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핀란드의 왕자가 없는 훌륭한 왕이 있었습니다.

왕위를 물려줄 때가 된 그는 왕위를 물려줄

훌륭한 사위를 뽑기 위해 방을 붙였습니다.


수천 명의 지원자 가운데

무예가 뛰어난 20명을 1차로 뽑은 왕은
두 번째로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100일 동안에 하늘과 땅을 잇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나무를 구해 오너라" 라고 명했습니다.

 

청년들은 하늘과 땅, 이웃과 이웃을
연결할 큰 나무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 20명 중에는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란 존 페로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나무를 찾다가 지친 페로는

어느 날
수녀원 성당에 들어가

현명한 왕이 되어 세상의 불쌍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오던

그의 눈에

나무 십자가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렇다,

그것은 나무로 된 십자가"라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 후 페로는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승리케 하고, 형통케 하는 통로입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어거스틴이 하나님을 떠나 방탕하고 악한 삶을 살고 있었을 때,
그 어머니 모니카는 항상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아들에게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라는 권고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도저히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만 있다면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정말 믿고 싶었지만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방탕한 삶에도 진력이나 곤고해진 어거스틴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당신을 보여 주십신오.
나도 믿고는 싶지만, 이해가 되어지지 않습니다.
이 진절머리 나는 삶에서,당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당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 속에서 그는 파도가 철썩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위로
그의 발자취를 남기며 걸어가고 있는데,
한 소녀가 홀로 앉아 모래구덩이를 파 놓고는
하얀 조가비로 바닷물을 떠 담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물었습니다.

'얘야, 거기서 혼자 뭘 하고 있니?'

'예, 아저씨, 바닷물을 이 모래구덩이에 퍼 담고 있는 거예요.'

'원, 바닷물을? 그래 그 바닷물을 얼마나 퍼 담으려고?'

'저 바닷물을 다 이 모래구덩이에 퍼 담을 거예요.'

'얘야, 바다가 안 보이니?
바다가 얼마나 넓고, 바닷물이 얼마나 많은데,
그 작은 조가비로 그 작은 모래구덩이에 다 퍼 담을 수 있겠니?'

'그렇지만,
계속 퍼서 담다가 보면 언젠가는 바닷물이 다 마를 것 아니예요?'

'얘야, 그렇지 않단다.
 저 큰 바다를 그 작은 모래구덩이에 담기란 불가능하단다.
네가 종일 퍼담았어도 바닷물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잖니?'

'그렇지만 아침부터 계속 물을 떠서
담았으니까 조금은 줄어 들었을 것 아니예요?'

'아니란다.
네가 퍼담는 바닷물보다 강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오는 물이
훨씬 더 많은 걸.또 네가 모래구덩이에 바닷물을 떠 담아도
바닷물은 모래 속으로 스며들고 말지 않니?
해가 저무는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무나,
부모님이 걱정하신단다.'

그 때 그 소녀가
어거스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저 바다보다 큰 하나님의 세계를,
조개 껍데기보다 작은 아저씨의 생각으로,
모래구덩이 만한 아저씨의 머릿속에
담는 일이 훨씬 더 어렵지 않을까요?
아지씨의 인생이 저물고 있어요.
아저씨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그는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이 예사롭지 않은 꿈을 통해 
자기의 보잘것없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답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 중에서-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 25:23)

 

▣ 충성하라

성경: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서양역사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도(Alexander) 대왕의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번은 알렉산도 대왕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왕이 전쟁에 패하고 도망을 가야 하니 얼마나 가련한 신세가 되었겠는가? 그때 다른 군사들은 슬금슬금 자기 살 곳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알렉산도대왕은 도망을 가면서 말 안장에 무거운 짐을 실어 사병 하나에게 끌고 가게 했습니다. 그 짐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금덩이였습니다. 얼마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전쟁에 크게 승리하여 나라를 되찾고 부귀영화를 다시 회복했을 때 왕은 그 병사를 불렀습니다. 왕은 그 병사를 칭찬하고 그 병사가 짊어지고 왔던 짐을 전부 병사에게 주었습니다. 금덩이가 담긴 짐이었습니다.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는 보상이 있는 법입니다. 오늘도 끝까지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끝까지 충성하라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는 40대에 들어서면서 찬란한 부흥 시대를 맞이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들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그의 목회는 예전만큼 눈길을 끌지 못했고 영광의 시대는 흘러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존 녹스는 이런 일기를 썼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일굴 것이다. 그러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다시 불을 붙여주실 것이다. 하지만 불을 붙여주시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나는 계속 밭을 갈 것이다." 언젠가 존 녹스는 분명히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 25:21). 그렇다. 존 녹스는 그가 이루어놓은 커다란 일에 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은 일들에도 성실했음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일주일이나 이 주일에 한 번 씩 심한 운동을 하는 것은 그보다 덜 힘든 운동을 매일 하는 것보다 효과가 적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성실함은 결승선을 향해 뛰는 마라톤 선수와 같다. 수십 킬로미터 내내 타박타박 뛰어가는 마라톤 선수는 사실 단거리 선수만큼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마라톤에서는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이 상을 받는다.

