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삶  성령 세례 받는 법(성령 세례 Baptism in the Holy Spirit)

 

 

 

 

성령세례란?

성령세례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완전히 통제하시는 것으로, 언제나 복음증거 및 봉사와 연관되며

무엇보다도 이 둘을 위한 것이다.

또한, 성령세례의 1차적인 목적은 전도와 봉사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는 7가지 단계

1단계 :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받아들여라.

2단계 : 죄를 버려라. – 성령과 죄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3단계 :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라.

4단계 :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라. – 자기의 뜻을 굽히고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5단계 : 성령세례를 간절히 원하라.

6단계 : 성령세례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7단계 : 믿어라. –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성령세례의 실제적인 징후 : 주님의 일을 수행하게 해주는 새로운 능력

성령세례를 받으면 나타나는 증거들

-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특징들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       성령세례의 은사와 나타남이 다양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

-       성령은 성령세례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를 결정하시고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       또 다른 증거는 복음증거와 봉사를 위한 담대함이다.

-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영적인 일들에 대한 관심으로 충만해진다.

왜 꼭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들 중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령세례이다.

-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사역의 분야에서 열매 맺는 봉사를 하려면 성령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성령세례를 받고 일한다면, 효과적으로 열매 맺는 봉사를 할 수 있다.

-       새로운 사역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새롭게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능력이 소멸될 수도 있는가?

-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이 구별됨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그 사람에게서 거두어들이신다.

-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일곱 가지는 우리의 구별됨 포기, 죄, 방종, 돈에 대한 탐욕, 교만, 나태한 기도생활, 그리고 나태한 말씀 묵상이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       하나님의 일은 성령에 의해 말씀을 통해 성취된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아는 것이다.

-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며, 우리 속에 내재하셔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을 살리실 수 있으며,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볼 수 없는 지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신다.

-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닮은 삶으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삶으로 인도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신다.

-       성령은 예배를 위해 감동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도를 가르치시며, 감사하게 하신다.

예수님에게 나타난 성령의 사역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으셨다.

-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셨다.

-       성령의 능력 안에서 기적들을 행하셨고,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부활하셨다.

선지자들과 사도에게 나타난 성령의 사역

-       성령은 그들에게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

-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진리가 성령을 통해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었다.

-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으며, 예언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나를 위한 자유롭게 하시는 성령

-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목적과 욕구와 애착을 성령의 통제력에 맡기고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성령께서는 통제력을 갖고 우리를 우리 안에 죄의 힘에서 해방하신다. 그 분은 우리의 삶의 매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만드신다.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

-       우리는 육신이 결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우리의 노력으로는 아름다운 성품들을 이룰 수 없으며,

     그것들은 오직 성령의 열매로 주어질 뿐이라는 진리를 분명히 그리고 영원히 붙들어야 한다.

바른길로 이끄시는 성령

-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신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성경말씀을 통한 그 분의 인도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가르쳐주시는 성령

-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지혜를 버리고 성령께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

-       말씀을 이해하려면, 날마다 성령께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말씀을 접할 때 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기도와 찬양과 예배를 인도하시는 성령

-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감사하도록 가르친다.

-       성령은 신자들의 감사찬양을 인도하시고, 신자가 예배하도록 감동을 주신다.

사명의 자리로 부르시는 성령

-       성령의 부르심을 받으려면, 첫째 그분의 부르심을 갈망하고, 둘째, 그것을 열심히 구하고 셋째, 그것을 위하여 주를 섬기고, 넷째, 그것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 각 사람 안에서 성령의 일을 온전히 이루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기만 하면, 성령은 우리 각 사람 안에서 성령의 일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는 것을 막연하게 성령체험과 혼동하고 있었지만, 토레이 목사님을 통해서 그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토레이 목사님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께 성령세례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 즉, 성령세례가 주어졌다는 것을 안다.

혹 우리가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것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성령세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죄를 버리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령세례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와 양립하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까지 하시지 않으셨던가?

성령세례는 우리가 각자의 사역 분야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열매 맺는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성령세례가 필수적이며, 우리는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봉사를 함에 있어서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은 자신만의 힘으로 하는 것과 비교할 때,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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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장례예식 - 추도예배 순서지  

 


 

성도이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크리스천의 장례예식으로 추도예배 순서에 관한 내용입니다.


