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예배] 성탄절 예배 기도문 ( Christmas prayer)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하나님

오늘 예배를 통하여 한 없는 감사들입니다


예수탄생을 기념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성탄 예배를,우리의 모든 성도들이

기쁘고 즐거운마음으로 누릴수 있도록 허락하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맡이함과 같이

우리의 심령에 은혜를 내려주셔서

주 앞에 충성된 주의 자녀로 살기를 다짐하며

계획하는 백성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느 형편과 처지에서도 실망과 죄절로인하여

시험에들지 않게하시고, 이 시간도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말씀 안에서 새롭게 살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성령이 충만하심이 우리 심령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나라 이 백성들의 삶 속에서도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예배를 통하여저희들이 믿음의

담대함을 얻게 하시고 주님의 생명이 가슴마다

넘치게 하옵시며,마음이 연약한 자들에게는

강인함을 주시며 상처로 아파 우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어려운 일이나 슬픈일을 당하여

주님의 제단을 떠난 자녀들 있사오니,

저 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옵소서 .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님들 깨끗이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며 슬픔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복음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온 땅에 전파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모든 성도들이 헌신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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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금요철야예배대표 기도문 (December,friday night prayer)

 

금요 예배 대표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커다란 사랑과 은혜 가운데 저희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오늘 금요 철야예배에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다시 불러모아 주시고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은혜에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자리에 나올 때마다 거룩하신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의 우리교회의 모든 주님의 자녀들이 진정과 신령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밤 저희 우리교회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이 금요철야 예배로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영광드리고자 하오니 기쁨으로 받아주시옵고,

특별히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성도님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옵시고

한 자녀도 빠지지 않고 모두 모두 함께 모여 거룩하신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올리는 데 혼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거룩하신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밤 주님의 몸 된 우리교회의 지체들이 거룩하신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전에 나왔지만, 참으로 저희들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고, 추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세상을 사는 동안 저희들의 중심에는 세상적 죄악과 주님의 십자가의 영광을 흐리게 하는 모습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물질적 욕심을 담고 제 주장만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저희 심령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게 붙들어 주셔서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아니하는 모든 세상적인 정욕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저희를 위하여 스스로 피 흘리신 주님의 뜻을 따라, 이제는 저희들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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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첫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December,prayers for sunday worship service)

 

 

죄인을 부르러 오신 아버지여! 저희는 죄인입니다.

나면서부터 저주받은 자요 살아가면서 멸망받을 자들인데, 주님이 택하시고 구속하여 자녀 삼아주신 그 지극하신 사랑과 오늘도 지키고 보살펴 주시는 그 변함없는 사랑에 끝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이시여! 또 다시 저희는 성도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죄인의 모습으로 나아왔습니다. 세상 권세에 짓눌리어 지난 한 주간 동안 저희 영혼에 생긴 상처와 허물을 치료해 주시고 고요함 속에 저희 마음에 둥지를 트시고 들어와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모든 은혜 중에 가장 적은 것조차 받기에 합당치 못한 저희들이 이 시간도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간절히 구하오니 험악한 세상에서 강퍅해진 심령들을 사랑의 빛으로 녹이시며 용서해 주시고 옛부터 지금까지 저희가 주님께 맹세하고 약속한 말들을 낱낱이 기억하게 하셔서 그것들이 입술로만 끝났다면 이제라도 탄식하며 그 약속을 이행하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은총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의 머리털까지 헤아리시며 걸음까지 다 세시는 주님이신데 어찌 저희들이 감히 변명할 말이 있겠습니까?

