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지도자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쟈스민(튀니지국화) 시민 혁명에 의해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1월 14일에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고, 1981년부터 장기집권을 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분노하는 군중들에 의해 하야를 했다(2.11). 쿠데타(1969)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은 권좌를 수호하기 위해 다국적군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국민의 인권을 짓밟고, 고귀한 생명을 학살하고 있다. 그는 권력에 중독이 된 사람이다. 중독은 나쁜 습관을 자신의 마음대로 멈출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독자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기쁨보다 외부에서 오는 거짓된 괘락을 추구하게 된다. 카다피는 에고라는 거짓된 자아를 마음의 권좌에서 몰아내고 진정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때에 평화를 추구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쟈스민의 영향을 받은 예멘과 시리아의 시위대는 독재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형제와 이웃의 주검을 보면서도 겁 없이 중동의 시민 혁명에 불을 붙이고 있다. 오랜 독재 정치로 인해 파생된 부정부패, 고물가 그리고 고실업과 같은 민생 문제들이 시민의 분노로 표출된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정부와 대화를 원했다.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는 대화가 있는 사회다. 대화가 있는 사회는 개방된 사회이며,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사회다. 대화가 있는 사회는 작은 불빛을 모아 큰 불빛을 만들어 낸다. 대화는 분산되어 있는 힘과 지혜를 모으고 그 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활력소가 된다. 그런 사회에서 지배자가 지도자로 변하게 된다. 지배자와 지도자는 엄연히 다르다. 지배자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모질게 짓밟지만, 지도자는 추종하는 자를 인정하고, 세워주며, 함께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도모하는 자다.
고대 이집트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란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지배자였다.
그는 이집트의 모든 학술을 다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한(행7:22) 사람이 되었고, 차기 왕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에 자기 민족을 돌아볼 마음이 있어서 히브리 민족이 노역을 하는 현장에 나갔다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이집트인을 처 죽이고 모래에 숨겼다(출2:12).
모세가 사람을 처 죽인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자만과 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중에 지배자(왕자)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적들이 모세를 죽이려고 했고, 그는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
누가 작은 사건(왕자의살인)을 확대 해석하였으며, 모세로 하여금 왕궁에 머물 수 없게 만들었는가?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훈련시키고 다듬기 위해 광야로 몰아가신 것이다.
모세는 40년 동안 장인의 양떼를 치면서 이집트에서 학습된 지배자의 자아를 철저하게 내려놓았다.
그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고, 지도자의 소명을 받았다.
모세의 실패가 하나님의 성공(언약성취)이며, 광야의 고통이 지도자의 기회가 된 것이다.
미국의 2차 영적 대 각성을 주도했던 디엘 무디(D.L.Moody) 목사님은
그의 설교에서 모세의 전반40년 생활(왕궁)을 I am somebody, 중반40년 생활(광야)을 I am nobody,
그리고 후반40년 생활(지도자)을 I am God's body 로 표현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는 거짓된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을 받는 자다.
표증학적인 측면에서, 모세의 실체(신18:15)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동질성을 가진 대화적 존재로 오셨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지도자의 삶을 사셨다.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 40일 금식기도를 하며(신9:25),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 백성의 용서를 구했듯이(출32:32),
예수님은 사역을 위해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고(마4:2),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치유의 사역을 하시다가
마지막에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의 대속을 이루셨다.
그리고 3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평화의 왕, 만왕의 왕이 되셨다.
믿는 자에게 용서와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중동 아프리카의 지배자들이 독재자의 옷을 벗고, 국민과 대화하는 지도자로 거듭나서 시위대의 분노를 다독이고,
민주사회의 초석을 놓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중동 아프리카인의 염원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출처 : 조완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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