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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교리의 모순/ 마리아숭배 성인들의 화상숭배 유골숭배 성체숭배/ 연옥설 성수뿌리기 묵주기도 죽은자를 위한 기도

 

카톨릭 교리의 문제점


1. 다른 신을 믿기 때문이다.


1) 천주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동번역성경'에서는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번역하고 있다.

국어사전적 의미 차이점 (이희승,국어대사전)

-하나님 :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전지전능하고, 우주만물을 창조, 섭리 지배하는 유일 절대의 주재자. 의와 사랑이 충만한 인격적 존재로 무소부재하며 삼위일체의 제1위임.

-하느님 : (하늘님) 종교적 신앙의 대상.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로서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며 불가사의한 능력으로서 선악을 판단하고 화복을 내린다고 하는 범신론적인 신.


2) 마리아숭배  - 마리아는 평생 처녀이었다.(마리아 종신 처녀설)

-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였다.(마리아의 모성) -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선포

-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태어났다.(마리아 무죄잉태설) - 1854년 교황 피어스9세가 선포

- 마리아는 죄없는 삶을 살았다.(마리아 평생 무죄설) - 자범죄가 없다.

- 마리아는 죽은 후 부활 승천하였다. (마리아 부활 승천설) - 1950년 교황 피어스12세가 선언

 

이상의 내용들을 성경에 근거 없이 천주교가 조작하여 만들어낸 것들이다.


천주교는 하나님의 은총이 마리아를 통해서 오고, 또한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우리 기도가 마리아를 통해서 전달될 때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마리아를 기도의 중재자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근거 없는 것이다.


3) 성인(성녀)숭배

 천주교의 성인숭배란 신앙과 덕이 뛰어난 사람은 죽은 후에도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므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구할 수도 있고 또 우리를 도와주거나 우리를 위해 기적을 행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의 공덕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을 보면 천주교는 십계명의 1,2계명을 어기고 다른 신을 숭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 성경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개신교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 66권 외에도 가경과 유전(전승)을 믿으며 성경의 절대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다.


1) 그들은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이 없이도 천주교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천주교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결정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성경의 권위보다 교회의 권위가 위에 있다.

 

2) 그들은 성경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

가경(외경) 구전(기록되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말씀, 유전, 전승이라고도 함) 가경 / 천주교는 구약 39권 외에 7개의 가경을 가지고 있다. (토비아서, 유딧서, 마카비상, 마카비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 이 가경은 1546년 천주교에서 정경에 포함시킴 - 가경을 정경에 포함시킨 이유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천사들의 중보와 연옥설과 공덕설 등의 교리를 성경에서는 찾을 길이 없으니까 그들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포함시켰다.

 

외경의 문제점들

◑ 신약의 저자들이 가경에서 인용한 일이 없다.

◑ 주후 4세기까지 신약교회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결집한 정경 목록 중에서 가경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 가경을 쓴 저자중 한 사람도 자기가 쓴 글이 여호와께 영감을 받아 말한 것이라고 말한

  자는 아무도 없다.

◑ 가경은 역사적, 연대적, 지리적 과오를 많이 가지고 있다.

◑ 가경에는 정경과 반대되는 그릇된 교리와 행위를 가르치는 것이 있다. 거기서는 거짓말

  이 허락되었고, 자살과 암살 행위까지도 정당화되었고, 공로를 세우므로 구원을 받는다

  는 것,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3)전승을 믿는다.   전승에는 천주교회 회의의 결정과 교황의 선언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성경처럼 믿고 성경보다 더 위에 권위를 두기도 한다.    천주교는 1229년 톨로사 회의에서 평신도가 성경을 갖는 것을 금했었다.  왜냐하면 평신도가 성경을 읽게 되면 성경에 없는 교리를 만들어낸 것이 탄로날까봐서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성경을 가감하는 것은 이단이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완전한 구속을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는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 미사'의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재연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천주교의 미사가 교회의 예배와 같은 것인 줄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천주교의 미사는 성찬의 요소인 떡과 포도주를 사제(신부)가 봉헌기도를 통하여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시켜서(화체설) 신부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의식(희생제사설)이다.


천주교의 화체설은 식인종의 사상을 유발시키며 불쾌감을 준다. 그리고 천주교의 미사제도는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하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부인하는 것이요, 결국 그들은 미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셈이 되는 것이다.

 

 

4. 인간을 신격화하기 때문이다.


● 교횡의 신격화

-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의 최고의 통치자이다.

- 교황무오설 (교황은 오류가 없다) - 1870년 바티칸회의에서 선언

- 교황면죄권 (사죄권과 비슷하지만 죄에 대한 형벌까지 면제해줄 수 있는 권리)


그러나

 ㅁ 베드로는 성경에 교황으로 언급된 적이 없고 장로라고 말하고 있다. (벧전5:1)

ㅁ 베드로가 로마의 주교로 있었다고 주장하나 역사적 근거가 없다.

ㅁ 성경 어디에도 교황이라는 말이 없으며, 교황이든 베드로이든 모든 인간은 어느 누구도

  부패하고 거짓되다고 말씀하고 있다.(렘17:9, 시14:2-3)

 


역사적인 사실들은 교황이 오류 투성이임을 증명하고 있다. - 교황무오설은 1870년 7월 18일에 선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교황들은 1870년 동안 자신들이 무오하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또한 많은 교황들이 부도덕하여 간음, 남색, 성직매매, 강간, 살인을 일삼고 술에 취해 지내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5.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주장하기를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행위 둘이 합쳐서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세례를 받을 때에 일어나는 것으로서 구원은 영세를 통해서 온다고 주장한다. 구원 받았는지는 죽어봐야 안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이 구원을 받는다. (엡2:8-9,갈2:16,롬3:28)

선행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보잘것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오히려 자기들의 선행을 높이 치켜세운 것이며 결국은 타종교처럼 자력종교 (자기의 선행과 노력에 의존하는 종교)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조건은 믿음뿐이지, 세례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고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표시이다.

 

천주교는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도 자기의 잘못으로 대죄 하나만 범해도 생명의 은총을 잃어버리고 다시 고해성사를 통해 대죄를 용서받으면 다시 회복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었다 잃었다 수시로 변동하게 된다는 것이며 결국 죽음의 순간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요5:24절에 분명히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요6:47에도 구원의 확신을 가르치고 있다. 요일5:13에서도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다.

 


6. 연옥설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연옥이라는 데가 있는데 사람이 죽은 다음에 죄의 그림자도 없는 깨끗한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대죄(큰죄) 중에서 하나님과 영영 등을 진 사람들은 지옥으로 간다. 그런데 소죄(작은죄)나 불완전을 가지고 있거나 죄에 대한 적당한 보속을 완료하지 않은 영혼들은 연옥에서 나머지를 보속해야 한다. 즉 그들은 거기서 작은 죄를 충분히 속량 받거나 또는 그들에게 합당한 일시적인 형벌을 충분히 받기까지 불가운데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고통의 기간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대신 드리는 미사와 기도와 헌금과 그밖에 경건한 행위로 단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옥설의 근거로는 유전(구전)에서 찾고 그밖에 외경 마카비하12:43-45, 마12:32,5:25-26, 고전3:13-14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연옥설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성경에 연옥이란 말도 나오지 않으며, 그들이 제시한 성경구절도 논쟁할만한 가치도 없다. 그리고 이 연옥설은 공로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이 연옥설은 교황의 면죄권, 면죄부판매, 죽은 자를 위한 미사,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헌금, 자선 등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옥설의 치명적인 결함은 ‘사후 구원기회설'이라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 공로가 100이라고 할 때 어떤 사람이 60밖에 선행의 공로가 안되고 죽었다면 연옥에 가서 40만큼 고통을 당하게 된다. 또 그의 아들과 딸이 선행을 많이 해서 40을 더해준다면 구원받아 천국으로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만인구원설로도 이어지며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다.

 

 

7. 우상숭배와 미신 때문이다.


천주교에는 우상숭배와 미신적 의식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리아숭배(마리아상), 성인들의 화상숭배, 유골숭배, 성체숭배 등등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리아나 어떤 사람들의 형상을 만들어놓고 그것들 앞에 절하거나 기도한다. 또 죽은 자의 유골과 유품을 숭배한다.


◑ 미신적 의식들 - 성수뿌리기, 묵주기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등등


그러나 이것은 십계명에 위배된 것이며 성경은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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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급속히 증가하는 이슬람 대비해야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순방을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가 있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무슬림관광객을 위한 인프라를 개선하고, 개별관광객 확대를 위한 사업을 전개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결국 기도처소를 더 늘리도록 하고 이슬람식당(할랄식품)을 만들도록 하는 내용이 문화체육부를 통해서 발표된 것이다. 2014년 한국을 찾는 무슬림 관광객은 751,931명으로서 전체 방한외래객의 5.3%를 차지했고, 그 비율이 계속 증가하기에 그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1970년에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3,700명이었다. 그런데 1976년 이후에 한국인 이슬람 인구는15,000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그 이유는 1976년 고 박정희 전대통령이 한남동 시유지 1,500평을 무슬림에게 하사하여 이슬람 사원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다시 정부가 나서서 이슬람 기도처소를 확대하고 무슬림들의 편의시설을 지어주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가 자국에서 이슬람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에는 북부 아프리카 무슬림의 유입을 막기 위하여 노동이민자를 남미에서 데리고 오고 있으며, 싱가폴은 싱가폴 여성이 다른 나라 남자와 결혼을 하려면 노동청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이런 제도들은 모두 이슬람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세계의 흐름과는 반대로 이슬람 할랄식품 개발을 위한 전용단지 조성과 중동건설 플랜트 시장진출에 한화 5조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에 이슬람 붐이 일어날 전망이다.

 

유해석 선교사(FIM국제선교회 대표)는 이슬람선교학교 첫 강의를 통해 "한국의 증가하는 이슬람에 대해서 교회가 알아야 할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밝혔다. 서구의 기독교는 지난 1400년 동안 이슬람권에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고, 이제껏 무슬림들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슬람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무엘 쯔머에 의하면 1930년 전 세계 이슬람 인구가 2억 4백만 명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수는 28명 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 날도 무슬림의 80%는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해석 선교사는 "한국에 이슬람이 급속히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이제 한국교회가 무슬림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비만이 남았다"면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이 먼저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 그들의 경전인 꾸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라고 주장했다.

