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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금융의 한국진출과 이슬람세계화 / 이슬람 채권 수쿠크 샤리아위원회


서동찬 글/한반도 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처: 개척정보, 2011년 2월호, pp. 15-20


한국에도 이슬람금융 진출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와 국내금융, 기업은 자금조달 창구를 다양화하고 중동의 오일머니를 유치하기 위해 2009년부터 이슬람채권 발행을 추진해 왔다. 비록 2010년 1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조세특례제한법(수쿠크/Sukuk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곧 올 2월 임시국회에서 또다시 입법화가 시도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침투하는 이슬람금융에 대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한국 사회에 설명하고 설득하고 소통해야 할 것인가?


이슬람 채권(수쿠크)은 이슬람 국가들의 독특한 금융기법으로서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이자를 받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때문에 이슬람 자본은 율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실물 투자 형식을 빌려 대출이나 투자를 한다. 실례로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권이 주택자금을 빌려줄 때 통상적으로 직접 자금을 대출해 주고 거기에서 이자를 받는다. 하지만 이슬람권에서는 해당 주택을 금융권이 직접 매입한 뒤 채무자에게 집을 빌려주고 원리금 대신 사용료를 받는 식이다. 따라서 이슬람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들은 거래 과정에서 자산 매매와 임대에 따른 양도세와 취득, 등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외화표시채권을 발행할 때보다 금리가 4%가량 높아진다. 따라서 수쿠크 법안은 이슬람 채권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 국내 기업들이 다른 외화표시 채권과 똑같은 조건으로 이슬람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서울경제신문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회의원 25명을 대상으로 수쿠크 발행 조세특례에 관한 입장을 전화로 전수조사(全數調査)한 결과 과반이 넘는 14명이 찬성했다. 찬성측 의원들의 종교를 보면 윤○○의원만 기독교였고 나머지 대부분 천주교나 무교였다고 한다. 조사 결과 찬성 의원들은 "외화 차입선 다변화와 중동 오일달러 유입 효과가 기대된다"는 입장인 반면 반대 의원들은 "이슬람에 대한 특혜인데다 테러 자금으로 일부 유입될 우려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실제로 이슬람 금융의 유치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서 기존에 제기된 주장을 정리하자면, 첫째, 서구자본, 유대인자본, 화교자본, 일본자본과 다른 형태인 이슬람자본을 유치함으로써 자본의 유치를 다변화하고 금융위기 상황에서 안정성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총 1조달러 규모밖에 아직 안되지만 이슬람금융은 헤지펀드/hedge fund와 달리 실물거래를 매개로 하고, 일반채권처럼 이자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에 대한 배당금을 나누기 때문에 훨씬 위험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일반채권이 이자와 배당금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것과 달리 수쿠크는 실물자산의 운영에 따른 수익금을 배당하는 형식을 취한다. 또 '이자라 수쿠크'일 경우 채권을 발행하여 이슬람 투자자를 모으고, 그 투자금으로 실물을 구매하고, 일반에게 임대형식으로 주어 임대료를 받아서 그것을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셋째,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처럼 한국의 중동시장에 대한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우리의 이슬람금융 개방이 중동지역에서의 한국 진출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금융을 한국사회에 허용하는 것은 보다 복잡한 변수들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금융을 통한 세계 이슬람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자유로운 금융자본 이동이 활발해지고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시대의 대세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헤지펀드와 같이 주권국가의 안보를 뒤흔드는 금융세력은 위험하다. 아무리 해외 자본유치가 중요하지만 마피아 자금과 같은 지하경제를 유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허용할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이슬람 금융의 세계 최대 자금 출처가 어디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아시아 이슬람 금융은 말레이시아를 거점으로 운영이 되지만 실제 자금 원천은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이후로 막대한 달러 수입원을 거머쥐었고, 그것의 운영을 미국과 영국계 은행에 유치했다. 1971년 미국 닉슨 정부 시절 브레턴 우즈 체제가 종말을 고하면서 금본위 달러제에서 석유 본위제로 바뀔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달러 수입원을 미국과 영국계 은행에 입금하기로 전격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차츰 거세지는 국내의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의 압박을 받으면서 이슬람식으로 금융을 운영하게 된다. 이슬람에서는 이자수입(리바)을 금지하기 때문에 일반 은행보다는 이슬람식 금융기법을 가진 특수은행에 자금을 유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에서는 수익의 2.5%를 자카트/zakat라고 해서 반드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자카트 자금은 대부분 이슬람 전파와 이슬람 사회운동 펀드로 운영이 되고 있다. 즉 이슬람 은행은 순수한 자본 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만이 아니라 국가의 이슬람화 운동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의 특이성을 고려한다면 순간의 경제적 이익만을 고려한 정책결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 왕가라는 정치세력과 와하비즘/Wahhabism이 결합되면서 형성된 국가이다. 와합/Muhammad ibn Abdul Wahab이라는 인물은 1800년대 오스만 제국의 쇠퇴의 원인을 이슬람의 타락에서 찾았고, 당시의 수피즘/Sufism(수피 성자를 숭배하는 이슬람의 종파)을 이슬람 신앙(유일신 신앙 - 타우위드)을 위배한 우상으로 지목하며 그런 수피즘 계열의 무슬림을 불신자(카피르)로 지목하고 척결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사우디 왕가라는 정치세력을 만나면서 이러한 와하비즘은 국가화 되었다.


