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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설교자들에 주는 조언

Advice for Young Preachers

Theodore L. Cuyler(1822-1909) / 김병훈 역

테오도르 커일러는 프린스톤 신학교 출신으로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라파예트街 장로교회의 목사이며, 진리의 깃발사에서 출판한 ‘먹구름 사이의 하나님의 빛(God’s Light on Dark Clouds)’을 포함한 여러 베스트셀러의 작가이다.

  

시작하는 말

프린스턴에서 보냈던 지난 3년 세월 동안 내게는 즐거움과 유익이 많았다. 할 수만 있으면 자주 밖에 나가 이웃에 있는 학교와 집들에서 작은 모임을 갖고 말씀을 전했다. 이것은 연습을 하기에 매우 유익한 방법이었다. 젊은 설교자라면 반드시 자신의 목소리가 어떠한지에 대해 익숙히 알아야 한다. 즉 만일 본래 목소리가 힘이 없다면 청중들 앞에서 소리를 내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하며, 그 후에 똑똑하게 전달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젊은 설교자에게는 회중의 규모가 작은 곳에서 실습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공부할 시간을 더 가질 수가 있으며, 사람들 개개인에 대해 친밀하게 알아갈 수 있는 좀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또한 좀 더 작은 규모의 회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처음 책임을 맡게 된 회중은 뉴저지주 벌링톤에 있는 교회로 대략 40가정 정도의 규모였다. 이들 가운데 3, 4가정들은 부유하고 교양이 많았으며, 다른 가정들은 정원사와 마부들 몇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기술정비공들이었다. 그 때 나는 집 끝에 있는 정원사들과 마부들에게 나의 설교를 맞추었고, 교양이 잘 갖추어진 사람들은 나름대로 설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당시 출석하던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 필라델피아의 탁월한 변호사였던 찰즈 촌시(Charles Chauncey)가 있었다. 그는 여름 몇 달을 벌링톤에서 보내곤 하였다. ‘영혼의 고귀함’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간단하지만 진지하게 전하고 난 뒤에, 집으로 가서 “변호사 촌시는 틀림없이 내 설교를 한낱 정치 집회의 격려사로 생각했을 것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주중에 그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는 놀랍게도 내게 말하기를 “젊은 목회자 친구, 지난 주 설교로 인해 고맙습니다. 그 설교에는 아주 훌륭한 두 가지 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단순성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적인 열정이었습니다. 내 법률 사무소에 있는 어떤 학생이 치안판사 앞에서 10 달러 양복 하나를 얻고자 할 때, 만일 그의 열정이 영혼을 구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의 열정보다 더 낫지 못하면, 내 사무실에서 그 학생을 쫓아낼 것입니다.” 나는 저명한 변호사가 말해준 그 말로 인해 신학교 시절의 그 어떤 공부보다 더 큰 도움을 받았다. 이때 나는 교양 있는 회중들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 못지않게 평범하며 단순한 성경의 진리들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숨김없는 열정이 설익은 젊은 설교자들에게 있는 수많은 허물들을 가려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내게 좋은 교훈을 준 목회 초기의 경험을 들어보자. 강도사 인허를 받고 약 2년 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스피링즈의 사라토가(Saratoga of Springs)에 있는 장로교회에 설교 요청을 받았다. 오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뢰하기’라는 제목으로, 저녁에는 ‘심판의 날’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다음 날, 마을을 떠나려고 기차역에서 표를 구입하고 있을 때, 그 마을의 빵집 주인이었던 한 평범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어제 모임에서 설교하신 그 젊은이 맞지요?” 그렇다고 답을 하자, 그는 말하기를 “사실, 어제처럼 미안해 본 적이 없었어요.” “왜 그렇습니까?” 내가 묻자,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난 속으로 ‘이제 막 신학교를 졸업한 젊은 친구가 왔구만. 이 친구는 사라토가(Saratoga)의 회중들이 전국 각 지역 출신의 매우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설교 시작한지 10분이 되었을 때, 만일 설교자가 회중들의 영혼을 구원하기에 애를 쓰고 있음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비평의 눈초리들을 잠재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영민한 빵집 주인의 말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그의 말은 설교학과 관련하여 내가 들었던 가장 심도 깊은 철학이 담긴 교훈이었다. 그 뒤로 나는 신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그의 말을 인용하여 전했다. 만일 우리 목회자들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복음의 살아있는 진리를 회중들의 귀와 심령에 쏟아 부을 수만 있다면, 회중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기에 급급하여 설교자나 설교의 방식에 대해 불평을 쏟아 부을 시간이 전혀 없을 것이다.

겁을 잔뜩 먹고 강단에 서 있는 설교자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고의 사용여부

이 글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완성된 설교와 즉흥적 설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은 가에 대한 끝없는 논쟁이 아니다. 나의 관찰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최선의 규칙은 어떤 규칙도 세우지 않는 것이었다. 각자가 연습을 통해 어느 방법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지를 찾아서 그것을 추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장점을 잘 아는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법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온갖 노력을 다해야 겨우 즉흥적 설교를 할 수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글래드스톤(Gladstone)처럼 두 발로 꿋꿋이 서서 회중들과 교감을 나눌 때가 설교하기에 최고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목회 초기 몇 년 동안 나는 거의 모든 설교를 미리 작성을 하였다. 이렇게 했을 때의 장점은 젊은 초보 설교자라 할지라도 원고를 조직적으로 주의 깊게 작성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원고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펄전도 나중에는 강단에서 무엇을 전할 것인지를 단 한 마디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설교 원고를 작성해서 그대로 읽은 적도 있었다. 매우 유창한 즉흥적인 설교자이었던 스토르 박사(Dr. Richard S. Storrs)도 20여 년 동안 모든 강론들을 주의를 기울여 작성하였었다. 나의 경우 한 동안 설교의 일부를 먼저 작성한 다음에, 감동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반영하기 위하여 일단 원고를 떠난 후에, 다시 원고로 돌아오곤 하였다. 목회를 한지 삼십년이 지난 후에는 설교를 작성하는 일을 완전히 버리고 단지 몇 몇 ‘제목들’만을 준비하여 그것을 박스터 성경(Bagster's Bible)에 붙여 놓았다. 홀 박사(Dr. John Hall)는 주의를 기울여 원고를 작성을 한 후에, 그 원고를 집에 남겨 두었다. 대영제국에서 최고의 설교자로 인정을 받는 맨체스터의 맥러렌 박사(Dr. Alexander McLaren)도 그렇게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유창한 설교자인 거스리(Guthrie)는 그의 설교를 완전히 외운 다음에, 경건한 감정을 쏟아내며 설교를 하였다.

