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적으로 본 이슬람 세계
아랍과 이슬람 세계를 지칭하는 용어는 매우 다양하다. 아랍·중동·이슬람 세계는 각기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아랍세계란 아랍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들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이는 언어적, 정치적 개념의 국가집단이다.
아랍세계에 속하는 국가들은 아랍연맹(1942년 결성)에 속해 있는 22개국(약 3억명)이다. 아랍세계로 분류되는 국가에는 시리아·레바논·요르단·팔레스타인·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아랍에미리트·오만·예멘·(남북예멘1991년 통합)·이집트·수단·지부티·소말리아·리비아·튀니지·알제리·모로코·모리타니·코모로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아랍세계의 중요한 역할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교량 역할과 세계문화의 중심부 역할이다. 아랍세계에서 생성된 문명에는 고대 나일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중세 사라센 문명이 있다.
중동이란 유럽중심주의 시각에 의한 지정학적 개념이다. 중동은 동양(East)·근동(Near East)·오리엔트(Orient: 라틴어로 동양의 의미)·레반트(Levant: 동양, 해뜨는 곳) 등으로 불렸다. 13세기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던 이탈리아 상인들은 지중해 동부를 레반트라 지칭했다. 그후 16~17세기 서구유럽이 발칸반도 이남의 오스만터키 제국을 동양이라 지칭하였으며, 동시에 극동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19세기 페르시아와 인도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의 개입이 증대되면서 오스만터키 지역은 근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후 1902년 미 해군 제독 앨프리드 마한이 페르시아만 주변 지역을 처음으로 중동이라 칭했으며, 1930년대 후반 영국 정부가 중동사령부를 설립하면서 중동이라는 용어가 공식화되었다. 이후 영국의 중동지역에 포함되었다.
1946년 미국 워싱턴에는 중동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미국도 공식적으로 중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 국방부에는 공식 명칭으로 근동과(Near Eastern Affairs)가 존재하나 비공식적으로 중동이라는 용어가 더 선호되고 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 시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지역을 서남아시아(Southwest Asia)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중동이라는 용어 속에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대륙 사이의 중계 역할 개념과 지정학적 중심지 개념 그리고 전략적 요충지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중동에 속하는 국가는 이집트·터키·시리아·레바논·팔레스타인·이스라엘·요르단·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이란·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예멘 ·사이프러스 등이며, 크레시·피셔 같은 학자들은 여기에 아프가니스탄과 리비아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슬람세계란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와 무슬림이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나라(아랍세계 포함)의 집합을 의미한다. 현재 이슬람세계에는 이슬람 기구(Organization of Islamic Conference: OIC) 소속 56개 국가(약 13억명)가 포함되어 있다.
이슬람세계에는 아랍세계 22개국과 아프가니스탄·알바니아·아제르바이잔·방글라데시·베넹·브루나이·부르키나파소·카메룬·차드·코모로· 가봉· 감비아 ·기니비사우· 기니· 가이아나· 인도네시아 ·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말레이시아· 몰디브· 말리· 모잠비크· 니제르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세네갈· 시에라리온 ·수리남 ·이란· 타지키스탄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우간다 ·우즈베키스탄 등이 포함된다.
이슬람 국가들은 주로 아시아·중동·아프리카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슬람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일부 산유국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빈국에 속하며, 정치적으로도 대부분 제3세계 민족주의와 연관되어 있다.
13억명, 56개국의 이슬람 세계 분포
우리는 흔히 이슬람 하면 아랍을 떠올리게 된다. 아랍이 이슬람의 본산이며, 이슬람교는 아랍인들만 믿는 종교로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선입견은 무슬림(이슬람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예언자로 보는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아랍어에 따른 표기)가 아랍인이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아랍이 이슬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랍이 이슬람의 전부는 아니다. 수적으로 보더라도 13억명의 무슬림 중 아랍인들은 3억명에 불과하다.
그 예로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이슬람 국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이슬람 국가는 바로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 약2억 2,000만명 중 1억8,000만 정도가 무슬림이다.그 외에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는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불교국가로 여기는 태국의 남부 5개 주도 그 숫자가 무려700만명에 이르는 무슬림 지역이다. 또한 태국 내 30여개 주에 500만명의 무슬림이 고루 분포되어 있다. 최근 서구인 인질 납치로 자주 외신에 오르내리는 필리핀 남부지역 민다나오 등도 이슬람 지역이다.