 

한편 FIM국제선교에서 주최하는 이슬람선교학교가 FIM선교센터(대표 유해석 선교사)에서 지난 3월 26일 40명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등록한 가운데 10주 과정이 시작됐다. 선교회는 한국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200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서울 FIM 센터에서 이슬람선교학교를 진행해 왔다. 강사로 유해석 선교사(FIM선교회대표), 김성봉 목사(신반포중앙교회), 이동주 소장(신학연구소장), 소윤정 교수(아시아연합신학대학원), 신인철 목사(시흥상부교회), 송기효 연구원(FIM이슬람연구원), 차경준 연구원(FIM이슬람연구원)이 나선다. 문의: 1599-5591
출처 :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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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이슬람 칼럼] 박대통령 중동 4개국 순방 후폭풍을 보면서

 

 2015년 3월 초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 4개국을 순방했다. 석유가 한 방울도 안 나오는 나라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원활한 공급은 필수 조건이기에 중동의 주요 산유국 정상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국가의 지도자로서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6.25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아시아의 최빈국 그룹에 속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대국들과 어깨를 겨루는 부강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가 놀라고 있는 기적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번 중동 순방을 통해서 산유국들과 다양한 협약을 맺어 한국이 가지고 있는 중소형 원자로 및 의료 분야, 유전 개발, 플랜트 분야 등 고부가가치의 기술들을 지원하고 원활한 원유 공급과 아울러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받아내므로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알찬 결실이 있었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한편 이번 순방 중에 관광 분야에 대한 양해각서에 서명을 했는데 이에 따라 앞으로 급속히 늘어날 무슬림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인프라 구축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2의 중동 붐을 잡아라." "17억 무슬림들의 먹거리를 공급하라." "무슬림들이 여행 중 어디서나 쉽게 기도처를 찾을 수 있도록 무슬림 기도처를 늘려라," "할랄식당을 늘리고 전국의 식당을 이슬람 친화 정도에 따라서 5개 등급으로 나눠라." "할랄 전용 도축장을 만들어라."등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정부 주도적인 이슬람화 구호와 시행 지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혹자는 국민들 잘 살게 하고 기업의 판로를 넓히고 국가 경제에 유익한 일을 하는데 왜 그 일을 안타까워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왜 그 일이 안타까운 일인지 지금부터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확인하고자 한다.

 

◆ 할랄이란 무엇인가? = 지금 정부와 보조를 맞춰 각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할랄 열풍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할랄의 정체를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할랄이란 이슬람 율법에 의해 허용된 것을 말한다. 식품 중에서 사람들이 먹는 야채나 과일류 등은 첨가물을 넣고 조리를 했거나 발효시켜서 다른 성분으로 변형시키지 않는 한 할랄이다. 참고로 이슬람 율법 즉 샤리아(Sharia)에 의한 판단 지침은 아래의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와집(WaJib)혹은 파르드(Fard):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사항
- 할랄(Halal): 해도 되는 허용 사항
- 무바흐(Mubah): 허용 여부가 명확치 않은 사항
- 무스타합(Mustahabb) 혹은 만둡(Mandub): 긍정적 권장 사항
- 마크루흐(Makruh): 안 하는 것이 좋은 바람직하지 않은 사항
- 하람(Haram): 해서는 안 되는 금지 사항,

이중에 할랄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사항은 아니다. 그래서 이슬람권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장사하는 집에서 할랄 음식이 아니더라도 음식만 맛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무슬림들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꾸란에도 보면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먹었을 경우(꾸란2:173)나 필요하여 또는 알지 못하여 금지된 것을 먹었을 경우에는 죄악이 아니다(꾸란6:145)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타문화권에 사는 무슬림들은 반드시 할랄 음식만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필요하면 금지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수천만 원씩 들여서 할랄 인증만 받으면 17억 무슬림들의 먹거리를 제공함으로 일확천금할 수 있다는 헛된 꿈은 빨리 깰수록 유익할 것이다.

◆ 할랄은 위생이나 웰빙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 육류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명시된 도축방법에 의해서 잡은 것들을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것은 위생이나 웰빙 혹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할랄인증을 받은 도축장보다 훨씬 더 청결하고 위생적이고 첨단 장비를 갖춘 도축장에서 잡은 고기라도 불교나 힌두교인이 잡은 고기는 할랄 고기가 아니다.

그러면 할랄 도축방식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무슬림이 잡아야 하고 둘째는 죽을 때 짐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으로 머리를 두어야 하고 셋째는 혈관을 끊을 때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 외쳐야 한다. 넷째는 예리한 칼로 단숨에 목의 혈관과 기도를 끊어야 한다. 다섯째 피를 완전히 빼야 한다. 여섯째: 목을 잘라서 피를 빼기 전에 죽은 짐승은 먹으면 안 된다. 일곱째: 개나 돼지는 먹을 수 없다. 여덟째: 사냥한 짐승은 먹어도 되지만 사냥개나 매가 일부분을 먹었을 경우 먹으면 안 된다. 아홉째: 비늘 없는 생선은 먹을 수 없다. 열째: 타종교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은 먹어서는 안 된다. 등등

이런 규정들을 볼 때 위생과 청결 등의 단어는 할랄 인증 시 고려의 대상이 아님에도 매스컴을 통해서 웰빙 건강식품이라고 홍보해 주는 것은 지나친 아첨으로 보인다.

◆ 할랄 도축은 동물학대 범죄에 해당한다 = 꾸란에는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와 알라의 이름으로 잡은 고기가 아닌 것을 먹지 말라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언급되어 있다.(꾸란5:3) 일반적인 도축 방식은 전기 충격 등으로 기절 시킨 후에 잡기 때문에 가축이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할랄 방식은 꾸란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기절 시키려다가 죽으면 죽은 고기를 먹지 말라는 규정을 어기게 되므로 그 방식을 채택하기 곤란하다. 또한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 목의 혈관과 기도만 끊어서 나머지 전신의 기능과 감각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해야 심장이 계속 뛰면서 체내의 피를 배출하기 때문에 짐승은 완전히 죽기까지 보통 한 쪽 다리를 걸어서 매달아 놓는데 최대 2~3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간다. 이슬람권에서는 에이데 고르바니(eid e Qorbani) 혹은 에이데 아드하(eid e Adha or Azha)라는 명절이 있다. 이 날은 허가된 도축장이 아니라도 누구나 무슬림이라면 알라의 이름으로 도축할 수 있기 때문에 골목마다 피투성이가 되며 파리 떼가 창궐하게 된다. 대부분 맨 땅에서 잡기 때문에 위생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때 경험이 없는 사람이 앞다리만 묶어 놓고 소를 잡다가 목이 반 쯤 잘린 소가 고통 때문에 벌떡 일어나 피를 뿜으면서 동네를 질주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이런 잔인한 방법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미치자 서양에서는 동물 애호단체들에 의해서 할랄 반대 운동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 할랄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의한 종교의식이다 = 이 이슬람 의식은 무슬림들만 지키면 되는 것이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율법을 지켜야할 이유가 없다. 이슬람 학자들은 나지스(Najis)규정을 할랄과 접목시켰다. 나지스란 불결하다는 뜻이다. 불결한 것을 만지면 할랄(허락된 것)도 하람(금지된 것)이 되기 때문에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는 할랄 도축장은 돼지를 도축하는 곳에서 5Km이상 격리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할랄 도축용 기계나 도구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을 사용할 수 없으며 할랄용 가축이나 고기를 운반하거나 보관할 때도 비할랄 제품과 격리되어야 한다. 만일 이를 어겼을 경우 세 번 혹은 일곱 번 세척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 할랄은 절대기준이 없고 가변적이다 = 할랄 판정은 무슬림 고위성직자들이 인준하는데 그 할랄 판정이라는 것이 꾸란5장 3절의 먹지 말라는데 강점을 두느냐 하니면 꾸란6장 145절처럼 필요하면 먹어도 된다는데 강점을 두느냐에 따라 수니파의 4개 학파마다 기준이 다르고 시야파의 기준이 다르다. 말레이시아의 JAKIM의 기준이 다르고 인도네시아의 MUI의 기준이 다르다. 더구나 황당한 것은 같은 학파 같은 기관이라도 수시로 할랄의 기준이 바뀐다. 무프티(Mufti) 급의 고위 성직자라면 누구나 하람을 할랄로 만들 수 있고 동일한 할랄 샤리아 위원회가 어제 결정한 것도 오늘 회의를 통해서 뒤집을 수 있다. 최근에 시리아에서는 식량이 부족하므로 개나 고양이 고기를 할랄로 선포하기도 했다.(2013.10.17. 조선일보)

◆ 할랄 인증을 받았어도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다 = 할랄 인증서를 손에 넣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얻은 할랄 인증서의 유효기간이 1년이라는 사실은 알고 시작해야 한다. 또한 무슬림 사찰단들이 와서 할랄 도축시설이나 음식물 가공 시설을 둘러보고 가서 보고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이유도 통보하지 않고 즉시 취소되어 수천만 불의 손해를 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 청아굿푸드의 사례(한국농어민신문 2015.3.20) = 강원도 소재 청아굿푸드의 유재주 대표는 인증 취득까지 2년 넘게 걸렸고 비용도 정부지원 포함해서 2600만원이나 들었는데 공장 내부에 식당을 두지도 못하게 하고 임직원들의 술과 돼지고기조차 먹지 못하게 하니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한다. 첨가물에 대한 증명, 젓갈류, 양념 및 부수 재료 및 수입원료 까지 증명하려니 내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해서 결국 말레이시아의 자킴(Jakim)의 인증을 받지 못하고 무말랭이와 양념깻잎에 대해서만 인지도가 낮은 이판카(IFANCA)의 인증서를 받기는 했지만 주력품목이 아니라서 활용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 깊은 연구나 의견 수렴도 없는 졸속행정 = 전국적으로 이런 일을 시작하려면 깊은 연구와 국민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 아무런 절차도 없이 국고지원을 해가며 강행을 한다면 이에 따르는 손해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할랄 인증을 받아도 우리나라에서 수출할 수 있는 품목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슬람권의 대량 소비 식품인 소고기와 양고기 닭고기나 야채류는 호주 및 동남아와 가격경쟁이 안 되고 국내 소비량도 부족해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 할랄 지원은 근본주의 이슬람 포교 및 지하드 후원금 =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서 제공된 돈은 이슬람 확산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이슬람 기관은 수입의 2.5%를 자카트(Zakat)라는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돈의 9가지 사용처가 꾸란9장60절에 나온다. 그 중에 다섯 번째 언급된 "알 무알라파 꿀루부훔"이라는 것은 포교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여섯 번째 "알 리까브"는 전쟁포로나 노예 석방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체포된 지하드 용사들의 석방 작전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여덟 번째 "피 싸비릴라"는 직접 노골적으로 지하드 전사들을 돕거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사는 것을 말한다. 할랄인증을 받기 위해서 수천만 원씩 바치는 것은 결국 그 돈이 테러 자금으로 흘러 들어와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도 있다.

