법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가 성사성체를 통해 자동적(기계적)으로 주입된다는 것이다. 또 성만찬시에 포도주를 일반성도가 마시지 못하게 하는 특이한 교리를 갖고 있다.(마틴 로이드 존스, p.27) 결국 로마가톨릭교회에 의하면 평신도가 직접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수 있는 만인제사장직의 권한을 박탈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마틴 로이드 존스, p.26)

 

 

 

 


3) 칭의 교리의 오류

 


종교개혁자들이 중세의 미신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교리가 칭의의 교리이다. 칭의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인이 된다는 교리이다. 그런데 로마가톨릭교회는 인간이 선행이나 공적을 쌓아서 자신의 칭의에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칭의는 세례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례를 통해 원죄가 말소되고 하나님의 의를 받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고 하나님이 세례 수혜자에게 베푸는 의가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그 결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된다는 개신교의 칭의의 교리를 위험한 교리라고 비난하고 있다.(마틴 로이드 존스, pp.32-33) 그래서 교인들이 그리스도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 세례를 통해 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례를 베푸는 교회와 사제가 절대적인 위상을 갖게 되고 신도들이 그들을 의지할 수 밖 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신도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기 위해 중보자로서의 교회와 사제를 절대로 필요하게 만든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 교황, 사제 및 모든 고위 성직자와 하위 성직자가 중보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마틴 로이드 존스, p.33)

 

 

 

은총, 협력, 믿음, 선행의 4단계로 이루어지는 가톨릭교회의 의롭게 되는 과정은 성경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가르침이다. 성경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롬 3:24) 의롭게 된다고 가르친다. 가톨릭교회의 칭의 가르침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편으로는 의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며 선물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신교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면 주저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의 두 인용구를 비교하면 그들의 주장의 상반됨을 알 수 있다.

 

 

 

“의롭게 되는 것을 거저 주시는 선물로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믿음이나 행위나 의롭게 되는 것을 선행하는 어떤 것도 의롭게 하는 은총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트렌토 회의 in 제임스 G. 멕카티, p.75)

 


“은총의 영역에서는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행사하신다. 그러므로 회개와 용서와 의화의 기원이 되는 최초의 은총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가톨릭교회 교리서 in 제임스 G. 멕카티, p.75)

 


“만약 어떤 사람이 의롭게 되는 믿음이 단지 그리스도를 인해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트렌트 종교회의 in 제임스 G. 멕카티, p.77)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은 믿음은 의롭게 되는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하며 그 뒤에 행위가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믿음이 의롭게 되는 첫 번째 단계이고 의롭게 되기 위해 믿음 외에 다른 단계가 있다는 주장은 없다. 성경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단 하나의 필요충분의 조건은 믿음뿐이라고 말한다.

 

 

 

 


4) 잘못된 성례의 의미

 


천주교에서는 성례 대한 이해는 기계론적이다. 성사에 참석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주입받는 행위라고 가르친다. 특히 세례(영세)의 성사는 대단히 중요하다. 세례의 성사가 없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례가 영혼으로부터 원죄를 제거하고 영혼 안에 성화케 하는 은총을 주입하는 행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교리서 262-1266 in 제임스  G. 멕카티, p.476) 즉 세례의 성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주입되어 죄인이 의롭게 거듭난다는 것이다. 세례가 단순히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외적 징표가 아니라 의롭게 되는 채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가톨릭교회의 의롭게 되는 신앙은 나머지 여섯 단계의 성사를 통해 보존되는 것이다. 두 번째 성사가 성사중의 성사라고 부르는 성체 성사이다. 성체 성사는 사제들의 축성에 의해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한 빵과 포도주를 먹게 된다. 예수의 몸과 피를 직접 먹고 마시므로 의로움이 보존되며 하나님과 연합된다.(교리서 1391 in 제임스 G. 메카티, p.477) 세 번째 성사는 견진성사로 의롭게 됨을 보존하기 위해 성령의 은사를 받는 성사이다. 이 성사를 집례하는 사제는 오른 손가락을 거룩한 기름에 넣었다가 성사를 받는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 성호를 긋고 “성령의 은사로 인침을 받으라”고 선언한다.(교리서 1300 in 제임스 G. 멕카티, p.477) 견진 성사는 개인적인 오순절 성령체험으로 간주하며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특별한 힘을 받고 의롭게 된 신앙을 보존하는 수단인 것이다.