1930년대 석유가 발견된 이후로 미국은 중동에서의 소련 세력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중의 이슬람화를 이용했다. 이슬람이 서구와 동일하게 무신론인 사회주의를 공격하고 또 사회주의의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식 와하비즘은 이슬람 분파 중에서 가장 원리주의적인 계열로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도 와하비즘의 영향을 받아서 성장한 세력이라 할만큼 급진적이다.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왔을 때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중심으로 난민촌이 형성되었고, 그들을 대상으로 이슬람기숙학교(마드라사)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이슬람 교육을 시키고 소련을 반대하는 지하드에 투입시켰던 그 자금의 출처는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 펀드이다. 또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세력이 지금의 탈레반이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는 모두 와하비즘이라고 부른다. 이런 나라에서는 이슬람 사원에서 잉맘이 설교를 하면 정보기관에서 감시를 하는데 와하비스트들이 설교를 하거나 그런 종류의 메시지가 나오면 설교자를 즉시 체포해 간다. 이처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에서 경계하고 주의하는 것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이다.


특히 사우디의 금융자본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1928년에 시작된 대중적인 이슬람 시민사회 운동으로서 이집트에서 낫세르를 도우면서 왕정을 몰아내고 아랍 민족주의 정권을 창출했지만 낫세르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들의 급진성을 문제삼아 불법화시키자 전 세계로 흩어졌다. 마침 이들이 주로 흘러 들어간 곳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금융계이다. 그들은 주로 학교와 은행에 침투하여 금융업을 이슬람화 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이슬람 NGO의 자금을 지원하는 핵심 세력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포함하여 요르단,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의 이슬람 NGO들의 뿌리는 모두 무슬림형제단이며, 그 배후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오사마 빈라덴의 경우도 중학생 시절 사우디의 무슬림형제단 소속이었던 한 체육교사를 통해서 원리주의 무슬림으로 거듭났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는 주로 이슬람 국제회의기구 OIC(Organization of the Islamic Conference)를 통해서 세계의 이슬람화를 추진하고 있다. 와하비즘은 사우디식 이슬람 교육을 전 세계에 유포하기 위해서 교육자료를 체계화하여 보급하고 교사를 훈련시키고, 또 정식 학위를 수여한다. 막대한 자카트 자금을 통해서 외국으로부터 엘리트들을 자국에 유치하여 와하비즘 이슬람을 이식시키고 있다.

 

 


나. 이슬람 금융은 내부 식민지 전략


서구식 금융이 아닌 샤리아에 근거한 금융 기법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슬람원리주의이다. 이슬람의 세계관은 지구를 '이슬람의 땅(Dar al-Islam)' '전쟁의 땅(Dar al-Harb)'으로 구분한다. '이슬람의 땅'은 이슬람 샤리아법이 통치되는 곳인데 비해 '전쟁의 땅'은 이슬람의 알라가 아닌 가치가 지배하기 때문에 평화가 없이 전쟁과 혼돈으로 가득하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이슬람의 글로벌 아젠다는 전 지구촌의 '전쟁의 땅(다르 알 하르브)'을 '이슬람의 땅(다르 알 이슬람)'으로 정복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슬람 금융이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 금융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면 한국법의 개정작업을 통해 이슬람적 가치의 합법적 상륙을 시도할 것이다. 수쿠크 채권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대기업보다는 자금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에서 이슬람 펀드 유치가 활성화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쿠크 발행을 비롯한 모든 이슬람 금융은 은행 내부에 샤리아위원회를 설치하여 그곳에서 이슬람법적인 요건을 갖추었는지 심사하여 승인을 받게 되어 있다. 즉 무슬림 이맘들로 구성된 샤리아위원회가 이슬람 자본 소비자와 투자처의 적격성을 심사하고 승인해야만 매매 활동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자본의 유치를 원하는 기업은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준수하고자 할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와하비즘 전파를 경제적 손익보다 우선시 한다. 이집트 야당 타감무의 사무총장 리파아트 엘 사이드의 말에 의하면, 1993년 사우디는 무바라크 정부에 이집트의 이슬람화를 추진하면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집트에서는 이슬람 펀드 투자기관은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에게는 손쉽게 융자를 해 주었고, 그중 하나인 '알 라얀'은 베일을 착용하는 여학생들에게 월 용돈 15 이집트 파운드(5달러)를 지급하기도 했다. 이슬람 은행은 어디든지 샤리아 법정을 세워 그곳 사람들이 이슬람을 실천하면 재정을 지원한다. 비록 한국이 수쿠크 발행이 유리하게 법규정을 완화한다고 해서 중동의 오일 머니가 서방 국가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가지 않고 한국으로 향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지만, 갈수록 팽창하고 있는 이슬람권 출신 노동자의 유입으로 한국 사회에 이슬람의 실존이 엄연한 사실로 인정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슬람금융까지 들어온다면 한국 사회는 유럽처럼 이슬람 문제로 큰 홍역을 겪게 될 것이다.