 

◆ 할랄 식당이나 기도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요구다 = 사실 명목상 무슬림들은 할랄음식에 별 관심이 없고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외국에 가면 가끔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는 것처럼 무슬림들도 그럴 때도 있는 것이지 의무적으로 할랄 음식만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란 같은 강성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에서도 모스크에 가서 시간 맞춰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잡아도 2~3%도 안 된다. 심지어 이슬람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금요예배를 피해 즐기다오려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바레인으로 연결된 다리는 목요일 오후부터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다. 여성들도 외국에 가면 히잡도 벗어 던지고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다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가 테러범이라고 부르는 근본주의자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할랄 식당이 절대로 필요하고 기도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서 전국 식당에 5가지 등급을 매겨 이슬람 율법을 확산시키고 이슬람 기도처를 늘리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왜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가 특정 종교인들이 자기 나라에서도 철저히 지키지 않는 이슬람의 율법을 잘 지키도록 장려하기 위해서 국가의 재정과 공권력을 지원하는가?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도움이 안 되고 헌법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고 타종교와의 형평성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 무슬림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 우리나라에서 테러의 위협이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피해망상 증세라고 주장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을 보면 무슬림들에게 불편함 없는 최대한의 복지과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은 늘어나는 인구를 무기 삼아 다양한 종류의 과대한 특혜를 요구하고 있어 정부나 국민들은 곤혹을 치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들의 표가 필요한 정치인들은 법과 제도를 바꿔가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으며, 계속해서 헌신된 무슬림들의 잔인한 테러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홍보해 주면서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면서까지 무슬림들의 활동을 보호해 주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유럽에서 이슬람의 율법으로 재판하는 샤리아 법정까지 허용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이슬람화 되어가는 현상을 먼 산의 불 보듯 하면 결코 안 될 것이다.

전 세계 17억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행동모범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테러범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 헌신된 무슬림들로서 꾸란과 무함마드의 행동모범대로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 신앙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잔인함의 극치를 보이는 IS를 지지하는 이슬람 단체들이 급증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지원자들이 시리아와 이라크로 몰려 들어가고 있다.

지금 지구촌 어디를 가든지 무슬림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곳마다 테러가 발생하고 있으며 혹시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라도 언제 갑자기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몰라 염려하는 것은 결코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는 것은 인류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오일 달러를 탐내어 테러범들을 포함한 불특정의 무슬림들을 가능하면 더 많이 안방으로 불러들이려는 목적을 정하고 국가적으로 장려 및 지원하는 것은 솔로몬이 이방 여인을 탐내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끌어들여 국가적인 재앙과 멸망을 자초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56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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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도 요한도 구약을 인정하였다
- 도올 김용옥의 구약폐기론 반박 

허호익 교수(대전신학대학교)
www.theologia.pe.kr 

도올 김용옥 교수(세명대 석좌)가 저서 [요한복음강해]와 EBS의 강의와 언론인터뷰를 에서 ‘구약폐기론’를 주장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도올의 구약 폐기론의 요지는 세 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은 율법의 부정”(31쪽)이고, “예수는 율법을 폐하러 왔으며, 구약성경은 폐기돼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도올이 말하는 구약은 율법의 행위이고 신약은 복음의 은총이라는 도식 역시 이미 폐기된 천박한 이론이다. 구약 안에도 출애급의 구원의 은총이 있으며, 신약의 경우는 율법의 정신을 망각한 율법주의를 부정한 것이지 율법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같은 종교개혁자들도 복음을 율법의 대립 개념으로 보지 않고 율법의 3가지 용도를 통해 율법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예수는 구약의 한시적인 시민법과 제사의식법들의 조문들은 폐기하였지만, 저 유명한 율법에 대한 반명제 6가지(마 5:21 이하)가 말해주듯이 예수는 율법 본래의 정신을 오히려 철저히 하고 강화하여 가르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 5:17)”고 선언한 것이다.

 

둘째로 구약은 민족신 야훼(여호와)가 유대인들의 민족해방을 약속 또는 조건으로 한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은 민족 해방의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십계명 서언에 기록된 것처럼 은총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다. 애급의 압제에서 해방시킨 출애급과 하나님의 백성 삼은 은총(Gabe)이 먼저 주어진 후 하나님의 백성의 도리와 과제(Aufgabe)로서 십계명이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유대민족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 모든 약소국가나 피식민지국가들에게 주어진 민족해방의 놀라운 약속과 비전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일제는 구약을 읽거나 설교하는 것도 금했지만 한국교회는 구약을 통해 항일운동의 정신과 민족해방의 희망을 키워온 것이다. 근래의 남미해방신학을 비롯한 제3세계의 신학의 성서적 근거 역시 구약의 출애급 해방 전승이라는 것을 도올은 알지 못하고 ‘구약을 믿는 것은 성황당을 믿는 것’으로 폄하한 것 같다. 도올의 그런 논리가 정당하다면 플라토의 [공화국](Republic)은 희랍인들만의 이상국가론이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치졸한 논리가 된다.

 

셋째로 “예수의 출현으로 새로운 계약(신약)이 성립된 만큼 구약은 당연히 효력이 없다”고 하였다. 현대의 상법상 계약 논리로는 맞는 말이겠지만, 이 역시 신구약을 관통하는  계약신앙의 핵심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주도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시내산 계약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 식언(食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한번 계약은 영원한 계약이므로 이 계약에 신실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늘 이 계약을 위반하였기 때문에 해마다 유월절에는 계약갱신이 필요했다. 새 계약은 하나님 편에서는 이제까지의 이스라엘의 계약 위반의 ‘죄를 다 사해주고 기억도 아니 하시는’(렘 33:34) 은총으로 구약에서 이미 약속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서가 말하는 새 계약은 옛 계약의 폐기가 아니라 옛 계약의 갱신이요 성취요 완성인 것이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구약을 정경(正經)에 포함시킨 것은 예수 자신이 구약을 수용하여 회당에서 읽기도하고 인용하고 설교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는 구약 즉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를 “자기에 관한 것”(눅 24:27)이라 하였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구약은 ‘오실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며, 신약은 구약의  약속의 성취이며 동시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라고 한 것이다.

 

저 유명한 유대인 학자 G 버미스 조차도 [유대인 예수의 종교]라는 책에서 예수가 유대인으로서 구약을 여러 방식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구약성경의 단어나 구절을 재사용하고, (2) 구약의 선례를 인용하고, (3) 구약과 관련하여 강조나 대조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유출하고, (4) 구약을 예언의 성취로서 해석하고  그리고 (5) 새로운 교리를 지지하기 위하여 여러 구약의 구절을 모아 연결시키는 미드라쉬적 양식을 사용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올이 강의하는 요한복음서 자체에도 구약의 인용이 적지 않다. 요한복음에는  구약의 직접인용을 적지만 구약의 개념에 매우 친숙하였다(요 1:23, 51; 2:17; 6:31, 10:34; 12:13; 15, 27, 38, 40; 12:40; 13:18; 15:25; 19:24; 36, 37)  
결국 도올 김용옥 교수는 예수가 인정한 구약마저 폐기하자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가 강의하는 [요한복음]이 인정하여 인용한 수많은 구절의 구약을 무시하고 구약의 폐기를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사를 보면 구약폐기론을 들고 나온 이들이 가끔 등장한다. 구약폐기론의 원조는 로마교회의 장로 마르키온(Marcion)이다. 그는 영지주의의 이원론에 따라 구약성서의 여호와 하나님은 열등한 조물주 신이며, 신약성서의 아버지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이라는 이유로 구약의 폐기를 주장하다가 144년 7월에 파문당하였다. 155년경 서머나의 주교 폴리캅은 마르키온을 만나 토론한 다음, “나는 네가 확실히 사탄의 맏자식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단죄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기준인 사도신경은 사실상 당시의 마르키온의 구약폐기론을 반박하고 구약성서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신(하나님)’이 신약성서의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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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기독교인들이 출간한 <우리는 왜 기독교를 반대하는가> 
    
안티기독교, 어떻게 볼 것인가


   들어가며
 

   1990년대 이후로 본격적인 다양한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종교 진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실 90년대 후반만 해도 종교비평이라는 용어는 내 기억 상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기에 종교인 단체가 아닌 일반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어 ‘종교인의 소득세 문제’를 제기한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동시에 기독교와 관련해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안티 기독교>Anti-Christianity의 폭발적인 증대 현상이다. 초창기에 안티 기독교 사이트는 여기저기서 생겨났었다. 그러다가 2002년경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군소 안티 기독교 그룹들을 현재의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하 ‘반기련’, www.antichrist.or.kr)으로서 통합한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안티 기독교
 

   아주 오래 전이지만 나 자신은 우연히 안티 기독교인을 처음으로 접했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기억상으로는 현재의 반기련 통합 이전인 듯― 우연히 안티기독교 사이트의 글을 발견하고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들은 대체로 기존 기독교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성경을 통해 온갖 날조와 허구를 가르치고 있고, 십일조의 명목으로 돈을 모아서 교회당을 크게 짓고 자기 배만 불리고 있기 때문에, 이제 기독교는 몽땅 망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사람들의 접속수도 매우 높았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안타까움도 있어서인지 나는 약간의 답변을 남겼다. 즉, 기존의 보수 기독교의 그러한 폐해들이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소수의 건강한 진보 기독교의 흐름들도 있으니 기독교에 대해 좀더 깊게 공부를 하실 필요도 있다고 얘기하자, 당시 그 안티기독교 사이트에 많은 글을 쓰고 또 이를 만든 운영자이기도 했던 그 안티 기독교인은 나의 그러한 코멘트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첫 답변을 주었다. 날더러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린 종교관을 가지고 있고 성서비평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또한 나름대로 이 땅에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위해 사회운동에도 힘쓰는 진보적인 기독교에 대해서도 좀더 상세하게 소개를 하니까, 그게 무슨 기독교냐고 반문하면서 그런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믿으려 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었다. 물론 그럴 만도 한 게 그러한 진보 진영은 소수이기도 하니까. 
 

   재밌게도 나의 그 글은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 해우소 같은 곳으로 보내어졌고, 자유게시판은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못들어 오도록 아이피를 막아놓았었다. 그리고서 여전히 또 일방적으로 남겨놓은 얘기는, 기독교는 무조건 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이를 <기독교 박멸론>이라고 부른다. 마치 바퀴벌레 박멸을 떠올리듯 말이다.
  
   안티 기독교의 발생과 형성은 기존 기독교의 폐해가 가장 큰 원인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이 안티 기독교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서도 살짝 얘기를 했었는데, 결정적인 것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기독교에 빠져서 종교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안티 기독교인은 교회를 계속 다니다가 어느 날 목사에게 성경에 의문이 있어서 질문을 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서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대부분의 안티 기독교인들은 직간접적으로 기존의 보수 기독교의 폐해를 경험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티 기독교의 발생이 기존 기독교와 아무 상관없이 그냥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는 사실부터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즉, 안티 기독교의 발생은 기존 기독교의 끔찍한 폐해들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안티 기독교인들이 성토하는 내용들은 크게 보면, 주로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독선적인 배타성 및 ‘무조건 믿어라’고 말하는 강압적인 신앙으로 인한 폐해들이 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존 기독교에 대한 안티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반감>과 <증오>가 아주 강하다. 이들은 기독교인을 부르는 명칭부터 기독교인을 ‘개독교인’이라고 부르고, 목사를 ‘먹사’라고 종종 부른다.
 

