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주일오전예배설교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봅시다 (August Sunday Sermon)

제목 :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시다

말씀 : 벧후3:8~13

 

1.인간은 주인이 아닙니다.

여러분,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세월아 비켜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여기서 사랑이란 물론 하나님 사랑이나 이웃 사랑이 아니라 물론 남녀간의 사랑이겠죠. 물론 뭐 나이가 좀 있다고 너무 나이 타령만하지 말고 열심히 사랑도 하고, 활기차게 살아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 솔직히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실은 그 내면 속에는 마음은 청춘인데 나이는 속일 수 없어 애석해하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를 하면서 나이를 이겨 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거죠.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나이를 이겨 보려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별 것 아닌 것에 미련을 두고 늙기 싫어서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하나님 일 하기에 딱 좋은 나인데 그러면 몰라도.... 또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있더라고요.

육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여러분, 어떻습니까? 재밌습니까? 그런데 이건 올바른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는 노래가 아닙니다. 안 그래요? 누구 맘대로 아직 못가고, 누구 맘대로 알아서 가고, 누구 맘대로 좋은 날 좋은 시에 갑니까? 여러분, 이건 완전히 뉴에이지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래입니다. 뉴에이지는 새시대란 뜻인데 좋은 뜻으로 새시대가 아닙니다. 완전히 인본주의적인 새시대입니다. 옛날에는 인간이 무지해서 신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제 신에게 속박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우주의 주인으로 인간의 이성과 능력과 지식으로 세상을 지배하며 얼마든지 좋은 세상 만들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열심히 자기를 갈고 닦으면 고차원적인 세계를 누릴 있는데 그게 구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바로 이런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감히 누구한테 못간다고 전합니까? 한번 훅 불면 끝날 존재가 감히 누구맘대로 가고 싶으면 가고 안가고 싶으면 안갑니까? 물론 그냥 좋은 시절 오래살고 싶은 소망이 담겨져 있는 노래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인간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제맘대로 오래오래 세상 것 실컷 즐기며 잘먹고 잘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뉴에이지적 발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내 마음대로 왔다가 내 마음대로 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와서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진 시간 동안 살다가 언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할 존재입니다. 눅12:20절 보세요.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또 약4:14절을 보십시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니까 인간은 정상적인 수명을 누린다해도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고 게다가 지금이라도 부르면 꼼짝없이 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저 자기 한몸 잘먹고 잘살기 위하여 제아무리 기를 쓰고 모아봤자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단순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심판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저 자신의 무지하고 왜곡된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자기 육신의 안일함과 평안함과 부귀영화를 위하여 사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고 오직 겸손하게 엎드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바르게 삶으로 여기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고 언제라도 부르시면 할렐루야 찬양하면서 영광의 나라로 가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는 정말 작은 존재요, 세상의 것은 금방 다 썩어지고 없어질 것이요 우리는 곧 하나님 앞에 가야할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과 사랑과 선과 의가운데 주님과 동행함으로 여기서도 진정한 소망과 기쁨가운데 살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먼저 오늘 8,9절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니까 세상의 많은 죄와 무지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 짧고 보잘것없는 지식과 생각을 가지고 ‘천국도 없고, 주의 재림도 없다.’ 그러는데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주님이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다시 오시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오셔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시고 믿음 안에서 의를 따라 산 사람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진노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들을 오직 믿음과 선과 진실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맞을 준비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시고, 다시 오실 때 우주의 종말이 옵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믿음을 따라 산 사람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십니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그 짧고 무지한 이성과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이걸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무슨 꾸며낸 이야기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인간이 죄와 무지 가운데 있어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단순히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지식으로 본다면 천국이나 재림이나 지옥이나 이런 것들은 말도 안됩니다. 도무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인간의 이성과 지식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과 경험과 과학과 논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우주의 모든 물질과 경험과 지식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짧은 지식과 경험과 고학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말씀하신 천국과 지옥을 판단하려고 한다면 이건 벌레가 사람을 판단하려는 것보다도 더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님이 곧 오실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금방 오신다면 말씀을 기록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10년, 20년, 30년, 50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주님의 말씀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지가 벌써 2,000년이 지났는데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신다 오신다 그러더니 벌써 2,000년이 지났는데 봐라 아직도 안 오시지 않느냐? 그런데 재림은 무슨 재림이냐?’ 