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 터키 이야기 ] 제3차 공의회가 열렸던 대도시 ‘에베소’

 

세계 최대의 도시 유적이 남아 있고, 바울의 2~3차 전도여행지였으며, 아데미를 숭배하던 ‘여신의 땅’ 에베소. 옛 역사와 마리아기념교회에서 열린 제3차 공의회에 대한 ‘성지 터키 이야기’ 두 번째다.


한국은 지금 ‘여교주’ 전성시대라고 합니다. 문선명의 뒤를 이은 통일교의 한학자, 안상홍의 뒤를 이은 하나님의 교회의 장길자, 그리고 이만희의 뒤를 이를 것처럼 급부상하고 있는 신천지의 김남희 등이 마치 트로이카처럼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에베소 지역은 예로부터 ‘여신의 땅’이었습니다. 그 여파는 지금부터 약 1500년 전인 AD 431년에 기독교 안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등 에게해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 섬기던 대모신(大母神)인 아데미(Artemis) 신(神)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로 대체되어 버렸습니다. 431년 에베소의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열린 에베소 3차 공의회에서 결정된 교리 때문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 이단사이비들의 여교주 등장과 에베소의 뿌리 깊었던 여신 숭배의 결과가 묘한 동질감 느낌이 있습니다.


에베소의 개관


에베소(Ephesus) 도시 유적은 버가모(Bergama) 유적과 함께 ‘에게해의 두 개의 장미’로 격찬 받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도시였습니다.


신약성서 ‘에베소서’나 요한계시록의 수신지로 소아시아 7교회 중 하나로 등장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 로마제국 시대에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황금기는 기원전 133년,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면서부터인데, 수많은 국제회의가 열리고 각지의 물산이 집합되는 무역 항구이자 동서양을 연결시키는 교통의 요충이었고, 에베소의 최전성기는 AD 1~2 세기경으로 도시 인구가 30만 명에 달하면서, 당연히 초대 기독교인에게도 에베소는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항만을 끼고 번영한 상업도시 에베소가 쇠퇴한 것은 카이스터(Cayster) 강의 토사 퇴적으로 항구가 묻혀져 가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전염병이 도는 등 도시 기능이 점점 저하되어서 현재의 장소(Selçuk)로 도시를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AD 612년의 지진으로 부분적인 파괴를 겪으면서 에베소는 급속하게 기울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2, 3차 전도여행 때 이곳을 방문했고 3차 전도여행 때에는 성령의 강림으로 방언과 예언의 이적이 일어나서 그것을 본 마술사들이 마술책을 불사르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3통의 편지(먼저 쓴 편지, 고린도전서, 눈물로 쓴 편지)를 에베소에서 쓰기도 했습니다.


에베소의 역사


에베소(Ephesus)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리스의 역사가요, 철학자인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에베소 도시는 흑해로부터 건너 온 여인(女人)족인 아마존족이 BC 1,400년경에 마을을 처음으로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인 스트라보는 에베소는 아마존족 언어로 ‘꿀벌’이라는 뜻의 ‘아빠소스’라는 아마존족의 여왕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 후 BC 1,100년경 이오니아인(Ionians)인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레스(Androcles)가 여인들이 다스리는 아마존 토착민들을 추방시키고 에베소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많은 그리스계인들이 척박한 그리스 본토와 섬을 떠나서 비옥한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버가모, 에베소, 서머나 등)으로 대거 침략하여 그리스계 도시들을 건설하였던 시기였는데, 안드로클레스 왕자도 당시의 전통에 따라 새 도시를 세우기 위해 델피의 아폴로 신전으로부터 신탁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생선과 산돼지와 불이 함께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드로클레스는 에베소 지역에 이르러 바다가 인접한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그가 부하들과 함께 생선을 구워 먹던 중에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불똥이 튀어 코레소스(Koressos) 산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숲속에서 산돼지가 달려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곳이 ‘신이 원하는 장소’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그것을 기념하는 ‘산돼지 상’을 건립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바로 에베소 원형대극장이 위치한 언덕 쪽이었습니다.

 

안드로클레스가 그리스계 이오니아 도시 국가를 건설하면서 에베소는 점차 항구 도시로서 발전을 거듭하며 성장하기 시작했고, 후에 페르시아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의 침략,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 제국, 로마 제국, 셀축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등으로 이어지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진출하려는, 반대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진출하려는 세계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여신 숭배


재밌는 것은 에베소는 아주 오래 전부터 대대로 여신을 섬겨 왔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데미 여신 이전에는 대모신인 키벨레(Cybele) 여신을 섬겼고, 키벨레의 또 다른 형태의 아데미(Artemis) 여신이 그 뒤를 이었으며, 재밌는 것은 기독교가 들어온 후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를 비롯한 아나톨리아의 에게해 연안 도시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아스다롯과 아세라 여신을 섬겼던 것처럼, 예전부터 달의 여신인 키벨레(Cybele)라고 하는 여신을 숭배했었습니다. 에베소도 예외는 아니어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키벨레를 전통적으로 섬겨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마존족이 추방되고, 아테네에서 이주해 온 그리스인들은 에베소에 정착하면서 그들이 그리스에서 섬기던 아데미를 아나톨리아로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에베소는 다산과 번성을 주관하며 출산과 갓난아기의 발육을 관장하는 신인 아데미를 숭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에베소를 비롯한 아나톨리아 에게해 인근 도시들은 모신(母神), 즉 ‘어머니 신’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항상 사람들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의 처음 거주자들이 아마존 여인족이었던 것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AD 53~56년)을 하면서 에베소에서 약 3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에베소 시민들이 아데미에 대한 신앙심이 떨어지면서 은으로 만든 아데미 상의 판매 부진으로도 이어지기도 했지만, ‘은장색 조합’(Guild)의 폭동이 일어나고 네로 황제를 비롯한 이후의 황제들의 기독교 탄압과 박해가 시작되면서 기독교는 위기를 맞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데미를 숭배하는 신앙은 더욱더 활발해졌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로제 제국에서 박해를 가하면 가할수록 제국 내에 더 깊이 더 넓게 뿌리를 내리며 퍼져갔습니다. 바울이 제국 내에 기독교 복음의 씨앗을 심은 후 약 250년이 지난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따라 마침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지정되었으며,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테살로니키아 칙령’에 따라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지정되기에 이릅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에는 그동안 지하에서 제국의 박해를 피해 몰래 예배를 드리며 숨죽여 왔던 기독교가 이제는 지상으로 올라와서 웅장하고 아름답게 교회 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리며 나래를 활짝 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체로 퍼져가며 외면적으로 성장을 해 갈 때에도 아나톨리아의 에게해 인근 도시의 시민들은 항상 예전부터 그들의 조상, 조상들의 조상 때부터 섬겨오던 여신(女神) 혹은 모신(母神)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계속 그들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습니다. 복음을 영접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신을 향한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던 욕구와 욕망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431년도에 에베소 마리아기념교회에서 있었던 3차 에베소 종교회의가 그것입니다.

