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습니다. 


저 유명한 인도의 정신적, 민족적 지도자였던 간디는 독실한 예수 숭배자이면서도 정작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숭배하면서 왜 교인이 되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그는 그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습니다."

그가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 중에 안두루스라고 하는 영국 선교사가 있었는데 간디는 그와 인간적으로 매우 친했습니다. 그에게 전도를 받고, 설교도 듣고, 성경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드디어 간디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문지기는 그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그를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 이후로 간디는 예수를 숭배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교회는 절대로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하여 교회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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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 

 

어떤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찬송하고 기도하며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았다. 그는 어느 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빨리 천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그러자 천사가 나타나 말했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응답하셨느니라. 이제 곧 천국에 갈 준비를 하거라. 그러나 그전에 할 일이 있다. 우선 네 집안을 잘 정돈하거라. 네가 떠난 후에 누군가 이집에 머물러야 할 것이니라."

그래서 이 사람은 집안을 깨끗이 정돈한 다음 물었다. “하나님,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천사가 나타나 말했다. “아직 정원이 정리되지 않았구나. 정원을 잘 가꾸어 놓거라.” 그러자 이 사람은 몇 년 동안 열심히 정원을 가꾸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하나님, 이제는 가도 되나요?” 그러자 천사가 말했다. “아직, 할 일이 더 있구나. 네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거라. 그래서 착한 사람이 천국에 간다는 걸 보여줘야 되지 않겠니?” 그러자 이 사람은 최선을 다해 이웃과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물었다. “하나님, 이 정도면 되었나요?”

그러자 비로소 천사가 천국 문을 열고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이제는 되었느니라.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이 사람은 신나게 천국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천국은 바로 자기 집이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정원도, 이웃도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변해 있어서 그곳이 다름 아닌 천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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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감사할 줄 모르는 돼지 

 

어떤 농부가 한 유명한 지식인의 집에 초대되어 다른 몇 사람과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그들은 커다란 저택의 응접실에서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산해진미가 가득한 식탁 앞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농부는 항상 하던 습관대로 식사를 하기 전에 정중하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주인에게도 잊지 않고 감사의 말을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아직도 그렇게 정중히 식사기도를 하십니까? 그런 18세기의 유물은 이젠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요?” 그러면서 그는 기도도 드리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본 농부가 말했다.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몇 명 있답니다.”

그러자 주인은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 참 다행이군요. 누군가요? 대학에 다니는 자제분들 인가요?”

이에 농부가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우리 집 돼지우리에 살고 돼지들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만 얼굴이 붉어지며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참으로 그렇지 않은가? 이토록 많은 은혜를 입고 살고 있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어떻게 올바른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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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사랑은 오래 참고........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작은 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히말라야산맥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에 한 아리따운 여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등산객을 위한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날마다 마을 앞 냇가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생활은 한결 같았다. 밥을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냇가에 앉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왜 여기 왔느냐, 무엇을 기다리느냐?”고 물었지만 그저 말없이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 젊고 고운 모습으로 마을을 찾았던 여인의 얼굴에도 하나 둘 주름살이 늘어 결국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냇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할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냇물에 제법 커다란 물체가 떠내려 오고 있었다. 젊은 청년의 시신이었다. 할머니는 청년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죽은 청년은 그녀의 약혼자였다. 수십 년 전 에베레스트산에 올랐다가 실족하여 그만 눈 속에 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살아 돌아오리라는 기대 속에 기다리다가 나중에는 언젠가 눈이 녹아내리면 사랑하는 청년의 시신이라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마을에서 일생을 보낸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전설인지 사실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진정한 사랑에는 외로움도 고통도 이겨내는 애틋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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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죽음의 포로수용소 안에서도...... 

 
히틀러의 극우민족주는 600만명의 유태인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범죄행위를 초래하였습니다. 당시 유태인수용소에는 수많은 유태인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끌려와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모르는 극도의 두려움과 절망속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한 젊은 유태인 의사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설령 이대로 죽는다해도 결코 비굴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노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유리조각 하나를 줍게 되었고, 그는 그 유리조각으로 매일 면도를 하였습니다. 결코 비굴하거나 체념하지 않겠다는, 언젠가는 이 수용소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설령 여기서 죽더라도 결코 초라한 모습으로 죽지는 않겠다는 그러한 각오에서 였습니다.

나치는 매일 매시간마다 가스실로 보낼 유태인들을 뽑아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의사는 매번 올 때마다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젊고 활기찬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데리고 가는 사람들도 이 젊은 의사를 옆에 제쳐놓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가스실 행은 하루 이틀 미뤄지게 되었고, 드디어 독일이 패망하게 되자 이 젊은 의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삶이 결국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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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황금에 눈이 어두워.....   


