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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는 어떤신 인가?

 

 

 

 

세계 교회 운동은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운동은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주제를 기반으로 세계 종교의 형식을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루려 한다.

과감하게 신앙에 대해 모슬렘과 논쟁을 하려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관용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이슬람의 교리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관용을 죽음으로 단죄할 죄로 여긴다.

이런 기독교적 관용은 소심함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특히 “알라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슬람의 참고 도서 이슬람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알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나님. 모슬렘과 기독교인, 유대인들이 섬기고 있음.” 이것은 알라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동일시 하는 오류이다.

‘알라’ 또는 ‘하나님’이란 제목의 한 이슬람 사전은 성경의 하나님이 다른 종교에서 섬기는 신과 동일하다며, 히1:1의 말씀을 인용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설사 이 언급이 유대인과 기독교, 모슬렘 예언자들을 말 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오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불교의 교리대로 달라이 라마를 윤회한 하나님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알라’라는 이름은 과연 어떻게 유래되었는가? 아라비아에는 한 때 수 많은 다른 신들, 영혼들, 악령들을 믿는 신앙이 존재했었다. 그들의 신전은 돌, 나무, 샘이었으며, 그곳에서 번제와 희생 제사를 올렸다. 뱀은 예언자들이 예언을 받게 하는 매개체로 사용되었다. 이는 뱀에게 영혼이 내재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고대 아랍어로 뱀을 사이타 즉, 사탄이라고 부른다.

주후 622년 모하메드가 이슬람 종교를 선언하기 전인 이슬람 이전 시대에는 아라비아에 360개 이상의 신들이 있었다. 각각의 부족들은 자신들만의 수호신을 섬겼다. 따라서 모하메드의 부족도 360개의 신들 중 자신들의 신인 알라와 더불어 카바라는 신성한 검은 돌을 가지고 있었다. 모하메드는 당시 작은 마을 메카에 거주하는 쿠라이쉬 부족에 속해 있었다.

모하메드는 부족간의 반목을 보고, 다른 신들 가운데 자신의 부족신인 ‘알라’를 높이겠다고 맹세했다.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인 주후 610년, 모하메드는 더 높은 임무를 위한 소명을 받았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금식을 하는 모슬렘의 거룩한 달인 라마단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모하메드는 다른 부족들의 신들을 정복하는 거룩한 전쟁, 지하드의 소명을 받았다고 느꼈다. 마지막 부족신을 무찔렀을 때, 그는‘알라 후아크바르!’라고 외쳤다. 그것은 다른 360개의 우상들 보다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의미로, 알라는 많은 다른 신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 때가 모하메드가 알라를 성경의 하나님인 야훼와 동등하게 올려 놓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후 곧 모슬렘은 구약과 신약을 초기 이슬람 문서로 명시했다. 그들은 출처 자료를 모방하고 왜곡했고, 그 위조 문서를 코란, 즉 ‘신의 유일한 말씀’이라고 칭했다. 그 후 전세계가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거룩한 전쟁을 시작했다.

오늘날 ‘알라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신학적 질문 일뿐 아니라, 점점 더 정치적인 질문이 되고 있다. 서방 언론과 정치인들은 흔히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마찬가지로 ‘알라’를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어 이름인 엘로하 (복수: 엘로힘)의 언어학적인 어형 변화라는 주장은 문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또한, 알라의 99개의 이름과 함께 그의 본성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본성과는 비교될 수 없다. 알라는 ‘자비의 신’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 본성은 정반대이다. 수라 9:80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당신이 그들을 70번 용서하더라도, 알라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반면 마18:22에서 예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랍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르지 않는다. 알라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대항해 싸우는 이슬람 종교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주님’이라는 뜻인 라브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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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두교도 순례자들 )

 

힌두교란 무엇이며, 무엇을 믿는가?

힌두교는 가장 오래된 조직화된 종교 중 하나입니다. 그 종교의 경전은 기원전 1400-1500 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또한 수백만 개의 신을 가지고 있는 가장 다양하고 복잡한 종교 중 하나입니다. 힌두교도는 다양한 핵심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다른 종파로 존재합니다. 힌두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종교이고 인도와 네팔에 주로 존재합니다.

힌두교의 주요 책자는 베다(Vedas)(가장 중요하게 여겨짐), 유페니샤다(Upanishdas), 마하바라다(Mahabharata) 및 라마야나(Ramayana)입니다. 이 글들에는 힌두교도가 그들의 신앙을 두는 찬송, 주문, 철학, 의식, 시 및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 사용되는 다른 책자들은 브라마나(Brahmanas), 수트라(Sutras), 그리고 아랴나카(Aranyakas)가 있습니다.

힌두교는 종종 3억 3천만 개의 신을 인식하는 다신교로 이해되지만, 최고의 하나의 신 브라마(Brahma)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브라마(Brahma)는 우주 전체의 존재와 실체의 모든 부분에 거하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브라마는 무 인격적이고 알 수 없는 존재이며, 흔히 브라마(창조주), 비쉬누(보존자), 쉬바(파괴자)의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브라마의 이러한 “양태들”은 또한 각 양태의 또 다른 많은 화신들을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다양한 힌두교 학교가 거의 모든 다양한 신학 체계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힌두교 신학을 요약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힌두교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원론적 - 오직 한 가지가 존재함. 산카라 분파

2) 범신론적 - 하나의 신성한 존재만이 있기 때문에 신은 세상과 동일함. 브라만교

3) 만유내재신적 - 세상은 신의 일부이다. 라마누야 분파

4) 유신론 - 창조와 구별되는 단 하나의 신. 바티 힌두교

 다른 분파들을 관찰하면 힌두교는 또한 무신론, 이신론, 심지어 허무주의도 있습니다. 그러한 다양성이 "힌두교"라는 제목 아래에 포함되어 있다면, 무엇이 가장 먼저 "힌두교"가 되도록 하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하고 유일한 관건은 신앙 체계가 베다를 신성한 것으로 인정하는지의 여부입니다. 인정하면 힌두교도이고 그렇지 않으면 힌두교도가 아닙니다.

베다는 신학 서적 이상의 것입니다. 그 책자들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하나님-신화”(theo-mythology), 즉 신화와 신학과 역사를 의도적으로 엮어서 이야기 형식의 종교적인 뿌리를 이루는 종교 신화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신화"는 인도의 역사와 문화에 깊게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베다를 거부하는 것은 인도를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므로 인도 문화를 어느 정도 받아 들일 수 없다면 그러한 신앙 체계는 힌두교에 의해 거부됩니다. 만일 그 신앙 체계가 인도 문화와 인도의 ‘하나님-신화’ 역사를 받아들인다면 그 신앙 체계는 그 신학이 유신론, 허무주의 또는 무신론이라 할지라도 "힌두교"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상충되는 모순에 대한 이러한 개방성은 종교적인 견해에 있어서 논리적인 일관성과 합리적인 옹호를 추구하는 서양인에게 머리 아픈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평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삶으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무신론적인 삶을 산다면 이것 역시 더 이상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힌두교도의 문제는 참으로 논리적인 모순이지만,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위선이 더 큽니다.

힌두교는 인류를 신성한 것으로 봅니다. 브라마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힌두교는 모든 사람이 신성하다고 확언합니다. 아트만, 즉 자아는 브라마와 하나입니다. 브라마 외의 모든 현실은 단순한 환상으로 간주됩니다. 힌두교도의 영적인 목표는 브라마와 하나가 되어, "개인적인 자아"의 환상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이 자유는 "해탈"(moksha)이라고 불립니다. 해탈이 성취될 때까지 힌두교도는 그 진리(오직 브라마만 존재하고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의 자아-실현을 향해 수고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윤회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환생하게 되는지는 카르마에 의해 결정됩니다. 카르마는 자연의 균형에 의해 지배되는 원인과 결과의 원리입니다. 과거에 행한 일은 과거와 미래의 삶을 포함하여 미래에 일어나는 일까지 영향을 미치고 또한 연관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개요일 뿐이지만 힌두교는 거의 모든 신앙 체계에 있어서 성경적인 기독교에 반대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인격적이신 한 분 하나님이 있고(신 6:5; 고전 8:6), 한 권의 성경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땅과 그 위에 사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며(창 1:1; 히 11:3),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오직 한 번 살수 있다고 믿고(창 1:27; 히 9:27-28),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요 3:16, 6:44, 14:6; 행 4:12). 종교 시스템으로서의 힌두교는 예수님을 유일하게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자 사람이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한 전적으로 유일한 원천이신 구세주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 수 없습니다.
출처: https://www.gotquestions.org/Korean/Korean-hinduism.html

힌두교 : Hinduism  /힌두교도 : Hindu (Hindus)
힌두교사원 : Hindu temple  / 힌두교 경전 / Hinduism scrip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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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무엇이며 불교도들은 무엇을 믿는가?