 

 

설교 준비

나는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월요일은 휴식을 취하고, 화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서재로 가곤 하였다. 설교를 준비하는 자들에게 하루의 가장 좋은 시간은 해가 정오를 지나기 전이다. 이 시간에 사람의 생각은 가장 맑고 활기가 넘친다. 나는 저녁 시간을 지나서 설교를 준비한 적은 열두 차례 밖에 되지 않는다. 저녁 시간에 머리를 혹독하게 굴리는 일은 편안한 밤잠을 방해하기 마련이며 불면증은 우리 뇌의 많은 활동을 상하게 할 뿐이다. 불필요한 방해를 받지 않는 개인시간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 나는 서재 문 앞에 ‘매우 바쁨’이란 표시를 걸어두곤 했다. 이런 방법은 시간을 잡아먹는 모든 일들을 차단하는 데에 매우 유익했으며, 다소 중요한 볼 일로 연락해 오는 사람들도 줄어들게 해주었다. 설교 주제는 혹시라도 만일을 대비하여 주로 화요일 아침에 본문을 정했고, 설교의 큰 그림을 그려두었다. 나는 강단에서 전하기에 좋은 주제와 그에 맞는 성경 본문을 다 적어놓을 수 있는 큰 공책을 소지하고 있었다. 또한 모든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스쳐가는 생각들을 공책에 적어두는 것도 매우 좋은 습관임을 알게 되었다. 적어놓은 생각들은 나중에 설교 준비 때 매우 유용한 설교 자료로 사용된다. 이 방법 덕분에 나는 매주 넘치는 글 중에서 필요한 내용을 골라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서 독자들은 ‘본문’이란 단어를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아주 장황하고, 신학적이며, 도덕적이고 또한 사회적인 설교문을 준비하고 성경본문 하나를 정하여 그 위에 얹혀 놓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다. ‘내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은 설교자의 생각에서 나온 긴 논문에 그저 명목상 몇 개의 성경 문구를 걸치라는 의미가 아니다. 최고의 설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영감 된 무오한 성경에서 나와야 한다. 좋은 설교와 설교 본문 사이의 연관성은 마치 복숭아나무와 그 뿌리 사이만큼이나 중요하다. 가끔 게으른 목사가 이전의 설교를 본문만 바꿔서 마치 새로운 설교인 것처럼 속이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이것은 마치 강아지의 머리를 절단하고 다른 동물의 머리를 붙여 놓은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총명한 회중은 그런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경멸할 것이다.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성경의 본문을 뿌리로 하며 기도로 물을 주었을 때 설교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본문의 중심 사상이 설교와 모든 주장의 중심 사상과 일치할 때, 설교의 모든 가르침과 권고는 나무의 몸통에서 뻗어 나오는 가지이며, 설교 전체의 유기적 완성에 통일성과 활기와 영적 아름다움을 부여해준다. 설교의 통일성과 영적인 힘은 주로 영감 된 성경에 담겨 있는 위대한 신적 진리에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성경 본문은 우리의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부분이다. 우리 영혼에 성경 본문을 더욱 깊이 파고들수록 설교가 듣는 회중의 의식에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다. 고정된 한 가지 틀에 박히지 않기 위해, 나는 거룩한 성경의 끝없는 다양함을 연구하였다; 성경의 이야기와 성경인물들의 자서전, 기쁨에 넘치는 시편 고백, 그 안에 담긴 심오한 교리의 내용들, 자비로운 긍휼의 마음, 시내산의 우렁찬 천둥소리, 그리고 갈보리에서 나타난 구원하시는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멜로디.

나는 성경의 위대한 주제들을 손에 쥐었고, 30분의 간절한 기도가 두 세 시간의 연구보다도 훨씬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도는 보좌로부터 오는 순간의 영적 깨달음을 이따금씩 내가 작성하던 설교문에 더해주곤 했다.

 

 

스스로 진리임을 드러내는 권위의 말씀

주일 설교를 준비할 때 나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란 모든 지식의 총합이었으며 ‘그러므로 주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은 나의 변함없는 안내자였다. 나는 신학의 가장 참된 진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가장 새로운 것들의 대부분은 진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 가지 점에서 나는 많은 형제들이 행하던 습관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단 한 순간도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방어하는 일에 시간을 사용 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성경은 스스로 증거하는 책이라 믿었고, 만일 우리 목사들이 말씀을 전하는 일에 충실히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돌보실 것이라 믿었다. 우리는 중력의 법칙을 방어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방어하기 위해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맨체스터의 맥라렌 박사(Dr. McLaren)는 말하기를, 만일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방어하려고 하는 대신 단순히 사람들을 십자가로 향하게 한다면,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옳은 말이다. 많은 ‘변증학’은 종이와 잉크의 낭비일 뿐이다. 설령 변증학 책들이 모두 큰 모닥불에 불로 태워진다할지라도, 빛은(성경) 그 어떤 때보다도 훨씬 더 밝히 비추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들에게 주신 강한 요새인 진리에 돌을 던지는 모든 회의론자들에게 답을 주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만일 도비야와 산발랏이 우리를 들판으로 불러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그들의 기준에서 대적한다면 우리의 답은 항상 다음과 같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메신저이다. 내가 그 일을 멈추고 너희에게 가서 너희들의 칼은 그저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이유가 없다.’

나의 젊은 형제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말씀을 전파하라. 너의 마음을 다하여 전하고 여호와의 영의 힘으로 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라.’

 

 

예화의 사용

나는 좋은 예화들을 찾아 사용할 때 설교의 효과가 더욱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나, 예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신중히 주의를 기울였다. 예화가 그저 설교를 아름답게 꾸미는 차원에서 설교 안으로 끌어들여진다면 그것은 마치 쟁기의 손잡이에 꽃다발을 단단히 묶어 놓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꼴이 된다. 예수님은 자주 비유를 통해 말씀을 하시고 여러 실제 사건들을 상기시켜주셨다. 이러한 본을 통해서 중요한 진리들이 예화를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음을 직접 본을 통해 가르쳐 주셨다. 사건이나 이야기가 그 목적에 맞게 사용되고 교회에서 나눌 수 있는 진지한 내용과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일에 도움이 될 때, 회중들은 그 예화들을 좋아한다.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되는 한 가지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고, 죄인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워 그들의 영혼을 회심케 하며, 신자들의 믿음을 세우고 정직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는 일에 더 효과적인 것은 결코 강단에서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영혼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할 때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진리의 무기들을 동원하여 사용할 수 있다.

