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설교 (Wednesday Worship Sermon)

하나님의 구원 역사

마태복음 13장 31∼32절

 

열매와 씨앗은 본질상 같은 것이지만 기능은 분명히 다릅니다. 씨앗이나 열매는 모두 우리의 식단을 채울 수 있으나, 종자로 구분되는 씨앗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를 이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분명한 ‘종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전 인류의 종자가 되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모든 백성의 종자가 되었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종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면 항상 택한 한 사람 혹은 택한 민족을 통해 큰일을 이루셨습니다. 마치 누룩 비유나 겨자씨 비유처럼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전체에게 확산되는 방법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백성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태반이 되게 했으며, 신약의 선교 역사를 보면 로마와 영국, 미국 등과 같은 나라들을 통하여 선교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쓰임 받은 나라들은 처음부터 복음의 도구가 된 것이 아니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국력과 경제력, 문화적 힘에 복음을 실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 제국의 경우에는 칼과 병거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지배했으나 그 지배력은 결국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대영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었던 영국은 제국의 힘에 복음을 실어 전 세계에 전파했습니다. 현재의 미국도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데 쓰임 받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전 세계 175개국 중 726만명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8대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문화적으로는 한류라 불리는 드라마와 K팝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확산되고 있습니다. 역사상 대한민국의 영향력이 이렇게 커진 때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우리 민족을 쓰시려고 만드신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해외선교를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과도 보았습니다. 초기 선교의 경우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경제력과 문화적 힘을 바탕으로 보다 공격적인 선교 역량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한국 교회는 선교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더욱 순전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도록 하는 데 진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동족이면서도 하나가 되지 못한 북한 동포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북녘 땅은 우리에게 아직도 미전도 지역으로 남아 있는 ‘땅끝’입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했지만 북한 상황은 결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비관적이라고 해도 우리는 동토의 땅 북한에도 복음이 전파될 것을 기대하며 파종해야 합니다. 그 종자는 탈북 동포들일 수 있고, 중국 국경에 살아가는 조선족일 수도 있으며, 북한 땅에 드나드는 경제인일 수도 있습니다. 대량의 종자가 아니라 단 한 알의 종자라도 좋은 땅에 뿌려지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종자의식을 갖고 북한 땅에 뿌려질 종자를 찾아 파종하는 데 우리의 역량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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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예배설교(Wednesday Evening Sermons)

예수님의 사랑

요한복음 13장 34∼35절

 

사전에 보니 ‘사랑’은 ‘어떤 상대를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의 희락이며 또 상대를 돕고 이해하는 마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성경에서 인간의 마음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며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 은혜와 축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내려주십니다. 다음의 말씀을 묵상하기 바랍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딤후 2:6) 수고하는 농부는 축복을 먼저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랑을 먼저 많이 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도 많이 받습니다. 불신자에서 신자로 변화된 사도 바울은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내 몸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 보십시오. 사도 바울처럼 기적이 일어나고 천국이 열릴 것입니다.

둘째, 가족들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1∼8)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합니다. 권력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명예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을 버리지 않고 잃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들이 사랑이 없어 불화로 해체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탈선하고, 깨어지는 세상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가족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 간 사랑 안에 용서와 희생과 헌신과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지파인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웃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죽을 수밖에 없는 이웃의 영혼을 그 죽음에서 건져내준다면 이것처럼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2014년은 우리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을 마음껏 사랑하고 섬기시길 기원합니다. 직장과 사업과 학교에서 하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넉넉히 살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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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설교 (Wednesday Worship Sermon)

엠마오로 가신 예수님
누가복음 24장 13~15절

 

십자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온누리에 미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세월호 침몰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소망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사도에 의하면 당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500여명도 넘었고, 고린도서를 기록할 때도 많은 목격자들이 생존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어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가신 곳은 직계 제자들이 머물러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사람이 힘없이 낙향하던 엠마오라는 곳이었습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황급히 엠마오로 내려가셨을까 궁금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은 글로바와 그의 아내일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요한복음 19장에는 글로바의 아내 이름은 마리아이고, 그녀는 골고다의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끝까지 현장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글로바와 그의 아내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 절망 속에서 낙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글로바의 아내는 같은 이름을 가진 예수님의 모친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사역을 도왔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들은 정말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분이라고 생각하고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고 의지하던 사람을 상실하는 일은 우리 인간에게 큰 고통을 주고 인생에 절망감을 줍니다.

