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선포한 말씀

 

필자가 어떻게 답을 해야 할 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아랍교회 담임목사가 “그렇다”라고 서둘러 답을 하였다. 그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그 모임 분위기가 아주 어수선하게 되었다. “그렇다”라고 답을 하면, 세대주의가 되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개혁/언약신학이 된다. 그 목사는 이집트 장로교회 산하 카이로복음주의신학교 출신으로 그의 교단 소속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은 개혁/언약 신학이 아니라 세대주의 신학이었다. 세대주의는 성경예언 성취의 주인공을 야곱의 피를 이어받은 혈통적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혁/언약신학은 그 주인공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라고 한다. 그리하여, 세대주의는 개혁/언약신학을 대체신학이라고 비판을 하고 있다. 성경예언성취의 주인공이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인데 개혁/언약신학이 그 주인공의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로 대체시키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히 안타깝게도, 중동의 개신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그들이 속한 교단의 신학 노선과 상관 없이 세대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이른바 이스라엘 회복 운동에 연루된 자들이 많다. 그들은 국가 이스라엘이 세워졌고, 그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도 탈환하였으니, 이제 예루살렘 성전건축에 대한 예언도 곧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동의 개신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이고, 이스라엘과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판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르단의 최초 선교사는 로이 위트만(Roy Whitman)이다.그는 14세에 교회의 휴거에 대한 설교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훗날 아랍권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21세의 나이에 예루살렘에 왔고, 22세의 나이에 당시 요르단의 수도인 쌀트에 왔다. 그가 요르단에서 사역하던 중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1948.5.14)그는 이스라엘 건국 사건을 성경 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는 가롯 유다가 결코 존경을 받을 수 없지만, 그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의 역할만큼은 성경예언의 성취적 사건이 되었던 점을 그의 교우들에게 상기시키시며, 이스라엘의 건국사건에 대한 성경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라는 그의 해석을 정당화시키곤 하였다.

이사야 19: 23-25은 ”앗수르인들과 이집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하나가 되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해서 성취되기 시작하였음이 분명한다.

 

사도행전 15:39에 따르면, 바나바는 바울과 다투고 난 다음에, 그의 조카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마가는 구부로를 거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다. 또한 다른 제자들이 앗스르인들에게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의 그 예언의 말씀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사건 이전에는 성취되지 못하였다가, 건국 사건 이후에야 마침내 성취되기 시작하였다고 해석하는 가운데, 그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랍 교회의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세대주의에 기초한 아랍 기독교인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라는 말씀에서 ‘그의 나라’가 곧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재림하셔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함으로 회복시킬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회복되는 이스라엘이 곧 이른바 천년왕국이라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은 1948년의 이스라엘의 건국이나 1967년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탈환은 그 왕국의 전초적 단계가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는 말씀도 친이(스아엘)파의 길을 걷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는 심히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곧 이 시대에 그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적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은 그 성전 터가 있는 동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게 양보할 수는 없는가? 팔레스타인 뿐만 아니라 전 이슬람 세계가 결코 양보할 수가 없다고 한다.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성전 터의 바위 돔 사원에 있는 “바위” 때문이다.

성전 터에는 바위 돔 사원과 더불어 알아끄사 사원이 있다. 편의상, 그 두 사원은 알아끄사 사원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그 “바위”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알라 이외는 다른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메신저)이다”라는 이슬람의 샤하다, 즉 신앙 고백문이 그 “바위”와 더불어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비록 그의 몸은 메카에 있었지만,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 터의 “바위”를 발판으로 하여 천국에 오르게 되어 알라의 최대 사도로 인침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메신저)이다’라는 내용이 이슬람의 신앙고백문에 포함되었다.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를 행하기 약 2년 반 전인 1998년 2월 23일에 자신을 포함한 5명의 이름으로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세계 이슬람 전선 선언문”(Jihad Against Jews and Crusaders/WorldIslamicFrontStatement)을 발표하였다.     

출처 : 정형남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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