 

에베소 3차 공의회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정식 종교로 공인받은 후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와서 제국의 메이저급 종교가 되어가면서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내홍을 겪습니다. 주된 이슈는 바로 예수의 신성과 관련되어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믿고 있는 ‘삼위일체’(Trinity)라든가, ‘성육신’(Incarnation) 같은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도 그 당시에는 가장 뜨거운 감자였고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이슈였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 논쟁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327년에 1차 공의회가 니케아(Nicea, 현재 이즈닉)라는 곳에서 열려서 ‘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동일 본질’이라는 교리가 확정 되었고, 381년에는 2차 공의회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재 이스탄불)에서 개최되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신성에 관한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마리아는 누구인가?’에 대한 주제를 놓고 3차 공의회가 431년에 에베소에 있는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개최된 것입니다.


당시는 성모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던 때라 교우들이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으신 분’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사실 이 존칭은 그리스 교부들이 자주 사용해 오던 관용어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이란 뜻의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의 논리인즉, 예수는 신격과 인격을 갖춘 분인데, 성모는 인간 예수를 낳으신 예수의 어머니지 결코 신(神)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키릴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한 위격으로 합치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데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안디옥 학파의 대표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렉산드리아 총 대주교 키릴 간의 그리스도론 논쟁을 종식시키려고 431년 6월 7일 성모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공의회를 열어 네스토리우스를 출교시키고 마리아에게 ‘하나님을 낳은 어머니’라는 뜻의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존칭을 드리기로 결의했습니다. 출교된 네스토리우스는 이집트로 유배되었는데, 436년 사막에서 쓸쓸하게 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동일 본질이다’라는 명제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사고의 지평을 의미 없는 마리아에게까지 넓힌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신성의 원천이 되었다는 해석에서 마리아가 예배의 대상이 되었고 마리아 숭배사상이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3차 에베소 공의회를 통하여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했던 것입니다.


에베소 공의회의 결의가 <테오도시우스 법전>에 수록되어 로마 국법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단순한 예수의 어머니가 아닌, 그 이상의 신적 능력을 소유한 분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키릴이 정치적인 수완이 네스토리우스 보다 뛰어났는데, 그 능력을 가지고 황제 및 다른 주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관철시키고 자신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던 네스토리우스를 출교시키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일까요? 필자는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상기했듯이 에베소를 비롯한 에게해 연간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여신을 숭배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어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 마음 속에는 여신에 대한 마음이 항상 남아 있었는데, 이 부분은 기독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 점이 불만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키릴이 여신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혹은 본인의 제국 교회에서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 아니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 포교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마리아를 전면에 내세워 마리아의 신성에 관한 것을 이슈로 부각시켜서 이 안건을 에베소 공의회로 가져가고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마리아 숭배 교리를 통과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에베소 지역에 아마존 여인족이 처음 터를 잡은 후로 전통적으로 여신인 키벨레를 섬겨왔고, 그리스 이오니아인들이 점령한 후에는 키벨레에서 그들이 섬겨오던 아데미로,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로 공인된 후에는 아데미에서 마리아로 여신의 계보가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3차 공의회가 열렸던 장소도 여신에 대한 감성이 가장 큰 에베소였고, 에베소 중에서도 마리아 기념교회를 공의회 장소로 잡은 것도 어떤 의도가 배후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3차 공의회를 통하여서 로마 제국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간 예수의 어머니’를 넘어서, ‘하나님을 낳은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지위가 수직 상승되어 본인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개신교와 가톨릭이 하나가 될 수 없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교회적으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 때 일수록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이단과 사이비는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적용시키는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믿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신앙생활만이 우리 자신과 가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서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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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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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알아야 할 이슬람 교리 몇 가지

 

이슬람은 한국 역사에서 생소한 종교였다. 그러나 역사적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원성왕(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괘릉 옆에 무인석상이 서 있다. 무인석상은 곱슬머리와 곱슬 수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무슬림의 전통 복장인 터번을 쓰고 있다. 그 모습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라의 스님 혜초가 727년에 쓴 왕오천축국전에 의하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를 방문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중동 사람이나 중앙아시아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수도인 개경(오늘날의 개성)에 이슬람 사원 격인 예궁(禮宮)이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이슬람 예배가 진행되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역법에는 이슬람력(Islamic calendar)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조선 세조 때에는 투르크-페르시아계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 수출하는 도자기 안료인 회청이 수입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일부는 한국 문화 속에 동화되었다.

 

이슬람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약 2만 명의 산업연수생이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때부터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무슬림이 약 25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약 40만 명에 달한다. 이제 이슬람은 한국에서도 중요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2050년에는 한국의 이슬람 인구가 300-400만 명이 될 것이며, 이슬람은 불교, 천주교에 이어서 3번째 큰 종교가 되고 기독교는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과거 중동이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지만 지금은 이슬람 국가들로 바뀌었고,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유럽이 이슬람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1. 타하리프(Tahrif): 성경은 변질되었다

 

이슬람에는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교리가 있다. 구약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신약은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변질되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변질된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되고, 변질된 내용 가운데 꼭 필요한 부분은 꾸란에 올바르게 정리되어 기록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핵심을 세 가지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꾸란에는 무함마드라는 예언자가 올 것이라고 예수님이 예언했는데, 지금 성경에는 그 내용이 없다. 둘째, 꾸란에는 예수님에게 신성이 없다고 가르치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기록되어 있다. 셋째, 꾸란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내용이 없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은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원본에는 꾸란과 일치되는 내용들이 있었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타락하여 그 내용을 변질시켰기 때문에, 알라께서 하늘에 있는 원본인 꾸란을 무함마드를 통하여 직접 계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에서 주장하듯이 정말 성경은 변질되었을까? 만일 성경이 변질되었다면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내용이 꾸란에 있어야 한다. 꾸란에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타락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꾸란에는 계시에 의심이 생기면 ‘성서의 백성’들에게 물어 보라고 말하고 있다(꾸란 10:94). 꾸란에는 꾸란 이전에 계시된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내린 율법을 믿으라고 기록되어 있다. 무함마드 이전에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내용이 꾸란에 없는데, 언제 변질되었다는 것일까?

 

성경은 변질되지 않았다. 구약성경은 A.D. 90년에 팔레스타인의 얌니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확정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B.C. 400년경 말라기서가 기록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었으며 수백 년 동안 유대인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무엇보다도 구약의 권위를 예수님께서 인정하셨다(마 4:4; 막 14:27). 기독교에서도 구약 39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여 사용했다. 신약성경은 최종적으로 A.D. 397년 기독교 3차 카르타고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즉,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200여 년 전까지, 성경은 이미 오늘날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경전으로 확정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1947년 이스라엘의 사해 근처에 있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은 늦어도 A.D. 1세기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오늘날과 동일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꾸란은 무슬림들이 성경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믿는 자들이여 알라와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에게 계시된 성서와 너희 이전에 계시된 성서를 믿으라 했거늘 알라와 천사들과 성서들과 선지자들과 내세를 부정하는 자 있다면 그는 크게 방황하리라(꾸란 4:136)”

 

