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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교회력 3월 6일 사순절 시작 (재의 수요일 예배 (Worship for Ash Wednesday)

 

 


올해(2019년)는 3월 6일에 사순절이 시작된다.

 

먼저 2019년 교회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1월1일 신년축하예배​

3월6일 재의 수요일(사순절시작)​

3월10일 사순절(첫째주간)

3월19일 사순절(둘째주간)

3월24일 사순절(셋째주간)

3월31일 사순절(넷째주간)

4월7일   사순절(다섯째주간)​

4월14일 종려주일​

4월15일~19일 고난주간​

4월20일 부활전야​

4월21일 부활절(부활주일)​

6월9일 성령강림일​

7월7일 맥추감사주일​

10월31일 종교개혁기념일​

11월17일 추수감사절​

12월1일 대강절​

12월 8일 성서주일​

12월25일 성탄절​

12월31일 송구영신예배

그리고 사순절의 절기 내용을 살펴보면

사순절(Lent)은
부활절 전 40일 동안을 말하는데 예수님의 수난에 초점이 있는 절기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대체로 부활절과 성탄절을 지켜왔지만,

요즘은
다른 교회절기들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많은 교회들이 사순절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지키는 교회는 아직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재의 수요일'은
성경에서 슬픔과 회개를 상징하는 재를 이마에 묻힘으로써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예전예배(Liturgical Service)를 드리는 날이다.

이 날부터 시작된 사순절에는
호화로움과 오락을 절제하고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경건하게 부활절을 기다리게 된다. 영광과 승리의 부활은 참회와 주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의 수요일 예배 시간에 성도는
한 사람씩 강단 앞으로 나아간다.

목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또는 "그대는 티끌에서 왔으니 티끌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손으로 재를 묻혀서 성도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려 준다.

성도는
하나님을 잊고 세상적 욕심을 따라 살던 삶을 회개함으로 자신의 옛사람은 티끌로 돌아갔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 받은 새 사람이 되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 설교를 듣기만 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자신의 발로 직접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와 자신의 이마에 거므틱틱한 재를 찝찝하게 묻힐 때,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이 얼마나 쓸모 없고 하찮은 티끌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성도들은
자신이 그런 무가치한 티끌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자기의 귀한 생명을 버려 구해 주셨으니 그 사랑과 은혜에 뜨겁게 감격하게 된다. 그동안 머리로만 알았던 말씀들이 가슴으로, 몸으로 경험 되어진다. 지식에 그쳤던 신앙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으로 바뀌는 계기가 된다. 이것이 전례(Liturgy)의 유익이다.

재(Ash)를
만드는 과정 또한 매우 성경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재의 수요일에 쓰여지는 재는 한 해 전 종려주일부터 준비가 시작된다. 종려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독특하다. 주일 예배시간이 되었는데도 성도들은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기도하며 서성이고 있다. 예배당 문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들이 하나씩 들려 있다. 이윽고 목사님과 예배위원들이 등장하면 예배자들은 목사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목사는
오늘은 왕이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임을 선포하고, 성경구절을 낭독한 후 문을 열고 앞장서서 예배당으로 입장한다. 성도들은 그 뒤를 따라 기쁨으로 종려 가지를 흔들며 찬송을 부르고 입장하여 예배한다.

우리들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환영했던 이 종려가지는 거두어 져서 곧 이어 오는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면류관을 만드는데 사용된 후, 1년 동안 말려졌다가 재의 수요일에 불에 태워져 쓰여지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그토록 환영하며 따랐던 군중들이, 후에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외치는 자들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 고백했으면서도 삶 속에서는 주님을 부인하고 거절함으로써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가 되었음을 실물로,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여러분의 이마에 묻은 재는 여러분이 주님을 환영하며 흔들었던 종려가지였습니다"
하고 목사님이 알려줄 때, 성도들의 가슴에 다가오는 충격은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성도들은
'재'의 상징을 통해 자신들이 심판과 저주를 면치 못할 티끌 만도 못한 자인 것을 드라마틱하게 깨닫고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무가치한 자를 사랑하사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을 눈물로 찬양하게 된다.

올해 사순절에는
재의 수요일 예배로 영적 각성과 은혜의 회복이 일어나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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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사순절은 3월 6일 재의 수요일에 시작하여 4월 20일 성토요일까지이다
    

 

 

사순절의 의미

 

사순절은 주일을 제외한 부활전 40일 전,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사순은 40을 의미한다.

 

사실상 사순절이라는 단어는 성서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순절은 40일간의 기간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회개와 죄사함의 기쁨을 나누는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단어 'Lent'는 '봄날'이라는 뜻의 영어 고어인 '렌크텐(lencten)'에서 나왔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그 기간을 테사라코스테(Tessarakoste)라는 그리스어, 혹은 쿠아드라게시마(Quadragesima)라는 라틴어로 불렀는데, 둘 다 '40번째'라는 뜻이다.