 

 

▣ 진돗개의 충성

31살 김 집사는 딸 셋을 남기고 천국간 남편으로 인해 청상과부가 되었다. 살아야겠다는 믿음과 의지로 농사일이며 갯벌일이며 노점이며 닥치는 대로 했다. 큰딸은 음악을 전공해 음악학원을 경영하고, 둘째딸은 초등학교 교사에 임용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막내 또한 음악을 전공해 교회 반주로 봉사한다. 김 집사는 권사가 되어 교회의 어머니가 되고 딸들 모두 고향교회를 돕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다. 그러나 진돗개의 충성이기도 하다.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가 새벽기도 갈 때는 항상 앞장서 동행해주고, 새벽기도 끝나면 기다렸다 집까지 호위해주고, 밤이면 잠들지 않고 대를 이어 가며 15년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주었다. 철철이 새끼를 낳아 아이들 학비도 보태고 교회 헌금도 하게 했다. 사람들은 모두 진돗개를 보고 사람보다 더 많이 헌금하는 개라고 부른다. 진돗개가 아니었다면 울타리도 없는 섬마을에서 31살의 청상을 어찌 지켰겠는가.
[국민일보]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 일편단심(충성)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1711∼99)는 1735년 25세에 등극하여 황제로 60년, 태황제로 4년 도합 64년을 통치한 분입니다. 그가 1760년께 신장 위구르족을 정벌하고 카슈가르족 왕의 정혼녀 향비(香妃)를 전리품으로 얻었는데 향기 나는 미녀란 뜻의 이 향비가 자금성에 갇혀 온갖 호의호식을 마다하고 오직 고향 카슈가르 음식을 먹고 위구르 복장을 고집하면서 항상 비수를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황태후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죽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향비의 애틋한 사랑의 일편단심이 애절함을 넘어 존경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자금성의 온갖 부귀영화도 그녀의 일편단심을 꺾지 못해 끝내 향비는 숨을 거두고 그녀의 소원대로 고향 카슈가르에 안장되었습니다. 일편단심, 그것이 애정이든 애국이든 실용주의와 기회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에는 더욱 존경받을 일입니다. 예수를 향한 성도의 사랑 또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한 일편단심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철재 목사(서울성서교회)

▣ 작은 일에 충성한 소년

함경도 어촌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할아버지가 운영하던 40척의 고기잡이배가 한 척도 돌아오지 않았다. 폭풍에 모두 침몰된 것이다. 소년의 가족은 그 많던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나눠주고 빈손으로 동네를 떠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은 하루아침에 캐나다인 선교사 가정의 머슴이 됐다. 소년은 온갖 궂은 일을 감당했다. 추운 겨울에 맨손으로 빨래까지 했다. 너무 힘이 들어 운적도 많았다. 선교사는 종종 소년이 알 만한 곳에 돈을 놓아두었다. 소년의 정직성을 시험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소년은 한번도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소년은 주인의 시험에 합격했다. 선교사는 소년을 서울에 데려가 교육시켰고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도 보냈다.
이 소년이 바로 남대문교회 목사를 지내고 천안대의 전신인 대한신학교 창설자인 김치선 박사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충성된 해병

회교 자살 특공대가 레바논에 있는 미국 해병대의 기지를 기습 공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2백여 명이나 되는 미국 해병대원들이 사망했고 많은 수가 부상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령관인 4성 장군 '폴 켈리'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중상을 입은 해병들을 위로했고 그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강인하기로 소문난 켈리 장군이었지만 훈장을 달아주는 그의 손은 떨고 있었으며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 군인은 너무 심하게 다쳐서 말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장군은 그에게 다가가 자기가 사령관 켈리 장군이라고 말하며 그를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그 해병은 손가락으로 침대의 시트 위에 무슨 글씨를 썼는데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간호사가 그의 손에 펜을 쥐어 주었습니다.
'Semper fi …."
그는 여기까지 쓰다가 손에 힘이 없어 펜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쓰려다 만 글은 "Semper fidelis.(항상 충성하라.)" 였습니다. 이것은 미국 해병대의 구호였습니다. 이것을 본 켈리 장군은 그만 목이 메어 울고 또 울었습니다.

▣ 몸으로 가교를 만든 병사들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할 때 러시아 카자크족이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오자 프랑스 군대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카자크족이 어느새 모든 교량을 파괴하고 퇴로를 완전히 차단해버렸습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강물이 얕은 쪽을 골라 병사들에게 부서진 다리의 교각을 붙들게 하여 가교를 만들게 해서 병사들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마지막 병사가 건너가자 물속에서 교각을 붙잡고 가교를 만들었던 병사들에게 철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교각을 붙든 채 얼어죽었던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희생은 사명의 엄숙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충성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영생의 주님께 대한 성도의 충성이 이에 못 미친다면 어찌 십자가 군병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철재 목사(서울 성서교회)

▣ 충성된 생활

히브리 십일장에는 신앙의 거성들이 수록되었는데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늘 아버지께 효자요 충신이요 산 순교자들이다. 사람들은 달란트가 각각 다르고 은사도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처해있는 '지금' '여기'에서 충성하는 것이다. 크리스천이 부름받은 장소는 '지금 여기'다. 과부가 가진 엽전 두닢,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는 중요하고 바쁜 시간 중에서 주님께 드리는 첫 시간을 주님은 원하신다. 병들고 깨진 질그릇 같은 인생이냐 깨진 항아리 소리로 찬송을 불러라. 문둥이면 어떠냐. 법주사 뜰 구석 큰 바위 꼭대기에 500년 묵은 앙상한 소나무가 있다. 던져진 곳에서 불평 없이 충성되게 삶을 지킨 그 소나무 같이 되고 싶다.

