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은혜받은 믿음

 

말씀 : 20:1~16

 

1.포도원품 꾼의 비유의 의미

 

오늘 본문은 유명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어느 날 포도원 주인이 포도를 한창 수확할 시기에 일손이 너무 부족하여 장터로 품꾼을 데리러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아침 일찍 즉 0(오전 6)나가 몇 명을 불러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일손이 부족하여 3(오전9)에 장터에 가서 사람들을 불러 가서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계속 일손이 부족하여 육시, 구시, 심지어 십일시 즉 오후5시에도 가서 일꾼을 불러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하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십이시 즉 오후 6시가 되어 일을 마치고 품삯을 주는데 먼저 제일 늦게 온 사람 즉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침부터 일찍 와서 열심히 일한 다른 품꾼들이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으면 우리는 훨씬 더 받겠구나.’하고 은근히 기대를 하며 품삯을 받으러 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 데나리온 밖에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주인에게 따집니다. ‘아니, 이 사람은 다 저녁때 와서 겨우 한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고 우리는 하루종일 12시간 동안이나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했는데 어떻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 밖에 안 줍니까?’ 그러자 주인이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애시당초 너희와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일하지 않았느냐? 나중에 온 저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선을 행한 것이어늘 너는 너는 내가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것을 악하게 보느냐? 너는 네가 받아야 할 것을 정당하게 받은 것이니 네 것이나 가지고 가거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비유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절을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여러분, ‘천국은 마치하시면서 이 비유의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는 무엇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하신 것입니까? 그렇죠. 천국에 대해서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의미입니다. 천국이 있다. 천국을 믿어라. 천국을 믿고 천국시민으로 살아라 그런 이야기죠.

 

그 다음에는 포도원주인이 새벽6, 아침9, 정오, 오후3, 오후5시에 계속 품꾼을 찾으러 나갔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포도원 주인은 물론 하나님이시오, 품꾼은 우리들입니다. 포도원주인이 계속 품꾼을 찾으러 갔다는 것은 우선은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시기 위하여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와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의미로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시기 위하여 계속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천국은 반드시 소유하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려고 끊임없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의미는 우리를 그렇게 계속 찾아오시는 것은 우선은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이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꾼으로 세우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품꾼이 일꾼 아닙니까? 우리를 하늘나라 일꾼으로 세우셔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참여시키려고 부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의미는 저녁때가 되어 품삯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녁때란 우리에게 활동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고 하나님품으로 갈때를 말합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 삯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의 말씀의 교훈인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며 첫째는 천국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천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요, 셋째, 그렇게 천국백성이 되었으면 그 너무나 소중한 하늘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며, 네 번째는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하나님 뜻안에서 살아갈 때에 천국은 물론 큰 상급까지 주신다는 것입니다.

 

2.예수님은 천국을 가장 강조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천국은 반드시 존재한다. 천국은 예수님이 다른 어떤 것보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명제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성경에 보면 천국 혹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씀이 60여차례 나오는데 대부분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4:17절에서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 제일 먼저 하셨던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4:23절에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하셨습니다. 5장의 팔복에서는 계속해서 어떻게 어떻게 하면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6:19절에서는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2:2절에서는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25:1절에서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시는 등 수없이 천국에 대하여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계속해서 천국에 대하여 강조하고 계십니까? 두말할나위도 없이 천국이 반드시 존재하고, 천국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가장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려고 오셨고 그것에 대하여 계속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조차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꾸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13:44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한마디로 천국은 우리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아니 우리의 육체의 생명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사들여야 할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정말로 천국을 바르게 알고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천국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물론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느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천국이 궁극의 목적이고, 궁극적 종착점이며, 우리가 마침내 들어가 살아야 할 영원하고 완전한 복락의 본향집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 천국 그러면 아주 유치한 것으로 알고 뭐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철학적으로 고상하고 선하면 대단한 것으로 압니다. 성경을 요리조리 분해하고 쪼개고 뭐 그럴듯한 말을 하면 대단한 것으로 알고 천국을 이야기하면 시원치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무슨 대단한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무슨 아주 심오한 철학적인 이치를 말하고 요리조리 분석해보고 쪼개보고 무슨 심오한 철학적 이론을 대입해봐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합니다. 간단명료합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내가 세상의 빛이다. 나를 믿으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 나는 다시 온다.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그러므로 나를 믿고 나를 따르라. 보화를 땅에 쌓지 말라. 하늘에 쌓으라. 그냥 단순명료한 화법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냥 그 단순명료한 명제를 그대로 믿고 따르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무슨 다른 해석이나 주석이나 조건을 붙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천국을 확실히 믿고 공연히 이것 저것 갖다 붙이지 말고 그냥 단순무식하게 천국의 법과 원리와 규범과 목적과 가치를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것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양하며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여 현재적 천국와 영원한 천국을 마음껏 맛보며 감사와 기쁨과 소망과 위로를 마음껏 맛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하나님은 열심히 우리를 찾고 게십니다.

 

그렇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와같이 천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명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천국에 가기를 간절히 원하셔서 열심히 우리를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보십시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직접 집을 나가 품꾼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포도원의 의미는 이중적입니다. 하나는 이 땅에 이루어진 현재적인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다시 말해 일단 하나님을 믿으면 현재적 천국을 누리다가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천국의 놀라우신 은총을 주시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저녁 해가 저물 때까지 일꾼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른 아침에 집을 나가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삼시 육시 구시 열한시까지 계속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도원 들여보내시려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계속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포도원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는 그 놀라운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죄와 무지 속에 신음하고 있는 인생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 먹고 죄에 빠져 두려움 속에 숨어있는 아담을 찾아와 만나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어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주셔서 우리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도 제가 비록 부족하지만 제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게 함으로 여러분을 찾아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 놀라우신 사랑과 열정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정말 너무 약하고 추하고 때로는 정말 악하기까지 한 우리들이지만 이렇게 찾아오셔서 불러주시고 은혜주셔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게 된 것입니다. 내가 무슨 큰 능력이 있어서, 무슨 구원받을 만한 선행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살게 되었고 구원받고 천국시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저와 여러분은 이 놀라우신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 앞에 겸손히 엎드려 절하며 그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살아숨쉬고 천국백성되어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게 된 것은 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큰 은혜를 채워주시는 그 은총을 덧입어 정말 감사와 기쁨과 은혜와 찬양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은혜 받았으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부르시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에 들어와 풍성한 것을 누리게 하려 함임과 동시에 우리를 포도원 품꾼으로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오늘 1절 말씀을 또 보십시오. 오늘 비유의 말씀의 핵심을 모두 1절에 다 들어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무엇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낸다? 품꾼입니다. 품꾼이 뭐하는 사람입니까? 일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일만 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포도원에서 주인의 보호와 인도와 사랑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일한 연후에는 삯도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를 받았으면 그리고 그러한 삯을 받으려면 마땅히 자신이 있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포도원에 살게 하신 것은 첫 번째는 하나님의 동산의 은총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 두 번째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동산에서 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동산을 가꿈으로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동산의 은총을 주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의 동산에 서 수고하다가 일을 그칠 때가 오는데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한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새벽 6시에 온 사람이나 오후5시에 온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셨다고 말씀함으로 마치 1시간 일한 사람이나 12시간 일한 사람이나 무조건 똑같이 주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많이 했다고 자랑하지도 말고 적게 했다고 낙심하지도 말고 그저 주어진 시간 동안 부름 받은 그 시간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이지 무조건 똑같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22:1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의 역사를 위하여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내려놓아야 할 짐이 있고, 반면에 새롭게 짊어져야 할 짐이 생깁니다. 11:28~30절을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러분,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인생의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을 맡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저 먹고 마시고 입고 잠자고 육신의 것만을 위해서 사생결단하며 살아가는 무거운 짐을 벗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죄와 근심과 걱정과 염려의 무거운 짐도 벗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쉼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나의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멍에는 뭡니까? 생명의 역사를 위한 멍에, 사랑의 멍에, 헌신의 멍에입니다. 생명과 진리와 평안과 참된 기쁨을 위한 멍에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짐은 벗으라 하시고 어떤 짐은 지라고 하십니까? 물론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의 짐과 죄의 짐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생명을 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주시는 짐은 생명을 살리고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희망과 소망과 위로를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그렇습니다. 우리를 죽이는 짐이 있고 살리는 짐이 있습니다. 죽이는 짐은 뭡니까? 죄의 짐입니다. 그저 육신의 영광만을 위하여 수고하는 짐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지는 짐입니다. 그러면 살리는 짐은 어떤 짐입니까? 사랑의 짐입니다. 진리를 위한 짐입니다. 생명의 역사를 위한 짐입니다. 이런 짐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쁨을 주고 은혜를 주고 참된 가치를 가져다 줍니다. 긍지와 자부심과 자존감과 뿌듯함을 가져다 줍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남을 행복하고 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부모는 자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를 위하여 짐을 지면서 행복해 합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서 짐을 지면서 행복해 합니다. 자신이나 남에게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행복을 주는 짐을 지고 나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한 짐, 심지어는 죄를 행하며 지는 짐은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도리어 결국 자신과 남을 죽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런 세상의 모든 짐은 내게 맡기고 내가 너에게 주는 생명의 짐, 사랑의 짐, 진리를 위한 짐을 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럴 때 영원한 천국의 은총을 누림은 물론 지금 여기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이루어져 사랑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천국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천국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더욱 사랑과 말씀과 기도로 관심을 쏟음으로 온 가족과 모든 교우들이 한분도 빠짐없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해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으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을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힘있게 이루어가는 가운데 주님의 거룩한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는 자로서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은혜와 보람과 가치와 의미와 행복을 누리며 현재적인 천국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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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축복받는 새해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칫솔을 팔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너무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려고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물건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게 뭡니까? 칫솔입니다. 왜 가지고 나왔습니까? 물론 팔려고 가지고 나왔습니다.

자, 칫솔이 이렇게 다섯 개가 한 묶음으로 되어있습니다. 얼마일 것 같습니까? 단돈 천원입니다. 뒤에 보면 made in korea라고 쓰여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수출품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수출이 잘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망했습니다. 잘 되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요.

