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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을 위한 기도 (Prayer for Muslims)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무슬림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부족한 자의 기도이지만 받아 주시옵소서.

 

먼저 무슬림을 대하는 우리 마음과 태도에서 교만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서구와 아시아 지역에 있는 종교적 교만을 꺾어 주소서. 우리 모두 겸손함으로 주님께 무릎 꿇게 하소서.

 

인자하신 하나님

우리 모두 종교적인 사람이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무슬림을 주관하여 주시어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임을 깨닫고 그 행위를 벗어 버리게 해 주소서.

 

우리 모두 성령의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고 무슬림이 진정한 자유를 알게 하는데 힘쓰는 자가 되게 하소서.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무슬림을 의심하고 배척하지 않게 하시고 그들을 품고 우리 예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게 하소서.

 

모든 말씀 사랑의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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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설교] 그리스도인의 뿌리

 

 

 

찬송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51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잠언 123

말씀 : 예전에 조그마한 텃밭 농사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루는 텃밭에 오이와 가지를 심고 물을 주기 위해서 밭으로 갔습니다. 한참 물을 주고 있는데 아내가 밭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며 뽑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대나무 가지 굵기가 새끼손가락 정도라 잡아당기면 금방 빠질 것 같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지를 잡아 당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작은 대나무 가지가 옴짝달싹하지 않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삽으로 주위를 파고 뿌리를 찾아나갔습니다. 한참을 파도 뿌리가 다 드러나질 않았습니다. 이때 깨달았습니다. 겉으로 볼 때 작은 것도 땅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면 그 생명력은 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잠언은 의인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잠언 12장은 의인과 악인의 삶을 비교하면서 의인의 삶에는 생명이 있고 죽음은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에게 이처럼 놀라운 결과가 있는 이유는 3절에 명시돼 있습니다. 바로 의인의 뿌리 때문입니다. 그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린 신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을 보면 악인은 성공하고 의인의 삶은 매일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갖고 살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게 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크게 흔드는 동시에 온갖 유혹을 동원해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식물일수록 수많은 바람과 내리쬐는 태양볕을 견뎌낸 시간의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가지가 작다고, 우리가 보잘것없다고 세상은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는다면 우리는 불안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거센 바람과 내리쬐는 태양볕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생명력의 뿌리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또한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깊이 뿌리 내릴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의 확신은 성경을 통해서만 깊이 뿌리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불의한 이익을 바라지만 의인의 뿌리는 많은 열매를 낸다.”(12:12)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자신의 뿌리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잊지 않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성도의 뿌리라는 진리 위에서 위로받고 서로를 격려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세상의 격랑 가운데 우리의 뿌리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언제나 말씀에 뿌리 내리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때로 그 사실을 망각할 때마다 다시 우리의 뿌리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셔서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랑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송경호 목사(경주 좋은씨앗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59567&code=23111511&sid1=f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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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옷을 입으며--그리스도인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아마 이런 질문을 하면, 아니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특별한 옷을 입어야 하는가? 그냥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신자들에게 무슨 옷을 입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가르침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 주님은 무슨 옷을 입을 것인가에 대한 큰 원칙은 주셨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복장에 대한 명령을 주셨다. 그 대표적인 명령은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기독교 역사 중에는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실천하려고 했던 무리들이 있었다. 프란시스코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는 수도원에서 절대적인 무소유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예수님의 명령은 특정한 시기에, 특별한 사명을 가진 제자들을 향한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날 일반 성도들에게 그대로 규범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2장 9절의 말씀은 어떨까? 사도 바울은 교회의 여자들에게 아담한 옷을 입으라고 명한다. 만약 이것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와 같은 부류에 취급하여 그 당시 문화적 상황에서 나온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 말씀은 더 이상 교회에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성도들의 의복에 대한 귀한 지침을 삼아야 할 것이다.

"아담한"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검소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특히 여성도들은 검소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검소하다는 큰 원칙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이가이다.  재세례파의 후예들은 이 원칙에 근거하여 단색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아미쉬 공동체와 같은 이들은 옷에 어떤 장식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단추도 장식이라 생각하여 단추를 없애고 철핀으로 옷을 잇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율법적이 아닌가라고 생각들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에 대해서 우리는 귀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다른 교파들은 이 말씀은 그냥 공허한 원칙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공허하다는 말은 대부분의 성도들이 "아담하게 입으며"라는 구절과 별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뜻이다.  검소하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주관적이다. 예를 들면, 부자들에게는 300만원의 옷도 검소한 옷이 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3만원의 옷도 사치스러운 옷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검소하다는 말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까?  아무리 부자지만 300만원짜리 옷을 검소한 옷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오늘날은 옷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 특히 여성들은 옷을 자기 자신의 표현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검소한 옷을 입으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날 세상의 기본적인 가르침과 전혀 상반된 가르침인 것이다. 적어도 성경에 있어서 옷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경건이 나타나도록 하여야 한다. 즉 옷에 대한 관점 자체가 틀리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는 더 많고, 더 좋고, 더 비싼 옷이 팔려야만 돌아갈 수 있는 체제이다. 따라서 소비를 줄이면,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게 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상은 여자들로 하여금 더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입으라고 유혹한다.  옷에 관한한 적어도 성경의 가르침과 세상의 문화는 대립하고 있다.

여자들로 하여금 옷의 유혹을 가장 쉽고 빈번하게 일으키는 것은 여성잡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부분의 여성잡지는 광고가 지면보다 훨씬 많은 것은 볼 수 있다. 광고도 총 천연색 칼라로 무장하고 있다.  이 여성잡지가 가장 많이 읽히는 곳은 미장원이다. 2-3시간씩 앉아 있으면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여성잡지를 구독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독여성이라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여성지는 수준이 상당히 낮기 때문에 여성들의 사고를 저하시킨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한정시킨다. 여성들이 모인 곳에 심방을 가보면 많은 경우에 텔레비젼 이야기 아니면 여성지에 나온 이야기가 화제가 된다. 많은 주제가 자녀 교육외에는 옷과 치장에 관한 이야기다. 

