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정부'난민 입국금지' 무슬림 국가는 계속심사...

 

트럼프 행정부는 120일간의 난민중단 조치가 1024일자로 만료됨에 따라 앞으로 90일간 적용할 새로운 난민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AFP통신에 따르면 올 초 미 정부의 '()이민' 행정명령 가운데 하나로 마련된 난민 입국 금지 조치의 120일 시한이 이날 종료되었으나

미 시민권 및 이민서비스국은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11개 나라에 대해선 앞으로 90일간 입국 프로그램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미 이민국은 '고위험 지역' 11개 나라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로이터통신은 이집트·이란·이라크·리비아·말리·북한·소말리아·남수단·수단·시리아·예멘 등이 고위험 지역에 해당하며 이들 나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도 입국 금지 대상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1월말까지 극단의 심사 타겟으로 삼은 11개국에 대해 공표하지 않았으나 국무부 지침상 북한과 남수단 등 무슬림 다수국이 아닌 2개국과 이집트와 이란, 이라크, 리비아, 말리, 소말리아,

수단,시리아,예멘 등 무슬림 다수국 9개국, 그리고 팔레스타인 출신인 것으로 미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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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별] '알라신'만 같을뿐 문화-사고방식 다양

 

이슬람 세계는 알라신을 신봉하고 마호메트의 예언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다원적이고 복잡하다. 5대륙의 상이한 문화와 인종 수만큼 다양한 종교적·문화적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현대 무슬림들의 서방에 대한 증오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이것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이슬람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원한 이슬람은 13세기가 지난 후 중동은 물론, 북아프리카, 중앙·남아시아, 유럽에까지 진출해 있다. 정통 이슬람 국가가 중동에 많다면,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리비아 등은 중동에 비해 서구화, 개방화돼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정교일치의 전통을 거의 상실, ‘세속화한 이슬람 국가가 돼 있다.

 

같은 중동 국가들이라도 페르시아인의 이란과, 아랍인의 사우디아라비아는 인종간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 사우디나 쿠웨이트 같은 친미 국가도 있고,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미국과 원수지간인 나라도 있다.

 

이슬람 내부 갈등

 

종파적·문화적 차이로 이슬람은 내부 갈등을 겪는다. 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돼 갈등의 양상은 한층 복잡해진다. 2차 대전후 아랍권내 주도권을 놓고 이집트와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간 경쟁이 치열했다.

 

이스라엘 문제를 놓고도 아랍권은 강·온파로 나뉘어 있다. 수니파 왕국 사우디는 이란의 시아파 정권을 싫어하고, 이란은 시아파를 탄압하는 이라크의 수니파 정권에 적대적이다.

 

리비아와 시리아는 아랍권의 여론과 달리 독자적 노선을 고수하고 있고, 아랍의 가운데에 위치한 요르단은 동서를 넘나드는 외교력으로 주목 받았다. 또 사우디나 요르단 등 왕국은 이집트 등 공화제 국가와는 거리감을 느낀다.

 

서구 지배가 남긴 유럽 문화와 근대화를 수용한 나라와, 정통 이슬람을 고집하는 나라 사이의 갈등도 잠복해 있다. 정통 이슬람문화와 서구문화는 국가내에서도 충돌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침공에 맞서 아랍권이 단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구에 대한 불신·증오의 뿌리

 

이슬람이 갖는 서구에 대한 증오와 반감은 19세기 열강의 식민지가 되면서 시작됐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영국·프랑스 등 열강은 중동의 지정학적·경제적 중요성 때문에 서구 열강은 이슬람 세계를 수탈했고, 독립 움직임을 탄압했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정치와 종교가 일치되는 공동체의 부활을 줄기차게 추구했고, 일부는 급진주의, 과격행동으로 나타났다. 이런 개혁 성향의 이슬람 부흥운동을 서구인들은 이슬람 원리주의라고 불렀다.

 

2차 대전후 아랍권은 옛 영토을 회복하면서 독립했다. 독립후 석유를 무기화한 아랍권의 자원 민족주의는 서구 열강에 대한 보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가 물러난 자리에 미국이 대신 들어섰고, 이슬람의 눈에는 미국의 정책 역시 국익 우선으로 비쳤다. 반서방은 반미로 이어졌다. 그러나 나라마다 미국을 대하는 입장은 제각각이었다.

 

이슬람은 원래 관용의 종교,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였다는 지적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마호메트의 출현 이후 불과 100년만에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아닌 이민족·이문화에 대한 관용 때문이었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이슬람 혁명과 탈냉전의 충격

 

1960~70년대 아랍권은 주도권 싸움과 친미·친소 국가간 대립이 있었지만 대 이스라엘 전쟁에서는 단결하고 협조했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시아파 혁명,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사회주의권 붕괴를 계기로 중동 정세는 극도로 불안해졌다.

 

이란-이라크 전쟁(1981~88), 걸프전쟁(1991)은 권력 공백 상태에서 발생한 아랍권 내부의 충돌이었다. 아랍권은 분열됐고, 이들 전쟁에서 보여준 미국의 힘과 이중성은 아랍인에게 또 다른 불신과 상처를 남겼다는 지적이 많다.