자, 어쨌든 백문이 불여일견, 하나씩 드릴테니 찬찬히 구경해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몇 분이나 사실까요? 저도 모릅니다. 잠시 후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 네. 점잖은 신사 분 한분이 구입하셨습니다. 더 구입하실 분 안 계십니까? 네, 많은 분들이 저를 믿지 못하고 망설이고 계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만 팔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제가 몇 개를 팔았습니까? 네, 한 개입니다. 그럼 제가 얼마를 벌었습니까? 1,000원입니다. 아니 원가를 빼면 300원 벌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제가 실망했을까요? 네, 아주 많이 실망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제가 여기서 포기할까요? 아닙니다. 저는 다음 칸으로 갑니다. 남은 하루도 즐거운 시간 되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다음 칸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멋있는 아저씨입니까? 비록 지하철에서 칫솔을 팔고 있지만, 비록 수입은 많지 않지만 얼마나 여유가 있고, 얼마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입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혹시 실망할 일이 있을지는 몰라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다음 칸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새롭게 밝아온 새해에는 혹시 좀 실망스럽고 힘든 일이 있다해도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희망과 긍정 속에 한 해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주님 말씀따라 한걸음 한걸음 앞을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분명히 생명의 기쁨이 넘치는 한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복된 한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 한해를 정말 은혜가 충만한 시간들로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가운데 살려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나 긍정의 생각이라고 내 마음대로, 세상 가치관대로의 긍정은 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긍정하는 것이 올바른 긍정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죄와 어둠 가운데 있고 하나님은 빛이시오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긍정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이 뭐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1:8절을 보십시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보십시오. 말씀을 묵상하라. 지키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할 것이라. 형통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생명과 축복과 평강과 위로와 기쁨의 근원자이십니다. 모든 우주만물과 그 질서와 규칙과 규범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우주만물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모든 우주와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당연히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을 따라가면 그 인생이 생명과 진리와 은혜로 충만해 질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빛이신 하나님, 생명이신 하나님을 따라가면 빛의 은혜, 생명의 은혜를 누릴 것이요, 어둠과 사망에 속한 마귀 사탄을 따라가면 어둠과 사망의 그늘 속에 살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죄와 어둠속에 있는 너무나 많은 인생들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마귀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인생의 참된 생명의 양식이요,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규범이며, 규칙이며, 가이드라인이며, 사용설명서인 성경을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도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룰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 인간이 스스로 만든 룰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오직 길이시며 진리이시며 생명이시며 빛이신 예수님이 정해주신 룰만이 하나님께 통하는 길이며 그것만이 인간의 생명을 보장하고 풍성케 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성경만이 인간의 삶에 유일하게 완전한 생명을 주고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규칙이요, 규범이요, 가이드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의 영과 육과 정신에 관한 유일하고 완전한 규범은 오직 성경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천지창조 때부터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알고 인간 존재에 대하여, 인간이 살아가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하여 규칙을 정할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우주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모든 인생은 이러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실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우주안의 그 어떤 존재도 우주와 인간과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다 알지도 못하고 권한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제시할 수 없고, 모든 우주의 질서를 정할 수도 없고, 규범을 만들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룰을 바르게 알고 그 가이드라인을 따라, 그 설명서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육신을 사용하고 시간을 사용하고 물질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4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오직 우리 인생의 유일하고 완전한 규범이며 등불이이며 가이드라인이며 사용설명서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한해 동안도 말씀이 여러분을 지키고 인도함으로 말미암아 말씀 안에 있는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은혜와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의 은총이 풍성한 삶을 살려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따라 살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그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6절 말씀 보십시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러분, 이 말씀에서 특별히 범사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범사, 즉 모든 일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릴 때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밥 먹을 때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직장에서 일을 할 때로 인정하고, 장사를 할 때도 인정하고, 공부할 때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잘되고, 건강하고, 형통하고, 축복받을 때도 인정하고, 잘 안되고, 건강하지 못하고, 불통해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만나도, 불만스러운 일이 있어도, 이해 못할 일이 벌어져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와 환경과 상황을 불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생명과 지혜와 능력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나나 내게 주어진 시간이나 물질이나 재능이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고 그러면 반드시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인정하면 어찌 예배와 찬송과 기도에 열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어찌 내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생활에 힘쓰며, 나아가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하나님과 나 자신과 이웃을 위하여 바르게 사용하며 살아갈 때에 어찌 그 인생이 별처럼 빛나지 않겠습니까? 그 인생이 어찌 아름답고 복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여러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음을 믿고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 할뿐입니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도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와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정말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갈 때에 그 인생이 어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움과 은혜를 인정하고 예배드리고 찬송드리고 기도하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의 육신이나 정신이나 물질이나 시간이나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사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어렵고 힘들고 이해가 안되고 억울한 일을 만나도 그저 하나님께 맡기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존중히 여김을 받으며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가득한 이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의 지혜를 따라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그 은혜를 누리려면 하나님의 지혜는 나보다 천배 만배 억배 더 크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늘 7절 말씀 보십시오. “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자기가 똑똑한 것처럼 생각하며 제 고집대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솔직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다고 내 놓을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비록 피조물들 중에서는 제법 지혜롭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우리 인생이 아는 게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경험한 것이 얼마나 됩니까?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습니까? 알면 얼마나 압니까?

욥이 고난을 당했을 때 욥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너무 답답해서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나는 정말 나름대로 선하고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오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악한데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난 정말 억울하다고 하소연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내게 대답하라. 네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거기 있었느냐, 바닷물이 넘치게 하였느냐, 네가 아침이 오게 하였느냐, 네가 별들을 매어 묶을 수 있느냐, 네가 눈과 비를 내리었느냐,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네 가슴속의 지혜는 누가 주었느냐, 네가 염소의 새끼를 낳을 때를 아느냐,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러자 욥은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욥42: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렸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욥을 고난에서 건져주시고 다시금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똑똑하고 인품이 좋고 선하고 잘나도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자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앞에서 의로운 것처럼 여기는 인생은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마귀사탄에게 철저히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솔직히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 우주 공간속에서, 천지가 창조되고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는 길까지, 영원한 세상이 지속되는 그 모든 일에 대하여 아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신의 한계와 무지와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자신과 세상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에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더욱 풍성히 누리는 이 복된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4.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려면 진실로 하나님을 공경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9절 말씀 보세요.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보십시오. 네 재물과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제일 먼저,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아가서 십일조를 비롯한 모든 감사예물을 드릴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여호와를 인정하는 일이요, 바르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게다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는데, 게다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야말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일에 사용되는 것인데, 하나님께 드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하늘 곳간에 쌓는 일인데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고 공경한다면 어찌 하나님께 먼저 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무엇인가 힘써 노력해서 얻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향하여 야, 말합니다. ‘너, 정말 수고 많았다. 너 정말 대단하다. 이제는 좀 쉬면서 먹고 마시고 놀자.’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부모님이 날 낳아 주시고 열심히 키워 주신 덕분이라며 부모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곁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었던 친구나 선배나 기타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며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면 우리도 여전히 인본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육신으로 물질로 시간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다해도 근본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터전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생명과 육체과 지혜와 능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햇빛과 비와 공기와 토지를 주셔서 그 안에서 활동하며 살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제일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다른 모든 것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공경할 때 그 믿음과 신실함을 보시고 더욱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0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오늘 이 귀한 말씀들을 기억하며 올 한해 동안도 정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코 자신이나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의 유일한 규범이며 잣대이며 안내자인 하나님의 말씀의 안내를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과 물질과 육신을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창고가 가득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이 여김을 받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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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창22:9~14

제목 : 믿음과 순종과 축복

1.믿음과 순종과 축복

믿음이 있는 곳에 순종이 있고, 순종이 있는 곳에 축복이 있다. 여러분, 맞는 말입니까? 예, 맞는 말입니다. 안 그래요? 믿음이 있으면 순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요. 있고말고요. 아니 믿는데 순종이 없을 수 있습니까? 안 그래요? 좋으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데 어찌 순종이 없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또 순종이 있는 곳에 축복이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잖아요. 순종하는 복이 안 오면 그게 이상한 거지요. 능력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데 어찌 복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신28:2절 보세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하시면서 오만가지 복을 다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뭐 허튼소리 하시는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실로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지금 여기서고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아브라함인데요, 오늘 말씀은 여러분이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어떻습니까?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잘 됩니까? 잘 안되지요. 왜요?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실상은 그래봤자 얼마나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이 이야기 들어봤자 몇 번 들었습니까? 한 백번 들었을까요? 그런데 세상에서 정치이야기, 경제이야기,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는 몇 번 쯤 들었을까요? 한 천 번 들었을까요? 만 번도 더 들었을걸요. 그러니까 믿음 안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해도 세상에서 먹고 입고 잠자고 놀고 하는 이야기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못 듣고 못 보는 거예요. 그러니 잘 안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요. 그러면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가만히 있을 겁니까? 아니죠. 그러므로 더욱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하지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기독교적 가치관이 확립되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땅의 기름진 축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인간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다 읽어드리지 못했지만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삼아 각을 뜨고, 불에 태워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인신제사는 우상숭배자들이 하는 악습으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게다가 이삭은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무려 25년 만에 달랑 하나 주신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장차 큰 민족을 이루고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삭을 잡아 불에 태워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말이나 되느냐 말입니다.

