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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1~8)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를 해본 사람은 응답이 속히 오지 않아서 낙심한 적이 한두번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얼마 동안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치 말고 끈기 있게 버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지난 오십여 년의 목회생활 동안 수많은 사람과 신앙상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대개 이렇습니다.“우리 가족은 주일성수를 꼭하고 십일조도 하나님께 바치는데 왜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안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또 혹은“저는 몇 년 째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은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어떤 분은“저는 병 낫기를 위해 늘 기도하는데 왜 병이 낫지 않습니까? 무엇 내가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무엇을 회개해야 됩니까?” 그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노력하고 기도하는데 속히 응답되지 않아서 낙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한번도 기도생활에 낙심 안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몇 년 전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 성도들의 하루 기도 시간이 평균 24분 25초라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평균 기도 시간이 27분이었는데, 점점 기도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E. M. 바운즈는「기도의 능력」이라는 책에서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마귀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마귀는 기도가 빠진 성경 공부, 기도가 없는 봉사 등 기도가 없는 종교는 하나도 겁내지 않습니다. 마귀는 오직 우리가 기도할 때 두려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속히 오지 않는다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찌하든지 응답될 때까지 인내하며 고집을 부리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1. 과부의 호소


오늘 읽은 성경말씀을 보면 첫째로, 과부의 호소가 있습니다.


이 성경에 기록한 과부는 아무도 도와줄 자가 없어요. 남편 세상 뜨고 일가친척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그 억울함을 풀 수가 없어요. 마음에 원한이 되었습니다. 그냥 한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원한이 되어서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도시에 그 과부는 재판관에게 나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갚아 주십시오.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재판관이 속으로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네가 누구기에 나보고 와서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느냐? 네가 무슨 지위나 명예나 권세가 있느냐? 배경이 있느냐 돈이 있느냐 교육이 있느냐.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내가 무엇 때문에 너 위해서 애를 쓸 필요가 있느냐. 그래서 재판관은 이 여인의 간구를 무시해버렸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너무나 이 원수가 힘겨웠습니다. 여러분 우리로 이럴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사람이 아니고 그 배후에 있는 마귀인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 악의 영들이 사람 뒤 배후에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사람 배후에 마귀가 조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인 이상 예수님 안에 있지 아니하면 언제든지 마귀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통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배후에 있는 원수 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내어 쫓고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귀가 우리 기도를 막습니다. 내 기도를 못하도록 막을 뿐 아니라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귀는 아주 인내력이 강한 놈입니다. 우리는 마귀와 싸울 때 마귀보다 더 굳센 결심을 가지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말한 것은 원한 맺힌 과부의 소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한이라는 것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소원이 아닙니다.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원한이 좋게 포기되지 않는 소원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음에 그런 원한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생각으로 응답해 주셔도 좋고 안해주셔도 좋고 어쩌다가 응답해주면 다행이고 안해주면 그뿐이고... 이러한 속마음이 있으면 마귀가 절대로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원한이란 마음을 콱 굳게 먹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사무엘상 1장 10절로 12절에 한나라는 여인의 간절한 기도와 간구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한나는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아내로써 오랫동안 아기를 낳지 못하자 이 엘가나는 브낫나라는 첩을 구해가지고서 곧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한나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천대했던지 한이 사무쳤습니다. 그냥 소원이 아닙니다. 한에 사무쳐서 성전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너무 한에 마음이 꽉 들어찼기 때문에 말이 안나와서 입만 들썩 거립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되어야 말이 나오지 너무 답답하면 말이 탁 막혀서 말이 안나옵니다. 엘리 제사장이 가만히 보니까 여자가 와서 입만 덜썩덜썩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여자여, 왜 대낮부터 술을 먹고 와가지고서 하나님 성전에서 추태를 부리느냐. 술 끊어라. 그러니까 한나가 하는 말이 제사장님, 내가 술이 취해서 와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원한이 사무쳐서 마음에 원한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내게 아들 하나를 주시면 그 아들의 머리에 삭두를 대지 않고 헌신해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기도 좀 해주십시오. 그러니 제사장이 안심하고 가라! 여러분 제사장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축복을 하나님 대신하면 그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사람들도 복을 빌면 그 복이 임합니다. 저주하면 저주가 앞길을 막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국가에서는 복을 비는 것이 항상 습관이 되어서 사람만 만나면 “GOD bless you!” 하나님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또 헤어질 때도 “GOD bless you!”하나님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꼭 축복을 빕니다. 저도 제일 처음 해외에 부흥회를 나갔을 때 날 만나는 사람마다 날 보고 “GOD bless you!” 지가 날 언제 안다고 날보고 자꾸 복을 빈다고 그러냐. 보니까 기독교 전통에서 하나님이 복을 빌도록 우리에게 명령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모두다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외국인 만나면 꼭 “GOD bless you!”하나님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한국 사람에게는 전통과 문화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못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잘 가십시오 그렇게 말하지 하나님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그렇게 말 안하게 되니 죄송한 일입니다.