성도들이, 특히 여성들이 옷을 고르거나 입을 때, 특히 교회에 갈 때에는, 주 관심이 자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경건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경건은 화려한 옷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검소한 옷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그런 옷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최대한 노력하여 그런 옷을 입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눈을 어지럽히는 여성잡지에서 눈을 될 수 있는대로 때는 것이 영적 건강에 유익하다고 본다.  오늘부터 미장원에 갈 때는 좋은 경건 서적을 지참하고 가는 것을 모든 믿음의 여성들에게 권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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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기의 기독교 

 

 교회사에서 2 세기는 박해(PERSECUTION)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손으로부터 박해의 파도는 쉬지 않고 교회를 때렸다.

I. 2 세기의 박해들

주님의 교회는 대환란의 시대에서 2세기로 들어갔다.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하여 성장했고 확장되었다. 이러한 현상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다.

1. 끊임없는 전파

믿는이들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진지하게 수행했다. 그들은 참된 신념을 가졌다.

 

2. 복음의 배타성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그들만이 진리를 선포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기독교는 "단지 또다른 종교"라고 믿지 않았다.

 

3. 회중 생활(congregational life)

이들 성도들은 복음을 살아냈다. 곧 그들이 선포한 바를 그대로 실행했다.

박해의 다른 효과는 박해가 교회를 순수하게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고문과 죽음의
위협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재고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renounce)". 이는 후에 교회에 몇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시켰다.

98년부터 211년까지 Trajan, Hadrian, Antonius Pius, Marcus Aurelius, Commodus,
Septimus Severus 등의 6 황제에 의한 잔혹한 박해가 있었다.  

 

II. 2 세기의 타락들

사도들의 생애동안 심겨졌던 오류의 씨앗들이 이 기간동안 열매를 맺기 시작함

A. 교회 실행의 변화
주로 유대주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교회내에 수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1. 성직자주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계급화하는 것임 : 성직자 계급과 평신도 계급 ("kleros"는 '택한자들'을 의미함; "laos"는 '백성'을 의미함)신약은 감독의 직무가 교회내 지도권의 하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거만한 성직자들이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경고가 베드로 전서 5:3에 주어졌다.

신약의 가르침을 넘어선 목양자들의 특권(prestige), 권능(power), 및 권위(authority)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카리스마(charisma), 강한 개성(strong personality), 또는 "영웅 숭배"를 통하여 두드러지지 않게 발생하였다. 이러한 특성들은 인간적 본성에 흥미를 끄는 것이다. 이유가 어떠 하든지, 신약의 가르침에서 이탈한 이러한 특성은 구약에 호소함으로 (구약의 레위 성직자제도와 이에 수반되는 권능 및 특권의 올가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백성의 몸(body)과는 별개의 특별한 성직자제도의 개념 및 제도는 수반되는 개념인 희생물과 희생단과 함께 유대교와 이교를 기억나게하는 유사한 것들로 기독교의 교회 안으로 알아챌 수 없게 귀속되어 갔다" (Schaff P.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 p. 60) 

이 변화는 2 세기에 발생하였으며, "믿는이의 성직자직분"이라는 신약 교리를 벗어난 것이다.
a. 이그나티우스 (117년) : 안티오크 교회의 감독. "감독과 장로와 집사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하는 자는 양심에서 순결하지 않다"
b. 로마의 클레멘트 (110년) : 그가 신약교회와 레위 성직자직분을 비교할 때, 처음으로 평신도(layman)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 같다.

 

2. 비속화(卑俗化)(Sophistication)

이러한 진리들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형상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복음의 단순성과 순결이 잊혀져 갔다. 더욱이 사람의 타락한 죄성인 상상력에 의해 이러한 보조 기구는 급격히 인간 고안품의 잡동사니로 타락해 갔다. 

"2세기 중간 또는 말기에 심각한 심볼의 형태가 그리스도인의 예술에서 시작되었음을
보게 된다...이러한 심볼의 근원은 종교적 진리의 상징을 가지려는 그리스도인의 본능적
욕망에서 발견되어짐에 틀림없다.." (Schaff P.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 p. 60)
           

십자가 성호가 2 세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터튤리안은 "십자가 숭배"의 고소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기타 초기 기독교 심볼로는, 비둘기, 배, 닻, 등이 있다. "이들 심볼로부터는 단지
도상학적 표현의 측면에서 한 발자국의 진보가 있었을 뿐이다"고 샤프는 말한다
물고기 심볼은 2 세기 중반부터 유래되었는데, 그 근원지는 알렉산드리아로 여겨진다.

 

3. 성찬 중시주의(Sacramentalism)

2 세기 초에 중요성에서 주목할만한 변화가 보일 것이다. 실체(substance)와 상징(symbol) 간에 성경적 균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밥티스마의 규례가 크게 강조되었다.

 

a. 밥티스마의 부속물

먼저 규례에 의식(儀式)주의가 첨가되었다. 곧이어 다음 사항들이 뒤따랐다. 

(1) 도입부(Introduction)가 길어짐 - 교리문답
(2) 마귀 거절 설명서
(3) 신조(Creed)의 암송
(4) 삼중 잠김(Trine Immersion) - 간혹
(5) 형제의 입맞춤(Brotherly Kiss)
 

b. 밥트스마와 구원의 혼란
많은 교부들 가운데 켐벨주의와 유사한 견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의식에서 마술적인 것을 보지 않았지만, 밥티스마를 믿음의 행위로, 그래서 하나님의 원하는 은혜(saving grace)의 전달자로 보기 시작했다

 

(1) 순교자 저스틴 (100-165년)

(2) 헤르마스(Hermas) (115-140 년)

 

B. 기독교 교리의 변화

일세기에서 두번째 주요 이단이었던 그노시스주의는 2 세기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노시스주의는 창조의 하나님께서 피조물과 너무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얼마는 선하고 얼마는 악한 많은 중간 신들에 의해 우주를 다스린다고 가르쳤다.

III. 2 세기의 명사들

A. 저스틴(100-165 A.D.)
B. 이레니우스(115-200 A.D.)
C. 터튤리안(160-230 A.D.) 
       

IV. 2 세기의 발전

교회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짐으로 신약 정경이 형성됨. 2 세기 초에 발생하였다. 신약의 최종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사도시대에도 신약이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골 4:16)(살전 5:27)
(벧후 1:15, 3:1,2) * 딤전 5:18 과 마 10:10을 비교할 것  성경기록을 수집하고 편집한 곳 (4 곳)

팔레스타인 - 마태, 야고보, 히브리서
소아시아 - 요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부터 계시록까지

그리이스 - 고린도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카전후서, 누가, 디도서
로마 - 마가, 사도행전, 로마서 

지리적인 분리 때문에 초기의 정경 수집은 완전하지 못했다.교부들의 글에서 신약성경의 정경화에 관한 많은 증거들이 제시되었다.