▣ 충성된 종

파나이섬에서 선교하고 있는 동생 강요한 선교사와 함께 50여명의 선교사를 대접할 일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대형 버스에 모시고 나는 승용차로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 버스에서 나오는 매연이 무척 심해 나는 강요한 선교사 운전기사인 현지인에게 버스를 추월, 앞장서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 강선교사가 뒤따라오라고 하였다면서 결코 앞장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주인의 형이라고 말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주인이 말한 대로 뒤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차가 멈추었을 때 동생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자 동생은 웃으면서 이 기사는 자기 말 외에는 누구 말도 안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면 화단에 물을 주라고 하였더니 비가 오는 날에도 물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만 고지식하게 들었던 아브라함이 생각났습니다. 명령대로 아들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강문호 목사(갈보리선교교회)

 

▣ 박제상과 미사흔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의 아우 복호(목호)가 왜인에게 잡혀가자 망명객으로 가장하여 일본에 들어가 복호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잡혔다. 박제상의 학문을 높이 산 일본 사람들이 그에게 귀화를 권했으나 그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대나무 창을 밟게 하고 인두로 몸을 지지는 고문을 하면서 귀화를 하라고 협박하는 일인들에게 그는 "나는 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일본의 벼슬은 하지 않겠다. 나는 조국의 겨를 먹을지언정 일본의 좋은 음식은 먹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인들의 심한 고문과 회유를 물리치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한편 그의 아내 미사흔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 충성된 일꾼

기원후 79년에 이탈리아의 폼페이 근처에 베스비우스 산이 용암을 내뿜어서 폼페이 시 전체를 완전히 페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 고고학자들이 폼페이 시가지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발굴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모습이 하나 발굴되었는데, 그것은 폼페이 성의 문을 지키는 보초병이었다. 그는 그 도시의 성문 앞에 무기를 손에 들고 부동 자세를 한 채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런던에 있는 미술관에 가면 이 군인을 모델로 해서 그 당시의 어지러운 모습을 그려놓은 유명한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그런데 그 그림 아래에는 "충성"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관연 그렇다! 주위의 그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바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든지 또는 저렇게 하든지 그것에 관여할 바가 아니다. 또 남들이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은밀히 보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주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서 충성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충성된 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을 것이다.

▣ 충성된 마차부

성경: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어떤 마차부가 주인 가족을 동반하고 깊은 산림 지대를 마차를 몰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 갈 때에, 말들이 갑자기 놀라면서 앞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차부가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뒤에 짐승들이 여러 마리 따라 옵니다. 그 마차부는 그것이 이리 때인 것을 금방 알고, 네 필의 말에 더욱 채찍질을 가하며 동리를 향해 달립니다.
그렇지만 이리처럼 빨리 달릴 수 없었다. 얼마쯤 가다 보니 이리떼가 점점 가까이 오는 데 몇 마리가 아니라 여러 수십 마리가 따라 옵니다. 맨 앞에 달려오는 놈을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그래도 잠시뿐 또 가까이 다가옵니다. 이 마차부는 생각다 못해 말 가운데 한 마리를 떼어 놓아 다른 방향으로 달음질 시켰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쫓아서 달려가 잡아먹었습니다. 잠시의 시간을 얻었을 뿐 계속 이리 때들이 달려옵니다. 할 수 없이 또 한 필의 말을 떼어 내었습니다. 그러자 이리떼들이 달려들어 잡아먹고는 계속 쫓아옵니다. 저 멀리 동리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동네에 도착하기 전 이리떼에 모두 다 희생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말을 떼어 낼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마차부는 주인에게 "이 말을 몰아서 빨리 동리로 들어가세요, 나는 저놈들과 싸우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급히 마차를 보내고 뛰어 내렸습니다. 주인 가족은 무사히 동리로 들어갈 수 있었으나 마차부는 총탄이 다 떨어 질 때까지 이리 떼와 싸우다가 희생되었습니다. 이렇게 이 마차부는 자기의 주인가족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희생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사랑입니까?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죽도록 충성을 다합시다.(고전4:2, 계 2:10, 요 3:16)

* 기도: 가장 귀한 나의 하나님, 주께서 가라시면 가고, 서라 시면 설 수 있는 내 역할을 수행할 자세를 갖추겠습니다. 크고 작은 일 상관없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크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충성을 시인하자

조선조 숙종이 평복으로 민정시찰을 나갔다가 저잣거리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선비를 만났다. 딱하게 여긴 숙종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선비는 “과거시험 보러 왔다가 낙방했다”고 대답했다. 숙종은 “참으로 안됐다”며 “아무 벼슬이라도 하겠느냐”고 물었다. 선비는 “뉘신 지 모르겠으나 시켜주면 하겠다”고 했다. 숙종은 군수, 판서, 정승 벼슬을 차례로 나열하며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물을 때마다 그 선비는 “하겠다”고 했다. 숙종은 마지막으로 “임금 자리 주면 하겠소”라고 물었다. 순간 숙종 눈에 불이 번쩍 했다. 선비는 “나보고 역적질하란 말이냐”며 숙종의 뺨을 때린 것이다. 놀란 숙종의 무감들이 선비를 붙잡고 요절을 내려는 찰나, 숙종이 나서며 말했다. “아니다. 저 사람이야말로 진정 충신이다.” 그 후 벼슬길이 열린 선비는 정승 반열까지 올랐다. 우리가 주님께 충성을 시인하면 주님은 우리의 앞길을 시인하신다(마10:32).
/윤여풍 목사(충성교회)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사 60:22)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기도 했고,
천식 때문에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가족은 열 살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열한 번째 생일이었다.
온 가족의 축하 속에
소년이 케이크의 촛불을 힘껏 불었다.
그러나 단 한 개의 촛불만 꺼졌다.