여러분 더구나 주의 종이 축복을 하면 복이 임하고 주의 종이 저주하면 저주가 임합니다. 이 엘리 제사장은 신령한 제사장이 아닙니다. 좀 기도도 안하고 좀 영이 무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분이 한나에게 편안히 가라. 안심하고 가라. 그 말을 듣자 한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얼굴을 씻고 눈물을 닦고 몸을 단장하고 음식을 먹고 기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어린 아기를 낳았는데 아들인 그 유명한 선지자 사무엘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에는 보면 내가 너 말을 듣고 네가 말한대로 시행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원한 맺힌 기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 기도, 이러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십니다. 이 재판관도 이 여자가 돈도 없고 교육도 없고 빽도 없고 집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빈손든 여자인줄 알고 무시했으나 한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원한에 사무쳐서 밤낮으로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아침에도 점심때도 저녁때도 이 여자가 부르짖으니 처음에는 무시했으나 나중에는 그 여자만 보면 간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아이구 또 왔구나. 나중에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 여자를 위해서 정의로운 판단을 해주겠다는 소원, 정의감으로 해준 것이 아니라 밤낮 와서 부르짖으니 견딜 수가 없어서 응답해 주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이 아주 막감당하게 호소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불가능하게 보이는 호소


불가능하게 보이는 호소, 이 호소를 무지막지한 재판관도 나중에는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2절에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기가 막힌 여인의 호소에 항복하고 만 것입니다. 기도가 기막히게 힘든 상황에서도 절망적인 부르짖음으로 나가면 얼마동안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반드시 그는 흑암의 세력을 뚫고 담을 넘어 응답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에 보면은 이 과부의 기도에 얼마동안 듣지 아니했다고 말했습니다. 재판관이 얼마동안 안들었으나 영 오랫동안 안 들을 수가 없어요. 견딜 수가 없어요. 왜 이여자가 죽든 살든 뒤로 안물러가니까. 응답받기 전에는 뒤로 물러가지 않겠다는 마음의 각오와 결심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크게 축복을 받고 성도들이 큰 기적을 체험한 것은 뒤로 물러가지 않는 억척같은 기도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외국에 새벽기도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있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새벽기도가 없습니다. 억척같은 기도를 안하고 늦잠자기 때문에... 철야기도 좀처럼 안하지요. 더구나 외국에 가면 기도원이 없습니다. 기도원이라는 것은 산간벽지에 기도처소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올라가서 부르짖고 기도하는데 그런 곳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은 새벽기도, 철야기도, 기도원 기도가 있어 사람들이 억척같이 하나님께 나가서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응답해 주시고 마귀도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억척같은 기도에 그 호소에 이기지 못하고 두손을 들고 항복하고 만 것입니다. 얼마동안 응답 안해도 그것이 응답 안한다는 조건은 아닙니다. 마귀의 저항이 있어 믿음의 시험 기간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 다니엘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간절히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를 첫날 할 때 응답을 했습니다. 다니엘이 첫날 기도할 때 기도가 이미 응답 되었으나 21일 동안 기도가 나타나지 않았었어요. 그 성경에 보니 내부사항을 보니까 다니엘이 기도할 때 첫날에 기도가 상달되어서 천사에게 응답을 시켜서 보냈으나 21일 동안 마귀하고 공중에서 대치해서 밀고 당기고 했어요. 마귀가 기도를 21일 동안 막을 수가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계속 부르짖어 기도하고 낙심치 않고 뒤로 물러가지 않으니까 나중에 마귀의 진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한번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여리고성이 매일 한바퀴씩 돌고 제7일에는 일곱바퀴를 돌고 난 다음에 부르짖으니까 무너진 것처럼 여러분 기도를 한번에 해서 응답 안받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즉시 들으시지만 원수 마귀가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병자위한 기도를 많이 할 때 그날 즉시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날에 하나님께 몇시간이고 엎드려 기도를 미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리 마귀를 붙잡아 놓고 매어 놓고 그리고 와서 병자위한 기도하면 병자들이 척척 낫는데 그날 즉석해 병자위한 기도해서 좀처럼 병이 낫지 않습니다. 