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이기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주님께 찬양드려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이 다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믿어요 이제는 죽는 것도 무섭지 않아요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예배를 마치고 계란을 가지고 나가 나누어 주면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어요"라고 외치겠어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꼭 다시 사신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린이 주일 학교] 헌금기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에요 집도, 부모님도, 음식도, 옷도...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감사의 마음으로 헌금을 드려요 비록 많지는 않아도 이 헌금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잘 사용하게 해 주세요 혹시 돈이 없어서 못 드리거나 헌금을 가져왔으면서도 아까워서 드리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면 다음 주엔 꼭 드릴 수 있게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에게 지혜와 건강도 허락해 주세요
요양 병원과 요양원 차이 1. 정의 요양 병원과 요양원은 노인 및 장애인들에게 특별한 관리와 돌봄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그러나 이 둘은 목적과 서비스의 성격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2. 서비스 범위 요양 병원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 전문가들이 상주하며, 병원의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의료 진단, 약물 처방, 치료, 수술 등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또한,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의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반면, 요양원은 간호사와 간병인 등의 보호자들이 상주하며, 식사 제공, 목욕 도움, 세탁 등의 생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필요한 경우 의료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 서비스도 받을 수 있습니다.
3. 입소 기준 요양 병원은 환자의 의료적인 상태를 기준으로 입소가 결정됩니다. 즉, 질병이나 상태로 인해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입소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요양원은 주로 노인 또는 장애인들의 요양과 일상 생활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 입소가 이루어집니다. 의료적인 상태보다는 생활 자체를 도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기간 요양 병원은 의료적인 치료와 감독이 필요한 기간 동안 환자가 입소하여 치료를 받은 후 퇴소합니다. 이는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양한 기간이 소요됩니다. 한편, 요양원은 장기적인 생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오랜 기간 동안 머물 수 있으며, 일상적인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5. 의료 서비스 요양 병원은 의료 전문가들이 상주하여 진단, 치료, 감독, 수술 등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물 처방 및 투약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요양원은 의료 서비스보다는 간호, 재활, 식사 지원 등의 생활 서비스에 중점을 둡니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 의료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6. 비용 요양 병원은 의료 서비스와 병원 시설을 제공하기 때문에 비용이 교적으로 높습니다. 입원 기간, 치료 방법 등에 따라 비용이 달라집니다. 요양원은 생활 지원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의료 비용보다는 비교적 저렴합니다. 그러나 요양원에서도 서비스 범위와 기간에 따라 비용이 달라집니다.
요약하자면, 요양 병원과 요양원은 목적과 서비스 범위, 입소 기준, 기간, 의료 서비스, 그리고 비용 측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요양 병원은 의료 서비스와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입소하여 의료적인 관리를 제공하는 반면, 요양원은 일상 생활에 지원이 필요한 노인 및 장애인들에게 입소하여 생활 도움을 제공합니다. 출처 요셉창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엉뚱한 대답으로 예수를 전할 때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단기선교사로 해외에 나갔을 때나 우정전도를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12가지가 무엇이고,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알아보고 함께 훈련해 봅시다. 오늘은 3가지 질문을 다루어 봅시다.
1강. 창조와 타락에 대한 질문
1. 신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신이 있으면 보여주세요.
< 답변> 어떤 어른이 교회에서 나오는 아이에게 “얘야, 너 교회에 다니니? 그럼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 2개만 보여주면 내가 사탕 두 봉지 줄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아저씨,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 5개만 보여주면 제가 사탕 5봉지 드릴께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인가요? 전기, 바람, 생각 등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없는 것인가요? 있습니다. 하나님도 계십니다.
그럼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집마다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높은 빌딩이라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하늘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누구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만물을 통해 이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2. 왜 기독교는 모든 선진국들이 인정하는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나요? < 답변>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다음 이렇게 축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기는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라”.
그 뒤로 인류는 결혼을 통해 생육하면서 가정이 탄생됐고, 번성하면서 남녀가 함께 조화롭게 어울리는 사회와 국가가 탄생됐습니다. 그런데 동성애는 가정이 탄생되지도 않고, 남녀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조직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생각지 않은 많은 질병과 사회적 혼란을 일으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생활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나요?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타락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닐까요?
< 답변> 하나님은 사람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프라이드 치킨을 잘 튀기는 로봇이나 이미 프로그램화된 기계로부터의 사랑을 원하지 않고, 사람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격적인 사랑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사람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사람도 싫어하는 사랑을 원하셨기에, 선악과를 만드셨고 먹지 말라는 ‘선택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절대 기준으로 정해주신 좋은 것대로 다스리는 것이 형통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줄 알고 믿고 다스리길 원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싫어하는 것은 십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이죠.
