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에 나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질문: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중요한가? 교회에 나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답변: 성경은 우리가 다른 믿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하여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사도행전 2:42). 우리는 그와 같은 헌신의 예를,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을 따라야 합니다. 그때는, 그들에게 지정된 교회 건물은 없었지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사도행전 2:46). 모임을 가질 때마다, 믿는 자들은 다른 믿는 자들과 교제하는 것과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즐겼습니다.

 

교회 출석은 단지 좋은 제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히브리서 10:25는 우리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초대 교회에서도, 일부는 다른 믿는 자들과 만나지 않는 나쁜 습관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이 행해야 할 방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 출석을 위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교회 출석에 더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요한일서 4:12), 서로 격려할 수 있는(히브리서 3:1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는(히브리서 10:24), 서로에게 봉사할 수 있는(갈라디아서 5:13), 서로 권할 수 있는(로마서 15:14), 서로 존경할 수 있는(로마서 12:10), 그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길 수 있는(에베소서 4:32) 장소입니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의 몸의 한 구성원이 됩니다(고린도전서 12:27). 교회의 몸이 제대로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신체 부위들모두가 출석하여 작동되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12:14-20). 그냥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사역에 어떤 유형으로라도 참여해야 합니다(에베소서 4:11-13). 믿는 자는 그가 가진 은사의 발산 없이는 온전한 영적 성숙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 모두는 다른 믿는 자들로부터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합니다(고린도전서 12:21-26).

 

이러한 이유와 그 밖의 많은 이유로, 교회 출석, 참여, 그리고 교제는 믿는 자의 삶에 있어 규칙적인 측면이 되어야 합니다. 매주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이 믿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는 열망이 있어야 하며 다른 믿는 자들과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모퉁잇돌이시고(베드로전서 2:6), 우리도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베드로전서 2:5). 하나님의 영적인 집의 건축 자재로서, 우리는 자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연결된 믿는 자들(the Church)이 교회(church)에 갈 때마다 그 연결이 선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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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당은  한 데나리온

 

포도원 주인의 횡포?

 

마태복음 20장에서 하루 일당 한 데나리온에 일꾼을 고용한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은 아침 9시뿐만 이 아니라 정오, 오후 3, 오후 5시에도 시장을 돌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데요. 저녁 6시가 되고 일당 정산을 하는 과정에서 주인과 일꾼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9)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뜻 이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하였다.

 

이 이야기는 연식이 늘어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유치부 시절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편견 없이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 시달리며 한 달 한 달 버티다보면 언젠가부터 아 침 9시부터 일한 사람의 불평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각자의 일한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모든 일꾼에게 동일한 일당을 준 포도원 주인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는 갑의 횡포를 부리는 악덕 고용주인 걸까요? 이 비유에 담긴 뜻을 풀어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 저는 과학의 관점에서 이 비유를 드신 예수님의 뜻을 헤아 려보려 노력해보겠습니다.

 

아이폰을 압도하는 놀라운 발견, 미적분학의 기본정리

 

고등학교 수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를 이해하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좋은 조건 하에서 다음 식이 성립합니다. 1

 

1 고등학생 시절에 보았던 식과 약간 다를 것입니다. 고등학교 미적분학에서 배웠던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를 복소함수 버전으 로 아주 약간 일반화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있을 이공계 독자를 위해 조금 더 정확하게 서술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f는 복소 함수, Ff의 역도함수, γ는 복소평면 위 두 점 a, b를 잇는 path.

 

갑자기 수식을 만나서 많이 놀랐죠? 괜찮아요?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갑작스러운 수식에 불편한 마음 을 가지시겠지만, 겁 먹을 필요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계산 따윈 하나도 하지 않을테니까요. 해치지 않겠 습니다. 저는 지금 위 식이 아이폰 따위는 가뿐히 압도해버릴만큼 놀랍고 신기한 발견임을 설명해 드리려해요. 그리 고 그 놀라운 원리는 오늘 인용한 자비로운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우선 위 식의 왼쪽은 대단히 어려운 계산입니다. 수학에서 (integral)은 다 더하라는 명령어인데요. 다시 말해 식의 왼쪽은 시작점 a부터 도착점 b까지 어떤 길 γ을 걸어가면서 얻는 함수 f의 값을 다 합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값은 함수 f뿐만 아니라 경로 γ에도 영향을 받음이 분명합니다.