마귀가 막으니까. 기도를 막으니까 기도가 가다가 마귀의 저항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다니엘서 10장 12절로 14절을 굉장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21일 동안 바사 나라를 지배하는 배후에 귀신 원수 마귀가 막고 있었으므로 그가 계속해서 다니엘이 기도하니 하나님이 응원군인 미가엘은 군대장관입니다. 하늘이 군대장관 미가엘을 보내어서 협조해서 마귀의 진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어찌하든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주신 공로가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의 능력이 막강한 우군이 되어서 우리가 기도할 때 주의 보혈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마귀의 진이 허물어 지는 것입니다. 에수님의 이름과 보혈이 아니고는 그냥 기도해서는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귀와 싸워서 마귀의 진을 훼파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지 않습니까? 마귀의 진을 다 멸한 것입니다.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빼앗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께 의지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결심하고 나가서 기도하면 마귀의 진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실 때 왜 하나님이 나를 무시하시느냐. 왜 응답 안하시느냐? 왜 하나님이 나를 못본체 하느냐. 그렇게 생각할 때 많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자꾸 말을 해요. 너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은 너를 무시한다. 멸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여러분의 기도를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한번 해보자. 예수의 이름과 보혈을 의지하고 나가는 이상 우리가 반드시 이깁니다.


시간은 걸릴 수 있습니다. 일주일이 걸릴 수도 있고 20일이 걸릴 수도 있고 한달이 걸릴 수도 있고 1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에서 낫기 위해서 저에게 안수 기도를 받으러 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기도하고 낫는 분들의 공통된 점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병들어서 온 사람이 기도 받아서 병이 나으면 좋고, 안 낳으면 할 수 없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면 절대 병이 낫지 않아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음을 가지면 병이 낫지 않아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나는 더 이상 이 병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 더 이상은 이런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의 결단으로 원한을 가지고 병낫기 위해서 오는 분들은 안수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조금 덜 한 것 같지만, 예전부터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너무 시끄럽게 기도한다고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우리 교회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만 단체를 지어서 온 것 같았습니다. 우리교회는 전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모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면 배부른 사람 조용히 기도하듯이 하지 않고 너무 답답하니까 얼마나 고함을 치는지 몸부림을 치고 야단법석을 했었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 종종 좀 조용해 주십시오 하는 것은 설교를 하는데도 그냥 막 고함을 치고 기도를 하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런 기도를 했기 때문에 우리 기도가 장성하고 우리 교회가 커지고 많은 기사와 이적이 교회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성도들이 통성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 박수치고 찬송을 불렀는데 그때도 비난 많이 했어요. 교회가 거룩한 곳에 고함을 치고 기도하고 박수를 치고 요란하게 세상에서 놀이하는 것처럼 한다고... 제가 그때 말리지 않은 것은 얼마나 속이 답답한데 와서 부르짖고 기도하고 난 다음 박수라도 실컷쳐야 마음에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보고 야~ 한걸음 우리 성도들이 더 나갔구나 이제는 박수만 치는 것이 아니라 춤을 막 추어요. 막 춤을 추어요. 그래서 요사이 무대에서 노래할 때 그냥 가수들이 노래하는 법 별로 없잖아요. 전부 몸을 움직이고 춤을 추는데 우리 교회도 저렇게 해서라도 마음에 스트레스가 풀리면 좋지 않으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스트레스를 갖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에 짓눌리고 살면은 불행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슬픔은 뼈로 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절망을 가지고 살면 사망의 세력에 붙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몸부림치고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죽더라도 나는 더 이상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겠다. 