주로 전달과 유포의 어려움 때문에 몇 가지 책들에 대한 작은 논쟁이 있다. 412년 까지논쟁이 되었던 책으로는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요한 일서, 요한 이서이다 -
대체로 이단들을 정죄한 책들이다. 

 

 

 

V. 2 세기의 저항자 - (Monatanists)

몬타누스파의 출현. 대부분의 교회역사에서 몬타니스트들은 이단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들의 신조와 실행들을 주의깊게 연구하면 그들이 정통이였음이 밝혀진다.몬타니즘은 교회의 순결과 영성에서 조류를 거스리는 첫번째 일반 저항이다

 

A. 지도자
그들이 몬타니스트라 불리운 것은 몬타니우스라는 사람의 선포때문에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는 Cybele의 이교도 사제였으며 약 150 년에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B. 위치
몬타니즘은 소아시의 중앙 프리기아에 있는 Ardabau라 불리우는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사상은 신속하게 유럽과 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 몬타니즘은 177년에 로마와 프랑스의 리용에서도 발견되었다.

 

 C. 시작

몬타니우스는 150년에 그의 관심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 명의 여자 명사인 맥시밀라와 브리스가를 포함한 많은 추종자들을 모았다.

 

D. 몬타니스트 운동의 이유들
사도시대이후 곧 많은 교회들 가운데서 눈에 띄일만한 변화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그들 중 몇 가지로는,
 

1. 의식주의(儀式主義)화 경향        
2. 성직자 계급의 등장
3. 영성의 부족
4. 기율과 교회회원의 기준이 헤이 해지기 시작함

 

E. 몬타니스트의 사명
몬타니즘은 실제에 있어서 교회를 그들의 영적 단순성으로 회복시키려는, 신약의 기초로 돌이키려는 개혁운동이였다.
몬타니우스는 믿는이들과 교회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크게 강조했다. 그리고 복음에는 성직자에게 아무런 특권이 없음을 표명했다. 그는 철학과 종교의 반대자였다.

 

F. 몬타니스트의 교리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 것과는 별개로 몬타니스트들은 다음과 같은 신조와 실행들을 지켰다.

1. 교회의 회원으로 거듭남을 강조함
2. 믿는이의 밥티스마

그들은 교제의 순결을 실행했으며, 제도권 교회에서 온 자들을 다시 밥티스마를 주었다. 그들은 오직 물에 잠그는 밥티스마를 베풀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2 세기에는
이 밥티스마 외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

3. 삶의 거룩함

 "그들은 과학과 예술, 모든 세상적인 교육 또는 삶의 화려한 형태를 피하였는데 이는 그러한 것들이 이교주의에 속했기 때문이었다"(Christian Op. Cit. p. 42)그들은 재혼, 방종한 금식, 박해를 도피하는 것에 반대했다.

4. 교회 기강
"도덕적 죄에 대항하여 교회는 그 죄를 범한 자를 올바르게 배제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켜 나갔다. 왜냐하면 교회의 거룩함은 단순히 그 일원의 거룩함이기 때문이다(Christian Op. Cit. p. 43)"

5. 삼위일체 신학
6.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
몬타니스트들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경기록들을 전수하였다. 

7. 전천년주의 종말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속히 다시 오셔서 땅 위에 그분의 천년왕국을 세우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이러한 전천년주의 견해는 또한 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몬타니스트들이 인기가 없었던 것이 전천년주의의 소멸에 기여했던 것 같다.

 

G. 몬타니즘에 대항한 변화
몬타누스파 교회들은 제도권 교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들에 관해 언급한 것들 중 많은 것들이 부당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최근의 역사가들은 몬타니즘의 대적자들 편을 들었으며, 그들에 대하여 몇 가지를 고소하였다.  

 

1. 가장 일반적인 고소
이는 몬타니스트들이 "고대의 Holy Roller (열광적인 종파의 신자)"라는 것이다.
몬타니우스가 위로자(Paraclete)이며,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의 계시를 초월하여 주장하였다고 고소했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절대적인 증거가 없는 것 같다. 몬타니스트 교회의 영성과 삶은 제도권 교회들의 형식주의 및 무감각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a. 루터교 역사가 모헤임은 몬타니우스가 자신을 위로자라고 불렀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의 역사서 번역자 맥클린은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몬타니우스가
자신을 스스로 성령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실수였다." (Church History. Mosheim, Volume I. p. 188) Armitage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몬타니우스는 자신을 성령과 동등시하였다고 고소를 당했는데, 이것은 단지 비방에 불과하였다"(Armitage, T. History of The Baptists. p. 175)

b. Jarrel은 "ecstasy"에 관한 터툴리안의 해설을 인용하면서 아마도 그가 다윗이 말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c. 터툴리안은, 이상(vision)과 초성경적 계시를 언급하면서 말하기를, "참으로 성경을 읽거나, 시편을 노래하거나, 강연을 하거나, 기도를 드리는 것들은 이상에 의해 지지를 받는 것들이다"라고 했다. 어떠한 비성경적인 것도 없다!!
 

d. 몬타누스파 교회들이 제도권 교회의 교리들을 수용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바이다. - 그들의 차이는 강조와 실행에 있다. 