소년은 실망하며 울었다.
소년을 도와 촛불을 끈 아버지는
“촛불을 끄며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울먹이며 대답했다.
"내년 생일에는 저 혼자 힘으로
열두 개의 촛불을 모두 끌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제 몸은 왜 이렇게 약하고 불편할까요?"

아버지는 소년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네가 가진 불편함은 단순한 장애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야.
그 선물의 의미를 네가 잘 찾아낸다면
넌 오히려 장애 때문에 더욱 훌륭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단다.”

소년은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담았다.
날마다 걷기 운동을 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했다.
이 소년이 바로 미국 제26대 대통령인 테어도어 루스벨트이다.

조건이 좋지 않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고난을 통해 인격(Character)을 갖추어지고,
시간을 투자하면 실력(Competence)을 쌓아지며,
헌신(Commitment)할 때 시대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훈련하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사 60:22)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하시는 일

 


성령님께서는 믿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을 하신다. 오늘날 성령에 대해 설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성령침례나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만 말하는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8장부터 12장에 나오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과 같다. 이들은 성령님에 대하여 거의 모르는 것이다.

  사실 고린도 교회에서 은사를 받았다고 떠들던 은사주의자들은 자신의 몸이 성령의 전인 사실도 모를 만큼 어리석었다. 바울은 계속해서 성령의 은사만을 이야기하는 육신적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신약에서 자신의 몸이 성령님의 전인 것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만을 자랑하던 사람들이었다.

  성령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 대신에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자랑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5:22-23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그만큼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항상 육신적인 고린도 교회를 배회하고 있으며 방언을 자랑하고,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여 음행을 저지르고, 술 취함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분열을 일삼는다. 신약에서 가장 육신적인 교회는 고린도 교회였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전서 14장을 계속 배회하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본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한 계시나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구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도행전 2장의 대상은 모두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인 개종자들이다. 사도행전 2장은 아직 어떤 신약성경도 기록되지 않았을 때이다. 사도행전 2장은 구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사도행전 2장에 와서 모두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는 이 구절들을 교회시대에 잘못 적용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성도와 관련하여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살펴보겠다. 특별히 성령님께서 적극적으로 역사하시는 44가지의 일들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이 공부를 위해서는 성경의 건전한 교리를 공부하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성경적임을 입증하려 성경 몇몇 구절을 인용하는 은사주의자들은 이런 교리가 진리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 성령님께서는 거듭난 성도에게 그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시켜 주며 예수 그리스도와 닮도록 하신다(갈4:6, 롬8:16-17). 거듭난 성도는 결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 사실을 성령님께서 확신시켜 주신다.

  2. 성령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장차 영광의 보증으로 인치셨다(고후1:22, 엡1:13-14).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을 인치시고 성도에게 장차 다가올 영광으로 보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다. 미리 정하심은 절대적인 것으로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미리 정하심”은 신약에서 결코 구원과 관련하여 쓰이지 않았다. 미리 정하심은 구원받도록 미리 정하셨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 두 번 나오는데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과(자녀로 입양할 것을 미리 정하심)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미리 정하심)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미리 정하심은 절대적으로 확정되었고, 분명하며, 절대 무오하다.

 

  성령님께서는 이 사실을 사람이 구원받았을 때 보증으로 주시는 것이다. 믿는 사람에게 이 사실이 인쳐진 것은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거나 믿기를 그만둘 때까지가 아니라 “구속의 날”까지이다.

  3.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을 자신으로 채우셔서 승리의 생활을 주신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5:18).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더라』(행4:31).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 그들은 나가

서 모든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성령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을 자신으로 채우셔서 승리의 생활을 주신다.

  4.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고(살후2:13) 따로 분리하여 성결케 하신다(벧전1:2).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시며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위해 떼어 놓으신다.

  5. 성령님께서는 영원히 성도와 함께 거하신다(요14:16).

  6.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를 가르치신다(요14:26).

  7.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배운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신다(요14:26).

  8. 성령님께서는 믿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다.

성령님께서는 성도 안에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신다(요15:26).

  9. 성령님께서는 성도 안에서 역사하여 모든 진리로 그를 인도하신다(요16:13). 즉 오류를 바로잡아 주신다. 방언을 자랑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를 멈추고 그들의 감정적 경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거듭난 성도는 끊임없이 성령님께 초점을 맞춘다. 그가 진리를 찾고자 하는 한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발견하게 하신다. 성령님께서 진리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요16:13).

 

  전적타락을 주장하여 인간이 스스로 의지를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칼빈주의자나,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나 보다 깊은 진리의 지식은 외면한 채 구원의 안정성만을 외치는 침례교도나, 성경적 지식 없이 오직 성령의 은사만을 부르짖는 은사주의자들은 모두 진리를 찾는 것을 중단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 주시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성경은 마지막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라고 하신다. 오류를 범하지 않는 길은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10.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몸들을 받아서 이 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다(요16:14).

  11.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받아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다(요16:14).

  12.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약할 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겔36:27).

  (벧전1:22).

  14.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를 주신다(롬8:2).

  15. 성령님께서는 약한 성도를 택하시어 그 안에서 율법의 의를 채우신다(롬8:3-4). 즉 아무리 약한 성도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다.

  16.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육신을 넘어선 승리를 주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롬8).

  17.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실 것이다(롬8:11).