 

반면 식의 오른쪽 F(b) F(a)은 너무 쉬운 계산인데요. 그냥 단순히 두 출발점(a)과 도착점(b)을 함수 F에 입력하고 출력된 두 값을 빼면 되니까요. 한 가지 유심히 봐야 할 점은 오른쪽 계산을 하는데에는 경로 γ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 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식의 왼쪽과 오른쪽은 등호 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왼쪽을 보면

 

a 에서 b까지 가는 무수히 많은 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가

 

대 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 지만 어떤 길을 선택해도

 

a 에서 출발하여 b에 도착했다면

 

최 종적인 출력값은 변하지 않는다고 오른쪽이 보장해줍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언뜻 생각하기에 이 결과는 대단히 반직관적이며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해요. 하지만 조금만 유심히 자연과 사회를 관찰해보면 여러 현상들이 이러한 원리에 의해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볼게요.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하철을 탈 때를 생각해봅시다. ‘국회의사당역에서 승차 하여 막장역에서 하차했다면 중간에 내가 어떤 경로를 택해 몇 번 환승을 하건 요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우 리는 택시를 이용할 때 출발점과 도착점에만 의존하여 요금을 가늠하며, 운전 기사의 미숙함 또는 고의에 의해 이동 거리에 비례하여 추가 요금이 붙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설악산 입구에서 설악산 정상까지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등산로를 택하여 올라가건 정상과 입구의 고도(高度)차는 1,708 m로 변하지 않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전하를 띤 물체가 전기장 속을 움직일 때 하는 일의 총량은 도착

 

점과 출발점의 전기적 위치 에너지의 차와 같습니다. 이 전위차를 우리는 흔히 전압이라 부릅니다. . 110 볼트, 220 볼트 하는 그 전압이요.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 구원

 

이제 이과생스러운 이야기는 그만 접고, 다시 마태복음 20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봅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포도원 주인이 임금을 정산할 때 누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누가 꾀를 부렸는지, 얼마나 많은 소출을 내었는지를 세밀 하게 따지는 것이 합당해보입니다. 마치 식의 왼쪽에서 경로를 신경쓰며 계산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실제 포도원 주인은 모든 일꾼이 포도원에서 일을 하였다는 사실에만 주목하였습니다. 포도원에 입장했고, 끝 까지 자리를 지켰다면 누구나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식의 오른쪽에서 출발점과 도착점에만 주목하여 계산하는 것처럼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하루 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와 가족을 부양할 임금을 주는 것이 포도원 주인의 자비로운 마음이었을테고,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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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심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1;4)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전에

 

 

 

 

자기가 택함 받았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봄" 으로써만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즉시 주님께로 가서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6;37)

 

 

 

 

말씀을 읽었다고 전하십시오. 성경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 1;15) 라고

 

 

 

 

말씀하셨다고 청하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만큼이나 확실하세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나약한 그대여,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모든 미심쩍은 질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그리스도꼐 직접 가서 그의 상처 속으로 숨으십시오.

 

 

 

 

그럼ㄴ 자신이 택함 받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을 얻을 것입니다.

 

 

 

 

마침내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 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선택이 결정되던 영원한 자리에 계셨기에

 

 

 

 

당신이 택함 받았는지에 대해 분명히 말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주꼐서 "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31;3)

 

 

 

 

고 대답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당신이 아니라 주께서 먼저 당신을 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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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구원에 이르는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

찬송 : ‘울어도 못하네’ 544(343)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에베소서 28

 

말씀 : 문화인류학자 최길성은 1982년 말쯤에 발표한 민중신앙의 토속성과 외래성이란 논문에서 갑작스러운 기독교의 부흥은 무속적 신자들이 기독교를 쉽게 수용하였기 때문이며 이들은 언젠가 쉽게 기독교를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은 그의 이러한 예견이 틀렸다고 반론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유대사회에서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던 사두개인들은 선을 베풀면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준수를, 학자그룹인 서기관들은 율법 지식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새로운 구원관을 제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며 이 구원은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2:8)이라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구원이란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과 화해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마태복음은 천국,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감’, 요한복음은 영생’, 사도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의롭다 함을 받음 곧,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구원의 원천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고 증거하였습니다.

 

구원의 조건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지적 동의인간의 신념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의 죄를 사하였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상징은 그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말씀, 생명, 죽으심과 부활의 대명사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복음에 대한 동의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1:12)를 주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회개는 죄를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믿음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실지로 죄를 떠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회개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회개와 믿음은 동시에 일어나는 영적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갑성 목사(신길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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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삼위일체의 의미와 축복.

