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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는 고대 아랍 다신교도의 달신이었는가?

 

 

역사적 증거들과 편향되지 않은 논리와 잘 정리된 참고문헌들과 모든 가능한 상황적 판단들은 (a) 알라라는 신의 명칭이 이슬람 도래 훨씬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b) 이슬람 이전 이교도들이 그들의 최고의 신(달신)으로 알라를 숭배하였다는 것을 아주 잘 입증할 수 있다. 알라의 이름은 이슬람 이전 아랍에 존재하였다. 고대 아랍에서 알라는 최고의 신/신격(달신)으로 여겨졌고 아랍 다신교도들은 이슬람 도래 이전에 알라를 숭배하였다.

 

아래의 타당한 몇 가지 질문들과 해답들을 검토해보자:

이슬람 도래 이전 시대에 아랍 다신교도들이 360개의 신들을 숭배하였는가? 맞다.

아랍 다신교도들이 태양과 달과 별들을 숭배하였는가? 맞다.

아랍족들이 달신을 위한 사원들을 건축하였는가? 맞다.

다른 아랍 부족들이 달신에게 다른 명칭들/호칭들을 수여하였는가? 맞다.

그 명칭들/호칭들의 일부분은 무엇이었는가? Sin, Hubul, Ilumquh, Al-ilah 였다.

“al-ilah”(신)라는 호칭이 달신으로 사용되었는가? 맞다.

“알라(Allah)"라는 단어가 “al-ilah”에서 유래되었는가? 맞다.

다신교도의 “알라”가 만신전에서 가장 높은 신이었는가? 맞다.

그가 카바 신전에서 숭배되었는가? 맞다.

알라가 메카인들의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였는가? 맞다.

그들이 카바 신전의 꼭대기에 Hubul의 조상을 설치하였는가? 맞다.

그 당시에 Hubul이 달신으로 여겨졌는가? 맞다.

그러므로 카바 신전이 “달신의 전”이었는가? 맞다.

결국에는 달신의 명칭으로 “알라”라는 명칭이 Hubul이라는 명칭을 대체하였는가? 맞다.

그들이 카바 신전을 “알라의 전”으로 호칭하였는가? 맞다.

알-라트, 알-우짜, 마나트가 “알라의 딸들”로 호칭되었는가? 맞다.

유세프 알리는 라트, 우짜, 마나트가 “하나님[알라]의 딸들”로 알려져 있었다고 설명한다. (Yusuf Ali fn. 5096, pg. 1445)

꾸란은 한 부분에서 무슬림들에게 알-라트, 알-우짜, 마나트를 숭배하라고 말하였는가? 맞다. 꾸란 53:19-20

이러한 구절들이 현재의 꾸란에서 “폐기”되었는가? 맞다.

그 구절들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악마의 계시”

달신의 여러 가지 이름들(Sin, Hubul, llumquh, Al-ilah)은 다양한 다신교도 아랍 부족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다신교도의 신 SIN은 달신의 명칭이었다.

 

실제적으로 알라가 누구인가?

 

이슬람 신학자들(Mullahs, Maulana, Moulavis, etc.) 또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르면 알라는 우주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한 존재가 알라라는 진실을 알려주면서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의 천사를 통하여 (어느 날 갑자기?)선지자 무함마드에게 자신에 관하여 말하였거나 소개하였던 창조주 또는 최고의 신이다. 놀랍게도 꾸란은 실제로 누가 알라였고 알라와 다신교도들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 “알라”라는 단어를 결코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99%의 무슬림들이 알라라는 명칭이 가브리엘이 그 진실(?)을 히라 Parvat(산)의 동굴에서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알려주고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주었을 당시에 생겨났거나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진실이 계시되기 전에 다신교도 아랍족들은 완전히 무지하여서 다양한 꼭두각시 여신들을 숭배하였고 그 다신교도들은 매우 사악한 사람들이었다고 믿는다. 나는 어느 이슬람 성직자들도 그 진실을 우리에게 말하여 주지 않았고 그들이 “알라”가 사실은 다신교 아라비아에서 이미 존재하였던 신이라는 이 분명한 진실을 믿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놀라운 위선 아닌가?

 

“알라”라는 명칭이 다신교도들에 의하여 그들의 주요한 신/신격으로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다:

 

(A) 그들이 무지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슬람 도래 이전 시대에 아랍족의 종교적 배경은 다신교적이며 근본적으로 정령신앙적 이었다. 달, 태양, 별들, 행성들, 동물들, 우물들, 나무들, 돌들, 동굴들, 샘들 그리고 다른 자연물을 통하여 인간은 신에게 교제할 수 있었다. 메카에서 “알라”는 신들 가운데 우두머리였으며 무함마드의 부족인 꾸라이시족의 특별한 신이었다. 알라에게 딸이 셋 있었고 알-우짜(비너스)는 그 중에서 가장 존중되었고 인신제사를 좋아하였고 마나트는 운명의 여신이었고 알-라트는 식물의 여신이었다. 알라의 이 세 딸들(그들에 관한 구절이 꾸란에 있다)이 모든 것들 위에 가장 힘이 세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그들의 숭배자들을 위한 그들의 중보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B) 아랍인들은 자녀들에게 압둘라(알라의 종)와 같은 이름들을 지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명백한 증거는 무함마드의 아버지의 이름이 “압둘라”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리적인 유추는 이슬람 도래 이전 아랍에 “알라”가 없었다면 아라비아에 압둘라 또는 알라의 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C) 오늘날에도 무슬림뿐 만아니라 모든 다른 비-무슬림을 포함한 전 아랍 세계(유대인, 기독교인, 사비아교인, 바하이교인, 무신론자 등)에서 아랍인들은 놀라움 또는 불행/슬픔의 표현으로서 “야 알라(Ya Allah)"라고 말한다.

 

(D) Albert Hourani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는 이슬람 호칭은 이미 지역 신들 가운데 하나에 대하여 사용되었던 ”알라“인데 이 호칭은 지금 아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된다(A history Of Arab people by Albert Hourani, 1991, page-16,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USA).

 

역사는 우리에게 카바 신전 주변에 알라의 존재에 관한 두 가지 이론을 말해준다: (1) 다신교도들은 360개의 우상들 가운데 가장 큰 우상을 “알라”라고 부르고 그를 가장 최고의/우월한 신으로 간주하였거나 (2) 다신교 아랍족들이 카바신전 안에서 360개의 우상들을 숭배하였고 그들은 그 우상들이 보이지 않으며 전능하고 전지하며 절대로 알 수 없는 “알라”라고 부르는 유일하며 가장 힘이 센 으뜸 신의 완전한 지배 안에 있는 다른 작은 신들이라고 간주하였다.

 

힌두교와 놀라운 유사성들:

 

인도의 힌두교는 위의 두 번째 다신교 신앙과 아주 유사하다. 힌두교도들이 많은 다른 여신들을 숭배하지만 그들이 “Nirakar”라고 부르는 유일한 최고의 보이지 않는 신 “Bhagaban”(일부는 그를 “Ischhaar”로 부른다)에 대한 예외 없는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모든 힌두교인들은 그와 함께 다른 수 많은 신들을 숭배한다. 이 Bhagaban은 모든 다른 신들의 주군으로 간주된다. 일부 똑똑한 선지자가 힌두교인들에게 다른 여신들을 숭배하지 말고 이슬람처럼 유일신 종교를 만들어 Bhagaban만을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숭배하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것이 이슬람과 같이 다른 종교가 될 수 있을까?