 

 

크게 외치기를 아끼지 말라

내 강단 앞에 앉아본 자들은 내가 설교를 할 때 사람들의 귀를 배려하거나 내 목소리를 아낀 적이 결코 없음을 증언할 것이다. 복음을 설교한다는 것은 영적인 포격과도 같은 것이다. 충분히 장전된 탄창들이라도 그것을 밀어 낼 탄약이 부족하면 표적을 맞추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의 가장 주된 임무는 그의 강단에서 영혼들을 불러일으키고, 무관심한 자들을 각성하게 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깨우치고, 슬픔에 잠긴 자들을 위로하고, 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고, 믿는 자들을 세워가는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은 배심원들의 귀를 완전히 사로잡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복음 진리를 전파하는 자는 어떤 댓가를 치러서라도 들음을 요구하고 명령해야 한다. 그러나 차갑고,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방식으로 회중에게 전해진다면, 그러한 들음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에베소서에서 위대한 사도가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했을 때, 듣는 자들의 이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감정과 의식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설교의 전달이 싸움의 절반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강하게 말한다 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애초부터 표적을 쏘지 못할 것이라면 왜 총을 장전하겠는가? 만일 설교자가 열정과 땀만 있었더라면 큰 효과를 나타냈을 아주 귀한 생각이 담긴 많은 설교들이 졸린 귀에 그저 주저 앉아버리고 만다. 평범한 설교라도 직접적이고 열정적인 전달로 인해 매우 놀라운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자기 스스로를 뜨겁게 하지 못하는 설교자는 결코 그의 회중을 뜨겁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설교자 뜨거운 마음

우리가 강단의 끌어당김(pulpit magnetism)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교묘하여 정의하기 쉽지 않다. 가장 근접한 정의를 내려 본다면, 그것은 설교자가 듣는 자들의 관심을 강화시키고 그들의 주의를 끌어내는 자질 혹은 능력이며,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예수 안에 있는 진리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에 신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듣는 자들의 마음에 설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설교자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마음이다. 영혼을 얻는 복음을 전한 거의 모든 설교자들의 공통점은 강단에서의 열정이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강단에서 불은 타올랐고, 그 불은 회중의 자리에서도 타올랐다.

 

내 경험에 의하면 부분이든 전체이든 작성된 설교에서 얻는 것만큼이나 즉흥적으로 전한 설교에서도 종종 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결과는 물론 회중의 상태에 크게 달려 있고, 회중의 중보기도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겠지만, 핵심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 불세례가 임하게 하는 데에 있다. 종종 한 설교가 아주 작은 인상만을 남기기도 하지만, 똑같은 설교가 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는 회중을 크게 감동시키고 풍성한 영적 결과를 얻어내기도 한다. 설교자의 전달에 물리적 상황이 약간의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죄인들을 깨닫게 하고 회심시키고, 그리스도인을 더 강하게 하는 설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성령의 역사이다. 우리의 가장 큰 능력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다.

 

나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너희의 회중을 심판의 자리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얼굴에 영생의 빛이 비춰지는 모습을 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당신이 영혼의 열정을 설교에 더 많이 쏟아 부을수록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더 많은 영혼들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시대는 변해도 설교의 필요나 자료는 변하지 않는다

나의 60년을 되돌아보면 어린 시절 이후로 미국 강단에서 사용하는 방식에 매우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이전 시대의 일반적인 설교자들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교리적이었다. 이스라엘의 영적 스승들도 필립스 부룩스(Phillips Brooks)와 더불어 ‘영원처럼 깊은 위대한 진리를 고려하지 않는 행복한 삶을 위한 권고는 사람의 의식을 잡거나 붙들 수 없다.’는 견해를 분명하게 지지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속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죄의 본질과 형벌, 속죄, 중생, 믿음, 부활, 미래의 심판과 같은 깊고 놀라운 주제들을 강력한 천국과 지옥이라는 현실과 함께 앞세워 강조했다. 그들은 죄의 가증함과 죄로 인해 받을 형벌을 강조함으로써 회개할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것을 역설했다. 그러한 설교 방식이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해 우리는 개탄해야 한다. 왜냐하면 글래드스톤(Gladstone)이 바르게 언급하였듯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증상 중 하나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죄에 대한 인식의 쇠퇴와 감소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설교자들 대부분에게서 보는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의 설교가 주로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깨우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죄의 사악함을 강조하고, 구원의 길을 설명하고, 기독교의 주장들을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결단을 하도록 충고를 하였다. 오늘날 설교의 많은 부분은 이미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또 상당한 수의 설교들은 특별히 설교의 대상을 뚜렷이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불신자들을 향해 전해지는 신실하고, 열정적이며, 사랑과 설득력 있는 설교는 줄어들었다. 이것이 바로 회심하는 자들의 수가 슬프게도 줄어들고 있는 원인 중 하나이다. 만일 목회자들이 영혼을 돌보는 자들이라면, 영혼 구원을 무시하고서 어찌 그 일을 감당하겠는가?

 

열정적인 강단 설교가 줄어들고 있다는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나도 또한 동의한다. 설교의 방식에 변화가 있어 왔다. 이제 목회자 훈련생들은 침착하고 구어체를 사용하도록, 경구적인 글의 작성을 목표하도록, 사회학적인 문제들을 논하고 회중의 지성을 강의나 대학 강의실에서 있는 방식으로 다루도록 배운다. 마치 모세오경에서의 모세의 저작권에 대한 믿음이 이미 예전의 것처럼 여겨지듯, 위대한 찰머스 박사(Dr. Chalmers)의 ‘서까래를 울리게 하라’는 말씀은 아주 한참 전에 지나간 전통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는 예일대학의 부흥의 시기에 많은 교수들과 학생들을 울게 만들었던 젊은 에드워드 커크(Edward N. Kirk)가 다시 돌아와 오늘날의 목회 후보생들에게 설교법을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소망해본다. 당시에 우렁찬 외침이나 수사적인 훈계는 없었지만 그의 듣는 자들로 하여금 인생을 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영혼은 구원 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섬길 가치가 있고, 천국은 확보할 가치가 있으며 이 모든 일들을 위해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란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강렬하고, 엄숙하고 순수한 마음의 간절함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순수하고 순결한 종교의 부흥 뿐만 아니라 영혼을 감동시키는 전통적인 강단 설교를 부흥시켜 주시기를!