 
이는 마태복음 4장,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함을 기념하기 위하여 생긴 절기이다. 요즘은 금식이 아닌 특정한 음식, 자기의 기호식품을 금하는 희생으로 축소되어 지키고 있다.


사순절이 없으면 부활절도 없다. 사순절의 경건과 고난을 통하여 부활의 생명에 동참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2019년 사순절은 3월 6일 재의 수요일에 시작하여 4월 20일 성토요일까지이다.​

그 주의 일요일 4월 21일이 2019년의 부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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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과 추모예배 그리고 추도예배의 의의 

  

 

 
추모(追慕)라는 용어가 바람직합니다.

추도(追悼)라는 용어는

 죽은 이를

생각하며 슬퍼해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속에는

다분히 불신자적인

 인상이 짙습니다.

 
추모(追慕)라는

용어의 뜻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함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에서

 사용되어야하는

바른 용어는 추모(追慕)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모(追慕)예배의 의의 

1) 불신자에게는 올바른

죽음의식을 주는데 있습니다.


죽음은 죄값이며

하나님을

향한 반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죽음을 잠잔다는 말로

 성경은 표현합니다.

이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혼이 깨어난다고

하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영혼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다시 돌아오거나

혹은 정처 없이 세상을

 방황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죽음 이후에는

 심판과 부활이 있습니다. 

 
2) 믿는 가족들에게는 부활신앙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시간입니다.

 
먼저 신앙 안에서

위로를 받고

부활신앙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자들이

부활신앙이 없는

불신자들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3) 조상과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조상의

경건한 행위는

 자손을 지키고

구원을 얻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추모예배는

 조상과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려져야 합니다. 

 
4) 신앙상속을 인식하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추모예배는

 신앙상속에

대한 감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부모님을 통해서

믿음을 상속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됨을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고인을

기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을

 나누는 친교의 시간입니다.

 
가장 슬플 때에

 사람들과

그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친교는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추모일이나 한식절이나

설날이나 추석절 때마다
목회자가 와서

 의식을 집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때에만

목회자가 집행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에는

 가장이나 가족대표가

진행합니다.

 
예배 인도자는

구습이나 미신적 요소가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의문점이 있으면

담임목사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 추모 예배를 드릴 때 주의점


① 음식 준비 /

음식은 조상이

 와서 먹는 것이

아니므로

제사상으로

 차리면 안된다.

 
그러나 간편한

음식을

준비하였다가

추모 예배후에

 가족들이 둘러

앉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② 사진이나 영정 /

고인의 사진을

준비하는 것은

 좋으나 향이나

 촛불을 켜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니다. 

 
③ 절하는 문제 /

고인의 사진이나

 영정 또는

음식물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를 금한 계명을

범하는 것으로

 죄가 되므로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 계실 때

최선을 다해서

해야하고
살아계신 부모님께

 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죄가되지 않는다. 

 
④ 불신 가정에서의 문제 /

 
가족 전체가

불신 가정으로 제사를

드려야하는

입장에 있을 때는 


그 자리를

피하지 말고

절하는 대신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된다.

 
이 때 분명하게

신앙상의 이유로

 절은 할 수없지만
가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겠다고

가족앞에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⑤ 산소에 성묘갔을 때 /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한다든지

 묘지에

술을 붓는 행위는

신앙적인 것이 아니다.

 
대표자가

간단히 기도하고

묘에 묻힌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묘지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아보면 됩니다.

 
불신 가정일

경우에는

 다른 가족이

 절할 때에

 함께 서서 기도하고
가족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있도록

 여러모로 힘쓰십시오. 

 
⑥ 기타 /

 
우리도

언젠가는

조상들처럼
육신은 한줌의

흙이 되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깨달아야 하며,
조상들이 볼 때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다짐해야 하고,

 
형제 자매들 간에

더없는 우애와 사랑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결심하는

시간이어야 하며,
조상들이 남겨 놓고

 가신 훌륭한 뜻을

받들어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 추도예배는 성경적인가?

 


추석명절입니다.

​우리는 명절이나

돌아가신 분의

기일이 되면

 제사 대신에 추도예배,

추모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물론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면서 부모님이

 훌륭한 삶을 사셨기에

 그분의 발자취를

 본받기 위해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친목의 시간을 갖고자,

​고향도 방문할 겸 하여

 모이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필라델피아

교회와 같은 성도요

 교회가 되려면

성경적으로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추도예배란 무엇이며

우리가 명절 때

함께 모이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추모, 혹은 추도

 예배라는 말은 맞는 말인가요?

(1) 추모, 추도라는 말은

 어원적 의미에서 볼 때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단어의 뜻이 이렇습니다.

 

제사(祭祀):

​신(神)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의식을 베푸는 것.


추도(追悼):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

추모(追慕):

​죽은 사람을

사모하는 것.

차례(茶禮):

​음력 매달

초하루 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에 지내는 제사

 

한결 같이 죽은

사람과 그의 혼령을

 대상으로 애도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예(禮)를 갖추고

배(拜)를 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자에 대한 숭배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2) 예배라는 말을

생각해 볼까요?