 

성경은 하나님은 유일신 하나님이신데,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 보혜사 성령으로 3위격을(PERSONA)

 

갖추신 하나님이신 것을 표명합니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신앙고백적 교리입니다.

 

라틴어로'TRINITAS'라는 신학 용어를

 

사용한사람이 터툴리안(A.D. 150-220)입니다.

 

삼위일체의 표현은

 

성경에 여러군데 나타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표현 말씀.

 

1.1:1-3,26)-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 하셨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 호칭 했는데

 

엘로힘은 복수형 입니다.

 

 

 

2.하나님은 자신을 복수형으로 말씀 하셨습니다.(11:7)

 

바벨탑을 쌓은자들에게 우리가 내려가서...혼잡케

 

하자"고 말씀 하셨습니다.

 

3.하나님은 이사야서에서(6:8)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말씀하셨습니다

 

.

 

신약 성경에 의한 증거.

 

 

1.예수님 세례시에.(3:16-17)성자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2.예수님께서 증거하심.(14:26,15:26)

 

3.사도들의 축도에 성부, 성자, 성령 이름으로 축도함(고후13:13)

 

4.예수님의 분부에 나타남(28:19)

 

5.4:4-6절에 말씀하심.

 

6.4:3-6에 말씀하심.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 말씀들

 

 

1.아기가(아들) 하나님으로 표현됨.(9:6-7)

 

2.성령이 하나님으로 표현 됨(5:3-4)

 

3.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 부터온다.(14:16, 26)

 

4.성령은 예수님 승천10일 후에 강림 하심.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시며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1:1-4)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 이십니다

 

도마가 예수님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요한복음20:28)

 

성령님은 보혜사로

 

예수님 승천 후에 오신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나 역할을 삼위일체로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 인간의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삼위일체 교리는 구원론.

 

신론에 있어서 중요한 기독교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유일 하신 한분이시나 그 활동과

 

역할은 삼위이시며 일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예수님은 아들 구주 그리스도,

 

성령님은 보혜사이시며,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신 이십니다.

 

성도 여러분들 위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호와

 

구원과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 합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투잡(알바/부업)으로 월급 만큰 수익이 됩니다.

아래 접속하셔서 상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재택부업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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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특강 / 구원의 10단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원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제 '구원을 받는다'라는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라는 말씀과 같이,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를 자세히 모르고서는 확실하게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다음과 같은 10단계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1. 작정. 2. 예정. 3. 부르심. 4. 회개. 5. 영접. 6. 중생. 7. 칭의. 8. 성화. 9. 영화. 10. 구원.

 

1. 작정.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奇異)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 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139:14-18)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는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시고, 바다의 모래보다도 많은 수의 이미 정해진 세상의 일들을 하나님의 작정 섭리와 뜻대로 움직이며 주관하시다가, 결국 최종 심판을 하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심지어 우리의 인생의 사소한 일들이라도 우리의 형질이 이루기 전에 미리 계획되고 작정된 대로 주의

생명 책에 기록되어져 있고, 하나님께서 그대로 성취하심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예정.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

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1:4-7)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입어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3. 부르심.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 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라는 기록대로, 하나님께서 오직 은혜로 영원한 때 전부터 예정된 성도들을 자녀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을 부르는 주인의 음성을 분명히 깨닫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하며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10:3)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

르느니라. 10:26-27) 혹자는 아무나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

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여 함과 같으니라'(10:13-15)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하는 자를 보내어 말씀을 듣게하면, 믿음이 생겨서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므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섭리인 것입니다.

 

4. 회개.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후7:10)라는 말씀과 같이, 성도가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근심하게 하심으로 회개케 하시는 것입니다.

 

5. 영접.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12-13)라는 말씀에서 보면,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도 믿는 집안이라서 혹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것은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2:11)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라는 것은 이 시공 세계가

아닌 영원한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성도들은 비록 육체로는 이 세상 가운데 살고 있어도, 그 속의 내재하는 영은 영원한 세계의 존재로서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6. 중생.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중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그 영이 '죽은 영'으로 태어납니다. 이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처음 창조함을 입었을 때에는 '산 영'이었지만,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그 영이 죽어 버렸던 것입니다.(첫째 사망) 그러므로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여야만이 그 죽은 영이 다시 중생 되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7. 칭의.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6)라는 기록대로, 죄인된 성도들을 의롭다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며, 아무나 누릴 수가 있는것도 아닌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8-9)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살후3:2)

 