나는 기어코 이 가난에서 이 좌절과 절망에서 이 질병에서 놓여남을 받겠다. 비장한 각오와 결심을 하고 한서린 마음으로 부르짖으면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귀가 막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이 여인을 아무리 무시해도 밤낮으로 부르짖으니까 감당을 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그와 같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나가서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Amazing Grace”,“나 같은 죄인 살리신”으로 유명한 존 뉴톤은 50세까지 예수를 믿지 않는 노예 선장이었습니다.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 잡아 가지고서 미국에 가서 파는 노예 선장이니 흉악합니다. 술먹고 도박하고 사람치고 노예 잡고 비참한 일을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노예를 실고 대서양을 건너가다가 큰 풍파를 만났습니다. 배가 침몰하게 되니까 예수님께 부르짖기 시작한 것입니다. 등따수고 배부를 때는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풍랑이 일어나고 고난 다가오니까 예수님을 찾았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좋을 때 예수님을 못찾으면 큰 시련과 환란을 당해서라도 찾으면 좋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가 좋을 때는 나를 안찾더니 어려울 때 나를 찾느냐. 두고 보아라. 용용 죽겠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고난 당할때라도 주님을 부르짖으면 주님은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존 뉴톤은 태평양 한 가운데서 대서양 한가운데서 큰 파도 속에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난 다음에 마음에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어서 그 감격으로 지은 노래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라는 이 노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그에게 나오게 될 때까지 뒤에서 기도해준 것은 어머니와 아내였습니다. 그 어머니와 아내가 예수를 믿고 기도한 기간은 3일도 아닙니다. 3주간도 아닙니다. 석달도 아닙니다. 30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30년 동안 요사이 그런 아내 좀처럼 없습니다. 30년 동안 집을 돌보지 않고 배만 타고 돌아다니며 방탕한 생활을 하면 요사이는 벌써 이혼하고 도망쳤을 것입니다. 30년 동안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 어머니는 30년 동안 그 아들의 구원을 위해서 며느리하고 합쳐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대서양에서 풍파를 만나게 하여서 회개시킨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풍랑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풍랑을 통해야 우리가 깨어지는 것이니까. 마귀는 주로 풍랑을 주지만 어떤 때는 지옥에 보내려고 풍랑을 안줄 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결국에는 해를 받지 않습니다. 주께서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가 날개로써 여러분을 덮어 주시고 그가 진실하고 거짓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를 의지하면 우리는 밤에 놀랠 일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물러나지 마십시오. 성경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기도를 그냥 놀이삼아 하지 말고 원한서린 기도를 하십시오. 대단히 답답한 마음으로 피맺힌 소원을 가지고 원한으로 기도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밤낮 부르짖는 원한의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 안하시겠느냐. 응답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의 친한 친구인 한기총 회장인 길자연 목사님은 아버님의 병이 너무나 위중해서 결국 장례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장례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히스기야 왕의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 통곡하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서 15년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는 그 말이 기억이 나서 장례준비를 그만 두고 무조건 도봉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에서 길자연 목사님은 담요 한 장을 덮어쓰고 바위 위에 앉아서 비를 맞으며 간절히 원한에 맺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으니 우리 아버지도 생명을 15년만 연장해 주옵소서.” 야~ 참 효성스러운 아들입니다. 아버지 위해서 담요 한 장 덮어 쓰고 응답받을 때까지 도봉산 그 바위 위에 앉아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그런 아들은 효성스러운 아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길자연 목사님을 크게 축복해 주셔서 큰 교회의 목회자요, 한기총 회장까지 되시게 한 것입니다. 