2. 몬타누스파의 지나친 점들
비록 단호하게 입증되지 않을 지라도, 일부 몬타누스파 교회들이 다음과 같은 확실한 비성경적 실행들을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

a. 여자의 임명
몇몇 교회들은 성령의 선물들이 모든 조건과 성에 차이가 없이 분배되었다는 그들의 신조로 인해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허용했다.

b. 삼중 밥티스마(Trine Immersion)일부 몇몇 몬타누스파 교회에서 실행되었다.
c. 목양자의 독신주의 - 아무런 규칙이나 또는 법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박해의 때에 실제적인 예방조치였다. (예 고전 7:26,29 와 8,9 절)
d. 엄격한 금욕주의
e. 엄격한 교회 기강

 

 H. 몬타니즘의 결과
1. 터툴리안은 몬타니스트 사상으로의 전환자로 알려졌다. 그는 이 가르침들을 잘 정리하는 것을 도왔으며, 그 결과 북 아프리카 지역(터튤리안파)에 유증으로 남겼는데, 후에 도나티즘으로 나타났다.

 

2. 이 운동에 대하여 수차례 공의회가 소집되었으며, 공식적으로 그들을 정죄하였다.
3. 이 운동의 영향은 노바티안파, 도나티우스파, 아르메니아와의 점촉, Paluician의
출현 등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역사가들 중에 몬타니스트를 옹호하는 역사가들이 있는데 그들 중 몇몇을 인용하면,

 

a. 초기 역사가인 W.R. 윌리암 박사는 "그들의 가르침에서 교리적 오류를 발견하기가
힘들다. 그들의 감정의 표현은, 훨씬 후 종교개혁시대에 많은 다른 교사들이 강조한
바와 같이, 은혜의 참된 경험은 믿는이의 삶에서 분명하다는 그들의 믿음에서 유래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b. 도너 박사는 그들의 운동에 대하여, 교회 지도자들을 교회 몸의 지배자로 세우려는
움직임(역자주:성직자계급주의)에 반대하는 민주적 반발이였다고 썼다.

c. Schaff-Herzog 종교 백과사전의 기고자인 몰러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몬타니즘은
기독교의 새로운 형태가 아니며 몬타니스트는 새로운 종파가 아니다. 오히려 몬타니즘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가운데 안락하게 안주하려는 그 시대의 두드러진 경향에 대항한 단순히 고대 초기 교회의 반발이었다."  (Grimith, J. W. A Manual Of Church History: Vol. II. 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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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인 틀을 다지는 한국교회

 

1907년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나던 그 해 최초의 독노회가 결성됨으로써 한국장로교회는 명실상부하게 민족교회로서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29년 남북감리교회가 하나로 합동하여 협성신학교와 별도로 운영해오던 여자신학교를 합해 감리교 신학교를 태동시키게 되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조직은 1905년 3월 처음으로 개강하게 된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설립과 신학교로서의 견실한 틀을 갖추어 가면서 구체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평양신학교를 주도한 선교사들은 마펫(마포삼열), 언더우드, 클락(곽안련) 등이었다. 이들은 1907년 6월에 길선주, 양전백, 서경조, 한석진, 송이서, 방기창, 이기풍 등 7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해서 그해 독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게 했다.

 

평양신학교는 네비우스 선교정책과 관련하여 설립되고 육성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성경공부와 사경회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평양신학교가 명실상부한 신학교로서의 자리를 잡아가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한국교회가 놀랍게 성장하면서 1907년 가을 독노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독노회가 결성되면서 한국교회는 소위 12신조로 알려진 장로교신앙에 기초한 신앙고백을 채택한다.

 

초기 한국교회 해외선교는 살펴보면 대한예수교장로교는 1907년 첫 졸업생인 이기풍을 선교사로 제주에 파송함으로 시작된다. 평양에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들에게 돌을 던지며 복음을 방해했던 이기풍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복음의 불모지인 제주도에 선교사로 떠나리라는 것을 누구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선교의 역사는 한국교회로 하여금 해외선교 열을 강하게 불어넣는 전기가 되었고 그 결과 일본으로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열정이 멀리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선교까지 이어졌고 만주와 중국선교에까지 선교사를 파송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간도까지도 복음의 열정이 전해지게 되었는데 그곳은 중국인보다 더 많은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간도는 존 로스와 존 맥킨타이어의 선교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한국교회가 이곳으로 사역자를 파송하여 복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신앙의 모델을 보여 준 곳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중국 시민으로 귀화하거나 혹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여 동족만이 아니라 중국인 선교에도 유익하게 작용하여 만주선교는 곧 이어 진행된 중국선교를 위한 초석이 되도록 했던 곳이었다.

 

한국 장로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선교에 힘쓰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흘린 복음의 선혈이 이런 선교의 열정이라는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복음에 빚진 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복음에 빚진 자이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복음에 빚진 자이다. 그리고 지형학적인 위치에 있어서도 유라시아로 출발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좋은 곳이다. 21세기 한국 교회의 사명은 바로 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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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링컨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 후 취임식을 위해 스프링필드에서 워싱턴까지 먼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예해방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링컨 대통령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미국 남부의 몇몇 주들은 독립을 선포했고, 링컨을 미워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습니다. 워싱턴을 가는 도중에만 ‘너는 살아서 백악관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협박 편지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나 필라델피아에 머물렀을 때에는 진짜 암살자가 있다는 첩보까지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정보를 받은 참모들은 이제부터는 이동을 비밀리에 하고 낮보다는 밤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참모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대통령이 도둑놈처럼 밤중에 몰래 수도에 들어간다고 하면 시민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차라리 당당하게 들어가다 목숨을 잃겠습니다.”
사회적으로 욕을 먹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임을 숨긴다면 사람들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당당하게 밝히는 떳떳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따르고 신뢰하게 하소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위해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큐티/김장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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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 선교 전략(3) 이슬람권의 실질적 선교전략


1. 중보기도 기도는 선교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다.

이슬람권을 향하여 계획을 세우는 것과 기도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기도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선교 사역은 영적 전쟁이다. 이 전제 없는 선교사역은 단순한 개념전달이나 사랑의 행위를 실천하는데 그치기 쉽다. “우 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 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16년 전에 작은 방송국을 설립하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에이 드(가명)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송을 시작한 후 7년 동안 단 한 통의 응답 편지도 받 지 못했다. 7년 후에 상황이 진전되어 1년에 7-8통의 편지가 왔다. 그런데 1995년 1월 놀 라운 일이 발생했다. 한 달에 수백 통씩 편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편지 발신자는 대부분 탈레반(아프가니스탄 강경 회교도)이였다. 같은 양을 발송했는데 왜 차이가 나는가? 얼마 후에 알려진 사실은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한 교회가 1995년 1월부터 에이드(가명)와 그의 사역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적으로 그와 그의 사 역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건을 변화시킨다. 중보기도는 모슬렘들을 변화시키리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중요한 것이다. 현대 선교학자들이 새삼스럽 게 재발견한 것은 선교사의 영적 자질이 선교 사역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사역의 결실을 맺는 선교사들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전략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방법으로써 이슬람권에서 열매 맺고 있는 사역가운데 하나이다. 1960년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인들이 모슬렘이 필요할 때 도와주었다. 1970년 인도네시아 종교 조사에 의하면, 200여만 명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다. 대표적인 선교사는 사무엘 즈 웨머(Samuel Zwemer)로서 사람의 인품이 ‘복음을 전하는 다리’ 라고 믿었다. 예수님은 갈 릴리 생활을 통해서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셨다. 기독교인들이 혹은 선교사들이 이슬람권 생 활속에서 빛 가운데 살 때 그 삶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이 모델은 아주 성 경적이어서 복음주의자들이 널리 쓰고 있다.