♠ 묵도
"다 같이 묵도하심으로 추도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을 사랑하셔서 오늘까지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되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 예배를 받아 주시고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재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 - 28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1절.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신 측량 알기를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성합니다

2절. 주의 크신 도움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 주셨네

3절. 주의 귀한 은혜받고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 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아멘

♠  기도 - 가족 중에

 

♠  성경봉독 - 시편 25:12~1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그에게 보이 시리로다,"

♠  말씀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자."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3가지 복이 나옵니다.
우리 가족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이 모든 복을 다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택할 길을 아는 복을 주십니다(12절)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선택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택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택한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을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잠 16장 25)' 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의 인생의 도상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복중에 복입니다. 우리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복을 허락하십니다(13절)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복은 물질적 부요로 오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 많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세상은 부요나 형통이 우리에게 잠깐의 편리함을 줄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잠시 잠깐의 평안이 아닙니다. 우리 처한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평안함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누리는 평안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언약을 보여 주시는 복입니다(14절)
하나님의 언약은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수많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신실에서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하셨는가를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 세 가지 복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찬송 -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1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절.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서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절.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지 않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 집에 돌아가 아버지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 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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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알아야할  금식기도의 자세  

 

 

 

 금식기도  
 
금식기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셨고(마4:2), 가르치셨으며(마6:16-18, 막2:18-20), 초대교회 제자들도 하였습니다.(행9:8-9, 13:2-3, 14:21-23)

금식기도는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할때  신앙 성장에 큰 유익을 줍니다. 자신의 문제 해결이나 육신적인 응답을 받기 위해 금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금식은 영적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며 도리어 초보에 머무르게 할 뿐입니다.

그러면 왜 금식을 해야 합니까? 금식기도에 임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시키실때에 금식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금식 중 힘들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금식하는 영적 목표들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하십시오.(빌3:13-14)

3. 자신과 남을 위한 금식기도가 되도록 하십시오.(빌2:4)

3.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십시오(마6:16-18, 렘14:12)

5.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슥7:5-7)

6. 애통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시69:10)

7. 겸허한 태도로 해야 합니다.(시35:13)

8.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해야 합니다.(사58:1-12) 사랑의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다음의 말들을 명심하십시오.
"올바른 금식은 인간의 육체적 본능에 의해 생기는 것과 성령을 거스리는 두 개의 커다란 문제를 해결시켜 준다."

"올바른 금식은 자기의 뜻을 고집하는 영혼과 자기의 욕망을 고집하는 육제를 성령께 복종시킨다."

"금식을 통하여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기도하라"

"힘을 다하여 계속하라, 시름하고, 싸우고, 기도하라. 그래서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짓누르고 승리의 날을 받으라."(찰스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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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도의 현금생활 /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이다

 

 

 

 피 섞인 헌신

 

원주에서 차로 두어 시간 벗어난 시골에서 첫 목회를 할 때였다. 볼일이 있어 택시를 타고 원주 시장에 갔다. 시장을 둘러보던 중 한구석에서 물건값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사람들이 있어 시선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우리 교회에 다니는 원귀숙 집사님이 가게 주인과 나물값을 두고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산에 가서 뜯은 나물을 상인에게 넘기려고 하는데 서로 가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200원을 더 달라고 조르는 집사님과 못 주겠다고 우기는 상인이 서로 밀릴 태세가 아니었다. 집사님이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주인과 실랑이하는 것을 보고 달려가 내 돈을 주면서 끝내려고 하는데 마음속에서 강한 음성이 들렸다.

“이 나물은 주일 내내 산을 돌아다니며 고생해서 뜯은 것이다. 또 버스값을 아끼려고 시내까지 걸어와 주인과 어렵게 흥정을 하며 팔아 돈을 마련했다. 이처럼 피 같은 돈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렸는데 이 헌금으로 쉽게 택시를 타고 다니는 목회자가 그까짓 200원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돌아오면서 다시는 성도들의 손으로 드린 피 섞인 헌신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푼돈에 뭉치 마음

 