 

과거의 목회자들은 오늘날의 후계자들보다도 유리한 점들이 있었다. 그들은 설교를 준비하고 교인들을 더 철저히 심방하는 일에 방해를 받는 일이 비교적 적었다. 그들은 여러 위원회 모임에 참석하여 섬기도록 요구를 받거나 각종의 사회 구호 단체의 회원이 되도록 요구를 받지 않았다. 모든 목사는 여러 개혁 운동들에 함께 하되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숭고한 부르심의 중요하고 필수적인 임무들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러해야 한다. 오직 한 가지로 마음이 모아져 있던 바울은 ‘나는 오직 한 가지 일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만일 바울이 오늘날 뉴욕이나 보스턴이나 시카고에서 사역을 하였다면, 그는 서재 문을 두드리면서 그를 방해하고 시간을 잡아먹는 많은 일들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정이 가득 찬 오늘날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해 낮아진 대중의 신앙과 싸워야 하고, 주일에 대한 낮아진 경외심과 하나님의 예배에 참석하는 습관이 줄어든 상황과 싸워야 한다. 이처럼 어려움이 더 많아짐으로 인하여 새로운 복음이 요구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한 더 큰 믿음이 요구될 따름이다. 이런 어려움들로 인하여 새로운 교리가 요구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1900년간의 세월 동안 유지되어 온 진리들을 더 강력하게 설교할 것이 요구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계시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충만히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보다 더 사랑이 넘치고, 용기가 있으며 더 거룩해진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는 더욱 더 충만히 드러나야 한다. 성령의 새로운 세례가 필요한가? 진실로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의 강단은 능력으로 덮힐 것이며 우리 설교자들은 불의 혀를 가지고 설교를 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곧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의 나라가 더 확장이 되고 확대가 되기에 더 좋은 변화가 될 것이다.

 

- 진리의 깃발 116호

[출처] 젊은 설교자들에 주는 조언 - Theodore L. Cuyler(1822-1909)|작성자 바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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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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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 축제 설교 / 10초전도 /  


당신은 하나님께 최고의 VIP   (요한복음 3:16)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익숙하게 아는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M. Luther는 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축소된 복음』(Gospel in miniature)이라고 합니다.

복음의 에센스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말씀을『최고(greatest)』라는 표현으로 해석하는데 참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애인(greatest lover)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고로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을”… 최고의 숫자(greatest number)입니다. 모든 민족과 인종을 다 포함합니다.

“이처럼 사랑하사”… 최고의 수준(greatest degree)입니다. 생명을 희생시킨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최고의 선물(greatest gift)입니다. 더 이상은 없는 최상, 최대의 선물입니다.

“주셨으니”… 최고의 행동(greatest act)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다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최고의 초청(greatest invitation)입니다. 제한 없는 우주적 초청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최고의 단순함(greatest simplicity)입니다.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됩니다.

“멸망하지 않고”… 최고의 해방(greatest deliverance)입니다. 죽어야할 죄수가 석방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리라”… 최고의 소유(greatest possession)입니다. 영생, 그 이상의 재산은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은 “모든 사람의 성구” 또는 “기독교 복음의 심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축복과 혜택을 줄 수 있을까요?

 

 

1. 당신도 놀라운 사랑의 VIP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요일 4:8,16)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과 인종을 초월하여 나 같은 죄인까지도 기꺼이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대상임을 믿고 건강한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좋대요! 나를 사랑하신대요! 이 얼마나 황홀한 행복인가요? 할렐루야!

어떤 신학자는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3S Love」로 정의해줍니다.

①주권적인 사랑입니다.(Sovereign Love)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입니다. “우리는 죄인이라는 자격밖에 없는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곧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입니다.”(프린스톤의 B.B.Warfield)


②희생적인 사랑입니다(Sacrificial Love)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르십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십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다.

③구원하는 사랑입니다(Saving Love)

하나님의 사랑의 원인과 목적은 오직 구원입니다. 오늘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의 선행이나 공로나 업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어느 훌륭한 기독교 의사(윌터 윌슨)가 군대 생활하다가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군부대에는 이따금 위문품이 오지요. 어느 날 한 기업체로부터 위문품을 받았습니다. 선물은 포켓용 거울이었습니다. 그런데 표면에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는 이렇게 부연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지 알고 싶으면 뒷면을 보세요.”

그는 궁금한 마음으로 작은 거울 속에 비치는 자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남이 그처럼 지극히 사랑하는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황홀한 감동을 받습니다. 나 같은 죄인까지도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구나!

그날로 그는 거듭난 사람이 되어 몸만 아니라 영혼까지 치유하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최고의 VIP입니다.


저는 언제 읽어도 감동이 되는 인간 승리자 송명희 자매의 시가 가슴을 뿌듯하게 해줍니다.

그는 어거스틴의 신앙고백을 토대로 이 시를 지었습니다.

나 하나

나 하나만 있더라도

세상을 지으신 주


나 하나가 죄를 짓더라도

십자가에 죽으신 주


나 하나가 있더라도

천국을 마련하신 주


사랑하는 여러분,

나도 하나님께 최고의 VIP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2. 당신도 놀라운 선물의 VIP입니다.

 

사랑은 sentimental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승화될수록 가장 비싼 것을 줍니다.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할수록 모든 것을 다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출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로마서 4:25. 8:32)

여기 “주셨다.”는 말은 ‘넘겨준다, 양도한다, 희생시킨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한 최고의 선물은 국가나 정부, 권력이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재능도 아닙니다.

인류 최고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4장 10절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표명합니다.

우리는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하사품을 받았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이십니다.

미국의 훌륭한 설교가 Chuck Swindoll은 이렇게 감동적인 설명을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보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육자를 보내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기술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과학자를 보내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제학자를 보내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쾌락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연예인을 보내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용서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세주를 보내주신 것이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실 자,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짊어지실 자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당신은 바로 그 구원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으신 최고의 VIP입니다.