불교는 지지자들, 지리적 분포 및 사회 문화적 영향 면에서 대표적인 세계 종교 중 하나입니다. 불교는 대체로 ‘동양’ 종교이지만, 서구 세계에서 점점 대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업보(원인과 결과 윤리), 마야(세상의 환상적인 특성), 윤회(환생의 주기)를 가르치는 점에서 힌두교와 공통점이 있지만 나름대로 유일한 세계종교입니다. 불교도들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Siddhartha Guatama, 석가)는 주전 600년경 인도에서 왕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바깥 세상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채 화려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종교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하였고 통증과 고통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피난처는 어느새 침투되었고 그는 노인, 병자, 시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네 번째로 본 사람은 평화롭게 보이는 수도승(사치와 편안을 거부한)이었습니다. 그는 수도승의 평화를 보고는 자신도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금욕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해 부요하고 풍성한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자기 고행과 강도 높은 명상에 능숙하여졌습니다.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노력은 하나의 마지막 몸짓으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는 한 그릇의 쌀에 자신을 몰입한 다음 무화과 나무(또는 보리수 나무라고도 불립니다) 아래 앉아서 "깨달음"에 도달하거나 또는 노력하다가 죽으려고 명상하였습니다. 그는 고행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깨달음을 얻은 자” 또는 “부처”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이미 그에게 큰 영향을 받고 있던 동료 수도승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동료 다섯 명이 그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습니다.

고타마(석가)는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깨달음은 호화로운 방종이나 자기 고행이 아니라 ‘중용’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알아냈습니다. 1) 사는 것은 고통이다(두카). 2) 고통은 욕망에 의해 생긴다(탄하, 또는 ‘집착’). 3) 모든 집착을 제거함으로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 4) 이는 고귀한 8개의 길을 따름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여덟 개의 길”은 1) 관점, 2) 의도, 3) 말, 4) 행동, 5) 생활(수도사), 6) 노력(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에너지), 7) 마음을 씀(명상) , 8) 집중(초점)입니다. 부처의 가르침은 “삼장” 또는 "3개의 바구니"로 모아졌습니다.

이러한 구별된 가르침 뒤에는 힌두교에 공통적인 가르침인 윤회, 카르마, 마야와 현실을 그 방향에 있어서 범신론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교는 또한 신(神)과 고귀한 존재에 대한 정교한 신학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불교 역시 힌두교처럼 하나님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명확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일부 흐름은 합법적으로 무신론으로 불릴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범신론으로 불릴 수 있고, 정토 불교와 같은 유신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전 불교는 궁극적인 존재의 실체에 대해 침묵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무신론으로 간주됩니다.

불교는 오늘날 매우 다양합니다. 그것은 대략 소승 불교(작은 그릇)와 대승 불교(큰 그릇)의 두 부류로 나뉠 수 있습니다. 소승 불교는 승려가 궁극적인 깨달음과 열반에 이를 수 있도록 준비된 수도원의 형태이며, 대승 불교는 깨달음의 목표를 일반인들, 즉 비 승려들에게까지 확장시킵니다. 이러한 두 범주 내에는 텐다이, 바지라나(밀교), 일련 정종, 진언종, 정토, 선종, 료부 등의 여러 분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인들이 불교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들이 공부한 것이 고전적이며 역사적인 불교일 때 그 외의 특정 불교학의 모든 세부 내용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는 결코 자신을 신이나 어떤 종류의 신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길을 보여주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는 죽음 이후에야 그의 추종자들 중 일부에 의해 신의 지위에 올려졌지만, 모든 추종자들이 그렇게 여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성경 안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진술되어 있습니다(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하나(요 10:30)라고 말합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고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처럼 자신이 단지 그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타마(석가)가 죽을 때 불교는 인도에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후 300년이 지난 후 불교는 대부분의 아시아에 퍼졌습니다. 부처에게 속한 경전과 말씀은 그가 죽은 후 400년 정도 지난 뒤에 기록되었습니다.

불교에서 죄는 주로 무지로 이해됩니다. 죄는 "도덕적 오류"로 이해되지만, "악"과 "선"을 이해하는 문맥은 도덕과 무관합니다. 카르마(업보)는 자연의 균형으로 이해되며 개인적으로 강요 당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도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업보는 도덕적 규범이 아니며, 죄는 궁극적으로 부도덕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불교의 사상에 따라 말하면, 우리의 실수는 궁극적으로 무인격적인 실수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며 대인 관계의 위반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의 결과는 파괴적입니다. 불교도에게 있어서 죄는 거룩한 하나님의 본성에 반하는 범법이라기 보다 실수에 더 가깝습니다. 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죄 때문에 정죄 받았다는 선천적인 도덕 의식과 맞지 않습니다(롬 1-2).

이처럼 불교는 죄를 비인격적이고 교정될 수 있는 오류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기본 교리인 타락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는 영원하고 무한한 결과를 가져오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람들을 저주스러운 죄에서 구할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은 영원한 저주로부터 구원을 얻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불교도에게는 깨달음과 궁극적인 열반에 이르기를 소망하면서 고양된 존재가 되기 위한 윤리적인 생활과 명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엄청난 업보의 빚을 갚으려면 수많은 환생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불교를 진심으로 추종하는 자들에게는 그 종교는 자아를 부인하는 삶으로 포장된 도덕과 윤리 철학입니다. 불교에서 실체는 비인격적이며 비관계적입니다. 그러므로 실체는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하나님은 단지 환상이며 죄는 도덕과 무관한 오류이고 모든 물질적인 실체는 마야("환영")로 거부되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우리 ‘자아’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인격 그 자체도 환상이 됩니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누가 우주를 창조했는지 물으면, 불교에서는 시작과 끝이 없기 때문에 침묵을 지켜왔다고 말합니다. 그 대신 출생과 죽음에는 끝없는 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존재가 우리를 살도록 만들었고, 이렇게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도록 했는지, 또한 왜 계속 죽고 또 죽게 했는지 물을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그 원인이 무엇인지, 왜 괴로움을 주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단번에 죽게 하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있지 않으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죽음보다 더 많은 것이 생명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불교는 열반이 존재의 최고 상태이며 순수한 존재의 상태로, 그것은 각 개인과 관련된 수단에 의해 달성된다고 가르칩니다. 열반은 이성적인 설명과 논리적인 질서를 무시하므로 배울 수 없고 오직 깨달을 뿐입니다. 반면에 하늘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몸은 죽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늘에 계신 그분과 함께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간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막 12:25). 부처는 각 개인의 자아 또는 존재는 환상이기 때문에 사람은 개인의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가르쳤습니다. 불교도들에게는, 우리의 영혼과 구원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길을 마련하기 위해 죽으시는 자기 아들을 보내신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불교는 거절되어야 합니다.

출처: https://www.gotquestions.org/Korean/Korean-buddhism.html

불교 : Buddhism  / 불교도 : Buddh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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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종말, 새 시대의 탄생’ 에딘버러 회의


본지에 ‘배본철 교수의 성령론 Q&A’를 연재 중인 배본철 교수(성결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련, WCC의 태동과 그 역사적 배경, 신학적 실체 등을 분석한 글을 본지에 보내왔습니다. 배 교수는 “현재 WCC 논쟁이 과다한 정치적 논리와 교계 분열의 양상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문적이고도 교회사적인 입장에서 차분하게 WCC를 비평해 정리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임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 글은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며,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며 “오직 바람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바른 복음적 의식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이라고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배 교수의 글은 ‘WCC, 그 실체를 밝힌다’는 제목으로, 매월 1회 총 5부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교회연합운동의 태동
②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③ WCC 창립 총회와 Missio Dei
④ 왜곡된 복음의 뒤안길을 걷다
⑤ 간과될 수 없는 역사적 과오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한국 기독교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WCC 문제는 교회사를 전공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현대교회사 영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터라 늘 관심 있게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최근 불거진 2013년 WCC 총회 한국 유치 관계로 WCC 진영과 복음주의 사이의 향후 관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중, 최근 복음주의신학회에서 WCC에 대해 발표한 필자의 논문은 교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배본철, “WCC 선교론의 변천과 논제”, <WCC에 대한 역사신학적 고찰> (2010.4.3); “복음주의자들이 제시한 WCC 논쟁 종결의 길: 배본철 박사 NCCK, 설득하려 하기 전에 숙고를” <크리스천투데이> (2010.4.3); “WCC, NCCK, 불신 허물려면 과거행적 고백 먼저”, <국민일보> (2010.4.6))

 

이러한 과정 속에서 <크리스천투데이> 지를 통해 WCC의 전반적인 역사와 신학에 대해 기고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본다. 필자는 앞으로 5부에 걸쳐서 WCC의 왜곡된 역사를 파헤침으로서 WCC에 대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을 다시 한 번 굳건히 하고자 한다.