생활보호 대상자로 폐지를 주워 팔아 생활하는 할머니 집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한 켠의, 움막을 겨우 면한 집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웅크린 자세로 들어가 무릎을 맞대고 함께 심방 예배를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깨끗하게 펴진 낡은 만 원권 지폐 두 장을 수줍어 하며 내미셨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목사님인데, 책 사 보세요"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몇 번을 사양하면서, 주일에 감사 헌금으로 드리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받아 와서 그 할머니 이름으로 감사 헌금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헌금입니다. 두 렙돈을 드린 과부와 같은 그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교회에 다니며 대접을 받으려면 매월 10~15만 원 정도는 헌금으로 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가 참 안타까웠습니다. 언제부터 헌금의 정신은 사라지고 헌금의 액수만을 따지게 된 것일까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 이전에 마음입니다. 뭉칫돈일지라도 쥐꼬리 같은 마음으로 드릴 수 있고,

푼돈일지라도 뭉치 마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뭉칫돈에 쥐꼬리 마음이 아니라 푼돈에 뭉치 마음입니다. 마음을 드릴 수만 있다면 처지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큰 헌금, 큰 헌신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딱! 붙어살자」/ 홍정근

 

* 금언: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이다. - 마르틴 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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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이 없는 기도(눅 18:1-8)

 

 


응답이 없는 기도(눅 18:1-8)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사람들에게 기도에 있어 가장 많이 오해되는 것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태도이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기도가 ‘매어 달리기 시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과부, 고아는 가장 약한 자라는 표현이다. 과부는 남편이 없고, 자식을 낳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남자가 발언권을 가지고 힘을 누리던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배필이나 자식이 없는 과부는 가장 나약한 자의 표현이다. 여기 어떤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재판관에게 그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청하는데 재판관이 들어주지 않는다. 끈질기게 매어 달리자 결국은 귀찮아서 들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열심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귀찮을 정도로 매어 달리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문 1절을 보면 이 비유는 ‘열심’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가 아니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된다는 문제에 관한 비유라고 말한다. 기도를 들어주는 이유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들어주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등장하고 있는 본문이다. 누가복음 18장 1-8절의 과부 사건은 어떻게 하면 응답을 받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응답을 받아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하여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준 비유이다. ‘어느만큼 기도하면 응답을 받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만큼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을 수 있는가’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꺼내놓은 것이 누가복음 18장 과부 사건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은 낙망치 말 것에 대한 비유이다. 기도는 항상 하되 그러나 낙망치 말라고 하신다. 항상 기도하면서도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제시하는 이유는 늘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우리의 욕심껏 되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판관이란 우리나라의 판사가 아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의 재판관이란 사사를 말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과부가 와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는데 갚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번거롭게 함으로 후에는 들어 주었다.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본문은 전부가 앞의 사건과의 대칭이다. 앞에는 불의한 재판관이고 뒤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다. 앞의 대상은 과부이고 뒤에는 사랑하는 자녀이다. 여기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억울한 과부와 사랑하는 자녀가 재판관과 하나님께 와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는 점이다. 만일 이 공통된 부분이 없다면 이 두 비유는 대칭을 이룰 수 없다. 이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은 그 일을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이고,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는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아뢸 수 있는 그런 아버지시다. 이것만은 공통되는 점이다.

 

본문에서는 분명히 이 비유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이 번거로움을 느꼈다면 찾아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과부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관이 이 과부를 찾아오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는 빌미는 찾아오는 횟수가 아니라 물고 늘어지는 정당함에 있다는 이야기다. 과부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찾아와도 번거로울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녀들의 부르짖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한이 문제이다. 7절을 보자.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여기서 원한은 정당한 요구에 대한 원한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정당한 요구일 때는 일말의 양심에 걸리는 법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정당한 요구인 경우에는 어떠하겠느냐, 이것이 일차적인 대조이다. 불의한 재판관에 대해서 정당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그리고 대상이 전자는 과부이고, 후자는 택하신 사랑하는 자녀들이다. 그런데 재판관 쪽에서도 그 꼬투리 때문에 할 수 없이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면 후자에서는 들어주는 것이 더욱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대조를 놓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많이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떼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근거없이 떼를 쓰는 것은 훨씬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요구가 정당할 때 떼를 쓰면 정당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들어주는 일이 있다. 이와같은 우리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여기서 대조해 보고 증폭된 비유를 이제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불의한 재판관과 공의로우신 하나님, 또한 돌보아 줄 필요없는 외면해 버려도 되는 가장 나약한 사람의 권리와 눈동자와 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의 요구, 이런 증폭된 비유와 대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준에서 기억해야 될 점이 있다. 그런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결론이 나는 것이다. 사실은 누가복음 18장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나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니 절대 절망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기도에 있어 이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시작하는 순간에 이미 다 알고 계시고, 우리가 우리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만큼 하나님은 내 기도에 간절히 응답하고 계신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은 ‘네가 필요로 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안타까워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너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안 들어 주시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안 들어 주시는지에 대하여는 말씀이 없다. 각자의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느 것이라도 신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가지시는 기본적인 태도와 기본적인 안타까움이 무효화되거나 약화되거나 외면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낙망치 말라고 하신다.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8:3-5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하나님 앞에 올려진 우리들의 향(기도)이 하나님 앞에 드려진다. 하나님 앞에 있는 금단의 불을 가져다가 쏟으니

