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티기독교인들이 출간한 <우리는 왜 기독교를 반대하는가> 
    
안티기독교, 어떻게 볼 것인가


   들어가며
 

   1990년대 이후로 본격적인 다양한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종교 진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실 90년대 후반만 해도 종교비평이라는 용어는 내 기억 상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기에 종교인 단체가 아닌 일반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어 ‘종교인의 소득세 문제’를 제기한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동시에 기독교와 관련해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안티 기독교>Anti-Christianity의 폭발적인 증대 현상이다. 초창기에 안티 기독교 사이트는 여기저기서 생겨났었다. 그러다가 2002년경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군소 안티 기독교 그룹들을 현재의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하 ‘반기련’, www.antichrist.or.kr)으로서 통합한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안티 기독교
 

   아주 오래 전이지만 나 자신은 우연히 안티 기독교인을 처음으로 접했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기억상으로는 현재의 반기련 통합 이전인 듯― 우연히 안티기독교 사이트의 글을 발견하고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들은 대체로 기존 기독교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성경을 통해 온갖 날조와 허구를 가르치고 있고, 십일조의 명목으로 돈을 모아서 교회당을 크게 짓고 자기 배만 불리고 있기 때문에, 이제 기독교는 몽땅 망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사람들의 접속수도 매우 높았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안타까움도 있어서인지 나는 약간의 답변을 남겼다. 즉, 기존의 보수 기독교의 그러한 폐해들이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소수의 건강한 진보 기독교의 흐름들도 있으니 기독교에 대해 좀더 깊게 공부를 하실 필요도 있다고 얘기하자, 당시 그 안티기독교 사이트에 많은 글을 쓰고 또 이를 만든 운영자이기도 했던 그 안티 기독교인은 나의 그러한 코멘트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첫 답변을 주었다. 날더러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린 종교관을 가지고 있고 성서비평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또한 나름대로 이 땅에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위해 사회운동에도 힘쓰는 진보적인 기독교에 대해서도 좀더 상세하게 소개를 하니까, 그게 무슨 기독교냐고 반문하면서 그런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믿으려 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었다. 물론 그럴 만도 한 게 그러한 진보 진영은 소수이기도 하니까. 
 

   재밌게도 나의 그 글은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 해우소 같은 곳으로 보내어졌고, 자유게시판은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못들어 오도록 아이피를 막아놓았었다. 그리고서 여전히 또 일방적으로 남겨놓은 얘기는, 기독교는 무조건 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이를 <기독교 박멸론>이라고 부른다. 마치 바퀴벌레 박멸을 떠올리듯 말이다.
  
   안티 기독교의 발생과 형성은 기존 기독교의 폐해가 가장 큰 원인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이 안티 기독교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서도 살짝 얘기를 했었는데, 결정적인 것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기독교에 빠져서 종교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안티 기독교인은 교회를 계속 다니다가 어느 날 목사에게 성경에 의문이 있어서 질문을 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서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대부분의 안티 기독교인들은 직간접적으로 기존의 보수 기독교의 폐해를 경험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티 기독교의 발생이 기존 기독교와 아무 상관없이 그냥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는 사실부터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즉, 안티 기독교의 발생은 기존 기독교의 끔찍한 폐해들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안티 기독교인들이 성토하는 내용들은 크게 보면, 주로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독선적인 배타성 및 ‘무조건 믿어라’고 말하는 강압적인 신앙으로 인한 폐해들이 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존 기독교에 대한 안티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반감>과 <증오>가 아주 강하다. 이들은 기독교인을 부르는 명칭부터 기독교인을 ‘개독교인’이라고 부르고, 목사를 ‘먹사’라고 종종 부른다.
 

   그래서인지 안티 기독교인들은 기존 기독교의 사회적 행태에 대해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꼬집어내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목사가 불륜을 저지르는 사건이 터지면, 그에 대한 기사거리 뿐만 아니라 자료 사진과 풍자 그림들이 온갖 동원된다. ‘에어장 사건’은 오랫동안 이들에게 안주거리이기도 했었다. 이들은 일상적 삶 속에서 발견되는 기독교인들의 행태도 곧잘 꼬집어 낸다.
 

   때때로는 그 관찰력이 아주 탁월한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나는 건강한 기독교인이라면 안티 기독교 사이트도 충분히 가볼만 하고 이들의 주장과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들이 기존 기독교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매우 예리하게 꼬집어내고 발견해내는 지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안티 기독교의 주장들을 모두 동의하진 않지만, 적어도 안티 기독교의 입장에서 기존의 주류 기독교를 비꼬며 풍자하는 측면들도 알아둠이 좋다는 얘기다. 사실 그들의 영혼들 역시 상처받은 영혼들이긴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안티 기독교의 한계
 

   그렇기 때문에 안티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의 폐해를 경험한 자들에겐 그 사이트를 접할 경우, 희열을 느낄 만큼 매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기존 기독교를 까발리는 행태들은 마치 그동안 억누르고 금지되었던 욕구들을 마음껏 발산시키는 해방구 노릇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티 기독교의 한계는 바로 그것이 현재로선 존재의의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즉, 안티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의 폐해로 인해 발생하였지만, 기존 기독교가 “무조건 믿어라”의 폭력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안티 기독교는 “기독교는 무조건 망해라”는 신념이 무차별적으로 전제되고 신봉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 폭력성만큼은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들은 아주 많다.
 