 

다음은 “알라”가 아랍 다신교도들의 달신이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다.

 

(A) 꾸란에는 알라가 달, 태양, 별들, 행성들, 밤, 바람 따위들과 같은 이름을 들어 여러 차례 맹세하는 적어도 12개 이상의 구절들이 있다. 왜 창조주 알라(?)가 자기 피조물들을 들어 맹세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보통 우리는 우리 보다 훨씬 우월한 것의 이름을 들어서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거나 우리의 (우리 보다 나이가 많고 우월하다고 여겨지는)아버지의 이름을 들어서 맹세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보다 못한 것의 이름을 들어 맹세하지 않는다. 여기 꾸란에서 알라가 달 또는 별들을 들어 맹세하는 모양새는 알라가 이러한 것들이 자신보다 우월하게 여겼다는 힌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꾸란에서 누가 실제로 알라로 행세하였는가에 관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꾸란 74장 32절 “달을 두고 맹세하사”에서 왜 꾸란이 달을 두고 맹세하는지 이유에 대한 설명에서 유세프 알리는 “달은 무지의 시대에 신으로 숭배되었다”(fn. 5798, pg. 1644)고 주석한다. 아마도 알라의 이 맹세는 다신교 관습에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달을 숭배하였던 평상적이고/문화적인 습관에 기인한 것이었다.

 

(B) 유세프 알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Page-1921-1623 of his English Translation of Holy Quran):

 

“달 숭배는 다양한 형태로 널리 인기 있었다.......쌍둥이 형제 자매 Apollo와 Diana는 태양과 달을 나타낸다. ....인도의 베다 종교에서 달신은 Soma였고 행성들의 주군이며...... 달은 고대 인도에서 남성 신이었다. 달은 고대 셈족 종교에서도 남성 신이었고 달에 해당하는 아랍어 단어 ‘qamar’는 남성형이고 반대로 태양에 해당하는 아랍어 단어 ‘shams’는 여성형이다. 아랍 다신교도들은 분명히 태양을 여신으로 달을 남신으로 보았다.

 

카바 안에서 그리고 메카 주변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다신교 신들은 라트, 우짜, 마나트였다. .....카바 안에 다신교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360개 우상들은 부정확한 태양력의 360일을 나타낸다. 이것은 동시대에 우리 선지자와 같이 꾸라이시족에게 알려진 대로 실제적인 근대적 다신교 숭배였다.“

 

(C) 이슬람에서 달의 영향

 

누가 무슬림의 삶에서 지고한 달의 영향을 부인할 수 있는가? 이슬람에서 달은 가장 거룩한 행성으로 여겨졌고 모든 이슬람 의식과 축제를 인도하는 빛이다. 라마단과 라마단 공휴일 날짜에 관한 반박과 논쟁은 아주 보통이며 분명히 그것은 만성적인 문제이고 달이 이 문제의 중심이다. 초생달과 별들은 많은 무슬림 국가들의 국기에서 상징적 표식이고 그것은 모스크위에, 무슬림 묘지 안에, 그 밖의 곳에서 볼 수 있다.

아라비아에 이슬람을 수립하기 위해서 다신교도들과 타협한 선지자 무함마드:

 

선지자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다신교 아랍족들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다신교의 많은 의식을 이슬람으로 받아들이는 교묘한 술책을 사용하였다. 무함마드는 그의 종교에 관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아부 서피안과 같은 다신교 지도자들과 많은 정치적인 협정을 했고 이슬람에 많은 다신교 의식들을 통합하기로 동의하였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다신교도들에게 가장 큰 하나님 “알라”만을 숭배하고 카바 신전에 있는 모든 다른 신들과 여신들의 우상들을 파괴하도록 요구하였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수립하기 위하여 그는 그들에게 여러 차례 알라에 대하여 어떠한 경쟁자도 만들지 말라고 요구하였다(이것이 꾸란에서 알라에 대하여 어떠한 경쟁자도 만들지 말라고 요구하는 수 백 개의 구절들을 볼 수 있는 이유이다). 결국 무함마드는 다신교도들이 모든 우상들을 파괴하도록 확신(물론 힘으로)시킬 수 있었고 그 대가로 (아마도)알라의 명칭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명칭으로 가장 유명한 다신교도 부족들의 여신들의 “명칭”들을 가지기로 동의하였고 그로인하여 이슬람은 알라에 관한 99개의 명칭들을 가지고 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다신교도들이 아직 메카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 이 다신교도들의 의식에 참여할 것을 명령하였다.(유세프 알리 fn. 214, pg. 78를 보라). .....“[다신교도의] 순례 전체가 이슬람에 접목되었다....” (유세프 알리 fn. 223, pg. 80를 보라). (꾸란 2:200의) Tafsir에서 유세프 알리는 “다신교도 시대에 순례 후에 순례자들은 집단으로 모였고 거기서 조상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순례의식 전부가 이슬람에 접목되었으므로 이 순례의식의 뒷풀이도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접목되었다. 순례자들은 순례가 끝난 다음에 이틀 또는 사흘을 묵는 것이 권장되었지만 그들은 그 날들을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하여야 한다.(#223 of Shane’nazul by Maoulana Yousuf Ali, page-81)

 

이슬람에서 (오늘날) 알라의 이름으로 헌신적인 무슬림들에 의하여 수행되는 많은 의식들이 이슬람 이전에 존재하였던 다신교도들의 숭배행위와 연결되어있다. 일 년에 한번 카바 신전 순례, 라마단 금식, 카바 신전 주위를 7번 달리는 것, 검은 돌에 입 맞추는 것, 머리를 면도하는 것, 동물희생제사, 두 언덕을 달려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 마귀에게 돌을 던지는 것, 코로 물을 들이마시고 내보내는 것, 메카를 향하여 하루에 몇 차례 기도하는 것, 기부금을 내는 것, 금요일 기도회 같은 다신교도의 관습들은 오늘날 무슬림들에 의하여 엄격하게 지켜진다. 아무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며 오늘날 무슬림들의 성지순례에 관한 이상의 모든 의식들은 이슬람 도래 이전에 분명히 존재하였다. 다신교도들의 의식들 대부분을 새로운 종교 이슬람에 통합시키므로 무함마드는 성공적으로 다신교도 위기를 줄였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주 그럴듯한 것이며 다신교도들의 마음을 정복하여 그들의 도덕성과 이슬람을 반대하는 세력의 대규모 몰락을 초래하였다는 것은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획기적인 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메카의 중심 사원은 다신교도의 카바(알라의 전이라고 호칭된다)였으며 석조 구조물인 정육면체인데 여러 차례의 재건축을 하면서 아직도 존재한다. 한 쪽에 검은 돌이 박혀있는데 아마도 운석 같으며 그것에 입 맞추는 것이 지금 무슬림 순례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메카에 있는 검은 돌을 가지고 있는 사원 카바는 이슬람 도래 이전에 다신교 우상 숭배에 사용되었고 그 당시에 알라의 전이라고 호칭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아랍족들이 숭배하였던 신의 이름은 만신전의 신-Ali-ilah 신, 가장 높은 신, 모든 것의 생명 또는 운명을 미리 결정하는 자-최고의 신 “알라”였다.