땅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는 이야기다. 기도의 응답이 그때쯤 되어지는 이야기로 보인다.

 

계 6:9,10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성경이 이야기 하는 가장 큰 기도의 응답, 보류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공의가 온 천하 만민 앞에 햇빛같이 드러나는 마지막 심판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개인적으로도 기도의 응답이 가장 잘 나타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가 하면 아마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응당 받아야 할 축복과 칭찬과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지금 이 요한계시록 6장 9-10절까지 나타난 말씀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이제 온 천하 만민을 심판하사 죄지은 자들을 불못에 던지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늘나라에 올려 의와 거룩과 영광과 존귀로 영접하실 그날까지 이 기도는 사실상 응답되지 않는 기도이다. 그것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제가 이만큼 살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이런 기도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먹는 것으로, 입는 것으로, 자존심에 관한 것으로, 영광에 관한 문제로, 능력과 건강으로 이렇게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그때마다 우리가 마음 속으로 이 문제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혹시 나를 외면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위하여 누가복음 18장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응답되어야 할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응답이 안 된다면 거기에 또 다른 뜻이 있는 것이지 너를 싫어하거나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은 의외로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성경 전권을 다 뒤져서 가장 무서운 구절은 이 구절이다.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구절을 외우면서 우리의 지금 삶의 모습이 내가 하나님의 참된 약속 속에서 건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는 떡 받아 먹기 위하여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몽땅 응답되어진 기도의 제목만 있는 것이 꼭 신앙의 최고 경지는 아니다. 많은 기도들은 응답되어지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인생과 온 천하 만민의 인생과, 온 우주의 경륜을 쥐고 계신 대장임을 마음으로부터 항복하는 기꺼운 신앙인의 자세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 기도의 자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다.

 

오늘 내게 필요한 기도의 제목을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주시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자신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내게 오늘도 가시가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의 주관자시요, 그분의 뜻과 지혜의 깊은 것을 내가 다 알지 못하지만 그것으로 나는 항복입니다. 오늘 저는 아픕니다만 하나님이 대장이어서 저는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느 것이 가능하고 어느 것이 보류될 것인지 잘 몰라도 내 모든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며 마침내는 넘치도록 응답하실 아버지이기에 기도하렵니다”

 

이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쯤 하나님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 이것이 기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점에 있어 회의적이다.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을 마음 속에 기억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말 신앙생활답게, 기도를 기도답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승리된 생활을 영위하여야 한다.

 

누가복음 18장 7절 말씀을 다시 마음 속에 새겨 보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물며’라는 단어를 꼭 기억하라.

누가복음 18장 1-8절까지 말씀은 ‘하물며’이다. 그 단어가 거기 등장하게 된 앞에서의 가장 부정적인 상황과 뒷부분의 가장 적극적인 상황의 그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단 하나의 지렛대인 ‘하물며’를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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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삶] 성령안에서 살아가는 방법


 

 

 

1.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한다.

   세상에 많은 주제들이 있고 마음을 끌고 유혹하는 것들이 많을지라도 다 다루지도 말고 마음이 끌리지도 말려면 먼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제 일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한다.

 

2.  말씀과 기도를 하루에 아침에 한 시간 이상 한다.