   예컨대, 순진한 기독교인 한 명이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들어와서 “샬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는 당신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길 바라며, 지옥에 가지 않길 기도합니다”라는 정말로 순진한 메시지를 남겼다면, 이는 안티 기독교인들의 집단 먹잇감이 되기엔 딱 안성맞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에게는 다짜고짜 반말부터 깔고 나가는 모습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게다가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서 순진한 기독교인 한 명에게 뭇매를 가할 때 그나마 동원되는 비난의 근거들은 대체로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행태에 대한 지적들 외에도 <바이블>(안티 기독교인들은 성경이나 성서라는 단어를 안쓰고, 바이블이라는 표현을 잘 쓰는 것도 특기할만한 사항)에서 찾았다는 이상한 말들 이를테면 바이블의 오류와 모순,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황당한 얘기, 반인륜적인 얘기 등등 이런 것들에 기인한다.
 

   기존 기독교가 <기독교 절대주의>라는 도그마를 가졌다면, 안티 기독교 역시 <기독교 박멸주의>라는 절대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둘은 결국 평행선이요 폭력적 대결이 되기 십상이라고 하겠다.
 

   재밌게도 반기련이라는 안티 기독교 사이트의 취지를 읽어보면, 이들 “최종의 목적이 현실적인 기독교 집단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인지, 혹은 기독교 집단의 최종적인 붕괴나 괴멸인지 그것은 사실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쓰여 있다(그러면서도 이는 관리진의 생각일 뿐이라고 한편으론 발을 빼는 듯한 문구도 첨가). 하지만 실제로 반기련 게시판 대부분의 내용들은 기독교 박멸 문구들이 분명하게 지배하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이들의 정체성과 한계는 <안티 기독교>라는 그 명칭에서부터 더 없이 잘 드러난다. 안티라는 것은 결국 반대라는 의미인데, 그 어떤 사안에 대한 반대 자체가 설득력을 가지긴 힘들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생각해보라. ‘A’와 ‘not A’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설득의 여지자체가 이미 시작에서부터 봉쇄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공존인 것이다.
 

   어떤 방에 ‘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같이 산다고 생각해보자. 이미 그러한 사람인데 무슨 대화의 접점이 있을까? 안티 기독교인들도 이성적 설득을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기독교의 폐해를 받은 만큼 똑같이 기독교들에게도 되돌려주겠다는 식으로 그렇게 취급하는 성향이 강하다. 예컨대, “기독교는 예수를 안믿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하는데, 만일 우리가 너희들에게 단군 혹은 부처를 무조건 믿어야 지옥에 안갈 수 있다고 협박하거나 강요한다면, 기독교인들 너네들은 기분이 어때?”라는 식인 것이다.
 

   안티 기독교가 진보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
 

   사실 우리가 기존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튼튼한 논리를 기대하기 힘든 것처럼, 정확히 말해서 안티 기독교인들에게도 튼튼한 논리를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다. 실제로 안티 기독교 사이트를 가보면 알겠지만, 이들이 비판하는 주 대상들은 기존 기독교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에 대한 것들이지 그 이상의 깊이로 좀처럼 나아가진 않는다. 예컨대 진보적인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는 비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들 안티 기독교인들은 진보 기독교(안티 기독교인들은 이들을 기독교 개혁파로 이해)에 대해서도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어떤 안티 기독교인은 개혁적인 진보 기독교는 보수 기독교보다 훨씬 더 얄밉고 더 암적인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망해야 하는데, 그나마 망하지 않도록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또다른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안티 기독교인에게 기독교는 망해야만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대상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나 자신이 경험했던 그 안티 기독교인도 나 자신이 소개했던 그 기독교를 믿으려 하지 않았던 그 맥락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들이 진보 기독교를 단선적이고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맥락도 다음에서 엿볼 수 있다.
 

   진보 진영의 경우 그 편차들을 좀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점도 있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아닌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기독교>를 추구하는 흐름들도 있기 때문에 기존 기독교의 해체를 촉구하는 점도 없잖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티 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맥락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나이브함을 엿볼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안을 가지고 해체를 말해야지 해체 자체가 대안이 되긴 힘들다고 본다.
 