 

우리는 꾸라이시의 여러 부족들에게 매우 신성시 여겨졌던 검은 돌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신성한 돌이 다른 장소로 옮겨질 필요가 생겼을 때 여러 부족들 가운데 누가 이 신성한 돌을 운반할 것인가에 관하여 다툼이 생겼다. 그때에 가장 똑똑하고 의로운 소년 무함마드가(당시에는 선지자가 아니었다) 이 중대한 문제에 해결책을 생각해내었다. 그(무함마드)는 커다란 천위에 이 신성한 돌을 올려놓고 각 부족에서 한 명의 대표자가 나와서 이 천을 잡고 그 돌을 운반하라고 말하였다. 검은 돌이 이슬람이 생겨나기 오래 전에 존재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말 하였을 뿐이다.

 

요약하면 이슬람이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개량된 다신교일 뿐이라는 것이 모든 이용 가능한 상황적 증거들과 분별력으로 진실하게 논리적으로 증명이 된다. 나는 이 모든 유일신 종교들이 적든 많든 유사한 기원들을 가진다고 믿는다. 유일신 종교에 관한 이 생각이 새롭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유일신 사고는 고대 파라오 왕들,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왕(3000 B.C.), 알렉산더 대제 (300 B.C.)에 의하여 선포되었다. 다른 점들은 이 왕들이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숭배되어야 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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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라마단 기간 안내 5월6일~6월03일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한다. 천사 가브리엘(Gabriel)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로 여겨,
이슬람교도는 이 기간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하고, 날마다 5번의 기도를 드린다. 여행자·병자·임신부 등은 면제되지만 대신 이후에 별도로 수일간 금식해야 한다.
이러한 습관은 유대교의 금식일(1월 10일) 규정을 본떠 제정한 것인데, 624년 바두르의 전승(戰勝)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달로 바꾸어 정하였다.


신자에게 부여된 무슬림의 5가지 의무 가운데 하나이며, '라마단'이라는 용어 자체가 금식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뿐만 아니라 담배, 물, 성관계도 금지된다.
 
중동지역과 기타 이슬람국가 여행시 알아야 할 점!

라마다 기간 동안 두바이 사막투어시 벨리댄스가 제외되오니 참조 부탁드립니다.
레스토랑의 경우 대부분 문을 닫긴 하지만 호텔 및 일부 식당은 영업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저희 현지직원의 안내에 따르시면 됩니다.
 

몰디브의 경우 관광객들의 식사는 전혀 문제없으며
다만 현지인들의 경우 저녁 7시 일몰 후 식사를 하기 때문에
한 낮에 한국식 인사로 식사했느냐고 물어보면 좀 어색해 질 수도 있습니다.
 
라마단은 매년 기간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슬람교는 이슬람력을 사용하는데 윤달이 없어
라마단이 매년 빨라진다고 합니다. 특정 기간이 되면 전문가들이 달을 관측하고 최고 종교
지도자가 라마단의 시작일을 공표합니다.
 
택시도 현지 운전자들이 이 기간에는 쉬기 때문에 잡기 힘든 기간입니다.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저렴한 식당들이 문을 닫기때문에
서양식이나 중국계 식당을 이용하시는게 더 편리할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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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지도자 약 500명 “종교 이유로 한 살인·폭력 반대”

 

“비무슬림 시민들도 똑같은 권리 누려야”

 

 

 

ⓒ아시아뉴스 보도화면 캡쳐


파키스탄 이슬람 종교지도자 약 500명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살인과 폭력에 반대하는 선언문에 서명했다고 영국 크리스천투데이가 15일(현지시간) 아시아뉴스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주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콘퍼런스 참석자들은 ‘이슬라마바드 선언문’을 발표하고 이에 서명했다.

이번 선언문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행되는 살인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반대된다”, “모든 종교인들은 각자의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파키스탄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파키스탄에 살고 있는 비무슬림들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일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은 또 “비무슬림 시민들도 모든 이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2019년을 ‘파키스탄 내 모든 테러, 극단주의, 종파간 폭력을 근절하는 해’로 선언했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이 선언문은 기독교인 여성인 아시아 비비의 석방을 둘러싸고 종교적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파키스탄 내 소수 종교인들을 지지하는 예상 밖의 목소리”라고 보도했다.

선언문은 “현재 법원에서 다시 검토 중인 아시아 비비의 사건은 반드시 가장 먼저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원본링크]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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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한국 침투전략

 
1955년, 한국에 이슬람이 들어온 것은 6.25 동란 때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던 연합군에 합류해 한국 땅을 밟은 터키 군대에 의해서였다. 이슬람이 한국 땅에 발을 붙인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이슬람 쪽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에 무슬림 숫자가 현재 15만 명이라고 한다. 그들은 한국을 무슬림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서울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 중앙 성원을 비롯해서 부산, 전주, 인천, 광주, 안양, 파주, 부평, 등지에 대규모 성원을 건축하고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여개의 이슬람 예배처소가 있다.

 

                                    ( 한국에 있는 이태원 이슬람 사원 )


한국 정부의 이슬람 지원

 

한국정부는 일체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도  대부분 엄청난 석유를 생산해 내는 중동의 이슬람국가들에게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때는 한국 이슬람 중앙 성원을 짓는데 한남동의 시유지 1,500평을 희사했다. 그리고 잠시 대통령직을 감당했던 최규하 대통령은 80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를 공식 방문했을 때 한국에 이슬람 대학을 건립하는데 적극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2개월 뒤 한국 정부의 이름으로 용인에 있는 국유지 43만 평방미터(약 13만평)를 이슬람 대학 부지로 헌납했다. 한국의 이슬람은 규모는 작지만 산유국들의 막강한 외교력을 배경으로 다른 종교에서는 꿈도 못 꾸는 일들인 국유지를 무료로 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의 선교전략

 

아랍국가들은 외국어 교육 붐이 일고 있는 한국의 현상을 잘 이용하여 산유국들의 장점을 선전하며 아랍어를 가르치고자 한다.  아랍어는 코란의 언어이기 때문에 아랍어를 배우려면 자연히 이슬람 강의를 들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들은 선생과 제자사이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선교전략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 2002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아랍어를 제 2 외국어로 선택 할 수 있도록 한국의 교육법이 바뀌었다. 물론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무슬림들이 얼마나 노력 했는지는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지금은 아랍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슬림 남성들이 한국 여성들과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으면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한국의 교육법에 주어진 혜택을 누리게 해 달라며 강력하게 아랍어 선생 채용을 주장할 것이다.

 

언론사와 매스컴 이용


 

이들은 매스컴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언론사 종교 담당 기자단을 초청하여 특별 강연을 2006년 한국 이슬람 선교위원회 사업계획으로 잡았다. 또한 이들은 2004년에 한국의 교육방송(EBS)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이슬람 13부작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이슬람국가 15개국을 순회하면서 촬영 편집한 동영상을 13회에 걸쳐 방송 했다. 이것은 국민의 교육세를 받아 운영하는 공영방송을 이용하여 이슬람이라는 특정 종교를 홍보하는 멋진(?) 작품이었다. 이 이슬람 13부작은 2005년에 방송 프로듀서 작품상을 받기도했다.

 

역사를 가르치는 중 고교 교사들을 초청하여 이슬람을 교육


 

1989년 9월 제1회 이슬람 역사 바로 잡기의 일환으로 서울 지역 중 고교 역사 담당 교사들을 초청하여 이슬람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그 후 해마다 1-2회씩 이러한 행사들을 하고 있다. 2006년에도 두 번 중고교 교사들을 초청하여 이슬람 강연회를 가졌으며 8월 2일에는 이화여대 부설 중등교육원 공통사회 부전공 연수교사 37명이 서울 이슬람 중앙 성원을 방문하여 황의갑 박사(한국이슬람교 중앙회 사무총장)의 ‘이슬람 문화 이해’라는 주제강의를 1시간여에 걸쳐 듣고 질의응답시간을 갖는 등 이슬람 문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리를 가졌다.