  말씀은 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의 임재가 있도록 하는 것을 목 표로 한다. 하나님앞에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성경연구와 간구의 시간은 따로 연장하여 갖도록 한다.

 

3.  말씀충만은 성령충만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늘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삶을 살아간다. 의로운 삶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인데 이 삶이 성령충만을 유지하고 다시 받는 최적의 조건이다.

고넬료의 성령받은 사건을 생각할 것. 예수님을 전할 때에 의인이었던 고넬료는 설교를 듣는 중에 성령을 받는다.

 

4. 날마다 말씀을 양식으로 먹으라.

먹지 않고 지내는 날이 없도록 하라.

 

5.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회개하고 이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으며 우리는  정결하여지고 그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선물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의 대가이다. 선물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6. 언제나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간다.

성령의 다스리심안으로 들어간다.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고 열매맺게 된다.

 

이때에 성령의 주시는 방언을 하게 되는데 계속 방언을 한다.

이는 중보기도로서 마땅히 제사장이 해야하는 기도인 것이다.

사무엘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였다. 이는 제사장으로서는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는 죄가 되는 것이다.

6.1 몸이 아픈 곳에, 무거운 곳에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치유안에 거하라. 우리는 몸과 영과 혼이 다 거룩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7. 타인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라.

기도할 때에 타인이 생각나거든 그를 위하여 충분히 기도한다. 마음속에 되었다 할 때까지 기도한다.

 

8.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

죄의 종이 되면 즉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나를 헌신한다. 재헌신하는 것이다. 이는 죄를 지으면서 나를 죄의 종으로 내가 주었기 때문이다.

 

9. 평안과 기쁨을 확인하라.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가 임하여 있다는 증거이다.

 

평안은 어떤 상태에서든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이며 기쁨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증거이다. 이때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잘 될 것이다.

 

 

10. 시대를 분별하라.

유혹케 하는 것과 귀신의 가르침이 횡행하는 시대이다. 교회의 부정적 운명론에 빠지지 말라.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고 잘못된 것이다.

 

10.1  이제는 전도를 하는 시대가 아닌 닫힌 문의 시대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 개척교회가 너무 어렵기만 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 아는 것이다. 환란 때에 교회가 고통을 당한다고만 주장하는 이들은 너무 부정적이다. 교회는 승리한다. 성령충만한 사람을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10.2  교회의 통합을 말하면서 혼합주의 정책을 쓰는 것은 사단의 전술이다. 1년 전인가 2005년 세계일보에 “내 것 고집버려야 종교갈등 치유“라는 기사의 글이 실렸는데 어떤 신부가 종교혼합정책을 쓰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성당에 봉축 연등을 내걸고 108배 행사를 갖는 등 대거 고산성당 정 홍규 (51세) 신부의 종교간 벽 허물기 노력이 보도된적이 있다. 그는 대구 지하철 참사희생자를 위하여 장승굿을 치르기 위하여 승려와도 만났다고 하는 신부이다.  이것은 귀신들린 행위밖에는 안된다.

 

성경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십계명에 나온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안에서나 하는 이야기지 그런 구태의연한 소리 하지 마쇼“라고 세상은 말한다. 그렇다. 세상은 우상숭배라고 하지 않고 타종교라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임이 분명하지 않는가? 당신이 거듭난 기독교인이라면 이러한 구분은 당연히 되어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엄청 잘못 가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신부는 굿까지 하자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뒤에 사단과 귀신의 세력이 주장하고 있음을 안다. 그런데 굿을 하자고 찾아다니는 것은 끌려다니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는 못하고 오히려 이미 첩자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내 것을 가지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외쳐야 하며 그것으로 세상에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말씀의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면 목숨을 걸어도 되지만 말씀의 정확한 해석이 없다면 목숨을 걸라고 해도 걸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개신교 안에서도 이러한 구분이 없고 유야 무야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옥 한흠 목사님이 승려를 만났다고 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성경해석이 부족하여 잘못 말한 것이 있다고 하자.(휴거의 시기에 대하여도 말한 바가 있다가 취소함.)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고 올바르게 가르친다는 소문이 난 옥한흠 목사님이 대화를 하기 위하여 승려를 초빙하였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가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면  옥 목사님은 당연히 구원의 문제부터 짚고 나가야 한다. 사회의 정화나 이런 문제를 같이 논의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혼합주의는 배타주의의 반대말이 아니라 정결한 삶의 반대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령충만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신 신앙과 헌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신앙의 어떤 노력이나 방식으로 취득하지 않는다.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고 올바로 할 때에 나를 헌신할 때에 종으로 드릴 때에 목숨을 바칠 때에 성령충만을 주신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성령충만을 주신다.