주님이시여! 불쌍히 보시고 주님의 피와 의로우심으로 전신갑주를 입게 하셔서 살벌한 세상 한 복판에서 죄와 두려움과 부끄러움에서 보호하여 주시고 주님의 평화와 사랑으로 분깃을 삼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항상 바르고 옳고 순수한 생활 속에서 주님의 신성한 깨우침으로 무엇을 위해 살 바를 알려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두가 믿음으로 사랑하고 사랑으로 용서하며 남을 위해 남몰래 우는 풍성한 자들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푸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 영원히 가뭄이 없게 하시고 저희들의 용서가 태산같이 쌓이는 곳에 영원한 원수가 하나도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지금 이 곳엔 실망과 고통 중에 있는 형제들과,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는 형제들과 핍박받고 설움 당한 형제들과 불화하고 괴로워하는 형제들이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하고 있는 슬픔과 실망의 의미를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병고와 사망과 흑암 중에서도 주의 성령이 최후로 승리하는 것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위로와 기쁨과 건강을 주시고, 은혜로 채워주시고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어라"하신 주님!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시여!

저희들의 간구와 부르짖음에 권능의 오른손 흔들고 화답하여 주시옵소서. 우둔하고 미련한 저희들이지만 주님께서 저희들을 사랑하시는 것만은 아나이다.

다시는 아버지 말고는 아무에게도 저희 마음을 열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랑의 맹세를 영원히 간직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간구하옵나니 이 시간도 압제와 굶주림에서 절망하며 신음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과, 청운의 꿈을 안고 외국으로 건너갔다가 인간 천대와 고독만 뼈저리게 맛본채 지금도 모진 고생과 질병으로 희망조차 잃고 방황하고 있는 많은 이민자들과 불법체류자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시여!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도 입히시나니 저들도 먹이고 입히시며 소망을 주시고, 그러한 병과 고통과 싸우고 있을 때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축복 받을 가장 좋을 때임을 깨닫게 하셔서 하루 속히 하나님을 영접하여 은혜를 받고 자비와 긍휼을 기다리는 용기와 확신을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교회의 유치부로부터 중, 고등부 및 각 기관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세우신 종을 통하여 무한하신 은총으로 베풀어 주셔서 그 은혜가 모두와 함께 머물고, 모두와 함께 나누며 모두와 함께 지내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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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소식은 우리가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5:13∼16

우리 인생에서 언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하게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살아갈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가운데서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소금의 삶이요 빛의 삶일까요.

먼저 소금의 사명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9:50)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골4:6) 소금이 맛을 내는 것처럼 우리의 말을 은혜 가운데 화평케 하는 말로써 화목케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에서는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우리에게 주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직책을 감당하기 위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고후6:3).

이제 우리 모두 화목케 하는 사신이 되어 이 직책을 잘 감당하여 나로 인해 우리의 가정과 사회, 나라와 정치가 회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받는 축복된 인생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다음은 빛의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성도는 성도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옳은 행실이 있고 이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 행위를 요한복음 15장 16∼17절에서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사랑의 과실을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항상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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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은 계산이 아닙니다 


 

다니엘 3:16-18

하나님 사람들의 특징은 '그 다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요구할 때 서슴없이 드린 것은 그 다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미련 없이 사자 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풀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그 다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산 기도를 했을 때입니다. 한 형제가 낭떠러지 위험한 장소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위험하고 불안해 보여 "조금만 뒤로 물러가서 기도하세요"라고 말하니 "놔두세요. 나 지금 하나님을 겁주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응답을 안주면 떨어져 죽겠다는 것입니다. 이 형제는 그 다음을 믿는 기도가 아니라 그 다음을 계산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원하는 것이지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왕에게 "우리가 뜨겁게 타는 풀무 속에 던져진다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그 풀무에서 구해내실 수 있습니다"고 하자 느브갓네살은 군사들에게 풀무를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해서 세 사람을 던져넣으라고 합니다. 곧이어 세 사람은 풀무에 떨어졌지만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계산을 한 뒤 풀무에 들어간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고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잘 믿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갈등하고 흔들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계산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기도·봉사헌신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시겠지'라는 생각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다음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언제든지 그 다음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은혜를 주실 때 주님은 "내가 너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울을 향한 주님의 계획이면서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가지 않으십니다. 분명한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만나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흔들리고 포기하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은 그 다음이 있음을 믿는 것임을 기억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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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후회 없는 부르심