8. 성화. : 대체로 1에서 7단계까지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은 인정하여도, 이 성화 과정만큼은 성도 스스로가 애쓰고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과정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6:17-18)라는 말씀과 같이, 성도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예정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보증으로 맹세까지 하심으로 확실함을 증거 하시고, 그 증거로써 보혜사 진리의 성령을 성도들의 마음속에 보내어 진리를 생각나고 깨닫게 하여 구원을 이루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6)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가 있음으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전1:8)'라는 말씀과 같이, 주께서 성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성화시켜주시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영혼의 생명의 양식으로 주셔서 그 영혼이 무럭무럭 자라 가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4:13)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벧전3:18)

9. 영화. :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9)라는 기록대로, 성도들이 이 세상 삶을 마치고 그 육체가 흙으로 돌아간 후, 마지막 심판의 나팔 소리에 성도들은 생명의 부활로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부활하게 되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이 중생 되지 못하고 죽은 영으로 있는 사람들도 그 육체가 죽은 후에 결국 부활하게 되지만, 그들은 최후의 심판을 거쳐 둘째 사망 곧 영원한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0. 구원. :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결국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예약이 되어

있어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믿음이라는 것을 한 순간의 개념으로 이해하여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성도들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일평생에 걸친 인생 여정동안, 하나님의 예정섭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중생하여 그 영혼이 성경의 진리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심으로 점차 성숙하여지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눙하신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한 성도는 복음을 듣게 하여 믿도록 하여 주시고, 불택한 사람들은 그 영혼의 귀를 막으셔서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사야6:9-10)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하시느니라. 9: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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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음의 의미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는 죽은 뒤의 삶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지 않는다. 죽음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 아닌가?”

죽음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죽는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인간은 심리적으로 평생 동안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중세철학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신학자 어거스틴에게도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뒤에 착잡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라고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통해 이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11:4), 끝이 아닌 잠시 멈추는 것이며(11:11),

부활의 시작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이며 또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음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구원입니다.

성경을 통해 죽음의 참된 의미와 해결방법을 찾으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복음과 구원의 진리를 더욱 확고히 믿게 하소서!

죽음 이후 천국에 갈 확신이 분명히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큐티/김장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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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시대에 가장 논쟁이 되었던 교리가 바로 이신칭의의 교리이다. 이 참된 교리를 통하여 참 신자는 자유와 위안을 얻었고 로마 카톨릭교회의 속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신칭의는 성경에서 명백히 가르치는 교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가 되었을까?

 

항상 그렇듯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를 살펴보자. 이신칭의의 정확한 뜻은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라 몇 가지를 분명히 해두자.

 

1. 이것은 믿음을 통해서 의인이 된다 혹은 변한다는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교리이다. 죄인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법적인 의미에서 의롭다 선언을 받는 것이지, 그 죄인이 실제로성품이 변화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신칭의를 이신득의라고 하는 것은 혼동을 줄 수 있기때문에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이신득의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2. 이신칭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바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라면 이 교리를 다 받아들여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백한 이단이 될 수밖에 없다. 로마교 역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않는다. 개신교와 로마교의 차이는 이것이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라고 주장하지만, 로마교는 믿음 뿐만이 아니라 행함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예를 보라. 그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을 때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을 때다.

 

3. 이신칭의의 교리는 믿음을 통해서의롭다 칭함을받는다고 주장한다. 이신칭의의 교리는 믿음 때문에의롭다 칭함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믿음을 통해서, 즉 믿음을 수단으로 칭의를 얻는 것이지, 우리의 믿음이 칭의에 대한 근거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칭의를 얻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밖에 있는 의,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요약하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의롭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고, 그구속사역의 의가 믿음만을 통하여 우리의 것이 된다.

 

4. 또 하나의 논쟁은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어떤믿음인가에 관한 것이다. 개혁교회는 오직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항상 구원 혹은생명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다. 따라서 이 믿음은 우리의 행위와 구분이 되기는 하지만, 행위를 일으키지 않는 믿음은 아니다. 야고보서의 가르침 대로, 행위를 일으키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칭의가 믿음과 믿음이 일으키는 행위 둘 다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칭의는 어디까지 구원에 이르는 참 된 믿음, 행위를 일으키는 믿음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5. 칭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로마교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주입(infusion)이 되어 죄인인 우리가 의인으로 변화된다고주장한다. 따라서 로마교에 따르면, 우리가 의로운 이유는 우리가 실제적으로 의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전가(imputation) 시켜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한다.