 

3. 교회 설립

 마28:19~20절에 주님의 지상 명령의 목적이 제시되어 있다.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 는 목적은 제자 삼는데 있다. 신약 성경에는 제자라는 말이 260회 사용되어지는데 제자란 예수님을 구주로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교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 고 성숙한 교회가 되어 자립하고 또 다른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다. 이슬람권 선교가 지역 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선교가 교회설립과 지도자 훈련이 중요한 수단이 되지 않 고, 단순히 현지인들의 문화수준을 높이며 문명화(civilization) 자체가 기독교화 (christianization)라는 전제로 선교할 때, 인재를 양성하여 사회발전이나 수준을 높이는데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실패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경우 40%의 선교 방향이 모두 문 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선교는 문명화가 아니다. 영혼을 구원하여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 그 교회 형태가 가정 교회든, 지하교회든, 지상 위에 세워진 교회이든 상황화를 통한 모슬렘사원이 교회가 되든 상관없이 교회설립에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한다.

 

 

4. 도시를 중심으로 한 장기적인 전진기지 확보 전략

사도 바울은 대도시 중심적인 선교전략을 실행하였으며 대도시에서 시골로 분사선 방식의 선교를 하였다고 로버트 스피어는 그의 일곱가지 바울의 선교전략에서 논하고 있다. 도시는 인간이 처음시작 할 때부터 존재했었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지금 만큼 도시가 중요한 시 대가 없었다. 하비콕스라는 미래 역사가는 ”21세기는 세계가 거대한 도시가 되어버린 세기” 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다소 과장된 얘기라 해도 통계에 의하면 2010년까지는 세계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한다고 한다. 2010년에는 인구 천만이상의 초대형 거대도시들이 28개정 도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데, 그 중에 25개가 제3세계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급속도로 증가 하는 이슬람 성장속도를 볼 때 이슬람권에서의 도시 선교 전략은 조직적으로 개발되어야 한 다.

 

5. 성경 배포 및 말씀 전파 사역

 가능하다면 모든 모슬렘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경을 - 7 - 배포하는 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많은 모슬렘들이 궁금해하고 있으며 읽고 싶어한다. 코란 에는 자주 성서의 백성들이란 말이 등장하는데, 성경을 읽는 기독교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각 언어로 만들어진 복음테이프 또한 좋은 복음전파의 수단이 된다. 소책자나 예수님에 대 한 비디오테이프는 이슬람권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특히 필자가 사역했던 아랍지 역의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하며,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비디오를 가까운 친 구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영접한 모슬렘 친구도 있었다.

 

6. 방송 매체를 통한 사역

오늘날에 있어서 이슬람권에서 열매를 많이 맺는 사역가운데 하나는 방송매체를 통한 선 교 전략이다. 방송은 마치 전쟁에 있어서 대공사격과도 같은 것이다. 국경을 초월해서 선교 할 수 있으며 선교사가 직접 들어가서 살기 어려운 사하라 사막 같은 곳에서도 위력을 발휘 하고 있다. 중보기도에서도 언급했듯이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강경 모슬렘 국가에서도 라디 오 방송은 계속 전파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슬람권에서도 약간의 경제적인 여유 만 있으면 위성안테나를 설치할 수 있다. 세계의 많은 방송이 잡히는데 그 중에 기독교 방 송도 잡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이든 TV방송이든 영세한 상황이 문제이다. 방송매체를 통한 사역에 한국교회가 후원을 한다면 놀라운 일들이 이슬람권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인공위성을 통한 전략도 연구되어져야 한다.

 

 

7. 모슬렘 상황화를 통한 선교전략

 이는 복음을 전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기존의 방법이 모슬렘 선교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복음의 핵심이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슬람문화를 상황화시켜 복음을 전하는 다리로 삼 는 것인데, 이 모델은 방글라데시아에서 필 파샬(Phil Parshall)등에 의해서 열매를 거두었으 며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그리고 중동 몇 개 나라에서 시험 중에 있다. 필 파샬은 6가지 생활방식과 18가지 예배방식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선교사가 그 지역 사람들과 유사한 복 장을 하고 남자는 턱수염을 기르며 모슬렘식 식생활을 하고 사람중심의 시간개념을 가지며, 또한 개종자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은 피한다. 이러한 간소한 생활을 통해서 그 종족 사 람처럼 사는 성육신 적 모델을 보이며, 그 종족 집단에 헌신되어 그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 여 그들과 결속되어야 한다. 물론 깊이 들어가면 예배 방식 등 쓰는 용어에도 상황화가 되 어야한다. 모슬렘 선교를 하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의 문화 속에서 거듭나지 않은 채 조국에 서의 생활 방식과 수준만을 요구하며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는 선교사들에게는 큰 도전이 되 고 있다. 상황화 선교전략은 복음주의 적 신학을 공부하고 이슬람권에서 경험 있는 선교사 들에 의하여 주도되어야 한다. 복음의 본질이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연구와 체계 적인 성경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8. 힘의 충돌(power encounter)을 통한 선교방법

 힘의 충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선포될 때,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 며 어두움의 노예로 삼았던 세력이 도전을 받아 무너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초기 복 음 확장사에 있어서 전도부인으로 활동했던 분들이 무당종교에 젖어있던 부인들 가운데서 경험했던 악령 추방(exorcism)의 경우들이다. 오늘날 이슬람세계에서는 정통모슬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매일의 삶 속에서 민속 이슬 람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슬람 하면 모두 똑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민속이슬람을 사랑하는 모슬렘이 상당히 많다. 또한 이슬람 신비주의자들 또한 이슬 람권 세계에 많게는 1/2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런 민속 모슬렘들과 여성들에게 복음은 상당히 수용적 이였다.