아마도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일까?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자녀가 아닌가? 그것도 아이를 도저히 낳을 수 없는 100세나 되어서 기적적으로 주신 아들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큰 민족을 이루려면 오히려 더 많은 자식을 주셔야 하는데 겨우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불에 태워 인신제사로 드리라니 내가 늙어서 헛소리를 들었나? 망령이라도 들었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고 말도 안되는 명령에 순종합니다. 왜요?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선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말도 안되지만 분명 뭔가 하나님의 섭리와 뜻과 계획이 있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이성으로 다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우리 보다 높고 깊어서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이성과 경험과 능력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성적으로 이해가 됩니까?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다. 경험적으로 납득이 갑니까? 저 영원한 천국, 이것이 인간의 논리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이성적으로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이성과 과학과 논리를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그런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해가 되든 말든 납득이 되든 말든 순종할 것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만약 조금이라도 이성이나 논리를 가지고 생각했더라면 절대로 이삭을 바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인신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명령을 내리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내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과 같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해놓고 25년 만에 겨우 아들 하나 주어놓고 그걸 도로 달라고 하십니까? 하면서 따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의 모든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태도인 것입니다. 이해가 가든 안가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무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높으심과 인도하심과 선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언제나 내 뜻과 이성과 경험과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잠3:5,6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해가 되든 말든, 세상의 가치와 같든 다르든, 내 경험과 맞든 안 맞든, 손해가 되든 유익이 되든, 내 생각과 관계없이 인정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 모든 생각과 경험과 환경을 떠나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오직 온전한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신 예수님의 뜻에 온전히 순복하십시오. 그저 갓난아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때에 분명 주님 안에 있는 은혜의 풍성함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2.온전한 순종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말씀에 순종합니다. 창22:3,4절 보세요.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여러분, 이 말씀을 보십시오. 그는 아침 일찍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솔직히 무언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임을 믿었지만 밤새도록 얼마나 고민을 했겠습니까?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아들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는데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날이 밝자마다 곧장 시행에 들어간 것입니다. 아내 사라에게 말도 없이 떠났습니다. 아내에게 말했다가 보나마나 이 양반이 나이가 들더니 드디어 망령이 들었냐고 하면서 핀잔만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내에게 말도 하지 않고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자신도 시간을 지체하다간 아들을 번제로 드릴 자신이 없었기에 마음 변하기 전에, 마귀가 틈타기 전에 떠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즉시 시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시행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일을 뒤로 미루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나중에 나중에 그럽니다. 이것만 해 놓고, 저것만 해결하고...... 나중에 생활이 안정되면, 나중에 시간 나면, 나중에 할 일 없어지면... 그러나 여러분, 지금 못하는 사람이 나중에 여유 생기면 할 수 있을 것 같죠? 그런 사람은 99%는 여유생기면 놀러 다닙니다. 여유돈 있으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쓰게 됩니다. 설령 나중에 한다 해도 지금 못한 것은 죽을 때까지 아니 천국에 가서 까지 못한 것으로 계속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마귀가 장난칩니다. 마음이 변하기 쉽습니다. 방해꾼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길을 떠나 사흘 동안 걸어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여러분, 그 사흘길을 걸어오는 동안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길을 떠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외아들을 자기 손으로 잡아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마음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다잡으며 발걸음은 재촉합니다.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릴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그는 묵묵히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지시한 산 밑에 이르러 종들을 거기 머물라고 하면서 번제에 쓸 나무를 아들의 등에 지우고, 자기는 칼과 불을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때 이삭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제를 드리려면 제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제물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나무와 불은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뜨끔했겠습니까? 차마 ‘네가 바로 번제물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단다. 나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단다. 그러니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구나.’ 차마 이렇게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비해 주실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묵묵히 산에 올라 드디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도착하게 되고,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릴 준비를 합니다. 장작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물을 잡아서 각을 떠서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태워야 할 차례였습니다. 그 번제물은 다름 아닌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하나님께서 너를 번제로 드리라는구나. 내가 너를 대신해서 번제가 될 수만 있다면, 내가 너를 대신해서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러나 내가 아닌 너를 요구하시는구나.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그러니 순종해야지.’ 하면서 아들을 결박합니다. 그 운명의 순간에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아픔이 몰려 왔습니다. 그러나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을 붙잡아 결박하고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죽이려고 눈을 감고 칼을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여러분, 그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결박하는 아버지의 심정. 아들을 장작더미위에 올려 놓고 칼을 높이 들어 올린 아버지의 심정,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이삭, 그것도 하나 밖에 없었던 아들 이삭,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해서 결박 당할수만 있다면.... 내가 너를 대신하여 번제물이 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해서 죽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해서 불 태워 질수만 있다면.... 이런 마음으로 이삭 대신 자신이 번제물이 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요구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이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무슨 선한 뜻이 있을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이니 거역할 수 없었기에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속에서 도저히 눈뜨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눈을 감고 아들을 향해 칼을 내리치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게 순종입니다. 내 생각과 달라도, 도저히 이해가 안가도, 있을 수 없는 일을 시켜도 그냥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아무리 내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필요로 하신다면 그냥 드리는 것이 순종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순종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님의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믿음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습니까? 주님의 선하심을 믿습니까?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이래요. 형편이 이래요. 저래요. 이래서 곤란해요. 저래서 곤란해요. 그럼 내가 손해봐요. 웃음거리 돼요. 주일날 하루 쉬면 손해가 얼만지 아세요? 아니 이 귀한 걸 달라고요? 그럼 난 어떻게 살라고요? 여러분, 이런 거 다 버리세요. 그냥 믿고 따르세요. 순종하세요. 그게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에게 주님의 한량없는 은총이 임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순종하는 자에게 임할 복

여러분, 그렇습니다. 순종이 곧 온전한 믿음이기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임합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리치려고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창22:11,1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던 하나님께서 도리어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제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너 정말로 이삭을 잡으려는 것이냐? 내가 정말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받기를 원하는지 아니냐? 아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네 믿음을 보고 싶었단다. 이제 충분하다. 그 믿음이면 충분하다. 너는 정녕 믿음의 조상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러니 이삭을 풀어주고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양으로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아들을 풀어주고 옆에 뿔이 나무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는 양을 가져다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삭이 아닌 양으로 제사를 모두 마쳤을 때 다시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22:16,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요구했던 것은 이삭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순종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빼앗아가려고 했겠습니까? 왜 말도 안되는 인신제사를 드리라고 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셨고 그 믿음과 순종이 있는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총을 그렇게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순종하게 되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순종이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곧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하나님의 나의 주인이라는 종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종이 주인에게 따질 수 있습니까? 우매 자가 지혜 자에게 따질 수 있습니까?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왜 그래야 하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까? 죄인이 구세주에게 이러니저러니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믿음과 순종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요, 진정 주님만이 생명의 주님이시오, 구원자시오, 주권자라는 믿음이 있다면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곧 믿음이요, 그래서 순종하는 자에게 복이 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러한 순종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달라고 하셔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결코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종하실 때에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의 모든 생각 지식 경험 이성 가치관 나 내려놓고 순종하심으로 주님께서 채워 주시는 영육간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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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네째 주일예배설교 /가정 천국을 이룹시다 (August Sunday Sermon)


말씀 : 엡5:31~6:4

제목 : 가정 천국을 이룹시다.

1.가정천국을 만들어 갑시다.

 

여러분,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만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서 누려야 할 천국은 결코 청와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건희회장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절세미인의 집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눅17:21절을 보십시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보세요.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물론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저 하늘나라 어디엔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의 천국은 외부적인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도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보기에는 초라해 보여도 천국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도 동일합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느냐, 지옥이 되느냐하는 것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의식주 문제는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천국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의식주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어떤 마음과 삶의 자세를 가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끼며 살아가면 거기 가정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안 그래요? 의식주 문제 해결되었지요,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지요,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그저 죽어라고 공부하고 일해서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행복해 지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기왕이면 돈도 많이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일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모여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이 아무리 팍팍해도 가끔은 어떻게든 짬을 내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져야 합니다.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여러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시간 보다 더 중요한 시간입니다. 안 그래요? 왜 공부하고 왜 열심히 일합니까? 행복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과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시간도 갖지 못하고 죽도록 돈만 번다면 그게 뭡니까? 어떤 분은 그러고 싶지만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일하고 남는 시간으로 가족하고 함께 시간을 갖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도 좀 쉬면서 사랑하는 가족과의 교제를 통하여 가정 천국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 같이 정말 바쁠 때는 그럴 수 없겠지요. 그러나 농촌이라고 일년 365일 계속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그럴 돈이 어디있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돈 별로 안 듭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저 양반하고 한 달에 한 두번은 바람 쐬러 갑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제가 재주가 꽤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에는 서예 사진 바둑 탁구 낚시도 하고 글도 좀 써본다고 써봤고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시작 한 후 돈이고 취미생활이고 심지어 운동까지 몽땅 다 버렸다가 몇 년 전부터 너무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지금은 운동도 조금씩하고 한 달에 한 두 번은 아내와 함께 바람도 쐴 겸 사진을 찍으러 갑니다. 우리는 어디 갈 때 사먹는 거 일절 없습니다. 김밥이나 주먹밥 싸고 물과 과일 몇 개 가지고 카메라 들고 나가면 돈 몇푼 안 들이고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됩니다.