 

2009년 8월 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에서는 2013년 WCC 제 10차 총회를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기로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이 총회가 한국교회의 자랑이 될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위상을 세계교회 앞에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NCCK에서는 한국교회 대부분 교단들의 반(反) WCC적 정서를 의식해서인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통하여 WCC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확산하기에 분주한 상황이다. NCCK에서는 2010년 2월부터 4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라는 주제로 신학토론회를 마련하였다.(‘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의 제 1차 토론회는 2월 19일 열렸고 발제자는 장신대 이형기 교수였다. 제 2차 발제는 3월 25일 열렸으며 전주대 김은수 교수와 이화여대 장윤재 교수가 담당하였다. NCCK에서는 제 3차 토론회를 4월 26일 갑론을박 형식으로 열기로 예정하였다.)

 

그러나 WCC를 바라보는 복음주의 교단들의 시선은 매우 따갑다. 뿐만 아니라 NCCK에 가맹되어 있지 않은 대부분 개신교 교단들의 WCC 대회 유치 반대 내지는 WCC 비판론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월간 <목회와신학>에서는 2009년 10월호와 2010년 1월호에서 WCC 문제를 다룬 바 있다.(<목회와신학>에서는 WCC를 긍정하는 이형기 교수의 글과 WCC를 부정하는 평택대학교 양광호 외래교수의 글을 차례로 실었다.) 그리고 ‘미래목회포럼’에서는 2010년 3월 25일 서울 종로 기독교연합회관에서 ‘한국교회, WCC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기포럼을 개최하였다. 이 포럼은 최초로 WCC에 대한 진보주의와 복음주의적 시각에서의 학문적 논쟁의 시간이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2010년 4월 3일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에서 개최한 WCC 문제에 대한 복음주의신학자들의 논문발표회는 한국 복음주의적 교단들의 확실한 입장 정리의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필자의 글은 WCC를 대하는 복음주의신학의 시각을 소개하려는 데 그 첫 번째 목적이 있다. 일각에서 보는 대로 정말 복음주의자들은 WCC의 진면목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인가? 필자는 오히려 복음주의자들이야말로 WCC가 마땅히 걸어 나가야 할 길을 뚜렷이 인식하고 그 바른 길을 가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려 한다. 이 글의 두 번째 목적은 WCC가 원래 선교적 연합을 위한 초기 의도에서는 벗어나 점차 우려할 만한 길을 걸어 온 역사를 정리하고자 함이다. 문제는 신학적인 면에서 볼 때 WCC의 행보가 원래 그 헌장과 취지에 부응하지 못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선교론의 문제가 있다. 이런 점에서 WCC 선교론의 변천을 가져온 중요한 몇 가지 대회들의 특징을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2013년 WCC 부산 유치의 과제를 안고 있는 NCCK가 풀어나가야 할 당면 과제를 지적하고 그 하나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에딘버러 회의

 

19세기를 위대한 선교의 세기였다고 할 것 같으면, 20세기는 초교파적인 교회연합운동(敎會聯合運動), 즉 에큐메니칼운동의 세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20세기의 초교파적인 교회연합운동은 모트(John R. Mott; 1865-1955)라는 위대한 인물을 필두(筆頭)로 발전되었으며, 1910년의 에딘버러 회의(Edinburgh Conference, 1910)라는 최초의 선교회의를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앤더슨(Gerald H. Anderson)에게서도 잘 나타나는데, 그는 20세기의 선교를 7개의 층으로 구분하면서, 그 첫 번째 단계를 1910년의 에딘버러 회의로 들고 있다.(Gerald H. Anderson(ed.), The Theology of the Christian Mission (Nashville: Abingdon Press, 1961), 5.)

 

그런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선교회의인 1910년의 에딘버러 회의는 교회연합운동의 기원이며, 또 이런 점에서 교회사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에딘버러 회의는 하나의 렌즈로 묘사될 수 있겠다. 이 렌즈는 선교 협력을 위한 일 세기 간의 모든 시도로부터 비추어진 여러 빛들을 받아 그것들을 모아서 미래를 향해 발하게 맞춘 렌즈라고 할 수 있다.(David J. Bosch, 「선교신학」, 전재옥 역 (서울: 두란노서원, 1985), 191.) 결국 1910년은 에큐메니칼운동이나 선교운동을 위해서나 결정적인 해이며, 에딘버러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으로 개신교가 함께 모이게 된 초창기 연합의 시발점이요 결정인 것이다.

 

에딘버러 회의는 비록 선교단체를 위해 권위 있는 입법기관의 역할은 못했을지라도, 연합한 행동의 준비를 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는 있었다. 이 최초의 세계선교회의에서 던져진 중요한 물음은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즉 선교는 복종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명령(마 28:19)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자연히 선교의 전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08년에 채택된 국제위원회에서 8개의 주제가 총회의 주제목으로 선정되었다. 이 주제들을 위해 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이러한 과정은 후에 교회일치운동의 좋은 전례를 만들어 주었다. 이들 위원회는 여러 방면의 통신교환을 통해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였다. 최초 위원회장인 모트(Mott)는 전 세계의 600명 이상에게 개인적으로 편지하였다. 이렇게 유인물과 의견을 수집하는 동안 일치운동의 분위기는 고조되었으며, ‘에큐메니칼 대화’(Ecumenical Conversations)라는 전례를 만들었다.

 

다음은 에딘버러 회의의 주제들을 다룬 것이다;

-복음을 모든 비기독교세계에 전파한다(Carrying the Gospel to all the Non-Christian World)
-선교지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Mission Field)
-각 나라의 고유한 생활의 기독교화와 관련된 교육(Education in relation to the Christianization of National Life)
-비기독교 종교와 관련된 선교 메시지(the Missionary Message in relation to the Non-Christian Religions)
-선교사들의 준비(the Preparation of Missionaries)
-선교의 본부기지(the Home Base of Missions)
-선교와 정부(Missions and Governments)
-협동과 연합의 증진(Co-operation and the Promotion of Unity)

 

위의 주제들 가운데 세 개는 교회연합운동의 성장에 특별한 기여를 하였다. 그중 첫 번째는 교회의 범세계적인 선교를 강조하였고, 두 번째는 신생교회(the Young Churches)라 불리는 선교지 교회에 대한 선교사업의 목적인 자치(Self-governing), 자립(Self-supporting), 자전(Self-propagating)하는 선교지 교회의 발전에 중점을 두었다. 마지막 것은 제목이나 의도에 있어서 분명한 에큐메니칼운동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10년의 에딘버러 회의는 독창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1854년 뉴욕과 런던, 1860년의 리버풀대회, 1878년 런던, 1879년 런던, 그리고 1900년의 뉴욕대회 등으로 계승된 것이다. 그러나 비록 과거의 총회들을 계승했지만, 에딘버러 회의는 많은 면에 있어서 전례를 뒤엎고 명백한 진보를 나타내었다.