다. 이슬람 금융과 테러리즘


9/11 테러 이후 이슬람금융은 서방 세계에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슬람금융과 테러그룹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실체가 확인되어 있고, 점점 당국의 감시와 검열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슬람금융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점차 투자를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슬람금융의 개척자이며, 사우디 왕가의 재정을 관리하는 DMI(Dar al-Maal al-Islami Trust)의 총재인 사우디 왕자 무함마드 알 파이잘 알 사우드(Muhammad al-Faisal al-Saud)는 2005년까지 9/11 테러 유가족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우디는 이 거대한 은행재벌을 수단으로 이슬람원리주의를 확산하는데, 이 DMI 자회사 중의 하나가 수단의 알 샤밀 이슬람 은행이다. 2001년 9월까지 빈라덴은 타다몬 이슬람 은행, 파이잘 이슬람 은행, 그리고 알 샤밀 은행, 3개 은행을 통해 알카에다 부하들에게 돈을 송금했다. 또 사우디 왕가의 자금은 전 세계 15개 나라에, 23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달라 알 바라카 DAB를 통해 세계로 유입되고 있는데 그 거래액의 2%는 자가트로 공제되어 자선단체에 보내지고 있다. 그 단체 중에는 물론 이슬람 테러그룹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자카트는 회계 장부에 기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9/11 테러범 람지 유세프는 메카에서 파키스탄으로 성수 유통회사로부터 자가트 자금 일부를 받았다. 사우디 왕가 6천명에 이르는 왕자들의 6천억 달러 수입에서 자가트는 2%로 계산해도 120억 달러에 이른다. DMI와 DAB, 그리고 9/11 테러 직전에 폐쇄된 미국 최대의 이슬람 은행 BCCI(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ernational)처럼 많은 이슬람금융자본은 깨끗한 돈이 아니라 테러 단체들과 관련되어 있다. (*BCCI는 파키스탄 사업가 하산 아베디가 설립했고, 73개국 400개 지점을 가진 세계 최대 이슬람 은행으로 사우디 왕가 주거래 은행인 내셔널 커머셜 은행 창립자의 아들인 칼리즈 빈 마루즈가 총재이다. 사우디 왕가에서 나온 돈은 이 은행 비밀계좌를 통해 나카라과 콘드라스, 앙골라 우니타로 흘러갔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이란-콘트라 자금거래와 사우디의 중국산 실크웜 미사일 구입도 이 은행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졌다. 실질 운영권은 파키스탄 카라치의 무슬림들에게 있다.) 뿐만 아니라 마약과 헤로인, 무기 판매를 통한 자금, 독재정권의 검은 돈이 세탁되는 과정 속에서 이슬람 은행 네트워크가 활용되고 있다. 9/11 테러 전 몇 달 동안 항공업, 보험업 등에서 풋옵션(특정한 시점에 정해진 이자율로 수익금을 지급하는 채권) 거래가 평소보다 280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는데 분명치는 않지만 일반 금융 시스템 속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금융권이 테러에 대한 내부 정보를 알고 움직였을 가능성도 있다.

 

만일 한국 사회가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에 동조하여 이슬람 지역에 대한 정치 군사적인 압박 정책에 참여하는 정도가 깊어지며, 동시에 이슬람금융이 세계화의 기류와 함께 금융자본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약화된 틈을 타 한국 사회에 진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 사회를 9/11처럼 공격하면서 동시에 기존에 한국에 투입된 이슬람금융 자산을 일시에 철수하는 헤지펀드와 같은 작전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이슬람권 이민 2세 아이들이 사우디 와하비즘 교육네트워크 속에 들어가 극도로 원리주의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이들이 성인이 되는 2020년 정도가 되면 한국 사회의 이슬람 상황은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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