예배(禮拜)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십계명중 1계명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배의 방법(2계명)과

예배의 정신(3계명)에서

어떤 우상적인 것도 금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못하게 하십니다.

​십계명의 말씀을 볼 때

 제사는 물론이고

추도, 추모, 차례예배 등은

모두가 죽은 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배이기 때문에

 십계명을 위반하는

죄인 것입니다.

​예배(禮拜)의

대상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추모, 추도 예배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 말 자체가

우리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2)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듯이

 그렇게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모였을 때

 가정예배로 드리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이것도

 타협이 아니냐,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정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저도 명절이면

어머님께 내려가서

온 형제들이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3) 그렇게 모였을 때

복음을 전하는 계기로

 만들어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족과

친지 친척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감격스러운 날이

일어나고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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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기도하는 법 주일예배 대표기도 요령 (How to pray in church)

 


오늘은 기도하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처음 기도를 하게되면 어려움을 격지요
그리고 대표기도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부터도 처음에 그랬으니까요
그럼 지금부터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 포스팅합니다.

대표기도의 방법

 

가. 기도의 요소

기도하는 데는 따라야 할 여러 절차가 있다. 절차가 필요한 이유는 계획성 있게 준비함으로써 효과적이고 완전한 기도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표기도나 공중기도에 있어서는 순서를 마음속에 정해 놓고 메모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1) 찬 양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앞서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 보면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영광이 서두에 나와 있다. 따라서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기도가 우선 되어야 한다.

(2) 감 사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 바울은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써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하였다. 간구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감사함을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다.

(3) 회개와 고백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하기 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확립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지은 죄를 남김없이 회개하는 것이다. 이 회개와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야만 정당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4) 간 구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간구이다. 간구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며 육체의 정욕을 위해 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간구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는 간구가 되어서는 안되며, 이웃과 섬기는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먼저 간구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이다.

(5)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함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신자의 특권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보잘 것 없이 낮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기도하는 것이다.

(6) 아멘으로 마침
아멘은 "확인하다", "확증하다", "진실로", "확실히" 등의 뜻이 있다.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기도의 응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다는 의미에서 "아멘"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멘"은 기도문의 총 결론으로 쓰여 지는 것이다.

나. 대표기도 할 시 유의사항

기도의 형식에는 묵상기도, 개인기도, 공중기도, 통성기도, 윤번기도, 대화기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형식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 다만 공중기도는 여러 사람을 대표하여 하는 것이므로 다른 기도와는 다른 내용과 형식으료 준비해야 한다.