천주교는 의롭게 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 네 번째 성사인 고해 성사가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가르친다. 세례 받은 후 치명적인 죽을 죄를 지은 자는 사제에게 고해 성사를 통해 죄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의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고해 성사는 개인적인 고해 성사와 공동으로 신부 앞에 하는 집단 고해 성사가 있다. 집단적인 고해의 기도가 이루진 후 신부는 참여한 집단 고해자들에게 죄가 사하여 졌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죄를 지은 사람은 이 집단 고해에 참여하여 죄 용서함을 받드라도 1년 안에 다시 그 죄를 신부에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교리서 1536-1600 in 제임스 G. 멕카티, p.478)

 

 

 

고해 성사까지 행한 성숙한 신자가 된 교인은 이제 두 가지 혼례 상사를 치르게 된다. 하나는 성품 성사이고 다른 하나는 혼배 성사이다. 성품 성사는 주교나 사제 혹은 집사로서 부제직에 종사하게 되는 직분을 받는 성사다. 혼배 성사는 결혼 성사로서 이 성사를 통해 부부 생활을 돕는 특별한 은총을 받게 된다.(교리서 1601-1666 in 제인스  G. 멕카티, p.479)

천주교의 마지막 성사는 종부 성사(Extreme Unction)이다. 이 성사는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영적이고 육체적인 힘을 제공하여 의롭게 하므로 신자의 영혼을 천국에 가도록 준비시키는 성사다. 이 성사는 고해 성사와 성체 성사를 병행한다.(교리서 1499-1532 in 제임스 G. 멕카티, pp.478-479)

 


천주교의 7성례는 한번 의롭게 된 신앙이 얼마나 불완전함을 보여준다. 천주교는 세례 성사를 통해 의롭게 된 구원의 신앙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성사를 통해 인위적으로 칭의를 지속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7성례를 통해 신자들의 사제들이 족쇄에 묶어 두는 종속신앙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롭게 된 신앙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단번에 이루어진 완전한 것이며 신자의 신앙생활을 통해 재생산 되는 인위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효력도 영원한 것이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교황 한국 방문의 개혁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한국가톨릭교회와 개신교와의 직제와 신앙의 일치를 주장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주장은 외형적으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연합과 화합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일치와 화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아집에 고착된 반 평화주의자로 폄하될 것이다. 이러한 일치와 화합의 불가능한 시도의 배경에는 다른 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토마스 리스는 [인사이드 바티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가 교회 일치 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교황 통치권으로 장려되는 동시에 감독을 받는다.”(토마스 리스, 이경상 엮, 인사이드 바티칸, 가톨릭 출판사,  2005년, p.15)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일치와 화합의 운동은 로마가톨릭교회가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만든 대대적인 가톨릭교회의 홍보로 인식되기도 한다. 두 교회의 일치와 화합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지길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논리가 성경적인 진리를 외면한 채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불가능한 것이다. 개신교는 교황의 방한을 맞이하여 가톨릭 중심의 많은 홍보 행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교인들이 혼돈하지 않도록 개혁신학의 의미를 더욱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개혁교회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신앙의 오류들을 교인들에게 확실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많은 개신교 교인들이 천주교로 개종되는 것은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의 오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개혁교회는 개혁신학의 교리교육을 철저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많은 개신교 교인들은 개신교의 교리와 신앙에 대한 무지로 인해 신앙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셋째, 한국개혁교회는 청소년의 건강한 신앙교육을 위한 청소년 교리학교를 부활해야 한다.