반대로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편 1편입니다. 정직하게 내게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심고 거두고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즉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알고 믿고 대답한다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 차서 기뻐하고 즐겁게 사는 전도자로 바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축복받고 축복을 전하는 21세기 선교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열왕기상 8:20-60을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왕상8:20),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고"(왕상8:21)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솔로몬의 대표기도(공중기도)를 볼 수 있다.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있고(왕상8:22-23), 이어서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에 대한 확신" 곧 "말씀의 확신"이 있고(8:24-26),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하는 "기도와 간구"가 있고(8:27-29), "회개와 용서와 사죄의 은총과 사유하심"에 대한 간구가 있으며(8:30-40), "중보기도"(8:41-53)와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축복기도"(8:55-60)가 있다.
솔로몬의 대표기도의 내용을 보면:
1) 하나님에 대한 찬양,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3) 회개와 사죄에 대한 은총, 4) 기도와 간구 5) 중보기도 그리고 6) 축복기도로 되어있다.
솔로몬의 기도는 구체적으로 감사의 구절은 별도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기도의 전체적인 내용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뜻을 담고 있다(8:27, 53, 61). 이와 같이 볼 때에 솔로몬도 일반적인 기도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공중기도의 다른 예를 살펴보면,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드린 공중 기도가 있다.
"12사도 중 결원을 보충하기 위하여 드린 기도"(행1:24-25), "안수집사를 세우기 위하여 드린 기도"(행6:6) 등 여러 형태의 대표기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표기도를 드릴 때에 주의하여야 할 몇 가지사항을 살펴보면:
① 대표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회중을 대표하는 기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② 대표기도 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회개문제, 자신의 가정문제, 자신의 감정에 의한 문제 등 기도자의 개인적인 문제를 공중기도에 언급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기도할 자격"이 없다든지, "기도를 잘 할 줄 모른다"든지 그러한 말도 기도의 내용에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③ 만일 대표기도를 할 때에 기도자의 개인의 삶에, 또는 개인의 감정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 문제가 온전히 해결 될 때 가지 대표기도를 삼가 하는 것이 좋다.
④ 대표기도 자는 먼저 깊은 회개기도와 성령 충만함(엡 5:18)을 확인하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
⑤ 대표기도 자는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회중의 죄와 감사와 간구와 도고를 도맡아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한다.
⑥ 대표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⑦ 또한 대표기도는 설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⑧ 대표기도는 상황과 경우에 따라 그 내용을 다르게 기도하여야 하므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기도해야 한다. 주일대표기도, 헌금기도, 저녁 찬양예배, 수요성경공부, 금요철야기도, 식사기도 등
⑨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니므로 너무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⑩ 대표기도를 드릴 때에 기도문을 작성하여 가지고 나와서 기도를 읽는 예를 볼 수 있는데,
(가) 가장 좋은 대표기도는 "작성된 기도문"을 읽는 것보다 직접 아뢰는 기도가 더욱 좋다.
(나) 그러나 직접 아뢰는 기도가 힘들 때에는 기도문을 작성하여 읽는 것도 무방한 줄 안다.
(다) 다만 대표 기도를 "작성된 기도문"을 읽을 때에는 아래의 사항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믿음에는 여러종류가 있다. 큰 믿음, 작은 믿음, 감당할 수 없는믿음, 태산을 옮기는 믿음등등이다. 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난제)를 말한다. 하지만 기도는 태산같은 당신 앞에 놓인 태산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1.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라.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 (시46:1-3)
2.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 (약1:5-7)
3. 하나님 앞에 큰 믿음을 고백하라
"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 (시81:10-12)
4.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확신을 소유하라
"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 니라 " (마21:22)
5.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믿음을 가지고 실천하라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 (마21:21)
"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 (약2:18-22)
맥추 감사절은 구약의 3대 절기의 하나인 맥추절을 계승한 절기이다. 유대인들의 추수 감사절이었던 맥추절은 히브리 원어로는 '하그 하카츠르'이며 '거두어 수확하는 절기'란 뜻을 가지고 있다.