제법 오래 전에 인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인도 북부의 ‘무자파르나가르’라는 작은 동네에 엄청난 땅을 소유한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미간척지도 많아서 이웃사람들에게 자신의 땅을 개간해 주면 1/3은 개간한 사람의 땅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땅을 개간하다가 엄청난 고대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 뿐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물을 발견하여 몰래 빼돌리기도 하고 주인도 부자가 되면 뭔가 자기 몫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인도의 문화재 관리국에서 당국자들이 나와서 100년 이상 된 유물은 개인소장이 불가함으로 집으로 가져간 모든 유물을 회수할 것이고 지금부터 유물을 유출하는 자는 엄단할 것이라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과 주민들이 반발하며 유물을 내주지 못하겠다고 버텼고 결국 경찰이 출동하여 경찰과 주민 사이에 큰 충돌이 벌어졌는데 주민들이 과격하게 저항함으로 급기야 경찰이 실탄까지 발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더욱 난폭한 폭도로 변하여 삽과 낫과 곡괭이와 총을 들고 저항하게 되어 결국 많은 경찰이 투입되어 수십 명의 주민이 죽거나 다치고 나서야 폭동이 진압되고 유물은 문화재당국이 몽땅 회수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 소득도 없이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고 많은 사람들이 구금당하는 것으로 사태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황금유물이 발견되기 전에는 비록 부자는 아니었지만 평화롭게 지내던 마을이 황금유물이 발견된 후에 사람들이 그만 돈에 눈이 어두워 정부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감옥에 갇히고 남은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마을 떠나 유령마을처럼 번해 버렸던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을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만 황금에 눈이 멀어 마을은 황폐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육체적 정신적 너무나 큰 상처와 아픔만을 남겼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물론 돈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진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건 물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과 그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진실하게 선하게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영원한 생명은 물론 이 땅에서도 진정한 생명의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과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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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말은 나무입니다

 

예로부터 말이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소방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같이 가던 친구가 “혹시 우리 집에 불난 것 아닐까?” 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야, 그러지마. 말이 씨 된다”고 답했습니다.


불이 난 곳은 정말로 그 친구 집이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 말이 씨가 되기 전에 이미 불이 나 있었지만 저는 섬뜩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면 참 무서운 일입니다. 그동안 제가 해온 말들이 씨가 된다면, 제가 한 말들이 다 나무가 되어 있다면 이런 끔찍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싫어한 사람들, 미워한 사람들, 알게 모르게 한 험담과 저주의 말들이 세상 어딘가에 나무로 남아 있다면 그 나무는 얼마나 보기 흉한 모습이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섬뜩합니다. 물론 새가 날아드는 괜찮은 나무도 몇 그루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제가 만들어 낸 숲은 흉측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말은 나무입니다. 내 안에 흐르는 생각을 말하고 듣고 다시 생각하는 내 머릿속 언어는 나무입니다. 그 나무는 뿌리도 있고 밑동도 있습니다. 줄기도 있고 가지도 있고 무성한 잎도 있습니다. 때로는 꽃이 피고 때가 되면 열매도 맺습니다. 생각이 말이 되어, 말이 씨가 되고, 그 씨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나무들이 모여 또 숲을 이룹니다.

 


언어는 인격의 됨됨이에서 나옵니다. 인격은 사람의 근본에서 나옵니다. 말나무의 뿌리는 사람의 인격이고 말나무의 줄기는 사람의 언행입니다. 말나무의 가지는 그 사람의 관계이고 말나무의 잎은 그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말나무의 꽃은 그 사람이 만든 아름다움이고 말나무의 열매는 그 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입니다.


“사람은 그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입술에서 거두는 것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구약성서 ‘잠언’의 한 구절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만 단순히 그 반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입술에서 거두는 것이 없어 굶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입니다. 한편은 행복하고 한편은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 - 김재원, 『마음 말하기 연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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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불평 없이 살아 보기


최근에 미국 캔자스시티의 200여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시작하여 미국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불평 없이 살아 보기’ 운동에 대해 들어 봤나요? 이 운동의 시작 동기는 매우 단순합니다.