그러면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면 다 힐링되지 그런 게 뭐 필요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죄송하지만 그건 무지한 말입니다. 인간은 영과 육과 혼의 전인적인 존재이므로 영적 육체적 정신적 양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고 동시에 영적 육체적 정신적인 활동도 균형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인적으로 균형이 잡히고 건강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물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예배드리는 날은 열심히 예배드리고 동시에 어떻게든 짬을 내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지면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잘 다스리며 천국을 만들어 누리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예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에 천국을 이루고 그것을 누리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일단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을 가정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잖아요. 안 그래요? 천지만물의 창조주로서 모든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강과 위로의 근원이신 하나님 없이 어찌 천국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모든 생명과 평강과 기쁨과 위로의 근원이신데 하나님이 없는 곳에 어찌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안식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제가 누누이 드린 말씀이지만 요15: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구원해주시고 말씀을 주시며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고.... 즉 우리를 억압하고 힘들게 하려고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안을 마음껏 누리게 하려고 주님이 오셨고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을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누리려면 오직 예수님은 우리 심령과 가정 속에 온전히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죄와 무지와 사탄과 지옥을 비롯한 모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영적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전인적인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들이면 주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초월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물론 이 기쁨만이 영원한 천국으로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참되고 영원하고 온전한 기쁨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에이, 목사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게 잘만 살던데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가짜 행복이요, 위장된 행복입니다. 마치 마약에 취하고, 술에 취한 자가 누리는 평안이나 기쁨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약이나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그래서 근심걱정이나 슬픔이나 고통을 조금쯤은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치유되어 없어진 게 아니고 마약이나 술로 마취를 시켜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치유하지 않고 마취를 시켜 고통을 없애주는 방법은 언제 쓰는 겁니까? 그건 살 가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이라도 좀 고통 없이 지내라고 써 먹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경우라면 마약과 술과 담배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점점 문제가 심각해져 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약과 술은 사람의 마음을 마취시켜 죄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약에 취하고 술에 취하면 용감하게 되고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상방뇨도 하고 음란한 짓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왜요? 도덕적 윤리적 감각이 무디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기쁨이 바로 그와같은 것입니다. 죄와 무지에 취해서 있어서 감각이 무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할노릇 다하지 않으면서도 심지어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리고 자신이 가는 길의 끝이 영원한 진노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채 희희낙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누리는 기쁨은 무지한 자아에 속고, 사탄에 속아 잘못 누리고 있는 기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과 진리와 기쁨과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심령 속에 모신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살아가기를 힘쓰게 됩니다.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참 생명의 기쁨과 위로와 평강과 소망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참된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누리며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우리 심령과 가정 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살아감으로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넘쳐나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가정천국을 이루기 위해 두 번째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위해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2:2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러분, 이 말씀은 명령입니다. 사람이 장성하면 반드시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도우면서 자녀를 낳아 양육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런 명령을 주신 것은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에 인간의 삶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풍성하고 가장 행복한 상태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장성하면 반드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가정을 이루었으면 부부간에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뭐 너무 많지만 부부간에 서로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33절 보세요.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여러분, 너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부부는 말 그대로 일심동체잖아요. 그러면 내 몸인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또 부부만큼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부만큼 늘 가까이하면서 서로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아껴주고 하면서 좋은 친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부부는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함께하며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닙니까? 그러니 얼마나 서로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아마 우리 젊은 부부들은 보셨을지도 모르지만 인터넷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일본의 노부부의 감동적인 사랑이야기가 있어 잠깐 소개합니다. 뭐 영상은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우리 마음을 감동하게 만듭니다. (실명한 아내를 위한 꽃밭.mp4, 유튜브 다운로드 영상) 마지막 부분에 환희 웃으며 다정히 앉아 있는 노부부 보이시지요. 저 할머니가 당뇨로 실명을 하고 우울증에 빠지자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밖에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코로 향기라도 맡고 기분 전환도 하고 또 꽃을 많이 심으면 사람들이 찾아와 할머니의 말벗이라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꽃을 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꽃을 심고 가꾸었는데 그러는 동안에 할머니가 점차 밖에 나와 꽃향기를 맡으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또 점점 사람들도 찾아오기 시작하여 지금은 일년에 3,000명 이상이 찾아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주며 즐겁게 해주어 결국 실명한 할머니가 저렇게 밝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할아버지입니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그렇다고 아내들은 또 남편한테 당신은 뭐했냐고 하면 곤란하지요. 남편과 아내가 서로가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정말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답고 복된 가정이 되겠습니까? 33절 다시 한번 보실까요?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부부간에 정말로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위로와 기쁨과 힘이 되어 가정천국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잘 양육하면 먼저 그 가정이 행복해지고 나아가서는 다음 세대의 가정이 바로 서고, 아름답고 복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들 혹은 기성세대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저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에만 몰두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잘먹고 잘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도외시 한 채 그저 외적인 풍요로움만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영성과 인성과 지성을 가지고 위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저 남보다 편하게 대접받으며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영성과 인성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자신도 행복하지 못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문제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4절의 말씀을 보세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무엇으로 양육하라고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즉 그저 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면서 세상 공부만 시키는데 열정을 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사랑하는 자녀가 영적, 인격적, 지적으로 올바르게 성장하여 영성과 인성과 지성을 고루 갖춘 올바른 지성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물론 자녀 자신이 행복하고 가정에 평안과 기쁨과 소망이 있고 나아가 이 사회가 아름답고 복된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물론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가르치고 기도하고 힘써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말 성숙한 신앙인, 성숙한 인격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더욱 힘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세상의 공부만 위하여 투자하지 말고 아이들의 영성과 인성을 길러주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자녀들이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올바른 인격체가 되어 주님도 기쁘시게 해드리고 남에게도 기쁨을 주며 자기도 진정한 인생의 가치와 기쁨과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가정천국이 되기 위하여서는 부부 진정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자녀를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가정은 정말 복된 가정, 아름다운 가정,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6:2,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란 십계명 중 인간에 대한 계명중 첫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그 계명을 따라 부모님을 바르게 공경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 부모님 공경이 첫계명이라는 것은 결국 부모님 공경이 인간 윤리의 기본이며 근간이며 뼈대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인륜의 근본이 되는 부모공경을 잘 실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을 때의 공경은 마음으로만 하는 공경이 아닙니다. 여기서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것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존경한다며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님이 평안하게 기뻐하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마음도 평안하게 해드리고, 물질로도 봉양해 드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부모님들에게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하여 간곡히 말씀드려 주님을 영접하게 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렇게 부모님께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으로 봉양해 드릴 때 부모님이 이 땅에서도 평안과 기쁨과 은혜를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도이고 공경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정말 서로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또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할 때에 가정천국이 이루어지고, 그러면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행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가정 속에 온전히 모시고 부부가 정말 서로 사랑하고 부모는 자녀를 말씀과 사랑으로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며 가족 간에 함께 하는 시간도 갖으며 가정 천국을 이루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지금 여기서 누려야 할 천국의 은총도 마음껏 누리는 복되고 아름답고 멋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아름다운 계절만큼이나 아름답고 복된 가정을 우리에게 주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나이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족구성원들 간에 진정한 사랑과 은혜를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나이다.

주여,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주님의 인도하심과 말씀안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살게 하시고, 부모는 자녀를 기도와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할때에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감성을 갖춘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는 부모님의 권위와 사랑과 헌신을 인정하고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드려 공경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가정들이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천국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봉헌기도 ) 영화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아름다운 계절, 이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을 우리에게 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총을 덧입어 이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시오니 영광과 존귀를 돌리나이다.

오 주님이시여,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며 예물 드리나이다.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과 인도하심에 감격하여 믿음으로 예물드리옵나니 드리는 손길 손길 위에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것 거룩히 구별하여 십일조 예물 드리는 손길위에 축복하셔서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 풍성하고 강건한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며 감사예물 드리는 손길에도 복을 주셔서 더욱 감사와 은혜가 가득한 복된 삶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예물을 통하여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더욱 힘있게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축 도 )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부부간에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며, 자녀는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야 할 우리 모든 성도들과 이 땅위의 모든 가정들 위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인도 교통 역사 충만케 하시는 은사가 이제로 영원까지 함께 하시옵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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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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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네째주일 예배설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August Sunday Sermon)
제목 :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말씀 : 요15:5~11

 

1.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든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며 의롭게 선하게 아름답

고 복된 가정도 이루고 서로 사랑하며 아껴주며 복되게 살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부

모도 자녀가 슬프게 고통스럽게 원망하고 짜증내고 싸우고 죄짓고 무가치하게 살기를 바

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물어보나마마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선하게 의롭게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들이 그저 자나깨나 내 새끼 잘되고 밝게 기쁘게 감사하며 살

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정말 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며 살기를 바라

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구원이 뭡니까? 죄와 무지와 어둠과 슬픔과 고통에서 건져주어 천

국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이 뭡니까? 물론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감사와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가 모든 죄와 고통과

불안과 미움과 저주 속에서 해방되어 선과 진리와 의 속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과 은혜의

삶을 살게 해 주시기 위한 것이지요. 이게 주님이 오신 목적이고 이게 천국의 삶이고 이

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내는 삶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으면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와 의 가운데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

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니

라 지금 여기서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여기서의 천국은 완전하지는 않습니

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으면 천국의 모형을 맛

보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천국에 근접한 삶을 살아다가 죽어서 완전

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말씀드렸지만 예수님께서 눅17:20,21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

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

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

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이미 우리 안에 도래

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1절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앞에서 예수님께

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

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서 맺을 열매는 뭡니까? 물론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사랑 등의 주님이 주시는 온갖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이러한 내가 주는 온갖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될 것이므로 너희가 생명의 기

쁨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16:1절에서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도말

하시고, 무덤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온전히 심령

속에 모셔들이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주님이 주시는 그 생

명의 기쁨과 은혜와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면서 주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온전히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미 앞에서 얼마간 언급이 되었지만 우리가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

려면 말할 나위 없이 온전히 예수님을 심령 속에 모셔들이고 예수님 안에 살아가야 합니

다. 그러면 반드시 확실히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뭐 지극히 당연한

거 아닙니까? 주님이 누구십니까?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마귀 사탄과 어둠의 세력들 물리쳐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안에 있으면 그런 은혜들을 누리게 되는 것은 너무

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요? 어두운 곳에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두렵지 않습니까? 반대로 빛 가운데 있으

면 마음이 밝아지고 따뜻해지고 편안해지지 않습니까? 따뜻한 곳에 있으면 따뜻하고 추운

곳에 있으면 춥습니다. 상처와 고통과 아픔이 있는 곳에 있으면 마음이 슬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에 가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기뻐지지 않습니까? 분위기가 험악하거나

어두침침한 곳에 있으면 두려움이 생기고, 뭔가 음침하고 더러운 곳에 있으면 영혼이 더

러워져 집니다. 그러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곳에 가면 나도 은혜가 넘치게 되고, 깨끗

하고 정결한 곳에 가면 마음이 정화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유일한 길이

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찌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생명의 기쁨

과 평안과 위로를 누리기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좌우단간 어찌하든지 죽으나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약4:8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

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즉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자꾸 세상의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리게 하지 말고 어찌하든 하나님을 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해 주시면 당연히 하나님안에 있는 그 생

명과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은 저절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오늘말씀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은 포도나무

이시고 우리는 가지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

니까? 그건 말하나마나 죽으나사나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그래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안 그러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으나사나 우리의 줄기이신 즉 우리의 근본이며 기초이며 생명의 주권

자이시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

면 예수님께로부터 영적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을 충

분하게 공급받음으로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고 잎이 싱싱해지고 꽃이 실하게 피고 충실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5,6절에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

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이 주시는 능

력과 지혜로 생명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줄기를 떠나면 말할 것도 말라 죽게 되고 그러면 아무 쓸모없어 불태워 버

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으나사나 예수님께 붙어 있어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온전히 예수님께 착 달라붙어서 온전히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

분 주님께 딱 달라 붙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건 여러분 7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7절 보겠습니다.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보세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님이 우리 안에 있고, 동시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러면 너희가 구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른 말씀입니까?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면 내 말도 너희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

면 주님의 말씀도 당연히 우리 안에 거해야 하고 그러면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되고

그러면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으나사나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 이건 좀 추상적이예요.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보여줄 수도 없고,

만져 볼 수도 없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 볼 수도 없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압니까

?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선과 진리와 의

와 거룩을 따르고 그러면 그게 바로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으나사나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주님

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가치와 행동과 삶의

잣대여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삶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가까이하는 자의

삶이요,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2,3절에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

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

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죽으나사나 주님을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주님을 모셔들였

으면 더 이상 세상의 헛되고 왜곡된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오직 유일한 진리의 말

씀, 생명의 말씀이시며 인생의 유일한 등불이며 기준이며 안내자인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가 넘쳐

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어떤 은총을 누리게 됩니까?

3.천국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자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천

국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천국은 두가지 천국

이 있고, 예수님 믿는 사람은 이 두가지 천국을 동시에 누리게 됩니다.