(1) 공중기도자의 자세
먼저 공중기도의 자세는 언제나 정직하고 바른 자세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 공중 앞에 나선 대표기도자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모든 잡념을 잠재워야 한다. 욕망이나 불만 그 어떤 슬픔과 기쁨도 잠재워야 한다. 공중 앞에 나서기 직전부터 오직 주님만을 그리며 자신의 생활에 얽힌 모든 것을 떨쳐 버려야 한다. 마음 가득히 주님만을 사모하며 성령의 역사를 기다려야 한다.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이 잡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만 눈을 뜨고 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렇게 기도를 해도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마음을 모아 정성껏 기도문을 준비해서 드리는 것은 전체 예배자들을 위해 크게 유익할 수도 있다.
마음을 흩트리지 않고 단정한 마음가짐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공중기도를 할 때에는 예배와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누구나 다 자신의 삶을 살펴 볼 수 있도록 쉬운 말로 기도를 해야 한다. 자신의 개인 사정이나 자기와 친한 그 어떤 사람의 특별한 형편을 함부로 기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특별한 형편이 그 곳에 모인 모든 회중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일 때는 별로 상관이 없을 것이다. 공중기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공중기도는 단 한 번에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가급적이면 참석자의 모든 형편을 자세히 아는 것이 좋다. 공중기도자의 기도를 들으며 함께 기도하는 회중의 태도 역시 진지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대표로 인도하는 기도만 들으며 막연히 따라만 갈 것이 아니라 공중기도자의 기도에 자기가 바라는 진실 된 삶의 의미를 함께 실어서 주께 아뢰어야 한다. 그것이 함께 드리는 진정한 기도이다.
공중기도를 드릴 때 대표기도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이웃과 세상을 온전하게 섬기는 법을 깨닫고 고백해야 한다. 주의 나라와 그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전심으로 간구해야 한다. 갇힌 자를 해방시켜 주시며 소경의 눈을 여시며 의인을 사랑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며 악인의 길을 굽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개인기도이든 공중기도이든 기도의 대상은 분명히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영광을 찬양하고 참회하고 간구하는 우리의 자세는 겸허하고, 솔직해야 할 것이다. 결코 하나님 앞에서 가르치려 들거나 설교투의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자적이거나 철학적인 용어들을 동원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때나 어떤 상황에서도 위선의 탈을 벗어야 한다. 웅변가의 그럴듯한 음성을 흉내 내는 것도 듣기에 따라서는 민망스런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구약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필요 이상 인용하여 기도할 때가 있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역시 덕스럽지 못하다. 그럴 경우에는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훤히 알고 있는 양 자랑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가 쉽다. 또 한 가지는 대표기도를 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슬픔과 고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습관처럼 시종 우는 음성으로 기도를 하는 이가 있는데 정말 난처한 일이다. 왜냐하면 참석한 회중들이 다 슬픔에 빠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는 사업이 잘되어 돈 많이 벌었거나 직장에서 승진 등을 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고 경쾌한 소리로 기도를 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참석자들 중에는 괴로움과 슬픔에 잠긴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대표기도를 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회중을 대표해서 기도하는 사람이다. 자기중심으로 하는 기도는 피해야 한다. 교회 전체가 공동으로 해야 할 일과 같이 염려하는 것들에 대하여 기도를 함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기도를 맡은 사람은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 못지않게 정성을 다하여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흔히 교회 내에서 대표기도를 길게 하면 믿음이 좋아 보이는 것 같고 짧게 하면 믿음이 적은 것처럼 생각하는 이상한 풍조는 속히 시정이 되어야 한다.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공중대표 기도자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 먼저 원래의 자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평소에 행동이 민첩하고 말씨가 좀 빠른 편에 속하는 사람이 어느 날 대표기도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근엄하고 엄숙한 표정에다 굵고 느릿느릿한 말투로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정말 곤란하다. 기도를 드릴 때는 철저하게 가식적인 요소가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쳐해 있는 그대로의 상황 속에서 꾸밈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괜히 무게나 잡거나
근엄한 체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가 214장은 흔히 그런 자세를 취하기 쉬운 우리들에게 언제나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이 찬송가의 후렴에 나오는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라는 가사는 바로 우리의 삶의 자세와 기도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자가 명심해야 할 것 중의 또 하나는 기도를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회중들과 함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해 가야 하는 일이다. 혼자서 하는 개인기도라면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말을 빠르게 하든 느리게 하던 혹은 명상을 하던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을 대표한 공중기도를 맡은 자의 입장은 그게 아니다. 회중들과 함께 기도하고 같이 호흡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회중은 그저 듣기만 하고 대표기도자만이 빠른 속도로 청산유수처럼 기도를 한다고 해서 좋은 기도가 될 수는 없다. 전체 회중이 바라고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을 추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대표자가 드리는 기도의 한마디 한마디가 전체 회중 속에 용해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일찍이 우리에게 모여서 열심으로 기도하기를 촉구하시었다.
 

 

(2) 공중기도의 내용

기도의 내용 또한 좀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더욱 더 시야가 넓고 가슴이 뜨거운 것이 좋다.
지나치게 기복적이거나 일방통행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응석받이 어린아이처럼 무조건 달라고만 조르는 경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는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들이 항상 드리는 개인기도는 물론 공중기도 역시 자꾸만 편협해지고 있음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런 편협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중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갖아야 한다.

① 모든 기도자들의 감사의 마음이 반영되고,
② 모든 기도자들이 용서 받고자 하는 내용이 보편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며
③ 간구의 내용이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간략하여야 한다.

즉, 회중의 심중을 헤아리는 기도, 회중이 공감할 수 있는 기도가 되어야 하다는 말이다. 또한 개인이나, 우리교회만을 위한 기도에서 벗어나 정의와 평화, 사랑을 위한 기도로 발전되어야 하다. 그러나 이런 기도 역시 한탄이나 불평, 불만의 해소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며 교회와 개인이 하나님과 의논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역사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응답을 갈망하는 것이어야 하며,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의 기도여야 마땅할 것이다.

(3) 공중기도의 준비

① 먼저 개인기도로 준비한다.
② 각 성도들의 형편과 사정 등을 종합하여 기도를 구상한다.
③ 기도하는 시기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④ 기도문이나 기도의 요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⑤ 다른 사람이 들으라는 식으로 준비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을 대상으로 준비하여야 한다.
⑥ 기도 전에 성경 구절을 읽는 것은 설교식이 되어 버림으로 삼가야한다.
⑦ 대표기도자는 적어도 평소에는 못해도 한 주간 정도 새벽기도를 통해 준비해야 한다.
⑧ 기도자는 그 주간 예배와 말씀과 통일성을 이룰 수 있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⑨ 기도자를 이끄시는 성령님께 온전히 위탁하여야 한다.
⑩ 공중 기도는 개인기도가 아님을 명심하고 공중의 대표로서 그들의 마음으로 예배자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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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알아야할 모범적인 대표기도 Exemplary representative prayer

 


 

 
열왕기상 8:20-60을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왕상8:20),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고"(왕상8:21)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솔로몬의 대표기도(공중기도)를 볼 수 있다.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있고(왕상8:22-23), 이어서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에 대한 확신" 곧 "말씀의 확신"이 있고(8:24-26),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하는 "기도와 간구"가 있고(8:27-29), "회개와 용서와 사죄의 은총과 사유하심"에 대한 간구가 있으며(8:30-40), "중보기도"(8:41-53)와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축복기도"(8:55-60)가 있다.
 