1888년과 1900년에 있었던 초기의 2개 총회는 여러 선교기구에 의해서 대표단이 임명되었으며, 오고자하는 사람에게는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에딘버러 회의는 기구에서 파견된 대표단으로 그 숫자가 제한되었으며,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중인 선교단체만이 참가할 수 있었고, 대표단도 선교비를 지원하는 액수의 비율에 따라 정해졌다. 또한 종전과 같은 성회의 성격보다는, 이 회의는 각 교회가 대변하는 권위있는 공식기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선교단체의 총회였지 교회의 총회는 아니었다. 또한 이 총회는 모든 선교단체가 초청된 것은 아니었고, 비기독세계에서 일하는 단체만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규제는 총회가 그 목적을 위해 날카롭게 초점을 맞춘 면에서 온당한 것으로 보였다. 비기독교세계에서의 선교를 목적하는 수많은 선교단체들이 그들이 지닌 저마다의 신앙적 확신과 신학적 다양성을 가지고 들어오게 되었다. 이러한 에딘버러 회의의 성격은 에큐메니칼운동에 더욱 넓은 포용성을 지니게 해주었다.

 

에딘버러 회의에서 신생교회(新生敎會)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신생교회들의 잠재적인 중요성은 그들이 보낸 지도자를 훈련하는데 보여진 관심에서 잘 나타났다. 한 신생교회의 지도자는 1860년 리버풀회의의 토론에 참가하여, 더 많은 나라가 성경 번역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중요한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1888년 영국에서 개최된 개신교 선교 백주년 세계대성회에서 신생교회는 거의 대표되지 못했으며, 1900년 뉴욕의 에큐메니칼 선교총회에서는 6명 정도가 발언하였고, 1907년 상하이의 중국 선교 백주년 선교총회에서는 1170명 중에서 불과 6,7명이, 그것도 방문객으로서만 신생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했다.(Ruth Rouse, A Histo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1517-1948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7), 359-60.) 에딘버러 회의에도 신생교회 대표자들의 숫자는 매우 적었다. 그러나 비록 17명밖에 안 되는 숫자였으며 47회의 연설 가운데 겨우 6회의 기회를 가졌지만, 이들은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큰 일을 해냈다. 이들 가운데 3명은 계속되는 총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이러한 진보는 미래의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서 신생교회가 차지하게 될 위치에 대한 예언이기도 했다. 즉 앞으로의 에큐메니칼운동은 신생교회나 기존의 교회를 동등한 입장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1910년의 에딘버러 회의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Anglo-American 계통의 사람들이었다. 신생교회가 극히 적을 뿐 아니라, 유럽대륙 출신의 대표도 역시 극소수였다. 또한 로만 가톨릭과 정교회의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사실은 가톨릭과 정교회는 이 회의에 초대 받지 못했다.) Anglo-American이 주구성원을 이루었다. 그 결과로 에큐메니칼운동이 아일랜드, 미국 그리고 영국 등지에 주로 영향을 주고 유럽 대륙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전세계적인 에큐메니칼운동을 위해서 다음 총회에서는 로만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신생교회들의 참여가 언급되었다. 1910년의 에딘버러 회의는 후에 에큐메니칼운동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훌륭한 훈련의 장소였다. 그러한 인물로는 모트(John R. Mott), 올드햄(Joseph H. Oldham), 아자리아(V. S. Azariah), 브렌트(Charlse H. Brent), 템플(William Temple) 등을 들 수 있다. 

모트는 초대 준비위원장이자 국제선교위원회의 회장으로서 모든 회의를 주관하였다. 그는 신앙 대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영적 인물로서, 지도자로서의 역량과 설득력 있는 연설 능력 등을 구비한 사람이었다. 감리교의 평신도로서 신학도 하지 않은 그는 모국어인 영어 밖에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국가와 종족 그리고 교회를 연결시켰으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협력을 얻어내었다. 그리고 모트의 행정 비서인 스코트랜드인인 올드햄은 모트와 함께 총회의 창의적인 일들을 도왔는데, 기독학생운동과 인도의 YMCA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였다. 에딘버러 총회와 그 실행에 있어서의 범세계적인 기독교 연합은 1908년부터 26년 동안 올드햄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는 1905년 할레신학교에서 공부한 관계로 독일인의 심성을 잘 알았고, 이를 토대로 독일 지도자들의 신임을 얻어 종전의 Anglo-American이 압도적이었던 회의 분위기에 대륙적인 힘을 가입시키는 데 큰 힘을 쏟았다.

 

이러한 에큐메니칼운동의 발전은 서구에서보다는 신생교회에서 더욱 급속히 발전되었는데, 이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긴급한 불모지의 상황이 기존의 교파나 신앙고백의 장벽을 초월하여 연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에딘버러 회의는 유럽 대륙과 영-미의 서로 다른 선교신학을 융합하지 못했으며, 신학적 열매를 거두는데 큰 성과를 이루진 못했다. 그러나 에딘버러 회의는 한 시대의 종말과 또 다른 시대를 탄생케 한 분수령(分水嶺)이 되어 주었다. 왜냐하면 에딘버러 회의가 남긴 발자국은 앞으로 진행될 에큐메니칼운동의 발전과 조직을 위한 커다란 전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10년의 에딘버러 회의는 20세기 에큐메니칼운동을 위한 새로운 예언자적 운동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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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WCC 투쟁의 역사

본지에 ‘배본철 교수의 성령론 Q&A’를 연재 중인 배본철 교수(성결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련, WCC의 태동과 그 역사적 배경, 신학적 실체 등을 분석한 글을 본지에 보내왔습니다. 배 교수는 “현재 WCC 논쟁이 과다한 정치적 논리와 교계 분열의 양상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문적이고도 교회사적인 입장에서 차분하게 WCC를 비평해 정리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임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 글은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며,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며 “오직 바람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바른 복음적 의식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이라고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① 교회연합운동의 태동
②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③ WCC 창립 총회와 Missio Dei 
④ 왜곡된 복음의 뒤안길을 걷다
⑤ 간과될 수 없는 역사적 과오

1910년 에딘버러 회의는 그 동기와 목적에 있어서 복음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이후 WCC가 창설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제설혼합주의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본다. 그 주된 배경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교회는 인간의 실존 문제와 국가의 평화 등의 논제에 깊이 몰두하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이 글은 WCC가 거쳐 온 이러한 고민과 투쟁의 과정을 살펴보려 하는 것이다.

 

1910년 에딘버러 회의가 오늘날 에큐메니칼운동의 기점이긴 했으나, 이로부터 38년이 지나서야 WCC는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에딘버러 이후 20세기 중반까지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약사(略史)는 다음과 같다; 1921년에는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를 창설하였다. 이 모임은 에딘버러 회의가 남긴 가장 두드러진 결과였다. 1925년에는 생활과 활동(Life and Works)이 창설되었다. 이 운동은 기독교 신앙을 인간생활 전반에 적용시키려는 관심에서부터 시작했다. 1927년에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가 창설되었다.

 

에딘버러 대회 이후 국제선교 협의회(IMC),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생활과 활동(Life and Works) 등 세 단체가 각기 나름대로의 모임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1937년에는 에딘버러(Edinburg)에서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묶어져야 한다는 제안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 이행은 WCC가 창립되던 해인 1948년까지 지연되었다. 그러면 1910년 이후 WCC가 창설되기까지의 에큐메니칼운동의 역사를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살펴보자.

1. 제 2차 세계대전 이전(1918-1939)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전(終戰)은 세계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그것이 기독교 세계에 영향을 준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교회연맹(League of Churches)을 형성하게 된 점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국제선교협의회, 신앙과 직제, 신앙과 활동 운동도 그와 같은 영향 아래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것은 이제부터의 교회운동은 개교회(個敎會), 개교파(個敎派)의 운동의 차원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교회 지도자들이 발견했다는 것을 뜻한다.

 

1919년에 이미 쇠더브롬(Söderblom) 대감독은 어떤 형태의 에큐메니칼 조직을 제안했으며, 1920년 올드햄은 IMC운동의 규약을 작성하고 있었다. 1925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생활과 활동 위원회에서 벨(G. K. Bell) 교수는 국제기독교연합회의 조직을 제의한 바도 있었다. 1930년 첵스브레스(Chexbres)에서 모인 생활과 활동 계속위원회는 보편적교회협의회(Universal Christian Council)란 이름으로 모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조직되고 모임을 갖던 기독교 여러 단체들 가운데서 신앙과 직제, 생활과 활동 두 위원회는 1930년대에 와서 따로 모일 이유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두 위원회의 대표들이 대부분 같은 사람들이었으며, 같은 교회의 재정적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위원회는 ‘교리는 교회를 분열시키나, 봉사는 교회의 연합을 가져온다’(Doctrine divides, but Service unites)는 정신 아래서 신앙 또는 신학의 문제가 현실의 실제적인 문제를 떠나서 연구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신학이 추상적인 이론에 치우쳤음에 대한 반성의 시작이 된 것이다.