 

주한 이슬람 공관장 자문 위원회


 

1998년 4월 27일 주한 이슬람 공관장 자문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는 한국에 있는 이슬람 국가의 대사들로 구성되는 모임인데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이슬람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고 공관장으로서 그들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의논하여 한국의 이슬람화를 지원하는 모임이다.

 


한국을 이렇게 이슬람화 할 것이다.

 

그럼 그들이 어떻게 한국을 이슬람화하려 하는가? 2005년도에 발간된 한국 이슬람 연맹에서 출판한 한국이슬람 50년사에 이들이 발표한 미래의 선교계획이라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1) 마스지드 건립


 

이슬람 사원을 아랍어로 마스지드라고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서울 중앙 성원을 비롯해 9개의 이슬람 성원이 있으며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여개의 임시 예배소가 있고 국내외 약 15만 명의 무슬림들이 예배와 종교적 의무를 실천하고 있다. 매년 늘어나고 있는 무슬림들을 위한 새로운 성원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 국제 이슬람 학교 설립


 

무슬림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한 교육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영어로 가르치는 초등학교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오일 달러를 받아서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다른 유치원들의 거의 절반 값으로 이런 학교들을 운영한다면 많은 한국인 엄마들이 자녀들을 그 곳으로 보내고 싶어 할 것이다.

 

3) 이슬람 문화센터 건립


 

이슬람 문화센터를 다와센터(Da’wah Center)라고 부른다. 이는 선교센터라는 말이다. 한국 이슬람 전래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종교 사회 문화를 알리고 교류할 선교 및 문화 공간을 가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슬람 문화센터를 서울에 개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거기서는 많은 이슬람국가들의 언어교육부터 시작하여 상설 이슬람 교리강좌 등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이슬람을 뿌리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4) 꾸란 번역 위원회


 

지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꾸란들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여 이해가 어렵고 내용상의 오류가 많은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새로운 꾸란을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서 매주 토요일에 꾸란 번역위원들의 정기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연구 토론 모임을 가지고 있다.

 

5) 이슬람 대학 건립


 

1970년대 말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사업이다. 1977년에 쿠웨이트 사업가 쉐이크 압둘라 알리 알무타와가 한국 이슬람 중앙회를 방문하여 제안한 이슬람 대학 설립 계획은 1980년 7월 최규하 대통령이 이슬람 대학부지 43만 평방미터를 기증함으로 구체화 되어 지금 추진 중에 있다.

아마 이 대학이 건립되면 완공식에 이슬람국가 원수들 혹은 장관들이나 왕자들이 참석하여 각종 특혜와 전액 장학금, 진학에 따른 학위 보장 및 취업보장들을 약속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머리 좋은 수재들이 밀려들어갈 것이다.

한국 이슬람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고급 무슬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이들은 삽시간에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 예상 된다.

 


천년 사원 이집트 카이로의 옛 시가지에 자리한 알아즈하르 사원.

서기 971년 파티마 왕조가 건립한 이 사원을 모태로 태어난

알아즈하르대학은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이슬람 전통에 바탕한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으로 꼽힌다.

 

6) 이슬람 관련 서적 출판 위원회


 

지금까지 많은 이슬람 서적들이 나와 있다. 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책들과 인쇄물들을 만들어 홍보하고자 한다. 그들이 이렇게 문서 선교에 힘쓰는 이유는 한국에는 문맹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자료들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면 누구든지 읽어서 스스로 터득한다는 것이다.

 

7) 한국 여성들과 결혼 및 출산 전략

 


이슬람권에서 한국에 근로자로 들어 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불법체류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는 아내가 한국인이고 남편이 외국인이면 남편에게 체류허가를 발급해 준다. 그동안 불법체류를 한 사람일지라도 합법 체류자의 자격을 얻게 된다.

무슬림권의 결혼제도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일부 다처제도이다. 그래서 자기 나라에서 결혼을 하고 가족들이 있는 사람도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서 또 한 사람의 부인을 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자녀들을 낳아서 무슬림들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느린 방법인 것 같지만 이미 유럽은 이 방법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중동 전문가 버나드 루이스 교수는 “이번 세기가 끝날 때면 유럽에선 무슬림이 비(非)무슬림을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의 10% 정도인 600만 명의 무슬림이 있지만 신생아 4명 중의 한명은 무슬림 자녀라고 하니 25%의 신생아들이 무슬림이라는 말이다. 이대로 가면 유럽의 무슬림 숫자는 2025년에 이르면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며 독일은 이대로 가면 2041년에 무슬림 인구가 독일 원주민들 숫자를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출산 전략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언젠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기자가 쓴 칼럼에 [한국은 곧 이슬람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을 이슬람화 하면 동남아와 극동을 이슬람화 하기에 쉬울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이슬람 국가가 되기에 적합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나라다. 

한국의 정부는 다른 모든 종교보다 이슬람에 특혜를 주고 있다. 어떤 이슬람 국가에도 선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없지만 한국에는 완벽한 종교의 자유가 있다. 아무도 이슬람의 선교를 방해할 자가 없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아서 어떤 이단들도 쉽게 발을 붙일 수가 있다. 특히 이슬람에서는 자녀 교육문제를 파고들어 교육법을 바꾸어 놓았고 중고등학교 교과서 편찬위원회에 이슬람 박사를 집어넣어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이슬람에 대한 혐오스런 부분들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준비가 완료된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제 이슬람 대학이 건립되면 본격적으로 드러내 놓고 공격적 선교로 나올 것이 빤하다.

기독교의 복음의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거짓 영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합심기도하며 철저한 선교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장재언) 
 
출처 http://blog.cgntv.net/blog/blog_main.asp?no=613234&id=pem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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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in the Quran] 남성과 여성의 지위

 

 

 

 

 

1. 남성과 여성의 지위

오늘날 이슬람 국가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꾸란과 하디스, 그리고 이슬람법(꾸란을 기초로한 법)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꾸란에는 남자와 여자에 관한 주제의 구절이 많이 있으며 신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구절도 있다.
 
 
처음에는 약간 평등을 보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여자는 결코 남자와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신앙(이슬람)을 갖는 것에 있어서는 남녀가 평등하나 이 신앙은 결코 여자들에게 평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꾸란2:124은 “남자든 여자든 의로운 행동을 한 신자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며, 조금도 불공평하게 심판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일한 내용이 꾸란 16:97절에 약간 다른 표현으로 기록되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의로운 행동을 한 신자에게 우리(알라)는 복된 삶을 허락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에 따라 최선으로 보상해 줄 것이다.”
 
이 내용은 꾸란 40:40에도 있으며 53:45에도 신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구절이 있다(꾸란92:3, 75:39)
 
 
그러나,

여성의 지위에 관한 꾸란의 시각에 있어서 약간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구절들도 여러 개 있다.
  
꾸란 2:25은 이땅에서의 아내들은 천국에서도 동일하게 아내들인데 단 월경으로 인한 부정함은 없어지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월경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꾸란이 여성들에게 주는 비교적 좋은 약속 중 하나이다.
  
이 땅에서 여성들은 중년이 되면 폐경기를 맞게 되는데 천국에서는 남편들과 같이 영원히 늙지 않고 동일한 나이로 살 것이라고 믿는다.
  
