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Q,A] 성찬식 후 남은 떡과 포도주 가져가도 되나요?


성찬물은 간식이나 식사 아닌 성물… 목회자가 경건한 절차 거쳐 처리해야

 

[Q] : 지역교회 장로입니다. 성찬식 후 남은 떡과 포도주를 일부 교인들이 집으로 가져갑니다. 그래도 되는지요.

 
[A] : 기독교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 예식을 성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은 증거로 받는 예식이고,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리는 예식입니다.
 

성찬예식은 제자들이 제정한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정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가진 만찬기사는 마태복음 26장 17∼30절, 마가복음 14장 12∼26절, 누가복음 22장 7∼23절, 요한복음 13장 21∼30절 등 사복음서와 고린도전서 11장 23∼25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성찬을 이해하는데 천주교는 화체설을 취하고 기독교는 기념설을 취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이기 때문에 준비부터 경건해야 합니다. 교회마다 성찬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준비를 위해 모이면 먼저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릇을 닦고 떡과 포도즙을 준비하는 것도 조용히 해야 합니다. 동네잔치 준비처럼 떠들고 잡담을 주고받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만찬준비이기 때문입니다.


성찬예식 진행도 뜻 깊고 경건해야 합니다. 연례행사여도 안 되고 타성에 빠지거나 무의미한 진행이 되면 안 됩니다. 집례자나 참여자 모두가 거룩함을 회복하고 성찬예식에 임해야 합니다. 떡과 잔을 나누는 것은 교회의 상황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한사람씩 앞으로 나와 떡과 잔을 받을 수도 있고 회중석에서 일어나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예배 시간 안에 예배와 성찬을 겸하게 될 경우라면 프로그램 진행이 진부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떡은 설탕이나 누룩을 넣지 않고 직접 제작할 수도 있고 떡이나 빵으로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포도주는 알코올 성분이 없는 것이나 포도즙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민감한 사람들은 얼굴이 붉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성찬 참여인원을 파악하고 모자라거나 남지 않도록 떡과 포도즙의 양을 조절해야 합니다. 일상적 식사가 아니기 때문에 떡이나 잔은 크지 않아도 됩니다.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으라(고전 11:34)고 했습니다.


남은 떡과 포도즙은 아이들 준다며 집으로 가져가는 것은 삼가는 게 좋습니다. 성찬을 위해 준비한 떡과 포도즙은 간식이나 식사대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은 성찬물은 목사와 교역자가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 성찬물은 처리도 경건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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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Q,A ] 새로 옮긴 교회가 화려해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먼저 누구나 마음 편한 소박한 곳 돼야… 성도도 믿음의 뿌리 내리도록 적응의 묘 찾길

 

[Q] : 형편상 집 근처로 교회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옮긴 교회는 부유한 사람들과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상위계층 사람이 많습니다. 담임목사도 외국에서 사역하던 분입니다. 교회 분위기도 화려해서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교회의 본질은 구성원이나 분위기, 그리고 규모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신앙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교회론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교회는 어느 곳에나 있고 누구라도 그 교회를 출입할 수 있습니다. 출입증이나 입장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적응 못하는 교인과 적응하기 힘든 교회를 나누어 답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교회 적응의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통틀어 교회수가 5만을 넘는다고 합니다. 인구를 5000만으로 보면 1000명 당 교회가 하나인 셈입니다. 교회수가 많다는 것은 갈 수 있는 교회가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드는 교회, 적응이 편한 교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맘에 들지 않는 상점이나 식당을 옮기듯 교회를 전전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자주 옮겨 심는 나무가 뿌리내리고 자리 잡는 데 진통을 겪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 다양한 직업과 각이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적응을 위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자는 부자교회로, 서민은 서민교회로 가는 길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직장의 경우도 내 적성에 맞는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회적응 직장적응 교회적응의 묘를 찾으십시오.


둘째, 적응하기 힘든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의 예수화, 교회의 교회화는 절대 명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로 존재해야지, 사람들이 머리 노릇을 한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적응하기 힘들다는 그 배경엔 교회의 귀족화를 탓하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상류사회의 사교장처럼 변색된다든지 귀족파티 분위기가 가득하다면 섬김과 나눔, 낮아짐과 죽으심을 실천하신 그리스도의 체취를 찾는 게 어려워질 겁니다.


모 회사 사장의 부인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도를 시작한 날부터 자신의 차림새를 바꿨습니다. 화장도, 의상도, 장신구도 다 낮추고 서민으로 돌아가 전도했습니다. 성육신 신앙을 닮고 옮긴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병폐는 빈부격차가 애찬에까지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러면 안 됩니다. 부자 앉는 자리, 특권층 지정석이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가 교인을 주눅 들게 하고 소외감을 조성하는 것은 예수의 마음도, 가르침도 아닙니다.