2. 타끼야(Taqiyya): 위장 혹은 기만전략

이슬람에는 많은 교파가 존재한다. 그러나 크게 두 교파가 있는데 수니파와 시아파이다. 본래 이 교리는 시아파에서 “기만”을 의미하는 이함(Iham)이라는 교리인데, 수니파에서도 ‘타끼야’라는 교리로 받아들였다. 타끼야라는 아랍어에는 거짓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슬람의 도덕적 딜레마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너희의 맹세 속에 비의도적인 것에 대하여는 책망하시지 아니하나 너희 심중에 있는 의도적 맹세는 책망하시느니라 알라는 관용과 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 2:225)” 이 내용은 이슬람 초창기에 이슬람을 반대하는 메카의 쿠라시쉬(Quraish) 부족에게 잡힌 무슬림이, 이슬람을 믿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풀려나서 무함마드에게 와서 고백했을 때 받은 계시이다. 무함마드의 언행록(Hadith)에 의하면 세 가지의 경우에는 거짓말이 허용된다. 첫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 둘째, 평화 또는 화해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 셋째, 여성을 설득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다. 윌리엄 와그너가 지은 ‘이슬람 세계 변화 전략’은 이슬람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두 가지 거짓말을 추가한다. 여행 중에 하는 거짓말, 즉 무함마드 당시 모든 여행은 상업적인 여행이었다. 따라서 아랍 상인들이 상업을 위하여 하는 거짓말,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다.

 

3. 나스크(Naskh): 나중에 받은 계시에 의하여 먼저 받은 계시는 취소되었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A.D. 610년부터 죽기까지 23년 동안 받았다는 내용이다. 꾸란 안에 같은 주제에 대하여 서로 다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꾸란 2장 240절에 의하면 과부는 1년 이후에 재혼이 가능하다. 그런데 같은 꾸란에 남편이 죽으면 4개월 10일 이후에 재혼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죽어서 과부를 남기면 과부들은 재혼하기 전에 4개월 10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이 정해진 기간을 지키면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너희는 비난하지 말 것이다(꾸란 2:234).” 그렇다면 남편이 죽고 언제 재혼이 가능하가? 이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나스크 교리가 생겼다. 꾸란에 기록된 계시는 바뀔 수 있으며, 계시가 바뀔 때는 나중에 받은 계시가 먼저 받은 계시를 취소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받은 계시는 이슬람 신학에 의하면 취소된 구절이 된다. 이에 대하여 꾸란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우리(알라)가 원하였다면 우리가 너에게 계시한 것을 없앨 수 있다(꾸란 17:86).”, “우리가 어느 한 구절을 다른 구절로 대체할 때 알라는 그가 보내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꾸란 16:101).”

그래서 꾸란은 메카에서 12년 동안 받은 메카 계시, 그 이후에 메디나에서 10년 동안 받은 메디나 계시로 나뉜다. 메카에서는 무함마드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꾸란 2:256)” 종교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고 자유가 보장되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메디나로 오면서 바뀌게 된다. 메디나로 온 무함마드는 2년 7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칼을 들게 된다. 그리고 메카로 가는 대상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종교에 강요가 없다던 ‘평화의 계시’는 ‘칼의 계시’로 바뀌었다.

“이교도를 발견하는 대로 살해하라(꾸란 9:5)”, “불신자를 만나거든 목을 쳐라(꾸란 8:12)” 따라서 평화에 관한 계시는 나중에 받은 칼의 계시에 의하여 취소되는 것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메카에서는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였고, 평화를 이루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무슬림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주장했다(꾸란 29:46). 그러나 메디나에 오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바뀐다.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메신저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항복하여 지즈야를 지불할 때까지 지하드를 하라 그들이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꾸란 9:29)”

“소동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종교가 알라에게로 귀의할 때까지 그들과 싸움을 계속하라(꾸란 8:39)” 이 구절들에 의하여 기독교인과 유대인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바뀌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진리인 꾸란의 계시는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 갔다.

이슬람 초기에 무함마드가 사탄의 계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과 타협하기 위하여, 메카의 부족신이였던 알라에게 세 명의 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계시였다. 그러나 그 계시가 돌연 취소되었다. 무함마드 자신이 사탄의 계시를 받았기에 알라에게 혼이 나고 그 계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가지고 인도계 영국 작가였던 살만 루시디(Salman Rushidy)가 ‘악마의 시(Satanic Verses)’라는 책을 썼는데, 그로 인하여 무슬림들에게 20년 이상 살해의 위협 속에 지내게 되었다. 또 그 책을 번역한 사람들이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암살을 당하였다.

 출처 : 유해석 선교사 / FIM국제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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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슬람 포비아 현상과 문제점, 대처방안을 살펴보는 기획보도 오늘은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이슬람대책활동과 이슬람에 대한 교회의 종합대책 방향을 천수연, 고석표 두 기자가 잇따라 전해드립니다.

[천수연 기자]

한국교회가 이슬람대책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팀 피랍사건 이후부텁니다.

여기에 이슬람계 외국인 유입이 늘고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 발행이 시도되면서 교계의 이슬람교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습니다.

조직이 구성된 건 2008년 무렵. 예장통합과 합동총회가 당시 정기총회를 통해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연합단체를 중심으로 대책이가 꾸려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교단에서는 대책위원회를 상설화하는 등 대책활동을 강화하는 분위깁니다.

[인터뷰] 노재경 목사 / 예장합동 교육국
"이슬람대책위원회가 그동안은 이단대책위원회 안에 분과로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독립적이고 파워풀한 활동을 할수 없게 구조적으로 돼 있었죠."


이슬람대책위의 주된 활동은 이슬람의 실체 알리기. 세미나 등을 통해 이슬람의 폭력적 종교성과 국내 이슬람화 전략 등을 한국교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전화인터뷰] 김정만 목사 /예장백석 타종교대책위원장
“취업을 가장해 이슬람화 하려고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결혼과 출산 고지를 점령해서 한국 모든 여성을 이슬람화하려고 대책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활동은 이슬람을 경계하는 소극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국내 무슬림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현수 대표 / 한국프론티어스 국제선교회
"또 한국사회에서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정체감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이고 때론 정치학적이고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구체적 데이터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예요."

또 국내 무슬림을 놓고 국내선교부와 이슬람대책위가 선교정책과 대응방향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협력적으로 움직일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채성수 편집 서원익]

[고석표 기자]

2015년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이슬람 인구는 약25만 명.

전문가들은 그러나 10년 안에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100만 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외국의 무슬림 인구도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 약 72억 명 가운데 무슬림이 약 22%로 약 16억 명.

외신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2001년 무슬림 인구는 150만명, 10년이 지난 2011년엔 280만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80%이상이 기독교인들이라고 알려져 있어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김군이 IS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제2의 김군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무슬림 바로 알기 교육도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무슬림의 확장은 경계하되 이로 인한 공포증 즉 이슬람포비아는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이슬람포비아는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혜롭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이에 따라 신학적, 종교적 편견을 넘어서서 무슬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이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CBS 뉴스 고석표입니다.

천수연 기자 ⓒ CBS 크리스천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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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조차 이슬람의 거짓 홍보에 현혹되고 속고 있다"

 

한 때 한국교회에는 이슬람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그러자 이에 반발,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공포증)라며 이를 반박하는 세력도 존재했다.