넷째, 한국개혁교회는 천주교의 교황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추구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국개혁교회는 한국의 개신교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III. 결론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것은 교황을 교회의 수장으로 삼고 교회의 권위와 교황의 수위권을 보호하기 위한 주장이다. 사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 없이 교회는 없다’라고 주장해야 옳을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이 주도하는 교황중심의 교황 교회이며 국가이다. 즉 교황의, 교황에 의한, 교황을 위한 교회이다. 그래서 교황중심의 전제군주제 같은 체제를 갖고 있다. [국부론]를 쓴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저서에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교황의 세력에 대해 “로마 교회는 국가 정부의 권위와 안전에 반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이성 및 복지에  대적하는, 인류가 산출한 가장 가공할만한 조직체이다”라고 하였다.(로이드 존스, p.59) 또 14년간 예수회 사제로 지낸 휀스브뢰흐(G.P.Von Honsbroch)는 [사회 문명에 미친 교황권 제도]에서 “교황권 지상주의는 종교의 탈을 쓴 세속 정치 조직으로서 그 자체는 범세계적인 세속 권력을 추구해 오고 있다... 교황권은 그리스도로부터 그 존속 근거를 찾고 있는 신성한 기관이라 지칭하지만... 그 제도를 옹호하는 자들이 뱉어내고 있는 무수한 허위로 둘러싸여 있다”라고 비난하였다.(로이드 존스, p.59)


지적된 바와 같은 비 성경적인 교황권지상주의의 우산 아래 펼쳐지는 성유물 숭배와 마리아 숭배는 기독교 신앙을 오도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형성된 성모 마리아와 사제들의 중보자적인 사역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신자의 보편적인 권한을 박탈하고 있다. 세례와 성찬예식이 구원의 은혜가 주입되는 통로라는 기계론적인 이해는 성경에 전혀 근거한 이론이 아니다. 사제들이 기적을 통해 포도주와 빵을 실질적으로 예수의 피와 살로 축성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가공할 만한 억지 주장인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또한 성경 외에 많은 위경과 전통을 근거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로마가톨릭교회의 허위 권위와 거짓 신앙은 개신교의 정통교리로 위장되어 나타나므로 더욱 두려운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 성육신, 기적, 대속사역, 육체의 부활, 승천을 믿는다. 그리고 성경의 영적영감과 권위를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한다. 이런 면에서 개혁교회처럼 확실한 정통교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확실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교활함이 들어오고 어려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이유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이 모든 것에다 ‘저주 받아 마땅한 첨가물’ 즉 전적으로 비성경적인 것들과 사실상 성경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들을 첨가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교회는 우리가 그들이 가리키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결국에는 그 체제의 거짓말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위치로 우리를 몰고 갑니다! 다시 말해 로마가톨릭 체제의 교리는 그럴듯한 위조품이며 성경이 기록한 대로 로마가톨릭 체제는 다름 아닌 계시록의 음녀입니다.”


로이드 존스의 표현이 과격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로마가톨릭교회의 실상을 면밀히 연구해 보면 성경이 말하는 정통기독교와는 다른 이질적인 신앙의 요소들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개혁교회 신도들은 외형적인 로마가톨릭교회의 화려한 허상에 유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객관적인 계시인 성경말씀만으로 만족하고 진리를 외치는 개혁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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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이야기 / 황태연 지음

 

안녕하세요~

좋은땅 출판사 입니다!

현대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다양한 소식들을 SNS와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자살폭탄테러, 기독교인 학살, 여성 비하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담겨있는 내용들이 다수인데요.

​그러나 이렇게 단면적인 부분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이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 대중들은 이슬람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이해하고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편견 없는 정확한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보다 쉽게 이슬람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슬람 제대로 알기!

기독교인을 위해 쉽게 쓰인 이슬람 이야기

 

현대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다양한 소식들을 SNS와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다. 그 내용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자살폭탄테러, 기독교인 학살, 여성 비하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담겨있는 내용들이 다수다. 그러나 이렇게 단면적인 부분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이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슬람권에서 무슬림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했던 『이슬람 이야기』(좋은땅 펴냄)의 저자 황태연은 다른 사람들보다 이슬람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이슬람을 몰랐다”고 고백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아는 많은 것들이 착각이었고, 본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슬람에 대한 단편적인 소식들로 이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대중들은 이슬람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편견 없는 정확한 견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만들어진 책이 바로 『이슬람 이야기』(좋은땅 펴냄)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보다 쉽게 이슬람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다소 어려운 전문적인 이슬람의 단어들과 아랍어들을 가능하면 배제하고, 이슬람의 핵심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보다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의 내용으로 기술된 책이다. 독자들은 이슬람에 대한 깊이 있는 학문적 지식보다, 보편적이나 포괄적이며 섬세한 정보들로 이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이슬람 이야기 > 황태연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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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년,마르틴 루터의 운명