 

6. 칭의와 성화.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로마교는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칭의는 우리 안에 믿음으로 시작되어서, 소망에 의해서 굳건하게 되고, 사랑에의해서 완성되는 어떤 것이다. 이 의는 우리 안에 있는것이 때문에, 잃어 버릴 수도 있는 어떤 것이다. 이것을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로마교는 특별히 고해성사 교리를 발전시켰다.

 

6. 1 칭의 교리와 관련하여 의미있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의인인가 아니면 죄인인가? 이런 질문은 신자로 하여금 상당히 곤란하게 만든다.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예수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항상,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주옵시고라고 기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는 의인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죄인이다. 이것을 보통 simul iustus et peccartor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의롭다 선언을 받는다. 이 의는 완전한 의다. 하지만, 우리의 성품은 여전히 죄로 인해 오염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성 범죄자가 정상 참작과 돌 보아야 할 자녀 때문에 형 집행이 정지되었다고 하자. 그는 신분 상으로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하지만 성품상 그는 완전한 의인이 된 것은 아니다. 전자가 칭의에해당한다면, 후자는 성화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7. 칭의의 교리가 주는 유익.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전가 됨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 칭의는 과정이 아니라 상태이다. 성품의 변화가아니라 신분의 변화이다. 칭의의 교리를 잘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확실하게 느낀다. 우리의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흔들림이 없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상태와 성품을 바라 볼 때,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없다. 하지만, 우리밖에 계신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보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임을 확신하게 된다.

 

8. 선행과 칭의: 이신칭의가 선행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선행은 칭의와 관련해서만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이다. 성경은 신자들에게 선행에 힘쓰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칭의가 중요한 교리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칭의의 교리를 제대로 안 신자는 하나님께 감사의 삶을 살 수 밖에없을 것이다. 칭의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라면, 감사의 삶도 그에 못지 않게 구원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하는 믿음, 즉 행함을 일으키는 믿음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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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길□


 1) 예수님이시다.

  요한 복음 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십니다. 곧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a)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오직 예수를 구원자인 것을 믿기만 하면 해결됩니다.

 


  b) 예수는 인도자가 되십니다.

 벧전 3: 18절 「 그리스도께서 한번 십자가에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 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니라」 오직 예수님 만이  죄악의 길에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c) 예수는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 요1:29에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대속물 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죄 문제를 다 지고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d) 예수이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요 19: 30 절에 「다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종이 주인의 시키는 일을 다 이루었다. 작품의 완성, 부채의 완불, 흠없는 회생 제물과 같이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 이루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문제를 다 해결해 놓으셨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고전 15:2-3,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2) 예수님이 다 해결해 놓으신 사실을 믿음으로 해결됩니다.

  어느 사람이 빚을 5천만 원을 지었으나, 대신 탕감해 주었다면, 믿지 못하고 미안해하고 피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믿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a) 영접하면 됩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마치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신앙 고백을 하면 해결됩니다.(마 16:16)

 


  b) 회개하면 됩니다.

  지금 까지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믿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죄입니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단의 말을 듣은 것으로  법죄했던 그때에  나도 범죄 하여 죄인으로 심판을 받아서 죽어야 하는 나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예수가 나의 구주라는 것을 믿지 못한 죄를 회개하면 문제는 해결됩니다.(행 2:37-38)

 


  C) 이제 시인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잔치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롬 10: 10절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루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지금 이 시간 잠시 머리 숙이고 하나님 앞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지 않겠습니까? 진심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시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CF)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이 시간 000의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봐 되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나셔서 나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지금 용서 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시오. 지금까지 믿지 못한 죄를 자복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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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      


베드로전서 5장 5∼11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한 자는 미련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복된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고 알아가는 축복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철학자 파스칼의 ‘팡세’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자기의 비참함을 모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만을 자아낸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앎으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알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또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깨닫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남으로 구원받고 은혜 나누는 진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교만함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이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드려 축복받는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함으로 나 자신을 인정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비움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잠잠히 바라보는 것, 주신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 곧 겸손이요, 비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입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겸손할 때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가슴 벅찬 감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겸손할 때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겸손으로 인해 축복받은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 겸손케 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축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육체의 가시를 통해 내게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에서 나를 겸손하게 하시고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겸허히 받아들이는 겸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 대항해 사람들을 이끌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얼마든지 대항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처 없이 떠나는 피난길에서 시므이가 저주를 해도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던 다윗은 하나님께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받을 만큼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을 통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오늘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아래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를 때에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시며 겸손의 은혜로 말미암아 축복의 삶을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전정순 목사(대전 주안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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