그러나 국가 정책의 변화와 유입되는 무슬림들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한국교회의 이러한 움직임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방임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란 선교사였고 이슬람 전문가인 이만석 선교사(한국이란인교회, 사진)가 "이슬람 포비아의 정체"란 글을 발표했다.

꾸준히 이슬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각심을 일깨워 왔던 이 선교사는 이번 글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공포는 비현실적인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곁을 파고들어와 우리 문화와 삶의 방식과 문화를 파괴시키고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공포"라고 주장했다.

 

이만석 선교사가 개척한 한국이란인교회도 7주년을 맞이했다.

그는 29일(화) 저녁 교회 본당에서 열린 기념예배를 통해 "20C 후반부터 다문화정책을 시작했던 유럽에서

스스로 실패를 선언했는데, 한국이 유럽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유럽은) 이슬람이 기독교 문화를 포용하지 않고 동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깨달았다"며

"이슬람은 교의적으로 동화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이런 것들을 일깨워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선교사는 우리가 얼마나 이슬람에 대해 속아 왔고 속고 있는지,

그리고 이슬람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지적했다.

또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깨어 이슬람 정책을 봐야하는데,

이슬람의 거짓 홍보 목소리가 너무 커지다 보니 기독교인들 조차 그것에 현혹되어 속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를 통해서 사도바울처럼 민족을 바꾸고 대륙을 바꿀 그런 일꾼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만석 선교사의 글 "이슬람 포비아의 정체" 전문이다.

 

이슬람포비아의 정체

최근에 들어서 포비아(phobia)란 단어가 종종 눈에 띈다.

포비아란 헬라어 포보스(φοβοσ:공포, 두려움)를 임상심리학에서 차용하여

주로 ‘염려장애(anxiety disorder)’를 규정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면 거미나 쥐 바퀴벌레 등을 무서워한다든지,

높은데 올라가는 것 혹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 등을 두려워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포비아가 있다.

이들 포비아 현상들의 특징은 실제로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일종의 비현실적 정신적 장애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슬람포비아’라는 단어는 포비아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매일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정말로 끔찍한 일들이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슬람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려지는 지역에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나 북부 나이지리아 혹은

수단 등지에서는 거의 매일 무슬림 폭도들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들이

오직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죽어가고 있고

비 이슬람권에서도 9.11테러 사건이나 영국의 지하철 폭파테러 혹은 마드리드의 열차 폭파 테러 등을 보면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충분이 있다.

 

필자가 이슬람을 이렇게 혹평하는 것에 대해서 “무슬림들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데

일부 몰지각한 광신자들을 기준으로 이슬람 전체를 평가한다”고 억울해 하거나

혹은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착한 무슬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또한 우리 사회의 유명한 정치인이나 저명인사들이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하면서

우리의 싸움은 이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이라고 부른다.

정치인들은 세계 인구의 20%에 육박하는 무슬림들을 적으로 만들어 놓고는

정상적인 정치활동이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슬림들은 착한 사람들이 많지만 착한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거나

꾸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권에서 이슬람의 율법에 대해 궁금해서 질문하는 무슬림들에게 답변한

샤리아 학자들의 유권해석(Fatwa)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http://islamqa.info)가 있다.

거기에 들어가 보면 비무슬림들의 생일잔치나 송별회식 자리에도 참석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친구로 사귀면 안 된다고 꾸란 구절과 무함마드의 언행록(Hadith)를 인용하여

유권해석을 내려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비무슬림들을 돕거나 존경해서는 안 되며 철저히 미워해야 한다’는

알왈라 왈바라(Al Walaa, Wal Baraa)라는 이슬람 율법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유럽의 무슬림들이 과격하게 변해가는 이유는 일부 성질 고약한 이슬람 학자들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이슬람의 경전(Quran) 꾸란과 무함마드의 지침인 하디스(Hadith)’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가 “영국에 들어온 무슬림들을 우리가 보호해 주는 동안

그들은 우리 가운데서 원리주의를 키워하고 있었다.”고 한 말은

영국의 이슬람화 과정에서 겪은 뼈아픈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로 깊이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슬림들은 평화를 원하지만 그들의 경전과 율법은 타종교인들과의 평화공존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헌신된 테러범들이 끊임없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테러범들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 참무슬림들이라고 자처하며

무든 무슬림들이 자신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꾸란에 의하면 생명과 재산을 바쳐 알라와 무함마드를 위해서 싸우면서

절대 의심하지 않는 자들만이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꾸란49:15)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은 지하드(Jihad: 알라를 위해서 싸우는 전쟁“)를 영적 전쟁이며

불의 및 타락과 싸우는 내면의 투쟁(inner struggle)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꾸란의 어떤 구절도 그런 생각을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무슬림들은 어디서 발견되든지 죽이라(꾸란9:5)고 명령하는 구절들은

여러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꾸란4:89, 꾸란4:91 등)

 

이런 꾸란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불특정다수의 비무슬림들을 죽이고자 하는 헌신된 무슬림들이

전체 무슬림들 16억 중에 1%만 있어도 1600만명이나 된다.

그들 중 한두 사람 정도만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해도

2005년 7월7일 런던에서 했던 것처럼 서울의 지하철역 몇 군데에서 폭발물을 터뜨리는 지하드를 행할 가능성은 언제라도 상존한다.

 

대한민국보다 훨씬 인권 보장이 잘 되어 있는 유럽이

왜 이슬람에 등을 돌리고 그들과 싸우게 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선진화된 인격의 상징처럼 홍보되던 다문화 정책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첫 해인 2001년 무슬림들에 의해서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슬림들은 민주사회의 자유와 평등과 관용을 역이용하여

인권법 혹은 종교차별 금지법 등을 만들어 놓고 그 법을 무기삼아

자신들을 도와주고 보호해준 사회의 뿌리를 흔들어 가면서

다출산 정책을 통해서 인구를 늘려가고 있어 이제 유럽의 이슬람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불신자들을 친구로 삼는 위선자들은 지옥의 맨 하층에 간다.(꾸란4:144-45)

무함마드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불신자들에게는 잔인하지만 무슬림들끼리는 인정이 많더라(꾸란48:29)

불신자들 및 위선자들과 싸우고 그들을 잔인하게 대하라.(꾸란9:73)

이웃에 있는 불신자들과 싸워 너희가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게 하라(꾸란9:123)

종교가 알라의 이름으로 통일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라(꾸란8:39)

너희가 알라를 믿을 때까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영원한 증오가 있다.(꾸란60:4)

너희에게 다른 종교를 권하는 자들은 ... 어디서 발견하든지 죽여라(꾸란4:89)

 

이슬람에 헌신된 사람들은 위의 꾸란 구절들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9.11 테러로 온 세계가 통곡할 때 이슬람권에서는

거리에 나와 축포를 쏘며 춤을 추는 무슬림들의 모습을 TV를 통해서 확인했을 것이다.

필자는 무슬림 출신의 지인들로부터 꾸란의 그런 구절들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이를 과감하게 실천한 용감한 무슬림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입장을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이슬람권에서는 공영방송과 매스컴을 통해서 혹은 이슬람 사원에서 공개적으로 테러를 부추기고

서양문화의 파괴를 명령하고 있다.