하나님께서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때에 들어 쓰신 하나님의 사람,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신학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 의지해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관행을 뒤집어엎는
『95개조 반박문』을 공개함으로 종교 개혁의 불꽃을 쏘아 올린 한 수도사의 위대한 발자취
그릇된 가르침과 횡포에 맞선 두려움 없는 영혼의 이야기

미국 명문 예일대에서 40년이 넘도록 교회사를 강의한 저자 롤런드 베인턴 박사는 진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만으로

부패한 세상과 교회를 뒤엎은 루터의 일생을 다각적인 시선으로 살펴보고 더할 나위 없이 입체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남을 것이라는 칭송이 무색하지 않게 우울질인 동시에 감성 깊고 열정적이었던 한 수도사로

하여금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게 했던 하나님의 권능과 말씀의 위력을 어느 전기나 역사서보다도 생생하게 이해하게

해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복종이 얼마나 위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새삼 탄복하게

되며, 우리의 약한 것과 부족한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시대의 길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를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다.

 


마르틴 루터가 내세운 목표는 3가지.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서(solo Christo)'

이며, 루터가 겨냥한 목표는 원점(原點)이었다.

 

"올해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당시 성행하던 면벌부(면죄부) 등에 의문을

품고 비텐베르크 교회 외벽에 개혁을 향한 95개 조의 반박문을 게시한 것을 기념한다."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1절을 마르틴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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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설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그는 다윗의 계보에 속하며 성령으로 잉태되어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으며, 일시에 애굽에서 망명하여 살았으며, 추후에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가 거기서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예수의 나이 30세에 사생활에서 나와 전도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후 그는 빈들에 나가서 40일간 금식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심사숙고하는 중 그것을 당시의 일반 민중의 경제 정치문제의 해결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일으키며 세속적인 영예와 권세의 획득보다도 영의 왕국의 건설을 그이 목표로 할 것임을 깨달았다. 광야에서 40일이 지난 후 그의 공생에 3년의 서막을 열었다. 그는 갈릴리와 유대를 활동 무대로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활동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반감과 의구의 느낌을 일으켜 유대 지도자들은 그를 처치할 흉계를 모색하여 십자가에 달아 죽인다. 예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은 가장 감격적인 것이었으니 이것을 통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자신의 체포, 치욕, 십자가에 죽이는 그들을 위해 저주하는 대신 그의 숭고한 신적인 사랑과 용서심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한 후 장사된지 3일만에 다시 부활했다.

 

2.예수 그리스도의 품격

사복음서를 보면 첫째 그는 역사적 실존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초자연적 방법에 의하였다 하나 마리아의 몸에서 출생하였으며, 성장 하였으며, 침식하였으며, 희로애락의 정을 가졌으며,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과 유혹을 당하는 등 인성을 가졌으며, 신성도 겸비하여 순결성, 무죄 성이 재증된다고 볼 수 있다.

 

3.기독교의 창립과 발전

 

1)초대 교회(30-50 A.D.)

오순절 성령을 받은 후 그의 신도가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수리아 수도 다메섹과 안디옥과 그 밖의 여러 지방에 불길과 같이 일어났다.

 

(2)사도바울의 회개와 그의 활동(50-65 A.D.)

박해자였던 그는 다메섹으로 가던 중 환상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개종하고 3차에 걸쳐 소아시와 유럽 각지에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여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다.

 

(3)신약 성경의 편찬(65-150A.D.)

한사람이 한때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기원 후 65-150년 사이에 여러 사람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기록.

 

(4)기독교의 박해 시대(150-1054 A.D.)

가장 극심한 박해는 기원 후 650년 네로 황제때 였으며 그후 325년경 큰스탄티 대제의 개종으로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되었다.

 

(5)교황 전권 시대(1054-1517 A.D.)

여러 가지 폐단도 없지 않았으나 박애 사업과 교육 문화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6)종교개혁 시대(1517-1648 A. D.)

교황의 전권과 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들며 일어났다. 영국에서 위글리프와 보헤미아의 요한 후스, 독일의 마틴 루터와 스위스의 즈윙글리, 프랑스의 칼빈이 대표적 인물이다. 종교개혁후 전 세계 기독교도의 수는 904,332,500인(구교도;550,305,000,신교도;216,949,000)이다.