로마서 11장 29∼32절
 
모든 사람은 살면서 후회합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며 괴로워합니다. 믿었던 사람이 약속을 저버릴 때 왜 저런 사람을 만났을까 후회합니다. 인생은 크고 작은 후회의 연속입니다. 믿음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약한 우리 인생을 바라보는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실망스러우실까.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여전히 교만하고 순종하지 않는 우리의 행동에 얼마나 후회하실까. 그러나 이는 인간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결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후회하고 실망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부르신 데 대해선 후회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우리를 보고 후회하지 않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른 건 무엇을 바라고 기대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긍휼하심으로 은총을 베풀기 위함입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아는 주님이 우리를 측은히 여기고 사랑으로 안아주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긍휼하심으로 주님은 사역하셨습니다. 소외당하고 죄인 취급 받던 사람에게 자유를 주심으로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연약한 인생에 베푸신 하나님의 가장 큰 긍휼이요 구원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구할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주께서 우리 인생을 바라볼 때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유대인도 오늘날 자신들의 은사를 선용하지 못합니다. 다투며 미워하고 불순종하는 우리도 주님 보시기에는 그저 불쌍히 여김을 받을 대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은 연약한 우리 인생이 다 알 수 없고 그 긍휼하심의 깊이도 다 알지 못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긍휼의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통해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의를 드러냄으로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태도를 불순종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은 곧 불신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주님은 그 불순종과 불신앙마저도 구원의 기회로 삼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연약한 우리를 부르고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는 은총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으로 인해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불순종과 불신앙을 정당화하고 주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지 마십시오.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남을 비난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참된 신앙과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긍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 불순종과 불신앙이 판친다 해도 흔들리지 말고 긍휼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난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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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 진실한 접촉

 

 

 

찬송 : ‘구주예수 의지함이’ 542장(통340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5장 25∼34절

말씀 : 오늘 본문 내용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이라는 병으로 고통을 당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의 옷에 손을 대므로 병이 낫게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고 진실하게 주님과 만나고 접촉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말 못할 고민을 12년 동안이나 안고 살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돈만 많이 쓰고 병은 악화됐습니다. 그런 그에게 희망의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줄 수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병을 주님께 말씀드리기 힘들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그는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병이 치료됐습니다. 근원적으로 치유되었으며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손을 대는 그 순간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수많은 사람이 서로 밀쳐서 주님께 손을 댄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만진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그 여인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 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사건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봉사를 했습니까. 과연 나는 이 여인과 같은 믿음으로 진실하게 주님과 접촉한 적이 얼마나 됩니까. 아무런 의식도 믿음도 없이 예배하고 봉사한다며 교회에 오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수없이 많은 예배를 하면서도 감동이 없고 매번 반복되는 의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까. 단 한 번 예배를 드려도 진지하고 진실하게 하고 예배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감격이 너무 커서 삶의 활력을 경험한 적은 몇 번이나 됩니까. 간절하게 기도하며 눈물로 주님을 만났더니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며 기도의 즐거움을 누린 경험은 얼마나 됩니까.

진실한 접촉은 놀라운 은혜를 입게 합니다. 기적을 체험하게 합니다. 주님 곁에 가까이 와서 서로 밀면서 주님과 접촉한 수많은 사람 중에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이 여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접촉이 없이는 이런 기적이 없습니다.

나의 신앙생활을 반성합시다. 12년 동안의 고통과 아픔이 한 번의 접촉으로 해결된 이 여인처럼 우리가 주님을 진실하게 만나고 접촉하므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늘 기쁨과 감격의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단 한 번의 예배를 통해서도 놀라운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는 진실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그 진지함을 유지하고 기도할 때마다 그 진실한 접촉이 이루어지게 합시다.