그래서 1934년에 두 위원회는 ‘교회와 세계’(The Church and the World)라는 주제를 내걸고 함께 모임을 가진 바 있었다. 이때 세계는 이미 제 2차 세계대전의 조짐이 보이고 있던 때였다. 독일의 나치즘, 이태리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軍國主義)가 세계를 위협하게 되었다. 이때 세 나라에 있던 교회들은 에큐메니칼운동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정치적인 강요에 의해서 국가주의(國家主義) 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를 강조해야 했었다. 그러므로 교회도 민족주의를 위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반면에 그와 같은 위기를 감지한 세계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난국(難局)이야말로 오히려 교회의 세계성(universality)을 강조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교회의 본질, 즉 ‘교회란 무엇이냐?’ 또는 ‘교회는 무엇을 위해 있느냐?’는 문제를 묻게 되었다. 이와 같은 흐름에 의해서 1937년 생활과 활동 위원회 옥스포드 모임은 그 주제를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라’(Let the Church be the Church)라고 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교회가 비교회적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비교회적인 것으로부터의 교회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s semper reformanda)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원리의 재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에큐메니칼운동, 즉 교회일치운동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지 첨가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재발견속에서 에큐메니칼운동의 일차적 동기는 교회들 사이에 일종의 영적 일치를 창조하거나 교회들 사이에 협동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교회의 하나됨과 보편성과 사도성과 그리고 예언자적 증인(its oneness, its universality, and its apostolic and prophetic witness)이라는 참된 본질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되었다. 1936년에 올드함은 “현 세계를 깊이 살펴보면 볼수록, 교회의 일치적 본성을 더욱 깊이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였다.

 

1937년에 에딘버러에서 모였던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 템플(William Temple) 감독은 개회연설에서 “하나의 거룩한(Una Sancta) 교회를 선포해야 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교회들이 저들의 공동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서로 도우며 다른 교회들과 완전한 영적 교제들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보다 2년 전인 1935년에 미국을 방문하여 IMC 지도자들과 프린스톤에서 만났을 때, “모든 교회들이 초교파적이며 초국가적인 교회 회합을 가져야 할 때가 바야흐로 돌아왔다. 이 회합을 통하여 오늘의 세계 모든 단체들이 국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에큐메니칼운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할 기회가 온 것이다”고 말했다. 여기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개하는 문제는 결코 한 교회나 한 교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교회의 과제임이 인식되게 된 것이다.

 

1936년 7월 영국 런던에서는 생활과 활동, 신앙과 직제, IMC운동의 대표자 35명이 모여 에큐메니칼 협의회(Ecumenical Consultative Group)를 구성했고, 이 모임에 YMCA, YWCA, WSCF 대표들도 함께 참석을 했다. 이때 모인 대표들은 세계 모든 교회들이 공동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의 영구적인 기관으로서의 세계교회연합회를 조직할 때가 되었다는데 일치하였다. 이 모임의 중심인물은 템플, 올드햄, 브라운(W. A. Brown), 카버츠(S. M. Caverts) 등이었고, 지금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의 명칭은 당시 미국교회연맹 총무였던 카버트의 제안에 의한 것이다.

 

이 런던 회의에서 초안된 WCC의 원칙적인 규정이 후에 WCC 창립총회에서 채택되었는데, 중심되는 정신은 ‘이 협의회는 모든 교회를 감독하는 법적 권리를 가진 기관이 아니며, 또 모든 교회들의 동의 없이는 어떤 일이든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 원칙이 1937년 7월 12일부터 26일까지 있었던 생활과 활동 모임인 옥스포드 회의에 상정되었다. 템플 주교와 다른 여러 명의 위원들은 이 새로운 계획의 채택을 권유했다. 주교는 the Voice of non-Roman Christiendom에 도움을 줄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모든 에큐메니칼 운동이 교회 자체 위에 근거를 두고 있음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제안은 단지 두 명의 반대자를 가진 가운데 채택되었다. 1937년 8월 3일부터 18일에 있은 신앙과 직제 에딘버러 회의에서도 곧 채택되었고, 각 위원회에서 14명의 위원이 선출되어 그 원칙에 의해 일을 추진하도록 했다.

 

이 14인 위원회는 WCC 창립을 위한 전권위원회였다. 14인 위원회의 첫 번째 모임은 1937년 8월 런던에서 개최되었으며, 세계교회협의회의 본질과 구조 그리고 구성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들은 WCC의 헌장에 명시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14인 위원회를 도와줄 특별자문기관을 함께 소집하기로 했다. 1938년 5월에 우트레헤트에서 제 2차 모임을 가졌으며, 이때 토의의 초점은 앞으로 조직될 WCC의 권위와 그 기초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구조적 의문은 권위와 협의회의 헌장에 관한 것이었다. 권위에 관해서는 어려움 없이 완전히 동의에 이르렀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초교회(Super- Church)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후에 다시 확인되고 강조되었다. 이 모임에서 템플 감독은 “WCC는 일반적인 성격의 연맹이 아니다. 그 총회와 중앙위원회는 그 지지하는 회원들을 헌법적으로 제지하는 아무런 권위도 갖지 않는다. 그것이 가진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들이 지혜롭게 처신하도록 조언을 준다는데 있다”고 했다.

 

헌장에 관한 이견은 그리 쉽게 합의되지 못했다. 신앙과 직제가 소집된 신학적 기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라고 하는 신앙고백 - 가 대체로 WCC를 위한 기초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것이 공식화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많은 연설가들은 신앙과 직제 공식의 채택을 원했다. 그 때문에 이것은 실로 교회 모임을 위한 적합한 기초임이 입증되었다. 우트레크트에서 그헌장은 채택되었고, 제 1차 WCC 총회에서 확정되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친교이다’(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is a fellowship of churches which accept our Lord Jesus Christ as God and Saviour).

 

5월 13일 우트레크트에서 열린 첫 번째 회의에서 의장에 템플 대주교가, 그리고 비서트 후프트(W. A. Vissert Hooft)가 임시위원회의 대표 총무로 선출되었다. 이렇게 WCC의 창설 준비가 신앙과 직제, 생활과 활동 두 위원회의 대표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을 때, WCC와 IMC와의 관계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 문제가 1938년의 IMC 회의에서 토의되었을 때, 패톤(W. Paton)은 말하기를, “여러 교파 간에는 조직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살아있는 동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우주적인 교제가 여러 교회들 간의 참된 교회의 상징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이는 점에서 WCC의 위치가 중요하며..... 또한 IMC는 우리의 세계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위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1939년 1월 준비위원회는 두 번째 회의를 게르마인(Germain) 성에서 개최하였다. 정치적 긴장과 전쟁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 모임은 미래를 기대하였다. 잠정적으로 1941년 8월을 WCC 창립총회를 위한 날자로 결정지었다. 이때 독일에서는 나치 정권과 대립하여 싸우는 독일교회의 투쟁의 역사가 있었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치 당에 유착되어 교회를 정치 권력의 도구화로 만든 독일 기독교당이 있었다. 독일 기독교당은 초국가적, 국제적인 교회기구는 어떤 것이든 간에 거부한다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WCC 창립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WCC 준비위원들은 인종, 국가, 성의 차별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영적 연합을 가진다고 선언함으로서 독일 기독교당의 입장에 대항했다.

 

1939년 7월 24일부터 8월 2일까지 암스텔담에서는 기독청년 세계대회가 개최되었으며, WCC 준비위원들은 72개국에서 모여든 청년 대표들과 세계교회 대회 문제를 토의했다. 이때는 이미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운(戰雲)이 짙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 대회의 메시지 속에는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의 민족들은 서로 나누어지게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 곳으로 모이게 되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분열되어 싸움이 시작되는 세계 속에서 하나를 지향해 간다는 것은 분명히 세대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서 1941년에 모이려던 WCC 창립총회는 부득이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2. 전쟁 기간(1939-1945)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모처럼 무르익어가고 있던 세계교회연합운동에 크나큰 시련을 가져 주었다. 만일 세계교회운동의 지도자들이 그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었다면, 오늘의 WCC는 창설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은 세계교회운동을 보다 강하게 해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 중에 교회 지도자들은 ‘이 전시(戰時)에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어떤 이는 침략과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에 대해 강력한 저항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템플 같은 이는 교회가 적대국가들 사이의 화해를 위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교회들은 정치를 떠나서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길을 모색하였다. 전쟁에 의한 시련은 교회들로 하여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긴밀하게 관계를 갖게 하였다. 베그라브(Berggrav) 감독은, “이 시련기에 우리는 서로 더욱 친밀하게 지냈으며, 우리는 더 많이 기도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였고, 우리 마음은 더욱 굳게 한데 뭉쳤다”라고 술회하였다.

