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 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 로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중국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선배가 이 청년의 복잡한 마음을 알고는 세 가지 질문을 던 졌습니다.
첫째,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네가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청년은 이 질문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에, 그리고 사업에 적용했습니 다. 훗날 많은 위기를 딛고 큰 성공을 거둔 이 청년은 한 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또한 많은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며 강연을 다녔는데, 그때마 다 똑같이 이 질문을 소개하며 ‘일생동안 가져야 할 고민’이라고 덧붙였 습니다.
세계최고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의 이야기 인데 특히 그는 마지막 질문인 ‘버려야 할 것’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부족하다며 특히 강조했습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 다. 포기할 수도 있는 것 때문에 정작 원하고, 해야 할 것들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정말로 바라고 있다면 포기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을 과감히 정리하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 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홀가분한 마음과 생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을 위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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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우상이 될 수 있다.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신5:8,9)


아무리 믿음이 연약한 신자라도 영혼은커녕 생명도 없는 돌, 철, 나무 같은 조각상이 우주만물과 인생만사를 주관한다고는 결코 믿지 않습니다. 그럼 이 둘째 계명은 시효가 초과되어 현대인에겐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세대 모든 신자에게 영원한 진리가 됩니다. 본문은 오늘날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씀이 됩니다.

아마도 고대인들도 깎아 만든 우상 자체가 신이라고 여길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신들을 인간 스스로 만들어 각기 의미와 능력을 부여했던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고안해낸 신들의 특성을 적절히 상징, 전시, 대체할 수 있는 형상(image)을 만든 것입니다. 허공에다 대고 절하려니 어색하고 경건하지 않은 것 같아 가시적 형체를 만들고서 그에 적합한 온갖 예배 절차를 제정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상숭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고안해낸 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둘째 계명이 단순히 형상을 만들어 절하지 말라는 종교 형식적 차원이 아닙니다.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상을 만든 인간의 의도가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자기 만족을 자기 방식대로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하나님과 전혀 무관할 뿐 아니라 당신께서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도 의식하든 못하든 동일한 잘못을 수없이 범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 안전, 만족, 행복 등을 보장해주는 대상을 한분 하나님 외에서 추구하려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돈, 권력, 명예, 외모, 건강, 학벌, 심지어 자식의 성공 등이 삶의 유일한 목표 내지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으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탐심이 우상숭배라는(골3:5) 말씀의 뜻도 그런 것들이 인생사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탐하여 하나님보다 더 우선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서 그것들을 받았어도 자신의 중심이 여전히 자기 유익만 위한다면 탐심인 것입니다. 역으로 따지면 오히려 하나님마저 우상 숭배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니 실제로 교회 안에서 비일비재한데도 미처 모르고 지나칩니다.

공산주의 이론을 발안한 칼 마르크스는 독일계 유대인이었습니다. 경건하고도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 배경에서 자랐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루터교인이 많은 도시로 이사하자 부자 상인이었던 아버지가 순전히 사업적 유익을 도모하고자 루터파 개신교로 개종해버렸습니다. 한참 감수성이 강하고 종교적 관심이 많던 시기였던지라 아들 마르크스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결국 그는 영국으로 이주하여서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라고 비꼬면서 ‘공산당선언’을 집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유대교와 루터교가 여호와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은 동일하게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선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에 전혀 다른 종교입니다. 말하자면 다른 신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계명을 순전하게 해석 적용하면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오직 “자기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다른 신을 스스로 만들어 믿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그분을 우상숭배한 셈입니다. 마침 본문 말씀대로 부모의 죄로, 사실은 그 본을 받아서 하나님을 배역하는 같은 죄를 범하였기에 당연히 기다리는 것은 엄중한 심판뿐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아버지 같은 신자가 과연 한둘에 불과할까요? 예컨대 한국에선 전혀 믿음이 없다가 이민 와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는 중요 이유가 바로 사업상 정보와 유익을 얻기 위한 것 아닙니까?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해 죽이셔서 죄에서 구원해준 하나님을 오직 자기 편의만을 위하여 자기 방식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은 그나마 기독교에 관해 아직 잘 몰랐기에 충분히 이해해줄 소지가 있습니다. 또 그런 경위로도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한국 있었으면 전혀 예수 믿지 않았을 사람인데도 외롭고 고달프며 스트레스 많은 이국땅에서 기댈 곳이란 하나님뿐임을 절감케 되어서 진정으로 겸비해집니다. 또 주일설교와 성경공부 같은 교회 활동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면 거듭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정작 문제는 오래된 신자들입니다. 분명 성령으로 거듭났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현실적으로 힘들면, 세상과 교회에서 상처 받아 자존심 상하면, 자식이 자기 뜻대로 자라주지 않으면, 배우자가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으면, 등등의 핑계로 오직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분은 반드시 내가 기대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고안해 낸 신을 믿습니다. 그 중심은 분명 하나님을 믿으나 결과적으로 그분을 우상으로 격하시키는 잘못을 범하는 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사26:8-10)