바위를 붙잡고 부르짖어 그는 계속해서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외롭게 앉아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아직까지도 마음에 응답이 안와서 다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2주일을 하나님께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15일째 되는 날 그는 마음에 넘치는 평안이 오고 하나님이 나았다는 레마를 주시는 것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내려왔는데 장례준비를 해야할 정도로 위중하던 아버님이 완쾌되어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아버님은 길자연 목사님이 기도한 대로 15년 연장을 받으셔서 정확히 15년 3개월을 더 사시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얼마나 정확하게 응답해 주셨습니까? 우리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님께서“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러한 믿음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꿈을 가지고 간절히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길자연 목사님이 일주일 기도해서 응답 안한다고 그만 담요 말고 도봉산에서 내려왔다면 아버님은 세상 떴겠지요. 2주일 동안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응답했는지 안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면 어느날 갑자기 마음 속에 큰 평안이 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오면서 고요하고 잠잠한 성령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네 기도가 응답받았다. 네 소원이 성취되었다. 그런 레마가 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많이 체험합니다. 집에서 많이 기도하고 적어도 5시간 이상 엎드려 기도하고 난 다음에 집회 나가서 설교하고 병자위해 기도하면 마음에 큰 기쁨과 평안과 함께 레마가 다가옵니다. 사람들이 왜 어떻게 알고 무슨 병이 나았다. 병이 나았다고 말을 하느냐. 어떻게 나았는지는 나도 몰라요. 마음 속에 그 깨달음이 오거든요. 아주 확신이 오고 깨달음이 오기 때문에 그런 담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런 병자가 낫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실 때 마음에 평안이 오고 고요하고 잠잠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부르짖으십시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레마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끝까지 참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3. 응답받는 기도


셋째로, 응답받는 기도를 할 때는 목표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과부가 기도할 때 불의한 재판관이 와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내 원수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내 원수지 그냥 왔다갔다 하는 불쾌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내 원수에 대해서 나는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목표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니까 예수님께서 바디매오 앞에 서서 내가 네게 무엇해주기를 원하느냐? 분명한 목표를 물으셨습니다. 그때 맹인이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목표를 분명히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곧 보게 되어 예수를 따랐다고 말한 것입니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한서린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막연한 기도를 하지 마십시오. 기도가 정확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글에 적는 것이 참 좋습니다. 저는 명확한 기도를 하려고 할 때 언제나 종이에 적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1,2, 3. 명확히 적고 그것이 이루어진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기도에 훨씬 힘이 있습니다. 막연하게 이런 말 저런말 주섬주섬 주워서 좌왕우왕 하면서 기도를 하면 기도에 힘이 없어요.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이 과부의 기도와 같이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서 구체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번거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번거롭게 하느냐. 자주자주 부르짖고 간구하는 기도 즉, 집중적인 호소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두번 하다가 그만 두면 안되는 것입니다. 아주 번거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애들이 선물 사달라고 할 때 한두번 엄마 선물 사줘. 안돼! 지금 돈 없어. 참아 기다려! 그렇게 하면 애가 알았습니다 하고 가버리면 그는 선물 다시는 못받아요. 어머니에게 핀잔을 먹으면서도 부엌에도 따라가고 안방에도 따라가고 건너방에도 따라가고 엄마 계속 사달라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 엄마가 안사줄 수가 없어요. 