  18.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능력을 주셔서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게 하신다(롬8:13).

  19.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도의 기도생활을 인도하신다(롬8:26-27).

  20.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이 성령님께 순종할 때 육신의 욕망을 이길 수 있는 승리를 주신다(갈5:16-17).

  21.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율법으로부터 인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하신다(갈5:18).

 

  22. 성령님께서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갈5:22-23). 이는 매우 중요하다. 현대의 소위 은사를 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성령의 열매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성도 안에서 하시는 일은 영원히 거하게 될 영원한 것들을 맺는 것이다. 사람들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고린도전서 12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첫째, 고린도 사람들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둘째,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보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은사 같은 것을 소유한 체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에 대해 많이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를 피하는 것이다. 사실 만일 누군가가 성령의 열매(온유와 오래 참음)를 위반하여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은사주의자를 만나 보면 알게 된다. 그의 “은사”에 대해 말해 보면 그는 곧 폭발해 버린다. 그는 성령의 열매가 없다. 잠언 25:14에는 『거짓 은사를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누구나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은 비 없는 구름과 바람을 본 적이 있는가? 소나기 구름이 몰려오는데 신선한 비를 내릴 것 같지만 바람만 불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 이것이 흡사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은사”를 소유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같다.

  23.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께 인도될 때 거룩하게 행하도록 하신다(갈5:25).

  24. 성령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제거하는 것을 도와주신다(엡4:30-32).

  25. 성령님께서는 성도 안에서 사탄을 패배시킨다.

  26. 성령님께서는 주를 의뢰하는 영에게 쉼을 주신다(사63:14).

  27.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주가 되시도록 하신다(고전12:3).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거하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개인적 삶의 주님이자 통치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는 일을 하신다.

  28.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유를 주신다(고후3:17).

  29.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실 수 있고(롬5:5)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가 하기 힘든 때에도 우리의 적들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수 있다.

  30.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주신다(롬15: 13).

  31. 성령님께서는 능력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게 하신다(엡3:16).

  32.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의와 화평과 희락을 주신다(롬14:17; 15:13).

  33.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계시하시고, 해석하시고, 적용하게 하신다(고전2:9-14).

  34.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행1:8, 살전1:5).

  35.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마음을 주신다(요4:23, 빌3:3).

  36.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위로하고자 보내심을 받은 위로자이다(행9:31).

  37.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은 부르시고 그들을 인도하셔서 어떤 일을 시키도록 인도하신다(행13:2-4).

  38. 마태복음 4:1과 로마서 8:14에 따르면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의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인도하신다.

  39. 성령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친히 나아가셔서 우리가 기도할 때 대리자 없이 바로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엡2:18).

  비록 지금까지 열거한 조항이 길게 생각될지라도 성령님의 사역에 관해 다 말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장의 성령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은사들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은사들 중 표적으로 보여 주시지 않은 은사들은 지금도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오순절파와 은사주의자들은 모든 은사들이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방언과 병 고치는 은사는 표적이었고, 표적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사도들이 등장하는 사도행전에 머무른다. 사도들의 표적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표적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방언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먼저 골로새서나 에베소서에서 바른 교리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도행전에서 배회하고 있다. 이들은 표적을 흉내 내어 사람들이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길 원한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고린도전서 12장의 이스라엘을 위한 표적으로 주어진 은사들로 인해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2에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4:22에서 방언은 표적으로 주어진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이고 분명히 지금까지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게 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도들이 행했던 어떤 것들은(고전12:12; 14: 22)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모든 사도들이 죽은 사실과 더불어 명백하다. 이 말이 의심이 간다면 성경을 공부하여 바울의 마지막 사역 때가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 바울은 자기 친구의 병조차도 고치지 못했다. 트로피모는 밀레토에 남겨졌고 디모데는 위장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쓰도록 권고 받았다. 성경을 전부 읽어보면 가장 위대한 사도가 사도행전이 끝나갈 무렵쯤에는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는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무엇과 관련하여 어떤 문맥에서 기록된 말씀인지 알아야 한다.

  40.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을 죄에서 의로 옮기기 위해 사람들과 다투실 수 있다(창6:3).

  41.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조명을 주실 수 있다(욥32:8).

  42.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재능과 기술을 주신다(출31).

  43.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이 평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판6:34).

  44.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요구하는 특정한 일들을 하도록 도우신다(판14:6).

  이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성령님께서 성도에게 일하시는 44가지의 일을 살펴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신격의 한 분으로서 성도의 삶에서 적극적으로 일하시는 중요한 인격이시다. BB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찬양으로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제목 : 오늘 이 하루도)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바울을 따르는 자가 되라

 

 

           (바울을 따르는 자가 되라)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듯이(마 8:22), 사도 바울도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고 말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울 자신이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전 4:16; 11:1, 빌 3:17). 우리는 진리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길에는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들이 남아 있다. 우리가 이 길을 걷는 데 있어서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의 행보는 우리에게 좋은 표식이 되어 주고 있다.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선한 간증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도『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들려 주고 너희를 다스리던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행실의 결과를 관찰하여 그들의 믿음을 따르라.』(히 13:7)고 권면하고 계신다.

