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WCC
- 문병호 목사,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이 원고는 2013년 합신총동문회수련회 특강 원고이며 “우리는 왜 WCC를 반대하는가?”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합니다. 1. 한국교회와 WCC. 2. 아홉 차례 총회를 중심으로 본 WCC의 정체성. 3. WCC 에큐메니칼 신학. 4. WCC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의 허구. 5. WCC의 가시적, 기구적 교회일치론 비판. / 편집자 주>
1. 제10차 부산 총회의 실상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제10차 총회가 2013년 10월 말부터 약 열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사 42:1-4)라는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다.
부산 총회는 140개국 349회원 교회에 속한 5,0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모이는 명실상부한 기독교의 유엔총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임에서 150명의 중앙위원을 선출하고 차기총회 때까지 수행할 주요정책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마당’이라고 부르는 몇몇 행사들을 선보일 것이다.
부산 총회는 ‘생명의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지구촌의 생태 문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극복할 경제정의 실현 문제, 새로운 동서간의 냉전 기류를 극복할 군비축소 문제 등을 다룰 것이다. 이러한 취지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의 의의와 준비”라는 그들의 문건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WCC에서는 폭력극복 10년 운동에 연이어 가난퇴치와 기후변화를 위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자는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부산총회는 이 새로운 운동의 발전과 함께 하나님이 주인이신 생명중심의 문명(Life-giving civilization)을 건설하기 위한 선교적 행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중심의 문명은 우주공동체를 관계적이고 유기적인 상생의 생명공동체로 인식하는 아시아적 사고로 신학을 새롭게 조명하고 실천하는 기본 방향이 될 것이다
이렇듯 부산총회가 주제로 삼고 있는 “생명의 하나님”은 이 땅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문명’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폭력을 뿌리뽑고, 가난을 퇴치하며, 기후변화를 되돌려 지구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능력에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친다(롬 14:17; 고전 4:20).
그들이 말하고 있는 “우주공동체를 관계적이고 유기적인 상생의 생명공동체로 인식하는 아시아적 사고”는 무엇인가? 혹시 그것이 서로간의 원한을 풀고 함께 살아가자는 일부 토속 종교의 상생해원(相生解寃) 사상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있는 “관계적이고 유기적인 상생”은 무엇인가? 혹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동양적 범신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WCC는 제10차 총회의 주제와 관련하여 2012년 5월 22-25일 ‘부산 커뮤니케이션 선언문’(Busan Communication Statement)을 채택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사역 전부를 “커뮤니케이션”의 역할로 여긴다. 그리고 복음을 “커뮤니케이션(소통)”으로, 복음전파자를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전달자)”로 정의하고, 생명의 핵심이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선언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생명도 없는 것이다. 창조는 커뮤니케이션의 행위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커뮤니케이션은 창조의 행위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모든 생명체들은 무수한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세포들이야말로 자기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다. 동아시아와 여러 토착 민족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전체이자, 서로 연관된 하나의 유기체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 우리는 바로 커뮤니케이션이야 말로 생명의 핵심인 것과 인간들은 모든 창조물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낯설고 급진적인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WCC는 “동아시아와 여러 토착 민족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거론한다. 여기에는 창조의 하나님도, 생명의 하나님도 없다. 다만 ‘세포’와 ‘유기체’로 표현된 자연이 있을 뿐이다. 성경은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고 가르치는데(요 1:4), 어찌 그들은 피조물의 ‘커뮤니케이션’이 생명의 핵심이라고 말하는가?
부산 총회가 다룰 주제인 “생명의 하나님”은 단지 자연적인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생명을 돌보시는 분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특별한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구원의 영생과는 무관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은 철학적 개념들인 ‘통전성’(通典性, wholeness)과 ‘공동 선’(common good)을 거론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의 방식을 따르는 커뮤니케이션이란 통전성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빌립보 2:7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을 비우셔서,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 이 말은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섬기셨으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 고난 받는 이들, 차별 받고, 연약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편드셨다는 뜻이다. 정의를 위한 의사소통자들은 자기 자신을 비워 복음의 종으로 행동할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권력 구조에 대한 도전을 뜻한다 하더라도.