 

9. 전문직 사역을 통한 전략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슬람권에서 목사 비자는 자국인 선교사 등 극히 제한되어있어 선 교사 비자로는 출입국조차 어려운 곳이 많다. 가능성 있는 전문사역을 나열해 보면, 모든 나라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애쓴다. 이슬 람국가들 대부분이 가난한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관광 사업으로 수입을 올리고 싶어한다. 관광사업을 하다보면 보다 넓은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 호텔, 모텔, 게스트 하우스 등을 운 영할 수 있다. 기술을 가지고 입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국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10. 단기 기도 팀과 단기 선교 팀을 통한 전략

한국에 있으면서도 이슬람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이슬람권에 가 서 그 땅을 밟으며 기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1997년 1월에 독일의 한 중보 기도 모임 이 십자군들의 죄를 회개하는 모임으로 전개되었다. 1206년 첫번째 십자군이 갔던 그 길을 따라 가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6,7주 후에 터키에 도착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현 지언어로 십자군의 죄를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적어 놓았는데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 뉴스 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 후에 놀라운 결과가 있었다. 그들이 유럽의 모슬렘 사원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단지 그 길을 따라가며 속죄의 기도를 했 는데 그들이 가는 곳마다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매년 10월에 전세계 기도팀등이 10/40창 문을 위해 기도한다. 단기 선교팀이 이슬람권에서 부흥하는 곳의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또한 단기 선교팀을 통해서 성경배포로 사역 가능한 지역들이 있다. 다만 잘 준비 된 리더들과 현지 선교사들에 의해서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잘못하면 그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1. 전통적 방법으로 사회 복지원과 학교, 유아원, 의료기관, 그리고 유치원을 통한 선교 전략이 있다. 이러한 모델은 이슬람권에서 정부가 통제를 강화하고 있어서 상당히 제한적이다. 유치원 사역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상당히 각광을 받고 있다. 의료사업 또한 가능한 사역이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원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단기적 의료 사업은 장기적 의료 사업을 위해 많은 단서를 제공해준다.

 

12.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 선교 전략

이슬람권에서 교육받은 지식층에 해당하는 전략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전략화해야 할 과제 이다. 컴퓨터는 방송 매체보다 더욱 개인적이며 질의와 응답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현 대의 선교전략이다. 비록 한국교회에서도 사이버 교회가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지만 시대는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이슬람 선교는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한 예로 1999년 2월 아랍 에미레이트의 수도 두바이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집회가 있 었는데 1만 5천여 명이 참석해서 주최측도 놀라워했다. 그 곳에 참석했던 젊은이들이 대부분 인터넷 광고를 보고 참석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선교의 가능성을 확인해 준 사건 인 것이다. T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 선교사는 ‘신약성경’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했는데 많 은 모슬렘들이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며 매주 약 1500명의 모슬렘들이 상담을 원하고 있다.

 

13. 한인 교회를 통한 선교전략

한인 교회는 현재에도 각 지역에서 이슬람권을 향한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감당하고 있 다. 한인 교회는 대부분 자국민 선교로써 이슬람권에서도 큰 문제없이 설립할 수 있는 장점 이 있다. 물론 해외 동포를 상대로 선교하고 있으나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 따라 모슬렘 선 교의 큰 부분을 담당할 수 있다.

 

14. 태권도 사역, 침 시술소등 그 지역의 상황과 그 주민의 필요에 맞는 선교 전략이 이루 어져야한다. 태권도는 올림픽 공식종목으로 인정되어 더 많은 나라에서 태권도 지도자를 요청하고 있 다. 아프리카나 중동 사람들은 쿵푸, 가라대와 함께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집트만 해도 30만 명의 태권도 인구가 있는데 이들 모두가 다 할 수 있으면 한국인으로부터 배우 기를 희망하지만, 정부 파송 사범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수지침은 가난한 모슬렘들에게 각 광을 받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한국인이 가능성 있는 사역들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 이슬람권 어디나 한국의 경제발전은 좋은 모델이 되고 있기에 한국어 학과를 개설하는 대학들이 늘어가고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요청되고 있다. 물론 소수의 제한적인 인원이지만 그 사역의 필요성이 이슬람권에서 증대되고 있다.


이슬람 선교의 가능성


 무엇보다도 기쁜 소식은 최근에 모슬렘들이 지난 몇 백년에 걸친 개종자 보다 많은 숫자 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가리아 남부지역의 터어키 언어를 쓰는 모슬렘 배경을 가진 짚시들이 2만여명 주님께 돌아왔다. 사하라 사막에는 투아헤그라는 종족이 있 는데 이 종족은 모슬렘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북부 아프리카의 카빌레라는 언어를 쓰는 모슬렘들이 있는데 요즘 민족주의가 번창하고 있는 가운데 자신들 이 아랍인도 모슬렘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지난 10년간 이상한 일이 이 종족사이 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종족중 30%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꿈꾸기 시작하였고 그것 을 이야기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약2만 명의 기독교인이 이 가운 데 있다.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옹이 이란정부를 집권했을 때, 약 일만 오천명의 기독교 인이 이란에 있었는데 지금은 약 2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곳 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권 선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힘든 것이 사실이 다. 1265년부터 1315년까지 50년간 이슬람권 투사였던 이슬람선교의 개척자 Raymond Lally(스페인 1215-1315)는 사랑과 기도와 눈물로 모슬렘들의 개종을 위해 80세의 노구를 끌고 헌신하였으나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모슬렘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 다. 난감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 시대 우리들의 관심은 이슬람권이어야 한다고 믿 는다.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 21세기에 이슬람교의 돌파구가 생기리라 본다. 어떤 경로를 통 해 이루어질지는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전쟁을 통해서 아니면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서 혹은 계속되는 이슬람 근본 주의자들로 인한 이슬람에 대한 회의를 통해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구 소련의 붕괴를 누가 예상했던가? 그러나 하루만에 공산주의가 무너졌듯이 이슬람도 하 나님의 주권에 의해 무너지리라 확신한다. 다만 그때를 바라보며 역사를 준비해야 할 사람 들이 필요한 것이다. 시편 2편 7절과 8절에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 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내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라.”란 이 약속의 말씀을 나는 믿는다.

