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제목 : 세상을 이기는 믿음

말씀 : 시27:1-6

1.진정한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러분,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큰 소리를 치며 유럽대륙과 러시아와 이집트까지 정복했던 나폴레옹은 키가 157Cm 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그 보다 조금 큽니다. 그래봤자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이지만.... 그런데 여러분, 이 세기의 영웅 나폴레옹은 자신의 작은 키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키는 땅에서부터 재면 가장 작지만 하늘에서부터 재면 제일 크다.’고 말입니다. 그는 이런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큰 소리를 치며 세계 정복에 대한 꿈을 가지고 결국 유럽대륙과 러시아와 아프리카까지 정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며 승승장구했던 나폴레옹도 별 수 없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 유명한 워털루전투에서 영국과 프러시아의 연합군에게 비참하게 패하게 되는데요, 여러분, 나폴레옹이 워털루전투에서 패한 이유가 어떻게 보면 아주 웃긴다고 합니다. 그는 만성 위궤양이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심한 변비가 생기가 되었고, 변비 때문에 치질에 걸리게 되었고, 심한 치질 때문에 말을 타기가 힘들어 전쟁에 나갈 때는 항문 주위에 마취제 주사를 맞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워털루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하필 치질이 너무 심하여 전쟁을 2시간가량 늦추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영국을 지원하는 프로이센군이 합류하여 나폴레옹은 아주 강력한 마취제를 투여하고 전쟁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부적인 마취제였지만 너무 강력한 마취제를 맞아 정신이 좀 몽롱한 상태에서 지휘를 하다가 그만 힘도 못쓰고 패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큰소리를 쳤던 세기의 영웅 나폴레옹이 그 놈의 치질 때문에 결국 쓰디쓴 패배를 당하고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초라하게 생을 마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패한 다른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겠지만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큰 소리쳤던 나폴레옹도 치질 하나도 제대로 다스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권력이든 부귀영화든 아무리 크고 높고 대단해봐야 별거 아닙니다. 아무리 대단한 영웅호걸이라도 금방 늙고 병들고 결국 죽습니다. 제아무리 큰 권세라도, 제아무리 천하 없는 부귀영화라도 금방 썩어지고 없어지고 그야말로 물거품과 같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립니다. 또 사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별거 없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행복에 겨워 죽을 지경인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맨 날 슬프고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도 아닙니다. 있는 자나 없는 자 때론 웃고 울기도 하고, 때론 평안하기도 하고 근심 걱정이 있을 때도 있고 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벧전1:24,25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육체는 풀과 같이 연약해서 금방 스러질 것이요, 그 영광도 풀의 꽃과 같이 곧 시들어 질것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 그 약속 안에서 주어지는 영광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풀과 같이 시들어 버릴 세상의 것들 바라보고 의지하고 거기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별 것 아닌 것들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고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별것 아닌 것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찮은 것들에 얽매어 믿음 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안 그래요? 그거 뭐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뭐 좀 많이 가졌으면 어떻고 좀 적게 가졌으면 어떻습니까? 그게 뭐 인생의 행복을 좌우합니까? 아닙니다. 행복은 결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분명코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백만원 수입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천만원 수입으로도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눅12:15절에서도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인생의 행복이 결코 세상의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오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의 기쁨과 능력과 은혜와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물질과 상황과 환경을 초월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총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하나님의 전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온전히 누리려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며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려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지요.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고,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자연히 세상의 사람이나 환경이나 상황이나 돈이나 명예나 혹은 죄와 마귀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며 살게 되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빛의 은총을 누리려면 빛을 가까이 해야 하지 않습니까? 선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뭔가 유익한 것을 얻지 않겠습니까? 더럽고 추하고 악하고 사납고 흉악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얻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공기가 오염된 공간에 머물면 어떻게 됩니까? 오물과 썩은 것들이 잔뜩 쌓여 있는 공간에 머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선하고 아름답고 능력과 지혜가 충만해서 우리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존재를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그런 존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밖에 무엇이 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완전한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영원한 복을 주겠습니까? 누가 우리에 영원한 소망과 위로를 주며, 누가 우리를 영원히 온전히 지켜 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받아 누렸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할 만큼 믿음을 인정받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놀라운 은총을 누릴 있었던 것은 물론 저절로 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을 간절히 사모하며 가까이 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했기 때문에 틈만 나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아니 틈만 나면이 아니라 틈을 만들어서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그 말씀을 그리워하며 늘 묵상하였고, 그래서 말씀의 맛이 꿀과 송이 꿀보다 달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능력과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했는지 오늘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참 놀랍지 않습니까? 다윗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 영호와의 집 곧 성전에 살면서 여호와를 사모하며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이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하는지 교회에서 사는 게 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소망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 소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세상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부귀영화 누리면서 사는 것도 소원이 아니요, 자식이 잘되고 자식 자랑하며 자식 덕 좀 보며 사는 것도 소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누리는 것, 이것이 딱 한 가지 유일한 평생의 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인지요? 