 심지어 쿠웨이트의 ‘압둘라 나피씨’라는 대학교수는

아랍어 TV설교를 통해서 “용감하고 헌신된 무슬림 청년 한 사람이면

1시간 동안 최소한 미국인 33만명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성공하면 그들의 통곡의 외침이 우리의 진정한 축제가 될 것이라고 설교하고 있으며

“미국 미시간 호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폭파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인터넷 동영상 싸이트인 유튜브(youtube.com)에서 ‘kwaiti professor anthrax'를 검색하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약9분짜리 동영상으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아랍권 22개 국가에 동시에 방영되며 54%의 평균 시청률을 자랑하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방영되었다는 것을 보면 이슬람의 테러는 동굴 속에 숨어있는 일부 몰지각하고 무식한 광신자들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이슬람 성직자들의 이런 종류의 설교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꾸란의 구절들과 이슬람 성직자들의 설교를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알라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문화권에 가서 이웃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가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과연 그들을 보호해 주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품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슬람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이며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잠시라도 그 율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충격적인 것은 빈라덴을 키워낸 원리주의 이슬람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싸이드꾸틉의 마일스톤스(Milestones: 진리를 향한 이정표: 서정민 역, 평사리, 2011)’가 한국어로 출판되어 누구라도 사서 볼 수 있도록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싸이드 꾸틉은 이집트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었으나

그가 쓴 이 책이 테러의 원리를 제공했다는 죄로 사형을 당했으며 이 책은 판매가 금지되었던 위험한 책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 대한 공포는 비현실적인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곁을 파고들어와 우리 문화와 삶의 방식과 문화를 파괴시키고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공포이기에

이슬람포비아라는 말은 잘못 만들어진 단어임으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이 단어는 도처에서 일어나는 테러 덕분에 자신들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자들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붙이기 위하여 이슬람 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제작해 놓은

테러범들의 보호 장치라고 표현함이 옳다고 본다.

이만석 선교사(한국이란인교회, 4HI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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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이해] 꾸란에서 이싸는 알라의 아들이 아니다

 

 

이슬람에는 계시(revelation of God)가 있는가?

 


일부 무슬림들은 성경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가 같다고 한다.

성경의 하나님과 꾸란(코란)의 알라가 같으냐 다르냐라고 물으면 우리는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답해야 한다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슬람의 알라가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다고 말하려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계시라는 세 가지 범주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만일 꾸란을 아랍어로 읽어본다면 꾸란의 내용이 기독교의 하나님을 알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꾸란 구절들을 만나게 된다.

이슬람의 알라는 구름으로 가려진 태양을 보는 것과 같고

성경의 하나님은 맑은 하늘에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태양과 같다.

무함마드가 사람들의 질문과 자신의 요청 사항을 알라에게 고하면 알라가 그 답을 주었다고 무함마드가 말한 것을 적어 놓은 책이 꾸란(코란)이다.

꾸란에는 무슬림들이 직접 알라를 만나 계시를 받았다는 내용이 없다.

성경은 사무엘 3장에서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직접 자신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나 꾸란은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명한 내용이 있을 뿐 직접 나타나신 것은 아니다.

 

성경의 구약에서는 하나님에 의하여 눈과 귀가 열리고 신약에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나타나시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나신다(디도 2:11;3:4).

그러나 꾸란은 알라 자신이 나타나 무슬림들이 알라를 직접 보았다는 말은 없다.

꾸란은 알라의 뜻이 책이 된 것이라서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나타나신 성육신은 찾아볼 수 없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성경의 사도들은 그들의 손으로 예수님을 만져보고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였다.

그러나 꾸란의 구절을 지브릴 천사가 무함마드에게 하나 하나 알려주었을 때 무함마드는 오직 타자기 역할만 했다고 무슬림들은 전한다.

자신의 생각과 인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문맹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알라가 지브릴 천사를 통하여 무함마드에게 전해주었을 때

무함마드가 듣고 그가 들은 말을 당시 메카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다.

사도들이 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시다.

말씀(예수 그리스도)이 육신이 되셨다(요 1:14).

그러나 꾸란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없다.

공관 복음에서 예수는 이방을 비추는 빛(눅2:32)이라고 하여 예수가 신적 계시의 소지자bearer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두 번째는 요한 12:38에서 예수가 신적 계시의 중개자mediator라고 하여 공관복음에서 보다 더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아버지를 알게끔 해 주시는 분이 독생자 예수이시고(요한 1:18) 그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요 3:32)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꾸란에서 이싸는 단지 예언자에 불과하고 인간이며 알라의 아들이 아니다.

세 번째, 계시의 중심 내용은 그리스도 자신Christ himself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들에게 계시된 것과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한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꾸란은 <계시되었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알라가 <내려보냈다>라는 말을 사용하여 성경의 계시 개념과 달리 하였다.

이슬람관련 책들을 보면 꾸란의 와히가 간혹 <계시>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는데

와히는 비밀을 전한다는 말은 있지만 성경의 계시와는 전혀 다르다.

꾸란에서 와히는 책이나 메시지 혹은 알라의 말 혹은 알라의 메시지를 휴대하고 온 천사를 가리킨다.

와히는 말이나 메시지를 통하여 내려준 것이고

알라가 와히를 통하여 무함마드에게 내려준 책이 꾸란(알라의 말씀)이다.

이런 와히의 정의는 성경이 말하는 계시의 내용과 다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알라를 영Spirit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꾸란의 알라는 성경의 계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란 개념에서 고찰해 볼 때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꾸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출처 : 공주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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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선포한 말씀

 

필자가 어떻게 답을 해야 할 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아랍교회 담임목사가 “그렇다”라고 서둘러 답을 하였다. 그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그 모임 분위기가 아주 어수선하게 되었다. “그렇다”라고 답을 하면, 세대주의가 되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개혁/언약신학이 된다. 그 목사는 이집트 장로교회 산하 카이로복음주의신학교 출신으로 그의 교단 소속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은 개혁/언약 신학이 아니라 세대주의 신학이었다. 세대주의는 성경예언 성취의 주인공을 야곱의 피를 이어받은 혈통적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혁/언약신학은 그 주인공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라고 한다. 그리하여, 세대주의는 개혁/언약신학을 대체신학이라고 비판을 하고 있다. 성경예언성취의 주인공이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인데 개혁/언약신학이 그 주인공의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로 대체시키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히 안타깝게도, 중동의 개신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그들이 속한 교단의 신학 노선과 상관 없이 세대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이른바 이스라엘 회복 운동에 연루된 자들이 많다. 그들은 국가 이스라엘이 세워졌고, 그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도 탈환하였으니, 이제 예루살렘 성전건축에 대한 예언도 곧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동의 개신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이고, 이스라엘과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판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르단의 최초 선교사는 로이 위트만(Roy Whitman)이다.그는 14세에 교회의 휴거에 대한 설교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훗날 아랍권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21세의 나이에 예루살렘에 왔고, 22세의 나이에 당시 요르단의 수도인 쌀트에 왔다. 그가 요르단에서 사역하던 중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1948.5.14)그는 이스라엘 건국 사건을 성경 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는 가롯 유다가 결코 존경을 받을 수 없지만, 그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의 역할만큼은 성경예언의 성취적 사건이 되었던 점을 그의 교우들에게 상기시키시며, 이스라엘의 건국사건에 대한 성경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라는 그의 해석을 정당화시키곤 하였다.