우리는 통한의 세월호 침몰로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눈물과 고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죽어가는 승객들을 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를 믿고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렸을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차디찬 배 안에서 들려오는 자식들의 울부짖음을 가슴으로 듣는 부모들의 고통을 우리가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의 주검을 마음에 안고 살아갈 부모들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잃은 글로바와 그의 아내도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가눌 수 없는 슬픔 속에서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동네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지만 그들은 다른 방도가 없어 낙향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힘없이 걸어가는 두 사람을 따라잡아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황망하여 정신이 없는 터라 자신들을 일부러 찾아오신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건의 전말과 자신들의 처지를 토로했습니다. 결국 고향 집에 도착해 영접한 후 애찬시간에 축사하시는 모습을 보고서야 겨우 따라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부활의 주님은 실의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달려가시는 분입니다. 슬퍼하고 애통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시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오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부활의 주님은 분명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들과 어린 학생들의 주검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는 우리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달려가실 것입니다. 분명 어려움을 이길 믿음과 능력을 부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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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예배설교(Wednesday Evening Sermons)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히브리서 11장 1∼2절

 

이솝 우화에 ‘토끼와 거북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했는데 거북이가 이겼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북이는 경주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언덕 위에 있는 깃발만 보고 전진했습니다. 토끼가 열심히 뛰든 말든, 낮잠을 자든 말든, 거북이는 경쟁자와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오직 깃발만 보고 묵묵히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반면 토끼는 어땠습니까. 토끼는 처음부터 거북이만 보고 달렸습니다. “저런 느림보 거북이 같으니…”라고 비웃으며 안심하고 낮잠을 자다가 토끼는 결국 거북이에게 뒤지게 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주만 바라볼지라”가 아니라 세상만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 한탄하고 배 아파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은 바로 우리의 눈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고, 기준이 바뀌고, 삶의 목표가 바뀌는 것입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했던 12명을 보십시오. 10명의 정탐꾼들은 그곳에 사는 거인족속과 견고한 성을 봤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봤습니다. 다니엘이 봤던 것도 사자가 아닙니다. 배고픈 사자가 자신에게 덤벼드는 것을 봤다면 그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은 바꾸지 않고 삶만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눈을 바꾸는 종교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우리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우리가 왜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립니까. 그것은 바로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눈이 변화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눈이 변화되는 것이 부흥의 첫걸음입니다. 눈이 변한 사람만이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 그것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보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보며, 심판 중에 구원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변화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면만 보이고, 다른 사람의 단점만 보였지만 언제부턴가 감사가 보이고, 희망이 보이고,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구주로 삼은 사람에게는 이런 고백이 나오리라고 믿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한탄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며 묵묵히 전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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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예배 대표 기도문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

지난 5일 동안도 지극하신 사랑과 은혜 가운데 저희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오늘밤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다시 불러모아 주시고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은혜에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자리에 나올 때마다 거룩하신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의 제일교회의 모든 주님의 백성들이 진정과 신령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밤 저희 제일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금요철야 예배로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영광드리고자 하오니
기뻐 열납하여 주시옵고,
특별히 이 자리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함께 하지 못한 성도님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옵시고 한 백성도 빠지지 않고 모두 모두 함께
모여 거룩하신 하나님아버지께 영광돌리는 데 혼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거룩하신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밤 주님의 몸 된 제일교회의 지체들이 거룩하신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전에 나왔지만,
참으로 저희들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고, 추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세상을 사는 동안 저희들의 중심에는 세상적 죄악과 주님의 십자가의
영광을 흐리게 하는 죄 많은 모습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물질적 욕심을 담고 제 주장만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저희 심령들을 긍률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죄 많은 저희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게 붙들어 주셔서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아니하는 모든 세상적인 정욕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저희를 위하여 스스로 피 흘리신 주님의 뜻을 따라,
이제는 저희들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기도 제목마다 모두 해결되는 오늘 철야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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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

 

십자가는 완성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다 이루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으로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의미입니다. 완성이라고 하면 자신이 볼 때 만족스러운 상태, 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도 힘든 십자가의 잔을 마시면서 다 깨지고 상하신 상태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도대체 이런 상태가 어떻게 다 이룬 상태가 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니 이 원리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을 생각해 보십시오. 에덴은 완전한 곳이었습니다. 그 에덴동산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거기에 두었을까요. 에덴동산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어야 완성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이 동산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데는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가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제한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결국 완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것은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족과 제한이 없는 상황을 추구하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바로 그 말에 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온 세상이 그 말에 계속 속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내실 뿐 아니라 우리가 속은 거짓말에서 회복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진정한 완성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점 같아 보이는 것을 통해 나를 죽이면 그곳에서 완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약점과 아픔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약점이 도리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당황합니다. 때로는 원망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기억하라.”