기도 : 나는 얼마나 진지하고 진실하게 주님을 만나고 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단 한 번의 예배에서라도 진지한 접촉을 통해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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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용서  †사순.고난,부활,자료 

 

 


찬송 : ‘그 참혹한 십자가에’ 269장 (통 21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성경 : 사무엘하 19장 21~22절

말씀 :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이성보다 감정이 훨씬 더 우리 삶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미움을 걷어내고 용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형들을 용서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시고 빚진 자의 비유로 용서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의 용서를 받은 우리들이 형제를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스테반 집사는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기도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하나님께서는 죽을죄를 지은 우리들을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시므이가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저주합니다. 아마도 이제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승리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시므이는 급히 다윗 왕 앞에 나와 19∼20절에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라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를 본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21절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아비새의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22절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고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윗은 용서합니다. 우리는 항상 남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것이 십자가처럼 느껴지면 달게 짊어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기도 : 우리의 죄를 사랑으로 덮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기만 하면 용서해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오늘도 살아갑니다. 그 사랑, 그 은혜 잊지 않고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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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의 의무

 

 


말씀:고린도전서 7:1-7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전서 7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6:12-20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몸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령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6:19-20). 우리는 이 시간에 그 삶의 원리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보고자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 사도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론에서 살펴봤습니다만 고린도전서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1-6장 말씀으로 글로에의 집 사람들의 보고를 통해서 제기된 고린도교회 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1-6장 말씀을 통해서 그 문제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1-4장에서는 고린도교회 내의 분열과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한 오해에 대한 답변을, 5장에서는 근친상간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들에 대한 답변을, 그리고 6장에서는 세상 법정에서 다른 성도들을 송사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을 살펴봤습니다.

 


둘째는, 7-15장 말씀으로 고린도교회의 대표자들에게서 온 편지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7장에서는 혼인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이고, 8-10장에서는 우상의 제물과 관련된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답변을, 그리고 11-14장은 공공 기도 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와 무질서한 만찬 문제와 성령의 은사의 활용과 예배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그리고 1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육체의 부활에 관한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오늘 우리는 7:1-7절 말씀을 통해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의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이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당시 고린도 지역은 헬라철학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헬라철학의 대표적인 영향이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고귀하다고 보는 영지주의입니다. 이런 생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거의 같은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나라도 선비를 높게 쳐주고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겨왔습니다. 물질보다 정신적인 세계는 신의 세계에 가깝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두 가지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질은 더러운 것이기에 떨쳐버려야 할 짐으로 보고 금욕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반응은 육체는 더럽고 아무 것도 아니기에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며 방탕과 쾌락으로 자기 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고린도교회 안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다 있는 것입니다. 음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금욕주의로 나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첫번째 질문으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가 쓴 말에 대하여는’라는 말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질문을 보고 그에 대해서 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한 바울 사도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말은 모두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7장에서 바울 사도의 전체적인 논지는 지금 있는 그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17-23절을 보면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 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부르심을 입은 그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구별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관습과 전통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목숨을 거는 할례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으로 있으나 주인으로 있으나 그것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부르시는 분과 함께 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7장 말씀에서 바울 사도의 결론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결론은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보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앞에서 본 대로 전부 독신으로 지내라는 말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그대로 지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말씀에 보면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느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 받은 각각의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독신으로 지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결혼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혼에 대하여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인륜지대사로 여겨서 아주 성대하게 결혼식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왜 결혼하는가를 음행의 연고라고 합니다. 2절을 보면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에 자존심이 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결혼을 꼭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못해서 하는 것처럼 말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창설하신 것은 성적 욕구만을 해결하고자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창세기에서 공부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창설하신 것은 구속사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입니까? 8-9절을 보면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혼인 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권면하기를 자신처럼 혼인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합니다.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이 이런 정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한다고 하면 우리가 무슨 짐승같이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고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짐승보다 더 못한 것이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소도 그 주인을 알고 나귀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가 아비로서 길러낸 내 자식, 곧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고 한탄한 것입니다(사 1:2-3).

