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저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확실히 차원이 다른 점이 무엇이냐면 다른 종교처럼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해탈과 도덕적인 훈련과 공부와 명상과 고행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주님께 나와서 믿기만 하면 예수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다른 점인 것입니다. 불교에서 어느 훌륭한 스님이 10년을 누워서 주무시지 않고 앉아서 주무시고 고행을 했으나 세상 마지막날 죽음 마지막날 오셨을 때 나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탄식하는 것을 제가 신문에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받아야 마땅한 인생이지만 오늘 죽더라도 주님 감사합니다. 나는 천당갑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도를 가르치는 선각자나 선생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구원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2,000여 년 전에 우리의 구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과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부활 승천하여 구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크리스마스인데 크리스마스날은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기념일인 것입니다.
1. 예수님의 탄생
첫째로, 예수님의 탄생은 미리 예언된 것입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주의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 오시기 전 7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보통 출생한 것이 아니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도 이사야 9장 6절로 7절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보통 어린 아기가 아니에요.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여러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아이 핏덩어리를 강보에 싸서 엄마가 안고 있는데 그 어린 아기를 보고 당신은 이름이 기묘자요, 묘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오, 평강의 왕이라고 해 보십시오. 기막힌 일 아닙니까? 상상을 초월한 일입니다. 기묘자라는 것은 기묘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묘한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말하시는 것입니다. 모사는 지혜의 근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핏덩어리 어린 아기를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여러분과 나를 지으시고 있게 해주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평강의 왕,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써 전쟁을 그치게 하고 싸움을 그치게 하고 평강을 가져오는 임금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어린 아기가 없었어요. 예수 이외에 이와 같은 이름을 갖고 태어난 이가 없었고 이것도 예수님 탄생 700여 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된 일인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사야 32장 2절의 말씀은 굉장한 위로가 됩니다.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광풍을 피하는 사람, 폭우를 가리우는 사람이 바로 그 어린 아기였다는 것입니다. 마른 땅에 냇물 같은 분이고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 같이 그림자가 이루어지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2. 예언의 성취
둘째로, 바로 예수님의 탄생은 예언된 것 뿐 아니라 그 성취가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막연히 상징적으로 예언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됨을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겠다고 했으니까 진짜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요셉하고 정혼을 했으나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속도위반을 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요사이 같으면 속도위반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때는 그런 것 했다가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들은 정결한 청년이요, 처녀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를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0절로 35절에 보면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상상으로 생각만 해도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마리아가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 배가 불러옵니다. 요셉이 가만히 보니까 큰일났습니다. 자기 약혼녀가 결혼도 하기 전에 배가 불러지니까 일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마리아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기를 원치 않아서 어찌하든지 조용히 마리아하고 헤어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사람들은 요셉보고 저 나쁜 놈의 자식 기다리지 못하고 속도위반을 해서 마리아를 잉태하게 만들었다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그 책임을 걸머지고라도 뒤로 물러가기로 작정을 하고 마리아하고 약혼을 파혼하기로 작정을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꿈에 천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로 25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참 요셉은 칭찬할만 합니다. 그의 약혼녀가 아무리 성령으로 잉태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얻을 모욕과 정죄의 시선을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몸서리칩니다. 그런데 밤에 꿈속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 사연을 설명하니까 두말하지 않고 그 천사의 말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은 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왈가왈부 말을 하고 이유를 대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수하게 따르는 사람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해할 수 없어도 무조건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믿고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리고 와서 마리아가 무사히 해산하도록 전력을 다하여 도와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로마의 황제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땅에 가서 호적하라고 했습니다. 등록을 하라.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다윗의 혈통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가 불러오는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그는 베들레헴으로 서서히 걸어갔습니다. 늦게 도착하니까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온 사람들이 다 미리 와서 여관을 다 점령하고 민가도 다 점령하고 올데갈데 없어요. 그런데 베들레헴에 도착하자마자 마리아는 해산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큰일났습니다. 급하니까 올데갈데 없으니까 짐승의 우리가 하나 비어 있어서 짐승의 우리에 들어가서 해산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양의 우리에서 태어나서 제일먼저 누인 곳이 양의 여물먹는 여물통에 누인 것입니다.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물통에 누인 것은 우리 모든 인류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구원 얻는다고 하신 것처럼 태어나서 제일 먼저 뉘인 곳이 밥그릇입니다. 짐승의 밥그릇에 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도 부드러운 자리에 드러눕지 못하시고 짐승의 여물통에 누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들판에서 양무리를 치고 들판에 양무리 사이에서 잠을 자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누가복음 2장 8절로 20절에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목자들만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한 것이 아니라 동방박사 세사람도 방문했습니다. 동방박사니까 그 당신에 오늘날 이란이나 이라크에 있는 박사인데 이 사람들은 베들레헴까지 오는데 몇 달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나타난 별은 벌써 몇 달전에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이끌어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쯤 되어서 그들이 유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헤롯궁을 찾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틀림없이 임금님의 궁전에서 태어나신 줄 알고 헤롯궁에 찾아가니까 헤롯이 놀래서 반역자가 태어날 것을 생각하고 이 사람들에게 만일 그 아기가 태어난 곳을 발견하거든 내게 말하면 나도 가서 경배하기를 원한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왕궁에서 나오니까 별들이 또 인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간곳이 짐승의 우리에서 말구유에 누워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들이 선물을 가져온 것을 드렸습니다.