솔로몬의 대표기도의 내용을 보면:
 
1) 하나님에 대한 찬양,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3) 회개와 사죄에 대한 은총,
4) 기도와 간구
5) 중보기도 그리고
6) 축복기도로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기도의 내용은:
 
1) 하나님에 대한 찬양(Adoration),
2) 회개(Confession),
3) 감사(Thanksgiving),
4) 간구(Supplication),
5) 중보기도(Intercession)로 되어있는데
 
솔로몬의 기도는 구체적으로 감사의 구절은 별도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기도의 전체적인 내용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뜻을 담고 있다(8:27, 53, 61). 이와 같이 볼 때에 솔로몬도 일반적인 기도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공중기도의 다른 예를 살펴보면,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드린 공중 기도가 있다.
 
"12사도 중 결원을 보충하기 위하여 드린 기도"(행1:24-25), "안수집사를 세우기 위하여 드린 기도"(행6:6) 등 여러 형태의 대표기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표기도를 드릴 때에 주의하여야 할 몇 가지사항을 살펴보면:
 
① 대표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회중을 대표하는 기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② 대표기도 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회개문제, 자신의 가정문제, 자신의 감정에 의한 문제 등 기도자의 개인적인 문제를 공중기도에 언급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기도할 자격"이 없다든지, "기도를 잘 할 줄 모른다"든지 그러한 말도 기도의 내용에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③ 만일 대표기도를 할 때에 기도자의 개인의 삶에, 또는 개인의 감정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 문제가 온전히 해결 될 때 가지 대표기도를 삼가 하는 것이 좋다.
 
④ 대표기도 자는 먼저 깊은 회개기도와 성령 충만함(엡 5:18)을 확인하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
 
⑤ 대표기도 자는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회중의 죄와 감사와 간구와 도고를 도맡아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한다.
 
⑥ 대표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⑦ 또한 대표기도는 설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⑧ 대표기도는 상황과 경우에 따라 그 내용을 다르게 기도하여야 하므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기도해야 한다. 주일대표기도, 헌금기도, 저녁 찬양예배, 수요성경공부, 금요철야기도, 식사기도 등
 
⑨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니므로 너무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⑩ 대표기도를 드릴 때에 기도문을 작성하여 가지고 나와서 기도를 읽는 예를 볼 수 있는데,
 
(가) 가장 좋은 대표기도는 "작성된 기도문"을 읽는 것보다 직접 아뢰는 기도가 더욱 좋다.
 
(나) 그러나 직접 아뢰는 기도가 힘들 때에는 기도문을 작성하여 읽는 것도 무방한 줄 안다.
 
(다) 다만 대표 기도를 "작성된 기도문"을 읽을 때에는 아래의 사항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 깊은 회개와 감사와 기도가 있은 후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문을 작성할 것
 
- "작성된 기도문"을 읽고 또 읽어서, 거의 암송하여, 직접 아뢰는 기도같이 기도할 것
 
-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담대한 마음으로 겸손히 기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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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삶  성령 세례 받는 법(성령 세례 Baptism in the Holy Spirit)

 

 

 

 

성령세례란?

성령세례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완전히 통제하시는 것으로, 언제나 복음증거 및 봉사와 연관되며

무엇보다도 이 둘을 위한 것이다.

또한, 성령세례의 1차적인 목적은 전도와 봉사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는 7가지 단계

1단계 :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받아들여라.

2단계 : 죄를 버려라. – 성령과 죄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3단계 :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라.

4단계 :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라. – 자기의 뜻을 굽히고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5단계 : 성령세례를 간절히 원하라.

6단계 : 성령세례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7단계 : 믿어라. –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성령세례의 실제적인 징후 : 주님의 일을 수행하게 해주는 새로운 능력

성령세례를 받으면 나타나는 증거들

-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특징들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       성령세례의 은사와 나타남이 다양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

-       성령은 성령세례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를 결정하시고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       또 다른 증거는 복음증거와 봉사를 위한 담대함이다.

-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영적인 일들에 대한 관심으로 충만해진다.

왜 꼭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들 중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령세례이다.

-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사역의 분야에서 열매 맺는 봉사를 하려면 성령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성령세례를 받고 일한다면, 효과적으로 열매 맺는 봉사를 할 수 있다.

-       새로운 사역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새롭게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능력이 소멸될 수도 있는가?

-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이 구별됨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그 사람에게서 거두어들이신다.

-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일곱 가지는 우리의 구별됨 포기, 죄, 방종, 돈에 대한 탐욕, 교만, 나태한 기도생활, 그리고 나태한 말씀 묵상이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       하나님의 일은 성령에 의해 말씀을 통해 성취된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아는 것이다.