여호와의 이름을 사모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어떤 크고 위엄이 넘치는 형상이든, 아무리 경건하고 엄숙하며 감동적인 형식과 절차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영혼으로 그 이름 즉,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나를 지금 어떻게 대하시는지 철저히 깨달아서 그에 온당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죄에서 구원 받은 바탕 위에서 그분과 거룩한 교제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당신만 섬기라는 첫 계명을 주시기 전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6절)고 했습니다. 당신을 당신 본래의 성품과 권능대로 온전히 알면 자연히 경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 외에 다른 대상을 찾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고안해내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악인은 은총을 입지만 의를 배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즉 심판의 길에서 그분을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을 오직 자기를 위하여 찾는다는 것입니다. 또 전혀 찾지 않고 오직 세상의 유익만 추구해도 하나님은 당장 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의를 결코 입을 수 없기에 가만 두어도 궁극적 심판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의인은 어떠합니까? 비록 세상에선 은총을 입지 못하더라도 그분의 의를 배우고 그분의 위엄을 높여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나를 위하여 그분을 내 방식대로 디자인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의를 위하여서 내가 어떤 모습이 되던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요컨대 하나님마저 우상으로 전락시키는 잘못을 온전히 제거해 내는 것이 참되고 성숙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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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사도행전 20장 24절

TV 진행자로 유명한 오프라 게일 윈프리를 아십니까.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성공한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1954년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열아홉 살의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고, 이후 어머니의 남자친구나 친척 아저씨 등에게 여러 차례 성적학대를 받았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결국 교회로 도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차고에서 기거했는데, 그는 시간만 있으면 성경을 보고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명’(mission)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한 강연에서 ‘사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첫째, 남보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다른 모든 여인들 위에 왕후로 우뚝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여인들보다 더 많이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축복을 넘어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안주하려는 에스더의 유혹의 끊어버리고 왕후의 위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누구도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당해 본 사람만이 고통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이 시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고통을 당했던 오프라 윈프리가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경험한 아픔은 큰 고통이었지만, 그 고통이 이제는 무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남보다 가슴 설레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2005년 예장 통합 총회 대표 5명과 함께 이북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방북 허가를 받아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밀가루 600t을 전달했습니다. 북한의 모습은 비참했습니다. 이런 북한을 우리가 도울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 분명했습니다. 그 일은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명이었습니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가졌던 거룩한 부담감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고통 받는 노예들을 해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힘든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거룩한 짐을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노예해방이란 위대한 일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다섯째, 교육과 경험이 사명입니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경험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다른 사람보다 더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이고, 그 분야에 유능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육과 경험은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도구를 하나 더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했다면, 그래서 좀더 유능한 사람이 됐다면, 우리는 그것을 축복을 넘어 사명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명을 이루는 생을 살았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축복과 누림을 위한 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도구로서 쓰임 받는 사명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정동호 목사(남해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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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으로 삽시다
 

사도행전 20장 22∼28절

지구상에는 50만 종류의 식물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식물 중 쓸모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야생종자 전문가인 강병화 고려대 교수는 “세상에는 잡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식물은 나름대로 사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잡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것이 꼭 있어야 할 풀입니다.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한낱 미물도 그러할진대 주님의 사람인 크리스천에게는 더 큰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본문에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주신 명령이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내가 고안해내고 명상해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이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결박하기 위해 가다가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너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때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일평생 달려갔습니다. 그것이 삶의 목표였으며, 사명이 된 것입니다. 바울이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을 ‘은혜의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은혜의 복음이란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종으로 끌려가 영원토록 고통을 당할 인간을 구하기 위해 만드신 하나님의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독생자를 보내시고 내가 당할 벌을 대신한 고귀한 희생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의 복음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인간 편에서는 은혜로 받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희생입니다. 우리는 거저 은혜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바울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으로 깨닫는 사람도 있고 지금 깨닫는 사람도 있고, 아직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합시다. 그래서 그 사명을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명에 헌신하는 성도들이 돼야 합니다. 복음 전파의 거룩한 사명이 바울에게만 주신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사명임을 알고 거룩한 목표를 향해 일평생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변충진 인천 늘푸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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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 그리스도인의 영적 리더십   
  