자식이 잘되는 것입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것입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입니까?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더욱 발전하여 온 국민들이 평안하게 잘 먹고 잘사는 것입니까? 서로 사랑과 은혜를 나누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좀 더 고상하게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돕고 희망과 위로를 주며 사는 것이 소원입니까? 물론 당연히 그런 소망들도 가져야 합니다. 저도 그런 소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소망은 결코 온전한 소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소망을 곧 사라지고 썩어지고 없어지고 결국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설령 그런 것들이 이루어져도 우리에게 온전한 행복을 주는 소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영원히 온전히 생명의 기쁨을 주는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대한 소망,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고자 하는 소망만이 진정으로 영원토록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가치를 누리게 하는 복되고 고귀한 소망인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까? 무엇이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습니까? 무엇이 정녕 우리를 영원토록 온전하게 행복하고 평안하고 자유하고 위로와 소망을 줄 수 있습니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돈도 명예도 지식도 과학도 권력도 우리에게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행복과 사랑과 평화와 자유를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하고 온전한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도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해서 기쁨과 은혜와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지식과 능력이 없어도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 수 있게 하는 소망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합3:17,18절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을 주시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없어도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 완전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은혜를 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죄와 유혹을 이기게 하십니다. 세상의 환경과 상황과 조건도 이기게 하십니다. 모든 마귀사탄의 권세와 사망의 권세와 지옥의 권세에서 승리케 하십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는 물론 지금 여기서도 분명히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의 기쁨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공연히 우리에게 진정으로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주지 못하는 세상의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위하여 살면서 그것에 끌려 다니면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구원과 생명과 진리와 은혜와 사랑과 기쁨과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모든 상황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이와 같이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욱 큰 믿음과 능력과 은혜를 주셔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세상 영광도 누리며 하나님의 역사도 이루어가는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여러분, 참 대단한 신앙고백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빛이시고 구원이시고 생명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기시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도 힘과 능력과 은혜를 주셔서 모든 것을 이기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그런 하나님이 계신데, 그런 하나님을 믿는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으며, 낙심되고 한탄하고 불평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다윗이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것은 결코 상황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오늘 시27편 전체 말씀을 보면 다윗은 결코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6절에 보면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원수 위에 들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또 9절에서는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뭔가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까지 몰린 것입니다. 또 12절에서는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나를 치려고 하오니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위경에서도 한탄 원망 불평 불신 근심 걱정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는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하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빛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시고 빛이신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빛을 비춰주셔서 은혜를 주실 것인데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근심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윗은 이것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이렇게 큰 믿음과 능력으로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위험과 유혹과 죄와 왜곡된 가치관과 악한 것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지혜는 어디 나왔습니까? 물론 하나님께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까? 물론 성전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만큼 하나님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할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 수많은 전투와 도전과 위험 속에서도 찬양하는 생활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더욱 큰 믿음과 지혜와 능력과 은혜를 주심으로 그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위기와 유혹 앞에서 요동하지 아니하고 의연하게 헤쳐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또 시56:11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느 때 어느 상황이라도 여전히 살아계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만약 우리가 그걸 잘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의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영성이 뭔가 둔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영성을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집이며 주님의 몸인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능력이 임합니다. 은혜가 충만해 집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지혜의 영으로 충만해 지게 됩니다. 그러면 마귀사탄 따위가 역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이 우리를 어찌 할 수 없게 됩니다. 때론 하나님께 직접 보호하여 주심으로,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것을 넉넉히 이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은혜의 길을 잘 달려가 세상 모든 것을 이기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이제 이후로 더욱 교회를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인도와 보호 가운데 세상의 모든 시험이나 유혹이나 환난이나 핍박이나 기타 모든 어둠의 세력들을 주님의 권능으로 이기고 승리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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