유향과 황금과 몰약을 들렸었습니다. 황금은 임금을 상징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태어날 것을 상징한 것이고 유향은 선지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예언하는 선지자를 말하는 것이고 몰약은 쓰지 않습니까? 몰약은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재물이 될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미 주님께 드린 선물이 임금이요, 선지자요,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는 희생양으로써의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들의 꿈에 하나님 사자가 나타나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마라. 다른 길로 고향으로 가라.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서 빨리 이곳을 떠나라. 헤롯이 어린 아이의 생명을 찾는다.
그래서 어린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어린 아기를 어느 정도 길렀는데 그 세월은 얼마나 걸렸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하심을 성경이 말한 대로 알 수 있는 것은 기적적인 탄생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난 것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는 그 태어난 현장에서 예언대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목자들이 와서 경배한 것은 예수님이 목자장인 것입니다. 야훼는 우리의 목사시니 우리가 부족함이 없다고 목자장이기 때문에 목자의 부하들인 일반 목자들이 와서 절을 했고 그 다음 동방박사들이 와서 예수님의 생애를 예언적으로 이미 선물을 하신 것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어서 왕이요, 선지자요, 희생제물이 될 것을 예언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는 오늘날 우리의 구원과 희망의 빛으로 오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구원과 희망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첫째,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였지 않습니까? 아담, 하와를 통해서 우리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죽음을 가져온 조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조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로 온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혈통을 주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인류조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로 47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써 예수님 이후에는 인류 조상이 있을 수 없어요. 첫 아담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왔으나 마지막 아담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어 그리스도는 사람들 생명의 빛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마지막 아담으로써 우리 조상으로 왔는데 그를 믿는 자마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경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자기의 의로운 행동으로 구원 받으려고 하는 자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점은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걸머지고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병든 적도 없습니다. 저주받은 적도 없습니다. 죽을 필요가 없는 분인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재물이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몸찢고 피흘려서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기 위한 거대한 희생을 하시고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먼저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림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를 흘려서 그 핏값으로 우리 죄를 용서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우리 인류의 조상들에게 주님께서 재물을 드릴 때 그냥 드리지 말고 꼭 양을 잡아 피를 흘려 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장차 예수님이 우리의 희생제물로 오셔서 피를 흘려 우리 죄를 속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다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양을 잡아 피를 흘려 문설주에 바르고 난 다음에 나왔던 것입니다. 문설주에 피가 있는 집은 하나님이 멸하지 않고 그대로 다 나오게 했는데 문설주에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은 다 멸하고 만 것입니다. 그 피를 보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보혈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믿음으로 여러분 마음의 문설주에 피가 뿌려지고 그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는데 이 죄사함이라는 것은 그냥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 한번도 죄를 안 지은 것처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 마음속에 뿌려지면 한평생에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죄를 전혀 안 지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서 의롭다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피를 믿으면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으로 부끄럼없이 하나님 앞에 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므로 삶의 목적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모든 일이 끝나면 이 땅을 떠나서 우리는 천국에 가는 삶의 의미와 가치가 알려지고 죽음이 오지만 겁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은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십자가를 통해서 놀라운 것은 새생명을 받을 뿐 아니라 새생명의 보조인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셔서 성령이 온 증거로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당신 이 시간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라고 하면 이 사람 미쳤나?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렇게 하노? 구원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나는 요사이 텔레비를 보고 놀라운 것은 개를 가지고 이름을 붙여서 내가 너 엄마다. 내가 너 아빠다고 하는데 개하고 사람하고 어떻게 생명이 같습니까? 생명의 질이 다른데...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조금도 이질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 내 아버지의 그 자녀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나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마음에 이상하게 느껴집니까? 아니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5절로 16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하나님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증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는 성령이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다 그 속에 성령이 들어와 있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그 속에 마귀의 영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영이 들어와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끌고가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이 들어와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믿음, 소망, 사랑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 전인치료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 마음속에 쓴물이 가득합니다. 