 

(7)교파의 분립과 연합 운동

종교 개혁후 신교는 신앙의 권위를 성경에 두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나 이로 인해 무수한 교파의 분립이 생겼다. 오늘에 와서는 협동 내지 합동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교단 합동이 아직 불가능하다 하여도 그 사업에 있어서 연합 전선을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5.기독교의 중요 교리

 

(가)성경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의 계시의 글로 믿는다. 여러 가지 형태의 문학이 들어 있으며 종교적 목적 외에 인생의 가장 좋은 교육서다.

 

(나)예수 그리스도

기독교의 중심 이념, 죄로 인해 타락된 세상을 구원하고자 인간의 몸을 입어 탄생했으며, 십자가에 달여 죽었으며, 역사의 종말에는 전 인류의 심판자로 임할 것을 믿는다.

 

(다)하나님

무형 무상이신 영, 인격적 존재, 전지의 주제, 자연계의 섭리자, 인간 생활의 주관자며 보호자, 인류의 아버지, 예수 자신의 아버지

 

(라)성령

삼위일체중 삼위에 해당하며, 인간의 도덕적 갱신과 인격 향상의 원동력, 인간을 진리에로 인도하여 죄에서의 자유를 부여한다.

 

(마)인간관, 구원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인격)대로 창조되었으나 죄를 지음으로 범죄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바)교회관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는 세계적, 우주적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그에 의하여 구속을 받아 하나님과 화해가 이룩된 성도들이 그 지체가 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직능과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던 일을 이어받아 그것을 완수함이다. 교회에 가입은 세례 혹은 영세에 의한다.

 

(사)천국관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건설을 위하여 화신 하였다고 믿는다. 현실적인 실재이나, 완성은 현세에서는 실현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진 땅 즉 세상 사회는 역시 천국이다.

 

(아)윤리관

일반적 윤리는 대인관계의 규정이나, 기독 윤리는 신인의 관계와 대인의 관계의 규정이다. 특색은 외면적인 행동보다는 내면적인 동기를 중시한다.

 

6. 결 론

현재 전 세계를 통하여 이 신도의 수는 9억에 달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인간의 참된 욕구에 대하여 만족을 주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가장 만족한 신관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우수한 경전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장 만족한 인간관을 가지고 있다. 이리하여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자부로 추대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주로 믿고, 그를 따르며, 가장 우수한 정신적 양식이 되는 경전을 소유하고 있으며, 가장 만족한 인간관 세계관을 제공하는 기독교는 인간의 감정과 이성과 이지의 만족을 주는 종교라 칭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비교종교학,