엄마를 번거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에 번거로움을 느낄 정도로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기도원기도 등 이러한 것이 번거롭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4절로 5절에 보면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번거로움과 괴로움 때문에 이 재판관이 과부의 호소를 들어줬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의 기도가 번거로울 정도로 하나님이 아이 괴로워서 더 이상 못견디겠다 하실 정도로 억지를 부리면서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억지를 부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저도 내 제자들이 저에게 도움을 청하러 올 때 착한 제자들이 아무것도 못보고 가요. 와 가지고서 저에게 목사님, 개척교회 하는데 돈이 얼마 필요하고 땅을 사고 집을 사고 지금은 내가 은퇴했으니까 그런 걱정 안하지만 내가 실제 일할 때는 교회는 크지요. 속으로는 돈이 별로 많지 않아도 제자들 생각하기에는 돈을 쌓아놓고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그래서 와서 도와달라고 할 때 내가 여보시오 우리 교회도 쓸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돈이 없으니 안됩니다 하면 목사님 안도와주면 나는 안떠나겠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가라니까! 나는 못가요.


앉아가지고서 고집을 부리면 굉장히 속으로 미워요. 저놈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히냐. 가라니까! 나중에 내가 전화로 연락할테니까 좀 가라니까. 전화 연락 안올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억지를 부리면 할 수 없이 원하는대로 못도와 주더라도 얼마는 도와주고 안되면 약속 종이에 적어서 싸인을 해서라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착한 제자는 와서 요사이 우리 교회 재정도 좋지 않고 어려움이 많으니까 안되니까 나중에 보자 하면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가는데 가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기다리기는 뭘 기다려... 우리 제자들이 이 방송 듣고서 그랬구나! 그렇게 오해를 하지 마시고 여러분도 교회가 커지면 나와 같은 고통을 당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로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가 기도를 계속 하라고 하냐면 밤중에 친구가 왔는데 먹을 것이 없어요. 떡 세덩어리는 있어야 되겠는데... 그런데 벌써 시간이 밤중이라 하니까 12시에서 밤 1시, 2시쯤 되는가 봅니다. 이웃집은 떡이 있고 부자인데 자기집은 떡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 이웃에 있는 친구인데 내 친구가 밤중에 왔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떡 세덩이만 빌려 주십시오. 그러니까 나는 애들과 함께 일 다 끝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으니 내일 아침에 오세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줄테니까...


그러나 지금 친구가 못먹어 굶주려 있는데 지금 떡을 좀 주세요. 못 줘요 나는 자는데... 안돼요.. 그러니까 지금 주세요. 돌아가라니까! 떡 세덩어리만 주세요. 떡떡떡떡.... 아이구 잠이 다 날라가 버리고 애들도 잠에서 다 깨고 이것 떡을 안주었다가는 밤새도록 떡떡해서 절단강산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로 말미암아 떡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서 혀를 차면서 떡 세덩어리를 가지고 당신이 이웃 친구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워서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 떡을 주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성경 읽을테니까 들어 보세요.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청해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이렇게 불의한 재판관에 나온 과부의 이야기, 밤중에 온 친구를 위해서 떡 세덩이를 구하는 사람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했을까요? 우리 기도가 인내력이 있고 간청으로 억지를 부리면서 물러가지 않는 기도를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로 18절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오는데 비가 오도록 기도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엎드려서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기도가 간절했던지 배 창자가 오그라들어서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앉아 기도하면 배창자가 당길 이유 없어요. 여러분도 배장차 당기는 기도 해본적 있지요? 막 부르짖으면 배창자가 당겨서 허리가 자꾸 구부러져 가지고서 다리 사이로 머리가 들어갑니다. 얼마전에 내 사랑하는 제자 한 사람이 목사님 젊을 때는 어깨가 빡 펴서 똑바랐는데 요사이는 왜 구부정합니까? 그래서 너 때문에 내가 기도를 많이 해가지고서 허리가 굽어졌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을 했는데 실제로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허리가 구부러지고 머리가 두다리 사이로 들어가요.


