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Sunday Sermon)

제목 : 함께 삶의 축복

말씀 : 전4:9-12


1.좋은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인간은 함께 살아가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함께 하지 않고는 존재 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제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가 많고 능력이 많아도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만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가족과 이웃과 사회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본적으로 생존이 가능하고, 문화생활도 가능하고, 물질문명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가족이 없이 어떻게 인류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이웃과 사회공동체가 없이 인류가 어떻게 이 많은 것을 이룰 수가 있었겠습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근자에 보면 너무나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남이야 어떻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여기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편한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왜 내가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느냐, 왜 남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왜 하기 싫은 일을 남의 이목 때문에 해야 하느냐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편안함만을 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역할은 생각하지 않고 교회가 무엇을 해 주기만을 바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모습들은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인생들의 왜곡된 가치관이지 결코 옳고 아름답고 귀한 가치관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사회도 아름답게 유지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갈등과 시기와 분쟁 속에서 상처와 고통과 슬픔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살줄 알아야 합니다. 함께 살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손해 보아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남의 눈치도 보아야 합니다. 양보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적극 참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이고 그게 우리 사회를 유지하며 우리가 함께 평화롭게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물론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교회공동체는 이 원리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공동체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사탄은 교회공동체를 와해시키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전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과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유혹하여 진리의 길, 생명의 도를 외면하게하고 나아가서는 진리 안에 있는 자들을 핍박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탄의 방해공작과 핍박과 도전을 이기고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그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는 것은 물론 더욱 하나 되어 협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탄의 역사를 이기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에 특별히 헌신된 사람을 세워주심과 동시에 많은 동역자들을 세워 함께 그 역사를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론과 훌과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훌륭한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요압과 아비새와 후새와 같은 동역자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바울에게는 바나바와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의 많은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열 두 명의 제자를 세워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든 마을이든 회사이든 교회이든 우리는 함께 해야 합니다. 좋은 동역자,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공동체가 아름답게 세워져가고 그럴 때 우리 각 개인이 평안과 자유와 부요함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그저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평안함과 안일함과 유익만을 구한다면 자유와 평안과 번성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갈등과 시기와 분쟁과 상처와 아픔만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9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함께 수고함으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다 부족하고 허물 많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먼저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되 그러나 우리가 서로 하나되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할 때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아름답게 세워지고 그래서 결국 우리가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가정이든 교회이든 직장이든 기타 다른 어떤 공동체이든 결코 분열을 조장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와해시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좋은 협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협력자가 되어 함께 수고함으로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를 아름답게 세워감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주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협력이 그토록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앞에서 개괄적으로 말씀드렸지만 본문의 내용을 통해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혼자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뭐 사실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함께해야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앞에서 보았던 9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쉽게 말하면 힘을 모으고 뜻을 모아 함께 수고할 때에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그게 바로 함께 함의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뭐 사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같은 일이라도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 훨씬 능률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도 두 사람이면 할 수 있고, 두 사람이 못하는 일도 세 사람이면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100Kg의 물건은 천사장사라면 모르겠지만 웬만한 사람은 혼자서는 자신의 힘만으로 들어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습니다. 세사람이라면 더 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인 협동의 원리인 것입니다. 비단 물리적으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적 감정적 정신적으로도 그렇습니다. 한사람의 지식과 지혜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열사람의 지식과 지혜를 모으며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함께 하면 서로 힘과 위로와 격려와 용기와 의욕을 줌으로 몇 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마 많인 들어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기러기들은 먼 거리를 이동할 때 보통 V자 형태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로 무리를 지어서 날아가면 혼자서 날아갈 때 보다 70%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뒤에서 날아가는 기러기들은 앞에서 날아가는 기러기들이 날개짓을 하면서 일으킨 바람을 타고 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앞의 기러기가 에너지를 방출하여 일으킨 기류를 다른 기러기가 활용하여 날아감으로 다른 기러기는 최소의 에너지를 가지고 멀리 날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에 있는 기러기가 당연히 먼저 지치겠지요. 그러면 다른 기러기가 교대하여 앞에서 인도하는 방법으로 멀리 간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하지요.

인간의 삶도 동일합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마음과 힘을 합하여 일하면 서로 상승작용을 하게 됩니다. 서로 격려가 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의욕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같은 일도 훨씬 쉽고 효과적으로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무슨 일을 하든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협력하지 않으면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지 않고 심지어는 열심히 함께 하는 일에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하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까지도 맥이 빠지고 의욕이 꺽이고 힘 빠지게 만들어 점점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안하고 남도 못하게 만드는 심각할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느 집단에 있든지 좋은 협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마을과 사회에서 결코 공동체를 분열시키거나 갈등관계를 조장하거나 걸림돌이 되지 말고 좋은 협력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세워주고 그래서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힘든 사람을 세워 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협력의 또 다른 유익은 서로를 세워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세워줌으로 가정이든 교회이든 다른 어떤 공동체이든 결국 공동체를 잘 세워 나감으로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보겠습니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말씀 그대로입니다.