 

3. 당신도 놀라운 믿음의 VIP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참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십자가만 쳐다보는 믿음으로도 억만 가지 죄로부터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벅찬 가슴으로 간증합니다.(에베소서 2: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가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는 것이 신기하잖아요?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 구원을 위해 더욱 간절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제 남편에게도 믿음을 선물로 주옵소서. 우리 부모형제에게도 믿음의 선물을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에게도 구원의 확신에 이르는 믿음을 선물로 주옵소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중심주제는 『믿어야 할 예수』입니다. 요한은 믿음이라는 명사를 사용하는 대신에, “믿어야 한다.”(pistuo)는 동사를 씁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98번이나 반복합니다. 특히 3장에서 만도 7번이나 거듭거듭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결론에서도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고 거듭 강조합니다.(20:31)


그래서 오늘 아침 우리는 이런 소박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저에게도 큰 믿음을 주옵소서!”

 

 

4. 당신도 놀라운 생명의 VIP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로 죽게 된 인간을 살려주시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영생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결론은 명료합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생, 이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최상의 선물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 다 죽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므로 살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삽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심판에서 면제를 받습니다. 그리고 영생복락을 누립니다.(15, 16, 17, 18)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의 호적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적하는 것입니다.(5:24)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온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그래서 요한복음의 또 하나의 주제는『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23번 강조)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죽음의 현장에서도 이렇게 선포하십니다.(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믿으십시니까?


기독교는 단순한 도덕종교가 아닙니다. 인격 수양의 종교 정도도 아닙니다.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도 풍성한 인생을 누리게 하십니다.(10:10)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인생이 풍성해집니다. 생기가 넘치고, 활력이 넘치고, 역동적인 인생을 삽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과 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소위 분에 넘치는 초과분의 인생을 삽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전 세계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책「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쓴 Spencer Johnson이 또 한 권의 책을 써서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은 「선물」(The Present)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한 노인이 어린이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줄거리를 소제로 합니다. 그 노인은 소년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물을 주겠다는 대화를 펼쳐가지만 그 선물의 내용을 냉큼 얘기해주지 않습니다. 그 선물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고 암시만 줄 뿐입니다.

어느덧 소년은 성인이 되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가다가 아주 오랜 만에 옛날 그 노인을 만나 그분이 가장 행복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다시 인생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 인생 최고의 선물을 찾습니다. 그 선물은 바로 「현재」(The Present)라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영어 단어의 뉴앙스에 따라 오늘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The Present는 곧 The Present입니다.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선물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공짜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셔서 그 비싼 선물을 그냥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께 최고의 VIP입니다.

이 얼마나 황홀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최상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혹시 아직까지도 그 예수님을 모르는 분이 계신가요? 아직도 믿지 않는 분이 계신가요?

오늘 아침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놀라운 선물되시는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접하세요.


어떤 분이 이런 소박한 간증 시를 들려줍니다.

“주님, 빈 잔을 들고, 황야를 지나, 당신에게로 기어갔습니다.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한 방울이라도, 얻을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

제가 당신을, 단지,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양동이를 들고 달려 왔을 텐데.”

예수님은 바로 오늘 그 선물을 당신에게 주고 계십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최고의 VIP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영접하십시오.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셔 들이세요.

(기도 초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누구신가요?

하나님께 최고로 사랑받는 VIP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아침 당신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거울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분은 마치 나 한 사람밖에는 사랑할 대상이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까지 나를 위해 놀라운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각박하고도 삭막한 이 세상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최상의 사랑과 축복을 누리는 최고의 VIP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출처: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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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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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박 한 응목사                        
본  문 : 로마서 12 : 1 - 3
제  목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Series 1)
찬  송 : 213, 214, 321, 325, 327, 539

        할렐루야!!
        오늘도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만한 은혜를 내려주시려고 오늘 거룩한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를 충만하게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그 교회의 권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저, 목사님 긴히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 예, 어려워 마시고 말씀하십시오’ 라고 대답을 하자 그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 목사님, 저 아무래도 권사를 못하겠습니다.’
        ‘아니 권사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잘 해오셨잖습니까?’
        ‘일도 많고 너무 바쁘고 해서 집사하고 바꿔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권사는 못하고 집사는 할 수 있습니까?’
        ‘네 가만히 보니까 집사는 심방도 하지 않고, 또 하는 일도 별로 없고, 이름만 가지고 있어도 되잖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기야 우리 교인들 중에는 권사라고 해도 심방 한 번 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속장이라고 해도 속회 심방 한번 하지 않는 속장도 있습니다.
        집사, 권사라고 해도 새벽기도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십일조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달에 감사헌금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안 한다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죽으면 따라서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주님 심판대 앞에 가 보아야 합니다. 주님 심판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의 불신앙적인 행동이 나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따라 행하여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이와 같은 불신앙적인 신앙생활이 남에게 믿음의 상처를 준다거나 실족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잘못하는 사람을 본받으려고 하십니까? 기왕이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본받아야 합니다. 도둑놈 따라가면 결국 도둑놈 됩니다. 노름꾼 따라다니면 결국 노름꾼 됩니다. 게으름뱅이를 따라가면 결국 게으름뱅이가 됩니다.
       민수기 16:3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가데스바네아에서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더불어 당을 조직하고 모세를 반역하였습니다. 이때 고라를 추종하는 사람이 250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의 가족들을 땅을 갈라서 생매장을 시켰고 추종하던 250명은 제단에서 불이 나와 모두 타죽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공존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함께 자라지 않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반드시 가라지를 먼저 묶어 지옥 불에 던져 태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3:29-30)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또한 마지막 때가 되면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지고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세가 가까울수록 믿음 있는 사람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믿음 없는 사람은 자꾸만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집니다.
        (계22:10-12)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 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뿐만이 아니라 말세에는 사람들이 완악 하여져서 바른 교훈이나 바른 말 듣기를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래서 신앙으로 말씀으로 권면을 하여도 듣지 않습니다.
        주일성수를 하여야 하늘의 신령한 영적 축복을 받는다고 하여도,
        새벽기도를 하여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동행하여 주시며 만사를 형통케 하시는 축복을 받는다고 하여도,
        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물질의 축복을 받고 황충을 금하며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는다고 아무리 설교를 하여도 마이동풍이고 권면을 하여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집사, 권사, 속장은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부르기 좋으라고 붙여준 이름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은 그 직분이 어떤 것이든 간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멘>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런데도 그 직분에 충성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에 반드시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겔16:5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 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지금까지 쌓여만 가던 모든 죄악은 모두 아침 안개의 사라짐같이 빽빽한 구름이 물러감같이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로 씻음 받아 거듭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방법론이 제기되겠습니다만 저는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예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사랑이요 은혜이며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아 멘!>
        만약에 우리에게 예배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허락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선교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주일까지 예배에 대한 말씀으로
        오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
        오늘 저녁예배에는 “예배를 바로 드려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다음 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지 말자”
        그리고 다음 주일 저녁예배에는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이렇게 시리즈로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아멘!>
        우리 ○○교회 성도들은 기왕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1.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건축케 하신 후에 성소에서 만나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 주시는 곳은 성전입니다.
        출30:6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날 것이라” 고 하셨고 왕상 9:3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시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광야가 아닙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골방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안방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교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1) 하나님과 만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삭개오는 예수님을 한 번 보기만 하여도 평생소원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오시고 그로 인하여 그의 온 가정이 구원받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②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는 죽어가면서도 메시아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혼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③요한복음 4장 5절 이하의 기록된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은 남편을 다섯씩이나 거느린 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을 받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으며 그리스도를 온 성에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④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일곱 귀신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어 일평생 주님을 섬기는 생활로 변화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무덤에 장사지낸 지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일찍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2) 하나님과 만나고 예수님과 만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출15:26) 고 말씀 하셨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고치셨습니다.
       ② 여리고성의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③ 열 명의 문둥이를 고치셨습니다.
       ④ 거라사 지방의 군대 마귀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모두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만나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는 곧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병 고침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는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하나님을 만날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 창21:14절 이하에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난 하갈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가지고 온 물과 떡이 모두 떨어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죽어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방성대곡하여 울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샘물을 주시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② 요한복음 6장의 말씀에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께서 5병2어를 가지시고 저들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병2어를 가지고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였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의 역사입니다. 바로 한 소년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③ 왕상 17:8절 이하의 말씀에는 사르밧의 한 과부가 선지자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요구를 듣고 순종하였을 때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자연적인 기적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예배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 시간입니다.