만약 그것을 통해서 자아를 죽이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내 인생에 일어난 어려운 일들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내가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아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교회와 가정과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모든 분쟁의 근원이 됩니다. 반대로 자기를 버리면 그곳에 평화가 생깁니다. 자기를 부인하면 그곳에 진정한 만족이 생깁니다. 당신은 십자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나요. 아니면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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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

 

무기력한 부활신앙

 

요한복음 20장 11~18절

 

본문의 주인공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축복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의 부활 현장에서 울고 있습니다(요 20:11). 그녀는 왜 울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무덤 속에 있던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이 주님을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13절)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끝까지 보살피고자 하는 여인의 착한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본래부터 이 땅에 오실 때 십자가를 지고 죽임을 당하는 고난에 참여하려고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한 것(막 10:4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곧 일어날 일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마 20:18∼19).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속물이 되기로 작정하고 고난의 길을 피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였고 죄악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 부활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주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모두가 십자가 앞에서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부활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성취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찬양하는 대신 울고 있습니다. 주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에게 찾아오셔서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십니다. 주께서 부활하셨다면 무덤이 비어 있어야 당연한 것 아닐까요. 만일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보았다면 안심하고 울지 않았을까요. 말씀이 이뤄진 현장에서 오히려 감격하고 기뻐해야 될 자리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질문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불신앙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리에서도 낙심하여 울고 있는 여인처럼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무덤에 찾아와 그곳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면 만남은 환희와 감격의 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결코 우리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절망하던 제자들처럼 무기력하게 비춰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고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은 여전히 사람을 살리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울고 앉아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해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우리들에게 빨리 그곳으로 오라고 명하십니다. 우리의 지난 허물을 들추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한 죄인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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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헌금 기도문  (주님의 향기) offering prayer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

오늘 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 더욱 충성하고 헌신봉사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저마다 받은 은사를 주님을 더욱 섬기고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 있는 저희 모두에게 마음의 감동을 주시고 심령을 복되게 하여
주시어서 인색함으로 드리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주님께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심정을 가지고 정성껏 드리게
하시고, 진실된 신앙고백이 묻어나는 예물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예물이 주님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질 때에 많은 열매가 있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삶이 고달픈 사람들을 헤아릴 수 있는 예물이 되게 하시고,
복음이 전파 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되어질 수 있는
주님의 향기가 나타나는 예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교지에도 사용되어질 수 있는 예물이 되게 하시고,
주님 앞에 정성껏 드린 손길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님이 함께하실 것을 믿사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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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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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부교사모임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인된 저희들을 사랑하여 주시고 주일학교의 교사로 세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저희들의 말과 행동들을 다스려 주셔서 나의 말과 행동으로 모두가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다정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아이들에게 공손하게 대하고 열심을 다하여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교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감기로 폐렴으로 아픈 친구들이 있습니다. 질병과 사고로 고통받는 가정이 있습니다. 아픔과 슬픔 가운데 있는 가정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내일 교회유치부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부터 시작되는 겨울 성경학교에 은혜를 더하여 주셔서 우리 어린친구들이 사랑의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 죄를 씻어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믿음의 주역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예배를 위해 늘 수고하시는 전도사님께 강건함을 더하여 주시옵고 전하시는 말씀을 통해 은혜 받는 저희 유치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사 선생님들께도 성령님께서 늘 소통하셔서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아이들을 인내로 잘 양육 할 수 있는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자기를 희생하며 드리는 자원하는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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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드리는 것

 

이제는 하던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후8;11

 

내가 교회에서 목회를 했을 때, 교회 헌금을 두고 이런저런 용도에 써야


한다는여러가지 주장들이 많았다.


나는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절박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를 돈에 집착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조언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로 인해 비웃음을 당한 적도 있었으며, 위협을 받은 적도 있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흔들리지 않았으며


계획된 예산 이상으로 헌금을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마음에 원하는 바" 와 "실제로 행하는 것" 을 혼돈하기 쉽다.


그 이유는 이 두 가지가 항상 함께 하기 떄문이다.


만약 "마음에 원하는바" 가 변함없이 항상 꾸준하고


또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마음에 원하는 바" 는


반드시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고후8;11;빌2;12-13참조).


바울은 "마음에 원하는 바" 와 "실제로 행하는 것" 이 동일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렇지 않기 떄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베푸는 것이 은혜로 말미암는 다면 우리는 더욱 자원함으로 베풀 것이다.


하나님은 "손으로 드리는 것" 을 보지 않고 "마음으로 드리는 것" 을 보신다.


만약 마음이 더 내기를 원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이


그 마음을 헤아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그만큼 못 따라가는데 손으로만 많이 낸다면 하나님의 손이


아무리 대단한 것들을 바쳤더라도 그 마음 만큼만 헤아려 주실 것이다.

 

묵상해보기;

자원함으로 드렸던 떄와 불평함으로드렸던 떄를 떠올려보라.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말씀으로 채우는 하루/워렌 W. 위어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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