왜, 이 세상에 살면서 늘 쓴물을 마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악의 쓴물을 마시고 미움과 원한의 쓴물을 마시고 질병과 고통의 쓴물을 마시고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과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쓴물을 마시고 죽음의 공포와 좌절의 쓴물을 마십니다. 천지가 쓴물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쓴물이 가득하므로 불행합니다. 이 쓴물을 달게 해보려고 우리가 얼마나 애를 쓰는 것입니까? 지위, 명예, 권세, 돈, 교육, 아름다운 집, 좋은 옷,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마음속에 쓴물을 없애려고 하는데 쓴물이 없어지나요? 옛날에 우리가 자랄 때는 6.25사변 때이기 때문에 정말로 가난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밥먹고 산다는 것이 모든 삶의 가장 중심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여러분 보면은 뭐 노숙자가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러나 그때는 모두다 헐벗고 굶주렸는데 지금은 그래도 밥은 먹고 옷은 다 입고 그때보다는 훨씬 잘 삽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하고 비교해서 지금 훨씬 행복하냐. 훨씬 덜 행복하거든. 왜, 그때는 죽도록 살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날은 하루에 41사람이 자살합니다. 그중에 우리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41명이 자살합니다. 환경이 아무리 아릅답게 되어도 마음속에 쓴물이 달아지기 전에는 행복해지지 않아요. 돈이나 지위나 명예를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아도 마음에 그것이 행복을 갖다주지 않습니다. 행복은 무엇이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모실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쓴물이 달아지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으로 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영혼에 쓴물을 달게 하시고 마음에 행복을 갖다주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나가면 매일같이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쓴물을 달게 하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쓴물은 매일같이 달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밖에는 우리 마음에 쓴물을 달게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육신의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저가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실로 우리 질고를 지고 우리 슬픔을 당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법적으로 보면은 2천년 전에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병을 담당하셨어요. 이것은 법적인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아직 내가 병이 들었지만 법적으로는 이미 나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할까요? 법을 가지고 싸워야돼요. 여러분, 여러분 법적으로 여러분이 마땅한데 고소를 당하면 변호사를 사서 대응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주의 종에게 찾아가든지 다른 성도들과 합쳐서 병의 원수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네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내가 네게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라고 했었습니다. 단호한 결심을 해야 돼요. 병 안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병이 듭니다. 병이 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병을 이기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서는 이기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병을 짊어지고 갔기 때문에 병하고 매일같이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병을 극복해야 돼요. 오늘도 여러분 교회왔으니 예수 이름으로 병을 극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혼의 쓴 물도 달게 해주시고 육체의 질병에서도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을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우리 육신의 조상 아담은 타락해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죽게 만들고 육신적으로 병들어서 죽게 만들고 환경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 속에 뒹굴게 만들었는데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오셔서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 병을 대신 짊어지고 그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에게 전인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 안에 소망 있네. 영원한 영적인 치료와 육신적인 건강과 환경에 가시넝쿨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하여 아브라함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우리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의 복이 뭡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새해에는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며 번창케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충만을 항상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음부와 지옥을 멸하신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에서 천국 낙원으로 여러분을 가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께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천국 올라가셔서 2천년 동안 천국에 올라오는 당신의 자녀들의 거처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과 나의 거처도 주님이 예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을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함께 이미 승천해서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있는 우리 처지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놀라운 하나님 말씀대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의 새로운 모습을 마음속에 확실히 바라보고 믿음으로 타협하지 않고 나가면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깨달아 알고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나가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앙에 승리하려면 목표가 분명해야 돼요. 나는 예수님 안에서 결코 이기겠다. 목표가 분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겨도 좋고 안 이겨도 좋다. 이길는지 안 이길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나는 승리하는 삶을 살겠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겠다.