이사야 19: 23-25은 ”앗수르인들과 이집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하나가 되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해서 성취되기 시작하였음이 분명한다.

 

사도행전 15:39에 따르면, 바나바는 바울과 다투고 난 다음에, 그의 조카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마가는 구부로를 거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다. 또한 다른 제자들이 앗스르인들에게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의 그 예언의 말씀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사건 이전에는 성취되지 못하였다가, 건국 사건 이후에야 마침내 성취되기 시작하였다고 해석하는 가운데, 그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랍 교회의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세대주의에 기초한 아랍 기독교인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라는 말씀에서 ‘그의 나라’가 곧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재림하셔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함으로 회복시킬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회복되는 이스라엘이 곧 이른바 천년왕국이라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은 1948년의 이스라엘의 건국이나 1967년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탈환은 그 왕국의 전초적 단계가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는 말씀도 친이(스아엘)파의 길을 걷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는 심히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곧 이 시대에 그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적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은 그 성전 터가 있는 동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게 양보할 수는 없는가? 팔레스타인 뿐만 아니라 전 이슬람 세계가 결코 양보할 수가 없다고 한다.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성전 터의 바위 돔 사원에 있는 “바위” 때문이다.

성전 터에는 바위 돔 사원과 더불어 알아끄사 사원이 있다. 편의상, 그 두 사원은 알아끄사 사원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그 “바위”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알라 이외는 다른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메신저)이다”라는 이슬람의 샤하다, 즉 신앙 고백문이 그 “바위”와 더불어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비록 그의 몸은 메카에 있었지만,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 터의 “바위”를 발판으로 하여 천국에 오르게 되어 알라의 최대 사도로 인침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메신저)이다’라는 내용이 이슬람의 신앙고백문에 포함되었다.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를 행하기 약 2년 반 전인 1998년 2월 23일에 자신을 포함한 5명의 이름으로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세계 이슬람 전선 선언문”(Jihad Against Jews and Crusaders/WorldIslamicFrontStatement)을 발표하였다.     

출처 : 정형남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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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무슬림

이슬람은 7세기 초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로 세계인구의 1/4인 약 16억명이 이슬람교를 믿어

신자 숫자로만 보면 개신교(7)나 천주교(11)와 비교시 세계 최초 종교이며 세계 57개국이

국교로 삼고 있다.

'이슬람'의 어원은 (알라에게) '항복하다'라는 뜻이며 '무슬림''알라를 믿는 사람'을 의미한다.

무함마드

이스람교를 창시한 아랍의 예언자로(AD 570-632) 그는 삼촌과 여행을 다니면서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을 만나 유일신 사상과 종교의식, 용서 등을 배웠다.

이것이 이슬람 창시와 교리의 바탕이 되었다.

무함마드는 25세때 40세 여자와 결혼하였으며, 두 번째 결혼은 50세에 9세 여아와 결혼하는 등

비정상적 삶을 살았던 경력의 소유자다(위키백과참조)

이슬람의 종파

1. 수니파 이슬람교도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며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2. 시아파 소수파(10%)로서 수니파로부터 많은 시련을 받았다. 수니파와의 갈등으로

테러와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구원관 차이

이슬람의 신학적 체계는 기독교와 아주 비슷하다. 꾸란에 나오는 단어의 18%가 기독교 성경과

같은 글의 형태 를 가지는데, 그 중 3/4은 신약성경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게 되는 원인이 있다.

 

이슬람의 실체

 

개종이 불가능한 종교

이슬람은 개종자를 살해하라고 가르치기때문에 무슬림이 된 후에는 목숨을 담보하지 않고는

빠져 나올 수 없다.

여성 차별하는 종교

이슬람은 철저한 남자 중심 종교로 꾸란을 보면 얼마나 여성을 차별하는 종교인지 알 수 있다.

쿠란의 남녀 불평등 구절

(꾸란2:223) 여자는 너의 밭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다루어라.

(꾸란2:282) 두 남자의 증인을 세우며 두 남자가 없을 경우는 한 남자와 두 여자를 증인으로 세우라

(꾸란4:11) 알라께서 상속에 관한 말씀을 하셨나니 아들은 두 명의 딸에 해당하는 몫을 취하니라

(꾸란4:34) 너희들이 불순종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먼저 그들을 타이르고 그 다음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며 그 다음에는 매질하라

 

폭력과 테러의 종교

이슬람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 꾸란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교육받아 온건한 무슬림도 언제든지

'테러분자'로 돌변할 수 있다.

꾸란에는 수많은 구절들이 폭력으로 싸울것을 명령하고 있으며 천국은 그러한 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꾸란2:190) 알라를 위하여 당신을 적대시 하는 자와 싸워라.

(꾸란2:193) 알라의 종교를 믿을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꾸란9:5, 꾸란55:56) 이교도들을 죽이거나 그들과 싸우다 죽임을 당하면 아름다운 낙원과

아름다운 처녀들이 기다리고 있다.

(티르미지2:138)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마다 72명의 미녀를 하사 받을 것이요,

100명의 남자가 갖고 있는 정력을 받는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종교

그들은 타종교와 투쟁할 뿐만 아니라 이스람 내 타종파와도 끊임없이 갈등하며 투쟁한다.

또한 유럽에서 처럼 도시를 슬럼화하며 범죄, 폭동, 테러 등으로 각국의 국가 안보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꾸란4:138) 타종교와 평화공존을 말하는 것은 알라의 명령을 실천하지 않는 위선자이다.

(꾸란4:87) 그들이 배반하면 발견하는 대로 포획하고 살해하라.

(꾸란47:4) 전쟁에서 불신자를 만나면 그들을 살해하라.

 

단계별 공략 기술

이슬람은 한 국가에 진출할 때 무슬림 인구의 증가에 따라 단계별로 다른 전술을 구사한다

(미국CIA 발표)

1단계) 무슬림 인구 1% 내외

평화를 사랑하는 소수 그룹을 지향하며 수면 밑에 잠복한다(한국)

2단계) 무슬림 인구 2-3%

감옥 내 재소자들을 집중적으로 무슬림으로 개종시킨다(덴마크)

3단계) 무슬림 인구 5%

무슬림 인구비율을 더욱 높이기 위한 본격적인 전략이 시작된다(프랑스)

4단계) 무슬림 인구 20%

폭동사태가 시작되고 성전(지하드)를 위한 테러단을 조직한다.

단발적인 살해사건이 발생하며 교회에 대한 방화와 파괴가 시작된다(이디오피아)

5단계) 무슬림 인구 40%

광범위한 학살이 자행되고 상습적인 테러가 발생한다(보스니아)

6단계) 무슬림 인구 60%

 

전혀 구속받지 않고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박해하고 탄압한다.

