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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근본주의란 무엇인가

 

이슬람근본주의는 이슬람 교리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공동체와 국가의 기반이 돼야 한다며 모든 분야의 이슬람화를 추구한다. 서구의 세속·물질주의를 강하게 거부하고 서구의 제도와 사상을 빌려오지 않아도 이슬람 교리에 따라 이슬람 공동체 건설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서구에서 이슬람근본주의라고 이름붙였다.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기대는 급진파가 생기기도 했지만 이슬람근본주의도 기본적으로 평화와 형제애를 강조하는 교리처럼 무모한 폭력을 배격한다. 1941`자마아티 이슬라미'를 창설해 인도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에 강한 영향을 끼친 인도의 알 마우두디가 정리한 `지하드'(성전)라는 개념도 이교도에 대한 무력투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지하드를 이슬람인의 의무인 신앙행위로 규정하며, 지하드는 연설·교육·자금 제공 등 여러 단계를 거치고 무력투쟁을 마지막 방법으로 말하고 있다.

 

지하드를 무력투쟁으로 보는 서구의 편견은 상당 부분 근본주의 조직에서 갈라져 나온 알-지하드 등 급진적 무장세력의 테러공격 등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이들까지 이슬람근본주의로 뭉뚱그려 부르기 때문에 둘 사이의 구분이 사라져 이슬람근본주의라면 테러 등을 떠올리게 됐다.

 

무장세력들은 서구적인 삶과 문화에 등을 돌리고 조직원을 점조직화해 비밀장소에서 훈련시킨다. 이들한테는 이슬람에 대립하는 서구와 이스라엘 등이 존재하는 곳이 전쟁터가 된다. 이슬람법(샤리아)에 기초하지 않는 이슬람 정부도 타도해야 한다. 미국 세계무역센터 동시다발 테러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44)은 자신들의 공격이 한쪽에서는 `테러'가 되고 다른쪽에서는 `지하드'가 된다고 정당화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남쪽에서 154정도 떨어진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자와르 킬리 알-바드르' 캠프는 최대의 수니파 이슬람교도 훈련시설로 알려져 있다. 무장요원 훈련시설은 물론 군수품 기지 등을 갖추고 있어 `테러대학'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옛소련의 공격이나 1998년 미국의 미사일 공격도 버텨냈다.

 

이슬람 무장단체의 역사

 

지하드는 원래 하느님(알라)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싸운다는 뜻이다. 종교적인 의미가 짙은 지하드를 현재와 같은 무장투쟁 세력으로 바꾼 것은 20세기 초 반영(反英)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다.

 

 

1928년 이집트의 하산 알반나가 설립한 무슬림형제단은 아랍 전역으로 퍼져나가 아랍 국가들의 정치와 종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중조직으로 발전,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알반나는 코란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이슬람으로의 복귀를 주장, 이슬람 부흥운동(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81년 친미(親美) 노선을 표방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암살한 것도 이들이다.

 

그러나 이슬람 교리 자체가 유혈투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자살테러 같은 극단적인 무장투쟁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뒤 아랍국들은 두 차례 중동전쟁을 일으키지만 패전한다. 673차 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싸움을 전 아랍권으로 광역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여파로 많은 이슬람 운동세력들이 강경노선으로 전환됐다. 73년의 4차 중동전쟁에 이은 중동평화협상을 둘러싼 이슬람 내 노선 갈등은 하마스 같은 무장단체들의 활동을 부추겼다.

 

현재 이슬람 무장조직으로는 헤즈볼라나 하마스 외에도 현재 이집트의 자마아트 이슬라미야’, 알제리 무장무슬림그룹(GIA) 등이 있다. 이스라엘에는 유대 테러조직 카흐와 카하네차이가 있는데, 극우 시온주의자 메이르 카흐네가 창설한 이 조직은 94년 헤브론에서 팔레스타인인 29명을 살해했으며 95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를 암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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