출처 : http://kcm.kr/dic_view.php?nid=3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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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저는 손양원 목사님의 대한 책을 읽고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비롯하여 전부 가족이 가진 신앙생활이 저에게 본이 되어 주며 신앙 생활에 있어서 큰 도전이 되어 주었습니다. 책을 읽는 중에 내내 그 분의 믿음과 비교도 안 되는 현재의 제 작은 믿음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과연 진정한 믿음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뼈 속까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첫째는 손양원 목사님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과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 아낌없이 바치고자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하나도 빠짐 없이 순종하는 모습이 은혜로웠습니다. 5년간 감옥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고 혼자 고생하시면서도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강한 그 분의 믿음을 배워야 함을 느꼈습니다. 그분과 달리 저는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경외심과 절대성이 심히 부족함을 깨달으며 앞으로 말씀을 제 목숨까지 지켜야 함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감동적이었던 것은 순교한 두 아들을 잃고 나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게다가 아들들을 죽인 원수까지 양아들로 삼겠다는 믿음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분도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기에 그런 어려운 상황을 영접하기 힘드셨을텐데 그런 인간적 본성을 부인하시고 오직 믿음으로만 극복해 나가시는 신앙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하나님만 바라보는 아름다운 믿음을 배울 있었습니다. 보통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삶을 살기 쉽습니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보면 정말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둔 삶을 사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핏 보면 목사님의 삶이 고난밖에 못 본 비참한 삶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누구보다도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사셨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곧 썩어질 세상을 바라보고 살지 않으시고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 한 분만에게 소망을 두시며 진정으로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삶을 통해서 마태복음 6: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생 목자라서 거의 3년 연속으로 이 말씀을 일년 요절로 잡아 왔지만 문득 드는 생각이 정말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라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다만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순종하려고 하는 아주 수준 작은 믿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이런 어리석음과 영적으로 무지했던 죄를 깊이 회개합니다. 저도 앞으로 손양원 목사님처럼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세상 소망보다 천국 소망을 가진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 죄악된 시대와 함께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한 영혼을 살리는 데 쓰임 받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원하고 소망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복음 역사를 위해서 아낌없이 섬기며 충성하는 믿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지 않으시고 늘 하나님의 복음 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삶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시고 아픈 환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고 섬기시는 모습이 참 은혜로웠습니다. 이를 통해서 저는 하나님의 복음 역사에 대한 충성심과 섬김이 현재로서는 심히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장막 생활을 하고 있는데 처음으로 저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섬기기 위해서 얼마나 자기 부인해야 가능한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남이 알아 주지 못 해도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섬기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늘 여러 가지 현실 문제와 얽매여 그러지 못 하였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믿음의 삶을 통해서 제 인생 전부를 일생 동안 하나님께 바쳐도 아깝지 않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섬기며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인생임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젊음과, 시간과 물질 등을 복음 역사를 위해서 전부 드려야 함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캠퍼스 목자라서 갈 바를 모르는 학생 양들을 섬기며 또 사라와 같이 어떤 자도 영접하며 사랑하는 열국의 어미로 성장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넷째,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난을 따르는 삶을 싫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고난을 피해서 쉬운 길로 가고자 합니다. 저 역시 어찌하든지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키르키즈스탄이란 이슬람 나라에서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20대 초반까지 예수님을 모르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교에 입학한 뒤 우리나라로 오신 UBF 선교사님들을 만나게 되어 말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세리 마태처럼 이기심의 죄로 결국은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제 삶에 예수님께서 빛처럼 들어오시고 영광스러운 사명인의 삶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 후 바로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어 예수님을 더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속에서는 아직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불신의 죄를 발견케 되었습니다. 인구의 75%이 이슬람 종교를 가진 나라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이로 인해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찌하든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피하고 한국에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도 아닌 우리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에서 평생 선교사로 살고자 하는 소원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가기 싫은 것은 분명히 제가 고난을 받기 싫어서임을 이 시간 인정하며 회개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어디로 인도하시고 어떻게 쓰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본국에 돌아가서 복음 역사를 섬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으로 가서 평생 캠퍼스 목자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의 본을 보여 주신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책을 읽고 큰 은혜와 감동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부족한 저를 분반 인도자로 쓰시고자 하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전국학생수양회를 통해서 한 마디 말씀을 깊이 받고 새해를 출발할 수 있길 간절히 원하고 기도합니다. 또한 모든 참여하는 학생들과 목자님들이 말씀의 은혜를 받는 수양회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멘

 

 한 마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겠습니다!!!

