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 은혜받기 원하십니까? (Sunday Sermon)

말씀 : 막10:46-52

제목 : 은혜받기를 원하십니까?

 

1.영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유명한 찬송가 작시자 ‘화니 제인 크로스비’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맹인이 되어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여 때때로 낙심과 좌절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30세가 되던 해 뉴욕에서 한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이 집회에서는 집회 내내 죄와 허물속에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찬송가143장)을 계속 불렀습니다. 그러자 참석한 모든 회중들에게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었고, 그녀도 어느 순간 큰 은혜를 체험하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주님, 나같이 천하고 쓸모없는 소경이 무엇이 그렇게 귀하다고 날 위해 돌아가셨습니까?’ 라고 혼자 되 뇌이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렇게 앞을 볼 수 없는 천한 몸도 무언가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그때 그녀의 귓가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무슨 말이냐? 내가 너에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는 지혜를 주지 않았느냐?’ 이러한 주님의 음성에 그녀의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비록 육신의 눈은 그대로 있었지만 심령의 눈이 활짝 열려 예수님이 보였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감격이 마음 가득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곧바로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 작사했던 것이 찬송가531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길 다가도록’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비롯하여 무려 8,000여곡의 주옥같은 찬송시를 써서 그중에 24편의 시가 찬송가에 들어오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게 있습니다. 여러분, 화니 제인 크로스비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나 후에 외견상으로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육신의 눈은 여전히 감겨져 있어 사랑하는 사람도 아름다운 꽃도 그 밖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돈이 생긴 것도 아니고 출세를 한 것도 아니고 건강이 회복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천국백성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낙심과 좌절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감사와 기쁨과 희망과 사랑과 은혜와 생명력이 넘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어둠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이 활짝 떠졌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눈이 활짝 떠지자 자신이 갇혀 있었던 어둠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빛의 세계, 생명의 세계로 나아와 하나님과 천국을 확실히 보면서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이 자꾸 하나님께 요구만 합니다. 하나님, 건강하게 해주세요. 부자 되게 해주세요. 자식이 잘되게 해주세요. 경제가 활성해되게 해주세요. 물론 그것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설령 그런 것들을 얻는다해도 마음의 눈과 영혼의 눈이 떠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래봤자 계속 죄와 무지와 원망과 근심과 불평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떠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러면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진짜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진리를 보고, 하나님을 보고, 영광의 나라를 보고,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바르게 보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혜 속에 살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상이 얼마나 복된 세상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6:22,23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주신 눈, 신령한 눈, 은혜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면 올바른 분별력으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잘 달려가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육신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면 어둠속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꾸만 인간의 그 작고 편협되고 어둡고 한계 속에 있는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의 눈, 영적인 눈을 활짝 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밝히 보며 주님의 음성을 바르게 분명하게 들으며 주님과 동행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자신의 상태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을 떠서 주님을 보고, 영원한 세계를 보려면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고 어둠속에 갇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알아야 교만하게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야 겸손하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그래야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다 알고 다 보고 다 할 수 있다고 여기면 교만하게 자기마음대로 삽니다. 주님을 찾지도 않고 찾아오시는 주님도 거부함으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9:41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자신이 소경, 즉 다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무지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죄사함의 은총을 얻었을 것인데 자기가 다 본다고, 다 안다고 제멋대로 했기 때문에 구원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지 맹인 바디매오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경이요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알습니다. 그래서 그는 풍요로운 도시 여리고에 살고 있었지만 그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비굴하게 엎드려 동전 몇 닢 얻어서 무시당하고 천대받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도 그렇게 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마침내 자신을 그런 처지에서 해방시켜 줄 분이 나타난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자기 앞에 지나신다는 소식을 듣고 사생결단하고 구원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4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뭐라고 예수님이 오셨다고? 그러면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 분이 오셨으면 난 죽어도 그분을 만나야 된다는 심정으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 불쌍한 인생을 불쌍히 여시고서. 나는 어둠속에 있는 인생입니다. 나는 무시받고 천대받으며 사는 인생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당신 뿐입니다. 그러니 저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십시오. 제 어둠을 밝혀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살겠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이와같이 자신의 죄됨과 어두움과 한계와 무능함을 아는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예수님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게 되고,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다 아는 것처럼, 다 보고 있는 것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이 맞고, 내경험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면 비웃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제일 똑똑하니까요. 그래서 자기 이성으로는 천국과 지옥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제 잘났다고 제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교회에 다니면서도 은혜가운데 살지 못합니까? 왜 10년 20년 30년을 교회에 다녀도 생명력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죄와 무지와 연약함과 한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가치나 경험이나 지식들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삽니다. 왜요? 자기가 똑똑하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지 않고 그야말로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적용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인생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무지하고 어둠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깊은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 별거 아닙니다. 우리 생각, 이성, 잣대 옳지 않은 것 너무 많습니다. 우리 경험, 지식 정말 작은 것입니다. 시73:22절 보십시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설마 짐승같기야 하겠습니까만 그러나 정말 무지하고 어리석고 죄가운데 있고 한계와 약함과 허물가운데 있는 것이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이걸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걸 인정한다면 제발 그 알량한 내 생각과 지식과 이성과 경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죄와 어둠과 무지와 연약함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간절히 주님을 부르짖어 찾으며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주께서 역사하심으로 정말 새 생명의 은총이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일단은 자신의 죄와 무지와 작음을 인정하였으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 인생의 죄와 무지와 연약함과 한계를 해결해 주셔서 온전한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실 분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어두움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인생의 무지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 인생의 현재와 영원한 미래에 대하여 답변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과 구원하심 밖에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거지 맹인 바디매오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라는 고백 속에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결국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47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여러분,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그는 ‘나사렛 예수’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지릅니다. 여러분, ‘나사렛 예수’와 ‘다윗 자손 예수’는 천지차이입니다. 나사렛은 빈민촌과 같은 곳으로 나사렛 사람은 가난하고 무식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것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출신의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비하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이란 하나님께서 일찍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즉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이심을 믿었기에 그야말로 사생결단하고 요청을 했습니다.