물론 1차적으로 누릴 천국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죄에서 해방되고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래서 지옥

백성에서 천국백성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천지가 개벽을 해도 이것만은

먼저 얻어놔야 합니다. 그까짓 세상적인 부귀영화 영광 명예 아무리 얻어 놔봤자 별것 아

닙니다. 진정한 생명의 은혜도, 영광의 나라도, 진정하고 영원한 자유와 평안과 기쁨과

소망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완전한 생명의 은총을 주십니다. 영광의

나라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

수님이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천국은 지금 여기서 누리는 천국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은혜받고 천국

의 은총을 누리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과 지혜와 은혜를 주셔서 세상의 모든 어

둠의 세력과 마귀 사탄의 유혹과 시험과 도전을 이기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진

정으로 생명과 기쁨과 은혜를 주지 못하는 세상 영광이나 명예나 즐거움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게 얽매이지 않게 되고 끌려다니지 않게 됩니다. 오히

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십니다

. 그래서 진정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상

황과 환경과 환경에도 얽매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권세와 지옥의 권세와 세상

의 모든 왜곡되고 추하고 악한 것들에게서 자유하게 되어 지금 여기서도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적인 천국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둠의 권세에 얽매이고

상황과 환경에 얽매이고 온갖 시기와 질투와 욕심 가운데 살면서 아무리 가져도 만족함을

모릅니다. 도리어 싸우고 빼앗고 갈등하고 어떻게든지 더 가지려고 난리를 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세상의 것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명의 기쁨

과 은혜와 감격과 행복과 가치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 썩어지고 없어지고 우리

를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엄청나고도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영원하고 완전한 복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행

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심지어 우리 믿음의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세

상의 것은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엄청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것을 얻

으면 다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것을 갖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가진 자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을 얻은 것, 구원을 얻은 것, 이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뻐하지도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영광을 돌려 드리지도

못하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하찮은 것 때문에 걱정과 원망과 불평을

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믿음을 팔아먹고 세상의 것을 위하여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닙니다. 그건 정말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실상은 정 반대여야 합

니다. 믿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세상의 별 것 아닌 것, 세상의 대단치 못한 것 그런

것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예수님 때문에, 믿음 때문에, 구원의 은총 때문에 얼마든지 버려도 좋은 것들입니

다. 그게 손해인 것 같지만 손해가 아니고, 그것이 잃은 것 같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얻

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믿음 안에 있는 것, 대단한 것,

엄청난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껍데기를 위하여 알맹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더 나은 것을 위해서라면 덜 나은 것은 버릴 수 있지 않습니까? 더 좋

은 것을 위해서는 덜 좋은 것은 포기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덜 좋은 것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을 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대단치도 않은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하

여 참으로 가치있는 믿음의 행위를 포기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또 세상의 별

로 대단치도 않은 것을 좀 잃었다고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생각하며 절망하며 슬퍼하며

원망하며 산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의 별 것 아닌 것을 좀 잃었다고 마치 천국마져 잃어버린 것처

럼 탄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돈과 건강과 지식으로 부요하지 않더라도 설

령 있는 것마져 빼앗겼다해도 천국을 놓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실제로 모든 것을 가지

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16:25,26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

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

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

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예수님을 위하여 세상의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모든 것

을 얻을 것이고, 세상의 것을 위하여 예수님을 포기하는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잃을 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결단코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여기 누릴 현재적 천국

의 은총을 누리기 위한 것들과 세상의 것을 바꾸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정말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들이

고, 모셔들였으면 이제는 정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오직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의 별 것 아닌 것들에 끌려다니거나 거기에 함몰되

어 현재적인 천국을 누리기 위한 일들을 게을리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 안에 진정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오

직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 진정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능력과 평안이

넘쳐나는 삶이 되실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도전과 유혹을 이기고 자유의

평안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은혜가 사랑이 넘

치고 생기가 흘러넘치는 복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생이 되실 것입니다 주의 영광 나타

내며 주님 나라 이루어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정말 이런 복된 인생

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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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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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세째주일 낮설교 /사모하는 믿음 (August Sunday Sermon)


말씀 : 고전15:57,58

제목 : 사모하는 믿음


1.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복신앙 즉 복을 비는 신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기복신앙이라는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복신앙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믿음을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와 영광이나 건강이나 이런 세상적 물질적 육체적 복을 받기 귀한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렇다고 기복신앙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단순한 세상적 기복 신앙은 잘못된 것이지만 올바른 기복 신앙, 즉 올바르게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신앙은 당연하고 도리어 필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올바르게 복을 바라는 것도 자신의 책임이나 의무는 하지 않으면서 그저 천국에 가려고 하고 평안이나 누리려고 한다면 당연히 잘못된 믿음이지요. 그러나 참되고 올바르고 진정한 복을 사모하며, 그래서 더욱 열심히 주를 섬기고 수고하는 가운데 복을 받아 누리려는 것은 당연하고 도리어 우리가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신앙의 모습인 것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열심을 내게 되고 그래서 신앙에 발전이 있고 성숙해 지고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뭔가 바라는 게 없다면 어떻게 열심히 힘쓰고 애쓰겠습니다. 뭔가 바라보는 것이 있고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있어야 열심히 그것을 얻기 위하여 힘쓰게 되고 그러다보면 더 발전해 나가고 뭔가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공부를 해서 뭔가 좀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지요. 아무리 공부해도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면 누가 공부를 하겠습니까? 열심히 논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피땀을 흘려 일해도 수확할 것이 없다면 누가 그 고생을 하겠습니까?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그렇지요. 열심히 일하는데 아무런 보상도 없다면 누가 일하겠습니까?


믿음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예수님 믿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면 누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믿으면 뭔가 좋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바라고 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 믿으면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정말 예수님 안에서 바르게 진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면 분명히 이 땅에서도 평안과 기쁨과 위로도 받고 육체적 물질적으로 복을 받습니다.

 

물론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그야말로 완전한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르게 만나서 믿고 따르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생명과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면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실 것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고 그럴 때 더욱 은혜 충만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올바른 기복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진실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갈 때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지금 여기서도 영육 간에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그리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도 더욱 큰 상급을 주실 것을 믿고 열심히 성실하게 소망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 속에 살아가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영광의 나라의 은총을 아는 자요, 이런 사람이 순수한 마음과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순진한 아이들은 먹을 것을 보면 그거 하나 먹고 싶어서 눈을 떼지 못하지 않습니까? 또 그러다가 사탕하나 받으면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래서 사탕하나 얻어먹기 위하여 재롱을 떨기도 합니다. 그래서 1,000원 한 장을 사모하며 그것을 얻기 위하여 기꺼이 심부름을 합니다. 그러다가 1,000원 한 장 얻으면 너무나 기뻐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천원 알기를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 아이가 잘못된 것입니다. 적어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라면 뭔가 작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사모할 줄 알아야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예쁜 짓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얻기 위하여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그대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순수한 마음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은혜와 복을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그냥 단순히 간절히 사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모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전한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며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과 동행할 때에 그 심령 속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쳐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도 아름답게 이루어가며 주님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2:2절에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갓난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은 엄마 젖입니다. 속된 말로 엄마 젖만 있으면 장땡입니다. 그래서 갓난 아기들은 죽으나사나 엄마젖만 찾습니다. 그래서 결국 젖을 얻어먹고 만족함을 누리며 건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에게 정말 생명을 주고 은혜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주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사모하며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그 나라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먼저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고 주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복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가운데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순진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순전한 믿음에 큰 상급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신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뭐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고 생명이시고 기쁨이고 평안이시고 위로이시고 소망이신데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믿음으로 그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어찌 그 안에 있는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순전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복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다시 말해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경외하며 섬기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충성한 자들에게는 더 크고 영광스러운 상급도 보너스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계22:1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즉 예수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고, 그때에는 확실하게 우리가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는다는 것은 물론 벌 줄 자를 벌주고 상 줄 자를 상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상과 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은 현세적인 복입니다. 즉 지금 여기서 우리가 이 육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누리는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복입니다. 여러분 신28:2~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한마디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라 사는 사람에게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자녀가 복을 받고 토지의 소산이 복을 받고 짐승까지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지 않습니까?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주어지는 것입니다. 농부가 열심히 일을 하면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면 좋은 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운동을 하면 좋은 운동선수가 됩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사업을 하면 좋은 사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하면 반드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갓난아기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 주권, 능력, 은혜, 축복을 믿고, 그 안에 생명과 복과 은혜가 있음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면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이 땅에서도 좋은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를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죄와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과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환경과 상황을 이기게 하십니다. 진실한 마음과 성실한 자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실하게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경받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 땅에서도 많은 것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복을 누리지 않을 수 없고 물론 당연히 영원한 영광의 나라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상급은 열심히 성실하게 진실하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보상입니다. 반면에 우주만물의 창조주시오 주관자이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뜻을 거스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벌이 주어지는 것도 당연한 대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수없이 약속하셨고, 반면에 주님의 뜻을 거슬러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을 수없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진정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이 주실 상급과 칭찬을 바라보며 열심히 성실하게 진실하게 주님 뜻대로 충성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질 이 땅에서의 축복과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의 그 무한히 영광스러운 상급을 사모하면서 열심히 주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여기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도 큰 상급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복을 받으려면 열심히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순진한 마음으로 복을 받기를 원하고 상급을 받기를 원한다면 물론 그 상을 받기 위하여 열심히 충성해야 합니다. 오늘 5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장의 말씀은 소위 부활장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앞부분에서는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모든 육체는 부활한다, 불신자는 죽음의 부활로 나타나 영원한 형벌가운데 처하고,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은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왕노릇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57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부활의 승리를 주신, 그래서 영원한 승리와 영광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로 그러기 때문에 그날을 바라보며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수고에는 반드시 상급이 있을 것이므로 장차 주께서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일으키셔서 영원한 영광의 기업을 누리게 하실 그날을 바라보며 주님의 일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부활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생명의 부활로, 어떤 이는 죽음의 부활을 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상과 벌이 확실해 집니다. 어떤 이는 완전한 형벌 가운데 처하고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음을 지키고 주님이 주실 큰 상급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순진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또한 그런 삶에 힘이 있습니다. 희망과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강하고 담대하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신 사명을 감사와 기쁨으로 열심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역사도 힘 있게 이루어가며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생명과 진리와 선과 의와 위로와 소망이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데 주님이 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위로와 소망으로 채워주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 엄청난 영광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를 바라보면 왜 희망과 소망과 힘과 용기와 위로와 기쁨이 솟아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생은 진정한 평안도 기쁨도 소망도 누릴 복도 없습니다. 설령 나름대로는 평안과 소망과 복이 있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평안과 소망과 복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들입니다. 그야말로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이지요. 아니 그냥 일장춘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이 바라보는 그것들의 노예로 살기 십상입니다. 혹시 끝까지 그런 희망과 소망 속에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순간들이 일식간에 끝나고 마침내 주님 앞에 섰을 때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롬8:24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또한 벧전1:24,25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보이는 소망 즉 세상의 모든 물질과 권세와 부귀영화는 풀의 꽃과 같은 것이기에 금방 시들고 마르고 썩어 없어질 것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결코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고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 줄 그 하늘의 소망만이 완전한 소망이요, 그때 받을 상급만이 완전한 상급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결코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만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실 이 땅에서의 진정한 복, 나아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주실 그 영광스러운 복을 간절히 사모하며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한 참된 기대와 소망 속에서 정말 갓난아기와 같이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진정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간절히 사모하는 가운데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세상에서도 진정한 희망과 소망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다가 마침내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주님의 약속된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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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주일낮설교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봅시다 (August Sunday Sermon) 


제목 : 유혹 앞에서

성경 : 마4:1-11

 

1.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요즘에 보면 상대적 빈곤감 또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보면 즉 실제로는 빈곤한 게 아닌데 많이 가진 자들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여기고 박탈감을 느끼면 불평불만을 하게 되고 그래서 자존감도 잃어버리고 진짜로 가난한 자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바보 같은 일입니까? 실상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하필이면 없는 것을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이 가진 것을 보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며 가지고 있는 것도 누리지 못하고 진짜로 가난한 자처럼 기쁨을 모르고 산다면 이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딨습니까?