http://cafe.naver.com/studentconference/6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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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저는 서서평 선교사님의 인생에 대한 책을 읽으며 저는 오직 서서평 선교사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를 기대하며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책의 전반부가 서서평 선교사님 외 다른 분들의 얘기와 선교 역사들이 실려 있어 많이 실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선교 역사를 읽어 나가면서 우리 조선에 많은 선교사님들이 파송되었고, 섬김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음을 알게 되면서 놀랍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선교지역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이를 분산시키고자 선교회들이 모여 선교분담 논의가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왔음을 볼 때 “그들의 유산으로 영적 부요의 마당에 선 우리들”이란 말이 와 닿았습니다. 또한 그분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온갖 고난과 위험 가운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김과 희생을 하고 떠나가셨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찔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회, 나아가 저의 복음은 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위에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에 보이는 헌신과 섬김만 보다보니 매 순간 불평, 불만이 넘쳤다. 무엇보다 저는 교만하였습니다. 제가 센터에서 모임을 준비하고, 무언가 일이 맡겨질 때면 마치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우쭐해졌습니다. 역시 나밖에 없다, 나니까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교만해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남들보다 많은 일을 하니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훌륭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정죄를 일삼고,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었습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러한 저의 행동들이 어린아이의 어리광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고 매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희에게 이렇게 편하고, 부요한 신앙의 기틀을 만들어 주신 선교사님들께 감사합니다. 또한 그러한 선교사님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신 헌신을 배우고 따르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중반부터는 이제 서서평 선교사님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그녀에게는 이러한 아름다운 이름이 있음에도 ‘서서평’이라는 조선이름으로 몇 십년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조선인들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조선인들의 주식인 된장을 먹으며, 전통치마에 고무신을 신고 반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처럼 그들의 아픔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낮아지고 낮아졌습니다. 이를 볼 때 어떤 감미로운 미사여구보다, 어떤 논리적이고 명쾌한 말보다 자신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같이 아파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예수님의 사랑이 이러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섬김을 할 때 항상 자신은 상급자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내가 특별히 희생해서 남을 돕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섬김에 인색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분명한 뜻이 없어 손해만 본다고 생각하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왜 이러고 있는것인가?하며 신앙생활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이러한 저의 부정적인 생각은 다른 누구의 문제도, 다른 어떤 현실의 문제도 아닌 저의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게 사랑이 없었고, 내게 심정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섬김은 진정한 섬김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헌신은 나의 의를 세우기 위한 일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인정과 자신의 의를 위해 살아온 저의 모습에 죄책감이 듭니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조랑말을 타고 온갖 위험가운데 먼 길을 전도하러 다니시며, 자신이 병으로 고통하면서도 한명이라도 더 섬기고자 밤이 세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헌신하셨습니다. 결국 서서평 선교사님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정말 자신의 생명이 다하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푸셨습니다. 그동안 저의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회개합니다. 책의 내용 중에 서서평 선교사님을 표한한 말 중에 “소유가 아닌 나눔을 통해 진정한 복음의 길을 나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소유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나누며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서서평 선교사님은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구호활동과 교육활동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조선간호협회와 이일학교,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시설과 병원, 14명의 길거리 고아들을 입양하는 등 낮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활동에는 그저 섬기고자 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낮은 자들을 보며 꿈과 비전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센병, 당시에는 천병이라는 나병에 걸린 환자들을 보며 그저 불치병이라 포기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을 수 있다,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또한 멸시받고 천대받으며 어디 가서 한명의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과부들에게서 사회적 리더로서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그저 돕고자하는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회복시키고 변화시키는, 구원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할 때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던 여자들을 위한 학교인 이일학교를 세울 수 있었고, 과부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광주의 복음 역사가 흥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생각지 못한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낮은 자들을 보며 남들과 같이 한숨 쉬지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서 큰 꿈을 꿀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전도를 할 때 양들에게 별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안 온다고 요즘 애들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정 없이, 용기 없이 복음은 전하지는 못하고 그나마 관심있어하는 동아리에 대한 얘기만 하였습니다. 또한 전도할 때 믿음이 출중하신 목자님들이 전도하시면 더 잘 될거다, 내가 하면 올 애도 안 온다, 목자님들이 하시면 양들이 예배에 올거다하는 마음으로 전도에 나가서도 내가 양들에게 번호를 받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붙잡고 목자님들께 인도하기만 하였습니다. 이것이 최선이다, 이것이 양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지금까지 마음없는 전도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전도였습니다. 마음이 없고 심정이 없는 형식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양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매정한 행동이었습니다. 양들이 변화되어 믿음의 거목으로, 영적 리더가 될 것이라는 희망보다, 이들을 돕기위해 얼마나 희생해야할까? 이들을 얼마나 도와야할까? 걱정하며 양들을 골칫덩어리로, 도와야하는 짐덩이로만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양들은 변화되어 영적 리더가 될 비전이 있습니다. 저 또한 소망이 없는 자였지만 목자님들의 섬김과 헌신에 이렇게 변화되어 사람답게 살게 되었습니다. 양들 또한 그러리라 믿습니다. 양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교사가 될 수도, 스탭 목자가 될 수도 있는 거목들입니다. 제가 희망이 없다하며 부정적인 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며 꿈과 비전을 품어야겠습니다. 그들을 변화시키고자 심정을 갖고 도와야겠습니다. 서서평 선교사님과 같은 낮아지고 꿈을 꾸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 더욱 다가가는 섬김의 삶을 살고자 투쟁해야겠습니다.