단정한 것과 사치스러움이 다른 것처럼 우리는 소박한 교회, 그래서 매력 있고 멋진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마음 편한 교회가 교회다움이니까요.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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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Q,A] 교회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서 참석하기 벅찹니다


과하면 매너리즘 빠져… 필요한 것만 선택을… 교회도 한꺼번에 많이 가르치려 해서는 안돼

 

[Q] : 저는 초보신자입니다. 주일 청년부 예배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파, 성령수양회, 인카운터, 포스트 카운터, 금식기도, 셀 모임, 창세기 공부 등 숨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프로그램이 많은지요. 다 따라하자니 숨 막히고 힘이 듭니다. 부담도 되고요. 빠지면 믿음 없는 사람 취급당합니다.
 

[A] : 바울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온갖 유혹과 도전에 노출돼 있습니다.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선 다각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군에 입대하는 군인은 곧바로 일선부대로 배치되지 않고 훈련소에 입소합니다. 일정기간 여러 분야의 훈련을 받은 후 부대로 배치됩니다. 운동선수도 예외가 아닙니다. 경기장에 나가기 전 다양한 훈련을 거칩니다.


교회가 실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교회 자체를 위한 게 아닙니다. 교인들의 신앙과 삶의 성장, 건강성을 위해 실시하는 훈련입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 선택하면 됩니다. 대부분 교회들은 다양한 훈련프로그램을 연속적으로 진행합니다. 그 모든 프로그램에 다 참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훈련의 의미는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모 교회 교인을 만났습니다. 출석하는 교회에서 제자훈련, 전도훈련, 알파, 셀 훈련 등을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지방에 내려와 있는데 갈 교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 교인들 수준, 교회 분위기 그 어느 것도 맘에 드는 교회를 찾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전전한다고 했습니다. 그 교인이 받았다는 제자훈련은 사범훈련이었고 귀족훈련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은 나만 못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을 씻기신 주님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인은 선생 대우받을 교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책임도 있습니다. 강한 병사는 강한 훈련을 통해 태어납니다. 그러나 과부하가 걸린 프로그램들, 직수입한 외래 상품같은 프로그램들, 교회 현실과 상황에 대한 고려나 검토 없이 아무개가 성공했다면 따라하고 기우는 쏠림 현상, 네가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무분별한 프로그램 등은 사려 깊은 점검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능력은 십자가 복음입니다. 각종 이벤트나 프로그램이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살리는 도구나 장치로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주객이 바뀌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주가 되고 복음이 그 뒤에 놓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는 성령과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기본정신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행사만 벌이다가 본질을 놓칠까 걱정됩니다. 교회 프로그램 참여는 선별하고 선택하십시오. 교회는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먹이려 하지 마십시오.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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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Q,A] 서원기도로 저를 키운 어머니, 목사 사위만 원하십니다


어머니가 남자친구 반대해도 함께 기도·의논을… ‘반대해도 하겠다’ 극단적 표현은 피해야
 

[Q] : 저는 28세 여성입니다. 제 어머니는 목사이시고요. 저는 태어날 때 유산될 뻔했고 8개월 만에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다 혈액교환수술, 고등학교 때는 두개골 종양수술 등을 받았습니다. 병약한 저를 위해 어머니는 목회자 사모가 되게 해달라는 서원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하고픈 남자친구는 같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지만, 시아버님 되실 분은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 결혼하고 싶은데 어머니는 반대하십니다. 목회자와 결혼해야 된다고 하십니다.


 
[A] : 서원기도로 딸을 살리고 키운 어머니와 장성한 딸의 생각이 같을 순 없습니다. 남남이라면 이런 갈등이 일어나겠습니까. 목회자인 어머니는 위기 때마다 서원기도로 딸을 살렸습니다. 어느 어머니나 딸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잦은 병치레로 고통 받는 딸을 둔 어머니 입장은 남달랐을 것입니다. “제 딸을 살려 주십시오”라며 서원하는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성한 딸이 주의 종이 될 사람을 남편으로 선택하길 바라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어머니 걱정대로 시부모를 따라 제사를 지내야 한다든지 불신가족과의 소통에 문제가 일어난다면 전혀 생소한 문화나 가풍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를 해야 합니다.


연애는 감정으로 출발하지만 결혼은 해맑은 이성에 기초를 둬야 합니다. 감정으로 결혼하면 그 이후 헤쳐 나가야할 일들이 과다해집니다. 어머니와 맞서지 말고 함께 의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십시오. 결혼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선택과 결단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후회할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피할 수 없다면 어머니의 동의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교제 중인 남자친구와도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십시오. 당면한 문제와 그 해법을 함께 찾도록 하십시오. 노아홍수 심판의 원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는 신앙혼합주의였습니다.