 

전쟁 기간에 교회들은 세계적인 교회(Universal Church)를 파괴하는 힘을 공동의 적으로 인식하면서, 그 힘을 저지하고 파괴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였다. 교회는 피난민을 구호하는 일, 포로들을 돌보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의 거룩한 교회’임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각국 교회 지도자들은 제네바를 통하여 연락하고 만났으며, Ecumenical Press Service 지를 통하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전시에 교회가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교회 지도자들이 이미 마음에 다짐하고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과 활동 위원회의 옥스포드 대회(1937년)는 그 메시지에서,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교회는 무엇보다도 참으로 교회가 되어야 한다. 비록 그 나라는 다른 나라와 싸우고 있다 해도, 교회는 적국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전쟁 당시 독일 국가 사회주의 당국은 교회의 에큐메니칼협의회를 위험시했고, 그 협의회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었으나, 독일교회는 적국의 교회들과도 친교를 나누고 연락을 하고 있었다. 본훼퍼(Ditrich Bonhoeffer)는 제네바와 스톡홀름을 방문하여 미래 국가질서에 대해서 교회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토의하기도 했다.

 

전쟁이 한 고비를 넘기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게 유리하게 전세가 바뀌어감에 따라 1942년 미국의 카버츠(Caverts)는 제네바를 방문하여, 전후의 재건과 교회의 원조 문제를 토의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교회는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과 시련 속에서도, 그것을 오히려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끔 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 기간에 교회는 에큐메니칼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잃었다. 로잔(Lausanne) 대회 이후 신앙과 직제 모임에 주동적인 역할을 했으며 IMC운동과 1937년 옥스포드 대회의 메시지를 작성한 템플, 패톤(W. Paton), 신앙과 직제 그리고 생활과 활동 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공을 세운 브라운(W. A. Brown), 그리고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등이 모두 전쟁 기간에 타계했던 것이다.

3. 전쟁 이후(1945-1948)

 

이 전쟁은 교회에 큰 교훈을 남겨주었다. 교회는 전쟁 중에 ‘역사의 비극 속에서도 성도들이 그 종파나 교리나 신학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제하고 이해하고 또 협조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땅에 선포함에 공동으로 보조를 취하는 것이 얼마나 긴요하고 귀한 일인가’ 하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전쟁의 종말이 결정적으로 가깝게 다가왔음을 알게 되었을 때, WCC 준비위원들은 뉴욕에서 소모임을 갖고 전후의 문제를 논의했다. 그들은 복구사업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는데 일치했으며, 세계의 모든 교회가 이 일에 함께 동참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교회가 강한 에큐메니칼 연대의식(Ecumenical solidarity)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5년 5월에 모인 뉴욕 회의에서는 ‘적과 동지의 차별 없이 주를 섬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허심탄회하게 의견이 교환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룩된 하나님과 사람의 화해를 통하여 사람과 사람사이의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고 확인하였다. 그 결과 같은 해 10월에 WCC 준비위원들의 대표들이 독일교회 대표자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이때 독일교회는 ‘슈투트가르트 고백선언’(Stuttgart Declaration)을 했던 것이다. 그 선언은 교회는 죄책을 깨닫고 고백하고 스스로 그 책임을 지는 인간들의 공동체인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1946년 2월에 WCC 준비위원회는 제네바에서 모임을 갖고 WCC 창립총회를 암스텔담에서 1948년에 모일 것과 그 총회의 주제를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으로 결정했다. 1947년 WCC 준비위원회는 대회 초청장을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대회의 목적을 간결하게 밝히고 있었다;

 

과거 수년간의 시련과 환란, 박해의 경험에서 교회는 새로운 친교의 의식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인간의 무질서를 막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새로운 소식 보다는 교회의 갱신(更新)과 참된 교회의 재생(再生)이다. 그러므로 WCC의 임무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알게 하고, 또 언제나 하나 되어 피차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우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공동의 회원 의식을 가지고 값있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4. 비평

 

1910년 에딘버러 회의는 진보적인 신학의 씨를 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대회는 교리적인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지도자들이 과거의 일들을 비평하면서, 더욱 포괄적인 신학, 더 넓고 포용성 있는 대회를 주장하여 진보적인 신학과 종교혼합주의(宗敎混合主義)로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된 것이다.

 

1928년 예루살렘 대회는 에딘버러 회의의 결과로 1921년에 조직된 국제선교협의회(IMC)의 최초의 세계대회였다. 이들은 복음의 선포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행위가 선포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복음적인 의미에서의 영혼 구원의 관점보다는 그 대신 사회복음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책임으로서의 죄(罪) 관념을 상실했다. 또한 이들은 타종교에도 어느 정도 구원의 빛이 있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배제된 것이 분명하다. 이 대회는 복음전도에 있어서 성서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증거의 수단으로서 교회의 사업이나 조직적인 일치를 필요하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선언문의 내용은 이 대회에서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한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빛의 완전한 광채가 모든 사람에게 비치시는 빛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그 같은 빛이 그를 알지 못하거나 또는 거절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비치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증거 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과 비기독교인들 개인과 조직들의 모든 훌륭한 특성들이 그 아들을 보내주신 아버지의 한층 더한 증거임을 환영한다. 따라서 다른 종교들의 영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지 않고 단지 예를 들어왔었다.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 추구에 무관심한 사람들에 대하여서와,

 예배의 엄격함으로 유명한 이슬람교과,

세계의 비참함에 대한 연민과 해탈의 길을 위한 무아(無我)를 추구하는 불교와,

영을 통한 궁극적 실재와의 접촉을 소원하는 힌두교와,

우주의 도덕적 질서에 대한 믿음과 도덕적 실천에 대한 논리를 강조하는 유교 등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진리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다.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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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단회적 속성에 대하여 매우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4-28)

성경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최종성에 대하여 단호히 말하고 있다. 그는 죄를 위하여 절대로 반복되지 않을 단번의 제사를 드리고자 이 땅에 오셨다. 그것은 거의 끊임없이 제사를 드려야 했던 모세 언약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드린 제사들 중 어느 것도 실제로 속죄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단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장차 오셔서 죄를 정복하실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희생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반복된 제사라는 비성경적인 제도를 다시 만들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모독이며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왜곡하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미사가 얼마나 중요할까? 가톨릭 교회의 교리문답에서는 미사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천이자 절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미사는 가톨릭 믿음의 근원이고 최고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미사는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가톨릭의 전체 체계의 핵심이다.

가톨릭 사제인 존 오브라이언(John O’Brien)은 그의 책 The Faith of Millions에서 미사의 절차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제가 성찬식을 선언할 때, 그는 하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가 그의 보좌로부터 내려오게 하여 인간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다시 드려질 수 있도록 그를 우리의 제단으로 모셔오게 된다. 그것은 군주와 황제들의 힘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그것은 성자들과 천사들, 혹은 스랍과 그룹들이 가진 힘보다 더 강한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심지어 성모 마리아의 능력보다 더 강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기 위하여 한 번만 매개적인 역할을 한 인간인 반면에, 사제는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모셔와서 인간의 죄를 위한 영원한 희생 제물로 제단에 세운다. 한 번이 아니라 수천 번을 말이다! 사제가 말을 할 때면, 보라! 영원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제의 명령에 겸손한 순종으로 그의 머리를 숙이신다.”

간단히 말하자면,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벗어나시게 하지 않는다. 미사에서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실제 몸과 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반복적이고 불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게 한다. 그는 주(Lord)와 구원자(Savior)가 아니다. 즉, 그는 사제의 힘에 의해서 제단 위에 영원히 종속되어버린 영원한 희생 제물이다. 그것이 로마 가톨릭의 십자가 상에서 분명하게 상징되는 것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것은 로마서 6장 8-10절의 바울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그리스도의 단회적 희생을 부인함으로써 가톨릭는 (성경적으로) 부적합한 사제들에게 인위적인 힘과 권위를 부여하였고, 그것을 믿는 신자들은 죄를 위하여 헛되고 사악한 제물들을 바치는 반복적인 제도의 노예가 되게 하였다. 본질적으로, 가톨릭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사람들을 확신시키며 그들을 속이고 기만시키는, 기독교적인 용어를 적당히 사용한 이교도인 것이다. 사실 미사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소멸시켰다.