   그래서인지 안티 기독교인들은 기존 기독교의 사회적 행태에 대해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꼬집어내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목사가 불륜을 저지르는 사건이 터지면, 그에 대한 기사거리 뿐만 아니라 자료 사진과 풍자 그림들이 온갖 동원된다. ‘에어장 사건’은 오랫동안 이들에게 안주거리이기도 했었다. 이들은 일상적 삶 속에서 발견되는 기독교인들의 행태도 곧잘 꼬집어 낸다.
 

   때때로는 그 관찰력이 아주 탁월한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나는 건강한 기독교인이라면 안티 기독교 사이트도 충분히 가볼만 하고 이들의 주장과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들이 기존 기독교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매우 예리하게 꼬집어내고 발견해내는 지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안티 기독교의 주장들을 모두 동의하진 않지만, 적어도 안티 기독교의 입장에서 기존의 주류 기독교를 비꼬며 풍자하는 측면들도 알아둠이 좋다는 얘기다. 사실 그들의 영혼들 역시 상처받은 영혼들이긴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안티 기독교의 한계
 

   그렇기 때문에 안티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의 폐해를 경험한 자들에겐 그 사이트를 접할 경우, 희열을 느낄 만큼 매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기존 기독교를 까발리는 행태들은 마치 그동안 억누르고 금지되었던 욕구들을 마음껏 발산시키는 해방구 노릇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티 기독교의 한계는 바로 그것이 현재로선 존재의의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즉, 안티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의 폐해로 인해 발생하였지만, 기존 기독교가 “무조건 믿어라”의 폭력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안티 기독교는 “기독교는 무조건 망해라”는 신념이 무차별적으로 전제되고 신봉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 폭력성만큼은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들은 아주 많다.
 

   예컨대, 순진한 기독교인 한 명이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들어와서 “샬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는 당신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길 바라며, 지옥에 가지 않길 기도합니다”라는 정말로 순진한 메시지를 남겼다면, 이는 안티 기독교인들의 집단 먹잇감이 되기엔 딱 안성맞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에게는 다짜고짜 반말부터 깔고 나가는 모습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게다가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서 순진한 기독교인 한 명에게 뭇매를 가할 때 그나마 동원되는 비난의 근거들은 대체로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행태에 대한 지적들 외에도 <바이블>(안티 기독교인들은 성경이나 성서라는 단어를 안쓰고, 바이블이라는 표현을 잘 쓰는 것도 특기할만한 사항)에서 찾았다는 이상한 말들 이를테면 바이블의 오류와 모순,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황당한 얘기, 반인륜적인 얘기 등등 이런 것들에 기인한다.
 

   기존 기독교가 <기독교 절대주의>라는 도그마를 가졌다면, 안티 기독교 역시 <기독교 박멸주의>라는 절대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둘은 결국 평행선이요 폭력적 대결이 되기 십상이라고 하겠다.
 

   재밌게도 반기련이라는 안티 기독교 사이트의 취지를 읽어보면, 이들 “최종의 목적이 현실적인 기독교 집단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인지, 혹은 기독교 집단의 최종적인 붕괴나 괴멸인지 그것은 사실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쓰여 있다(그러면서도 이는 관리진의 생각일 뿐이라고 한편으론 발을 빼는 듯한 문구도 첨가). 하지만 실제로 반기련 게시판 대부분의 내용들은 기독교 박멸 문구들이 분명하게 지배하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이들의 정체성과 한계는 <안티 기독교>라는 그 명칭에서부터 더 없이 잘 드러난다. 안티라는 것은 결국 반대라는 의미인데, 그 어떤 사안에 대한 반대 자체가 설득력을 가지긴 힘들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생각해보라. ‘A’와 ‘not A’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설득의 여지자체가 이미 시작에서부터 봉쇄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공존인 것이다.
 

   어떤 방에 ‘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같이 산다고 생각해보자. 이미 그러한 사람인데 무슨 대화의 접점이 있을까? 안티 기독교인들도 이성적 설득을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기독교의 폐해를 받은 만큼 똑같이 기독교들에게도 되돌려주겠다는 식으로 그렇게 취급하는 성향이 강하다. 예컨대, “기독교는 예수를 안믿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하는데, 만일 우리가 너희들에게 단군 혹은 부처를 무조건 믿어야 지옥에 안갈 수 있다고 협박하거나 강요한다면, 기독교인들 너네들은 기분이 어때?”라는 식인 것이다.
 

   안티 기독교가 진보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
 

   사실 우리가 기존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튼튼한 논리를 기대하기 힘든 것처럼, 정확히 말해서 안티 기독교인들에게도 튼튼한 논리를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다. 실제로 안티 기독교 사이트를 가보면 알겠지만, 이들이 비판하는 주 대상들은 기존 기독교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에 대한 것들이지 그 이상의 깊이로 좀처럼 나아가진 않는다. 예컨대 진보적인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는 비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들 안티 기독교인들은 진보 기독교(안티 기독교인들은 이들을 기독교 개혁파로 이해)에 대해서도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어떤 안티 기독교인은 개혁적인 진보 기독교는 보수 기독교보다 훨씬 더 얄밉고 더 암적인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망해야 하는데, 그나마 망하지 않도록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또다른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안티 기독교인에게 기독교는 망해야만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대상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나 자신이 경험했던 그 안티 기독교인도 나 자신이 소개했던 그 기독교를 믿으려 하지 않았던 그 맥락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들이 진보 기독교를 단선적이고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맥락도 다음에서 엿볼 수 있다.
 

   진보 진영의 경우 그 편차들을 좀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점도 있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아닌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기독교>를 추구하는 흐름들도 있기 때문에 기존 기독교의 해체를 촉구하는 점도 없잖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티 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맥락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나이브함을 엿볼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안을 가지고 해체를 말해야지 해체 자체가 대안이 되긴 힘들다고 본다.
 

   앞서 보았듯이, 안티 기독교인들에게는 진보 기독교가 얄미울 수밖에 없으며 어떻든지 상대하기 손쉬운 보수 기독교를 상대로 해야 그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는 점이 있다. 이들이 비판하는 바이블 내용들이나,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하는 것들은 현대 학문의 축적된 성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진보 기독교인들에겐 전혀 별문제꺼리도 안되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마치 전체 기독교가 몽땅 다 박멸되어야 한다고 부르짖기에 진보측 기독교인들로선 조금 시큰둥하게 나올 수밖에. 실제로도 내가 알았던 주변의 안티 기독교인들도 진보측 기독교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개독교 박멸하는 그 날 진실로 하늘이 열리리라!”는 외침은 곧잘 한다.
 

   시민단체인가? 동호회 클럽인가?
 

   안티기독교 사이트인 반기련은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다. 그렇다면 말그대로 이들은 시민단체의 성격이 강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오히려 시민단체의 성격보다는 오히려 동호회의 성격이 강하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하는 행사들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취지를 알리는 홍보나 기독교인들의 만행과 추태를 알리는 사진행사전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겠다.
 

   반면에 반기련과 다르게 종비련(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 www.gigabon.com)이라는 곳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 본래 반기련을 함께 세웠던 주요 핵심 멤버들이었지만, 다시금 반기련을 나와서 종비련을 형성했던 것이다. 어차피 서로 파당이 이뤄질 때는 워낙 구구절절 뒷얘기들이 많으니까 그러한 의사소통들의 불협화음 문제들까지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진 않겠다. 단지 여기서는 안티 기독교 그룹이라는 반기련과 여기서 다시 나온 종비련이라는 그룹의 차이에 대해서만 지적하고자 한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반기련이 안티 기독교를 표방한다면, 종비련은 종교의 순기능도 인정하는 건강한 종교시민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때 종비련은 단지 종교비판도 허용될 수 있도록 성역 없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종비련 사이트에도 안티 기독교 성격의 글들도 더러는 함께 올라오긴 하지만 그 지향성만큼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차이 하나는 시민단체 운동의 유무이다. 반기련은 시민단체 운동을 한다고 보기엔 힘들만큼 조직적이거나 그러한 점이 희박하지만, 반면에 종비련은 ‘종교인 소득세 운동’이나 ‘종교의 성차별 반대 운동’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종교인 소득세 운동’의 경우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반향이 커서 현재는 재경부에서 검토 중일만큼 정부에 대한 견제와 압박의 효과까지 일궈냈었다.
 

   물론 반기련 자체가 동호회 성격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는 결코 보질 않는다. 단지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라는 그 이름을 볼 때, 이들의 모임을 시민운동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그 성격상 좀 그렇다는 얘기며, 그저 클럽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볼 뿐이다. 차라리 애초 ‘안티기독교까페’나 ‘안티기독교클럽’이라고 이름을 짓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나오며
 

   우리 사회에 안티 기독교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기존 기독교에겐 또다른 기회일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안티 기독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저들이 왜 그토록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엔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안티 기독교를 뭐라고 탓하기는 참으로 힘들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존 기독교가 제대로 똑바로 처신하고 있다면 더 이상 안티 기독교가 지지받기도 힘들뿐더러 그렇게 나오기도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일 기존 기독교인들이 무지와 배타성과 사회적인 부덕의 행태를 보이면 보일수록 오히려 안티 기독교인들은 더욱 기뻐 날뛰며 좋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안티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와 적대적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해서 안티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가 낳은 또 다른 괴물인 것이다. 아마도 ‘괴물’이라는 이 표현을 두고 안티 기독교 당사자들은 기분 나빠할 진 모르나, 그 의미는 기존 기독교의 배타적 폭력성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 박멸주의’ 혹은 ‘기독교 반대’가 자신들의 근본 신념으로서 깔려 있는 한, 거기에 새롭고 건강한 대안 기독교를 말할 자리란 근본적으로는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안티 기독교 운동을 하다가 새로운 대안 기독교를 모색한다고 할 경우, 그것은 안티 기독교에 대한 변절로 취급받을 수 있다. 저들에게 기독교란 그저 안봐도 뻔한 집단일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저들이 아는 기독교의 세계란 너무나 짧기 그지없다. 물론 워낙 한국 기독교의 대부분이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로 지배되어 있는 현실이니 그 부분도 충분히 짐작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안티 기독교가 이제 자신들의 존재 의미나 한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안티 기독교의 존재의의를 기존의 보수 기독교에 대한 반박과 반감 및 이를 통한 카타르시스 제공에 그 존재의의를 둔다면 나로서도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럴 경우 안티 기독교로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만 부여잡은 채 그저 감정의 배설만 뱉어낼 따름일 뿐이며, 그들의 논리가 전체 기독교를 설득하기엔 여전히 미흡할 뿐이라는 사실도 함께 직시되어야 할 것이다. (2007. 2. 13. 크리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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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종파들, 인터넷을 좀먹고 있다 
                              ‘지식검색’ 이용한 이단들의 진리 왜곡 심각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고, 성경말씀을 거짓으로 치장하여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이단들의 활동이 인터넷 공간에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도에 대해 아세요?’라는 말이 한때 유행어로 불릴 만큼 이단들의 적극적인 포교활동은 이미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은 외적인 포교활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안에서의 활동도 매우 전략적이고 치밀하다.