48절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보세요.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너 같은 더럽고 추한 거지가 어딜 감히 예수님께 가까이가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존귀하신 예수님이 너 같은 것은 거들떠 볼 시간이 없으니 저리 꺼지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니들이 뭐라 그래도 좋다. 날 무시하고 욕하고 천대해도 좋다. 그러나 난 저분을 붙잡아야 된다. 저분만이 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 하면서 더욱 큰 소리를 질러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야 합니다. 나오는데 그냥 나오는 둥 마는 둥, 나오면 나오고, 아니면 말고 하는 어정쩡한 태도로 주님 앞에 나오면 은혜받기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 아니면 나는 죽습니다. 은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삽니다. 이런 각오로 누가 뭐래도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죽어도 예수님 만나 은혜 받고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기어이 받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나올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바로 그랬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말거나 욕을 하거나 말거나 그냥 죽자사자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49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바디매오를 부르셨습니다. 드디어 구원의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모든 것 다 팽개쳐 버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이때 예수께서 선포하십니다.

5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그의 간절한 요청을 듣고 가던 길을 멈추시고 그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말씀한마디에 날 때부터 몇십년 동안 감겨져 있던 눈이 떠져 모든 어둠이 물러간 것입니다. 모든 멸시와 천대와 고통도 사라진 것입니다. 어둠과 좌절과 멸시 속에서 살던 인생이 은혜와 기쁨과 감사 속에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죄와 무지와 한계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진정하고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의 은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일한 구세주이시오,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우주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모든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 주십니다. 어둠과 절망과 낙심과 원망과 불평을 없애 주십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시고 생명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과 은혜와 능력으로 살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오늘 바디매오처럼 예수님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나의 지식도 경험도 이성도 얼마나 작은지요. 그런데 어리석게도 지금까지 그 알량한 지식과 경험과 이성에 의지해서 살아왔습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소서. 나를 받아 주소서. 오직 주님만이 나의 생명, 나의 기쁨, 나의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나 이제 오직 주님만을 따르겠사오니 저를 받아주시고 인도하여 주소서하면서 그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의 성령께서 여러분의 심령 속에 임하실 것입니다. 눈이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천국이 선명하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어둠과 약한 것들과 추한 것들이 물러갈 것입니다. 오늘 바디매오에게 임했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온전히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변화되고 생명의 기쁨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에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 크게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이런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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