        (사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분배받아 집을 나간 아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허랑 방탕하여 허비한 후에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서 아사 상태에까지 되었습니다. 이때 그 아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이 집을 떠난 후로 아버지는 그 아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서 그 아들을 얼싸 안았습니다.
        아들이 생각하기엔 아버지가 도무지 용서해 줄 것 같지 않아서 아들은 고사하고 그저 품꾼으로라도 받아만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의 지난 모든 일을 묻지도 않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아들로서의 모든 권한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고,
        또 기억치도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렘31:34)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할렐루야!!

 

3. 예배는 하나님과 화목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였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수 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복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고 하셨고
        (욥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만이 할 수 있습니다.

 

4. 예배는 우리의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적 생명을 공급받는 귀한 시간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식물들까지도 성장할 수 있는 양식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영적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오직 귀한 시간이 바로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 시간이야 말로 얼마나 귀한 시간인 것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예배를 소홀히 하는 성도가 있어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분을 내시며 저들을 책망하여 내쫓으셨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영적으로 기갈이 들으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갈급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항상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이 시간마다 순간마다 주시는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하나님은 항상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107:9)
         (사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
         그런데 문제는 기름진 것이 눈앞에 있는데 먹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심과 두려움과 세상의 재리와 염려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가 되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님의 주시는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22;1-14절 말씀에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혼인 잔치를 베푼 왕이 종들을 불러 청한 사람을 모셔오라고 하였지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절하고 사양을 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청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무슨 이유를 대면서 거절하고 사양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심령 상태는 지금 아사(餓死) 상태인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말세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암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 하여 피곤하리라”
        이와 같은 마지막 말세가 가까이 다가오는 이때에 오늘 예배드리는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은혜를 사모하고 간구하여 항상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5.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1) 신령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면 오히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2) 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산 예배는 피 흘림이 있는 예배입니다.
        피 흘림이 있는 예배는 희생과 헌신과 감사가 있는 예배를 말합니다.
        희생이 없고 감사가 없고 제물이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단 쌓는 곳에 강림하셨고, 제물 있는 곳에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또 제물 있는 곳에서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3) 새롭게 변화된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는 것” 은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으로써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세상 것을 다 끊어버리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성령이 역사 하시고 거듭남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며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옷도 아무렇게나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또 지각이나 하고, 와서는 졸기나 한다면 이런 예배를 진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여 부르짖고 찾아서 만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렘29:12-14)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막혔던 모든 문제들이 열려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구원의 문이 열려지고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모든 질병도 깨끗하게 고침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아무쪼록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총과 축복을 충만히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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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8 : 10 - 22

제 목 : 2017년에 드릴 서원 기도

찬 양 : 552, 338, 368, 384, 539, 550.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은혜를 사모하여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우리들은 2017년의 한 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참으로 우리들을 우울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던 한해였습니다. 2017년의 새해가 밝았지만 뭐 그리 시원하게 느껴질 만한 소식은 없고 오히려 우리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새해에도 경제가 회복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정치는 날이 갈수록 더욱 혼탁해 지고 있습니다.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금년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대기권 오염으로 인한 엘니뇨현상으로 인하여 금년에는 더 많은 기상 이변과 재난이 겹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기상 이변으로 인하여 남극과 북극의 빙산들이 녹아서 남태평양의 나라들은 바닷물의 해수면이 올라가 해마다 수만 명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울한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재기의 몸부림을 치면서 새롭게 출발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역력히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한 국가경제와 날마다 올라가기만 하는 온갖 물가고, 그리고 농사는 점점 어려워져만 가는 농촌 문제들이 웬지 모르게 우리들의 신앙과 믿음까지도 위축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때일수록 우리들은 더욱 신앙과 믿음으로 무장을 하여서 어떤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굳건한 반석 위에 설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곱이 부친 이삭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후 형 에서의 진노를 피하여 하란 땅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도중 루스 광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지시에 따라서 에서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눈이 어두운 부친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늦게 이 사실을 안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리브가는 재빨리 야곱을 불러서 외삼촌의 집으로 피신을 시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사는 하란 땅은 야곱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는 길입니다. 게다가 하란 땅은 하루 이틀에 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이와 같은 길을 가던 야곱은 루스 광야에서 하룻밤을 노숙(露宿)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밤은 참으로 춥고 외롭고 두려운 밤입니다. 돌을 베고 누워서 하늘을 보니 캄캄한 밤하늘에는 마치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별빛만이 반짝이고 사방은 고요한데 이따금씩 먹이를 찾는 야행성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뜨리고 들려옵니다. 추위와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잠을 청해 보지만 쉽사리 잠이 오질 않습니다.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납니다. 이 시간 쯤 모든 가족들은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을 잘 텐데 왜 자신만이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 후회도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형편이 이 야곱의 형편과 같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평안과 안식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자신만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광야에서 추위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2017년을, 아니 우리의 일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갈 길이 보이지 않고 막막하기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들이여!