맥추절은 관련 명칭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출 23:16) 후대에는 일반적으로 칠칠절, 오순절 등으로 불리워졌다. 칠칠절(七七節)은 이때가 보리 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초실절(初實節)로부터 시작하여 7주간의 곡물 추수기가 끝난 뒤의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오순절(五旬節) 또한 추수기와 관계된 말로, 이 날이 초실절 다음날로부터 계산하여 제 50일째 되는 날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그 외에 축제일 자체보다는 맥추절의 의식에 초점을 맞춘 '성회'(聖會)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유월절, 초막절과 같이 이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회로 모였음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맥추절은 한 해의 수확을 끝낸 기쁨 속에서 그 수확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께 기뻐하며 감사를 드린 축제였다. 동시에 인생의 모든 것은 오직 여호와께로만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하는 심정으로 일상의 모든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재무장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에 현대의 우리도 맥추 감사절을 맞을 때마다 감사의 축제속에서 여호와 제일주의로 신앙 재무장을 새로이 하여야 하겠다. 특히 단순 농경 사회가 아닌 현대 사회의 우리는 나는 지금 어떤 사업을 하여 내 인생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고 있는지, 또한 거기서 얼마큼 추수를 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다. 또 육식을 위한 추수와 함께 영혼의 추수 곧 전도 사역에서도 얼마만한 수확을 얻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다.
1. 시기
맥추 감사절은 곡물을 수확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추수 감사절의 하나이다. 즉 맥추 감사절은 보리와 모맥 추수 직후에 거행되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절기인 칠칠절, 즉 오순절과 관련을 갖는 날이다. 오순절은 본격적인 추수를 시작하기 전 곡식의 첫 이삭 한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유월절 후 첫 안식일 그 다음날인 초실절 절기 후 50일째 되는 날로, 유대의 종교력으로 이 날은 7주전에 시작한 곡물 추수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로 엄숙한 가운데 하루 동안만 행해졌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오순절은 성령 강림의 의미로 교회에서 더 크게 기념되어 진다. 그리고 곡물 수확에 관련된 감사절은 11월의 추수 감사절에 더 성대하게 기념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쌀 추수에 맞추어 지켜지는 추수감사절과 더불어 보리 수확과 관계되는 맥추감사절 역시 계속 지켜져 오고 있다.
이러한 맥추 감사절은 한해의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하는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날은 전반기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한편 후반기에도 역시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기원을 하여야 한다.
2. 유래 창조 시대의 아담과 하와는 수고하지 않고도 에덴 동산의 풍족한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자신이 수고한 대가로서 땅의 소산을 먹게 되었다. 인류가 씨를 뿌리고 수고함으로 수확을 얻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린 것은 아담과 하와의 직속 자손인 가인과 아벨의 제사 기사(창 4:3,4)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때 가인은 땅에서 얻은 곡물을,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를 드렸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추수한 산물과 그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는 풍습은 아주 오랜 전부터 인류에게 있어 왔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제가 하나의 절기로 자리를 잡은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유대인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곡물 추수 감사제를 맥추절이라고 하여 하나의 절기로 기념하였다. 애굽을 떠나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인에 정착하여 그 땅의 소산을 먹게 된 것은 그들을 돌보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거둔 곡물의 처음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렸다(신 26:1-11). 이렇게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땅에서 생산된 소산물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율법에 기초한 것이다. 이처럼 백성들이 드린 곡식단은 제사장에 의해 하나님께 바쳐졌는데, 바쳐진 제물의 일부는 제단에 드려졌고 그 나머지는 제자상의 몫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이 절기가 유대의 전통 절기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연례적인 순례 축제로 정착된 것은 그보다 뒤인 솔로몬 시대였다(대하 12-14장). 솔로몬은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곳에서 번제를 드렸으며, 모세가 명한 규례대로 무교절, 초막절과 함께 칠칠절, 즉 맥추절을 지켰다. 이에 따라 유대의 남자들은 이 절기에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도시의 경계까지 나와 있다가 예물을 드리기 위해 온 사람들이 이 도시의 경계에 이르면 그들을 성전으로 안내했다. 한편, 봉헌자들은 그들이 가져온 첫 열매의 예물을 바칠 때 신 26:3-10의 말씀을 낭송했다.
이러한 형태의 맥추절은 신약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교회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인 오순절 성령 강림후, 이날은 성령 강림일로 기념하게 되었고('성령 강림절' 참조), 교회에 있어 맥추절의 의미는 약화되었다. 그러나 추수로 인한 감사는 민간 차원에서 계속해서 드려졌다. 그러던 것이 미국에서는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에 의해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부각되면서 추수 감사절이란 명칭으로 바꾸어져 지켜지게 되었다('추수 감사절' 참조).
우리 나라에서도 일반적으로 추수 감사 행사를 미국에서 유래한 감사절에 근거해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교계 일부에서는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추수 감사절을 기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우리 고유의 민속 절기인 추석을 추수 감사절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맥추 감사절은 이모작을 하였던 우리 나라 에서는 보리 수확을 기념하는 절기로 정착되어 오늘날까지 계속 지켜져 오고 있다.