엘리야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 제자보고 산 위에 올라가서 무슨 증상이 일어나는가 보라. 한번 올라갔다 내려와서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또 올라갔다 와서 보라. 또 올라갔다 내려와서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일곱 번까지라도 올라가라! 그래서 일곱 번째 내려오더니만 손바닥 만한 구름이 떴습니다. 되었다. 이제 하나님 응답이 온다. 큰 비의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한번 기도해서 엘리야 같은 사람이 응답 안받는다고 포기 안했습니다. 배 창자가 당겨서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갈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한 것을 계속해서 그 제자보고 일곱 번이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정상에 올라가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기도해서 안되거든 일곱 번 기도하십시오. 여리고성을 한번 돌아서 안되거든 일곱 번 도십시오. 계속해서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받습니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묵상하는 것도 좋고 고요한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최 결과로 좋습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부르짖어서 온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조용한 말로 기도하고 차타고 갈 때도 마음으로 생각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 여러분 답답한 일을 당해서 새벽기도, 철야기도, 기도원 기도 나갔을 때는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목이 콱 메이도록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주 여유가 있으면 목이 메이도록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마귀가 와서 너는 기도할 자격이 없다고 자꾸 말하는 것입니다. 너 같이 죄많은 놈이 기도한다고 응답 받느냐. 너 구원은 받았지만 형편없는 놈이 기도한다고 응답하겠느냐. 그렇게 자꾸 낙심을 주는 것입니다. 저도 요사이 기도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은 옛날과 다름없이 마귀가 와서 너 기도 하나님이 응답 안한다. 너가 하나님이 원하는만큼 충성스럽게 살았느냐. 올바르게 살았느냐. 하나님 보시기에 너는 죄가 많고 허물이 많은 사람인데 기도 응답 안된다. 하나님이 죄인의 기도는 응답 안해준다. 자꾸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해야 돼요. 마음에 담대하게 나가야 돼요.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죄와 허물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죄와 허물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죽으시면서 여러분의 죄와 허물을 영원히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하면 죄를 한번도 안지은 것처럼 허물이 한방울도 없는 것처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아무리 장난을 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을 의지하고 나가면 가슴펴고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아멘! 할렐루야~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주 못났을 때 사랑해서 구원해 주었는데 이제 구원받아서 교회까지 나오는 여러분 얼마나 더 사랑하겠습니까? 여러분 너무나 훌륭하고 잘나서 예수님이 여러분을 구원한 것 아닙니다. 죄 가운데 있을 때 세속에 빠져 있을 때 마귀의 종이 되어 있을 때 그때 사랑해서 여러분을 건져주신 예수님이 이제는 주님께 나와서 구원받아 중생하여 성령의 전이 되어 있고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을 얼마나 더 사랑하시겠습니까?


이사야 43장 1절과 4절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속한 것 아닙니다. 내가 너를 지명해서 불렀고 너는 내 것이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였은즉 여러분 주님 앞에 여러분 여간 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격지심에 빠지지 마시고 마귀의 참소에 겁을 집어먹지 마십시오.