 

사도 바울을 따르는 데 있어서 앞서 간 성도들의 선한 간증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본을 보이고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교계 지도자들이 진실로 사도 바울을 따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말로는 바울을 따른다는 교계 지도자들이 바울이 설교하고 가르쳤던 것과 다르게 행동한다면, 그들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성도들을 오도하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도 바울의 행보와, 오늘날 교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변호할 때 자신이 회심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하늘에서 보이신 것에 불순종하지” 않았노라고 증거했으며(행 26:19), “나는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선한 양심으로 행하여 왔노라”(행 23:1)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선한 간증을 남길 수 있는 교계 지도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 선거가 교계 안에서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들의 신은 자기들의 배임을 증명하는 것이다(롬 16:18, 빌 3:19). 한국 교계에서 자행되는 부정부패는 비단 선거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통틀어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선한 양심을 지니라!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갈 6:7). 사도 바울이 보인 모범을 따르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 악에서 떠나고 “정직하게 행하며 의를 실행하고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시 15:2).

 

사도 바울은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따라야 할 한 좋은 본을 보여 주신 것이다. 바울도 우리와 같은 몸을 지닌 인간이었음을 볼 때, 바울을 따르라는 명령은 지키지 못할 명령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따르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기 때문에 바울을 따르지 못하고, 성경적 가치보다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먼저 내세우기 때문에 바울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바울은 성경을 믿었으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좌로나 우로 돌이키지 않았으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으로서의 선한 간증을 보여 주고 있다. 바울을 따르는 데서 돌이킨 한국 교계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는 바울의 모범을 배워야 한다. 바울이 가르치고 설교했던 것을 기억하고 우리 모두는 바울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 같은 영 안에서 행하며 같은 보조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BP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2010년 10월 04일
 박동명 기자

 

오늘도 찬양으로 은혜받으시길 소망합니다.

(찬양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죄인을 구원하는 위대한 보혈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인을 구원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주님의 보혈은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하루는 어떤 목사가 죽어가고 있을 때 곁에 서 있던 사람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 거예요, 제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나라에 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목사님이라고 하셨거든요.” 이 말을 들은 그 목사는 한쪽 팔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며 거친 숨소리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죽어 가는 죄인에게 그런 헛소리를 하지 말게나.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에 의지해서만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라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들을 묵과하시거나 근거 없이 눈감아 주시지 않고 반드시 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죄인은 자신의 죄 문제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히 9:27).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 죄에 대한 형벌로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서 고통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막 9:48,49, 살후 1:8,9, 시 9:17, 계 20:14,1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해 죄 없는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죄인들을 위한 구원 계획을 세우셨다(요 3:16, 롬 5:8,9). 구약 시대에는 동물들을 죄인들 대신 죽여 피를 흘림으로써 죄들을 용서받았지만, 이것으로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었다(히 10:4).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만이 인간들의 죄들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기에 이 피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마침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해 놓으셨다.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한글개역성경을 위시해서 변개된 성경들에는 “그의 보혈을 통하여”가 삭제되어 있다. 그래서 그 성경을 들고 신앙생활 하는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그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근거 없이 죄들을 덮어 주는 분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죄인들을 의롭게 하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흉악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땅에 속한 죄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주님께서 그분의 성도들을 구속하신 근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이다(벧전 1:19). 성도들이 현재 지은 죄들을 씻을 수 있는 것도 주님의 보혈이다(요일 1:7).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이 위대한 보혈의 능력으로 인해 주님을 항상 찬양하고 그 피의 공로를 의지해 주님을 신실하게 섬겨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출처 : 말씀보전학회 http://www.biblemaster.co.kr

 

  

                                                                                                                          2015년 02월 02일
                                                                                                                            정형영 기자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 of God & sons of God)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 중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견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아버지 하나님보다 열등한 신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한 속성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은 그분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동일시 하셨다(요 10:30). 유대인들도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고, 그 말에 대해서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반응했다.

 

사복음서 중에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는 복음서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의 기록 목적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다(요 20:31).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이 그분이 유대인의 왕, 즉 “다윗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요한복음에서의 그분의 표적들은 예수님의 신성, 즉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고 있다(요 20:30,31).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은 구약과 신약에서의 의미가 각각 다르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경건한 혈통인 “셋의 후손”이라고 오해하지만, 이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 온 인류가 함께 타락했음을 간과한 생각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가 아무리 선하고 경건해도 결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수 없었다. 구약 성경 어디에서도 인간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단지 이사야 43:6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리켜 “나의 아들들과 딸들”이라고 하셨을 뿐이다.

 

구약에서 이 용어는 다섯 번 등장하는데(창 6:2,4, 욥 1:6; 2:1; 38:7), 다섯 번 모두 천사들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홍수 직후 기록된 책인 욥기에 잘 정의되어 있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이 용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들이 분분하지만, 욥기 1장과 2장에서 이 용어가 천사들을 가리킨다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자연히 창세기에서도 이 용어는 천사들을 뜻한다는 것이 증명되는데,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합하여 낳은 존재들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기형적인 거인들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보통의 인간이 아닌 특수한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범죄하여 땅으로 내려온 천사들로, 베드로후서 2장과 유다서에서는 노아의 홍수의 원인이 바로 이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천사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언급하실 때, 부활 때의 몸은 결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22:30). 일반적으로 이 말씀을 근거로 천사들이 무성(sexless)의 존재라고 인식하지만, 천사들이 무성이라는 것은 성경 어느 구절에서도 뒷받침될 수 없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땅에 내려온 천사는 항상 젊은 남자로 등장한다(창 19:10-15, 판 13:3-21, 행 1:10,20:12, 갈 4:14, 계 21:17). 남자들끼리는 결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천사들이 결혼할 수 없다는 말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구약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창세기> 6장의 주석 참조)

 