중앙아시아 역시 이슬람지역으로, 요즘 우리가 언론에서 많이 접하는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타르·아제르바이잔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 지역들은 특히 옛 소련의 공산주의를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까지 이슬람 지역으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북부아프리카가 전부 이슬람화되었고, 남부아프리카 및 중부아프리카에서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대략 반 정도가 이슬람화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서쪽으로 스페인 남부지역이 17세기 초까지 이슬람 지역이었으며 알함브라 궁전과 같은 훌륭한 안달루스 문화를 이룩해 놓았다. 동쪽으로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보스니아와 코소보 주변이 이슬람화되어 있다. 이들 지역도 역시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처럼 공산주의를 겪고도 아직까지 이슬람 국가로 남아 있으며, 현재 주변 민족들과 심각한 분쟁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교통과 통신의 발전과 더불어 기타 여러 유럽 국가들과 많은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이슬람교는 유럽국가들 사이에서도 급속히 번창해 유럽 제2의 종교로 부상하고 있다. 그 실례로 영국의 런던 한곳에만 300여개의 이슬람 성원(모스크 혹은 마스지드로 불림)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이슬람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몇 나라 및 남미쪽에만 낯선 거대한 종교·문화공동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거대종교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현재 그 분포는 어떤가. 이슬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7세기 초엽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해 전파된 이슬람교는 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광대한 영역에 뿌리를 내렸다.
무함마드, 새로운 종교를 열다
무함마드는 서기 570년 아라비아의 서부 지역에 위치한 메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메카는 종교도시이자 부유한 상업도시였다. 메카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건설한 카바 신전이 있었지만,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그들의 대상활동의 안녕을 기원하는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인도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중개무역의 거점이기도 했다.
이는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 간의 오랜 싸움과 적대 관계로 인해 동서를 잇는 시리아-페르시아 간의 교통로가 거의 폐쇄되자 예멘-아라비아 서부-시리아로 연결되는 동서교역의 새로운 통로가 열렸는데, 메카는 이 통상 교역로의 중간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랍부족 중 가장 유력하던 꾸라이쉬 족이 메카의 상권을 잡고 있었고 이 메카 상인들은 새 교역로의 개척에 눈부신 활약을 했다. 이러한 메카 꾸라이쉬 족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무함마드는 장성하여 청년시절 부유한 과부 카디자에게 고용돼 대상활동을 하면서 각지로 돌아다녔다.
그 후 여주인과 결혼한 그는 종교적 사색과 명상에 잠기곤 했는데, 610년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유일신 사상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한결같이 아랍사회의 기존 가치관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는 다신교적 우상숭배를 부정했으며 고리대금이나 도박, 음주, 난잡한 결혼 등 아랍의 고대 악습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기존의 종교관 및 사회관습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무함마드는 당시 지배층의 강한 반발에 부닥쳐 박해와 수난을 받았다.
박해가 심해지는 와중에 그는 622년 하나님(알라)으로부터 이주의 계시를 받고 그를 따르던 이슬람 신자들과 함께 메디나로 이주하였다. 이것을 ‘히즈라’라고 부르며, 그때를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삼았다.
메디나로 이주한 무함마드는 그곳에서 최초의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를 형성하는데 성공하고 이주 10년 후에는 메카에 무혈입성한다. 이때부터 이슬람 세력은 급속히 팽창했다. 이슬람은 아라비아반도에서 북으로 진출해 7세기 초반에는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그 결과 이 두 지역 사이에 있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방이 이슬람화되었고, 13세기에는 소아시아반도가 이슬람화되었다.그보다 앞선 7세기 후반에는 동쪽으로 이란고원을 석권했고, 8세기 초에는 중앙아시아와 인도 대륙의 북서부까지 진출했다. 8세기 중엽에는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중국의 당나라 군대를 키르기스스탄의 탈라스에서 격파함으로써 중앙아시아 전역이 이슬람권의 영향 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후 다시 동쪽으로 중국의 수도인 장안(長安) 및 내륙지방은 물론 만주와 한반도에까지 무슬림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이슬람이 전파됐다. 한편 해상 실크로드인 뱃길을 통해 남방으로 진출한 무슬림들은 13세기 이후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및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까지 그 위력을 떨치게 된 것이다.
