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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복음  십자가 복음을 전하자

 

오늘날 교회에서 외면 당하는 십자가 복음
 
 
성경은 십자가의 도를 기록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예수님도 십자가의 도를 말씀 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니라(마16;24)
 
 
사도 바울도 십자가의 도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가로 작정 하였음이라(고전2;2)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두 말할 것 없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입니다(벧전1;9)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영혼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성경의 기록에는
 
 
예수를 주로 믿은 자가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고(롬8;17)
 
좁은문으로 통과 하여야(마7;13)구원을 얻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 당시 따르던 제자들에
 
직접 말씀 하시기를
 
예수를 주여 주여 불렀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2)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위의 사람들이 분명히 예수를 믿었었고 예수 이름으로
 
여러가지 사역을 했는데도 왜 주님은 저들을 모른다고 하실까요?
 
 
그이유는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역을 했거나
 
아니면 십자가의 도를 누가 전해 주었어도 믿지않고 외면 하면서
 
자기 열심으로 사명을 감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십자가의 도가 교회안에서 외면을 당하고
 
믿는 자들로 부터 버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소수의 종들이 외치기를
 
예수는 그냥 지식적인 동의로 마음에 믿기만 해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증거가 그 사람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요일5;10)

 
 
예수를 믿었으면 자기 안에 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증거는계명을 지켜야 하고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도 죄를 지으면 죄의종으로(롬6;16)사망에 이릅니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사람이 어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요일3;9)
 
예수를 주로 영접했다면 그는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요1;13)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니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요일3;9)

 
죄를 짓지 아니하는 비결이 바로 십자가의 도 입니다

 십자가의 도 안에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무지 불가능 하니
 
믿는 자가 십자가를 지고 죽을 때에
 
죄 없으신 주님이 죄 있는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셔서 능력으로 함께 하심으로
 
계명도 지키게 되고 죄도 안짓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십자가를 지고 죽지 아니하고
 
그냥 지식으로 믿고 동의 하는 상태에서는
 
주님은 믿는 자 안으로 들어오사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이 것이 십자가의 도의 원리입니다
 
 
죄인의 눈에 감추어진 십자가의 도

 
죄인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십자가의 도가 성경에는 이미 기록되어 있었으나
 
초대교회 이후로 시대마다 믿는 자들의 눈에 감취어져 있다가
 
 
하나님의 뜻을 쫒아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한 종을 통하여 십자가의 도를 열어 깨닫게 하시고
 
오랜 기간 하나님의 연단을 거쳐 완성된 진리로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지 않고서는 주님을 만날 수도 없고
 
죄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믿는 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십자가의 도의 진리를 외치니
 
오늘날 교회들은 믿으면 구원이지!! 무슨소리야 하며 듣기 싫어합니다
 
 
교회는 듣기 싫어하며 귀를 막아도
 
진리는 전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듣던지 아니듣던지 십자가의 진리를 외치는 것입니다(딤후4;2)
 
 
이렇게 외칩니다
 
예수를 믿는 형제여러분 천국을 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주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롬6;6)
 
예수를 주로 믿는자는 이 세상에 속하여 살면 안됩니다
 
 
십자가의 도의 기본은
 
이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버리세요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요일2;15)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 간음하는 여자입니다(약4;4)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되어 지옥갑니다..라고 외치면서
 
 
현재 교회에서 가르치고 전하고 있는 복음은 잘못되었습니다
 
회개하십시요..라고 외치고
 
 
또 십자가의 도 외에는 구원이 없으니
 
만약 회개치 않으면 절대 천국은 못간다...라고 인터넷에서 설교나 글로서 전하니
 
 
초대교회 당시
 
스데반이 둘러선 무리들을 향하여 진리의 복음을 외칠때에
 
저들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들이 마음에 찔려 저(스데반)를 향하여 이를 갈면서(행7;54)
 
저희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듯이(행7;59)
 
 
오늘날도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소수의 종들이
 
 
교회안에서 율법의 바리새인 같이 종교 생할에 머물고 있는 자들과
 
예수를 믿으나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죄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과
 
마귀에게 속한 이 세상을 쫒아 사는 무늬만 예수뿐인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은 마음에 짓는 것임에도 알지 못하고
 