인종청소가 시도되며 이슬람을 강요하고 배교자에 대해 압박한다(알바니아)

7단계) 무슬림 인구 80%

국가 주도로 대규모 인종청소와 대학살이 자행된다(파키스탄)

8단계) 무슬림 인구 100%

이슬람 율법이 헌법에 우선하는 신정일치체제를 구현한다(아프카니스탄)

 

확산되는 이슬람

현재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약 16억 명,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이른다.

카톨릭은 무슬림이 이미 유럽에서 카톨릭 인구를 능가했다고 발표했으며,

유엔도 2020년이면 이슬람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종교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 마디로 이슬람의 성장은 놀랍다.

 

산아 제한을 하지 않는 종교

70년 만에 이슬람 급속성장 800%

19402억에서 1974년엔 5, 1990년엔 10, 2014년엔 16억으로 급성장.

이슬람은 산아 제한을 하지 않아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한다.

지난 70년 동안 2억에서 16억으로 800% 급성장했다.

 

유럽의 이슬람 확산

지금 유럽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자살폭탄 테러보다도 무슬림의 '인구폭탄'이다.

유럽연합 31개국 평균 출산율은 1.8명인데 무슬림은 평균 8.1명에 이른다.

이렇게 높은 무슬림의 출산율로 인해 무슬림 인구만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유럽에 5200만의 무슬림이 있다고 하나 실제로는 8,000만 이상의

무슬림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유럽인구의 7%에 달한다.

2025년에는 15천만으로 유럽 전체인구의 2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주요국가 이슬람화 현황

<영국> 지난 30년간 30(28십만) 이상 증가, 모스크 1,500개 이상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600만 육박, 유럽 1

<네덜란드> 전체 인구의 6%, 15년 내에 인구 절반이 무슬림화 예상

<독일> 전체인구의 4.9%(400) 2050년 이슬람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

(독일연방 통계청)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조만간 유럽은 대부분이 이슬람화될 것이며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유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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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슬람화

 

유럽의 전철을 밟는 한국

한국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전체인구의 약14%(643만명)의 인력을 수입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매년 30만 명의 이민자가 들어오는 나라가 됐다.

영국은 2000년대 매년 약 10만 명의 이민자가 들어왔음에도 이슬람 인구가 500만이 넘게 증가했다.

한국의 현재 무슬림 인구는 20만이다. 그러나 한국도 유럽이 밟은 전철을

빠른 속도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영국과 같이 언제 무슬림이 500만으로 늘어날지 모른다

 

한국을 노리는 이슬람

우리가 전도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무슬림들이 반대로 한국을 전략적 전도지로 정하고

'이슬람 비전 2020' 을 선포했다.

아랍의 모 일간지 기사내용

'수십 년 안에 한국에서는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보다 많을 것이다.

오늘날 가장 적합한 이슬람 선교지는 한국이다.'

 

이슬람 연맹의 '한국선교전략'

이슬람 문화센터 건립 아랍어, 이슬람교리, 벨리댄스 강습 등을 통해 이슬람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다

사원(모스크)건립 11개의 이슬람 사원, 4개의 이슬람 센터, 60여개의 예배소가 있으며

현재 송도에 2만평 170억 규모의 모스크가 건립중.(?)

국내 대학 공략 대학 교수와 학생들에게 대해 많는 재정 후원을 한다.

결혼 및 출산 전략 한국 여자와 결혼하여 많은 자녀들을 낳는다.

기혼자도 결혼한다(일부다처제)

한국유학생 이슬람권유치 우수한 한국인 유학생을 적극 유치하여

이슬람 우호세력 및 무슬림을 양성한다.

꾸란 번역 현대국어로 완역, 보급하여 이슬람 전파를 가속화한다.

이슬람대학 건립 현재 건립 중이며 각종 특혜 등을 통해 이슬람식으로 교육,

사회 모든 분야에 침투시킨다.

 

한국 여성 피해

 

이슬람에서는 원칙적으로 이교도와의 결혼을 금한다. 결혼하는 부부 중에 한명이

무슬림이 아니면 이슬람법에 따라 반드시 무슬림으로 입교하거나 개종해야 한다(꾸란2221).

개종하지 않으면 자녀를 볼모로 개종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한국 여성과의 결혼 전략

무슬림 남성은 한국국적 취득수단으로 한국여성과 결혼하려 한다.

본국에 부인이나 자녀들이 있더라도 결혼 전에 절대 밝히지 않는다.

귀국할때 버리고 가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결혼전에는 개종을 이야기하거 강요하지 않는다.

주요 공략대상은 같은 회사 근로자, 이혼자, 기독교여성

장애인, 노처녀, 다방여성, 정신지체자 등이다

첫번째 사례

학원 강사 K는 파키스탄인 A와 결혼 후 개종을 강요당하며 폭행을 당해왔으며 딸의 생명을

위협(2살 난 잠자는 아이를 옥상에서 떨어뜨리겠다고 협박)받았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탈출했다.

 

두번째 사례

한국여성 S는 파키스탄인 M과 결혼했다.

M聖戰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며 S에게 불법판매를 강요하다 경찰조사가 시작되자

파키스탄으로 도피했으나 또 한명의 한국인 부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2020년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하고 한국의 기독교를 파괴하며 우리의 안방을 점령하려고 하는

가장 경계해야 할 이단중의 이단, 이스람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모르고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있습니다.

이슬람은 수많은 영혼을 지옥으로 데려가려는 사악한 사탄마귀를 믿는 종교입니다.

저들의 계획대로 한국에 이슬람이 뿌리내리고 우리가 깨어 이슬람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5, 10년 후에는 유럽의 경우와 같이 때늦은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슬람의 실체에 대해서보다 정확히 알고 우리 주위에서 이슬람의 유혹에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많은 교육과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미혹하는 이슬람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고 영원한 생명이시며 구원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

 

* 이슬람 주요 테러조직 *

IS (이슬람국가) : 최근 (2014)에 설립되어 이라크와 시리아를 거점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

돈을 미키로 SNS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대원을 모집하고 있다. (한국 10대 소년도 지원)

탈레반 : 극단주의 테러의 원조로 파키스탄을 거점으로 활동한다

알카에다 : IS의 원조로 911테러의 배후

보코하람 : 나이지리아를 거점으로 마을을 습격, 2,000명을 학살하는 잔인함을 보임

알샤밥 : 소말리아를 장악하고 활동 중

* 급증하는 테러 건수와 사망자 수 *

 

2011: 2,010, 9,084

2012: 2,554, 11,539

2013: 2,836, 17,750

2014: 3,000, 32,004

2013년에는 세계 55개국에서 테러발생

2010년 전에는 거점 주위에서 소규모로 테러했으나 최근에는 전 세계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음

 

(일본인 인질 살해 등)

한국인대상 테러:2006년 이후 총 66건으로 12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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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갈등과 반목의 역사

 

세 종교 이야기. 홍익희.

 

오늘날 지구상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비극적 상황에 많은 사람이 고통에 빠져 있었다.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신을 믿는 형제 종교이자 세계적인 거대 종교의 대표 격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내세우는 사랑, 자비, 복음, 구원과 달리 현실은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되어 있다.