북아프리카에서 코카서스 지방까지 진출
이집트에서 서쪽으로 진출한 이슬람은 7세기 후반 지중해 연안을 따라 리비아·튀니지·알제리 및 모로코에까지 전파됐다. 8세기 초에는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하여 약 700년 이상이나 그곳에서 권세를 누리다 13세기부터 기독교 세력들의 재정복에 밀렸고, 17세기 초에는 그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게 되었다.
북아프리카를 석권한 이슬람은 이 대륙의 해안과 내륙지방으로 진출해 동쪽 해안의 소말리아·에티오피아·케냐·탄자니아·잔지바르·모잠비크·마다가스카르에 이르렀고 서쪽 해안으로 모리타니아·세네갈·감비아·니제르 및 나이제리아로 진출하였으며, 내륙으로는 차드·수단·우간다에도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북아프리카 일대로의 전파는 이슬람 초기에 달성되었으나 동서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으로의 진출은 14~15세기 이후에 이뤄졌으며 아직 전통적 민속신앙 요소가 많이 섞여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15세기 중반,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터키제국의 이슬람 세력은 발칸반도로 진출하여 루마니아·불가리아·알바니아·옛 유고슬라비아의 남부지역 및 그리스 등에도 무슬림들이 산재하게 됐으며, 코카서스반도로도 뻗어가 옛소련의 아제르바이잔공화국과 코카서스 지방도 이슬람화되었다.
주요 이슬람 국가의 무슬림 분포 현황은 앞쪽에 첨부한 지도와 같다(이슬람 국가들의 인구통계치는 정치·문화적 이유로 발표지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본 통계수치는 필자가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수치를 사용하였음). 현재 이슬람 세계가 세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 보면, 전 세계 영토의23%가 이슬람권이며, 전 세계 인구의 약 20%가 무슬림이다.
또한 미·소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문화와 종교를 근거로 한 신냉전체제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서(새뮤얼 헌팅턴 주장) 이슬람의 세계사적 역할은 앞으로 더욱 증대될 것이다. 신냉전 체제의 주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기독교 세력과 아랍 이슬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이다. 서구 세계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런 연유로 이슬람 원리주의의 근본 배경에는 이슬람의 정교일치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미국과 이라크의 갈등, 미국과 이란의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미국과 리비아의 갈등,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의 갈등,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갈등, 소련과 체첸의 갈등, 소말리아 내전, 수단 내전, 레바논 내전, 프랑스와 알제리 이슬람 세력 간의 갈등,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카슈미르 갈등의 배경에는 바로 이슬람 세력과 서구 사이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이슬람 국가들이 수많은 나라와 민족, 언어로 나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믿는 이슬람교 때문이다. 현대 이슬람사회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서구 열강의 압제를 경험한 신생 아랍 국가들이 독립후 채택한 사회주의 이념과 경제체제가 더 이상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국민의 복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자각이 일면서 서구와의 협력관계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친서방 성향의 온건 왕정국가들조차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정치에서 서서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요르단과 모로코·바레인에서 젊은 국왕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이슬람권 전역에서 세대교체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강경한 반미 국가인 리비아도 최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제재 조치의 철폐에 주력하고 있고, 이란은 하타미의 개혁정책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타미 대통령은 이슬람권과 서구의 갈등을 예단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서구의 제3세계 지배 음모론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문명간의 대화’라는 새로운 담론을 제창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스스로도 이탈리아와 바티칸 교황청 방문을 시발로 유럽과 서구 국가들과의 관계 증진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출처 : 이원삼 선문대 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아랍과 이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슬람국가별] '알라신'만 같을뿐 문화-사고방식 다양 (0) | 2017.09.12 |
---|---|
[인터콥 선교사의 강좌 ] 이슬람 선교 현상과 접근 전략 (2) | 2017.06.21 |
이슬람의 어원과 역사 (islamic history) (0) | 2017.06.14 |
이슬람과 오스만 투르크제국 (0) | 2017.06.05 |
아랍지역 베두윈(유목민)의 생활과 문화 (0) | 2017.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