남자친구의 가족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남자친구가 취할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가. 함께 헤쳐 나가야할 해법을 찾도록 하십시오. “어머니가 반대해도 우리는 결혼한다”는 극단적 생각이나 표현은 하지 마십시오. 이성으로 자신을 조정하십시오.


어머니에게 권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합니다. 내 딸이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가, 장점은 무엇인가, 맘에 들지 않는 조건은 극복이 불가능한가, 꼭 목사 사위를 맞아야 하는가 등을 자문해보고 포근한 어머니 마음으로 살펴보십시오. 어머니를 사랑하는 딸보다는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품이 더 넓고 따뜻해야 하니까요. 결혼은 인연이고 부모자식은 혈연입니다. 결혼 때문에 부녀간 갈등이 장벽이 되는 것은 피하십시오.


딸에게 권합니다. 어머니 생각을 고리타분하다든지 조선시대 사고방식이라든지 독선적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지금도 앞으로도 딸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키워주신 어머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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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Q&A] 제 십일조로 어려운 이웃 직접 도우면 안되나요

 

십일조는 하나님 뜻을 따라 바르게 써야… 내 맘대로 대상 골라 쓰는 건 옳지 않아

 

[Q] : 신앙상담코너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저는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는 재정이 넉넉한 편입니다. 해외선교에 주력하고 있지만 구제부분이 소홀합니다. 제 십일조의 일부를 어려운 시골 교회나 사회복지단체의 결손가정 어린이에게 후원하면 안 될까요?
 

[A] :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드리는 헌금입니다. 십일조는 농경문화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에 현대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의미하고 강요해선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아브라함, 야곱, 유대공동체로 이어졌고 예수님도 누가복음(11:42)에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들은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박하와 운향, 채소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저들의 외식과 자기과시태도는 옳지 않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십일조는 버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로 벌고, 바로 바치고, 바로 쓰는 헌금관리의 삼대원칙은 철저히 준수돼야 합니다. 십일조는 드리는 사람의 자발적 행위여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동기여야 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해야 하고, 사람들(레위인, 과부, 나그네, 고아)을 섬기는 데 사용돼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민이스라엘의 신앙이 쇠퇴하면서 십일조 신앙이 죽고 형식과 외식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 신앙의 퇴조를 도둑질이라고 맹공했습니다.


교회가 십일조를 강요한다든지 십일조를 잘못 사용한다는 이유로 십일조를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는 십일조를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어려운 교회를 돕고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해 십일조를 사용하는 것은 십일조의 기본 정신입니다. 그러나 내 맘대로 내 마음에 드는 대상을 골라 십일조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헌금자세가 아닙니다.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을 만나 이 문제를 의논하십시오. 그리고 본인의 뜻을 전하고 지도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면 목사님과 함께 도울 교회나 대상을 찾도록 하십시오. 내가 내 이름으로 누군가를 돕게되면 그 사람은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거나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십일조는 내 것을 떼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는 것,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는 것, 다 칭찬받을 일입니다. 선한 뜻이 어떤 이유로든 꺾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십일조의 기본정신을 살려 착한 관리자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테니까요.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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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Q&A ] 병고침 이후 건강 위한 신앙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받은 치유의 은총 지속시키는 게 중요… 건강회복보다 영혼구원을 감사드려야

 

[Q] : 안녕하세요. 국민일보 애독자입니다. 저는 공황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찬양과 예배를 통해 은혜와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주중에도 두 번 이상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나 예배가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예배의 동기가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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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은혜를 받았다, 복을 받았다, 고침을 받았다, 평안을 얻었다는 것은 예배 후에 오는 결과이지 그런 것들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공황장애 치료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질병도 고침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결정적 이유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예배란 구원받은 사람들이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경배행위입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기사들에 의하면 예수님은 각양각색 병자들을 고치셨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그것은 고치시고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권세가 주님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치유와 구원의 절대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병자들을 고치실 때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셨고 죄인을 구원하실 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에서 놓여 강건하라”고 하셨고,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배를 통해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신 것을 치하 드립니다. 그러나 지나쳐선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지속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받은 은혜를 지속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범죄행위를 계속하거나 성령님의 사역을 훼방하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의 제자로 부름 받아 3년 동안 주와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팔았고 만찬석에서 주신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내 버려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를 부인했던 베드로는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예배 참석 자체보다 어떤 예배를 드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건강을 지키기보다 믿음 지키기를 더 힘쓰고 치중하십시오. 건강회복보다 영혼의 구원을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예배는 나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주체는 내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배가 사람의 기분과 흥미와 관심을 집중하는데 기울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라야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예배가 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바른 예배니까요.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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