 


그러면 정말 결혼이 정욕이 불타서 절제가 되지 아니하여서만 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에베소서 5:22-33절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통해서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결혼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비밀을 결혼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왜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는 결혼을 말하면서 음행의 연고로 결혼하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미 우리가 고린도전서 6:15-18절에서 본 대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음행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거룩한 성전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음행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자기의 몸이라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며,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우리의 것으로 여기며 사는 모든 부분에 다 해당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 모습 중에 하나가 바로 결혼과 부부관계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 몸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사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한다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6:17절에서 본 것처럼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신 것은 결혼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가 신랑과 신부가 되는 것으로 에베소서에서는 보았습니다(엡 5:22-33). 그러므로 결혼하여 부부생활을 하는 것은 내 몸이 내 몸이 아님을 확인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작업인 것입니다. 물론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다루시지만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몸을 주님께서는 결혼을 통하여 다루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보면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나 간에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요구하는데 아내가 거부하지 못하며, 아내가 요구하는데 남편이 거부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결혼 생활 전반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네가 누구의 몸이냐 하는 것입니다. 곧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한 몸으로 산다는 것을 통해서 처절하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남편들이 직장생활에 얼마나 힘이 듭니까?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때려치우고 싶지만 처자식을 생각해서 참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우리 몸을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다보면 유혹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아내를 생각하고 남편을 생각하기에 즉 자기 몸이 아니기에 절제하는 것입니다. 혹시 나는 전혀 그런 유혹이 없다는 분이나, 또는 유혹을 이길 수 있다는 분은 아직도 자기의 이상형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거나 또는 자기가 너무 못생겼기에 그런 것이라고 보아야지 다른 사람보다 자기는 더 나은 인품이나 신앙 때문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온갖 스캔들이 발표될 때 그런 일들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길만한 힘들이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의 성격이나 기호로 인하여 성적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습의 유혹들은 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까지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금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자기 몸을 관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였든지, 하지 않았든지 간에 우리 주님께서 관리에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욕주의도 아니고, 쾌락주의도 아닙니다. 내 몸을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알고 살도록 부부 사이에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부부 사이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서로가 동등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마땅히 하여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를 마땅히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5절 말씀에서 서로 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얼마간 분방할 수는 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합방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마귀가 틈을 탈까봐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행복을 위한 결혼생활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자기의 몸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남편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고 기선을 빼앗기는 것도 아닙니다. 둘 다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님을 알고 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7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나의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을 주신 것은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부 관계가 막히면 기도가 막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늘 경험하지 않습니까? 또 우리는 함께 유업을 받을 자임을 알아 서로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이런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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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대표기도문 (Sunday night worship service)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시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평소의 주일 보다 조금은 일찍 나서야 하고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부전기도원예배당에

 


오직 하나님을 쫓아 모이기에 힘쓴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 있기를 구합니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임시 예배당 생활에 이제 천처히 적응 되어가매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 곳에서의 작은 불편한 점 하나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겨나가는 시간이 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처소가 완성되어 비로소 들어가게 되었을 때

 


인내의 열매를 보며 행복하게 그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제 9월 부터는 삶공부가 시작 될 예정입니다.

 


잘 준비되어지고 잘  편성이 되게 하여 주셔서 은혜를 구하는 그 마음들이

 


그에 합당하게 응답받는 시간이 되기를 구합니다.

 


평신도 가정교회 세미나도 준비해갑니다.

 


은혜는 우리의 능력에 달린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주어지는 것임을 믿고

 


준비하며 나갈때 우리의 맡은 역할을 잘 해내고

 


누군가에게 은혜의 통로가 되어질 수 있도록 사용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언제나 우리 자녀들을 기억하여주사 자녀들에게도 믿음이 온전히 들거가게 하시며

 


자녀들 스스로 예배를 지켜갈 수 있는 믿음까지 이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책임져 주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이 모든것을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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