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


출처 : - 김병종, 『오늘 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중에서


어머니는 마당의 채마밭에 나가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늘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기를 계속했다. 그 삶이 늘 낡은 가죽 책 한 권과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따뜻했고 온화했지만 신앙에서는 단호했다. 믿음을 말할 때면 그 모습 자체가 범접 못할 위엄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통해 예수의 사랑과 용서, 온유와 화평을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어렸을 적 성실한 예배자들로 채워진 우리 집에서 나는 늘 문제아였다. 청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이 새벽기도의 무용담을 얘기할 때마다 나는 저만치 떨어져 하릴없이 신문 같은 것이나 뒤적이곤 했다.


“자네가 문제야.” 어머니는 내가 주일학교를 빼먹을 때마다 회초리를 내렸다. 헌금으로 만화책을 사거나 과자를 사 먹은 때도 회초리는 여지없었다. 중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어머니의 곁을 떠나서야 회초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숫제 주일예배를 빼먹는 일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은 사방에 있었다. 예배를 빼먹을 때마다 시외전화를 걸어오셨다. “오늘 뭐했냐?” 나는 얼버무렸다. “그냥요.” 어머니는 언짢아하시면서 딸깍 전화를 끊어버리시곤 했다. 그 침묵의 공간에 많은 말이 담겨 있었다. 수많은 질책의 언어보다 딸깍, 끊겨버린 전화기 저편의 침묵 공간이 나는 더 무서웠다. 어머니가 전화를 끊어버리면 덩치 큰 어른인 나는 한 주일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끊어진 전화는 한 주일이나 열흘쯤의 간격을 두고 이어진다. 노기보다는 사랑이 담긴 목소리다. “…그러면 안 된다.” “알아요, 엄마.” 비로소 오그라들었던 마음이 펴진다. 그때 나는 영락없이 회초리를 든 어머니 앞에 선 아홉 살짜리가 된다.


그 어머니가 하늘 저편으로 가신 지도 십수 년이 되었다. “햇빛이 좋구나, 이런 날 가면 좋겠는데.” 낡은 성경책을 읽다가 창밖을 보며 혼잣말을 되뇌이시곤 하던 어머니, 이제는 예배를 빼먹은 내게 회초리를 내릴 분이 없다.


오늘, 예수님의 나라에 계신 내 어머니가 유독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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