이슬람 전통은 남편과 아내가 천국에서 영원히 30세에서 33세 나이로 살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30세나 33세 정도의 여자가 부정하지 않다는 선언은 의도가 있는 말이다.
  
이 땅에서 임신을 원하지 않는 30세나 33세 정도의 여자에게 부정하지 않은(즉, 월경을 하지 않는)기간은 성적인 관계를 통한 임신 가능성에 대해 부담스러운 시간이기 때문이다.(꾸란 3:15와 4:57 반복)
  
무슬림 여성들은 꾸란 전체 본문 중에서 이 구절들을 자신을 위한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이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남자들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여성이 더 이상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편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 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없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꾸란 2:25, 3:15, 4:57에서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천국의 순결한 여인들이 바로 땅에서의 아내들(천국에서 순결한 모습으로 변한 아내들)인지, 아니면 천국에 가는 무슬림 남자들에게 주어질 천국의 처녀들(HOURI : 이슬람에서 믿는 아름다운 천국의 처녀들)인지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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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기독교와 차이점은

 

 


이슬람, 기독교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며 차이점은 무엇인가를 알아봅니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무함마드가 단독으로 22년 간 받았다고 하는 계시로서 기독교 신약성서의 약 4/5에 해당하는 분량이며, 성경의 많은 각색된 이야기들과 움마를 위한 규범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꾸란에 있는 많은 성경의 내용들이 성경의 내용과 다르게 기술되어 있기는 하지만 예수에 대한 언급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며 가장 위대한 예언자들 중의 하나로 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이 대립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슬람이 예수에 대하여 굉장한 존경을 갖고 관대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에 도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물론이고 부활사건을 부인한다. 그러기 때문에 대속의 원리가 이슬람에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말미암아 두 종교는 평화의 종교보다는 폭력의 종교 모습을 띠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두 종교 간 대립의 결정적 요인이기는 하지만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유일신교의 근원을 볼 때 왜 같은 하나님을 두고 서로가 싸우는가 하고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혼란은 결국 예수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믿음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고, 이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음으로써 이슬람권 선교에 나섰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슬람을 더 알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이 이슬람의 도전에 직면한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과 그 성경이 지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에 혹은 누구에 대해서’ 아는 것과 ‘무엇 혹은 누구를’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슬람에 대해서 알되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 바라며 두 종교의 유사점이 무엇이고 다른 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보면 두 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사상은 시간에 대한 것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창조 신앙으로서 세상의 처음과 종말사상을 지니고 있다. 창조의 과정이 다르게 기술되어 있기는 하지만 직선적 시간 개념이나, 시간을 비롯한 모든 것의 주관자가 창조주라는 사상은 인간의 죽음과 부활 심판과 연결되며, 유일신 사상에 근거한다.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와 이슬람이 유일신 종교로서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그 뿌리의 공통성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고대 근동 지방의 다신론적 상황에서 아브라함의 소명은 유일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 방법이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그는 만물의 주권자시라는 것이 유일신 종교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이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통로가 될 것임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기독인들은 믿는다. 바로 이것이 세 개의 유일신교가 대립하는 이유가 된다.

유대교는 아직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본질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거부한다. 따라서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유일신 사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다신론자 혹은 불신자라고 비난한다. 유일신(타위드라) 사상은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며 모든 교리와 사상의 근거가 되는데, 무슬림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했다면 이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슬람에서 알라(기독교 하나님과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표기하겠다)는 완전한 초월자이며 아무도 그를 알 수 없다. 알라와 인간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다(무슬림들 이름 중에 압둘라는 ‘알라의 종’이라는 뜻이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종의 행위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지는 관계이다. 그런데 기독인들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른다. 절대 초월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고 그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관계인가?

무함마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알라를 예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슬림들의 행위는 알라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행위이든 정당화된다. 심지어 인간은 알라를 위해 죽고 죽일 수 있다고까지 한다. 필자는 어떤 무슬림 학자가 ‘이슬람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죽고,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확한 지적이다. 알라의 영광이라는 명분으로 죽고 죽임을 서슴지 않는 극단적 무슬림들을 보라. 이런 알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본래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사 인간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히 비교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랑의 차이를 알면 기독인으로서 이슬람을 대할 때 어찌 흔들림이 있겠는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런 이해와 더불어 결정적으로 두 종교 간에 다른 점은 죄와 구원관이다. 이것은 인간이해와 관련된 문제이다. 아담의 선악과 사건을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실수로 이해한다. 이런 실수는 죄가 아니고 인간의 연약성 때문이므로 인간이 실수를 하지 않도록 알라는 인생 가이드북의 결정판인 꾸란을 보냈고, 꾸란이 지시하는 대로 지키기만 하면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찾아볼 수 없고 원죄를 없애줄 대속의 개념도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기 죄는 자기가 선행으로 갚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은 행위의 종교가 되는 것이고 무슬림들이 다섯 가지 실천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슬람은 전적 타자(他者)에 의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구원관과는 완전히 다른, 자력 구원의 개념을 함의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담의 불순종을 원죄로 이해한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이는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인간 안에 있는 자기 내재적인 죄성을 보고자 하는 가난한 심령이 아니면 이해 할 수 없는 대속의 원리다.

이슬람 지역의 사람들은 누구나 무슬림으로 태어나서 그들이 전수한 신앙 외의 다른 것을 생각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모로코의 여성 정치 사회학자 파티마 메르니씨는 이슬람 세계의 가부장적 역사와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 자신이 무슬림인 것은 이슬람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지 자신의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한바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근본적인 비판, 즉 꾸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신성모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 자기정체성의 문제는 비단 메르니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자신의 인격적인 결단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움마 내에서 이슬람을 따르고 있지만, 고넬료 처럼 갈급한 심령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없이는 궁극적 평안을 어떤 종교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선교에 대응하여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슬람의 선교전략으로 인해 과거 기독교지역이었던 서구유럽지역이 이슬람화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인구의 10% 이상이 무슬림이고, 러시아와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도 무슬림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 사회에서 이슬람법 적용이 요구될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도 기독교의 안전지대가 더 이상 아니다. 소위 일류학교 캠퍼스마다 무슬림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향후 이슬람 학교에서 중요한 지식 인적 자원으로 사용되기 위해 준비 내지는 완료한 상태이다. 무슬림들이 자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선교하는 것을 방해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일은 적어도 막아야 하지 않은가? 이슬람으로 기독교인들이 개종하는 이유는 대부분 교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인데, 만약 기독인이 바른 신앙관을 갖고 있다면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본 두 종교가 비슷한 점을 든다면 바른 기독교신앙관이 없는 이들은 쉽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 신앙이나 유일신관은 이슬람교 전파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한 한국 무슬림 학자들이나 무슬림들이 한때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공시대의 영웅주의적 교회 교육을 중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성경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무슬림들에게 아름답고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인 기독교 공동체를 보여줌으로써 그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질문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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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고 있는 반기독교 감정 대처법

 