   홈페이지에 이어 지식검색은 이단들이 더 우세


   사이버 공간에서 이단들의 활동은 우선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 매우 활발하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종파를 홍보하는 한편, 거짓된 흑색 진리를 선전하는 도구로 적극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유연한 글 솜씨로 딱딱하고 거친 예전의 이미지를 벗어나, 편하고 낯설지 않은 이미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사이버에서 이단들의 활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전략적이고 공격적인 사이버 포교는 ‘공식 홈페이지’보다는 각 포털 사이트의 ‘지식검색’과 ‘블로그(Blog)’, ‘인터넷 카페’ 등에서 더욱 활발하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의 거짓 진리와 궤변적인 논리를 ‘지식검색’을 통해 교묘히 전하고 있다.


   유명 포탈 사이트들은 예외없이 ‘지식검색’을 활성화하여 많은 정보를 나누고 있다. ‘지식검색’이란 자신이 궁금해 하는 지식에 대해 사이트에 ‘질문’을 올려놓으면 그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이 ‘답변’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포털 사이트의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이다.


   이단들은 이 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질문’을 올려놓고, 자신들이 스스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거짓 진리를 인터넷에 퍼트리고 있다. 예를 들면 ‘○○○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또는 ‘재림 예수를 ○○○라고 하는데 맞나요?’와 같은 형식으로 ‘질문’을 하면, 자신들의 교리를 아주 긍정적인 방식으로 ‘답변’에 올려놓는다.


   지식검색창에 ‘하나님’ 또는 ‘재림’ 등의 기독교적 단어를 이용하여 검색을 하면 수많은 이단 추종자들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일반인 또는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갖고 올려놓은 ‘질문’에 대해 이단들은 거짓된 이단교리로 ‘답변’을 올려놓아 ‘지식검색’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블로그 역시 여러 개를 운영하면서 이단의 교리를 진리인양 말하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이 잘못된 교리에 대해 ‘리플’을 달면 이단들의 공격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올라온다. 또한 지식검색에서 기독교인의 답변 글도 자주 찾아 볼 수 있는데, 기독교인의 답변 글 밑에는 의례 이단들에 의한 ‘악플’이 가득하다.


   여기에 ‘개독교’ 운운 하는 안티 기독교 네티즌들과 ‘다른 사람의 종교를 인정하라’는 종교다원주의적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가세를 하다 보면, 이들의 비난과 반박 공격을 당하던 기독교인들은 ‘뭐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생각으로 논쟁에서 그냥 빠져나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지식검색 안에서 기독교인이 쓴 글이 오히려 ‘거짓 진리’가 되고, 이단들의 글이 ‘진짜 진리’가 돼버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사회적 혼란과 병드는 영혼이다


   이단들의 이런 인터넷 포교활동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거짓 진리로 일관된 글들이 인터넷에 가득하게 되면 무엇보다 ‘진리에 대한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분별력이 부족한 기독교인이나 일반 사람들은 이단의 글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거짓된 글이 다수를 이루어 인터넷을 장악하게 되면, 정확하고 올바른 글은 소외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이단의 글에 의해 젊은이와 청소년들의 영혼이 병들어가고, 결국 소중한 영혼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신앙이 성숙되어야 하는데,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한 이단의 글을 통해 영혼은 더욱 메마르고 피폐해진다. 더욱이 청소년들이 장래 사회에 진출하여 끼칠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말씀으로 진리를 견고히 해야 거짓이 사라진다


   지난해 미국의 한 인터넷 기업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인터넷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조사는 우리나라에서 약 2천5백만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지금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인터넷 속에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바른 정보가 아닌 왜곡된 정보, 거짓으로 가득한 정보가 떠돌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인터넷에 거짓을 걸러낼 수 있는 거름종이를 부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또한 2천5백만 명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거짓과 진리의 구별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기독교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진리를 알리고, 지키는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전도를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인터넷 세상의 청결과 성결을 위한 방법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기독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사이버 감시단’ 같은 것을 운영하여 이단들의 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거짓이 거짓임을 확실히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성령의 검(劍)인 말씀을 가지고 거짓을 쪼개면 된다. 성경 말씀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더욱 견고히 하고, 그 진리를 담대히 전하고, 나눌 때 이단들의 거짓 진리는 뒤로 물러서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인터넷 이용자들은 지식검색이나 블로그 등을 이용할 때 각별히 주의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충분한 준비없이 이단 추종자들에게 허술하게 대처하면 오히려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거짓 논리에 신중한 태도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분별할 수 없는 글이 있을 때는 교회의 목회자나 기독교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도록 해야 한다.


   거짓 진리가 사리지고, 깨끗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인터넷에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2007. 1. 28. 구굿닷컴 / 이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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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슬람 포비아 현상과 문제점, 대처방안을 살펴보는 기획보도 오늘은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이슬람대책활동과 이슬람에 대한 교회의 종합대책 방향을 천수연, 고석표 두 기자가 잇따라 전해드립니다.

[천수연 기자]

한국교회가 이슬람대책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팀 피랍사건 이후부텁니다. 

여기에 이슬람계 외국인 유입이 늘고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 발행이 시도되면서 교계의 이슬람교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습니다. 

조직이 구성된 건 2008년 무렵. 예장통합과 합동총회가 당시 정기총회를 통해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연합단체를 중심으로 대책이가 꾸려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교단에서는 대책위원회를 상설화하는 등 대책활동을 강화하는 분위깁니다. 

[인터뷰] 노재경 목사 / 예장합동 교육국 
"이슬람대책위원회가 그동안은 이단대책위원회 안에 분과로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독립적이고 파워풀한 활동을 할수 없게 구조적으로 돼 있었죠."


이슬람대책위의 주된 활동은 이슬람의 실체 알리기. 세미나 등을 통해 이슬람의 폭력적 종교성과 국내 이슬람화 전략 등을 한국교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전화인터뷰] 김정만 목사 /예장백석 타종교대책위원장 
“취업을 가장해 이슬람화 하려고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결혼과 출산 고지를 점령해서 한국 모든 여성을 이슬람화하려고 대책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활동은 이슬람을 경계하는 소극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국내 무슬림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현수 대표 / 한국프론티어스 국제선교회 
"또 한국사회에서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정체감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이고 때론 정치학적이고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구체적 데이터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예요."

또 국내 무슬림을 놓고 국내선교부와 이슬람대책위가 선교정책과 대응방향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협력적으로 움직일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채성수 편집 서원익] 

[고석표 기자]

2015년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이슬람 인구는 약25만 명. 

전문가들은 그러나 10년 안에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100만 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외국의 무슬림 인구도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 약 72억 명 가운데 무슬림이 약 22%로 약 16억 명.

외신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2001년 무슬림 인구는 150만명, 10년이 지난 2011년엔 280만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80%이상이 기독교인들이라고 알려져 있어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김군이 IS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제2의 김군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무슬림 바로 알기 교육도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무슬림의 확장은 경계하되 이로 인한 공포증 즉 이슬람포비아는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이슬람포비아는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혜롭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이에 따라 신학적, 종교적 편견을 넘어서서 무슬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이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CBS 뉴스 고석표입니다. 

천수연 기자 ⓒ CBS 크리스천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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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최근 들어 우리의 한국 교회가 세계선교 특히 복음의 사각지역, 이슬람의 세계에 깊은 관심과 투자를 확대하여 가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현재에 이슬람이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모슬렘은 12억 즉 세계인구의 20%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인은 전세계의 인구 약6%의 3억4천 불과 하다고 국제 선교정보자료가 보고하고 있고 특히 아시아의 총인구 2/3가 모슬렘이며,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며 선교사의 지원자가 가장 적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저항이 가장 강한 곳이기도 합니다.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 Research 2000년 1월 자료를 보면 지난 30년간 모슬렘의 성장은 약 2억 3천만 명 개신교의 성장은 약 4천만 무려 6배에 달하는 성장을 이루었다. 이슬람 선교 전문가 압둘 메시히는 추세가 계속 된다면 2030년경에는 모슬렘 인구가 세계인구의 3분의 1이나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실에서도 보듯이 이슬람교는 더 이상 중동지역의 지엽적인 종교만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도 이슬람교는 주요 종교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선교단체의 1998년 자료에 의하면 이슬람교도는 현재 미국의 약 5백만명이며, 2000개의 이슬람 조직체가 활동중이고, 이슬람이 유럽선교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영국에는 4백만 모슬렘이 있으며, 91년 통계에 따르면 수도 런던에만 4백여개의 모스크가 있습니다. 국교인 성공회와 카톨릭에 이어 제3의 종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350만의 모슬렘이 있으며, 약 1500개의 이슬람 사원이 있습니다. 카톨릭에 이어 이슬람교가 제2의 종교로 자리 잡았습니다. 독일에는 약 1000개 이상의 이슬람 성전이 있으며, 터어키계와 쿠르드계의 모슬렘이 2백만을 넘어섰습니다. 화란,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칼 등도 더 이상 이슬람의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중앙아시아에 5개의 새로운 이슬람국가(카작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직스탄, 우즈벡기스탄, 투르크메니스탄)가 탄생하였습니다.
IMF가 일어나기 전 1990년대 한국에 입국했던 아시아 사람 수는 200만명이 넘었는데 이들 대다수가 모슬렘들이었습니다. 이들과 결혼한 많은 한국여성들의 모슬렘화는 점점 사회문제화 되고있습니다. 한국의 이슬람은 5개의 모스크와 2개의 문화 센터를 두고 약 4만명의 신도들이 현재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원리주의 색채를 가진 학자, 중산층, 지식인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중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자가 20여명이나 됩니다. 이들의 활동상으로는 1989년 서울 지역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사 교사들을 초청하여 이슬람 역사 바로 잡기라는 모임을 가졌으며,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대우재단이 지원하여 '이슬람 세계의 이해'라는 강좌를 열었습니다. 1989년에는 한국 이슬람학회 총회를 대우 재단 빌딩에서 발족하였습니다. 한국 이슬람의 성장 뒤에는 대우그룹의 지원이 있습니다.

