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을 향한 경고
마태복음 21장 18∼22절, 마가복음 11장 12∼14절
희극 ‘늘근 도둑 이야기’가 서울 대학로 극장에서 22년째 장기공연 중이라고 한다. 도둑이 젊은 형사 앞에서 선한 사람임을 나타내기 위해 나무 십자가와 성경, 찬송가를 꺼내 들고 자신을 변호하는가 하면 극중 인물이 방언 기도를 흉내 내며 신실한 크리스천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웃기는 내용이다. 이 연극을 보노라면 주님의 질타가 전해진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 숨겨져 있는 세 가지 주님의 음성 또는 경고를 들어보자.
먼저,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다.
예수님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시기에 열매를 찾으셨다. 무화과나무는 3월에 싹이 나서 6월께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이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을 때는 4월께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다. 예수님 재림의 시기를 암시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때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이 의도적으로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시고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셨다. 그리고 그 나무는 결국 뿌리까지 말라 죽게 되었다. 이 대목에 눈을 크게 뜨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 수 없으나”(마 25:13) “도적과 같이 이르리니”(벧후 3:10) “준비하고 있으라” “예비하고 있으라”(마 25:1∼13)는 경고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안일한 신앙생활을 경계해야 한다. 오락과 향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겨우 주일을 지키는 종교인은 아닌지, 바쁘다는 핑계로 현실에 안주하는 종교인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두 번째로, 잎만 무성했다.
나무는 유대인을 풍자적으로 비유한 대목일 것이다. 껍데기 신앙, 외식적인 신앙, 외모지상주의를 지적한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는 지금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된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함에도 주님의 말씀은 간 곳 없고, 오직 그리스도인의 화려함만 보이는 것 같다. 소위 명품족이 교회 안에서까지 힘을 편다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하늘 복을 받아 땅에서도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창 1:28)은 맞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며 차별화하려고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 물질, 자녀, 시간, 몸까지도 주님을 위해서 먼저 드려야 한다. 특히 물질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선용돼야 한다.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종교인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세 번째, 나무의 열매가 없다.
주님이 나무를 통해서 얻으려고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물론 열매를 찾으시긴 했지만 더 깊은 주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고 본다. 열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씨앗이다. 씨앗은 생명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나무의 열매를 통해서 생명을 찾으셨다.
모든 씨앗은 그 속에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지금 주님이 그리스도인에게서 찾으시는 것은 생명이다. 교회를 통해서 주님은 생명을 찾고 계신다. 세상을 향해 주님은 생명을 찾고 계신다. 열방을 향해 주님은 생명을 찾고 계신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에 힘입어 예수님의 생명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신다.
미국 에이든 토저 목사는 교회의 세 가지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믿는 자가 성장하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머물러 있으면서 살만 찌는 것, 믿는 자가 교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참관만 하는 것, 믿는 자가 서로 일치되지 않고 분열과 다툼만 일삼는 것이다.
최진 목사(홍성 구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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