그럼 왜 그렇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꾸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월급 200만원도 못 받는데 남이 300만원 500만원 1,000만원 받으니까 저 사람은 무슨 복이 많아서 머리가 좋아서 일류대학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고 출세하여 잘먹고 잘사나, 저 사람은 무슨 복이 많아서 부잣집에 태어나서 저렇게 좋은 조건 속에서 온갖 좋은 혜택을 누리며 잘먹고 잘사는데 나는 왜 쎄가 빠지게 일해도 이 모양인가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저항하고 시비를 걸고 그래서 결국 스스로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남이 월급을 1,000만을 받든 1억을 받든, 대궐 같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온갖 사치를 누리든 그런 거 배 아파하지 말고 그냥 하나님 앞에서 믿음 안에서 성실하게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누리고 있는 것 자체를 보면 우리는 결코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힘든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이 정도면 먹고 살만한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셨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영원한 영광까지 주셨습니다. 그럼 됐지 자꾸 더 바라고 욕심을 내고 비교하며 원망하고 불평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그럴 일이 뭐 있습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행복은 자꾸 도망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세상이 그렇지를 못합니다. 완전히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서 그저 좋은 집에서 좋은 것 먹으며 좋은 옷 입고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할 줄 압니다. 그래서 죽어라하고 돈돈돈 경제경제경제하면서 온통 관심의 초점을 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물질적 외형적인 것만 남과 비교하며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많은 갈등과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게 바로 마귀사탄의 역사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치 옛날에 나라에 시끄러운 일이 있으면 소위 북풍이라고하여 작은 일을 크게 부풀리든지 없는 일을 만들든지하여 북한 공산당이 무슨 큰 일을 저지른 것처럼 하여 국민들의 관심의 초점을 그쪽으로 돌리게 함으로 시끄러운 일을 잊어버리게 하려고 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귀사탄이 우리의 관심을 온통 돈에게 두게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이니 사랑이니 진리니 의니 선이니 이런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잘먹고 잘살면 장땡이라고 여기며 예수님도 안 믿고, 심지어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보다 돈을 좋게 여기게 만들어 자꾸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돈을 따라감으로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깨어 기도하며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마귀 사탄의 유혹에 속지 말고 진리를 따라 살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5:16~18절을 보겠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러분, 보세요. 세월이 선하다고 했습니까? 악하다고 했습니까? 악하다고 했습니다. 악한 게 뭡니까? 죄와 무지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저 돈과 명예와 권력과 세상 즐거움에 빠져 사망 길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러니까 우리는 주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려면 세상의 것에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올바르게 판단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짓되고 왜곡된 것들을 물리치고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왜곡된 가치관이 만연된 세상에서 정말 깨어 기도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 올바른 영성을 가지고 모든 왜곡된 가치관과 유혹을 바르게 분별하고 물리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까?

2.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왜곡되고 유혹 많은 세상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지요.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시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 안에 있을 때만이 세상의 모든 죄와 유혹과 왜곡된 가치관과 악한 것들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 더럽고 추하고 악한 마귀 따위에게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까?

물론 왜 이유가 없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마귀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분임을 명백히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최초의 인간 아담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와 유혹을 물리침으로 마귀에게 저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리러 오신 분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함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능동적으로 시험에 임하셔서 사탄을 호통을 쳐서 쫓아내심으로 사탄의 권세룰 물리치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마귀에게 속아 죄와 무지 가운데 빠진 인생은 결코 자기 힘으로는 죄와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선이나 진리나 의에 대한 온전한 분별력도 없고, 악을 이길 힘도 없습니다. 자신이건 남이건 죄과 마귀와 지옥의 권세에서 건져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과학이나 다른 어떤 능력이나 지혜로도 안됩니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으나사나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임으로 그 안에 있으면 안전한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넘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설령 사탄 마귀가 도전해도 주님의 능력으로 이기게 됩니다. 사탄 마귀가 어떻게 교묘하게 유혹하고 시험하고 도전해도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분별하고 물리치게 됩니다. 세상의 왜곡되고 그럴듯한 가치관에 속지도 않고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 따위에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세상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게 밀려와도 휩쓸려가지 않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그런 것들을 이기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기쁨과 자유와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5:5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지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서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심으로 세상의 모든 죄와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물질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가장 먼저 이겨내야 할 시험은 물질의 시험입니다. 사탄은 온갖 방법으로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하는데 가장 흔한 것이 물질을 통한 유혹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간사한 마귀가 심지어 예수님께도 물질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즉 40일 동안이나 금식하여 주리신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린 배도 채워서 좋고 권능을 보여주면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될 거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런 수작이 예수님께 통할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말을 듣고 사탄을 꾸짖습니다. 마4: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한마디로 떡 즉 물질이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물질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좌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영생복락의 말씀인데 그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고 썩어 없어질 물질이 지배하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생명의 길도 진리의 길도 모르고 썩어 없어질 물질만 따라가다가 영원한 멸망길로 가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내가 배가 고프고 힘든 건 사실이지만 너 따위의 말은 들을 수 없다며 사탄의 교묘한 물질적 유혹을 일축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물질은 요긴한 것이긴 하지만 절대로 물질이 내 삶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물질적 가치에 의하여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그 말씀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당연히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세상은 물질지상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믿음이나 사랑이나 진리나 의보다는 물질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 때문에 싸우고,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도 합니다. 물질 때문에 이웃과 친구와 심지어는 가족 간의 관계가 파괴될 때가 많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물질 때문에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풍조가 세상을 뒤덮고 있어서 그게 도리어 정상인 것처럼 여겨질 지경입니다. 그러나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건 속고 있는 것입니다. 껍데기에 인생을 거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껍데기에 지배당하는 인생은 당연히 진정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 지를 잊지 알고 더욱 깨어 기도하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며 말씀으로 무장하여 물질보다 오직 주님을 앞세우시기 바랍니다. 물질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내 삶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과 믿음과 사랑과 진리와 선과 의의 참된 가치를 앞세우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참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명예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여러분, 마귀는 물질적 시험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예수님의 명예욕을 자극시켜며 유혹합니다. 즉 성전 꼭대기로 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붙들어 다치지 않게 하실 것이고, 그러면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웅대접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그런 수작에 넘어갈 분이 아니시죠. 그래서 또 마귀를 꾸짖습니다. 마4: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내가 너 따위의 말을 듣고 여기서 뛰어 내린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게다가 여기서 뛰어 내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사탄 따위의 말을 듣고 뛰어 내린다는 것 자체가 그 말에 순종하는 것이니 수치가 아니겠습니까? 설령 뛰어 내려서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할지라도 마귀의 말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 그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한다면 그게 바로 사탄의 말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설령 돈보따리가 생긴다해도 마귀 따위의 말에 순종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마귀의 말에 의해서든 아니면 자기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든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전에서 뛰어 내리는 행위는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의 방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있다면 마귀의 말처럼 뛰어내릴 때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면 자신이 영웅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런 방법으로 명예를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명예를 주는 것이지 영웅심리를 가지고 쓸데없이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지켜 줌으로 영웅이 되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게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이 지켜 주실 만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해 주실지 안 해 주실지 한번 테스트해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무모하게 행동하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말씀에 합당하게 믿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이게 올바른 믿음이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명예와 영광도 아울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비롯하여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무엇을 하든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코 영웅심리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무언가를 행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명예도 얻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영적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이 실패로 끝나자 마지막으로 사단은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영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높은 산으로 가서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모두 주겠다는 것입니다. 즉 그저 눈 한번 질끈 감고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만국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탄이 그럴만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 까짓 게 무슨 그런 권세가 있습니까? 그저 예수님이 지금 40일동안이나 전혀 아무것도 안 잡수시고 약해져 있으니까 이 약해진 틈을 노려 어떻게든 예수님을 넘어트리려고 술수를 쓰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수작이 예수님께 어떻게 씨알머리나 먹히겠습니까? 예수님은 사탄을 향해 호통을 치십니다. 마4:10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내 지금 비록 힘이 들어도 어딜 감히 나한테 수작을 부리느냐? 오직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거늘 어찌 더럽고 추하고 악한 너 따위에게 경배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사탄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나에게 절하라. 그러면 천하만국 즉 명예와 권세와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온갖 우상을 섬기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돈과 명예와 권세와 세상 즐거움을 미끼로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신은 없다고도 했다가 신은 똑같다고 하면 믿지 말든지 아무거나 적당히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 돈과 명예와 권력에 행복이 있다. 그걸 소유하라. 그러면 행복하리라고 하면서 우리를 미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그 길로 갑니다. 자기 생각대로 갑니다. 그저 돈돈돈 경제경제경제 하면서 삽니다. 그게 바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모습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볼때에 보기에도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고 먹으면 뭔가 지혜와 생기를 얻을 것처럼 보여 덜커덕 따 먹음으로 죄의 굴레를 뒤집어썼던 것처럼 지금은 더 크고 더 좋은 선악과들이 세상에 널려 있어서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게 쉽사리 걸려들어 선악과 따먹으며 죄의 길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그 소리에 속으면 안됩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향락이나 세상의 가치관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안됩니다. 그건 죽음의 길입니다. 오직 우리가 경배해야할 분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뿐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뿐입니다. 세상의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생명과 기쁨과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특별히 사순절을 보내면서 더욱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묵상함으로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시험을 이기고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을 온전히 맛보며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신 생명의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가 갈 수 이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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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말씀 : 고전10:31-33

