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절기] 모세의 마지막 설교 ( 축복과 저주 )

 

모세의 마지막 설교 ( 축복과 저주 )

11:26-32

이제까지 읽은 신명기 11장의 결론으로 모세는 순종에 대한 권고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모세의 권고는 대단히 감격적이고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영원히 따르게 하며 결코 낡아 없어지지 아니할 인상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광야까지 인도하셨던 사실과 복의 땅에 대한 약속과 경고,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에 대해 말한 모세는 이제 결론으로 단호한 자세로 복과 저주는 너희 앞에 있으니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너희 자신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바로 26-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라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과 저주의 열쇠는 이스라엘백성들 자신이 선택하기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않느냐는 여부가 복과 화를 좌우한다는 의미에서 대조적으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한 도를 지키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것이지만 만일 하나님의 명령에서 돌이켜 듣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저주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모세는 다시 분명하게 복이 얼마나 바랄만한 것이며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하여 복과 저주가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을 일일이 말했습니다.

 

27-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면 복이 될 것이고 28-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경우 받게 될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며, 저주는 불순종할 경우 받게 될 징벌을 말합니다. 따라서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 이스라엘백성들이 계속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계속 누리게 될 것이고 아니면 반대로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자기 멋대로 살게 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인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를 백성들의 결정하기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마치 기계처럼 이미 만들어진 계획에 따라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또 강제로 훈련시켜서 사람의 용도에 따라 부려 먹는 동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또 생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또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시되 창2:16-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시기를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 아담 자신에게 결정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독재나 자유를 구속하는 강제명령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으로 싫어합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내 멋대로라는 방종과 혼돈한 삶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선택할 여유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백성을 사랑하시고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억지로나 강제가 아니라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시므로 복과 저주에 대한 선택권을 전적으로 사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못됩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선택한 결과는 본인이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때 굳이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하루에도 크고 작은 수도 없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갈림길에서 이것이다. 라고 선택하는 일을 실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신에게 선택의 문제가 제기될 경우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선택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장 유익한 것으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입니다.

삼상15:22-사무엘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23-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더구나 28-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사람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게 된다. 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하던 다른 신이란 이스라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또한 섬겨서도 안 되는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알, 아스다롯, , 하늘 황후 등이 있는데(왕상11:7;

 

16:31;7:18) 모두 사악하며 음란한 제전(祭典)에 의해 숭배되던 특징이 있습니다<6:14>.

28-저주를 받으리라는 말도, 모세 설교의 독특한 특징은 먼저 순종하므로 누리게 될 풍성한 복을 말한 후, 이어 불순종함으로 당하게 될 무서운 저주를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을 항상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 앞에 세워놓고 그들의 자발적인 순종을 하도록 권고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도 모세는 지금까지(8-25) 말한 복과는 달리, 만일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좇아 섬길 경우 가나안 땅의 모든 풍요로움도 한낱 물거품에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합니다.

 

29절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복의 땅을 약속의 선물로 받은 후 그 복이 영원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모든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온 정열을 다하여 가르쳤습니다. 복과 저주는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임을 가르쳤는데 29-그 복과 저주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스스로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선포하는 그리심산의 축복과 에발산의 저주,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습니다.

 

모세는 27:11-13에 다시 강조합니다. 이 모세의 지시는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거나 불순종할 때 따르는 복과 저주에 대하여 보다 생생히 교훈하기 위함인데, 훗날 여호수아는 그대로 실행했습니다(8:30-35).