-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며, 우리 속에 내재하셔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을 살리실 수 있으며,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볼 수 없는 지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신다.

-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닮은 삶으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삶으로 인도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신다.

-       성령은 예배를 위해 감동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도를 가르치시며, 감사하게 하신다.

예수님에게 나타난 성령의 사역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으셨다.

-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셨다.

-       성령의 능력 안에서 기적들을 행하셨고,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부활하셨다.

선지자들과 사도에게 나타난 성령의 사역

-       성령은 그들에게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

-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진리가 성령을 통해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었다.

-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으며, 예언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나를 위한 자유롭게 하시는 성령

-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목적과 욕구와 애착을 성령의 통제력에 맡기고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성령께서는 통제력을 갖고 우리를 우리 안에 죄의 힘에서 해방하신다. 그 분은 우리의 삶의 매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만드신다.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

-       우리는 육신이 결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우리의 노력으로는 아름다운 성품들을 이룰 수 없으며,

     그것들은 오직 성령의 열매로 주어질 뿐이라는 진리를 분명히 그리고 영원히 붙들어야 한다.

바른길로 이끄시는 성령

-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신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성경말씀을 통한 그 분의 인도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가르쳐주시는 성령

-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지혜를 버리고 성령께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

-       말씀을 이해하려면, 날마다 성령께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말씀을 접할 때 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기도와 찬양과 예배를 인도하시는 성령

-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감사하도록 가르친다.

-       성령은 신자들의 감사찬양을 인도하시고, 신자가 예배하도록 감동을 주신다.

사명의 자리로 부르시는 성령

-       성령의 부르심을 받으려면, 첫째 그분의 부르심을 갈망하고, 둘째, 그것을 열심히 구하고 셋째, 그것을 위하여 주를 섬기고, 넷째, 그것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 각 사람 안에서 성령의 일을 온전히 이루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기만 하면, 성령은 우리 각 사람 안에서 성령의 일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는 것을 막연하게 성령체험과 혼동하고 있었지만, 토레이 목사님을 통해서 그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토레이 목사님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께 성령세례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 즉, 성령세례가 주어졌다는 것을 안다.

혹 우리가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것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성령세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죄를 버리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령세례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와 양립하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까지 하시지 않으셨던가?

성령세례는 우리가 각자의 사역 분야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열매 맺는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성령세례가 필수적이며, 우리는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봉사를 함에 있어서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은 자신만의 힘으로 하는 것과 비교할 때,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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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장례예식 - 추도예배 순서지  

 


 

성도이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크리스천의 장례예식으로 추도예배 순서에 관한 내용입니다.


♠ 묵도
"다 같이 묵도하심으로 추도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을 사랑하셔서 오늘까지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되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 예배를 받아 주시고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재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 - 28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1절.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신 측량 알기를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성합니다

2절. 주의 크신 도움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 주셨네

3절. 주의 귀한 은혜받고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 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아멘

♠  기도 - 가족 중에

 

♠  성경봉독 - 시편 25:12~1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그에게 보이 시리로다,"

♠  말씀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자."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3가지 복이 나옵니다.
우리 가족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이 모든 복을 다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택할 길을 아는 복을 주십니다(12절)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선택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택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택한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을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잠 16장 25)' 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의 인생의 도상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복중에 복입니다. 우리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복을 허락하십니다(13절)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복은 물질적 부요로 오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 많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세상은 부요나 형통이 우리에게 잠깐의 편리함을 줄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잠시 잠깐의 평안이 아닙니다. 우리 처한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평안함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누리는 평안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언약을 보여 주시는 복입니다(14절)
하나님의 언약은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수많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신실에서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하셨는가를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 세 가지 복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찬송 -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1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절.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서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절.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지 않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 집에 돌아가 아버지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 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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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알아야할  금식기도의 자세  

 

 

 

 금식기도  
 
금식기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셨고(마4:2), 가르치셨으며(마6:16-18, 막2:18-20), 초대교회 제자들도 하였습니다.(행9:8-9, 13:2-3, 14:21-23)

금식기도는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할때  신앙 성장에 큰 유익을 줍니다. 자신의 문제 해결이나 육신적인 응답을 받기 위해 금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금식은 영적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며 도리어 초보에 머무르게 할 뿐입니다.

그러면 왜 금식을 해야 합니까? 금식기도에 임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시키실때에 금식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금식 중 힘들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금식하는 영적 목표들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하십시오.(빌3:13-14)

3. 자신과 남을 위한 금식기도가 되도록 하십시오.(빌2:4)

3.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십시오(마6:16-18, 렘14:12)

5.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슥7:5-7)

6. 애통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시69:10)

7. 겸허한 태도로 해야 합니다.(시35:13)

8.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해야 합니다.(사58:1-12) 사랑의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다음의 말들을 명심하십시오.
"올바른 금식은 인간의 육체적 본능에 의해 생기는 것과 성령을 거스리는 두 개의 커다란 문제를 해결시켜 준다."