 

책은 세 종교의 시작을 연 인물인 아브라함의 뿌리가 되는 고대 수메르 문명부터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한 로마제국,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에 치러진 십자군전쟁과 일방적인 유대교 박해가 행해진 중세 암흑기를 거쳐 홀로코스트와 팔레스타인 분쟁까지 전 방위적으로 세계사를 다룬다.

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예수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기독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한다. 이 차이로 각 종교가 그동안 반목했던 것이다. 즉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유대교에 덮어씌운 죄, 즉 예수를 인정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는 죄는 로마제국에 이어 십자군 원정으로 이어지며 중세와 근대의 유럽 지역에서 유대인에게 행해진 박해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선민사상이 강한 배타적인 유대교의 특성상 예수의 보편성을 띤 교리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고,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교 역시 유대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고 세계사의 주역이 되었지만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았을 뿐이다. 이들에게 공동체 내의 활발한 정보교환은 필수였고 유대인들은 이를 상업에 활용, 부의 축적을 이루어낸다. 책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세 종교의 방대한 역사를 간명하게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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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이슬람화 그리고 한국 미래

 

 

유럽 이슬람화의 중심으로 전락한 , 그 전철 밟는

 

FIM국제선교회(대표 유해석 선교사) 창립 18주년 기념 크리스천을 위한 이슬람 세미나28일 신반포중앙교회에서 개최됐다.

 

FIM은 영국에 본부를 둔, 이슬람권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단체다. 초교파적으로 준비된 선교사들을 발굴하여 교육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1FIM 창립기념예배, 2부 선교사 파송식, 3부 세미나로 진행됐다. 3부 이슬람 세미나에서는 유해석 선교사가 영국의 이슬람화 과정이 한국에 주는 교훈’, 소윤정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이슬람과 한국 여성’, 김성봉 목사(신반포중앙교회 담임)이슬람에 대한 종교개혁자 불링거의 견해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첫 번째 발표에 나선 유해석 선교사는 영국 이슬람 연구는 한국의 미래 이슬람의 성장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과거 영국은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고 기독교가 꽃을 피워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중심지였지만, 오늘날은 유럽 이슬람화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 선교사는 영국의 이슬람 성장 원인으로 이민·다산·결혼·개종을 꼽았다.

 

먼저 이민을 보면, 영국에는 1997년부터 2010년 사이에 약 550만명의 외국인이 들어왔는데, 이 중 2/3 이상이 비유럽연합 출신 이민자들이었다. 유 선교사는 영국 내 무슬림의 68%는 남아시아 출신들이라며 전체 무슬림 중 파키스탄인이 43%, 방글라데시인이 17%, 그리고 인도인들이 8%”라고 소개했다.

  

다산의 경우 영국인은 평균 1.6명을, 영국에 사는 무슬림 여성은 평균 6~7명을 낳는다. 결혼 문제도 심각하다. 무슬림 여성은 무조건 무슬림 남성과 결혼을 해야 하지만, 남성은 다르다. 무슬림 남성은 무슬림 여성, 유대인 여성, 기독교인 여성과도 결혼할 수 있다(꾸란 5:5). 무슬림 아버지와 비무슬림 어머니 사이에 자녀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종교를 따르게 하는 이슬람법에 의해, 이슬람 인구는 세대가 갈수록 늘어간다.

 

개종의 경우 영국 무슬림의 12%가 백인 개종자들이다. 영국은 매년 1만명에서 5만명이 이슬람으로 개종해, 2020년이 되면 이슬람의 모스크 출석자가 기독교의 교회 출석자에 비해 월등히 많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흑인들의 이슬람화도 이슬람의 번성에 한몫했다. 영국 흑인들의 9%는 무슬림으로, 충격적인 사실은 그들이 대부분 이전엔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초반 인구조사통계에 따르면, 카브리해에서 온 흑인들 가운데 60%는 자메이카 출신이었다. 자메이카는 개신교인이 61%.

 

영국에 도착한 기독교인들은 영국교회에서 헌신하기 원했지만, 영국교회는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영국교회가 노예 역사에 대해 무관심했고, 노예제도 문제나 그로 인하여 형성된 인종 문제, 그리고 구조적인 불평등 구조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슬람에서는 이를 교회 비판 기회로 활용해 많은 흑인들이 교회를 떠나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무슬림 증가에 따른 다양한 문제 발생

 

영국정부는 노동력 부족과 저출산·고령화를 막기 위해 다문화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무슬림의 테러리즘, 성폭력, 각종 폭력적인 범죄와 마약 등이 사회 문제로 번지며,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공언했다.

 

또한 무슬림 증가로 이슬람의 선교가 가속화되고, 근친결혼이 성행하며, 샤리아법이 다스리는 지역 증가, 영국 내 모스크의 증가, 이민자로 인해 영국을 떠나는 백인 증가 등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영국의 경험과 비슷하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외국인 유입, 저출산·고령화 사회는 영국과 정확히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한국에는 현재 약 23만명의 무슬림이 존재한다. 20세기 말 사무엘 헌팅턴은 이슬람세계가 그 폭력성과 인구폭발로 서구문명과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을 했는데, 오늘날 서구에서 그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유 선교사는 한국의 이슬람화를 우려하며 값싼 노동력에는 대가가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이질적인 문화는 반드시 충돌을 낳는다영국에서 있었던 7.7테러의 주범들은, 모두 영국에서 태어난 무슬림들이었다고 소개했다.

 

유 선교사는 각 나라는 이민자를 선별하여 받을 수 있다캐나다는 1/5이 외국인노동자지만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서 이민자를 선발하는데, 100점 만점에 교육 정도(25), 언어 실력(2), 직업에 따른 경험(21), 나이(10), 직업의 숙련도(10), 또한 재정, 건강, 범죄 경험 유무 등을 확인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교회에 대한 제언으로는 교회가 건강해야 하고, 다문화 시대에 맞게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며 영국교회가 인종차별로 인해 실패한 사례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한국사회에는 그보다 더 심한 차별이 존재함을 지적했다. 이 외에도 이슬람은 신앙전승률이 100%라며 신앙의 전승률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유 선교사는 이슬람으로 인하여 꾸란을 연구하고 종교개혁을 가속화시켰던 마틴 루터의 말을 인용, “이슬람에 대항하여 싸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더 개선하자며 한국교회가 회개하고 원시 복음으로 돌아가면 이슬람의 증가는 하나님께서 막으실 것이라고 한 뒤 강연을 마쳤다.

 

이에 앞서 창립기념예배에서 김지호 목사(칼빈대학교 대학원장)세계선교의 실행위원, 기도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기도는 성도가 세계선교의 실행위원으로 연합해,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존하는 것과, 성도의 기도 후원에 의존하는 것이라며 선교지에서 사탄의 아들들이 선교사들을 두렵고 떨리는 자리로 몰고 갈 것이지만, 여러분들이 선교사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한다는 소식이 선교사들에게 전해지고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것을 믿으면, 선교사들은 담대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2부 파송식에서는 제럴드 알렉산더(Gerald Alexander)·신상희·김동우·김선화·정혜란 선교사가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들로 파송됐다.

하 석수 기자 ssha@chtoday.co.kr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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