이에 반해 신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은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들을 말한다. 아담에게서 태어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방법이 신약에서 제시되었다. 이 방법은 유일한 방법이며 가장 확실한 방법인데, 요한복음 1:12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아담이 타락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형상이심을 알아야 한다(고후 4:4).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성령으로 거듭난 신약 성도들에게만 다시 회복될 수 있다. 『그 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태어나신 첫 번째 사람이시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다(요 3:5). 그들의 육신은 인간 부모에게서 났을지라도 그들의 죽었던 영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 중에 첫태생이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한 신약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롬8:14).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입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그러므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변화할 것인데(롬 8:29, 빌 3:21, 고전 15:49), 그 몸은 또한 하늘에 있는 천사들의 몸과도 같다(마 22:30). 이 몸은 피가 없이 살과 뼈로만 구성되어 있고(눅 24:39), 구운 생선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실제적인 몸이면서도(눅 24:42), 벽을 통과할 수 있는 신비한 몸이다(요 20:19). 이 몸은 순간적으로 우주 저 너머에 있는 셋째 하늘에 갔다 올 수 있는 몸이며(요 20:17, 마 28:9, 고전 15:52, 살전 4:16,17), 보였다가 안보이기도 할 수 있는 몸으로(눅 24:31), 예수님의 부활 때의 몸과 같이 서른 세 살 반 된 남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일어나며(고전 15:49-52, 요일 3:2),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복된 소망을 갖는다(딤후 4:8, 딛 2:13). 또한 성경은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 나타나길 기다린다고 말씀한다.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나니 이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 분 때문이니라』(롬 8:19,20).

 

그러나 그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비뚤어지고 변질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마귀의 자녀(요일 3:10), 불순종의 자녀(엡 2:2), 진노의 자녀(엡 2:3)였으나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진리가 가리워진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비추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는 너희 하나님의 아들들이 흠 없고 순전하여, 비뚤어지고 변질된 민족 가운데서 책망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 너희는 세상에서 빛들을 비추는 자들이라』(빌 2:15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출처 :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3월호  (통권 48 호)   page : 65

 

오늘도 찬양으로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

 

 

 

회심할 때 성도들은 의로운 상태로 받아들여지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이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침례에 의한 거듭남을 믿어온 이단들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단지 두 구절만을 제시하며 그들의 교리를 입증하려는 것은 그들이 이 책들에서 말하는 전체적인 내용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용하는 두 구절은 로마서 6:3과 갈라디아서 3:27이다. 로마서 6장은 성령침례를 다루고 있으며, 갈라디아서 3장은 물침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구원받지 못한 목사들에게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마치 무슨 죽음의 전염병인 것처럼 다루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이 두 구절만 발췌하여 인용하는 이들은 결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가르치지 못한다. 이 두 책은 믿음에 의한 의, 믿음에 의한 구원, 믿음에 의한 구원의 영원한 보장 등을 분명히 다루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며,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전가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사람에게 전가된다는 내용을 분명히 가르치기 때문에 행위와 물침례에 의한 중생을 믿는 이들은 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한 가지 문제는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소유했다고 선언되어지는 ‘믿음에 의한 의’를 어떻게 피해서 빠져나갈 것인가이다(롬4:5). 이런 이유로 모든 구원받지 못한 로마 카톨릭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게 쓰여진 야고보서 2장을 선호하는 것이다.

 

  리빙바이블은 야고보서 1:1-2을 변개시켜 야고보서 2장이 믿는 성도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였다. 이 거짓 교리를 교회 역사가들은 “이단”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에게 성경번역을 통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이들이 성령님께 대해 저지른 모독은 참으로 크나큰 것이다. 성경을 변개시켜 거짓말을 가르치도록 하는 죄를 짓는 사람들보다 더 웃기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없다. 야고보서 1:1은 어떤 그리스도인에게도 쓰여지지 않았다. 이 구절을 변개시킨, 살아있는 성경이라고 하는 리빙바이블은 “죽은 번역”을 한 것이다.

 

  한 사람이 구원받을 때 그는 의로운 위치에 서게 되며 의롭다고 선언되어진다. 그 다음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고전6:19-20). 우리는 구속받았다. 우리는 “노예”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의지를 주님께 복종시킨다(롬12:1-2). 이것은 우리가 악과 이기적인 요소를 벗어던질 때 “비어진 삶”으로서 가능하다. 이 “비어진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어 주님 안에서 죄가 없는 완전한 상태가 되지 않는다면 구원받은 삶이 아니다. 진공상태에서는 살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한다. 이것이 에베소서 5:18의 명령이다. 『술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신약성경 어디에도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라는 명령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모든 성도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라.”가 아니고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간 후에(이것이 성령침례의 정의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5:18에는 두 가지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즉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죄는 술 취하는 죄와 같다. 같은 구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고 역시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두 가지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것은 마치 술 취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구원받은 후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다.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그의 안에서 온전하게 되느니라』(골2:9-10). 구원받았다면 삶 속에서 부족한 것은 없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다음 두 가지 잘못된 사실 중 하나에 해당된다.