루스 광야의 야곱을 찾아와 만나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찾아와 만나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추위에 떨던 몸이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할렐루야!!

자신이 누운 바로 앞에서 하늘 보좌까지 사닥다리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천군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꼭대기 하늘 보좌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서서 말씀을 하시는 모습도 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에게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본문 13-14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본문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즉시 일어나 베고 누웠던 돌을 세워 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전 이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야곱이 루스 광야에서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 기도를 통하여 2017년의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서 금년 한해를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승리의 날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먼저 야곱의 형편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나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야곱은 지금까지 속이고 빼앗는 간교한 생활을 하여왔습니다. 

야곱이 아비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갈 때의 나이가 77세였습니다. 야곱은 그 나이가 되도록 항상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여 왔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나서 불과 1분 차이 때문에 장자가 되지 못하고 장자의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하여 항상 불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기진맥진하여 돌아오는 형 에서를 속이고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부친 이삭이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형 에서를 불러서 맛있는 요리를 부탁하고 그 요리를 먹은 후에 축복하리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 리브가와 결탁을 하여 부친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입니다. 참으로 간교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2) 야곱은 지금 쫓기고 있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아비의 마지막 축복까지 빼앗긴 것을 알고 그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지금 어쩔 수 없이 쫓기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야곱이 잠들려고 누워있는 루스 광야는 참으로 험한 광야입니다. 육식성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울부짖고 있으며 땅에는 전갈과 같은 독충들이 있습니다. 죽은 시체를 찾아 맴도는 독수리들도 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외로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루스 광야에서 돌을 베고 누워서 떨고 있는 야곱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여러 가지의 걱정과 근심에 떨고 있습니다. 금년 한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날로 어려워 가는 농촌 사정과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는 물가고와 애써 농사를 지어도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만년 적자 농사를 지어야 하는 실정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진정한 우리의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어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피폐하고 병들어 버리고 외국 농산물들이 물밀 듯 들어와 경쟁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물가는 매년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 쌀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농가도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하여 경쟁력 있고 소망이 있는 농가만 지원을 해 주고 그렇지 못한 농가는 지원도 해 주지 않고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농촌의 인구는 지금보다 반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진정으로 우리의 위로가 되시며 소망이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인줄로 믿습니다. 예수 안에 참 평화가 있고, 예수 안에 소망이 있고, 예수 안에 평안이 있고, 예수 안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2. 이와 같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내게 가장 가까이 찾아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멘>

 

6:50절 말씀에는 제자들이 배를 저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서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실 때에 제자들이 이를 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시고 바람과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 40년의 세월 끝에 요단강 건너편까지 왔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가시고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5-6)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또 이사야 41:10절 말씀에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에 3일 만에 부활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숨어 있는 골방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신,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오르지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의 참된 평안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이 예수 안에서 참된 평안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찬송가 412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 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3.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즉시 하나님께 돌단을 쌓고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즉시 일어나 베고 누웠던 돌을 세워 단을 쌓고 기름 한 병을 부어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야곱의 드린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1)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16-17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야곱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자기만이 홀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낙심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야곱은 새 힘이 솟았습니다.

야곱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졸지도 않으시며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21:3-6)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곱은 너무나 감사하여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고 누웠던 돌을 세우고 그 돌에 기름을 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8:16-19)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다 같이 찬송가 3384절을 부르겠습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2) 야곱은 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드린 서원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야곱은 자신의 가는 길에서 지켜 주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본문 20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본문 21절 말씀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을 서원 하였습니다.

본문 21-22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을 약속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22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와 같은 야곱의 기도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도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야곱 때에는 하나님의 성전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그 누구도 십일조를 드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조부 되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와 노획한 물건 중에서 십일조를 구분하여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렸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때에 십일조 드릴 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17년이 시작되었습니다. 152주일 중에 오늘이 첫 주일입니다. 첫 주일을 맞이한 우리들은 야곱과 같이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믿음과 신앙의 잠재력이 있는 야곱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믿음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믿음을 통하여 역사를 일으키시며,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축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4. 그러면 오늘의 우리들은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마치 야곱과 같이 사람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고 배신하고 불순종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쫓김을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광야와도 같이 거칠고 황량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시고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광야와 같은 험한 이 세상에서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인생, 그리고 지나간 2016년은 루스 광야에 영원히 묻어버리고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과 믿음이 바로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이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하나님의 집에서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아 멘>

  

(3) 그리고 야곱과 같이 돌단을 쌓아야 합니다.

 

 

돌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단에 불을 내리셨고 제물 위에 불로 응답을 하셨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단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며 예배를 소홀히 하게 되면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7년도에는 우리 모두 다 같이 제단 쌓는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를 폐하는 어떤 이들의 악한 습관에 유혹되지 말고(10:25) 항상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는(12:11)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4) 야곱과 같이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우리가 감사를 드리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을 하기로 말하면 모든 만사가 불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은혜 안에서 지켜주신 것 모두가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무슨 서원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2012년에는 우리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의 전이 되도록 힘쓰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생각과 악한 습관 때문에 더럽혀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서 늘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도록 서원의 기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야곱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을 하나님께 서원하여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또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어도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사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서원하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되 반드시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3:11-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야곱은 이와 같이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서원 기도를 마치고 다시 길을 갑니다. 야곱은 이제는 자신이 생깁니다. 담대해 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예배를 드린 후에는 담대하십시오. 그리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으십시오.

야곱은 그 후 하란 땅의 외삼촌 라반을 찾아서 그의 집에서 2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하나님은 항상 야곱과 동행하여 주셨고,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20년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큰 무리를 이끌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32:10)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2017년의 첫 날, 첫 주일을 맞이하여 이 시간 우리가 앞으로 1년 동안을 어떻게 살아갈 것과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을 하나님께 서원하고 약속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심과 같이 여러분을 축복하실 줄로 분명히 믿습니다.<아 멘>

모든 사람들이 금년에는 더욱 살기가 어려운 해가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상 18장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에 3년 반 동안 가뭄과 기근이 들었어도 물 두멍에 물이 마르지 않고, 밀가루 항아리에 밀가루가 가득히 차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를 공궤 하여 축복을 받은 사르밧의 과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하다면 무엇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환경과 여건이 좋은 때에 신앙생활 잘하는 것보다 모든 환경과 여건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의 믿음이 더욱 값진 것입니다.