하면서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도 역시 인간의 무지몽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8절 보십시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길어봐야 100년 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천년이 엄청난 시간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순간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기준으로 빨리 오시니, 오시지 않느니 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떠들어대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눈으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 대하여 우리가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은 그것은 지연이 아니라 주님이 한 영혼이라도 더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9절 말씀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님의 때에 주님이 정한 수가 차면 천군천사를 대동하고 큰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중에 강림하셔서 심판할 자를 심판하고 구원할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날 결국 우주의 종말이 오고 기존의 질서는 완전히 사라지고 신천신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는 모든 고통과 아픔과 슬픔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24:30절에 보면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그 짧고 무지하고 한계속에 있는 생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말씀과 은혜와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다시 오실 때에 할렐루야 찬앙하며 영광을 돌려 드리고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을 알고 믿고 살아야 하고 그렇게 주님의 재림과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을 것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경건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일단은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당연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려면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거룩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예수님 믿고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 천국백성이 되면 마땅히 천국백성의 삶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인데 거듭났다고 하면서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 믿고 거듭나 생각과 가치관과 목적과 방향이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까? 목적과 방향이 다른데 세상 사람들과 같이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11절에서 말씀하시 ㄴ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즉 예수님이 오실 것이고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이 건설될 터인데 이것을 알고 믿는다면 거룩하고 경건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 하나님이 욕을 먹게 되고, 교회가 조롱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우리가 도리어 하나님 나라의 문을 막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거룩하게 아름답게 진실하게 의롭게 살아가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도 세상에서 인정받고 귀히 여김 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도 저절로 이루어 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2:1절에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바른 예배생활 가운데 진실하게 성실하게 의롭게 선을 행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 자신이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 받으며, 주께 영광을 돌려 드리며, 사람들에게도 감동감화를 줌으로 그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잘했다 칭찬받고 상급 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사모합니까? 좋은 것을 사모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좋지 않을 것을 바라고 사모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오직 영광과 기쁨과 은혜만이 가득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야말로 지상낙원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거기에 소망을 두고 감사와 기쁨과 희망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12,13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여러분, 정말 당연하지 않습니까?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의 진정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소망이요 기쁨이요 행복이 아닙니까? 정말 도대체 세상의 무엇이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주겠습니까? 물론 세상에도 그런대로 상대적으로 좋은 것도 있고 사모할 것도 있고 바라볼 것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행복과 기쁨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정말 별거 아닙니다.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주지도 못하고 그나마 잠시잠깐후면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걸 바라보며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게다가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진정한 소망과 위로와 기쁨과 평안을 주는 곳은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말할 것도 없이 그저 세상의 것에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죽자 사자 그것만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게 인생을 바치게 되고 세상의 것들의 노예가 되어 참된 행복과 안식도 누리지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 영원한 형벌가운데 처하는 불쌍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 그 나라를 향하여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거룩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얼마든지 이기게 됩니다.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도 않고, 모든 욕심과 욕망과 원망 불평 미움 근심 걱정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물질과 사람과 세상 영광과 명예와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설령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조차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진정하고 영원하고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가 주인공이고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자기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따라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고집대로 물질주의 이기주의에 빠져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산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머잖아 오시든지 아니면 내가 먼저 주님 품으로 가든지 이제 곧 우리는 주님 앞에 서게 되고, 그 때에 행한대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거룩하게 의롭게 진실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혹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세상의 모든 것들은 머잖아 종말을 고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소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그 소망으로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도 말고 진정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므로 여기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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