 

  1) 성령 충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거나 2) 하나님께 구했더라도 삶 속에서 성령님께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침례에 관하여 말한다면 여러분이 구원받는 순간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셨다.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신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피 값으로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 여러분의 몸에 들어와 살기 위해 오셨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신다. 성령님은 주님이시다. 『이제 그 영은 주시니...』(고후3:17). 하나님께로 회심할 때 모든 믿는 성도는 성령님을 소유하게 된다. 여러분이 구원받았을 때 여러분은 성령님으로 인쳐진다(고후1:22,엡1:12-13).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죄 가운데 있거나 아니면 입으로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것을 포기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더욱 더 자신으로 채우신다. 이것이 바울이 갈라디아서 4:19에서 믿는 성도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도록 기도한다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지만 우리의 태도에 따라 우리를 주관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특정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수십 종의 서로 다른 성서 번역본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적인 경험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해 왔다. 이들은 교회연합운동을 하는 자들과 은사주의자들, 그리고 경험을 중시하는 불안정한 사람들로 항상 자신들의 느낌으로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한다. 물론 이것은 매우 어리석고 현명치 못한 짓이다. 성경은 모든 책들을 심판한다. 성경은 그 교리와 함께 여러분의 태고적 조상이 태어나기 전에 확립되었고 만일 주님이 지체하신다면 여러분의 가장 나중 후손이 죽을 때까지 동일한 효력을 나타낼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은 후에 당신이 경험한 몇 가지 느낌으로 사도행전이나 야고보서, 히브리서를 판단한다면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는 참으로 현명하지 못한 일이며 사탄이 하는 일이다. 여러분이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의롭게 하신다. 그러나 성령님께 순종하여 여러분의 삶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일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한 사람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때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가 아니고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자신을 드릴 때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경험하게 되는 가장 큰 위험은 의지를 굴복시킬 때 발생한다. 왜냐하면 사탄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의 의지를 통제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위험스런 경험은 구원받은 후에 다가온다. 이 때 성경을 인용하고 성경을 믿는 체하는 이단들이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은 감정적인 경험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새로 태어난 영적 갓난아이의 삶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영적으로 말하면, 이때가 대부분의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죽는 시점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고 성경을 인용하는 이단들이 결코 죄인들에게 갑자기 덤벼들지 않고 그들이 구원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이유이다. 만일 당신이 구령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전략을 알아야 한다.

 

  모든 성도에게는 성령님이 계시지만 성령님이 모든 성도를 주관하시지는 않는다. 성도들은 아직도 하나님께 반역하려는 의지와 옛 성품이 있다. 기도할 수도 있지만 안할 수도 있다. 주님을 증거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순종할 수도 있지만 불순종할 수도 있다. 즉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저항하거나 성령님을 슬프시게 할 수도 있다. 믿음에 의한 가장 훌륭한 행위는 성도가 그의 삶을 포기하고 성령님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이때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은 당신 삶의 나머지 부분을 차지하고자 성령님을 흉내 내는 것이다. 성도가 구원받고 성령님께 헌신할 준비가 되자마자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은 성령님을 흉내 내는 일이다.

  성도가 성령님께서 그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시고 모든 작은 일이라도 완전하게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성령의 충만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성령님은 자신의 영감으로 기록하고 보존하신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어긋나게 성도를 인도하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2:38을 기록하셨고 그곳의 모든 대상은 유대인들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이었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2장에서 5장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없고 사도행전 11장까지는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성령님께서는 사도행전 2:38을 구원계획으로 받아들이라고 인도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결한 영이 하는 짓이다. 성령님께서는 오순절 때 어떤 회심자도 그의 일생에 단 하루라도 방언을 말한 적이 없으며 사도행전 2장에서 방언이 회심의 표적이거나 성령 충만의 표적이 아니라고 보여주신다.

 

  성령님은 고린도전서 14장을 기록하셨고 그 장 전체에서 방언에 관해 한 번도 침례를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 장을 기록하시고 보존하신 성령님께서 “알지 못하는 방언”이 성령침례와 관계가 있다고 인도하시지 않는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2장을 기록하셨고 보존하셨으며 거기에 어떤 알지 못하는 방언도 없다고 분명하게 해 주신다. 알지 못하는 방언이 성령침례의 표적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의 삶을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하신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신 분께 내어드린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다른 영과 관련되어 일하는 것이지 성령님과 연관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충만 하라는 것은 순종해야 하는 명령이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경험해야 한다. 에베소서 5:18은 선택적인 명령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되는 명령이다.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2:4; 4:8; 4:31에서 성령으로 충만했다. 사도행전 4:8에서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그는 방언을 말하지 않은 것에 유념해야 한다. 사도행전 4:31에서도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방언을 말하지 않았음을 유념해야 한다. 사도행전 4:8과 4:31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의 현저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적들에게 선포한 것이다. 강단에서만 설교하고 공개적으로 거리에서 설교하기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 충만의 사실을 알지 못하며,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문 밖으로 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곳곳에 전하게 된다. 결코 강대상 뒤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성령으로 충만해질 필요가 있다.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도 성령 충만은 필요하다. 성령으로 충만 되지 않고서는 주님의 뜻과 축복을 바랄 수 없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개인의 축복이자 주위 사회의 축복이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그 사회에서 악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성도는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집을 방문하고, 공장에서, 가게에서, 호텔로비에서, 식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께서 스스로를 말하기 위해 오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은 오셔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증거 하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교회연합운동이나 “사랑” 혹은 성령을 증거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심, 죽으심, 장사, 부활하심을 증거 한다. 교회연합, 사랑, 경험을 나누는 것 등만을 말하는 사람은 불결한 영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성령님께서 증거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지성을 밝혀 주시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시며 우리가 순종할 때까지 의지를 격려하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계속해서 순종하도록 하신다. BB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2월호  (통권 35 호)   page : 34

 

 

성령 찬양으로 은혜받으시길 바랍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