WCC는 예수를 무리의 지도자로, 그 무리를 억압에 반항하여 일어나는 민중으로, 지도자와 민중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복음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권력 구조에 대한 도전”을 그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과연 여기에서 아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생명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WCC는 부산에서 총회를 열기로 결정하면서 그 이유 중의 하나로 한국교회가 “타종교와 평화로운 공존과 협력을 해 오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과연 이러한 이유가 설득력이 있는가? 한국교회의 제일 특성은 일체 타협 없이 십자가의 도만을 믿는 성도의 믿음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부산 개최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로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교회와 오순절 교회가 공존하며 협력적이라는 점”을 든다. 그러나 실상 개혁주의 보수신앙에 바로 서 있는 많은 한국교인들은 오순절 신앙을 오히려 거부해 오지 않았던가?
대다수 한국교회 성도들은 다른 신을 멀리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인정하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신앙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굳게 믿는다(고전 1:18, 21).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전혀 오류가 없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로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므로 WCC는 한국교회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버리고 그들과 함께 손잡고 있는 몇몇 국내 회원교단들이 성경적인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정서를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WCC는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것들을 부산 총회를 통하여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의 정서를 고려하여 어떤 것은 아예 감추고 어떤 것은 덜 드러내려고 하겠지만, WCC 본래의 색깔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일회적 행사와 의식(儀式)에 미혹되지 말고, 예리한 시각을 갖추어 모호한 언어에 숨어있는 그들의 사상을 꿰뚫어보도록 해야 한다.
2. WCC를 반대하는 한국교회의 입장
WCC는 처음에 147개 회원교회들로 출발했으며 현재 8개 권역으로(유럽, 아프리카, 북미, 아시아, 중동, 남미, 카리브지역, 태평양 지역) 나뉜 140개국 349개 교단에 속한 5억 7천만의 회원들을 두고 있는 초대형 단체이다. WCC에는 정교회를 비롯해서 성공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연합교회, 오순절 교회 등 20개 이상의 다양한 교파들이 회원교회로 참여하고 있다. 그 중 정교회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한국교회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속한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가입했다. NCCK에 속한 구세군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정교회한국대교구는 WCC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회원으로 가입은 하지 않고 있다.
WCC 문제는 한국교회 장로교 교단 분열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를 찬성하는 측과, 51인 신앙동지회를 중심으로 한 이를 반대하는 측의 대립으로 인하여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교 합동측과 통합측이 분열되었다. 합동측은 WCC가 비성경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단일한 교회를 추구하고,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급진적인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며, 특정 정치 이념에 빠져있다는 사실 등을 들어서 반대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은 제44회 총회(1959년, 대전중앙교회-승동교회)에서 “WCC와 그 노선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우리 교회의 거룩함과 또 그리스도의 합일의 속성을 저해함을 확인하였음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이에 WCC에 항구히 탈퇴하고 그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계치 않기로 함을 총회에 선언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45회 총회(1960년, 승동교회)에서는 “WCC를 탈퇴하고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폐하고”라면서 이를 다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교단의 목사들이 “WCC 및 WCC적 에큐메니칼 운동이 비성경적이고 위태로운 것”이라고 서약하게 한 후 목회하게 하였다.
이러한 혼란 가운데, 당시 보수신학을 대표했던 죽산 박형룡 박사는 WCC를 “자유주의 광장”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무분별하게 사회복음을 끌어들이고 경계를 넘어서 타종교와의 교통을 추구한다고 비판하였다. 죽산은 교회가 아닌 세속적 기구를 통하여 교회의 연합을 이루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비성경적이라고 간파하고 WCC가 추구하는 것은 교회의 하나 됨이 아니라 하나의 모양내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WCC 제10차 총회의 부산 개최가 결정되면서 한국교회에는 다시금 이 기구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의 회오리가 일고 있다. 행사를 유치한 측에서는 이를 한국교회 전체가 경사로 여길 “기독교 올림픽”이라고 자축하고 있으나, 반대편에서는 WCC 자체를 순수한 기독교단체로 인정하지 않으며 부산 유치를 몇몇 교단의 합작품 정도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은 이 시점에 한국교회를 진리의 터 위에 더욱 굳건하게 세우고 이를 계기로 교회의 진정한 연합과 부흥을 도모하고자 “WCC대책위원회”(위원장 서기행 목사)를 구성해서 중앙위원회를 두고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었다.