예수 이름으로
 
교회를 크게짓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부 목사들과
 
 
예수믿고 이 땅에서도 복을받고
 
죽은 후에 천국도 가자 하는 세상과 간음하는 교인들에게는
 
십자가의 진리는 꺼리낌이 되어
 
 
주님이 십자가의 피를 흘려 세운교회로 부터
 
십자가의 도는 문전 박대와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심이 심히 가까운 이때에
 
교회는 마땅히
 
허리에 띠를 띄고 등불을 켜고 주님을 사모함으로 기다려야 함에도(눅12;35)
 
 
불구하고

이 세상의 쾌락과 안일함에 취하여 살고있는 목회 자들과 교인들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눈에 가시처럼 여겨져
 
예수 믿는 자로 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단 하나 뿐입니다
 
죄인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는
 
바로 십자가 복음 입니다(십자가 복음 외에 다른 그 어떤 복음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는
 
예수믿고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땅에서 사는 날동안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질때에
 
 
주님이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오시어 그 분의 능력으로
 
능히 세상(마귀)를 이기게 하시고
 
또 죄를 그치게 되어 (점.흠)이 없는 자가 되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웠음을 여러 징조로 알 수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마24;40)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기회를 놓치지 마시십시요
 
지금 기회 있을 때에 십자가의 도를 귀를 막고 외면하고 버리면
 
그 날에 주님으로 부터 버려둠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사람들에게는 외면 당할 수 있으나 별로 큰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하면 어찌합니까?

 
 
기회는 항상 있지 아니합니다
 
오늘도 하루는 지나 가는군요
 
십자가의 복음 안으로 들어오시어 천국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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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는 은사를 지닌 선지자, 나훔

 

나훔, 그는 단 세 장, 마흔 일곱 절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사라졌다. 엘고스 사람이란 것 외에는 그에 관한 개인 신상도 밝혀지지 않았다. 비록 짧은 말씀을 기록해 전한 인물이지만 그는 자신이 활동하던 당시 최대의 제국 앗수르의 멸망을 거침없이 선포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기록 목적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과 국가의 주가 되심을 밝히고, 앗수르로 표현된 불의한 국가와 백성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먼저, 나훔이 상대해야 했던 대상은 니느웨 곧 앗수르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본문에서 발견하는 단서들로 추정해볼 때, 나훔이 활동한 시대는 아마도 주전 664년(3:8의 노아몬이 멸망한 시기)에서 주전 612년(니느웨 멸망에 대한 예언이 있는데, 그것은 주전 612년에 일어남)일 것이다.

 

이 시기에 나훔이 상대했던 니느웨(앗수르)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잔혹성이다. 고고학의 도움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앗수르의 모습은 잔혹함의 대명사와도 같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당시 최강의 제국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주전 721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사마리아를 초토화시킴으로써 그 힘과 잔혹함을 증명해 낸 초대형 나라가 앗수르지만, 그러한 앗수르를 향해 나훔은 하나님의 소명 앞에 순종해 강력한 심판의 경고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오늘날 우리에게 물리적인 전쟁은 없을지라도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나훔과 같은 영적 거장이 되어야 할 사명에 초청받고 있다. 이 시대가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상대해야 할 거대한 대상이 아닌가! 나훔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담대히 말씀을 선포한 것처럼 우리 모두 더욱 말씀에 붙들리고 말씀을 보여 주어야 할 도전을 받는다.

 

한편, 선지자의 기본적인 임무는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그것을 들어야 할 대상에게 하나님을 대신해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훔은 조금 독특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첫 구절에 나오는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1:1)는 말씀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선지서는 나훔밖에 없다.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지만 나훔은 특이하게도 이렇게 ‘글’이라고 밝힌다. 이에 어울리듯 성경학자들은 나훔이 사용하는 비유의 표현들이 매우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아마 나훔은 글을 쓰는 은사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나훔이라는 인물을 연구하면서 지금 시대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의사소통 수단과 관련된 것으로서, 인터넷이라는 매체로부터 시작해서 SNS로 발전하더니 마침내 인구의 절반이 훨씬 넘는 수만큼 스마트폰이 보급된 세상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런 세상 한가운데서 살고 있고, 그야말로 누구나 거의 제한 없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둘째는 의사소통 내용과 관련된 것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 가운데 캐내고 또 캐낼 수 있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일시적이고 필요에 따라 약간의 의미를 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에 닿도록 하는 이야기는 사실 하나님에 관한 것밖에 없다. 이렇게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단과 내용을 가졌다. 이제 우리 안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글로 남기고, 그것으로 세상을 섬기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나훔서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나훔의 모습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나훔은 진노와 보복으로 점철된 메시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속마음을 선명하게 보았다. 나훔은 불처럼 쏟아지고, 바위를 깨트리며, 산과 바다를 녹이고 말리시는 것으로 비유되는 그런 하나님의 분노 가운데서도, 마치 깜깜하게 드리워지는 먹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 같은 하나님의 속마음을 보았던 것이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1:7).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렇게 살벌하고 철저한 니느웨를 향한 심판의 말씀은 아직 실행되지 않고 남아 있다. 그러면서 히스기야를 중심으로 신앙의 개혁과 부흥을 가져온 남유다 백성에게 엄청난 위로와 하나님 안에 있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훔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어떤 무서운 심판에 대한 말씀이 선포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더욱 빛나는 구원과 위로를 확신하게 하는 인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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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잘 경청하는 선지자, 아모스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라는 메시지를 선포한 선지자로 유명한 아모스. 1장 1절로 가늠해볼 때, 그는 대략 주전 763년부터 753년 사이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출신지는 남유다에 속한 드고아였지만, 사역은 북이스라엘에서 이루어졌다.