윌 보웬(Will Bowen)은 목사이면서도 늘 불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측은했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불평하는 자신을 한번 바꿔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보라색 고무 밴드를 손목에 차고 있다가 자신이 불평할 때마다 밴드를 오른쪽 손목에서 왼쪽 손목으로, 왼쪽 손목에서 오른쪽 손목으로 옮겨 찼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불평과 염려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삶의 마당이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비생산적인 염려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런 풍자적인 유머가 생겨났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밤낮으로 염려하는 모습을 보고는 누군가가 찾아가 위로한다면서 이런 익살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댁의 아들은 앞으로 후방에 배치되거나 아니면 전방에 배치될 것입니다. 후방에 배치되면 별로 염려하실 필요가 없을 것이고, 전방에 배치되면 조금은 염려가 되시겠죠? 그러나 전방에 배치되어도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전방에서도 위험한 곳이나 덜 위험한 곳에 배치될 것입니다. 덜 위험한 곳에 배치되면 염려하실 필요가 없을 것이고, 위험한 곳에 배치되면 조금은 염려가 되시겠지요. 그러나 위험한 곳에 배치되어도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부상당하거나 부상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상당하지 않으면 염려하실 필요가 없고, 부상당하면 조금은 염려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상당해도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회복되거나 죽거나 할 것입니다. 회복되면 염려하실 필요가 없는 것이고, 죽으면 더 이상 염려해 봐도 정말 소용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염려하지 말고 사시지요.”


물론 지어낸 유머겠지만 일리 있는 말이지 않습니까? 염려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됩니다. 일단 염려를 중단하십시오.

출처 : - 이동원, 『내 영혼의 거룩한 선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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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정말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럼 제가 물을게요.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수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 말고 그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쉴 새 없이 원하는 것. 그걸 발견하면 영원에서 영원까지 행복합니다. 행복과 불행, 가진 것과 못 가진 것보다도 오히려 겸손과 교만에 달렸습니다. 겸손하면 불행하기가 어렵고, 교만하면 행복하기가 힘듭니다.


있고 없고는 나 밖의 일이고, 족함과 부족함은 내 안의 일입니다. 아무리 없어도 족할 수 있고,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유능하고 성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가 바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적은 돈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르는 사람은 많은 돈을 갖고도 불행한 길을 달려갑니다. 돈이 없어 불행하면 돈이 있어도 불행하고, 힘이 없어 불행하면 힘이 있어도 불행하고, 무명해서 불행하면 유명해도 불행합니다. 불편을 불평의 기준으로 삼으면 일생 불행합니다.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원하는 것 다 얻지 못해 참 다행입니다. 지금은 어찌 알겠습니까. 막힌 것이 다행이고, 닫힌 것이 복이고 빼앗긴 것이 선물임을….


가난한 마음을 지닌 사람, 애통한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운 사람,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화해자가 되는 사람, 옳은 일로 손해 보는 사람, 성경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갈까 말까, 가세요! 도울까 말까, 도우세요! 끊을까 말까, 끊으세요! 더 힘든 편을 택하면 마음이 가볍습니다. 평안은 흔히 편안함 반대편에 있습니다. 평안, 결코 돈으로 셀 수 없는 가치입니다. 더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부족함과 불안감을 다스려서 행복하고, 더 잘나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자만심과 시기심을 다스려서 평안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무슨 일이건 기도하면 세상이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는 있어도 그의 평안을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 평안은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평안입니다.

 

출처 : - 조정민, 『인생은 선물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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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도하셨을까


대단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예수님이 모든 상황에서 기도하셨다는 이 많은 구절들은 기도가 습관처럼 몸에 밴 태도라는 것을 말해 준다.


제임스 톰슨(James G. S. S. Thomson)이 말한 대로 “기도는 그분이 정주하셨던 곳이었고, 그분이 숨 쉬는 공기였다.”


이런 자발적인 기도 생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친교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하루 세 번 정도 따로 기도 시간을 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언급한다(막 1:35). 또 군중이 아우성칠 때 그분은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기록한다(눅 5:16). 곧, 예수님이 여러 곳에서, 여러 상황에서 기도하러 가셨다는 뜻이다. 기도는 그분의 습관이었다.


그분은 몸이 피곤해도 이렇게 영적으로 회복하는 시간을 건너뛰지 않으셨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에도 때로 혼자 빠져나가 밤새 기도하셨다(마 14:22~23; 막 6:45~46; 눅 6:12; 요 6:14~15). 낮에 사람들을 돌보느라 몹시 바빠서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을 때”에도 예수님은 기도하러 가셨다(막 6:31, 46). 그분은 음식을 먹지 않고는 지낼 수 있었지만, 기도를 하지 않고는 살지 못하셨다.


다른 것들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었지만 기도는 필수였다. 그분에게 영혼의 훈련을 대체할 다른 활동은 없었다. 기도는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이었다. 그분은 기도를 미루시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역이 지연되는 법도 없었다.

출처 : - 로버트 콜먼, 『주님의 마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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