이제 2017년도를 맞이하여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야곱의 길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이 분명코 여러분의 앞날을 형통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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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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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님만 따라 가리라

 

설교 : 박한응목사

본 문 : 마태복음 4 : 18 - 22

제 목 : 나 주님만 따라 가리라

찬 송 : 216, 321, 370, 408.

복음송 :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할렐루야!!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평강이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다 같이 찬송가 455장을 부르겠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이 찬송에서 나 주님만 따라 가리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오늘밤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사람은 누구를 따라가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장사꾼을 따라가면 장사꾼이 되고, 과학자를 따라가면 과학자가 됩니다. 도둑놈을 따라가면 도둑놈이 되고, 마귀 따라가면 지옥 가게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 선지자를 끝까지 따라가서 갑절의 능력을 받은 능력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의 길을 버리고 물질과 명예를 따라갔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몬과 그의 아우 안드레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기 위하여 열심히 그물질을 하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실 때에 저들은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으며, 또한 야고보와 요한도 그물을 깁고 있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따라 나섰습니다.

또 막2:14절에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쫓으라하시니 일어나 예수님을 좇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오직 예수만 따라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세상에는 우리들을 유혹하는 곳도 많이 있고 또 우리가 가야 할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예수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모든 생활이 예수 중심의 생활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 교회 중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절대로 부귀와 명예와 평안의 길이 아닙니다. 좁고 험한 가시밭길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길입니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 바로 예수님 따라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에는 장애물도 많이 있습니다. 온갖 것들이 우리를 방해합니다. 때로는 눈보라와 같은 매서운 환난의 바람이 불어 올 때도 있고, 비바람이 우리의 갈 길을 막을 때도 있습니다.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 넘을 수 없는 태산과 같은 시험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야 합니다. 앞서가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G.S>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길 이 길은 승리의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아 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을 예수님이 부르셔서 제자를 삼으신 것처럼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의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 따라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1.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자기를 부인하라 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왕 사울은 처음 왕으로 세움 받았을 때는 성령이 충만하였지만 그 후 교만하여 악신이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내 육성과 나의 혈기와 고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자기 자신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2)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자기가 져야 합니다.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무겁다고 벗어버린다든지 사명 감당을 하지 않을 때에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최선을 다하여 잘 감당할 때에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적은 일에 충성을 하니까 많은 것을 맡긴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선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하십시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현재의 직분에도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서 더 큰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만 따라가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도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의 십자가만을 지고 사명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예수님의 제자의 길은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시몬과 안드레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에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였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의 부친과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였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가말리엘 문하생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3:8) 예수님을 따라서 이방 민족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여 온 세계를 복음화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란을 떠났을 때에 가나안 땅을 주셨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왕상19;19절에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을 때에 열 두 겨리 소로 밭을 갈다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또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그의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 예수 따라가는 길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는 곳에는 환영하는 사람들보다는 어떻게든지 예수님을 힐난하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도 그들은 병이나 고치려고 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받으신 수치와 천대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멸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고 나가서 부활의 예수를 증거할 때에도 제자들을 술이 취하였다고 조롱을 하였고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저들이 배우지 못한 어부들인데 어찌 이와 같이 말을 잘하느냐고 조롱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 우리 기독교인들은 남들에게 환영받고 영광 받은 것이 아니라 멸시받고 천대를 받았습니다. 아무 상관도 없이 예수 소리만 들어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때에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하십니다.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오늘도 가야하고 내일도 가야 합니다.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우리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고통스러워도,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서 가야합니다.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산상에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우리 인간의 구원을 다 이루시고 다 이루었다”(19:30) 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믿음을 굳게 지켜 주님 따라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4.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백배의 상급을 받는 길입니다.

   

(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작은 충성도 결코 헛되지 않고 큰 것으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6:7),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6:27)

이제는 2017년 새해를 맞이하여 앞서가신 예수님을 따라서 부지런히 가야 합니다. 뒤도 돌아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뒤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9:62) 좌우 옆으로 치우치거나 보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앞만 보고 가야 합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박 집사는 주일날 교회를 가야 하는데 등산을 좋아해서 산으로 갔습니다. 되돌아 올 때는 이미 날은 저물었고 산을 거의 내려올 지경에는 캄캄한 밤이라 그만 잘못하여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순간적으로 생각하기를 이제 죽었구나. 집사가 주일을 범하고 등산을 왔으니 이젠 죽었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한 소나무 가지를 간신히 잡게 되었습니다. 주위가 캄캄한데 위를 보아도 도무지 올라갈 수가 없고 손을 놓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박살이 날 것 같아서 더욱 소나무 가지를 움켜잡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위에 아무도 없소 사람 살려 주세요그러나 아무런 소리가 없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여 옵니다. 그 때 절벽 위에서 바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 집사야!”

이 사람은 너무도 기뻐서 소리쳤습니다.“, 여깁니다. 빨리 살려주세요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상했습니다. 이 캄캄한 밤중에 또 이 산중에서 자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때 절벽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기쁜지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만 게신 줄 알았는데 이 산중 절벽에도 계셨군요. 그런데 괜히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하나님 빨리 올려 주세요 팔이 아파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라고 안달입니다.

그 때 다시 절벽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가 진정 나를 믿느냐? 내가 진정 너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느냐?”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하나님!, 이럴 때 하나님 안 믿으면 어느 때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빨리 올려 주세요. 이제 팔의 힘이 다 빠졌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은 비록 교회를 빠졌어도 내가 집사가 아닙니까? 집사가 하나님 안 믿으면 누가 믿습니까?”

위에서 다시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가 진정 나를 믿는다면 내가 너를 구해 줄 테니 그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아라

그 사람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 캄캄한 밤중에 내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았을 때 만의 하나라도 실수를 하신다면 나는 박살이 날 텐데 하고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 이 손을 놓으면 절벽으로 떨어져 박살이 나서 죽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있으면 나 좀 살려 주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박 집사는 소나무를 잡고 있는 팔에 시간이 갈수록 힘이 빠져 결국 나뭇가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젠 죽었구나 하는 순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불과 한 뼘도 안 되는 발밑에 땅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아니 오늘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실 된 믿음이 없이 시시 때때로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길로 간 것이 바로 우리들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교회에서는 집사요 권사요 속장이요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오지 못하고 주일성수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여 준다고 하시는데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제는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2017년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하면서 예수님만을 따라가는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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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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