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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 바로 이해하기

 

아무리 성경박사라 하더라도 기독교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이신칭의 교리가 한국교회의 윤리의식을 저하시켰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론상 그럴듯 해 보이지만 적어도 역사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

 

1. 개인적인 경험에서 판단해 보면 한국교회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다. 사실, 한국교회는 교리 자체에 대해서 무관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정적 칭의(forensic justification), 이중적 전가(imputation), 도구적 원인으로서의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 칭의와 선행의 관계, 능동적 의와 수동적 의의 구분 등.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2. 이신칭의의 교리를 가장 강조했던 시절에 교회는 윤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었던 경우가 많다. 존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등. 따라서 칭의 교리가 신자의 윤리를 오히려 강화시킬 수 있다.참고로 종교개혁은 선행이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거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논란의 핵심은 선행이 어떤 점에서 구원에 필수적이냐는 것이다.)

 

3. 교리의 내용과 교리의 사용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옳은 교리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잘못 사용될 수 있다.어머니 손에 있는 칼은 음식을 만들지만, 살인자의 손에 있는 칼은 사람을 죽인다.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인 예라로 할 수 있다. 칭의 교리를 통해서 자신의 윤리적 나태를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다.

 

4. 칭의 교리가 틀렸다고 치자. 그리고 행위가 구원을 얻는데 믿음과 더불어 어떤 원인이 된다고 천주교식으로 가르쳐 보자. 그렇게 가르치면 신자들의 윤리의식이 올라갈까? 선행은 믿음의 결과이자 감사의 표시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이라고 가르치면 윤리의식이 저하되는가?

 

5. 심지어 이방인들과 같이 믿음이 아니라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면 윤리의식이 더 올라갈까? 문제는 무엇인가? 선행을 하기 위해서는 율법을 통해서 선행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6.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선을 행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가? 믿음을 통해서 온다. 다른 방법이 있는가? 그렇다면 선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 더 나아가 믿음으로 행한 행위가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확신이 어디에서 오는가? 아무리 우리가 지극한 정성으로 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우리의 죄로 오염되어 있을 뿐이다. , 아무리 우리 눈에 선한 행위로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일 뿐이다.

 

7.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는 무엇인가? 놀랍게도 칭의의 은혜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분명히 가르치듯이 우리의 보잘 것 없는 행위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안에서 보시기 때문에 우리는 선행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칭의는 선행을 불필요하게 하기 보다는 그와 정반대로 선행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만든다.

 

8. 한국교회의 윤리의식의 저하는 칭의 교리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칭의교리를 전혀 혹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9. 결론: 열심히 교리를 제대로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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