1990년대에 한국 이슬람 중앙회측에서 <선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한국에서의 이슬람을 포교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과 한국 그리고 세계"(1994), "이슬람과 평화"(1995), "이슬람과 다른 이념"(1996), "동아시아의 이슬람-역사와 문화적 조화(1997)" 등과 같은 세미나를 통하여 이슬람이 지식인들에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곧 한국교회의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우리 이웃에게 기도와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2. 이슬람 성장의 요인
가. 내적 성장
a. 자연적 증가.
자연적 증가인 출생율(2.9%)에 따른 성장이 이슬람의 성장 중에 가장 큰 요인이 됩니다. 이슬람교는 산아제한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녀는 알라로부터 오는 축복으로 믿기 때문에 다산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5-6명의 자녀를 두며, 많게는 10명-15명의 자녀를 갖습니다. 이슬람 인구는 연 5천만명 이상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에서는 가족계획 때문에 인구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b. 집단개종
1973년 10월 17일의 석유파동 이후 과거 27년간의 석유의 경제적인 힘에 바탕을 둔 확산은 아프리카 지역과 동남아지역의 인도네시아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을 원조하여서 국가 집단적으로 개종하게 합니다.

c. 지역적 이동 (이민)
중동과 아프리카의 서구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사는 모슬렘들이 유럽과 북미로의 이민이 유럽과 북미의 이슬람 성장의 가장 큰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착하면서 서구인들과의 결혼과 그에 따른 출산의 성장입니다.

d. 기독교에 대한 적대정책과 차별정책
모든 기독교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거의 모든 이슬람 국가는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선교사에게 비자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특히 일부 국가에서는 모슬렘 외에는 어떤 한 관광비자도 허락하지 않는 등의 차별정책으로 선교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이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슬람 국가에서는 기독교인을 사회 공개적으로 핍박하며, 개종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이슬람지역에서 500여 개의 교회가 불태워 졌습니다. 나이지리아에만도 200여개의 교회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나. 외적 성장 (선교전략)
a. 선교전략으로서의 교육 장학금 지급
각국에서 이슬람대학의 장학생과 아랍어 장학생을 뽑아 교육시키는 것으로 이슬람교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학생의 조건 중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자에게 한정하여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슬렘에게 만 지급되는 이 장학금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습니다.

b. 오일 달라의 약 20%를 이슬람 선교에 투자
전세계의 모슬렘들은 [무슬림 세계연맹]과 [이슬람 기금 재단] 등 중동석유자원으로부터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유럽 및 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c. 새로운 21C 세계 이슬람화
70년대 오일파동으로 경제적 이점을 살려서 이슬람의 근대화와 세계화를 외치며 선교에 열기를 더하여 가고 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이슬람의 입지를 강화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 이슬람의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하여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FIAT 자동차회사의 다량의 주식을 리비야에서 가지고있어 유럽에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한국 해외대우그룹인수의 뒤에 어떤 이슬람의 자본가들이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하여 한국 속에도 언제 이슬람의 영향력을 발휘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d. 선교사 양성.
최초의 대학이라 자랑하는 이집트의 알 아자르 대학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코란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하며 모든 과정에 코란을 외우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졸업한 외국 학생에게는 본국으로 갈 때 이슬람의 선교사의 사명을 주지시킵니다.    

e. 영국을 이슬람 선교 전진 기지화.
영국에는 유럽의 지식인을 겨냥해 수 십 개의 이슬람 선교사훈련학교가 영국 전역에 퍼져 있는데 주로 영국교회 건물을 사서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기존 절대 기독교 가치관의 상실로 인한 대체 가치관으로서 이슬람이 호감을 사는 종교가 됩니다.

f. 선교전략.
이슬람 선교초기에는 사회 노동자와 피해 소외 계층을 위한 사업으로, 그리고 선교가 안정된면 (이슬람인이 5%이상이 되면) 후에는 사회 고위층을 상대로 물질과 힘으로 집단개종을 꾀하고 있습니다.

3. 이슬람 근본주의의 부흥
위와 같은 부흥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은 바로 20c에 시작한 이슬람 근본주의 부흥입니다. 모슬렘 사회의 모든 면에 있어서 이슬람 교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종교이며, 문화이며, 언어이며 그들의 구원이며, 그들의 호흡이며, 사회질서이며, 경제원리이며 동시에 통치방법, 즉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와서 이런 위대한 이슬람 신화가 무참히도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발전된 서구의 과학, 기술, 사상 체계와의 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세계가 붕괴한 틈을 타 초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 동안의 이슬람의 패배가 진정한 이슬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주장하며 유럽 문명을 거부하고 진정한 이슬람으로 복귀하면 위대한 이슬람 신화는 재현될 것이라 주장하였습니다.

1970년대의 오일파동 이후 이슬람의 근본주의가 그 경제력을 힘입어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아랍에 도 서구의 자유주의 가치관을 수용해 이슬람 세계도 서구식으로 근대화해야 한다는 조화론이 성행했으나, 오일 달라는 자신들의 자존심을 충분히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이슬람' 또는 '아랍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알라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근본주의가 경제적 정치적 힘을 입고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근본주의는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가 혁명에 성공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고, 각국의 근본주의자들을 크게 고무시켰습니다. 이렇게 근본주의가 이슬람 세계에서 호응을 얻게 되자 자연스럽게 서구에 대한 반감이 증가되었고, 기독교는 서구 침략자와 동일시되어 반대와 박해가 심해지게 되었습니다. 근본주의는 당분간 이슬람국가에서 영향력을 유지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슬람 세계에서 기독교 선교활동이 큰 제한을 받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4. 중동 선교의 현황- 이슬람의 인구별 비율
1. 인구의 99% 이상의 국가
터어키, 예멘, 아프가니스탄, 투니지아, 모로코, 서사하라, 모르테이나, 알제리, 소말리아
2. 인구의 90% 이상의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오만, 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 카타르,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리비아,     세네갈
3. 인구의 50%에서 90%인 국가
이집트, 아제르 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벡키스탄, 카작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직키스탄, 알바니아, 말리, 니제르, 감비아, 기니아, 수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쉬, 에리트리아
4. 인구의 10%에서 50%인 나라
코트딜보이레, 부르키나파소, 가나, 토고, 베닌, 나이제리아, 카메룬, 차드, 에디오피아, 말라위, 모잠비크, 탄자니아, 수리남, 인도, 르완다
5. 인구의 5%에서 10%인 국가
우간다, 케냐, 미얀마,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필리핀, 프랑스
6. 인구 1%에서 5%인 국가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중국, 타일랜드,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구야나, 가봉, 콩고, 자이레, 남아공화국, 마다가스카르

모슬렘 인구의` 대부분이 서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즉 가장 복음을 배척하는 지역인 10/40창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43개국(혹은 지역)에서 절대 다수의 종교이며, 31개국에서는 10% 이상, 다른 49개국에서는 1%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5. 선교전략은?
기독교에 대한 적대정책과 차별정책이 있는 이슬람의 선교지에서의 사역을 하려면 전략이 필요합니다. 입국전략과 만남의 전략, 복음전달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ㄱ. 입국전략은 국가나 사회가 볼 때 입국시의 입국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입국할 수 없습니다.

ㄴ. 만남의 전략은 입국해서 선교지에서 살면서 선교사 자신이 과연 그들에게 누구로 비치는가하는 것입니다. 이상한 사람이 와서 놀고먹는 자처럼 보이면 누가 그 사람과 가까이 하겠습니까?

ㄷ. 복음전달의 전략은 우리가 만나는 이에게 어떻게 복음을 구체적으로 효과적으로 제시할 것인가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보는바와 같이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는 여전히 가난합니다. 내가 그들의 필요를 채울 수가 있나하는 것입니다. 선교를 위해 내가 그들을 필요하여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 그들이 스스로 나를 찾아온다면 얼마나 효과적이겠습니까?

6.한국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투자
20세기에 한국교회를 축복하신 하나님의 뜻이 한국교회를 통하여 세계선교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나 확신합니다. 그럼으로 21세를 사는 저희들은 더욱더 세계선교에 집중하면 한국교회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축복하시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7. 끝으로
제자들에게 주님은 마지막으로 승천하시기 전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처럼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가졌습니다. 이젠 우리가 우리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매년 17만명 이상 복음 때문에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단지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 때문에 이 지구상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관망하고 있기만 한다면 우리가 어디 있는가 하고 순교자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슬람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한국교회 가운데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추수의 밭은 희어져 추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축복하시듯 모슬렘을 모두 사랑하십니다.

오늘날 이슬람도 세계 모슬렘화가 되면 세상의 끝이 올 줄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헌신된 모슬렘은 우리가 선교하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선교할 것입니다.
98년 한국선교사 총 숫자는 약 7000명, 이 중에 이슬람지역에 나간 선교사는 단지 26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한인 교회사역자의 숫자를 제하면 2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이곳의 선교의 필요는 한인 선교사 7000명 모두로도 많이 부족 하지만 랄프 윈터 박사는 1만2천개 미전도종족의 복음화를 위해 최소한 한 종족마다 한 팀을 이뤄 활동할 4명의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4만8천명의 새로운 선교사가 배출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중동의 선교에 대한 계획과 대책, 그리고 선교의 희망을 가지면서 선교사로 나아갈 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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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의 위협 확대와 이슬람을 향한 선교

이 글은 현재 백석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고 오엠(OM)선교회 자문위원으로 있는 이정순 교수(사진)가 본지에 특별기고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가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민항기로 자살폭탄테러를 저질렀다.

 

 이 사건은 그전까지 이슬람에 대하여 무관심한 세계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며 이슬람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 후 2011년 5월 1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고 같은 해 12월 이라크에 주둔 미군 전투병력이 철수하면서, 이슬람과 관련된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2014년 6월 10일 수니파 이슬람 무장단체 IS(Islamic State, 이슬람 국가)가 이라크 제2 도시 모술을 무혈 점령하면서, 우리의 기대가 오판임을 알게 되었다.

IS는 2014년 8월과 9월에 미국인 기자 2명에 이어 영국인 인질 2명과 프랑스인 산악 안내원, 최근에는 일본인 인질 2명을 살해하고, 위협과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 IS는 알카에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IS는 더 이상 중동과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 우리의 이웃인 일본인 살해와 터키에서 시리아로 넘어간 한국인 10대 김 군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IS의 끔찍한 테러 때문에 무슬림을 향한 한국교회의 선교가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IS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위협이 전 세계로 확대되는 이 상황은, 오히려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주신 사역의 기회가 될 수 있다.

1. 시리아 내 기독교 유적지

필자는 2009년 여름방학 동안 시리아, 이란, 레바논을 지역 연구차 방문하였다. 신명기 26장 5절에는 이스라엘의 조상을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 표현하는데, 아람은 시리아를 가리킨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는(성경의 다메섹)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사도 바울이 회심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리아는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고대 기독교 유적지가 산재해 있어, 기독교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나라이다.