최근 몇 년 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버스에 반기독교 광고를 부착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를 비판한다면서 유태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말한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등과 같은 문구를 버스 광고처럼 부착하는 것은 사실상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 성향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반역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아마도 신은 없는 것 같다. 인생을 즐겨라!" 등과 같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은 대부분 기독교 자체보다는 하나님 자신을 겨냥한 반발이며 도전이다. 인간은 결코 자신의 죄성을 먼저 성찰하지 않는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반역적인 성향과 인간 상호 간에 저지르는 사악한 죄악들과 홀로코스트와 같은 만행들에 대해서 먼저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모독적이고 교만한 말들을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반역적인 태도는 머지 않아 세계에 무서운 만행들을 저지를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위의 문구들을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자신의 창조주를 비난하고 반역하는 피조물을 상상할 수가 없다" 혹은 "의로우신 창조주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기 때문에 결코 인생을 방탕하게 살 수 없다" 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창조주를 부정하면서 기독교를 공격하는 성향은 단지 기독교에 실망한 사람들이나 무신론자들만이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 불교와 무슬림(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기독교에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가장 큰 종교 집단이지만 한국에서도 무슬림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기독교에 대한 적대 감정도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는 사이비 이단들과 같은 다른 종교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반기독교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반기독교적이며 창조주 하나님을 대항하는 감정 표현은 전세계적으로 더 많이 표출될 것이다. 살후 2:1-4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반드시 일어날 일로서 배도하는 일(하나님께 반역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 즉 멸망의 자식이 나타나야 한다. 계 13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전세계적의 많은 나라에서 적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기독교를 잔멸하려는 시도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시기가 오면 기독교의 전도와 선교는 한계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지만, 사실상 이것은 마 24:14에서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처럼 선교가 정점을 지나 완성 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세상의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정은 이미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감정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요 15:18-20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이 말씀 외에도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핍박할 것에 대해 미리 경고하는 말씀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지난 두어 세기 동안 오늘날 기독교 선교는 절정에 도달했다.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을 만큼 편만하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반면 기독교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핍박과 순교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전체 교회 시대에 발생했던 순교자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다. 제 1, 2차 세계 대전과 공산주의의 억압, 이슬람 지역의 반발 등으로 인해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절을 보냈으며, 현재까지도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진행 중이다. 서구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 발생할 역사상 전무후무한 핍박의 때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평화의 시기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반기독교 감정을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가?

 

1.  교회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가 핍박에 부딪히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전도와 선교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개교회 성장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교회가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도 비판을 받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더군다나 교회의 재정 사용에 대한 불투명성과 부정직, 그리고 목회자들의 신뢰성의 하락도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윤리는 세상의 윤리 기준을 뛰어 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한 삶을 사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진실해야 한다.

 

2.  인생의 본질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과 삶이란 매우 짧은 것이다. 모든 죄악의 뿌리와 근본은 욕심에 있다. 교회의 타락도 결국에는 욕심과 허영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자기의 세속적인 삶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재산을 축적하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 주려는 물질에 대한 가치관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자신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지 않으면 자신들의 삶이나 자기 자녀들의 삶이 불행하게 될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인본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천국의 복락과 영원한 생명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삶에 더 많은 비중과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 없이 투자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들이 자기들만을 잘 살아보겠다는 이기적인 욕심과 허영심을 포기하고 세상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 없이 내어 주며 헌신하고 봉사할 때 세상은 교회를 비난할 근거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그러한 비방거리들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노출이 될 정도로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3.  본질적인 사역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구제와 전도와 선교의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도와 선교는 세상의 비방을 피할 수 없는 사역이지만, 교회가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축적하고 아무리 많은 업적을 이루어도 그것들은 모두 세상의 멸망과 함께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아무리 크고 웅장한 교회 건물들을 쌓아 올리고 아무리 좋은 물건으로 그 건물 안을 가득 채우고 장식해 놓아도 그것들은 그렇게 가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목회자들에게 속아 교회 건물이 마치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인 것처럼 모든 재산을 다 바쳐도, 그것은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는 일에 비교해 보았을 때 아무 것도 아니다. 천하보다 귀중한 것은 한 사람의 영혼이지 세상 안에 있는 금은보화나 교회 재산인 건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은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때 있을 것이지, 세상에 교회 건물들이 세워졌을 때 있을 것이 아니다. 역사상 존재했던 무수한 교회 건물들은 모두 폐허로 변하거나 파괴되었다. 현재 교회들이 세우고 있는 건물들도 모두 파괴될 때가 반드시 온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들을 훈련하고 세워서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을 위해 세상으로 파송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즉 하늘로 올리워 가시기 전에 하신 일이다.

 

4.  온유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세상의 비판과 핍박을 받을 때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그리스도처럼 대항하지 않아야 한다. 반기독교 감정은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부터 나타났던 것이다. 사실상 그리스도의 계보를 끊어 놓고 그리스도의 초림을 방해하려던 사탄 마귀의 노력은 구약 시대에도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사탄 마귀와 그의 추종 세력들의 핍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행패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절정에 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점점 최후의 사탄의 발악이 폭발 직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멀지 않았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하는 온유한 태도란 직접 악에 대항하지 않고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를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탄원하는 내용을 보게 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하는 헤롯당이나 오늘날 기독교 사회운동가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맡기는 사람들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전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생명을 이 세상에서 잃어버리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구차한 태도로 살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 하나 만으로 행복을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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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주민 대량 학살 와해 앞둔 IS 발악

 

 

 

   

최근에 IS가 수도를 뺏기면서 크게 패했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원래 알까리아타인은 시리아내전 이전까지 인구 3만명의 도시였으며

무슬림과 900명의 기독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도시였죠.

하지만 2015IS가 이 도시를 장악하면 극도로 엄격한 이슬람교리가 모든 주민에게 강요해왔습니다.

지난해 러시아군의 도움을 받아 시리아군이 재탈환 했지만

지난 약 한 달 전 IS가 다시 점령하며 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것입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의 라미 압델

라흐만 대표는 "IS가 시리아 알까리아타인에서 주민들에게 정부군에 협력했다는 혐의를 씌우고

지난 20일간 최소 116명을 보복성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답니다.

 

언제까지 IS 만행이 계속되어야하고... 그리고 언제 선한 기독교인의 대량 학살은 끝날련지....

하루속히 세계평화를 위해 이 땅에서 이슬람의 IS가 소멸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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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나는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이태원의 이슬람사원(한국이슬람교중앙회)

 

 

파란하늘빛과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태원 이슬람사원의 좌측면이 몽환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파란하늘과 뭉게구름이 어우러진, 그러나 햇살이 무척 뜨거웠던 오늘 27일, 전부터 가보려고 찜해 두었던 이태원의 이슬람사원을 답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인상깊은 장면을 목도했다.

수화로 아기에게 이야기하는 한 젊은 엄마의 모습.

아기는 엄마의 수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루종일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아기가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얼마나 심심할까.

또 아기에게 자신의 사랑을 말로써 적극 전달할 수 없는 이 젊은 엄마는 얼마나 답답할까.

 

 

그러나 수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할 수 없기에 오히려 눈빛과 몸짓에 절실한 마음이 더 깊이깊이 담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기도 점점 크면서 엄마의 뜻을 알 수 있겠지.

그나저나 외국어, 신조어 등은 도대체 수화로 어떻게 표현할까.

또 점자책은 어떤 체계로 이루어져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 온전한 신체를 가진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정말 행복한 인간이로구나.

 

이슬람사원을 찾고 나서 일단 나무 아래 벤치에서 좀 쉬웠다가 찍기에 나섰다.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오니 햇살이 정수리에 들이부어졌다.

길 중간중간에 있는 지도판을 보고서도 약간 헷갈려서 헛걸음 좀 쳤다가 '삘'을 받아 소방서 옆길로 들어서니 곧 해답을 찾았다.

골목길에 있는 곳은 찾기가 애매해 답사 초보시절에는 정말 온 동네를 다 휘젓고 다니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 오래 헤매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원숙미?