요한복음 15장 16절에도 예수님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마귀가 참소를 하더라도 예수님이 나를 택했고 예수님이 나를 불러서 내게 열매맺기를 원하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응답 안해줄 리가 없으니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닙니다. 나쁜 재판관이 아닙니다.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간절한 호소에 나중에 항복하고 응답해 주었는데 하물며 좋은 하나님, 여러분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어찌 성도의 기도를 안들어 주겠습니까? 오래 참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누가복음 18장 6절로 8절에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런 것을 안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해서 부르셨고 응답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믿는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 의심을 가지고 불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응답이 안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큰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나 같은 인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므로 열매 맺는 것이 정상적이고 기도응답으로 열매 못맺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응답받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응답받기 위해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끈질기게 믿고 인내하며 문제가 해결되고 원한은 풀어 주신다고 입으로 시인하며 담대하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희망찬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응답은 온다.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분 그런 꿈과 희망을 믿으십시오. 믿음이라는 것은 현재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는 것입니다. 지금 환경을 바라보면 도저히 그런 것이 없습니다. 환경은 비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고 도저히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믿으십시오. 아브라함은 믿음의 용사인 것입니다. 백살이 되었을 때 아들 낳을 것을 믿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은 85살에 받았으나 15년을 기다린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가 90이 되었다고 아브라함이 아들 낳았는데 나도 낳을 것입니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거든요. 여러분도 말씀을 받았으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말씀이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지요.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이면 그 말씀을 따라서 믿으셨으면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믿고 입술로 자기를 스스로 격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격려해 주지 않아도 자기가 자기를 격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면 된다. 나는 해보자.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난다. 자꾸 긍정적인 입으로 시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인할 때 희망찬 꿈은 더 찬란해지고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확신은 더욱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의 말로 묶이고 입술의 말로 사로잡힙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면 그 열매를 반드시 먹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반드시 응답받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5천명 남녀 어린아이 합쳐서 기만명이 왔을 때 주님은 어떻게 할 줄 알고 계셨습니다. 이미 다 마음에 알고 계시면서 빌립을 시험했습니다. 빌립아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빌립이 과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희망찬 꿈을 갖고 있느냐. 빌립이 믿느냐. 믿는다고 시인하느냐. 시험을 쳐 보았습니다. 빌립이 시험에 낙제했으니 빌립은 못 먹였어요. 그러나 열 두 제자 중에서 조금 아이큐가 모자란 안드레는 그 옆에 듣고 있다가 아~ 주님이 먹이라고 하니까 못 먹일 것 없다. 그는 인간생활은 사람의 힘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 주님이 오시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많은 사람이 먹고 기뻐할 것을 꿈꾸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니면서 누가 먹을 것 있어요? 먹을 것 있어요? 찾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예수님 병고치고 기적이 행하는 것을 본다고 정신이 없어서 어머니가 도시락 싸준 것을 잊어 버리고 점심 안먹었다가 혼자 먹는다고 하는 것을 안드레가 가서 덥쳤습니다. 야, 너 혼자 먹지 말고 주님께 드리면 주님이 이것을 축복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가 있다. 빌립은 안드레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휴~ 평소에도 아이큐가 모지라더니만 이렇게 모지랄 줄 몰랐다. 몇만명이 모였는데 여기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먹인다고? 안드레는 예수님을 생각했으나 빌립은 예수님을 계산에 안넣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매일같이 계산하지 않아요.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계산에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희망찬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계산에 넣었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희망찬 꿈을 가지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이 많은 사람에게 이것 가지고 무엇이 되겠습니까만은 이것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빌립도 물리치고 안드레와 함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축사하니까 떼어주니 열두바구니 남는 부스러기를 거둘 정도로 다 배불리 먹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응답을 알고 계세요. 해답을 알고 계세요. 그러나 빌립과 같이 시험에 낙제하면 안돼요. 안드레와 같이 시험에 낙제하지 말아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나에게 좋은 하나님으로 응답해 준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돼요. 응답받아 기적이 일어날 꿈을 가져야 돼요. 그리고 믿어야 돼요. 입술로써 자기를 자꾸 격려해야 돼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기적이 일어난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합동하여 유익이 일어난다. 그렇게 하면 시험에 합격이 되고 그를 통해서 기도하면 마귀도 물러가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일들이 기도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믿음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성경에 말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가만히 있는데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자녀가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면 뱀을 줄 부모가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좋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다 응답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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