 

유해석 목사 총신대학교 졸업, 총회신학교 졸업, 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파송 선교사, 현 F.I.M.국제선교회 대표로서 영국본부 사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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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 극복 위한 60일 기도 운동] 이 나라가 주님 손에 붙들려 열방의 빛 되게 하옵소서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북핵의 위협과 부패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국가 위상이 높아져 스스로 강대국이라 자부하며 콧대를 높이던 자존감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실상은 구한말같이 열강 사이에 끼여 약소국의 설움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지 130년이 넘었고 1000만 가까운 성도가 있는데도 분열하며 미성숙 속에 있습니다. 

 
주님, 우리 모두에게 요나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신 니느웨성의 회개를 허락해 주옵소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로 믿게 하시고 주께 나아오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모든 강포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하시고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 화합을 이루는 대통령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한국교회는 이를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고통과 슬픔, 수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야베스처럼 주님을 신뢰하는 대통령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선하신 뜻대로 대한민국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제 모든 국민들이 신임 대통령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지역과 정당, 특정 후보를 앞세웠던 우리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케 하옵소서. 


살아있는 나무가 햇빛을 받으면 더 무성해지고, 죽은 나무가 햇빛을 받으면 점점 더 말라갑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끝까지 붙잡는 살아있는 나무로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지혜롭고 복 있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손에 굳게 붙들려 열방의 빛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단호한 믿음의 결단을 내리게 하옵소서. 여호수아의 결심같이 오직 나와 내 집은 주님만 섬기겠노라 당당히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스며든 불신앙의 죄와 오염된 마음을 주님의 선명한 보혈로 씻겨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임우성 목사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사무총장)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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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 같은 경험 반복

항상 무사안일 하게 10년을 한 직장에서 지낸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창의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적당히 대처하며 지냈다.
이런 소극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이 사람은 승진에서 계속 밀려 났다.
그는 회사 고위 간부에게 하소연을 하며 {그래도 내게는 10년간의 경험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간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바로 그 점이 당신의 문제 입니다. 당신은 한 해의 경험을 10회나 반복했을뿐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무리 몇 십년 동안 믿었어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94년 학생회 표어처럼 빛의 자녀 됨으로 빛의 열매 맺는 우리 학생회가 되길 바랍니다.

♠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나?
미국의 저명한 {가정부인}지에 보통 사람의 생애를 70년으로 생각하고 분석한 결과를 게재했다. 여기에 보면 6년을 먹는데 소모하였고, 11년을 일하는데 5년반을 세탁과 옷 손질에 3년을 교육에 8년을 오락에 6년을 걷는데, 3년을 독서에 3년을 대화에 24년을 잠자는데 겨유 6개월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데 사용한다는 분석이 있다. 70년을 사는 인간이 불과 6개월간을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 날에 간다? 인생의 1%도 안되는 0.7%의 삶을 바치고 그토록 큰 사랑과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니 참으로 믿음이 얼마나 좋고, 아가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있다. 나는 몇 개월쯤 될까?

♠ 두려움 없는 삶의 비결
어떤 사람이 공동묘지를 넘어 막 마을로 가려하다가 너무나 밝은 얼굴로 뛰어노는 한 꼬마를 만났다. {공동묘지 근처인데 너는 무섭지 않니}이 사람이 이렇게 물자 꼬마는 {아뇨}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 봤다. {왜 무섭지 않니?} 다시 이 사람이 묻자 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빠가 이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이사야41:10)

♠ 승리의 비결
1977년 9월 15일, 우리나라의 등반대가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여 전세계에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등반 대원들이 돌아와서 이번 등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이 장도에 오르기 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 읽은 성경 말씀이 시편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우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말씀이였습니다. 그들은 산에 올라가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마다 등반을 포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산가와 같습니다. 커다란 계획을 세우고 그 정상에 올라가기 위하여 여러가지 준비를 합니다. 훈련도 합니다. 면밀한 계획도 세웁니다. 그러나 모두 성공하는게 아닙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떨어지기도 합니다. 부상 당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포기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은 결국 정상을 정복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 승리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는 말씀이며 새힘이 되시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 참는것은 곧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라고 말했다. 여러나라 금언에서 볼 수 있듯이 인내는 사랑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이다.
"한 줌의 인내는 한 부쉘의 뇌보다 더 값지다"-네델란드-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프랑스-
"인내는 악을 쳐 이긴다"-독일-
"인내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전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다"-이탈리아-
"인내는 천국에의 열쇠이다"-터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참고 견디는 자에게 생명이 있다. 언제나 참고 견디는 정신을 배워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우산을 준비하고 비오기를 준비하자
한 작은 농촌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모든 농작물은 메말라 가고 가축들이 죽어가고, 모든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어느날 오후, 마을 주민들은 비를오게 하도록 교회에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다. 그들은 계속 모여 기도했다. 마침 그때 하늘이 번쩍이고 침침한 구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계속 기도했다.
그들도 모르게 바람이 거세어지고 하늘은 구름으로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천둥이 치고 대문이 흔들거렸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서로들 껴안고 춤을 추고 기쁨의 환성을 올렸다. 갑자기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8살쯤 먹은 한 소녀가 온통 함박 웃음을 짓고 우산을 쓰고 비를 바라다 보는 모습을 돌아 본 것이다. 모든 주민들이 비오기를 기도했으나 소녀처럼 비올 것을 믿고 우산을 준비하는 신앙이 부족했던 것이다.

♠ 후탁성도
요즘 후탁 성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후탁성도란 무슨 말인고 하면 일주일 내내 성경 한 장, 찬송 한곡 안부르다가 주일날이 되면 먼지가 쌓인 성경 찬송을 "후"하고 불고 "탁"하고 쳐서 먼지만을 털고 나오는 성도를 가르치는 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면회 오는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나다면 그의 삶을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시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일 것입니다.