만약 길을 가다가 제법 깊은 곳에 떨어져 큰 상처를 입었는데 옆에 아무도 없어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행자가 있어서 이 사람의 상처를 싸매주고, 얼른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해 준다면 생명을 보존하고 온전히 회복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꼭 육체적으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큰 시련으로 절망가운데 있을 때 그와 함께 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사람의 절망감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와함께 하며 그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며 격려와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면 절망감은 축소되고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자살하는 사람들의 80%는 자살을 시도하기 수개월 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자살의 징조를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낌새를 바로 알아채고 누군가 곁에서 도움을 주면 대부분의 자살은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의 사람들이 이를 잘 알아차리지를 못함으로 실제로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함께 함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니겠습니까?

죄의 유혹을 받을 때도 그렇습니다. 죄의 유혹 속에 갈등하고 있을 때에 아무도 그와 함께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를 권면하고, 만류하고,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쉽게 죄의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함께 하며 그의 잘못된 생각들을 진정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준다면 죄의 구렁 속에서 헤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들도 때로는 절망감에 빠지거나 원망과 불평 속에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때 그와 함께 하는 신실한 신앙인이 없다면 자칫 불신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그를 위해 기도하며 권면하며 위로할 때 그는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정말 함께 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좋은 동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마을에서나 좋은 동행자, 좋은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주고, 위로자가 되고, 기도해주며, 돌보아주며, 감싸주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희망과 소망을 주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은 정말 아름다울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공동체는 아름답게 세워지고 그 가운데서 우리의 삶도 더욱 평안하고 가쁨과 은혜와 소망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어느 곳에 있든 좋은 협력자, 동행자가 되어 가정과 교회와 이웃과 직장과 다른 모든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나감으로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려드리고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도 아름답게 이루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함께 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함께 함의 또다른 유익은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사랑과 기쁨과 은혜가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이 말씀은 팔레스틴 지역의 기후적 특성에서 나온 경험담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은 광야가 많는데 광야지역은 낮에는 매우 뜨겁고 덮지만 일단 해가 지고나면 무척 쌀쌀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광야에서 여행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밤이 되면 함께 모여서 일부의 겉옷은 아래에 깔고 일부는 함께 덮고 자곤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침구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게다가 서로의 체온 때문에 밤의 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함께 하면 따뜻합니다. 단지 몸만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도 마음도 영혼도 따뜻해지고 기쁨과 은혜가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혼자 있으면 어떻습니까? 혼자서는 기쁨도 사랑도 환희도 열정도 갖기 어렵습니다. 육체적으로 따뜻하지 않습니다. 마음적으로도 외롭습니다. 영적으로도 뜨거운 열정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장작불은 모여 있을 때에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마음적으로 영적으로 여럿이 함께 할 때에 열정과 기쁨과 감격을 느끼기 쉽습니다.

여러분, 가정도 그렇지 않습니까? 가정에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고 그러면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그런 곳에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고 위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 얼마나 적적하겠습니까? 몇 년 전에 우리 집 양반이 병원에서 3주 입원해 있는데 나 혼자 집에서 자려니까 얼마나 적적한지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고 행복한 일입니까?

또 교회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교회에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옆에 계신 분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들입니까? 이렇게 고맙고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라면 우리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를 세워주고 위로와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면서 더불어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되새기며 정말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그래서 함께 하면서 좋은 동행자로 협력자로 살아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함께 하면 어려움을 이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함께 함의 또 하나의 유익은 난관에 봉착해도 실망하지 않고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혼자 하다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일도 여럿이 하면 어렵고 힘든 일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잖아요. 어떤 이일을 추진하다가 난관에 봉착했어요. 물론 우리는 그때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혼자할 때는 잘 안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고 용기를 줄 때 다시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힘써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귀는 바로 그렇게 혼자 할 때를 공격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났는데 함께 하는 자가 없고 기도도 위로도 격력도 용기도 주지 않으면 자칫하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약한 때를 이용하며 더 수작을 부립니다. 거봐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공연히 헛수고하지 말고 그만둬라. 그리고 또 솔직히 네가 뭐라고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하느냐? 대충해라. 그냥 적당히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살아라. 그게 네 신상에 좋다. 하면서 온갖 수작을 부리며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무기력하게 넘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믿음의 동행자가 있어서 기도해주고 격려해주고 힘을 주고 용기를 주면 다시금 힘을 얻어 믿음의 길로 진리의 길로 생명의 길로 나아가 결국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가정이든 교회이든 직장이든 기타 다른 어떤 공동체이든 결코 분열을 조장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와해시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좋은 협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협력자가 되어 함께 수고함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를 아름답게 세워감으로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도 이루어가며 주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