다마스커스에 있는 우마야드 모스크는 시리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모스크로, 우마야드 왕조 때 세워진 것이다. 이것이 비잔틴 제국 때에 ‘세례 요한 머리 무덤 교회’로 전환되었고, 아랍 이슬람 시대에 이슬람 모스크로 바뀌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던 중에 하늘에 나타나신 주님을 만나 눈이 멀었던 지점이다. 현지명은 코캅이라고 하며, 사울이 당시에 말 위에서 떨어졌다 해서 ‘바울 낙마 교회’ 또는 ‘바울 회심 교회’가 있다. 다마스커스의 동편은 기독교 구역이어서 현재 교회가 밀집해 있다. 다메섹으로 향하던 중, 강한 빛으로 시력을 잃은 사울이 그곳 교회 지도자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아 다시 앞을 보게 되고, 그곳에는 ‘아나니아 기념 교회’가 있다. 다마스커스에는 또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곳이라고 알려진 장소도 있다.

다마스커스의 북쪽 마룰라(Maalula) 지역은 예수님이 생존했을 당시 사용한 고대 아람어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사용하는 고장이다. ‘성 세르기우스 성당’과 ‘성 테클라 수도원’(CHAPEL OF ST. THECLA)이 있다. ‘성모 마리아 교회’(CHURCH OF ST. MARY)는 현재 아람어로 예배를 이끌고 사제들도 아람어 교육을 받고 있으며, 아람어 성경 필사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알레포(Allepo)는 구약성서 사본 가운데 하나인 ‘벤 아셔’ 사본이 발견된 곳으로, 현재 이슬람 국가인 시리아에서 교회의 수많은 십자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1096년부터 200년간 지속된 십자군운동 기간 웅장한 성채가 50개 세워졌다. 그러나 13세기 말 십자군의 패배와 함께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파괴되었다. 그후 70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한 곳이 시리아의 ‘크락 데스 셰발리엘’(Crac des Chevaliers)라고 불리는 곳이다. 하마(Hama)는 성경에 나오는 옛 아람 왕국의 하나인 하맛 왕국의 수도이다.

 

2.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의 발생 요인

알카에다와 다른 이슬람 단체들조차도 ‘지나친 극단주의’라며 거부한 IS는, 정치와 삶의 ‘종교적 부활’을 주장한다. 2011년까지도 무력한 듯 보였던 이슬람 무장세력이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다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된 원인은, 이라크의 말리키 정부의 소수파인 수니파를 배제한 일방적 독단과 극단적 부패 및 시리아 내전을 꼽는다.

IS는 이라크 서북부와 시리아 동북부 등, 영국에 맞먹는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시리아의 유전을 장악해 원유를 터키 등에 밀수출하고 주민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면서 이슬람식 교육을 강요하는 등 국가 행세를 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인 등 인질을 붙잡아 받아내는 몸값과 석유 판매로 연간 3억 달러(약 3100억 원)의 수입을 올리며, 반군 중에서 최강의 세력이 되었다.

IS는 2006년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로 수니파 거점 지역인 팔루자에서 요르단 출신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에 의하여 결성되었다. 당시 반미 무장투쟁과 이라크 내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내전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이라크의 인구 중에는 시아파가 다수(60%)지만, 건국 이래 정권은 소수파인 수니파(20%)가 독점해 왔다. 미국의 폭격으로 2006년 12월 30일 후세인 사망 후에 선거를 통하여 시아파에게 정권이 넘어갔다. 이슬람 국가에서 시아파가 정권을 잡은 것은 1171년 이후 830년 만의 일이다. 이라크 수니파의 관점에서는 미국의 침공으로 몇 백 년 독점해왔던 정권과 주권을 빼앗기어 반미 저항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었다.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 요르단가 이라크 내전에 동참하면서 내전은 더욱 커지는 양상을 띠게 됐다.

IS는 2014년 6월 10일 이라크의 모술 점령 이전에도 야채 행상, 휴대폰 가게와 건설회사 등 모술 주민 모두에게 월 800만 달러(80억 원)의 세금을 걷었다. 백만(정규군 35만, 경찰 65만) 병력을 갖추고 2011년 이후 416억 달러(42조 원)의 국방비를 지출한 이라크 정부가, 6월 10일 1,300명에 불과한 병력의 IS에 비참하게 패배하여 모술을 빼앗긴 이유는 이라크 군의 부패 때문이다. 이러한 부패는 2005년 미국이 이라크군의 식량 등 군수품을 외주화하면서 발생됐다. 실제 병력 200명을 가진 장교가 병력을 2~3배로 부풀려 식비를 신청해 차액을 가로채는 방식이었다. 부패는 군 뿐만 아니라 정부에도 만연해 있다. 말리키 정부는 측근들에게만 이권과 주요 보직을 주며 이권을 챙겨왔다. IS 발생 요인으로, 시리아 내전은 두 가지 면에서 IS의 급성장을 도왔다. 첫째, 시리아 반군들은 아사드 정권을 붕괴하고자 미국, 사우디와 카타르 등 이슬람 수니파 국가에게서 엄창난 무기와 군자금 지원을 받았다. 아사드 정권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쉬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에 속하며 이란의 동맹국이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는 수니파가 다수파(60%)이므로 시아파를 이단시하는 사우디 등이 시리아 반군를 세력을 적극 지원하여 아사드 정권 제거를 도모하였다. IS는 서방측이 시리아 반군에게 제공한 첨단 무기를 위협과 돈으로 매수, 확보하여 최강의 반군세력이 되었다. 둘째, 이슬람교 내부의 종파 갈등이다. 시리아의 아사드와 이라크의 말리키 정권은 모두 시아파 세력이며 국내 수니파을 탄압하여 왔다. 따라서 수니파 IS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시아파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다. IS의 문제는 이슬람을 지배와 탄압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악용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세계관은 신정일치이다.

 

3. IS에 무슬림과 외국 용병들의 참여 요인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제시카 스턴(Jessica Stern) 교수는 1998년 출간된 『‘최후까지 싸우는 테러리스트(The Ultimate Terrorists)』라는 책에서 ‘테러의 핵심에는 극도의 모멸감과 박탈감이 놓여 있다. 이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테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IS는 시리아·이라크의 도시들을 습격하고 무고한 주민을 집단살해하는 극단적 테러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 뿐만 아니라 서구의 젊은이들까지 참여하도록 노리고 있다. 2014년 6월 10일 모술 함락 당시 6천 명이던 IS의 병력 규모가 9월에는 최대 3만1천5백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이 중 1만5천여 명은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이고, 한국인 출신도 있다고 전했다.

젊은이들과 서구인들에 대한 IS의 유인 방법은 다양하다. IS는 검은 복면을 착용하고 황막한 사막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IS는 자체 제작·발간하는 PDF 파일 형태의 30여 쪽의 디지털 영문 잡지에서 자신들의 설립 목적, 전쟁 이유, 지난 전투 성과 등을, 화려하게 편집된 사진과 이슬람 경전 ‘꾸란'을 인용한 글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IS의 홍보 방식은 다른 테러단체보다 휠씬 더 세련되고 정교하며,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다. IS는 사람들이 IS와 쉽게 접촉할 수 있도록 페이스북, 트위터와 인테넷 등 SNS를 활용해, 이슬람 국가를 세우기 위해 벌이는 지하드에 동참해 달라고 전 세계에서 용병을 모집한다. 특히 높은 청년 실업률로 좌절하는 서방 젊은이들을 이슬람 지하드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있다. IS가 대원들을 모집할 때에, 젊은이들이 쉽게 현혹될 수 있는 물질적 보상을 내세우며 많은 돈과 조직력으로 외국의 젊은이를 유인하고 있다. 이라크·시리아 북부에서 원유를 팔아 연간 3억 달러(약 3,100억 원)의 수입을 올린다. 인질을 붙잡아 프랑스·이탈리아 등에게서 받아내는 몸값도 주요 수입원이다. 이 자금으로 IS 조직원과 가족에게 주택·사망보상금 등 각종 경제적 혜택을 약속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자료에 의하면, IS는 가족복지혜택으로 전투원 결혼 시 1,200달러, 가구 딸린 집, 매월 부인 1인당 100달러, 자녀 1인당 50달러를 제공하며, 사망 시 유족에 보상금 수천 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젊은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SNS를 활용해 효과적으로 전파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채 컴퓨터에 빠져 있는 10~20대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터키에서 실종된 한국인 김모 군(18)은, SNS를 통해 IS를 접하고 지난달 터키 내 시리아 접경에서 IS에 가담하기 위하여 시리아로 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 14세의 두 아들의 엄마이자 1990년대 락 밴드 멤버였던 영국의 중년 여성 존스는, IS에 가담한 뒤 기독교인을 살해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시리아로 건너가 영국 출신 주나이드 후세인(20)과 결혼했다. 둘은 인터넷상에서 사랑을 키웠다. 후세인은 2014년 8월부터 미국인 기자 2명을 참수한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이다.

 

4. IS에 대한 한국교회를 향한 제안

이슬람권을 향한 기독교인들의 헌신과 열정이 헛되지 않으려면 무슬림들을 향한 편견과 오해를 넘어서 이슬람의 교리와 문화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극단주의 무슬림인 알카에다와 IS 등은 전 세계 16억 무슬림 중에 극히 일부분이다. 그들의 소행이 매우 악한 것이지만, 우리는 ‘모든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라는 공식을 적용시켜 무슬림을 무조건 배척하여서는 안 된다.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 :12)”라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악을 미워해야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무슬림들을 향한 복음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 3년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국외로 빠져나간 난민은 30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현재 스웨덴, 이탈리아와 독일 등으로 흩어져 있다. 인접국가인 레바논에 117만, 터키에 84만, 요르단에 60만 명, 이집트에 13만 명이 있다. 이 중에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지혜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한국인 사역자들이 이미 많이 나가 있는 곳들이 많다. 지금이 난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이다. 그 사례로, 2013년 1월 22일 한국 극동방송은 시리아 난민 돕기 생방송을 통해 17억 원 상당을 모금해 2013년 3월 22일 주거용 컨테이너 400채와 생필품을 전달하였다. 그 후 요르단의 자타리 난민촌에서 한국인 사역자들이 그들의 생활을 돕고 있다.

 

IS 공격으로 상처받은 난민들과 이슬람의 테러와 잔혹상에 대하여 회의를 갖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진실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무슬림들에게 물질적인 것은 표면적이지만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방법이므로, 경제적 박탈감과 전투로 폐허된 주택과 공공시설을 재건축하여 준다. 난민촌에 간이학교를 세워 어린아이나 여성들의 문맹퇴치에 힘쓰며,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지하드라는 것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글로써 표현하도록 출구를 열어 주자. 병자와 고아 등을 위해 의사들과 사회복지사를 파견하자. 테러에 관한 SNS나 책자 등을 통하여, 테러는 문제 해결방법이 아니라 또 다른 테러를 일으킨다는 것을 홍보하자. 심리적 안정감, 삶의 목적의식, 천국에 대하여 올바로 알도록 전한다. IS와 전 세계 무슬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며, 시리아와 이라크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특히 현지 한국인 사역자들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성도들에게 이슬람의 정확한 교리를 가르치어, 막연한 두려움이나 고통감을 갖지 않고 이슬람의 실체와 하나님의 관점에서 올바로 바라보도록 힘써야 한다.