 

아모스, 그는 자신이 활동한 시대와 어떤 면에서 어울리지 않는 선지자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당시 북이스라엘에 선지자나 제사장이라는 공적으로 세워진 성직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모스의 등장은 어울리지 않았다.

 

둘째는 아모스 스스로가 밝혔듯이 그는 분명한 직업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모스의 말씀 선포 사역을 보면서 그를 대적하던 자들과 논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자신에 대해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7:14)라고 밝혔고, 동시에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미 성직의 조직이 갖춰져 있었고, 아모스는 해야 할 일이 많은 목자요, 농부였기에 그가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 그것도 심판의 말씀을 선언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색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그것을 또 선포하라는 소명 앞에 순종했던 아모스를 통해 우리는 이미 기독교에 대해 널리 알려져 있고, 교회가 곳곳에 세워져 있고, 목회자가 넘쳐나는 시대일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자가 소명자가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모스의 소명이 더욱 도전이 되는 이유가 있다. 아모스가 자신의 사역 시기에 대해 ‘지진 전 이 년’(1:1)이라고 하는 것을 두고 학자들은 그가 적어도 2년 이상 활동했겠지만 그리 길게 선지자로서 사역한 것 같지 않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아마도 원래 하던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일도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모스는 왜 어쩌면 한시적이었을지도 모르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이 해야 할 많은 일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심판과 멸망을 전했을까? 왜 환대는커녕 ‘왕을 모반한다’(7:10)는 강력한 저항에 휘말려 억울하기 그지없는 길을 갔을까? 아모스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커다란 도전을 받게 된다.

 

 

이제 아모스의 사역을 살펴보자.

 

첫째, 그는 거대한 힘의 논리 및 거침없이 횡행하는 힘의 현실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무자비함의 극치요 쾌락에 사로잡히게 하는 힘의 세상, 이방 나라들에 대해 아모스는 힘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말씀을 선포했다(1장).

 

 

둘째, 그는 돈의 힘을 거슬러 선포했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8:4, 참조 2:6~7)라는 말씀처럼 당시 이스라엘은 한 마디로 ‘돈의 맛’을 아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며 활동하던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영토를 회복했다. 또 경제적으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던 시대였다. 그만큼 돈의 힘은 더욱 위력을 발휘했고, 사람들은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아모스는 이처럼 요즘 식으로 말하면 경제 양극화가 심해진 것을 여과 없이 지적했다.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8:6).

 

 

셋째, 아모스는 진리를 떠난 관습과 관행 및 생명이 없는 전통과 맞서 싸웠다. 여전히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고(5:22) 성직자도 있었지만(7:10), 실제로는 진리를 떠나 있었고 아무런 진정성이 없는 그야말로 관행이요 죽은 전통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2:4)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2:7) 세상을 거슬러 그들의 실상을 드러내며 거침없이 말씀을 선포했다.

 

 

이와 같은 사역에서 아모스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사람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이러한 선포가 필요한 이스라엘 백성의 본질적인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음’이며(5:8)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임을(8:11)을 알았던 영성의 인물이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뿐 아니라 그것을 마치 아비의 심정으로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반복하여 간곡하게 눈물어린 호소를 하는(4:6~11) 긍휼의 영혼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5:6, 참조 5:4, 8).

 

- 날마다 솟는 샘물 박삼열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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