"올바른 금식은 자기의 뜻을 고집하는 영혼과 자기의 욕망을 고집하는 육제를 성령께 복종시킨다."

"금식을 통하여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기도하라"

"힘을 다하여 계속하라, 시름하고, 싸우고, 기도하라. 그래서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짓누르고 승리의 날을 받으라."(찰스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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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도의 현금생활 /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이다

 

 

 

 피 섞인 헌신

 

원주에서 차로 두어 시간 벗어난 시골에서 첫 목회를 할 때였다. 볼일이 있어 택시를 타고 원주 시장에 갔다. 시장을 둘러보던 중 한구석에서 물건값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사람들이 있어 시선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우리 교회에 다니는 원귀숙 집사님이 가게 주인과 나물값을 두고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산에 가서 뜯은 나물을 상인에게 넘기려고 하는데 서로 가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200원을 더 달라고 조르는 집사님과 못 주겠다고 우기는 상인이 서로 밀릴 태세가 아니었다. 집사님이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주인과 실랑이하는 것을 보고 달려가 내 돈을 주면서 끝내려고 하는데 마음속에서 강한 음성이 들렸다.

“이 나물은 주일 내내 산을 돌아다니며 고생해서 뜯은 것이다. 또 버스값을 아끼려고 시내까지 걸어와 주인과 어렵게 흥정을 하며 팔아 돈을 마련했다. 이처럼 피 같은 돈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렸는데 이 헌금으로 쉽게 택시를 타고 다니는 목회자가 그까짓 200원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돌아오면서 다시는 성도들의 손으로 드린 피 섞인 헌신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푼돈에 뭉치 마음

 

생활보호 대상자로 폐지를 주워 팔아 생활하는 할머니 집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한 켠의, 움막을 겨우 면한 집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웅크린 자세로 들어가 무릎을 맞대고 함께 심방 예배를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깨끗하게 펴진 낡은 만 원권 지폐 두 장을 수줍어 하며 내미셨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목사님인데, 책 사 보세요"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몇 번을 사양하면서, 주일에 감사 헌금으로 드리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받아 와서 그 할머니 이름으로 감사 헌금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헌금입니다. 두 렙돈을 드린 과부와 같은 그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교회에 다니며 대접을 받으려면 매월 10~15만 원 정도는 헌금으로 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가 참 안타까웠습니다. 언제부터 헌금의 정신은 사라지고 헌금의 액수만을 따지게 된 것일까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 이전에 마음입니다. 뭉칫돈일지라도 쥐꼬리 같은 마음으로 드릴 수 있고,

푼돈일지라도 뭉치 마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뭉칫돈에 쥐꼬리 마음이 아니라 푼돈에 뭉치 마음입니다. 마음을 드릴 수만 있다면 처지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큰 헌금, 큰 헌신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딱! 붙어살자」/ 홍정근

 

* 금언: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이다. - 마르틴 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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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이 없는 기도(눅 18:1-8)

 

 


응답이 없는 기도(눅 18:1-8)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사람들에게 기도에 있어 가장 많이 오해되는 것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태도이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기도가 ‘매어 달리기 시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과부, 고아는 가장 약한 자라는 표현이다. 과부는 남편이 없고, 자식을 낳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남자가 발언권을 가지고 힘을 누리던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배필이나 자식이 없는 과부는 가장 나약한 자의 표현이다. 여기 어떤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재판관에게 그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청하는데 재판관이 들어주지 않는다. 끈질기게 매어 달리자 결국은 귀찮아서 들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열심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귀찮을 정도로 매어 달리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문 1절을 보면 이 비유는 ‘열심’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가 아니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된다는 문제에 관한 비유라고 말한다. 기도를 들어주는 이유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들어주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등장하고 있는 본문이다. 누가복음 18장 1-8절의 과부 사건은 어떻게 하면 응답을 받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응답을 받아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하여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준 비유이다. ‘어느만큼 기도하면 응답을 받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만큼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을 수 있는가’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꺼내놓은 것이 누가복음 18장 과부 사건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은 낙망치 말 것에 대한 비유이다. 기도는 항상 하되 그러나 낙망치 말라고 하신다. 항상 기도하면서도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제시하는 이유는 늘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우리의 욕심껏 되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판관이란 우리나라의 판사가 아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의 재판관이란 사사를 말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과부가 와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는데 갚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번거롭게 함으로 후에는 들어 주었다.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본문은 전부가 앞의 사건과의 대칭이다. 앞에는 불의한 재판관이고 뒤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다. 앞의 대상은 과부이고 뒤에는 사랑하는 자녀이다. 여기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억울한 과부와 사랑하는 자녀가 재판관과 하나님께 와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는 점이다. 만일 이 공통된 부분이 없다면 이 두 비유는 대칭을 이룰 수 없다. 이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은 그 일을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이고,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는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아뢸 수 있는 그런 아버지시다. 이것만은 공통되는 점이다.