 

마태복음 10장 38∼42절

지도자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잘못 세워지면 공동체는 파탄이 납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잘 세워지면 흥왕케 됩니다. 그래서 요즘 경영일선에서는 지도력에 대한 연구 열기가 대단합니다.

지도력에 대한 이론은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요 이론 두 개만 살펴보면, 1980년대 이전의 ‘특성이론’이 있습니다. 능력(지능, 언어적 유창성, 판단력), 성취도(학력, 왕성한 기력), 책임(신뢰성, 의욕, 자신감), 참여(사회성, 적응력, 유머), 지위(사회경제적 지위, 평판) 등 5가지 특성을 갖춰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꼭 이런 특성을 지녀야만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최근에 많이 언급되는 ‘변혁적 섬김의 지도력’입니다. 지도자 당사자와 공동체 속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변화되어 가며 서로를 섬기는 지도력을 말합니다. 바로 이 섬김의 지도력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 단어에 주목해 봅시다.

첫 번째 단어는 ‘십자가’(38절)입니다. 섬김의 지도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으로 인해 십자가는 생명과 희생과 사명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몇 년 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을 선정했습니다. 당시 1위는 미국의 여성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였습니다. 그녀의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에는 자신의 4가지 인생철학이 등장합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인생 자체를 사명으로 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명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상’(41·42절)입니다. 상이란 우리가 잘한 행동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 칭찬해주고 격려하며 물질적, 명예적 보상을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변을 밝고 따뜻하고 명랑하게 바꾸는 모습이 있어야겠습니다. 비평과 비난, 비아냥 등의 부정적 모습이 아니라 칭찬, 감사의 표현과 함께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습이 이 시대 ‘상’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단어는 ‘작은 자’(42절)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작은 자를 보살피고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큰 자들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넘쳐흐릅니다. 그들의 권력, 재력, 정치력으로 인한 쏠림 현상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작은 자들에 대한 섬김을 요구하십니다. 최근 섬김의 지도력에서 주창하는 핵심 정신이 있습니다. ‘들어주기(listening)’ ‘공감하기(empathy)’ ‘고쳐주기(healing)’ ‘시중들기(stewardship)’ ‘공동체 건설하기(building community)’ 등입니다. 사명감을 갖고 섬기며 상을 주는 지도력으로 우리 모두 무장하기를 바랍니다.

김치성 목사 (예장통합 교육자원부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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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 열정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일이란 소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선교지입니다. 그런데 어느 직장이든지 그 특성상 인적·물적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직장은 직원들이 쉽게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없이 매끄럽게 일을 잘하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열정은 사라지고 업무 형식만 강조되어 전형적인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곳이 직장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곳에서는 어떤 변화와 성숙의 역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열정으로 뜨거워야 합니다. 가슴에 불을 담고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소명으로 삼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그 속에 뭔가 있습니다. 눈빛이나 표정만 보아도, 말만 들어도 뭔가 다릅니다. 반면 열정을 잃어버리면 겉은 뜨거워 보일지 모르나 내적으로는 식게 됩니다. 주님께서 자녀를 삼아 주신 믿음의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뜨거운 열정이 끓어올라야 정상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 3장 14절부터 22절까지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열정을 상실해 미지근해지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스스로 합리화하고 현 상태에 만족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열정이 식은 사람은 자신이 식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정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정을 원하십니다. 특히 오래 근무한 직원일수록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장기 근속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10∼20년은 갑니다. 축복받은 경우에는 30년 이상을 재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크리스천 직원이라면 10년을 근무하든 20년, 30년을 근무하든 상관없이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자신이 감당하는 업무가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 크리스천 직원은 가슴에 불을 담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사실 뜨거운 사람은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조금만 감흥이 없어도 내 마음이 식은 건 아닌지 염려합니다. 뜨거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조금만 식어도 걱정합니다. 그래서 항상 겸손하게 기도하며 자신의 업무를 점검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불같은 열정으로 내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합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수고란 적당히 하는 수고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는 힘껏 자기 자신을 내던져서 헌신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던지면서 일하는 크리스천 직원은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업무와 관련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께서 열정으로 일하는 크리스천 직원들을 통해 환경과 사람을 바꾸어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열정을 회복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준우 목사(강남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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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 하나님 말씀은 영혼의 양식... 