♠ 기도를 위한 제안
여기 당신의 기도를 돕기 위한 몇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1.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말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
2.고백하십시오. 당신의 조그만 잘못이 당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오"(요일1:9)
3.말하십시오, 하나님께 당신과 형제들의 필요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6,19)
4.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는데 도우시도록.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의 모습
어린 아이가 이 세상에 때어날 때 세 가지 모습을 합니다."울고, 잡고, 발버둥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사람들이 일생동안 반복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살아감에는 슬퍼도, 기뻐도, 눈물이 있고 성취하려고 발버둥치고 소유욕에 붙잡으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정신없이 이 땅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며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를 알고 나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주님을 알았을 때 비로서 나의 사명을 알고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 사과 속의 씨앗
"누구든지 사과 속의 씨앗은 헤아릴 수 있어도 오직 하나님만 이 씨앗 속의 사과를 헤아릴 수 있다(Any fool can count the seeds in an apple but only God can count apples in a seed)"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우둔하고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사과 속의 씨앗이야 쪼개어 보면 10개이내의 적은 수 입니다. 누구든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을 심게 되면 장차 얼마나 많은 사과나무가 자라서 사과가 열릴 줄은 모릅니다.

♠ 어떤 심라학자의 삶의 철학
어떤 심리학자가 성공적인 삶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첫째로,그 않은 자세부터 다르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맨 앞자리에 앉아 자세를 흐트러 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둘째로,눈동자가 다르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그 눈동자가 기운이 있고 촛점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눈동자에 확신이 있고 빛이 납니다.
셋째로,성공적인 사람은 말에 음성이나 표현을 ㅗ아서 알 수 있습니다.
넷째로,성공적인 사람은 걸음걸이가 확신에 찬 빠른 걸음으로 걷습니다.
다섯째,성공적인 사람은 시간을 잘 지킨다고 합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시간을 꼭 지킨다고 합니다.

♠ 거듭났을때 삶은 빛난다.
중국 내지 선교의 개척자 허드슨 테일러 목사의 이야기 그가 중국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신자가 되는데 몇년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램프의 심지는 얼마 동안 타고 빛을 발합니까?} 테일러 목사가 이렇게 반문하자 청년은 {그야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라고 대답했다. 테일러 목사는 청년의 손을 꼭잡고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삶의 빛이 그 영혼에서 타오르게 된답니다.}

♠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것 세가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입에서 나간 말입니다. 우리가 한 번 한말은 다시는 돌아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화살이라고 합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거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째는 흘러간 세월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성이라는 법정에 서서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며 "무엇을 잃었으며 또한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물음을 묻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얻은 것에 감사하고 잃은 것을 반성할 때 세월은 흘러간 것만이 아니라, 새롭게 살아 갈 수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걱정할 필요없는 걱정
기독교 출판협의회 회장 여운학 장로의 칼럼에서 {왜 너는 걱정하느냐?}의 일부분 발췌 "어느 권위 있는 연구 조사에 의하면 우리의 걱정 근심 가운데 80%는 일어 날 수 없는 쓸데 없는 것이며 12%는 자기와 상관 없는 일이고 오직 8%만이 진정으로 걱정할 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나머지 8%의 걱정 근심도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8%까지도 하나님께서 대신 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는 하루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살롬"

♠ 이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득자는 꼭 "우리들"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모름지기 이렇게 덧붙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하는데 대해 당신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링컨은 저 유명한 메티즈 버어그의 연설에서 이 "우리들"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 연설에서 그는 몇번이고 "내"가 아니라 "우리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주의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위대한 전쟁터에서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기도를 올리기 위해 여기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위대한 사업에 한 몫 끼어들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이라는 말을 써야 할 것입니다.
"나"를 사용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나"라는 말은 쓸쓸한 말입니다.

♠ 승리하는 사람과 패하는 사람
승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와 "아니요"의 선택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패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와 "아니오"의 선택이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쓰러지면 언제나 일어나 앞을 보지만 실패하는 사람들은 쓰러지면 뒤를 돌아옵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은 눈을 밟아 길을 만듭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눈이 녹기 만을 기다립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에는 꿈이 들어 있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에는 욕심만 잔뜩 들어 있습니다.

♠ 오묘한 자연의 섭리
어떤 농부가 큰 호두나무 그늘에 앉아 쉬다가 옆에 있는 호박을 보고 {하나님도 참! 저렇게 큰 호박이 왜 약한 덩쿨에 달리게 하셨담. 저 높은 곳엔 작은 호두가 달리게 하셨고 …}라고 중얼 거린 후 잠이 들었다.
조금 후 호두 하나가 뚝 떨어져 농부의 머리를 때렸다. 농부는 화들짝 놀라 농부의 머리를 때렸다. 농부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말했다. {저 큰 호박이 높은 곳에 달렸다면 나는 큰일날 뻔 했구나, 작은 호두를 높은 곳에 두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호박은 낮은 곳에 있어야지요

♠ 잃는 고통과 찾는 기쁨
인간이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쓰라린 아품중의 하나는 잃어버리는 고통입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잃는 아품도 비례합니다. 내 것을 많이 가질수록 잃어버리는 고통은 지속되며 또 잃어 버릴까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가 가지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때, 잃는 고통에서 해방을 얻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의 자그마한 소유일지라도 잃어버릴 때 오랫동안 괴로움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향한 구원의 심정을 잃는 것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양이 백마리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마리를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 다니게 됩니다. 찾은즉, 나는 잃은 것을 찾았노라 하면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찬란한 슬픔
그리스도인에게 찬란한 슬픔이란 무엇인가? 이는 이 세상의 어떤 종류의 슬픔보다 자신의 죄악을 돌아보는 회개 눈물이 바로 찬란한 슬픔입니다. 찬란한 슬픔 후에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평안을 만나 보십시오.
내가 슬프다고만 슬픈 것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찬란한 슬름은 회개의 눈물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옥합을 깨뜨린 여인 가슴을 쏟는 고통의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기던 여인 이 여인의 슬름은 찬란한 슬픔 영혼을 찾는 슬픔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여행길
우리들의 삶은 여행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바로 인생의 긴 여행의 과정이라면 기차역 구내의 안내 표지판 같은 것으로 확실하게 표시가 된 것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다음에 내릴 역은 어대에 어디쯤에서 인생의 길이 바꾸어진다고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인생을 정확하게 안내하는 안내판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갈때 방황하지 않고 확실한 삶의 여행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달모양과 성도
우리들의 믿음은 빌려 줄 수도 없고 빌려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생활을 달의 모양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믐달 같은 성도는 있으나 마나한 성도입니다. 초생달 같은 성도는 삐뚤어진 신앙을 가진 성도입니다. 상현달 같은 성도는 완전한 것 같으나 부족한 성도입니다. 보름달은 남에게 비추어 주는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성도입니다. 주위를 밝히고 세상을 밝히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달이라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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