 

본문에서는 분명히 이 비유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이 번거로움을 느꼈다면 찾아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과부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관이 이 과부를 찾아오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는 빌미는 찾아오는 횟수가 아니라 물고 늘어지는 정당함에 있다는 이야기다. 과부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찾아와도 번거로울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녀들의 부르짖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한이 문제이다. 7절을 보자.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여기서 원한은 정당한 요구에 대한 원한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정당한 요구일 때는 일말의 양심에 걸리는 법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정당한 요구인 경우에는 어떠하겠느냐, 이것이 일차적인 대조이다. 불의한 재판관에 대해서 정당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그리고 대상이 전자는 과부이고, 후자는 택하신 사랑하는 자녀들이다. 그런데 재판관 쪽에서도 그 꼬투리 때문에 할 수 없이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면 후자에서는 들어주는 것이 더욱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대조를 놓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많이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떼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근거없이 떼를 쓰는 것은 훨씬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요구가 정당할 때 떼를 쓰면 정당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들어주는 일이 있다. 이와같은 우리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여기서 대조해 보고 증폭된 비유를 이제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불의한 재판관과 공의로우신 하나님, 또한 돌보아 줄 필요없는 외면해 버려도 되는 가장 나약한 사람의 권리와 눈동자와 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의 요구, 이런 증폭된 비유와 대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준에서 기억해야 될 점이 있다. 그런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결론이 나는 것이다. 사실은 누가복음 18장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나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니 절대 절망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기도에 있어 이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시작하는 순간에 이미 다 알고 계시고, 우리가 우리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만큼 하나님은 내 기도에 간절히 응답하고 계신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은 ‘네가 필요로 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안타까워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너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안 들어 주시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안 들어 주시는지에 대하여는 말씀이 없다. 각자의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느 것이라도 신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가지시는 기본적인 태도와 기본적인 안타까움이 무효화되거나 약화되거나 외면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낙망치 말라고 하신다.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8:3-5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하나님 앞에 올려진 우리들의 향(기도)이 하나님 앞에 드려진다. 하나님 앞에 있는 금단의 불을 가져다가 쏟으니

땅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는 이야기다. 기도의 응답이 그때쯤 되어지는 이야기로 보인다.

 

계 6:9,10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성경이 이야기 하는 가장 큰 기도의 응답, 보류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공의가 온 천하 만민 앞에 햇빛같이 드러나는 마지막 심판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개인적으로도 기도의 응답이 가장 잘 나타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가 하면 아마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응당 받아야 할 축복과 칭찬과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지금 이 요한계시록 6장 9-10절까지 나타난 말씀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이제 온 천하 만민을 심판하사 죄지은 자들을 불못에 던지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늘나라에 올려 의와 거룩과 영광과 존귀로 영접하실 그날까지 이 기도는 사실상 응답되지 않는 기도이다. 그것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제가 이만큼 살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이런 기도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먹는 것으로, 입는 것으로, 자존심에 관한 것으로, 영광에 관한 문제로, 능력과 건강으로 이렇게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그때마다 우리가 마음 속으로 이 문제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혹시 나를 외면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위하여 누가복음 18장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응답되어야 할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응답이 안 된다면 거기에 또 다른 뜻이 있는 것이지 너를 싫어하거나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은 의외로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성경 전권을 다 뒤져서 가장 무서운 구절은 이 구절이다.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구절을 외우면서 우리의 지금 삶의 모습이 내가 하나님의 참된 약속 속에서 건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는 떡 받아 먹기 위하여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몽땅 응답되어진 기도의 제목만 있는 것이 꼭 신앙의 최고 경지는 아니다. 많은 기도들은 응답되어지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인생과 온 천하 만민의 인생과, 온 우주의 경륜을 쥐고 계신 대장임을 마음으로부터 항복하는 기꺼운 신앙인의 자세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 기도의 자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다.

 

오늘 내게 필요한 기도의 제목을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주시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자신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내게 오늘도 가시가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의 주관자시요, 그분의 뜻과 지혜의 깊은 것을 내가 다 알지 못하지만 그것으로 나는 항복입니다. 오늘 저는 아픕니다만 하나님이 대장이어서 저는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느 것이 가능하고 어느 것이 보류될 것인지 잘 몰라도 내 모든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며 마침내는 넘치도록 응답하실 아버지이기에 기도하렵니다”

 

이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쯤 하나님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 이것이 기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점에 있어 회의적이다.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을 마음 속에 기억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말 신앙생활답게, 기도를 기도답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승리된 생활을 영위하여야 한다.

 

누가복음 18장 7절 말씀을 다시 마음 속에 새겨 보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물며’라는 단어를 꼭 기억하라.

누가복음 18장 1-8절까지 말씀은 ‘하물며’이다. 그 단어가 거기 등장하게 된 앞에서의 가장 부정적인 상황과 뒷부분의 가장 적극적인 상황의 그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단 하나의 지렛대인 ‘하물며’를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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