그의 저서 Light from Old Times에서 J. C. 라일은 가톨릭 미사가 갖는 신학적이고 영적인 의미와그것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기를 좋아하든지 간에,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실재의 교리(real presence)는, 만일 그 교리를 정확하게 해석한다면, 복음의 모든 주된 교리를 모호하게 혼동시키며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모든 것을 손상시키고 방해한다.

성찬식을 성사가 아닌 희생제사로 여기는 순간,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진짜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성찬 테이블에 있다고 말할 때, 성변화된 떡을 먹고 성변화된 포도주를 마시는 모든 사람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진짜 몸과 피를 먹는다고 인정할 때, 이 모든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이런 전제가 초래하는 중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신성한 교리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어야 하는 희생 제물은 완벽하고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부인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 있다면, 그 위대하신 대제사장은 그의 영광을 빼앗기신다.

그들은 기독교 성직자에 대한 성경적인 교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죄된 인간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의 위치로 높이는 것이다. 그들은 성례의 요소인 떡과 포도주에 절대 돌려서는 안 되는 영예와 숭배를 돌리며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혐오하는 우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참된 교리를 넘어뜨리는 것이 된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육체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갖지 않으셨으며 사실상 “마지막 아담”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사는 기독교의 복음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독교 교회와도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죄와 구원과 속죄와 용서에 대한 참되고 성경적인 본질을 무시한다. 그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빼앗고, 그 자리에 피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우상을 갖다 놓는다. 그것은 거짓말이고 사기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노예가 되게 하고 그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저주스러운, 조작된 종교이다.

 

존 맥아더

출처 :  http://gracetokorea.org/

Available online at: http://www.gty.org/Blog/B130221/a-timely-critique-of-the-catholic-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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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본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영광에 대해 기록한 후 자신이 그 영광에 어떻게 압도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계 22 : 8,9)

 

로마 카톨릭 교회는 단지 천국의 시민에 불과한 한 사람을 합당치 않은 권위와 숭배의 자리에 올려 놓음으로써 요한이 범했던 것과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 마리아는 누가복음 1:38 에서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 외 수많은 성경의 다른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하나님 이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비견되는 자리에 올려놓고 숭배하고 있다.

1854년 교황 비오 9세(Pius IX)는 그의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 effabileuis Ds)이라는 회칙을 통해 마리아가 원죄를 물려받지 않은 무오한 상태에서 잉태 되었다는 무염시태(無染始胎, immaculate conception) 교리를 카톨릭 교회의 정식교리로 채택했다. 그가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적인 언급에서 마리아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견해가 잘 요약되어 나타나 있다.

우리의 소중한 카톨릭 교회 모든 어린이들 마음속에 이 교리를 심어주어야 한다. 경건에 대한 열정과 종교심, 애정을 가지고 가장 복되신 동정녀, 하나님의 어머니,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마리아께 소원과 기도를 올리며 그녀를 숭배하도록 가르치라. 어린 영혼들이 그들의 모든 위험과 어려움, 그들의 필요, 의심 그리고 두려움 가운데서 사랑스러운 자비와 은혜의 어머니에 대한 견고한 신심을 가지고 날아오르게 하라.

 

그녀의 인도와 보호, 친절과 후원 아래서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진실한 어머니의 사랑과 우리의 구원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녀는 온 인류를 위해 간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나님에 의해 하늘과 땅의 여왕으로 임명되었으며, 천사와 성인들의 모든 찬송 위에 높임을 받고 있고, 나아가 그녀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의 우편에 서 계시므로 가장 효과적으로 우리의 청원을 전달하는 자이다. 그녀가 우리를 대신하여 구하고 간청하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런 사실은 우리 로마 카톨릭의 역사 대대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으며 확장되어 왔다. 우리의 전통이 우리에게 지시해주는 바는, 마리아는 하늘 왕조의 일부분이며, 죄인들을 대신하여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자이며, 그녀의 은덕의 창고에서 우리에게 자비를 나누어주고 우리의 죄를 덮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십자가에서 고난당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구원자가 되었으며, 지금 하늘에서 예수와 함께 공동 중보자, 즉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또 다른 길로서 존재하고 있다.

교황의 이러한 말은 성경이 마리아에 대해 말하는 바와 완전히 대조적이며, 심지어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말한 것과도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누가복음 1:46~55 절은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 라” (눅 1:46~55)

 

 그녀가 찬양한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은 사람들이 간청하거나 온갖 고행을 다할 때까지 인색하게 축복을 베풀기를 주저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엄하시거나, 멀리 계시거나 무관심하지 않으시다. 그분은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고, 자비가 풍성하시다. 마리아는 자기 자신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낮은 자세로 주님을 찬양했다.

성경은 사실 마리아에 대해서 매우 적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의 외형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도 없으며, 천사가 그녀에게 나타나기 전까지의 그녀의 삶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죽임 당하신 이후의 그녀의 삶이나 혹은 그녀 자신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녀가 오순절 날 제자들과 다른 신자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잠깐 나올 때조차 그녀는 전혀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많은 신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아가 사람들이 그녀에게 기도했다거나, 그녀가 높임을 받았다거나, 그녀를 숭배했다는 성경의 사례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그녀가 어떤 역할을 감당했다는 기록도 나오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원의 교리에 대해 훌륭한 서술을 하고 있는데, 그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다윗의 자손”(롬1:3) 이었다는 것이 전부이다. 또한 참되고 순수한 복음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또 다른 책인 갈라디아서에서는 더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단지 그리스도께서 “여자에게서 나셨다”(갈4:4) 는 단순한 표현뿐이다. 이에 반해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의 삶과 그녀의 기적들, 죽음, 출현 그리고 그녀에 관한 끝없이 서술한 책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카톨릭 교회 교인들이 종종 성경을 읽을 때 성경에 마리아에 관한 언급이 실제로 얼마나 적게 나오는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는 이유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전통을 성경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거나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절대 무류한 속성을 인간에게 부여하고 인간을 높이는 비이성적인 일이 존재한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과 사역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짓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속자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위로자이시자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수 있는 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분만이 경배를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셔야 하며,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간구와 기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성경의 증거는 명백하다.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 45:20~22)

출처 :  http://graceto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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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입니다

종교개혁의 중대한 기폭제 역활을 한 것은 루터가 등장하기  100여년 전 보헤미안 그리스도인인 얀 후스가  쓴 “교회 (De Ecclesia)”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가장 심오한 요지는 그 제목을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라고 한 4장이었다.

후스는“ 교황도 추기경도 거룩하고 전 우주적 교회의 머리가 아니고 또한 추기경들만이 거룩하고 보편적인 가톨릭 교회의 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는 그 시대의 교회 리더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주권을 멸시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직자들이 오히려  자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며 설교하는 자들을 미워한다.”라고 말했다.

후스는 이러한 그의 정직함으로 인하여, 그의 목숨을 잃었다.  그는 이단으로 선고 받았고, 1415년에 화형에 쳐해졌다.

그 후 100여년 후에, 이미 교황 제도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던 마틴 루터가 그의 저서 ‘교회’를 읽고,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지금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얀 후스’의 주장을 가르치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존 스터피츠”도 저와  마찬가지 이었구요.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한 마디로 모두 후스의 추종자들 이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머리로서 교황은 종종  “거룩하신 아버지”, 혹은 “그리스도의 대리자” 라고 불린다. 그리나 이 호칭과 역할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교황은 성좌선언( ex cathedra)을 말 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좌선언을 할 때에는 교황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무오성(무류성(無謬性))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서에 무엇을 보태거나 확대 시킬 수 있는 권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계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는 비성경적이고 불경스러운 권위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과시하고,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침해하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왜곡하고 있다. (*성좌 선언에 대한 아래의 역자주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이해했고, 그리고 담대하게 선포했다.  마틴 루터는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교황권이 진정한 적그리스도의 중심지라고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적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의무가 없는것 같이 교황에게도 순종할 의무가 전혀 없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칼빈은 “기독교의 강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로마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과격하고 비판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 바울의 말을 그대로 옮겨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우리를 비난하는 것은 사도 바울을 비난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누가 다른 주제에 대한 바울의 말로 우리가 로마 교황을 부당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우리에게 반감을 갖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하여, 나는 그들이교황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은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간단하게 보여줄 수 있다. (존알렌번역본 4권, 7장)

칼빈이 인용한 바울의 말은 데살로니가 후서에 기록된 적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살후 2:4).