현재 하나님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 기회를 무시하지 말고 적극 활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무슬림들에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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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 터키 이야기 ] 제3차 공의회가 열렸던 대도시 ‘에베소’

 

세계 최대의 도시 유적이 남아 있고, 바울의 2~3차 전도여행지였으며, 아데미를 숭배하던 ‘여신의 땅’ 에베소. 옛 역사와 마리아기념교회에서 열린 제3차 공의회에 대한 ‘성지 터키 이야기’ 두 번째다.


한국은 지금 ‘여교주’ 전성시대라고 합니다. 문선명의 뒤를 이은 통일교의 한학자, 안상홍의 뒤를 이은 하나님의 교회의 장길자, 그리고 이만희의 뒤를 이를 것처럼 급부상하고 있는 신천지의 김남희 등이 마치 트로이카처럼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에베소 지역은 예로부터 ‘여신의 땅’이었습니다. 그 여파는 지금부터 약 1500년 전인 AD 431년에 기독교 안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등 에게해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 섬기던 대모신(大母神)인 아데미(Artemis) 신(神)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로 대체되어 버렸습니다. 431년 에베소의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열린 에베소 3차 공의회에서 결정된 교리 때문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 이단사이비들의 여교주 등장과 에베소의 뿌리 깊었던 여신 숭배의 결과가 묘한 동질감 느낌이 있습니다.


에베소의 개관


에베소(Ephesus) 도시 유적은 버가모(Bergama) 유적과 함께 ‘에게해의 두 개의 장미’로 격찬 받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도시였습니다.


신약성서 ‘에베소서’나 요한계시록의 수신지로 소아시아 7교회 중 하나로 등장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 로마제국 시대에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황금기는 기원전 133년,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면서부터인데, 수많은 국제회의가 열리고 각지의 물산이 집합되는 무역 항구이자 동서양을 연결시키는 교통의 요충이었고, 에베소의 최전성기는 AD 1~2 세기경으로 도시 인구가 30만 명에 달하면서, 당연히 초대 기독교인에게도 에베소는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항만을 끼고 번영한 상업도시 에베소가 쇠퇴한 것은 카이스터(Cayster) 강의 토사 퇴적으로 항구가 묻혀져 가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전염병이 도는 등 도시 기능이 점점 저하되어서 현재의 장소(Selçuk)로 도시를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AD 612년의 지진으로 부분적인 파괴를 겪으면서 에베소는 급속하게 기울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2, 3차 전도여행 때 이곳을 방문했고 3차 전도여행 때에는 성령의 강림으로 방언과 예언의 이적이 일어나서 그것을 본 마술사들이 마술책을 불사르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3통의 편지(먼저 쓴 편지, 고린도전서, 눈물로 쓴 편지)를 에베소에서 쓰기도 했습니다.


에베소의 역사


에베소(Ephesus)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리스의 역사가요, 철학자인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에베소 도시는 흑해로부터 건너 온 여인(女人)족인 아마존족이 BC 1,400년경에 마을을 처음으로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인 스트라보는 에베소는 아마존족 언어로 ‘꿀벌’이라는 뜻의 ‘아빠소스’라는 아마존족의 여왕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 후 BC 1,100년경 이오니아인(Ionians)인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레스(Androcles)가 여인들이 다스리는 아마존 토착민들을 추방시키고 에베소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많은 그리스계인들이 척박한 그리스 본토와 섬을 떠나서 비옥한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버가모, 에베소, 서머나 등)으로 대거 침략하여 그리스계 도시들을 건설하였던 시기였는데, 안드로클레스 왕자도 당시의 전통에 따라 새 도시를 세우기 위해 델피의 아폴로 신전으로부터 신탁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생선과 산돼지와 불이 함께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드로클레스는 에베소 지역에 이르러 바다가 인접한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그가 부하들과 함께 생선을 구워 먹던 중에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불똥이 튀어 코레소스(Koressos) 산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숲속에서 산돼지가 달려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곳이 ‘신이 원하는 장소’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그것을 기념하는 ‘산돼지 상’을 건립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바로 에베소 원형대극장이 위치한 언덕 쪽이었습니다.

 

안드로클레스가 그리스계 이오니아 도시 국가를 건설하면서 에베소는 점차 항구 도시로서 발전을 거듭하며 성장하기 시작했고, 후에 페르시아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의 침략,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 제국, 로마 제국, 셀축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등으로 이어지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진출하려는, 반대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진출하려는 세계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여신 숭배


재밌는 것은 에베소는 아주 오래 전부터 대대로 여신을 섬겨 왔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데미 여신 이전에는 대모신인 키벨레(Cybele) 여신을 섬겼고, 키벨레의 또 다른 형태의 아데미(Artemis) 여신이 그 뒤를 이었으며, 재밌는 것은 기독교가 들어온 후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를 비롯한 아나톨리아의 에게해 연안 도시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아스다롯과 아세라 여신을 섬겼던 것처럼, 예전부터 달의 여신인 키벨레(Cybele)라고 하는 여신을 숭배했었습니다. 에베소도 예외는 아니어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키벨레를 전통적으로 섬겨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마존족이 추방되고, 아테네에서 이주해 온 그리스인들은 에베소에 정착하면서 그들이 그리스에서 섬기던 아데미를 아나톨리아로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에베소는 다산과 번성을 주관하며 출산과 갓난아기의 발육을 관장하는 신인 아데미를 숭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에베소를 비롯한 아나톨리아 에게해 인근 도시들은 모신(母神), 즉 ‘어머니 신’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항상 사람들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의 처음 거주자들이 아마존 여인족이었던 것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AD 53~56년)을 하면서 에베소에서 약 3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에베소 시민들이 아데미에 대한 신앙심이 떨어지면서 은으로 만든 아데미 상의 판매 부진으로도 이어지기도 했지만, ‘은장색 조합’(Guild)의 폭동이 일어나고 네로 황제를 비롯한 이후의 황제들의 기독교 탄압과 박해가 시작되면서 기독교는 위기를 맞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데미를 숭배하는 신앙은 더욱더 활발해졌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로제 제국에서 박해를 가하면 가할수록 제국 내에 더 깊이 더 넓게 뿌리를 내리며 퍼져갔습니다. 바울이 제국 내에 기독교 복음의 씨앗을 심은 후 약 250년이 지난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따라 마침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지정되었으며,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테살로니키아 칙령’에 따라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지정되기에 이릅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에는 그동안 지하에서 제국의 박해를 피해 몰래 예배를 드리며 숨죽여 왔던 기독교가 이제는 지상으로 올라와서 웅장하고 아름답게 교회 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리며 나래를 활짝 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체로 퍼져가며 외면적으로 성장을 해 갈 때에도 아나톨리아의 에게해 인근 도시의 시민들은 항상 예전부터 그들의 조상, 조상들의 조상 때부터 섬겨오던 여신(女神) 혹은 모신(母神)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계속 그들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습니다. 복음을 영접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신을 향한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던 욕구와 욕망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431년도에 에베소 마리아기념교회에서 있었던 3차 에베소 종교회의가 그것입니다.

 

에베소 3차 공의회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정식 종교로 공인받은 후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와서 제국의 메이저급 종교가 되어가면서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내홍을 겪습니다. 주된 이슈는 바로 예수의 신성과 관련되어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믿고 있는 ‘삼위일체’(Trinity)라든가, ‘성육신’(Incarnation) 같은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도 그 당시에는 가장 뜨거운 감자였고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이슈였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 논쟁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327년에 1차 공의회가 니케아(Nicea, 현재 이즈닉)라는 곳에서 열려서 ‘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동일 본질’이라는 교리가 확정 되었고, 381년에는 2차 공의회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재 이스탄불)에서 개최되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신성에 관한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마리아는 누구인가?’에 대한 주제를 놓고 3차 공의회가 431년에 에베소에 있는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개최된 것입니다.


당시는 성모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던 때라 교우들이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으신 분’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사실 이 존칭은 그리스 교부들이 자주 사용해 오던 관용어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이란 뜻의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의 논리인즉, 예수는 신격과 인격을 갖춘 분인데, 성모는 인간 예수를 낳으신 예수의 어머니지 결코 신(神)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키릴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한 위격으로 합치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데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안디옥 학파의 대표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렉산드리아 총 대주교 키릴 간의 그리스도론 논쟁을 종식시키려고 431년 6월 7일 성모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공의회를 열어 네스토리우스를 출교시키고 마리아에게 ‘하나님을 낳은 어머니’라는 뜻의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존칭을 드리기로 결의했습니다. 출교된 네스토리우스는 이집트로 유배되었는데, 436년 사막에서 쓸쓸하게 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동일 본질이다’라는 명제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사고의 지평을 의미 없는 마리아에게까지 넓힌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신성의 원천이 되었다는 해석에서 마리아가 예배의 대상이 되었고 마리아 숭배사상이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3차 에베소 공의회를 통하여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했던 것입니다.


에베소 공의회의 결의가 <테오도시우스 법전>에 수록되어 로마 국법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단순한 예수의 어머니가 아닌, 그 이상의 신적 능력을 소유한 분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키릴이 정치적인 수완이 네스토리우스 보다 뛰어났는데, 그 능력을 가지고 황제 및 다른 주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관철시키고 자신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던 네스토리우스를 출교시키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일까요? 필자는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상기했듯이 에베소를 비롯한 에게해 연간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여신을 숭배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어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 마음 속에는 여신에 대한 마음이 항상 남아 있었는데, 이 부분은 기독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 점이 불만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키릴이 여신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혹은 본인의 제국 교회에서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 아니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 포교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마리아를 전면에 내세워 마리아의 신성에 관한 것을 이슈로 부각시켜서 이 안건을 에베소 공의회로 가져가고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마리아 숭배 교리를 통과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에베소 지역에 아마존 여인족이 처음 터를 잡은 후로 전통적으로 여신인 키벨레를 섬겨왔고, 그리스 이오니아인들이 점령한 후에는 키벨레에서 그들이 섬겨오던 아데미로,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로 공인된 후에는 아데미에서 마리아로 여신의 계보가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3차 공의회가 열렸던 장소도 여신에 대한 감성이 가장 큰 에베소였고, 에베소 중에서도 마리아 기념교회를 공의회 장소로 잡은 것도 어떤 의도가 배후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3차 공의회를 통하여서 로마 제국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간 예수의 어머니’를 넘어서, ‘하나님을 낳은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지위가 수직 상승되어 본인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개신교와 가톨릭이 하나가 될 수 없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교회적으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 때 일수록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이단과 사이비는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적용시키는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믿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신앙생활만이 우리 자신과 가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서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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