그 결실로 2010년과 2011년에 「WCC 신학 비판」과 「WCC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책을 출판하여 총회에 배포하였다. 그리고 2012년 총회를 통하여 「‘교회의 하나 됨’과 ‘교리의 하나임.’ WCC의 ‘비성경적,’ ‘반교리적’ 에큐메니즘 비판: 정통 개혁주의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라는 제목의 책과 이를 쉽게 풀어 쓴 본서를 함께 배포할 계획에 있다.
본 대책위원회가 주도하여 2010년 1월 25일에 19개 교단이 서울 앰배서더 호텔에 모여서 채택한 다음의 결의문은 한국교회 전반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함께 동참한 교단은 다음과 같다: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고려), 예장(합신), 예장(대신), 기성, 예성, 예장(웨신), 예장(개혁국제), 기침, 예감, 예장(재건), 예장(합동중앙), 예장(합동진리), 예장(고려개혁), 예장(합동총신), 예장(합동동신), 예장(보수합동), 예장(합동보수).
1. 우리는 오직 성경, 오직 예수, 믿음만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의 진리라고 굳게 믿으며, 한국교회 보수 교단들은 힘을 합해 공동으로 한국교회 정체성을 사수하며, 한국교회를 보호할 것을 다짐한다.
2. 우리는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는 성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본주의 신앙이므로 이를 단호히 배격하고, 초혼제 등 무당굿을 신앙의 행위로 정당화하며, 이를 용납하는 그 어떠한 단체나 기관과의 연합도 단호히 거부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3. 우리는 한국교회 극히 소수의 교파(NCCK)가 참여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한국 개최를 마치 한국교회 전체가 유치하는 대회로 과장 보도하고, 이를 한국교회 올림픽이라고 선전하는 것에 매우 유감을 표하며, 자제해 줄 것을 주최 측과 언론 등에게 엄중히 주문한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대다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말씀에 집중해서 교회를 회복하자는 소망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것을 거스르는 WCC 부산 총회가 세속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를 확산시켜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와 같이 몰락의 길에 접어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WCC 총회의 부산 유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WCC의 과거 행적이나 교리적인 성향이 비성경적이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반면에 유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시대적, 문화적, 인류적 필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WCC 가입 문제로 한국교회는 교단이 분리되는 큰 아픔을 이미 경험하였다. 금번 부산 총회 유치로 그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3. 마치는 말
에큐메니즘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교리로 하나가 되는 것을 본질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만 구현될 수 있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모양과 다름없다.
‘에큐메니즘’(ecumenism)은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나온 말로서 헬라어 ‘코스모스’(kosmos)와 의미가 통한다. 그것은 ‘우주’ 혹은 ‘전 세계’를 뜻하는 공간적 개념뿐만 아니라 ‘진리’ 혹은 ‘질서’를 뜻하는 원리적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말뜻에 비추어 본다면, 에큐메니즘 혹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진리를 떠나서는 논의될 수도, 추구될 수도 없다.
진정한 에큐메니즘은 말씀의 진리에 서서 하나님의 시대적 섭리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에서 비롯된다. 대다수 한국교회 교인들은 성경무오(聖經無誤)를 믿고 참 교리의 터 위에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WCC는 신학적, 신앙적 모호성에 물든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순수한 열심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입버릇 같이 ‘WCC 반대자들은 잘 몰라서 그럴 테니까 직접 와서 체험해 보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WCC의 실체를 바로 알게 되면 될수록 더욱 비판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한국교회가 WCC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 기구가 성경의 진리에 바로 서 있지 못함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WCC 문제는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의 문제이다. 이를 먼저 해결하지 않은 채 그저 와보라고 재촉만 하고 그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마치 분파주의나 되는 듯이 매도하는 것 자체가 진리와는 무관한 WCC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들은 먼저 주님의 다음 말씀을 잘 새겨보고 자신의 입장부터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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