 

1990년대 들어와 이슬람 과격단체들은 이런 미국을 상대로 폭탄테러 활동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이들도 이슬람의 전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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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 이슬람의 종말론-숨은이맘(Mahdism)

숨은 이맘, 알 마흐디

 

시아 이슬람의 큰 특징은 죽음의 종교라는 사실이다. 죽은 이맘들을 숭배하고, 그들의 무덤을 순례하며 추모함으로 자신의 신앙심을 표현한다. 가장 큰 종교적 절기가 후세인의 순교를 애통해 하며 불의에 대한 저항 정신을 기념하는 아슈라라는 절기일 뿐만 아니라, 시아 이슬람(열두 이맘파)의 종주국인 이란의 유명한 모스크는 대부분이 이맘의 무덤이거나 친인척의 무덤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무슬림들의 정파별 분포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시아 무슬림들은 이슬람 역사속에서 늘 박해 받는 소수파였다. 그들의 믿음과 종교적 관행들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늘 핍박의 개종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중재자 이맘의 무덤을 다니면서 자신들의 현실적 아픔과 동일한 핍박으로 죽은 예언자 혈통의 이맘의 아픔과 동일시하며 함께 애통해 하고 아파한다. 또한 신과 인간의 중재자인 그들을 섬기며 신성시 하는 것을 통해 신으로부터 복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를 구한다.

 

이 변화의 핵심은 숨겨진 마지막 12번째 이맘인 마흐디의 재출현이다. 이 재림 사상은 시아 이슬람에서 종말론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인도자라 불리는 무함마드 알-문타자르 (-마흐디)에 대한 역사는 신비롭고 기적적인 모습을 띤다. A.D 868년에 태어난 알-마흐디는 아버지이자 11대 이맘인 하산 알-아스카리가 자신이 7살 되던 해(A.D 874)에 죽으면서 12대 이맘으로 등극하고, 바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시아 무슬림들은 그가 현재 이라크 사마라에 있는 모스크 아래의 동굴에 스스로 숨었으며, 이 동굴은 밥 알-가이바 혹은 "은폐의 문"으로 불리는 문에 의해 봉인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곳 사마라의 모스크는 시아 무슬림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 중에 한곳이며, 지금도 신실한 무슬림들은 여기에 모여서 12번째 이맘이 속히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기도한다.

 

숨겨진 이맘에 관한 중심 교리는 은폐와 재림의 원리이다. 은폐에 대한 믿음은 신이 무함마드 알-마흐디의 목숨을 보전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의 눈에서 숨겼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순니 무슬림의 계속되는 박해와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신은 그가 없어진 874년 이후로 그의 생명을 계속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신이 마흐디를 세상에 다시 보낼 것이고, 인간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재림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은폐는 소은폐기와 대은폐기라는 두 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소은폐기 동안은 그의 대리자를 통해서 인간과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하였다. 단지 몸만 숨겨진 상태에서 영적인 지도력이나 빛으로 인도하는 리더쉽 등은 그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그대로 행사 되었다.이 기간은 4명의 대리자를 거치면서 70여년간 지속 되었다. 그러나 순니무슬림 정권의 위협이 심해지면서, 은폐의 단계는 대은폐기로 들어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은폐기가 되면서 인간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영적 리더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하지만 이 시기는 무슬림들의 입장에서는 영적으로 비극적 시기이다. 12번째 이맘은 세상 빛의 중심이었지만 이 은폐기는 이 불을 가리고 있는 인간에게는 암흑기를 의미한다. 시아의 세계관으로는 비극적인 시기이자이맘을 그리워하는 시기이다. 시아 무슬림들은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마지막 이맘이 속히 오기를 지속적으로 갈망한다.

 

그러나 숨은 이맘은 결국에 그의 은폐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그의 나타남은 신실한 신자들에게는 미래에 일어날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 귀환은 세상 말기에 마지막 심판이 행해지기 직전에 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 귀환에서 이맘 마흐디는 악을 심판하는 정의의 군대의 선두에 서서, 악에 대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고, 그 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해서 몇 년간 그 나라를 다스릴 것이고 그 후 자연사 한다고 기록되고 있다. 이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맘 마흐디가 오기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미리 와서 이맘 마흐디를 돕는 다는 이론이다

 

사실 마흐디라는 말은 꾸란에서는 언급도 되지 않았던 말이다. 시아 이슬람에서 쓰는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함)에도 4번 정도 언급이 되었을 뿐이다. 그럼 어떻게 이런 종말론이 구체화 되었을까? 그것은 이슬람 이전에 아라비아 지역에 있던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말론과 메시아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의 사상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페르시아 지역의 특수성을 생각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종말론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번성했던 영지주의의 영향등으로 그들의 종말론을 구체화해 해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아에서는 A.D 940년 이후 지금까지를 대은폐기로 부르고 있다. ‘대은폐기동안은 직접적으로 마흐디와 의사소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슬람의 가르침을 상세히 알고 있는 한 무리의 고위 성직자들이 지도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이 사상은 후에 이란의 호메이니에 의해 벨리야테 파키(Velayat-e-Faqih)-이슬람 법학자 통치론-로 구체화 되었고, 1979년 혁명을 통해 지금의 이란의 정부 형태인 발전 시켰다.

 

새로운 시대를 열것이라는 희망을 심어 주는 마흐디즘은 또한 많은 나라에서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슬람 역사 속에서 순니파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많은 반란들은 카르발라 사건의 후세인의 저항 정신과 마지막 이맘의 재림에 대한 이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실제 19세기 후반에는 수단에서는 무함마드 아흐마드라는 사람이 구세주 마흐디를 칭하며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는 1881년 이집트의 지배에 반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수차례의 승리를 통해 1898년 까지 실제 마흐디 국가를 수립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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