 

헷세드강해 29-그리심산에서 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위의 두 산에서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왜 그리심산이 복의 산으로 에발산이 저주의 산으로 지정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두 산의 자연적 양상이 복과 저주를 구별하게 되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두 산의 위치가 복과 저주의 산으로 지정된 이유라는 설이다. '스트라우스'(Strauss) 같은 학자는 그리심산의 비옥함과 에발산의 황폐함을 주장하는가 하면 '로빈슨'(Robinson)은 두 산이 모두 벌거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 두 산의 사이에 있는 세겜에서 볼 때 그리심산이 해뜨는 동쪽에 위치해 있어서 별이 드는 반면 에발산은 동쪽을 등지고 있어서 그늘이 지기 때문에 각기 축복과 저주의 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설이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디에서나 ''은 복으로 '어두움'은 저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참고

 

1. 환경적 조건의 복과 저주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산이며 골짜기에는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겜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1) 두 산의 골짜기 세겜

 

아브라함의 제사: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름에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이 두 산의 골짜기인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겜 땅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야곱의 청결: 야곱은 하란에서의 나그네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곳에서 자기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이방 신상을 땅속에 묻어 자기와 그 가족을 청결케 하였던 곳입니다(35:4).

즉 믿음의 조상이 드린 제사와 청결은 그곳을 중심으로 양편으로 보이는 그리심산과 에발산과 복과 저주를 상징하는 의미로 나뉘었습니다.

 

2) 두 산의 비교적 요건들

 

두 산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서로 상대적인 극과 극을 보여 주는 비교적인 요건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심산: 골짜기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해가 뜨는 동편에 위치한 양지 바른 곳이며 또한 수목이 울창하여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보여 주는 산입니다.

 

에발산: 그리심산 맞은편 해가 지는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산은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황폐한 산입니다. 동편은 밝아옴의 복을 상징하며 서편은 어두워짐의 저주를 상징합니다.

  

또한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은 복의 상징이며 황폐함은 저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지리적 조건의 축복과 저주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지리적 조건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약속의 선물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복의 땅인 가나안 지역의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1) 에덴동산과의 비교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위하여 동방에 에덴동산을 만드셔서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2).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최초로 만드신 복의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은 범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을 선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곳에 들게 하시고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에 순종하게 하시므로 에덴동산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복의 땅입니다.

 

2) 위치적 비교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영생할 수 있는 생명나무와 그 실과가 있었고 죽음의 저주가 담겨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 실과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중앙에는 복의 그리심산과 저주의 에발산이 위치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과 저주를 언제나 인간 생활의 중앙에 두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는 곧 우리의 중심에 복과 저주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3.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신 뜻

복과 저주는 언제나 우리의 삶의 중심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공존하는 복과 저주를 하나님은 우리들 스스로가 선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제한된 선택의 자유 의지

인간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복과 저주입니다. 이 복과 저주가 선포된 후 선택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입으로 시인한 것들을 복과 저주로 확정하신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행한 대로의 결과

하나님은 인간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나가 입술의 열매와 행위의 열매를 먹고 그 영혼과 육체의 삶을 유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에 합당한 선택에는 복으로 갚아 주시고 저주에 합당한 선택에는 저주로 갚아 주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 37)는 말씀을 명심해야겠습니다.

 

31-당신들은 이제 요단 강을 건너가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당신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자리를 잡거든, 가나안에 반드시 들어가 그 곳에서 살 것을 말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기 위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널 것이 확실하니(31) 요단 저편에서 그 일을 행하라(30. 모세가 말한다). 이 일을 가나안에서 행해지도록 제정함은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을 그들에게 확실케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것과 같은 증거인 것이다(3:12).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라."

 

또 그것은 그들이 저주를 피하고 복을 얻기 위하여서는 복종해야 된다는 책임을 일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그 명령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명령을 공중 앞에 선포한 엄숙한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2-당신들은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준 모든 규례와 법규를 성심껏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래야 너희가 이 엄숙한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느니라.

이 구절 들은 위의 모든 말씀의 결론으로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가나안에 들어가는 확신과 아울러 들어간 후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계명을 부디 잘 지키라는 권면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고 내 멋대로 사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에 따라서 생명과 죽음 번성과 멸망 축복과 저주가 확실히 갈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꼭 받고 살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일에 저를 사용하여 주소서. 저는 부족하고 준비된 것이 적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쓰임받기 원하오며 더욱 순종하기 원합니다. 제게 주의 복을 허락하시고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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