   앞서 보았듯이, 안티 기독교인들에게는 진보 기독교가 얄미울 수밖에 없으며 어떻든지 상대하기 손쉬운 보수 기독교를 상대로 해야 그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는 점이 있다. 이들이 비판하는 바이블 내용들이나,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하는 것들은 현대 학문의 축적된 성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진보 기독교인들에겐 전혀 별문제꺼리도 안되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마치 전체 기독교가 몽땅 다 박멸되어야 한다고 부르짖기에 진보측 기독교인들로선 조금 시큰둥하게 나올 수밖에. 실제로도 내가 알았던 주변의 안티 기독교인들도 진보측 기독교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개독교 박멸하는 그 날 진실로 하늘이 열리리라!”는 외침은 곧잘 한다.
 

   시민단체인가? 동호회 클럽인가?
 

   안티기독교 사이트인 반기련은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다. 그렇다면 말그대로 이들은 시민단체의 성격이 강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오히려 시민단체의 성격보다는 오히려 동호회의 성격이 강하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하는 행사들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취지를 알리는 홍보나 기독교인들의 만행과 추태를 알리는 사진행사전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겠다.
 

   반면에 반기련과 다르게 종비련(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 www.gigabon.com)이라는 곳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 본래 반기련을 함께 세웠던 주요 핵심 멤버들이었지만, 다시금 반기련을 나와서 종비련을 형성했던 것이다. 어차피 서로 파당이 이뤄질 때는 워낙 구구절절 뒷얘기들이 많으니까 그러한 의사소통들의 불협화음 문제들까지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진 않겠다. 단지 여기서는 안티 기독교 그룹이라는 반기련과 여기서 다시 나온 종비련이라는 그룹의 차이에 대해서만 지적하고자 한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반기련이 안티 기독교를 표방한다면, 종비련은 종교의 순기능도 인정하는 건강한 종교시민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때 종비련은 단지 종교비판도 허용될 수 있도록 성역 없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종비련 사이트에도 안티 기독교 성격의 글들도 더러는 함께 올라오긴 하지만 그 지향성만큼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차이 하나는 시민단체 운동의 유무이다. 반기련은 시민단체 운동을 한다고 보기엔 힘들만큼 조직적이거나 그러한 점이 희박하지만, 반면에 종비련은 ‘종교인 소득세 운동’이나 ‘종교의 성차별 반대 운동’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종교인 소득세 운동’의 경우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반향이 커서 현재는 재경부에서 검토 중일만큼 정부에 대한 견제와 압박의 효과까지 일궈냈었다.
 

   물론 반기련 자체가 동호회 성격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는 결코 보질 않는다. 단지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라는 그 이름을 볼 때, 이들의 모임을 시민운동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그 성격상 좀 그렇다는 얘기며, 그저 클럽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볼 뿐이다. 차라리 애초 ‘안티기독교까페’나 ‘안티기독교클럽’이라고 이름을 짓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나오며
 

   우리 사회에 안티 기독교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기존 기독교에겐 또다른 기회일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안티 기독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저들이 왜 그토록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엔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안티 기독교를 뭐라고 탓하기는 참으로 힘들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존 기독교가 제대로 똑바로 처신하고 있다면 더 이상 안티 기독교가 지지받기도 힘들뿐더러 그렇게 나오기도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일 기존 기독교인들이 무지와 배타성과 사회적인 부덕의 행태를 보이면 보일수록 오히려 안티 기독교인들은 더욱 기뻐 날뛰며 좋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안티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와 적대적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해서 안티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가 낳은 또 다른 괴물인 것이다. 아마도 ‘괴물’이라는 이 표현을 두고 안티 기독교 당사자들은 기분 나빠할 진 모르나, 그 의미는 기존 기독교의 배타적 폭력성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 박멸주의’ 혹은 ‘기독교 반대’가 자신들의 근본 신념으로서 깔려 있는 한, 거기에 새롭고 건강한 대안 기독교를 말할 자리란 근본적으로는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안티 기독교 운동을 하다가 새로운 대안 기독교를 모색한다고 할 경우, 그것은 안티 기독교에 대한 변절로 취급받을 수 있다. 저들에게 기독교란 그저 안봐도 뻔한 집단일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저들이 아는 기독교의 세계란 너무나 짧기 그지없다. 물론 워낙 한국 기독교의 대부분이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로 지배되어 있는 현실이니 그 부분도 충분히 짐작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안티 기독교가 이제 자신들의 존재 의미나 한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안티 기독교의 존재의의를 기존의 보수 기독교에 대한 반박과 반감 및 이를 통한 카타르시스 제공에 그 존재의의를 둔다면 나로서도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럴 경우 안티 기독교로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만 부여잡은 채 그저 감정의 배설만 뱉어낼 따름일 뿐이며, 그들의 논리가 전체 기독교를 설득하기엔 여전히 미흡할 뿐이라는 사실도 함께 직시되어야 할 것이다. (2007. 2. 13. 크리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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