 

가는길에 무슬림마트, 서점, 옷가게, 식료품점을 지났다. 평일이라 그런지 골목이 한산하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이슬람사원의 독특한 정문. 그런데 앞에 너저분한 전기줄들이 늘어져 있어 약간 성소聖所의 위엄을 흐트러 트리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파란 문양 디자인이 쿨한 느낌을 주었다.

하기야 성과 속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일 테니 이런 모습이 크게 볼썽사나울 것도 없다.

정문에서 쑥 들어간 가운데 흰 벽이 가로막고 그 양 옆으로는 각각 계단과 포장길로 나뉘어 있어 비밀스런 느낌이 들었다.

벽에는 아랍어로 길게 쓰여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위엄어린 말씀이겠지.

'알라(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계단으로 올라서니 이슬람사원의 좌측면 모습이 보였다.

하얀 벽면이 파란하늘 아래 눈부시게(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빛나고 있다. 오, 지중해풍 느낌인데?

땡볕바닥에 카펫들을 말리고 있었는데 똑바로 펴서 널어놓지 않고 그냥 대충 팽개쳐 놓은 듯.

그런데 이렇게 놔야 햇볕과 바람이 뜬 사이로 잘 들어 살균소독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주부 9단 마이 마더의 지혜다.

뭐든지 반듯반듯한 게 다는 아닌 것이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로 세워진 이곳은 1976년에 건립되고 1991년에 증축한 한국 최초의 이슬람사원으로 정식명칭은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이다.

한국정부에서는 부지를 내어주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국가들이 건립 및 증축 비용 전액을 내어 세운 뜻깊은 재한 이슬람교 총본산이다.

 

마침내 마주한 사원의 정면. 터키나 이란의 장엄하고 화려한 모스크들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지만 이곳이 한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그리고 한국정부와 이슬람 국가들의 합작으로 지어진 이슬람사원이라고 생각하면 꽤 뜻깊다.

중동으로 많은 근로자들이 파견되던 박통 시절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듯도 하다.

중동에서의 건설사업을 따내기 위해서는 현지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주소는 용산구 한남2동이지만 흔히 이태원 사원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곳.

이 사원은 단순히 이슬람사원이 아니라 가장 공신력있는 이슬람문화연구소이자 한국 내 무슬림들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쉼터이다.

김선일 사건 때 폭파 위협을 받기도 했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중동, 아랍, 이슬람은 같은 성질로 파악되기 쉽지만 틀렸다.

중동이란 영토욕에 눈이 먼 구미열강들이 임의로 붙여놓은 지역구분으로 사실 동양이란 구분만큼이나 오리엔탈리즘적인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아랍이나 서남아시아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아직까지도 국경, 민족, 종교 문제로 내전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슬람이 과격한 종교여서가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들이 남긴 비극적 유산 탓이다.

 

 

 

사원 기둥 사이로 보는 오늘의 날씨

 

풍부다채로운 문화와 인종만큼이나 아프리카, 아시아는 많은 자원도 가진 나라들이었다.

탐험가라는 자들은 말이 좋지 사실 새로운 땅(자기네들 입장에서)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대박을 터트리려는 환상을 품은 한탕주의자들에 불과했다.

이들의 '발견'을 토대로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마귀 같은 탐욕을 부려 잘 살아가고 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이 멋대로 쪼개지고 인적, 물적 자원이 마구잡이로 약탈당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지고 분쟁이란 지뢰가 묻어졌다.

 

현재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게 참담한 고통을 당하는 까닭도 그 배후에는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묵인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조지 부시라는 무지막지한 자의 무지막지한 비리행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다큐멘터리 같은 어느 영화를 통해서도 전세계에 폭로된 바 있다.

 

아랍 국가들의 이런 비통한 역사적 사정을 모르고 무작정 이들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본다면 우리는 한국인도 아니다.

일제가 조선을 잔악하게 유린한 것도 제국주의의 단꿈에 빠져 있던 구미열강들의 아주 좋은 시범사례 덕택이다.

우리가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갈 때 죽음을 무릅쓴 고종황제와 칙사들의 애원을 외면하고 일제의 손을 들어준 이들이 누구인가.

그걸 생각할 때 우리는 아랍 국가들에게 동질감을 느껴야 한다. 미국 눈치를 보느라고 싸잡아서 아랍 국가들을 멸시하고 경계해서는 안된다. 그러다가 정말 큰 코 다칠 수 있다.

 

 

 

 

성상이 없이 오직 특이한 제단만 있는 예배실(남성만 출입 가능)과 그 내부의 벽 장식 타일. 나는 이런 파르스름한 문양이 정말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아랍 국가들만 이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세계 16억명 이상의 신도를 가진 이슬람교는 아랍권에서는 18%, 비아랍권에서는 82%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이슬람은?이라는 책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가까운, 발리섬으로 유명한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국민의 약 90%인 2억명 이상이 이슬람 신도라고 한다.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을 통해 보듯이 우리는 아랍권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영혼까지 무슬림인 아랍권 국가에 선교하러 간 것도 참 밉살스런 행태지만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가 탈레반이 설치는 곳인 것을 모르고 갔다고 하면 귀신이 방귀를 뀌겠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갔으면서, 그리고 한국정부의 위신을 말할 수 없이 추락시켰으면서 지금와서 또 무슨 몰상식한 짓들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국내에 이슬람세계 전문가와 아랍어에 능통한 인재들이 극히 드물어 여러모로 큰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미국만 알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랍 국가들과의 교류는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이슬람문명은 유럽문명이 암흑의 중세에 갇혀 있을 때 찬란한 과학기술과 기록문화를 꽃피워 르네상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중국과 조선의 천문학(역법, 관측기구), 의학의 발달에도 막대한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고려 때는 황도 개경에 이슬람사원이 있었고 조선 초에만 해도 세종이 공식석상에서 사신 자격으로 참여한 이슬람 성직자가 꾸란(코란)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지금은 원유의 70% 이상을 아랍 국가들에서 들여오는데다 아직도 아랍 국가들에 따낼 가치가 큰 많은 사업권이 있다고 한다.

한국과 아랍 국가들간의 우호친선 관계는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함을 통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말로만 듣던 꾸란을 직접 보는 귀한 기회.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니 눈이 핑~돌았다.

우리는 한국인임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

경전의 표지도 역시 이슬람스럽게 화려하다.

 

 현란 그 자체

 

이 자리에는 한국이슬람을 이끄는 정신적인 지도자 이맘(천주교의 대주교급?)이 앉을 것 같다.

 

 

원리가 정말 궁금한 이 제단. 반드시 메카 방향이라고 한다.