제목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여러분, 사람이든 물건이든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무엇인든 본래 그것을 만든 목적에 부합되는 상태를 유지하고 그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TV가 아무리 크고 디자인이 좋아도 영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자동차가 아무리 크고 멋있어도 잘 달리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인물이 훤하고 키가 크고 능력이 많아도 사람 노릇 제대로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지식과 능력과 부와 명예와 권세가 있어도 그걸 본래의 목적에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 유익은커녕 도리어 그걸 잘못 사용하면 인간의 삶에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존재의 목적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생명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거기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정말 멋있고 아름답고 가치 있고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고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존재의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1.인간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 뭐 있냐 잘 먹고 잘 놀고 잘살면 되지 그럽니다. 기왕이면 부귀영화도 누리고 명예도 누리고 그래서 떵떵거리며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그게 인생이지 그럽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잘먹고 잘살기 위하여 인생의 모든 것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부귀영화 누리면서 살다가 죽으면 대단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누구 맘대로 그게 인생이라고 그럽니까? 그건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인생이지 결코 그게 인생이 아닙니다. 여러분, 인간의 목적은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만들어진 존재가 어떻게 자신의 목적을 정합니까? 텔레비전이 자기가 목적을 정했나요? 밥그릇이 나는 밥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지 하면 자기가 목적을 정하고 만들어졌나요? 사람이 태어나면서 나는 이런 인생이 되어야지 하면서 스스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나요? 아닙니다. 물건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정하고 우리의 목적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그건 사43:7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같이 보실까요?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무엇이 인간의 목적이라고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어졌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자세히 말하면 길어지니까 간단히 말씀드리면 첫째는 직접적인 의미로서 우리를 지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찬양하여 섬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간접적인 의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능력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되게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에서 인간도 자연도 하나님의 은혜를 흡족하게 누리며 살아감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의미와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은 인간은 무조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말하면 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약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우주만물의 창조주로서 전지전능하시고 영화로우시고 완전히 거룩하고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사랑과 은혜만이 충만하신 하나님께 어찌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리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걸 모르는 인생이라면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모르는 자로서 결국 하나님의 은총에서 끊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 때에 세상은 가장 아름답고 복된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행하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무엇을 하든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길을 따르게 됩니다. 선과 진리와 의를 따르게 됩니다. 목적도 방법도 의도도 선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바르게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영광이 돌려지고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내 영광을 위하여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죄와 무지 속에 있는 내 생각과 방법과 경험과 지식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물론 옳은 것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죄와 무지가운데 있기 때문에 선하고 아름답고 귀한 목적과 방법과 의도를 가지고 하지 못하고 잘못된 목적과 방법과 의도를 가지고 하기가 십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기도 하고 헛된 것에 인생을 바치기도 하고 그저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위해 하다보니까 시기와 질투와 분쟁과 싸움이 일어나 결국은 서로 아픔과 고통과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삶을 살 때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하게 엎드려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행할 때에 선과 진리와 의를 따름으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 경험과 지식과 이성이나 세상의 왜곡된 풍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여러분도 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모든 행위를 하나님의 영광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을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인지 혹은 가리는 일인지를 깊이 생각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3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보십시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며 행위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본능적인 욕구나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살기 위해서 먹는다거나 아니면 식탐을 채우기 위하여 먹는 것이 아니라 먹음으로 건강을 유지하여 그 건강한 육신으로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 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의식주 생활도 정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방법으로 영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멀리까지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기도 합니다. 또 일인분이 몇 만원, 몇 십만원씩하는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기도 합니다. 혹은 몇 만원짜리도 수두룩한데 굳이 몇 십만 몇 백만 원짜리 옷을 입기도 하고, 그저 삼십여평만 되어도 충분할 것 같은 데 굳이 몇 십 평짜리 집에 살면서 온갖 비싸고 좋은 것들로 장식을 하고 호화롭게 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들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일일까요? 어떤 분들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 돈 잘 벌어서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왠 잔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능력도 지혜도 여건도 환경도 상황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필요이상으로 크고 화려한 곳에서 살며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옷 입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과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므로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적당한 수준에서 검소하게 의식주생활을 하면서 내 영광과 내 기쁨을 위하여 사용하는 그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뭐 기타 지식이나 권력이나 지위나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은 드리고,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사용하고, 이웃을 위해서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남에게 생명의 기쁨을 가져다주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고 우리도 귀하고 복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가장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는 일 조차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말을 할 때나 공부를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직장 생활을 할 때나 결혼을 할 때나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대전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고 여러분도 주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남을 세워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일 중의 하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그건 다름 아니라 남을 세워주는 자 즉 남에게 힘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과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가져다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인데 어떻게 그 귀한 존재를 아프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겠습니까? 또 그렇게 서로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고 넘어지게 하면 서로가 얼마나 힘들겠으며 또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서로 사랑하고 세워주고 위로하고 힘을 주고 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지겠으며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겠습니까?

 

오늘 32,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남을 걸려 넘어지게 만들고,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주는 자가 아니라 기쁨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자라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뭐 당연하지요.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 세워주고 위로하고 힘을 주고 유익을 줄때에 우리 모두가 함께 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내 식구나 남의 식구나 할 것없이 누구라도 걸려서 넘어지게 하고,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 자가 아니라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복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의무이고 그게 우리가 서로 행복한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 반대로 행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오직 자기 영광을 위하여 남을 넘어뜨리고라도 자신의 유익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기치고 도적질하고 싸우고 때리고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줄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입니까? 이건 우선은 교인들을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막는 행위와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결코 이런 우를 범하지 말고 서로 정말 사랑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사랑과 진리와 의 안에서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삶의 자리에 있든 자신이 있는 삶의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정직하고 모범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갈등과 시기와 질투와 아픔을 주는 자가 아니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이 사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우리들도 생명의 은혜가 가득한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꼭 이런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영혼구원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남을 유익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남을 가장 유익하게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아니라 복음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유익한 것입니까? 물론 생명이지 않습니까? 온 천하를 얻어도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니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으며 이보다 기쁨과 유익과 은혜를 주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33절 다시 보십시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어찌하든지 남을 유익하게 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여 구원의 길로 이끌라는 말씀입니다. 즉 남에게 유익을 주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만약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먹을 것을 주고, 입혀주고, 병을 고쳐주는 일들은 그것대로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기에 그런 일도 중요하고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그러나 단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구원을 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남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에 보다 더 관심과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가운데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에서 누려야 할 영적,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 은혜도 누리다가 결국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 인생을 전인적으로 영원히 유익하게 하는 일이요, 행복하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해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사순절과 대강절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평소에도 해야할 일이고 또 평소에 사랑과 거룩과 진실과 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그 선하고 아름답고 의로운 모습을 보면서 주님품으로 오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결정적으로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게 하고 예수님 믿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적이요 이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유익과 기쁨과 은혜를 주는 일이요. 이것이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해드리는 길이요, 이것이 우리가 생명의 은총을 가장 풍성하게 누리는 길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부하고 일하고 힘쓰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남을 기쁘게 하고, 남의 유익을 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열심히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려 드리는 가운데 여러분도 더욱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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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제목 : 성령을 따라 행하라

말씀 : 갈5:16-24

1.육신의 지배 속에 사는 인생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납니다. 살인사건, 성폭행사건, 폭력사건, 강도사건... 또 국가 간에도 전쟁과 억압과 착취와... 심지어 옛날에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노예를 삼아 짐승처럼 부려 먹기도 하고.... 하기야 요즘에 보니까 어떤 섬에서는 외국인들을 데려다가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임금도 제대로 안주고 부려 먹기도 한다는 군요. 하기야 남나물 콩나물 할게 뭐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서로 편이 갈라져 쌈박질이나 해대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왜 비 인간적이고 비 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많은 인생들이 육체에게 지배당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신과 영혼이 심각하게 병이 들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육신의 소욕의 노예가 되어 인간이하의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19-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마땅히 영혼이 마음과 몸을 다스리며 아름답고 가치있게 살아가야 하는데 정신과 영혼이 죽어 있어 육신의 지배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온갖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체’라는 단어입니다. 이 육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savrx(사르크스)인데 이 말은 단순히 육체를 가르키는 말이 아니라 몸과 더불어 거기에 깃들여져 있는 어떤 육체적, 정신적 욕망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라고 말할 때 육체의 일이란 단순히 몸으로 하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육체의 정욕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바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한 것 등등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서 우리는 우리인생에게 발생되는 문제의 원인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일들이 저질러지고 있느냐하면 우리 인간이 육신의 정욕에 지배당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마땅히 육신과 정신이 영혼의 지배를 받아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영혼이 죽어 있어 육과 정신이 미쳐서 엉뚱한 짓들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인간으로서의 참된 가치와 의미와 기쁨과 고귀함을 누리지 못하고 무가치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인생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21절 하반절 보세요.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어떻게 된다고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영혼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로봇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통제 안에서 움직일 때만이 올바른 기능을 하게 됩니다. 로봇을 구성하고 있는 몸체들이 제작자가 구성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일 때에 로봇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고장나 로봇의 몸체들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이 로봇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고쳐서 쓸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말썽을 부리면 폐기처분 당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통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과 몸이 영혼의 통제를 받아 움직일 때 인간은 올바르게 제 기능과 역할을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는 복되고 가치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고장난 로봇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음행과 술수와 우상숭배와 원수 짓는 것과 분쟁과 술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수많은 죄악들이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이 문제의 핵심이 육체의 소욕이 영혼의 지배를 떠나 제멋대로 움직이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저와 여러분은 결코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삶이 되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주셨던 그 순수한 영혼이 여러분을 지배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영혼이 우리의 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올바르게 이끌어 감으로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은혜의 길을 잘 달려가 주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가치를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가져다 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육신의 지배를 벗어던지고 영혼의 지배를 따라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16,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우리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죄된 본성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를 끊임없이 죄의 길로 내 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좇아 행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에게도 죄된 육신의 소욕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음으로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이 죄된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끊임없이 자신 쳐서 복종시켜 성령의 소욕을 따르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지요. 죄된 본성이 우리에게 있고, 그것이 우리를 자꾸만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게 하는데 그러기에 어찌 하든지 성령의 소욕을 따라야 하겠는데 그 놈의 죄된 본성 때문에 그게 잘 안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어찌하든지 우리의 심령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워서 죄된 본성을 쫓아내서 그것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는 무엇이 나를 사로잡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내 안에 가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전자에 맑은 물이 들어 있으면 맑은 물이 나오고, 흙탕물이 들어 있으면 흙탕물이 나옵니다. 단물이 들어 있으면 단물이 나오고, 쓴 물이 들어 있으면 쓴물이 나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들어 있으면 사랑이 나오고, 미움이 들어 있으면 미움이 나옵니다. 원망과 불평이 들어 있으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감사가 들어 있으면 감사가 나옵니다. 성령이 가득차 있으면 성령의 행실이 나오고, 세상의 영이 가득차 있으면 세상의 행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5:17,1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육체를 따라 세상의 엉뚱한 것을 따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성령님이 충만하니까 당연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은혜의 길로 잘 달려가 생명의 은총을 온전하게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지배를 벗어던지고 성령을 좇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려면 어찌하든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생활을 통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리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지배 속에서 의의 길, 진리의 길을 달려갈 때에 더욱 은혜와 기쁨과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의 모습.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지배가운데 들어가면 이제는 새로운 삶이 전개됩니다. 전에 육체의 지배를 받던 삶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존재, 새로운 가치, 새로운 목표, 새로운 방향, 새로운 방법을 가지고 인생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난 삶인 것입니다.