3. 풍습
(1) 이스라엘의 풍습
유대인들은 밀추수가 끝난 직후 풍성한 수확을 기념하는 맥추절에 새로 추수한 첫 곡물을 고운 가루로 빻아 그 가루에 누룩을 넣어 만든 떡 두덩이를 요제(搖祭), 즉 흔들어 드리는 제사로 드렸다(레 23:15-17).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전통 절기에 드려졌던 이 두덩이의 떡을 상징하는 유제(乳劑) 음식과 고기를 먹는다. 한편 이때 제단에는 떡 두덩이와 함께 어린 숫양 두 마리가 화목제물로 드려졌는데, 화목제는 하나님과 제물을 드리는 사람 사이의 화목과 교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 난 나머지는 제사장과 함께 봉헌자가 먹을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제가 드려지는 이때에는 성전 봉사자인 레위인, 초대된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이 함께 공동 식사를 하였는데, 이는 미국에서 첫 번째 추수 감사절에 청교도와 인디언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예식이 끝난 후에는 예식에 참가했던 이스라엘 남자들이 할렐(시 113-118편)을 부르고 춤을 추는 풍습이 있었다.
추수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그것은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하여 밭 모퉁이 곡식을 거두지 않으며 나무의 열매도 다 거두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은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한 형제라는 공동체 의식에 기초한 것으로서, 가난한 자들을 자연스럽게 구제하는 방법이 되었다(레 23:22).
한편 이때 이스라엘에서는 고대 추수 광경을 배경으로 기록된 룻기서가 읽혀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성전파괴 후에는 시내산 율법 수여를 기념하는 의미가 부여되면서 토라, 율법서등 율법과 관계된 구약 성서 등이 읽히거나 낭독되었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 이스라엘 사회에서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다.
(2) 세계 일반 교회의 풍습
맥추 감사절이 이스라엘의 전통 절기의 하나인 맥추절로부터 유래하기는 하였지만, 곡물 수확 후 감사제를 드리는 것은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을 아니었다. 농경을 하는 모든 나라에서는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수확으로 인한 감사제를 드렸다.
이러한 풍습은 중세 교회 시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독교와 접목되어 추수 감사절로 이어지게 되었다. 중세 유럽의 교회에서는 예수의 승천일 3일 전에 추수제의 한 형태로 풍년 기원제를 드렸으며, 영국에서도 라마스(Lamas)라 하여 8월 1일에 수확 감사 예배를 드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추석이라 하여 음력 8월 15일을 민속 전통의 추수 감사일로 기념하고 있다. 추석은 일년 농사를 거의 마무리 지은 때로, 이날에는 조상을 생각하며 성묘를 하고, 햇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8월 대보름 달을 구경하는 등 다양한 풍습이 행해졌다. 또한 오늘날 교회의 추수 감사절을 유래케 한 미국에서는 이날 칠면조 고기 등 추수 감사절 음식을 먹으며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린다.
0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시92:12) 0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0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0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0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 1:12) 0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 0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3∼14) 0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0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3: 18)
▣ 성숙, 성장에 관한 금언
0 성숙의 표시 중 하나는 의견이 달라도 불쾌해하지 않는 것이다.(척 스윈들) 0 성장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뉴우먼) 0 늙어서 성장하는 것은 손톱과 탐욕뿐이다.(미국 격언) 부흥이 일어나는 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쓴「부흥」이라는 책에 보면 이삭의 부흥에 대해 묘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파묻어 버린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는 데서부터 새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우물 속에는 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메운 쓰레기 때문에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때 이삭은 지혜롭게도 다른 곳으로 우물을 찾아다니지 않고 아버지 시대에 파놨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러자 거기서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역사상 부흥의 비결은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되살아났을 때, 기도했을 때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 사이에 회개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흥했습니다. 21세기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히 선포될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토설하며 자복할 때 부흥은 찾아옵니다. 조상들이 가졌던 믿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죄악들을 제거하는 것, 이것이 부흥의 선결조건입니다. - 김정호 목사
칭찬을 통한 성숙
1895년 미국 볼티미어 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베이브루스는 소년 시절, 아무도 감당을 못할 정도로 난폭한 소년이었다. 부모조차 그를 불량 청소년 교육기관인 세인트 메리 공예학교에 넣을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그때 메시어스라는 선생이 없었다면 베이브는 영원한 낙오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는 반항으로 일관하는 베이브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는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아이구나. 단 한 가지 좋은 것만 제외하고는." "선생님, 거짓말하지 마세요. 나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죠?" "네가 없으면 학교 야구팀이 무척 곤란해지지 않겠니? 그러니 열심히 해봐." 어디를 가든 환영을 못 받던 베이브에게 메시어스 선생의 이 한 마디는 그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베이브는 자신에게 야구에 대한 재능과 함께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더 큰 행복을 발견해 갔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볼티모어 오리올즈의 선수로 은퇴할 때까지 714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대선수가 되었고, 메시어스 선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0 성숙의 표시 중 하나는 의견이 달라도 불쾌해하지 않는 것이다. - 척 스윈들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청년, 롱펠로