 

11.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라.

오늘날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주제들이 있다. 배울 것, 볼 것, 구경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하여 그분과의 교제를 가장 중요시하고 실제적으로 교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맛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단순하고 맹목적이라고 사람들이 말할지 몰라도 최소한 맹목적인 것은 아니다. 눈감은 장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한 것은 좋은 것이다. 성령 안에서만 거하라. 그것이 답이다.

 

말씀대로 믿어라. 사단은 이제 세부적으로 이래 저래 말씀을 안 믿고 부정하고 의심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정확히 해석하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

 

12. 교회와 사역자는 신앙안에서도 잘못된 것들은 다 구별하고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부흥을 말씀하시는데 해골조차 살리신다.  이때에 하나님은 에스겔 44장에서 제사장들을 다시 세워주시고 교육하시는데 그중에 부과된 것이 다음이다.

 

에스겔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1) 거룩과 속된 것을 구별하라.  :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속된 것은 피조물의 세계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며 그분을 거룩히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되는 대로 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전부라는 생각을 떠나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것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위임명령에 포함된 것이다.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교회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세상이 갈 길을 몰라 죄악속에서 헤미이는 것이다.

 

2)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부정하게 사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부정은 정결하지 않은 곧 더러운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씻고나서 그는 정결하게 되어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하고 그렇게 하여 그는 성령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모든 부정한 생각을 버리고, 부정한 영(귀신)을 쫓아내고 부정한 영상들을 버리고 부정한 행위와 습관들을 버리고 의롭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13.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삶을 유지하라.

계시록 14장의 144000의 기준이다. 거짓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되는데 또한 진리가 아닌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진리만을 말하는 것이다.  카톨릭은 기독교가 아니고 우상숭배의 하나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이 말을 해야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 안에서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진리를 듣게 된다.

다 같이 한 사회, 행복한 나라를 위하여 사는데....... 라는 것이 기독교의 목표가 아니다. 기독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싸우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회개할 사람들이 회개하라는 것이다.

 

 

14. 나의 약점을 보강하고 약점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하라.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자기가 죄를 짓지 귀신이 원인이 아니다. 귀신과 사단은 유혹을 하지만 사실상 죄를 짓는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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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기도가 중요한 이유 3가지

 

 

 

금식은 매우 중요한 습관이며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금식은 일정 기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것 이상의 것으로 우리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해낼 수 없는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금식은 선한 것이다.

환자들이 수술을 준비하면서 음식을 피하는 것이나 단순히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끼니를 거르는 것과 달리 우리의 금식은 하나님을 찾길 원하는 이들의 오래된 습관 중 하나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서 금식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또 하나님을 향해 더욱 간절함을 가진 이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금식기도를 통해 제자도를 훈련해왔다.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금식기도가 중요한 이유 3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우리 스스로를 부인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금식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음식을 비롯해 우리가 거부하기 어려운 것들을 절제한다. 미디어 금식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음식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필요에 대한 욕구를 부인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배가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이러한 이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19)

2. 우리의 영을 강하게 하고 육을 약하게 한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욕신의 일을, 영을 속한 자들은 영의 일을 쫓는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또한 육신의 소욕과 영의 소욕이 서로를 거스른다.