고후5: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나를 억누르고 있던 옛주인 마귀사탄이 쫓겨나가고 진리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새 주인이 되므로 육신의 소욕을 따르던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임하시면 전혀 새로운 인생이 전개됩니다. 과거에는 사탄의 권세 아래서 내가 주인 노릇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사탄이 주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속아 내 이성과 지성과 경험대로 살면 내가 왕노릇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는 대로 행했습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길로 갔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습니다. 내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했습니다. 세상이 가는대로 갔습니다. 세상의 조류를 따라 흘러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인생이라고 여겼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고 죽어라고 그 길이 맞다고 여기며 고집을 피우며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도리어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하며 심지어는 핍박하며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이것인 바로 육신의 소욕을 따라 죄의 노예로 살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생명의 영이시며, 진리의 영이시며, 은혜의 영이신 성령이 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쫓겨가고 죄의 권세가 물러갑니다. 마귀사탄의 역사로 내 안에 들어와있던 죄와 어둠과 죽음과 권세가 물러갑니다.

그런 죄와 어둠과 마귀의 권세가 물러가니 영혼과 마음과 눈과 귀가 밝아집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것이 바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추악한 모습들이 밝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천국과 지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광이 나라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드디어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게 됩니다.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해 집니다. 그래서 드디어 생명의 열매, 사랑의 열매, 기쁨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육신의 소욕을 물리치면 세상의 온갖 죄되고 잡다한 것들이 물러가고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령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열매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거듭남입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알고 믿고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면 죄사함과 새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이 핵심적인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은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새생명을 얻게 되면 그 새생명을 가진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와 거룩함을 향하여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바랍니다. 더욱 깨어 기도하며 말씀묵상하며 열심히 찬양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빛의 은혜를 받으려면 빛을 가까이 해야 하지 않습니까? 물을 마시려면 물가로 가야하지 않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가야하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어디에 임재하십니까? 말씀과 기도와 찬양하는 곳에 임재하시지 않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쓸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말씀을 전할 때에 그 가정에 성령이 임재하지 않았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을 정말 더욱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힘씀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더욱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성령충만함을 받아은 생활과 열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주일임과 동시에 어버이 주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성령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은 것을 방언받고, 병고치는 은사받고, 예언하고 맨날 기도나 하고 찬양이나 하고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만약 거기서 끝난다면 그건 성령 충만 받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지배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당연히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마땅히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부모님 공경이 인간에 대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입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러므로 부모님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제아무리 기도 잘하고 찬양 잘하고 예배 잘 드려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 관계에 대하여 주신 첫 번째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며 어찌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이라 하겠습니까?

여러분, 다시한번 말씀드리거니와 성령 충만함은 결코 기도와 찬양과 말씀과 예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의 삶속에 접목시켜야 합니다.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가정생활, 사회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성령충만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주일이며 동시에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이제는 더 이상 죄와 무지와 어둠 가운데 있는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우리를 언제나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아래로 사람들을 잘 섬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충만히 맺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웃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 함께 생명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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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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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주일오전예배설교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봅시다 (August Sunday Sermon)

제목 :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시다

말씀 : 벧후3:8~13

 

1.인간은 주인이 아닙니다.

여러분,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세월아 비켜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여기서 사랑이란 물론 하나님 사랑이나 이웃 사랑이 아니라 물론 남녀간의 사랑이겠죠. 물론 뭐 나이가 좀 있다고 너무 나이 타령만하지 말고 열심히 사랑도 하고, 활기차게 살아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 솔직히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실은 그 내면 속에는 마음은 청춘인데 나이는 속일 수 없어 애석해하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를 하면서 나이를 이겨 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거죠.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나이를 이겨 보려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별 것 아닌 것에 미련을 두고 늙기 싫어서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하나님 일 하기에 딱 좋은 나인데 그러면 몰라도.... 또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있더라고요.

육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여러분, 어떻습니까? 재밌습니까? 그런데 이건 올바른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는 노래가 아닙니다. 안 그래요? 누구 맘대로 아직 못가고, 누구 맘대로 알아서 가고, 누구 맘대로 좋은 날 좋은 시에 갑니까? 여러분, 이건 완전히 뉴에이지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래입니다. 뉴에이지는 새시대란 뜻인데 좋은 뜻으로 새시대가 아닙니다. 완전히 인본주의적인 새시대입니다. 옛날에는 인간이 무지해서 신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제 신에게 속박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우주의 주인으로 인간의 이성과 능력과 지식으로 세상을 지배하며 얼마든지 좋은 세상 만들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열심히 자기를 갈고 닦으면 고차원적인 세계를 누릴 있는데 그게 구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바로 이런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감히 누구한테 못간다고 전합니까? 한번 훅 불면 끝날 존재가 감히 누구맘대로 가고 싶으면 가고 안가고 싶으면 안갑니까? 물론 그냥 좋은 시절 오래살고 싶은 소망이 담겨져 있는 노래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인간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제맘대로 오래오래 세상 것 실컷 즐기며 잘먹고 잘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뉴에이지적 발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내 마음대로 왔다가 내 마음대로 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와서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진 시간 동안 살다가 언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할 존재입니다. 눅12:20절 보세요.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또 약4:14절을 보십시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니까 인간은 정상적인 수명을 누린다해도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고 게다가 지금이라도 부르면 꼼짝없이 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저 자기 한몸 잘먹고 잘살기 위하여 제아무리 기를 쓰고 모아봤자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단순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심판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저 자신의 무지하고 왜곡된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자기 육신의 안일함과 평안함과 부귀영화를 위하여 사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고 오직 겸손하게 엎드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바르게 삶으로 여기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고 언제라도 부르시면 할렐루야 찬양하면서 영광의 나라로 가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는 정말 작은 존재요, 세상의 것은 금방 다 썩어지고 없어질 것이요 우리는 곧 하나님 앞에 가야할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과 사랑과 선과 의가운데 주님과 동행함으로 여기서도 진정한 소망과 기쁨가운데 살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먼저 오늘 8,9절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니까 세상의 많은 죄와 무지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 짧고 보잘것없는 지식과 생각을 가지고 ‘천국도 없고, 주의 재림도 없다.’ 그러는데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주님이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다시 오시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오셔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시고 믿음 안에서 의를 따라 산 사람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진노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들을 오직 믿음과 선과 진실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맞을 준비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시고, 다시 오실 때 우주의 종말이 옵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믿음을 따라 산 사람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십니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그 짧고 무지한 이성과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이걸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무슨 꾸며낸 이야기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인간이 죄와 무지 가운데 있어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단순히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지식으로 본다면 천국이나 재림이나 지옥이나 이런 것들은 말도 안됩니다. 도무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인간의 이성과 지식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과 경험과 과학과 논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우주의 모든 물질과 경험과 지식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짧은 지식과 경험과 고학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말씀하신 천국과 지옥을 판단하려고 한다면 이건 벌레가 사람을 판단하려는 것보다도 더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님이 곧 오실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금방 오신다면 말씀을 기록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10년, 20년, 30년, 50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주님의 말씀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지가 벌써 2,000년이 지났는데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신다 오신다 그러더니 벌써 2,000년이 지났는데 봐라 아직도 안 오시지 않느냐? 그런데 재림은 무슨 재림이냐?’ 하면서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도 역시 인간의 무지몽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8절 보십시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길어봐야 100년 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천년이 엄청난 시간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순간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기준으로 빨리 오시니, 오시지 않느니 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떠들어대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눈으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 대하여 우리가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은 그것은 지연이 아니라 주님이 한 영혼이라도 더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9절 말씀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님의 때에 주님이 정한 수가 차면 천군천사를 대동하고 큰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중에 강림하셔서 심판할 자를 심판하고 구원할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날 결국 우주의 종말이 오고 기존의 질서는 완전히 사라지고 신천신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는 모든 고통과 아픔과 슬픔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24:30절에 보면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그 짧고 무지하고 한계속에 있는 생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말씀과 은혜와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다시 오실 때에 할렐루야 찬앙하며 영광을 돌려 드리고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을 알고 믿고 살아야 하고 그렇게 주님의 재림과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을 것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경건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일단은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당연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려면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거룩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예수님 믿고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 천국백성이 되면 마땅히 천국백성의 삶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인데 거듭났다고 하면서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 믿고 거듭나 생각과 가치관과 목적과 방향이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까? 목적과 방향이 다른데 세상 사람들과 같이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11절에서 말씀하시 ㄴ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즉 예수님이 오실 것이고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이 건설될 터인데 이것을 알고 믿는다면 거룩하고 경건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 하나님이 욕을 먹게 되고, 교회가 조롱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우리가 도리어 하나님 나라의 문을 막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거룩하게 아름답게 진실하게 의롭게 살아가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도 세상에서 인정받고 귀히 여김 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도 저절로 이루어 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2:1절에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바른 예배생활 가운데 진실하게 성실하게 의롭게 선을 행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 자신이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 받으며, 주께 영광을 돌려 드리며, 사람들에게도 감동감화를 줌으로 그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잘했다 칭찬받고 상급 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사모합니까? 좋은 것을 사모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좋지 않을 것을 바라고 사모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오직 영광과 기쁨과 은혜만이 가득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야말로 지상낙원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거기에 소망을 두고 감사와 기쁨과 희망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12,13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여러분, 정말 당연하지 않습니까?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의 진정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소망이요 기쁨이요 행복이 아닙니까? 정말 도대체 세상의 무엇이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주겠습니까? 물론 세상에도 그런대로 상대적으로 좋은 것도 있고 사모할 것도 있고 바라볼 것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행복과 기쁨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정말 별거 아닙니다.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주지도 못하고 그나마 잠시잠깐후면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걸 바라보며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게다가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진정한 소망과 위로와 기쁨과 평안을 주는 곳은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말할 것도 없이 그저 세상의 것에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죽자 사자 그것만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게 인생을 바치게 되고 세상의 것들의 노예가 되어 참된 행복과 안식도 누리지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 영원한 형벌가운데 처하는 불쌍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 그 나라를 향하여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거룩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얼마든지 이기게 됩니다.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도 않고, 모든 욕심과 욕망과 원망 불평 미움 근심 걱정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물질과 사람과 세상 영광과 명예와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설령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조차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진정하고 영원하고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가 주인공이고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자기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따라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고집대로 물질주의 이기주의에 빠져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산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머잖아 오시든지 아니면 내가 먼저 주님 품으로 가든지 이제 곧 우리는 주님 앞에 서게 되고, 그 때에 행한대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거룩하게 의롭게 진실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혹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세상의 모든 것들은 머잖아 종말을 고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소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그 소망으로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도 말고 진정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므로 여기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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