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집회 /교회부흥을 위한 은혜의 시간 )
전도 방법 / 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1. 꿈꾸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바버라 케디(Barbara Cady)가 쓴 「차이를 만들어낸 200인의 얼굴」(Icons of the 20th Century)이 지난 해 여름 두 권으로 나왔습니다. 20세기에 분명한 차이(differences)를 만들어낸 그들의 공통점(共通點)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모두 꿈꾸는 자들입니다. 꿈을 위해 대가(代價)를 치른 사람들입니다. 이뤄지지 않은 꿈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꿈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며, 너무 큰 꿈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꿈이 없다면 변화는 없습니다. 꿈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신자 전도로 유명한 미국 오렌지카운티의 새들백 교회를 방문했을 때 비전에 대한 릭 워렌 목사의 이야기는 감동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전을 갖기 전 까지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목회자의 비전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꿈을 꾸어 줄 수 도 없습니다.
저는 꽤 큰 꿈을 가진 자 입니다”(Nothing happens until someone has the vision. A church never outgrows over the leaders. You cannot delegate. I'm a pretty big dreamer.”) 릭 워렌 목사의 꿈은 하나님의 인준을 받았고,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위해 꽤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21세기에 하나님께 더욱 크게 쓰임받으려는 우리 친교회의 꿈이 너무 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꿈을 이루기엔 너무나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무자비한 마귀가 들끓는 곳에서 일했고,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변화(變化)시켰습니다. 1
세기에 가장 강력한 변화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누가 세상을 변화시킬까요?
꿈꾸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능히 우리들의 꿈인 복음전도와 제자훈련, 세계선교, 민족치유의 꿈을 이루도록 도우십니다.
2.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열정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과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물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물론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고린도 전서 9장은 바울의 전도 전략(戰略), 열정(熱情), 정신(情神)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고전 9:24-27을 보십시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9:24-27).
바울은 운동선수들의 헌신에 감탄했습니다. 선수들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모든 장애(障碍)가 되는 것을 버리고 포기합니다. 상을 타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김연아 선수는 하루 8시간을 연습했고, 개그맨들은 5분짜리 프로그램을 위해 일주일에 50시간씩 연습합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은 매일 15시간씩 연습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합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포기하고픈 유혹은 언제나 우리 모두의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중도포기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경주(競走)에서 돋보이는 사람들은 근성(根性)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영무’라는 악바리 축구선수가 늘 기억에 남고, 박지성 선수는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기관차’처럼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면서 기회를 만들어줌으로써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나이 든 선수들처럼 목회자들도 후반에 빨리 지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이 뛴 선수일수록 빨리 지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인생경주에서 이기려면 끝까지 잘 뛰어야 합니다. 피로가 누적되고, 지치는 일들 속에서 끝까지 잘 뛴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 됩니다. 운동선수들은 전반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후반전에 강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끈기와 근성을 가졌습니까? 히브리서 12:1-3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근성 있는 믿음의 선수들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바울은 이 운동선수들의 근성(根性)을 자신의 영혼구원사역에 접목(椄木)시켰습니다. 바울의 정신은 챔피언이 되기 위해 권투선수가 링 안에서 펀치를 주고받으며 상대를 녹아웃을 시키려는 것과 같습니다. 허공을 치는 복싱은 안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장훈 선수는 이승엽에게 홈런에 욕심을 내라고 격려했습니다. 40개가 아닌 50개 이상을 쳐내라고 도전했습니다. 3관왕이 되라고 격려했습니다. 당당하게 꿈을 펼치라고 격려했습니다. 이승엽 선수는 자신의 슬럼프를 이기기 위해 매일 저녁 1천 번씩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는 2007년 봄 시즌을 맞기 위해 지난 해 보다 더 많은 훈련량을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바울의 어떤 점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영혼구원과 제자훈련, 세계선교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죽기 살기로 뛰어든 헌신입니다.
하나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하는 거룩한 열정을 가슴에 불질러 주십시오!
열정과 헌신을 불어넣은 것은 구령의 열정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이루려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죽도록 싸웠습니까? 무엇에 자신을 온전히 바쳤습니까? 고린도 전서 9:16-18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우리들이 설교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기도회를 인도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목회를 하며 정신적 혹은 육체적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우리들의 의무를 다 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무슨 상(償)을 바랄 것도 없습니다. 복음증거를 위해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목회적인 의무를 넘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복음전도의 거룩한 동기를 불어 넣어야만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직무태만(職務怠慢)입니다.
수해지역에서 골프를 친 정치인들이 당에서 제명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해가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권리와 자유를 희생했습니다. 바울은 먹고 마시는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바울은 결혼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고린도에서는 사례비 받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유(自由)마저 반납했습니다. 종의 심정, 종의 대우를 받을지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종의 모습을 택했습니다. 고전 9:19을 보십시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하나님이 주신 영혼구원의 꿈을 이루려면 그 꿈에 다시 헌신(獻身)해야 합니다.
꿈이 이뤄지는 것은 자기희생(自己犧牲)에 달려있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바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발작적인 희생이나 충동적인 헌신 가지곤 안 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내 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놓았습니다. 게으르고 무관심한 자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의 디딤돌이 되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희생이라는 씨앗을 많이 뿌려놓고 피를 많이 흘려야 우리들의 다음 세대가 거둘 열매가 많아집니다.
복음전도의 벽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0교회의 강점을 세상에 알리고, 후배들이 자랑스럽게 복음을 전하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아직도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3. 영혼구원을 위해서 죄짓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지 합시다!
바울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죄 짓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지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이방인 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초문화사역자(cross cultural missionary)였습니다. 이것이 구령의 열정(熱情)입니다. 바울은 파선을 두 차례 경험했으나 다시 세번째 배를 타고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바울은 파선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번 매를 맞아 고통을 겪었으나 매맞는 일이 두려워 복음전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양심의 채찍으로 맞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 속에 들어가 전도하기 위해 디모데에게 할례도 받게 했습니다. 영혼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번째 관심사입니다(마 28:18-20). 성령님이 오신 목적도 영혼구원입니다(행 1:8).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가 사역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제 전부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전 영역을 주장하시게 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지난 해와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본위, 자기중심, 자기고집, 자아만족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우주의 중심, 만유의 중심, 교회의 중심, 사역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의 삶에 변화가 왔습니다. 그는 항상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조차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는 이렇게 달랍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렇습니다. 주어가 성령님입니다. 이전에는 베드로가 주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동태입니다. 사도행전 15:28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베드로는 성령님의 동의하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과연 우리들을 몇 퍼센트나 소유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제 전부를 소유했습니다"라는 철저한 Lordship이 우리에게 일어나길 바랍니다.
영국 국교의 억압과 핍박아래서도 요한 웨슬레의 열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노팅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노상강도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에게 전도했습니다.”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그의 구령의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설교하듯이 나는 다시는 전도할 수 없는 심정으로 설교합니다.”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짓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열정, 이런 정신,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꿈을 꿉시다! 교회들마다 부흥하는 꿈을! 교회들마다 성령님과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꿈을! 죄인들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꿈을, 구원받은 사람들이 성도로 세워지고 구령자로 변하는 꿈을 꿉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죄짓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합시다.
/함께 그리스도의 일꾼 된 김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