서서평(본명 Elisabeth Johanna Shepping) 선교사

출처 : http://cafe.naver.com/studentconference/6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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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 강국, 한국 선교 긴급 점검 ]

 

책소개

『선교 강국, 한국 선교 긴급 점검』의 공동저자인 신경림, 박창현, 이덕주 교수는 웨슬리신학대학이 후원하는 ‘아시아 선교탐사 연구프로젝트’를 통해 2008년부터 한국 선교에 대한 총체적 검토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 4년 동안 터키, 인도, 몽골, 중국, 일본, 필리핀, 베트남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했다. 시간상의 제약으로 아시아권 위주로 방문했지만 아프리카, 중남미,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다른 나라의 사례도 필요에 따라 책에 포함했다.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을 비롯해, 그들과 함께 사역한 현지 교회 지도자, 목회자, 신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한국 선교의 한계과 전망을 짚었다. 이 책은 이처럼 공동 연구한 결과를 각 저자의 전공 지식과 융합해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한계와 위기 상황에 봉착한 한국 선교의 나아갈 길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숙을 향하여

 

2017년 1월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증가해 오던 한국 파송 선교사 수가 처음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한국 선교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교회의 급격한 부흥과 성장을 배경으로 추진되어, 미국에 이어 해외 선교사 파송 2위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선교사 수 증가폭은 2014년부터 감소해 왔는데, 2016년까지 전 세계 172개국에 파송한 한국 선교사 수는 2만 7,205명이며, 이는 2015년과 동일한 수치다.
이처럼 선교 지도가 변하고 있어 선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적인 성장이 발전 혹은 성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선교가 이대로 좋은지, 과연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닐 수 없다.

《선교 강국, 한국 선교 긴급 점검》은 일찍부터 한국 선교에 대한 여러 문제의식을 토대로 발아되었다. “그토록 애쓰고 수고하며 사역했는데 기대한 결과는 없고 오히려 실망을 느끼게 하는 선교지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선교사들은 탈진 상태가 되었다. 파송 교회도 지쳐 가고 있다. 재정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서도 교인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해서 후원해 왔는데, 선교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 “해외 선교 현장에 있는 현지인들 눈에 비친 한국 선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선교 현장을 토대로 한 평가와 분석을 한 책으로

오늘날 선교 자료들은 얼마나 많은 나라에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지, 얼마의 선교 헌금을 보냈고, 얼마나 많은 건물을 지었는지에 대한 통계나 선교 보고가 대부분이다. 한국 선교의 양적인 성장 이면에 있는 질적인 성숙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성찰, 그리고 현지인들의 필요에 대한 경청과 대안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 저자들은 주목했다.

이에 공동저자인 신경림, 박창현, 이덕주 교수는 웨슬리신학대학이 후원하는 ‘아시아 선교탐사 연구프로젝트’를 통해 2008년부터 한국 선교에 대한 총체적 검토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 4년 동안 터키, 인도, 몽골, 중국, 일본, 필리핀, 베트남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했다. 시간상의 제약으로 아시아권 위주로 방문했지만 아프리카, 중남미,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다른 나라의 사례도 필요에 따라 책에 포함했다.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을 비롯해, 그들과 함께 사역한 현지 교회 지도자, 목회자, 신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한국 선교의 한계과 전망을 짚었다. 이 책은 이처럼 공동 연구한 결과를 각 저자의 전공 지식과 융합해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신경림 교수는 현지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한국 선교의 현주소를 면밀하게 규명하고 있다. 특히 선교사와 파송 교회, 선교사와 현지 교회의 관계에서 파생된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하며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직시하게 한다. 박창현 교수는 1885년 한국에 온 스크랜튼 선교사의 사역과 활동에 주목하면서, 한국 선교의 새로운 대안으로 ‘다시 드러냄의 신학’, ‘칭稱친구 선교’라는 선교학적 개념을 체계적으로 제시해 준다. 이덕주 교수는 과거 아시아 선교 역사를 재조명함으로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고, 과거의 역사를 거울 삼아 ‘힘으로 밀어붙이는 선교mission by force’가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선교mission by love’를 제언한다.

 

책 말미의 ‘저자 대담’에서는 각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을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하는 동시에, 선교가 무엇이고 우리가 왜 선교 사역을 해나가야 하는지 핵심 본질을 되새겨 준다. 선교 현장에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건강한 선교 정책과 방법론, 그 기반이 되는 선교학과 역사적 통찰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줄뿐더러, 선교사와 신학생, 신학교와 후원 교회가 한국 선교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보도록 인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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