 

장식문양타일만으로도 이렇게 화려하고도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곳도 소박하지만 쿠폴라(돔)이 있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엄숙하고 성스런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출처 보았노라 느꼈노라 썼노라|게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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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광호 목사


Ⅰ. 시작하는 말

최근 몇 년전부터 이슬람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조선시대 초기까지 우리 민족과는 특수한 관계 속에 있었으나 역사 가운데서 그 종적을 감추게 됨으로써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져 있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 초엽부터 이슬람이 한반도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6.25전쟁과 1970년대 한국기업의 중동진출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으며, 1990년대 이후부터 이어진 걸프전쟁, 미국의 9.11사태,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현재까지 예민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 등을 통해 이슬람은 우리의 매우 가까운 이웃이 되어 있다.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세계 각국과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는 나름의 국익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서로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복음을 소유한 성도가 이슬람을 대하는 시각이나 자세는 일반 국가나 사회단체들과는 달라야 한다. 성도들은 진리와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좋은 이웃으로서 복음을 통한 진정한 사랑의 실천자가 되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을 잘 이행해 가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만 한다. 이슬람 교도들은 무엇을 믿고 있으며 어떤 인생관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이슬람에 관련된 몇가지 중요한 사항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Ⅱ.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기독교

이슬람의 창시자가 무함마드라는 사실은 이슬람에 대해 웬만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과연 애초부터 이슬람을 창시할 마음을 먹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주후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걸쳐 아라비아 반도에 살며 활동했던 무함마드는 원래 자기 종족들이 믿던 다신신앙(多神信仰)의 토속종교를 믿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성장해 가면서 점차 유일신교인 기독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급기야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를 크게 구분하지 않고 그 두 종교를 합해 넓은 의미에서 기독교라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아랍 토속종교의 다신사상 보다는 기독교적 유일신 사상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무함마드가 이해하고 있던 기독교란 오늘 우리가 믿는 참 기독교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종교였다. 당시에는 성경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구전적(口傳的)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로마제국의 기독교와 아라비아 반도에 흩어져 있던 토속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무함마드는 25세 때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의 연상의 부인인 하디자(Khdijah)의 종교적 배경은 아라비아의 토속 기독교였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기독교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무함마드가 610년 소위 계시라는 독특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로 개종을 했을 때 그는 신실한 종교인으로 살려고 했으며 결코 처음부터 이슬람을 창시할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다. 나중 무함마드의 토속 기독교가 이슬람으로 발전하게 되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무함마드가 마음먹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이슬람'이라는 용어는 무함마드가 개종한 이후 10여 년이 훨씬 지나 622년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해 간 후에 생겨난 말이다. 그것은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이주한 이후 기독교 및 유대교와 차별화를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는 자기 종족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해 가면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자기와 동일한 신앙을 가졌으므로 어떤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유대교의 입장에서 볼때는 무함마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있었고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때는 무함마드가 유대교를 인정하며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고 있었다. 따라서 무함마드의 종교는 일반 기독교 및 유대교와는 다른 아라비아의 토착형식의 기독교였던 것이다. 그것이 점차 이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며 독립된 종교로 발전해 가게 된다.

 

 

 

Ⅲ.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묵은 감정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이슬람의 초기 단계에 이미 생겨나게 된다. 무함마드의 초기 신앙시대라 할 수 있는 메카시대에는 기독교나 유대교와 별다른 갈등이 없었으며 자기 민족의 토속종교인들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메디나로 이주한지 오래지 않아 기독교 및 유대교와 결별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상당한 군사력을 얻게 된 무함마드는 후일 메디나에 거주하던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되는데 그때는 무함마드가 순수 종교인이 아니라 정치화된 종교지도자였다.

무함마드의 이슬람 세력은 짧은 기간에 막강한 힘을 소유하게 되어 무함마드 생존시에 이미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장악하게 된다. 그 이후 이슬람 세력은 점차 로마제국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가게 되는데 이슬람 정복 초기단계의 북 아프리카 지역에 살고 있던 많은 주민들은 처음 이슬람을 '아랍인들의 기독교'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억압받던 로마 제국의 기독교로부터 이탈해 쉽게 아랍인들의 종교에 귀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로마제국의 기독교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아랍인들을 보잘 것 없는 종족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무력 앞에서 무릎을 꿇는 패배를 맛보며 자존심을 엄청나게 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11세기 막바지에 시작되었던 십자군 운동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십자군 운동은 이슬람에 대한 로마제국 기독교인들의 자존심 회복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십자군 운동에서 마저 최종적으로 패배했을 때 그들은 신의 존재마저도 의심하게 되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는 더욱 깊은 적대감이 싹트게 된 것이다. 나중 18세기를 눈 앞에 두고 나폴레옹의 군대가 오스만 제국에 군사적 위력을 보이게 되자 이슬람은 그것을 서구 기독교 세력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세계 제1차 대전을 통해 오스만 제국이 패망하게 되고 서구의 열강들이 득세하여 팔레스틴을 다시 장악했을 때, 이슬람의 지성인들은 십자군 운동의 연장선에서 이슬람이 기독교 세력에 패배 당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역사적 정황에서 최근 10여년 사이에 있었던 아랍 이슬람과 서구 국가들의 갈등에서 그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Ⅳ. 이슬람의 오해와 우리의 대응

이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기독교는 일단 견제의 대상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란 곧 서구인들이며 그것은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축적된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서구 기독교를 타락의 본산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서구 기독교인들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복과 약탈을 일삼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가공할만한 무기들을 개발하며 윤리적으로 극도로 타락한 인간들이다. 서구 기독교인들은 어른도 몰라보며 남녀의 관계도 지극히 문란하다.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영화나 잡지 등을 통해서 얻는 서구인들에 대한 정보는 성적으로 문란하며 싸움을 즐기며 많은 무기들을 만들어 침략을 일삼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인터넷의 보급은 그들로 하여금 서구의 비윤리적인 타락성을 더욱 가까이 보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 권역에서 벌어지는 실제적인 전쟁과 전투에서 비쳐지는 서구인들의 모습은 잔인무도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이런 형편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가장 미리 보여주어야 할 자세는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나쁜 인간들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외적 윤리를 중시하는 그들은 서구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을 만날 때 웬만하면 그들의 그러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의 편견과 오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말과 행동을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1990년대에 들어와 이슬람 선교단체들에서 역라마단 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달을 의미하는데 그 달을 특별히 성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모든 이슬람교도들은 그 한달 동안 금식하며 특별기도를 한다. 그들은 낮에는 음식을 금하며 밤에만 먹는다. 역라마단 운동이란 이슬람 신도들이 금식하는 그 기간 동안 기독교에서 그들을 위해 금식기도 하는 것을 일컫는다. 좀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일종의 종교적 맞불작전이다. 그들이 잘못된 영으로 금식하며 힘써 기도할 때, 기독교인들은 잘못된 신앙을 가진 그들을 위해 참 하나님께 더욱 힘써 기도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런 운동을 하는 이들의 중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필자는 조직적인 그런 운동에 대해 반대한다. 오늘날처럼 모든 정보가 개방되어 있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들을 금방 알 수 있는 시대에 역라마단 운동 같은 조직적인 움직임은 이슬람에서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결코 기독교의 그런 운동에 대해 고맙게 생각지 않을 것이며 도리어 그것을 심각한 종교적 도전행위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역사 가운데서 기독교와 갈등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지금도 서구와 이슬람 세계가 갈등 구조를 가지고 있는 형편인데, 역라마단 운동은 의도와는 달리 도리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Ⅴ. 맺음말

기독교와 이슬람은 역사 가운데서 특별한 갈등과 경쟁관계를 형성해 왔지만 우리는 그들을 자연스런 이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들은 이미 서구 기독교에 대해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으며, 서구인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우리이지만, 그들이 우리가 기독교인인 것을 알게되면 우리를 서구인들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그런 오해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하루 이틀에 될 문제가 아니며 오랜 세월을 두고 인내하며 노력해야할 과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일은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설령 어떤 사람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잘못하게 되면 그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슬람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한 두 사람의 일이 아니라 전체 교회의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그들에 대해 지혜로운 자세를 가지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할때 그들이 우리의 복음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미 이슬람 지역에 복음을 들고 나가 있는 형제 자매들이 상당수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형제들이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그 지역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나아가 굳이 선교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아도 많은 성도들이 이슬람 지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슬람 교도들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아는 성도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신중해질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2003.12.6, 기독교개혁신보)

출처 아름다운 성 |제석천왕

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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