 

인간에게 있는 영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창조물입니다. 영혼은 하나님의 지으신 살과 뼈가 없는 영물(靈物)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심령(영혼)은 영적인 생명체로서 육체라는 흙도가니 속에 담겨 있는 독립된 생명체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영생할 수 있는 말씀인 생명의 떡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의 영적 창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양식(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만 합니다. 육체를 위한 양식은 대용식도 있고 인스턴트식품도 있어 그때그때 편리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다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양식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인간의 영혼은 허약해지고 허탈 상태에 빠지게 돼 마침내 병들게 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 6:48)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살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우리 영혼에게 꼭 필요한 양식과 음료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대신하는 대용식이나 인스턴트식품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풍성하게 있어야 하고 성령은 항상 충만하게 내주하여 계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거기서 꼭 필요한 양식으로 강건함과 거룩해지지 못하면 그 영혼은 병약해져서 육체의 소욕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악령(惡靈)들의 침범을 당하게 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그뿐만이 아닙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5∼8)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공급받지 못하면 창조주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됩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어서 값을 치르심으로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심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게 됩니다. 따라서 영혼의 양식을 풍족하게 먹기 위한 영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육체도 음식을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듯 인간의 영혼도 하나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풍족하게 먹어야 영혼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 영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예배의 현장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불순종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영혼이 강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영혼에 양식과 음료가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임광선 목사(인천 영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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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집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중견 건축회사에 입사한 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혼신을 다해서 일에 몰두했다. 그가 신입 사원의 틀을 벗어날 즈음에 사장은 그를 현장 감독이라는 중책에 앉혔고, 주위에선 너무 빠른 승진이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그는 사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

어느새 그는 중역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하루는 사장이 그를 불러 10억원이나 되는 돈을 주면서 언덕 위에 살기 좋은 집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부터 공사비를 모두 준 것만 보아도 그에 대한 사장의 신뢰를 알 수 있었다.

1년간은 최고의 자재를 가지고 최고의 기술진을 고용해서 지었다. 그러나 점점 물질에 대한 유혹이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미 공사비를 다 받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기만 하면 나머지 돈은 자신이 가질 수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2년째부터 그는 적당한 가격의 자재를 고르고, 2급 기술자들을 고용했다. 마침내 집은 완성되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멋진 집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머니엔 5억원이나 되는 돈이 남아 있었다.

집 열쇠를 사장에게 전달하던 날이었다. 사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수고했네. 자네는 우리 회사를 위해 젊음을 바쳤어. 그 수고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이 열쇠를 자네에게 주겠네.”

그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집이 부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 집에 들어가서 살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나자 집 천장에서는 비가 새기 시작했고, 벽은 갈라졌다. 후회하였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수능 고개’를 이제 겨우 넘었다. 전국에 대학을 가기 위해 애를 쓴 모든 자녀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인생은 지금부터다.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열심히 인생의 집을 지어 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집을 건축하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의 인생집만을 건축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의 집을 건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약성경에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유 1:20)

하루하루 인생을 건축해 나가는 일은 우리에게 위탁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교사도 부모도 대신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 우리가 들어가는 집처럼 인생집도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첫째, 기초공사가 중요하다. 인생 기초공사를 위해서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야 한다. 내가 누구이며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길은 성경 속에 나와 있다.

둘째, 인생집의 기초공사 후에는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야 한다. 이는 어떻게 삶을 경영해야 하는지와 연관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좋은 스승은 사람일 수도 있고 좋은 책일 수도 있다. 인생집에 기둥과 지붕을 얹는 일은 자기 주체성에 대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집에 대한 깊은 고뇌와 행동이 수반된 실천을 하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다.

- 김도일 교수 (장신대 기독교교육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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