이 와 동일한 이해와 해석은 후에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에도 반영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교회의 다른 머리는 없다. 로마의 교황 역시 그 어떤 의미로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없고, 다만 그는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이요, 멸망의 아들이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 대항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이다.”  (25.6)

그러나 이것이 교황이 마지막 적그리스도라는 것은 아니다.  요한일서 2:18이 말하는 것처럼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많은 거짓교사들이 항상 존재해 왔고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청교도 카튼 매더는 바빌론의 멸망이란 책에서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적그리스도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의 특성들은 로마의 교황에게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만약 누구든지 성경을읽고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 한다면 그들은 눈먼 맹인과 같다고 생각한다.”

스펄젼은 “예수님을 향한 기도”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청중들에게 말하기를 “적그리스도를 대항하고 적그리스도가 무엇인지에 대항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모든 성도들의 의무입니다.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나 영국의 천주교를 제외하고 적그리스도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계속해서 말했다.

앵글리칸 천주교이던 로마 천주교이던 상관없이 천주교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반대됩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이며 우리는 이들을 대항하는 기도를 해야할 것입니다.  모든 믿는자들은 적그리스도가 맷돌이 홍수에 던져져 다시 떠오르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되도록 매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해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도적질하며,  그리스도의 속죄의 자리를 성사들의 효험으로 대치 시키고,  빵 조각을 구세주의 몸으로 몇 방울의물을 성령님으로 둔갑시키고 , 우리와 같은 불 완전한 인간을 이 땅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세운다. 만일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대항하여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잘못은 미워하지만 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거짓된 교리를 혐오하고 몹시 싫어하지만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는 향기롭게 될 것입니다.

또 “영광의 그리스도”라는 설교에서 스펄젼은 말했다.

” 그리스도는 교황이 그의 영광을 도적질하라고 교회를 그의 피로 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저 한낫 죄인에 불과한 자가 모든 열방의 존경을 받으며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부르라고하며 높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늘에서 이땅에 오셔서 그의 마음을 다해서 그의 백성들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그의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5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라고 전한다.  교황은 누군가가 채워야  할 필요가 없는 권력의 자리에 스스로 앉아 있는 것일 뿐이다.

 

존 맥아더

* 역자주: 엑스 캐소드라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권위의 자석으로 부터’라는 말이다.(가톨릭 대사전은 이 말을 ‘성좌 선언’으로 번역했고, “교황이 성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대한 교리를 정의하는 일”로 정의했다.) 이는 교황 무류설을 말하는 것으로 교황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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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은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8).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지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4-5).

성경에 의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믿음으로만 이루어 지는 것이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께서 당신이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당신이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의로움이 당신에게 전가되었고,그리고 그가 당신의 죄의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지셨고 우리는 그의 의로우심을 받았다. 그것이 놀라운 칭의교리이다(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은 성경과는 극명하게 다르다.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아니라 그들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다.

종교개혁에 대항하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확증하고 성문화하기 위한 모임인 트렌트 공의회는 가톨릭이 만든 칭의교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고 그 교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끝까지 선행을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에게 자비롭게 약속하신 은혜와 그들이 행한 선행과 공로로 하나님 스스로 약속하신 영생이 주어 질 것이다.” 가톨릭 시스템에서의 구원은 우리가 얻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행한 바로 그 행위에 의해서 이 삶에서 하나님의 법을 충족시키고 그리고 진정으로 영생의 공덕을 쌓음으로” 우리가 얻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절대적이로 그리고 완전하게 반대이다. 그것은 완전히 가톨릭 교회가 만들어 낸 이상한 복음이고 구원을 얻기 보다는 저주를 받게할 뿐인 복음이다. 기도들을 수없이 되뇌이는 일이나, 성인들이나 여러가지 교회 유물들을 숭배하는 일이나, 미사에 참여하는 일들이 죄인들의 영혼을 구속하지 못한다. 어떤 사제도 죄를 사해 줄 힘이 없고, 면죄부를 구입하는 일이 그 죄들에 대한 심판을 취소할 수 없다.

공로를 중히 여기는 가톨릭 교회의 핵심은 비성경적인 연옥의 개념이다. 사실 연옥의 발명이 가톨릭의 이론을 아주 매력적으로 만든다. 연옥이 없다면 가톨릭은 정말 전파되기 어려울 것이다. 가톨릭 교인들은 전혀 굳건한 영적인 바탕위에 서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구원 받았는지 또는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심지어 확신한다고 하더라도, 경건한 가톨릭 신자도 하나님과 그들의 교회로 부터 은총을 입지 못할 치명적인 죄를 지을까 하는 끊임없는 걱정 가운데 살아간다.

거짓된 연옥의 교리는 가톨릭 신도들의 영적인 안전망이다. 이 교리는 소망이 없는 체제에 발이 묶인 사람들에게 거짓된 소망을 준다. 이 교리가 그들의 전적으로 행위로 의롭게 되는 죄에 지배되고, 불안에 지배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이다. 연옥은 행위로 의롭게 되는 교리 때문에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있는 단 하나의 위로이다. 그리고 이것은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이며, 수많은 영혼을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비극적인 터무니없는 희극이다.

사도 바울은 칭의의 진정한 본질을 더 이상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정의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이토록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복음이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거부되었고, 그들은 그것을부패하고, 비성경적인 구원으로 대치시켰다. 즉 행위로 의롭게 됨과 공로로 인해 얻는 구원으로 바꾸었다.

그 사탄의 왜곡된 제도를 관장하는 것이 교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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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입니다

 

지난 주에 교황 베네딕트16세가 곧 은퇴할 것이라는 중대하고 예상하지 못한 발표를 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쇄도하는 뉴스와 공개 토론의 홍수에 접하게 될 것이며 특히 새로운 교황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앞으로 여러분은 친구들, 가족, 직장 동료들, 그리고 이웃들과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 토론하게 될 것이다. 이 기회는 모든 사람이 말하는 주제에 성경적인 빛을 비출 수 있는 기회이다. 그리고 주님이 그러한 기회를 주셨을 때,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대해 권위있게 그리고 명료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로마 가톨릭의 타락한 우상숭배에 대해서도 분명하고도 권위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가톨릭을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앞으로 로마 가톨릭과 화합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고 점점 더 많이 주장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교황, 마리아 숭배, 우상 숭배로 가득찬 미사 그리고 로마 가톨릭의 모든 제도를 진실되고 성경적인 기독교라고 다시 분류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에는 아주 많은 문제들과  연루 되어있다. 수세기 동안의 교회 역사와 선교사의 헌신 그리고 순교의 수난등을 뒤집어 놓아야 하는 것이 포함된다.

진리를 대항하는 사탄의 오래된 전쟁에서 가장 강력하고, 끊임없고, 그리고 거짓에 가득찬 적이 로마 가톨릭이다. 

가톨릭은 배교자이며 부패되고 이교적인 그릇된 기독교이다. 가톨릭은 엷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사탄의 얼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는 언제나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종교 개혁이 일어 나기 전 암흑의 시대에서 조차도 진정한 신자는 자기 자신을 가톨릭 신앙과 거리를 두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의 그릇된 가르침과 우상 숭배를거부하므로 잔혹한 핍박과 형벌을 받았다.

이 시대의 분별력있는 성도는 가톨릭에 대항해서 굳건히 바로 서야 한다. 우리는 저들의 그릇된 사제주의와 거짓 계시, 거짓 전통을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잘못된 성사들, 우상 숭배, 그리고 부패한 권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만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는 사탄의 거짓말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틀리는 가를 알아야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을 방어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만 한다.

이번 한 주, 우리는 로마 가톨릭의 핵심이 되는 교리와 제도를 알아 보고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오도하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다. 이 짧은 시리즈로 그 잘못을 총망라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글이 앞으로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러한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게 되도록 여러분들을 돕기 원한다.

존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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