미국의 낭만파 시인인 롱펠로는 백발이 될 때까지 열심히 시를 쓰고 후학을 가르쳤다. 비록 머리칼은 하얗게 세었지만 또래의 친구들보다 훨씬 밝고 싱그러운 피부를 유지하며 활기찬 노년을 보냈다. 하루는 친구가 와서 비결을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정원에 서 있는 나무를 보게. 이제는 늙은 나무지. 그러나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네. 그것이 가능한 건 저 나무가 매일 조금이라도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그렇다네." 나이가 들어간다고 생각하기보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 롱펠로를 영원한 청년으로 살게 한 비결이었다. - 윤방부의《건강한 인생, 성공한 인생》중에서 -
* 죽은 나무는 자라지 않습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도 자라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나무, 생명력이 있는 것만 자라납니다. 성장이 멈췄다는 것은 생명력을 잃었음을 의미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성장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잘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장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영적인 성장
울산에 사는 김현석 군은 '열성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 박리증'이라는 조금 긴 이름의 병을 앓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온 몸에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짓무르면서 거의 성장을 멈추었습니다. 지금 20살이 되었지만 몸무게가 10Kg밖에 나가지 않아 겉으로 보기에는 4 살난 아이같습니다. 김군의 어머니는 노동으로 20년간 그의 병수발을 들었으며 이번에 이웃 주민들의 따스한 온정으로 귀한 성금을 전달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이에 걸맞는 성장을 하지 못하며 중병에 걸린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당장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병을 고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병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병은 가지가 그 나무에 붙어 있지 않아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병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면 영적인 열매는 당연히 열리지 않습니다. 주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 기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아 많은 과실을 맺게 하소서.
▣ 영적성숙
이 세상에는 귀중한 것 치고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어떤 경기에서 이기려면 모든 기술을 완전히 익히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훈련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숙련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쉽게 하여 마치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바친 수고와 노력의 대가이다. 천재란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무서울 정도로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영적 성숙도 우리의 노력 없이는 절대로 성숙하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대가없는 영적 성숙을 바란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식품 건강기구가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는 범사에 형통하고 강건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엡4:15). 여러분의 영적 상태가 건강해지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 영적 성숙의 목표
1960년대 유명한 복음주의자이며 교회의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한 토저 목사는 오늘날의 교회에 세 가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믿는 자가 성장하지 않고 항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으며 다만 살만 찐다고 합니다. 둘째는, 믿는 자가 교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오직 참관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믿는 자가 서로 일치되지 않고 분열과 다툼만 일삼는 것입니다. 토저 목사는 이것을 오늘날 교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알 때’만이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나아갈 방향을 알아야 하며, 나아가야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고자 하시는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줄 알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세워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초점을 그리스도에게만 고정시킬 때 가능합니다. 이것은 우리 중의 어느 특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를 알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께서 주시는 성장의 길, 즉 은혜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장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영적 성장의 기반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 홍성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을 도우라
자녀의 영성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부모의 목표는 자녀들이 부모를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의존하도록 독립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부모가 그리스도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그 주요한 방법 중 하나다. 우리 아버지는 그리스도와 역동적인 관계를 가지고 계셨고, 우리에게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이셨다. 그림처럼 생생히 기억되는 한 가지는 아버지가 매일 아침 방에 앉아 경건의 시간을 갖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성경책, 성경공부 교재, 경건의 시간을 위한 교재 등을 펴놓고 읽으셨다.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아버지가 매일 아침 묵상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말이나 휴일같이 늦게 일어날 때도 아버지는 거기에 계셨다. 몇 년 뒤, 나는 아버지가 일부러 내가 일어나면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을 보게 하신 사실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내게는 아버지가 매일 아침 하나님과 만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님이 아버지께 얼마나 중요한 분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경건의 시간을 갖게 된 가장 큰 동기였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내 아이들도 내가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을 보고 경건의 시간을 갖게 되기 바란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 「자녀 양육 전쟁」/ 데이비드 클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