육신의 일은 자기중심성을 포함한다. 이는 사람이 먹는 것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식할 때 우리의 배를 하나님의 영에 순종시키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금식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지를 보여준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눅 5:34~3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히 다시 오시길 바라며 기도하는 자들이다. 우리의 금식이 그분께 유익이 되지 않지만, 그분을 향한 우리의 간절함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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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신앙인의 삶 -  중보기도문

 

 

 


 나를 사랑하사 하나님 자녀삼고 아버지 은혜 안에서 살수있는 특권을 주신
 나의 하나님! 지난날 , 세상것만 알고 세상것만 좋아하던 나에게 ,예수 믿게
 하시어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천국을 알게하시고 , 아무런 노력이나 공로없이
 천구주인 되게 하신 아버지께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세상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없는 고아들이기에 맘대로 살아도 되는 운명이지만,
나와 우리 가족들은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이 목숨버려 택하신 하니님 자녀인고로
 불완전하고 약한 나의 인격을 천국민 의 인격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 나의 생활 가운데서
 끊임없이 간섭하시고 , 깨닫도록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기쁜 맘으로
 무릎 꿇으며 , 내대신 죽으신 나의 주님을 시인하고 인정함으로서 , 지금 죽더라도
 아버지 품에 안길수 있는 확신과 소망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어려운일 생길때마다 더욱 감사함으로 믿음의 사람임을 확증하게 해주시고,
진리를 아는 지식의 사람되도록 가르침 받게 해주시어 겸손-지혜-섬김-평화의
 축복그릇 삼아 주옵소서 .

 

 <이제,모든 염려와 저주, 질병과 가난을 가져오는 패배한 마귀와 귀신들은
 예수 보혈 권세로 명령하노니 , 우리 가정에서 거짓을 거두고 물러가라!>

주 예수 믿는자에게는 너와 네 가족이 구원 받으리라 하셨으매 우리가족(이름)
모두가 구원 받아 영혼이 잘됨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우리 우리 사업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을 믿습니다.
우리가정은 주님때문에 믿음축복의 가정되고 승리와 성공의 가정됨을 감사합니다.

인생 도중에 낙심하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새힘을 주시며 어려울때나 좋을때나
 주님믿고 평생 기도 하다가 아버지 품에 안기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와 우리 가족들을 인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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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순종은 예수님의 마음

 

 

성경은「너희안에  이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예수의  마음이니
----자기를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2;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앞에서  완전히 깨어져 자신을  낮추는  마음요, 
하나님의  명령을  순복하되  목숨을  내걸고, 순복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성령님을  통해 이두가지  마음을  갖추면
여러분을 높여주시고  여러분의  삶을영화롭게  해주시지만,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지  않으면 
여러분으로  하여금  불을통하고  물을 통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러분이  하나님앞에서  깨어져 겸손하게 되고,
전폭적으로 순복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춘 
사람이  되기 전에는 축복해주실수  없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은  그냥얻어지는  것이아닙니다,
아브라함처럼  불과물을  통해야하고,
야곱처럼 환도뼈가 어그러지는 고난을통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불같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올때 
이상한일 당하는것같이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앞에서 낮아지고
순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추므로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사람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찾아주신  모든분들께  평강이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며,  행복한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샬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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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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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무릇 경건한 자는 모두 주님께 기도하나이다”라는 말씀에 나온다. 은혜가 그 속에 부어지면 기도도 넘쳐나는 법이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 109:4). 이 말은 히브리어로 “나는 기도하다”라는 뜻이다. 기도와 나는 하나이다. 기도는 하늘 나라에 다다르는 영혼의 교통이다. 하나님은 그의 영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는 기도로 그에게 나아간다.

 


  칼리굴라는 주피터의 귀에 속삭이는 자신의 상을 카피톨 신전에 세워 놓았다. 기도는 하나님의 귀에 속삭이는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처럼,영혼도 그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은혜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바울은 회심하자마자 기도를 했다(행 9:11). 바울은 분명, 과거에 바리새인일 때도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도는 피상적이었고 관습적이었다. 그런데 그 영혼에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자, 보라, 그가 진정으로 기도한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매일 기도의 산에 오른다. 그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게의 문을 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연다. 우리는 집에서 좋은 향내가 나게 한다. 경건한 사람의 집은 “향내가 나는 집”이다. 그는 기도의 향내를 낸다. 그는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는 어떠한 일도 시작하지 않는다. 스키피오는 반드시 먼저 카피톨 신전에 올라가서 예배를 한 후에 원로원 건물에 들어갔다. 경건한 사람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그는 하나님의 허락과 하나님의 축복을 구한다. 헬라인들은 신탁으로 신의 뜻을 구했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창 24:12; 삼상 23:3,4). 진정한 신자는 거룩한 절규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하늘로 쏘아올린다.

 

   - 토마스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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