목표가 분명하고 꿈이 선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죄악과 마귀와 질병과 저주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을 마음속에 상상하고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불퇴전의 믿음을 가져야 돼요.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절대로 물러가지 말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입술의 고백을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당당한 입술의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 것이 되고 마귀가 다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희미한 신앙은 안됩니다. 싸움은 치열한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데 희미하게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싸움은 너죽지 너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에 영원히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목표가 뚜렷하고 꿈을 확실히 가지고 물러가지 않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시인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보통 싸움 같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왜 십자가를 걸머졌어요? 십자가가 여러분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6시간 매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그 고통 가운데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과 대항해서 싸우는데 그만한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애쓰고 힘써서 싸워야 주님이 우리를 구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워서 이겨놓은 것도 우리가 취하기 위해서는 그런 결심이 있어야 돼요. 새해에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다는 목적을 꼭 가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새롭게 된 모습을 항상 마음속에 상상 하십시오. 늘 꿈꾸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한발자국 물러가면 두발자국 전진하고 두발자국 물러가면 세발자국 전진하더라도 물러가면 안됩니다. 물러가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강하고 담대하고 용감하게 말하십시오. 할 수 있다고 말하십시오. 이긴다고 말하십시오. 나는 안 죽는다고 말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십시오.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패배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을 통해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떠나서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필요하고 여러분과 함께 주님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무효가 되지 말고 효과를 발생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솔제니친이라 하면 여러분 위대한 문학가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탄분으로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솔제니친은 구 소련의 작가로서 당시의 체제를 비판하다가 반역자로 몰려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감옥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강제 노역을 당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고통 가운데 암에 걸렸습니다. 춥고 헐벗고 굶주리고 배고프고 중노동을 하는데 암이 걸렸으니 이제는 죽은 목숨인 것입니다. 그는 좌절 가운데 정신력이 희미해지고 삶의 의지를 상실하고 탈진하여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허수아비가 되었습니다. 눈도 희미하고 정신도 아물아물하고 말도 더듬고 걸음도 잘못걸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철창을 이렇게 잡고 있는데 어떠한 사람이 앞에 오더니만 자기를 가만히 눈을 맞춰 보거든요. 보더니만 발로써 그리는데 보니 십자가를 크게 하나 그려요. 그려놓고 난 다음 손으로 십자가를 가르키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지나가버립니다. 말을 한마디도 안했어요. 솔제니친이 철창 밖에서 하는 그것을 보고 꿈인지 생시인지 그 사람이 천사인지 사람인지 구별을 못했습니다. 그 사람이 지나고 난 다음 발로써 그리던 그 자리에 십자가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십자가를 통해서 큰 생기가 그 몸속에 들어왔습니다. 좌절하고 절망했던 마음속에 용기와 희망이 생기고 살 수 있다. 살아가야 되겠다는 힘이 생기고 암을 이길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간수에게 부탁을 해서 성경을 하나 갖다달라고 해서 성경책을 넣어주기 때문에 그는 그때로부터 주야로 성경을 읽고 성경 가운데서 용기와 희망을 얻고 난 다음에 8년 동안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얻게 되고 암이 깨끗이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우리에게 갖다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 있는 말씀대로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죽음 내 죽음으로 받아들이면 예수 생명 내 생명으로 부활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미국으로 추방당했는데 미국에서 추방되어서 그가 시문학 활동을 했고 그 문화 활동중에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책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탔었습니다. “러시아의 양심”으로 오늘날도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곤비하고 참담한 땅에서 고통 받을지라도 십자가를 생각하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새 생명을 얻으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얻고 육체의 질병에서 치료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각오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 다 잃어버려도 보배인 성경 하나 가지고 있으면 사지에서 다시 부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인간이 황무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을 받아들인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긍정적인 고백만 있으면 하나님이 그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하나님은 변역치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우리 육신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우리 인생을 망쳐 놓은 것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 왔노라. 풍성한 기쁨, 풍성한 평안, 풍성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2천년 전 크리스마스에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여러분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행위로써 얻는 대가가 아닙니다. 구원이신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내 손녀와 손자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지고 왔어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갖다주는데 받으니까 기분이 참 좋더라구요. 대가를 좀 줄까하다가 안줬습니다. 왜냐하면 선물은 대가를 주면 안되기 때문에... 선물은 선물로 받아야 되므로 공짜로 받았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구원은 대가를 통해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대가없이 무조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그 아들 예수님을 주셨고 그 아들 예수가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영광이요 승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원받고 난 다음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변화와 성장은 구원을 받고 난 후에 시작되는 것인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로 오신 것을 기억하고 찬양해야 될 날인 것입니다. 이날보다 즐거운 날이 사실 없어요. 사람들은 모두다 죄와 정죄감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죄없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조용한 시간에 자기 마음속에 죄책이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삶이 허무하고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됩니다. 그러한 헛된 생활 속에서 고통 당하고 죽지요. 안 죽는 것같이 생각하지만 죽는 공포도 있고 죽음의 괴로움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자가 왔으니 얼마나 큰 선물이요 위대한 은혜인 것입니까? 죄에서 건져 주시고 허무와 무의미에서 건져 주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영원한 희망으로 우리 앞날을 비춰주시는 주님이 여러분의 구주로 오늘 오셔서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볼찌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이 자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